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 -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차영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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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우주님이 모집하신 #우주서평단

스마트비즈니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헤밍웨이의 글쓰기에 이어 피츠제럴드의 글쓰기 철학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스마트비즈니스 출판사의 『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 독자가 이 책을 읽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작가는 어떻게 글을 쓰는가를 보며 나의 글쓰기에 적용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소설가는 어떤 생각으로 그의 소설들을 썼는지 읽고 느껴보는 것이다.

(1) 작가는 어떻게 글을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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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서 새로운 창조가 더 위대한지,

기존 형식을 완벽하게 보완하는 것이 더 위대한지,

네가 물었지.

피카소가 거트루드 스타인에게 한 말을 인용하면

적절한 대답이 될 것 같구나.


"우선 뭐든지 새로운 걸 해라. 그러면 누군가 따라와서 예쁘게 다듬을 것이다."

─ P.105,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에게, 1938, <서신집>

초등학생 때 숙제로 제출했던 독후감에는 빨간 글씨로 F가 적혀있었고, 팬픽이 유행할 시기에 나도 한 번 써볼까 몇 줄 끄적여봤지만 소설을 도대체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그만두었다.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꾸역꾸역 쓰다 보니 내 이야기 정도는 풀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설 쓰기는 어려웠던 사람이다. 작가, 그런 꿈은 10년, 20년 묵혀둬야 진심 같고 응원하고 싶어지는 건 아닌지. 내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려면 좀 더 묵혀둬야 할 것만 같았다.

『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는 피츠제럴드가 주고받은 편지들과, 쓴 글에서 '글쓰기'와 관련된 문장들을 발췌해 엮은 글이다. 짧은 글마다 담긴 글쓰기의 정수. 수없이 많은 이유로 아직은 작가가 될 수 없음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지만, 그 걱정 중 하나는 이 책으로 덜어낼 수 있게 되었다.

/

내가 그럭저럭 괜찮은 이야기를 써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도 이 이야기를 받아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거야.

편집자를 의식하는 행위는 내게 재앙과도 같거든.

그들의 비판은 나중에 생각하지 뭐…….

─ P.74, 헤럴드 오버에게, 1935, <서신집>

/

어느 순간 오직 특정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글을 쓰는 때가 올 겁니다.

그리고 그 외의 사람들이 어떤 의견을 가지든,

거의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게 되겠지요.

─ P.75, 크리스천 가우스에게, 1934, <서신집>

예술가들은 종종 흔들리기 마련이다. 글을 쓰는 예술가들이 스스로의 의지가 흔들릴 것 같을 때 피츠제럴드는 어떻게 난관을 헤쳐나갔는지, 이 책으로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덧붙여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헤밍웨이의 책도 쓰는 삶에 도움이 될 것이다.

(2) 소설가는 어떻게 이 소설을 썼는가.

독서인이든 비독서인이든 살면서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안 들어본 이가 과연 있을까. 『위대한 개츠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폭죽이 터지는 밤하늘을 뒤로하며 건배를 올리는 그 유명한 장면의 원작이 피츠제럴드의 소설이다. 가름끈이 짧아 여전히 읽지 못했지만, 소설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는데, 피츠제럴드가 어떤 관점으로 그의 작품을 써 내려갔는지도 이 책으로 확인할 수 있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를 쓸 때 롱아일랜드의 전형적인 이야기나 사기꾼, 불륜이라는 흔한 소재를 배제'하고, '언제나 그를 강하게 사로잡는 작은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음을 동료 작가에게 이야기하고, 소설 속 인물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등을 많은 편지를 통해 알렸다. 작품을 온전히 나의 생각과 상상력으로 씹어 먹어도 좋은 독서 경험이 되어 주지만, 작품과 함께 작가의 관점을 즐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을까. 글쓰기에 뜻이 없는 독자라도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좋아하고, 더욱 많은 이야기가 듣고 싶다면 꼭 권하고 싶다.

이번 책은 서평단을 모집하신 우주님과 함께 글쓰기 활동을 하며 읽어나갔다. 글쓰기방이 혹시 소설 쓰기인 걸까, 처음엔 걱정하며 들어갔는데, 이번 기회에 처음으로 이야기를 오천 자나 써봤다. 여전히 공개하기엔 부끄럽고, 내가 작가가 되기엔 마음이 걸리긴 하지만…. 글쓰기에 뜻이 있다면, 이 고전 작가의 글에서 힌트를 얻어 새로운 영감을 얻든 창작 활동에 첫 발을 내디든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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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 브레인 - 우리 안의 극단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레오르 즈미그로드 지음, 김아림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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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어크로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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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를 둘러싼 싸움은 언어 게임과 비슷하다. 단어와 수사적 장치가 상대방에게 던져지고 아슬아슬하게 비켜간다. 반동주의자, 혁명론자, 보수, 진보, 음모론자, 우월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급진주의자, 광신자 같은 단어들. 우리는 이러한 꼬리표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는 실제로 누구를 지칭하는지 아는 경우가 거의 없다. … 우리는 사람이나 생각을 무 자르듯이 깔끔하게 각각의 범주로 나누어 명확성을 높이고 어떤 정체성을 씌우려고 한다. 이웃에 광신도가 있다! 10대 아이들은 바보다! 이런 분류법은 유쾌하거나 충격을 안긴다. 하지만 이것은 언어학적인 양동이와 같아서 사람들의 삶 속에 존재하는 이데올로기의 실제 모습을 덮어 씌운다. 삶 속의 이데올로기는 지저분하고, 위선적이고, 오만하고, 자기파괴적이다. 거기에는 상실과 기쁨, 유머, 후회, 두려움, 좌절, 주저, 반추, 친밀함, 슬픔이 있다. 그리고 눈물과 한탄, 환한 미소, 혼란스러워하는 곁눈질도 있다.

─ P.22, 「1,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들」 中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화자의 아버지는 오랜 기간 '빨갱이'였다. 이 사람은 이렇고요, 저 사람은 저렇대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오늘날 우리는 신념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언어의 집이 여기저기 세워지면서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일상에 더욱 깊게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면서 극단적인 사람도 마주하게 된다. 아, 말이 안 통할 것 같다는 예감. 그냥 대화를 애초에 안 하면 서로서로 편하다. 딱 그 정도로만 살고 있었다.


나는 어째서 사람이 극단적인 생각에 빠지게 되는지 여기에 대해서는 한 번도 고민하거나 의심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레오르 즈미그로드의 『이데올로기 브레인』은 이데올로기와 우리가 이데올로기에 빠지게 되는 이유를 철학, 심리학, 신경과학, 역사와 종교 등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본 책이다.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감옥에서 태어난 이데올로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며 어떻게 변질되었고, 사람들은 어떻게 극단적인 생각에 치우치게 되는가.


동그란 원에 기다란 막대가 두 개 달려있다. 동그란 원 안에는 점이 찍혀있다. 이것은 오리인가, 토끼인가. 하나의 그림에서 어떤 사람은 오리를 보았고, 어떤 사람은 토끼를 보았다. 그것은 오리이며 토끼일 수는 없다.


/

같은 대상, 같은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이 우리를 양극으로 분열시킨다.

우리는 단순한 착시와 모호성을 받아들이는 대신 각자의 해석을 상대에게 설교하며 전쟁을 벌인다.


─ P.236, 「14, 정치적 착시」


서로 조율할 수 없다면 극단주의는 큰 골칫거리가 된다. 문제가 생겼기에 연구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신경과학자들은 아이들을 인터뷰를 하고, 뇌를 들여다보고, 환경과 삶을 분석한다. 아몬드처럼 생긴 편도체는 두려움, 분노, 혐오 등 부정적 감정을 맡는다. 보수주의자는 이 편도체가 더 큰 경향이 있다. 집, 이웃, 도시, 국가, 기후로 인해 극단주의로 빠지는 경우도 있다. 따돌림당한 뇌 역시 극단주의에 빠지기 쉽다.


저마다의 뇌는 들여다볼 수 없어도, 또 뇌구조나 환경이 애초에 그러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우리의 내면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이분법적이고 극단적인 사고방식이 있을 수 있음을 인지하는 순간 우리의 행동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의 신념은 옳을까?


이 책은 읽는 동안, 나 자신을 계속해서 의심하게 만든 책이었다. 편견으로 가득한 말을 들어오고, 때로는 특정 부류의 사람인 양 변명도 못해보고 낙인찍혀봤기에 내가 타인을 대할 때에는 유연한 사고로 대하고자 다짐했지만, 얼마 전에도 다른 책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경직된 사고를 확인했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적 사고에 대한 이 책은 극단주의에 빠지기 쉬운 뇌를 가진 사람들의 사례들과 나의 공통분모는 없었는지, 내 생각의 오류를 발견했을 때 오류에서 빠져나올 때 더디거나 머뭇거리지는 않았는지, 나는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또 다른 극단주의적 생각에 빠져있는 건 아닌지 검토해 보게 된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경직된 사고를 인지하고 고치기 위해 노력할까? 지금 내가 타인에 대해 일말의 기대조차 없는 것도 경직되고 편향된 사고일 수도. 이 책을 읽고 다 같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유연하게 생각해 봐요! 대립하고 싸우지 말고, 서로 타협안을 찾아가요! …라고 어딘가에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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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만의 책장 - 여성의 삶을 바꾼 책 50
데버라 펠더 지음, 박희원 옮김 / 신사책방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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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우주님이 모집하신 #우주서평단 과

신사책방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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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사실상 어떤 법적 지위도 누릴 수 없었고

지적 능력도 없다고 여겨졌으며

남성에게 복종하고 기분을 맞춰주라는 요구만이

여성의 역할이자 정체성이던 시대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은 가축보다 조금 나은 존재가 아니라

이성을 갖춘 인간이라고 주장했다.

─ 「4. 여권의 옹호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中


책을 읽을 때면 ─ 특히, 고전 문학을 읽을 때면 ─ 여성이 이상하게 그려지는 모습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감정적이고, 수동적이며, 간사하고, 남성보다 열등하다. 때로는 주인공이 진정한 '남자'로 거듭나기 위해 창녀로 등장한다. 책에서 그려지는 여성의 특성을 아무 의심도 품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기엔 마음 한구석이 걸린다. 여성 독자는 그런 상황들을 그저 참고 견디거나, 불편한 손님이 되어서 읽는 도중에 쫓겨나야만 하는 운명인 걸까?


​─

데버라 펠더의 『여자만의 책장』은 그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목소리를 내는, 여성을 옹호하거나 맞서 싸우는, 강인하게 그려지는 등의 책 50권을 선정했다. 일본의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이야기』부터, 여성이 집안에서 느끼는 분노를 여러 여성 작가에게 글을 청탁해 하나의 책으로 엮은 캐시 하나워의 『그래, 난 못된 여자다』까지. 남성 작가에 의해 쓰였지만 위대한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도 있다. 소개되는 책마다 여성의 시선으로 책을 읽어내고 쓴 대여섯 장 정도의 짧은 글이 달려있다. 안나 카레니나를 단순히 불륜을 저지른 감정적인 여성 캐릭터로 봐야 할까?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쓸 당시에는 어떤 사회였을까? 아름다움의 신화는 여성의 진보를 어떻게 가로막는가.


​─

책을 부르는 책


​책을 부르는 책은 많다. 서평집, 독서 에세이, 작가와 작품에 대한 책들, 때론 문학잡지에서도. 읽다 보면 읽고 싶어지는 책이 자꾸만 쏟아져 나오는데 찾는데 애를 먹거나 출간이 아예 되지 않았다면 곤란하지 않을까? 이런 점을 책을 만들며 인지를 했는지, 신사책방의 『여자만의 책장』은 소개된 책의 한국판 표지와 함께 옮긴이, 출판사, 출간 연도 등의 정보를 함께 실었다. 50권의 책 중에서 국내에서 출간되지 않은 8권의 책을 제외하고 모든 책에 있다. 한 번역 잡지에 실렸던 '에세이 쓰기와 관련된 추천하는 책 리스트'는 절반 넘게, 아니 한 두 권을 제외한 모든 책이 한국에 없었던 기억이 있기에, 이 책에서 더욱 좋았던 점으로 꼽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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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에세이는 책 소개가 아니라 관점의 항해다.

책에 대한 책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은

같은 책을 두고 조금씩 다른 시선을 발견하는 데에 있다.

또는, 독서 목록에서 내가 몰랐던 책을 접할 때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나와 다른 독서의 길을 거친 누군가의 생각이 궁금하다.

타인은 어떤 책을 읽는가.

타인의 생각에는 얼마나 많은 갈림길이 있을까.



가장 지루한 독서 에세이는 누구나 아는 책을 새로운 관점 없이 소개하는 글이다.

제도권에서 정해준 목록과 기존 해석에서 벗어나지 않는 독서로

새로운 생각이 솟아날 가능성은 없다.

특히 남성 저자의 책으로 독서 목록을 채우면서도

아무 의구심을 품지 않는 독서가들이 실로 많다.



세상이 정해준 책장을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도권의 책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 「해제: 당신의 책장은 누구의 목소리로 가득한가」, 이라영(예술사회학자)


​여성 독자라면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읽기를 피할 수 없다. 책 읽기를 시작했다면 이러한 점은 숙명과도 같으리라. 데버라 펠더의 책장이 여성, 아니 모두의 책장에도 한 권이라는 형태로 존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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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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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열린책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새가 부러웠던 적이 있다.

비올라도 그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

피에타[Pietà]

경외, 연민, 공경심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 ─ 미모, 석공의 아들로 태어나 조각에 천재적 재능을 보인 그의 삶은 어릴 때부터 다사다난했다. 연골 형성 저하증을 가진 탓에 키가 작았고, 모두가 그의 모든 것을 낮잡아 봤기 때문이다.


​여성으로 태어난 탓에 가진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고, 항상 의지가 좌절되는 비올라도 있다.


무덤에서 만나 새롭게 싹트는 우정, 미모와 비올라는 서로를 영혼의 쌍둥이라고 말하지만 둘의 삶은 너무도 달랐다.


​그로부터 수년 뒤, 1986년, 임종을 앞둔 미모는 사크라 수도원에 있었다. 수도원에는 미모가 지키고 싶어 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가 만든 《피에타》였다.


비탈리아니의 《피에타》를 본 사람들은 야릇한 꿈들이 잠을 어지럽힌다고 고해하고, 더워지고 뭔가 느껴지기 시작한다고 털어놓는다. 6백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거의 모두 동일한 증세를 보고한다. 처음에 느끼는 강렬한 감정, 그다음에 짓누르는 일종의 심리적 압박감, 심장 고동의 이상 급증, 현기증 등. 우울감에 가까운 깊은 슬픔도 느꼈다고 한다.


미모와 비올라의 삶, 그들의 삶은 어떻게 '비탈리아니의 《피에타》'로 빚어졌을까?

'비탈리아니의 《피에타》'는 무슨 비밀이 있는 걸까?

2023년, 프랑스의 문학상이자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공쿠르상 수상작 『그녀를 지키다』는 630페이지라는 꽤 방대한 분량을 가진 한 권의 장편 소설이다. 두께에 쉽게 손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한때 서양의 장편소설은 쓸데없이 길기만 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만큼 읽었는데, 분량에 비해 남는 게 별로 없었다는 감상을 남긴 소설도 여전히 있지만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그녀를 지키다』는 그 페이지만큼 감동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소설은 미모의 삶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의 탄생부터, 여기저기 내던져지고, 수치와 모멸을 겪기도 하다가 천재성으로 끝내 성공하는 조각가 미모의 삶을. 하지만 비탈리아니의 피에타가 가진 비밀이 종장에 이르러 드러나는 순간, 독자는 미모가 아닌 비올라의 모든 순간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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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잃는 것보다 더 고약한 게 있었으니,

바로 자유에 대한 의욕을 잃는 거였다.

─ P.553


​우리에겐 이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피에타》가 있다. 라슬로 토스의 반달리즘에 의해 한번 파괴된 그 조각상 말이다. 개인적으로 그 조각상을 참 좋아하는 탓에, 부오나로티의 《피에타》를 넘어서는 가공의 《피에타》를 이야기한다는 것에 처음에는 내심 반감이 들기도 했다.

당신도 부오나로티의 《피에타》를 좋아하는가? 그렇다면 끝까지 읽어보기를. 마지막까지 읽은 나를 포함한 모든 독자는 비탈리아니의 《피에타》가 책 속에만 존재할 뿐 현실엔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에 큰 상실감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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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별한 실패 - 글쓰기의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힘
클라로 지음, 이세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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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을유문화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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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실패하도록 부름을 받은 인간이더라도

아무렇게나 실패하지는 말라.

─ 『기사도』, 헨리 미쇼


책을 읽으면서 글쓰기에 대한 욕구를 느낀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가끔은 작가가 되는 상상을 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읽었던 책 ─ 잘 만들어진 작품, 또는 상품 ─ 과 내가 쓰는 글 ─ 이걸 돈 받고 판다고? ─ 에서 느껴지는 차이에 삭제하거나, 비공개로 돌리거나, 나만이 아는 어느 은밀한 폴더에 처박아 놓는다.


글과 관련된 우리의 실패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작가는 어쩌면 신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만 하는 일은 아닌지.


관련 업계에서 일하지 않고서야 우리가 글쓴이의 실패를 어떻게 알 수 있으랴. 작가이자 번역가, 서점원, 출판 교정자로 일해온 클라로의 책, 『각별한 실패』는 글쓰기, 번역 그리고 읽기의 실패를 이야기한다. 그는 '독자'에만 머물렀던 사람이라면 발견하기 어려울 '책에 대한 거의 모든 실패'를 다룬다.


실패에 대한 은유들

실패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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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하나의 문장, 그다음 한 문장, 그리고 또다시 이어지는 한 문장이다.

그 문장의 마침표가 점점 더 두려워진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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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실패의 명문 학교다.

프루스트 말마따나 질투가 사랑의 진실인 것처럼, 번역이 문학의 진실일 수도 있다.

─ P.33


/

실패는 잠들기가 두려운 때마다 꾸는 꿈이다.

─ P.38


나에게 '실패'는 그냥 '실패'였다, 클라로를 알기 전까지.


클라로가 '실패'를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 '실패'는 온갖 것으로 변신한다. 실패는 문장이 되고, 발명이 되고, 짐승이 되고, 사다리가 되고, 오늘이 되고, 꿈이 된다. 다른 이미지로 변모하는 순간 우리는 실패에서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

우리 중에서 작업하던 원고를 파기하거나 중단해 보지 않은 자가 과연 있는가?


클라로가 던진 이 질문은 비단 독자에게만 적용되는 질문은 아니다. 카프카는 실패의 귀재요, 그르치기의 흑태자이고, 페소아는 킹이다. 콕토는 모든 것에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책은 작가들의 실패 역시 소개한다. 클라로는 이들의 실패 사례를 이야기하며 그 실패가 불러오는 더 커다란 힘을 보여준다.


실패를 했기에 성공했다고?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하지만 실패는 그러하다.


당신이 만약 글을 쓰지 않는다 해도, 책은 읽는 독자라면 이 책의 9장, 「대천사의 회초리, 고르차코프의 촛불」만큼은 꼭 읽었으면 한다. '읽기의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탓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량이 줄어든 건 아닌지. 책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책의 가격만큼 가져야 하며, 한 번에 깨닫고 싶으니까.


/

나는 무엇을 읽고 있는가?

아니, 나는 무엇을 읽고 있지 않은가?

나는 재미있는 이야기의 도입부를 마주하고 있는가,

아니면 재앙의 이면을 보고 있는가?

나는 읽을 줄 모른다.

이 사실은 끊임없이 나를 겁주기도 하고 기쁘게 하기도 할 의무가 있다.

읽을 줄 모른다는 실패의 한복판에서, 나는 읽는다.

─ 「9. 대천사의 회초리, 고르차코프의 촛불」 中


클라로는 읽을 줄 안다는 것은 완벽을 추구하지만 허상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나는 읽을 줄  알아." 그렇다면 누가 감히 자크 뒤팽의 시구절, "얼어붙은 심장 너머, 약간씩 간격을 두고 엇갈려 쓴 글."을 해독할 수 있을까? 우리를 비틀거리게 만드는 읽기, 시를 읽을 줄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깨닫는 순간, 우리는 다시 한번 텍스트에 부딪히는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있다고 클라로는 말한다. 클라로가 읽기의 실패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 오독은 더 이상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게 된다.


/

나는 글을 쓰면서 실패하기 때문에,

혹은 글을 쓰면서 실패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삭제하고 다시 쓸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비단 글 쓰는 사람만이 아니라 다시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P.71


읽고 나면 글과 관련된 모든 실패에서 한층 자유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실패가 나를 그저 좌절시키는 것이 아닌 나를 텍스트에 부딪히게 만드는 각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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