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로봇 - AI 시대의 문학
노대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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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문학과지성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제목만 듣고 상상했던 것과는 비록 달랐지만, 그래도 내게 있어서 꽤 유익했던 책이었다. 천선란, 정세랑, 박서련 등 … 젊은 SF 작가들의 유행은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데, 나는 SF 장르에 도통 재미를 붙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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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원 작가의 『소설 쓰는 로봇』은 정말이지 막연하게 AI 창작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다룬 책인 줄로만 알았다. 책은 AI,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테크놀로지의 등장과 문학 전반에 끼치는 영향들, SF 문학으로 바라본 세계, 그리고 SF 문학에 대한 비평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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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평집의 1부 'Art-ificial Intelligence'에서는 ChatGPT 출현 이후 생성형 AI와 문학의 관계, 그리고 AI를 둘러싼 문학의 비판적 사유를 다룬다. 2부 '포스트휴먼 스토리월드'는 인간을 넘어선 인간, 혹은 새로운 신인류인 포스트휴먼과 이들이 살아갈 포스트휴먼 세계를 다룬 글들을 모았다. 3부 '과학/소설, 혹은 상상공학'은 SF에 관한 글들, 과학과 문학의 소통을 다룬 글들을 엮었다. 4부 '바벨의 디지털-도서관'은 짧은 서평과 북칼럼들이다. SF와 포스트휴먼 관련 소설에 대한 리뷰를 모은 '포스트휴먼 시대의 소설'과 포스트휴먼 및 인류세 관련 문학서와 인문사회과학서를 다룬 '인류세 시대의 포스트-인문학'으로 나누어 구성했다.


─ P.18, 「프롤로그, 고무 오리, 지게차, 그리고 러다이트 ─ AI 이후 글쓰기와 예술」


AI가 인간 작가를 대체할 것인가 아니면 작가가 기계와 공동 창작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 것인가?


나는 AI의 등장이 창작자들의 창작의욕을 꺾는 데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27쪽의 질문처럼, AI가 인간 작가를 대체할 것인가? 같은 생각이나, 44쪽의 인용문처럼 아주 독보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니면 더 이상 작가가 되는 것은 어렵다는 의견에 가까웠다. 제주대학교에서 AI 교육을 연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분야에 가장 맞닿아 있는 연구자이기도 한 저자는 '답은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AI가 만들어낸 문학이 우리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문학계를 재편해나갈 것'이라고 답한다.


창작 분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규모가 큰 곳에서는 AI 기업을 상대로 고소를 했다는 뉴스가 보이지만, AI 창작 분야에 대한 연구가 위축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1부에서 문학 분야에서 AI 활용에 대한 연구를 적극적으로 소개한다. AI에게 자기 자신에 대한 특징을 시로 표현해 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작가의 문체를 학습시켜 그 문체로 글을 써보라고 명령하기도 한다. 앞으로 우리는 AI 기술과 AI 문화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인데, AI 기술에 무지하거나 AI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AI와 AI 문학을 담론 차원에서만 논평하는 수준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강하게 주장한다.


예술사회학자 이라영은 『여자만의 책장』의 해제를 쓰며 책에 대한 책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은 같은 책을 두고 조금씩 다른 시선을 발견하는 데에 있다고 말했다. 짧은 서평과 북칼럼을 모은 4부, '바벨의 디지털-도서관'의 끝없는듯한 목차를 보며 흥분하지 않을 SF 문학 팬이 있을까? 비록 이 책의 서평에는 없지만, 천선란의 『모우어』를 읽으며 깨나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작가가 못썼다고 우기기엔 나도 사실 잘 안다 내가 SF 읽기 근육이 없다는 것을. 앞의 1~3부에서도 SF 작품들에 대한 언급이 있기도 했고, SF적 기술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단순 놀라운 기술을 넘어 어떻게 바라봐야 좋을지에 대한 단서를 던져주기도 하지만, 『모우어』의 경험 탓에 4부가 내겐 반가웠다. SF 문학에 대한 나의 '믿을 구석'. SF 문학을 마주할 때 읽어봤자 모를 것이라는 두려움보다 이 책이 있으니 과감하게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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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라고 묻는 가정의 문학 SF, 그 장르를 지독하게 파온 작가가 SF의 메가 텍스트들 사이에서 질문과 답을 길어오는 책. 노대원 작가의 『소설 쓰는 로봇』은 기존 SF 장르가 어렵거나 오로지 흥미만을 느끼던 독자에게는 SF라는 장르 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의미를 읽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고, 기존 SF 팬들에게는 또 다른 관점에 대한 즐거운 항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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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씸한 철학 번역 - 순수이성비판 길잡이
코디정 지음 / 이소노미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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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이소노미아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시작이 제일 무서워 미룬다는 가사의 노래가 있다. 작년에 유튜브에 잠깐 화제를 불러온, 코미디언 이제규의 동요, 「미룬이」의 가사다. 그렇다면 '독서'에서 시작이 제일 무서워 미루게 되는 책은 무엇이 있을까? 일단 나는 철학 책을 잔뜩 미루고 있다.


​제목도, 철학자의 이름도 듣기만 해도 뇌가 딱딱해지는 탓에 철학을 쉽게 풀어쓴 책이 출간되는 것도 요즘 출판 트렌드 중 하나가 되었다. 러셀 로버츠는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이라는 책으로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썼고, 『하루 한 장 니체 아포리즘』같은 책에는 원문과 함께 독자의 이해를 돕는 편역자의 글이 실려있다.

쉽게 떠먹여주는 책은 많고,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기질의 독자는 분명히 있다. 내가 그렇다. 실은 몇 권 사두긴 했다. 하지만, 펼치고 읽다 보면 이해가 안 되는 탓에 좀 더 내공을 쌓은 뒤로 미루게 되고…. 완독 실패의 경험은 내 가방끈과 가름끈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내 탓만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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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철학 책을 읽을 때마다 독자는 지혜를 구하기는커녕

자신의 문해력을 한탄해야 하는가?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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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언어활동가, 변리사로 활동 중이기도 한 코디정 교수님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읽기 어려움'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새로운 번역을 제안한다. 『괘씸한 철학 번역』이 바로 그 책이다.

​우리의 삶의 많은 부분이 일본에서 넘어왔다. 서양 철학도 그런 분야 중 하나다. 저자는 그런 부분을 지적하는 말로 책을 시작하며, 한국인이 보통의 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는, '질료'나 '실재'따위의 단어를 예로 들며, '여전히 한국어가 되지 못한 일본어'를 아직도 끌어안고 학문 분야에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외에도 저자는 고여버린 학회나 잘못 작동되는 학자의 권위, 불필요한 고집들을 말하며, 다음 세대에게는 이런 족쇄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새로운 철학 번역을 하자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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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단어에 보관되고, 생각은 언어를 통해 행해진다. 그러므로 아무리 똑똑한 사람일지라도 단어의 의미를 넘어서 생각할 수 없으며, 언어보다 더 좋은 표현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단어에 속박되며 언어에 의해 생각이 제한되는 연약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낡은 단어들을 반성 없이 무비판으로 사용하는 관습은 존중할 만한 전통이 아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앞선 세대들이 겪었고, 지금 우리 세대가 여전히 겪고 있는, 이토록 심한 언어적 고통을 물려줘서는 안 된다. ​│ 철학의 비판 정신으로 악습과 싸우자.

─ PP.71-72


아카넷 출판사 기준으로 두꺼운 양장본으로 두 권짜리 책,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저자는 이 방대한 양의 책을 영어 단어를 출발 언어로 삼고, 우리말을 도착 언어로 삼아 용어를 분석하고 검증한다. 하지만 단순히 '△△보다 ○○가 낫다'고만하려는 게 아닌, 왜 처음에는 이런 번역이 되었는지까지 집요하게 추적한 흔적마저 텍스트에 녹아있다. 철학이란 단어를 만든 메이지 시대(1868-1912)의 번역가 니시 아마네가 어떤 사람이었기에 이런 한자어가 만들어졌는지, 서양 철학의 역사를 따라가며 왜 이 단어가 더 나은 번역이 되는지에 대한 설득과 주장은 독자의 이해를 넘어, 수용과 비판까지 할 수 있게 돕는다. 『순수이성비판』을 바탕으로 쓰인 책이지만, 철학과 언어학 면에서도 배울 점이 넘쳐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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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끈이 짧아도, 가름끈이 짧아도, 함께 읽으며 도전할 수 있게 만드는 참 멋진 기획이 아닐 수가 없다. 저자의 『괘씸한 철학 번역』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읽기에 대해 '믿을 구석'이 되어주기도 하면서도 번역서에 대해, 또는 고여버린 기성의 무언가에 대해서 어떻게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할지도 느끼게 해준다. 나는 저자의 강력한 주장을 받아들인, 『순수이성비판』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 책이 있으니, 『순수이성비판』을 이제는 미루지 않고 도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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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리를 불태운다
브루노 야시엔스키 지음, 정보라 옮김 / 김영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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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김영사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죽음의 논리적인 필연성 앞에서 모두가 평등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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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아주 사소하고 언뜻 보기에 완전히 무의미한,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피에르는 반듯하게 앞에 놓인, 기름때 묻은 해고통지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 P.11, PP.13-14
갑작스럽게 공장에서 해고당한 프롤레타리아 피에르. 그 개인적인 사건을 시작으로 피에르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일자리는 물론, 연인 자네트도 그를 떠나고, 돈이 없자 사회적 위치마저 위태로워진다. 길바닥으로 내몰리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존엄성마저 상실한다.

피에르가 벤치에서 자고 있을 때, 누군가 세게 잡아 흔들자 피에르는 눈을 떴다. 모습은 변했지만 친숙한 목소리. 피에르를 깨운 것은 고향 친구이자 동료였다. 그는 어느 세균 연구소에서 관리인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며 피에르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
예측 불가능한 우연의 룰렛은 불운한 숫자들을 오랜 시간 동안 고집스럽게 피해 갔고,
운명론자인 도박꾼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그 숫자들에 걸었다가
재산, 신념, 여자, 이겨서 되찾을 방법이 없는 것을 순서대로 잃었으며
그러다 마침내 빈털터리가 되어 도박판에서 일어서려 할 때,
언제나 그렇듯 룰렛 회전판은 너무 뒤늦게,
그렇게 오랫동안 헛되이 기다렸던 숫자를 드디어 던져주었다.


피에르는 일자리를 찾았다. 생 모르에 있는 시립 정수장 수압관리탑이다.

─ P.59

피에르는 정수장에 취업하고, 르네는 자신이 일하는 세균 연구소를 피에르에게 견학시켜준다. 하지만 보기 드물게 착한 심성의 소유자가 내민 구원의 손길도 피에르가 모두에게 느끼는 증오는 미처 잠재우지도, 알아보지도 못했다.

피에르는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흑사병 시험관을 훔쳐 정수장 필터에 독을 탄다.

파리 시내에 새까맣게 그을린 흑사병 시체가 차곡차곡 쌓아 올려지고, 피에르가 자신이 이 모든 일을 했음을 대중 앞에서 인정하자 결국 두들겨 맞아 죽는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논리적인 필연성' 앞에 모두가 평등해짐을 느낀 사람들은 각자의 이념을 위해, 또 각자가 생존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보라 작가의 번역으로 빛나는 브루노 야시엔스키의 『나는 파리를 불태운다』는 자본주의가 세워진 땅에서 처절한 노동환경과 계급의 부조리함, 자본 앞에서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무자비해지는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시대적 배경은 벨 에포크를 막 지나 광란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듯 보인다. 비슷한 시대를 그렸던 작품으로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떠오른다. 하지만 두 작품은 정 반대의 양상을 띤다. 프루스트가 벨 에포크의 유한계급이 한가로이 무도회나 즐기는 사교계와 빛나고 찬란했던 시절을 그렸다면, 야시엔스키는 그 이면에 존재했던 음울한 사회를, 처절한 프롤레타리아가 처한 부조리한 환경과 자본주의가 사람을 어떤 식으로 바꾸는지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유토피아를 세우기 위해 각자가 투쟁하는 방식을 불타는듯한 텍스트로 쏟아낸다. 마치, 파리 시내에 검은 시체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듯 말이다.

소설은 1928년부터 1929년까지 프랑스 잡지 <뤼마니테>에 연재되었지만, 자본주의가 여전히 견고하고,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부조리가 만연한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유효한 문장을 마주할 때마다 야시엔스키의 혜안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양한 인종, 성별, 세대가 낼법한 목소리를 담은 텍스트는 야시엔스키가 그 시대를 살아가며 어떤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있었을지 짐작하게 된다.


균으로 인해 자본과 권력이 무의미해지고, 기회를 엿본 이들의 반동과 혁명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의 이야기.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총과 균과 쇠가 인간의 운명을 바꾼 힘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모든 것이 눈앞에서 인정사정없는 운명의 망치에 맞아 우르르르 무너지는 이 강렬한 서사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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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자유 - 일의 미래, 그리고 기본 소득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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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열린책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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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해 준다면

이제 남은 것은 재화의 분배 문제뿐이다.

기계가 생산한 부를 적절히 분배한다면 모두가 호사스럽게 살 수 있고,

반대로 기계의 소유주들이 그런 식의 글로벌한 분배에 완강히 저항한다면

대다수 사람은 끔찍한 가난에 시달릴 것이다.

지금까지의 추세를 보면 두 번째의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기술의 진보는 불평등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 스티븐 호킹, 2015




이세돌과 알파고가 대국을 하고, AI가 우리 일상에 점점 자리함이 피부로 와닿기 시작하며, 누구나 자신의 일자리가 흔들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보며 적어도 창작 분야는 안전하리라 믿었겠지만, 지브리 화풍으로 변환시킨 그 프로필 사진이 친구 목록을 가득 채우자마자 그 희망마저도 절망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노동은 인간의 본질을 실현하는 수단이라고 마르크스는 말했다. 인간의 노동이 기계로 대체되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그려야 할까?


현대 독일 철학의 아이콘,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그의 저서 『모두를 위한 자유』에서 오늘날 노동과 근로가 기계에 의해 어떻게 위협이 받는지, 노동의 양상은 어떻게 변할지를 짚어보고, 노동에 대해 독자에게 다시 생각해 보게 하며, 거대한 불안이 유령처럼 배회하는 이 급변하는 사회에서 도발적인 제안을 던진다.

날로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세상에 공개되고 있는데, 어떤 직업이 자동화될까? 선사 시대와 열대 우림에 흩어져 살던 시절에서 어떻게 사무실 의자에 앉아서 일을 하게 되었을까? 아방가르드의 판타지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이 돋보인 이유는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인데, 노동자가 아닌 산책자를 왜 동경하게 되는 걸까? 노동의 의미는 왜 변해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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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사람이 만족을 모르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돈과 물질적 재화로 우월감을 과시하려고 하는가?

장차 <우월감에 대한 욕구>나 <돈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배우고 가르치는 문화적 진보가 없다면

밝고 평화로운 미래는 없을지 모른다.
─ P.237



미래 노동 사회의 두 가지 도전, 즉 불공평해지는 부의 분배와 수백만 임금 노동자의 퇴출(P.122)이 예상되는 오늘날, 더 이상의 러다이트 운동은 할 수 없고, 기계와 AI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노동에서 밀려나 생계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오직 극소수만이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된다. 사람들은 나만 아니면 된다고 울부짖고, 비트코인과 주식과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리는데, 관성적으로 전통적 노동관을 그저 따르는 게 맞는 걸까? 이 책의 주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사람도 필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가 소수에 수렴할 수밖에 없는 생산의 구조, 앞으로를 살아야 할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리하르트의 '공화주의적' 제안, 기본소득을 보장하자는 주장은 괜찮게 다가올 것이다.


책은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 사회과학, 철학, 경제학 등 분과학문을 가리지 않고 다루고 있기에, 자칫 어려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철학자라는 이점이 우리에게는 있다. 제목이 『모두를 위한 자유』이니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관성적으로 이대로 살기 보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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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래에 대해 아는 것이 딱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미래를 가늠할 수 없다는 사실뿐이다.

이 사실만큼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 자체로 매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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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위한 침묵 수업 - 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침묵의 뇌과학
미셸 르 방 키앵 지음, 이세진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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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우주님이 모집하신 #우주클럽_글쓰기방

어크로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넥서스』, 『사피엔스』의 작가 유발 하라리가 방한했을 당시, 출판사에 단 하나의 요청을 했다고 한다.
"명상할 수 있는 시간을 꼭 마련해달라". (출처, 김영사 인스타그램)

명상이 좋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지만, 정작 왜 좋은 건지, 자는 것과 멍 때리는 것과 명상은 무엇이 다른 건지, 명상은 어쩌면 선택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닌지 등의 의문만 품고 있었다. 명상에 대한 실천은커녕 방법조차 모르고, 심지어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일명 FOMO(Fears Of Missing Out) 때문에 한시도 눈과 손을 휴대폰에서 놓지 못한다. 이렇게 살아도 딱히 문제는 없다, 아니 없는 것 같다.


… 이렇게 시끄럽게 살아도 과연 정말 아무 문제 없을까?


안면 근육마비로 쓰인 침묵 수업

모든 안전 수칙은 피로 쓰였다는 유명한 문장이 있지 않은가.
이 책은 한 뇌과학자의 안면 근육마비로 인한 충격으로 쓰였다.

연사로 초청받아 강연을 일주일 앞둔 뇌과학자 미셸 르 방 키앵은 갑작스러운 안면 근육마비를 겪게 된다. 검사 결과,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의사는 스트레스나 피로가 관련이 있어 보인다고. 그리고 그에게 모든 활동을 중단할 것이라는 처방을 내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라니, 너무 고역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키앵은 프로젝트, 이동, 강연을 모두 취소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침묵하기, 회복을 위해 우연히 동네에 있었던 명상 수련원까지 찾아간다. 그러자 2주 차부터 조금씩 신체는 회복하기 시작했다. 명상과 침묵으로 마침내 안면 근육마비에서 회복한 뇌과학자는 이러한 힘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이 책, 『뇌를 위한 침묵 수업』을 집필하게 된다.


뇌과학이 설명하는 침묵의 필요성

나는 앞서 말했듯 명상은 잘 모르던 독자였다. 이렇게 살아도 딱히 문제가 없다고 느꼈다. 내가 어느 정도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에는 이미 TV와 컴퓨터가 있었고, 자라면서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생겼다. 이런 환경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던 세대다. 스피커에서는 항상 소리가 흘러나오고, 스크린에서는 항상 영상이 재생되는 환경 말이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에도 '유튜브를 조금 멀리하는 정도'면 될까 했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영역에서 소란스러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귀만 닫고, 신체를 가만두는 것뿐만 아니라 듣기 위해서도 침묵을 지키면 뇌 건강에 이롭고, 눈을 감는 순간 뇌는 미세 휴식을 취할 수 있다고 키앵은 말한다.

우리 신체 기관 중에 고통을 알리지 않고 서서히 병들어가는 기관이 몇 있다는데, 뇌도 사실 그런 신체 기관 중 하나가 아닐까. 우리는 평소 인지하지 못할 뿐 엄청난 문제를 끌어안고 살고 있을 수 있다. 저자가 뇌과학으로 설명하는 스트레스 상태에서의 우리 뇌의 변화와 침묵이나 명상을 했을 때의 우리 뇌의 변화는 보통 사람들이 인지하기 힘든 것들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저자는 안면 근육마비라는 형태로 드러났지만, 나의 경우 자아 상실을 겪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증상으로 나타났다. 누군가는 또 다른 형태의 장애를 겪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키앵의 제안대로 침묵과 명상으로 답을 찾아 나갈 수 있을까, 평소 명상은 잘 모르는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한 번 시도해 볼까' 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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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말 많고 소란스러운 사회에서

침묵을 치유와 자기 계발의 도구로 삼는다는 발상은 참신해 보인다.

하지만 사실 동서양 위대한 현자들은 이미

침묵이 신체와 정신에 끼치는 미덕을 알고 있었다.

고대인들은 침묵을 존중했고 내면의 삶을 여는 귀한 시간으로 여겼다.

이러한 침묵의 힘이 이제는 과학으로 증명되고 있음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될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여러분이 그 힘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이 책은 알려줄 것이다.

─ P.20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 살며 시끄럽고 번잡스러움이 느껴지고 있지는 않은지, 직장에서 스트레스로 번아웃을 겪은 적은 없는지, 감미로운 음악이라도 끊임없이 귀에 뭔가 들려야 편함을 느끼고 있지는 않은지.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 책을 은연중에 필요로 하고 있지 않을까. 많은 현대인들이 명상의 필요성을 『뇌를 위한 침묵 수업』으로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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