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 웰스 : 붐비는 지구를 위한 경제학
제프리 삭스 지음, 이무열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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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인류는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동시에 최악의 위기에 직면해있다. 경제 위기, 지구온난화, 자원 고갈, 인구 폭증은 인류의 존립 자체를 위협한다. 이러한 전 지구적 위기 한가운데에서 한 경제학자가 주목받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로 지목한 제프리 삭스다. 그의 경제학은 탁상공론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당면 과제들을 해결한다. 삭스는 1980년대 말 볼리비아에서 인플레이션을 연 4만%에서 10%대로 끌어내렸고 세계은행, UN 등 국제기구에서 자문을 맡으며 빈곤문제 해결에 앞장서왔다.

삭스의 경제학은 일종의 ‘의술’이다. 그는 객관적 수치를 분석해 세계 경제 환부를 진단하고 현대경제학과 과학기술이라는 메스로 종양을 도려낸다. 이번에 번역된 『커먼 웰스(Common Wealth)』는 병에 걸린 세계에 대한 진단서와 처방전이다. ‘경제과 임상의’ 삭스는 이제 『빈곤의 종말』의 ‘빈곤’이라는 국소 부위 치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후변화, 인구 팽창, 에너지 고갈 등 전 세계적 문제 해결을 고민한다.

삭스가 그리는 세계의 미래는 상당히 밝다. 그는 21세기가 공동번영과 대수렴의 세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과학기술의 전파로 빈국들이 신속히 경제성장을 이뤄 부국과의 소득 격차를 줄이고 경제적 번영 위에 국제사회도 더 안정될 것으로 전망한다. 지속가능한 기술의 개발로 환경 재앙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엔 분명한 전제가 있다. 인류 스스로 세계를 구하기 위해선 우리 모두가 현재 직면한 위험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만약 전 세계가 이를 위한 공동 목적과 실질적 수단을 합의하지 못한다면 인류는 쇠망할 것이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인류의 운명을 결정지을 중요한 시대의 인류에게 분명한 처방을 내놓고 있다. 그는 앞으로 △에너지·토지·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 시스템 구축 △2050년까지 세계 인구를 80억명 이하로 안정화 △2025년까지 극단적 빈곤의 종식이라는 목표를 달성한다면 무서운 위협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삭스는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 있는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방대한 본문에서 풍부하게 제시한다. 예를 들어 인구안정을 위한 방안으로 가족계획 및 피임 보조와 같은 즉각적 대책과 적게 낳고 잘 기를 수 있는 육아 환경 조성을 위한 아동생존율 향상과 같은 근본적 대책을 함께 제시한다. 그뿐만 아니라 저자는 경제학자답게 목표 달성에 필요한 재원의 규모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기후변화 완화, 기후변화 적응, 생물다양성 보존, 사막화 방지, 세계인구 안정, 지속가능기술개발, 최빈국 구제 전부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재원은 놀랍게도 연간 원조국 GNP의 2.4%에 불과하다.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데는 원조국 GNP의 1%, 최빈국들이 빈곤의 늪에서 빠져나오도록 하는 데는 원조국 GNP의 0.7%면 충분하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독자들이 개인으로서 공동의 번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의 목록도 제시한다. ‘「네이처」 같은 과학잡지를 보며 우리 세대의 과제를 학습하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단체에 가입하라’는 등 그의 제안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약간의 돈과 시간만 들이면 될 이러한 노력의 부재가 초래할 결과는 인류의 쇠망이라고 삭스는 분명하게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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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의 여왕
백영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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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빨강머리 앤』을 만난다. 앤을 만나면서 소녀는 소설의 세계로 빠져든다. 하루에 몇 권씩 소설을 읽어 치우던 소녀는 곧 책방 아주머니를 두손 들게 한다. 소녀는 읽을 이야기가 더는 남아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결심한다. ‘소설가’가 되기로.

이제는 결혼 8년 차 주부가 된 그 소녀를 만나고 왔다. 바로 드라마 ‘스타일’의 원작자 백영옥 작가다. 그때 그 소녀가 지금 이 언니가 맞을까. 질문을 던졌다. “『스타일』을 쓴 이유가 무엇이죠?” “제가 읽고 싶었기 때문이죠” 읽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쓰여 있는 이야기가 없다면 어찌하랴.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수밖에. 백영옥 작가다운 답변이다. 백 작가는 이 『스타일』로 1억원 고료의 제4회 세계문학상을 받으며 일약 인기작가로 발돋움했다.

“좋은 질문을 담고 있어야 좋은 소설 아닐까요?”

소설가 백영옥에게 소설이란 일종의 물음표다. 패션잡지 에디터의 삶을 다룬 『스타일』은 ‘프라다를 사고 싶은 욕망과 기아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싶은 욕망은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문이다. “만약 제가 샤넬 백 하나 덜 사서 아프리카 아이 몇 명을 살릴 수 있는지 생각하면 당연히 찔리죠. 하지만 사람이 기부만 하며 살 수는 없잖아요?”

‘아름다운 물건을 취하고자 하는 당장의 욕망이 미래를 어떻게 붕괴시킬 거란 말인가.’(『스타일』)

‘된장녀’ 운운하며 매도해온 이기적 욕망을 전면적으로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두가 조지 소로우처럼 아무것도 소비하지 않고 숲에서 흙만 파먹고 살 순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세상엔 이기적 욕망만 추구하는 완전한 악인도, 이타적 욕망만 추구하는 완전한 성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 화두를 던지고 싶었어요. 두 욕망의 ‘황금비율’이 무엇인지”

지난 7월에 나온 『다이어트의 여왕』이 던지는 질문은 좀 더 직설적이다. 다이어트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한 ‘연두’는 몸무게의 반을 덜어내고 다이어트 여왕에 등극하지만 동시에 미각을 잃어버린다. 백영옥 작가는 ‘연두’를 통해 우리에게 물어온다. “다이어트로 살을 빼면 행복해질까요?”

온 국민이 다이어트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이어트는 이제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다. 그는 다이어트를 ‘이 시대 여자들의 가장 심각한 현대병’으로 진단한다. “지금 다이어트는 뚱뚱한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하는 다이어트가 아니에요. 마른 사람이 더 마르기 위해 하는 다이어트죠. 이건 굉장히 사회병리학적인 문제예요. 패션업계와 뷰티업계에서 만들어낸 판타지를 현실로 느끼고, 45kg 나가는 사람이 40kg의 김민희와 비교해 자기 몸에 불만을 터뜨려요. 달리 말해 왜곡된 현실인식으로 자기 몸을 ‘타자화’하고 내 몸을 틀린 것으로 받아들이는 비극이 일어나고 있어요”

문제는 다이어트만이 아니다. 온갖 판타지를 주입하는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요구한다. 피부도 깨끗해야 하고, 몸매도 좋아야 하고, 유기농으로 웰빙도 해야 하고… 그가 던지는 두 물음표에는 현대병 환자를 위한 ‘위로’가 담겨 있다.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타일』을 쓰면서 성수대교 붕괴 피해자인 무악여고 학부모들의 인터뷰를 찾아봤어요. 여기서 한국인들의 독특한 특징을 발견했어요. ‘내가 우리 애를 8학군에 옮겨서 내 딸이 죽었다.’ ‘아픈 딸을 억지로 학교에 보낸 내 잘못이다.’ 딸이 죽은 건 아버지의 잘못이 아니라 건설사의 부실시공과 정부의 부실허가가 빚은 시스템의 문제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시스템을 앞장서 고쳐야 할 피해 당사자들이 오히려 시스템의 문제를 내면화․개인화하는 경향이 있어요. 다이어트도 마찬가지에요. 문제는 매체와 산업구조가 빚어낸 비현실적인 기준에 있는데 사람들은 그 문제를 개인화시키고 있어요. 내가 게으르고 자제력이 없어서 살이 찌는 거라고”

그리하여 우리 영혼은 끊임없이 상처받는다. 이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길은 험난하다. 『스타일』처럼 비현실적인 왕자님이 헌신적인 사랑으로 돌봐주지 않는 이상, 『다이어트의 여왕』처럼 미각을 잃었다 되찾을 정도의 지난한 과정이 뒤따른다. “내 안의 악한 면과 선한 면을 동시에 보고, 내가 가진 욕망을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응시하는 건 엄청난 고통을 수반해요. 그래서 거짓 치유와 거짓 화해가 너무나 많아요. 『다이어트의 여왕』에서 연두가 계속 같은 방식으로 연애에 실패하고 같은 상처를 받잖아요. 그건 정말 바닥까지 가서 자기 내면을 응시하지 않았기 때문이거든요. ‘이쯤이면 됐어’라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포기하는 순간 자기 치유는 거짓 화해로 끝날 수 있어요. 다 치유된 듯한 연두가 새로운 상처를 받는 마지막 반전은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어요”

백영옥 작가가 말하는 치유의 핵심은 소통이다. 나와 나 사이의 소통. 나를 온전히 달래줄 사람은 결국 나밖에 없다.

‘우리 마음속엔 누구에게나 돌봐주지 않은 어린아이 하나 웅크리고 울고 있다고, 우리는 때때로 상처받은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어깨를 안아주며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말해주어야 한다.’(『다이어트의 여왕』)

그러나 혼자서 자신의 모든 상처를 어루만질 수는 없다. 우리는 서로 등을 밀어줄 누군가가 간절히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선 내가 볼 수 없는 뒷모습을 바라봐 줄 타인의 시선이 간절하다.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선 타인의 시선 역시 필요하다는 것, 거울 없이는 자신의 앞모습은 물론이고 뒷모습까지도 우리는 결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는 중이다.’(『다이어트의 여왕』)

우리는 소통해야 한다. 과거와, 진정한 자기 자신과, 또 세상에 존재하는 각기 다른 다양한 스타일과의 화해를 위해서. 백영옥 작가의 소통에 대한 열정은 우리의 귀감이다. 백 작가는 한 인터넷 서점에 『다이어트의 여왕』을 연재하며 모든 댓글에 일일이 댓글을 달았다. 본문보다 더 긴 댓글을 달면서 시도한 소통은 그녀를 배신하지 않았다. “7개월을 긴장 속에서 연재하다 보면 도저히 이 작품을 끝낼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이 오기도 해요. 그런 고비를 넘기게 해준 건 독자와의 소통이었어요” 이어 그는 말한다. “소통할 수만 있다면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어요. 그것이 소설이든, 시나리오든, 혹은 요리라도”

새로운 방식의 소통을 꿈꾸는 백영옥 작가의 향후 계획은 무엇일까. “다음에 어떤 소설을 쓰게 될진 모르겠지만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소설이 될 것 같아요. 아마 장르물이 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요?” 스티븐 킹의 열렬한 독자인 백영옥 작가의 본격 미스터리 스릴러물을 기대해도 될까? 지나친 기대는 금물. 어느 날 ‘백 감독’이나 ‘백 쉐프’로 돌아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지도 모르니.  

(대학신문, 2009년 9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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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산된 신 - 종교는 왜 정치를 욕망하는가
마크 릴라 지음, 마리 오 옮김 / 바다출판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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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릴라는 『사산된 신』에서 오늘날 분쟁의 씨앗을 통찰하기 위해 해묵은 논쟁거리를 다시 꺼낸다. 그것은 지난 수백 년간 서구 철학계와 신학계를 뜨겁게 달군 ‘정치신학’ 논쟁이다. 근대 들어 철학자들은 정치에서 신학을 분리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합리적 정신이 태동하면서 정치적 결단을 하늘의 계시에 맡기는 것의 불합리함을 깨닫고 종교를 정치에서 떼어내려 한 것이다.

중세 유럽 사회를 지배한 신학-정치적 악순환의 고리를 처음 끊은 것은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였다. 홉스는 ‘신의 뜻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인간은 왜 종교를 믿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논쟁의 중심을 신에서 인간으로 치환했다. 그는 종교의 존재 이유를 인간의 무지와 공포에서 찾으며 종교를 오로지 인간적인 현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홉스의 영국과 달리 유럽대륙에서는 어떻게든 종교와 정치를 조화시키려는 제3의 길이 적극적으로 모색됐다. 마크 릴라는 여기서 비극이 잉태됐다고 판단한다.

프랑스 사상가 루소는 계시에 의존하지 않고도 인간에게 종교의 유익을 설명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 유익이란 ‘도덕성’이다. 그는 『에밀』에서 인간이 사회적 존재인 이상 종교는 지속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의 도덕적 정서나 양심에 뿌리를 둔 신앙은 ‘도덕 종교’로서 인간 정신에 유익하다고 판단했다. 칸트는 도덕 종교의 기반을 더욱 견고히 다졌다. 그는 기독교가 바르게만 개혁된다면 인간의 도덕성 향상에 가장 적합한 종교라고 주장했다. 칸트에게 이성적 인간은 최고의 선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최고의 선은 신의 존재와 인간 영혼의 불멸성이라는 두 가지 공리를 받아들일 때만 가능한 것이었다. 헤겔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개신교가 ‘절대지(絶對知)’라는 인간 지식의 정점에 이르렀으며 독일은 개신교 중심의 도덕 생활을 통해 인류의 화합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상적 바탕 위에 19세기 독일에서 낙관적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종교가 바람직한 사회 건설에 기여할 수 있고 정치를 위협하거나 광신주의를 불러일으킬 일은 없다고 낙관했다. 또 이들은 예수의 신성은 부인하되 복음의 도덕적 메시지는 합리화해 근대 정치와 문화생활에 적용하고자 했다. 일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정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독일의 전쟁 기도를 옹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재앙으로 독일 부르주아 사회가 무너지면서 이를 지지하던 자유주의 신학도 함께 몰락하게 된다. 자유주의의 부푼 꿈은 궁극적인 진리를 찾는 이들에게 진정한 확신을 심어줄 수 없는 ‘사산된 신’임이 드러난 것이다. 부르주아 생활에 대한 진부한 도덕관과 역사적 낙관론으로 점철된 자유주의 신학은 애초에 “왜 기독교인이 돼야 하는가?”라는 신앙의 근본적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선 극도의 정치·사회·경제적 혼란 속에 다시 인간을 성서 속 구원의 신, 구세주 하느님과 화합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생겨났다. 독일은 자신의 몰락을 가져온 신학을 정치에서 완전히 배격하는 홉스의 지혜를 선택하기보다 새로운 신학을 선택한 것이다. 그들이 필요로 한 것은 구원에 대한 강렬한 갈증을 해결해줄 새로운 계시였다. 자유주의 신학에 맞서고자 했던 바르트와 로렌츠바이크의 메시아주의적[]종말론적 구원사상은 독일에서 정치적 구원에 대한 신학적 필요성을 주장하는 데 악용됐고, 이는 결국 신격화된 히틀러를 만들어내며 20세기 최악의 재앙으로 이어졌다.

마크 릴라가 자유주의 신학의 몰락과 그들의 신이 사산된 역사를 되짚으면서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제3의 길이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철학과 정치신학을 구분하는 강은 좁고 깊다”며 “그 물에서 파도타기를 시도하는 이들은 통제 불능의 영적 세력에 휩쓸려 내려갈 것”이라고 말한다. 신은 개인의 영성 생활 안에 머물러야 하며, 신이 정치 영역으로 들어오는 순간 사회는 극단적인 메시아주의가 도래할 잠재적 위협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대학신문, 2009년 9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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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반지 - 세 일신교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제안
패터 슬로터다이크 지음, 두행숙 옮김 / 돋을새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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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Gottes Eifer』다. 여기서 Gottes는 신을, Eifer는 열성을 뜻한다. 중동의 분쟁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극심한 것은 일신교가 열성적 종교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하나의 신만을 따르는 유일신교는 최고 존재의 유일성과 완전한 권능을 강조하는 종교적 보편구제설을 따른다. 따라서 일신교에는 본질적으로 다른 종교에 대한 질투와 경쟁심이 내재해 있다. 이러한 열성은 ‘팽창을 통한 세계 수용’으로 이어져 역사적으로 ‘원정(遠征)’이라는 형태로 표출됐고 오늘날까지도 그 열성이 전 세계의 미래를 불안하게 한다.

책의 부제이기도 한 ‘세 일신교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제안’은 책의 표제인 ‘반지 설화’를 통해 제시된다. 반지 설화는 독일 극작가 레싱이 1779년에 발표한 희곡 『현자 나탄』의 한 일화로 저자는 이것만큼 일신교들을 우호적으로 ‘길들이는’ 계획은 없다고 말한다. 반지 설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신과 인간들의 호감을 얻게 해주며 그 소유자의 상속권을 증명하는 ‘신의 반지’가 있었다. 반지를 가진 아버지는 세 아들에게 모두 반지를 물려준다고 약속하고, 이를 지키고자 원본과 똑같은 두 개의 모조품을 만들어 물려준다. 아버지가 죽자 세 아들 사이에 상속권 다툼이 벌어지고 이들은 재판관을 불러 판결을 요구한다. 판사는 반지가 겉보기엔 모두 똑같기 때문에 자신의 행실을 통해 진짜 반지의 상속자임을 입증하라고 판결한다.

반지 설화를 단순하게 이해하면 세 반지의 소유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다. 유일신교인 이들이 자신의 종교가 진짜임을 입증하는 방법은 오직 자신들의 ‘행실’로 대중들의 평가를 받는 것뿐이다. 지혜로운 판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반지 설화가 발표된 후 지난 200여년간 그 시나리오는 현실이 되지 못했다. 가장 큰 장벽은 역시 ‘열성’이었다. 열성주의자들은 대중이 진리의 절대적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믿었다. 일신교가 가진 엘리트주의적 특성 탓에 그들은 오히려 반대로 행동했다. 열성주의적 일신교들은 자신들의 반지가 ‘다른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하는 힘’이 있는 것처럼 경쟁하며 반지 설화의 수정판을 만들어 냈다. 일신교는 애초에 이교도나 우상숭배자 없이는 성립될 수 없고, 일신교의 위상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저항이 필수적인 것이다. 자신의 그림자를 드러내야만 자신을 부각시킬 수 있는 일신교들은 서로 맞서 더 오랫동안 싸우기 위해 서로를 너무나 필요로 했다. 이때 세 일신교의 공존 본질은 ‘대립’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세 일신교의 평화적 공존을 위해선 본래의 반지 설화로 돌아와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한때 계몽주의적 종교가 돌파구로 모색됐지만 프랑스 혁명기 공포정치는 그것에 내재한 광기와 열성을 드러냈다. 『사산된 신』이 지적하듯 그들이 낳은 것은 사산된 신이었다. 네 번째 반지로 의심됐던 공산주의 역시 파국적 말로를 맞았다. 가능한 것은 오로지 세 반지가 ‘열성’을 누르고 비열성적 문화종교로 거듭나는 것이다.

저자는 세 일신교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유일한 선택은 ‘문명화’라고 말한다. 그는 다가(多可)적인 사고를 통해 문명화로 나아갈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가적인 사고란 ‘나 아니면 이단’이라는 일신교의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세 번째 가능성은 있다고 인정하는 것’, 저자의 표현을 따르자면 ‘회색을 취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 본보기로 ‘코란이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일가성 열성을 고수하던 이슬람의 사례를 든다. 그들은 사실상 개종하지 않고도 복종하는 디히미(Dihimmi, 이슬람 국가의 비모슬렘 시민)를 허용함으로써 흑과 백 사이의 ‘제3의 것’을 선택했다. 제3의 선택이 아니었다면 동로마제국 인구의 절반을 잃게 한 이슬람의 팽창 정책은 인류역사상 가장 큰 유혈 사태를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대학신문, 2009년 9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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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한국발전 모델과 성장 동력 - 21세기 한국의 미래발전과 성장동력 연구총서 1
박삼옥 외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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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등장한 ‘지속 가능한 발전’ 담론은 여러 분야에서 입맛에 따라 끌어다 쓰거나 기업 발전 전략의 수사(修辭)로 쓰여 왔다. 한 ‘국가’의 지속 가능한 발전 전략에 대한 구체적 모델을 제시하는 『지속 발전』은 이러한 이전 논의들과는 그 깊이가 다르다.

임현진 교수(사회학과)는 「21세기 한국의 발전 모델 탐색」에서 한국의 발전 방향으로 소강국(小康國) 모델과 강중국(强中國) 모델을 접목한 ‘소강 강중국’ 모델을 제시한다. ‘소강’은 물질적인 발전을 넘어 환경과 인성을 강조하는 발전 전략이다. 프랑스와 독일로 대표되는 ‘강중국’은 인구가 5천만~1억명 사이로 세계 패권국은 아니더라도 지역 강국의 면모를 지니는 나라다. 이들은 노키아의 핀란드처럼 소수정예품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강소국(强小國)과 달리 생명·전자·자동차를 포함하는 다품종으로 승부를 건다.

한국은 어떻게 소강 강중국이 될 수 있을까?  『지속 발전』은 강중국은 전통 제조업 강화로, 소강국은 문화적 역량 강화를 통해 달성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그 구체적인 전략으로 윤영관 교수(외교학과)가 「지속 발전을 위한 에너지 자원 전략」을, 이근 교수(경제학과)가 「자원 절약형 성장 전략과 한국의 주력 제조업」을 제시하고 있다. 박삼옥 교수(지리학과)는 기존 경제공간을 재편해 광역권별 ‘자율적인 창의발전’을 통해 세계화의 거점으로 육성하는 전략을, 양승목 교수(언론정보학과)는 새로운 성장동력인 문화콘텐츠 산업으로 소프트파워를 키워 지식 경제 시대 이후의 체험 경제 시대를 이끌어가는 전략을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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