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책 작가, 전 과학동아 기자 강석기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1월의 좋은 어린이 책, <내일도 눈이 올까요?>의 추천글입니다.

 

눈사람들도 지구를 걱정하네요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다니기 불편하고 길이 지저분해진다고 싫어하는 어른들이 많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썰매도 타고 눈사람도 만들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들이 만들고 간 눈사람 둘이 생명을 얻었어요. 바로 유타와 유나죠.

 

두 친구는 얼음 축제에 놀러 갔어요. 그런데 왠지 분위기가 신나지 않네요. 겨울이 너무 따뜻해 얼음 조각들이 녹고 있기 때문이죠. 유나는 날이 따뜻하다며 좋아하지만, 생각 깊은 유타는 걱정이 됐지요. 겨울이 너무 따뜻하면 눈사람도 녹고 말 테니까요.

 

그러다가 둘은 아주 먼 나라에서 눈사람들의 회의가 열린다는 말을 들었어요.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의논하는 자리라는군요. 유나는 가기 싫었지만 친구를 위해 함께 길을 떠났어요.

 

둘은 길을 가다가 여러 일들을 겪어요. 눈 속에 파묻힌 산토끼들을 구해 줬는데, 얘길 들어보니 날이 너무 따뜻해서 눈사태가 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는 거예요. 북극에 도착해 보니 커다란 백곰들이 바다 위를 떠다니는 얼음덩이 위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어요. 얼음이 녹으면서 이렇게 떨어져 나간 것이죠. 순록들은 눈 대신 내린 비 때문에 얼어붙은 이끼를 먹지 못해 굶주리고 있었죠.

 

마침내 두 친구는 눈사람들의 회의에 참석하게 되어요. 그리고 여기까지 오는 길에 겪은 일들을 얘기하면서, 더 늦기 전에 아름다운 세상을 지켜 내야 한다고 외치지요. 그러고 보니 유나도 이젠 생각이 깊어진 것 같네요. 회의는 모두 힘을 합쳐 지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자며 마무리됐어요.

 

눈사람 유타와 유나가 겪은 일들은 정말 북극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랍니다. 지난 100년 동안 사람들이 석탄과 석유를 펑펑 쓴 결과, 온실기체가 너무 많이 나와 지구가 더워지고 있는 것이죠. 이런 현상을 가리켜 지구온난화라고 부른답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겨울이 제법 춥지만, 이것은 지구가 불안정해져서 생기는 일시적인 현상이랍니다.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눈사람이 녹는 건 물론이고 산토끼나 백곰, 순록도 사라져 버릴지 몰라요.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모두 마음을 모아 지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겠죠. 책에는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일들도 잘 정리되어 있답니다. 여러분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눈사람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 강석기(과학책 작가, 전 과학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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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화랑초등학교 교사 우명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1월의 좋은 어린이 책, <오늘은 왜 쉬어요>의 추천글입니다.

 

한글날이 2013년부터 다시 공휴일로 전환된다고 합니다. ‘빨간 날’이 하루 더 늘어난 셈이지요. 그런데 어린이들은 한글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학교 쉬는 날이라는 즐거움 때문에 달력 속 빨간 날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잊고 지내는 어린이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어린이에게 국한된 문제는 아닙니다. 현충일과 광복절을 헷갈려하는 어른도 있으니까요. 왜 쉬는지 모르는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않으려면 어릴 때 정확히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지내온 ‘명절’, 나라의 경사스러운 날을 기념하기 위해 법으로 정해진 ‘국경일’, 정부가 주관하는 특정일을 기념하는 날인 ‘법정 기념일’의 유래와 의미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1919년의 삼일운동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삼일절,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장병과 순국선열들의 충성을 기리기 위해 정한 날인 현충일,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것을 기념하는 광복절, 풍성한 수확을 감사드리는 뜻으로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는 추석,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운 것을 기념하는 개천절, 세종대왕의 한글 반포를 기념하고 한글의 연구와 보급을 장려하기 위해 정한 한글날 등 그날그날마다 우리 민족의 삶과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왜 쉬어요>는 제목대로 오늘은 왜 쉬는지를 재미있는 동화로 풀어낸 책입니다. 달력의 빨간 날짜를 세며 쉬는 날이 적다고 투덜거리던 엄마는 휴일의 고마움을 모른다는 이유로 달력 속에 갇힙니다. 아빠와 정수, 수미는 엄마를 구하기 위해 달력 속 빨간 날의 의미를 배워 나갑니다. 다양한 명절과 국경일, 법정 기념일에 대해 하나하나 배우면서 쉬는 날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가는 것이지요.

 

이 책을 읽고 나면 달력에서 만나게 될 빨간 날들이 더욱 반가울 것입니다. 빨간 날에 왜 쉬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게 되었으니까요. 이제부터 새해의 달력이 생기면 빨간 날이 얼마나 되는지 세지만 말고, 쉬는 날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건 어떨까요? 쉬는 날의 의미를 알게 된 여러분은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 우명원(서울 화랑초등학교 교사,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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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안골포초등학교 교사 정지현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12월의 좋은 어린이 책, <블룸카의 일기>의 추천글입니다.


우리들을 기억해 주세요

아동인권에 바친 야누시 코르착의 삶과 그의 아이들을 기억하다

연일 남편과 다툰 뒤 자식 셋을 모텔로 데려가 살해한 비정한 엄마의 이야기, 경제적 문제로 아이들을 버리거나 동반 자살한 이야기가 뉴스에서 다루어질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지며 한숨이 터져 나온다. 많은 성인들이 아이들을 자신의 부속물로, 아직 어린 자식의 생각과 자유를 부모 마음대로 정할 권리가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세계인권 선언을 모태로 많은 국제 인권 조약이 태어난 이래 아동들의 권리를 정하고 있는 '국제아동권리 협약'이 1989년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우리나라도 이미 가입과 비준을 마친 이 협약은 전세계 모든 아동들을 방치, 착취, 학대로부터 지키기 위한 세계 기준이라 말할 수 있다. 이 협약이 탄생한 배경에는 2차 세계 대전의 와중에도 자신의 목숨을 헌신적으로 내놓은 폴란드 한 의사 선생님의 일생이 있다.


'야누시 코르착'. 그의 본명은 헨리 골드슈미트로 1878년 폴란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유대계 의사이자 저술가, 아동인권가였다. 그는 변호사였던 아버지가 정신질환을 앓자, 혹시라도 그 질환이 유전될까 봐 평생을 결혼하지 않았으며, 고아원을 세워 길거리에 버려진 고아들 200명을 돌보며 평생을 보냈다. 인권운동가로 명성이 알려져 유태인 대학살에서 살아남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돌보던 200명의 아이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역사는 공식적으로 1942년 8월 5일, 코르착 박사의 실종을 기록하고 있지만 박사는 아이들에게 장난감과 책을 손에 쥐어주고 깨끗한 옷을 입혀서 폴란드 시내를 행진하여 가스실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이를 지켜 본 시민들은 그들의 행진을 '천사들의 행진'이라고 부르게 된다.


<블룸카의 일기>는 어린이의 인권에 바친 야누시 코르착의 삶과 비록 짧았지만 삶의 주체로서 자신을 가꾸며 살았던 12명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한 소녀(블룸카)의 일기 형식으로 담담히 전한다.


면지에 한 소녀가 보라색 꽃이 핀 곳에 양동이를 들고 위쪽을 바라보고 있다. 대화를 하는 듯 푸른색 외투를 입은 어른이 서 있지만 얼굴이 보이진 않는다. 다음 페이지에 등장하는 12명의 아이들과 1명의 어른, 그들의 옷은 다양한 색감으로 드러나지만 사진을 찍고 있는 그들의 얼굴은 한 가지 색으로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윽고 펼쳐지는 블룸카의 일기, 큰 판형의 양쪽 면 위쪽에 펼쳐진 블룸카의 일기장이 있고 그 아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써내려간 이야기와 그 이야기에 더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그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특이하게도 줄 공책의 일기장이 빨랫줄, 침대, 거리, 땋은 머리, 체온계, 석탄 수레, 목재, 벤치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두 페이지에 걸쳐 12명의 아이들과 코르착 선생님에 대해 각각 소개하고 있다. 소개하는 내용에서도 글자의 크기와 굵기가 다르게 표현된 부분이 있다. 핵심적인 내용은 굵고 큰 글씨로, 그 내용을 보충하듯 작은 크기의 글씨로 일기를 써내려간다. 그림책을 읽는 재미와 내용의 강약을 잘 살려 의미 전달이 명확하다.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그림책의 앞부분에서는 나이도,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모두 다른 12명의 아이들을, 뒷부분에서는 세상 모든 아이들이 자기만의 비밀과 꿈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 코르착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듯도 하고, 낮은 목소리로 조근조근 말하는 블룸카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같다.


코르착의 학교에서 아이들은 자유롭다. 어떤 일도 강요당하지 않는다. 누구나 똑같은 권리를 가지며 똑같은 일을 해도 된다고 배운다. 아이들도 어른들과 똑같이 중요하며 '어리다'는 것은 절대로 '바보'나 '더 못하다'가 아님도 알게 된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사는 것은 아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잘못한 일이 있으면 어린이 법정에 서도록 하여 공정함이 무엇인지도 배운다. 선생님들도 예외는 없다. 선생님들의 교육 방법에 대한 것도 이야기한다. 아이들을 절대로 때리지 말 것이며, 아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미안해'라고 말하게 한다.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 권리의 주체임을, 어린이의 인권도 보호받아야 하는 것임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다.


 그림책의 말미를 보면, 일기를 써내려 가던 블룸카의 펜촉이 어느덧 손으로 바뀌어 있다. 그리고 그 손은 기차를 가리킨다. 가스실로 향하는 죽음의 기차...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 갔음을 상징하는 것일테다. 그러면 이곳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의문을 던지며 다음 장에서 일기장이 닫힌다.


그림책 속에는 코르착과 그의 아이들이 가스실로 향했던 암울한 비극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저 그림책의 마지막장에 보이는, 꺾인 채 떨어지는 꽃잎들이 애처롭고 슬플 뿐이다.


유교문화가 지배적인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이 어떤 말을 하면 '버릇없다', '몰라서 딴 소리 한다'고 윽박지르는 어른들이 많다. 한편 아이의 응석을 있는 대로 다 받아주거나 경제적인 소원을 무조건 들어 주는 것이 아이들의 말을 잘 들어 주는 것이라 착각하는 어른들도 있다. 대체로 어른들은 '아직 어리니까, 아직 생각이 다 안 찼으니까' 라는 이유로 아이들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자신이 바라는 바를 정확하게 표현할 권리가 있고 또 표현할 수 있다. 어린 아이들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어른과 이 사회는 어린아이들의 이야기에 진지한 자세로 경청할 의무가 있다. '일기는 잊지 않기 위해서 쓰는 것입니다...' 블룸카의 마지막 일기가 가슴 깊숙이 진한 울림으로 남는다.


<블룸카의 일기>는  아이들은 어른들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님을, 아이들이 자신만의 세계에서  스스로 각성하여 강한 도덕적 동기를 가지고 자기 삶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른들이 할 일임을 이야기 한다. - 창원안골포초등학교 교사 정지현, 학교도서관을 생각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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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핌 2014-01-04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
 

동화작가 조성자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12월의 좋은 어린이 책, <나의 첫 인생 수업>의 추천글입니다.

 

오솔길을 걸을 때마다 문득 걸음을 멈추는 곳이 있습니다. 붉은 흙이 국그릇만큼 봉긋 솟아있는 그곳엔 삐뚤빼뚤한 글씨로 '우리 햄스터가 잠든 곳'이라는 종이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글씨의 주인공이 겪었을 햄스터의 죽음에 대한 아픔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 코끝이 짠해집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애완동물을 한 마리 정도는 키운 경험이 있습니다. 애완동물을 키우기 전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에 대한 책임감입니다. 비단 생명에 대한 책임감뿐만이 아닙니다. 키우던 애완동물이 죽었을 때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필요합니다. 한창 자라는 우리 아이들에겐 어렸을 때 익혀야 할 가치들이 많습니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들 말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기본적인 예절인 인사하는 습관,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진리, 생명에 대한 책임감은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입니다.


이 책은 그러한 가치를 쉽게 가르쳐주는 이야기입니다. 자칫 딱딱해서 잔소리처럼 들릴 수 있는 가치들을 아빠와 아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통해 쉽게 풀어냈습니다. 친구들과 벌인 축구경기에서 패배했을 때, 아빠는 패배를 통해서 성숙해진다는 가치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배운 가치관은 아이들의 뇌 속에 각인이 되어 평생을 통해 삶의 등대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어렸을 때 배운 것들은 바위에 새기고 어른이 되어 배운 것들은 얼음에 새기는 것 같다는 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이 책은 우리 아이들에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따뜻하게 바라볼 줄 아는,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참된 가치를 키워주는 책이 될 것입니다. - 조성자(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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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은 폴란드 정부에서 지정한 코르착의 해. 야누시 코르착은 자신의 온 생애를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현하고 지키는데 바친 인물이다. 교육자 코르착 생애를 담은 그림책 <블룸카의 일기>가 한국에서 활동하는 폴란드 그림책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붓과 펜 끝에서 태어났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임을 거듭 강조한 신작을 소개하는 작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열정과 애착이 배어나온다. 그는 인터뷰에서 사회적인 주제로 책을 만드는 일에 대해서도 확고한 입장을 드러내는데, 이 또한 <블룸카의 일기>라는 작품을 이해하는 한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어릴 때 수학을 유난히 좋아했고 그것이 작품에도 드러난다는 이야기, <블룸카의 일기>에 이어 출간을 앞둔 신작들의 제목과 드디어 자국인 폴란드에서 첫 출간을 제의 받았다는 소식은 그간의 분주한 작품 활동은 물론, 앞으로 변화될 새로운 모습까지 그려보게 한다.

 

(기획 : 사계절출판사 / 번역 : 이지원 / 인터뷰어 : 알라딘 이승혜)

 

 

2011년 한국 방문 이후 벌써 한 해가 지났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올해는 <블룸카의 일기>로 특별한 한 해였습니다. 독일과 폴란드에서 동시에 출간되고 이스라엘, 일본, 프랑스, 그리고 한국에서 출간된 덕분에 각종 페스티벌과 도서전, 작가와의 만남을 유럽 전역에서 가질 수 있었습니다. 되새겨보면 올해 내내 계속 어딘가 다닌 기억만 나요. 특히 독일에서 열리는 행사가 많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세 권의 책-<눈>(창비, 근간), <네 개의 그릇>(논장, 근간), <생각하는 사람을 위한 독일어 알파벳>(Gimpel, 근간)-작업을 진행하여 마쳤어요.


신작 <블룸카의 일기>의 화자인 블룸카의 선생님, '야누시 코르착'이란 인물을 작가님이 처음 알게 된 것은 언제였나요? 그리고 작가님을 포함한 오늘의 폴란드인들에게 '야누시 코르착'의 존재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합니다.


코르착은 저희 세대 폴란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폴란드인들은 항상 역사 인식이 각별한 편이고, 그의 생애 마지막쯤에 일어난 일(코르착이 돌보던 유대인 고아 200명과 함께 수용소로 떠나는 기차역까지 마지막 행진을 한 일 : 옮긴이 주)에 대해 깊이 감동받고 있습니다. 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5년 뒤에 태어나서, 전쟁의 여운을 느끼며 자랐어요. 제 책인 <블룸카의 일기>가 홀로코스트나 전쟁을 다룬 책이 아니라, 아이들이 살던 고아의 집과 코르착의 교육철학을 다루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패러독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폴란드인들은 슬픈 역사에 매우 민감합니다. 그래서 코르착에 대해서도 그의 비극적인 죽음이나 바르샤바 게토에서 아이들과 함께 겪은 힘든 삶에 대해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코르착이 쓴 작품이 교과서에 실려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러다보니 코르착이 30년 넘게 고아들을 돌봐온 사실이나 지금 봐도 혁신적인 그의 교육철학에 대해서는 무심히 넘어간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비극적 죽음에 관한 일화는 알려져 있지만, 그 죽음이 어린이만을 위해 살아온 그의 삶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말이라는 건 깊이들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고요. 그래서 저는 그의 인생의 업적을 명료하고 짧은, 이해하기 쉬운 그림책의 형식으로 꼭 알리고 싶었습니다.


<블룸카의 일기>는 소재뿐만 아니라, 작업 방식에서도 이전 작품들과 차이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책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 그리고 작업 과정 전반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코르착이 직접 쓴 일기도 책의 바탕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블룸카의 일기>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책입니다. 오랜 기간 준비했고,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저 자신도 성숙해야만 했습니다. 이 책은 폴란드인, 독일인, 유대인과 그들의 역사 안에 절묘하게 자리하는 책입니다. 이러한 책을 만드는 데 얼마나 중요한 책임이 뒤따르는지 알고 있습니다. 코르착이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폴란드 사람들도 많고, 어쩌면 가끔은 일부러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은 코르착이 너무나 폴란드인이었다고 공격하는데, 폴란드 사람들은 그가 너무 유대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학자들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맞춰줘야 하고, 아이들을 평가할 수 없고, 아이들에게 벌보다는 상을 줘야 한다는, 코르착의 교육철학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의사들은 코르착이 과학적인 방법을 그다지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받지 않고 치료한 것, 아이가 많은 가난한 집안들을 접한 코르착의 우생학적인 관점 등을 비판합니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저는 코르착이 마치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고아처럼 느껴졌습니다. 올해가 폴란드 정부에서 지정한 코르착의 해였는데 어린이 인권에 대해 코르착과 관련한 큰 사회적 반향은 없었습니다. 그런 점들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적 주제로 책을 만드는 일에는 창작자가 자신을 낮추는 태도와 집중, 주제에 대한 세세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인물을 다루는 데에서 가장 어려운 건, 그 인물에 대한 각종 기록에서 그 인생의 정수를 뽑아내는 것입니다. 특히 그림책에서는 짧고 간단한 글이 필요하고, 그 글이 지루해서도 안 됩니다. 픽션을 가미할 때에도 그것이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볼로냐 라가치 상을 수상한 직후에 바로 이 작품의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세속적 성공에 너무 마음을 뺏기지 않도록, 스스로를 정화하고 집중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글을 써 나가면서, 가끔씩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말하는 그림을 한 장 한 장 생각해나갔습니다. 단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그림책을 창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술가로서 제 자신을 보여주면서 예술적으로도 흥미로운 작업을 해내고 싶었습니다. 


블룸카와 함께 '고아의 집'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외모도 성격도 각양각색입니다. 항상 배가 고픈 지그문트, 양파 껍질 벗기기 대회에서 1등을 한 쉬멕, 바느질 솜씨가 좋은 아론, 그리고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블룸카까지. <블룸카의 일기> 속 아이들의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나가셨는지요?


'고아의 집'아이들에 대한 많은 자료를 읽었습니다. 코르착도 기록을 남겼지만, 함께 일하던 선생님들의 회고록에도 아이들 얘기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코칙, 스타시엑 같은 아이들과 그들의 이야기는 정말 있었던 이야기지만, 다른 인물들은 실제로 고아의 집에서 벌어졌던 여러 가지 행사나 관습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인물들입니다. '착한 일을 하는 날'이나 '부엌 축일''첫눈 오는 날', 아이들이 공방에서 여러 종류의 손기술을 익힌 일, 자신만의 비밀 서랍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 어린이 법정과 신문 등의 실제 사실들을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모든 걸 보여주기 위해서는 우리를 '이미 존재하지 않는 세상'으로 안내해 줄 인물이 필요했고, 그 인물이 바로 블룸카입니다. 블룸카는 이디쉬어(동유럽 유대인들이 쓰던 언어 : 옮긴이 주)로 '작은 꽃'이라는 뜻입니다. 그림책에서, 블룸카가 물을 주고 있는 꽃은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꽃말을 지닌 물망초지요. 그림책에 담겨 있는 아이들의 생활은 행복하고 따뜻합니다. 코르착의 품 안에서 아이들은 슬프고 어려운 처지를 잊을 수 있었지요. 저는 그 아이들이 느끼는 행복과 함께, 그 이면의 슬픔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뒷날 이 아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어린 독자들에게, 이 책은 폴란드의 한 작은 고아원의 아기자기한 일상과 여러 축제, 관습을 담은 따뜻한 책일 겁니다. 하지만 코르착과 이 아이들의 비극적 죽음을 알고 있는 어른들에게는 다소 다르게 다가오겠지요. 어른 독자들은 이 그림책의 숨겨진 상징들을 읽어낼 수도 있을 겁니다. 가령, 나쁜 짓을 하는 쉬멕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 과거에 쉬멕이 벌인 나쁜 짓을 깨끗이 씻어 주는 그 물줄기는 트레블링카 수용소의 죽음의 샤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블룸카의 일기>는 아이들이 누려야 할 권리와 지켜야 할 의무, 그리고 이런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하는 지도자, 어른의 존재에 대한 이상적인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코르착의 교육 철학 가운데서도 특히 작가님의 마음을 울린 메시지가 있다면 인터뷰 지면을 빌어 소개해주세요.

 

이 책의 뒷부분에는 실제로 코르착이 지녔고 또 실행했던 교육의 원칙들이 블룸카의 목소리를 빌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제 마음을 울린 건, 아이들이 어른들과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 아이들을 존중하고 때리지 않으며 상처를 주었을 때 어른들도 사과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블룸카의 일기>가 작가님 개인적으로는 어떤 의미를 갖는 작품인지 궁금합니다. 이 인물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시겠다고 결심하셨을 때에 작품을 읽게 될 독자 분들께 어떤 바람을 갖고 계셨는지요?

 

이 책은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책입니다. 이 책을 만들면서 코르착과 아이들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보며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지요. 작가의 시각으로 작업을 풀어내야 하니까요. 이 책은 어찌 보면, 수학적 짜임새를 갖춘 책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작품을 보다 보면, 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세부 상황을 새롭게 깨닫게 되기도 하고, 새로 해석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작품의 세세한 부분들 모두가 제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작업을 하면서, 누군가가 알 수 없는 힘으로 저와 제 작업을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비밀스럽고 신기한 경험들도 많았습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 와서 다시 살펴보아도 저라는 사람의 어떤 무의식이 이 책을 만들었구나, 누군가 나를 인도해 주었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작가님 어린 시절의 꿈에 대해서, 그리고 그림에 대한 재능을 어떻게 처음 발견하게 되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특별한 꿈은 없었어요. 하지만 책은 아주 많이 읽었습니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외동딸이었는데, 그래서 또래친구들보다는 어른들과 함께 지냈거든요. 누군가 "커서 뭐가 될래?"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 질문이 싫었습니다. 재능은... 여전히 찾으려고 노력 중인데, 아직은 발견하기가 힘드네요. 책 한 권 만들 때마다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어릴 때 수학을 좋아했는데, 그런 점이 책에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제게 작품을 만드는 일은 빈 칸이 많은 수학 문제를 풀어내고 공식을 대입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림책을 만드는 걸 배운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러니 수학적인 재능 덕분에 책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저는 사회의식이 없는 예술적 재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제 자신이 의식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항상 노력합니다.


<블룸카의 일기>를 포함한 여러 그림책에서 독특한 콜라주 작업을 선보이셨는데요, 어떤 효과를 목표로 이러한 표현 기법을 사용하시는지요?


콜라주는 나름의 환영(illusion)을 만들어냅니다. 어떤 것이 원래 있었던 것이고, 어떤 것이 새로 만들어진 것인지 잘 모르게 되지요. 콜라주에서 제가 좋아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저는 변화하는 여러 가지 세상을 하나로 묶는 작업을 좋아합니다. 옛날 헝겊의 문양이나, 바랜 공책의 조각, 구겨진 종이, 오래된 책... 제가 좋아하는 이런 것들에 새로운 생명을 줄 수도 있는 작업이지요.

 

하지만 콜라주는 어려운 기술이기도 합니다. 콜라주로 그림을 만들다가는 뭘 하고 있었는지 다 잊어버리고 아주 수다스러운 작업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저는 균형 잡힌 콜라주, 정말 필요한 요소들만 넣어서 만드는 그림을 좋아합니다. 그러면 다른 어떤 기법으로도 만들 수 없는 효과를 얻어낼 수 있지요.


작가님의 그림책 작업에 가장 큰 영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 모든 것, 어쩌면 어떤 것도 아닐지도 모르지요. 제 책인 <생각연필>에서도 말한 것처럼, 영감은 정말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그리고 어떻게 오는지도 모르게 오는 것 같아요. 영감은 도로에 뚫린 구멍으로부터도, 중요한 사회적인 이상으로부터도 옵니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영감을 주는 것 같기도 해요.


최근 <생각하는 사람을 위한 독일어 알파벳>(Gimpel Verlag, 근간)을 만들면서 정말 재미있었어요. 독일어 알파벳 책이긴 했지만, 마르틴 루터, 바흐, 루카스 크라나흐, 니체, 칸트 등의 그림을 그리면서 즐거웠습니다. 적정의 거리감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저에게 영감을 주는 것 같아요. 슬픔에서 기쁨을, 기쁨에서 슬픔을 발견할 수 있는 제 성격이나, 개인적인 패배, 굴욕 같은 감정도 영감을 줍니다. 논픽션을 시적으로 풀어내는 작업도 좋아해요.


볼로냐 라가치 상을 비롯해 수많은 수상 경력을 가지고 계시죠. 한국의 김희경 작가와 함께 작업하신 <마음의 집> 의 라가치 상 수상이 한국 독자들에게 작가님을 더욱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신작 <블룸카의 일기>는 2012 독일아동청소년문학상 그림책부문 아너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많은 상을 받고 저도 정신적으로 조금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요. 덕분에 일을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품 활동을 처음 시작한 때부터 2012년 현재까지,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라면, 기획자이자 친구인 이지원 선생을 만나고, 덕분에 책을 만들고 싶었던 제 소원이 한국 독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일이에요. 이제는 다른 나라에서도 책을 펴내게 되었고 제 나라인 폴란드에서도 활동이 활발해졌지만, 한국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첫발을 뗀 일이 저에게는 정말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제 제 생애 처음으로 폴란드 출판사에서 글과 그림을 맡아 그림책을 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어요. 거의 믿을 수 없는 수준이라 축하주를 마셨습니다. 이제 폴란드어 작품도 더 많이 하게 될 것 같아요.


<블룸카의 일기>의 원저작사인, 독일 김펠 출판사와 후속작을 의논하고 있습니다. 이 작고 예술적인 출판사는 저를 크게 도와주고 있고, 덕분에 처음으로 폴란드와 독일에서 공동으로 먼저 출간한 책을 한국으로 수출할 수 있게 되었지요.

 

한국은 아침저녁으로 부쩍 쌀쌀해졌습니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작가님의 그림책을 통해 따뜻한 온기와 위로를 받고 있는 독자 분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한국 독자 여러분. 여러분들께 제 그림책으로 바르샤바의 고아원과 위대한 폴란드인을 소개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그는 폴란드에서 코페르니쿠스와 쇼팽, 마리 퀴리-스크워도프스카와 함께 가장 중요한 인물이랍니다. 폴란드 사람이긴 하지만, 시대와 장소를 아우르는 그의 철학은 한국에서도 귀히 여겨질 거라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유대인이든, 폴란드인이든, 독일인이든, 한국인이든 간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이니까요. 코르착 선생님도 그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려고 애썼던 것이고요.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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