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사 박정아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9월의 좋은 어린이 책, <미술관에서 생긴 일>의 추천글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가슴을 찌릿찌릿 저리게 하는 곡이나 뭉클한 감동을 주는 미술작품이 하나쯤은 있을 것입니다. 오래 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돌아볼 때였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쫓긴 나머지 전시품에 대한 욕심으로 될 수 있으면 많이 보고자 하는 마음이 앞섰었죠. 작품을 마음으로 보지도 못하고 오랜 시간 서서 다녀 다리도 조금 저려 오던 순간 클로드 모네의'라 그르누예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뭐랄까. 순간이었지만 강인지 늪인지 모를 물이 그림 안에서 미비하게 출렁이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밖으로 흘러나올 것 같았습니다. 분명 움직인 것 같았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다른 그림처럼 평면 캔버스 위에 유화로 그려져 있었죠. 빛이 반사되는 물 표면이 너무나 생생한 그 그림에 대한 충격과 감동은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작가도 저처럼 미술관에서 뭔가 잊지 못할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저마다 어떤 경험과 사연을 갖고 있겠죠? 작가는 그것을 그림이 우리 삶에 마법을 걸어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마법을 걸어 준 미술관에 감사하다고 인사하지요. 한마디로 그림들은 화가가 어떤 의도와 감정으로 그렸든지 간에 그것을 보는 감상자의 눈으로 다시 태어나고 새로운 꿈과 상상의 세계를 주면서 영원토록 다른 모습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엄마 손에 이끌려 미술관에 들어갈 때부터 불만이 가득한 이 책의 주인공인 소년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지요.


미술관에 들어서는 소년은 뾰로통한 얼굴에서 볼멘소리가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듯 합니다. 작품은 보지도 않고 팸플릿을 접어 종이비행기로 만든 것도 모자라 발로 밟다가 급기야 미술관 직원의 눈총을 받게 되지요. 그 찰나 마법과 같이 그림 속의 소녀가 소년에게 말을 건넵니다. "이리 와."라고 말이지요. 소녀의 초대를 받은 소년은 이제 미술관에서의 진짜 세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상황이 바뀐 것이죠. 엄마는 주무시고 미술관은 온통 소년의 모험과 탐험의 장이 됩니다. 소년뿐만 아니라 그림 속에 그려져 있던 강아지, 고양이, 새와 소녀는 마네의 <인상 : 해돋이> 작품과 쇠라의 <그랑자트 섬에서 본 센 강> 작품이 절묘하게 섞인 듯한 신비한 해변에서 놀다가, 선장으로 바뀐 미술관 직원과 함께 마치 쿠르베의 <파도>가 넘실대는 듯한 바다를 건너 타히티로 갑니다.


작품을 보는 풍부한 상상력을 깨닫게 해 주는 것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19세기 사실주의부터 20세기 현대미술까지 다양한 미술가의 그림들이 삽화가의 시선으로 재구성 되어, 실제 미술관을 구경하듯 아름답게 그려져 있습니다. 사실 이 책에 그려진 그림들이 어느 화가의 어느 작품에서 모티브를 따 와 그렸는지 찾아보는 과정도 무척이나 재미있답니다. 상상컨대, 고갱의 <아레아레아>에 그려진 붉은 개와 새가 그림 밖으로 나오고, 모네의 <수련>이 필 듯한 연못도 있지요. 실제로 책을 읽던 딸아이는 강아지와 새, 고양이가 책 속에 그려진 그림 안에 숨어 있다며 숨은 그림책이라며 좋아라 하고 한참 동안이나 읽었답니다.


미술관은 누군가에 의해 이끌려가고, 가서도 수동적으로 따라만 다니고 이미 다른 사람들이 평해 놓은 관점으로 작품에 눈도장을 찍으며 관람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계기로 생각이 확 바뀌어 지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소년처럼 우리에게도 상상력과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능력이 가득하니까요.


타히티에서의 신 나는 놀이 뒤에 클림트의 그림일 것 같은 작품으로 옮겨지는 소년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네요. 과연 어떤 일이 미술관에 생길 지 지금 이 순간 여러분도 한 번 마법에 빠져 보세요. - 박정아(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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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김현자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9월의 좋은 어린이 책, <대이동, 동물들의 위대한 도전> 추천글입니다.


<대이동, 동물들의 위대한 도전>(정승원 글, 김대규 그림, 창비 2012)은 생존을 위해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거리를 이동하며 살아가는 몇몇 동물의 목숨을 건 대이동의 이유와 비밀을 들려주는 책이다.


책의 주인공은 시베리아로부터 우리나라까지 장장 4천 킬로미터를 날아 해마다 10월에 금강호로 찾아와 세계 유일의 군무를 펼쳐 보이는 가창오리를 비롯하여, 꽃잎처럼 작고 여린 날개로 캐나다에서 멕시코까지 무려 5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제왕나비, 순록, 바다거북, 누, 귀신고래 등이다.


이중 귀신고래의 출산 장면과 생존을 위한 이동 과정은 좀 특별하게 읽혔다. 새끼고래를 가운데 두고 보호하며 이동하거나 어른 고래 두 마리가 이동할 경우, 나는 이들이 암컷과 수컷 즉 고래 부부일 거라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와 달리 임신을 한 암컷 고래와 임신을 하지 않은 암컷 고래 두 마리가 생존을 위해 서로 유대를 맺는다는 것, 그리하여 1만 5천 킬로미터 혹은 3만 킬로미터를 서로 분신처럼 붙어 도와 가며 이동한다는 것, 임신하지 않은 암컷은 훌륭한 출산 도우미 역할은 물론 베링 해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도와주는 베이비시터(?)까지 한다는 사실이 좀 의외였다. 새끼 고래가 첫 숨을 쉴 수 있도록 두 암컷 고래가 힘을 모으는 모습은 갓 태어난 아기에게 첫 숨을 쉬라고 엉덩이를 살짝 때려 울게 하는 우리의 출산 장면이 떠올라 뭉클한 감동이 일었던 부분이다.


대체 귀신고래는 왜 새끼가 위험에 처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먼 거리를 이동하는 걸까? 이동하는 두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는다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동행하는 암컷 귀신고래는 무엇 때문에 두 달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는 희생을 자처하는 걸까? 어떻게 해마다 왔던 길을 정확하게 되돌아 갈 수 있는 걸까?


책은 10월에 베링 해를 떠나 12월 멕시코 해변(캘리포니아 반도)에 도착하는 두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자지도 않고 1만 5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귀신고래의 여정과, 그렇게 도착한 캘리포니아 반도에서 지내다 1~2월에 출산을 한 후 3월에 멕시코 해변을 출발, 두 달 후인 5월에 베링 해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 그리고 이 여정을 가능하게 하는 암컷 귀신고래 두 마리의 끈끈한 유대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두 암컷 귀신고래의 생존을 위한 유대와 여정은 장엄한 감동, 그 자체다. 눈으로 읽는 글들이 마치 내레이션처럼 와 닿으며, 한편의 장엄한 생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했다.


이 책의 취지 중 하나는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에 대한 제대로 된 관심과 바람직한 공생 추구다. 이야기 끝마다 주인공 동물들이 처한 위기나 현실, 보호 정책 등을 실은 것이 눈에 띄는데, 이러한 배려가 이 책을 훨씬 가치 있게 하는 것 같다. - 김현자(오마이뉴스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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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교육연구소 놀자아 대표 이원영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9월의 좋은 어린이 책, <땅에서 찾고 바다에서 건진 우리 역사>의 추천글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성인책보다 어린이책을 더 즐겨 읽게 되었다. 특히 내가 어렵다고 생각되는 분야-역사나 천문, 지리, 자연사 등-를 공부할 때는 반드시 아이들 책부터 먼저 읽곤 한다. 어린이책은 대부분 쉬우면서도 재미있다. 그런데 어린이 책을 많이 읽다보니 생각보다 어렵게 쓰여진 책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글씨가 크고, 만화나 그림이 많으면 쉽다고 생각하지만 내용자체가 어려우면 아무리 글씨를 줄이고 그림을 많이 넣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마찬가지로 아이들과 박물관체험교사를 할 때에도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 교사가 야심차게 준비한 개그가 아이들을 썰렁하게 만들기도 하고,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한국말(?)을 못 알아듣기도 한다. 그래서 박물관 체험놀이교사들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항상 고민을 한다. '어떤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을까?' '어떻게 설명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역사는 다른 분야에 비해 쉽고 재미있게 풀기란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김영숙씨의 책을 읽으면 역사가 참 쉽고 재미있어 진다. 제목부터 끝날 때까지 재미있고 쉬워서 술술 넘어가는 것이 진짜 어린이책 답다. '아이들이 실제로 발굴현장에 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런 생각을 할 사이도 없이 어느새 어둑어둑한 발굴현장에 도착해 버린다. 그리곤 바로 발굴단과 한 마음이 되어 분주히 움직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혹시라도 이제 막 발굴하기 시작한 유물이 없어지면 어쩌나?' '손이 정말 시려오는구나.' 긴장과 추위 속에서 물이 고이는 발굴 구덩이를 파는 일은 마치 영화처럼 내 앞에서 한 장면 한 장면 흘러간다. 그리고 마침내 '아악~~!!' 비명소리와 함께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 '금동대향로'가 눈앞에 나타난다. 


운이 좋게도 나는 책을 읽으며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만약 아이들도 이 책을 읽고 발굴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면 진흙 속에서 나온 그 유물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유물에 대해 알고 싶고, 자랑스럽고 사진만 봐도 헤벌쭉 웃음이 나오겠지?


<땅에서 찾고 바다에서 건진 우리 역사>는 마치 영화처럼 우리를 그런 현장에 데려다 주는 책이다. 역사는 어렵고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를 쉽고 재미있는 친구로 만들고 싶다면 이 책의 첫 페이지를 넘겨보자.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책의 첫줄을 읽기 시작하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것이다. - 이원영(놀이교육연구소 놀자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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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원 초등학교 교사 이현옥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9월의 좋은 어린이 책, <80일간의 세계 일주>의 추천글입니다.


'명작'은 우리가 세계 문학 혹은 고전이라고도 부르는 문학 작품들입니다. 문학성을 인정 받은 것은 물론이고,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담고 있으며 오랜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널리 읽혀 온 작품들을 이르지요. 책과 담 쌓은 사람이라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해저 2만 리>, <80일간의 세계 일주>와 같은 제목은 들어 보았을 만큼 유명한 작품들입니다. 책 이외에 영화나 연극으로도 각색되어 널리 사랑 받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요.


하지만 '명작'은 아이들을 위해 쓴 책은 아닙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읽기에는 분량도 많거니와 어렵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작'이 갖춘 이야기의 힘은 아이들을 책의 세계로 이끄는 매력이 있습니다. 몇 세기 전에 쓰였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상상력과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까요. 아이들에게 명작을 추천하는 건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물론 원작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사실 아이들에게는 조금 버거운 일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쓰인 명작들이 그토록 많은 것이겠지요.


그 가운데서도 이번에 출간된 <제로니모의 환상 모험 클래식> 시리즈가 반가운 이유는 아이들에게 친근한 제로니모가 들려주는 명작이기 때문입니다. <제로니모의 환상 모험> 시리즈는 초등학생이라면 누구나 열광하는 이야기지요. 400쪽에 가까운 엄청난 분량인데도 아이들은 한번 손에 쥐면 그 자리에서 다 읽어 내릴 정도입니다. <제로니모의 환상 모험 클래식>은 이렇게 아이들이 너무나 사랑하는 제로니모가 등장해 자신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을 들려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서 한눈에 아이들의 호기심을 끕니다. 또한 제로니모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인, 톡톡 튀는 그림 같은 글씨와 빠른 전개, 신 나는 애니메이션 같은 그림이 가득해 그야말로 책장이 스르륵 넘어갑니다. 여기에 제로니모가 이 이야기를 권하는 이유와 원작을 쓴 작가에 대한 소개도 실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여 주니, 더욱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지요.


이번 명작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는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 일주>입니다. 80일 만에 전 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데 절반의 재산을 걸고 여행길에 오른 영국 신사의 이야기로,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여행과 모험 이야기를 담겨 있고, 지금 읽어도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또한 사랑과 우정, 인간애 등 시대를 넘어 우리를 감동시키는 가치들도 고스란히 담겨 있지요. 지식과 상상력이 가득한 이 명작을 제로니모가 들려준다니 아이들에게 권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입니다. - 이현옥(서울 신원 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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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oya28 2013-12-11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저 승민인데 잘읽어 보았고요 그책 잘읽을 게요
 

일러스트레이터 이관용 님께서 알라딘으로 보내주신 8월의 좋은 어린이 책, <내 멋대로 스케치북>의 추천글입니다.


미술을 전공하고 일러스트레이션 작가로 활동하면서 '그림 그리기'는 이제 생업이 되었지만, 좋은 그림은 무엇인지, 그림 그리는 행위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아이들에게는 어떤 미술교육이 필요한 지에 대해서는 늘 고민하게 됩니다. 더구나 이제 의사소통이 제법 가능해진 세 살배기 아들로 인해 미술을 통한 교육에 대해 점점 더 진지해지지 않을 수 없더군요.


작은 잎사귀나 개미 한 마리에게도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의 색깔을 구별해 부를 줄 아는 아들을 위해 자연스럽게 형태와 컬러를 말하는 그림책 들을 뒤적거리게 되더군요. 의욕이 넘치는 부모들은 그림 전시회를 다니기도 하겠지요. 물론 아이들은 그림보다는 그 공간을 뛰어다니고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더 재미있겠지만요! 렘브란트의 그림이나 고흐의 명화를 두 눈 반짝이며 쳐다보고 있는 아이의 눈빛을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부모들은 뿌듯하기 마련이거든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스케치북을 끼고 살기도 합니다. 주변에 그런 아이들이 몇 있어 대체 얘들이 무슨 그림을 그리나 몰래 떠들어보곤 하는데, 대부분 예쁜 옷을 입은 왕방울 눈의 공주님이거나 무슨 무슨 로보트 같은 캐릭터들이더군요. 그래서인지 서점에 가도 미취학 아동 대상의 그림책은 캐릭터의 모양을 밑그림을 따라 그려 완성하거나 이미 검은 선으로 외각라인이 그려진 캐릭터의 얼굴과 몸에 적당한 색을 칠하라는 일명 '색칠공부' 책이 많더군요.


여유가 있어 미술학원에라도 보내면 뭐든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조물조물 그리고 만들어 보겠지만 이 역시 학부모에게 보여주기 위한 생색내기 작품일 공산이 큽니다. 얼마나 아이가 제 스스로 생각해 그리고 만들었을지는 사실 알 수 없는 것이지요.


아동 미술교육에서 첫 번째로 등장하는 말이 '창의성'입니다.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를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것' 말이죠. 그러나 지금 서점에서 가장 눈에 많이 띄는 책들이 말하고 있는 건 '따라 그리기'가 대부분입니다. TV 광고까지 하는 미술 교재도, 들여다보니 사물과 대상을 어떻게 하면 '쉽고' '비슷하게' 그릴 수 있냐에 초점을 맞추었더군요.


저도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권유로 미술부에 들어갔지만, 미술부에서 배운 것은 미술학원 다니는 또래 여자애가 그리는 기와지붕과 나무 그리는 방법을 곁눈질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무 잎사귀 하나하나가 모여 커다란 나무가 만들어지니까 열심히 하나하나 작은 붓을 찍어 그리고 있는데, 그 여자아이는 둥근 형태의 덩어리를 큰 붓으로 그리고서는 나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단지 그 친구가 미술학원을 다닌다는 사실에 조금 주눅 들어있던 터라 따라 그렸지만 얼마 뒤 '정말 나무는 그렇게 그려야 하나?' 하는 의문이 따라왔습니다.


교육은, 특히나 창의성을 가르치는 미술교육은 방법과 규범이 사실 필요 없는 분야입니다. 도구야 자꾸 만지고 다루면 익숙해질 거고, 그리기도 자신이 보고 느낀 대로 표현하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니까 선생님과 책은, 그림 잘 그리는 방법이 있지도 않고 이런 저런 도구들도 꼭 이렇게 써야한다는 법도 없다는 걸 말해줘야 합니다. 아이에게도 방바닥에 누워 뒹굴거리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미술교육에는 정말 충분한 여유와 여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내 멋대로 스케치북>를 만났을 때 들었던 느낌은 그런 여유와 여백이었습니다. 비록 두꺼운 수채화 종이에 컬러 인쇄된 그림책은 아니지만 책을 펼쳐드는 순간 짧은 말과 단순한 선들 사이의 여백에서 꿈틀꿈틀 피어나는 '그리고 싶다'는 흥미가 느껴지더군요. 정교하지 않은 자유로운 일러스트레이션들이 '와! 재미있어 보이지 않아?'라고 말을 걸더군요. 더군다나 단순히 어떤 형태의 데생(묘사)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생활하며 부딪치고 느끼는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제가 어릴 적인 초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거짓말 조금 보태 글씨를 뺀 여백이 온통 낙서투성이였습니다. 이상하게도 전체가 하얀 도화지보다도 교과서의 글과 삽화들 사이의 여백에 뭔가를 낙서하고 채워 넣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었습니다. 일면 아이의 심리 같은 건데, 백지가 아닌 덜 채워진 여백의 공간에, 너무 깨끗한 곳 보다는 적당히 어질러져있는 공간에서 자유로운 상상력이 발동하나 봅니다.


<내 맘대로 스케치북>은 물론 부모가 함께 책을 보며 대화하며 빈 공간을 채워 넣어도 좋겠지만 (저 같은 아이에겐) 혼자 놀기에 딱인 책인 셈이죠.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낙서하는 스릴이야 없겠지만 누군가 흘리고 간 글 귀퉁이와 그림 조각의 틈에서 충분히 혼자 키득거리며 놀 수 있는 여유와 여백이 이 책 안에는 충분히 있으니까요. - 이관용(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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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케치북> 알라딘 서점이 추천하는 8월의 좋은 어린이 책
    from 시금치 2012-08-02 10:45 
    알라딘이 매월 선정해 진행하는 서평 이벤트 <전문가가 추천했어요 - 좋은 어린이 책> 코너에서 8월 좋은 어린이책으로 <창의력이 쑥쑥 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