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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심리학 - 페이스북은 우리 삶과 우정, 사랑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가
수재나 E. 플로레스 지음, 안진희 옮김 / 책세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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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facehooked’. “페이스북(facebook)에 낚였다/꼬였다/한 방 먹었다”(hooked) 정도로 옮길 수 있는 원제의 운율과 뉘앙스를 담아내기에 한국어판의 제목인 <페이스북 심리학>은 다소 심심하다. 주제의 측면에서 보면 <페이스북 심리학>보다는 페이스북 병리학이 보다 정확할 듯 하다. 왜냐하면 이 책의 전제는 페이스북 이용을 중독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때문이다저자인 임상심리학자 수재나 E. 플로레스는 페이스북 중독을 새로운 정신장애로 보고 이를 위한 기준을 제정해야 한다고도 말할 정도다(203). , 그에게 있어서 페이스북은 단순히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의해 소통이 확장되는 심리적 현상이 아니라 낯설고 위험한 테크놀로지에 의해 중독이 강화되는 병리적 현상인 셈이다. 그래서 저자가 이 책 전체에서 씨름하는 핵심질문은 다음과 같다왜 우리는 이토록 페이스북에 중독되어 있는가?”(20)

 

기술철학 분야에서 저자와 같은 이러한 입장을 기술결정론이라고 부른다. 하이데거나 자크 엘룰과 같은 고전적 기술철학자들은 기술의 본질을 논하며 기술 일반이 현대사회에 얼마나 파괴적이고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비관적 목소리를 냈다. 임상심리학자인 플로레스가 접한 페이스북 중독’(facehooked)의 사례들과 그에 대한 분석과 제안의 내용은 기술결정론의 현대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SNS이라는 신기술은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페이스북은 사용자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장악하고 통제하고 있다. 플로레스가 수집한 수많은 사례들을 접하면서 그의 분석을 따라가면 정말로 나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이 예전보다 페이스북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페이스북으로 인해 얼마나 변하게 되었는지를 새삼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플로레스의 주장처럼 정말로 페이스북은 더욱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만드는 데 유익할 것 같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욱 심각하고 다양한 해악을 만들어내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마약에 중독되듯 페이스북에 중독되어 고통을 받고 있는가?

 

플로레스는 페이스북에 중독되는 과정을 오프라인 공간과 온라인 공간, 오프라인 정체성과 온라인 정체성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다소 시대착오적인 혹은 불가능한 방법을 통해 설명하려 한다. 그에게 있어서 오프라인 공간과 오프라인 정체성은 실상이고, 온라인 공간과 온라인 정체성은 가상이다. , 오프라인에서는 모든 것이 진짜이며, 온라인에 있는 것은 편집되고 조작된 가짜라는 기준에서 페이스북이라는 증상을 진단한다. 페이스북은 오직 순수하게 재미 자체를 추구하는 공간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진정한 자기 자신과 매우 다른 정체성을 구축하고, 남들을 속이고 감정적으로 조종하고, 잘못된 관계를 시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스토킹하고 괴롭히는 데 이용될수 있다.(47) 한 마디로, 소셜미디어는 겉치레를 조장하고 자신의 진짜 인격을 부정하면서 가상의 자아를 증폭시키게 만든다.”(47)

 

이러한 주장은 인터넷이 처음 등장하던 무렵부터 계속 이어져온 것이다. 초기 인터넷 연구에서 인터넷을 가상공간이라고 명명하면서 실재보다 못한 존재론적 위상으로 격하시켰. 그러나 소셜미디어가 등장한 오늘날은 초기와 사정이 다르다. 일상으로 깊숙하게, 미세하게 침투한 테크놀로지는 더 이상 그저 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실상을 구성해내기도 한다.  가령 온라인마켓도 오프라인마켓만큼의 현실성을 가진 시장이며, 온라인서점인 알라딘도 오프라인서점만큼의 현실성을 가진 서점이다. 이동후는 이미 2006년에 인터넷의 공간과 시간에서 우리사회가 인터넷라는 뉴미디어의 진화가 성숙단계에 이르렀다고 평가하며 도구가 아닌 환경으로서의 인터넷 미디어의 작용성을 강조했다.(이동후, “인터넷의 공간과 시간: 미디어 생태학적 접근을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 이론2 (2006): 2-5)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을 헤아리면서 “페이스북에 무엇을 올릴지를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 근거하여 결정하면 그들에게 당신의 행복을 결정하는 힘을 넘겨주는 셈”(241쪽)이라는 조언과 소셜미디어가 가진 유익을 지키고 해악을 피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들을 귀담아 듣는다면 좋을 것이다. 특히, 이 책은 스스로 페이스북이나 트윗터, 인스타그램 등에 중독되었다고 느끼는 사람, 또는 그런 지인 때문에 곤란한 사람에게 유익할 것이다.

 

다만, 이 책은 반대편 극단의 입장에 서있는, 소셜미디어를 극찬하는(‘1조 시간을 가진 20억 명이 연결된 새로운 대중의 탄생’) 클레이 셔키의 많아지면 달라진다(갤리온, 2011)와 견주어 함께 읽어본다면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심리학과 사회학에 모두 박사학위를 가지고,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친밀성을 재구성하는지에 대해서 연구한 사이버 스페이스의 마거릿 미드인 셰리 터클의 외로워지는 사람들(청림출판, 2012)도 함께 읽을 만한 책으로 권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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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문] 『시선 - 정운영 선집』

 

이 책은 알라딘 편집장의 선택(박태근 MD)에 꼽힌 책이기도 하니, 주저 없이 덥썩 집어들만한 하다.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지식인의 "르네상스적 비판정신과 곡조 있는 글"을 읽고 싶은 마음은 신영복 선생의 추천사만으로도 족하다. "이제 그의 글들이 선집으로 묶여서 나오게 된다.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 때로는 파란만장한 역사의 현장을 생환하며, 때로는 고고한 철학적 사유의 세계로 비상하며, 때로는 정치경제의 집요한 욕망을 과녁으로 삼아, 그의 시선이 착목했던 곳을 다시 한 번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오늘의 현실 속에서 그를 일찍 떠나보내고 마음 아파했던 많은 독자들이 그의 이야기를 새롭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2.[과학] 『청진기가 사라진 이후 - 환자 중심의 미래 의료 보고서』

의학은 고대그리스에서 지식(science)이라기보다는 기술(techne)로 출발했으며, 지금도 현대문명의 최첨단에 놓여있는 기술이다. '기술사회학'의 통찰에 따르면, 사회와 사람이 기술을 만들어내지만, 일단 기술이 도입되기 시작하면 기술이 사회와 사람을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만든다. 근대의학의 상징인 '청진기'가 사라진 이후를 말하는 것은 의학기술이 의사의 권위를 압도하고 초과하는 의학기술+정보기술의 시대가 열렸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인류의 모든 건강과 질병에 관한 자료들이 클라우드에 모아지고, 개별 환자는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로 간단하고 정확하게 진단과 처방을 받는다면? 그것은 굉장한 일이 될 수 있지만, 굉장히 무서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의학, 자본, 권력이 융합된 무시무시한 양과 질을 갖춘 새로운 미래를 부단히 소환하려는 사람들 중 대표적인 저자는 이제 환자들에게 '의료의 민주화'가 열릴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보여주려는 듯하다. 아무튼 그것이 결국 도래하게 될 미래라면, 미리 내다보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장밋빛인지, 핏빛인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라도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인 것 같다.

 

 

3.[역사] 『미완의 프랑스 과거사 - 독일강점기 프랑스의 협력과 레지스탕스』

<푸른역사>에서 내놓는 '우리의 시각에서 읽는 세계의 역사' 시리즈 11번째 책이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친일파 문제가 청산되지 못한 우리 민족의 관점에서 나치독일감정기 시대의 프랑스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의 문제를 다시 새롭게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4.[역사] 『꺼지지 않는 불길 - 시대의 개혁자들, 종교개혁의 심장을 발견하다

 마르틴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당문에 게시한 95개조 반박문에서 비롯된 종교(기독교)개혁이 2017년에는 500주년을 맞이한다. 종교나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종교(기독교)개혁이 시작된 10월에, 한국사회에 절실한 종교(기독교) 개혁을 염두에 두고 500여년 전의 개혁자들의 이야기를 반추하는 것은 의미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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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패러다임 - 프로이트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맹정현 지음 / 위고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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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서울정신분석포럼SFP 소식지 FiLUM(2015년 가을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이 책은 프로이트를 이해해버리지’ 않기 위해 쓰인 책이다프로이트를 하나의 완결된 프로이트로 이해한다는 것은 더 이상 프로이트를 읽지 않아버리겠다는’ 것과 같다이해된 프로이트의 언어는 다루기 쉬워진 대신에 낡고 고루해져 더 이상 읽을 필요도 없어지기 때문이다과연 프로이트를 이해해버릴 만큼 우리는 프로이트를 읽어왔는가부제에서 프로이트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질문한 맹정현은 1장에서 곧바로 그에 대한 대답을 정식화한다프로이트는 쉽게가 아니라 어렵게’ 읽어야 한다(23).

프로이트를 어렵게 읽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인간이 통합된 존재라는 환영에 맞서 인간의 분열성을 드러내는 정신분석학적 혁명을 일군 프로이트(9)의 입장에 따르면프로이트 자신도 통합된 하나의 프로이트가 아니라 분열된 여러 프로이트일 수밖에 없다그래서 프로이트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로이트’ 사이의 이해되지 않는 불연속성에 초점을 맞추는 까다로운 조건을 따라서 읽어야 하는 것이다맹정현은 이 책에서 프로이트를 쉽고 단조롭게 독해하는 방식을 대신하여프로이트들 사이의 단절과 도약을 네 개의 패러다임들로 구분하여 독서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저자는 프로이트의 텍스트를 꼼꼼하게 분해하여 네 개의 패러다임들로 구성한다각 패러다임들이 구축된 시기와 주된 병리적 증상대표개념열쇳말 등을 간단히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35): 첫 번째 패러다임(1895-1905)은 히스테리 증상을 탐구하면서 구성된 것으로, ‘유혹설이라고도 불릴 수 있고 무의식이 대표개념이며 억압억압된 것의 회귀욕망 등이 열쇳말이다두 번째 패러다임(1905-1911)은 여전히 히스테리를 다루면서 첫 번째 패러다임과 대립하는 환상설을 도출한다여기서는 성욕이 대표개념이고 충동쾌락승화오이디푸스 등이 열쇳말이 된다세 번째 패러다임(1911-1920)에서는 정신병과 멜랑콜리라는 범주를 탐색하면서 나르시시즘이라는 대표개념을 세우고자아 이상충동의 운명전이거세 등이 열쇳말로 삼는다네 번째 패러다임(1920-1940)에서는 멜랑콜리와 강박신경증의 범주를 접하면서 죽음 충동이라는 새로운 대표개념과 함께 이차토픽(초자아)을 정립한다이 네 개의 패러다임들은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들에 봉착하면서 각기 다른 주요 개념들을 고안하여 새로운 인식의 토대를 형성해나간 것이다.


각각의 패러다임에서 파생된 테제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도 참고하라. “1895년의 유혹설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입니다. 1905년의 유아성욕설, ‘태초에 성욕이 있었다입니다. 1914년 원초적 나르시시즘, ‘태초에 나르시시즘이 있었다겠죠그렇다면 1924년에는 태초에 마조히즘이 있었다라는 주장이 가능해집니다.”(49)







그런데 여기서 저자가 차용하는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이 다만 생각이 만들어지는 틀”(24)이라는 기본적인 뜻으로 국한되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을 통해서 합당한 문제들이 설정되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들이 한계 지워진다는 통찰이나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도약에 의해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진다는 통찰 등은 수용되는 것이다하지만맹정현은 쿤이 패러다임을 고안하면서 과학철학의 담론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과학자들의 공동체의 합의하는 규칙에 의해 작동되는 정상과학’ 같은 연관 개념들을 배제한다[토마스 S. /김명자, 홍성욱 옮김과학혁명의 구조』 (서울까치, 2013)]


이때 맹정현의 프로이트 읽기 전략의 전모를 가늠하기 위해서는쿤의 패러다임 개념과의 연속성보다는 맹정현이 기존의 패러다임 규정에서 단절시킨 불연속성에 보다 더 주목해야 한다맹정현의 새로운 프로이트 읽기 모델의 패러다임 개념에서는 이와 결합된 과학성의 뉘앙스가 희석되고프로이트 한 사람이 패러다임 네 개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해지는 것이다(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정상 정신분석이나 정신분석가들의 공동체’ 같은 연관 개념들까지 새로 생성하지 않는다(쿤에게는 필수적인 일이다). 또한 과학사에서는 패러다임 전환 후에 이전 패러다임은 도태되지만맹정현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해서 첫 번째 패러다임을 폐기할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며아무리 최신 패러다임(네 번째 죽음충동 패러다임)이라도 해결불가능한 문제가 있음을 기술한다이렇게 맹정현(프로이트)의 언어의 결을 타고 맹정현(프로이트)의 문제의식과 추론의 과정을 파악하는 것(15)맹정현의 프로이트 읽기 전략에서 강조하는 핵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프로이트 패러다임라는 새로운 개념은 오직 맹정현의 프로이트 읽기라는 맥락과 연관되어서만 이해될 수 있다저자가 프로이트 읽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면서 네 개의 이론이나 담론’ 또는 시기나 단계’ 대신에 굳이 패러다임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의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까닭이다물론 그 문제의 맥락이란 프로이트의 텍스트에서 개념들이 일관성이 없는 것으로 보이고양립불가한 모순과 대립이 종합되지 않은 채 날 것으로 던져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프로이트의 개념이 모호하고 모순적인 것으로프로이트의 이론이 지루하고 고루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프로이트의 텍스트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다이러한 프로이트 텍스트 읽기의 난제를 풀어가기 위해서 맹정현은 최소 네 개의 패러다임을 제시했으며, “개념을 미리 규정해놓고 읽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이 위치하는 장이나 패러다임에 따라 유동적으로 읽을 필요”(25)를 강조했던 것이다.



맹정현은 이 책을 통해서 단절적이고 이질적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프로이트의 텍스트들을 네 개의 패러다임의 배치 안에서개념과 이론을 통합시키려 하기보다는 개념을 고안하게 만든 문제적 현상과 맥락에 초점을 맞추며 읽는 새로운 읽기의 패러다임을 창안했다고 할 수 있다그런 의미에서 프로이트 패러다임은 곧 맹정현 패러다임이라고도 바꾸어 부를 수 있을 것이다에필로그에서 언급된 것처럼네 개의 패러다임들로 프로이트들 사이의 단절과 도약을 읽어내는 맹정현 패러다임도 결코 완결된 사유가 아니며특히 단절과 도약뿐만 아니라 연속과 교차를 포함해야 할 가능성 또는 과제가 남겨져 있다(298). 완결된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구성적 지식을 생산하는 방법을 전수하려고 했던(298맹정현의  기획에 따르면이 책은 철학책이나 심리학책보다는 도리어 요리책이나 여행책과 같은 실용서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요리하는 사람에게 요리책의 레시피가 유익하고여행하는 사람에게 가이드북의 정보가 유용하듯맹정현의 프로이트 패러다임도 프로이트를 읽으려는 사람에게는 매우 쓸모 있는 실용서가 될 것이다어쩌면 우리가 만들어나갈 프로이트 읽기의 역사는 이 책부터이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프로이트는 오해된 것보다 더 널리이해된 것보다 더 깊이읽혀진 것보다 더 많이 읽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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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 문학과 숨은 신 - 김응교 문학에세이 1990-2012, 2012 우수문학도서
김응교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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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는 것이 매우 유감스럽지만 그늘 : 문학과 숨은 신은 상당히 고약한 책이다. 일단 어렵다. 정신분석학과 문학, 신학, 철학, 사회학 등 어느 정도의 인문학적 소양을 쌓지 못한 사람에게 이 책은 물리적으로 무거울 것뿐 아니라 지적으로도 육중하다. 가령 전체 논의의 포석으로 깔려 있는 라캉 정신분석학의 주요 개념들-가령 주체, 대타자,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 증상, 증환, 쥬이상스 등-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다면, 십중팔구 라이트급의 독자가 헤비급의 저자를 상대하는 듯한 아찔하고 아득한 경험을 하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쉽고 가벼운 독서로 지적 감량을 거듭하여 매끈하고 날렵한 몸매를 유지하는 라이트급의 우리 같은 독자들은 김응교 시인이 라캉과 지젝을 비롯한 수많은 철학자의 저작을 통하여 우뚝하게 쌓아올린 정교한 관점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고산증으로 기진하거나, 장르와 시대, 동서양을 넘나들며 풀어내는 다채로운 텍스트의 풍요로운 해석을 따라잡지 못한 채 시차증으로 맥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독자들이 안고 있는 위험은 사실상 김응교 시인의 의도에 따라오는 불가피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물론 그가 애초에 독자들을 일부러 위험에 빠뜨리길 원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가 원했던 것은 독자들도 위험을 무릅쓰고 텍스트의 세계를 모험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치 저자이기 이전에 독자였던 그가 그랬던 것처럼. 사실 헤비급 복서로 보였던 저자는 오랜 시간 슈퍼헤비급의 지적 챔피언들과 힘겨운 대결을 감내해온 독자였다. 그가 바라는 독서는 에세이스트 서경식의 말처럼 도락이 아닌 사명이며 인류사에 공헌할 수 있는 정신적 투쟁으로서의 독서. 이를 통해 그는 궁극적으로 삶이 책이 되는 경지를 겨냥한다. 스스로가 하나의 책이 되기를, ‘심비心碑에 새겨진 글씨가 되기를 욕망한다.

 

하여 김응교가 쓴 책은 또는 김응교라는 책은 문학 속에서 만난 숨은 신에 대한 이야기다. 김응교가 말하는 숨은 신이란 때때로 현존하고 때때로 부재하는 신이 아니라 현존하며 동시에 부재하는 신이다. 그래서 그는 윤동주, 박두진, 이청준, C.S.루이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과 같이 일반적으로 기독교적 작가로 분류되는 작가들만이 아니라 기형도, 유하, 박지원, 하루키 등 비기독교적 작가들, 레비나스, 보드리야르, 아감벤, 바디우, 지라르, 스피박, 지젝 등 현대사상가들을 통해서 숨은 신을 찾아내고 이야기한다. 아마도 이 책은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는 이들과 하나님의 부재를 확언하는 이들에게 잘 맞지 않을 것이다.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숨은 신이 가장 결핍된 사람들이기에, ‘숨은 신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양극단의 사람들은 아마도 이 책을 읽을 필요를 느끼지 않을 뿐더러 읽기를 거부할지도 모르겠다. ‘숨은 신이란, 하나님의 부재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기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모욕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파스칼이 말했듯 진실한 신은 숨은 신이다. 우리는 성경이나 예배,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더 이상 찾지 못할 수도 있고, 거꾸로 고전이나 시, 소설, 영화 심지어 그다지 종교적으로 보이지 않은 작품 속에서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김응교의 책처럼, 김응교라는 책처럼 좀 읽기 고약한 책이라도 읽어보는 고역을 한번쯤은 감수해볼 만하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라이트급인 우리 모두가 김응교 같은 헤비급의 저자로 거듭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그를 따라서 독서하며 숨은 신을 만난다면, 그래서 거짓된 신이 아닌 진실한 신을 만난다면, 우리는 반드시 어떻게든 변할 것이다. 언젠가 우리가 누군가에겐 분명히 하나의 책으로 읽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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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와 포용 IVP 모던 클래식스 11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박세혁 옮김, 강영안 해설 / IVP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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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광대하고 심오한 깊이와 높이와 넓이와 크기를 맛볼 수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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