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이야기 이산의 책 20
린위탕 지음, 김정희 옮김 / 이산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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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위탕(語當)지음 / 김정희 옮김 / 이산출판사 펴냄 

책을 다 읽고 나서 지금 이 글을 적으려고 저자의 이름을 보았다. 많은 책들 중에 제목을 보고 고른 책은 저자를 그닥 유의깊게 보지 않는 나쁜 습관이 있는데, 지금 이 저자의 이름을 보고 나는 "어쩐지.. "하는 소리를 냈다. 

저자는.. 임어당이다. 중국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근대작가이며, 수필가. 한국에서도 꽤 많은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는 인물이다.

어쩐지..라는 이 이야기는 그만큼 책이 흥미있게 읽혀진다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북경출신이 아닌 福建省(푸지엔셩) 출신인데, 잠시 청화대학에서 교편을 잡기 위해 북경에 머무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의 북경에 대한 애정은 북경태생들 못지 않게 진하고 사려깊다. 

저자는 단순히 감정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 이 역시, 공부를 하던 학자인 관계로 여러가지 자료들과 증거들을 내세워 북경의 역사와 문화를 비롯한 모든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북경에 두 번이나 갔다왔지만, 내가 여행하는 스타일은 그다지 꼼꼼하지 않고, 지도도 몇 번 펴보지도 않고, 가끔은 서양,현대식 분위기가 물씬 나는 커피숖에서 죽대리기도 하는 터라 북경에 대한 전반적 이미지만 기억할 뿐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 유홍준 교수의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생각났다. .. 아는 만큼 보인다던 그 말.. 

 아는 만큼 보이고 그만큼 또 감동할 것인데, 이 무지스러움을 어디서부터 잘라내야 할 지 그 끝간데가 보이지 않는 나에게 베이징 이야기는 짜증스럽던 그 날씨와 상하이에 비할 수 없는 폐쇄성과 그리고 오래된 도시의 마력이 겹겹히 다가와서 다시 베이징을 그리워하게 했다. 

한가지 불만이 있다면 책을 편집한 측의 실수인 듯 한데, 그림 몇 번은.. 이라는 이야기에 바로 옆페이지에 그림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앞 뒤로 마구 책장을 넘겨서 확인해야 하는 바람에 맥이 많이 끊긴다는 점이다. 표지 디자인도 별로 맘에 들지 않았는데다가 말이다..

이산출판사는 중국과 일본에 대한 서적을 다양하게 내놓는 출판사라 이 곳의 많은 책을 봐왔는데, 이전엔 찾아볼 수 없는 디자인적 최대 실수를 저지른 듯 하다. 물론 대부분의 사진과 화보는 칼라로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으나, 그림이 없는 페이지도 몽땅 코팅지를 할애해 책이 약간 무겁고 값도 비싸다.. ㅡ,.ㅡ(만오천원..) 

북경에 여행을 가시는 분들, 또는 북경에 가고 싶은 분들, 그리고 나처럼 다시 북경에 가고 싶은 사람, 또는 북경에 살고 있는 분들에게 꼭 권할 만한 아름답고 선명한 이야기 베이징 이야기. 나도 다시 이 책을 들고 북경에 가고 싶어졌다. 

2003.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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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국가 - 미국의 세계 지배와 힘의 논리
노암 촘스키 지음, 장영준 옮김 / 두레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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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암 촘스키 지음 / 장영준 옮김 / 두레 펴냄 

살아있는 미국의 지성, 노암 촘스키. 고등학교 문법 교과서나 국어 교과서에 언어학자 소쉬르의 이름 아랫줄에 적혀있던 이 사람 노암 촘스키는 그 획기적인 언어연구로 명성을 얻었지만, 그는 그의 빛나는 두뇌를 언어학에만 투자하지 않고, 냉철한 지성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조국에 대한 일침을 가하고 있다. 

촘스키를 가장 존경한다는 영어선생님이 있었다. 그 분의 말을 듣고 촘스키에 관련된 책은 몇 권 읽었지만 정작 촘스키의 책은 읽어본 적이 없다. 

나는 이 책으로 그를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요즘 때가 때이니 만큼 이 불량스러운 깡패국가 미국에 대해서 이야기 했을 불량국가를 손에 쥐고 두 주를 보냈다. 책은 오래 읽을 수록 그 감이 떨어져 감동이 덜하게 마련이라 빨리 읽어보려고 했지만, 이 책은 그렇게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는 책은 절대 아닌 것 같다. 

번역이 어설픈 것은 아닌데, 뭔가 힘들게 넘어가는 문장이 그랬고, 다시 한 번 그 문장을 곱씹어보며 번역탓을 해보려고 했으니 번역은 전혀 이상한 면을 발견할 수 없는데도, 책을 쉽게 읽어나갈 수 없었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자료들 때문이었을까.. 촘스키는 미국의 불량스러움을 하나 하나 꼼꼼히 따져서 까발리고 있는데, 그 자료의 방대함과 나의 무지함이 맞물려져서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나는 멍하고 검은 글자만 바라보게 되었다. 모든 촛점이 흐려지는 듯한 그런 기분으로 결국 이 책을 다 읽어나갔다. 

이유는 요즘 내가 너무나 읽기 쉬운 책들만 골라읽은 덕이었다. 책이란 한 번에 쉽게 읽혀, 야.. 이건 나도 쓰겠다 하는 부류부터, 읽고 나서 책을 곱게 높은 곳에 올려놓고 절이라도 한 번 해야겠다는 책이 있는데, 이 촘스키의 불량국가의 후자에 속한다. 

사회과학, 또는 인문과학분야에서 칼럼의 성격을 띤 이런 책들은 대부분 그들의 빛나는 지성에 주눅이 들게 마련이고, 그러면서 작가의 주장에 휙~하고 휘말려 들어가는데, 이 불량국가의 촘스키는(그리고 역자는) 이게 맞아~! 라고 윽박지르기 보다는 어때? 어때? 들어봐.. 듣기 싫으면 말어~! 하는 식의 먼 거리에서 조근조근 모든 문장과 언어를 잘근잘근 씹어가며 미국의 행패를 그야말로 디벼보고 있는 것이었다. 

제목 그대로 촘스키는 미국이라는 자신의 조국에 대해 불량국가로 규정짓겠다는 바탕을 깔고 불량국가 미국이 지목했던 각종 불량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적나라 하게 말하고 있다. 이정도면 사회안전보장법이나, 국가모독죄에 해당되는 게 아닐까 하는 나의 국가적 컴플렉스는 그나마 그 나라가 살아있는 이유는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그리고 출판할 수 있는 토양에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책과 원고지라는 코너의 머릿말처럼 올려놓은 글에 책을 읽는 사람이란 까다로운 책 한 권을 읽기 위해 독서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을 의미하고, 이 책들이 까다롭다는 것은 적은 지식과 지성을 지녀도 쉽게 얻을 수가 있어서 일반인들이 쉽사리 자만에 빠질 만한 그런 책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적어놓았는데, 간만에 만나는 까다로운 책으로 나는 다시 한 번 자멸감에 빠졌고 그리고 또 그로 인해 에너지를 얻었다. 

이 책이 읽기 어려운 이유는 역자의 한마디로 깔끔하게 해소되었다. 그 원문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남을 단죄하는 것은 쉽다. 누군가에 대해서 '나쁘다'고 한마디 해버리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논리가 부족할 때, 증거가 부족할 때, 그것처럼 쉬운 것은 없다. ..... 촘스키의 책은 그러한 감정 형용사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의 책이 널리 읽히는 이유다. 그의 글은 냉철하고 차분하고, 오로지 사실과 증거들만을 기반으로 한다. ....... 촘스키의 글을 번역하는 데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의 독특한 글쓰기는 정치비평은 물론 언어학계에서도 이미 악명이 높다. 다시는 번역을 하지 않으리라는 필자의 결심이 마지막에 찍힐 점 하나 -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침표는 사람에게 새 출발의 희망을 부추긴다 - 로 흔들리는 것 같아 심히 두렵다....."

쉽게 읽혀지지 않는 냉철한 지성. 안다는 것, 그리고 싸운다는 것, 빛나는 이성으로 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03.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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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3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장경룡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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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 장경룡 옮김 / 문예출판사 펴냄 

최근들어 이 책의 제목을 들으면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다 싶은 분들이 적지 않을리라 싶다. 

한국에서 현재 활동중인 일본인 탤런트 유민이, 일본에서 동명의 영화에 출연했던 것이 시비가 붙어 포르노 배우니 뭐니 하는 발언들을 서슴치 않았던 네티즌들이 있었기 때문인데, 글쎄.. 유민이 출연했다는 그 드라마인가 영화인가는 보지 못했지만, 좌우당간 그 원작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원작 소설인 설국, 이 작품이다. 

그런 네티즌들의 이야기를 보고 무지하다고 혀를 끌끌 차고 있었을 사람들도 있었을꺼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니까.. 그것도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받은 노벨문학상의 수상작이다. 아시아에서 배출된 노벨문학상은, 일본에서 두 편, 타고르 시인의 기탄잘리, 그리고 중국작가 가오싱젠인데, 척박한 노벨문학상의 수상지인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수상한 작품이라 하니, 참.. 꽤나 유명한 명작이겠거니 싶다.. 물론 나도 이 소설을 알게 된 것은 불과 얼마전이긴 하지만.. 

핑계를 대자면 말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ㅡ,.ㅡ;)일본문학에 얼마나 무지했느냐고 변명하고 싶다. 뿌리깊은 반일감정에 휩싸여 매니아층만 구성되어 있던 일본문학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무라카미 류, 또는 요시모토 바나나..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등.. 인기있는 일부 작가뿐일지도 모른다. 

또 하나의 노벨상 수상작가인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은 이미 거의 절판된 상황이고, 일본 문학중에 손꼽을 만한 명작은 분명히 더 있을 것인데도, 나는 소세키의 이름도 재작년에 처음 알았다. (소세키는 중국의 루쉰과 감히 비교될 만한 일본근대작가이다) 어쨌거나 같은 동아시아에 태어난 이상 한국소설만 편식하지 말고 일본소설과 중국소설도 두루 두루 읽어보자고 맘을 먹은 바, 그럼 가장 유명한 작품부터 읽어야겠기에 그마나 얇팍해서 잡아들은 것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 "설국"이다. 

설국은 말 그대로 눈밖에 보이는 게 없는 어느 시골의 온천장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한 남자가 등장하고, 두 여자가 등장한다. 한 여자는 사라지는 눈과도 같은 존재로 남아있고, 한 여자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게이샤이다. 두 여자를 바라보며 눈이 가득한 온천장에서 겨울을 보내는 도쿄 남자 시마무라는 그 누구에게도 다가가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소설은 내내 지루할만큼 잔잔하고 섬세하고, 그리고 아름답다. 

이게 과연 번역체인가 싶을 정도로 그 문체가 잘 살아있는데, 번역을 맡은 장경룡씨는 시인이기도 하다고 한다. 

이 책엔 설국 외에도 "이즈의 무희"와 "금수"라는 단편소설이 두 편 더 실려있는데, 12년동안 다듬고 고쳐서 한 편으로 완성했다는 설국보다는 훨씬 읽기 편하다. 이즈의 무희는 일종의 자전적 성격의 따뜻한 이야기이고, "금수"는 인간을 믿지 못해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인데, "금수"를 제외한 두편은 일본의 향토적인 풍미가 가득해서 예전 같으면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별다른 환영을 받지 못했겠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동아시아의 작품은, 그 아시아적 풍취를 지니고 있어야 좀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설국에서 풍기는 눈내리는 일본의 시골 온천장의 모습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 장소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온천장 뜨거운 수증기처럼 모락모락 솟아오르니 말이다. 

사람들은 늘 고전에서 배우라고 말한다.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나로서는 일본문학을 "무라카미 하루키"에서 시작했으면 "소세키"에서 끝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2003.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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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전2권 세트
에쿠니 가오리.쓰지 히토나리 지음, 김난주.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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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so - 에쿠니 가오리 지음 / 김난주 옮김 
Blu - 츠지 히토나리 지음 / 양억관 옮김 
소담출판사 펴냄 

사진에 관한 개인 홈페이지를 돌아다니다가 작년 여름즈음부터 느낀 것은 상당히 많은 분들이 이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속에 나온 일부분들을 일일이 타자를 쳐서 옮겨놓은 것도 얼핏 얼핏 읽을 수 있었다. 피렌체의 두오모.. ? 라는 부분들.. 뭔가 "지리멸렬"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책은 두 권으로 되어있다.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한 권은 Rosso라는 이름으로 떠오르는 태양같은 중심잡힌 주황색을 띄고 있고, 한 권은 Blu라는 이름으로 채도와 명도가 선명한 푸른 빛을 띄고 있다. 주황색의 Rosso는 여자작가가 쓰고, 두 아이의 엄마가가 번역을 했고, 푸른 빛의 Blu는 남자 작가가 쓰고, Rosso 번역가의 남편이 했다. 

이야기는 헤어진 두 남녀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오랫동안의 이야기다. 여자 주인공의 이름은 아오이(靑), 그리고 남자 주인공의 이름은 쥰세이.. 나는 일어로 쥰세이가 무슨 뜻인지 너무 궁금해졌고, 쥰세이는 혹시 붉은 빛의 색깔이름이 아닐까 했다. 

무슨 이유일까.. 나는 Rosso를 먼저 읽었는데, Rosso를 읽으면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 문체가 짜증스러웠고, 그 짜증스러운 문체를 가진 책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화가 났다. 인내심을 가지고 Rosso를 다 읽고 다음 날이 되어 Blu를 읽기 시작했다. 어쩌면 책 커버에 써 있는대로 두 권을 번갈아 가면서 읽을 것을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얌전히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독서공간은 버스나 지하철인데, 두 권을 번갈아 가면서 읽을만한 여력까지는 없다. 어찌보면 나는 책을 무척이나 홀대하는 독서습관을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blu는 Rosso에서 실망한 나를 만족시켜줬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이건 어쩌면 의도된 문체였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에쿠니 가오리가 적은 Rosso는 아오이의 이야기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벌레가 되어버린 침묵과 냉정의 여자 아오이 말이다. 작가의 문체는 어쩌면 그녀의 삶처럼 흔들흔들거렸고, Blu는 열정을 지녔던 남자 쥰세이의 이야기처럼 냉철한 지식이 번뜩이는 뜨거움으로 가득찼다. 

이건 순전히 개인적 취향인 것이다. 나는 Rosso와 같은 문체를 무척 싫어한다. 더군다나, 그녀의 생각인지, 작가의 생각인지 헷갈리는 이 소설에서 나타난 사람에 대한 묘사, 어떤 옷을 입었고, 어떤 머리모양을 했다는 마음을 닫아버리게 만드는 어떤 영화의 한장면 같이 수식도 비유도 부족한 그런 묘사.. 내가 가장 싫어하는 묘사법이었다. 

Rosso를 읽는 내내 내가 너무 오랫동안 일본문학을 멀리해서 생긴 괴리감이 아닐까 싶어 나를 끊임없이 다독여야했다. 반면 Blu는 맘에 드는 문체로 맘에 드는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갔다. 

어쩌면, 사람들이 이 소설에 열광했던 이유는, 우리에게 부족한 멜로가 아니었나 싶다. 근래의 한국문학에서 보기 드문 진지한, 완전한 연애소설, 그리고 쿨~ 하다는 요즘의 단어로 형용될 수 밖에 없는 이야기. 바로 그런 이유가 의도된 릴레이 소설에 사람들이 빠져들었던 건 아닐까 싶었다. 협의되지 않은 듯한 두 남녀의 이어지는 소설중에 가장 맘에 드는 것은 에쿠니 가오리가 마지막에 적은 에필로그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랑도, 한 사람의 몫은 2분의 1이란 것을...." 

이 특이한 형태의 소설은 그야말로 독자를 꽉 잡을 수 있는 요소를 잘 갖추고 있다. 특히나 서양이 아닌 한중일과 같은 동쪽 끝의 아시아에서는 히트를 칠 수 밖에 없는, 이탈리아의 두 도시, 피렌체와 밀라노, 그리고 노스탤지어로 남을 수 있는 "피렌체의 두오모", 무료한 생활, 10년을 넘나드는 사랑이야기, 그림과 도서관에 집착하는 두 주인공, 그리고 이제 북아트를 꿈꾸는 한국 출판계의 잘 만들어진 색감과 디자인... 마치 잘 기획된 영화와도 같은 이 소설은 예상대로 영화화되었고, 책은 일본에서 300만부 이상이 팔려나갔다고 한다. 

분명히 한국에서도 옛 "러브레터"와 비슷한 반향을 일으키며 개봉될 것이다. 

그다지 맘에 드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젊은 감성에 꼭 맞추는 그야말로 "쿨"한 소설임에는 틀림이 없다. 

2003.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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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편지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야생초 편지 2
황대권 지음 / 도솔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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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느낌표 선정도서가 되기 전에 자주 들락거리는 교보문고 사이트에서 추천도서로 열심히 밀고 있는 걸 봤었다. 
제목이 참 맘에 들었고, 표지 디자인도 맘에 들었다. 

무척이나 키우기 쉬운 것들만 골라서 키우고는 있지만, 언제부턴가 화분을 사고 키우는 재미를 붙여가고 있고, 가끔은 작은 텃밭을 하나 가지고 내가 먹을 것만 키우면서 살면 그게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는터다. 

어쩌면 그 이유는 예전 소백산에 갔을 때 만났던 소백산 관리소의 아저씨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분은 야생화 사진을 찍는 취미를 가지고 계신 분이었는데, 내가 처음 보는 근사한 수동카메라에 접사가 가능한 렌즈를 가지고 계셨는데, 한 번 뷰파인더로 들여다보는 기회를 주셨었다. 그리고 이 꽃은 동자꽃.. 무슨 꽃 하면서 이름도 가르쳐 주셨고 그에 얽힌 이야기들도 알려주셨었다. 소백산에서 내려온 일행들은 오랫동안 그 꽃이름을 잊지 않을려고 꽤나 노력했으나 내가 지금 기억하는 건 주홍색 꽃잎을 가지고 있던 동자꽃 뿐이다. 

이름없는 들꽃이라는 이야기는 야생화에 대한 모욕이라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알려고 하고, 이름없는 꽃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 것처럼 시기에 적절하게 출간된 서적인 듯 했다. 

느낌표에서 추천한 책들을 가끔 사는 이유는 책에 대해 문외한이거나 초보 독서가들이 읽기에 적절한 책들로 구성이 되었기 때문에 한동안 책을 잡지 않다가 다시 시작을 할 때 준비운동으로 읽어주기 적절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이 받았을 때 죽죽~ 읽다보면 조금 더 어려운 책을 대해도 좀 쉽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새 꼬깔모자를 쓴 지식인이라는 지리한 책을 끝내고 속도를 붙여서 읽고 있기 때문에 이 속도를 유지하려면 역시나 쉬운 책들을 연달아 읽어주는 게 좋다. 

여튼, 그런 이유로 야생초 편지를 사가지고 왔고, TV에서 소개된 대로 야.. 얼마나 재미있을까~ 얼마나 많은 야생초의 이름을 다시 알게 될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이 책의 제목인 "야생초 편지" 라는 두 낱말로 이루어진 이 제목에 함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야생초"라는 것보다는 그 뒤에 붙은 "편지" 에 중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었다. 

저자는 오랫동안 징역살이를 했고 그로 인해 자신을 발견하는 사유를 하다가 자연생태주의쪽으로 뿌리를 내린 것인데, 징역살이라는 게 저자가 밝힌대로 적어놓은 글을 외부로 빼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편지인 것이다. 저자는 그런 목적으로 열심히 모나미 153 볼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에 대한 설명들도 붙여놓았지만 이 책에 실린 모든 편지가 야생초에 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갇혀 있는 자의 괴로움을 겪어보지 않은 자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책엔 야생초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그 외 다른 사소한 이야기들도 적혀있다.

이 책을 야생초 도감쯤으로 생각하고 구입했던 내 잘못이었던 같다. 그저 한 사람의 편지를 묶어서 낸 책이라고 생각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여타 수필이 그렇듯이 이 책은 무척 읽기 쉽고 활자도 큼직큼직하고 어느 문장은 색채를 입히기도 했고 만만치 않은 솜씨로 그린 그림들도 적지 않다. 꽤 두꺼운 책이지만 하루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만한 책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황대권씨가 다음 책을 내는 것을 기다려 봐야겠다. 이제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대략 알았으니, 이상주의자처럼 비춰지기도 하는 그의 자연생태주의에 대해는 다음기회를 기다려봐야하지 않을까 싶었다. 

2003.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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