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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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은 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다.
이 소설은, 중국문학을 대표하는 것처럼, 한국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으므로 그다지 긴 이야기는 필요없을 듯 하다.
작가 위화(余華)는 영화 "인생"의 원작인 活着의 저자이기도 하다.
나름대로 문화대혁명 기간중엔 편안한 인생을 보냈는데도, 그의 두 작품은 자신이 겪지 않은 일들에 대한 일들로만 보인다.
한국에서는 이 사람이 중국현대문학의 대표자로 인식될 수도 있겠으나, 중국에서 위화의 위치는 그리 크지는 못하다. "인생"이라는 영화를 못 본 사람이 더 많고, 이 작가를 모르는 사람도 많다.

허삼관 매혈기를 소개하는 많은 글들이 아마 이 이야기를 더불어 할 듯 한데, 몇 년 전 CCTV(중국중앙방송 - 당연히 국영방송임)의 對話라는 대담프로에 나왔던 한 부부의 이야기말이다.
이 부부는 시골에서 손바닥만한 땅덩이 부쳐먹고 사는 사람들이었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잘나 북경에 있는 대학에 덜커덕 붙어버렸단다. 그래서 그 아들을 북경(북경이공대로 기억됨..)으로 유학보내고 나니, 시골과는 천지차이인 생활비 대랴, 학비 대랴 정신이 없었단다. 그래서 결국은 두 내외가 돌아가면서 피를 팔아 애 학비를 댄 것이다. 그런데, 아들놈은 방학이 되도 집에 내려오지도 않기를 계속하더니 급기야 연락두절이 되어 북경으로 상경을 하여 보니, 아들놈은 이미 학교에서 제적당한 지가 오래전 일이고, 그동안 학교앞의 PC방에서 죽대리고 사느라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더 많은 용돈을 쓰면서 학비까지 게임비로 탕진을 했다는 것이다. (학비는 대략 한화로 한학기 60만원가량에 이른다. 이 정도 돈은 대도시에서 쉽게 쓸 수 있는 돈이기도 하다.)그리하여, 이 촌부처가 TV에 나와 이 일을 우짜겠냐고 하는 내용이 소개되었다는데, 매혈이라는 것이 중국에서 그렇게 생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이렇게 사설이 길었다. 흠.

사람이 급하게 되면 피라도 못 팔겠는가. 콩팥은 예사요, 간까지 팔겠다는 마당에 말이다..
허삼관은 그렇다고 지지리도 가난해서 맨날 피를 팔아야 하는 사람은 아니고 그저 비자금이 없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인생의 고비엔 늘 매혈이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20대의 허삼관이 장가를 들어 아들을 낳고 가족을 이루고, 그리고 두 아들이 장성하여 나중에 피도 팔 수 없는 노인네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너무나 중국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작가는 주인공과 상당히 먼 거리를 두고 허삼관을 십분 이해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리하여 독자는 허삼관의 가치관에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도 동시에 얼토당토않은 괴변을 늘어놓는 친구에게 동의하는 것처럼 허삼관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다.

아래 이야기했던 "사람아 아 사람아"는 중국의 고뇌하는 지식인들의 피토하는 이야기라면, 이 "허삼관 매혈기"는 그저 하루 하루 먹고 살고 자식 잘 크면 그만이라는 소박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중국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한 권의 소설에서 분명히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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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문학사상 세계문학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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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끼라는 일본근대문학가의 소설이다.

예전에 "느낌표" 책책책 거리 인터뷰에서 어머니뻘 되시는 아주머니께서 좋아하는 소설가가 "소세끼"라고 하시자, 두 MC가 장난삼아 이름이 참 곤란한 소설가라고 했는데, 뭐 틀린 말도 아니다.

나쓰메 소세끼는 영문학을 전공한 (유학파이기도 한..) 당시 일본근대문학의 선구자..이며, 중국엔 루쉰이 있다면 일본엔 소세끼가 있다는 이야기들로 종종 비교되며, "동양적 근대의 창출"이라는 비교문학 서적도 있다.

어쨌거나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로 넘어가는 시대에 문학의 근대화에 공을 세웠다는 것인데, 소세끼의 책을 손에 쥐게 된 이유는...음..
예전에 (누구나 그랬듯이)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고 무지하게 감명..아니 충격 받았다. 그 때는 그게 너무 신선한 Cool함이라서, 적잖은 띵함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하루키의 소설은 몇 개 읽지 않았고,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읽고, 또 한 번 살짜쿵 놀랬으며, 그리고 나서는 다시 일본문학을 읽어봐야겠다 싶어서 하루끼를 다시 읽었는데, 아무래도 현대문학을 읽으려면 좀 옛날 것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설국"을 읽고 난 다음에, 그렇다면 일본의 루쉰인 소세끼를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의무감이었던 것이다.

일단 이 책은 충분히 가치있는 책이라는 것을 말해서 무엇하랴.
그런 거야 다른 고매하신 문학평론가들도 많이 이야기 하실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내 입에서 나온 소리는 -아니 입이라기 보다는 코에서 - "큭"하는 정말 "크큭"하는 웃음소리였는데, 고양이가 서술하는 인간들의 행태도 비웃음거리되기 딱 좋거니와, 번역 역시 훌륭하여, 당시의 문체를 살려 잘 만들어졌기 때문에, 고양이의 "오등은...." 운운 하는 시일야방성대곡류의 문체에도 크큭대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잡지에 단편처럼 연이어 소개가 되었던 소설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전체적인 기승전결이 없다. 마지막에 고양이의 죽음은 그저 더 쓰기 귀찮아서 고양이를 죽여버린 것 처럼 그 역시 고양이의 말투만큼이나 자조적이다. 위기 절정 없는 소설을 읽는 것은 별로 쉽지 않은 일일진대, 그러므로 한 편씩 끊어서 매일 매일 조금씩 읽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런 연유로 9일에 걸쳐 읽을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이고.. 사실 소설이 뭐 그렇게 짧지도 않다. 촘촘한 활자로 600쪽이므로 뜨뜻한 겨울방학 고구마 까먹으면서 보다가 큭큭대고 웃기에 딱 적당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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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임레 케르테스 지음, 박종대, 모명숙 옮김 / 다른우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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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고 금메달이 책 표지에 붙어있다.
언제였지.. 주제 사라마구가 노벨상으로 상을 받고 난 다음에 그의 "눈 먼자들의 도시"를 읽고 난 다음, 역시 노벨상은 장난으로 주는 건 아니구나 하고 노벨 문학상 수상작을 읽게 된다.
물론 유럽문학에 집중되어 있고, 얼마나 번역이 잘 되었느냐가 노벨상 수상에 관건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가치가 없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작가들의 작품은 새로운 시대의 고전으로 자리를 잡아 갈 것이다.

소설은 2차대전 중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던 소년의 1년동안의 강제수용소 이야기이다. 이런 전체 줄거리를 들으면 우리는 약간의 식상함때문에 책을 고르기 망설여 질 지도 모른다.
아우슈비츠의 이야기를 앞에 놓고 어찌 식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불경스러운 죄를 지어야 하겠냐마는, 우리가 그 동안 봐 온 각종 예술장르에서 보여진 아우슈비츠의 이야기는 얼마나 잔인한 가, 독일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가, 사람이 얼마나 악독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무고하게 죽어간 유대인들은 얼마나 불쌍한가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게 비슷한 유형이라면, 임레 케르테스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과장된 일일 수도, 혹은 모든 2차대전 강제 수용소 유대인 생존작가가 커다란 문학상들을 받아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연히, 이 소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 늘어놓지 않는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 살고 있던 15살의 어린 소년은, 아버지가 강제노동으로 소집되어 집을 떠나고 영문도 알 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로 끌려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나흘 째 되는 날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고 독일이 패전하는 날까지 강제 수용소에서 살다가 나온다.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 담담하고 너무나 먼 시선으로 바라봐,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맞는가 하는 의심을 하게 할 정도로 차분하다.
대화는 절제되어 있고, 미사여구나 수식어도 간단하고 호흡은 짧고 끊임없이 작가는 상상속의 이야기를 조근조근하고 낮은 목소리로 늘어놓고 있다.

강제수용소, 2차 대전, 아우슈비츠, 모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고 쌓여가던 시체의 영상이 머릿속에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대한 어색함에 앞 뒤 문장을 다시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그가 회상하는 그 시절의 이야기는 그 일이 한꺼번에 밀어닥치지 않았고, 하루 하루 한 시간 한 시간, 아니 일분과 일분, 일초와 일초처럼 차례대로 그에게 천천히 다가왔고, 그 시간과 시간의 사이에서 그와 사람들은 숨을 쉬고 걷고 일을 하고 뭔가를 먹었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기 때문에 당연하게 강제수용소의 삶을 받아들였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도 사회는 존재하고 인정도 존재하고, 행복과도 비슷한 감정도 느껴볼 수 있었다고 말이다.

임레 케르테스는 이 소설이후에 "좌절" 과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라는 소설로 3부작 연작을 완성하는데, 뒤의 두편은 한국에 아직 출판되었는가 알 수 없으나, 출판되었다면 이어서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늘 닥치면 다 한다는 말처럼,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삶은 이어진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명제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걸 외면하고 살아간다.
인간이라는 것과, 그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는 늘 모든 것이 끔찍함의 연속인데, 우리는 굶고 헐벗지 않았다는 이유하나만으로 깊이 있게 반성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작품이 하기 마련이다.
작가는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말한다.

"사람들이 완전히 자연스럽게 살아가지 못하는 부조리는 없다. 이제 내가 가게 될 길위에 피할 수 없는 덫처럼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아우슈비츠의 굴뚝에서조차도 고통들 사이로 잠시 쉬는 시간에 행복과 비슷한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내게 악과 '끔찍한 일'에 대해서만 묻는다. 내게는 이런 체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도 말이다. 그래, 난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면 다음엔 강제 수용소의 행복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사람들이 묻는다면. 그리고 내가 그것을 잊지 않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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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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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소설이다.
1980년에 쓰여진 이 소설의 작가는 한 때 촉망받는 열성청년이었다.
반우파 투쟁과 정풍운동을 거치면서 이 땅에서(제가 지금 중국에 있어서리..) 살아가야 하는 논리 그대로 충실하게 학습하고 투쟁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어느 지식인인들 그 시절에 그러지 않았을까..
물론 그러지 않았던 지식인들도 있다. 끝까지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지 않았던 운 좋았던 사람들. 그녀는 그다지 운이 좋은 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몰아치던 혁명기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런 저런 식으로 조각 조각이 되어 내 머릿속에 박혀온다. 당대문학사 시간에 듣는 이야기나 모택동의 연안문예강화의 이야기, 꼬깔모자를 쓴 지식인이라는 책, 푸른 연에 나오던 주인공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 하나 조각보가 되어갈 때쯤 이 소설의 인물들의 세월이 그 위에 다시 덮여진다.

지독히 읽기 힘들었던 이야기는 11명의 인물들의 관점에서 다르게 서술된다. 그들의 내면을 작가는 면밀하게 파헤치려 했고, 그동안 작품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혹은 하지 못하면서) 연구했던 인간과 문학에 대한 이론을 바탕으로 한 자 한 자 적어나간데다가, 그들의 사상과 투쟁으로 인한 고뇌가 가난한 지식인의 이빨 나간 밥그릇이 되어 부서지고 깨지는 문장들때문에, 참으로 오랫동안 읽었다.

50대가 넘은 모든 중국인들의 생명에 나는 존경을 표한다. 그 세월을 버티고 살아남아줘서 고맙다고. "사람아 아 사람아"는 그 시절을 버텨낸 지식인들에게 바치는 송가다. 모든 나라 사람들이 일말의 애국심이 있다고 한다면 이 땅의 사람들도 누구 못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찢겨지고 갈라내진 과거의 기억을 안고도 미치지 않고 살아남은 지식인들은 그들의 조국이 어찌하면 이상향에 가까워질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이제는 물질적인 것만이 최선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는 이 땅에, 아직 그다지 쇳냄새가 나지 않던 80년대, 지친 지식인들의 노래 "사람아 아 사람아" 조금 힘들게 중국 지식인을 엿보고 싶은 분께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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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루스 노부스 진중권 미학 에세이 2
진중권 지음 / 아웃사이더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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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동생이 책 주문을 하려고 하는데,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하라 해서, 이 한권을 이야기했다. 
적잖게 비싼 (14,500원) 이 책은 내가 당대에 손꼽히는 글쟁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진중권의 미학에세이이다. 

내가 그의 책을 처음 읽은 것은 "네 무덤의 침을 뱉어라"라는 다소 과격한 제목의 책이라서 이 사람이 미학 에세이를 쓸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진중권은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에 유학해 미학보다는 언어철학에 집중했다가 요즘은 다시 전공으로 제자리를 찾은 모양인데, 이 책은 사회철학과 언어철학에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저자의 꽤 수준높은 미학 에세이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에세이라는 것은 대부분 "경수필"로 치부되기 쉽지만, 사실 에세이가 여성적 감수성 가득한 "손가는 대로 쓴 수필"만은 아니니, 미학에세이라는 장르가 적절한지에 대해선 스스로 생각해 봐야할 일이겠다. 

책 제목인 엥겔루스 노부는 파울 클레라는 작가가 그린 新天使라는 의미의 그림 제목이다. 그는 이 그림을 매개로 하여 르네상스, 바로크, 현대를 넘나들며 미학의 역사를 이야기 하고 있는데, 전공자가 아니어도 읽을 수 있을만큼 전문성보다는 대중성을 피력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술술 넘어가는 그런 글은 아니다. 

왜.. 문화평론쪽에서 많이 이야기 되는 "담론"과 "텍스트"의 주제..그리고 메네시스 운운하는 단어들이 심심찮게 등장해서 공부 좀 해야겠군..하는 자각성을 일깨우면서도, 작가의 개인적인 해석법에 따르고, 그에 멜랑꼴리라는 전체의 감성을 짙게 깔아 깊이 빠져 들어 읽을 수 있게 된, 좋은 글들이다. 

그림이 중요한 이 책은 당연히 모든 화보가 칼라로 되어 있고, 그리고 글과 함께 볼 수 있도록 자리도 잘 잡혀있다. 

아웃사이더라는 "조직"이 이렇게 부르조아 스러운 냄새를 풍기는 지는 몰랐지만, 적당한 지적 허영심과 적당한 반항성과 적당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읽기 편한 책. 엥겔루스 노부스를 통해 그림을 보는 감성을 일깨웠다. 

2003.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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