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자서전 동행 -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
이희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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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년 11월 출간되자마자 샀던 책이다.

그 때 나는, 나도 좀 그럴싸한 아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반성적 차원에서 이 책을 구입했다.

그러나, 그럴싸한 아내가 될 생각이 자꾸 감퇴되어, 책장 구석에 처박아 놓고 있었다.

그러던 중, 김대중 前대통령이 고인이 되고 마셨다. 놀랍고, 안타까운 마음은 더 할 나위가 없고, 그분이 살아계신 동안, 그 분에 대해서 너무 몰랐다는 생각만 들었다. 읽던 책을 끝내고 밤새 뒤척이다가 이 책을 다시 꺼냈다. 그리고 이틀 정도 망설이며 40페이지를 넘기지 못하다가 서울시청 분향소에 다녀온 그 날 밤에서야 다 읽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대대로 의사로 서울 사대문 안에서 살아온 집안의, 이화고녀(현 이화여대)를 나와, 서울대 사범대를 나와, 미국 유학까지 다녀오고 당시의 YWCA의 총무로 일하는 아가씨가,

아내와 사별하고, 사춘기의 아들 둘에, 노모를 모시고 살며, 총선에서 대패하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한 남자와 결혼한다는 것.

그게 쉬운 일이었겠는가.

 

이희호 여사는 그런 김대중이라는 남자와 결혼을 한다. 자서전을 읽어보면 그 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다는데, 두 분은 정말 인연이었던 듯 하다.

책은 이희호 여사의 어린 시절과 남다른 상처까지 이야기 한다. 여사의 문체는 강건하고 투박하고 간결하다. 꾸밈이 없고 진솔하며, 소박한 문체다. 딱딱 떨어지는 문체로 지치지 않고 읽을 수 있다. 400페이지 가량 분량인데 내용이 꽉 차 있어 슬렁 슬렁 넘길 부분이 하나도 없다.

 

김대중 대통령의 고난많은 인생과 그 인생을 평생 함께한 이 자서전에는 인간 김대중과 그 곁에서 인간으로서 인간 이상의 인내심을 발휘하고 살았어야 했던 여사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그의 말처럼, 이희호 여사도 올곧은 태도로 늘 남편을 묵묵히 응원했던 듯 하다. 앞에 나서는 것보다 뒤에서 꿋꿋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책을 읽고 나서 당신 두 사람은 정말 인간 이상의 것을 실천하고 사셨군요.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자신의 신념으로 인해 자식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본 부모로서의 마음은 또 얼마나 참담했겠는가.

 

긴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다.. 나는 남들보다 책을 숫적으로 약간 더 읽는 편이지만, 책 한 권을 읽고 오랫동안 울림이 오는 책들은 일년에 사실 서너권에 불과하다. 올해는, 아마도 이 책이 그 중 한 권이 될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고 잠을 자고 난 다음에도, 나는 내내 책의 내용들과 책 속에서 풍겨져 나왔던 이희호 여사와 김대중 대통령의 신념이 가슴 깊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나라는 인간은 무척이나 이기적이고 고집이 세서, 이 책 한 권으로 인생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잠자고 있던 내면의 어떤 소리는, 조금 긁어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읽고 나서 변화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책이기도 하다. 그건 책의 훌륭함을 떠나, 자신의 어딘가를 건드려주는 기폭제가 되느냐, 즉 책과의 인연이 중요하다. 내가 이 책을 미뤄두고 있다가 이제사 읽은 것은 잘한 일이다. 울림이 컸다.

오랫동안 서평을 쓰지 않았는데, 많은 분들이 읽으셨으면 하여 서평을 쓴다.

 

책을 다 읽고 절판되었던 김대중 대통령의 옥중서신과 그의 잠언집 "배움"을 주문했다. 왜 우리는 사라진 다음에야 그 가치를 찾는지 모를 일이다. 나란 인간은 참 미련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  

 

ps. 김대중 옥중서신은 돈 안되는 책을 줄줄이 만들고 있는 한울아카데미에서 출간된다. 서거를 기점으로 재출간 하게 되어서 기쁘다. 누군가 쓴 알라딘 서평에서 14,000원이나 하지만 늘 돈 안되는 책들을 훌륭하게 펴주는 한울에 이 기회를 빌어 감사를 드리며 책을 사야겠다고 쓴 것을 보았다. 동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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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그림 - 그림 읽어주는 남자 레스까페의 다정다감한 그림이야기
선동기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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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글쓴이의 솔직한 성격이 고스란히 담겨진 - 우리가 잘 모르는 화가 소개가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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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동물기 - 전 세계 동물들의 자연생태기록
이와고 미쓰아키 지음, 김창원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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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돈이 아깝지 않은 작품입니다. 37년간의 생생한 기록인데 이정도면 헐값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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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눔 씨키. 너 한 벙 마즈까?" 아이가 입을 앙다물며 나에게 삿대질을 한다. 허리를 굽히고 팔다리에 힘이 한껏 들어가 있다. 아이는 내가 이놈의 새끼. 너 한 번 맞을까?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민망해졌다. 아이는 상황극을 스스로 연출하고 있었다. 나는 저것이 바로 협박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이가 화가 난 걸 알아채고 꼭 안아주는 일을 하고 있지만, 매 번 그렇지 못하다. 아이는 자주 화가 나고 자주 답답하다.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답답하고 제가 키가 작아서 엄마가 닿는 곳에 닿지 못해서 답답하고, 리모콘 조작을 할 수 없어서, 마우스 조작을 할 줄 몰라서 답답하고, 글자를 다 몰라서 답답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놀 수 없어서 답답하고 엄마에게 꼭 뭔가를 해달라고 말을 해야만 해서 답답하다. 아빠도 누나도 주로 집에 없어서 섭섭하고, 기차의 연결고리가 자꾸 빠져서 화가 난다. 그건 고장난 거라고 거듭 설명을 해도 아이는 끝까지 연결을 해보려고 억지를 부린다.

놀이터에서 다른 친구들이 시비를 걸거나 제가 타고 싶은 순서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화를 내며 운다. 엄마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길 바라고 있다. 제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것에 대해 화를 낸다. 언젠가 모든 일을 제 스스로 다 할 수 있게 되면 속이 시원해질까?




지난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78년도에 찍은 나의 사진을 들여다 본다. 내가 37개월일때의 사진이다. 사진속의 나는 아이와 똑같이 무릎을 꿇고 식탁의자에 앉아 제 컵에 혼자 우유를 따르고 있는 새초롬하고 하얀 여자 아이였다. 아이가 나만할 때 나는 어떤 아이였는지를 돌이켜 본다.

내 소꿉장난에 흙이 묻는 게 싫어서 아이들과 놀지 않았고 혼자 집에서 가위질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으며 집안에서만 놀았다. 혼자 구슬치기를 하고 미니카를 가지고 놀고 가끔 독수리 오형제를 보았다. 엄마가 가게에 나가면 나는 혼자 20원을 들고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자동차가 지나가면 벽으로 마구 뛰어가 몸을 딱 붙이고 섰는 일을 반복하면서 동네 문방구에 가서 종이인형을 샀다. 그리고 하루 종일 종이인형을 오리며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은 사실 길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 기억속엔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렸다고 새겨져 있다. 엄마는 주로 소파에서 나에게 조용하게 말을 하다가 졸았고 곧 잠이 들었다. 나는 발치에 앉아서 바람이 흔드는 흰색커튼 사이로 들이치는 햇빛을 구경하며 종이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그 날 산 종이인형은 그 날로 죽었다. 라면박스 하나 가득 매일 매일 산 종이인형들이 옷을 찾을 수 없어서 시체가 되었다. 다음 날이면 나는 새 종이인형을 살 수 밖에 없다고 우겼다. 나는 매일 외로웠고 조금은 우울했다. 뭐든지 내가 하려고 했고 내가 발돋움을 하고도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아서 화가 났다.

앞 동 사는 지혜네 집에 종이인형을 사러 가자고 초인종을 눌렀다가 지혜 아빠에게 야단을 맞았던 기억이 난다. 넌 매일 종이인형을 사니?

나는 그 다음날부터 혼자 종이인형을 사러 갔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 잘 먹는다고 엄마에게 칭찬을 받았다. 아빠는 안방에서 장부를 정리하며 담배를 피우다가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때리기도 했다.




아이는 지금,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친구들과 부딪치는 일을 싫어하고 수퍼나 문구점, 서점에 가서 뭔가 하나씩 사들고 오는 것을 좋아하며 집에서 자동차를 가지고 놀고 해가 지면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보는 일을 좋아하고 매일 TV를 보고 은하철도 999노래를 열심히 연습한다. 혼자 펜으로 고래를 그리고 고래가족을 그린다. 그게 고래라는 건 나와 아이만 알아본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네 살짜리 이하나로 다시 돌아간다. 그리고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너도, 많이 외롭고, 힘들겠지. 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내 인생을 반복하는 일이다. 서른 다섯해를 고스란히 다시 살아가는 일이다.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내가 아니지만 나는 그 시절을 오롯이 다시 받아내어야 한다.

오늘은 잠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사이 엄마가 보고 싶다며 엉엉 울었다. 그동안 참았던 분리불안증세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 같다. 물을 달라고 하더니 배가 부르다고 하고 물을 달라고 하더니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하고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가 당황스러워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변덕을 부린다며 화를 내고 있었다. 방으로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자 아이가 갑자기 책을 읽어달라며 동화책 한 권을 끄집어냈다. 연필세밀화가 아름답게 그려진 흑백의 차분한 그 동화책을 소리내어 읽다보니 화난 목소리로는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토끼의 목소리도 내어야 하고 산양할아버지의 위엄있는 목소리도 내어야 했다. 교활한 여우의 목소리도 내어야 했다. 아이는 붉어진 눈가를 잊었는지 금새 배시시 웃는다. 나도 아이의 정수리를 바라보며 슬며시 웃었다.



며칠 후면 주문한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가 올 것이다. 아이는 벌써 혼자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이는 엄마 나 자전거 좀 타고 올께 하고 혼자 현관문을 열고 나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엄마, 나 혼자 여행 좀 다녀올께 하고 큰 가방을 메고 집을 나갈 지도 모르겠다.



2009.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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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김훈의 현의 노래를 읽고 잠이 든 후,

눈을 떠서는 김 훈의 강산무진을 읽었다.

 

그가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뭐라고 답했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어느 쪽인지는 나도 대충 알겠지만, 그건 그거고, 나는 그 사람의 팔뚝을 움직여서 쓴, 어깨를 움직여서 쓴 문장이 고귀할 뿐이다.

김훈을 읽으면 김훈을 닮고 싶고, 신경숙을 읽으면 신경숙을 닮고 싶다.

 

아무도 닮고 싶지 않을 때, 그 날이 바로 때가 아닐까 한다.

 

강산무진도를 보러 가야겠다.

중앙박물관에 있는지, 어디에 숨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림과 음악을 조금 더 조용히 듣고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한 문장을 읽고 또 읽고 또 읽는 연습도, 많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한다.

처음부터,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한 인간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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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주의자 2009-08-15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치 같은 방입니더. 문학에 대한 막연한 경외감이 권력가들의 취미에 부합하는 것 같습니더. 구질구질한 게 인생이라면 구질구질한 게 작가일텐데. 그런 경외감은 어디에서 생산시킨 아우라입니꺼.
제공된 모든 인프라가 요구하는 방식은 무엇이겠습니꺼. 알라딘의 공간에 제공된 이런 글쓰기의 방이 세상을 여는 동시에, 닫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 의미심장합니더. 두서 없지만 작은 느낌이니께. 나의 욕구불만이 이런 허투로 된 글이 나왔습니더.

연꽃언덕 2009-08-25 05:27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 ㅎ 재미있게 읽은 댓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