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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스펜서 존슨 지음, 이영진 옮김 / 진명출판사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전국 대형서점 65주간 베스트셀러 기록, YES24-알라딘-크리센스 등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 종합 1위 지속…, 스펜서 존슨의 처세 수필 ‘누가 내치즈를 옮겼을까’(진명출판사 펴냄)가 시간이 갈수록 인기를 더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초판 발간 이후 1년여만에 16쇄까지 56만부를 찍었고, 49만부의 판매고를 올렸다." 우와~ 정말 대단한 책이군~ 

내가 딱!! 싫어하는 책 종류가 바로 이런 책이다. 

표지에 CEO운운 하면서 많이 팔렸다고 자랑하는 책, 필독서 운운하는 책, 얇은 두께에 양장을 하고 미색 모조지를 사용하고 책의 본문 내용을 크다란 글자로 그림과 함께 강조하느라 페이지를 까먹는 책. 

나는 처세술 책을 싫어한다. 예전엔 카네기 인간관계론..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등등의 책을 사기도 했다. 반도 안 읽고 어디 처박아 두었다. 어디 처박혀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 빌려줬는지도 모르고 누가 빌려가고 안돌려줘도 달라소리 안하는 책이 처세술책이다. 

앞서 독후감을 쓴 "미국문화의 몰락"을 읽고 나서 더 싫어졌다. 

더군다나 읽고 나면 당신의 인생이 바뀐다 운운하는 것은 정말 짜증난다. 무슨 약인가? 약이라고 해도 그런 약이 세상에 어디 있나? 비아그라라면 인생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심장마비로...-,.-)

어찌되었건 이 책은 사자새끼님이 보내주신 책이니 감사하게 읽어야한다. ^^;;
싫어하는 책이라고 해서 외면할 필요는 없다.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배울 점은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아무리 형편없는 작품이라는 것도, 그 어떤 열악한 상황에도 배울 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겸손한 마음으로 책을 폈다. 20분만에 다 읽었다. 

게다가 엉성한 번역.. 영어로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의 엉성한 번역은 MBA를 거치신 저명한 경역학 박사이자 로스엔젤레스 소재 대한증권 부사장을 맡고 계시다는 이영진씨가 하셨다. 책 번역에 경영학 박사하고 MBA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번역은 번역가가 하는 거지 증권사 부사장이 번역을 왜 해~!흥분中... -,.-)

특히 소름끼치는 이부분..

 "나는 하루 24시간 동안 온종일 문제에 매달려야 했어. 정말 재미없는 일이었지.. (중략)... ... 마음속에 치즈를 그려보기로 했어. 나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마음속에 또렷하고 생생하게 그림을 그리고 시작한 뒤부터 우리 사업도 다시 회복세로 돌아섰어."

"와, 대단한데?"

와, 대단한데? 에 소름이 팍 끼쳐서 책 덮고 창문보고 있었다. -.-;;



사람들은 이 책을 권장한다. 꼭 읽어보라는 웹페이지가 수십개가 발견되었다. 왜?
왜 읽으라는 거지? 누가 그걸 모르나?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나? 모르십니까? 모르시나요?
현실에 안주하는 게 좋지만 세상이 변화하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한다.. 그러니까 당신은 마음속에 치즈를 그려라.. 염병.. 

미국에서 출판되는 서적중에 국내에 번역되는 대다수의 책들이 처세술에 대한 책들이다. 앞서 독후감을 적은 미국문화의 몰락에도 수없이 등장하는 화제가 이 처세술에 대한 책이다. 

뭐뭐해라. 뭐뭐해라. 이렇게 하면 당신의 인생은 바뀐다. 바뀌긴 뭐가 바뀌나 이사람아~!

사람의 인생은 그렇게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다. 만리장성이 하루아침에 쌓아진 게 아닌 것처럼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를 바꾼다는 거다..(네멋대로 해라..에 나온대사임.. ^^;;;;)끊임없이 고찰하고 숙지하고 반성하고 생각하고 또 다시 고민하고 반성하고 후회하고 힘들게 벽돌 하나 하나 찍어서 시멘트 개고 바르고 굳기를 기다리고 바닷모래 섞였으면 일 다 망쳤으니 다시 시멘트개고 바르고 또 비오고 날 개고 궂고 한 날들을 수없이 기다려 하나 하나 집짓고 담쌓듯이 하는 게 인생을 바꾸는 거다. 

그런데, 이 책 한 권 읽으면 니 인생이 바뀐다는 건 순 개구라다. 

게다가 사람의 사유능력을 무시하는 작태다. 사람은 스스로 고민하고 성찰해서 얻는 결과를 더 오래 간직한다. 머리가 있다는 것은 그 이유다. 너 스스로 니 인생 놓고 고민하지 말고 한 번만 읽어봐~! 내가 니인생 바꿔줄께~! 한다는 것은 독자를 무시하는 거다.

처세술 읽고 인생바뀐사람 있으면 나하고 이야기 좀 하자. 그게 한 순간, 한 일주일, 오래가면 한달은 간다. 그런데 그렇게 가고 나면 성공을 향해 가라고 하던 처세술책의 말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만다. 

성공이 뭔지, 인생이 뭔지 아직 개념도 안 잡혔는데 뭐 어쩌라는 말인가.

사람의 생각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도 아니다. 성공은 도데체 뭐고 인생은 도데체가 뭔지, 내 자신은 뭔지 알아야 그러면 나는 이걸 하면 되겠구나, 그러면 나는 이렇게 살면 되겠구나.. 하고 하나하나 시행착오 거치면서 느끼고 정리하는 거다. 

그렇게 수많은 처세술 책이 쏟아져 나오는데 왜 아직까지 사람들은 처세술 책을 읽으러 다니는 것인가.. 인생 바뀌었으면 한번에 끝장내야 될 거 아니냐 말이다. 

이 책은, 몰락하고 있는 미국문화의 한 단편이다. 성공이 뭔지 아직도 헷갈리는 우리들에게 사탕물려놓고 바람나 도망가는 유모다. 

미국에서 말하는 성공, CEO에 이르는 것, 돈을 많이 버는 것, 변화에 성공해서 이 적자생존의 논리에서 살아남는 것, 결국은 기업이론에 입각해 수많은 노동자를 외면하는 것. 그게 성공인가? 나이키처럼? 

처세술 책들은 앞의 카피 좀 바꿨으면 좋겠다. 

"당신도 이런 책을 쓸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일기장 좀만 뒤적거려보면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 버금가는 책을 쓸 수 있다. 

※이 책은 한국에서 사자새끼님이 보내주신 책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책의 내용은 맘에 안 들었지만 그래도 느낀 것은 많답니다. ^^ ※

200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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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화의 몰락 - 기업의 문화 지배와 교양 문화의 종말
모리스 버만 지음, 심현식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양장본이다. ^^

이 책은 제목때문에 구입을 하게 됬다. 미국문화의 몰락이라는 제목이 아주 맘에 들었다. 나는 미국이 몰락하길 바라고 있고, 또 몰락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이 책의 제목을 "미국의 몰락"이라는 착시현상을 일으켜 사게 됬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책의 제목이 아주 불길할 때, 저자는 그에 반해 희망적인 내용을 담고 싶어한다. 현실이 이러하니 어떻게 좀 해보면 안되겠냐고, 어떻게 방법이 없겠냐고 말이다. 

책의 내용은 그러하다. 미국문화와 문명이 몰락하고 있으니 어떻게 좀 방법이 없겠느냐고 한탄을 하는 거다. 

저자는 세계의 문화몰락에 대해, 특히 미국화된 세계의 몰락에 대해 중세시대의 수도사들의 이야기를 꺼낸다. 중세시대의 수도사들은 수도원에 틀어박혀 금지된 서적들을 베끼는 필사작업에 평생을 바치며 죽어갔다. (영화 장미의 이름, 또는 움베르트 에코의 동명소설 참조)대중에게 외면당하고 권력에 의해 금지당한 고전들이 그나마 수도사들의 목숨을 건 필사작업끝에 후손에게 전해지고 그로 인해 몰락한 로마제국이후 르네상스를 꽃피우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그런 이유로 우리들도 수도사적인 문화지킴이가 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시한다. 

작가가 말하는 수도사적인 문화지킴이란, 특정 계급을 일컫는 것이 아니며 그들이 문화와 문명을 지켜나간 정신을 생활주변에서 실천해보자는 것이지 금욕적인 생활을 하거나 골방에 틀어박혀서 책 베끼라는 말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책의 내용은 사실 충격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로마제국과 미국을 비교하고 있다. 로마도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몰락했으니 미국도 밝혀질 수 없는 많은 이유로 몰락할 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작가역시 그런 불안감을 지우지 못해 이 책을 저술한 것으로 보인다. 

책에 따른 문명이 몰락할 때의 4가지 요인이라면 

■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가속화
■ 사회경제적 문제를 사회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한 비용투자에 따른 한계이익의 감소
■ 비판적 사고, 전체적인 지적 의식 수준 등의 급격한 저하와 문맹률의 확산
■ 정신적인 죽음, 다시 말하면 슈펭글러의 고전주의를 말한다. 문화의 실질적인 내용이 사라지는 대신 이것이 저급한 수준으로 떨어뜨리거나 재가공하여 내놓은 것을 의미. (책 21쪽)

를 말한다고 하는데, 작가가 판단했을 때 21세기 현재의 미국이 바로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좀 고소한 사심이 들기도 했는데, 우선 책에 인용된 객관적인 사실들을 길지만 몇가지 나열해보도록 하겠다. 

□ 지도를 볼 줄 모르는 미국인들

미국의 성인 가운데 42%가 세계지도에서 일본이 어디 있는지 찾을 줄 모른다. 심지어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 방송에 따르면 설문 조사 결과 15%의 성인이 미국이 세계지도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했다고 한다! (책에 느낌표까지 찍혔다.. 작가도 충격적이었나보다)

□ 대통령 이름이 뭐죠?

1996년 10월에 있었던 설문조사에서 대통령으로 출마한 공화당 후보나 민주당 후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유권자가 10명 가운데 1명 꼴이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예전에는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의 정신병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대통령이 누구입니까?>하는 질문을 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지금의 현실은 우리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 X파일에 심취한 미국인들 

《타임》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가운데 70% 정도가 천사의 존재를 믿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50% 정도가 UFO와 우주인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는 결과가 나오싸다. 한편 1997년 8월 CNN에서 보도한 갤럽 조사에서는 미국 정부가 UFO와 우주인에 대해 사실을 은폐 조작하고 있다고 믿는 미국인이 71%나 된다고 한다. 또한 미국인 가우데 30%이상이 죽은 사람과 영적인 만남을 가졌다고 믿는다. 

□ 미국이 독일과 싸운 적이 있었나?

1995년에 《뉴욕타임즈》에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 가운데 40%(인구로 환산하면 7천만명이 웃돌 것이다)가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독일이 미국과 적대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모른다고 한다. 1996년에 시행된 로퍼 조사에 따르면 대학 4학년생 가운데 84%가 한국전쟁 초기 당시에 미국 대통령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답을 못했다고 한다. (정답: 해리 트루먼) 또한 고등학교 학생들 가운데 58%가 신문에 실린 사설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교육부에서 1995년 2만 2천 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50%가 냉전이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60%는 미국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 3의 제곱도 모르는 엘리트들

1999년 토크쇼 프로그램에서 제이 리노(김동성 개고기 발언으로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아졌죠 ^^;;)가 대학교 졸업식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는 대학교 이름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고 단지 시청자들에게 인터뷰를 실시한 대상 가운데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만 말했다. 인터뷰 대상자 중에는 남자, 여자, 유색인들 모두가 포함되었다. 
리노는 다음과 같이 8개의 질문을 던졌다. 

문 1 > 미국 성조기를 먼저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 답변 중에는 수잔 안소니(1820년 태생 1800년대 여성인권운동가 [참조페이지] : 성조기는 1777년 독립 13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이라는 것과, <베시 포드>(1938년생으로 포드대통령의 부인) [참조페이지] 라는 것이 있었다. 

문 2 > 미합중국을 형성하게 된 미국동부 13주는 미국 독립전쟁을 치르고 나서 어느 나라로부터 독립을 했는가?
- 한 한생은 <미국동부해안>이라고 답변했다. 

문 3 > 링컨 대통령이 행한 게티즈버그 연설은 무엇인가?
- 한 학생은 <게티에 대한 연설>이라고 답변했고, 또 한 학생은 <정확한 주소를 모르겠는데요>라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문 4 > 전구를 발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 답변 중에는 토마스 제퍼슨(미국의 3대 대통령이자, 독립선언을 기초한 인물)이라는 것도 있었다. 

문 5 > 숫자 3의 제곱은 무엇인가?
- 한 학생은 27이라고 답했고 또 한 학생은 6이라고 답했다. 

문 6 > 물을 끓는 온도는 몇 도인가?
- 학생 중에는 섭씨 46도라고 답변한 사람도 있었다. 

문 7 > 지구가 자신의 축을 한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 리노가 받은 두 가지 답변은 광년(이것은 시간을 재는 단위가 아니라 거리를 재는 단위이다)과 24개의 축이라는 엉뚱한 답변이었다.

문 8 > 지구에는 달이 몇 개 있는가?
- 질문을 받은 학생은 2, 3년 전에 천문학 수업을 들은 적이 있고 A학점을 받았었지만 정답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인터뷰를 한 학생 가운데 단 한 명도 위에 적은 질문 중에서 정답을 제대로 몾춘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런 개탄할 만한 상황을 정리하면서 리노가 한다는 말이 걸작이었다. <이런데도 중국 사람들이 미국에서 비밀 정볼르 훔쳐가고 있다고요?>

□ 5분의 1과 2분의 1 중 무엇이 더 크죠?

십대의 41%만이 정부의 3권 분립 중 3권이 무엇인지 정답을 말했던 반면, 59%나 되는 청소년들이 [얼간이 삼총사(The Three Stooges)](1930년대부터 1950년대 말까지 미국에서 인기를 누리던 코미디의 이름)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모두 맞췄다고 한다. 2%만이 법무장관의 이름을 댈 수 있었고 26%는 부통령 이름이 무엇인지도 몰랐다는 결과가 나왔다. 1990년대 초반에 미국 교육발전 평가국에서 발표한 조사 보고에 따르면 열일곱 살 된 학생들 가운데 50%나 되는 인원이 100분의 9가 퍼센트 단위로는 어떻게 표현하는 지 몰랐고, 미국 남북전쟁이 일어난 시기가 몇 세기 초반인지, 후반인지조차 모르는 학생들이 50%에 이른다고 밝혔다. 열일곱 살 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다른 조사에서는 4% 정도만이 버스 일정표를 읽을 수 있었고 분수 여섯 개를 제시하고 크기 순서대로 정렬하라고 했을 때 제대로 하는 학생이 12%에 불과했다고 한다. 

□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하루에 한 번 돈다. 

미국 성인들 가운데 극히 기초적인 과학 상식조차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1995년 10월에 국립과학재단에 제출된 보고서에 의하면 이들 성인 중 56%가 전자가 원자보다 더 크다고 답변했고 65%나 되는 사람이 초기 인류가 공룡이 서식했던 같은 시대(연대로 볼 때 6천만년이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에 살았다고 답변했다. 53%의 사람들이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하루 또는 한 달에 한 번 돌고 있다고 답변했다(다시 말하면 47%의 사람만이 정답이 1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또한 91%나 되는 사람들이 분자가 무엇인지 답변을 하지 못했다. 노던일리노이 대학에서 2천 명 이상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무작위 전화 설문 조사에서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응답자 중 21%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7%는 무엇이 무엇의 주위를 돌고 있는지 모른다고 대답했다. 

□ 글을 왜 읽죠?

UN에 소속된 158개국 가운데 미국은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지적능력으로 볼 때 49위로 등급이 매겨져 있다. 성인 가운데 약 60% 정도가 전혀 책을 읽지 않고 있고 6%만이 1년에 한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하는데 이 경우 책이라 함은 로맨스 소설이나 처세술 책을 포함해서 말한 것이다. 1억 2천만 명 정도의 성인들이 글을 읽지 못하거나 겨우 초등학교 5학년 수준 정도의 읽기 실력을 지녔다. 책을 읽는다고 한 사람들 가운데 연령이 21세에서 35세까지인 경우를 보면 1965년에는 67%의 해당하는 사람들이 일간신문을 정기적으로 읽는 데 반해 1998년에는 31%만이 그런 것으로 나타났다. 

□ 교육 이념이 <교육은 시시껄렁한거야> 인 대학 

1997년에 미주리 주의 검찰 총장이 속임수를 써서 어느 국제 학력인정기관에 <이스턴 미주리 경영대학>이라는 교육 기관을 설립하여 경역학은 물론, 해양생물학과 유전공학 분야의 인재들을 양성할 방침이니 박사학위 수여 권한을 인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교수진에 포함된 인물 중에는 [얼간이 삼총사]코미디 주인공 이름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게다가 대학의 문장에 들어갈 라틴어 원문은 굳이 해석하자면 <교육은 시시껄렁한거야>라는 내용을 표어로 집어넣었다. 과연 어떤 반응을 얻었을까? 놀랍게도 대학 설립이 정식으로 승인되었다. 

□ 우민화를 앞당기는 교사들 

1998년에 매사추세스 주의 교육위원회에서 교사 자격 평가를 위한 읽기 능력 시험을 실시한 적이 있었는데 고등학교 학력 인정 학위 수준으로 난이도를 맞추었다. 그런데 이 시험을 치른 1천 8백 명의 교사 후보생들 중 59%가 불합격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교육위원회의 임시 위원장이었던 프랑크 헤이두 3세라는 사람이 합격에 필요한 점수를 하향 조정하겠다고 발표하고 나섰다. 교육위원회에서는 결국 이 결정을 다시 철회했는데 이로 인해 위원장이 사입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교육의 미래를 짋어진 예비 교사들 가운데 59%라는 엄청난 인원이 고등학교 수준의 철자법이나 구두점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교육계 고위공부원이 이것이 교사들의 직무 수행에 있어서 하등의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장담한다는 사실은 미국이 종말의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좋은 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읽지도 못하면서 편지 배달을 하는 우체부 

1989년 3월 31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시카고 전역에서 입사 지원자 가운데 10%만 제외하고는 우체국 직원이 갖추어야 할 최소 읽기 능력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책 40쪽부터 47쪽까지)물론 책에 수록된 이런 통계자료들은 주제의 명확성을 위해 최악의 자료들을 뽑은 것일수도 있다. 그리고 통계라는 것이 항상 정확할 수는 없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겠다. 또한 제이 레노 같은 경우는 고도의 상업적 방송이기때문에 완전히 믿기 어렵다는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위의 자료들의 100분의 50만 믿는다고 쳐도 좀 심하지 않은가.

우리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가기 위해 오늘도 영어공부에 매진하고 토플시험을 치루고 비자를 받으려고 허덕이고 있지 않은가..미국에 대한 American Dream은 깨어진지 오래라고 하더라도 그래도 아직은 미국..이라고 하지 않나 말이다.

위의 자료들과 책의 전반적인 작가의 한탄은 내가 경험한 몇명의 미국아이들에게 받은 이상한 느낌을 충분히 증명해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작가는 미국의 교육 전체가 하향평준화되어 학생들은 교사를 "우리를 즐겁고 재미있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고 학문의 우수성을 논할라 하면 "엘리트 의식"으로 치부되어 명함도 못 내민다는 것이었는데, 상해에서 만나 본 다수의 미국아이들은 "재미없는 수업을 하는 교사"의 시간엔 당당하게 결석을 했다. 그리고 물으면 "그 수업은 재미없어서 안 듣는다"고 배짱을 부렸다. 물론 예상하시겠지만 유럽아이들과는 물과 기름처럼 동동 떠서 사소한 토론이라도 벌어질라 치면 입 꽉 다물고 먼 산 쳐다보는 아이들이 미국아이들이었다. 어떤 영화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면 유럽 아이들은 감독이 어쨌네 저쨌네 그 전 작품과 어떤 차이가 나더라, 이번 이야기는 스토리가 너무 진부했다..등등의 이야기를 쉴새 없이 떠들어대는데 미국아이들은 "어.. 그거 봤어."그리고 땡이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한 백인미군사병 녀석은 "너는 인종차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너도 약간 그런 거 있어?"라는 질문에 "우리 내무반에 백인은 나 하나야."라는 대답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그래서?"라는 나의 질문에 "그렇다고."라며 오히려 묻는 나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나의 궁금증들은 책을 통해 일부 해소되었다. 미국의 문화가 정말로 몰락하고 있구나.. 

나의 이런 독후감이나 Morris Berman의 책은 상당한 위험요소가 있다. 왜냐하면 미국문화의 몰락이라는 제목과 위에 나열한 일부의 예를 가지고 사람에게 선입견을 강하게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문화가 몰락하고 있다~ 라고 외치는 메아리가 아니고 자, 그럼 이 문제를 어디부터 풀어나가야 하느냐 하는 것에 중점이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은 두루뭉실 뭉쳐서 "미국애들이 이렇게 깡통이란다"라는 편견으로 웃어넘겨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현사회에 대한 이렇게 가슴아플(저자는 미국인이므로)이야기들로 자기반성을 시작한 저자는 다양한 미국과 역사 문화에 대한 타 서적의 인용구를 들먹여가며 그 꼬여버린 나라를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 것인가.. 라고 한숨을 쉬고 있다. 

그러나 책의 말미는 설득력이 무척 약하다. 저자는 진단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진단밖에 하지 못할 만큼 이미 상황이 나쁘게 치달아 버렸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가 내놓은 대안은 아주 소극적이다.

"그대의 삶이 말하게 하라"라는 오래전 퀘이커교도들 [퀘이커에 대한 한글참조페이지] 의 격언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꼬랑지를 내리고 있다. 그러면서 스포츠를 잘하면 스타가 되는데 학문을 잘하면 잘난척하는 엘리트주의에 물든 백인 우월주의자로 치부되는 지 알 수가 없다는 작가의 한숨섞인 자기 고백이 떠올랐다.

안스러웠다. 작금의 사태를 촘스키는 뭐라고 할 것인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미국에도 이렇게 고민하는 지성이 아직 살아있는데, 기업문화와 저급화된 대중문화에 희생되어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그로 인해 파급되는 제 3세계의 모든 영향이 두려웠다. 

경제문제부터 로마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와 문화 사회전반에 걸친 진단과 해설끝에 내놓은 대안이 너무 미약해 씁쓸한 책이었지만 이제는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해 궁리해야할 때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0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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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198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와했던가?
지금 이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想)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生)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아음의 고향이로다.
........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느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 전태일의 1970년 8월 9일 일기에서.



이 책은 1971년 전태일열사의 죽음이후에 1970년대중에 쓰여졌으나 1983년이 되서야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이름을 걸고 첫 출판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전태일 평전이라는 이름으로 재 출간되었다. 

책을 지은 조영래씨 역시 유명을 달리한지 오래다. 서울대 법대 졸업이후 각종 운동에 참여하여 고초를 겪다가 책이 개정판으로 제대로 된 이름을 달고 출간되기 직전인 1990년 12월에 폐암으로 별세하였다. 

이 책은, 저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10여년을 떠돌았고 저자는 서문이나 머릿글도 달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 하고 말았다. 책 속에는 전태일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씨의 글과, 돌베개 편집부의 글, 그리고 장기표씨의 글이 실려있을 뿐이다. 

책의 주인공도 그리고 책을 쓴 사람도 모두 사라진 채 개정판이 나온 책.. 그리고 개정판이 나온지 10년이 넘어서 멀리서 얼굴도 모르는 분이 보내주어 읽게 된 책이다. 

전태일 평전이 내 눈에 띄였던 것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박광수감독의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였다. 그 때쯤, 그 때가 1995년쯤, 그 때쯤이면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올려도 아무렇지도 않은 시절이었겠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이 책을 선뜻 읽지 못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두려웠다. 전태일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는 것과, 그로 인해 분노하고 눈물흘리고 슬퍼하고 다짐할 모든 것들을 감지했다. 그래서 두려웠다. 

결국 전태일평전은 우연한 기회로 나에게 왔다. 그리고 힘겹게 책을 읽었다. 

가끔, 사람들이 그런 말은 한다. 작가의 정성이라는 것.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 책장에서 피와 땀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는 말.

이 책이 그러했다. 전태일이라는 평전의 주인공만으로도 버겨운데, 그만큼의 생을 살다간 故조영래씨의 글 역시 책장에서 피가 뚝뚝 흐를 것만 같이 버겨웠다. 책장을 덮고 침대위에 엎드려 있다가 괜시레 딴 짓을 하고 인터넷으로 스포츠신문을 보고.. 그러다가 슬그머니 책을 들었다가는 가슴이 먹먹해와 천장을 쳐다보다가, 한숨이 나와 담배를 물었다가, 어두워진 밤하늘을 바라봤다가.. 그렇게 오래오래 힘겹게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 독후감을 쓰는 것도 상당히 부담스럽다. 

소화불량에 걸린 것마냥 속이 더부룩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뭔가가 미어지는 느낌이 내도록 이어지고 있다. 책을 읽고 나서 적잖이 영향을 받는 사람이 난데, 아마 이 책의 후유증은 상당기간 길어질 것만 같다.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한다. 전태일 평전을 읽고 나서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지 알게되었다고..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자. 20대의 청년이, 신경통와 폐결핵, 밝은 햇빛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안질환, 소화기능장애를 겪으면서 허리를 펴지 못하는 닭장같은 작업장에서 하루종일 일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예 말을 하지 않기로 하자. 

한 아이가, 공부를 하고 싶어서 동생을 끌고 서울로 올라와 박스를 깔고 길에서 한뎃잠을 자다가 배가 고파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 새댁이 깎아놓은 사과를 하나 먹으려다 실신해쓰러졌다고, 평생 배불러 본 적이 없는 한 청년이 죽음 직전에 던진 말이 "배가 고파"라는 말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예 말을 하지 않기로 하자. 

그래서 그 청년은 죽음을 택했다. 누구 하나 죽어나가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일이었다는 판단, 각종 민원과 청원서를 쓰고 설문조사까지 하는 열정으로 청계천 일대에 대한 열의를 가지고 있던, 세금제대로 내고 직원들 월급 잘 주면서 성공하는 기업체를 만들어보자고 노트 빽빽히 계획까지 세웠던 한 청년이 죽어나가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일이었다는 판단까지 하게 된 그 경과. 

그래서, 그래서 방치된 치료로 죽음으로까지밖에 이어질 수 없었던 그의 분신.

그가 그렇게 갔지만, 그리고 이 책을 쓴 조영래씨도 생전에 자기 이름 걸고 나오는 책을 보지 못한 채로 그렇게 갔는데도, 세상은 여전히 별 다를바없이 돌아가고 있다. 

노동자의 처우가 개선되었다고 근로기준법이 준수되고 있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근로기준법이 준수되고 있는 직장은 노조가 강력한 직장, 신문에 날만한 직장, 의료보험이 지원되는 직장뿐인 것을..

아직도 명절에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미싱을 돌리고 있는 미싱사들이 있고, 지하실에 위치한 공장에서 화장실 갈 때 외에는 빛을 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고, 유동이 잦은 여성들이 모인 직장에는 고추장에 밥비벼먹으며 곱게 화장을 하고 옷을 파는 아가씨들이 있고, 고정급 25만원을 받고 구둣발로 쟁반를 나르는 12시간 노동자가 있다. 

가족같은 분위기라는 미명하에 항의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업주가 있고, 무시하고 경멸하며 "니 주제를 알아야지"라고 실실 웃는 사업자가 있다. 능력위주의 사원을 선호한다는 규칙아래 인센티브제를 도입해 사람들 달달 볶아대는 사장이 있다. 

아직도, 우리는 아직도 전태일이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중국에 와서 살면서, 한국에서 미쳐 느끼지 못했던 부분들을 미세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들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왜 저들은 자기들도 인권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할까였다. 

"그러므로 고통받는 한 인간의 의식을 살펴보자.

그가 태어났을 때 이미 억눌리는 고통에 찬 현실은 존재하고 있었다. 이 현실 속에서 자라나면서 그는 그 현실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하여 자신에게 강요된 것처럼 착각하게 되고, 사실은 바로 인간이 그것을 만들었다는 것을 똑똑히 보지 못하게 된다. 이 거대한 힘에 비하여 볼 때 자기 자신은 너무나도 약하고 초라하고 무력한 존재로 느껴진다. 조만간에 그는 어떻게해서라도 현실의 사회구조와 질서 앞에 무조건 머리를 수그리고 거기게 '순응'해야만 생존이 보장된다고 느끼게 되며, 따라서 현실 앞에서 위축되고 기가 죽어서 비굴해진다. 현실에 대한 모든 비판은 그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모모한 짓으로 되며, 따라서 자신에 대해서는 불성실하게 되고 나중에는 부도덕으로까지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비판정신의 쌀을 자신의 의식 속에 싹트기도 전에 잘라버리고, 사회가 강요하는 모든 명력, 모드느 가치관, 모든 선전을 무조건 받아들여 '순한 양'이 된다. 자기 머리로 생각할 줄 모르는 주체성을 빼앗긴 정신적 노예로서 길들여지는 것이다. 

등 어루만지고 간 빼어먹는다는 말이 있다. 강한 자들은 이 길들여진 양들에게 '착실', '겸손', '온건', '성실','적응성 있다'하는 등의 온갖 아름다운 찬사를 퍼부으며 환영하고 칭찬하면서 최대한으로 그들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털을 뽑는다. 고통받는 인간은 한동안은 얼떨떨하여 그가 고통을 당하는지 털을 뽑히는지 모른다. 설사 어렴풋이 그것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그는 다만 생존하기 위하여 현실의 부당한 행태와 그로부터 오는 자신의 고통을 참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만다. 때때로 무언가 '부당하다'또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으나, 역시 자신은 '무력'하며 그것은 시정될 길이 없으므로 그는 곧 머리를 흔들어 그런 건방진 생각을 털어버린다. 인내는 그의 영원한 금과옥조로 된다. 

그러나 억압과 혹사,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이 그가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서 그의 인간으로서의 존립을 위협하게 될 때 잠자던 그의 비판의식은 돌연 고개를 쳐들어 절실하게, 부지런히 활동을 개시한다. 고통이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그가 한 인간으로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극한점에 다다랐을 때 그는 비로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를,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고 무엇이 추잡한 것인가를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기 시작하는 주체적인 인간으로 재생하는 것이다. 인간다운 자존심이 되살아나고 억눌렸던 분노가 폭발한다. 저항이 시작된다. 그것이 철저해질 때 그는 이미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현실의 질곡이 결코 인간이 뚫을 수 없는 금성철벽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

책 134쪽에서

후반부의 현실을 뛰어넘는 단계에 대한 것은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왜 그런가.. 하던 문제에 대해서 답을 막연하게 나마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답을 얻었다는 것은 그렇다면 앞으로는 고민하던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봐야할 것인지, 또는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고 대처해야 할 것인가도 같이 얻은 것이다. 

전태일의 문제는, 비단 노동문제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다. 

책뒤에 장기표씨가 쓴 글에는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진보적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있다. 

전태일열사와 또 이 책이 나오는 데까지 수고를 한 출판사와, 책장 한 장 넘기기가 힘들만큼 정열적인 집필을 한 조영래씨, 그리고 이 책의 독자들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누군가 특정인물을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그 자체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그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자는 것.. 그런 인간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논리는 "사람을 사랑하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청계천의 그 때 당시의 업주들도 모두 사람인데, 사람이 사람과 부대끼고 살아가는 동안 사람은 잔악해질 수 있다. 그래서 같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자기도 역시 사람이라는 것을 망각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렇게 고생했다" 하면서, "그러니 너만은 그렇게 고생하지 말아라"고 하는 사람과 "그러니 너도 그렇게 고생해라"하는 사람. 우리는 어느 쪽에 서 있는가?

후자라면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우리가 아니라면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그도 역시 사람인데...

그저 반성할 뿐이었다. 그도 사람인데, 저이도 사람이고, 이이도 사람인데, 왜 나는 그를, 저이를, 이이를,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고 나와 다르다고 생각해왔는가에 대한 반성. 

그리고, 외면하고 타협하고 슬렁슬렁 살아온 세월.

전태일의 평전을 다 읽고, 인생이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일이 너무나 많은데, 인생이 짧다는 생각. 그러면서도,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다잡았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지금, 저 앞에 보이는 공사장의 인부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달라던 전태일의 말은, 바로 그 말이었을거라고. 


"사랑하는 친우여, 받아 읽어주게.
친구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 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指環, 力을 뜻함 - 엮은이)의 무개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으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에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 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 전태일이 죽음전 일생에 단 한 번 다녔던 청옥공민학교동창들에게 보내는 편지 - 


http://www.junt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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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달라이 라마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김영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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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혼돈스러운 시기에 이 책을 잡았다. 요즘은 어떻게 사춘기를 다시 겪는 것인지 별 것 아닌 것에 고민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어떻게 보면 내가 당연히 겪어야 하는 사춘기에 미처 하지 해결하지 못했던 고민때문에 이제와서 곪은 상처가 다시 터져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종교는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녔다는 기독교 모태신앙이었다. 그리고 여차저차한 종교에 대한 회의로 온 가족이 가톨릭으로 전환을 했고 나 역시 아직 세례는 받지 않았지만 가끔 미사도 가고 기도도 하고 성경도 보고 대충 그러고 산다.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타종교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유난을 떠는 교회친구들중에 사찰에 무서워서 못 들어간다는 친구들도 있고 그 사천대왕상이 겁난다는 친구들도 많이 봐왔다. 그리고 향냄새에 대한 억지스러운 거부반응을 보이기도 하는데 참 편협하다고 생각한다. 

사천대왕은 동양종교에서 보이는 일종의 천사다. 하얀옷에 날개달린 것만 천사라고 알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사대주의적 서양문화의 노예가 되었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나는 적어도 모든 종교는 좋은 점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오해에서 시작된다. 

달라이라마에 대한 책은 중국에서는 금서에 해당된다. 그러나 중국에 오는 대다수의 외국인들은 티벳과 달라이 라마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티벳의 독립운동이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다는 것이 상당히 개운치 못한 면도 있지만 그에 대한 실상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몇편의 영화와 오체투지에 대한 주워들은 상식으로 티벳을 이해하기도 달라이라마를 이해하기도 힘들다. 

 이 책은 그렇다고 티벳에 대한 이야기나 달라이라마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 책은 달라이 라마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금쪽같은 메세지이다. 결론은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선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한가..라는 주제를 놓고 정신과 의사인 하워드 커틀러가 몇년에 걸쳐 달라이 라마의 강연을 쫓아다니고 그와 토론과 상담을 하면서 남긴 이야기들을 책으로 정리해 낸 것인데,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사람이 행복해지려면..이라는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선 그럼 사람이 행복해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부터 고민해야 한다. 

행복이라는 것에 대한 기준.. 돈이나 명예 그리고 권력과는 큰 상관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이다. 행복이라는 것.. 그것은 마음의 평화, 아무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 분노하지 않거나 분노하더라도 남에게 화풀이를 하지 않거나, 정립된 가치관을 가지고 신념있게 살아가는 것, 대충 그런 것과 맥락을 같이 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그러하다. 

달라이 라마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인간적이었으며 우리가 아는 것보다 많은 행복으로 가는 지침을 가지고 있었다. 책은 350페이지에 이르는 두꺼운 분량이지만 열 다섯개의 장으로 적절히 나뉘어져 있어 아무리 늦어도 보름이면 읽을 수 있다. 어쩌면 한 장을 읽고 하루는 고민을 좀 하고 그런 식으로 천천히 읽어도 무방하다고 본다. 그리고 장마다 생각이 깊어지도록 도와주는 티벳사람들의 사진과 주제되는 문장을 넣어서 디자인적 측면도 상당히 좋다.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를 만나 눈을 열고 가슴을 열었다. 내가 며칠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혼돈을 가지고 있었을 때, 기도와 성경, 그리고 병행된 달라이라마의 책이 내 마음을 많이 진정시켜주었으며 그리고 나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 

종교를 초월한다는 것은 적어도 내가 가진 종교때문에 남들을 무시하거나 편협하게 보아서는 안된다는 말일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 자기가 할 일만을 하는 것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 있다. 그가 현존한다면 현세에는 달라이라마일 것이며 그로 인해 종교를 초월하는 아름다운 인간세상을 꿈꾸어봤다. 



2002.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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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당신들의 대한민국이후에 다시 만나는 박노자교수의 책이다. 
이번책은 한국을 비판 분석하는데에 그치지 않고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을 강의하고 있는 저자가 노르웨이라는 북유럽사회와의 만남을 바탕으로 이런 저런 세계화와 지식인의 갈길을 제시하고 있다. 

지식인의 갈길을 제시한다는 것은 그가 "지식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적어도 우리가 미래를 걱정하고,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런 "생각"만이라도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냐고 은근히 다그치고 있다. 

책은 1부는 또다른 세계, 북유럽, 2부 과연 그들은 건강한가 3부 반폭력.평화를 위하여라는 3부로 이어져있는데, 정작 저자는 3부의 결론부분을 이끌어 내기 위해 노르웨이의 이야기로 부터 책의 서두를 펼치기 시작한다. 

1부는 러시아에서 나고 자라 공산주의와 폭력,전쟁을 무심하게 지나쳐야 했던 저자의 성장과정과 이후 한국에서마저 봉건주의에 익숙해진 저자가 또 다른 세계 북유럽인 노르웨이에서 겪었던 혼란을 통해 그들에게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을 제시한다. 이 부분은 이 사람 너무 노르웨이 예찬만 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자유로움과 인권존중과 평등한 사회, 진보와 보수의 공존등을 예찬하고 있다. 

그러나 박노자교수가 그렇게 노르웨이에 뻑이 갔다고 칭찬만 줄줄이 써나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곧이어 이어지는 2부 "과연 그들은 건강한가"에서 증명되었다. 그 어느 나라, 어떤 조직도 모순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 보편적인 진실이라면 노르웨이라는 나라도, 북유럽이라는 선진복지국가역시 그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조국의 과거를 "약탈을 일삼던 바이킹"이라고 자아비판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가진 노르웨이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사냥애호가들이 늘어가고 있으며 일말의 인종차별도 공존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에 지나지 않고 백인주의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백인아닌 유색인종에 대한 노동력 착취 전 세계의 담합등을 고발했다. 

발전하여 3부 "반폭력 평화에 대하여"는 한 국가나 대륙만의 문제가 아닌 전세계적으로 묵인되고 있는 폭력과 전쟁에 대한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음모들을 거론한다. 
러시아와 유럽에서 이어지는 스카우트에서 부터, 자연을 파괴하는 사냥과 동물원의 건립, 학원폭력, 미국의 911사태로 말미암아지는 복수들, 이슬람사회에 대한 세계의 태도와 또한 그들의 태도, 군대를 해체하자는 극단적으로 느껴지는 주장에서 오태양군(양심적 군복무거부로 현재 사회봉사활동중에 있는 청년)과 주고받은 서신을 실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한국군대에 대한 편견을 다시 고찰하게 한다. 그리고 좌파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단상이라는 補論에서 반전운동으로 인한 민족 생존의 보장, 사회적 정의구현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늘 그렇듯이 인문사회과학분야의 칼럼집을 읽으면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협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았는가를 생각하게 되는데, 태생이 한국이 아닌 한국인 박노자교수의 시선은 당연히 신선한 주장을 할 수밖에 없다. 그는 러시아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고 노르웨이인도 아닌 세계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한국학을 연구하는 학자이지만 한국이라는 한 국가를 초월해 얼마나 전세계, 전지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지를 느끼게 했다. 

그가 주장하는 반폭력에 대한 주장들, 특히 군대징집에 대한 사고는 나는 단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생각들이었다는 것인데, 나는 군대를 가지 않는 남자는 남자가 아니라는 (나는 군대도 안 갔으면서)남성차별주의적이고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반성하게 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모든 사람이 가는 것을 왜 너만 회피하느냐 하는 논리였다. 그렇다고 누구 아들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신체조건으로 군대를 회피하자는 것이 아니라 양심과 종교의 이유로 살생을 하지 않겠다는 이념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복무를 왜 거부당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박노자교수가 예전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제시했듯이, 대한민국남자라면 대다수 특별한 사유(-양심이 아니라 외적인 이유로)가 없다면 모두 군대를 가야하는데, 그럼 이 사람들이 군대를 갔다와서 얼마나 변하게 되는가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꽃다운 청춘에 군대에 끌려가 가장 창조적이고 의욕넘치는 시절을 규율과 폭력적인 권위아래서 모두 떨쳐버리고 사회에 순응하는 얌전한 동물이 되어, 옳은 소리 못하고 개기지 못하는 나약한 자가 되어 세상에 끌려나온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폭력과 전쟁주의에 노출이 되어 정확한 사고를 할 능력을 잃어버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 폭력과 권위를 배워 세상으로 던져진다. 그렇게 남자들이 망가져지는 것이 군대라는 조직이다. (그렇다고 그래 우리 그렇게 힘들지, 너희 여자들은 가지 않는 군대를 우리는 간다..라는 영웅심이 조금이라도 용솟음친다면 반성하시길!...)

특정한 사유로 군대를 가지 않았던 사람은 (또는 가지 못했던)컴플렉스에 시달려 술자리에서도 그럴싸한 무용담을 펼칠 수 없게 되고, 군대를 갔다와야 진짜 남자가 된다는 오판에 평생의 좌우명을 걸고, 스스로 해병대로 기어가는 남자들은 그 얼마나 불쌍한가. 인간이 아닌 군대의 부속으로 2년 넘는 세월을 썩어지내다가 결국 그 폭력과 권위주의를 잔뜩 가슴에 품고 평생 그 恨을 풀어대며 상사가 되면 부하직원에게, 세상에서 약자에게, 가정에선 자녀와 아내에게 말도 안되는 허울뿐인 권위를 내세우며 살게 되지 않는가. 

우리가 몰랐던 진실은 그런 것이었다. 이슬람이라고 다 같은 이슬람인가, 유럽이라고 발전한 문명을 가지고 있는가. 

진실을 파헤치는 박교수의 모든 주장은, 물론 그만의 생각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 눈을 뜨게 해주고 나 역시 폭력과 권위주의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지, 그로 인해 그 기득권을 쥐는 방법을 벌써 교육받고 주지당한 나 역시 그에 대해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에 대해 반성하게 했다. 

책을 읽고 나서. 대부분 책 뒤에 짧은 감상문을 적는데, 이번에도 여타 인문사회과학칼럼집과 비슷한 감상을 적었다. 

"행동하고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이란 얼마나 고단한 것인가. 
세상의 모든 부조리를 향해 투쟁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는 데는, 자기 통제와 집념과 용기, 그리고 신념이 필요하다. 
타협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그것이야말로 성인군자이며 그것이야 말로 가치있는 희생이 아닌가.
유교사회에서 늘 그리워했더 君子의 道가 과연 내가 걸어갈 수 있는 길일까.. 

아직 모든 것이 너무나 부족한 .. 아무것도 아닌 自我만 발견했다. "

200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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