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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나비 - 2003년 제27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김인숙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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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은 오래동안 읽어온 수상집중의 하나이다. 한 때는 수집처럼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1회 이상문학상수상집부터 챙겨 읽기도 했다가, 그 지리멸렬한 작가들의 문체에 식상해 삐딱한 시선을 갖기도 했었다. 

어쩌면 그 삐딱했던 시선은 절망에서 비롯된 질투가 나를 휘감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2003년 이상문학상 수상집이 나온 것을 출국 며칠 전에 알게 되었고, 부랴부랴 사들고 상해로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부터 읽기 시작했다. 벌써 5일전의 일인데, 참 오랫동안도 읽었다. 

이상문학상 수상집은 그 때마다 쉽게 한 번에 읽을 수는 없다. 그 이유는, 개성이 다른 작가들의 모두 다른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뭉쳐있기 때문에, 한 작품을 읽고 난 다음엔 숨을 한 번 고르고, 앞에 읽은 이야기를 살짝 기억의 뒷편을 밀어내고 또 다른 새 작품에 대한 준비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번 이상문학상의 수상작은 김인숙의 "바다와 나비"이다. 공교롭게도 이 소설의 배경은 중국이었고, 한국인 여자와 중국인 조선족의 이야기들이 교차하고 있다. 사실 "바다와 나비"는 이상문학상의 취향에 맞는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아카데미가 아카데미용 영화를 생산하기도 하듯이, 김인숙의 "바다와 나비"는 개인적으로 그닥 맘에 드는 작품이 아니었음에도 이상문학상이라는 그 오래된 전통에 잘 부합하는 지리하고, 고통스럽고, 근원을 알 수 없는 외로움과 공허함이 잘 드러나 있었다. 언제나 수상작가의 자선대표작이 하나씩 실리는 관행대로 김인숙의 또 다른 소설 "모텔 알프스"가 더 절절하게 다가왔다고 할까. 솔직히 90년대 이후에는 이상문학상의 수상작보다, 그 수상작가의 자선대표작이 더 맘에 끌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번 이상문학상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이라고 -물론 내 생각으로- 뽑을 수 있는 것은 그 유례가 드문 특별상 수상작인 전상국의 "플라나리아"였다. 
대다수 현재 한국문학의 문단을 장식하는 작가들이 60년대 생인데 비해, 특별상 수상작가인 전상국씨는 1940년생이었고, 오래된 장인의 섬세한 이야기와 인생을 이미 우리보다 많이 알고 있는 어르신의 긴 호흡이 느껴졌다. 작가는 수상소감에서 매년 신춘문예를 읽으면서 절망을 느끼고 그 절망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펜을 잡고 있다는 고백을 해주었는데, 작품뿐만 아니라 수상소감에서도 작가의 오래된 여정을 느낄 수 있었다. 

 복거일이라는 유명인의 "내 얼굴에 어린 꽃"은 SF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에 등장하는 기기묘묘한 적응되지 않는 단어들 덕에 어색할 수 있으니, 플라나리아를 읽고 난 다음에 한 호흡을 고르고 읽어야 좋겠고, 마치 한 편의 SF동화를 보는 듯한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져 한 때 영어공용론을 주장해 된서리를 맞았던 작가에 대한 선입견이 녹아내리기도 했다. 

"고양이의 사생활"을 쓴 김경욱은 예전 "아크로폴리스"라는 장편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되살아 나 관심있게 읽었다. 특유의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그리고 지루하지 않은 문체가 여전히 살아있으나, 세월의 무게를 슬슬 느껴가는 듯 했다. 

김연수의 "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 역시 두명의 주인공을 관찰하는 시점으로 천천히 걸음을 떼는 듯한 호흡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현대사회에서 어쩌면 가장 큰 문제일지도 모르는 민감하고 또는 이미 무던해진 이야기를 아름답게 풀어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경린의 "부인내실의 철학"은 이미 글 잘쓰는 작가로 정평이 난 그녀의 글 답게 부드럽고, 철저하고, 끌림이 있는, 그러나 현대한국문학작가들의 공통점인 지리한 일상을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였다. 

김영하의 "너의 의미"는 킥킥대고 웃어가면서 읽었는데, 이렇게 가끔 지겨운 일상을 더욱 그렇게 만드는 문체에서 벗어나는 글을 쓰는 작가가 반갑게 느껴진다. 마지막 부분에서 힘이 약간 부치는 느낌도 없지 않아 들었다. 

하성란의 "자전소설"은 "삿뽀로여인숙"에서 느꼈던 점과 전혀 다른 색채를 띄고 있었는데, 여자작가가 남자주인공을 내세우는 일이 참 드문만큼 그 시도가 신선했고, 뭔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려는 작가의 걸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대하는 작가인 73년생 윤성희의 "그 남자의 책 198쪽" 역시 따뜻한 느낌이 주로 드는 이야기라서 이상문학상 수상집에서 찾기 드문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었다. 젊은 탓일까.. 윤성희 작가의 이 작품은 그다지 삶이 무겁고 지겹게 느껴지지 않는 경쾌함이 살아있었다. 

정미경의 "호텔 유로,1203"은 좋은 소재를 심도있게 다루는 데 실패한 듯 보였다. 이야기의 구조가 개인과 그 현장에 집중한 탓인지, 무게를 싣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힘이 부친다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이상문학상은 어쩌면 그 해의 작품들의 경향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작품집에서 느껴지는 이 시대 소설들의 경향은 이제 파괴되는 가족제도와 불륜이 불륜으로 치부되기엔 너무 덤덤해진 우리의 삶과, 지리하고 목표없이 떠돌 수 밖에 없는 스트레스 가득한 인간군상, 그리고 그 속에 꿈틀대는 꿈과 희망과 사랑과 정에 굶주린 욕구들이 가득했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한다고 했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일게다. 

200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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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을 사랑하라 - 20세기 유럽, 야만의 기록
피터 마쓰 지음, 최정숙 옮김 / 미래의창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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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을 때 비슷한 주제들에 대해 두 세권정도 나름대로 선정을 하고 그 흐름을 타면서 읽는 편이다.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를 사고 나서 전쟁에 대한 책은 한권으로 부족하다 싶어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에 대한 20세기 후반의 보스니아 내전에 대한 유태인출신 미국기자의 책을 읽게 되었다. 

작가는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로 보스니아 내전을 취재하는 종군기자시절의 이야기를 묶어 만만치 않은 분량으로 책을 냈는데, 400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이지만 일관된 주제와 통일성 있는 이야기의 전개로 책은 무척 쉽게 읽힌다. 

발칸반도. 1차대전의 시발점이 되었던 그 발칸반도에 민족청소라는 게 이루어지고 가스실이 없었을 뿐 히틀러시절의 아우슈비츠와 다름없었던 보스니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작가는 비교적 겸손한 태도와 인간적인 관찰력으로 괴로웠던 종군기자시절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고 이 사람이 절대 무용담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태도가 강하게 느껴진다. 보스니아 내전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었고, 종교와 인종의 문제로 이루어진 내전이라는 것을 떠나서 작가의 주제는 인간 누구에게나 이런 야수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유고연방의 사람들이 멍청하고 유달리 잔혹해서 일어난 일을 아닐 거라고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 

책의 후반부에는 보스니아 내전이 정치적인 목적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방관한 전세계의 지도자들에게 원망을 하고 있으며 정치적인 공격마저 서슴지 않지만 작가가 말하는 대로 그는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너무 지쳐가고 있었다. 미국인 기자이기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간에 인용된 문구중에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요시하는 미국”이라는 대목이 심히 거슬렸지만 그도 미국정부에 실망한 사람이라는 동지애를 느끼며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영어권 번역에 있어서 상당히 곤란한 모양이다라고 느껴지는 부분은 영어의 수없는 관계사로 이어진 문장이 번역되었을 때 한국어로는 만연체에 이르게 되고, 그러다보면 수식관계가 애매모호해지는 다의성의 문장이 되는데, 이 책의 번역이 그런 모양새의 아쉬운 요소가 많았고 번역자가 쉼표를 잘 사용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무슬림 (이슬람)이라거나, 하이야트(하얏트)라는 단어 선정도 번역자가 한국을 떠나 살고 있어서 그런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최근들어 미국과 이라크, 9.11 테러 이후에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이나, 이교도(이슬람계)를 향한 십자군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는 모양인데, 그런 책들을 읽기 전에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세기 후반, 아니 21세기에서도 행해지고 있는 인간 잔혹성의 전쟁의 위험은 어디에서나 도사리고 있다는 인간의 본질적 잔혹성에 대한 위협을 느낄 수 있는 수작이라고 하겠다. 

200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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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집과 실패의 전쟁사
에릭 두르슈미트 지음, 강미경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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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뭔지 내가 알 턱이 없다. 
내 기억속의 전쟁은 섬광이 번쩍이는 전쟁오락과도 같은 걸프전이었고, 그 어두운 하늘에 피융피융~하고 날아가던 로케트와 전투기들 뿐이다. 
전쟁으로 인해 사람이 죽고 하는 것보다도 CNN을 통해 처음대한 전쟁은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세계에선 우리가 알게 모르게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또 그런 역사를 통해 국토가 정해지고 국가가 세워지고 하는 역사속에서 살아왔다. 전쟁을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할까. 전쟁은 나쁘다라는 기본 개념아래 맘에 드는 제목이 바로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였다. 

작가는 BBC와 CBS의 종군기자로 활약했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에릭 두르슈미트이다. 이 사람은 성장기에 2차 대전을 겪고 전쟁에 대한 상처를 바탕으로 종군기자생활까지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작년 이맘때쯤 읽은 식인문화의 수수께끼를 지은 사람도 성장기에 2차 대전을 겪고 인간의 잔인성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니 전쟁의 영향이 어느정도인지 대강이나마 짐작하게 된다. 

책은 간단명료하다. 십자군전쟁부터 2차대전까지 10개의 유명한 전투를 그려낸다. 전쟁은 승부를 봐야하는 게임이므로, 지는 쪽이 늘 있기 마련인데, 저자는 진 편의 어처구니없는 실패요인에 초점을 두고 어리버리하기까지 한 지휘관들의 아집과 편협함, 개인적인 복수심 때문에 전쟁에 실패하였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전쟁영화를 그닥 좋아하지도 않는 편이고, 전쟁이나 전투술에 대해서 지식이 무지한 바 책이 재미있지도 않았고 전투의 향방에 대해서 책을 읽어도 머리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저 아집과 실패로 얼룩진 10편의 전투에서의 멍청한 지휘관들의 작태만을 보았다. 만약에 군대를 제대한 사람이거나 현역군인이나 장교로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해도가 훨씬 높았을만한 책이고 어떤 대의적인 명분이나 철학은 심히 결여되어 있는 서술형태의 책이었다. 

200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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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큰 작가 큰 소설 1
알퐁스 도데 외 / 하늘연못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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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어떻게 내 손까지 들어와서, 거기다가 상해까지 끌려왔는지, 나도 처음엔 의아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예전에 인터넷 서점이 아주 많지 않던 시절에 어느 인터넷 서점에서 공동구매로 어떤 책을 샀었는데, 그 때 보너스 삼아 딸려왔던 책이었다. 

소설은 주로 작가위주로 사는 편인데, 그건 어쩌면 CD를 살때도 음반사 기획으로 묶여나오는 名作 같은 씨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의 거만함에서 비롯되는 거였다. 읽기 쉬운 단편들을 묶어서 발행한다는 것은 웬지 시장판에 늘어놓은 싸구려 물건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런데 사실, 독서를 제대로 할 여유가 없을 때 가장 좋은 것은 이런 책이다. 짧은 소설들을 다른 작가로 골고루 배치해서 쉽게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것. 

게다가 그 짧은 단편들이 정말 짧다면 그만큼 쉽게 읽히는 책은 또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이인환이라는 편역자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이르는 걸출한 서구문학의 단편소설의 대가들의 작품을 나름대로 잘 선정하여 묶어낸 책이다. 

알퐁스 도데, 안톤 체홉, 어네스트 헤밍웨이, 에이빈트 욘손, 프랑시스 잠, 오 헨리, 에리히 케스트너, 하인리히 뷜, 기욤 아폴리네르, 캐더린 맨스필드, 기 드 모파상, 서머셋 몸, 쿠르트 쿠젠베르크의 페이지 수 두장부터 열몇장에 이르기도 하는 정말 짧은 단편들 서른 다섯편을 실었다. 

어디선가 읽어본 듯한 이야기들부터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제목들, 분명히 읽은 기억이 있는데 너무 어릴 때 읽어서 가물가물한 이야기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안톤 체홉의 귀여운 여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오헨리의 작품들이야 너무나 유명한 크리스마스 선물과 겨울을 나기 위해 감옥에 가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인 경관과 찬송가 같은 작품도 있다. 

하늘을 찌르는 건방짐으로 무시했던 책 한권이 요즘들어서 거의 책을 읽지 않고 있던 나를 다시 자각시겼다고 할까. 편역자의 "옮긴이의 글"에는 어릴 적 취미에 "독서"라고 썼다가 선생님에게 혼난 기억을 상기하면서 (독서는 필수적인 것이지 취미일 수 없다는 이야기)책을 읽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고,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좋은 훈련과정이 되길 바란다는 소박하고 존경할 만한 의견이었다. 

가끔 1권이 출간되고 나서 별 반응이 없었을 경우 2권은 출판사의 기획안에서 아예 제거되어버리기도 하는 실정을 생각했을 때 이 책의 2권은 나오지 않았을 것만 같다. (인터넷 서점 확인 결과 2권은 출간되지 않았다.) 단편소설을 모아놓은 책이 어디 이 책 뿐일까, 동네의 헌 책방이나 집안 구석 어딘가에서도 분명히 쉽게 발견될만한 이런 책 한 권, 가끔 책을 읽은 지 너무 오래 되었다고 생각될 때, 준비운동용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일 것이다. 그리고 가끔 다시 들춰읽어도 손색은 없을 것이다. 

사족을 하나 달자면, 소설이 이렇게 짧을 수도 있구나 하는 걸 다시 느끼고 능력에 부치는 방대한 원고지 2000장짜리에 도전하기 보다 짧은 스토리를 구성하는 習作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2002.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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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니어링 자서전 역사 인물 찾기 11
스콧 니어링 지음, 김라합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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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분들이 체게바라 평전을 기억할 것이다. 붉은 표지에 강렬한 얼굴을 가진 체 게바라의 얼굴이 박혀있던 손에 들기 편한 크기의 체게바라 평전. 

이 스콧 니어링 자서전은 동일 출판사에서 기획적으로 펴내고 있는 역사인물찾기 시리즈중의 한 권이다. 실천문학사 홈페이지 바로 가기 가끔 이렇듯 의지를 가지고 확실한 노선을 추구하는 좋은 책들을 출판하는 출판사들을 만날 때 무척 기쁘다. 그 중에 하나가 실천문학사이고, 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역사인물찾기"는 현재까지 13권으로 역사의 인물을 찾고 있는데, 1. 닥터 노먼베쑨, 2. 케테 콜비츠, 3. 주덕해, 4. 뇌봉, 5. 몽양 여운형, 6. 랭스턴 휴즈, 7. 세계와 결혼한 여자 (아그네스 스메들리) 8. 상해의 조선인 영화황제 (김염) 9.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 (두루티) 10. 체 게바라 평전, 11. 스콧 니어링, 12. 비노바 바베, 13. 프란츠 파농 까지, 이들이 펴내는 역사인물찾기의 인물들은 진보적이고 때로는 혁명적이기도 하며, 존경하는 인물로 뽑아도 손색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펼쳐내고 있다. 

그 중에 왜 스콧니어링의 자서전을 골랐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책 역시 사놓고 상당히 오랜기간동안 방치해놓아두었던 책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실천문학사의 이 책들의 단점은 들기 편한 사이즈이지만 보기에 무척 두꺼워보인다는 점이 쉽게 책을 시작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 사실 맘먹으면 며칠만에 읽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 책은 게으름을 피우느라 상당히 오랜시간에 걸쳐 읽게 되었다. 

책에 앞서서 한 인간 스콧니어링에 대한 책 안의 짤막한 소개를 옮겨보자면 

스콧 니어링은 1883년 미국 한 탄광도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며 자본의 분배문제를 깊이 연구했는데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앞장서다 해직되었다. 그 후 톨레도 대학에서 근무했으나 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주장하다 또다시 해직되었다. 
1917년 반전 논문을 발표하여 스파이 혐의로 기소되어 1919년 연방법정에 피고로 섰지만, 배심원들의 30시간에 걸친 긴 숙의 끝에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사회로부터 위험분자, 과격분자로 몰려 소외를 당했다. 
생의 후반기로 접어든 니어링은 스무 살 연하의 매력적인 여성 헬렌 노드 (지금은 헬렌 니어링으로 더 잘 알려진)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는 버몬트에서 그리고 후에는 메인에서 그들은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했고 겨울에 농장이 얼어붙어 농사를 지을 수 없으면 여행을 떠나고 강연을 하고 저술을 하며 지냈다. 
1983년 8월 24일 100세가 되던 해, 스콧 니어링은 부인 헬렌 니어링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1백 년의 시간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으로 의미있고 충만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실천적으로 보여준 사람이었다. 

책의 커버내지에서 

우선 대충 이런 사람이 스콧 니어링이라는 사람이다. 

 이 책이 출판되었을 때 다른 출판사에서도 헬렌 니어링이 쓴 다른 책과 스콧니어링의 다른 저작들도 같이 소개되었던 것 같은데, 우선 충분한 지성을 가진 본인의 글을 읽고 싶기도 했고 출판사도 맘에 들어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알아왔던 자서전중에, 대부분은 제대로 된 품격을 갖추지 못한 자서전들이 많았다. 말하자면 나는 이래 저래 살아왔는데, 그 때는 무지 힘들었고 그렇지만 나는 잘 버텨왔으며.. 어쩌구 저쩌구 하는 신변잡기적인 개인의 주절주절 하소연식의 수기, 자서전이라고 말하기 곤란한 그런 것들, 어쩌면 제대로 된 자서전을 대해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그런 선입견에 기초하여 이 스콧 니어링 자서전역시 쉬운 마음으로 읽으려고 했는데, 이건 그런 분류의 시시콜콜한 개인사가 아니고 자신이 인생전반에 가까운(이 책을 썼을 때는 80세즈음이었고 이후 그는 20년을 더 살았으므로)그동안의 시간들을 통해 그 시간의 사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거쳐온 사건, 그리고 그 사건에 기초한 본인의 현재의 사상을 기술한 것이었다. 

스콧 니어링은 굳이 분류하자면 사회주의자이다. 그리고 채식주의자이며, 자연주의자이고, 평화주의자이며, 경제학과 교육학을 오랫동안 연구했으며 수사학학위를 받은 뛰어난 모국어실력을 바탕으로 전세계 각국을 다니며 강연을 하고 끊임없는 저술을 하고 자기의 주장을 펼친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는 이 책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주장과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는 것인데, 단순한 지식의나열이 아닌 이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팔순노인의 혈기왕성하고 총기발랄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신념들이 한 문장 한 문장 그가 또박또박 강연을 하는 듯한 느낌으로 전해져온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우수한 원작과 탁월한 번역이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는 탄광촌의 부자집 아들로 태어났다. 마을의 유지인 할아버지아래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던 그의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자라났으나 그렇다고 흥청망청 돈 쓰는 방법을 교육받으면서 자라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그는 빛나는 지성이 되어 편안한 교육자의 직업을 가지고 평생 유복하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언제부턴가 경제학을 계속 연구하면서 인생의 진로를 바꾸게 된다. 그리고 평생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위해 살아왔다. 

본인이 고통을 겪었다거나 고초를 당했다는 이야기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왜 그런 분위기가 사회전반에 형성되었는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촛점을 맞추어 나는 내도록 이게 한 사람의 자서전인지 어느 인문사회과학 서적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의 객관성을 놀랍도록 유지하고 있었다. 

 책을 읽어봐야 알게될 일지만, 스콧 니어링이 살아온 생은 절대 쉬운 인생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향해 고집스럽게 인생을 이끌어 온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꼭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는가 하는 현실타협적인 생각이 고개를 들 때, 그 신념의 두께가 얼마이냐에 따라 "그렇게까지 산다"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기쁨이 될 것인지, 고생스러운 가시밭길이 될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다. 

책을 통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일게다. 이 책을 통해, 받은 것은 다른 서적과 다를바 없는 고민이 하나 주어졌지만, 생활가까운 부분에서 하나씩 습관을 변화시켜나갈 수 있게 되는 신기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꼭 그를 본받을 필요는 없다.그렇지만 책 속에 담긴 그의 작은 주장중에 단 하나라도 가슴에 새길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아직 만나보지 못하신 분들은 꼭 스콧 니어링이라는 사람을 한 번 만나보시길 바란다. 그리고 그에 대해 존경심을 갖든 반발심을 갖든, 어떤 감정이라도 생각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나 역시 사회주의에 대한 스콧의 생각은 당시의 상황을 생각했을 때 환상이 많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그가 조금 더 살았다면 뭐라고 했을지가 참 궁금해졌다. 

그는 미국인이었지만, 미국이 2차 세계대전이후 원폭발사를 결정한 후, 당신의 정부는 나의 정부가 아니라는 말과 함께, 그저 한 사람의 국제적인 세계시민이 되길 희망했고 이후 단 한번도 투표를 하지 않았다. 조국까지 저버리면서 그가 가꾸려고 했던 것. 그것은 무엇인지, 과연 조국이나 애국이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도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였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신념이 있는 사람과 그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사상과 세계를 올곧게 지켜나가는 인생과 그렇지 못한 인생, 어쩔 수 없이 그렇지 못할 수밖에 없는 인생, 끊임없이 타협해야만 하는 듯이 보이는 인생... 우리의 수없이 많은 다양한 인생중에서,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어떤 인생으로 보내야 할 것인가.

200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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