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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김훈의 현의 노래를 읽고 잠이 든 후,

눈을 떠서는 김 훈의 강산무진을 읽었다.

 

그가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뭐라고 답했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어느 쪽인지는 나도 대충 알겠지만, 그건 그거고, 나는 그 사람의 팔뚝을 움직여서 쓴, 어깨를 움직여서 쓴 문장이 고귀할 뿐이다.

김훈을 읽으면 김훈을 닮고 싶고, 신경숙을 읽으면 신경숙을 닮고 싶다.

 

아무도 닮고 싶지 않을 때, 그 날이 바로 때가 아닐까 한다.

 

강산무진도를 보러 가야겠다.

중앙박물관에 있는지, 어디에 숨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림과 음악을 조금 더 조용히 듣고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한 문장을 읽고 또 읽고 또 읽는 연습도, 많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한다.

처음부터,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한 인간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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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주의자 2009-08-15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치 같은 방입니더. 문학에 대한 막연한 경외감이 권력가들의 취미에 부합하는 것 같습니더. 구질구질한 게 인생이라면 구질구질한 게 작가일텐데. 그런 경외감은 어디에서 생산시킨 아우라입니꺼.
제공된 모든 인프라가 요구하는 방식은 무엇이겠습니꺼. 알라딘의 공간에 제공된 이런 글쓰기의 방이 세상을 여는 동시에, 닫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 의미심장합니더. 두서 없지만 작은 느낌이니께. 나의 욕구불만이 이런 허투로 된 글이 나왔습니더.

연꽃언덕 2009-08-25 05:27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 ㅎ 재미있게 읽은 댓글입니다. ^^
 

시간이 지나서 아이가 글자를 잘 읽게 되고, 혼자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할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갖추게 되면,  

우리는 물병이 놓인 식탁에 앉아, 아이는 사과를 먹으면서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마주 보고 앉아 각자의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날은 그저 기다린다고 오는 것은 아닐게다.  

나도 아이가 잘 읽고 쓰고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나도 그 때 뭔가 읽고 생각할 거리가 남아있어야 하며,  

평화로운 시절이 이어지도록 매일 , 오늘 하루만 산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 꿈을 꾼다.  

그런 날이 오도록. 꼭 오도록. 이 지옥을 같이 건너겠다고. 아이를 업고 건너겠다고.  

용암이 들끓는 지옥을 건너고 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건너지 말고 아이를 업고 건너야겠다.  

이 위태로운 통나무 다리에서 타 죽을 수도 있다. 앞만 보고 발걸음만 조심할 것. 등에 업은 아이의 중심을 잡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지옥을 건너는 법.  

일단, 건너면 된다. 그 다음일은, 그 다음에 생각하도록 하자.  

2009.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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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까지 그러지 마라, 제발. 너까지는 그러지 마라. 

나는 애원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너까지 그러지 마라. 너까지 날 괴롭히지 마라. 너까지 나에게 너와의 관계로 힘들게 하지 말아라.  

내가 선택한 길들은 늘 이따위 진흙탕, 갯벌, 진창, 엉망진창. 무너진 담장, 깨진 유리 따위가 산재하는 중단된 공사판.  

매 순간 충실하지 않았다는 것의 댓가가 이다지도 큰 것인지. 과연 정말, 모두 다 나의 잘못인지, 아니면, 아니라면.  

무슨 운명 따위가 이 따위인지. 

나는, 다시 한 번 신에게 묻고 싶다.  

이제는, 그만 해도 되지 않느냐고.  

아직도 부족하시냐고. 어디까지 가라는 거냐고.  

나 오늘 정말, 당신을 원망한다.  나는 욥이길 원한 적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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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해 안에 어디든 다녀오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애.    
   

 

그래서 나는 터키에 세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떠난 여자의 글과, 미대륙을 횡단한 서른 살 청년의 글들을 읽었다.  

그러나 결론은, 나도 지금 여행중이라는 것. 

이 여행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며 약, 30여년정도는 족히 지속될 것이라는 것.  

30년짜리 여행 괜찮지 않은가.  

길 위의 여행을 하는 순간에는 늘 매사가 아쉽고 간절했는데 이 긴 여행을 시작한 지 5년도 채 되지 않아, 나는 여행중이라는 사실을 잊고 말았다.  

나는 여행중이다. 누가 뭐래도, 여행중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언젠간 고향으로 돌아갈지 또 다른 곳으로 떠날 지 모르는 여행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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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가 되면, 유치원 버스들이 아파트 단지에 속속들이 도착한다.

그 때 부터 놀이터가 붐비기 시작한다.

예전과 다른 이상 고온 현상이 지속된 이번 주, 상자갑 같은 집안에 갇혀있던 아이들이 터져 나왔다.

오후 2시 부터, 저녁 7시까지. 해가 길어지자, 유치원 끝난 아이들, 학교 끝난 초등학생, 놀이방에서 나온 아이들이 계속해서 놀이터를 찾았다가 떠나가곤 한다.

집에서 혼자 노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가 놀이터에 나가자고 보채면서 놀이터에 아무도 없지 않느냐고 반문도 한다.

나는 TV를 틀어 아파트 곳곳에 설치된 CCTV를 확인시켜준다. 어디 놀이터에 사람이 있는지, 아이와 함께 확인한다.

 

우리는 놀이터로 향한다.

그리고 삼삼오오 또래 엄마들이 모여 있는 곳을 피해 나는 멀찌감치 자리를 잡는다.

아이는 모르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멀뚱하니 쳐다보기도 하고, 혼자 놀기도 한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다른 엄마들이 행여 나에게 말을 걸까봐 두려워 하며 혼자 뚝 떨어져 앉아서 책을 펼친다.

"나에게 말 걸지 마시오" 라고 무언의 선포를 하는 셈이다.

 

나는 아줌마들과 이야기를 나누기가 귀찮다.

나 역시 아줌마이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자녀들의 이야기로 시작되고, 형제가 있는가에 대해서 묻게 되고, 아줌마들은 자녀들의 나이로 은근한 서열을 매긴다. 각자의 나이를 묻는 것은 자녀들의 나이를 묻고 난 다음이다. 아이의 나이가 생각보다 너무 많거나, 너무 적거나 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첫 만남에서 서로의 나이를 묻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나는 그 과정이 괴롭다.

큰 애는 몇 살이예요 - 다음에 이어지는 놀라운 표정들, 반복되는 질문들. 나는 그런 것들이 지겹다.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우울한 것.

아줌마들의 신변잡기 보다, 가끔 나에겐 루쉰이 더 중요하다.

 

내가 이 아파트에서 대화를 나누는 단 한 사람 - 그 사람이 오기 전까지 나는 침묵한다. 

200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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