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 1 - 초원의 바람
장룽 지음, 송하진 옮김 / 동방미디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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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할까.
당신이 상상할 수 없던 떨림과 충격을 안겨주기 위해 초원의 늑대가 왔다. 라는 책의 카피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무협소설과도 같은 표지에 빤한 내용이 아닐까 했던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흥분했고 떨었고 가슴이 아파왔다. 그리고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4년반을 지내오는 동안, 늑대의 고향, 몽골에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 진한 후회를 했다. 물론 지금 늑대의 고향으로 간 들 늑대는 남아있지 않지만 말이다. 늑대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멸종되었고 중국의 내몽고 지방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한다. 검색사이트에서 찾아본 늑대의 사진은 모두 철장 안에 갇힌 모습이었다. 이제 우리에게 야생늑대는 전설속에 남아있는 모습 뿐일지도 모른다. 마치 이 책 속으로 야생늑대들의 혼만이 빨려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狼. 은 중국어로 늑대를 말한다. 이 책은 중국작가 장룽의 대작이며, 그가 문화대혁명 시절 몽골의 엘룬 초원에서 보낸 11년의 노동기간, 그 때 매료된 은빛 늑대에 대한 매력을 오랜세월 연구하고 다듬어서 만든 역작이라 하겠다.
내몽고, 지금은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의 근원지가 된 황량한 사막. 이 책은 어쩌면 그 광활한초원이 사막이 된 이유가 바로 무지한 인간들이 저지른 늑대의 멸종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 지도 모른다. 책에 따르면 초원의 먹이사슬은 이렇다. 초원에 사는 동물들의 먹이사슬중 가장 아랫그룹에 속하는 것은 들쥐와 햄스터, 그리고 조금 크기가 큰 것으로는 마르모트와 산토끼를 들 수 있다. 이 것들은 산속과 초원에 굴을 파고 서식하며 왕성한 번식을 자랑한다. 그리고 상위 초식동물로 가젤이 있는데, 가젤은 이동속도도 만만치 않지만 그 무게또한 적지 않아 대규모로 이동했을 경우 초목을 황폐화 시키기가 쉽다. 그 초원에서 유목을 하는 사람들은 양을 주로 키우고 그 양을 치기 위해 말을 타고 개를 훈련시켜 양치기를 하는데, 이 초원의 최고 포식자가 바로 야생늑대인 것이다. 야생늑대는 간혹 양이나 말떼를 습격하여 유목민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그들은 주로 마르모트와 들쥐, 햄스터부터 시작해 가젤까지 골고루 잡아먹기 때문에 마르모트등의 설치류가 산을 황폐화 시키고 양들이 먹을 풀까지 모두 뜯어놓는 것을 막으며 가젤 또한 늑대의 주먹이가 되기 때문에 초원 생태계를 조절한다는 것이다. 몽골에 사는 유목민들은 이 늑대들과 늘 대치되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그들은 늑대에 대한 토템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늑대가 초원을 지켜주는 신과도 같은 작용을 하며 그 곧은 기개와 뛰어난 전투력과 협동심등이 사람들이 늑대를 숭배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늑대는 상당히 매력적인 동물이 아닐 수 없다. 예전에 인터넷상에서 돌던 늑대는 일부일처를 철저히 지키는 동물이라는 설처럼 말이다. 그게 사실인지의 진위여부는 늑대에 대해서 좀 더 연구를 해봐야겠지만, 이 소설은 분명 늑대를 신격화 시킬 수 있을만큼 매력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전 중국 대륙의 중심을 지나 서쪽의 티벳 아래 자그마한 마을들을 지나는 여행을 했을 때 베이징에서 왔던 긴 머리의 좋은 카메라를 가졌던 여자를 기억한다. 그 여행에서 나는 30대의 미혼 여성 배낭족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그녀들은 모두 한족이었고 고학력에 고수입을 자랑하는 도시처녀들이었다. 그녀들은 소수민족들의 축제에서 그 모습들을 사진에 담으며 뇌까렸었다. 한족이 가장 재미없는 민족이라고. 한족은 춤도 노래도 기개도 없다고. 그들이 봤던 이족이나 티벳민족들의 춤과 노래는 그야말로 산과 사막을 모두 집어삼킬 듯 웅장하고 화려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첸젠(작가의 분신인 듯)도 역시나 그러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듯 했다. 소설속엔 베이징에서 하방으로 내려온 첸젠이 인간의 욕심을 부려 한 마리의 늑대를 키우게 되는 이야기가 중요한 메타포로 작용한다. 변질된 몽고족들과 한족들, 그리고 혁명의 바람역시 초원을 황폐화 시키는 데 한 몫을 하지만 그 커다란 구조 안에서 첸젠의 무리한 실험 역시 작은 구조를 또 이루는 액자식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늑대와 초원을 지키는 일은 인간에게는 아무래도 무리였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지금 30년이 지나 늑대가 사라진 몽골 초원은 모두 사막이 되어가고 그 사막에서 이제는 모래바람만이 불어오고 있다. 간혹 비리거 노인이라는 몽고족의 현자와도 같은 인물의 목소리가 매우 크다고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소설만큼은 이미 사라져버린 세상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후회로 인해 무척이나 흥미롭다.
그 여행길에 만났던 야크를 치던 목동들을 기억한다. 험한 산길을 내달리던 버스 앞에서 야크와 양을 몰던 목동들을 길을 쉽게 비켜주지 않았고 버스 기사는 그들이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버스 안에는 휘발유냄새와 흔들거리는 탈 것에 익숙치 못한 티벳 소녀가 구토를 했고 안경을 쓴 신사는 그녀에게 화를 냈다. 거기도 초원이 있었고 양떼가 노닐고 하늘에 독수리가 날았는데, 길을 비켜주지 않던 목동들은 아직도 길을 비켜주지 않을까 궁금하다. 이제는 그들도 오토바이를 타고 양을 치거나 아니면 축사를 지어 대량 생산에 일조를 하기 시작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방운동 [下放運動]

중국에서 당 •정부 •군간부들의 관료화를 막기 위하여 실시한 운동.

중국이 당 •정부 •군간부들의 관료주의 •종파주의 •주관주의를 방지하고 지식분자들을 개조하며 국가기구를 간소화한다는 명분으로, 간부들을 농촌이나 공장으로 보내 노동에 종사하게 하고 고급 군간부들을 사병들과 같은 내무반에서 기거하며 생활하게 하는 간부정책으로 1957년 3월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하방’된 중앙 및 성급(省級) 지방간부는 300만 명에 달하였으며, 여기에 학생들과 군간부들을 합치면 1,000만 명에 달하였다.

문화대혁명 때에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1980년대 다시 재개되었다. 특히 도시의 중 •고등학교 졸업자들을 변방지방에 정착시켜 도시의 인구과잉과 취업난을 완화시키는 편법으로서도 사용되어 각지의 하방청년들의 반발이 극심해져 사회문제로까지 야기되었다. 1991년 현재도 10만 명의 대학생들이 광산 •공장 •농장으로 파견되는 등 이 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2007.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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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수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6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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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 우리 문학선생님은 안모모씨라는 소설가였다.

그가 쓴 소설들은 매우 맘에 들었지만, 작품수가 많지 않았고 그리고 인기작가는 되지 못했다. 그의 소설은 그저 괜찮은 소설로 문학계에서 구석자리 한 군데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듯 했다.후에 학교를 그만두고 그의 모교에 강사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가 좋은 소설가가 되어주길 기원한 적도 있었다. 나는 이문구라는 작가의 이름을 들으면 늘 그가 생각났다.한 두번 술에 취한 채 수업에 들어오기도 했고 매우 재미나고 엉뚱한 행동을 잘 하기도 했던 그 선생님은 대회란 대회에선 모두 상을 휩쓸던 우리 학교의 잘나가는 문예부를 이끌고 있었는데, 그 중 그의 총애를 받던 한 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이문구"라고 대답을 했다 하며 역시 싹수가 있는 학생이라고 극찬을 했던 것이다.

나는 그 때 무얼 읽고 있었나. 수능필독한국소설따위를 읽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문학수업시간은 늘 한 사람이 소설을 강독하고 아이들은 완전히 듣기 능력으로만 그 소설들의 줄거리를 정리하고 평론을 쓰는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어떻게 하면 동백꽃이나 봄봄을 맛깔나게 읽을 수 있을까를 고심했던 고정 강독자였다. 그의 칭찬을 받던 아이가 좋아하던 이문구라는 소설가는 "관촌수필"이라는 소설을 썼다는 것만 알았지, 그의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읽으려는 시도도 별로 하지 않았다. 그리고 10년이 넘게 지나 작년 가을 서점에서 우발적으로 이 책을 샀다. 사고 나서도 책장에 오래도록 꽂아두었다.

 

관촌수필은 뼈대있는 집안 출신 이문구 작가자신의 고향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작가가 직접 밝혔듯이, 실존하는 인물들의 이야기, 직접 들었던 이야기들이기도 하고 그의 유년시절을 만들어준 관촌이라는 그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들이라 조금 더 신경써서 잘 써보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77년도에 발표된 이 작품을 30년만에 읽는 느낌은, 물론 옛날 소설이 맞구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 만한 글재주를 가진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의 글재주는 투박하고 과장되지 않은 묘사에 있고 향토적 색채가 가득한 사투리의 현란한 구사에 있다. 충청도 사투리에 거친 입담, 그들의 상욕까지 모든 것은 문학적 꽃으로 피어날 만큼, 정말 아름다운 묘사들을 이룬다. 왜간장에 찍어 청국장에 찍어죽일 놈이라니, 아, 이다지도 현란한 욕을 나는 우리 모친 이외에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한국말의 상말에 대해서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의 욕설만이 비유와 묘사, 기지넘치는 해학이 가득한 표현의 정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자주 듣던 똥물에 튀길, 개가 차갈, 거지가 물어갈, 등등..의 묘사가 바로 여기 이문구의 소설속에 더 멋진 해학스러운 욕설들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어 있고, 지루한 듯하게 빽빽한 묘사속에 중심되는 진짜 재미난 이야기들이 큰 맥을 갖추고 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연작소설인지라 일락서산, 화무십일, 녹수청산, 공산토월, 관산추정, 여요주서, 월곡후야등 몇 편의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어서 하루에 한 편씩 천천히 곱씹으며 줄 쳐가며 읽으면 더 값어치 있을 듯 하다. 그리고 그 소설의 여운은, 신림 6동 시장앞에 소반을 내놓고 파는 장사치를 보고 어디선가 소반사려를 외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솔이 할아버지가 생각이 나는 것으로 다시 뭉게 뭉게 피어오르는 것이다.

 

우리나라 문학계, 바로 지금 이 시점 2007년도에 이렇게 살아숨쉬는 한국어를 묘사할 수 있는자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궁금하다.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적으로 큰 스승으로 모셔야 할 소설이 아닐까 한다.

 

2007.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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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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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멕시코 이민자들을 태운 영국 상선 일포드 호는 1905년 4월 초 제물포항을 출발한다. 국운이 기울어 가던 때였다. 이들 이민자는 유카탄 에네켄 농장 이민 브로커 존 마이어스와 일본 대륙식민합자회사가 1904년 10월부터 모집한 한인들이었다. 1천33명의 이민자들은 남자가 702명,여자가 135명,아이가 196명이 었다. 40여일간 항해 중 아이 둘과 어른 한 명이 숨지고 한 명이 태어났다. 1905년 5월 12일 멕시코 중서부 태평양 연안 살리나 크 루스 항에 도착한 이들은 곧바로 남부 유카탄 반도 메리다로 이동 해 에네켄 농장에서 한많은 이민 생활을 시작한다. 현재 5세대까 지 내려오고 있는 멕시코 한인 후손들은 최소한 3만명이 넘는 것 으로 추산된다.

에네켄은 선박용 밧줄 등의 원료가 되는 용설란의 일종. 이민 1세대들은 멕시코에서의 첫 이민 생활을 메리다 일대 에네켄 농장에서 일해야만 했었다.

장미희 임성민 주연의 애니깽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에네켄 농장에 도착한 조선인들은 영어도 스페인어도 몰랐고 단지 에네켄이라는 식물의 이름은 애니깽으로 와전되어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애니깽이 되었다.

김영하의 장편소설 "검은 꽃"은 멕시코 이민 1세들의 이야기이다. 멕시코라는 땅에 처음으로 조선인들이 말을 디딘 바로 그 사건, 1033명의 한인들이 1905년 5월 12일에 멕시코 중서부 살리나 크루스 항에 도착한 그 사건, 그 1033명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어떤 소설이 딱히 가치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힘이 조금 더 드는 소설이 있고, 좀 더 자유로운 소설이 있을 뿐이라고 할 지도 모른다. 김영하의 검은 꽃은 자료가 많이 필요한 소설이다. 멕시코 이민사를 이해했어야 했고 그에 대한 정확한 수치들이 남아있다면 그런 수치들도 필요했으며, 가상의 이야기를 덧붙여야 하지만 기본 소재는 사실에 입각한다. 거기에 소설가는 살을 입히고 윤기를 낸다. 그리고 멕시코라는 땅에 대해서도 알아야 했다. 작가 후기에 밝혔듯, 이 소설은 누군가의 피로 쓰인 한 줄로 시작한 소설이며, 잘 정리된 자료들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는 소설이라고 했다. 그리고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를 부인과 함께 답사하며 소설의 많은 부분을 완성했다고 했다.

1033명이 자세한 내막도 모르고 그저 墨西家라는 미지의 땅을 향해 배를 탔다. 그들은 멕시코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고 그만큼 그 나라에 대해서 무지했다. 그리고 그 땅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도 막연했다. 그저, 이러나 저러나 비슷한 목숨이라는 절망적인 시대적 상황이 그들의 출항을 설레이게 했고 그들을 신대륙의 꿈으로 유혹했다. 미지의 세계는 위험이 동반된다. 새로운 것들은 항상 불안한 미래가 동시수반된다. 그러나, 무지몽매했던 계몽기 조선인들에게는 단지 불안한 미래가 아닌, 인류의 정의가 불분명한 세계로의 진입을 뜻했다. 그 때는 아마 백인들 눈에 백인들 외의 다른 인종들, 누렇거나 붉은 인종들은 유인원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유인원을 인간의 범주에 넣어야 하느냐를 놓고 아직도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그들은 오로지 가진 몸뚱이 하나로 버텨야 하는 노동계약에 팔렸지만, 인간이길 주장했고 인간으로 남기 위해 투쟁한다. 스스로 투쟁하고 이웃과 투쟁하고 농장주와 권력에 투쟁했다. 그리고 결국 남의 나라 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싸우고 전쟁하는 것이 너무나 익숙한 소모품들이 되어간다.

사람이 운명이란, 참으로 절묘한 것이라서,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처지들이 많으며, 한 번의 결정이 예상보다 수만배 더 큰 효과를 내어 인생을 홀라당 뒤집어버리기도 한다. 문제는 스스로 그 운명의 꺽이는 점을 잘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검은꽃은 인생이 뒤집어진 사람들의 분투를 그리고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언제부턴가 작가의 마음으로 책을 읽게 되는데, 작가 스스로 참 뿌듯하고 즐거웠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격동의 시기, 작가 말대로 매력적인 연대인 1910년대에, 격정적인 인물들을 창조하고 그들의 후일담까지 마지막으로 적으면서 작가는 정말 이 소설을 끝내고 싶지 않은 아쉬움에 휩싸였겠다고 생각했다.

첫 날 책을 4분의 1정도 읽고 그 다음날 새벽에 책을 잡기 시작해 다 읽고 나니 아침 7시였는데, 자리에 누우면서 나는 검은 꽃을 영화로 만든다면 배우를 누구를 캐스팅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이 연수는 아무래도 고현정밖에 없어. 김이정은 예전같으면 최재성이 적당할텐데, 조금 더 젊은 배우가 필요해. 그렇다면 이번에도 고현정의 짝은 천정명 뿐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소설을 읽고 나만의 화면에서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은 재미난 소설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야기꾼으로 인정받고 있는 김영하의 검은 꽃, 새해를 여는 소설로 박진감과 긴장, 그리고 삶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다듬기에 충분히 멋진 책이다.  
 

2007.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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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두는 여자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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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주목받는 중국작가 샨샤.

그러나 이 책도 역시 불어판이 번역되어 나온터라, 도서관에는 프랑스 문학으로 분류되어 있다.

샨샤는 1972년 베이징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문학에 천재적 소질을 보였다고 알려져 있다. 1990년에 프랑스 국비 장학생으로 파리에 유학, 1997년 프랑스어를 공부한 지 7년만에 프랑스어로 천안문을 발표했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지. 간혹 언어에 관해 이렇게 천재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한 나라에 한 명정도 있는 듯 하다. (우리나라에선 안정효씨가 그렇다고 생각함)

 이 책은 한 만주족 소녀와 일본장교와의 영혼의 교류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막판에 이르러 두 사람이 사랑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렇게 주인공들도 착각할 만한 상황이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 다른 환경이라면 사랑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을텐데, 상황과 조건이 그렇게 되어서 어쩌다보니 사랑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었고 결국 그 사랑을 믿게 되었다고, 최면에 걸린 듯한 그런 상황들 말이다. 간혹, 그런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2차대전이 진행되던 시기, 만주에 진출한 일본군, 그 일본군의 장교와 만주족 소녀가 서로 무명씨의 관계로 한 광장에서 만나 바둑을 둔다. 일요일마다.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상해에선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졌던 홍구공원 (현 루쉰공원)이 그러하다. 돌로 된 테이블들이 수십개 있고 그 테이블 위엔 장기판이나 바둑판들이 펼쳐져 있다. 우리의 검은 고무신 정도에 해당되는 검은 단화를 신은 노인들이 보온병을 들고 나와 하루종일 낯선 사람과 대국을 펼치다 이야기를 나누다 얼후를 연주하다 돌아간다. 그런 낯선 자들과의 교류가 낯설지 않은 문화를 배경으로 한 소설, 한 소녀는 전쟁을 겪으며 여자로 성장해가고 한 청년은 전쟁을 겪으며 자기 자신의 영혼속으로 파고들어간다. 그리고 전쟁은 결국 아무도 구원하지 못했다. 

 전쟁이라는 배경과 대국이라고 표현되는 작은 전쟁의 상징, 바둑, 그리고 일본과 중국이라는 남녀의 상징, 작가의 명쾌하고 똑똑한 발상과 배치가 새삼 돋보이는 소설이긴 하나, 그리 공을 들였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역시 젊은 작가의 소설은 어쩔 수 없어. 라는 생각이 든다고 할까.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경험이라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젊은 가수의 목소리도, 젊은 작가의 시도, 젊은 화가의 그림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객기와 풋기가 어디선가 모르게 배어나와 결국 그 치부가 드러나고 독자로서 결국 실소를 금치 못하게 되기 때문인데, 샨사의 바둑두는 여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화로 만들면, 배우들이 연기를 정말 잘 해주면 재미난 영화가 될 것 같긴 하지만, 이 책을 번역한 이상해 선생이 번역했던 다른 중국의 불어판 소설 가오싱젠의 "영혼의 산"이 자꾸 떠올라 아쉽고 또 아쉽고 아쉬웠다. 

 대부분 중국현대문학은 가볍고 편안한 어조를 띤다. 중국문학의 특징이랄 수도 있다. 무겁고 지루한 것들은 중국문학에서 많이 찾아볼 수 없다. 중국에서는 통속문학도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으며, 대중에게 가까운 것이 善이 되는 짧지 않는 혁명의 풍습때문인지, 가오싱젠의 소설 따위는 절대 인기를 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 현대문학에서는 얼마나 기발한 소재를 가지고 메타포를 잘 사용하느냐, 그러니까 바둑기사가 돌을 잘 쓰느냐 하는 것처럼 어떤 기호를 가지고 작품을 구성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그에 따르면 이 소설은 중국 현대 문학에서 그리 나쁘지 않은 평을 받을 수 있겠으나, 나는 아쉬웠다. 좀 더 잘 쓸 수 있지 않았냐고 하고 싶었다. 

 그녀의 또 다른 소설을 읽고 싶어지기도 했지만, 가오싱젠의 피가 뚝뚝 떨어지던 그 절절한 글들이 그리웠다. 뭔가 다른 소설을 읽어봐야하겠다. 

 2006. 12. 9. 

 ※ 여기서 한 번쯤 이런 문제를 생각해봐야겠다.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중국 작가가 썼는데 불어로 되어 있다면, 그건 불문학인가 중문학인가. 문학에도 크로스오버가 펼쳐지기 시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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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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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를 읽고 나서, 이 책을 추천받았다.

금지된 서적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 책 역시 같은 주제를 가졌다고.

그래 그럴만도 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내가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를 읽으면서 내내 떠올렸던 것이 중국이라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 독후감에서도 밝혔듯이, 중국이라는 나라도 금서와 금지된 서양문화, 폐쇄된 사회라면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이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마오쩌뚱의 부인인 강청을 비롯한 4인방이 주도가 되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극도 좌파적 오류를 범했던 문화대혁명. 그 기간중에 공산당과 붉은 것이 아닌 모든 것들은 반동으로 치부된다. 믿을 수 없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그 시절, 중국은 신호체계를 거꾸로 사용해, 붉은 등에 길을 건너고 푸른 등에 멈추는, 붉은 것만이 살아남았다는 시대이기도 했다. 서양의 것들은 모두 부르조아의 유산으로 낙인찍혔고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속에서도 이런 파란만장한 문물들의 이야기는 남아있다. 대약진 운동에서 이어졌던 문화대혁명속에 수많은 지식인들은 숙청당했고, 숙청당하지 않았으되 피해갈 방법이 있던 자들은 망명을 했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자살했다. 수많은 책들이 불태워졌으며 지식인들은 작품을 발표할 수 없었고 모택동의 어록이 담긴 붉은 책들이 정수로 꼽혔다. 그로 인해 찬란했던 중국문화는 다시 한 번 진시황제의 분서갱유를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문화와 역사는 정체되었다. 

 이 책은 그 시절에 하방운동으로 시골에 내려간 두 청년의 금지된 책 훔치기 이야기이다.

어쩌면 이 책에서 묘사된 중국의 금지된 정도는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에 비할바가 아니다. 이들은 우연한 기회에 금지된 책들이 들은 보물상자와도 같은 가방을 훔치게 된다. 그리고 그 가방속에서 발자크와 로맹롤랑등의 서양소설들을 하나씩 꺼내어 훔친 사탕처럼 살살 녹여서 몸속에 고이 고이 간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들을 나누어 주기까지 한다. 이들은 그 책들을 온 몸으로 받아들여 흡수하고 소화하고 배설까지 한 것이다. 

 두 청년의 이런 모험담에 바느질 하던 소녀가 있었다. 그들이 배설한 책으로 인해 그녀가 변화하고 결국 두 청년이 의도하지 않았던 바대로 소녀의 미래가 바뀌어버린다. 

이 책은, 문학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 풍자와 해학을 엮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 시절을 다시 추억하는 사람이라면, 우스개소리처럼 남의 이야기처럼 무용담처럼 이야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우리를 가르치던 한 노선생은, 문화 혁명 시절당시 군인이 학교를 점령하고 매일 아침 군사 훈련을 받았던 시절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글썽였고 내가 세를 얻어살던 집주인은 하방정책으로 하남에서 27년 젊은 시절을 홀라당 바치고 세월이 몇 번을 바뀐 후에 96년도에 상하이로 돌아왔던 부부였다. 그들은, 그 때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했다. 그저, 고생스러웠다고, 힘들었다고,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말끝을 흐릴 뿐이었다. 노동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지식인들은 괴로웠다. 팔다리를 잘리고 입을 틀어막힌 채 항아리속에 담겨진 것처럼, 사람마다 원하는 것은 다른데 그들은 통일되어야만 했다. 

 문학이 사람을 바꾸는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반론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문학은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꿔놓기도 한다. 나 역시, 내 남편과 처음 만나 나누었던 이야기의 공통주제가 다이호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였다. 남편은 그 책을 읽고 중국유학을 결심했다고 했고 나는 그 책의 책날개 표지에 내 독후감이 한 구절 들어갔다며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결혼했다.

지금도 내가 책꽂이의 가장 위쪽에 소중하게 간직하는 다이 호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처럼, 이 책은 발자크로 인해 인생을 바꿔버린 한 소녀와 그 시절을 묵묵히 견디어낸 두 청년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어떤 사연을 가졌는지 정확히 책에 기술되어 있지 않지만, 그도 아마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문학과 자유를 찾아 망명을 하였던 것은 아닌지, 이 책은 불어로 쓰여졌고 불어판을 번역한 것인지라, 도서관 중국문학 코너에서 찾을 수 없고 프랑스문학 서가에서 찾을 수 있었다. 

 
문학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문학이 우리를 어느정도 길러주었는가.

문학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강력한 마력을 지닌 것이 아닌지.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렇게 스며들고 변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06. 12. 3. 

 

   
 

문화대혁명 [文化大革命]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중국의 최고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주도된 극좌 사회주의운동. 
 사회주의에서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대중운동을 일으키고, 그 힘을 빌어 중국공산당 내부의 반대파들을 제거한 일종의 권력투쟁이다. 마오쩌둥 사망 후 중국공산당은 문화대혁명에 대해 ‘극좌적 오류’였다는 공식적 평가를 내렸다.

 

 하방운동 [下放運動]

중국에서 당 ·정부 ·군간부들의 관료화를 막기 위하여 실시한 운동. 
 중국이 당 ·정부 ·군간부들의 관료주의 ·종파주의 ·주관주의를 방지하고 지식분자들을 개조하며 국가기구를 간소화한다는 명분으로, 간부들을 농촌이나 공장으로 보내 노동에 종사하게 하고 고급 군간부들을 사병들과 같은 내무반에서 기거하며 생활하게 하는 간부정책으로 1957년 3월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하방’된 중앙 및 성급(省級) 지방간부는 300만 명에 달하였으며, 여기에 학생들과 군간부들을 합치면 1,000만 명에 달하였다.

문화대혁명 때에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1980년대 다시 재개되었다. 특히 도시의 중 ·고등학교 졸업자들을 변방지방에 정착시켜 도시의 인구과잉과 취업난을 완화시키는 편법으로서도 사용되어 각지의 하방청년들의 반발이 극심해져 사회문제로까지 야기되었다. 1991년 현재도 10만 명의 대학생들이 광산 ·공장 ·농장으로 파견되는 등 이 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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