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로 버지니아 울프 전집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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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버지니아 울프의 두번째 소설이다. 어릴 때 어떻게 손에 들어온 세월이라는 소설은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으나, 작년에 읽은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버지니아 울프의 깊이에 탄복했다고나 할까. 그녀의 소설은 그 유명한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여 주인공들의 심리묘사에 탁월한데,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소설전체의 흐름을 잃고 길을 헤매게 하는 강력한 흡입력을 자랑한다. 등대로는 댈러웨이 부인을 출간한 해에 구상을 시작해 1927년에 출판한 소설이다. 댈러웨이 부인은 주인공 댈러웨이 부인의 심경과 그 주변인물들의 심리묘사를 이어지듯 해 내는 단 하룻동안의 일이라면 등대로는 조금 더 긴 시간을 묘사한다. 주인공으로 보였던 램지부인이 전반부 “창”
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후 2,3부에서는 릴리라는 주변인물이 주인공으로 다시 자리를 잡는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을 릴리라는 인물로 설정한 듯 한데, 평론가에 따르면 이 소설은 일종의 버지니아 울프의 부모에 대한 살풀이 굿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사춘기 시절에 어머니를 잃고 평생을 신경쇠약과 정신병에 시달렸던 그녀에게 부모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이 소설을 통해 남성중심의 가족제도가 폭정과 억압이라는 강렬한 비판을 전개한다. 그리고 오롯이 홀로였던 주인공 릴리의 심경을 통해 여성의 독립이 얼마나 위태롭고 어려운 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음침하나 햇빛이 잘 드는 우거진 정원을 가진 시골의 한적한 저택을 떠오르게 한다. 아침엔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바닷가의 집같고, 늘 손님들이 북적여 그 뒷치닥거리로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시골 유지 집의 마나님과 그 하인들의 바쁜 손놀림을 연상케 한다. 티 테이블에 모여 시간을 축내며 탁상공론이나 하고 있는 지식인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 사람들의 매캐한 담배연기 속에서 뒤켠으로 물러난 그 집의 많은 아이들이 계단에 앉아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내가 전문적인 영문학 평론을 할 수 있는 깜냥이 되지 않으니 이 소설에 대한 평은 생략하기로 한다. 그녀의 소설은 그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이 찾을 것이며, 그리고 그녀의 소설의 맛을 제대로 알기 위해 스스로 많은 자료를 찾아볼 것이라 생각한다. 단지, 평범한 독자인 내가 느낀 것은 이렇게도 잘 쓰는 작가가 20세기를 살다가 갔다는 것과 이렇게 치열하게 글을 쓰던 그녀가 신경쇠약과 정신병을 앓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 정도라고나 할까.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인간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매 순간의 폭풍들을 이다지도 치밀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그녀의 시도와 용기에 나는 탄복할 뿐이었다. 그리고 역자의 말대로 출판사의 경제적 이익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만한 버지니아 울프의 전집을 출판한 솔 출판사에게 감사를 드린다. 댈러웨이 부인은 이미 빌려 읽은 책이지만, 솔 출판사에서 펴낸 것으로 한 권 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왜 버지니아 울프인가 라는 말이 이 책의 머리말에 적혀있다. 문학이란 쓸모없는 것이라던 대학 때 현대소설과목의 선생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러나 그 쓸모없는 문학들이 얼마나 많은 양분들을 우리 영혼에 쏟아부어주는지는, 피와 땀으로 쓴 작품들을 읽어내는 사람들만이 알게 될 것이다. 나 역시, 그 양분들을 영혼에 부어주기 위해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할지언정 오늘도 열심히 읽는 것 뿐이다.



2007.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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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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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 초판 2000년 8월 1일

여수 돌산도 향일암 – 남해안 경작지 – 석영정, 소쇄원, 면앙정, - 광주 – 옥구 염전에서 심포리까지 – 만경강 하구 갯벌 – 안면도 – 전라남도 구례 – 화개면 쌍계사 – 강원도 고성 – 여수의 무덤들 – 선암사 – 도산서원과 안동 화회 마을 – 경주 감포 – 소백산 의풍 마을 – 부석사 – 영일만 – 진도 소포리 – 진도대교 – 덕산재에서 물한리까지 – 도마령 조동 마을 – 하늘재, 지름재, 조소령 , 문경새재 – 관음리에서 – 양양 선림원지 – 태백산맥 미천골 – 섬진강 상류 여우치 마을 – 섬진강 덕치마을 – 마암분교 – 암사동에서 몽촌까지 – 잠실에서 여의도까지 – 여의도에서 조강까지



2권 : 초판 2004년 9월 13일

조강에서 – 김포평야 – 김포 전류리 포구 – 고양 일산 신도시 – 중부전선에서 – 파주에서- 남양만 갯벌 – 남양만 장덕 수로 – 선제도 갯벌 – 서해안 염전 – 경기만 등대 – 광릉 숲에서 – 광릉 수목원 산림박물관 – 광릉 숲 속 연못에서 – 가평 산골마을 – 남한 산성 기행 – 여주 고달사 옛터 – 양수리 – 광주 얼굴 박물관 – 모란시장 – 수원 화성 – 안성 돌미륵



20대를 다 보내고 난 뒤 간절하게 소원하던 것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했었다. 그것은 걸어서, 혹은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해보지 못한 것이며, 자전거를 타고 먼 곳을 여행하지 못한 것이었다. 자전거를 오래도록 타고 싶다는 소망은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4년 반을 보내면서 6개월은 자전거 없이 지낼만큼 물리도록 타 보았지만, 요즘들어 한국 관광공사에서 내보내는 CF처럼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다녀보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은 가슴 한 구석에 남아 나를 놀린다. 한 때 어느 제약회사 드링크제의 이름을 딴 국토순례가 인기를 끌었었다. 20대의 창창한 체력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힘을 가지고 내 나라를 한바퀴 둘레둘레 돌아본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다. 오랜 여행은 사람을 지치게 하기도 하고 회복할 수 없는 피부껍데기를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 땅의 많은 곳을 가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질투가 나서 쉽게 읽지 않는 남의 기행문들, 그러나 김훈이라는 작가의 문체는 나를 그의 여행속으로 끌어들였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은 재고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에세이집이다. 머리가 희끗해진 전직 기자출신 소설가의 자전거 여행. 듣기만 해도 매력적이고 상상만 해도 부러움뿐이다.

오래된 한지의 느낌을 낸 책의 디자인은 책의 내용과 문체에 잘 맞아떨어진다. 김 훈의 자전거 여행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가 아니다.

우리가 패키지 여행 5박 7일로 일본전체 여행을 다녀온다면, 그 여행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어떤 사진을 찍었는가는 어렵게 기억해 낼 수 있어도, 가슴속에서 느낀 것들은 금새 사라지고 만다. 여행을 잘 하는 방법은 지도위에 나타난 유명사적들을 게으르게 팽개치고 어느 벤치에 앉아서 가만히 사람과 풍경을 구경하다 오거나 어딘가에서 쪼그리고 앉아 그곳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오는 것이 더 좋다. 나는 이런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계획을 세워놓고 중간에 몇 군데 건너뛰기도 하고 걷다가 아무데나 들어가 밥을 먹고 아무데나 주저앉아 가져간 음악을 듣거나 하는 것들을 더 좋아한다.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순간은 바람이 많이 불던 닝보라는 중국 해안가의 도시애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강변에 앉아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을 듣다가 졸던 순간과 그 곳의 방금 문을 연 커피숖에서 마셨던 콜롬비아 커피였고, 랑무스라는 외진 마을의 언덕위에 올라 온 마을에 울리는 불경 외는 소리를 들으며 해가 지는 것을 멍청하니 바라보고 있던 순간이었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은 그렇게 읽어야 한다.

자전거로 이 곳 저 곳을 다니는 늙어가는 작가는, 강하게, 그러나 고요하게, 그의 눈으로 본 치열한 삶의 현장들을 담백하게 담아낸다. 그가 말하는 여행지들은 모두 사연이 있고, 모두 살고자 한다. 그 곳에서 그는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추억해내고 또는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대단한 칭송도, 대단한 찬양도 없다. 그는 그저 그 곳엔 그렇게 많은 것들이 흘러가고 변하고 사람들이 살았고 또 살고 있다고 말 할 뿐이다.

그의 자전거를 따라 한 곳을 머물다 떠나면 잠시 책을 덮고 눈을 감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 그의 다음 여행지를 따라간다. 이 책은 빨리 읽지 않는 편이 좋다. 그리고 책장에 꽂아두고 다시 한 번 떠올려 읽어야 더 좋다. 그가 늘 책마다 만경강에 바친다고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된다.

여름 휴가철이 다가온다. 그의 글을 읽으며 부석사가 그리웠고 진도 앞바다가 그리웠다. 마이산의 쓸쓸하던 봉우리가 생각났고 대포항의 분주함이 아쉬웠다. 나도 김훈만큼의 나이를 먹으면 이렇게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다닐 수 있을 것인가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은 치열한 삶을 이해한 사람에게 더 값지게 다가올 것이다.



2007.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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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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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으며, 살아 있는 동안의 몸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다 받아 내지 못할진대, 땅 위로 뻗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으리.



저자의 하는 말이라고 제목이 붙은 서문에 있는 글귀다.

김훈의 칼의 노래를 기억한다면, 그 문체와 서정성, 그리고 작가가 깊이 이해한 그 옛 사람들의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남한산성 역시 그러하다. 교과서에서 말하는 필독소설 외에, 내가 진정으로 좋아했던 작가는 신경숙이었다. 그녀의 섬세한 문체와 소설 제목처럼 깊은 슬픔을 끌어올리는 그 문체에 반했고 일기장에 그녀의 문체를 흉내 낸 글들을 숱하게 적었었다. 이제, 나는 칼의 노래 이후 김훈의 문체에 빠져들었다. 간결하고 단호하나, 때로는 그 긴 호흡들, 그리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그 옛스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문체, 어떤 평론가가 말하길 그의 문체가 가장 잘 살아있는 작품이 칼의 노래와 바로 이 남한산성이라고 하는데 나 역시 그 의견에 동의한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다. 인조반정으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인조, 명에게 예를 표하던 작은 나라의 임금은 대륙의 바람에 휩쓸려 청을 섬기지 않겠다는 의사에 분개한 청나라의 침입에 강화도로 피난을 가려 하였으나, 그 역시 청의 침입으로 이루지 못하고 현재의 송파구에 위치한 남한산성에 피난 아닌 피난을 하게 된다. 겨울, 그 해 겨울은 유난히 혹독했고 성안에는 50일간의 식량뿐이었다 전한다. 이 소설은 그 남한산성 안에서 버티던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한다.

서울을 버려야 서울을 지킬 수 있다는 선문답 같은 화두를 안고 소설은 시작한다. 그 안에서 백성들은 주렸고 대신들은 치욕스러웠다. 왕은 떨어지는 꽃잎처럼 가련했다. 왕은 결국 삼전도 (송파나루부근 현재의 잠실대교 정도의 위치)에서 청의 칸에게 예를 표하고 엎드려 절을 한다. 칸은 그를 어여삐 여겨 조선팔도를 초토화시키지 않고 조용히 돌아간다. 그들의 항복을 안고 의기양양하게.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이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고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였을까를 생각했다. 소설속의 말들은 모두가 헛헛하였고, 눈물이 치밀어 올랐으나 흐르지 않았다. 그리고 오래도록 이생강류의 산조를 들었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

그들은 모두 고통받았다. 이름없는 백성들도, 말로써 정의를 논하려는 대신들도, 최고의 자리에 앉은 왕역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야 하는 그들은 모두 고통스러웠다.

책을 덮으며,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야 하는 지금의 백성들을 떠올렸다. 어울리지 않는 요식업계에 뛰어들어 3년째 고전을 면치 못하나 잘 버티고 있는 지인도 생각났다. 우리는 모두 버티고 있지 않는가, 결국 어찌되었던 성문이 밖에서 열리거나 안에서 열리거나 그 성문이 열리고 냉이가 지천에 피어나는 봄이 오길 바라면서 우리는 모두 버티고 있지 않은가.

고립된 그 겨울의 노래는 그렇게 스산했다. 
 

2007.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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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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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은 소설가다. 그 이전에 기자였건 어쨌건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다. 내가 기억하는 김 훈은 진정한 소설가로서이지 기자로서의 그의 글은 단 한 줄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각종 문학상에서 상을 받았던 그의 소설들이 참 좋았다. 그가 쓴 단편소설 “화장”은 정말, 아, 나이 먹은 소설가, 그 인생의 매력을 느끼게 해주었고 이어 읽었던 칼의 노래에서는 땀흘리는 소설가의 노동을 알았다. 구절 하나 하나 뚝뚝 땀이 떨어지는 듯 꽃이 떨어지는 듯 했고, 그 소설의 첫 구절이었던,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라는 구절을 수십 번 곱씹었다. 그의 소설 “개”에서는 늙어가는 남성성을 그리워하는 작가를 만났다. 그리고 그의 소설 “남한산성”이 베스트 셀러에 올랐다 하여 그 책을 사놓고, 그리고 일전에 사 두었던 이 책을 먼저 읽었다. 밥벌이의 지겨움.

뭐 해 먹고 살지 걱정이다.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돈 버는 것도 지겹다 라고들 많이 얘기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지 않냐는 것이 우리들의 밥벌이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밥을 벌어먹기 위해서, 혹은 밥을 벌어 먹이기 위해서 거리로 나서고 그 모든 수모를 수고라고 위장하여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간다.

설마 우리가 밥만 벌고 있는가, 아니 이제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은 아득히 멀어 보이기도 한다. 물론, 아직도 먹고 사는 것이 걱정인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살기가 많이 좋아져, 끼니를 걱정하는 일은, 그래도 우리 부모세대보다 많이 적어졌다. 밥, 은 단순히 음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말하는 것일 게다. 좀 더 윤택하게 살기 위해, 좀 더 편하게 살기 위해 우리는 꾸역꾸역 일을 하고 노동을 해야 한다. 그 지겨움에 대해서 김훈이 뭔가 멋진 이야기를 해 줬기를 바랐건만.

이 책은 두, 세쪽 가량의 아주 짧은 작가의 에세이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 에세이들은 설령 화장실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넘길 만큼 가벼워 보일 수도 있으나, 가만히 숨을 고르고 읽다보면 이 양반, 참 정성이 넘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 책에서 밝혔듯이 굳이 아직까지도 육필 원고를 고집한다고 하는데, 그 육필의 힘이 무엇인지, 이 짧은 글들 속에서도 살갗에 닿을만큼 느낄 수 있다. 그저 가볍게 블로그에 씨부리는 것처럼 지껄여 책을 내놓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이야기들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러나 김훈의 글은 달라서, 읽다가 아, 내가 딴청을 하고 있구나 반성하고 각잡고 다시 읽게 되는 그런 힘이 있다. 그는, 적당히 살았고 (48년생, 우리 모친과 동갑) 세상에 적당히 실망했으며, 그러면서도 아직도 에너지가 넘쳐 흐른다. 이것이 그가 오십넘어 펜대를 잡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기운일 것이다. 아니면 그는 내가 오십만 넘어봐라, 하는 마음으로 죽기살기로 밥을 벌다가 날 잡아잡숴하며 엎어져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힘이 넘치고 그래서 열심히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육십이라는 나이는 이제 애매한 나이가 되었다. 직장에서 밀려나 밥을 벌지 않아도 되지만, 노인정에 가 앉아있을 수는 없는 나이. 일부는 손주들을 봐주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기도 했겠지만, 그래도 가만히 앉아서 밥상 받아먹기는 조금 민망해하는 아직 건강한 나이, 그 나이에 김훈처럼 숨겨두었던 칼을 꺼내서 쓱쓱 갈아 써내려 간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값진 것인가.

장대하거나, 거창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으나, 김훈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들어볼 만한 이야기들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왜 이 양반의 타령을 듣고 있나 싶었으나 책을 덮으면서 김훈의 다른 출판물들을 기웃거리는 나는 또 무엇인가. 그게 바로 김훈의 힘인가?

2007.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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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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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씩 물어본다. 너는 자장면 한 그릇만한 소설을 쓰고 있느냐?

너는 네 소설로 단 한 번이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맛있고 풍요롭게 해 준 적이 있느냐?"

"나는 이 소설을 두 번 썼다. .. 어쨌든 처음 것보다는 두 번째 것이 조금 낫다. 하지만 이 소설이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소설을 다 썼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 일 년간 무수한 내부 검열관들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내가 진이 다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이 소설에 관해 내 체력은 바닥이다."

 

언젠가, 한 소설가가 한 말을 늘 생각한다.

글을 쓰는 서재의 창가에 늘 한 그루의 나무가 보인다고. 그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들어 책을 내야 하는데, 그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을 글을 써야겠다고 늘 다짐한다고.

 

작가 김언수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프라이데이와 결별하다로 등단했다. 그리고 이번엔 이 책으로 5천만원 고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했다. 저자는 후기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그리고 분수도 모르고 덜컥 상까지 받아버려서 이제 빠져나갈 구멍도 없고, 귀싸대기 맞을 각오도 되어 있다며, 돈주고 사는 책에 대해서 기탄없는 독자들의 욕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많이 두려워 하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KBS TV의 책을 말하다에서였다.

최근엔 매회 3권의 책을 추천하는데, 이 책은 김갑수라는 문학평론가와 영화배우 오지혜씨가 나온 자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른 한 명의 패널은 죄송스럽게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김갑수라는 낯선 평론가를 기억하는 것은 그가 이 책을 읽고 매우 충격을 받았다는 듯한 이야기를 했었고, 작가가 야비하고 비열한 인상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고 했기 때문이다. 어이없게도 제작진은 그 자리에 작가를 초대해놓고 있었고 작가는 마치 퇴근길에 오뎅 하나 사 먹고 방송국 방청객 알바를 하기 위해 앉아있는 사람같은 모양새로 거기에 앉아서 김갑수의 평을 모조리 들은 셈이다. 그의 인상은 그냥 회사원 같았다. 별로 재미없는 직장에서 시간을 때우다 온 사람처럼 가방을 메고 있기까지 했던 것 같다.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공대리처럼 말이다. 할 일 없는 직장에 그래도 매일 매일 출근하면 월급은 주니까. 하는 자세로 살고 있는 사람같은 인상.

 

최근의 소설은 낭만주의가 다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김언수의 캐비닛은 얼마 전에 읽은 워싱턴 어빙의 "립 밴 윙클"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소설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세상에 신종족이 나타난다. 손에서 은행나무가 자라고 입속에 도마뱀을 키우고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3년이라는 세월이 없어졌거나 매 주말마다 도플갱어를 화장하러 가는 살아남은 샴쌍둥이 자매등, 온갖 기괴한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 허름한 13호 캐비닛에 들어있다. 주인공은 그들의 기록을 읽고 그들과 전화통화를 하고 그들과 상담을 하고 술을 한 잔 마시기도 하고 섹스를 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매우 특이한 사람 같지만 또 전혀 그렇지 않기도 하다.

 

책장도 아니고 서랍장도 아니고 매우 부실해 보이며 인테리어라는 단어을 모욕하는 듯이 생긴 것이 캐비닛이다. 그 캐비닛에 세상의 비밀이 들어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캐비닛이라는 장소 안에 들어있는 철저한 구라덩어리다. 소설이라면 이 정도 구라를 떨어도 되지 않을까 한다. 정말 이 소설은 사기꾼의 최고봉이 오른 자가 썼을 법한, 초 낭만주의 상상의 결정체이다.

거짓말을 끊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시사프로를 본 적이 있다. 거기에 나온 한 사기범은 자기는 한 마디 문장을 시작하면서 걷잡을 수 없은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꾸며진다고 했다. 자기는 죄값을 치루고 나와 소설가가 되어야겠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이 작가도, 어쩌면 그정도의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정말, 재미있다. 근래에 읽은 한국소설중에 제일 재미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캐비닛 어때? 라고 물어본다면, 오나전 짱이지. 라고 대답하고 싶다.

물론 이 캐비닛은 재미뿐만 아니라 그 속에 숨어있는 메세지와 메타포도 매우 많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설교하지 않는다. 작가는 소설가가 뭐 하는 사람인지 정확하게 주제파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소설가는 구라쟁이다. 세상을 설교할 필요도 없고 설득할 필요도 없다.

그저 허풍이나 떨면서 글로서 허영을 표출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은 것이 세상의 모든 증상과 현상에는 다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으니까. 어떤 부분을 어떻게 편집해 내느냐 하는 것이 소설가의 자질이다. 어떤 자들은 김언수를 이 시대의 새로운 괴물같은 작가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얼굴을 봐버렸기 때문에 괴물같은 작가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그저 그는 괴물같은 세상에 시류에 잘 적응한  또 한 명의 심토마일것이다.

 

분명히 외계인은 존재할 것이다. 라고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이 소설에 푹 빠질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와 이게 영화로 만들어지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라고 나처럼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다 읽고 난 다음, 이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게 영화가 된다면 봉준호나 박찬욱이 손을 대야 할 것 같은데, 그들은 이미 다른 사람이 한 이야기로 뭔가를 만들 것 같지는 않다.

 

"이 저열한 자본주의에서 땀과 굴욕을 지불하면서 힘들고 어렵게 번 돈으로 한 권의 책을 샀는데 그 책이 당신의 마음을 호빵 하나 만큼도, 붕어빵 하나만큼도 풍요롭고 맛있게 해주지 못한다면 작가의 귀싸대기를 걷어올려라."라는 작가 후기, 그는 자본주의를 잘 알고 있는, 세상을 잘 알고 있는 작가 같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일부러 심사평을 읽지 않았다. 그가 받았을 5천만원이 내심 부럽기도 하지만, 귀싸대기를 올려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대신 김언수라는 이름을 들으면 그냥 혼자 킥킥 대고 웃을 것이다. 뭐 박민규를 생각해도 그렇긴 하지만.

 

2007.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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