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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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대를 풍미한. 작가라고 하면 하루키를 빼 놓을 수 없겠다.

그의 소설 상실의 시대는 90년대 우리 청춘들을 뒤 흔들고 지나갔다.

우리는 그로 인해 하루키에 대한 환상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싶다.

나는 사실 그의 광팬은 아니었다.

그의 상실의 시대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줄거리는 전혀 기억나지 않고 그저 상실 자체에 대한 책이었다는 어렴풋한 분위기만 기억하고 있다. 몇 년이 흘러 그의 시대가 지나가고 난 뒤 1973년의 핀볼인가, 74년의 핀볼인가..를 시작해서 댄스 댄스 댄스 등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았지만 나는 하루키가 제일 좋아. 라고 말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었다.

나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 정도였다.

그는, 상실과 아픔, 전후 일본의 세계에서 성장하면서 이상한 세계를 경험하지 않았을까. 갑작스러운 변화와 알 수 없는 힘들이 세상을 조작하고 있다는 음모론에 어느 정도 동조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출간되고 난 뒤 말들이 많았다. 너무 많은 인세를 지불했다는 둥, 예전의 하루키가 어땠다는 둥, 하루키도 늙었더라. 라는 둥.. 여러가지 악평들이 적지 않게 있었지만, 나는 그가  오랜만에 쓴 아주 긴 장편을 올해가 가기 전에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예전의 하루키와 다르다고? 예전의 하루키와 당연히 다르지 않겠는가. 상실의 시대를 쓰던 하루키는 그 때의 하루키일 뿐이고, 1Q84를 쓴 하루키는 오늘의 하루키 일 뿐이다.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동안 그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어떤 세계와의 접촉과 시도에 대한 관심을 보였던 것이 아닌가 싶다. 책을 읽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고, 내가 읽은 책들에 대한 인용구가 나와서 반가웠고. 그리고 나는 매우 빠른 속도로 이 책을 읽어 나갈 수 있었다. 덴고가 자꾸 덴코로 읽히는 것만  빼고는 가독성과 흡입력에 있어서 당연히 프로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하루키도 인간만의 존재의식을 넘어서서 차원을 넘나드는 성찰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사회를 넘어서 종교적인 것,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를 인용해야 할만큼 독자들에게 설명도 해 줘야 하는 그런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흉몽에 시달렸다. 나에게도 아마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모양이지. 하고 생각했다.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있고 세상은 정말 또 다른 세상으로 연결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의 오늘은 2Q09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그 깊은 상실을 나는 다시 발견했는데, 역시 사람은 타고난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2009.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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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영웅전설 -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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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2003.6. 지구영웅전설
2003.8.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2005.6. 카스테라

2006.9. 핑퐁

단편

 

갑을고시원체류기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누런강 배한척

 

그러니까, 박민규라는 작가는 이 소설 지구영웅전설을 출간한 지 2달만에 역작,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출간한다. 이미 써놓았을 것이다. 부지런히 써놓고 기다렸을 것이다. 책이 출간되기를.

삼미슈퍼스타즈를 먼저 읽었던 나로서는 박민규라는 이 생김새 사뭇 독특한 아저씨의 그 독특한 글에 완전히 매료되었었다. 이후 이어진 그의 단편들에서 아, 너무 쉽게 얘기하는 거 아냐? 할 정도의 시기심을 느꼈었다. 누군가는 질질 늘어뜨려 청승맞게 이야기 하는 것들을 박민규는 가볍고 통쾌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약간은 시큰둥하다. 그래 뭐 그런거지. 그렇다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정도의 어투라고나 할까.

 

체험하지 않은 것을 쓰는 것은 작가의 역량이라는 이야기를 읽었다. 박민규는 우리가 체험할 수 없는 이야기를 여기서 펼쳐놓는다.

지구 영웅 전설엔 우리가 익숙히 잘 아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슈퍼맨, 배트맨, 아쿠아맨, 원더우먼, 스파이더맨, 헐크 등등. 그 영웅들 속에 우연히 등장한 바나나맨.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얀. 한국에서 온 어설픈 영웅의 엑스트라다.

 

지구 영웅 전설은 미국의 영웅들 사이에서 성장기를 보낸 바나나맨의 이야기다. 그가 영웅들 사이에서 세계의 섭리를 깨닫고, 그 영웅들이 세계를 어떻게 지배하는가에 대해서 알게 된다는 간략한 내용. 쉽게 말해, 미국 패권주의를 희화화한 풍자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만화상의 캐릭터들을 소설로 끌어들인 점과 박민규 특유의 입담좋은 서술과, 쉽게 할 수 있을 수도 있는 단순한 상상력을 소설의 영역으로 승화시킨 점이 과연 상을 받을만 한 작품이라 하겠다.

 

그리 두껍지 않고 심오한 내용을 가벼운 듯이 이야기해서 매우 잘 읽힌다.

두꺼운 책들에 질식할 듯한 기분이라면, 박민규의 데뷔작으로 다시 글자들의 춤을 신나게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2007.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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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 (외) 범우 비평판 한국 문학선 36
나혜석 지음 / 종합출판범우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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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 (외) 범우비평판 한국문학 / 나혜석편 / 이상경 책임편집, 해설 / 범우사 펴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신뢰하는 출판사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시리즈물로 고전을 펴내는 회사들에 대해서 그런 생각들을 더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한길사를 어떤 사람은 중앙서적을, 어떤 사람은 예전 고려원을, 그리고 나의 윗세대는 삼중당 문고를 신봉할 것인데, 나에게 삼중당 문고와 같은 의미는 범우사였다. 나는 범우사의 출판물을 신뢰한다. 특히 범우사에서 펴낸 해설판 문학전집 같은 것은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이번에 처음 손에 넣은 범우사의 시리즈 물온 범우비평판 한국문학이다. 현재 제 42권까지 출간이 되었는데, 저자를 중심으로 대표 작품만이 아닌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까지도 수록한다는 것이 특이점이고, 출판사에서 밝히는 특징은 문학의 개념을 민족 정신사의 총체적 반영으로 확대, 기존의 문학전집에서 누락된 작가 복원 및 최초 발굴작품 수록, 문학전집의 편찬 관성을 탈피, 작가 중심의 새로운 편집, 학계의 전문적인 문학 연구자들이 직접 교열, 작가론과 작품론 및 작가, 작품연보 작성. 이라 한다. 이 책은 그 중 36번째 권 작가 나혜석의 글모음집이다. 나혜석이라 하면 한국최초의 여성서양화가, 정도로 알려져 있다. 불우한 인생을 살다 결국 어디선가 행려병자로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나혜석.

이 책은 그녀가 쓴 소설과 희곡, 평론과 수필들이 담겨있다. 책을 읽으며, 이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지 글을 쓰는 사람인지 굳이 명확하게 분류해야 하는가 싶을 정도로, 일단 문장력이 상당히 뛰어나다. 그리고 그 나름의 신조가 굳고 논리들도 명쾌하다. 과연 그 당시 신여성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사상은 2007년 현재 내가 하는 생각과 일치하기까지 했다.



그녀의 소설과 희곡은 자기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들이 많은데, 자신이 개척해 온 신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강한 긍지와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녀는 가난하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나 진명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화가로 등단을 한다. 그리고 일본에 유학을 가 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근대적 여성의식을 가지고 당시의 지식인 반열에 올라 이런 저런 글들을 잡지에 기고한다. 그녀의 글들은 대부분 파란을 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2007년인 지금 읽어도, 아, 이건 참으로.. 지나치게 솔직하고도 진보적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당시엔 오죽했을까. 하는 것이다. 결혼을 강요하는 아버지때문에 교원생활도 했었고, 적극적으로 청혼하는 친일파 김우영과 결혼한다. 김우영은 총독부에서 일하는 관리였고 후에 변호사를 개업하였으나 실패하여 다시 총독부로 들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경제적이 어려움과 시댁과의 갈등이 빚어졌고 이전에 김우영과 함께 했던 유럽여행에서 만난 최린이라는 자와의 염문설로 김우영에게 이혼을 강요당한다. 이혼하지 않으면 간통죄로 고소하겠다는 이미 딴 살림을 차리고 있던 김우영의 요구에 나혜석은 무력하게 동의한다. 그리고 이혼의 빌미가 되었던 최린에게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한다. 얼마간의 합의금으로 고소를 취하했지만, 그녀는 자식들도 보지 못하고 오갈 곳이 없는 신세로 전락한다. 미술재료비를 감당할 길이 없어 이우 그림을 팔아 먹고 살기 보다 글을 팔아 먹고 살게 되고, 40이 갓 넘은 나이에 양로원에 입소하게 되나 스스로 수번을 뛰쳐나와 행려병자로 발견되어 사망한다. 그녀의 인생은 단순히 파란만장한 것이 아니라, 너무 거대했다. 그녀가 이혼을 당하고 빈털터리빈 되었을 때 그녀의 화려했던 인생은 오히려 그녀에게 걸림돌이 되었다.



이 책엔 그녀가 이혼후 적었던 <이혼고백장>과, 이혼후 적은 “신생활에 들면서”, “독신 여성의 정조론” 등도 실려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것은 처지가 처지이다 보니 <모母된 감상기> 이다. 모된 감상기는 남성중심의 문단에서 편견으로 자리잡았던 숭고한 모성애, 자식에 대한 끝없는 자애로움은 모두 가식이라는 것을 신랄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임신과 출산은 고통 그 자체이며 육아는 그 고통의 연속일 뿐이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아이들을 키우고 때로 그 사랑과 예쁜 짓에 시름을 덜기도 하지만, 근간이 되는 것은 고통이라는 것에 대해서 매우 솔직하게 적고 있다. 이 글을 발표되고 백결생이라는 자가 비판글을 쓴 것에 대하여 답으로 “백결생에게 답함” 을 적어 “씨(백결생을 말함)의 ‘임신이란 그리 편한 일이 아니다’라는 일구를 보면 씨가 능히 알지 못할 사실을 아는 체 하려는 것이 용서치 못할 점이다”라는 매우 강경한 어조로 반박하고 있다. 그야말로 나혜석의 글은 용기백배, 가공할만한 배짱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글의 마지막에 적기를 “나는 꼭 믿는다. 내 <모 된 감상기>가 일부의 모중에 공명할 자가 있을 줄 믿는다. 만일 이것을 부인하는 모가 있다 하면 불원간 그의 마음의 눈이 떠지는 동시에 불가피할 필연적 동감이 있을 줄 믿는다. 그리고 나는 꼭 있기를 바란다. 조금 있는 것보다 많이 있기를 바란다. 이런 경험이 있어야만 우리는 꼭 단단히 살아갈 길이 나설 줄 안다. 부디 있기를 바란다.”라고 적었다. 책의 목차에 백결생에 답함은 모된 감상기의 뒤에 있어 나는 모된 감상기를 여러군데 줄을 치며 읽다가 맨 마지막 발표된 잡지의 이름과 날짜 밑에 “오, 나혜석, 당신은 내 입에 앉아있구려”라고 적었었다. 그래, 1923년에 적은 그녀의 글이 거의 80여년을 흘러 나에게 공명하였음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가부장적 제도의 희생양이었으며, 시대가 죽여버린 인물이다. 가부장적 남성중심사회에 돌을 던진 문장으로 보자면, 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맥락을 이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리라 생각된다. 그녀는 이광수등 당대 지식인들과 돈독한 친분을 이루고 있었고, 세상의 주목을 받던 그 화려한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해야하는지 정확히 알 지 못했다.


근대시기의 신여성에 대해서 그리고 그 당시의 사상이 우리의 생각보다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 그리고 나혜석이라는 인물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어갈 수밖에 없던 시대적 아픔과 그녀를 복원하고 싶은 노력에 가까워지고 싶다면, 나혜석 문집을 강력히 추천한다. 옛글이라 두려움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전혀, 어렵지 않고 매우 흥미진진하다. 오히려 현대의 지지부진한 컬럼들보다 백배 나으리라 자신한다.



2007.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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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의 포구기행 - MBC 느낌표 선정도서, 해뜨는 마을 해지는 마을의 여행자
곽재구 글.사진 / 열림원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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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출간된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한 때 출판계의 로또라고 불렸다는 MBC 느낌표의 책을 읽읍시다의 선정도서이기도 했다.

이 책은 사평역에서를 썼던 시인 곽재구가 한국의 포구를 다니며 사진을 찍고 사람을 만났던 이야기들이다. 시인 곽재구는 여기서 시를 이야기 하기도 하지만 잔잔한 에세이로 사람을 감동시킨다. 책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이유는, 그가 이야기 하는 포구가 단지 바다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해수욕장이나 백사장 같이 아름다운 풍광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삶의 모습이 있고 그 안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어머니 아버님들의 이야기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곽재구의 포구기행은 내내 땀흘리며 가난하지만 넉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풍성하다. 그리고 쓸쓸하다.

바다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풍족한 양식을 제공한다. 외로운 사람들에게 벗이 되어주고 슬퍼서 술 푸는 사람들에게 안주가 되어준다. 흥겨운 사람들에게 노동의 현장이 되어주기도 하고 갖가지 사연을 지닌 배와 선주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예전에 읽었던 신경림의 민요기행과 같이 읽으면 좋을 법하다. 수없이 많은 해외여행서들이 있고 우리에게 이제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를 가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피서철이 되면 바다를 찾고 해수욕장에서 놀다가도 포구를 들러 회 한 접시 소주 한 병을 하지 않던가. 그만큼 곽재구의 포구 기행은 날 것이 살아있는 회 한 접시 같은 싱싱한 노동이 살아있다. 책은 읽기가 쉽지만 깊이가 있다. 곱씹어 읽으면 회 씹는 것처럼 자근자근하다. 그가 직접 찍은 사진들도 매우 넉넉하다. 동양의 미라고 일컬어 지는 여백들이 가득하다. 글 역시 그러하다. 찬찬히 숨을 고르고 읽어야 더 맛이 난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곳들과 모르고 있던 곳들의 가치를 전해주며 가끔 무심코 들이대는 카메라에 대고 쌍소리를 하는 아낙과 열심히 조개를 캐 자식들을 공부시키는 강인한 어미들의 이야기가 있다. 오래 시간이 지나도 이 책은 소중하다. 포구들은 조금씩 변해가겠지만, 그 안에 숨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할 것이므로.

2007.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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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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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곤고해지면 자연이 그리워진다고 했다.


이제 "지난"이라고 이름을 붙여야 할 것 같은, 8월 더운 여름 어느 날 밤, TV 책을 만나다에서 소개했던 책이다. 그 날 TV 책을 말하다는 야외로 무대를 옮겨 시원한 초록색 속에서 프로를 진행했었다. 그리고 이 책은 유머가 깃들여진, 재미있는 여행서이며, 결국 목적한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다 종주하지도 못한 두 사내의 이야기라고 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거리로 말하면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의 두배가 넘는 거리이다. 미국의 조지아주에서 시작해 버지니아와 펜실베이니아, 뉴욕, 매사추세스를 지나 메인 주에 이르기까지, 군데 군데 쉼터와 산장이 준비되어 있지만 간혹 저 귀엽게 생겼으나 무시무시한 불곰이 출현하기도 하고 살인사건이 나기도 하는, 겁나는 길이다.


그 곳은 등산이나 하이킹등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꿈의 등반길이지만, 그 엄청난 거리 때문에 쉽게 발길을 시작할 수가 없고 Thru Hiker 라고 불리는 전제 코스를 한 번에 등반하는 하이커들과 구간을 나누어 종주를 하는 사람들로 나뉜다.


 


이 책의 주인공인 빌 브라이슨은 어느 날 이 엄청난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하기로 맘을 먹는다. 그러나 동반자를 찾을 수 없었고 뚱보이자 알콜중독치료를 받은 경력이 있는 오래된 친구가 (사실 종주의 동반자라로서는 장점이 단 하나도 없는)그의 종주에 동반을 하기로 한다. 그리고 어이없는 모험이 시작된 것이다.


 


책은 빌 브라이슨이 종주를 결심하고 종주준비를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종주를 위해 샀던 등산용품들의 가격부터, 그걸 팔던 종업원이 한 말과 종주 전 날 나는 미쳤어라고 생각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던 세세한 이야기부터 풀어낸다. 책은 내내 이런 식이다. 도덕이나, 그래선 안돼. 하는 윤리따위는 없다. 그저 그가 느낀대로 그가 본 대로 그가 들은 대로 마음껏 지껄이고 그래서 인간적으로 느껴지며 책의 행간에 적힌 유머들 때문에 킥킥거리며 웃을 수 있다. 단점이라면 그의 종주가 전혀 진지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위협적인 일과 무서웠던 순간들도 모두 기록하고 있지만, 책은 내내 유쾌한 어조를 잃지 않는다.


 


대부분의 여행서들이 (내가 읽은 것들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가지고 있는 품위는 없다. 진지하고 아, 나는 이 여행을 왜 하는가, 자아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나 자신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전투적인 삶에 대한 존중보다는 이 여행서는 그저 가기로 했으니까 가고는 있는데 언제라도 누가 소리 한 번 지르며 그만해! 라고 말하면 당장 그만둘 수도 있는 의지박약한 평범남들의 주책스러운 여행기이다. 예를 들면 배낭이 무거워서 싸온 식량을 죄다 버린다거나, 양동이만한 코카콜라를 마시며 정말 흡족해 한다거나,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거나 하는 "수행자"인 체 하는 여행객의 가식은 전혀없다. 그렇다고 철없는 이야기들만 가득한 것은 아니며, 작가의 박학한 상식들이 책의 곳곳에 묻어있어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얽힌 이런 저런 이야기들도 엿들을 수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토의 규모와 그 거리가 얼마나 되는 거리인지, 기후는 어떤지 기본적인 상식이 있었다면 좋겠지만, 뭐 꼭 그런 요소가 책의 필수상식이 되는 것은 아니고 이 바보같은 두 남자가 미친 짓을 시작하고 또 그 짓거리를 어떻게 종결짓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아, 나도 분명히 이럴꺼야 하는 공감과 함께 책에 파묻히는 매력이 된다. 아, 이 사람들은 정말 대단해 라고 생각하는 여행서가 아니라, 지들이 그렇지 뭐 킬킬킬 하게 되는 여행서라고나 할까.


 


스포일러겠지만, 이 책의 저자와 그 동반자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하지 못한다. 중간에 차도 타고 택시도 타고 햄버거도 먹고 그야말로 엉망진창의 하이킹이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어쩄거나 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다고.


 


어딘가를 가고 싶은데 엄두가 나지 않는 분에게 특효약이 될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매우 즐겁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좋은 책이다. (맨 마지막에 내가 이렇게 쓰는 부분은 꼭, 약장수처럼 느껴진다.)


 


2007.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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