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빠져드는 역사 이야기 -경제학 편 청소년을 위한 교양 오딧세이 1
황유뉴 지음, 이지은 옮김 / 시그마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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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거침없이 빠져드는 역사 이야기 시리즈의 첫번째 책이다. 이 뒤로 법학, 철학, 고대국가, 선, 건축, 고고학, 예수, 불교, 보물, 영화, 문학 편이 있는데 현재는 경제학, 법학, 철학, 고대국가까지 출간된 듯 하고, 흥미롭게도 모두 저자가 중국인이다. 중국검색사이트에서 經濟學的故事를 검색해보니 시리즈물로 나온 것 같지는 않은데 중국에서도 적지 않게 팔린 책인 듯 하다. 중국서적이나 중국어로 된 글들의 특징을 얘기하자면 중국 특유의 논리적인 화법이 있는데, 정의를 내리는 데 무척 명료하며, 1, 2, 3, 등 순서를 매겨 기술하는 것들이다. 이 책도 역시 중국인 학자가 쓴 티가 많이 나는 책임은 틀림없다. 그걸 뭐 어쩌겠는가, 중국 학자가 쓴 책이니 당연하기도 하겠지. 책을 펼쳐들면서 중국학자의 글이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형평성이 어긋나거나 혹은 공산주의식 경제론을 강렬하게 펼칠까봐 우려를 했으나, 나의 짧은 경제학 상식으로 봤을 때는 그다지 공산주의적 냄새가 많이 풍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중국의 현재의 경제정책을 옹호하는 듯한 분위기는 세심하게 살펴보면 조금씩은 느낄 수 있다. 중국의 경제정책이라는 것은 그 어느 이론으로도 쉽게 설명되지 않고 그 어떤 사회에서도 시도되지 않았으며, 오로지 현재 중국이라는 국가에서만 가능한 아주 특별한 정책이기 때문에 모든 학자들이 그 정책을 지지 하지 않고서야 살아남기도 힘들겠고 그러한 학자들의 지지가 국가의 존폐여부를 결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므로, 그에 대한 비판은 삼가하도록 하겠다. (중국에서 보낸 시간 내내 나는 이 나라가 언제 붕괴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아무튼.)

이 책은 매우 흥미롭고, 진지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다. 고등학생의 경제학 교과서로 대학신입생들이 교재로서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경제학의 발생부터 현재까지를 아우르는 폭넓은 지식들의 나열과 경제학자들과 그들의 저서에 대한 설명은 경제학 입문서로 적합하다. 컬러로 인쇄되어 있고 (중국에서도 컬러로 출판되었다 한다), 한 꼭지씩 나누어져 있으며 중간에 삽입된 경제학의 지식들과 소개된 이론과 학자들의 저서들에 대한 작은 팁들도 매우 유용하다. 초반에는 조금 생각할 만한 글들이 전개되다가 중반을 지나면서 책의 흐름에 마구 조정당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그게 작가의 역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독자의 집중력의 한계일 수도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줄을 쳐가며 읽었고 꼭 기억하고 싶어 두 번씩 읽은 부분도 있다. 서양중심의 경제학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은 경제에 대한 책이 아니라 경제학에 대한 책임을 주지해야한다) 동양, 그것도 오랫동안 공산주의노선을 유지했던 국가에서 살아남은 학자가 썼다는 것은 그 의의가 남다르다. 반정부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던 학자들은 중국 본토에 남아있지 않으나 이 사람은 매우 친정부적인 성향을 띤 것으로 보인다. (해군공정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라는 것과 덩샤오핑 이론에 대한 연구로 수상을 했던 경력등) 그런 학자가 말해주는 경제학에 대한 이야기는 은밀하게 중국의 정책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음을 옹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더 흥미롭겠지만, 뭐 꼭 모든 사람이 그렇게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고, 다른 경제학 입문서들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조금 독특한 입문서 한 권 더 갖춰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들었던 코카콜라 광고를 영화 중간에 아무도 모르게 삽입했더니 영화가 끝난 후 많은 사람들이 코카콜라를 찾더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세뇌당하고 왔던 그 나라의 유령들이 다시 나를 향해 손짓하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맨 마지막에 들어있는 에피소드는 감동적이긴 했지만 책의 마무리로서는 좀 어이없지 않는가 싶겠지만, 그게 중국식 기술법이라는 것도 다시 한 번 절감해야 했다. 이 책은 저자의 입김이 무척이나 강렬한 책인데도 불구하고 저자에 대한 소개나 저자가 쓴 머리말들이 없는 것도 조금 아쉬운 점이었다.



+출판사에서는 시리즈로 묶어내는 책인지라 그 첫권을 북꼼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왜 하필이면 여태 출간된 그 시리즈물의 모든 책들이 다 중국학자들의 책인지 매우 궁금합니다. 판권의 경제성인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셨었는지..

2007.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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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미셀러니 사전 - 동서양을 넘나드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앤털 패러디 지음, 강미경 옮김 / 보누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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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셀러니 Miscellany / 경수필  이 책의 원제는 A Shite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이다. 거의 모든 것의 개똥같은 역사라니.. SHITE 라는 단어는 똥이라는 속어로 쓰이기도 하지만 불필요하거나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표현하는 말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있다. 책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경수필이 이런 형태였는가? 하고 의심을 할 정도로 매우 간략하며 정확하게 그리고 위트있게 적혀있다. 책의 초반부에는 마치 상식을 나열한 상식백과사전처럼 느껴져 거부감이 일 수도 있지만 뒤로 갈 수록 저자의 역사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그에 대한 패러독스, 그리고 위트등을 느낄 수 있다.

 

제목은 매우 애매모호하게 어떻게 보면 역사서치고는 너무 경박하거나 무책임하게 느껴질 정도로 거의 모든 것의 자연사 / 거의 모든 것의 문화사 / 거의 모든 것의 생활사 / 거의 모든 것의 과학사 라고 네 장으로 나뉘어져 있고, 자연사에는 홍수, 태풍, 남극과 북극 등 간단한 명제들과 그에 대한 저자의 명쾌한 해석, 예를 들어 진화론 : 과학의 진보 혹은 지적 사기? 이런 표제어들과 작은 사이즈의 책의 한 두 페이지에 걸쳐 그 표제어에 대한 상식과 사실들, 그리고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적어두었다.

 

이 책은 책 날개에 적혀있는 인상깊은 해설이 책의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아파트 난방 장치가 고장난 어느 겨울 날 추위를 잊는 방법으로는 좀 엉뚱하게도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에 대한 편린들을 위트와 풍자를 곁들여가며 노트에 끄적이기 시작했다. 빅뱅과 창세기에서 시작해 대륙이동설과 다윈의 진화론을 거쳐 우주팽창설에 이르기까지 130억 7000만 년에 이르는 초인류사를 '거의' 빠짐없이 기록한 그의 집필은 난방 장치가 필요없게 된 초여름이 지나서야 비로소 끝을 맺었다."

 

그러니까, 나이가 지긋하신 한 역사학자가 손주를 앉혀놓고 재미난 이야기 하나 해줄까? 하는 식으로 역사적 사실들을 흥미롭게 풀어주고 있는 것이다. 책이 이렇게 많은 장으로 나뉘어 있으면 읽는 사람은 부담이 덜하게 마련이다. 책의 사이즈 역시 손에 딱 들어오는 작은 판형인지라 가방에 넣고 들고 다니기도 좋고 화장실에서 읽기도 좋다. 역사에 대해서 진지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혹은 그게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너무 가볍다는 것에 대해서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 나도 초반에는 이게 무슨 퀴즈대회 대비용 상식사전인가 싶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어떠한 사실에 대해서 위트와 풍자를 곁들일 수 있다는 것은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은 할 수도 없는 일이며 깊은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가 들려주는 역사밖 이야기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우리가 배우고 익혀온 역사적 진실들에 대해서 진정한 "역사적 철학"의 자세로 되새기게 한다.

 

어찌보면 상식의 나열이기도 하고 계속해서 사실들이 열거 되기 때문에 독서중 타성에 빠져 집중을 하지 못하거나 기억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화장실에 꽂아놓고 틈나는 대로 다시 읽어도 좋을 것이다.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한 사람이 읽어주고 모두들 흥미롭게 들을 수도 있을 법한, 대중성과 보편성을 지닌 재미난 책이다.

 

2006.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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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프로젝트 - 얼렁뚱땅 오공식의 만화 북한기행
오영진 지음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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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이라, 책 제목은 평양이라는 지역을 나타내는 고유명사와, 프로젝트라는 외래어로 합성되어 있다. 나의 선입견으로는 왠지 어색한 두 단어의 조합이다. 평양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지역성은 폐쇄된 사회의 수도라는 생각이 들어 프로젝트라는 외래어는 어울리지 않고 북한에서 즐겨 쓰는 더 순수한 우리말이나 아니면 두음법칙을 무시하고 중국어를 그대로 차용한 단어를 써줘야 더 잘 어울릴 듯 하다. 평양계획, 따위의 제목말이다.

이 책은 만화작가 오영진씨가 고난의 행군시절 (김일성 주석의 사망이후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2000년도까지 진행되었던 당적 구호정신 운동) 북한에 체류했던 경험을 토대로 지은 픽션이라 한다. 그 프롤로그를 나중에 읽은 나는 책을 읽는내내 모든 것을 다 실화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만큼 이 책의 내용들은 진솔하고 가식이 없어서 현실에서 충분히 있음직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주인공 오공식이라는 인물도 사상으로 무장되었거나 특별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아주 평범한 남한의 적당히 속물적이고 적당히 게으른 소시민이라는 것.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가 평양에 도착해 한 사무실에서 세 사람의 북한 사람과 이런 저런 취재를 하면서 북한 주민의 실생활을 들여다보는 동안 네 사람은 사상과 경계를 초월한 인간적인 어울림을 만들어낸다. 물론, 오공식은 때로 북한의 사상과 선전구호에 넌덜머리를 내고 (아리랑 축전에 대한 그의 태도) 나불거리는 입 때문에 주변인물들을 곤란하게 하기도 하지만 그 에피소드들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아서 적당히 쉬쉬하며 넘어갈 수 있는 북한사회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은 더 느슨한 면모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북한, 하면 긴장감부터 떠올리는 우리의 생각들을 풀어주는 듯 하다. 그런 이유로 책 속의 내용이 사실감있게 다가오는 것은 아닐는지.

나는 만화라는 장르에 매우 약한 사람이다. 그림이 들어간 글은 글로 지루하게 묘사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그림이라는 조금 더 구체적인 매체로 그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나는 그런 그림을 글처럼 읽어내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러니까, 그림과 글을 동시에 보면서 조합해내는 능력이 떨어져서 그림을 따로 보고 글을 따로 보는 이중적인 독서를 하게 되기 때문에 만화를 꺼리는 경향이 있고 그런 이유로 만화책을 볼 때는 남들보다 놓치는 부분이 더 많다고 할까. 그러나 만화라는 장르는, 일단 그림이라는 구체적인 매체가 있기 때문에 독자의 신경의 긴장도를 떨어뜨리는 장점이 있다. 편안하게 볼 수 있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읽고 있던 책을 잠시 치우고 이 책을 집어들었으니까.

이제는 통일 전망대라는 프로도 대낮, 시청률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대로 옮겨갔다. 극중에 나온 배기자의 이야기처럼 남쪽 사람들은 먹고 사는데 바빠서 통일문제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평양프로젝트라는 책을 읽는 우리의 자세도 북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하는 호기심이 통일에 대한 염원보다 더 높지 않을까. 책에는 정치적인 이야기를 생활속으로 깊게 밀어넣어 이북식 김장김치 속에 들은 동태살처럼 잘 숨겨두었고 그저 거기도 우리와 똑 같은 사람들이 그저 우리의 70년대 정도로 살고 있다는 이야기들을 적었다. 요즘은 책을 보게 되면 소장가치를 따지게 되는데, 이런 책은 온 집안 식구들이 골고루 읽을 수 있는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할 만한 책이므로 책꽂이에 꽃힐만하다할까. 조금 가볍게 시작했던 평양프로젝트, 작가가 많이 고민하고 많이 연구하여 만든 책이라는 생각에 책 표지의 한반도 그림을 자꾸 만지작거리게 된다. 
 

2007.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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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티베트 여행
박남식 지음 / 아침미디어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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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약 3년전쯤에 선물 받은 책이다.

그 때, 자유로이 가고 싶은 데를 가고 보헤미안 내지는 히피처럼 남들에게 보이기도 했던, (정신세계만) 그 때 어떤 분이 내가 살고 있는 도시로 오시면서 내가 매우 좋아할 것 같다시며 선물해주신 책이다.

그러나, 바로 앞 글 박완서의 잃어버린 여행가방에서 밝혔듯이, 불타는 질투심으로 인해 이 책을 읽지 않았다. 그리고 미뤄두었다. 나중에 티벳에 갈 때쯤에 읽어야겠다. 하고.

티벳이라는 곳은 중국내에서도 그리 만만한 여행지가 아니다. 지금은 칭장철도가 건설되었지만, 그 전에는 랜드로바 같은 4륜구동 자동차로 육로 이동을 하거나 비행기 외엔 방법이 없었고, 가는 방법이 문제가 아니고 외국인인 경우 여행허가라는 것을 받아야 했다. 나는 티벳은 저 뒤로 미뤄뒀었다. 웬만한 데를 먼저 가보고 그 다음 내가 티벳에 가도 되겠다 싶을 만큼 여행에 자신이 생기면 가보자. 라고 생각하고 티벳 고원 바로 아래 사천성 리틀티벳라인으로 불리는 장족자치구까지만 갔었다. 장족 자치구 역시 티벳과 별 다를 바는 없다고 하지만, 그 장엄한 자연은 아무래도 티벳만 못했고, 개발의 물결은 당연히 티벳보다 더 했다. 그곳도 다음 해 여행을 다녀온 친구에게는 많이 변질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이 책은, 그저 배낭하나 달랑메고 떠났던 인터넷 상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여행기와 다르다. 저자는 53살이라는 나이에,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티벳에서 1년을 보내겠다 생각하고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는 명상기행을 떠난 것이다. 창원여중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수학선생님이 농민활동을 했었고 남편을 통해 76년 요가를 만난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요가활동을 계속하고 있어서 삼법요가등의 지도자들을 육성해내는 요가수행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인터넷 아이디 "나비"라는 이 사람의 티베트 여행은 여행이라기 보다 명상을 하며 떠다니는 나비의 행군 같은 것이기도 했다.

책은 티벳에서 보낸 며칠과 수미산이라고 불리는 카일라스 산 등반기, 네팔 국경을 넘어 인도까지 가는 부분까지 실려있다. 조금 더 알차게 인도에서의 이야기도 실렸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매일 매일 일기식으로 적혀있는 중년여성의 명상기행기는 생각보다 산뜻하다.

아침에 일어나 명상과 예를 올렸다거나, 차로 시작하여 차로 마무리하는 생활을 가지고 있는 부분, 그리고 큰 욕심없이 떠돌듯 걸었던 티벳의 여행기가 너무 고생스럽게 들리지도 너무 꿈같이 들리지도 않는다.

 

판형도 크고 자간도 매우 넓어서 가만 가만 읽기에 좋은 책.

아마, 언론의 주목을 받았거나 많이 팔리진 않았겠지만, 그저 그 타이틀 "여자 나이 쉰 셋! 1년을 자유롭게 온전히 나를 위해 쓰리라!" 라는 그 카피 하나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나, 내 나이 쉰 셋이 되어 아이를 군대에 보내고 이렇게 떠날 수 있을까.

많은 중년여성들은 이제 쉴 때가 된 듯 하면 노년을 걱정하며 재산을 불리고 아파트 청약을 알아보러 다니는 판에, 어이없이 티벳 여행을 떠나는 저자의 넉넉한 마음이 부럽다.

이제 그녀가 다녀온 티벳은 그 때와 많이 변질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거지들도 바가지요금도 훨씬 더 많이 생겨났을 것이다.

더 이상 우리가 꿈꾸던 "샹그릴라"는 절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샹그릴라가 어디 중국정부에서 정해준 이름, 그 행정구역내에 존재하던가. 샹그릴라는 언제나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2006.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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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교육의 파시즘 - 노예도덕을 넘어서 프런티어21 1
김상봉 지음 / 길(도서출판)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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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채널을 돌리다가 "TV, 책을 말하다"에서 우연히 이 책의 한 구절을 듣고 어이가 없어서 구입한 책이다. 

 학교다닐 때, 도덕이나 윤리, 참으로 식상하고 짜증나고 납득가지 않는 과목이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어떻게 이런 덕목들을 1,2,3,4로 나눠서 정답을 고르라고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은 고등학교쯤 되어서였고, 그 과목의 선생님들은 기억조자 나지 않는 몰개성의 인물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 중학교였는지 고등학교였는지, 한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하신 여선생님이었던 거 같은데, 그 때 생각으로도 곱게 자라 세상물정 모르는 이미지가 강했던 양반이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윤리나 도덕은 철학이 그 근간일진대, 내가 배웠던 도덕이나 윤리선생님들에게는 철학의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고, 고리타분한 논어만 주구장창 외운 사람같이 느껴졌던 것이 그때의 이미지이다. 물론, 공자의 논어는 그리 고리타분하지도 않고, 논어만 잘 공부해도 사람 사는 데 별 문제는 없을 정도로 훌륭한 책이라는 것은 대학이나 가서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저자인 김상봉씨는 독일에서 칸트 철학을 공부하고 한국에서는 종교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한다. 그리고 저자의 머리말에서 어떻게 이런 책을 집필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게 적혀있다. "실은 3년전까지만 해도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모르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는 저자는 "인간을 자유인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오직 착하게만 만들려는 것은 언제나 불온한 시도이다"라는 철학아래 이 책의 집필을 시작한다. 

 책은 제 1장, 도덕교육의 파시즘, 2장 국민윤리를 넘어서, 3장 윤리학이 철학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하여, 4장 무엇을 위한 도덕교육인가, 5장 윤리적 인간의 탄생으로 나뉘어 도덕과 윤리교육이 어디서부터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꼼꼼하게 비판하고 그에 대한 대안까지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어서 아주 속이 시원하다.

 제 1장 도덕교육의 파시즘에서는 노예를 기르기 위한 도덕교육으로 치닫고 있는 현행 교과서들의 문제점을 꼬박꼬박 지목한다. 타인과 공동체를 위한 도덕, 타인의 불의에 대한 침묵, 예를 들어 사회적 약자에게 예절을 강요한다면, 사회적 강자의 폭력과 횡포에 대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할 지 말해주지 않는 도덕교육에 대해서 비판하고 도덕적 문제 상황을 보여주고 그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게 만드는 타율적 도덕교육, 사람들 사이의 비협력자를 가려내어 제재하는 일이 국가의 가장 큰 기능중의 하나라고 가르치는 국가주의로서의 도덕교육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도덕책을 읽어오면서 윤리책을 읽어오면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도덕 윤리 교과서의 이런 부분을 대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우리는 그런 교육을 받아오면서 한 번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못할만큼 세뇌당해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단순히 도덕교육에 대한 비판만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일반인들도 정리하지 못하는 철학적 개념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도덕교육이 문제가 있다면 이미 성인이 되어 학부모가 되었거나 혹은 학부모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가치관의 정립을 해야할 것인데, 이런 고민까지도 저자는 매우 친절하게 정리해준다는 점, 그런 이유로 꼭 도덕교육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없는 사람들도 한 번 쯤 읽어둘만한 책이라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연필을 들고 밑줄을 긋느라 바빴으며 이런 철학자가 좋은 책을 펴내준 데에 대해서 감사할 정도였다. 그동안 철학자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 왔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들을 명쾌하게 정리해 준 작가에게 감사한다.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으면 혼돈밖에 남지 않는다. 손쉽게 남들이 정의해주는 논리에 따라가는 정신적 노예이길 자청하는 것도 쉽게 사는 법의 하나이겠지만, 한 번 사는 인생에 대해서 왜 그런지 스스로에게조차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자식은 어떻게 키우고 교육은 어떻게 시킬 것인가. 알고 싶었던 대답들을 정리해 준 좋은 책을 소개해준 KBS TV 책을 말한다에 감사한다. 

 
철학자들은 수천년 동안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를 학문적으로 물어왔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인간이 삶에서 부딪히는 온갖 문제들에 대해 나름의 고민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이를테면 우리는 덕에 대해서는 소크라테스에게, 정의에 대해서는 플라톤에게, 행복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용기와 절제에 대해서는 스토아 철학자들에게, 쾌락에 대해서는 에피쿠로스에게, 우정에 대해서는 키케로에게, 삶의 덧없음에 대해서는 세네카에게, 건전한 신앙에 대해서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키에르케고르에게, 정념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서는 스피노자에게, 시민적 덕에 대해서는 로크와 루소에게, 타인에 대한 연민과 동정심에 대해서는 흄과 쇼펜하우어에게, 세계 평화의 이념과 세계시민적 의무에 대해서는 칸트에게, 한 국가의 국민적 도리에 대해서는 피히테와 헤겔에게, 자본주의 사회의 불의와 부도덕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에게, 허무주의라는 질병에 대해서는 니체에게, 과학 지상주의의 위험에 관해서는 후설에게, 죽음의 의미와 기술문명의 위험에 대해서는 하이데거에게, 파시즘의 해악에 대해서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에게, 자유의 소중함에 대해서는 사르트르에게, 몸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는 메를로 - 퐁티에게, 욕망의 의미에 대해서는 푸코와 들뢰즈에게, 타인의 의미에 대해서는 레비나스에게, 분배적 정의에 대해서는 롤스에게, 시민 사회의 의사소통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하버마스와 아펠에게, 생명과 환경에 대해서는 부처와 요나스에게, 말의 힘에 대해서는 비트겐슈타인과 데리다에게 겸손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는 공자에게, 인의에 대해서는 맹자에게, 예의범절에 대해서는 주자에게 배움을 청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지나간 우리 역사의 도덕적 의미에 대해서는 함석헌에게, 앞으로 실현되어야 할 통일을 위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누구보다 송두율에게 배움을 청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본문중에서

 

2006.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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