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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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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은,

자신이 쓴 모든 책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단 한 명의 사람을 가진 작가가 있다. 행복한 사람일까.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였다면 질문이 끝나자 마자 고개를 끄덕였을 테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나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몇 개의 조건을 덧붙인 후에야 대답할 수 있겠다. 행복한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한 명과 한 날 한 시에 한 곳에서 같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래서 그 단 한 명과의 사별을 이 땅에서 겪지 않아도 된다면, 운 좋은 사람일 거라고.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불운하게도 사별을 겪어낸 사람의 이야기다. 아니, 겪어냈다는 표현은 불완전하다. 그럼 뭐라고 해야하지? 통과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아무리 이 책을 읽어 보아도, 사별에서 자유로워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걸. 그렇다면 어떤 표현이 적확할까. 줄리언 반스의 말처럼, 단 하루도 거르는 법 없이 주체할 수 없게 흐르던 눈물이 멈출 때, 다시 집중력을 회복해 전처럼 책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게 될 때, 휴게실 공포증에서 벗어날 때, 유품을 처분할 수 있게 될 때를 기다리고 기대하면서 사별 정리를 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 해야 할까.


책 표지에 떠 있는 기구를 보며 생각했다. 왜 줄리언 반스는 기구에 대한 얘기를 해야 했을까. 왜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는 내용의 문장으로 각 장을 시작해야만 했을까. 왜 아내를 잃은 자신의 슬픔에 대한 이야기 앞에 나다르와 프레드, 사라의 이야기를 해야만 했을까. 더 높은 하늘로 더 멀리 날아올라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 하지만 결국은 땅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기구의 운명에서 영원을 꿈꾸지만 결국은 헤어짐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사랑의 운명을 연상한 걸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가 되었다 헤어진 후에는 처음부터 그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였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외로워지고 만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나다르와 프레드, 사라의 비상과 죽음을 이야기한 후에야 기구를 타고 날아다니듯 아름다웠던 팻과의 사랑을, 그리고 그 후에 찾아온 격렬한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걸까. 


사실, 잘, 모르겠다. 하긴 내가 뭘 알 수 있을까. 사별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내가. 평생을 두고 사랑했던 사람을 잃어본 적도 없는 내가. 팻을 만나본 적도 없는 내가. 줄리언 반스도 아닌 내가. 그러니 줄리언 반스의 말이 맞다. 이는 사별의 회귀선을 건너본 적이 없는 사람들로선 대개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다. 


-이 책까지도 줄리언 반스는 팻에게 바쳤다.




2. 그렇게,

다만 나는 힘겹게 짐작할 뿐이다. 에르네스틴이 떠난 세상을 오래 버티지 못했던 나다르의 비통함, 기구를 타고 있을 때조차 자신을 부르는 사라의 목소리를 듣곤 했던 프레드의 가슴 아림, 창으로 목을 찔린 듯한 괴로움을 느끼며 삶의 심장과 심장의 생명을 잃고 말았던 줄리언 반스의 울분을. 더듬어 예상해 본다. 몇 백 미터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떨어지는 내내 의식이 있는 상태였고, 장미 화단에 발로 착지해 무릎까지 파묻히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내장기관이 파열되어 몸 밖으로 다 터져 나온 것 같은 기분을 숨겨야만 할 때, 얼마나 세상이 끔찍하고 추악하게 느껴질 것인지.


그렇다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사라의 죽음이 머지 않았음을 알게 된 후, 사라를 놓고 병원을 나설 때 그가 느꼈던 분노는 한때 나의 것이기도 했으니까. 줄리언 반스는 이렇게 말했다 : 그냥 하루 일과를 끝내고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사람들을 내가 분한 마음으로 노려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들은 어쩌면 저렇게 게으르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자기들의 무심한 옆얼굴을 여보란 듯 보여주고 있단 말인가. 세상이 이제 이렇게 변하려는 참인데.


쌕쌕거리는 아버지의 숨소리를, 기계 소리와 기침 소리로 가득한 병동을 뒤로 하고 나왔던 밤, 이를 악물고 울분을 삼키다가 결국은 화를 내고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며 울고 울고 울며 걸었던 그 길. 다른 때와 똑같이 도로를 가득 채우고 있던 버스와 승용차들. 잇몸이 보이도록 활짝 웃으며 통화하던 사람들. 달콤한 냄새와 따뜻한 김을 뿜어내던 군고구마와 호떡과 군밤. 노랗고 빨갛게 반짝이던 크리스마스 장식들과 온화하게 빛나던 교회의 십자가. 나의 세상이 내가 알던 것과 완전히 다른 무엇으로 바뀌는 그 순간에도 나 아닌 이들의 세상은 전혀 아무렇지 않은 것을 느꼈던, 내 목에 차오르던 분노와 억울함. 왜 지금이냐고, 왜 내 아버지냐고, 왜 내 아버지에게 하필 이런 일이 생기냐고 하늘을 향해 울부짖다가 결국 도달한 결론은 겨우 이것이었다-The world is changed. People may not notcie at the time, but that doesn't matter. THE WORLD HAS BEEN CHANGED NONETHELESS.


어떤 면에서 줄리언 반스는 나보다 운이 좋다. 말을 잃은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손과 발의 움직임을 잃은 아버지의 마지막 의지를, 글 읽는 것을 좋아하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읽었던 글을,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씹어 삼킨 음식을, 웃었던 때를, 울었던 때를, 화냈던 때를, 알지 못하기에 기억할 수 없는 나와 달리 그는 다 알고 있으니까. 아내가 마지막으로 읽은 책, 함께 본 연극과 영화와 콘서트와 오페라와 미술전시회, 아내가 마지막으로 마신 와인, 마지막으로 산 옷, 마지막으로 읽고 마지막으로 웃은 그의 글, 마지막으로 쓴 글, 마지막으로 말한 온전한 문장,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무엇인지, 예리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가 부럽다.



3. 끝나지, 않는다.

아직 나는 아버지를 잃지 않았다. 아버지의 숨소리에 감사하고, 손발의 따뜻함에 안도감을 느낀다. 어쩌면 '그 때'가 곧 올 것이라는 공포감에 짓눌리지 않으려 스스로를 힘들게 곧추세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실은…내가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때'가 와도 덜 당황하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는 과정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줄리언 반스의 글을 읽으며 깨달았다. 나는 준비할 수 없다는 걸. 그 어떤 인간도 준비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죽음, 그 진부하면서도 유일무이한 현상에 대처하기엔 턱없이 미숙하다. 우리에겐 더 이상 죽음을 더 넓은 패턴의 일부로 삼을 능력이 없다. 그리고 E. M. 포스터가 말했듯, '하나의 죽음은 그 자체를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죽음에는 한줄기 빛조차 비추지 못한다.' 그래서 사별 이후에 당연히 찾아오는 비탄의 감정도 우리에겐 상상 불가능한 영역이 되고 만다. (112쪽)


아내를 잃게 되면, 갑자기 남편을 잃고 아내를 잃은 모든 사람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전까지 그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다른 운전자들, 배우자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눈에 그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114쪽)


그녀가 무엇을 잃었는지 보라. 그녀는 인생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녀의 육신, 그녀의 영혼, 그녀가 인생에 대해 품었던 빛나는 호기심을 잃어버린 것이다. 때로는 인생 그 자체가 가장 큰 상실자이며, 진정 사별을 겪은 쪽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 인생은 더 이상 그녀의 빛나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129쪽)


또다시, 줄리언 반스의 말이 맞다.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심지어 그렇게는 더더욱 끝나지 않는다. 때문에 인간은 애도해야만 한다. 애도하는 사람은 살아있는 자신을 부조리하게 느끼며, 그는 죽었는데 나는 살아있음이 기이하다고 느낄 것이다. 자신의 가슴을 파먹는 비탄이 시간을 바꾸고 공간을 바꾸고 영토를 새로 발견하게 한다고 느낄 것이다. 원래 알던 것과 전혀 달라진 세상에서 새로운 패턴을 찾아내려 하다가, 비탄은 패턴이 존재한다는 믿음마저도 파괴한다고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패턴을 찾거나 재정립하는 척이라도 하려고 애쓸 것이다. 사별의 고통과 무관한 사람이든, 아니면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들을 구원해주는 것이 바로 이것일 테니까.


사별 정리가 얼마나 이어질지, 사별의 발전 단계로 진입하게 되는 건 사별로부터 얼마나 지난 후일지, 그만큼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완전히 사별의 고통에서 헤어나오게 될지, 지금의 나는 짐작도 못하겠고 예상도 못하겠다. 대신 기억하겠다고 되뇌인다. 다행히도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이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니까. 팻을 잃은 후에도 팻을 기억하는 줄리언 반스처럼, 나도 잊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아버지의 숨소리를, 따뜻한 발과 손의 느낌을.


입술을 깨문다. 미리 울진 않을 것이다. 사랑은 끝나지 않으니까. '그 때'가 지난 후에도, 그렇게, 끝나지, 않을 테니까.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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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라디오]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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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해철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 중간 즈음에 DJ로서의 신해철에 관한 이야기가 끼어 있었다. 수많은 학생들을 잠못들게 했던 음악도시 때문에 '애들이 늦게까지 저거 듣고 와서 존다'고 교사들이 푸념했다는 문장을 읽고 낄낄 웃었다. 나도 그랬지. 청취자들을 쥐고 흔들며 웃겼다 울리다 결국은 넋나가게 했던 신해철의 음악도시는 종교집단이나 피라미드 집단의 모임 같아 한 회라도 듣지 않으면 벌받을 것 같았으니까. 음악도시뿐인가. 별밤, FM 인기가요, FM 데이트, 볼륨을 높여요, 밤의 디스크쇼, 기쁜우리젊은날, FM 영화음악, FM은 내친구, 음악캠프…소년 시절의 밤에 윤동주가 부른 이름들이 프랑시스 쟘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였다면, 소녀 시절의 밤에 내가 부른 이름들은 저것들이었을지도.


 

나는 오랫동안 언젠가는 라디오에 대해서 쓰고 싶다고 생각해 왔어. 무엇을 쓰고 싶은 걸까? (p.13)

라디오를 떠올릴 때마다 느껴지는 애틋함과 아련함이 어디 나만의 것일까. 지금도 라디오를 매일 듣고, 가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나만의 일일 리 있을까. 그러니 라디오 제작과 관련된 얘기, 특히나 그 뒷얘기라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고 재미있어 할까. 책 제목인 마술 라디오를 보자마자 굴비 두름처럼 줄줄 묶여나올 수 있었을 저 생각이 책을 다 읽은 이후에야 떠오른 건 책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채 무턱대고 책을 펼쳤던 탓일 게다. 라디오에 얽힌 마술 같은 이야기인가보다, 라고 예상하면서 읽기 시작했으면 됐을 걸.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다. 이 말투는 뭐지? 언제까지 이 말투를 쓰는 거지? 이 프롤로그는 뭐지? 무슨 얘기를 하겠다는 거지? 어떻게 흘러가는 거지? 왜 갑자기 팬 얘기가 나오지? 김어준과 일곱 개의 오렌지와 황병기 선생과 윌리엄 포크너와 몇 개의 공식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다 보니 응? 엉? 엥? 등의 말들이 혀끝에서 튕겨져나왔다. 그래도 투덜대지 않고 노오란 페이지를 계속 넘겼던 건 이 '계단' 이야기가 꽤 인상깊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부끄러움의 계단, 수치심의 계단, 자책의 계단, 결심의 계단, 핑계의 계단, 책임 공방의 계단, 감탄의 계단, 놀라움의 계단, 암중모색의 계단, 발견의 계단…내가 매일매일 딛고 오르내렸던 온갖 계단에도 저런 이름들을 붙일 수 있었을 텐데. 왜 나는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 보지 못했던가. 일상 속에서 이야기를 발견해내는 능력이, 혹은 이야기를 엮을 수 있는 마음의 눈이나 쉼의 여유가 내겐 그만큼 부족했기 때문일까. 이 생각이 들고 나니 이 책에서 펼쳐질 얘기가 무엇이든간에 나는 이것을 읽고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어처구니없게도!) 생겨 버렸다.


혼란하던 게 천천히 가라앉고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던 건 프롤로그 중반을 훨씬 넘겼을 때였다.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했던 이야기들을 이제 수년 전 보물 릴테이프를 만들 때처럼 편집해서 통째로 넘겨. 나는 이 이야기들이 좋았어. 이야기들이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야…(중략) 이야기 속 사람들이 질문에 따라 살고 있었기 때문이야라는 부분을 읽으며, 나에게도 이 이야기들이 질문을 던져 주기를, 이 이야기들을 읽어가면서 나 역시 나의 질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어떤 이야기들이,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내 왕국에 살고 있어. (p.307)

프롤로그가 끝나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나오는 열 네 개의-하지만 어쩌면 하나의 내용인 것도 같은-이야기들이 주욱 이어진다. 아내와 함께 배를 타는 어부 아저씨, '빠삐용'의 아버지, 브람스 교향곡을 듣는 선배, 장승을 만드는 노인, 일흔 여덟에 글을 배우기 시작한 할머니, 젊은 2세대 노점상, 헤엄칠 때 노래를 부르는 해녀……'세상에 이런 일이'나 '궁금한 이야기 Y' 같은 TV 프로그램 같은 데서 본 듯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어본 듯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하긴, 아무리 파란만장한 인생이라도 요약해 놓으면 평범하고 뻔해 보이는 거다. 내 인생이 아니라면 더더욱. 내게 일어난 발톱만한 일은 머리통만하다고 펄펄 뛰면서도 파도 같은 남의 일은 물장구 같은 거라 여기며 흘낏 보고 마는 게 인간이니까.


그래서 정말 마술 같은 건 이야기 속 인물들의 삶에 대한 요약본이라기보다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살아보고, 겪어보고, 부딪쳐본 후에 만들어진 생각들. 실낱 같은 순간들, 조각 같은 경험들이 꼬아 놓은 새끼처럼 서로 엮이고 엉켜 만들어진, 단단한 알맹이들. 그것들이 언어화된 결과물을 눈으로 짚어가다가 문득, 수많은 목소리를 들었다. 거칠고 투박하고 때로는 쉬어 있는, 고달픈 삶의 무게가 성대에도 얹혀 있는 듯한 주름진 목소리들. 그런데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헉헉대지 않고 깊은, 귀 안에서 오랫동안 울림을 남겨 놓는, 따듯한 목소리들.


제일 나쁜 건 제가 장애인의 아버지란 게 아니에요. 제일 나쁜 건 저에게 둘러댈 만한 확실한 핑계거리가 있다는 거죠. 이 애는 내 삶이 힘들다는 언제나 편리하게 내세울 수 있는 핑계일 수 있다는 거죠. (중략) 애가 아니어도 사는 건 어차피 힘들어요. 애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힘들 때도 많아요. 사는 건 복잡하고 까다롭고 제멋대로이고 엉망진창 뒤죽박죽이죠. 그렇지만 태어난 것을 생각하면 변함없이 낯설 정도로 까마득하게 신기하기만 해요. (89쪽, 빠삐용의 아버지 중)


혼자 장승 깎는 걸 배워서, 버려진 나무 주워다가 장승을 만들고 구절을 새겼지요. 살면서 내가 알게 된 것들, 책에서 읽고 가슴에 남은 것들을 새겼어요. 장승의 글귀들이 이래 되잖아요. 걸레처럼, 바다처럼, 흙처럼, 빗자루처럼. 이런 글귀들을 새긴 거죠. 걸레처럼, 빗자루처럼 마음을 닦고 살자는 말이죠. 마음을 닦고 흙처럼, 바다처럼 살자는 말이죠. (196쪽, 소원을 70퍼센트 이룬 노인 중)


원래 사람이 그래. 떳떳치 못하면 세상 모든 게 자기를 탁한다고 해싸토만. 항상 떳떳해야 해. 사방에서 탓하는 소리가 들린당게. (256쪽, 간월도의 달 중)



나는 나라서 소중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믿고 소중한 이야기를 해서 소중해지고 있어요. (p.304)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건,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다른 약자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약자들이란 점이었다. 남의 아픔은 외면하거나 경시하면서 나의 아픔만 내세우며 징징대는 이들의 목소리란 얼마나 추한가. 그에 비해 사는 게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 힘들다는 것이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낸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는 약자, 그래서 다른 이들의 아픔에 연민을 느낄 줄 아는 약자의 목소리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렇기에 표고버섯 아저씨의 이런 노점상 일 하면서 딱딱한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게 표고랑 비슷한 것 같아요. 딱딱한 현실에서 피어나잖아. 나는 내가 표고 같다고 생각해요…라는 말 앞에서, 한달에 2만 원씩 꼬박꼬박 기부한 경비원 아저씨의 왼종일 좁디좁은 경비실에 앉아서 이 방법 말고 어떻게 우주를 꿈꾸겠어요? 우주의 한 귀퉁이에 사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세상과 접촉하겠어요?라는 질문 앞에서, 생선 파는 노점상 할머니의 인생은 딱 이거야, 어떻게 살아왔냐야. 행복, 최후의 순간에 말하는 거야. 인생은 다 살고 끝에 가서 말하는 거야라는 선언 앞에서, 나는 눈물이 핑 돌 뻔했다.


어쩌면 이 책 자체가 하나의 질문인지도 모른다. 일등을 하기 위해서 딴 데 신경쓰지 말고 앞만 보라며 엉덩이를 맞는 말처럼, 세속적인 부와 명예와 성공과 권력을 위해서는 남 따위 생각하지 말고 전진하라며 초단위로 채찍질당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계속 물어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에게 소중한 건 무엇이니? 라고. 


너에겐 무엇이 소중하니? 네 돈이? 네 집이? 네 차가? 네 위치가? 네 통장 속의 숫자들이? 혹시 이런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니? : 저는 인생에서 사회적 지위가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아요. 이룬 것이 중요하다고도 생각지 않아요. 저는 우리들이 살면서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고 산다는 것을 알기 떄문에 더는 그것을 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중략) 그녀랑 이야기하는 순간은 마치 여기가 시장이 아니고 학교인 것 같아요. 그게 살아가는 것을 쉽게 해주진 않아요. 하지만 살아가는 것을 더 괜찮게 여기게 해 줘요. 네가 살아가는 것을 더 괜찮게 여기게 해 주는 건 그 숫자들과 물건들이니? 그렇다면 그 숫자들과 물건들이 없을 때, 너라는 존재는 소중하지 않니? 그렇지 않다면, 네가 살아가는 것을 더 괜찮게 여기게 해 주는 건 도대체 무엇이니?




내가 보이는 세계를 자신도 상상해보려 해. (p.322)

사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네가 살아가는 것을 더 괜찮게 여기게 해 주는 건 도대체 무엇이니?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가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여전히 내가 있는 곳은 계단 위라는 것. 아직 나는 어딘가에 도달하지 않았으므로, 불행과 불운에 대해 불평만 늘어놓고 있을 수 없다는 것. 가장 큰 선물은 시간을 나눠 갖는 것 아니겠느냐던 작가의 질문처럼, 나와 다른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과 또다른 시간을 계속 나눠 가져야 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고민과 이야기와 비밀과 눈물과 웃음을 나누다가 공동의 기억과 경험을 만들다가 그러다가 함께 변해가면 될 거라는 것.


그러니 그때까지 저 질문을 잊지 않아야 할 테다. 그리고 상상력을 잃지 말아야 할 테다. 우리가 헛되이 살면 가장 크게 오래오래 상처를 받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 우리의 뒷세대,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보다 오래 살아남을 사람들일 테니까, 비록 그들의 모습이 지금 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상상해야 할 테다. 죽음 이후에 대한 감각, 나의 삶과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란 그 감각을 손끝에 기억하면서, '너'의 이야기를 찾고 듣고 읽으며 불을 밝히고 일을 해야 할 테다. 그래야만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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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6월의 신간 에세이를 훑으며 읽고 싶은 책을 추리다가 이번엔 유독 동물에 대한 책을 많이 골랐다는 걸 깨달았다. 나도 더운데 털이 북실북실한 쟤네들은 얼마나 더울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독자를 빤히 바라보는 고양이와 강아지들의 저 두 눈동자가 품고 있는 얘기들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까. 어쨌든간, 이달에 읽고 싶은 에세이 리스트 스타아아트.




첫 번째 책은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 길고양이 사진가로 유명한 이용한 씨의 책이다. 이용한 씨의 길고양이 시리즈를 2권까지 읽었다.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도 좋았지만 <명랑하라 고양이>가 더 좋았다. 이번 책에서는 외국 고양이들을 구경할 수 있단다. 모로코와 터키, 일본, 대만, 인도, 라오스…한국의 고양이들보다 더 평온한 묘생을 안위하고 있으려나. '고양이는 고양이라서 행복하고 사람들은 고양이가 있어 행복'하다는 출판사의 책 소개 문구가 마음을 따습게 해 준다(물론 여름이니까 너무 따습하면 곤란하겠지만ㅋㅋ). 두 번째 책은 엄마 말대로 하면 돼. 엄마의 잔소리와 다양한 동물들의 표정을 연결시켜서 한 권의 책으로 묶어냈다고 한다. 블루데이 북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일 것도 같지만 보고 싶다. 물론 글보다 사진이 훨씬 더 보고 싶다ㅋ


세 번째 책은 앞의 두 책과 좀 다른 분위기의 책, 이렇게 귀여운 동물을 왜 죽여야 하는 거죠? 책의 제목만 보고선 유기동물을 죽이고야 마는 인간들의 비정함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책인가보다 생각했다. 조금은 슬픈 마음으로 출판사의 책 소개를 보고 나서야 마음이 좀 환해졌는데, 이런 문장들 때문이었다 : 마모토 동물애호센터는 수용 중인 주인 없는 개와 고양이를 살처분하지 않고 새로운 주인을 찾아준다는 원칙 아래 정성껏 돌보고 있다. (중략) 그러나 이곳 역시 한때는 전국 어느 동물행정시설처럼 눈을 돌리고 싶어질 정도로 참혹한 상황에 처해 있던 현장이었다. 직원들이 주로 하는 일은 매주 2회 가스처분기를 가동시키는 것. 동물들을 스테인리스 상자 안에 몰아 넣고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는 스위치를 켠다. (중략) 그러던 어느 날 한 직원이 속으로만 삼켜야 했던 말을 꺼내고 말았다. "더 이상 동물을 죽이는 건 싫어!" 하, 결국 저 한 마디의 말이 수많은 동물들의 생명을 살리게 된 거다. 멋진 이야기 아닌가. 직접 눈으로 읽으며 확인해보고 싶다. 누군들 그러지 아니하리.



네 번째 책은 학교의 슬픔. 직업 때문인지-_- 학교나 교육 관련 에세이가 눈에 자주 띈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 말씀 잘 안 들었던 선생님, 공부 못했던 선생님, 가난해서 차별받아 본 선생님이 교육 현장에 더 많이 필요하다고 느끼는지라, '그러니까 나는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는 이 책이 매우 끌린다. 이 책의 저자인 페낙의 아버지가 페낙에게 "걱정할 거 없어. 어쨌거나 26년 뒤면 알파벳은 완벽하게 알게 되겠지."라고 말했다는데, 이 역시 멋지지 않은가.


마지막 책은 신간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마스다 미리의 또다른 신간. 만화에 에세이에 소설에 이어 이번에는 여행기까지. 이러다 곧 마스다 미리 사진집, 마스다 미리 일기, 마스다 미리 자서전, 마스다 미리 연설집, 마스다 미리 인터뷰집, 마스다 미리 요리책, 마스다 미리 재테크책…도 나오는 거 아녀. 마스다 미리의 책을 참 좋아하지만, 너무 신간이 많이 나오는 건 좀 별론데 흑흑. 물론 내가 별로라고 느끼든 말든 새 책은 계속 나올 것이며 나는 서글픈 마음으로-마스다 미리가 값싼 유행처럼 소비된다는 느낌이랄까, 심지어는 낭비된다는 느낌도 좀 든단 말이지!-카드를 긁겠지. 이 책, 마음이 울리는 작은 여행도 카트에 당연히 담겠지 흙흙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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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 길 위에서 배운 말
변종모 지음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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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모의 책을 읽는 건 처음이다. 원래 여행기를 잘 안 읽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에세이 분야'에서 유명한 필자인 것 같던데 어떻게 한 권도 안 읽었을까 생각하며 책 표지를 넘기다가 책 날개에서 곧바로 이유(라고 할 만한 것)를 찾아냈다. 이제까지 그가 쓴 책 제목들 덕분이었다. '짝사랑도 병이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까지…전부 다 감성터지는(;;) 제목들. 솔직히 내 취향과는 잘 맞지 않는. (내 취향에 잘 맞는 '제목'은 오히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같은…허허;;;;;)


'길 위에서 배운 말'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인데, 사실은 길 위에서 만난 말들, 내 안의 말들, 길 위에 두고 온 말들이라는 세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이걸 '배운 말들'로 묶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변종모씨가 여행을 하면서 느낀 생각의 편린들이 70여개의 단어들로 정리되어 있다. 하나의 단어와 그 단어에 관한 아포리즘, 그 단어와 관련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여행지에서의 감상이 차례대로 나온다. 중간중간 그가 직접 찍었다는 사진들을 보면서 쉬어갈 수 있는 책. 처음부터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는 것도 좋겠지만, 촤라락 넘기다가 '어 이거 괜찮다' 싶은 부분을 먼저 읽어도 될 것 같고, 사진을 먼저 본 후 글을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1장을 읽을 때는 이 사람 참 외롭구나, 외로운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구름을 헤치고 구름을 밟고 걷다 여기 돌아왔으니 예서 못 지날 길이 내게 무슨 문제인가(24쪽)라고 말하다가도 계속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의 모든 허상보다 조금 더 진짜인 것을 느낄 수만 있다면 세상 어디로든 나서고 싶었다…(중략) 나도 나의 진짜를 만나야겠기에, 나만이 나를 보듬을 수 있기에, 당신을 용서해야겠기에, 다시 누군가를 사랑해야겠기에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살아가야겠기에(41쪽)라는 문장은 반어처럼 읽히기도 했다. 다시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너를 잊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그만큼 너를 잊을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다는 깊은 탄식 같았달까. 도대체 얼마나 괴로운 이별을 했기에 이렇게까지 그리워하나 싶었다. 조금은 지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뒤로 갈수록 편안히 읽을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자신에게 선물해 준 소중한 순간들, 귀중한 깨달음들은 읽는 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그 기억을 혼잣말로 남겨놓지 않고 독자에게 대화처럼 전송하고 싶어하는 작가의 의지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앞부분에서의 '너'가 작가만의 너, 작가가 사랑했던 너, 작가와 이별했던 너, 그런 개인적인 '너'라면, 뒷부분에서의 '너'는 작가가 걸었던 길을 언젠가 걸을 수도 있고 지금 걷고 있을 수도 있고 혹은 영원히 안 걸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쨌던 작가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듯 스스로의 삶을 뚜벅뚜벅 살아가고 있는 독자들 같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쿠바에서의 만남을 묘사한 '나눔'이었다. 산타클라라에서 만난 중년 남성에게 눈인사를 건네자 그가 자신에게 시가를 권하며 대화를 시작했던 일. 시가를 받은 작가가 드릴 게 없다고 말하자 "당신은 이미 귀한 시간을 내게 나눠주고 있질 않소? 시간이란 꽤 귀중한 거죠. 특히 나 같은 낯선 자에게 선뜻 내 주는 이런 시간 말이오! 이 시가보다 더! 그러니 나와 시가나 한 대 피웁시다."라고 말한 그 중년 남성은 인간과 인간이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듯 했다. 작가가 이어 쓴 이 문장들도 마음에 들었다.


나산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쌓은 빚을 하나하나 도로 갚아나가는 것.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세상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 사는 일이므로. 더구나 사람이 가진 것 중 가장 협소한 것인 마음은 또 거기 사랑은 이상하게도 마음먹기에 따라 아무리 줘도 전부를 퍼내도 바닥나지 않는다.  (313쪽)


책을 읽고 나서 작가에 대해 검색해 보다가, 출간 기념 북토크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http://ch.yes24.com/Article/View/25329). 여행작가로서 10년을 맞아 즐겁고 여유롭게 지내고 있다는 말을 읽고, 앞으로의 그의 책은 이 책보다 더 좋을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여행을 가기 전이나 갔다온 뒤나 변하는 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굳이 없어도 될 때'면 여행을 가는 그가, 자신이 '한국에 굳이 없어도' 된다고 느낄 때는 언제일지도 궁금해졌다. 더 좋은 글로, 더 마음을 울리는 책으로 다시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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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5 16:49   수정 | 삭제 |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 방황]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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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정유정인데…어, 정유정인데?

정유정소설가가 히말라야에 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책이 나오기 훨씬 전이었다.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정유정소설가처럼 찐득찐득한 원액 같은 글을 쓰는 소설가에게는 활활 타오르듯 정력적이고 뜨거운 지역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으니까. 스페인이나 남미나 아프리카 같은. 히말라야라는 단어와 함께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설산이었기 때문이다. 김연수소설가님의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속의 인정 없이 차갑고 뾰족한 눈 덮인 산. 눈바람을 맞으며 그 산을 넘는 이가 내성적인 목소리로 토해놓는 무거운 이야기…같은.


안그래도 꽉 쥔 주먹 같은 소설을 쓰는 정유정소설가의 히말라야 여행기라니, 심지어 2주간의 트래킹 얘기라니! 또 얼마나 진하고 치밀할까 싶었다. '환상방황'이라는 책 제목과 글 앞에 실려 있는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 지도를 보니 긴장이 더 높아졌다. 거봐 여행이 아니라 방황이야. 게다가 이 긴 길에서 방황했다는 거야…분명 엄청 진지할거야…페이지를 넘기는 손끝에 힘이 빡 들어갔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프롤로그 중반 쯤부터였다. 문장과 문장을 지나가다가 입술 사이로 웃음이 픽 새어나오는 걸 깨닫고 당황했다. 100쪽짜리 고산병 자료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셨다는 소설가님의 남편분에 대한 에피소드, 브래지어의 A컵 라벨을 잘라내고는 후배 지영씨에게 한 소리 들었다는 에피소드, 네팔에 도착한 후 마살라 때문에 고군분투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지면서 점점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정유정소설가 글이라며? 내가 아는 그 정유정소설가 아냐? 왜이렇게 웃기지? 이런 게 아닐 줄 알았는데? 왜이래?



내가 알고 있는 정유정을 당신도 알게 된다면…

이제까지 내가 알던 정유정은 매우 집요하고 치밀한 소설가였다. 정유정소설가가 출연한 여러 팟캐스트를 들으면서도 그 느낌은 변하지 않았다. 화통하고 대담하고 심지가 굳고 진중하고 모임에서는 리더 역할을 할 것 같고 밑으로 줄줄 딸린 동생들을 딱부러지게 잘 챙겨서 이끌고 갈 것 같은, '엄마 같은 누나'의 이미지. 물론 환상방황 속에서 정유정소설가의 저런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한방에 히말라야 종주를 결정한 후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든지, 히말라야에 가기로 결정한 후 지리산을 타고넘으며 훈련을 한다든지, 쏘롱라패스 정상에 도착한 후 50분만에 뛰어내려온다든지(유 알 어 파이터!!ㅋㅋㅋㅋㅋㅋ)…


그러나 이 책 속에서 더 부각됐던 건 유머러스하고 털털하며 귀여우신데다가 실수도 많고 허당(이라고 써도 되려나)인 데도 적지 않은 정유정소설가의 모습이었다. 정유정소설가의 글이 이렇게 '웃길' 줄이야. 그녀 소설의 치밀함과 집요함을 떠올리고 '혹시 이 유쾌함도 의도된 건 아닐까?'라는 의심을 3초쯤 하기도 했지만 설마…그건 아니겠지;; 여행기 내내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자신의 허당스러움을 늘어놓는 데서 그치지 않고(어떤 부분에선 '나 이런 사람인지 몰랐지? 원래는 이렇다고 낄낄낄!!!'이라 떠벌리는 느낌까지 들 정도ㅋㅋ)히말라야에서 경험한 각종 육체적 고통들을 그야말로 손에 잡힐 듯 나열한다.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남의 괴로움을 읽으면서 이렇게 웃어도 되나? 싶어 나중엔 좀 미안해지기도 했다. 뭐 이런 문장들 말이다.


만년설에 뒤덮인 봉우리 너머에선 승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촌뜨기 언니. 우리 트위스트 한 판 출까." (26쪽)


몸에 달려 있지 않다면 가슴도 놓고 다닐 거라는 게, 나에 대한 남편의 평가였다. (57쪽)


평화가 오신다. 걸으면서 입속말로 외워보았다. 옴마니밧메훔. 옴마니밧메, 옴 마니, 옴, 옴, 옴……잠이 오셨다. (100쪽)


땅거미가 내리는 목초지 비탈에 시커먼 소 다섯 마리가 어슬렁대고 있었다. (중략) 긴 잔등에는 매끈하고도 짧은 털이, 옆구리 아래로 길고 풍성한 털이 늘어져 있었다. 마치 고대의 매머드들이 검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강강수월래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153쪽)


안나푸르나에서 내 책이 다 좋다는 독자를 만나다니. 천하의 스티븐 킹도 이런 일은 경험해보지 못했으리라. 몇 시간 전까지 '코리안 보이'였던 한 청년이 특별한 존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브래드 피트처럼 잘생기고, 주드 로처럼 섹시한 데다, 스티브 잡스처럼 스마트해 보였다. (161쪽)


물론 누군가는 내가 보고 킬킬거렸던 문장에서 불만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히말라야까지 올라가서 왜 화장실 얘기나 하고 있어? 몸 말고 정신 얘기 없어? 여행에서 얻은 평화나 삶의 행복이나 사랑이나 자신과의 화해 같은 거 좋잖아? 하고 툴툴거리는 사람도 있었을지 모른다. 독자들은 다양하고, 사람들마다의 유머 코드 역시 다양하니까. 


하지만 나는 좋은 곳에 가서 좋은 것 먹고 좋은 옷 입고 좋은 것 보고 좋은 숙소 침대에서 잠들더라도 내 몸이 아프고 지치고 힘들면 헛일 아닌가, 대신 특별하게 좋은 어딘가엘 가지 않더라도 내 몸 편하고 내 몸 즐거우면 내 맘도 편해지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정도밖에 못 되는 사람인지라, 이런 식의 여행담이 꽤 마음에 들었다. 여행이란 것은, 그리고 삶이란 것 역시도 정신의 문제이기 이전에 육체의 문제라고 생각하는지라. 히말라야에서 느낀 '환상적인 정신적 충일함' 대신 몸 안팎을 침범해 온 손님들과의 예상치도 않았고 반갑지는 더더욱 않은 조우를 실감나게 그리는 부분들이 인상적이었다. 먹을 것 이야기, 화장실 이야기, 김혜나소설가님의 '요가 배틀' 이야기, 불면증, 두통, 심장의 두근거림, 고산병, 죽음의 고비 등등.


이렇게 몸이 먼저 히말라야에 빡세게(!!) 부딪고 나야 정신에도 확실히 부딪쳐 오는 게 있는 법 아닌가. 몸이 설렁설렁 대충 할 때는 정신도 설렁설렁 늘어지듯이. 아 물론 푸르뎅뎅한 입술과 퉁퉁 부은 눈두덩과 벌건 얼굴로도 신비로운 미소로 "아임 파인. 원더풀 라스트 나이트 앤 뷰티풀 모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폴란드 언니의 정신력도 대단하지만 ;ㅂ;



함께 걷는 길, '나'와 검부와 혜나와 버럼과 :)

이 여행기의 또다른 특징이라면 현재의 정유정과 히말라야 사이사이에 불쑥 과거의 정유정이 끼어든다는 것이다. 지금의 정유정이 시간과 시간 사이를 지나갈 때 히말라야가 정유정의 몸에 직접 와부딪치고, 그 부딪침이 어떤 감각을 만들어내고, 그 감각이 과거의 경험을 불러내고, 그러면서 과거의 정유정과 현재의 정유정이 교차되고, 아까의 정유정이 지금의 정유정과 다른 인물이 되는 과정이 참 좋았다. 물론 정유정 본인은 히말라야를 오르기 전의 자신과 오른 후의 자신이 다르지 않다고 말하지만, '나의 진짜 본질이 내가 아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는 나'와 '나의 진짜 본질이 내가 아는 것과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는 나'는 전혀 다른 나 아닐까. '떠나온 나와 돌아갈 나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에서 '떠나온 나와 돌아갈 나가 다르지 않다고 확신하는 나'로 바뀐 것이니까. 힘이 없는 상태와 힘이 남아도는 상태 역시 분명히 다르고.



물론 현재의 정유정이 과거의 정유정'하고만' 이 길고긴 길을 걸어갈 수는 없었을 테다. 무뚝뚝한 듯 하지만 엄청나게 세심하고 든든한 검부, 어학에 재능이 있는 듯한(까꽁!) 귀여운 버럼, 이 책과 짝이 될 것 같은 여행기를 쓰고 있는 중이라는 김혜나소설가가 함께 이 길을 걸었기에 정유정 역시 환상종주를 성공할 수 있었겠지. 몇년 후 그녀가 또다시 히말라야를 찾아서 또다시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할 때 분명 검부와 함께 할 것 같다는 예상이 책을 덮자마자 드는 건 그만큼 그녀와 동행했던 이들의 존재감이 크기 때문이다. 짐을 들어주고 사과를 챙겨주고 손을 주물러주고 약을 나눠먹고 화장실을 같이 쓰는 이들이 없었다면 이 책은 훨씬 재미 없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잉여 대신 목표를 찾는 그녀, 응원합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요즘 챙겨듣는 팟캐스트 '낭만책방'에서 정유정소설가가 출연한 방송을 먼저 들었었다. 그냥 방송만 들었을 때도 재미있었는데, 책을 읽고 다시 한번 팟캐스트를 들으니 더 재미있었다. 아 이게 이 얘기였구나! 하고 무릎을 탁탁 치기도 했고, 어머니 얘기는 왠지 더 찡했다.



두 번째 들을 때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정유정소설가의 이 말씀. (낭만서점 웹사이트에도 정리되어 있다 : 여기)


삶을 좀 여유롭게, 관조하듯이, 우아하게 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근데 그게 (저랑) 기본적으로 전혀 안 맞는 거죠. 목표가 없으면 무기력해지고. 처음에 떠날 땐, 제가 좀 돌아오면, 떠날 때와 좀 달라져서, 뭔가 차원이 높은 인간이 되어가지고 돌아올 줄 알았어요…결국 끝에 가서 발견한 건,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똑같다. 그냥 똑같은 저를 발견하고 돌아왔어요. 그래, 뭐, 싸움닭이야, 뭐 어쩔 거야? 하고 돌아온…그전에는 그런 별명들이 좋기도 할 수 있겠지만 좀 억세지 않고 고상하게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기 갔다와서 깨달은 게, 그건 나한테 욕심이었구나. 나는 원래 그렇게 생긴 사람이었구나…


목표 없는 삶을 힘겨워하지 않고 잉여 상태를 즐기는(사실은 엄청 좋아하는!!!)데다가 오르막길을 좋아하지 않아 등산도 싫어하는 나에게 히말라야는 '완전 딴 세상'이다. 아마 죽어도 환상종주를 하지 못할 것이고, 죽어도 히말라야에 가지 못할 것이다. 고로 정유정은 나와 영 다른 종류의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남의 이야기같지 않은 건, 그녀가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이 나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으로 돌아가 다시 내 인생을 상대할 수 있을까.

어떤 목소리가 답해왔다.

죽는 날까지. (186쪽)


그래서 나는 그녀의 여행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녀의 경험을 질투하고, 그녀가 얻은 깨달음을 시기하는 대신, 저 대답을 마음에 담는다. 나에게 대답을 준 정유정소설가와 그녀를 무사히 돌려보내준 히말라야, 그녀가 여행기를 쓸 수 있게 해 준 '잉여 시간'에 감사를 표하면서 이 세상에서 내 인생을 상대하는 게 힘겨워질 때마다 스스로에게 저 대답을 해 줄 것이다. 죽는 날까지라고.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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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6-25 16:5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잘 읽었습니다! 인사 없이 조용히 갔었는데ㅎ 반갑습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