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두렵지 않다. 망각도 막을 수 없다. 모든 것을 잊어버린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닐 것이다. 지금의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내세가 있다 한들 그게 어떻게 나일 수 있으랴. 그러므로 상관하지 않는다. (28쪽)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다. 죽기 전에 바보가 될 테고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될 테니까. (52쪽)
"아무리 치매 환자라도 감정은 남아 있대." 감정은 남아 있다. 감정은 남아 있다. 감정은 남아 있다. 종일 이 말을 곱씹는다. (53쪽)
오래전 과거는 생생하게 보존하면서 미래는 한사코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마치 내게 미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거듭하여 경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계속 생각하다보니 미래라는 것이 없으면 과거도 그 의미가 없을 것만 같다. (116쪽)
오디세우스는 끝까지 망각과 싸우며 귀환을 도모했다. 왜냐하면 현재에만 머무른다는 것은 짐승의 삶으로 추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을 모두 잃는다면 더는 인간이랄 수가 없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가상의 접점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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