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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호구

 

버거킹 맞은편에 작은 테이블을 놓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왠지 syo를 슬슬 피한다. syo의 앞에 걸어가는 사람을 붙잡고 위안부 관련 캠페인에 잠깐만 참여해 달라며 맑디맑게 웃던 노랑 조끼의 여자 분은 syo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친다. syo가 성난 황소는 아닐 텐데요. 며칠 전에는 그 자리에 유니세프 후원자를 모집하는 사람들이 활동 중이었는데, 그 중 한 사람, syo와 마주치자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재빨리 뒤로 감췄다. syo가 배고픈 염소는 아닐 텐데요. syo가 최선을 다하여 상냥한 표정을 지으며 지나가도, 그들은 결코 syo에게 호의를 요청하지 않는다. 의도 있어 보일 만큼 천천히 걸어봤지만 그들은 끝내 syo를 발견하지 못한 척 한다. 에이씨, 당신들이 지금 내 얼굴 말고 뭘 안다고 그래! 아이들이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나같이 생긴 놈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산 빵은 입에 넣지 않는다는 이야기야? 그래? 아무래도 신림동에 나만 빼놓고 무슨 거대한 음모가 꾸며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반면, (를 아십니까)인들은 결코 syo를 놓치는 법이 없다. 하도 잡히다 보니 syo 역시 그들의 바지통만 보고도 도인인지 아닌지 알아챈다. 저 멀리서 그들이 나를 사냥하러 어슬렁어슬렁 걸어오기 시작하면 syo는 그런 생각을 한다. 여긴 잠실야구장이야. 항상 악착같이 추격하지만 결코 추월하지는 못하는 LG 트윈스의 9회 말 공격이 이어지고 있지. , 마지막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초구, ! 때렸어! 우와! 떴어, 높다, 높아! , 멀지 않고 높기만 하네! 안 돼! 잡지 마! 안 돼! 안 돼에에에에! (실제로 이런 상황은 빈번히 일어납니다. LG팬이 된다는 것은 고된 수양의 길을 걷는 일입니다.) 그러고 나면 syo는 제가 가진 이목구비에서 캐낼 수 있는 최대치의 드러운 표정을 장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쯤 되면 마침내 인파를 헤치고 다가와 syo 앞에 마주선 도인들이 말한다. 인상이 정말 좋으세요. 에이씨, 그럴 리가 없잖아! 조상신께 간단한 제사만 지내시면 만사가 형통하실 건데요. 여기까지 듣고 나면 대패 삼겹살집에서 고기 뒤집는 무슬림 같은 표정을 짓고 싶어지지만 이미 난 최선을 다하고 말았으므로 그저 속수무책일 뿐이다......

 

그렇다면 syo란 놈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단 말인가. 아이들의 배를 채워줄 여유는 없어 보여도(불쌍) 또 조상신의 배는 기꺼이 채워줄 것처럼(호구) 생겼단 이야긴가? 정말?

 

사진 한 장 첨부해 이웃들께 감정을 의뢰해 볼까 했지만, 하하, 거울 한 번 힐끗 본 것으로 아주 쉽게 단념할 수 있었다.

 

 

 

 

  정말 구름을 집으로 데려오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걸까 사람들은 조금쯤 회의주의자일 수도 있겠구나 설령 빙하를 가르는 범선이 난파를 발명했다고 해도 깨진 이마로 얼음을 부술거야 쇄빙선에 올라 항로를 개척할 거야 열차가 달리는 이유를 탈선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사람들은 궤도를 이탈한 별들에게 눈길을 주는 걸 몹시 염려해 평범한 게 좋은 거라고 주술을 멈추지 않지 누군가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기를 띄운 오만함이 추락을 발명했다고 말한다면 그럴 수도 그럴 수도 있겟다 하지만 모든 이동은 늘 매혹적인 걸 나로부터 멀어져 극점에 다다르는 것으로 나를 발명해야 할까 흐르는 구름을 초대하고 싶은 열망으로

이은규, <나를 발명해야 할까>, 다정한 호칭

 

  운동을 하고 살을 뺀다는 것이 외모에 대한 편견에서 도망치는 것인지 편견과 맞서 싸우는 것인지 자주 헷갈린다남의 눈에 들려고 하는 건지 나에게 나를 잘 보이기 위한 건지도 잘 모르겠는 때가 많다하긴 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나도 어차피 타인의 눈을 거치기 마련이다. '내 안에 너 있다'는 대사처럼 타자는 다양한 모습으로 내 안에 존재한다나와 타자의 경계는 명확히 그을 수 없다.

류은숙아무튼피트니스

 

  고려대생이 "우리에게는 김연아가 있다"라고 자랑했다그러자 연대생이 대답했다. "우리에게는 MB가 없다." 우스개지만때론 부재가 존재만큼이나 중요할 때가 있다.

김상욱김상욱의 과학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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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04-17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LG 팬이시라니. 요즘은 좋아져서 표정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저도 도인들이 자주 접근해서 아주 골치 아픈데.. syo 님 글을 보니... 거울을 봐야 할 것 같은 느낌 아닌 느낌..ㅜㅜㅜ
그나저나 <김상욱의 과학공부>에 나오는 저 글... 부재가 존재만큼 중요하다에 대한 폐부를 찌르는 사례인 듯..

syo 2018-04-17 09:18   좋아요 1 | URL
계속 요즘같으면 좋긴 하겠는데, LG팬은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비연님은 두산팬이셨던 기억인데, 항시 웃고 다니시는건가요....

비연 2018-04-17 09:29   좋아요 0 | URL
전 두산팬. 요즘 신났죠. ㅎㅎㅎ
그러나, 회사가 절 피폐하게 해서 야구의 즐거움을 백퍼 누리지 못하고 있답니다..

syo 2018-04-17 09:54   좋아요 1 | URL
그래도 어딘가에서 내가 응원하는 팀이 오늘도 이기고 있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지요.
전 LG가 8연승 9연승 하고 있다면 그 기간 내내 들떠있을 것 같아요 ㅎㅎ

프리즘메이커 2018-04-17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를 아십이까에 매번..

syo 2018-04-17 09:54   좋아요 0 | URL
프메님은 진짜 도를 아실 것처럼 생겨서 그런 거고, syo는 호구처럼 생겨서 그런 거고...

다락방 2018-04-17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튼 피트니스, 저 책은 뭐지? 저도 한 번 봐야겠네요. (딴소리)

syo 2018-04-17 09:5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경량의 유익한 책입니다.
읽고 나서 운동을 할까 말까 고민했지요.

라로 2018-04-17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에요? 결국 사진을 안 올린다는 거잖아요?? 흥 삐질래요. 버럭(웃었다가 아무래도 아닌것 같아서ㅎㅎㅎㅎ)

syo 2018-04-17 12:20   좋아요 0 | URL
언젠가 사진도 올리고 축가도 올리고 할 날이 오겠지요.
다다음생 쯤에요 ㅎㅎㅎㅎㅎ

꼬마요정 2018-04-17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매번 도를.. 이젠 그네들이 무슨 말을 할 지 먼저 읊고 지나가려는데 잡힙니다ㅜㅜ 접때는 예약 늦었다는데도 잡아서 냅다 뛰었죠ㅠㅠ 내 시간은 머 남아도는 줄 아는지... 유니세프든 유엔난민기구든 뭐든 전 다 잡힙니다... 만만한가봐요ㅜㅜ
전 롯데팬.. 야구 끊었습니다 ㅎㅎㅎ

syo 2018-04-17 12:22   좋아요 0 | URL
저보다는 사정이 나으신 거예요. 전 도움 줄만한 역량조차 없어 보이나봐요....

포기하지 마세요 롯데팬님. 이제 휙 치고 올라올겁니다. 사실 저럴 전력 아니잖아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다 이기고 치고 올라오세요. LG한테만 지면 됩니다 ㅎㅎㅎㅎㅎ

cyrus 2018-04-17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도인들(?)이 행인을 잡는 수법이 다양해요. 지난 주말에 중앙도서관 근처를 지나가다가 아주머니 두 분이 제게 다가와서 김광석 길 가는 방향을 물어봤어요. 그래서 위치를 알려주더니 김광석 길 말고도 대구에 놀만한 장소를 알려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잘 모르겠다면서 대답하고 지나가려고 했어요. 그러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제 나이를 묻고, 사주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했어요. 속으로 이 분들의 정체를 눈치 챘어요. 저는 그냥 관심 없다면서 도망치듯이 걸어갔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동성로 주변에 혼자 가기가 불편해요.

syo 2018-04-17 15:39   좋아요 0 | URL
뭐라도 계속 낚이니까 낚시꾼들이 그 어장에 자꾸 나타나는 걸 텐데요. 딱히 제게 큰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도 그 양반들은 사라졌으면 싶네요....

stella.K 2018-04-17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씨, 당신들이 지금 내 얼굴 말고 뭘 안다고 그래!

여기까지 듣고 나면 대패 삼겹살집에서 고기 뒤집는 무슬림 같은 표정을 짓고 싶어지지만
이미 난 최선을 다하고 말았으므로 그저 속수무책일 뿐이다......ㅋㅋㅋㅋㅋㅋㅋ

표현 죽이네요. 글을 쓰면 좀 이런 맛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넘 리얼리즘이어요.ㅠㅠ

그건 그렇고 syo님은 얼굴을 공개하라! 공개하라! 공개하라!ㅋㅋㅋ

syo 2018-04-17 15:40   좋아요 0 | URL
프로필이미지랑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실제로 보시면 어, 증명 사진 올린 거였군, 하실겁니다 ㅋㅋㅋㅋㅋ

stella.K 2018-04-17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그럼 거 <신과 함께>를 쓴 웹툰 작가 주호민...?!ㅋㅋ

syo 2018-04-17 16:30   좋아요 1 | URL
대박 ㅋㅋㅋㅋ 검색해봤는데 주호민 선생님 댁에 제 프로필 이미지 한 대 놔드려야겠네요. ㅇㅈㅇㅈ

stella.K 2018-04-17 16:50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냥 한 번 찍어 본 건데...
알겠습니다. 주호민 작가 귀여운데.ㅋㅋㅋㅋ

오후즈음 2018-04-17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넘나 궁금합니다...왜 SYO님을 피한답니까? ^^ 저는 늘 잡히는데요....그래서 늘 얘기 해요. 지난번에 했어요~~

syo 2018-04-17 16:30   좋아요 0 | URL
막상 붙들어도 빡칠 거면서 안 붙든다고 빡쳤네요....
 

※ 이 페이퍼는 책에 대해 병아리 눈물 만큼의 정보도 함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복수의 시작


FireEggFriend 콘칩의 결혼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 결혼을 둘러싼 인물들 중 현재 가장 불안한 남자는 누가 뭐래도 총각인생의 종말 날짜를 받아놓은 콘칩이겠지만, 축가를 부르기로 한 syo 또한 못지않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날짜를 세고 있다.

 

syo에게 축가를 부탁하는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것들이 자기 결혼식을 너무 하찮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당신이 돌발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깔끔하고 완벽한 결혼식을 원한다면, syo에게 축가를 부탁하는 것은 크진 않아도 확실한 실수가 될 수 있다. 그간 다양한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축가는 무조건 모 아니면 도다. 차라리 성대한 삑사리를 내서 메마른 예식 가운데 한 포인트 오아시스처럼 웃음을 주는 케이스라면 낫겠는데, 실제로 축가 44패에 달하는 syo의 기록은, 이건 뭐 딱히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웃을 만큼 거지같은 것도 아니라서 결국 감동도 없고 재미도 없는 시답잖은 판정패로 점철된 것이다. 한 번 하는 결혼식인데 syo로 괜찮겠니? 아니면 혹시 이거, 다음번을 위한 예행연습인거니.......

 

실제로 축가의 마지막 소절을 마치고는 축하한다. 행복해라.” 따위의 착하고 예쁜 말 대신 이런 말을 뱉은 적이 있다. “미안, 좀 망했네. 다음번 결혼할 때는 잘 해 줄게.” 차마 부모님들 쳐다 볼 엄두는 안 났지만 하객들이라도 빵빵 터졌으니 됐어. 신부도 웃었잖아. 확실하진 않지만. 2년이 지났는데도, 이후 다시는 그 친구(신랑)을 만날 기회가 없는 것, 그건 그저 우연일 거야......

 

이번 축가는 특별히 임선생(여친입니다)과 듀엣으로 부르는 것으로 기획되었는데, 우리는 350km의 거리와 각자의 격무에 지쳐 아무래도 호흡 한번 제대로 맞춰보지 못하고 식장에 들어가게 될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syo가 축가를 불러줬던 친구들 중 콘칩이 가장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가벼운 데가 있다. 깽판을 놓은들, 어쩔 거야 니가. 넌 지금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거야. 왜냐면 나는 요즘, 축가 연습한다고 코인 노래방에 가서 이별노래를 20곡씩 부르는 중이거든. 후후후. 조심해라. 뭔가 이상하게 사연 있어 보이는 부적절한 축가가 너의 결혼식을 덮친다!

 

이 모든 것은 16년 전 내 생일날, 니가 축하노래랍시고 진혼을 불러서 생일 분위기를 똥통에 쳐 넣었던 그날부터 내가 음지에서 쓸개를 핥으며 오랫동안 기획한, 너를 향한 피맺힌 복수의 빅픽쳐다.......

 

그리고 그 복수의 서막으로, 다음과 같은 책들을 추천해본다. 한 권도 읽지는 않았지만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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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6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6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4-16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 님 노래 부르는 거 보고 싶어서 결혼식 가고싶네요...

syo 2018-04-16 14:04   좋아요 0 | URL
이벼얼~했쬬~ 이벼얼 한 거어~맞쬬~🎵🎶

stella.K 2018-04-16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재밌군요.
노래 실력 중간 정도면 좀 더 빡시게 연습해서
웨딩 싱어로 나서보는 건 어떠실런지...ㅋ
스요님 아무래도 좀 엉큼하게 귀여우신 것 같습니다.ㅋㅋㅋ

syo 2018-04-16 14:05   좋아요 0 | URL
제가 좀 엉큼하고 좀 귀엽긴 한데 좀 엉큼하게 귀여운 줄은 몰랐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8-04-16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하는 친구의 이름까지 밝힌 정도라면 (본명이 콘칩이잖아요~~ㅋㅋㅋㅋㅋㅋ)
축가 장면 유투브 생중계 해야되는거 아닙니까?

syo 2018-04-16 14:07   좋아요 0 | URL
그건 좀 어렵겠습니다. 물론 저는 괜찮지만 콘칩군이 결혼을 한 번 하고 끝낼지 말지 확실한 게 아니니까요. 신부가 유투브에서 내 남편 저번 결혼식 축가 장면 보면 빡치잖아요. ㅋㅋㅋㅋ

독서괭 2018-04-17 0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귀 syo님 ㅋㅋ 축가 듣고 싶다! 듣고 싶다!!

syo 2018-04-17 08:51   좋아요 0 | URL
독서괭님 결혼하시면 불러드릴게요!
후후후후후.

독서괭 2018-04-17 14:05   좋아요 0 | URL
아아 결혼 한번 더 해야 축가 들을 수 있는 건가요ㅜㅜ

syo 2018-04-17 15:40   좋아요 0 | URL
제가 또 이렇게 비싸게 굽니다.....

AgalmA 2018-04-19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행사에서 조관우 ˝늪˝을 불러 분위기 싸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게의치않고 저 부르고 싶은대로 부르는 건 여전ㅋㅋ

syo 2018-04-19 19:3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어떤 행사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행사에도 어울리지 않는 노래르 부르셨네요 ㅎㅎ
 


그때는 차라리 악마의 자식이라도 되고 싶었나 봐

 

200X412일 목요일, 대구의 한 작은 컴퓨터학원에서였다. 영업이 잘 돼서 그랬는지 잘 안돼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생일을 맞은 아이에게 3.5인치 디스켓 한 통을 선물해주는 것이 그 학원의 오랜 전통이었다. 이미 CD-ROM이 최첨단 저장매체로 자리를 잡았고 디스켓이라는 물건은 노병이 되어, 죽지 않는지는 몰라도 확실히 사라지고는 있는 서글픈 시절이었다. 처음 CD-ROM이 등장했던 때가 아슴아슴 떠오른다. 아니, 세상이 이렇게 막 급하게 변해도 되는 거야? 이 얇은 플라스틱 한 장이 플로피 디스크 500장과 쌤쌤이라니! 과연 인류가 기술문명의 이 엄청난 발전 속도를 따라갈 수 있긴 한 것이야?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3.5인치 디스켓이 미풍양속으로나마 가늘게 명맥을 이어가는 훈훈한 시절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에 와서 보면 어차피 디스켓이나 CD-ROM이나 고조선 유적지에서 비파형 동검과 나란히 발굴될 것 같은 느낌이므로 부연하자면, CD-ROM이라는 놈은 한 장에 자그마치 700메가바이트를 구겨 넣을 수 있는 반면, 3.5인치 디스켓은 장당 1.44메가라는 협소하다 못해 냉소하고 싶은 저장 공간을 뽐냈다. 웬만한 코딱지 하나도 10메가가 넘어가는 4차산업혁명 시대를 기준으로 보면 이게 다 뭐하자는 짓인가 싶겠으나, 실제로 syo는 그 디스켓 한 통(10)이 매우 갖고 싶었는데, 10장의 컬러가 각각 빨주노초파남보핑흰검 총천연색이라 모아놓고 보면 너무도 예뻤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syo는 학원 문을 박차고 들어서면서 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상태로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선생님 저 내일 생일이에요, 디스켓 내놔요, , , 그리고 안녕하세요? 그러자 선생님께서 매우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정말? 내일 생일이야? 413, 금요일? 아니, 기껏해야 한 달 5만원 소액 결제로 실처럼 가느다란 관계가 겨우겨우 이어지는 자본주의 제자-고갱님에 불과한 내 생일에, 저렇게까지 기뻐하신단 말인가. 살짝 감동 받은 syo가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헤헤 웃자, 선생님은 그야말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신다. ! 정말 잘됐다! 그럼 네가 지금부터 책임지고 여기 컴퓨터들 날짜 다 414일로 바꿔 놔. 알지? 13일의 금요일에 컴퓨터 켜면 바이러스 걸리는 거. 한 대라도 바이러스 먹으면 13일에 금요일 태어난 니 책임이야. , , 그리고 생일 축하한다?

 

그날 보니 학원의 컴퓨터는 모두 해서 스물여덟 대더라.

 


그러고 보면, 이런 일도 있었다.


13일의 금요일은 종종 찾아오지만, 413일의 금요일은 많아야 10년에 두 번 온다. 13일의 금요일 개념이 숫자 13에 대한 공포증(심지어 용어도 있다. ‘트리스카이데카포비아라고 부른단다)이 만연한 서양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만약 13월이 있었다면 13일의 금요일 중에서도 1313일의 금요일이 짱 먹었겠으나, 애석하게도 일 년은 열두 달이고, 그렇다면야 으뜸은 누가 뭐래도 13일의 금요일 아니겠냐는 것이 syo의 지론이다. 이미 조숙하여 잡다한 책을 읽고 칭찬받는 것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 그러니까 구구단을 다 욀 즈음이었는데, 그때 벌써 13일의 금요일이 무시무시한 날이라는 사실을 syo는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다. syo가 어느 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선언한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 나는 악마의 자식이었노라고. 죽을 사짜 413일의 금요일에 태어나 태생적으로 공포스런 저주에 묶여 있다고. 한 학년에 반이 3개 밖에 없는 시골의 작은 학교였고 아이들은 더없이 순박했다. 우와아아아아, 맞나? , 너그들만 알아라. 우와아아아, 맞나? 너그들 혹시 ‘13일의 금요일카는 영화 아나? 우와아아아, 모르는데? , 그거 공포영환데, 내 얘기도 쪼매 있지. 13일의 금요일에 태어난 사람은 내캉 다 비슷하거든. 우와우와아아, 맞나? 하모, 그라고 내는 또 4월 아이가, 느그들 4 알제? 4, 디질 4. 우와와우와아아, 맞나? 디지나?

 

그러니까 syo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두 가지 뻥을 친 것이다. 우선, 몇 해 지나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처음 보게 된 영화 13일의 금요일 주인공은 다들 아시다시피 전기톱으로 사람 도륙내는 게 사는 낙인 인간 백정 놈이라 syo와 도저히 인생 스토리를 공유할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게 참 치명적인 사실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정작 syo13일의 토요일에 태어났었다는 점이다...... , 망했어. 어쩐지 악마의 자식이라고 하고 다니기에는 엄마 아빠가 사람이 너무 좋더라니만. 심지어는,

 

악마의 자식은커녕 사주팔자가 그야말로 황홀하게 좋다고 한다. 덕이 아주 충만하단다. 이런, 세상에.

 



그는 큰소리로 외치고 싶은 욕구 때문에 목이 아팠다드높이 하늘을 날고 있는 매나 독수리처럼 외침으로써자기가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음을 통렬히 알리고 싶었다그것은 삶이 그의 영혼을 상대로 외치는 소리였으며결코 의무나 절망의 세계가 내는 그 둔하고 조잡한 목소리가 아니었고제대에서 창백한 성직을 수행하라고 그를 불렀던 그 비인간적인 목소리도 아니었다한 순간의 야성적 비상이 그를 해방했고 그의 입술이 억제하고 있던 승리의 외침이 그의 두뇌를 갈랐다.

제임스 조이스젊은 예술가의 초상 

 

나는 예전에 걸음마를 어떻게 배웠는지를 몽상할 수는 있다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나는 이제 걸을 수 있을 뿐더 이상 걷기를 배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발터 벤야민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 시절』

 

나는 차츰 경외심을 감추려 애쓰는 것 같은 주위 사람들의 눈빛을 은근히 즐기게 되었으며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마리화나를 담뱃갑 속에 감추고 다니기라도 하는 듯한 내밀하면서도 아슬아슬한 쾌락에 익숙해졌다그 쾌락은 바로 '국민학생'이던 시절등하굣길 학교 뒷골목에서 늘 술에 절어 코가 빨갛던 아저씨가 연탄불에 구워 팔던 '쫀드기그 불량식품의 오묘한 맛과도 같았다연탄구멍 위에 오그라들던 붕장어 껍질처럼 생긴 그것맛있으니까 불량함에도 사 먹는 건지아니면 거꾸로 불량함 때문에 맛있게 느껴진 건지 알 수 없던 그것.

류동민기억의 몽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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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4-13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머마머마ㅓ머ㅓㅓ머ㅓ 우리 해든이도 십삼일 토욜에 태어난데다 사주가 좋다던데 이런 세상에나!!!! 어쩐지 토비님께 정이 가드라. ㅎㅎㅎㅎ
암튼 오랜만에 댓글 좋아요 일빠엥!!! 왤케 기뻐하지???ㅋ

syo 2018-04-13 08:56   좋아요 0 | URL
팔자도둑은 못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알고 보니 치명적인 연결고리가 있는 거였습니다. 라로님하고 syo 사이에. ㅎㅎㅎㅎㅎㅎㅎ

라로 2018-04-14 01:08   좋아요 1 | URL
여기는 오늘이 13일이에요. 그런데 금욜이네요. 암튼 그래서 어제 생일이시라는 생각은 못했죠. 저에게 어젠 12일. ㅎㅎㅎㅎ
암튼 우리 막내와 같은 13일에 토요일 탄생하신 토비님 생일 하늘만큼 땅만큼 축하드려요 ~~~~🎉🎊🎁🎈🎂💕🌺

syo 2018-04-14 01:25   좋아요 0 | URL
뭐가 번쩍번쩍 하다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라로님^-^

2018-04-13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3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4-13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글을 읽고서야 비로소 오늘이 13일의 금요일이구나... 합니다.

그런데, 그래서 오늘이 생일이라는 거예요 아니란 거예요?

syo 2018-04-13 10:01   좋아요 0 | URL
아니 이게 다 무슨 말씀이예요, 선생님. 제 사주 읽어주신 분이 선생님이시잖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맞잖아요ㅎㅎㅎㅎ

다락방 2018-04-13 18:36   좋아요 0 | URL
부끄럽기 짝이없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ㅌ

2018-04-13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3 1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8-04-13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약 생일에 요일까지 맞춰야 한다면, 7~8년에 한번씩 돌아오겠네요.
syo님, 오늘 생일이신가요.??

syo 2018-04-13 17:34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오늘 생일입니다ㅎㅎㅎㅎㅎ 금요일에 태어나지 못하고 토요일에 태어나긴 했지만 하여튼 4월 13일에 태어났네요 ㅎ

단발머리 2018-04-13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주가 황홀하며 덕이 충만해 만나는 사람마다 즐겁게 하더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피 버스 데이~~ syo님^^

syo 2018-04-13 17:3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ㅎㅎㅎㄹ

2018-04-13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3 1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4-13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일 축하드립니다. ^^

syo 2018-04-14 00:52   좋아요 1 | URL
아이구 신나게 놀다가 생일 지나서 댓글 발견했네요. 감사합니다 북다님!!

clavis 2018-04-13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일 축하드려요♡♡

syo 2018-04-14 00:53   좋아요 0 | URL
허허허. 이렇게 또 한 살 더 먹고 말았네요....
감사합니다^-^♡

psyche 2018-04-16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좀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좋은 시간 보내셨겠죠?
며칠전에 아이들과 ready player one 영화 봤는데 거기에 쇼가 나와서 syo님이 떠올랐다지요. 근데 나중에 보니 영화의 쇼는 sho더라구요. ㅎㅎ

syo 2018-04-16 07:2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제가 떠올랐다니, 어쩐지 뿌듯하다 ㅎㅎㅎ 한 거 없이 뿌듯하다 ㅎㅎㅎㅎ

chaeg 2018-04-16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일 축하드립니다. Imation 의 플로피 디스켓은 색과 결이 참 고왔던 기억이 있네요. 13일의 금요일 바이러스도 오랜만에 듣고 추억이 아롱아롱.

syo 2018-04-16 07:27   좋아요 0 | URL
맞아요. 괜히 갖고싶게 사람 마음 흔들어놓는 이쁜 녀석이었습니다. 그때 그렇게 아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네요...
 


진공관을 박살내는 끝없는 춤사위

 

사랑하는 동안 우리는 끝없는 몸짓이고 싶다. 스냅샷보다 활동사진이고 싶다. 매시간 문양이 변하는 인두가 되어 상대를 만나면 좋겠다. 글씨 위에 글씨를, 때론 흉터 위에 흉터를 쾅쾅 찍어놓고 싶기도 하다. 어쨌건 정박하기보다 계속 요동치고 싶다. 차이를 무한히 되풀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추억으로 고요히 남겨지는 것만큼은 싫다.

 

그러나 모든 움직임은 서로의 결이 맞을 때만 겨우 지속된다. 쉬운 일도 흔한 일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끊어지고 멀어진다. 추억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추억조차 되지 못하고 그저 한 무더기의 기억으로 남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오늘 이전에 끝난 모든 사랑이 추억과 기억 사이의 어디쯤 있다.

 

사랑하는 동안 내가 미소이고 싶을 때 종종 네겐 냉소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내가 웃음을 쓸 줄 몰라서였을까, 네가 웃음을 읽을 줄 몰라서였을까. 내 마음이 빨강을 칠하고 싶어 덤벼들어도 네 마음에 발린 색은 가끔씩 파랑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중 누가 색맹이었을까. 결국 내게 빨간 미소로 추억되는 시간이 네게 파란 냉소로 기억되고 있다면, 우리 중 누가 유죄인 걸까. 내가 네 마음에 찍힐 무늬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네가 내 마음이 칠하려 했던 빛깔을 좀 더 끈질기게 바라봐 주었더라면, 그렇다면 서로를 향한 우리의 몸짓이 아직 이어지고 있었을까?

 

끝나지 않은 오늘의 사랑을 오늘의 사랑으로 끝내지 않기 위하여 오늘 이전에 끝난 모든 사랑을 헤집어가며 생각건대, 사랑의 자리에 객관적 진실은 없다. 사랑이 포착하는 모든 진실은 주관적 진실이다. 감정을 완전 배제한 논리적 판단이 사랑의 문제를 해결하는 듯 보여도, 그것은 일시적이거나 착각일 뿐이다. 주관과 감정은 사랑의 공기이며 매질이다. 껴안아야 하고 고려해야 한다. 배제하면 진공만이 남는다. 자연은 진공을 결코 두고 보지 않는다. 우리가 만든 진공은 약하고 너무 손쉽게 무너진다. 무엇보다, 진공 속에서는 누구의 목소리도 전파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우리는 누구나 귀머거리고 벙어리일 뿐이다. 매질이 사라진 자리에서 메시지는 침묵한다. 진심은 진공관 안에서는 평행한 두 개의 선이다.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투과해야 굴절한다. 굴절해야 만난다.

 

 


자신의 사랑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아니 둘이 서로 무엇이 같고 다른지조차 말할 수 없다는 것그럼에도 끊임없이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그것이야말로 모든 사랑의 출발점에 자리 잡고 있는 어려움이자 슬픔이다재현이 현실의 완벽한 복제는 될 수 없다는 것바로 거기에 삶의 원천적 비극이 존재한다삶의 총체성을 온전하게 담아낼 수 있는 언어의 형식학문의 형식예술의 형식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그러나 그러한 재현이 총체성을 결코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할 때비로소 역설적으로 자유의 영역이 열리게 된다모든 재현은 현실의 불완전한 묘사라는 것그것은 재현의 쓸모없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류동민기억의 몽타주

 

이런 만남 속에서주고받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공을 패스하고 슛을 넣는다우리 몸은 아주 많이 다르다이 몸들 사이를 흘러 다니는 다양한 감정과 행위가 우리의 사회적 건강을 이룬다.

류은숙아무튼피트니스 


사실 자신만이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평범하고 꼴불견인 게 어디 있겠습니까?

사사키 아타루잘라라기도하는 그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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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2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2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못난 아버지의 마음 비슷한 것

 

이렇게 잘 쓰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나도 뭔가를 쓴다는 것이 의미가 있기는 한 건지 자주 생각한다. 언제부터 이랬는지는 모르겠지만, syo, 너 잘 하는구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종목이라곤 이제 달랑 두 개 남았다. 첫째, 이야, 넌 참 치킨을 맛있게/많이/잘 먹는구나. 둘째, 이야, 넌 글을 잘 쓰는구나. 첫 번째 칭찬을 들으면 오히려 모자란 감이 있어서 종종 발끈한다. ‘맛있게/많이/이라니. 틀렸어요. ‘맛있게+많이+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나 두 번째 칭찬은 아무래도 머쓱하다. 심지어 두 번 들으면 한 번 쯤은 혹시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라는 추가멘트가 은닉되어 있지는 않은지, 눈알을 데구르르 굴려대며 열심히 문맥에다 곡괭이질을 하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킨은 앉아 먹건 서서 먹건 온갖 기교를 동원해 천장에 거꾸로 붙어서 먹건 남는 거라곤 뼈 말고는 없지만, 쓰면 글이 남는다. 손으로 쓰면 손으로 쓴 글이, 발로 쓰면 발 냄새가 물씬 나는 글이 남는다. 온갖 기교를 동원해 천장에 거꾸로 붙어서 쓰면 그야말로 피가 거꾸로 솟는 몹쓸 녀석이 태어나는 것이다. 성실하지만 안타깝게도 건강하지는 못한 암탉마냥 꾸역꾸역 똥글을 낳다가도, 문득 잘 지내나 싶어서 1년쯤 전에 쓴 글을 다시 찾아가보면, 이제 월령이 겨우 12개월 된 그 글이란 놈이 담배를 꼬나물고 침을 찍 뱉으며 원망의 눈빛을 쏘아대는 것이다. , 아버지, 왜 나를 낳았어. ? 당신도 이렇게 나를 부끄러워 할 것을, 이럴 거면 대체 왜 낳았냐고......

 

syo는 글 쓰는 일도, 그러니까 소설이나 시는 당연하겠지만 그런 거 말고 지금 이따위 글을 쓰는 일조차 예술의 영역에 발꿈치 정도는 슬쩍 밀어 넣은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예술은 누구나 할 수 있고 해도 되지만, 결국 오래 남고 널리 소비되는 것은 크건 작건 재능이 있는 사람들의 손에서 빚어진 것들뿐이라고도 믿는다. 결국 syo의 글은 낮은 확률로 syo를 만족시키고, 그보다 말도 못하게 더 낮은 확률로 극소수 이웃들의 고개를 가볍게 몇 번 끄덕거리게 만든 다음, 너무 오래 구운 0.5mm 대패삼겹살마냥 물기를 잃고 퍼석퍼석하게 퇴장한다. 의미 없고 독자 없는 글들이 가서 죽는다는 어느 활자의 공동묘지에서 묘비도 없이 하얀 뼛가루로 흩어질 나의 글들아...... 못난 글쓴이를 둔 글에게 정말 미안하돠아아아악!!

 

하고 보니 농업혁명 시절 패러디였네요. 하여간,

 

오늘 무지하게 공부가 안 되는 바람에 도림천을 45분간 달렸으나, 그래도 여전히 공부가 안 되는 바람에, 그 바람에 작년에 쓴 글들을 쭉 한 번 읽어보는 그리 탐탁지 않은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생각하길, , 도대체가 나라는 인간은 왜 발전을 모르는가.

 

Q. 발전이 뭐예요?

A. 전기 만드는 거요.

Q. ...... 왜 당신은 발전이 없나요.

A. 뭐래, 이 양반아. 내가 무슨 피카츄도 아니고.


자가발전의 아이콘, 매일 발전하는 상남자의 상징 피카츄

 


요즘은 거의 읽지 못하고, 쓰는 것 역시 꾸준하지 못하다. 써놓은 글들을 하나씩 되짚으면서, 재능이 미미한 사람에게 글쓰기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런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글을 단련해야 하는지 곰곰 생각해보았다. 생각건대, 많이 쓰면 글은 두 가지 양상으로 는다. 우선, 무슨 축복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글이 잘 되는 그런 날, 하늘의 도움을 받아 만들 수 있는 내 글 퀄리티의 천장이 높아진다. 또한, 전생에 내가 나라를 팔아먹었나 싶을 정도로 글이 안 되는 날, 내 최악의 글이 그래도 땅굴을 파고 파고 계속 파서 지옥 불구덩이에서 유황스멜 맡을 때까지 떨어지지는 않게끔 밑바닥을 단단히 받쳐준다. 아무래도 syo처럼 태어나길 먼지로 태어난 인간은, 죽는 날까지 천장을 높여 봐야 그럴싸한 것 하나 못 낳고 먼 길 떠날 공산이 크다. 그러니까 나는 꾸준히 밑바닥을 받쳐 올리는 글을 써야 하겠다. 오늘의 글이 내가 쓴 가장 훌륭한 글이 될 수는 없더라도, 내가 쓴 가장 거지같은 글은 되지 않도록 쓰는 일. 기복을 자꾸 줄여가는 일. 그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syo놈은 최소한 글을 발로 쓰지는 않더라는 이야기가 만인의 공감을 얻을 때쯤, 언제 다시 되돌아봐도 크게 부끄럽지 않은 글들을 쓸 수 있게 될 그 때쯤이면 스스로의 글쓰기에 만족할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어느 집단이든 1등이 있으면 꼴등도 있다정규분포는 상위 10%가 있으면 하위 10%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준다모든 것이 완벽히 효울적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잉여는 말 그대로 '남는다', '필요 없다'는 뜻이다하지만 잉여인 것과 잉여가 아닌 것을 나누려면 그 기준이 옳다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한다기준이 영원불멸한 것이 아니라면 오늘의 잉여가 내일의 필수가 될 수도 있고오늘의 필수가 내일의 잉여가 될 수도 있다사실 잉여를 판단하는 '가치'라는 것도 대개 근거 없는 경우가 많다특허청 직원 아인슈타인의 잉여 연구가 상대론을고장 난 기계를 고치던 스티브 잡스의 잉여짓이 애플을 낳지 않았는가.

김상욱김상욱의 과학공부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수년간 영화를 한 편도 안 보는 사람은 없다글을 쓰고 싶은데 글을 수년간 한 편도 안 쓰는 사람은 주변에서 종종 본다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을 즐기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은유글쓰기의 최전선


 생각하는 것이 즐겁고 그것을 말하는 것이노래하는 것이그리고 쓰는 것이 즐겁다그것이 고될 때 '아휴 죽고 싶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했던 것 같다하지만 그게 '죽는 게 좋겠다' '살아서 뭐하나'라는 뜻은 아니었다최근엔 습관으로라도 그런 말을 했던 것이 부끄러웠다나는 살고 싶다그래서 침을 맞으면서 그렇게 외쳤던 거다살려주세요살고 싶습니다즐겁게 살고 싶습니다.

 

 그 방법을 계속 찾으며 살아가겠습니다.

이랑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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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4-10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은 이렇게나 매력 뽐뿌하는 글을 올리시면서~~~^^
게다가 위대한 댓글 트렌드 리더잖아요~~
우아, 멋져라!!!

syo 2018-04-10 11:47   좋아요 0 | URL
그 댓글은 좀 뿌듯했다.....ㅎㅎㅎㅎ
이맛에 댓글질 하나봐요!

유부만두 2018-04-10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미가 아루요. 있다다마요. 제가 읽고 아 조으다, 하고 하뜨도 누를 수 있습니다.
한낱 먼지로 흩어지더라도...혹은 몇 바이트로 삭제될 지라도 오늘도 자판을 누르십시오?
이상 음식을 맛있게, 많이, 잘 먹고 (심지어 만들기도 하는) 아줌마 팬이 드립니다. (닉넴을 보세요, 자아가 음식임)

syo 2018-04-10 11:51   좋아요 0 | URL
음식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남는 일인 것을요. 유부만두님은 진정 닉네임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시는구나.....

요리 바보 syo는 키보드나 뚜쉬뚜쉬 누르겠습니다.

cyrus 2018-04-10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카츄는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지우에게 착취당하는 희생의 아이콘입니다.. ㅎㅎㅎ 한 마디로 말하면 피카츄는 지우의 노예 1호입니다. 노예 2호는 밥 해주는 웅이.. ^^;;

syo 2018-04-10 18:0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우리는 포켓몬세대...

라로 2018-04-11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그럼 저는 어떻게 하라고요????ㅠㅠ
˝아, 도대체가 나라는 인간은 왜 발전을 모르는가.˝<---이거 완전 제 문장이라고요!!
글고 제가 syo 님께 댓글로 비댓글로 글을 잘쓰신다고 그렇게 간절히 말한거 진심으로 안 들으셨구나!! 철푸덕~~
오늘 모처럼 알라딘에 들어왔고 기분 엄청 꿀꿀한데,,,에이, syo 님 때문에 그냥 울어버릴래요~~~.ㅠㅠ

syo 2018-04-11 12:53   좋아요 0 | URL
아니, 그런 것이 아니오라,
아무래도 제 눈에 제 글이 안 이쁜데 어쩌겠어요.......

에이 나도 광광 울어버릴란다ㅠㅠㅠㅠ

서니데이 2018-04-11 1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 공부는 잘 되시나요.
오늘도 바람 많이 부네요. 좋은 오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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