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일기 - 은둔과 변신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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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정수복 선생님의 파리 일기를 읽으며 실망을 이어나갔다. 정수복 선생님의 글은, 정말 재미가 없고, 정말 정론이다. 정론인데 재미가 없는 글, 그것은 존경스럽지만 그렇다고 굳이 연락하고 지내고 싶지는 않은 꼬장꼬장한 인생선배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분명 좋은 책인데도, 읽는 내내 언제 끝나나, 계속 남은 페이지들을 뒤적거리다 다시 돌아와 끙끙대며 읽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흥미로운, 선생님도 저땐 별 수 없으셨군요, 싶은 부분을 발견했다. 선생님이 늦은 시간까지 연구에 몰두하다 그만 늦잠에 들고 말았는데, 사모님이 등장하여 이제 곧 아들 프랑스어 선생님이 올 시간인데 왜 아직 이러고 있느냐고, 오늘 뿐 아니라 당신의 그 밤낮 없는 연구 때문에 나도 요즘 계속 신경이 곤두서 있다며, 어디 나가지도 않는 이런 답답한 삶을 계속 살아야 하느냐며, 버럭 화를 내신 듯하다. 연고도 없는 파리에 이사와 반강제적 은둔 생활을 해야 했으니 선생님도 사모님도 쌓인 게 있었으리라. 어쨌든 선생님, 주무시다가 비몽사몽간에 물벼락 같은 말벼락으로 큰 봉변 당하시고 그날 일기에 이렇게 남기신다.


감정적 폭발은 심리적 미성숙의 표현이고 스스로 마음의 안정을 찾을 능력이 없음을 말한다두 사람 다 성숙한 인간으로서 모든 문제를 합리적으로 처리해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야 한다그런데 그러한 감정적 폭발은 미란의 개인적 특성인가여성적 특성인가흔히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감정적인 반응이 빠르고 사태를 전체적으로 파악해 대응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반면에 미세한 일에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한다이런 특성은 인류의 역사에서 오랜 기간 동안 남성은 수렵이나 채취 등의 일을 하기 위해 널리 밖으로 돌아다니는 일을 했던 반면에 여성은 안정된 장소에 머무르며 출산과 양육농작물 재배 등의 일을 담당했던 성별 분업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그러나 문제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따지는 일일 아니라 폭발적 감정을 적절하게 다스리고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상황을 합리적으로 처리해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넘어서 타인을 성숙한 자세로 대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더 생각해보아야겠다. (121 122) 

 

이 글은 마치 이성과 논리와 합리성으로 무장하여 객관적으로 쓰인 척 하지만, syo의 눈에는 세상 감정적인 글로 읽힌다. 감정적 폭발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감정적 낙진 정도는 되어 보인다. 선생님께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이기지 못하고 저지르신 실책 몇 가지를 언급해볼까 한다.

 

첫째, 아내의 감정적 폭발을 심리적 미성숙의 표현이라고 비난한다. 설령 정말 상대의 행동이 심리적 미성숙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니가 지금 이러는 건, 니가 아직 심리적으로 미성숙하다는 뜻이야, 알아?” 라고 대응하는 것은 정말 문제 해결에 도움이 1도 되지 않는 최악의 발언이다. 이런 발언은 일을 더 크게 만들 뿐이므로 실리적 관점에서 보면 결코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이라 하겠다오십을 바라보시면서 이런 연애의 기초적 주의사항조차 무시하시는 이유가 '감정' 아니면 뭘까. 인류의 역사에서 오랜 기간 수렵이나 채취 등의 일을 해온 남성유전자를 보유하신 선생님께서 사태를 전체적으로 파악해 대응하는 능력을 좀 더 발휘하셨다면 참 좋았을 텐데.

 

둘째, 선생님이 할 수 있었던 괜찮은 대응이 어차피, “당신, 그렇게 화낼 것 까지는 없잖아. 지금은 일단 진정하고 선생님 맞을 준비를 하고, 이따 선생님 가시면 찬찬히 더 이야기해 보자.” 정도였다는 걸로 미루어보면, 감정적 폭발이 개인적 특성인지 여성의 종특인지를 따져보는 부분은 정말 사족에 불과하다. 저 초보적 진화심리학 고찰의 합리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지금 사모님의 감정적 폭발을 개인적 특성으로 보든 여성적 특성이라고 우겨보든 어차피 선생님의 대응 방침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 마당이다. 그런데 굳이 불필요하게 이건지 저건지 따져보는 척 하며 여성이 감정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그 태도/의도. 이거야말로 감정적인 대응이다.

 

셋째, ‘흔히 ~ 라고 한다.’는 말로 내가 그런 건 아니지만, 남들이 다 그래.’ 하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건 좀 비겁해 보인다.

 

넷째, 저 진화심리학적 명제가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그 명제를 서술하는 어휘 자체가 중립적이지 않다. 여성의 특성으로 들고 있는 사태를 전체적으로 파악해 대응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미세한 일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라는 두 표현이 '반면에' 라는 단어로 연결되었음에도 syo의 눈에는 둘 다 부정적으로 보인다. ‘미세’? 뉘앙스가 더 중립적인 다른 단어 많다. ‘예민’? 이것도 마찬가지다. 진화심리학 서적을 보면, 이런 부분을 서술할 때 어휘나 대응 구조를 매우 세심하게 고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무슨 무슨 능력이 떨어지고라는 표현보다는 남성은 상대적으로 이런 능력이 뛰어나다는 식의 표현을 선호한다. 언어를 다루는 일을 오래 해 오신 선생님이므로, 충분히 조금 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표현을 고를 수 있었으리라 syo는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아무래도 너무 화가 나서 그러기 싫으셨던 것 같다.

 

다섯째, 결국은 최종적으로 하고 싶으셨던 말씀은 니가 감정적 폭발을 억제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이 부족하니까 그걸 좀 키워라, 그래야 여자가 아니라 사람된다, 정도로 보인다. 진화심리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진화심리학이 주장하는 여성의 특성이 사실이라면, 그것이 개인이 어쩔 수 없는 특성임을 고려하여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 있다. “여성은 원래 특성 자체가 이렇게 열등하니까 여성 니들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그 특성을 극복하여 남성처럼 합리적인 존재가 되도록 해라고 주장하기 위해 진화심리학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결론은 그냥 니가 똑바로 해. 그러기 위해, ‘문제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라는 말까지 첨언하신다. 아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본인이 다 따져놓고? 깔 때는 다 까고서는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을 위해서 안면을 싹 바꾸셨다. 그러니까 제 말이요. 이러실 걸, 그 이야기를 왜 하셨냐구요. 결국은 감정적 폭발을 자행한 사모님에 대한 감정적 툴툴거림을 주욱 늘어놓으셨으면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넘어서 타인을 성숙한 자세로 대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더 생각해보아야겠다.” 며 더 깊은 자기 성찰이라도 하실 것처럼, ‘성찰은 역시 나의 것처럼 서술하시는 데는 정말 혀를 내두를 밖에.

 

한 문단 가지고 너무 성대하게 깐 것 같아 송구한 마음이 있다. 진짜로 있다. syo는 남자인데, 분명 수렵과 채취의 본능이 뼛속까지 새겨져 있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미세한일에 예민하게구는 걸까?

 

몇 페이지 더 뒤에 발견한 또 다른 재미있는 대목.


나는 재스민 차를 마시면서 다시 툴루즈 여성학대회 자료를 읽었다자료를 읽다가 세상의 불평등과 차별정의롭지 못함으로 억압받은 자들에는 여성만이 아니라 노인외국인노동자장애인아이들동물유대인흑인아시아인 등 상황에 따라 수없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130) 

 

이미 이런 저런 사회 운동에 발을 담근 경험이 있는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syo는 언감생심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정체성이 빨갱이에 가깝다 보니 노동운동이나 사회개혁 쪽에 더 관심이 많지만, 저런 발언을 볼 때면 좀 웃긴다. 노동 운동에 열중하는 사람들은 노동자의 억압만 발견한다. 그들의 눈에는 여성/장애인/외국인/생태계가 받고 있는 억압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환경운동가들은 생태계의 파괴가 너무 가슴 아프다 보니 노동자/여성/장애인/외국인이 받고 있는 차별은 물론 없어지면 좋겠지만 급한 일은 아닌 것처럼 생각한다. 그런 다양한 운동가들에게 이내 페미니즘에 대한 감수성도 좀 가지라는 이런저런 압력이 들어온다. 그리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읽든 마지못해 읽든 페미니즘에 대해 한두 권의 책을 읽고 나면 그들은 세상 전반에 대해 갑자기 눈을 뜬다. “그래, 여성 뿐 아니라 노인/외국인/노동자/장애인/아이들/동물/유대인/흑인/아시아인 모두가 다 억압받고 있어. 이런 상황에 여성 문제만 말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옳지 않아!” 맞다. 정론이다.

 

그런데 세상에, 원래 자기들이 하던 운동에 열중하던 시절에는 좀 봐 달라고, 봐 달라고 그렇게 외쳐도 전혀 보이지 않던 젠더 억압을 비롯한 세상의 갖가지 억압들이, 희한하게도 여성 문제에 대해 공부만 했다 하면 단기간에 모조리 다 발견되어 여성 문제에는 집중을 못할 정도라니. 이쯤 되면 페미니즘 이거, 정말 위대한 학문 아닌가

 

 

이런 이유로 이 책이 나쁜 책이냐고 물으신다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15년도 더 전에 이런 글을 썼다는 이유로 정수복 선생님을 폄하하는 거냐고 물으신다면, 절대,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착용할 수 있는 안경은 여러 가지다. syo는 이 책을 정수복 선생님의 주된 관심사였던 망명자의 안경을 쓰고도 읽을 수 있었다. syo의 지금 생활이 정수복 선생님의 파리 생활의 하위호환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빨갱이의 안경을 통해 읽을 수도 있었다. 그것은 syo가 책을 읽을 때 가장 자주 착용하는 안경이다. 다른 안경을 쓰고 읽은 이 책은 나쁘지 않았다. syo에게 좋았다고까지는 못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은 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굳이 syo가 익숙하지도 정교하지도 않은 페미니즘의 안경으로 이 책의 한두 구절을 물고 늘어진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그다지 온당치는 않지만 그렇다고 못할 짓도 아니었다. 페미니즘의 안경은 언젠가 syo가 꼭 제대로 갖추고 싶은 시선이고,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으므로 부족하고 부끄럽지만 쓴다


결국 syo에게 이 책은 책으로서 버젓이 역할을 했다. 문학책을 읽은 사람이 문학적 지식이나 감동만 얻고 마는 것은 아니다. 공산주의를 다룬 책을 읽었는데 어쩐지 미적분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면, 그 책과의 만남은 그걸로 충분히 가치 있는 경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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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5-08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말입니다, 쇼님.
이 리뷰를 읽다가 이 부분에 밑줄을 그었고요.

<syo는 남자인데, 분명 수렵과 채취의 본능이 뼛속까지 새겨져 있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미세한’ 일에 ‘예민하게’ 구는 걸까?>

그리고 일어나서 박수를 칩니다. 네, 기립박수!! 훌륭한 리뷰네요. 보통 제가 피씨로 ‘좋아요‘를 눌러서, 제 좋아요는 보이지 않을 때가 많겠지만, 이 글은 제가 좋아요를 눌렀다는 것을 반드시, 기필코 알리기 위해, 이렇게 피씨에서 댓글 쓴 뒤에 북플 가서 좋아요를 누르겠습니다. 꾹, 하고 말이지요.

syo 2018-05-08 10:02   좋아요 0 | URL
뭘 이렇게까지나요 ㅎㅎㅎ
이 글은 그저 syo가 ‘미세한 예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글일 뿐인 것을요.....ㅎ

유부만두 2018-05-08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인이신 장미란님의 ‘빠리의 여자들’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

syo 2018-05-08 10:04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드님의 건축 관련 책도 흥미가 생겼구요. 어마어마한 가족이네요. 일원이라면 누구나 책 한 권쯤은 쓰는....

단발머리 2018-05-08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세상에, 원래 자기들이 하던 운동에 열중하던 시절에는 좀 봐 달라고, 봐 달라고 그렇게 외쳐도 전혀 보이지 않던 젠더 억압을 비롯한 세상의 갖가지 억압들이, 희한하게도 여성 문제에 대해 공부만 했다 하면 단기간에 모조리 다 발견되어 여성 문제에는 집중을 못할 정도라니. 이쯤 되면 페미니즘 이거, 정말 위대한 학문 아닌가?˝

페미니즘 정말 위대한 학문 맞아요. 그렇다니까요. 페미니즘이 이렇게 넓은 강이예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정희진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여성주의 학자들의 주장을 syo님이 이렇게 정리해 주시니, 아주 명쾌하면서도 깔끔하네요.
역시나 syo님! 참말로 멋지십니다!!

그나저나, 제 좋아요! 도 잘 보이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8-05-08 10:50   좋아요 0 | URL
보여요! 잘 보여요! 심지어 다섯 개로 보이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18-05-08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으면서 밑줄치고 박수친 부분을 댓글에 다 달아주셨네요 ㅎㅎ syo님은 안경도 멋져요😎

syo 2018-05-08 13:4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센스있는 이모티콘🤓

2018-06-12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2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2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2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2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2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생각해 보면, 항상 이건 일기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일기를 쓰는 경우가 드물다. 개놈(개그병 걸린 놈)이나 중놈(2병 걸린 놈)이나 보면 항상 추억/감성 팔이를 하고 있을 뿐이지, 그날 벌어진 일들은 기록하지 않는다. 그래놓고 뻔뻔하게 일기라고 우기는 이유, 그러니까 일기장에 그날을 기록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이 재미도 감흥도 없는 그저 그런 하루였는데, 실은 어제도 그랬고 극히 높은 확률로 내일도 그럴 예정이기 때문이다. 밍밍한 기록이라도 남기는 이유를 이해는 하는데 공감은 못하는 것이다.

 

일기는 혼자 쓰고 혼자 보는 장르라는 게 통설인데, 생각건대 이건 이유도 근거도 없는 개소리에 가깝다. 왜 그래야 되는지 납득 불가다. 실제로 우리는 누구도 어느 날 문득, ‘, 오늘 양촌이랑 작두랑 메뚜기 잡고 개구리 잡아 구워 먹었더니 너무 행복했어, 이걸 기록에 남겨야지. 그리고 이 기록을 앞으로 일기라고 부르는 게 좋겠군.’ 하는 깨우침을 얻어 자발적으로 일기를 시작하지는 않는다. 일기란 왜 쓰는 것이며, 어떻게 쓰는 것인지를 우리는 남에게 배운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걸 가르쳐준 남(대체로 부모나 선생)은 우리가 쓴 일기를 합법적인 강제력을 동원해 검사한다!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물론 잘하는 짓이라고도 하지 않겠다). syo에게 일기란 다른 모든 장르의 글처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글이다. syosyo라고 하지 않고(가끔 한다) 자꾸 syo라고 지칭하는 것은 3인칭 귀요미체(syo 와떠염 뿌잉 뿌잉)를 구사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굳이 이런 짓 안 해도 syo는 대충 좀 귀여운 편이다. 맞잖아요. 뭐왜뭐), 애초부터 남들 보시라고 쓴 글에 자꾸 ’, ‘내가라고 지칭하는 것이 어쩐지 좀 머쓱해서다. 그러니까 이런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남들 보여줄 건데,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일상의 찌꺼기를 달여서 만든 싸구려 보리차 같은 글을 써서 되겠는가.

 

그랬는데, 오늘 정수복 선생님의 2002년도 일기들을 읽다가 깨달은 바가 있었다.

 


나로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조용히 숨어 지내기 위해 파리에 왔지만 결국은 할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중요한 문제는 타인의 시선이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하고 그 일을 위해 많은 정성을 쏟고 정진하여 열매를 맺어야 한다.

정수복파리 일기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이렇게 추측하기 쉽다. ‘타인의 시선이나 타인의 의견에 휘둘리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정성을 쏟자는 이야기니까, 이제 syo란 놈이 남들 신경 안 쓰고 일기를 쓰겠다는 다짐을 했겠구먼하고


!

 

그게 아니라, (아직 반도 못 읽었지만 최소한 지금까지)정수복 선생님의 일기는 너무 재미가 없다. 그렇다고 뭐 굉장히 아름다운 문장이 꽝꽝 박혀 있는 것도 아니고, 기가 막힌 삶의 지혜가 듬뿍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저 정도 이야기는 잘 보면, 사실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본 것 같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도덕책 수준의 지혜라고 해도 되는 수준이다. 그러니까 정수복 선생님은 저 일기를 쓰던 젊은 날(오십에 가까우셨지만) 이걸 누구에게 보여주겠다는 생각 없이, 그야말로 이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예견된 고난의 삶을 뚫고 나가기 위해, 코뿔을 갈고 다듬는 코뿔소 같은 마음으로 썼던 것이다. 그러기엔 충분하고 충만한 글이다. 그랬는데 15년도 더 지난 시점에 갑자기 떡하니 그걸 책으로 내셨다? 남들 읽어보라고? 그러니까 syo가 얻은 깨달음이란 ? 그래, 이랬겠다. 이래도 된다는 거지?’ 하는 것에 가깝다......

 

쓰고 보니 시원하게 돌려 깐 것처럼 보이지만, 진짜 느낀 바가 크다. 앞으로는 syo도 어딜 걸었다, 뭘 읽었다, 뭘 먹었다, 참 맛있었다, 뭐 이런 식으로 소소한 하루를 기록하는 글들을 써 봐야겠구나 하고 있으니, 이건 사실상 독서가 행동을 바꾼 게 아닌가? , 그야말로 카프카의 도끼 같은 책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하시죠.

 


 

2

 

(같은 고시원에 사는 친구입니다)이 카톡으로 제보하길 맑스 200주년 기념으로 고향에 거대동상 세워졌다는 기사에 베댓이 막시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산주의자가 되고, 막시즘을 완전히 이해한 사람들은 자본주의자가 된다라는데, 자본주의자가 되나? 어이없네.” 했다.

 

사실 그다지 어이없을 일은 아니다. 비슷한 버전으로, 젊은 시절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던 사람은 못된 놈이고 나이 먹고도 공산주의자인 놈은 등신이라는 식의 이야기도 돈다. 이것들은 다양한 방향으로 읽을 수 있다. 첫 번째로 이것은, 마르크스주의가 이상론에 가까운 비현실적 사상이라는 비난이다. 두 번째로, 젊은 날 운동에 뛰어들어 혁명을 제 손으로 이루겠노라며 극단 투쟁하던 인간이, 세월이 지나자 일순간 변절하여 자기 보신과 자본의 배를 불리는 데 급급한 꼴을 너무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니까 그 새끼 개인도 나쁘지만, 마르크스주의 자체도 별 볼일 없다는 일타쌍피형 비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syo는 이렇게 읽는다. 마르크스는 역시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본주의 시스템의 분석가라고. 자본론은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온갖 다채로운 수단과, 그 수단의 작동 원리를 속속들이 기록해 놓은 그야말로 자본가에겐 '노동착취 무작정 따라하기' 같은 책이다. 장래 희망이 부르주아인 어린이라면, 그 아이가 공부해야 할 것은 한글과 자본론이다. 심지어 한글은 필수도 아니다.자본론이 영어, 독어,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등 기타 세계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막시즘을 완전히 이해한 사람들은 자본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syo의 독창적인 생각도 아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을 잘 알고 있습니다그것은 '자본주의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마르크스를 읽고 그가 던진 문제를 그대로 실천하면 된다'는 공공연한 비밀입니다어쨌든 그 대표적인 책 제목이 자본론입니다이 책에는 노동자를 '정당하게착취하기 위한 이론이 쓰여 있습니다.

  뒤집어보면 자본론은 '자본주의의 바이블'이며 '좀 더 유능한 자본가가 되기 위한 지침서'입니다실제로 구소련의 지도자들은 이 책의 내용을 참고해가며 노동자들을 착취했습니다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 역시 마찬가지 방법으로 일본 경제의 번영을 이뤄냈습니다마르크스주의자들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방법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은 것입니다.

마토바 아키히로위험한 자본주의 

 



3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라 출판계가 들썩들썩한다(그랬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일 년에 2, 3종은 꾸준히 나오던 마르크스주의 책들이지만, 올해는 좀 더 주목할 만한 책들이 퐁퐁 쏟아지고 있다.




그 가운데, 새로 나온 이 마르크스 평전이, 내가 작년 여름 2권만 구해 읽고 진한 감동에 몸부림쳤던 칼 마르크스 전기’와 같은 책을 번역한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번역자도 출판사도 다르긴 하지만, 그 책도 마르크스 레닌주의 연구소가 만든 책을 저본으로 했었는데. 잘은 몰라도 마르크스 레닌주의 연구소는 국책기관 급은 될 텐데 전기를 두 권이나 내진 않았겠지 싶기도 하고. 만일 그렇다면, 이 평전은 그야말로 마르크스의 업적을 가장 풍부하게 드러내는 평전인 동시에, 거의 마르크스라고 쓰고 하느님이라고 읽어도 될 정도로 빨아주는 평전이 될 것이다.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교리로 생각하는 곳에서 만든 책인데 어련할까. 일단 바로 사 놓긴 했는데 찬찬히 읽어 볼 생각이다.

 

 

 

4

 

알라딘에서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행사 대상 도서로 마르크스주의 서적 70권을 선정했다. 리스트를 훑으며 세어보니, 이 가운데 35권을 이미 읽었다. 역시 알라딘 빨갱이 syo. 호는 알빨. 그보다 실은 입문서 빠돌이라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그렇다면 두 번째 호는 입빠.

 

알빨이든 입빠든, 마르크스 200주년을 맞이해 가만히 있을 syo가 아니다. 실은, 마르크스 관련해서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모든 입문서와 개론서를 다 읽은 다음, 그야말로 쌩초보를 위한 입문서/개론서 읽는 순서 안내’ 같은 페이퍼를 써 볼까 소소하게 기획 중이다. 실제로 마르크스주의 입문서/개론서는 너무 많다. 니체를 제외하면 나머지 철학자들에 대한 책은 그 수가 대체로 마르크스의 반, 혹은 반의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그 안에는 가려야 할 옥석도 있고, 읽기 좋은 순서도 있다. syo 역시 맑알못 시절에는 표지만 보고 이게 이유식인지 홍어삼합인지 구분할 줄 몰라서 부득이 코도 뻥뻥 뚫리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다.

 

사실 기존에 나와 있는 입문서/개론서는 거의 다 일독씩은 했지만, 희미한 기억만으로 테크트리를 짜면 사회에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으므로, 한 번씩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 지금은 이래저래 다독할 처지가 되지 못하여 쉬엄쉬엄 읽는 중이다. 7월에 시험이 끝나면 예년처럼 미친 듯이 읽을 수 있을 테니, 아마 10월 언저리에는 뭐라도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얼른 기억나는 괜찮았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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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5-07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전 추천도서 70권 중 달랑 3권 읽었네요.
아직 빨갱이 되기 먼 것 같습니다. ㅎㅎ

syo 2018-05-07 08:32   좋아요 1 | URL
아니야 ㅋㅋㅋㅋ 북다님은 저런 것들 읽으실 필요가 없으신 거죠. 이미 너무 빨가셔서.

stella.K 2018-05-07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대단합니다. 맑스에 관한 책 70권!
스요님 그 정도면 알라딘에서 객원으로라도 채용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물론 이미 리스트를 만들 때 어느 직원분이
하셨겠지만 지금쯤 스요님 때문에 약간은 쫄고 계시지 않을까요?ㅎㅎ

저야말로 맑알못이라 우리가 왜 맑스를 알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거에 대해 한 말씀하신다면...?

솔직히 전 첨에 님이 자신을 객관화 해서 쓰는 페이퍼가 익숙치 않았어요.
왜 가끔 드라마 보면 아이들 자기가 자기 이름 부르면서 어른한테 예쁘게 보일려고 하잖아요.
그게 생각이 나서. 그게 알고 보면 그 아이의 독특한 캐릭터라기 보단
그 극을 쓴 작가가 아이들에 대한 연구를 하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아이들이라면
이럴거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 같아 거북스럽더라구요.
아, 물론 작가와 스요님이 같다는 건 아니구요.
뭐 님은 일종의 시그니처 같은 거 아니겠습니까?ㅎㅎ

syo 2018-05-07 15:24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알라딘이 리스트업 한 70권 안에는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들어 있고, 심지어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까지 들어있습니다. 올해 안에 저 70권을 다 독파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저야 겨우 입문서/개론서 리스트나 만들려고 하는 수준인 것을요. ㅎㅎㅎㅎㅎㅎ

제 생각입니다만, 우리가 맑스를 알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단지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것들을 맑스가 기가 막히게 잘 가르쳐 주고 있을 뿐이지요. 그러나 사실 딱히 맑스로부터가 아니더라도 배울 수 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배우기 싫어도 자동으로 배우게 되는, 대체로 아프고 뼈저린 방식으로 배우게 되는 그런 것들이지요.

syo가 syo를 syo라고 부르는 것에 익숙해지셨다면, 스텔라님도 이제 저와 꽤 친해졌다는 말이 아닐까요 ㅎㅎㅎ 원래 좀 꼴보기 싫은 것도 호감이 있는 사람이 하면 그냥 저냥 넘어가지게 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니까요. 시그니처로 이해하신다니, syo를 향한 스텔라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래 ㅋㅋㅋㅋㅋㅋㅋ

stella.K 2018-05-07 16:4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아뇨.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섭하죠.
스요님은 그때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와 관련된
페이퍼에서 댓글 이후 제 글에 댓글 다시는 거 못 봤슴다.
저는 스요님 페이퍼를 꼬박꼬박 읽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읽을 때마다 댓글을 다는 편인데 말입니다.
친근은 서로 가까워졌을 때를 의미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오히려 스요님을 혼자만 짝친근 하는 지도 모르죠.
그러다 스요님 팽 당하실지도...ㅋㅋ

syo 2018-05-07 18:16   좋아요 1 | URL
어이쿠 ㅎㅎㅎㅎ 죄송합니다. 서운하실 거라고는 예측도 못했어요. 너무 제 입장에서 생각했나보네요.
저도 여기저기 댓글과 좋아요를 뿌리고 다니지만, 그 분들이 제 서재에 찾아오시지 않는 것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보니 다들 저 같을 거라고만 생각했나봐요. 허허;

댓글을 제대로 못 다는 것은 거의 성격 문젭니다. 이웃분들의 길고 다정한 댓글을 볼때마다 혀를 내두릅니다. 원체 경상도 남자로 자라놔서......

스텔라님께서 제 글을 꼬박꼬박 읽는 건 아니지만, 읽을 때마다 댓글을 다시는 편인 것처럼, 저도 스텔라님의 글에 꼬박꼬박 댓글을 다는 건 아니지만 읽긴 열심히 읽고 있답니다(응?) ㅎㅎㅎㅎ 너무 서운해하지 마셔요. 스텔라님을 댓글을 달만큼 친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댓글을 안 단게 아니랍니다.

짝친근 이론은 사실이 아니니 넣어두시고, 팽도 넣어두시고, 다정하게 지내보시자구요^0^

chaeg 2018-05-07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syo님의 얼굴이 빨간 것이지요..

syo 2018-05-07 20:38   좋아요 0 | URL
바로 그렇습니다!! 토큰님 제대로 알아 주셨네요^-^

독서괭 2018-05-0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머릿속은 빠알개 빨가면 맑스 맑스는 어려워 어려우면 입문서 입문서는 많아 많으면?? syo님의 페이퍼를 기다려야죠.
... 이 댓글 쓸까말까 하다가 씁니다 ㅋㅋ

syo 2018-05-08 13:43   좋아요 0 | URL
근래 본 것 중 가장 재치있는 댓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시 독서괭님은 예삿 분이 아니셔 ㅎㅎㅎㅎㅎ
 


나는 바람이 많은 어느 물가에서 왔다

 

밤이 조각낸 달빛이 물돌에 부딪혀 쟁그랑댔다. 우리는 개울이 뱉어놓는 물소리를 밟고 서서 조용히 귀를 적셨다.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고, 큰아버지가 기억이 난다고 대답했다. 달그림자에 기대 선 나무들이 틈틈이 몸을 열어 바람을 풀어 놓고 있었다.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옷과 신발을 벗어던지고 물을 헤집어 물로 들어갔다. 개울의 가운데로 걸어가는 아버지의 슬와가 아슴아슴 밤으로 버무려지다 이내 어둠의 뒤편으로 완전히 숨었다. 구름이 달을 지나가고 있었다. 바람이 물풀을 만지는 소리. 개구리 제 이름 외치는 소리. 두 어른이 두 아이로 돌아가 개울물 으깨는 소리. 물 깨져 흩날리는 소리. 물에 물 젖는 소리. 개울가의 밤은 소리로 환했다. 나와 사촌 형은 넓고 평평한 돌 위에 옹송그리고 앉아 오롯이 소리를 모으는 귀가 되었다. 오래 듣고 있었다.

 

그날 개울의 중심으로부터 흘러나와 형과 내 귀를 울렸던 것은 아마 시간이었을 것이다. 밤이 열어준 시간의 한복판에서 물과 놀고 있던 그 소리들은 이미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밤, 그 개울가에 두 어른과 두 아이가 있었다고 사람들은 말할 테지만, 그 소리들에 젖어 본 나는 안다. 잠깐이었지만, 어른은 없었다는 것을. 물과 바람과 밤은 부드러워 보이지만 사실은 저 무서운 어른들을 얼른 세상 밖으로 치워 버릴 만큼 강하다는 것을.

 

이렇게 내가 물과 바람과 밤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도.

 


 

과거는 미래를 상상하는 터전이다회고의 끝에는 노스텔지어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상상이 있어야 한다노스탤지어에 사로잡혀 있는 한 우리는 과거에 대해 할 말이 많아지고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중단할 수 없을 정도로 수다스러워진다노스탤지어는 사람을 우울함 속으로 데려간다과거를 추억하고 안타까워할수록 현실은 맘에 들지 않기 마련이다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영혼이 사로잡힌 사람은 미래라는 단어를 낯설어 한다부모가 살아왔던 생애를 기록해 나가면서 나의 머릿속에는 우리가 살아야 하는 미래가 떠올랐다과거는 미래를 보기 위한 연습이다과거에서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만이 고아가 되어도 서럽지 않다과거에 대한 기억은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종결되어야 한다기억의 정확한 시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노명우인생극장


기억이 현재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라는 명제는 구체적으로 있었던 일즉 사건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생각했던 바즉 의식에 대해서도 성립한다과거의 의식을 재현하는 데는 이미 현재의 의식이 개입한다지난 일에 대한 추억은 과거의 재현인 동시에 지금 시점의 기억이라는 점에서 이미 현재적 의미를 갖고 있다.

류동민기억의 몽타주

 

나는 새삼 깨달았다소리는 아름답다세상에는 아름다운 소리와 아름답지 않은 소리가 있는 게 아니다모든 소리는 아름답다문제는 소리에 있는 게 아니었다언제 그 소리를 내는가언제 그 소리를 듣는가어떤 마음으로 듣는가어떤 크기로 듣는가그게 문제였다결국 인간이 문제였다.

김중혁,뭐라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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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2018-05-04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아버지가 기억하신 건?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왜 개울로 들어가신?

다음 포스팅에서 알 수 있게 되는 걸까요?

syo 2018-05-04 07:54   좋아요 0 | URL
사실은 이 사건(?)이 제가 6살때쯤 벌어진 일이라서 기억은 희미하고 이미지만 선명합니다.

일단은 아버지가 큰아버지한테 ˝여기 기억하시냐˝고 여쭙고 큰아버지가 ˝기억하지 그럼˝ 하는 대화를 주고 받으신 걸로 저는 기억하는데 그것도 사후에 재구성된 것일 수도 있구요. 실은 두 분 중 누가 묻고 누가 대답했는지도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저 장소가 아버지와 큰아버지가가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냥 두 분이 어릴 적에 여기서 고기 잡고 놀았던 거 기억하냐는 말을 주고 받았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어요. 풍경 고즈넉하고 추억에 젖어서 개울에서 한 판 노신 걸로.
 


사랑의 시詩, 사랑의 시時


사랑이 시를 낳는다. 당연하다. 누구나 사랑에 빠지면 시를 말한다. 사랑을 나누는 이들은 시로 서로를 주고받는다. 그래서 사랑의 말에도 은유가 중요하고, 의미가 중요하고, 리듬이 중요하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사랑의 모든 발신은 도착한 모습 그대로 수용되지 않는다. 이해와 오해를 통해 지연되고 해석된다. 시인이 고개 저은 시가 때로 읽는 이의 마른 마음을 축이듯. 혹은 종종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나듯. 내 사랑은 내가 사랑하지 않는 곳에 존재하고, 내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사랑한다.

 

내가 쓴 시처럼 내 사랑은 대체로 나만 읽을 수 있었다. 늘 나만 아는 메타포. 그저 내 눈에만 보이는 상징. 겨우 내 귀에만 들리는 운율. 결국 참지 못하고 제풀에 그 모든 남루한 시어들의 배를 가르고 의미를 끄집어내 낱낱 풀어헤치자, 설명된 모든 시가 그렇듯이, 그 순간 내 사랑은 문학이 아니라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도 그저,

 

망실과 왜곡이 정해진 바라면, 나는 시를 더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더 정확하게, 더 경제적으로, 더 아름답게 의미를 송신하는 더 커다란 안테나를 세우려 했다. 사랑이 시를 낳는다. 그러나 시는 사랑을 낳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더 좋은 시를 만듦으로써 더 좋은 사랑을 낳아보려 오래 골몰했던 것 같다. 대부분 부질없는 시도였다. 시는 현란하고, 충만하고, 저 홀로 꽃처럼 밝게 피었으나, 사랑은 그림자처럼 조용히, 그저 있었다. 시를 신고 사랑은 그다지 오래 걷지 못했다. 애썼으나 멀리 오지 못했다. 시를 더 잘 쓰는 기술은 늘 부족하거나 불순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제 와, 이제라도,

 

더 다정한 사람이 되는 기술을 배우고 싶다.

 



 

 思慕

 - 물의 안쪽

 

 바퀴가 굴러간다고 할 수밖에

 어디로든 갈 것 같은 물렁물렁한 바퀴

 무릎은 있으나 물의 몸에는 뼈가 없네 뼈가 없으니

 물소리를 맛있게 먹을 때 이()는 감추시게

 물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네

 미끌미끌한 물의 속살 속으로

 물을 열고 들어가 물을 닫고

 하나의 돌같이 내 몸이 젖네

 귀도 눈도 만지는 손도 혀도 사라지네

 물속까지 들어오는 여린 별처럼 살다 갔으면

 물비늘처럼 그대 눈빛에 잠시 어리다 갔으면

 내가 예전엔 한번도 만져보지 못했던

 낮고 부드럽고 움직이는 고요

문태준思慕가재미

 

작은 기쁨이 우리 삶을 지탱해준다. '사소한', '소소한', '간소한'이란 수식어가 너무 많이 쓰여 팬시용품처럼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존중하지 않으면 우리 인생은 얼마나 더 허무해질까.

조안나,당신을 만난 다음 페이지

 

일상성이 소중한 이유는 결국 사람 때문이다일상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이유도 혼자만의 외딴섬이 되고 싶다거나 경주마처럼 눈을 가리고 내 앞길만 보고 살자는 생각 때문이 아니다매일매일 하루하루를 늘 똑같이 보내려고 노력하는 것은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늘 그자리에 있길 바라는내 나름의 시간을 흘려보내는 방식이다.

김교석아무튼계속

 

사랑어느 봄날 밤의 사랑그녀의 나이트가운에 달린 면 소재의 레이스잠들기 전 그녀가 사용하는 로션 혹은 향수의 신선한 향기그녀의 검은 머리와 잘 보이지 않는 창백한 얼굴흐트러진 레이스창틀 및 겹쳐진 커튼을 통해 새어들어와 우리의 몸 사이를 가로지르듯 비추는 가로등 불빛애정과 실망에 관한 완벽할 만큼의 솔직한 토로한 육체의 다른 육체에 대한한 대답의 다른 대답에 대한 완벽한 반응그리고 우리의 지적 능력을 사로잡아버리는 그 어떤 매혹을 향한이질적이고 압도적인 폭력이 여전히 남아 있는 곳을 향한 느릿느릿한 여행그리고 달콤한 잠.

존 치버존 치버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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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는 이별도 말해요.
    from 마지막 키스 2018-05-03 08:55 
    이별이 오면 문태준이별이 오면 누구든 나에게 바지락 씻는 소리를 후련하게 들려주었으면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면서바지락과 바지락을 맞비벼 치대듯이 우악스럽게바지락 씻는 소리를 들려주었으면그러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입을 틀어막고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없겠지가장 아픈 데가 깔깔하고 깔깔한 그 바지락 씻는 소리를 마지막까지 듣겠지오늘은 누가 나에게 이별이
 
 
2018-05-03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3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18-05-03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시 궁금합니다. 축가만큼이나...!!

syo 2018-05-03 15:03   좋아요 1 | URL
그 축가는 근래 보기 드물게 폭망하여 그들은 아마 더욱 행복하게 살 것 같습니다........ㅠ

독서괭 2018-05-03 22:1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결혼생활에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재생되겠군요!

syo 2018-05-03 23:50   좋아요 0 | URL
이렇게 온누리에 평화와 안정을 뿌리고 다니다니......위대하다.ㅋㅋㅋㅋㅋㅋ

AgalmA 2018-05-04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잘 몰랐는데 syo님은 생각의 결이 참 고운(?) 사람입니다. 제 표현력이 부족해 이렇게밖에는 말하지 못해 속상!

syo 2018-05-04 19:09   좋아요 1 | URL
아갈마님의 표현력이 부족하시다구요? ㅋㅋㅋㅋ 그건 아니죠. 그냥 syo가 애매한 거지요 ㅎ

뭔진 잘 모르겠지만 고운 건 좋은 거죠! 좋은 냄새가 나는데. 감사합니다 ㅎ

AgalmA 2018-05-04 19:18   좋아요 0 | URL
그래요. syo님이 참 설명하기 애매한 사람이다로 합의 봅시당! ㅋㅋ
 

 

청운의 뜻을 품고 죽은 사람마냥 공부만 하겠다며 서울에 올라와 놓고선 1, 2월 꼬박 한 달에 20권씩 읽었다. 미친 놈. 광탈의 향기. 그리하여 이를 악물고 3월에는 한 권도 읽지 않았다. 3월 말일, 오늘은 독서기록을 남길 일이 없다는 사실에 정말 뿌듯(?)했다. 나도 한다면 하는군. 의기양양하게 4월을 맞이했다. 그러나 자만은 항상 방심을 낳는 법. 어쩐지 정신을 차려보니 4월에는 44권을 읽고 말았다. 444는 무엇을 암시하는가..... 으흑, 하다하다 독서 요요라니, 꺼지라 그래, 지옥으로 꺼져버리라 그래..... syo는 역시, 죽으나 사나 한 달 평균 20권은 읽게 만들어져 있는 인간인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망할 것이다, 내 인생은.

 

201804 : 44

 


1. 아무튼, 서재

: 책이라는 물건이 사람을 적시면 사람은 각기 다른 색깔로 빛난다. 나는 나와 당신이 얼마나 비슷한 사람들인지 알아채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도구로 책을 지목한다. 동시에 나와 당신이 얼마나 제각각의 사람들인지 판별하는 일 앞에서도 책을 제일 먼저 꺼내들 것이다.

 + "일반적인 소설 크기의 책을 간결히 꽂기 위한 칸의 적정 높이는 25m이다."(31) 라는 문장은 롯데월드타워를 한 방에 복층 원룸으로 만들어버린다.

 + "1978년 프랑스 혁명은 세상을 바꾼 대표적인 사건으로 기록된다." (71) 라는 문장은, 자유평등박애를 나보다 몇 살 많긴 해도 이야깃거리가 겹쳐 말이 잘 통하는 형 정도로 취급하게 한다.

 

2. 우리는 모두 예술가다

: 기승전사랑. 예술도 사랑. 사랑도 사랑. 사는 게 다 사랑. 뭐 그럼 또 어때. 사랑 좋잖아. 좋긴 한데, 하늘 위에 둥둥 떠 있는 말들. 무시로 마음 펄럭거리는 청소년들의 가슴에는 착 들어맞겠으나, 좀 살아보면 알게 되지. 이놈의 세상이 사랑에게 무중력 혹은 무균실은 아니라는 것쯤.

 

3. 번역청을 설립하라

: 핵공감. 진짜. 제발.

 

4.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 낄낄 웃다가 끝났다. 확실히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맞춤법 책. 저자의 필력이 예사롭지가 않다. 다른 작품을, 이를 테면 에세이 같은 거, 기대해 본다.

 



5. 신영복 평전

: 신영복 선생님의 높으신 삶에다 나 같은 졸자가 한 마디 더 얹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김삼웅 선생님은 물론 평전으로는 독보적인 존재이시지만, 솔직히 글맛이 좀 고루한 데는 있다. 아무래도 슈테판 츠바이크가 되실 수는 없을 것 같다.

 

6.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

: 시상식장에서 바로 트로피를 경매 붙여 팔아치운 파격에 비하면 조금은 조용한 글들이지만, 파격을 욕심내지 않는 그 태도에서 오히려 그녀의 파격이 연출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다.

 

7. 아무튼, 망원동

: 나보다 딸랑 두 살 많은 저자는 나보다 무려 두 배는 세심하고 다정한 눈으로 세상을 본다. 자기가 살아온, 자기를 성장시킨 공간에 대해 이만한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작가를 꿈꾸면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이미 난 포기했지. 후후.

 

8. 신문이 보이고 뉴스가 들리는 시사인문학

: 책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런 책이 너무 많아서 인문학이란 단어가 도대체 뭘 가리키는 말인지 알아채기란 점점 힘들어진다.




9. 혼자 하는 공부의 정석

: 너무 절박할 때는 지푸라기라도 잡겠다고 이런 책도 보게 되는 건데, 지푸라기가 너무 지푸라기라서 지금 손에 든 이 지푸라기를 어떡해야 하나 모르겠다.....

 

10. 배우는 법을 배우기

: 뭔가 달인, 구루의 포스가 난다. 에빙하우스 곡선 따라 복습 잘 하고 반복 많이 하고 어쩌고 저쩌고 써 있는 그런 책(위의 책....)하고는 클라스가 다른 느낌. 대증요법이 아니라 체질개선으로 질병을 예방하는 방식이랄지. 밑줄 오지게 그었다.

 

11. 이 짧은 시간 동안

: 시는 금방 잊히겠지만 그래도 단 한 줄은 오래 묵혀 두고두고 곱씹겠다. "이제는 아무도 내 눈물로 소금을 만들지 않는다." -

 

12. 축복받은 집

: 대체 뭘 먹고 뭘 읽고 뭘 어떻게 하면 이런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소담하고 때론 단조롭기까지 한 문체가 날아가 맞히는 자리가 정확하고 적확하여, 특별히 밑줄 하나 그은 것 없어도 감동에 젖는다.




13. 골목 바이 골목

: 장소를 잡아채 이야기로 빚어놓는 능력은 참 부럽다. syo는 사람을 가지고 글을 만들 줄을 겨우 알 뿐이고, 이렇게 공간이 씨앗이 되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을 보면 일단 경탄부터 하고 본다. 그럼에도, 좋은 에세이를 만드는 요소 가운데는 분명히 '읽는 사람의 기분' 같은 것이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쓰다니! 하고 시작했는데, 글을 좀 쓰는군, 으로 책을 덮은 것은 아마 내 탓일 거야.

 

14. 만화로 보는 세기의 철학자들 폭력을 말하다

: 이런 만화는 일본에서 잘(그리고 종종) 만드는데. "폭력"이라는 주제를 놓고 몇몇 현대 철학자들의 사상 일부를 잘라내고 요약하여 그림에 버무린 책. 그러나 이렇게 재미가 없을 거면 뭐하러 굳이 만화로 꾸민 걸까. 요약서나 입문서로써도 그다지 쓸모가 있지 않은 허망한 책.

15. 눈앞에 없는 사람

: 아름답다는 생각은 자주 들었지만 한 권을 다 덮을 때까지도 어쩐지 마음자리는 요동 없이 그대로 서 있었다. 주파수? 독해력? 어쩌면 읽는 순간의 감정 상태가 문제일수도. 이런 부분이 좋았느니 싫었느니 말할 수 있을 만큼 읽어내질 못했으니 무슨 평이 가능할까. 아니 어쩌면 읽어내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평이 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16. 아무튼, 피트니스

: 몸은 언제나 숙제 같다. 마음이라고 그리 멀리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몸과의 거리가 여실하고, 나이가 들수록 그 거리는 점점 더 벌어진다. 점차 작은 움직임에도 숨이 가쁘다. 그러고 나자, 이렇게는 멀리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겠다. 몸과 마음이 각각 한 마리의 외발짐승이 아니라, 두 발 달린 짐승의 왼발 오른발이라는 것, 그러니까 지금 나는 가랑이가 찢어지는 중이라는 것도.




17. 한 글자 사전

: - 내가 잘 쓰면 어쩐지 웃고 싶어지지만 끝까지 안 웃고, 남이 잘 쓰면 괜히 웃기 싫지만 이내 웃어 본다.

- 나도 두 개 달고 그녀도 두 개 달았는데 보이는 게 세상 다르다.

- 그래서 아무래도 나는 안 되겠다.

 

18. 세상에서 가장 쉬운 회계학

: 책 뒷면에 쓰여 있다. "재무 3표를 전문 용어나 숫자 없이 스토리텔링으로 설명한다!" 이게 곧 이 책의 장점인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이다.

 

19. 직장인이여 회계하라

: 저자가 스스로 회계공부의 레벨 0인 책이라고 밝힌 바, 쉽고 간단하긴 하다. 그러나 그 말은 또한 이 책 한 권만으로는 결국 아무것도 되는 게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

 

20. 김상욱의 과학공부

: 그런 카피가 있었다. "과학을 아이들에게 돌려주자." 그러나 이 무지막지한 시대에 과학을 되돌려 받아야 할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이 우리에게 왔다. 저기 골목 모퉁이에, 과학이 수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서 있다. , 이리 와, 같이 놀자.




21. 기억의 몽타주

: 저자 스스로도 인정하듯, 소설이란 단지 필력만으로 잘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syo가 사랑해마지않는 류동민 선생님이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론의 번역과 교열을 둘러싼 짧은 회고 소설과 그 소설에 대한 자기 분석으로 이루어진 이 책이 가치 있는 이유는, 마치 현재가 종종 구미에 맞게 (스스로도 눈치 채지 못하게) 기억을 윤색하면서 과거와의 싸움에서 주도권을 잡듯이, 분석이 소설을 알차게 발라 먹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분석 쓰려고 소설 썼다. 그러나 소설과 분석을 동시에 쓰다 보니 그 둘이 서로를 공격적으로 건드렸을 것이다. 침범했을 것이다. 시작과 끝의 경계를 뭉개는 그 침범이야말로 이 책의 독창성이다.

22.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언어

: 재미 1도 없다. 다른 나라 말로 쓰인 시의 운과 율을 이야기하는 바가 많아 의미도 별로 없다. 이 책에서 "보르헤스"라는 이름값에 걸맞는 재미나 의미를 찾아내셨다면 덮어놓고 존경합니다. syo의 눈엔, 보르헤스 빠거나 전집 빠가 아니라면 그다지 추천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23. 말하는 보르헤스

: 앞의 녀석에 비하면 얘는 비교적 친근하다. 우선 강연록이라는 점에서 그런데, 다정한 말투는 물론, 강연이 좀 읽는다 하는 사람이라면 대충이라도 알 만한 것들을 다루기 때문이겠다. 아니, 이걸 이렇게 본단 말이야? 과연 보 선생님, 싶은 부분이 드문드문 있다. 드문드문 있는 이유는 90%syo의 역량부족, 나머지 10%쯤은 번역이 지니는 필연적인 특성 때문이지, 보르헤스의 잘못은 1도 없다. 없을 것이다. 구름을 뚫고 서 있는 거인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나 보려면, 나도 어느 정도까지는 자라줘야 하는 법이다.

24. 문과형 인간을 위한 처음 배우는 과학

: 문과형 인간도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 정도는 학교에서도 얼추 배우므로 "처음" 배우는 과학이라는 말은 좀 그렇다. 확실히 쉽긴 하다. syo같은 이과 출신이야 한번 툭 읽고 지나가면 끝인 정도의 책.




25.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 이야기 참신하고 교훈도 있지만 문장은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순전히 이야기의 힘만으로 몇 권의 책을 이렇게 무리 없이 끌어가는데 소설가로서 다른 게 또 뭐가 더 필요한가 싶다가도,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실 비전문가라고 은근히 아래에 놓은 다음 배려하려는 태도는 아닌가 싶기도 하고 복잡하다.

 

26. 13일의 김남우

: 그렇게 생각했는데 두 권쯤 읽다보니 이젠 이 사람이 문장도 참 좋은 것 같다. 간결하고 중언부언도 없고. 늘었어, 늘었어. 물론 기발함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무릎을 탁탁 치다가 무릎이 부었다. 이런 걸 거의 매일 써내다니, 김동식 씨(동갑이네요), 당신은 대체......

 

27. 다정한 호칭

: 허공은 사실 '사이'. 그래서 그 공간을 더듬는 것이 의미가 있다. 그 공간을 지나는 바람에 이유가 있고, 그 공간에 박힌 별에 근거가 있다. 허공을 잘 만지는 일, 잘 듣는 일, 만지고 들어 결국 허공의 양끝에 놓인 마음들을 청진하고 촉진하는 일, 그런 일들을 하는 시들을 책에 담았다.

 

28. 이슬의 눈

: 오늘날 시 쓰는 이의 시집 한 권과 20년 전 시 쓰던 이의 시집 한 권을 연달아 읽고 나면 두드려 맞은 것처럼 놀랄 때가 있다. 혹시 나도 단지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내게 불편한 시를 이해하거나 느끼기 위해 아무런 수고도 해 보지 않았으면서, 섣부르게 이건 아름답지 않다, 이건 시가 아니다, 하는 따위 오만이나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90년대 내게 잘 맞으면 그냥 내가 90년대 사람인 거다. 90년대 이후로 시가 다 죽어나자빠진 게 아니라. 내 취향 살리겠다고 멀쩡한 시 죽이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 , 그렇다고 또 이 시집이 나랑 잘 맞다는 건 아닙니다..... 뭐래니 나 지금?




29. 여행의 재료들

: 이만큼 쓸 수 있다면, 그리고 이만큼 쓰기 위하여 이만큼 읽고 노래하고 딱 이만큼만 살 수 있다면, 배부르지 않고 이름 높아지지도 않겠으나 이 정도면 내가 사는 모습으로 적당할 것도, 온당할 것도 같다.

 

30.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의 독서안내

: "지식의 최전선을 5일 만에 탐색한다." 일본은 이런 것 참 좋아한다. 희한할 정도다. 컴팩트하게 필요한(필요하다고 저자가 생각하는) 내용만 압축 제공하는 책들. 나는 썩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책의 가치를 인정하는 독자들에겐 꽤나 유용할 것 같다. 복잡계, 진화론, 게임 이론, 뇌과학, 공리주의라는 다섯 마당의 선택 자체도 기발한데다가, 완전히 겉만 핥고 끝내는 수준도 아니다.

 

31. 인생극장

: <세상물정의 사회학>에서 보편성의 그물을 던져 특수성을 낚으려 했던 노명우 선생님의 손길이 깊고 선명해져, 이 책에서는 개인 서사와 영화를 씨실 날실로 엮어 시대가 입을 수 있는 옷을 지었다.

 

32. 곡면의 힘

: 이걸로 뭘 하겠다는 건지 syo는 도대체 모르겠다. , 당신 참 많이 아는구나, 하는 생각만 든다. 다른 시집이라면 해설이 붙어있을 자리에, 시인이 쓴 ""라는 글이 들었다. 내용도 심오하고 문장도 고급진 가치 충만한 글이긴 한데, 읽고 나면 제일 먼저, 시가 이렇게 높고 고상한 물건이니까 사람들이 시를 안 읽지,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철학도 남 일이고 시도 남 일인 마당에 철학자의 시는 오죽하리. 9000원짜리 시집을 돈 주고 샀을 때 우리는 최소 9000원만큼의 효용을 기대한다. 이건 미시경제학이다. 전문가들이 매긴 이 시집의 문학적 가치가 설령 9000만원에 달한다고 한들, 내가 이걸 어디에 어떻게 써야할 지 모르겠어서 그냥 꽂아놓기만 하고 말 일이라면, 9000원 주고 9000만 원짜리를 사놓고도 나는 못마땅한 것이다. 9000원짜리 시집을 9000만 원짜리로 받아들일 수 있을 역량 갖춘 사람들이 나는 부러울 뿐이다.




33. 리뷰 쓰는 법

: 나는 왜 리뷰를 못 쓰는가, 이건 오래 묵은 고민거리다. 그리고 결론내길, 세상에는 리뷰라는 것을 도대체 써 내지를 못하는 소수의 인간이 존재하는데, syo, 그게 바로 너야. 유익한 책이고 무슨 말인지도 다 알겠는데, 막상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린 채 아무리 기다려도 당최 그분이 오시질 않는다......

 

34.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자본론 입문서 같은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훌륭한 자본론 활용서다. 흔한 말로 왼손에는 자본론을, 오른손에는 빵을 들고 이 미친 자본주의와 맞서는 용감한 청년의 분투기인 셈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자본론을 공부하기 위해 읽기보다는, 이미 왼손에 자본론을 들고 있는 사람이 오른손에 들 무언가를 찾는 과정에서 들춰보기에 적합하다.

35. 뭐라도 되겠지

: 생각보다 재미가 없다. 역시 코드가 맞아야 웃는 법이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김중혁이 반드시 "재미있는" 글을 쓸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편견일 수도 있겠다.

 

36. 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

: syo가 추구하는 스타일의 완성형인 것 같다. 웃기기 위해 신랄하고, 신랄하기 위해 웃긴다. 열두 번 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 중 한번 정도는 이지원 선생님으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글만 뱉어놓고 가는 것도 심히 보람찰 듯하다.



37.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읽기'를 정의하는 수많은 책 가운데, 가장 공격적이고 전투적이라는 느낌. 현란하고 화사하지만 그물코가 촘촘하지는 않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읽고 들은 느낌이지만 결국 나란 인간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책만 탓할 문제는 아니겠지만, 하여간 딱 그만큼이다. 열심히 읽고 써도 나쁘지 않겠구나, 딱 그 정도였다.

 

38. 아무튼, 계속

: 일상성을 유지하는 방법도 배울 만하지만,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어나가고 싶은 일상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부럽다. 책은 뭐, 그저 그렇습니다. 같은 시리즈들 중에서도 좀 밍밍한 축이네요.

 

39. 그들은 어떻게 임원이 되었을까?

: 함량이야 이런 장르의 책이 통상 가지는 딱 그 정도 수준. 상대적으로 평가하면 딱히 칭찬할 부분도 욕할 부분도 없다. 아무리 이런 책이 붐이었던 2006년이라 해도, 한 주 만에 3쇄가 찍힌 것은 좀 뜨악하다. 3쇄는 독자들의 자연스런 선택이 만들었다기보다는, "그들", 이런저런 대기업의 25명 임원들이 책을 낸다는 소식에 부하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폭풍구매하여 이룬 것이 아닐까 싶다.....

 

40. 버티는 삶에 관하여

: 글을 빚어서 내 인생도 빚어보겠다는 꿈을 아직 버리지 못하던 어린 시절, 허지웅 선생님은 내게 경탄과 좌절을 끝없이 선사하는 웅장한 절벽 같은 존재였다. 매일 그의 블로그를 들락날락하며, 쓰는 삶에 대한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았다. 깜냥을 알아가는 경로는 아프면서도 상쾌했다. 결국 오늘의 syo가 되었다.



41.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 서경식 선생님의 글은 묘한 매력이 있다. 시종일관 담담하고 심심하다.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절묘한 표현이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얕게 졸졸 흐르는 개울 같은 글이라 느낀다. 그러나 그 흐름에 맞춰 나도 담담히 읽다보면 슬며시 느껴지는 때가 있다. 진짜 고요하게 흐르는 물은 사실 그 바닥이 깊다는 사실이. 그럼에도 이 책은 어쩐지 좀 흐릿한 느낌......

 

42. 고로, 철학한다

: '가볍고 유머러스하며 사상적 깊이를 잃지 않은 이 책' 이라는 작가 소개 멘트는 그다지 적확하지 않다. 저자나 번역가 둘 중 최소한 한 사람은 개그 센스가 평균 이하다. 웃기려고 용쓰는 모양이 보이지만, 아쉽네요. 실패입니다. 함량은 같은 장르의 다른 책과 비슷하다.

 

43. 가재미

: 정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문태준입니다. 문태준이에요. 뭘 더 말할까요, 문태준이라니까요.

 

44. 자본론 이펙트

: 마르크스와 관련해 프랜시스 윈의 책은 입문서건 전기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읽어도 좋은 수준이다. 자본론의 매력을 이만큼 똑똑하게 전파하는 책도 드물다.

 

 

 

이러다 반드시 내년에도 백수가 되는데, 그걸 아는데도, 오히려 그걸 알아서 더 그런가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다. 그 와중에 양심은 있었는지, 고른 책들이 뭐 대단히 심오한 놈들도 아닌지라 나중에 읽어도 되는데, 그걸 아는데도, 오히려 그걸 알아서 더 그런가 이놈의 책들이 손에 붙어서 떨어지질 않는다. 이러다 굶는데, 그거 아는데도......ㅋㅋㅋㅋㅋㅋㅋ

 

엄마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차라리 똥개한테 똥을 끊으라고 해라


아, 모든 게 다 똥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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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4-30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야...공부하라고 귀찮게 안하고 말도 안걸고 있었더니 책 읽고 있었다니.......
오늘부터 말 걸 거예욧!! 귀찮게 할테닷!!

syo 2018-04-30 09:1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 본인이 바쁘신 거면서?

chaeg 2018-04-30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하셨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숫자는 4 랍니다!

syo 2018-04-30 09:17   좋아요 0 | URL
멋진 취향이시다^-^ 저는 어찌된 일인지 하루 한 번은 4시 44분을 확인하게 되더라구요....

2018-04-30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30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8-04-30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syo님 공부 안 하고 책 읽고 계셨군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러게, 그걸 아직도 몰랐어요?
1년에 책 한 권도 못 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달 평균 20권은 읽어야 되는 syo님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웰컴 투 더 독서월드^^

syo 2018-04-30 10:04   좋아요 0 | URL
거의 동시에 서로의 글에다 ㅋㅋㅋㅋㅋ 열라 남기고 있었네요. 크로스로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8-04-30 10:1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근데.... 좀 미안하네요.
syo님 글에도 좋아요 하나, 내 글에도 좋아요 하나 하니까요.
저한테 주신 좋아요 7분의 1만 주시고요.
나머지 7분의 6은 다시 가져가세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syo 2018-04-30 10:26   좋아요 0 | URL
그냥 다 드세요. 그 정돈 드릴 수 있지 제가 또ㅎㅎㅎㅎㅎ

겨울호랑이 2018-04-30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많이 읽으시고, 더 많이 공부하시면 되지요^^:) 즐겁게 하는 사람 못 이긴다잖아요.

syo 2018-04-30 12:5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 읽는 건 즐거운데 공부만 시작하면 그 즐거움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외관상으로는 이거나 저거나 책 읽는 건데.....

psyche 2018-05-01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 요요라니... 그래도 책 44권 읽으면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으리라 믿쑵니다

라로 2018-05-01 02:44   좋아요 0 | URL
믿쑵니다 2!! ㅎㅎㅎㅎ

유부만두 2018-05-01 09:04   좋아요 0 | URL
저도 믿는다고 쓸게요. ㅎㅎ

syo 2018-05-01 09:08   좋아요 0 | URL
여러분,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말씀이 있었드랬지요. 금쪽같이 소중한 진리입니다......

clavis 2018-05-01 11:26   좋아요 0 | URL
믿쑵니다 3!!!

유부만두 2018-05-01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요요?!!!! 정말 멋진 분이군요, 분노의 syo(쇼?)님. 이런게 망하는 거라면 별로 무섭지않은데요?

syo 2018-05-01 09:10   좋아요 0 | URL
에라이 모르겠다 싶습니다만.....ㅠ

프리즘메이커 2018-05-01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새.. 이렇게 책읽고 소일만 하다간 굶어 죽겠구나 위기감이..자꾸 발동하곤합니다..ㅠ

syo 2018-05-01 17:37   좋아요 0 | URL
프메님은 어디서 뭘 하시든 잘 먹고 잘 사실 겁니다

stella.K 2018-05-01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공부는 언제하십니까?
책은 사 보시는 편이신가요? 아님 빌려 읽나요?
책 사면 고시원 방 어디 둘 때는 있나요?

요즘 시이소오님 계속 안 보이시던데
오늘 페이퍼는 그 양반 생각나게 합니다.
잘 계시나 모르겠어요....ㅉ

syo 2018-05-01 17:38   좋아요 0 | URL
대부분 빌려 읽습니다 ㅎㅎ 말씀대로 책 사도 둘 곳이 없을 뿐더러, 사고 싶다고 뻥뻥 살만큼의 돈이 없습니다. 수입이 없으니까요.....

시이소오님의 컴백은 저도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독서괭 2018-05-03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요요 ㅋㅋ 똥개한테 똥을.. ㅋㅋㅋㅋㅋ 아이고 ㅋㅋ 무리하게 다이어트 하다가 결국 폭식하는 패턴이군요. 차라리 꾸준히 조금씩 읽으시는 게 낫겠어요^^;

syo 2018-05-03 15:04   좋아요 0 | URL
그런 것 같아요. 역시 먹든 끊든 갑자기 하면 안 되는 거라...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네요 정말...

AgalmA 2018-05-04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러고선 저 보고 무섭다고 할 자격 &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꽈! ㅋㅋㅋ
보르헤스 논픽션은 1권보다 2, 3권이 더 좋은 듯. 뭐랄까. 아르헨티나적인 것에 엄청난 호감이 있지 않으면 그냥 먼 나라 얘기 같아서ㅎ;;
보르헤스 픽션 전집에서도 가우초들 나오는 소설은 별 재미를 못 느끼겠던 거 같은? ㅎㅎ;;

syo 2018-05-04 19:1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가우초 이야기는 읽다가 보르헤스 싫어질 뻔.....

보 선생님 아직도 흠모하긴 하지만 제겐 어쩐지 점점 약발이 떨어지고 있긴 해요. 지난 세대 지식인들 사이에 대유행했던 철 지난 놀이감 같은 느낌....

카알벨루치 2018-12-11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월엔 죽도록 읽으셨네 44!!! 44권 읽은 분에게 44받아야 할텐데 이런 종횡무진의 스피릿! 여긴 눈이 옵니다~~~

syo 2018-12-11 15:43   좋아요 1 | URL
444 44개그에 무릎을 탁 칩니다!!
눈은 여기도 오고 있지요. 사실 여기랑 거기랑 거기가 거기 아닌지요?? ㅎ

카알벨루치 2018-12-11 15:52   좋아요 0 | URL
여긴 내 마음, 거긴 그대 마음...이라믄서~한 시대 지나간 아재 개그...널리 아량을 베푸소서! 쇼군 님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