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속에서 제비가 높게 날았다. 흐린 가운데 대기가 투명해 멀리 앉은 산이 진한 녹색이었다. 그 녹색을 에두르며 솟아오른 아파트들은 지나치게 하얗고 날카로와 마치 지구의 뼛조각 같아 보였다. 구름이 달리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옥상은 소리로 가득 차 있어서 바람 안에서 숨 쉴 때마다 위태로움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숲이 몸을 흔든다. 옆집 빨래건조대가 뒹군다. 앞집 옥상에 늘 있던 성격 나쁜 강아지는 어디론가 치워졌다. 시끄러우니까 없어졌으면, 하고 나쁜 마음을 품은 적이 있다. 맑은 날이었다. 사람은 맑은 날 나쁜 마음을 품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오늘은 흐리고, 곧 다시 비가 올 것만 같고, 옥상에 올라오는 계단에는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보라색 나팔꽃들이 분분히 흩어져 있다. 어제를 견디지 못하고 옆집 옥상으로부터 날아든 모양이다. 내다보니 아직 꽤 많은 꽃이 잘 매달려 있다. 위태롭되 싱싱하다. 늘 그렇다. 바람이 크게 일면, 줄기를 부여잡는 힘이 약한 녀석들은 바람에 몸을 맡긴다. 그러나 바람은 한 번도 꽃잎에 친절한 적이 없다. 꽃잎도 바람의 진심을 알고 있다. 그러니 이것을 바람에 몸을 맡긴다-고 이르기보다는 바람에 멱살을 잡혀 내동댕이쳐진다-고 표현하는 게 낫다.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줄기는 알게 된다. 꼭 닮은 무수한 꽃 가운데 어느 놈이 줄기에 더 적합한 놈인지를. 꽃도 알게 된다. 나는 줄기와 하나가 아니었구나, 그저 줄기에 얹혀 있던 것이었구나, 이 모든 게 바람이 크게 불면 들통날 짧은 거짓말이었구나, 그랬구나, 그랬구나. 그러니 이제는 더 높은 곳으로, 그러니 이제라도 더 먼 곳으로,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다시 한 번 더…….

 

 

 

--- 읽은 ---

 


90. 스포츠와 여가

제임스 설터 지음 /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5

 

관능의 기억으로만 남는 사랑이 있을까. 관념과 섞이지 않은 관능은 섹시하지 않고 기억 속에서 오래 되풀이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나를 안았을 때, 내가 그 사람을 안았을 때, 그 두 가지를 서로 구분할 수 없었을 때, 그때 그 순간 말고 그 순간을 둘러싼 많은 일들과 그 일들을 둘러싼 많은 감정들과 그 감정들을 둘러싼 많은 제약 조건들과 그 조건들로 둘러싸인 중에서도 늘 펄떡펄떡 뛰놀았던 감정들, 사건들, 그런 것들이 다 함께 녹아있는 안에서 지나간 관능들은 섹시하다. 나는 아직도 내 치골을 오래 강하게 찍어누르는 어떤 꼬리뼈의 감각이라든지 내 얼굴에서 다른 얼굴로 줄지어 떨어지던 땀방울의 온도 같은 것들을 종종 떠올리는데, 그것은 그 관능의 장면이 관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능의 뒤에, 관능과 관능의 사이에, 그것은 있다. 스포츠처럼, 여가처럼, 무엇과 무엇의 사이에서, 더 아름답게 해 주는.

 

 


91. 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

 

여리다는 것. 결국 무시할 수 없다는 것. 내 안에다 벽을 들여놓고 내 안에서 길을 찾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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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7-24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좋아요 먼저 누르고!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저 로또 살까요? 토비 님의 글에 제가 일빠로 좋아요하고 댓글 쓰다니!!!ㅎㅎㅎㅎ)

라로 2020-07-24 12:31   좋아요 0 | URL
음,,,,댓글과 좋아요를 먼저 한 후 글을 자세히 읽으니 저런 댓글 단 것 후회되고,,,로또는 무슨...ㅠㅠ 너무 반가와서 저랬나보다,,그렇게 생각해줘요,,그랬으니까.

syo 2020-07-24 12:3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라로님 반가워요. ‘라로‘라는 두 글자만으로 딱 위안과 위로가 됩니다 ㅎㅎ

추풍오장원 2020-07-24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강아지 성격 정말 고약한 친구였나 봅니다.다른데 갔을까요?

syo 2020-07-26 00:15   좋아요 0 | URL
최근에 복날이 있었다는 것이 힌트가 되려나 했으나, 오늘부터 다시 짖기 시작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07-25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에 스포츠와 여가를 읽었는데 등장인물이 몇 번 하나(뭘...)세어봤던 기억이 나네요.

syo 2020-07-26 00:16   좋아요 1 | URL
몇 번 하던가요? 적잖게 하긴 하던데.....

2020-07-26 0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26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26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루스트의 마들렌과 syo의 정수리와 흐르는 의식의 시궁창

 

 

책상 위에는 책이 있고, 차마 다 세어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무한 개쯤 있고, 나는 이것들에 대해 어떤 책임을 져야만 할 것 같은데 세상일이 참 마음대로 되지가 않고, 고작 한 달 동안 내 손을 거쳐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꽂히는 돈의 액수가 내가 평생 벌어도 도달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려서 나는 마우스를 쥐고 오들오들 떨고 있고, 이 와중에 우리 회사보다 옆 회사가 괜히 더 좋아 보이고, 그런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회사에서는 면허 따라고, 친구는 운동하라고, 커피메이커는 세척해 달라고, 이런 난리 난리 가운데서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콜라를 마시고, 엑셀 바이블이나 뒤적거리고, 기초연금 선정기준액을 외우고, 오늘은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버거킹에서 햄버거 하나 먹어야지 다짐하고, 행복한 일상이란 건 마치 지구 외 지적생명체처럼 확률적으로는 세상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봤다고 증언했다가는 반쯤 미친 사람 취급받기 십상일 정도로 만나기 어려운 존재인 것이고, 그렇다면 일상 속 행복이라는 것은 있느냐 하면 그건 또 보일듯 말듯 가물거리고, 그대여 힘이 되 주오 길을 터 주오 불러 볼 사람도 없는 것이고, 그럼에도 분노도 슬픔도 그렇다고 즐거움도 기쁨도 뭐 하나 특별히 치고 나오는 감정이 없는 걸 보면 나는 차분하게 침착하게 부드럽게 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고, 여기까지 써 놓고 보니 이 글을 쓴 놈은 굉장히 불쌍하고 스트레스 많고 꿈도 희망도 미래도 비전도 없는 놈처럼 보이고, 근데 막상 그놈 자신은 또 바쁘고 정신없는 거 말고는 특별히 힘들거나 불행하거나 하지는 않고, 도대체 이건 어디에서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서 있는지 모르겠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시간은 흘러가고, 갈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하지 않은 부산까지 이제 스무 날 남짓 남았고, 정수리가 간지러워서 긁은 손 냄새는 대체 왜 맡아보는 것이고, 기왕 맡았으면 그냥 넘어가지 왜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고, 그 와중에 나만 이런 놈이고 싶진 않았는지 네이버에 검색해 보는 것이고, 봤더니 정수리 긁고 자동적으로 냄새 맡는 것은 인류 공통의 전통 깊은 행동양식이었던 것이고, 덕분에 으하하하 웃었다가 이내 내가 대체 무슨 세상에 살고 있는가 싶어서 오싹해지는 것이고, 이러고 허비할 시간 있으면 차라리 책이나 읽자 등신아 하며 봤더니 책상 위에는 책이 있고, 차마 다 세어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무한 개쯤 있고, 나는 이것들에 대해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만 할 것 같은데…….

 

 

 

--- 읽은 ---

 


87. 나의 첫번째 과학 공부

박재용 지음 / 행성B / 2017

 

이 점수를 가지고 내가 대학을 간다는 마음으로 과학을 배우고, 문제집을 풀고, 그렇게 대학을 가서 이 점수를 가지고 내가 취업을 하거나 유학을 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과학을 배우고, 문제를 풀고, 뭐 그런 식으로 과학과의 인연을 오래 쌓은 사람은 과학 교양서를 읽기에 다소 부적합한 인간이 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게 말고 개인에게도 과학이 필요하다면, 그 필요성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그 차이에 따라 과학책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질 것이다. ‘인문학도에게 권하는-’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과학도에게 권하는첫 번째 철학 공부- 라는 책을 보았을 때 어떤 감정이 들 것인지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렇게 쓰고 나니까 원서 읽으시라 원전 읽으시라 강권하는 분들이랑 비슷해진 것 같다.

 

 


88. 이기는 몸

이동환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


건강을 유지하는 일은 어려운 듯하면서도 쉽고,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데가 있다. 알아야 할 것, 먹어야 할 것이 많고 움직이는 데 써야 할 시간도 많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가 지금 건강하기 위해 당장 무엇을 먹거나 먹지 말아야 하는지, 무엇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고는 있다. 이기는 몸을 만드는 것이 그런 일이다. 눈 딱 감고, 이 책이 시키는 대로 1년만 살아볼까?

 

 


89. SQL 첫걸음

아사이 아츠시 지음 / 박준용 옮김 / 한빛미디어 / 2015

 

난 데이터베이스 과목 학점 A였는데 오늘날 이 시점에 첫걸음을 낑낑 거리며 보고 있다. 15년의 세월이 무섭다. 3 육상 꿈나무도, 그의 시간을 15년만 거꾸로 돌리면 첫걸음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 읽는 ---

스포츠와 여가 / 제임스 설터

일곱 해의 마지막 / 김연수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 / 모니크 위티그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박상영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 이원하

이제야 어디에 힘을 빼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 안블루

수학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 다카하시 요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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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7-12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쓰는 이의 불행은 읽은 이에게는 왜 재미난 것인지...의식의 시궁창을 허우적대며 안타까운데도 왜 재밌는 글빨인가...(사악한 독자 올림)

syo 2020-07-12 11:23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일주일이나 되었으니 뭐라도 써뱉어야 한다는 강박이 저런 걸 만들어내고 말았다......

반유행열반인 2020-07-12 11:35   좋아요 2 | URL
무엇이 되었든 생존신고는 좋은 일...더 여유로워지고 덜 힘든 날이 어여 오길 빕니다.

수연 2020-07-12 13:49   좋아요 2 | URL
같은 마음 찌찌뽕, 오늘쯤이면 쇼님 글이 올라올 테니 알라딘 들어가봐야지 하고 아침 설거지 하면서 생각했더니 짜잔_

추풍오장원 2020-07-12 2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리워진 길은 유재하보다 김현식 버전이 더 좋더라구요.
유재하가 김현식만을 위해서 쓴 듯한 노래..

페크(pek0501) 2020-07-13 14: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책 구경, 잘하고 갑니다. 글은 언제나 재미지고... 질서가 없는 듯하면서 질서가 있는 글에 감사^^

나와같다면 2020-07-14 0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이 힘들죠? 그래도 저는 syo님이 취업 되었다는 이야기 들었을 때 괜히 기분이 좋았어요

공쟝쟝 2020-07-16 0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머리 긁으며 읽다 화들짝
 

 

올림픽공원

 

 

1

 

바람 아래 앉아 있었다.

시를 읽었다.

 

움직이는 것이 많아 좋았다.

 

 

 

2

 

다시 바다에 대해 오래 생각한다. 모래와 바람과 큰물이 있고 그 모든 것들이 스쳐 내는 소리가 저녁과 어울려 늠실대는 곳.

 

나는 바다면 좋았다. 좋은 것이 참 많지만 바다가 참 좋았다. 바다에서 보낸 모든 시간이 다 좋았고 모든 시간의 바다가 다 아름다웠다. 그래서 모든 순간 바다를 생각하지만 유독 바다가 생각나는 순간도 있어서 일 년에 한두 번은 바다를 앓는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찾아가든, 바다에 찾아가면 어떤 마음이 된다. 바다는 너무 크고 넓고 철썩거리고 바람에도 간이 배어 있고 그렇게 수억 년을 그 자리에 있던 지구의 거대한 기억 같은 장소여서 바다 앞에서 바다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두고 온 세상을 온통 잊어버린다. 그렇게 해주는 장소는 이 우주에 딱 두 군데뿐이라 늘 그곳 주위를 빙빙 맴돈다.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그곳에 바다가 있어서 이 별은 참 다행이다.

 

앉아 있으러 갈까. 천천히 가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3


 

계급투쟁은 계급을 구성하고 폭로하면서 동시에 계급을 제거함으로써 두 개의 억압된 계급 사이의 모순을 해결한다모든 여성이 경험하는 여성과 남성 사이의 계급투쟁은 성별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고 제거하는 동시에 이해되게 한다우리는 모순이 항상 물질적 질서에 속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갈등(혁명투쟁이전에 반대 범주는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차이가 있을 뿐이다대립의 폭력적 현실과 차이의 정치적 질서는 투쟁이 발생하고 나서야 비로소 선언이 된다대립(차이들)이 기존에 주어진 것으로 나타나면, "자연적인갈등이나 투쟁이 없다면변증법도변화도운동도 없다.

모니크 위티그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 46 


계급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제일 먼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혹시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본 신분제 사회의 모습이 떠오르셨나요? 혹은 시가를 입에 문 배 나온 양복쟁이 자본가가 $라고 쓰인 돈주머니를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을 누덕누덕 기운 멜빵 청바지를 입은 노동자가 렌치나 곡괭이 같은 것을 들고 노려보는 장면 같은 건 어떠신가요. 그런 그림이 제일 먼저 떠오르셨다면, 당하셨네요. 당하셨어요.

 

계급이라는 단어가 주는 전근대적인 이미지 때문에 오해하기 쉽지만, 계급은 세상 어디에나 있습니다. 우리가 클라스class’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용법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우리 사회는 온갖 장르의 영역에서 계급사회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셨으면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보세요. 가족들이 있나요? 그 가족들 사이에서 당신의 계급은 어디쯤인가요. , 혼자 사시나요? 그렇다면 가족을 이루고 사는 계급에 비해 혼자 사는 계급인 당신이 겪어내야 할 각종 경제적·관습적·안전 비용에 대해서 생각해볼까요? 만원버스를 타고 출근하시나요? 클라스 오지시네요. 외제차 타고 출근하신다구요? 클라스 오지시네요! 점심은 뭘 드시나요. 혹시 비건이신가요? 옆자리에 앉은 동료는 오늘 점심부터 삼겹살을 굽자고 하시네요. 지구는 두 분 중 누구를 옹호할까요? 윤리는요? 자유와 자기결정권은 또 어떨까요?

 

사회라는 구조체 속에 산다면, 모든 것이 계급입니다. 사물의 기본 입자는 쿼크, 전자 뭐 그런 애들이 아니라 계급입니다. 이 말이 이상하신가요? 당신이 이 말을 이상하다고 느끼게 만들려고 계급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암암리에 안배해 왔을까요?

 

차별에 대해서 생각해볼까요. 우리는 보통 수많은 종류의 차별을 병렬적인 문제로 놓습니다. 그런 체제 하에서는 성, 계급, 장애, 인종, 종교, 지역, 경제력, 정치력 등등에서 발생하는 각종 차별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는 각자의 문제로 취급되게 만드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이쪽 평면에서의 피해자인 우리가 저쪽 평면에서의 가해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기가 쉽지 않죠. 모니크 위티그의 도식에서는 저 모든 차별 및 폭력이 계급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묶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남녀는 성별이 아니라 하나의 계급, 흑인과 백인은 인종이 아니라 저마다 하나의 계급.

 

이렇게 계급의 관점으로 볼 때 생기는 장점이 있습니다. 일단, 내게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계급의 목소리를 들으며, 혹시 내게 피해를 입힌 계급이 내가 입은 피해를 부인하거나 인지하지 못했듯, 나 역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 쉬워지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계급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에, 내가 입고 있는 계급 피해는 어떤 이유에서든 자연화/당연시되지 않는다는 점이 크겠네요.

 

그러니까 모니크 위티그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느낌일 것 같습니다. 우리가 나는 여혐 1도 없다니까?, 내가 얼마나 여자를 좋아하는데!“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이유는 혐오라는 용어를 좁게, 사전에 나오는 단 한 줄의 의미로만 좁게 사용하며, 언어의 사용이 그렇다 보니 사고의 사용 역시 협소해지는 메커니즘을 목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녀 문제가 계급 문제의 일종이라는 명제를 부인하는 사람들을 보며, ‘계급이라는 단어를 신분적 혹은 경제적인 영역에만 국한해 사용하면서 놓치게 될 여러 돌파구들을 아쉬워해야 하지는 않을까요. ‘혐오라는 용어를 확장적으로 사용하듯 계급이라는 용어의 외연을 크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sex)은 없다억압받는그리고 억압하는 성이 있을 뿐이다성을 생산하는 것은 억압이며그 반대가 아니다반대편은 성이 억압을 생산한다고 말할 것이다혹은 억압의 원인(기원)은 성 그 자체에서 발견된다고 말할 것이다이미 존재하는 사회에서(혹은 사회 바깥에서성은 자연적인 분할이다.

같은 책, 45


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 자연적인 성질로 인해서 억압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억압의 기원을 자연적인 것으로 돌려 억압을 유지하기 위해 성이라는 것을 만들었다는 의미 같습니다. 이런 전복은 재미있잖아요. 이것은 사회가 성차를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자체를 만들었다는 뜻에서 전복적입니다. 성은 당연히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단지 그 두 성 사이의 차이만이 사회적으로 조작된 것이라는 관점이 낳게 될 다른 억압과 차별이 있습니다. 그 억압과 차별이 의 바깥에 있는, 이를테면 LGBT에게만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인정하는 바운더리 안쪽에 있는 여성에게도 가해질 수 있다는 관점이 독창적이네요. 심지어 이미 사회가 존재하고(그리고 존재한 이상 이제는 그 바깥에서조차) 성은 자연적인 분할로 취급받는다는 명제는 짜릿한데도 있구요.

 

아무튼 마르크스는 모니크 위티그를 대하기가 난처하겠습니다. 모니크 위티그가 이제까지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마르크스-엥겔스의 선언을 누구보다 강하게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그 계급이 주로 경제적평면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했던 마르크스의 또 다른 주된 주장을 완전히 승인하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3.5

 

모니크 위티그의 문장은 syo에게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선명하게 읽힙니다. 그래서 오해를 해도 선명하게 오해할 것 같아서 읽는 내내 기분이 좋습니다. 모호한 오해보다 위험한 것은 모호한 이해밖에 없으니까요.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문장을 쓰는 순간의 모니크 위티그의 기분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다고 할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문장을 가지고 하는 짓(?)이 비슷하거든요.

 

그러므로 (sex)은 없다. 억압받는, 그리고 억압하는 이 있을 뿐이다.“

 

이 문장에서 앞의 과 뒤의 은 어떤 관계일까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찾아가든, 바다에 찾아가면 어떤 마음이 된다.“

 

쪼랩 글쟁이 syo가 앞에 써놓았던 이 문장에서 앞의 어떤과 뒤의 어떤은 또 어떤 관계일까요.

 

 

 

 

--- 읽은 ---

 

85. 카카오프렌즈 러브 1

오쭈 지음, 흑부 그림 / 대원앤북 / 2019

 

귀여워서 봐줬다. 진짜.

 

 

 


86.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타루 지음 /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

 

읽어버렸으니 이제 어쩔 수 없게 되었다는 말에 사로잡혔다. 그 말이 참 아프고 기쁘다.

 

 

 

--- 읽는 ---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 박재용

스포츠와 여가 / 제임스 설터

이기는 몸 / 이동환

일곱 해의 마지막 / 김연수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 / 모니크 위티그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박상영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 이원하

SQL 첫걸음 / 아사이 아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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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 2020-07-05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트레이트 마인드 해제 페이퍼 따로 써서 책으로 묶어도 좋겠다 싶은 이 멋들어진 글 좀 보소

syo 2020-07-05 12:59   좋아요 0 | URL
으쓱으쓱하면서 쑥쑥 자란다ㅎㅎ

다락방 2020-07-05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좋군요! 좋으네. 좋군. 계속 스트레이트 마인드 읽고 써주시기 바랍니다.

수연 2020-07-05 13:03   좋아요 0 | URL
뭔가 또렷또렷해지죠? 와 하고 다시 한번 놀라게 되는 지점. 스트레이트 마인드 얼른 읽게 하고 모셔서 강의 듣고싶은 마음.

syo 2020-07-07 07:24   좋아요 0 | URL
근데 안 가지고 다닌다 ㅋㅋㅋㅋㅋ 😂

겨울호랑이 2020-07-05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자요산 지자요수 仁者樂山 知者樂水 이라 했는데, 움직임(動)과 물을 좋아하는 것을 보니 syo님은 지혜로운 쪽인 듯합니다.^^:)

syo 2020-07-07 07:25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지혜로운 이는 물을 좋아하지만 물을 좋아한다고 다 지혜로운 이겠어요 ㅎㅎ

단발머리 2020-07-05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너무 좋으네요. <스트레이트 마이드> 정확하게 읽었는지 알고 싶어서 syo님 글을 두번 세번 읽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syo님이 먼저 읽고 단락별로 정리해주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소심하게 해봅니다. 소심하게, 똑똑!!

syo 2020-07-07 07:25   좋아요 0 | URL
재밌잖아요 다들? 왜 나만 재밌는 분위기지??

페넬로페 2020-07-05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를 syo님께서
너무 절묘하게 표현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어제 올림픽공원에 앉아 있었습니다 ㅎㅎ

syo 2020-07-07 07:26   좋아요 0 | URL
날씨도 좋고 드넓어서 올림픽 공원 참 좋았어요 ㅎㅎㅎ 페넬로페님도 계셨구나

북깨비 2020-07-05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에도 간이 배어 있다고 하시니 ㅠㅠ 갑자기 바다가 오감으로 느껴집니다. 당장 바다 가고 싶어요. ㅠㅠㅠ 🌊 syo님 책 안 내시나요.. 언젠가 syo님 글을 책장에 꽂아두고 언제든 꺼내 읽을 수 있게 되길 바라며.🤞... 혹시 저만 모르고 있다던가.. 😳

syo 2020-07-07 07:27   좋아요 0 | URL
그런 일은 웬만해선 일어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ㅎㅎ 뻘글이지만/이라서 알라딘 밖에는 없습니다.

추풍오장원 2020-07-05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페이퍼를 자주 올려주셔서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사사키 아타루 책은 읽어야지 하면서 구입이 참 늦어지는군요...

syo 2020-07-07 07:30   좋아요 1 | URL
사사키 아타루 참 기묘한 사람이지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 말을 잘 모르겠다 싶게 하고 무슨 말인지 모를 말을 알 것 같다 싶게 하고....
너무 유명하고 많이 읽힌 책이라 추풍님처럼 많이 읽으시는 분께서 아직 안 읽으셨다는 게 믿기 어렵네요 ㅎㅎㅎ

비연 2020-07-05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사키 아타루의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다시 떠오르네요...
바다와 스트레이트 마인드... 곧 이 둘 앞에서 syo님의 이야기를 들을 날이 올라나요.

syo 2020-07-07 07:30   좋아요 0 | URL
바다다... 일단 바다입니다!!

얄라알라북사랑 2020-07-08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개해주신 저 많은 책 중에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가 눈에 확 들어오는 이 와중에, 제 책상 오른쪽 위에는 크래커 상자가^^:;;;;

syo 2020-07-12 10:5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는 정말, 일단 제목 자체만으로 끌어당기죠. 저 말 한 번 안해본 사람 있나요....

무식쟁이 2020-07-11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줄만 읽어도 좋네요.. 이런..

syo 2020-07-12 10:56   좋아요 0 | URL
댓글만 읽어도 좋네요, 으하하하.

공쟝쟝 2020-07-16 1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이 페이퍼가 띵페이퍼인지 오늘에 와서 정확히 알게되어 기쁘기 그지 없읍니다. 또써줘요!!!
 

 

오지 마라 가고 싶다

 

 

1

 

살아가기만 하면 저절로 다 되던 때가 있었다. 사람도 사랑도 꿈도 즐거움도 모든 것이 내가 얻으려 하지 않아도 스스로 다가오던 때가 있었다. 우리에게 그런 때가 있었다.

 

그런 시절은 끝났다. 이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하고 운도 좋아야 한다. 사랑은 언감생심이라 말하기도 민망한 것, 꿈은 부끄러운 졸업앨범처럼 버리긴 아쉽지만 사실상 잊고 사는 무언가가 되었다. 즐거운 순간에는 지금 너무 즐겁다는 생각이 든다. 즐거움을 자주 맞닥뜨리는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즐거워한다. 숨 쉬는 사람이 들숨과 날숨을 세지 않듯이. 물속에 오래 얼굴을 처박고 있다가 고개를 꺼내면 내가 숨을 쉬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온몸의 세포로 느낄 수밖에 없듯, 요즘 나는 즐거운 순간이 오면 지금 내가 즐겁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낀다. 숨처럼 그냥 오던 모든 것들은 다 죽었다.

 

그건 온몸을 던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가가긴 해도 닿지는 않기 때문이고, 함께 웃긴 해도 함께 울진 않기 때문이다.

 

 

 

2

 

며칠 전에 요즘 살이 빠지고 있다고 썼다. 그러기 무섭게 살빠짐이 멎었다. 오만하면 될 일이 없다. syo가 응원하고 있던 야구팀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승승장구를 하던 중 어느 몹쓸 기자가 피어오르는 우승의 향기줄여서 피우향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를 쓴 즉시 7연패하고 중위권으로 추락했다. 매사 입이 문제다. 기대가 앞서도 입은 다물어야 한다. 될 것 같다가도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연기처럼 증발했던 가능성들을 기억하라.

 


 

3

 

회사도 대충 그렇겠지만, 공무원들은 휴가가 겹치면 사장이 아니라 시민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구청은 직원들의 휴가 기간을 큰 틀에서 조율하고자 시도한다. 83일부터 5일까지 휴가 가겠노라 당당하게 써 올렸는데, 어떻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4

 

7월은 인사발령 시즌이고, 관련하여 부서에 업무분장이 새로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작은 업무 하나를 더 떠맡았다. 게다가, 어찌 보면 우리 과에서 가장 중차대하다 할 수 있는 업무, 기초연금 지급 업무를 담당하는 주임님이 전출 예정인데, 전입자가 바로 오는 것이 아닌지라 업무에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번 달 기초연금 지급은 syo가 떠맡았다. 기초연금, 이건 정말 무시무시한 업무다. syo가 하루만 늦장을 부리면 수만 어르신 대군이 죽창을 들고 일어서 구청을 유린할 것이다. 이 와중에, 전체 휴관 중인 경로당이 슬슬 개관의 용트림을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래도 하반기는 일 부자, 일 갑부, 일 게이츠, 워크 버핏으로 살아가야 할 모양이다.

 

 

 

5

 

, 휴가는 부산을 생각하고 있다. 부산에는 바다와, 좋은 숙소와, 좋은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팔바지와 이소라의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와 나팔바지를 입고 구슬프게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를 부르는 syo가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은 있어야 하나?

 

 

 

 

--- 읽은 ---



82. 도시를 걷는 시간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8

 

걷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걸을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누빌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도시를 걷는 일은 누군가에겐 그 자체 최고의 유희일 수 있다.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이 역사가 조용히 누워 있는 공간이고, 그 공간을 찾아가는 이가 가만히 엎드려 있는 역사를 흔들어 깨울 수 있는 눈과 손을 갖추었다면, 도시를 걷는 시간은 다른 누구보다 도시를 걷는 그 사람에게 즐겁고 행복한 시간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도시를 걸어본 자들의 책을 읽고 나서는 반드시 도시를 직접 걸어야 한다. 알게 모르게, 이 도시에는 걷는 데 시간을 쓸만한 곳이 너무도 많다.

 

 


83.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이현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

 

책등에 함께 들어 있는 것만으로도 굳건한 신뢰를 주는 이름의 쌍들이 있다. 이를테면 고병권 선생님과 니체, 백상현 선생님과 라캉, 문성원 선생님과 레비나스, 류동민 선생님과 마르크스 같은. 그리고 지젝 하면 당연한 듯 달라붙는 이름이 있다. 이름에 값한다- 고 평가하고 싶지만 사실 평가할 능력 같은 건 없고, syo는 그냥 믿을 뿐이다.

 

 


84. 1cm 다이빙

태수, 문정 지음 / FIKA(피카) / 2020

 

시도부터 구성까지 이래저래 귀여운 책이다. 딱히 그러려고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어쩐지 애잔하고 귀엽다. 잘 됐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다.

 

 

 

--- 읽는 ---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 박재용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사사키 아타루

스포츠와 여가 / 제임스 설터

이기는 몸 / 이동환

카카오프렌즈 러브 1 / 오쭈, 흑부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 이동진

천문학 아는 척하기 / 제프 베컨, 사라 베컨

파이썬 코딩 도장 / 남재윤

 

 

--- 갖춘 ---

일곱 해의 마지막 / 김연수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 / 모니크 위티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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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0-07-02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완전히 못했고 오늘은 바보같이 못했죠,
그 야구팀요. 화나서 오비맥주 마셨어요. (???)

변동 없이 즐겁고 건강한 휴가 즐기시길 미리 바랍니다.

syo 2020-07-04 10:42   좋아요 0 | URL
저는 야구를 끊었습니다.
매년 야구를 70번정도 끊긴 합니다만....

유부만두님도 안전한 와중에 즐거운 여름 되시기를

비연 2020-07-03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

syo 2020-07-04 10:4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우 저 곰같은 웃음...

Angela 2020-07-03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우향때문에 7연패 ㅠㅠ 정말 입조심해야되는데, 그래서 우울모드예요. 그전까지는 정말 잘했거든요 ㅜ

syo 2020-07-04 10:4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Angela님도 저랑 같은 팀 응원중이셨군요.

왜 그러셨어요 ㅋㅋㅋㅋ

다락방 2020-07-03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일 많아서 허덕이는데 일이 더 많아진다고요? 맙소사... ㅠㅠ
아무튼 이 페이퍼에 진심을 담은 희망을 놓고 갑니다...

syo 2020-07-04 10:43   좋아요 0 | URL
될 것도 같아요. 같은 팀 내에서는 겹치는 날짜가 별로 없어서...

cyrus 2020-07-03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에 안 오세요? ㅎㅎㅎ

syo 2020-07-04 10:44   좋아요 0 | URL
가죠. 주말에 대구에 갔다가 평일을 부산에서 보낼 계획입니다.
가면 한번 볼까요? 너무 오래 못 봤네요.
이정도 못봤으면 그 사이 사이러스님이 토르 몸이 되어 있어도 이상할 게 전혀 없겠는데요?

추풍오장원 2020-07-04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휴가 시즌이네요.
전 연가보상비도 못받는데 연가는 다 쓰라고 엄명아닌 엄명을 내렸습니다.
전 직원들이 눈치보지 않고 당당히 연가도 쓰고 육아시간도 쓰고 유연근무도 하게끔 하려고 합니다.
그만큼 업무에서도 충실히 잘 따라주고 있어서 고마울 따름이지요..

syo 2020-07-05 13:04   좋아요 0 | URL
모범적인 부서장님이시네요.
아름다운 공무원 사회 화이팅...

블랙겟타 2020-07-11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씨익..)

syo 2020-07-12 10:56   좋아요 0 | URL
뭡니까, 이거....

블랙겟타 2020-07-12 12:38   좋아요 0 | URL
아 위에 곰같은 웃음이 있길래.. 저는 공룡같은 걸로다.. 한다는게 너무 맥락이 없었죠? ㅎㅎㅎ;;
 

 

사라지는 것 생겨나는 것

 

 

1

 

이유 없이 살이 조금씩 빠지고 있다. 물론 살짝 적게 먹고, 퇴근길 15분 오르막 걷기는 비 오는 날에도 거르지 않고 있긴 하다. 그렇게 보면 이유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겨우 이딴 게 살 빠지는 이유가 되는 거였다면 그간 인생이 참 쉬웠을 것이다. 어찌됐던 일단 반기는 중이다. 최소한 지금은. 바지 사이즈 경계선 증후군을 오래 앓아왔는데, 이참에 애매함을 청산하고 명징한 허리를 가져보고 싶다.

 

 

 

2

 

syo의 양대취미는 독서와 노래다. syo는 알라딘과 코노의 날개로 난다. 그랬는데 직장생활이 책을, 코로나가 마이크를 걷어갔다. 연초까지 푸른 창공을 거침없이 날던 syo는 난데없이 타조가 되어 일상의 초원을 다다다 달리고 있다.

 

노래 부르기는 확실히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라고 말하면 미친 듯이 소리 지르는 노래나, 온몸 율동을 동반하는 댄스곡을 부르는 모습이 즉각 연상되나 본데, 그런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모름지기 스트레스는 발라드로 푼다. 구슬픈 발라드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카타르시스를 희극이 아닌 비극을 정의하는 데 사용한 것은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슬픈 발라드를 겁나 슬프게 부를 때, 등신, 있을 때 잘하지 헤어지고 나서 이렇게 빌빌대냐 싶은 가사를 빌빌거리는 느낌 확 살려서 부를 때, 가사와 가사 사이에 호흡 한 번 넣어봤는데 뜻밖에 감성 오지게 걸렸을 때, 뭐 그런 식의 감정 정화 요인들이 잔뜩 있다. 즐거워야 한다는 강박이나 즐겁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면 즐겁지 않아도 즐거운 노래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슬픈 발라드는 웃는 마음으로 시작해도 끝에는 기필코 먹먹한 마음이 되어 마치게 마련이다. 제대로 부르기만 했다면. 그렇게 먹먹syo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여운을 즐기는 동안, 방금까지 여운을 즐겼던 은 먹먹이 되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그렇게 두 남자가 교대로 먹먹한다. 앉아있는 남자는 먹먹해졌고 서 있는 남자는 먹먹해지는 중. 우리에게 코노란 그런 곳이다.

 

요즘은 드라마도 뭣도 거의 안 보는데, 오직 노래하는 예능 두 개만 보고 있다. 나도 먹먹해지러 가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3

 

말이 잘 되는 날은 희한하게 잘 된다. 명사가 제 짝의 동사를 불러들이고 체언이 제게 오직 하나뿐인 용언을 입 안에서부터 데리고 나온다. 그런 날이면 민원인들은 아주 감동을 받아 울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반면 말이 안 되는 날은 더럽게 안 된다. 진짜 더럽다. 명사는 명사와, 부사는 부사와 부사와 그리고 부사와 손을 잡고 나타난다. 무슨 타잔이나 모글리 말 배우는 수준이다. 잠에서 깨어났더니 정글의 왕자가 된 기분이다. 민원인들이 아주 답답해서 울고 비웃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아침 첫 번째 전화나, 첫 번째 보고에서 모든 게 판명난다. 그때 절면 그날은 저는 날이다. 그때 날면 그날 하루는 그냥 I believe I can fly 하면 된다. 뭘 해도 되는 거다.

 

그래서 요즘은 매일 자기 전에, 현란한 말솜씨 글솜씨가 들어 있는 작품을 몇 페이지 엎드려 읽고 잔다. 어쩐지 마지막 읽은 말, 들은 말의 영향을 받을 것 같아서. 정확히 같은 이유로 과의 대화는 절대로 피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쟤는 입 대신 코로 소리 내는 데 능하다. 잠들면 바로 소리가 난다. 아주 다양한 소리가 난다. 음유시인이 따로 없다.

 

 

 

4

 

비가 처럭처럭 내린다. 은 맞은편에서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다. 수요일부터 은 양재가 아닌 구로에 있는 지점 비스무리한 곳으로 출근을 하는데, 그렇게 두어 주 보내고 나면 회사는 이 아이를 지방 공장에 꽂을 예정이다. 그는 분기탱천하여 다른 직장을 알아보겠다고 설치지만, 실은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처음 예측한 것이 벌써 두 달 전이고, 그때부터 오늘까지 자기소개서 한 장을 못 쓰는 걸로 미루어 보면, 얘는 지방살이를 꽤 하겠고 아마 한동안 나 혼자 살게 될 것 같다.

 

이 세상에 혼자 사는 남자가 하나 더 생겨날 모양이다.

 

 

 

--- 읽은 ---



76. 그렇다면 칸트를 추천합니다

미코시바 요시유키 지음 / 김지윤 옮김 / 청어람e / 2017

 

가물가물하긴 한데,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의 세계 철학사라는 1,200쪽짜리 두껍한 책에서, 칸트 파트가 300 가까이 되는 걸 보고 학을 떼었던 기억이 있다. 칸트가 그런 남자다. 도무지 무시하고 지나갈 수가 없다. 그렇다고 칸트를 읽겠는가? 아무래도 그건 또 아닌 것 같죠? 그렇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77.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최현우 지음 / 문학동네 / 2020

 

내 시집을 가지고 있는 기분이란 어떤 느낌일지 괜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책에는 남들이 모르고 나만 아는 뭔가가 잔뜩 있어.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저마다의 마음속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끄집어내곤 하겠지만, 진짜 내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는 잘 모를걸? 뭐 이런 생각을 하진 않을까? 아름다운 것들이 다 똑같지는 않고 똑같은 글을 읽고 다 아름다움을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왜 시를 읽는 것일까? , 사람은 왜 이렇게 도무지 만질 수 없는 날씨를 끝내 살게 되는 걸까?

 

 

 


78. 한 장 보고서의 정석

박신영 지음 / 세종서적 / 2018

 

원체 중언부언 떠벌떠벌 스타일인 syo에게 보고서는 진짜 어려운 장르다. 특히 한 장 보고서는 마의 영역이다. 요즘 업무 관련해서도 슬슬 원페이지를 요구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그래서 살겠다고 한번 읽어 봤습니다.

 

근데 이렇게 잘 안 된다. 어씨.

 

 


79. 만화로 보는 영화의 역사

남무성 지음, 황희연 글 / 오픈하우스 / 2013

 

덮었는데 다 까먹었다. 아직 영화에 관심을 둘 단계는 아닌가 봐.

 


 

 


80. 코로나 이후의 세계

제이슨 솅커 지음 / 박성현 옮김 / 미디어숲 / 2020

 

코로나 판 제3의 물결 비슷하다. 저자는 해야 할 말을 빼먹지 않고 하는데 집중하느라 굉장히 의미있고 재미없는 책을 만들어냈다.

 

 


 


81. 라캉은 정신분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타오카 이치타케, 무카이 마사아키 지음 / 임창석 옮김 / 이학사 / 2019

 

단연 라캉에 관한 가장 쉬운 책 같다. 이렇게까지 선명하다고? 라캉은 어느 정도 불투명하고 모호해야 라캉 같아서, 선명한 이 책이 오히려 더 불안하다. 사실 라캉이 아니라 가타오카 이치타케를 읽은 것이라는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불안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어차피 라캉은 모르고 죽을 건데.

 

 


--- 읽는 ---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 박재용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사사키 아타루

도시를 걷는 시간 / 김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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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6-29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조... 에서 뿜음 ...-.-;

syo 2020-06-30 20:04   좋아요 0 | URL
다다다다 ~(0_0)~

추풍오장원 2020-06-30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고서를 많이 쓰신다는건 그만큼 인정받는다는 증거 아닐까요..^^

syo 2020-06-30 20:05   좋아요 0 | URL
그런 것 같진 않고, 너도 공무원이면 그냥 입 닫고 글로 써라 이런 것 같은데요? ㅎㅎㅎ

문모운 2020-07-02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코노가 스트레스 푸는 창구였는데 코로나가 되는 대로 블루투스 마이크를 쥐어주네. 하지만 가내에서는 뭔가 절제된 창법을 구사하여만 하니 스트레스는 더 오르고 코로나 왜 안 죽지 싶고.

syo 2020-07-02 23:43   좋아요 0 | URL
어떤 노래 불렀더라.... 가물가물하네.
나는 도리어 절제된 창법으로 불러야 스트레스 풀리는 노래를 좋아하니까, 블루투스 마이크를 구매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