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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가 되지 못한 나머지,

 

1

개는 자기가 개라는 것을, 자기와 너무도 다르게 생긴 다른 개가 저와 같은 개라는 것을, 아는 걸까? 알아서 저렇게 다정한 걸까? 아니면, 몰라서 저렇게 다정한 걸까? 내가 누군가에게, 혹은 나에게 다정하기 위해,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나와 너무도 다른 저들도 역시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걸까, 몰라야 하는 걸까?

 

골든 리트리버 같은 큰 아이와 장모 치와와 같은 조그만 아이가 어울려 뒹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귀여움폭탄으로 내 심장을 조진다는 점을 빼면 공통점이라고는 하나 없는 저 아이들이 같은 종족이라는 사실이 신비롭기가 그지없다. 하지만 그 신비함은 딱히 인간이라고 빗겨 나가진 않는 듯하다. 세상에는 100kg짜리 역기를 수월하게 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달에 100권을 수월하게 읽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는 그 두 가지를 다 할 줄 아는 이도 놀랍지만 인간이고, 읽지도 않을 책을 사 놓고는 가끔 아령 대신 들었다 놨다 하며 아이구 무겁구나야 하는 이도 역시 같은 인간이다. 리트리버와 치와와 중에 누가 더 나은 개냐는 물음이 개물음이듯이, 어떤 유형의 인간이 더 나은 인간이라는 선언 역시 개소리겠으나, 어쨌든 인간이라는 종족의 스펙트럼은 놀랍기만 하다.

 

나는 내가 무엇이 될 수 있을지를 자주 생각하는 평범한 인간이다. 이제 와 내가 철인 3종 경기에 매년 참가하는 유형의 인간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악기를 다루거나 그림을 그려도 평범한 수준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진 못할 것이고, 남에게 한없이 베푸는 인간만큼이나, 남을 등쳐먹는 인간이 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평범한 인간에게 세상은 무엇이 될 수 없는지를 가르치는 방식으로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추측케 한다. 그 과정은 아프거나 슬프거나 최소한 웃프다. 젖먹이 때 무한한 방향으로 뻗어있던 선택지는 시간에 침식되어 맹렬한 속도로 허물어진다. 죽어버린 가능성들의 폐허를 쓰린 마음으로 배회하다가 몇 안 남은 차선들, 차악들을 저울에 올려놓으며 종점 쪽으로 한 걸음씩 흘러가는 것. 어쩌면 이것이 평범한 인간의 정의定義가 아닐까


내가 되지 못한 무엇인가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내가 된 무엇인가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조금 더 다정해질 수 있을까? 그들에게나, 혹은 나에게나.

 

 


2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그레이슨 페리의 남자는 불편해,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 1, 김희경의 이상한 정상가족, 정춘수의 한번은 한문 공부, 나쓰메 소세키의 우미인초,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었다.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은 기본소득에 관해서 공부할 때 베이스캠프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 책의 각 챕터를 통해 기본소득을 알려면 어떤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일단 두꺼운 책을 한 권 옆에 가져다 놓았다.

 


이 두 권은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하고,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르다. 교차해 읽는 맛이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이런 복잡한 현실을 풀어나가는 동시에정책과 문화를 통해 보통 사람들을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장하는 거대한 거미줄로 사로잡으려는 정부의 시도들을 회의적으로 바라볼 것이다나는 체제의 화물칸에 빽빽하게 갇힌 희생자들이 서로에게 가한 잔인한 행위를 간과하지 않으려 애쓸 것이다희생자들을 낭만적으로 그릴 생각은 없다하지만 나는 (정확한 구절은 아니지만전에 읽은 한 문구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가난한 이들의 외침이 항상 정의롭지는 않지만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정의가 무엇인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민중운동을 위해 승리의 기록을 날조하고 싶지는 않다그러나 역사 서술의 목적이 과거를 지배하는 실패만을 요약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역사가들은 끝없는 패배의 순환에서 공모자가 되어 버린다역사가 창조적이라면또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도 가능한 미래를 예견하려면덧없이 스쳐 지나간 일일지언정 사람들이 저항하고함께 힘을 모으며때로는 승리한 잠재력을 보여준 과거의 숨겨진 일화들을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가능성들을 강조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어쩌면 순전히 희망사항일 수도 있지만우리의 미래는 수세기에 걸친 전쟁의 견고함에서가 아니라 덧없이 지나간 공감의 순간들에서 발견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워드 진미국 민중사 1 


이러면 이제 막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하루키의 소설 가운데 가장 많이 읽은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하루키 전작 읽기를 시도하다가 중간에 지루해서 관두는데, 첫 작품이라 어쨌든 읽게 된다. 지금 이게 하루키 전작 읽기의 구덩이로 나를 또 한번 몰고 가는 음모의 시작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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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메이커 2018-09-03 0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도 글풍선 시스템을 도입해야합니다. 이걸 공짜로 소개받다니...좋아요랑 댓글로 값을 대신 치르고 갑니다ㅠ

syo 2018-09-03 08:44   좋아요 0 | URL
전 그거면 됩니다 ㅎㅎㅎㅎ 글풍선이라니 참신하네요 ㅎ

2018-09-03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3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3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9-03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달에 100권...? 그럼 거의 목차와 서문만 읽으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근데 100kg 역기와 한달에 책 100권을 동시에...?
읽지도 않을 책을 사 놓고는 가끔 아령 대신 들었다 놨다

과연 그럴 사람이 있을까 싶다가도 스요님만의 비유법 같아
귀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스요님은 탁월하군요!^^

syo 2018-09-03 15:16   좋아요 0 | URL
전 진짜 있을 것 같아요!! 있을 것 같지 않으세요?? ㅎㅎㅎㅎ

북다이제스터 2018-09-03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라리의 신작엔 보편적 기본 소득에 대해 누구도 말하지 않는 내용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실패할 것이라는 주장인데, 보편적 기본 소득 신봉자로서 단 일초만에 설득되었습니다. ㅠㅠ 하지만 근본적인 대안도 제시해서 안심했습니다. ㅎ

syo 2018-09-03 21:19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까? ㅎㅎㅎ 역시 북다님, 벌써 거기까지 가 계시는군요.....

2018-09-03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3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3 2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haeg 2018-09-04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수정 님이 <월경독서>에서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를 읽으면서 두드려맞는 느낌으로 정말 힘들게 읽었다고 해서 도전하기 주저하고 있는 중입니다^^;

syo 2018-09-04 17:30   좋아요 0 | URL
목수정 님이 어떤 기분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ㅎㅎㅎ
근데, 의외로 되게 재미있어요. 한 번 읽어 보시길^-^
 


어릴 적 별명은 손오공이었다. 아이들의 별명이 대체로 그렇듯, 손 씨라서 손오공인 경우지 따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시절 우리에겐 다양한 손오공이 있었다. 1.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책 가운데 하나지만 그 누구도 읽지 않는 중국 고전 소설 속의 손오공, 은 그때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지명도 일타 손오공의 자리를 놓고 각축전을 벌인 두 손오공은 2. ‘밤에도 낮에도 느낄 수 있는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의 손오공과, 3. 소원을 들어주는 일곱 개의 구슬을 모으는 소박한(?) 여행에서 시작하여, 종국에는 작은 행성쯤은 장풍 하나로 분쇄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지는 소년만화 속 손오공이었다. syo 손오공은 2-1-3의 순서로 그 손오공들을 좋아했다. 3번 손오공은 멋지고 강하고 착한, 그야말로 흠 잡을 데가 하나도 없는 손오공이었지만 그다지 정이 가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3번 손오공이 복숭아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숭아 앞에 무너지지 않다니 이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손오공이라면 모름지기 복숭아를 탐낼 줄 알아야지!

 

지금 내가 뭘 쓰고 있는 거지......

 

하여간, 남부럽지 않게 복숭아를 탐하는 손syo공조차 100100복 프로젝트를 실패했다. 사랑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 배고픔은 참아도 배부름은 되려 참기가 어렵다......

 

 

180823 180831 : 30


 

1. 당신의 노후

 : syo가 김연수를 전도한 친구는(물론 김연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야 그전부터 알았겠습니다만) 김연수를 탐닉하기를 거듭하여 결국 김연수도 그 친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그런 사이가 되고야 말았다. 보답이랄지, 그 친구 역시 syo에게 왕왕 좋은 작가들을 알려주곤 했었는데, 확실히 기억나는 이로는 황정은과 황인찬이 있다. 김금희도 있다. 그러나 그 친구가 누구보다 사랑하여 가장 격렬하게 민 이는 박형서였다. 기세에 못 이겨 그리 기껍지 않은 마음으로 단편집 끄라비를 읽었는데, syo가 그만 감동과 감격으로 도가니탕을 끓이고 만 것이다. 게 눈 감추듯 도가니탕 한 그릇을 뚝딱해놓고 친구에겐 그런 적 없는 척 짐짓 쿨하게, 뭐 괜찮네, 그러고 말았다. 친구는 다소 불만인 듯 했으나, 인정하면 왠지 지는 것 같았단 말야. 그러나 이 책까지 읽고서는, 양심이 아파 더 이상 숨길 수가 없다. 문 작가님, 맞아요. 박형서가 짱이에요. 어떻게 그분을 박형서라고 함부로 부를 수가 있겠어요. 갓형서님.....

 

2. 똑똑

 : 그다지 입맛이 돌진 않았는데, 막상 표지를 보니 너무 예뻐서 그냥 넘어가기가 어렵더라.

 : 남들이 수도 없이 반복한 뻔한 이야기를 뻔한 문장으로 엮어 내놓을 수 있는 패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 뻔한 이야기가 진리인지라 별 도리가 없는 것일까? 진리를 강조하기 위해서라 하더라도, 이미 바다가 만들어져 있는데 그 위로 한 바가지의 물을 부어넣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일일까?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어쨌든 정여울은 이미 그 바가지를 쥐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큰 작가가 아닌가?

 : 여과 없는 자신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했으나 정여울의 글은 여전히 교훈이나 공감을 겨냥한다. ‘자신은 그곳으로 가기 위한 탈것에 불과한 것 같다. 지금까지의 책들과 <월간 정여울>, 과연 다른가?

 

3. 어디서나 무엇이든 물리학

 : 주루룩 한 번 읽기에 나쁘지 않다. 이 책을 막힘없이 읽을 수 있다면, 이제 숫자와 공식이 출몰하는 책에 손을 대 보는 것이 좋겠다.

 

4. 디어 맑스

 : 다종다양한 맑스 전기 가운데 한 권인데, 엥겔스가 맑스 사후에 그를 기려 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하는 잔망을 피운다. 그래도 전기가 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맑스와 엥겔스를 묶은 역사적으로도 유별나다 싶은 우정 때문이 아니려나. 재미가 있다.

 : 저자는 자기 손으로 이 책을 써놓고서는 엥겔스가 쓴 글을 발굴하여 번역한 척을 한다. 그것도 재미있다.

 : 그런데, 아무리 난봉꾼 기질을 지닌 엥겔스가 화자라고 해도, 여성이나 성애를 표현하는 부분이 너무 구리다. 구려도 참 진부하게 구리다. 비밀의 계곡, , 이런 단어는 양산형 무협지의 몰락이라는 운석을 맞아 진작 멸종했다. 그리고 우리말 욕심을 너무 부렸다. 생게망게, 부닐다, 어금지금하다, 두남두다...... 취지는 좋으나 적당히 할 필요가 있겠다. 1년에 400권 읽는 syo가 모르면, 대부분이 모르지 않을까? 심지어 어금지금하다한글워드프로세서조차 빨간 줄을 그어준다.....

 


5. 복지 국가

 : , , 그렇군요. 얇네요.

 

6. 논어, 이것을 알지 못하면

 : 저자가 스스로 세운 기준에 따라 논어의 이 편 저 편을 종횡무진하며 글귀를 재배치하였다. 양자오 선생의 말에 따르면, 논어는 배치가 생명이다. 군데군데 퍼져있는 구슬들을 얼마나 잘 꿰어 좋은 해석을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의 해석은 평이한 느낌. 벼슬을 치켜세우고 도박사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우람한 싸움닭처럼 시선을 잡아끌만한 책은 아닌 것으로. 논어 책은 수없이 많으니 syo는 다른 닭장을 두리번거립니다.

 

7.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 미친 듯이 웃기다고 표지에 쓰였어. 그치? 너도 보이지. 근데 내가 미친 듯이 웃지를 못했네? , 이제 누가 웃다가 미친놈인지 불어야 될 때가 왔어. 누구야, 걔가.

 : 앞쪽 1/3을 차지하는 덴마크 편만 넘기면 그래도 웃을 데가 좀 있다. 저자가 제2의 고향이라며 유독 친밀함을 드러내는 덴마크 편이 가장 재미없는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 , 이건 여담인데, 저자의 처가가 덴마크에 있다.

 

8. 풀베개

 : 이 책은 소세키의 미학론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재미? 그다지 없다. 아예 없진 않다. 소세키가 쓴 것 싼 것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는 syo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읽는 데 며칠이 걸릴 수도.

 : 각 잡고 아름답게 쓴 책이라, 천천히 음미하며 읽으면 꽤 여러 번 감탄할 수 있다. 날 믿나요? 믿어요. 이제 눈을 떠요. 날고 있어요, ..... 까지는 아니겠으나, 영롱한 풍경들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문장 위에 천천히 머무는 식으로 읽어 나가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9. 철학자의 사물들

 : 책을 많이많이많이많이많이 읽으면, 세상 모든 데서 글감을 찾아낼 수 있나보다. 그러면 이제 책을 많이많이많이많이많이 쓸 수도 있게 되는 것인가!

 

10. 너는 너를 지나 무엇이든 될 수 있고

 : 비평은 정말 나랑 안 맞아. 읽기 싫어 죽겠네. 그래도 꾸준히 이런 글들을 읽지 않으면 이웃님들처럼 깊이 있는 글을 쓸 수가 없잖아! 으아아아아앙 어쩌라고.....

 

11. 논어를 읽다

 : <선진>편을 뼈대로 공자라는 인물의 무늬를 복원하는 작업. 얇은 책이다 보니 논어 전체를 다루지는 못한다. 그러나 독자가 혼자서 논어 전체를 읽어낼 수 있는 방법을 단련시킨다.

 : 무슨 고전이든, 그 작품을 다룬 양자오의 책이 있는지 일단 검색해 본다. 시작은 양자오로부터. 자타공인 알라딘의 입문서 중독자 syo가 가끔씩 추천할 일이 생기면, 믿고 던져보는 고마운 작가님이시다.

 

12. 마르크스 씨,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죠?

 : 요 작은 놈이, 짧게 정리한 마르크스의 생애, 간략한 유럽 역사, 마르크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철학이나 문학의 기초, 자본론, 마르크스 사상의 한계와 그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 이후까지, 갖춰야 할 구색은 다 갖춰 놓았다. 마르크스라고는 1도 모르겠는디요, 싶다면 바로 이 책.

 


13. 시인을 만나다

 : 이 책이 만나게 해주겠노라 불러 낸 시인들을 중고등학교 다니며 이미 다 만났다는 데서 적잖이 놀랐다. 우리 교육의 위대함인가?

 : 그땐 이 시들도 어렵고 지겹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나오는 시들을 옆에 대놓고 읽자니 이렇게 친절할 수가 없다. 배우고 말고 할 게 있나, 보면 바로 답이 나오는데, 싶다. 지압판 위를 잘 참고 걷는 방법은 하나다. 일상생활을 가시밭길 위에서 영위하기. 그러면 지압판이 그리워 막 꿈에 나온다.

 

14.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 있음

 : 생각보다 쓸모없는 책이었는데, 혹시 그게 전략인가?!

 : 프롤로그에 하고 싶은 말이 거진 다 들어있고, 그 뒤로는 저자의 편을 들어주는 권위자들의 말씀이 주욱 이어진다. 편집도 성글다.

 

15. 슬픔을 맛본 사람만이 자두 맛을 안다

 : 역시, 장석주는 책 읽은 글을 쓸 때 제일 빛난다. 그리고 장석주가 책 읽은 이야기를 할 때, 그걸 듣는 syo의 눈이 제일 빛난다. 존경 말고는 달리 드릴 것이 없는 내가 부끄러울 정도의 저 성실함..... syo의 목록에 또 수없이 많은 책들이 등록되었다.

 

16. 그녀는 괴테가, 그는 아인슈타인이 좋다고 말했다

 : ‘팀 인문학팀 자연과학이 서로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10개 종목에서 치열하게 한 판 붙었다! 가 컨셉. 서로의 명치에다 펀치를 날리기도 하고, 때론 다리털을 집어 뽑는 졸렬한 공격도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긴 한데, 그 와중에 은근히 서로가 분리되어 다뤄질 수 없거나 그럴 필요가 없거나 하다는 점을 넌지시 비추어준다. 결국 위아더월드.

 : 그래도 어쩐지 팀 인문학트레이너 쪽 말빨이 더 센 것 같다. 힘을 내요, 자연과학!



17. 당신은 우는 것 같다

 : 시가 있고, 다음 페이지에 시인의 아버지가 있는 책이다. 톺아 생각해보면 한편으로 시인의 아버지가 있고, 다음에 시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은 시가 있고, 시가 있어서 다시 시가 있는 그런 책인 것도 같다.

 

18. 그렇다면 칸트를 추천합니다

 : 칸트를 다룬 책 가운데서 난이도 순 가장 아랫바닥에 깔릴 책. 다정한 책. 그러나 더 어려운 책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될 책.

 

19. 태풍

 : 소세키 선생님께 혼난 것 같다. 나는 비루하기도 하고 얄팍하기도 하여 부와 지성의 싸움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볼 밖에. 하지만 선생님, 요즘은 100년 전과 달리, 가진 자들이 총명합니다. 아는 자가 가지기는 지금도 그때만큼 어렵겠으나, 가진 자가 알기는 너무도 쉽습니다. 우리는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가졌으면 총명할 수도 있지만, 가지지 못했다면 아무리 애써도 총명에서 끝이거든요.

 

20. 일러스트 공산당 선언·공산주의 원리

 : 넘치는 덕력으로 가장 잘 맞는 번역의 공산당 선언을 찾기 위하여 뒤적거리는 중입니다. 사실 원전이 워낙 박력이 폭발하는지라 어느 번역이나 고루 괜찮습니다.



21. 하루의 취향

 : 분명히 표지에 김민철 지음이라고 쓰였는데 읽다보니 남편, 언니, 같은 호칭이 튀어나와 화들짝 놀라며 표지로 돌아가 저자 이름을 확인하는 분들께 권한다. 이제부터 에세이 참 잘 하는 카피라이터 김민철(, 30대 후반)이라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게 되실 겁니다. 그리고 syo처럼 이미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는 당신, 그건 그녀의 다른 책을 읽어보셨다는 뜻인데, 그렇담 제 추천이 따로 더 필요하지 않잖아요. 다 아시잖아요. 이 책이 얼마나 좋을지.

 

22. 닌하오 공자, 짜이찌엔 논어

 : 이 책이 논어를 재밌게 했다. 웃었다. 웃고 난 자리에 남은 게 많았다. 누군가 자본으로도 딱 이만큼 웃기고 남겨줬으면 좋겠다.

 

23. 그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 이런 동년배들도 있는데 난 뭐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벌써 오만의 흔적은 아닐까.

 : ‘손아람은 참 잘해라는 말과 이준석은 참 잘해라는 말이 한 사람 입에서 나온다면, 말 속의 이름만 다른 게 아니라 뉘앙스도 다를 것 같다. 이를테면, ‘손아람은 참 잘하고, 이준석은 참 자아~알 한다.’ 랄까. 그만큼 두 사람의 정치(광의의 정치) 행보는 다른 방향이다. 하지만 이제는 뉘앙스 없이, 어감의 차이나 비꼬려는 의도 없이, 두 사람 다 참 잘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참 괜찮은 청년들일세.

 

24. 책에 빠져 죽지 않기

 : 상상하건대, 이런 제목을 붙이는 일은 정말 쉽지가 않겠다. 어지간히 읽는 사람이라면 책에 빠져 죽기를 생각할 것 같고, 거기에 오지랖까지 장착된 사람이라면 책에 빠져 죽어라같은 제목을 골랐을지도 모른다. 그 단계를 뛰어넘어서, 정말 이러다 책에 빠져 죽겠다 싶은 느낌을 받아 본, 진짜배기만이 저런 제목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syo의 이런 추측은, 요 며칠 로쟈님의 서재에 올라온 이사 관련 페이퍼나 사진 조각들을 통해 막강한 신빙성을 획득했다. 책에 빠져 죽을까봐 걱정하는 마음을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데, 그 마음의 파편을 느끼게 해줄 책이 어떻게 귀중하지 않을까.



25. 가토 슈이치의 독서만능

 : 읽는 걸로 밥을 버는 입장이 되지 않는다면야, 사실 마음 내키는 대로 읽는 것이 가장 행복한 독서가 될 공산이 크다. 사실 읽은 걸 모아서 자꾸 뭐가 되려 하는 건 욕심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왜 자꾸 책한테만 얼어붙은 뭘 깨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라, 이런 어려운 주문을 하는 걸까. 오늘보다 더 나아지는 내일은 의도로 달성하는 게 아니라, 그냥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만능은 구하지 않아야 빨리 온다.

 

26. 거울 보는 남자

 : syo가 김경욱을 한참 읽던 시절의 김경욱은 위치가 이상했다. 메이저한 작가들을 읽는 사람들에 눈에 그는 너무 마이너했고, 또 마이너한 작가들에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과하게 메이저 취급을 받았던 것 같다. 잘 생긴 애들 중에선 제일 못생긴 애, 혹은 못 생긴 애들 중에선 제일 잘 생긴 애 같은 느낌. 그런 주변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syo의 독서인생에서 김경욱은 튼튼한 디딤판 역할을 잘 해주고 물러났다. 그렇게 10년이 더 지났고, 다시 만난 2018년의 김경욱은 또다시 syo 안에 파고들어와 단단한 무언가가 되려고 한다.

 

27. 우리가 녹는 온도

 : 문제적인, 전복적인 작가로 정이현이 꼽히던 때가 있었다. 그것은 물론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비롯한 일련의 단편들이 드러내고 있는 사태에서 발생하는 경보음이었지만, 그 경보음을 멀리 그리고 더 또렷하게 퍼뜨린 것은 그녀의 문장이었다. syo는 단발머리 같은 문장이라고 표현하길 좋아했다. 지금, 젊은 작가들이 파상공격을 펼치고 있는 문학 판에서, 정이현은 더 이상 전복적인 작가로 매겨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문장은 살아남아, 다시 무슨 일을 벌일 것이다.

 

28. 인간은 왜 폭력을 행사하는가?

 : 강연을 엮은 책들이 으레 그렇듯,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술술 읽을 수 있도록 써 놓았다. 더 깊이 있는 책으로 나갈 수 있는 좋은 디딤돌 같은 책.

 : 근데, 이걸 디디고 어디로 가면 좋을까 싶어 참고문헌 목록을 봤는데, 그 안에 한글 문헌은 단 하나도 없다. syo는 거기서 어떤 폭력의 냄새를 맡았다...... 이런 강연을 하는데 참고할 수 있는 문헌 중에 한글로 된 것이 없다면, 관심이 생긴 독자들이 부담 없이 손을 뻗을 수 있는 책들이 이 땅에 없는 거라면, 강연을 할 만큼의 권위자인 선생님들께 이런 상황에 관하여 일말의 책임도 없는 걸까요?

 


29. 강원국의 글쓰기

 : 유시민의 글쓰기 책에는, 이 책에서 말하는 글쓰기란 비문학적 글쓰기를 말한다는 주의사항이라도 서두에 깔아준다. 이 책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물론 읽다 보면 알 수는 있다. 그러나 유시민의 책에 비하면 훨씬 무람없이 자신의 기준을 휘두른다. 장르에 무관하게 적용될 수 있는 글쓰기 원칙은 없다. 신고전주의 화풍이 인상주의 화풍에 비해 무조건적으로 우월하지 않은 것처럼.

 : 그리고, 죄송하지만 선생님의 글은 좋은 글이지만 매력이 없습니다. 읽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래도 이 책을 읽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사서 읽을 수도 있었는데, 빌려 읽어서 참 다행입니다.

 

30. 폭발적 진화

 : 너무 얕게 훑고 지나가는 게 단점이지만, 설명 자체에 참신한 맛은 있다. 그렇다면 같은 방식으로 두꺼운 책을 써줬으면 싶다.

 

 

 

세어봤더니, 이달에는 도합 116권의 책을 읽었더라. 그리고 세어보진 않았지만, 80개가량의 복숭아를 먹은 것 같다. 공식적으로 100100복 프로젝트는 망했다. 116권이 아니라 116만권의 책을 읽었어도 100개의 복숭아를 먹지 못했다면, 망한 것은 망한 것이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겨우 이 정도도 해내지 못하는 작은 남자였다니...... 못난 나를 용서하지 말아줘, 각종 손오공들아.

 

즐거운 9월이다. 9월에는 50읽는 것이 목표입니다. 오곡이 무르익는 가을이 왔는데, syo도 어딘가 무르익어 줘야 할 게 아닙니까. 알라딘 좀 작작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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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8-09-01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오공은 아니지만 모름지기 복숭아는 탐낼 줄 아는 1인입니다. 개인적으로 물렁이보다 딱딱이를 좋아합니다만^^;

<하루의 취향>은 망설이고 있었는데 장바구니에 담아야겠습니다.
<닌하오 공자, 짜이찌엔 논어>도요. 생소한 분야인데 남기신 글을 보니 흥미가 생기네요.

제게는 몇 년치 걸릴 양을 한 달 만에 가뿐하게 읽으시니 부럽습니다.^^*

syo 2018-09-01 09:20   좋아요 1 | URL
저도 딴딴이를 좋아합니다!!
‘가뿐하게‘ 읽지 못했어요. 엄청 허덕거리면서 읽어냈는걸요 ㅎㅎㅎㅎ ^-^
중요한 건 어떻게 읽느냐 아니겠어요. 이렇게 읽어도 남는 거 하나 없더라구요~

2018-09-01 0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1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포스트잇 2018-09-01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숫자와 공식이 출몰하는 물리책도 마구 읽으시게 된다니 .. 안물리시나?....(한물간 개그;;;;;;)
문리터지는 물리.. 뭐 이런식의..;;;;;
엄청나게 읽으시네요.
예전에 입문서들 정리하신 페이퍼를 본 거 같은데, 관심분야 좋은 입문서들만 모아서 서평해주시는 것도 도움될 거 같습니다만,

물리, 아, 물리....

syo 2018-09-01 10:32   좋아요 0 | URL
물리 책을 ‘마구‘ 읽을 능력은 아니구요 ㅎㅎㅎㅎ 그저 공대 출신이라 수나 수식과 좀 더 친할 뿐이지요. 저한테도 물리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입문서만 디립다 읽는거구요^^

공쟝쟝 2018-09-01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박형서 작가님 소설 읽어보고 싶네여! 이달의 추천평짱짱!

syo 2018-09-01 13:12   좋아요 1 | URL
개인적인 감상이라 다른 분들께 혼란을 주는 건 아닐까 걱정되네요. 밤에 썼는데 낮에 다시 읽어보니 엄청 호들갑이잖아요 ㅎㅎㅎㅎ

stella.K 2018-09-01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손 씨였군요.
근데 손오공이나 주호민이나 다 한바구니에
담을 수 있지 않나...? 하긴, 주호민이 비주얼이 좀 그래서 그렇지
사람은 점잖고 매너 좋은 사람 같더라구요.
그렇다면 스요님도 같은 바구니...?ㅎㅎㅎ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았어요. 그니까 실패했죠.ㅋ
올해는 폭염에 폭염 끝나니 물난리까지 덕분에 복숭아를 많이 못 먹었어요.
지금은 복숭아가 아니라 금숭아더군요.
아마 올해 복숭아는 더 못 먹지 싶습니다. 넘 비싸서...ㅠㅠ

손아람, 이준석 책은 저도 좀 관심이 가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정치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궁금도하고,
손아람은 마태우스님이 워낙에 애정하시니까.
근데 동년배였군요. 오늘 스요님에 대해 쏠쏠 짭짤하게 알게 되네요.ㅎ

syo 2018-09-01 17:02   좋아요 1 | URL
바구니요?? 무슨 바구니 말씀일까요. ㅎㅎㅎㅎ

복숭아 충분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패해서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다시 1년을 더 기다려야 되는 건데......

제가 점점 파악이 되고 있나 봅니다. 저는 별 거 없는 인간이라 개인 정보에 그닥 집착하지 않습니다ㅎㅎㅎㅎ 앞으로도 스멀스멀 정보를 유출하겠습니다....

비로그인 2018-09-01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경욱에 대한 평이 아주 찰떡표현이에요! 잘생긴 애 중에 젤 못생긴 애, 못생긴 애 중에 젤 잘생긴 애....ㅋㅋㅋ
어쨌든 저에게 김경욱은 좀 알쏭달쏭하여 패스하지만, 또 여러 권을 마음에 담고 가게 하는 포스트였네요...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어렵지만, 그 책들에 대해 몇 마디라도 끄적이는 것은 더 어렵더라고요. 늘, 읽는 것보다 쓰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저만 그런 건 아니겠...지...요....?

syo 2018-09-02 11:4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쓰는 게 아무래도 훨씬 어려워요!
저도 그렇습니다 ㅎㅎ 그야말로 몇 마디 끄적거리는 게 한계치인지라,
전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는 셈인 것입니다......ㅋㅋ

clavis 2018-09-02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쇼님. 목표달성 거진 다 하셨으니..아 복숭 넘 먹고싶습니다!
전 어제 밤 고열에 시달렸어요. 과제는 너무 많은데 후후. 복숭의 맛을 떠올려보며 힘내야겠지요. 밥도 먹고 숙제도 하고.책읽기 좋아지는 선선한 날인데ㅡ그런데 가을에 책이 제일 안팔린데요. 50권이라뇨ㅠ

syo 2018-09-02 11:48   좋아요 1 | URL
머나먼 타지에서 고생하시는 우리 클래비스님께 헤라클레스 같은 대책없이 막강한 체력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아무래도 건강이 최고지요. 읽는 일은 그 다음입니다. 힘내세요 ㅎㅎ

모운 2018-09-02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갓형서... 훗

syo 2018-09-02 11:49   좋아요 0 | URL
you win.

뒷북소녀 2019-01-24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궁금해요... 도대체 웃다가 미친 사람이 누군인지...
북유럽의 빌 브라이슨이라니... 빌 브라이슨 손톱만큼도 안 되는 것 같은걸요.ㅋ

syo 2019-01-25 09:51   좋아요 0 | URL
그렇죠? 빌 아저씨가 북유럽으로 날아가서 싸다구 날릴 것 같아요.
그리고 그걸 글로 써서 또 우리를 웃기겠죠. ㅎㅎㅎㅎㅎ
 
책에 빠져 죽지 않기 - 로쟈의 책읽기 2012-2018
이현우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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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생대 데본기에 다양한 생선들이 어슬렁어슬렁 육상으로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그와 유사한 양태로 2015년 초의 서울에서는 그저 읽는 syo가 읽고 끄적거리는 syo로 진화의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중이었다. 그해 이전의 syo는 서평 같은 게 왜 있는지, 서평과 독후감의 차이는 무엇인지, 뭐 이런 기초적인 것들을 1도 이해하지 못하는 한 마리 무지몽매한 척추동물일 따름이었다.

 

그리고 무덤이 있으면 반드시 핑계가 있는 법. 핑계 1. 아니, 지금 지구에 책이 몇 권이나 있는 줄 알아? 그리고 걔네가 앞으로도 태어나길 그만 둘 것 같아? 책 읽은 책 읽을 시간 있으면 책 읽어. 핑계 2. 네가 읽은 책은 네가 읽은 책이고 내가 읽은 책은 내가 읽은 책이다. 그러므로 내가 읽은 셰익스피어와 네가 읽은 셰익스피어는, 내가 읽은 셰익스피어와 내가 읽은 도스토예프스키만큼 다르지. 핑계 3. 너는 내가 네 반찬 다 씹어서 밥상 위에 뱉어놓으면 소화 잘 되겠다고 신나서 주워 먹겠다?

 

아 세상 깝깝한 2015년의 syo. 나 이놈, 내 죄를 내가 알렷다......

 

그렇게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라는 명제가 진리가 되는데 아낌없이 몸 바치던 syo에게 계몽의 빛, 진화의 구름판이 되어준 이가 있었으니, 이 책은 바로 그가 2018년에 쓴 책이다.

 

 

 

2


또 다른 책이 있었으니 그 이야기부터 하자면, 


그 책의 표지는 차갑고 자비 따윈 모를 것 같은, 어쩐지 구치소 쇠창살을 떠올리게 하는 색깔이었다. 이걸로 사람 한번 툭 치면 그 구치소 쇠창살 안에서 내다보는 바깥 풍경이 어떤지 뼈저리게 알게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두껍고 무거운 책이었다. 제목을 비롯하여 표지에 인쇄된 글귀들은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 책으로 무고한 시민의 둔부를 가격, 현장에서 적발되어 구치소에 갇혀 살던 한 남자가, 임종 전날 바스러져가는 멘탈을 가까스로 부여잡고 손톱으로 시멘트벽을 긁어 남긴 유서 스타일로 디자인되어있었다. 그 모든 시각적 정황증거와 전혀 합이 맞지 않는,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역설적인 제목이 syo로 하여금 그 책을 펼칠 수밖에 없게 하였으니, 그 책의 제목은 책을 읽을 자유였다.

 

당시 벌써 나온 지 5년이 다 된 책이었지만 그런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감옥 같이 생긴 자유의 책을 통해 syo가 깨달은 것은, 서평이 되었건 독후감이 되었건, 책 읽은 글은 버젓한 하나의 장르라는 사실이었다. 인터넷 공간을 방황하다 가끔씩 마주친 서평이나 독후감으로부터 늘 실망만을 얻어왔다는 불행한 우연 때문에, 내가 이 어엿한 아이들을 근거 없이 괄시했구나. 문제는 질이구나. 그리고 양이구나. 우와, 이 양 좀 보소.

 

이런 사연이 있었으므로, ‘로쟈라는 인물의 자취를 좇던 syo가 알라딘에 유입된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와서 보니, 이 인물은 구텐베르크 은하계에 존재하는 모든 책의 3/4 쯤을 읽고, 그 반절에 길고 짧은 코멘트를 다는 그야말로 탈 갤럭시 급 독서가였다. 이 책 재밌겠다 싶어 검색하면 로쟈의 코멘트가 있다. 저 책 재미없겠다 싶어 검색하면 거기도 있다. 도대체 어느 구석으로 드리블을 해야 저 거대한 관음보살의 물샐 틈 없는 손바닥 바깥으로 도망칠 수 있을까 잠깐 고민하다 관뒀다. 뭐하러 그래. 그럴 바엔 그냥 친구 추가나 하자. 딸깍.


 

 

3


그해 여름, syosyo의 친구 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로쟈님의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우리 두 백수는 교통비 말고는 지불여력이 없었으므로 강의료가 없는 강의 밖에는 선택지가 마땅치 않았다. 노원구에서 19세기 러시아 문학 강의를 들었고, 남산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 강의를 들었다. 노원구 강의는 평일 오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시간에 참석한 젊은이는 우리 말고는 없었으므로, 맨 앞줄에 앉은 우리는 첫날부터 다른 분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등가죽이 뜨뜻했다. 짧은 자기소개의 시간이 있었는데, 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입니다. 혜화동에 살구요, 저는 옆에 이 친구를 따라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박수 짝짝. syo의 차례였다. “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옆에 이 친구 syo입니다. 저도 혜화 살구요, 저는 앞에 저 분 따라 왔습니다.” syo의 손끝이 강단 책상에 앉아 있는 로쟈님을 향했다. “저는 저 분 선생님 따라다닙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짝짝짝짝짜자자자짝짝. 웃음 하하하호호하하호호. , 보았니, 이 해일 같은 박수와 웃음의 앙상블을? 이것이 너와 나의 눈높이다......

 

1시간 강의가 끝나고 잠깐 쉬는 시간, 강의실 뒤쪽에 비치된 녹차 티백을 가지러 나왔는데 50대쯤 되어 보이는 참가자 한 분이 syo를 보고 웃으며 물으신다. “선생님 매니저세요?” “?” “아니, 선생님 따라 다닌다길래, 호호호.” syo가 웃으며 대답한다. “, 아닙니다. 전 그냥, 사생팬인걸요.” 대답하고 아차 했다. 사생팬까지는 아닌데. 정정할까? 넌지시 그분의 표정을 살피고 syo는 안심하며 돌아섰다. 아무래도 사생팬이 뭔지 모르시는 눈치였으므로. 자리에 앉았는데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사생팬이 뭔지 아는 나이대의 사람이, 평일 이 시간에 구립도서관 강의실에 앉아 푸쉬킨, 고골, 레르몬토프 중에 누가 형인지 생각하고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런 전복적인 자기소개에도 로쟈님은 옅은 미소만 보일 뿐 미동조차 않으셨다. 며칠 뒤 그해 노벨상을 발표하는 날, 남산에서 강의 초입에 로쟈님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수상을 은근히 바라시는 투의 말씀을 하셨다. 네이버에 노벨문학상을 입력하고 5초 단위로 새로고침을 하고 있던 syo,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그 우크라이나 작가가 수상을 한 것 같습니다.” 하고 말씀을 드렸을 때도, “그렇습니까? 우크라이나 태생이지만, 벨라루스 작가입니다.” 하시며 안경을 살짝 올리셨을 뿐, 안경 너머로 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 아주 잠깐 찾아들었을 뿐, 이내 더 이상의 언급 없이 다시 강의 주제로 돌아가셨다.

 


 

4


간결함, 정확함, 세세함. 개인적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강의를 수십 번 들은 것도 아니지만, syo가 눈으로 보고 느낀 로쟈님의 이미지는 그의 책에서, 특히 서평을 모은 책에서 읽고 느낀 것과 아찔할 정도로 비슷했다. 글과 말이 서로를 벗어나지 않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그리고 흔치 않다. 그놈들은 하루아침에 일치를 이룰 수 있는 성질 순한 아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취향을 자극하지 않는 음식은 폭발적으로 팔려나가지 않는다. 누군가 눈물 나게 매운 치킨을 먹을 때, 다른 곳의 누군가는 단짠단짠이 절묘한 치킨을 먹고 있다. 치킨의 알파요 오메가는 후라이드임을 설파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가장 맛있는 음식은 뭐냐고 물어보면, 시간을 많이 줄 테니 오래오래 생각해보라고 하면, 그들은 무취향한 음식들을 떠올릴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그걸 고르진 않더라도, 돈을 주고 사 먹을 수 없기에 팔지도 팔리지도 않는 어떤 기본적인 요리들을 생각해 볼 것이다.

 

물론 세상에서 제일 잘 팔리는 서평을 쓰는 로쟈님에게 딱 들어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하여튼 그런 이유만으로, 양념 팍팍 친 맵고 짜고 달고 때로는 쓴 문장을 사랑하는 syo가 삼삼하고 때론 심심하기까지 한 그의 글을 좋아하는 것일까?

 

역설적일 수 있지만 좋은 서평은 서평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서평을 쓰는 일 자체에 대해 과도하게 흥분할 필요가 없으며 너무 많은 기대를 갖는 것도 조지 않다멋진 문장보다는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이 바람직하며 화려한 수사에 대한 고민도 자제하는 것이 좋다예술적인 글을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읽을 만한 책을 감별하고 권장하는 일이 서평의 주된 역할이라면 그것은 한두 사람의 몫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독자라면 모두의 일이고 모두가 나서서 자기 몫을 거들어야 하는 일이다서평은 자발적인 품앗이에 가깝다. (94)

 

그의 글이 지닌 품성이 어디서 발원하는지 명확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 편의 글을 읽을 때는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 어떤 강인한 마음 같은 것이, 책 전체를 이어 읽으면 느껴진다. 더 화려하고 멋스럽게 쓸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도록 자신을 붙잡는 마음. 더 세고 따가운 분노의 표현을 휘두를 수 있음에도 춤추는 손을 꼭 붙잡고 가라앉히는 힘. 있는 대로 수사를 갖다 붙이고, 10만큼 건드리면 12만큼 분노하는 syo는 하려해도 도저히 되지가 않는 절제와 자제......

 

그리고 그런 굳센 지지점을 건설해 두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스스로 자기 안에 세운 기준으로부터 뻗어 나온다는 점이 찬탄을 던져 넣을 바른 자리이다. 좋은 글의 기준이 내 안에 있다는 것, 타인의 평가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글을 쌓아올린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쓰듯이 그렇게 말한다는 것. 내가 쓰는 글이 자꾸 내가 되는 것.

 

 

 

5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읽기를 위해 쓰는 것은 배우고 싶지 않다. 나는 삶을 직조하는 쓰기가 부럽다.

 

읽기와 쓰기는 상호보완적인 동시에 독립적인 역할을 가진다. 읽기로 삶의 내용을 기르고 쓰기로 삶의 형태를 세워 올리는 것이 독서의 양 날개라면, 이 책을 비롯한 이현우의 모든 책이 그 날개를 펼쳐 흔드는 법을 보여준다.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 이 책 속의 수백 권 다른 책들이 다 낡아져 시간의 저쪽으로 치워지는 날이 와도, 이 책은 서가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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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31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땜에 이 책 질렀다는....ㅋ

syo 2018-08-31 14:57   좋아요 1 | URL
아니, 영업당하셨군요 ㅎㅎㅎ

좋은 책입니다.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더 좋은 책이 될 수 있으니, 아마 저보다 카알님께 훨씬 더 좋은 책일 거예요.

목나무 2018-08-31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로쟈님 강의 몇 번 다녔었는데 그렇다면 어쩌면 혹시라도 syo님을 만나지 않았을까요. ㅎㅎㅎ

syo 2018-08-31 19:2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로쟈님 강의 듣는 알라디너들이 적지 않을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18-08-31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이 syo님의 이 글을 꼭 읽으셨으면 좋겠네요. 사생팬이 아닌데도 이렇게 멋진 헌사를 쓰는 이 한 사람의 멋진 팬이라니....
syo님 글 읽다보니까 로쟈님 뵈었던 그 해 여름도 떠오르고요.
의도치 않게 로쟈님의 진짜 사생팬분들(월화수목금, 매일 로쟈님의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에게 둘러싸여 로쟈님 옆옆 자리에 앉아 콜라를 홀짝였던 바로 그 여름이요.
아.... 나는 이걸 말할 데가 여기 밖에 없네요. 여기, syo님 방밖에...... ㅠㅠ

syo 2018-08-31 19:2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로쟈님과 얽힌 사연이 다들 하나씩은 있는 것 같아요.
역시 로쟈님은 알라딘의 기둥뿌리시로군요.

로쟈 2018-08-31 23: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와 그런 인연까지 있으신 줄은 미처 몰랐네요.^^ 즐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데, ˝세상에서 제일 잘 팔리는 서평˝을 쓴다고 하신 건, 흠, 오해의 소지가 있겠습니다. 저는 일개 서평가일 뿐이에요.^^;

syo 2018-09-01 00:34   좋아요 3 | URL
좋은 글 써주셔서 독자로서 제가 감사할 일이지요. 즐독할 수 있는 책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람없이 농담하는 스타일이라 과장이 과했던 부분이 많은데, 모쪼록 불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정이나 삭제의 필요성을 느끼시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별 거 아닌 글이라 걍 슥슥 지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개‘ 서평가라는 말씀에는 저도 동의할 수가 없고, 계속 그렇게 주장하신다면 아마도 수많은 성토의 댓글이 달릴 걸로 예상합니다. ^-^

마태우스 2018-11-04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syo님 마태우스라고 합니다. 제가 이 책의 리뷰를 지금사 읽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서평이 바로 이런 서평이에요.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들어가서 재미를 더하는 그런 서평이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존경을 바칩니다.

syo 2018-11-04 20:30   좋아요 1 | URL
생각도 못한 방문과, 받아들 도리가 없는 거대한 칭찬 말씀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가 대체 뭘 썼다고, 알라딘의 양대거성 동사서독 와룡봉추 로쟈님과 마태우스님의 댓글을 다 받고 말았네요. 영광입니다, 마태우스님.

2020-02-17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8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읽는 이들의 적은 합의 속에 기척을 감추고 있다

 

1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하다는 표현을 앞에 놓고 마음속에 들어앉은 부도덕함을 발견했다. 깊은 생각의 관문을 에두르게 하는 강렬한 유혹.

 

실제로 가시방석에 앉은 이가 토로할 것이 불편함일까, 고통일까. 소리를 지를지도 모른다. 나는 실제로 가시방석에 앉은 적이 없다. 그렇다면 통증이 삭제된 저 문장은, 결국 실존하지 않는 불편함에 대한 가상적 표현이고, 읽는 이에게도 자동적으로 어떤 안전하고 규격화된 불편함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높은 확률로 그 불편함 역시 추상적인 예감이나 추측일 테고, 결국 그렇다면 저 말은 그저 불편하다는 말을 두 번 쓴 것과 다르지 않다.

 

쓴 사람도 읽는 사람도 헤아려 보지 않는다. 과연 그 불편함이 어떻게 생겼으며 얼마만한 것인가를. 익숙하기 때문에, 가시방석에 한 번도 앉아 본 적이 없는 우리에게 가시방석에 앉은 것이 어떤 감정인지 너무도 익숙하기 때문에, 우리의 눈길은 생각하지 않고 저 말을 스칠 것이다. 기만, 기망, 사고의 저지, 게으름, 공인된 개구멍.

 

클리셰가 생각을 망친다.


 

 

2


정이현의 우리가 녹는 온도, 김경욱의 거울 보는 남자, 가토 슈이치의 가토 슈이치의 독서만능, 인권연대 기획의 인간은 왜 폭력을 행사하는가?, 김연수의 언젠가, 아마도, 리링의 논어, 세 번 찢다, 강원국의 강원국의 글쓰기, 최기홍의 아파도 아프다 하지 못하면을 읽었다. 500쪽이 넘는 책 한 권을 읽는데 필요 이상으로 많은 날을 써야 하는 것이 8x80쪽 체제의 치명적인 단점이겠는데, 장편소설을 그렇게 나눠 읽을 생각을 해 봤더니 앞이 캄캄해진다. 그렇담 6x110쪽 정도로 조절을 해보면 어떨까.

 



PIN 시리즈를 세 권 째 읽고 있는데, 평균 평점 4.8쯤 되겠다. 출간 예정 목록에 이름을 올린 작가들을 보고 있자니, 저 평점이 크게 떨어질 일은 없을 것도 같다. 몇 년 만인지 모르겠는데, syo가 섬기고 섬겼던 첫 번째 소설가가 김연수가 아니라 김경욱이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거울 보는 남자가 기억하게 했다. 정이현의 깔끔하고 시원한 단발머리 문장도, 내가 좋아했던 그때 그대로였다.



syo처럼 마음대로 읽어 제끼는 사람에게 가토 슈이치의 독서만능은 복음서에 가깝다. syo처럼 마음대로 살아 제끼는 인간이라면 인간은 왜 폭력을 행사하는가?와 같은 책을 통해 윤리관을 지속적으로 담금질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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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8-31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경욱을 좋아합니다.
김연수 보다는 김중혁을 좋아하구요.
김연수는 아직도 잘 모르겠더라구요.
한국소설 웬만해서 읽을 기회가 없어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얉은 책 보단 도톰한 책을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출판사로선 흐름을 따라갈수밖엔 없는 거겠죠.
그런 점에서 김경욱 선택을 망설이게 되는군요.
또 언젠가 소설집에 발견될지도 모르는데...

8X80이든 6X110이든 하루에 그렇게 읽는다는 건
저로선 넘사벽입니다.ㅠ

syo 2018-08-31 12:04   좋아요 1 | URL
김경욱에서 우리가 만났으나 김연수 김중혁에서 우리가 다시 갈라졌네요. 스텔라님의 말씀에서 김연수와 김중혁의 자리를 바꾸면 그게 딱 제 마음입니다 ㅎㅎ

저도 저렇게 쉽게 몇 곱하기 몇 이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 엉엉 울면서 겨우겨우 읽어요. ㅎ
 


포기하는 저녁

 

1


누구도 시켜준다 하지 않았는데 저 혼자, 할까, 해 볼까, 해도 되겠는데, 곧잘 하겠는데, 아 이런 안 하면 안 되겠는데, 하며 소리 없이 설레발 치다가 포기도 조용히 저 혼자 하는 인간이 있다. 저예요.

 

그가 거쳐온 화려한 포기의 역사의 몇 장면을 돌아보자.

 

꽤 어릴 적부터 그는 수전증을 앓고 있는데 이유는 알 수가 없었으나 어쨌든 대부분의 정교한 작업을 빈틈없이 망했다. , 인류는 훌륭한 의사 한 명을 잃었군. 정말 아쉽다. 국립대 의대 병원장을 포기하며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끼쳐야만 했던 그 거대한 손실에 미안해하던 syo(16)의 수학 성적은 4등급이었다고 한다.

 

정말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기다릴 만큼 기다려 주었으나 끝까지 자라지 않는 키를, 이제는 인정할 밖에 다른 방법이 없자 syo(19)는 결국 NBA 진출을 호쾌하게 포기하였는데, 그 당시 겨우 한 손으로 드리블하며 서너 발짝 정도 뗄 수 있는 실력에 막 도달한 참이었다는데.

 

시 쓰겠노라 깝치고 다녔던 대학 초년의 syo(21~22), 웬만한 인터넷 동호회만 가 봐도 제 것보다 잘 쓴 시가 돌하르방 모공보다 많이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아깝지만 노벨 문학상을 후학들에게 양보하기로 한다. 동네 노래방에서 선곡하는 중에 옆방에서 넘어오는 노랫소리를 듣다가 집에 돌아와 슈퍼스타K 참가 지원서를 찢었다. 왕십리역이 어느 방향인지 영어로 물어오는 외국인에게 대답을 해줬는데,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땡큐를 연발하던 그가 뚝섬역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면서 삼성전자 해외 지사 임원 발령을 거절하기도 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삼성전자는 syo란 놈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조차 모르지만......

 

언제나 처음이 어렵지, 한 번 하고 나면 쉽다. 포기도 그렇다. 포기로 태어나 포기하며 살아온 syo. 포기하지 않은 것이라고는 포기하는 것밖에 없는 syo. 본관이 어디세요? 본관이요? 어디 손 씨시냐구요. , , 저는 기브업 손 씨입니다.

 

 


2


8월이 이제 이틀 남은 상황에서 공식적으로 선언합니다. 100100복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100이라는 숫자는 한 달에 감당하기는 너무 거대한 숫자였다. 아깝다. 거의 다 왔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12080복 프로젝트를 할 걸. 한 달에 100개를 먹기에, 올해 복숭아 너무 실했어......

 

포기는 포기고, 김민철의 하루의 취향, 문상환의 닌하오 공자, 짜이찌엔 논어, 이준석과 손아람의 그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김혼비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이현우의 책에 빠져 죽지 않기, 이진오의 물리 오디세이, 인권연대 기획의 인간은 왜 폭력을 행사하는가?, 백수린 등의2018 8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오늘도 어제처럼, 저 중에 몇몇 아이는 끝마쳤고, 몇몇 아이는 아직 읽는 중이다.



 

이 네 권은 syo로 하여금, 또 아무도 시켜줄 생각도 않은 무엇인가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김민철과 김혼비는 매서운 기세로 syo가 어떤 형태로든 에세이스트가 되는 것을 포기하게 했고, 이현우의 책은 어쩌면 syo도 서평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소한 희망의 목을 쳤다. 그리고 마지막 책은 다정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더니, 앞으로 어디 가서 아는 척 깨친 척 깝죽대지 말고 네 한 몸이나 잘 건사하며 조용히 살라고 귓속말을 하고 갔다......

 




 

3


9월에는 적게 읽고 영어 공부라는 놈을 해볼까 보다. 삼성전자는 여전히 syo를 모르고(, 오라 해도 안 간다, 요놈의 자본가들아아아아아아...........) 이제는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도 당당하게 한국말로 가르쳐 줄 생각인데, 영어가 왜 갑자기 땡길까? 아아, 그것은 아마도, 포기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신난다. 포기킹 syo9월엔 또 뭘 포기하게 될까?


 

검색창에 '포기'라고 때렸다가 눈에 띈 애들.

읽어 보진 않았으나, 읽어보지 않아도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것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을 표지만으로도 정확하게 가르쳐 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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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8-29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달동안 복숭아 100개면 끼니마다 복숭아를 반드시 먹어야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네요^^:)

syo 2018-08-29 21:40   좋아요 2 | URL
우습게 봤거든요.... 하루 서너 개는 껌이지 이랬는데..... 망할 줄은 정말 몰랐어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8-08-29 2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민철과 김혼비가 그런 나쁜 일을 했단 말이예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에세이스트 꿈나무, 아니 에세이스트 청년 syo님한테요?

syo 2018-08-29 22:26   좋아요 0 | URL
김민철 김혼비 나쁜 여자들......ㅠ

독서괭 2018-08-30 22:50   좋아요 1 | URL
정말 나쁜일 했네요!! 굴하지 마세욧 syo님!

카알벨루치 2018-08-29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 에세이스트 하면 제가 살께요 ㅋㅋㅋ

syo 2018-08-29 22:48   좋아요 0 | URL
전 한 번 포기한 놈은 뒤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ㅎㅎㅎㅎㅎ

다락방 2018-08-29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복숭아 두 개를 끝냈습니다. 22:32 입니다.. 잠이 잘 올 것 같습니다. 복숭아 만세!!

syo 2018-08-29 22:49   좋아요 0 | URL
만세!! 복숭아 제국 만세!!

북다이제스터 2018-08-29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 영어 공부를 위해 항상 배반하는 성문류 보다 최재봉류 책 조심스레 약간 자신있게 추천해 봅니다. ㅎㅎ

syo 2018-08-29 22:50   좋아요 1 | URL
그러고보니 예전에 북다님께서 무슨 영어책 리뷰를 하셨지요. 내용도 제목도 기억이 안나지만, 북다님은 영어 책 리뷰까지 팔이 뻗으시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건 기억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8-29 22:55   좋아요 1 | URL
네 전 영어에 남긴 한이많아서요. ㅎㅎ

2018-08-29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30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리즘메이커 2018-08-30 0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과사전의 왕은 나무위키라고 생각합니다...syo님의 글은 날티가 나서 정말 재미가 있거든요ㅎㅎ

syo 2018-08-30 09:47   좋아요 0 | URL
응?? 이거 칭찬 아니죠 지금?? ㅋㅋㅋㅋㅋㅋ

프리즘메이커 2018-08-30 13:1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제 인생 최고의 가치는 재미입니다. 오해마셔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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