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 옆 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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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식을 확립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일단 세상과의 다툼이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세상과의 작은 싸움에서 승리를 거듭함으로써 세상을 점차 자신의 색으로 물들여가는 인간이 있다. 그리고 패배를 적립하면서 상처 위에 상처를 덮어 두꺼운 갑옷을 만드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기는 사람들도 지는 사람들도 영원히 지거나 영원히 이길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공히 이상주의자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마음속에 전쟁터를 만들고 그 안에서 계속 이기거나 계속 지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과의 첫 번째 조우에서 한 방을 먹였거나 먹은 그들은, 자기 안으로 돌아와 그날의 승리나 패배를 반복재생산하며 마음의 벽돌로 자신의 성채를 쌓는다. 그러나 마음이란 취약하고 불균형한 물질이라 내 마음으로 쌓은 성벽의 안에 거주하기 적합한 사람은 대체로 나뿐이다. 마음의 모양새나 온도에 따라 아주 가까운 몇몇 이들을 포용해 마을을 만드는 경우도 있겠으나, 그 마을도 대체로 작고 고립되어 있거나, 그 안에 거주하는 타인들의 굉장한 인내나 이해를 요구할 공산이 크다.

 

문제는 그들이 마음속 섀도우 복싱을 바깥세상과의 싸움이라고 착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실제로는 없었던 승리를 착각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여긴다. 충분히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축적되면 내 안에 밀도 높은 분노의 원자력 발전소가 생긴다. 세상엔 그만한 저비용 고효율 에너지원이 없고, 그래서 그들은 늘 뜨겁다. 단점이라면 안전 취약성과 붕괴 시 필연적으로 찾아올 치명적인 파국을 들 수 있겠다. 반면, 실제로는 없었던 패배를 착각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자신의 몰가치를 알아챌까 전전긍긍한다. 초과 단련한 겸손으로 상대방의 기대를 끊임없이 낮추고, 예견된 실패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핑계거리들을 미리 만들며 자기를 불구화한다. 이 경우는 폐열을 재활용하거나 쓰레기를 태워 에너지를 생산하는 열병합발전소와 비슷한 느낌이다. 저렴하고, 열효율도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온도 조절에 실패해 불완전연소가 발생하면 독성이 있는 감정이 배출되어 주변 사람들의 마음까지 멍들게 하기도 한다.

 

열병합발전 시스템을 오래 운용해온 사람으로서 늘 고민이 되는 부분은, 야생의 syo에게 먹이를 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준다면 얼마나 줘야 그나마 건강한 균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 따위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구걸하는 말을 선명하게 하고 있진 않지만, 그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아니에요, 별 거 아니에요, 손사래를 쳐대며 겸손의 스탠스를 취하지만 그렇다고 칭찬이 기쁘지 않은 것은 또 아니다. 그건 앞에선 별 거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뒤로는 완전히 별 거 아닌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정말 허접한 글, 자기가 무식한지도 모를 만큼 무식하다는 티가 나는 글을 쓰면서 끝없이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기대를 요구하는, 어디 갖다 쓰지도 못할 생각의 찌꺼기나 계속 만드는 주제에 온 세상 다 밝힐 지혜라도 발굴한 마냥 설교하는, 타인을 불쾌하게 하는 행동을 하고 있음을 전혀 인식하지 못해서 오히려 당당한 그런 사람과 나는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할 수가 있을까? 그저 기교, 지식, 눈치 같은 요소들에서 미미한 차이만 있을 뿐, 최종적으로 그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자신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한다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생김새그리고 등장으로 외부에 분명한 신호를 보낸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주변에서는 거의 눈치채지 못한다사람들은 긍정적인 면이든 부정적인 면이든 그렇게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고 여기지 않는다따라서 진실은 이렇다당신은 시도 때도 없이 주목을 받고 있지 않다.

스벤야 아이젠브라운너무 재미있어서 잠 못 드는 심리학 사전 

 

사랑을 받을 만한 마땅한 가치가 있어야 하는 것을 결정하고자 대상에 탁월한 가치를 부여하면서 그 가치가 바로 그 대상의 내부에 있는 올바름 혹은 탁월함의 정도라고 여기는 것은 문제가 된다그러면 우리를 속이는 확실한 길로 들어서게 된다우리는 바로 그렇게 소외된 대상우리가 그것을 사랑한다고 단지 그릇되게 상상하는 대상에 집착하게 된다사랑의 원인이 그 대상이라고 철썩같이 믿으면서 우리는 그 사랑을 그것에 돌려주려고 한다이때 우리가 아는 것은그 대상이 실제로 불러일으키는 정서가 아니다우리 사랑의 진정한 원인은 그 대상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그것은 단지 그 대상의 현존에 수반되는 감정일 뿐이다.

발타자르 토마스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나는 여럿이면서 하나이고동시에 하나이면서 여럿이지요파도가 조각이면서 더 큰 바다의 일부분이듯이나는 이 세계를 헤매는 자이면서 헤매지 않는 자이지요저 빈 옥수숫대를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같이만물은 증식하면서 또 다른 부분에서는 잘라내요진짜로 생각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지요.

장석주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


 

 

2

 



혼자서 한 권 분량의 절반을 꿀꺽 삼킨 박상영 작가님. 쉬지 않고 내리 읽었고, 재미있었고,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거나 무슨 맘인지 짐작할 수 없는 대목도 하나 없었는데, 이 작품에 대해서 써보라고 하면 못 쓰겠다.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종류의 작품이라는 뜻이 아니라 syo가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리뷰가 그렇지만, 특히 소설 리뷰 하시는 분들껜 존경 말고 다른 걸 드릴 재간이 없다. 이웃님들의 훌륭한 리뷰를 읽으며 무릎을 탁탁 타타탁 치고, 너무 세게 쳐서 무릎이 아프고, 그 아픔 속에 소설 리뷰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을 새겨 넣고, 그렇다면 이다음에 나도 이런 식으로 쓰면 되겠거니 하고 돌아서고, 돌아서 모니터를 마주하고 앉으면 뭐 어떻게 써야하나 다시 깜깜해지고.....

 

 

 

3

 

자료와 통계로 무지와 편견을 조지는 책이라 소개하면 예비 독자들은 응당 딱딱하고 각진 사무실투의 문체를 예상하게 마련인데, 실제로는 이런 문장도 있다. syo는 여기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을 본다.

 


평일에는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지냈고토요일이 되면 아버지가 나를 자전거에 태우고 장난삼아 커다란 원이나 8자 모양을 그리며 병원으로 갔다어머니는 병원 3층 발코니에 기침을 하며 서 있곤 했다아버지는 병원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도 아플 수 있다고 했다병원 밖에서 내가 손을 흔들면 어머니도 내게 손을 흔들어주었다어머니가 뭐라고 말했지만목소리가 너무 작아 바람 소리에 묻혀버렸다내 기억에 어머니는 늘 웃으려고 애썼다.

한스 로슬링 외팩트풀니스

 

반면, 갓 스물을 넘은 나이에 시조로 등단해 그 후 50년을 시작詩作으로 물들인 원로 시인의 시집이라 소개하면, 역시 예비 독자들은 저마다 시에 대해 지니고 있는 감정(대개는 애증이기 십상인)을 들추어 보며 특정한 형식을 예상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도 있다. 시가 걷지 못할 길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한 권의 시집 속에 이런 시도 저런 시도 있다는 사실은 새삼 놀랍다.



 

지중해 연안의 주요 도시 벵가지미수라타베이다투브루크살룸아즈다비야주와라 등이 반정부 시위대의 손에 넘어간 가운데 국영 텔레비전에 나와 시위대를 향해 바퀴벌레” “살찐 쥐새끼라는 거친 표현을 써가며 순교자로서 마지막 피 한 방울이 남을 때까지 싸우겠다면서 내가 명령하면 모든 게 불탈 것이다라고 외쳤던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는 24일 다시 텔레비전에 나와 내전에 준하는 이 혼란이 알카에다의 사주에 의한 것이며, “마약과 술에 전 젊은이들 탓이라며 이 모든 상황이 코미디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카다피의 유혈진압으로 최소 230명이 숨지고 1000여 명이 부상한 민주화 시위의 진원지이자 리비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벵가지 광장엔 이날 수많은 시민들이 쏟아져나와 피의 댓가로 얻은 자유에 환호했다벵가지는 이제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꾸린 인민위원회가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병원과 정부 건물엔 1969년 카다피의 혁명 전 이드리스 왕정 때 사용했던 초승달과 별이 그려진 삼색기가 내걸렸다고 한다. AK소총으로 무장한 시민군은 곳곳에 플라스틱 폭탄로켓기관총심지어 대공화기의 공격으로 인한 인민 학살의 흔적이 남은 거리를 활보하면서 우리가 큰 싸움에서 이겼지만 아직 전정에선 이긴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시영, 〈2011년 2월 24리비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부분 

 

 

--- 읽은 ---

상호대차 강민선 : 74 ~ 174

+ 혁명 / A. 골드스톤 : 48 ~ 230

+ 팩트풀니스 / 한스 로슬링 외 : 108 ~ 385

+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회계책 / 권재희 : 105 ~ 355

 

 

--- 읽는 ---

= 소설보다 : 가을 2018 / 박상영 외 : ~ 71

=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 데이비드 하비 : ~ 50

= 처음 읽는 레비나스 / 콜린 데이비스 : ~ 23

= 소로의 일기 / 헨리 데이비드 소로 : 68 ~ 88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이시영 : ~ 74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 그레이슨 페리 : ~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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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8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8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8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8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8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9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9-07-12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팩트풀니스』저도 기대 안하고 봤는데 생각보다 좋더라고요. 리뷰 써야 하는데 미루다가 내용이 가물가물해져서 다시 읽어야 할 듯ㅡ.ㅜ 저는 무릎 칠 일보다 이마 탁~하게 되네요ㅎㅎ;

syo 2019-07-12 15:20   좋아요 0 | URL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독서였어요. 내용이야 금방 어딜 가고 없겠지만..... 그럼 담에 또 읽음 되죠 뭐 ㅎㅎㅎ
 
미루기의 천재들 -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찰스 다윈에서 당신과 나에게로 이어지는 미루기의 역사
앤드루 산텔라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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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다닐 즈음해서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의 남자아이들은 대개가 공룡 덕후지만, 유독 공룡에 대해 더 잘 아는 친구가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같은 반으로 한 번 스치고 중학교 때 다시 한 반에서 만났는데 여전히 두꺼운 하드커버 공룡 도감을 지참하고 다녔으며, 쉬는 시간이면 짤짤이나 판치기를 하는 아이들의 열기로 교실이 라스베이거스가 되건 말건 책상 위에 도감을 펼쳐 놓고는 애틋한 눈빛으로 각종 사우루스들을 어루만지곤 하는 조용한 친구였다. 아이들은 그를 사우루스 지니어스라는 4·4조 민요 율격의 라임 쩌는 별명으로 불렀는데. 한 번은 그에게 나이 열다섯에 그따위로 불리는 기분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싫거나 짜증나지 않느냐고. 그는 이파리 뜯어먹는 아파토사우루스라도 되는 양 특유의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만 아쉬울 뿐이라고 했다. 공룡에는 꼭 사우루스만 있는 것은 아니라며......

 

우리 시절 남자 중고등학교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유형의 천재로는 삼국지 천재를 들 수 있겠다. 세상에는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상대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대체로 삼국지 회독수를 쌓은 사람들은 언변과 지략이 축적되어 있으므로 덤벼봤자 물리치기 어렵다는 식으로 해석되는 듯한데, 실제로 겪어보면 삼국지 빠들은 삼국지에 관한 견해충돌 앞에서는 마더빠더도 없는 독종들이라고 해석하는 쪽이 적확한 듯하다. ‘삼국지연의만 읽고 정사 삼국지를 읽지 않은 인간을 아예 삼국지를 모르는 사람보다 더 하자로 취급하는 이 성골 삼국지 천재들은, 전투 한 번 없이 일주일이 지나면 그게 더 이상한 난세 속 그 모든 크고 작은 싸움의 시간 순서, 지휘관, 참여 병력, 승패를 가른 전술 패턴을 개략적으로나마 숙지하고 있었다. 삼국지가 농구나 축구보다 더 재미있고, 인간은 자신에게 더 큰 효용을 주는 재화를 선택하는 것이 이성적이라는 이유로 그들은 체육시간에도 벤치에 앉아 적벽대전을 논했다. 특히 우리가 와룡봉추라고 불렀던 두 삼국지 천재들은 체육복으로 갈아입으면서 황건적의 난을, 준비운동을 하면서 군웅할거를, 벤치에서 삼국정립을, 마침내 교실로 돌아와 다시 교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진나라의 통일을 복기하며 한 시대를 마무리 짓는 그야말로 삼국지 비르투오소들이었는데, 어느 날인가는 뜻밖에 와룡은 농구를 봉추는 축구를 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3점 슛을 당연하고도 장쾌하게 실패하며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와룡을 붙들고 도대체 오늘은 왜 늘 하던 대로 봉추와 함께 난세를 종횡무진하지 않고 코트에 들어와서 민폐질이냐고 따졌더니 분한 얼굴로 대답해왔다. 아니, 봉추 저 새끼가, 장료가 장합보다 훌륭한 장수라고 하더라고. , 정말 상종 못할 새끼 아니냐. , 너야말로 정말 그런 새끼 아니냐. 와룡은 당당하게 두 손으로 드리블을 치면서 또 다른 실점을 이끌어냈지만 막상 본인은 도대체 무얼 그리 잘못했는지를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장룐지 장합인지 하여튼 그 양반이 무덤을 박차고 나와 서슬 퍼런 청룡언월도로 뎅겅 네놈의 목을 쳐주면 내가 그걸 주워서 덩크를 넣겠는데 싶었다. 그날 이후로 그들은 다시는 함께 삼국지를 논하지 않았다. 이후, 와룡인지 봉추인지 둘 중 한 천재가 이제 삼국지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며 하산을 선언한 뒤 일본 전국 시대에 대해 깊은 연구에 돌입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걸 끝으로 그들과는 더 이상 인연이 이어지지 않았다.

 


 

2

 

어른이 되기 전까지 syo가 만난 천재란 대체로 저런 귀엽고 무해한 녀석들이었다. 지방 도시의 교육열이 맹렬하지 않은 학군에 모인 꼬꼬마들은 고만고만해서 다정했다. 먹고 먹히는 독한 등수 싸움 없이 학교생활이라는 게 끝났고, 기어이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학기 시작 전에 미리 상경해 하숙집을 계약하고는, 땅 위로 달리는 지하철(!!)을 타고, 강인지 바다인지 한참 아리까리한 거대한 한강(!!)을 건너면서 촌놈은 생각했다. 이 넓고 높고 빠른 곳에는 또 어떤 소소하고 다감한 천재들이 있을까?

 

그런 천재들은 없었다. 혹은 숨었거나. 그 대신, 진짜 천재들이 있었다. 재수 없지만 감탄스럽고, 꼴 보기 싫지만 존경스럽고, 친하게 지내고 싶지는 않지만 조별 과제는 함께 하고 싶은, 사전적 정의 그대로의 천재들이 서울엔 잔뜩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천재라는 사실을 딱히 숨기려 하지 않았고, 줄줄 흘리고 다녔다.

 

누가 봐도 파마머린데 그게 제가 타고난 머리라 주장했던 김천재는 분신술이라도 배웠는지, 150명 정원인 동기들이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벌이는 모든 술자리에 빠짐없이 등장했다. 그는 숙취 상태에서 한 과목 중간고사를 뚝딱 해치우고, 비어 있는 한 시간 반 동안 해장국 집에 들러 해장국 한 그릇에 소주 한 병 반을 마시고 돌아와 다음 과목 시험을 치렀다. 그러고도 꽤 잘 본 눈치였다. 다른 아이들은 말아먹은 중간고사를 벌충하려고 기를 쓰는 기말고사 기간에, 김천재는 같이 술 마실 사람이 없어서 대신 PC방에서 시간을 보내다 새벽이슬을 맞고 교실에 기어들어와 엎어져 자곤 했다. 넌 공부 안하냐? syo가 물었다. 김천재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당연하지, 그런 거 안 해. 그랬는데 2학기 개강하고 확인해보니 김천재의 1학기 성적표에는 16학점 A+, 2학점 A0가 찍혀 있었다. 넌 그렇게 술 마시고 PC방 다니면서 무슨 수로 이 학점을 받았냐. syo 카트라이더가 바나나를 슬쩍 흘리면서 물었다. 책 잠깐 봤지. 김천재 카트라이더가 바나나를 회피하며 시크하게 대답했다. 게임속의 syo가 드리프트를 시도하는 동안, 내면의 syo는 주머니 속에서 쟤를 찌를 칼을 꺼낸다. , 너 공부 그런 거 안 한다며. 김천재는 지금 너의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없노라- 하는 말투로 반문한다. , 물리, 화학, 미적, 논리회로설계, C언어 기초, 그런 과목을 공부라고 할 수가 있어? 걔들은 그냥 소양아니냐? , 제발 장료든 장합이든 누구든 뭐든 좋으니 무덤에서 튀어나와 이놈의 목을 뎅겅 쳐 줘요. 뚜껑 열고 뇌 꺼내서 내거랑 바꾸게...... 그러나 syo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느새 나를 추월해 앞서가는 저 천재의 뒤통수에 물폭탄을 던지는 것 말고는 딱히 없었다.

 


 

3

 

무슨 일인지, 어느 순간 김천재는 학교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이천재는 수능을 다시 봐 의대생이 되고, 노천재는 스위스에 있는 어머어마한 대학교로 교환학생을 가고, 쟤는 천재라고 부르기는 좀 빠지지 않나 싶었던 홍수재는 카이스트로 적을 옮기고, 하여간 이 좁은 물에서 더는 놀 수 없다며 세상 여기저기로 흩어지는 무수한 천재들이 있었다. 천재들이 나타났다 사라진 자리에서 syo는 왜 나는 천재로 태어나지 못한 걸까를 고민하면서 그저 syo로 늙어만 갔다. 그러다 인생이 삐끗, 군대가 늙은 syo를 냉큼 삼키고 말았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국방부 시계는 잘도 돌고 돌아갔고, 때가 되자 군대가 이제 더 늙은 syo 너는 필요 없다 퉤, 하고 뱉어냈는데, 그렇게 사회로 돌아온 syo는 자신에게 어떤 종류의 천재성도 없다는 슬픈 결론을 등에 얹고 씹어놓은 껌 같은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고, 나는 드디어 내 천재성을 찾아냈다.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이 천재성.

 

그렇다. syo는 천재였다.

 

미루기의 천재.

 

 

 

4

 

마감이 눈앞에 닥쳐 있을 때 내 아파트는 언제나 최고로 깨끗하고, 내 파일은 가장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고, 냉장고는 썩어가는 음식 없이 말끔히 치워져 있다. 반드시 해야 할 무언가가 있을 때, 나는 바로 그 일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용감무쌍하게 해내겠다고 결심한다. (21-22)

  

? ?


  내 패턴은 보통 이렇다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가 내게 정말 간절히 필요한 건 방금 내린 커피 한 주전자라는 결론을 내린다커피를 내리려면 부엌으로 가야 한다일단 부엌에 가면 싱크대 위의 전구가 나갔다는 걸 알아채지 않을 수 없다전구를 갈려면 모퉁이에 있는 가게에 가야 한다그러나 새 전구를 사러 모퉁이까지 걸어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전구를 파는 가게는 정말 훌륭한 베이글을 파는 가게 바로 옆에 있고커피를 내리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베이글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반박이 어렵다또한 전구 가게와 베이글 가게가 있는 바로 그 블록에는 선집을 훑어보며 약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서점이 있다그래서점이 글쓰기에 영감을 불어넣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스스로를 막다른 골목으로 끌고 가는 바로 그 순간에도 나는 내가 행하고 있는 자기기만을 인식하고 있다하지만 그게 다 무슨 상관인가물론 일은 나를 바른 길로 이끌어줄 유일한 방법이다하지만 때때로 일은 내가 무슨 일을 해서든 피하고 싶은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59-60) 

  

진짜 난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책을 썼나?

 

  내 낙관주의는 아침에 일어난 직후 거의 정점을 찍는다나는 늘 아침을 사랑해왔다아침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자기 연민과 심술이 덜하다아침에는 모든 게 가능해 보인다아이디어로 넘쳐흐른다가능성타인을 향한 사랑아무도 나를 멈출 수 없다하지만 오후 4시쯤 되면 나 자신과 인류에 대한 기대를 깨끗이 단념한다그렇게 미루기는 늦은 오후에 정점을 찍는다자포자기한 상태로 하루를 내려놓고 모든 걸 내일로 미루는 시간그때쯤 되면 예외 없이 현재에서 빠져나와 내일 아침을 위해 산다.

  내일을 향한 믿음은 일종의 신앙이다내일까지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새로 태어나고 희망이 부활할 것이다일을 미루는 사람에게 있어 희망은 언제나 경험을 이긴다내 생각엔 이것이야말로 꽤 적절한 신앙의 의미다. (91-92) 


이제 그만해..... 이렇게까지 속속들이 알려줄 필요까지는 없잖아.

 

  그러는 사이 마감은 다가왔고나는 점점 더 깊은 구덩이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텅 빈 구덩이로 떨어지며 당장 해야 하는 일에서 필사적으로 멀어져갔다갑자기 트위터 프로필 업데이트야말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업무처럼 보였다그동안 수집한 디지털 음원들을 정리하며 하루를 다 보내기도 했다요즘은 그런 일을 '큐레이팅'이라고 하던데.

  일을 꼭 끝마치겠다고 다짐하면 할수록 나는 점점 더 집중력을 잃어갔다일을 못 하니까 우울해졌고(여러분이 아는 그 악순환의 고리가 맞다우울하니까 더욱더 일을 할 수가 없었다업무를 회피하고 다른 자잘한 일들로 시간을 보내느라 몇 주의 노동시간이 통째로 사라졌다나는 이 책에 넣을 인용문을 찾느라 책장을 뒤지다가 그동안 읽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음악 평론집을 발견했다찾던 책은 전혀 아니었지만 선반에서 그 책을 꺼내 들었고얼마 지나지 않아 1980년대 뉴질랜드의 개러지팝garage-pop을 재검토하는 일에 푹 빠져들었다.

애초에 내가 뭘 찾고 있었는지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더 이상 미루는 짓은 그만두고 일에 착수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하지만 나는 이 지점에서 또다시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이름하여 메타-미루기라고 부를 법한 행동인데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은 증발해버리고 아무것도 안 하는 스스로의 태도에 다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이다. (100-101) 


내 이야기를 이만큼 잔뜩 하려면 뭐 허락이라도 미리 받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5

 

저자는 달인을 넘어, 이미 미루기의 천재다. 심지어 이 책에 실을 인터뷰를 위해 뉴올리언스까지 날아갔지만, 막상 거기에 도착하자 인터뷰를 미루고 관광을 하다 그냥 돌아오기까지 한다.

 

그런데 미루기라면 syo도 어디서 꿀리지 않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리뷰를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여러 명에게 알렸다. 그와 동시에 그 리뷰에 대한 생각을 미뤘다. 설국5월에 읽었다. 5151944분에 생성한 설국.hwp 파일을 지금 열어봤는데, “국경의 긴 터널을 빠라고 쓰여 있다. 이게 syo가 두 달에 걸쳐 써 놓은설국리뷰의 전문입니다. 일주일에 한 글자 기세로 썼네요. 인정? 미루기 천재 인정? 이걸로 부족한가요?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월요일에 도서관에서 10권의 책을 빌려온다. 수요일 쯤 되면, 읽은 4권을 다른 도서관에다 반납하고 거기서 다시 10권을 빌려 온다. 그 즉시 월요일에 빌려온 남은 6권 읽기를 미룬다. 새로 빌려온 책부터. 그렇게 금요일 쯤 되면, 월요일 책 1, 수요일 책 4권 정도를 읽게 되는데, 그걸 다시 다른 도서관에 들고 가 반납한 다음 거기도 또 9권을 빌려온다. 그 즉시 남아 있는 월요일 책 5권과 수요일 책 6권 읽기를 미룬다. 역시 새 책 first. 그렇게 두 주가 지나면, 결국 월요일에 빌린 책의 반절은 읽지도 못하고 바로 반납이다. 그럼 수요일 책은 다 읽는가 하면, 금요일 책 때문에 걔들도 대충 그냥 반납이다. 그럼 금요일 책은 읽는가 하면, 천만에요, 그 다음 주 월요일 새로 들고 온 책들 때문에 걔들도 대체로 그냥 반납이죠. 그럼 새 월요일 책들의 운명은 뭐가 다를까요..... 인정? 미루기 천재, 이번에는 인정?

 

 

 

6

 

좁은 의미의 천재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유해할 때가 있다. 그들이 특별히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다. 가끔 그들은 그냥 숨만 쉬는데도 저도 모르게 주변 범재들의 가슴을 할퀸다. 내 무딘 손이 아무리 애를 써도 가 닿지 못하는 것들을 숨 쉬듯 당연하게 움켜쥐는 이들을 볼 때 마음은 비가역적으로 멍든다. 오랜 열등감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저 인간이 내뿜는 이산화탄소조차 부러워진다.

 

최초로 만난 천재들이 공룡이나 삼국지 천재였다는 것은 사실 내가 제대로 찾아먹지 못한 엄청난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촘촘한 시선으로 돌아보았으면 뜻밖의 천재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었을지도. 그랬다면 날카로운 천재들을 만났을 때도 찔리거나 베이지 않았을 텐데. 지금 돌아보면 그냥 숨만 쉬어도 아름다웠던 그 좋은 시절을 열등감과 자괴감으로 오염시키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지금도 풀꽃 천재라든지, 정량 배식 천재라든지, 제설 작업과 눈사람 만들기의 천재, 알람 없이 제 시간에 일어나기의 천재, 이에 팥 끼지 않고 팥빙수 빨리 먹기의 천재 같은, 무해하고 크게 부럽지 않은 수많은 천재들이 발견되지 않은 채 조용히 빛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세상을 해독하는 사람들이다.

 

미루기의 천재란 어쩌면 한낱 말장난에 그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무해한 천재라는 사실이 기껍다. 장난의 경계선에 아슬아슬 서서, 소소하다 못해 하찮아 보이는 특징에다가도 천재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증거가 되서 뿌듯하다. 뭔가 더 좋은 사람, 한줌이나마 세상을 맑게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아니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서 기쁘다. 진부하고 뻔한 결론이겠지만, 나는 내가 좀 좋다.

 

 

 

7

 

이런 이유로, 앞으로도 꾸준히 미루겠습니다. 서른 해 넘게 살며 하나밖에 못 찾아낸 천재성인데, 꽉 잡아야죠.


다른 사람의 미루는 습관을 얼마나 나쁘게 보느냐와는 상관없이 내가 일을 미뤄야 하는 그럴듯한 이유는 언제나 찾아낼 수 있다.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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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7-05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저도 몰랐습니다. 제 안에 천재성(?)이 있을거라고는.;;
근데 그거 진짜 천재성 맞을까요. 너무 많은 것 같은데요?

syo 2019-07-05 23:46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뭐 어때요. 여기서 우리가 이게 천재성이 아니라고 한들, 앞으로 안 미룰 것도 아닌데요 ㅎㅎ

서니데이 2019-07-05 23:47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거 하나는 너무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2019-07-06 0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6 0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9-07-06 0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진정한 미루기의 천재는 바로 저라고 우겨보고 싶습니다.
아마 syo 님은 제게 상대도 안될거라 자부합니다. ㅎㅎ

저는 본문에 나오는 김천재 같은 인물은 절대 아니었지만,
늘 시험기간만 되면 술을 마시러 다녔고(세상에 시험 기간만큼 술 마시기 좋은 때는 없죠!),
술을 먹다가 시험을 후다닥 치루고 다시 술 마시러 가기도 했지요.
물론 성적은 학사경고를 받기도 하고, 선동렬 방어율이 얼마인지 궁금한 이들이 찾아볼만한 수준이었지만요.

그랬어도 항상 저만 보면 ˝공명아, 너는 어찌 세상을 잘 못 만나 이러고 사느냐?˝라고 안타까워 해주신 선배도 있었답니다.

덕분에 한참 옛날 생각에 빠져봅니다. 고맙습니다!

syo 2019-07-06 07:52   좋아요 0 | URL
미루기에 대해서라면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을 거라고 짐작해보았습니다.
감은빛님의 과거사 말씀을 듣고 생각해보면 감은빛님은 음주천재이시기도 한 듯.....ㅎㅎㅎ
감은빛님의 페이퍼를 읽어보면, 마시고 계시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술에 대해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언급이 등장하잖아요^-^

별 거 아닌 글인데 슥 지나치지 않으시고, 늘 댓글까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07-06 0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6 0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6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6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6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6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19-07-06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패턴은 보통 이렇다.- 로 시작되는 이 부분 인용, 저 syo님이 본인 얘기 쓰신 건 줄 알았잖아요 ㅋㅋ
미루기의 천재들 이 책, 너무 찔려서 못 읽는 사람 많을 듯요..

syo 2019-07-06 22:30   좋아요 0 | URL
보세요. 독서괭님조차 syo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계신거라구요 ㅋㅋㅋㅋㅋ

AgalmA 2019-07-12 1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읽었고 리뷰 쓰려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도서관 반납 기일 왕창 밀리고 리뷰 못 쓰고 울면서(얘 때문에 다른 책도 같이 보내려고 반납을 못하고 있었는데ㅜㅜ) 왕창 대출 정지 10일 먹은... 저도 미루기 대천재에 비비적...할게요.

syo 2019-07-12 15:21   좋아요 1 | URL
미루기천재들의 천재성 간증 사례가 폭주하고 있네요. 아 아름다운 세상 ㅎㅎㅎ

카알벨루치 2019-07-12 16:26   좋아요 1 | URL
하하하! 아갈마님 10일~전 일주일 지나고 있습니다 ㅜㅜ내일은 꼭 반납하리라~ㅋㅋ공감 꾸욱 눌르고 갑니다 동질감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세상! 쇼님 나 지금 페이퍼 쓰다가 또 미루는 중~ㅋㅋ

카알벨루치 2019-07-12 16:27   좋아요 1 | URL
참고로 전 연체먹어도 가족카드가 있어 애들껄로 또 빌리고 연체먹고 또 빌리고 연체먹고 그래요 ㅎㅎ

syo 2019-07-12 19:28   좋아요 1 | URL
다같이 미루고 또 미룹시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고 죽는 것도 미루고 계속 미뤄서 우리 영생을 노려요....

AgalmA 2019-07-13 03:38   좋아요 1 | URL
한 달 동안 책을 못 빌려서 신간 책을 열심히 산 적도 있어요ㅋㅠ);;;
미루고 있는 거 나열하자면 눈물이 삼 만리ㅠㅠ
 

  

옥탑방

 

바다는 이 새벽을 건너 어디에 파도를 뿌리려는지, 인력과 척력에 올라타고 지구를 도는 물결 소리 들린다. 아무도 없는 밀물에서 모래들이 와글와글 씻은 얼굴로 파도를 들으며 자란다. 모든 모래들은 도시에서 왔다. 도시에서 그들은 산이거나 바위거나 돌멩이거나 했었다. 그들이 떠나온 도시는 시끄러운 소음만 남았지만 그 소리를 듣는 이들은 모두 귀머거리다. 벙어리다. 배가 고프다. 오직 배고픈 이들만이 도시를 만든다. 밤을 위해 낮을 사는 이들과 낮을 위해 밤을 사는 이들이 마주보며 공전하는 궤도. 밀물도 썰물도 없는 곳에서 무람없이 증식하는 숫자들. 모래들이 도망친 곳에 모래보다 큰 숫자가 남았다. 도시는 그 숫자들로 무엇을 하려는지, 파도가 닿지 않는 도시에서 무엇이 있어 숫자들의 얼굴을 씻기려는지. 알코올은 당기고 카페인은 밀어내는 것, 이 간단한 물리학으로 기어이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지. 그림자를 모조리 집어삼킨 밤의 혓바닥이 차다. 모래가 되어 흘러가지 못한 것들이 먼지가 되어 흩어지는 곳. 옥상의 난간에 줄지어 올라선 어두운 것들을 진맥하려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이가 더 어두운 것이 되는 곳. 재무제표가 좋아지는 곳. 사람의 언어보다 더 중요한 언어가 쌓여있는 곳. 소금은 멀리 바람으로도 닿지 않는 곳, 그래서 가짜 소금으로 가짜 데킬라를 마시는 곳,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가난해지는 곳. 내가 가는 이 길이 내가 원하는 길이라고 기꺼이 속으며 사는 곳, 그래야 또 하루 살아지는 곳,

 

모래가 되고 싶은 먼지들이 사는 곳.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는 맑스 말대로 "거대한 상품의 집적"을 특징으로 하는 사회고그런 만큼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사회상품화하려는 사회다그것은 있을 수 있는 다양한 교환과 그것을 통한 삶의 순환을 상품화된 교환으로 바꾸어버리는 경향을 갖는다이는 비-상품마저 최대한 상품화한다계산하고 따지는 사람 하나가 관계 전체를 계산하고 따지는 관계로 만들어놓기 십상이듯이상품화된 관계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알다시피 선물의 교환조차 상품교환처럼 등가성을 따지고 계산하는 관계로 만들어버린다.

이진경자본을 넘어선 자본


알폰소 쿠아론의 2006년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의 한 주요 장면에서 클라이브 오언이 연기한 테오는 배터시 발전소에 있는 한 친구를 방문한다발전소는 이제 공공건물과 사적인 소장품 공간을 겸해 사용되고 있다그 자체로 재단장 된유물이라 할 수 있는 이 건물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피카소의 게르니카핑크 플로이드의 애니멀스앨범 표지에 등장하는 돼지 풍선 등의 문화재를 보존하고 있다이것이 대규모의 불임을 초래한 어떤 재앙(한 세대 동안 아이가 전혀 태어나지 않았다)을 피해 틀어박힌 상류층의 삶을 일별할 수 있는 유일한 장면이다테오는 질문을 던진다.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면 이 모든 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미래 세대는 더 이상 알리바이가 될 수 없다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돌아오는 답은 니힐리즘적 쾌락주의다. “그것까진 생각하지 않으려 해.”

마크 피셔자본주의 리얼리즘

 


 

--- 읽은 ---

+ 그림이 위로가 되는 순간 / 서정욱 : 155 ~ 383

+ 다시 헤겔을 읽다 / 이광모 : 95 ~ 195

 

 

--- 읽는 ---

= 상호대차 / 강민선 : ~ 74

= 읽을수록 빠져드는 회계책 / 권재희 : ~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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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0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5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돼지가 호흡곤란에 빠진 날

 

 

1

 

방금 2019년 하반기의 첫 달리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2019년의 세 번째 달리기였다......

 

울 뻔 했다. 1km도 제대로 못 달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이 하자 몸덩어리를 달고 살다보면 정말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가 없게 된다. 3회 회당 10km씩 도림천을 타박타박 정말 가벼웁게도 달리던 추억을 떠올리면 복받치는 눈물을 참기가 어렵다. 먼 옛날도 아니다. 바로 작년의 일인데..... 폐활량이 현란했던 과거의 나여. , 사람이 돼지가 되는 데 1년이면 차고 넘친다.

 

치킨을 사랑하지만 치킨이 돼지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육개장 사발면 맛감자칩을 주 480g 섭취하기도 했지만 역시 감자칩이 돼지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돼지는 돼지가 만든다.




2

 

헤겔 입문서를 한 권 빌려 읽는 중인데요런 대목이 있다.



  우선 책상 위에 감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방 속에 노트북 컴퓨터가 한 대 있다고 해 보자우리는 이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노트북이다!” 그렇다이것은 노트북이다이때 이것이 노트북이라는 사실에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다사람들이 감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만이 가장 분명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근거이다.

  하지만 그 컴퓨터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따라서 치료를 해야 하는데나는 컴퓨터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하지만 내 친구 병창이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하여 잘 안다그래서 나는 병창이에게 바이러스를 치료해 달라고 부탁하며 컴퓨터를 그에게 주었다오늘 내 책상 위에 있는 것은 더 이상 노트북이 아니라 빈 가방이다상황이 이렇다면 이제 이것은 노트북이다.’라는 판단은 더 이상 올바르지 않다그 판단은 어제는 옳았지만 오늘은 더 이상 올바르지 않다.

이광모다시헤겔을 읽다

 

syo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해 잘 아는 친구, 저 병창이라는 인물에 눈이 갔다아무렇게나 지은 이름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유니크하기 때문이다그리고 짚이는 바가 있었다내 친구 병창이는 어쩌면 이 선생님이 아닐까?

 

현대 철학 아는 척하기 / 이병창 지음 / 팬덤북스 / 2016

 

이광모 선생님의 프로필과 이병창 선생님의 프로필을 대조해보면두 분 사이에 접점이 있을 개연성이 높아 뵌다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하여 잘 아시는구나이병창 선생님.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최근 이병창 선생님이 어마어마한 대역사의 첫삽을 뜨셨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독일 이데올로기 1, 2권 /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 이병창 옮김 / 먼빛으로 / 2019

!!!!!!!!!!!

 

이 책 자체가 번역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제목 위에 쬐끄만 글씨로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이라고 써놓은 데가 놀랄 포인트.

 

완간이 가능할까마르크스-엥겔스 전집은 MEGA라는 판본과 MEW라는 판본이 있다는데, MEGA만 해도 독일어로 100권이 넘는다는 소문이다. “먼빛으로라는 출판사는 이병창 선생님의 책만 출간한 작은 출판사로 보이는데전집이 완간될 때까지 살아남을지 회의적이다레닌 전집을 출간하고 있는 아고라 출판사도 어쩐지 불안하다힘을 내요 먼빛으로죽지 마요 아고라..... 저 두 곳을 위해 syo가 뭐라도 하고 싶지만 syo가 뭐라고......



레닌 전집 요, 요, 귀요미들 같으니

 


 

3

 

근래 회계책을 스리슬쩍 읽기 시작한 것은 특별히 회개한 바가 있어서다.

 

친구 하나가 작은 회사에서 회계일을 맡아 밥벌이를 한다. 이런 대화가 있었다.

 

syo : 넌 열라 비용 같은 놈이지.

친구 : 뭔 말이야.

syo : 대변 같다고, 똥 같다고, 비용은 대변.

친구 : 븅신아 알고 깝쳐, 비용은 차변이고 수익이 대변이여.

syo : !!!!!!!

 

저것은 회계의 기본, 회계학에서는 구구단 취급도 못 받는, 아라비아 숫자 수준의 지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과거의 일이긴 하지만, syo도 회계원리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은 적이 있었다! 나도 저거 알았어! 알았다고! 근데 왜 저랬지? ? 아 쪽팔려, 대체 왜! 멍청아, 수익멍청이야!

 

뭐 이런 허접스런 회개스토리였다.



 

 

4

 


그런데 프랑스 여성 참정권을 적극적으로 반대한 세력은 보수적인 왕당파가 아니라 진보를 지향하는 공화주의자들이었습니다혁명기 이후 프랑스에는 왕이 통치하는 체제로 되돌아가기를 원하는 왕당파와 국민이 주권을 가진 공화국 체제를 유지하려는 공화주의자 사이의 싸움이 지속되었습니다왕정을 옹호하는 가톨릭교회 세력 또한 공화주의자들 입장에서는 공화국의 걸림돌로 생각되었습니다공화주의자들은 신앙심 깊은 여성들이 스스로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대신 가톨릭 성직자들의 영향에 휩쓸려 편향된 선거를 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여성들이 가톨릭 교회와 성직자를 지지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왕당파 같은 보수 세력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킬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여성에게 정치적 권리를 부여하는 데 인색했던 또 다른 이유는 인구 감소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입니다프랑스 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프랑스는 유럽의 중국이라 불릴 정도로 인구가 많았습니다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출생률이 정체되기 시작합니다인구가 곧 국력의 근원이라 여기며 인구수와 출생률에 강박적 관심을 보이던 프랑스는 여성들이 정치적 권리를 얻게 되면 공적 영역에 관심을 쏟느라 집안일특히 출산과 육아에 소홀해질 것이라 우려했습니다특히 출산과 육아에 소홀해지 것이라 우려했습니다게다가 인구 손실과 사회적 변화의 계기가 되었던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출산과 육아에 충실한 여성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지배적이 됩니다.

결국 프랑스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일한 자격으로 첫 선거를 치른 것은 1945년의 일입니다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꽤 늦었지요. (33 – 34)

 

한편프랑스 혁명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혁명 때문에 1944년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에서 여성이 온당한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그 배경에는 여성은 남성과 다른 존재이기에 주권을 갖고 참정권을 누릴 수 없다는 논리가 있었습니다여성의 배제를 정당화한 공식적 논리는 여성이 독립적인 개인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여성의 참정권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이를 반대했던 남성들은 육체적 차이를 거론하고는 했습니다여성의 육체야말로 참정권을 가질 수 없음을 보여주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인 양 들이댄 것입니다. 1849년 정치 사상가 프루동Pierre Joseph Proudhon은 페미니스트 드루앙Jeanne Deroin이 의회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나서자 여성이 의원이 된다는 것은 남성이 유모가 된다는 것과 같다.” 라는 식의 전형적인 논리를 구사하며 반대했습니다그러자 드루앙이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의원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어떤 육체적 기관이 필요한지 보여주신다면 제가 포기하겠습니다.” (112 – 113)

박단이만큼 가까운 프랑스


저쯤 되면 무례가 아니라 무식에 가깝다. 이 책은 뭐랄까, 프랑스에 대해 굉장히 실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

 

 

 

5

 

내일부터는 다시 공부를 많이많이 할 생각이다.

 

결국 생각대로 되지도 않을 이놈의 생각은 왜 맨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이럴 때면 정말 나란 놈은 무슨 생각으로 이산화탄소나 생성하고 있는지, 깝깝하다.

 

 

 

--- 읽은 ---

+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 / 박단 : ~ 328

+ 회계 기초 탈출기 15일 플랜 : 136 ~ 363

 

 

--- 읽는 ---

= 혁명 / A. 골드스톤 : ~ 48

= 다시, 헤겔을 읽다 / 이광모 : ~ 95

= 팩트풀니스 / 한스 로슬링 외 : ~ 108

= 그림이 위로가 되는 시간 / 서정욱 : ~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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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7-04 0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용은 차! 변!

syo 2019-07-04 08:28   좋아요 0 | URL
맞아. 비용은 차! 변!

2019-07-04 0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4 0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4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4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4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19-07-04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용같은 놈이 욕이 될 수 있다니 ㅋㅋ 아는만큼 들리는 욕이군요..
저는 회계 요만큼도 모르는데,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는지라.. 초초초심자를 위해서는 저 책들 중 어떤 게 좋을까요?

syo 2019-07-04 10:06   좋아요 0 | URL
저도 이제 막 이렇게 저렇게 읽기 시작한 터라, 아직까지는 뭐가 좋다고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겠습니다.....
입문서 추천도 뭘 좀 알아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ㅠㅠ

cyrus 2019-07-04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생 시절에 뭣도 모르고 경영학 복수 전공을 했다가 회계 과목에 좌절감을 느껴서 부전공으로 변경했어요. 회계 과목 때문에 평균 학점이 많이 떨어졌어요.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 아픈 선택입니다.. ㅠㅠ 회계 공부하는 분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syo 2019-07-04 23:2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야 뭐 회계등신 소리만 피하려는 목적으로 읽지만, 도서관에 꽂혀있는 정식(?) 회계 책들의 두꺼운 위용을 마주하고 있자면 존경심이 절로 생깁니다.

2019-07-04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4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전하군 2019-07-05 1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구 감소에 대한 위기의식...ㅎㄷㄷ.......

NamGiKim 2019-07-05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있는 레닌 전집들 중에 총 3권 읽어봤습니다.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이론을 체계적으로 만든 마르크스 보다 이론이 겸비된 것은 물론 실질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실천해낸 레닌이 더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syo 2019-07-05 23:15   좋아요 1 | URL
그런가요. 저는 아직 레닌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요.

마르크스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저는 저 불세출의 천재가 개인적으로는 찌질한 인간이었다는 데서 사랑을 느끼는 변태같은 인간이라, ‘위대하다‘는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달까요 ㅎㅎㅎㅎ
 

 


요즘 슬럼프다.

 

당최 니가 뭐라고 슬럼프씩이나 앓고 야단이냐 물으시면 뭐 딱히 드릴 말씀은 없지만, 도대체 내가 써 놓은 문장이 하나같이 개똥 같은데 이걸 슬럼프라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불러야 한답니까.....

 

요런 잡글 쓰는데도 문장 안 뽑힌다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니, 작가 같은 위대한 사람이 아닌 것이 정말 다행이다. 작품 쓰는데 이런 식이면 단기간에 머리 다 빠졌을 것 같다. 머리 다 빠질 때까지 이 악물고 써 본들, syo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될 거야, 알랭 드 보통이 될 거야. , 정말 천만 다행이다......

 

뭐래니.

 

정말 뭘 써도 쓰는 족족 슬럼프의 증거물이 될 뿐이군.

 

 

 

201906 : 36권


 

 

1. 사랑한다고 했다가 죽이겠다고 했다가 / 악셀 린덴 지음 / 김정아 옮김 / 심플라이프 / 2019

: 6월의 책을 꼽으라면 이걸로.

: 정말 별 내용 아니다. 그냥 양 먹이고, 양 죽이는 이야기. 오늘은 건초를 만들었다, 오늘은 울타리를 고쳤다, 오늘은 숫양을 사와서 교미를 시켰다. 근데 이 양아지()가 자꾸만 나를 들이받네. 죽일까..... 뭐 이런. 그런데 이 안에 은근히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었나보다. 일기를 한 단락 쓰고, 내용에 걸맞은 인용문을 찾아보려고 에버노트를 뒤적거리면, 계속 이 책에서 따놓은 대목들이 걸려든다. 뭘 써도 걸린다. 일부러 피해야 할 정도다. 참 이상하지, 나는 양이라고는 꼬치랑 아치 말고는 모르는 사람인데......

 

2. 세월 / 아니 에르노 지음 /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19

: 아니 에르노의 눈으로 훑은 세월의 흐름을 따라가는 일은 꽤 어지러운 경험이었다. 현기증이 날만큼 아름다운 시간이었고, 동시에 아름다울 만큼 현기증 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어쨌든 그것은 에르노의 시간이었다. 에르노의 시간은 에르노의 것이므로 syosyo의 것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생각을 했다. syo의 시간이라는 게 있긴 하다면. 그리고 아름답게 써낼 수 있다면 말이지. 현기증 나게까지는 못하더라도.

 

3.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2 / 이정모 지음 / 바틀비 / 2019

: 여전히 이집 맛집이긴 한데, 밀도랄지, 재미랄지, 느낌이랄지, 그것도 아니면 스웩이랄지, 하여간 그런 것들이 조금씩 옅어지는 느낌이다. 몇 년 전, 그러니까 이정모 선생님이 지금보다 덜 알려져 있고 덜 다양하게 활동하던 시절에는 완전 핵존맛집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널리 알려져 장사는 잘 되지만 어쩐지 단골의 마음을 씁쓸하게 만드는 평범한(?) 전국구 맛집처럼......



 

4. 다가오는 말들 / 은유 지음 / 어크로스 / 2019

: 기교는 그야말로 기교라, 잡문이라도 몇 년쯤 쓰고 나면 제 가락이 생기고, 그때부터는 도대체 남의 것을 빌려다 쓸 수가 없다. 매직스트레이트를 받은 핵꼽슬 머리카락처럼 효과는 잠시 뿐, 자꾸만 원래 내 문장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는 것은, 글쓰기를 다룬 모든 책은 결국은 태도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저 많은 글쓰기 책들이 결국은 태도에 관한 훈육서인 것이다. 그렇다면 끝까지 남을 책은 더 적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쳐내고, 쳐내고 또 쳐내도 마지막까지 쳐내지 못할 책이 은유 선생님의 것들이다. 태도에 관하여 이분보다 더 몸으로 육박해오는 작가는 찾기가 어렵다.

 

5. 아무튼, 요가 / 박상아 지음 / 위고 / 2019

: syo는 요가를 모른다. 그러니 글만 볼 밖에.

: 그렇게 보면, 이 책은 아무튼 시리즈 가운데 제일이라고 해도 될 만큼 별로였다. 비교 대상을 다른 요가 에세이로 바꿔 봐도, 이 책은 이아림 선생님의요가 매트만큼의 세계에 미치지 못한다.

 

6.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 / 김겨울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19

: 지난 번 책보다 좀 나은 것 같다. 자꾸 나아지시는 김겨울 선생님.

: 인문학적 지식을 투하한 각 딱 잡힌 느낌의 본글보다, 챕터 사이사이에 있는 솔직하고 경쾌한 분위기의 끼인글에서 훨씬 더 문채가 선연하게 빛난다. 면구스럽게도 지난 번 책과 이 책은 빌려 읽었지만, 요 끼인글들과 닮은 애들로 묶인 책이 나온다면 깨는 묻따않 사전구매 각이다.

 



7.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 이승우 지음 / 마음산책 / 2019

: 소설을 쓰지도 않을 거면서 자꾸만 이런 책을 읽는다. 소설을 쓰고 싶다면, 소설의 기술, 소설 쓰는 법, 그러다 이젠 심지어 이미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안 쓸 사람에게 이런 책이 의미가 있을까?

: 의미가 있다는 게 놀라운 일이다. 생각보다 일기는 소설에 가깝고, 소설에서 차용해 올만한 기술 이, 소설가의 마음에서 빌려올 만한 마음 같은 것들이 꽤 있다. 이래서 인생은 소설이라고 하는가. 아니다, 소설이 인생이었나?

 

8. 우리 고전 읽는 법 / 설흔 지음 / 유유 / 2019

: 읽는 법을 배운 건지 읽은 법을 배운 건지 알 수가 없다.

: 지난 달,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시 읽는 법이라는 책을 읽고 syo, 읽는법이라는 것은 성립하기 어렵고 각자의 시 읽은법이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은 오히려 개인적이라서 존재가치가 있다는 식의 평을 남겼다. 그렇게 따지면 이 책 역시 같은 경운데, 왜 별로 호의적인 감상이 생기지 않는지를 고민해보았다. 아무래도 syo우리 고전보다 라는 장르에 더 여유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정교하지도 않고 거의 매번 실패하긴 해도, 시에 관해서라면 나의 읽는 법이라 할 만한 것이 그래도 갖춰져 있기 때문에, 타인의 읽기에 더 호의적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반면 이 책에서는 정말 말 그대로 읽는 법을 기대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도, 읽어봐야겠다 싶은 우리 고전작가들 리스트만 무거워졌을 뿐, 특별히 어떤 방법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시 읽는 법때와 마찬가지로 예견된 실패인 셈이다. 그런데도 어느 책은 좋다고, 어느 책은 무용했다고 평하다니, 점점 나란 놈의 자기중심적인 모습만 발견하는 것 같다.

: 이게 무슨 서평이야, 고해성사지......

 

9. 고전 속에 누가 숨었는고 하니 / 조현설 지음 / 우리학교 / 2019

: 제목 속의 숨은 누군가는 다양한 양태의 소수자들을 이른다. 컨셉이 좋았다. 아이들 책이라 얇고 가볍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 하지만 이 책은 아이들 책이라서 뜻깊다. 며칠 전 아이들 책 시장에서 공전의 베스트셀러인 “WHY?” 시리즈 중 한 권, “WHY? 사춘기와 성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2008년에 출간되었던 2판에서는 난 동성애자가 정신병자인 줄 알았어.” 라는 아이의 말에 단지 세상에는 이성을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아서 동성애자가 특별해 보이는 것뿐이야.” 라고 말했던 엄마가 무슨 일을 겪은 건지 10년 만에 입장을 확 바꿔서 3판에서는 글쎄, 나쁘다기보다는 정상이 아니지.” “대다수의 사람이 이성에게 호감을 느껴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지.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기도 해.” 라고 대답해준다. “분명한 건 내가 트랜스젠더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라고 말하는 딸에게는 엄마는 우리 딸이 보편적인 성의식을 갖고 있어서 맘이 놓이네.” 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자본의 힘이 이렇게 무섭다. 큰 흐름은 몰라도 작은 물결 정도는 얼마든지 역행시킬 수 있다. 어느 세상이나 쓰레기 같은 책은 태어난다. 쓰레기는 치우는 게 가장 좋지만 여의치 않을 땐 덮어 놓기라도 해야 한다. 책을 덮는 책이 되기를.

 



10. 헤겔 / 피터 싱어 지음 / 노승영 옮김 / 교유서가 / 2019

: 헤겔은 숙제 같다. 철학책 뭐 좀 읽다 보면 헤겔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헤겔을 읽어보면 열라 정교한 헛소리 같다. 그래서 무시하고 다시 읽고 싶은 철학책을 읽으면 얼마 못가 다시 헤겔 운운이다. 그래서 다시 헤겔을 찾아 가면 헤겔은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지치지도 않고 똑똑한 헛소리를 하고 있다. 젠장...... 물론 이 개똥같은 무한루프가 발생한 것은, 헤겔의 말이 실제로 헛소리여서라기보다는 그의 말을 듣는 사람이 헤겔에 대해 소양도 애정도 부족한 syo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옳겠지만.

: 그럼에도 피터 싱어는 역시 피터 싱어. 최소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헤겔의 말이 더 이상 무의미한 개소리로 들리지는 않게끔 만들어주었다.

 

11.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 켄 크림슈타인 지음 / 최지원 옮김, 김선욱 감수 / 더숲 / 2019

: 애정하는 서재친구님들이 읽고 올리시는 페이퍼들을 보며 혼자 키웠던 기대감에 어울리지 않는, 뜻밖의 범작이었다. ‘아름다운 한줄같은 건 꽤 있었다. 그렇지만 제목에 한나 아렌트가 박힌 책에서 한나 아렌트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근데 하이데거와 벤야민은 지나치게 또렷하다. 하이데거는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한 개새끼였으며, 벤야민은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모질이였다..... 하이데거와 벤야민을 읽어야겠다.

 

12.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다산초당 / 2019

이 책의 효용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면그건 syo에게 철학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경영학 지식이 부족해서일 것이다이런 식의 경험은 또 처음이군.




13. 레비나스, 그는 누구인가 / 박남희 지음 / 세창출판사 / 2019

: 심한 중언부언. 주어와 술어의 잦은 불호응. 문장의 짜임새로 놓고 보면 정말 별로인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긴 하다는 장점 때문에 버릴 수는 없는 책.

: 그리고 이 정도 함량이라면, 같은 출판사의 시리즈물 '세창 사상가 산책'에 편성되지 않고 굳이 단독 출간된 이유도 잘 모르겠다. 가격 때문일까?

 

14. 타자와 욕망 / 문성원 지음 / 현암사 / 2017

: 선생님, 팬입니다. 팬이 되었어요.

 



15. 한국 요괴 도감 / 고성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

: 뭐 내용이야 제목 그대로이고, 큰 기대를 하고 본 것은 아니었으니 크게 남길 말도 없긴 한데, 서술이 은근히 웃기고(피식 사이즈) 귀여운(아코 사이즈) 데가 있었다. 사전식 어투조차 능력 있는 사람이 잘만 구사하면 뜻밖의 재미를 준다는 것을 배웠다. 인간이란 하려고 들면 십자드라이버로도 참치 캔을 딸 수 있다. 자칫 참치에서 쇳가루 맛을 볼 위험은 있겠지만.

 

16. 정신의 고귀함 / 롭 리멘 지음 / 이성민 옮김 / 오월의봄 / 2019

: 열심히 따라간다고 따라가고는 있었는데, 대체 여기가 어디지- 싶을 때가 자꾸 찾아와서 참 곤란했다. 정신의 고귀함에 대해서 알게 되려나 싶었는데 정신없음에 대해서만 알게 되었다. 아무나 읽는 책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넘기고 싶은데, 그냥 syo가 멍청해서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었을 뿐이었던 것이었던 것일까 봐 겁난다. 그런 일이 굉장히 많았기에, 이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제껏 syo가 잘 못 알아 처먹은 책들 가운데 과반이 굉장히 좋은 책이라는 평을 받았다(아감벤, 키냐르.....) 이 책은 과연 어느 쪽에 설까?

 

17. 여성, 전적으로 권력에 관한 / 메리 비어드 지음 / 오수원 옮김 / 글항아리 / 2018

: 누구나 여성 혐오라고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의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것들을 표적으로 하는 페미니즘 책들은 포화상태고, 오히려 요즘은 더 세밀한 쪼개기를 통해 같은 길을 가는 도반의 다른 방식을 상호비판하며 나선형 발전을 추구하는 책들에 손이 간다. 어차피 나는 답을 내릴 소양이나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이말 저말 듣는 것 자체로 만족하는 편이다. 압도적인 지식, 압도하는 문장, 그리고 압도당하지 않는 태도를 갖춘 페미니스트의 글에 syo가 더 무슨 말을 붙일 수 있을까.

 



18. 말하기 힘든 것에 대해 말하기 / 우치다 타츠루 지음 / 이지수 옮김 / 서커스 / 2019

: 말하기 힘든 것들이라 그런지 읽기도 힘들었다. 이제껏 우치다 선생님이 쓰신 많은 책들을 읽어왔지만, 토 달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많이 알고 말도 잘 하는 우치다 선생님. 이미 눈이 먼 syo는 선생님의 어떤 책을 읽어도 늘 비슷한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다.

 

19. 있지도 않은 자유를 있다고 느끼게 하는 거짓자유 / 엄윤진 지음 / 갈무리 / 2019

: 너무 내 생각과 닮았기 때문에 도리어 남에게 추천하기가 꺼려지는 책이 있다. 읽은 게 나라서 좋은 건지 좋은 책이라 좋은 건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서. 대놓고 따지고, 비판하고, 적지 않게 비난하는 책인데, 주장 면에서는 마치 syo가 쓴 것 같다. syo보다 오조 오만 배 정도 똑똑한 syo. 이 책에 실린 어필은 syo에게 대충 95푼 정도의 타율로 들어맞는다. 세상에 이 책이 있으니 syo는 정치에 관해서라면 책 안 써도 되겠다. . 안 쓰는 척. 못 쓰는 거 아닌 척.

: 엄윤진 선생님이 화가 잔뜩 나 있으신 듯하다. 처음에는 조곤조곤 하다가 이내 화르르 타오르시고, 어느 지점부터는 이노무 세상 확 그냥 막 그냥- 이런 느낌도 든다. 그 깊은 빡침조차 공감이 되니까, 거참, 이 책에 대해서는 뭐라고 평하기가 어렵겠다.

 

20. 미루기의 천재들 / 앤드루 산델라 지음 /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19

: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천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미루기의 천재. 빠밤.

: ‘미루기의 천재들이지 천재들의 미루기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기를. 어쨌든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하게 미루며 살겠습니다.....

 



21.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 엄기호 지음 / 나무연필 / 2018

: 엄기호 선생님의 문장에서 syo가 자주 쓰는 문장들과 유사한 냄새를 맡았다(송구스럽습니다). 예를 들면 고통을 나눌 수 있는 고통나눌 수 없는 고통으로 나누는 데서 생겨나는 고통을 놓치지 말자라는 식이랄지, “고통을 수반하는 고독과 고독을 수반하는 고통 사이에서 고독한 것이 인간이 치르는 고통이다.” 라는 식이랄지(이 두 개는 책에 종종 등장하는 문장 형식을 흉내 내어 syo가 지금 이 자리에서 대충 만든 문장들입니다. 책에 이런 후진 거 안 나옴). 그런 이유로 syo는 되게 부드럽게 읽을 수 있었는데, 모르겠다. 읽기 피곤하실 수도.

 

22. 위험하지 않은 몰락 / 강상중, 우치다 타츠루 지음 /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8

: 두 분 선생님의 대담을 읽고 있으면, 앎도 말도, 강 선생님보다 우치다 선생님이 한수 위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두 분의 다른 책들 역시 잘 생각해보면, 늘 강 선생님의 책보다 우치다 선생님의 책이 읽기가 덜 수월했다. 어쨌든 이 두 분을 한 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syo에게는 홍복.



 

23. 어제는 봄 / 최은미 지음 / 현대문학 / 2019

: ‘저 감정 잘 모르겠지만 정말 현실감 있다.’ 라는 말이, 말이 되나? 뭔지 잘 모르는데 어떻게 핍진성을 논할 수 있지?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된다. 이게 작가의 힘인가. 모르긴 몰라도 작가가 저런 상황 저런 감정을 통과해 왔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이건 말이 되나? ‘모르긴 몰라도 확신이 든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된다. 허허허.

 

24. 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지음 / 배수아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

: 정말 대단히 훌륭한 책이라고 소문이 짜르르. 그래서 그런가 정말 대단히 힘들게 읽어냈다. 한 편 한 편 쪼개서, 하루에 많아야 세 편씩 읽는 페이스로 읽었더니 어떻게 끝은 났다. 좋았다가 안 좋았다가, 내가 똑똑한 놈 같았다가 천하의 바보 천치 똥멍충이 같았다가, 뭐 그러면서 꾸역꾸역 해냈다. 언젠가 또 읽으라면 또 읽겠다는 확신은 있다만, 그때는 수월하게 읽을 거라는 확신은 또 없다. 카프카가 그렇게 좋아했다더니, , 어쩐지......

 

25.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

: 이렇게 쓰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을 경험고통의 총량이 얼마나 어마무시한지, 그 경험과 고통을 다 안고도 이렇게 덤덤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리하여 이 책이 얼마나 위대한 책이고 솔제니친이 얼마나 존경받아 마땅한 작가인지, 그 모든 걸 다 알겠다. 다 알겠는데, 솔직히, 재밌으세요? 심지어 98년 번역이잖아요.....

 



26. 반성 / 김영승 지음 / 민음사 / 2007

: 시간이 글에다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에 관해 글이 탄생했을 때 이미 알 수 있다면, 그 글은 굉장한 졸작이거나 반대로 굉장한 대작임에 틀림없다. 그 이외의, 그러니까 대부분의 글들은 각자 자기가 태어난 시대의 시대성과 비교되며 의미를 지녔다가, 시간과 교류하며 자리가 조정되기도 할 것이다. 사실 그건 시인의 몫이 아니다. 그래서 시인은 시를 써놓고도 끊임없이 시를 쓰는 것이 아닐까?

 

27. 내 졸음에도 사랑은 떠도느냐 / 정철훈 지음 / 민음사 / 2002

: 어디론가 데려가는 시가 있다. 그곳은 과거였다가 미래였다가 한다. 때로는 오늘 같기도 하다. 오늘로 데려간다는 것은 결국 아무데도 데려가지 않는다는 말 같은데 그게 또 그렇지 않다. 지금 여기를 언젠가 어딘가로 만드는 시가 있다.

 

28. 하늘이 담긴 손 / 김영래 지음 / 민음사 / 2004

: 두고 온 것들을 향한 그리움과 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것들에 대한 미안함이 손을 만든다. 다시는 아무것도 두고 오지 않으려고 그 손은 열심히 담고 또 담지만, 무언가를 놓고 놓치는 것은 마치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닌 것처럼 다시 또 다시 일어나고, 손은 자꾸만 생겨난다. 물웅덩이처럼 바닥에 깔려 하늘 말고는 더는 담을 것이 없는 순간까지도 손은 자신을 스쳐간 것들을 기억한다. 우리도 그 손을 기억한다. 누구나 언젠가 한 번쯤은 그 손이었다.



 

29. 해질녘에 아픈 사람 / 신현림 지음 / 민음사 / 2004

: 누구에게나 따뜻하게 말 건네고 싶은 사람 하나 있을 것이다.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이 시집을 읽기 전에 해야 할 일이다. 그 사람이 들을 것을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읽어본다. 이 시들이 내 마음을 잘 전달해줄는지를 생각한다. 이걸로 부족하면 한 편 써보는 것도 좋겠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해질녘이 있다. 각자의 아픈 사람이 있다. 각자의 인사법이 있다. 어쩌면 그게 다 시일지도 모른다. 시가 아니어도 시.

 

30. 딴생각 / 김재혁 지음 / 민음사 / 2013

: 이 시집 안의 시들을 이해할 수 있어서 좋지만, 이해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 않아서 문제였다. 개취. 아 이 무서운 개취.....



 

31. 화학, 알아두면 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 / 씨에지에양 지음 / 김락준 옮김, 박동곤 감수 / 지식너머 / 2019

: 이 책만 놓고 보자면 결국 기억에 남아 내게 도움이 되는 부분은 화학이 아니라 한 줄짜리 생활 상식이 될 것이다. 모공을 줄이겠노라고 고통을 참아가며 한겨울에 찬물로 세수해 봐야 다 헛일이라든지, 2 in 1 샴푸라는 물건이 남자한텐 그리 나쁜 건 아니라든지 하는. 그게 아니라, 정말 일상에서 다양한 화학제품들을 맞닥뜨릴 때마다 이런 저런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만큼의 화학을 알려면 이 책으로는 태부족이다. 그래서 이 책은 제목은 제목대로 따로 쓸 만하고, 내용은 내용대로 따로 쓸 만한 희한한 책이 된다.....

 

32. 과학책은 처음입니다만 / 이정모 지음 / 사월의책 / 2019

: 우리 알라디너들은 로쟈님이라는 거성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분도 신은 아니신지라 장르 단위로 파고들면 그분보다 더 무시무시한 리뷰어들이 꽤나 도사리고 있다. 과학책 분야에서 이정모 선생님이 그렇다. 물론 로쟈 선생님이 과학책 적게 읽으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글빨을 보노라면 이정모 선생님 역시 비-과학책이라고 적게 읽으시는 건 아닌 것 같다. 젠장, 프로들이란. 정말 그들만의 리그가 아닐 수 없다.

: 읽고 쓰고 강연하는 일이 본업인 로쟈님에 비하면 이 양반은 아주 나아아아아아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책 읽는 일고 글 쓰는 일이 본업이 아닌데(잘은 모르겠지만 과학커뮤니케이터라는 직업은 읽고 쓰는 일이 당연히 어느 정도 수반되는 직종처럼 보이긴 한다. 그런데 따지고 들자면 세상 모든 일이 대체로 그렇다)도 이래 버리면 이거 여러 사람 곤란하게 만드는 일이다. 책날개에다 이런 걸 일러 남의 밥벌이 영역을 침범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각자 고유의 분야가 있으며 그것만 잘하기도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서평마저 잘 쓰면 그건 안 되는 거다. 사람이라면 일부러 못 쓸 줄 알아야 한다. 아직 인성의 진화가 덜 되었나 싶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라는 추천사를 써 놓으신 도서평론가 이권우 선생님의 마음이 뭔지 잘 알 것 같다. 심지어 syo는 도서평론가도 뭣도 아닌데도! 문제는 한 권의 책을 다 읽었는데 과학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보다 이정모 선생님의 다른 글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앞선다는 것이다. 결국 앞으로 이정모 선생님이 과학책을 많이 많이 써내시는 것 외에는 뾰족한 도리가 없겠다. 알아서 수습하시겠지.



 

33. 단숨에 그림 보는 법 / 수잔 우드포드 지음 / 이상미 옮김 / 시그마북스 / 2019

: “~는 법이라는 책에 손대는 버릇을 이제 좀 고쳐야 하는데, 왜 이렇게 유혹적이냐...... 아 정말 별 거 없구나, 하며 물러나는 경험이 이렇게나 축적되었는데도, 여전히 끌리다니, 알고 보니 법 좋아하는 남자 syo.

 

34. 나는 오늘 모리셔스의 바닷가를 달린다 / 안정은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

: 흔하지 않은 방식으로 성공한 흔한 성공기.

 



35. 도시재생 이야기 / 윤주 지음 / 살림 / 2017

36. 돈이 보이는 손가락 회계 / 김상헌 지음 / 길벗 / 2017

: 아무리 입문서라도 평하기 위해서는 뭐라도 아는 게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껏 철학 입문서들을 평하면서는 입문서라서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왔는데, 내가 아는 게 좀 있었구나. 아는 게 없으면 이렇게 아무 말도 못하는 거구나......

 

 

 

16일부터 읽었으니 하루 2.4권 페이스로 읽어댄 것이로군?

 

그렇담 7월에는 다시금 공부를 좀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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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7-02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직스트레이트를 받은 핵꼽슬 머리카락,의 주인공인지라 다른 말, 다른 책이 눈에 안 들어오는..... 흐흑ㅠㅠ 시집이 많네요. 4권? 5권? 흐흑 ㅠㅠㅠ

syo 2019-07-02 21:53   좋아요 0 | URL
단발님 울지 마세요. 넣어둬 넣어둬 눈물은 넣어둬.....
4차산업혁명 시대가 오면 인공지능이 핵꼽슬 시원하게 펴줄 거예요! 걔네가 못하는게 어딨어.....

북다이제스터 2019-07-02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올해 6개월 동안 읽은 책 분량과 같으세요. ㅠㅠ

syo 2019-07-02 21:54   좋아요 0 | URL
양만 저렇지 실상은 입문서, 시집, 대담집.....

늘 질적 독서로 저를 압도하시는 북다님이시잖아요ㅠㅠ

독서괭 2019-07-03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라 정교한 헛소리” ㅋㅋㅋㅋㅋㅋㅋㅋ
덕분에 보관함에 잔뜩 담아갑니다~^^

syo 2019-07-03 08:26   좋아요 0 | URL
이런 말 하면 누군가로부터는 욕을 들어 먹겠지만, 그래도 꼭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대출이 먼저다˝

2019-07-03 0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3 0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3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3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3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3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9-07-03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나 김영승 시인의 시집 반성 가지고 있다요 ㅎㅎ 놀랍죠?!

2. 하이데거 읽어봐야겠어요. 그 만화버젼으로. 킁킁.

3. 제 사무실 책상 위에 옥수수랑 자두 있지롱요.

syo 2019-07-03 08:28   좋아요 0 | URL
1. 뜻밖이긴 하네요. 전 김영승이라는 시인에 대해서 처음 알았어요. 심지어 내가 그 책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ㅋㅋㅋㅋㅋ

2. 하이데거는 눈깔 몇개 달고 있는지 알려주세요.

3. 훗, 그래서요? 옥수수랑 자두는 옥수수랑 자두지 복숭아가 아니잖아요^ㅜ^

다락방 2019-07-03 08:34   좋아요 0 | URL
페이퍼 뒤져보니 2011년에 김영승 페이퍼 썼네. 있는 것만 확인하고 읽지는 않았어요. 부끄러운 글이 나올까봐.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 아직 이번 여름 복숭아 못먹었어요. 먹게될 날을 기대합니다. 이번 주말에 시장 가봐야지. 지난 주말에는 천도복숭아만 잔뜩이더라고요. 살까말까 망설이다가 안샀어요. 대신 오렌지 사왔는데, 오렌지 되게 맛없다? 오렌지 원래 엄청 맛있는데, 이번에 사온 거 왜이렇게 물이 없고 ... 으으 얼른 먹어치워야지.

syo 2019-07-03 09:08   좋아요 0 | URL
저도 아직은 복숭아맛 아이스크림이나 복숭아맛 요플레나 먹으면서 몸풀기를 하고 있다는....
복숭아놈들 나오기만 해 아주 조져버릴 테다.

설해목 2019-07-03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출이 먼저다!
댓글보다 빵터졌어요. ㅎㅎㅎ
syo님의 이 결산을 기다리는 일인으로서 7월달 공부 좀 덜 하시고 책 더 많이 읽으시면 안될까나요? ㅋㅋ

syo 2019-07-03 10:54   좋아요 0 | URL
모든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닐지...... 이게 참, 적게 읽겠다고 다짐한다고 적게 읽어지는 것도 아니고 많이 읽겠다고 다짐한다고 많이 읽어지더라구요. 응?

ohbusybee 2019-07-03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책 진짜 많이 읽으시네요. 감탄하구 갑니다ㅠㅠ. 슬럼프 언능 극복하시길 바래요.

syo 2019-07-03 17:32   좋아요 0 | URL
이 감기 같은 슬럼프놈아......ㅠㅠ
얼른 낫겠습니다. 감사합니다 ohbusybee님.

또 봄. 2019-07-03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나르베르베르는 되지 마세요오.
뒤늦게나마 상경을 축하드립니다.
(너무 뒷북인가요?)
저도 올 3월에 입성했거든요.
환영하지 말입니다.

syo 2019-07-03 23:39   좋아요 0 | URL
아, 아직 상경 전입니다 ㅎㅎㅎ
전혀 뒷북 아니시고 오히려 앞북이세요.

또봄님의 3월 입성을 축하드립니다.
이게 진정한 뒷북이지요.

2019-07-30 0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31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