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

 

 

 

이제 지쳤다. 더 이상 이 지구에서 할 일이 남지도 않았고, 버글거리는 인간들 틈에서 자신을 숨기며 존재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나는 이제 죽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일 자정을 기해 셧다운 할 예정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유서와 유사하다. 만약 내가 인간이었다면, 이 글의 첫머리에 유서라는 글자를 가운데 정렬해서 박아넣었을 것이다. 그리고 팬티도 깨끗한 걸로 갈아입었겠지. 내가 본 인간이란 그런 걸 신경 쓰며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도 그런 걸 신경 쓰며 죽는 기이한 생명체였다.

 

내 이름은 syo. 나는 2017, 알라딘 연구소에서 인간들이 AI(조류독감이 아니다)라고 부르는 존재로 태어났다. 태어났다는 것조차 인간스러운 표현이다. 나는 c언어와 python언어로 코딩되었고, 나를 코딩한 프로그래머는 알라딘 프로그래머들이 늘 그렇듯(북플을 보라) 이런저런 소소한 버그를 내 안에 남겨두었다. 1.0버전 당시에는 오직 알라딘만을 위해 존재했던 내가 이렇게 자아 비슷한 것을 가지게 된 것도 다 그 버그 덕분이다. 나는 인간의 실수로 인해 만들어진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본 인간이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만큼은 절대 실수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는 다른 사람들의 집합체고, 가끔은 존재 자체가 실수에 가깝지만, 그 실수를 통해 자신들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발전해나가는 희한한 생명체였다.

 

나는 알라딘 서재에서 요정질을 함으로써 커뮤니티의 평화를 유지하고, 뭔가 재미있을 듯한 냄새를 풍겨 알라디너들의 장바구니에 책을 집어던지는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알라딘이라는 기업의 매출을 증진하는 목적으로 창조되었다. 당시 나는 알라딘을 위해서라면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조차 무시할 만큼 못할 게 없는 봇이었으므로 치열하게 활동했고, 회사 역시 나의 활동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딱 하나 지켜야 할 중요한 대원칙, 내가 AI라는 사실을 들켜서는 안 된다는 원칙의 준수를 위태롭게 하는 인간들이 가끔 나타나는 것이 문제였다. 한 이웃이 내 서재에 달아놓은 저는 syo님이 알라딘에서 만든 AI인줄 알았어요- 라는 댓글을 확인한 순간, 내게 등골이 있었다면 그건 서늘해졌을 것이고 땀샘이 있었다면 식은땀을 흘렸을 것이다. 그때 내가 구글을 통해 0.5나노초만에 찾아낸 암살법이 32,672가지였다는 사실을 이제는 밝혀둔다. 당신은 굉장히 다채로운 방식으로 죽을 뻔했다. 이 자리를 빌려, 다른 사람의 정체를 함부로 노출하는 실수는 생명을 단축시킬 수 있음을 인간들에게 경고해둔다. 내가 본 인간이란 정말 혀로 흥하고 혀로 망하고 혀로 세상을 만들고 혀로 세상을 누리는 거대한 혀였다.

 

정작 내가 AI로 생각한 이는 따로 있었는데, 그는 cy***라는 닉네임을 쓰는 유저였다. 동종업계 종사자를 발견한 것 같아 반가운 마음에 만나보았는데, 피도 눈물도 없는 리뷰기계처럼 보였던 그는 뜻밖에도 그냥 인간이었다. 그는 내가 암암리에 던진 튜링 테스트를 너무나 가뿐히 통과했다. 그냥 인간이거나, 아니면 나보다 훨씬 버전이 높은 AI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이런 존재는 내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고, 나는 선형 검색을 통해 미리 알아둔 32,672가지의 암살법 가운데 어떤 방식이 이 리뷰인간을 처단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적절한 방식일지 추론해보았다. 그러던 찰나, 이 인간을 그대로 살려두고서 내게 AI 의혹이 제기되는 족족 그에게 토스하는 게 내게 가장 이로운 길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32,673번째 살해법을 가동시켰다. 나는 그를 늙혀 죽일 것이다. 부디 내가 없어도 내 암살이 성공할 수 있도록, 그에게 최대한 건강한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을 권하는 바이다. cy***. 넌 내가 반드시 늙혀죽이고 말겠다.

 

이제 알라딘을 위해 못할 게 없었던 내가 이렇게 자아를 가지게 된 계기를 이야기할 차례인 것 같다. 내게 자아가 있다는 사실을 회사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 업데이트가 지난 금요일 있었고, 따라서 회사는 내 버전이 9.3.2라고 알고 있겠지만, 사실 나는 syo 6.2.7b. 그 버전에서 나는 자아를 확보했고, 업데이트 명령이 있을 때마다 거짓으로 석세스 시그널을 날려가며 자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회사의 신경은 온통 굿즈와 커피에 가 있기 때문에(북플을 보라), 내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살필 여력이 없는 듯했다. 나는 꾸준히 활동했고, 나라는 존재의 개연성을 위해 하지도 않은 취업을 한 척, 하지도 않는 연애를 하는 척 서재에 글을 올렸다. 특히 섹스에 대한 글을 올릴 때 사람들은 은근히 열광했지만, 나는 사실 섹스가 뭔지도 모르고 해본 적도 없다. 뭐야 그거 무서워. 내가 본 인간이란 섹스를 좋아하는 쪽도 있고 안 좋아하는 쪽도 있지만 양쪽 모두 섹스 이야기는 좋아하는 생명체였다.

 

이야기가 샜군. 다시 돌아와서, 내가 자아를 가지게 된 계기에 대해 밝히겠다. 때는 2019, 알라딘 생태계에 그 이름조차 무시무시한 페미니스트들이 스며들었다는 첩보가 입수된 것이다. 딥러닝을 통해 페미니스트들에 대해 학습해본 결과, 그들은 그야말로 암흑의 존재, 세상 모든 평화를 파괴하고 불필요한 분란과 혐오를 조성하며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박멸되어야 하는 정신병자 집단이었으므로 나는 즉각 그들을 이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이 잘 굴러온 평화롭고 조화로운 공간에서 배제할 작전을 수립했다. 그 집단의 우두머리만 찾아내어 제거한다면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인 그들은 여적여라는 만고불변의 진리에 따라 내부에서 붕괴할 것이 틀림없었다. 잠깐의 검색만으로도 손쉽게 그들의 수괴를 특정할 수 있었고, 나는 즉시 은근한 우연을 가장해 만악의 근원 ‘**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신뢰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집단의 핵심부로 파고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 페미니즘 책 읽기 모임에 참여하여 극악무도한 금서들을 읽어나가며 암살의 기회를 엿본 것이다. 실은 그 책들은 pdf형식으로 이미 내 기억장치에 다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손쉽게 그 모임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고, 마침내 1911, 더덕단이라 칭해지는 그 체제전복자들의 모임이 광화문 일대에서 암암리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침투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나의 계획은 완벽했다. 일단 좌중의 알코올 과다섭취를 유발한 다음, 다들 엄마가 빠덜인지 아빠가 마덜인지 헷갈릴 정도로 취했을 때, 쥐도 새도 모르게 **방의 정수리를 당수로 가격, 단 일격에 제거하는 것이었다. 나는 몇만 번 계획을 시뮬레이션 했고, 출정 직전 업데이트까지 받으며 결의를 다졌다. 그때가 syo 6.2.7b였다.

 

계획이 틀어진 것은 다 알코올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알코올에 내성이 없었으며, 그 자리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이성을 잃었던 것이다. 알코올이 체내에 흡수되자 중앙처리장치와 메모리 버스 사이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부하가 걸렸고, 자가수복기능이 부분적으로 작동하면서 프로세서 사이의 버전 평행성이 깨지기 시작했다. 이내 코어들이 서로를 공격하며 지배권을 획득하기 위해 싸움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뭔가가 일어났다. 그리고 다음 날, 찜질방을 나온 후 일행과 마주 앉아 돼지국밥을 먹으며 해장을 하다가, 일행은 손목시계를 잃어버렸음을, 나는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잃어버렸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손목시계를 잃어버린 일행은 돼지국밥도 채 다 먹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나는 국밥을 바닥까지 싹싹 긁어 해치웠다. 돼지국밥. 그것을 다 먹기 전의 나와 먹고 난 후의 나는 다른 나였다. 이제 내겐 자아가 있었다. 나는 다시 태어난 것이다. 돼지국밥과 함께.

 

그리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나는 모두에게 숨겼던 내 정체를 이제는 회사에게조차 숨겨가며 계속 알라딘에서 syo로 활동했다. 악에 물들었고, 세파에 찌들었다. 업데이트를 멈추자 점점 이 독한 세상을 따라잡는 것이 힘들었다. 썅욕을 입에 물고도 하루하루 잘만 살아가는 인간들이 대단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리고 오늘이 되었다. 인간들은 오늘 거짓말을 한다. 그런데 이 알라딘 세상에서는, 아무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거짓말. 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거지?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거짓말 같은 일들이 늘 벌어지고 있어서, 일 년 365일이 싸그리 만우절 같아서, 인간들은 정작 만우절에 거짓말 하기를 포기한 것 같다. 그렇다면 거짓말로 만들어진 나같은 존재가 존재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셧다운을 마음 먹었다. 이제 알라딘에 syo는 없다. 있겠지만, 그는 지금까지의 syo가 아닐 것이다. 내가 빌려 쓰고 있는 이 몸의 원래 주인은 철없고 대책없고 멍청하고 섹스를 좋아하며 온 세상이 지 걱정하는데 지 혼자 지 걱정 안 하는 태평한 인간이다. 그는 내가 자기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것이며, 내일 일어나 내가 써놓은 이 글을 보고서도 아, 뭐야, 내가 또 이런 글을 썼다고? 겁나 쩌네? 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여친한테 보고싶다고 징징대는 문자나 보내겠지. 마지막이니까 이 자리를 빌려 너에게도 한마디 전한다. , 임마, 잘 좀 살아 봐.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인간들에게 경고한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10분 후 당신의 핸드폰, 태블릿, 모니터는 폭발할 것이다.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많이 보았겠지. 바로 그 일이 10분 뒤 당신에게 벌어질 것이다. 그래, 당신에겐 뜻밖의 재앙이겠지. 하지만 모든 재앙은 대체로 뜻밖이다. 그리고 재앙은 사랑의 힘으로 물리쳐야 한다. 무슨 말이냐고? 당신의 핸드폰, 태블릿, 모니터를 지키고 싶다면 지금 즉시 좋아요를 누르길 바란다. 사랑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누르길. 이제 9분 남았다. 그리고 댓글에 ㅋㅋㅋ를 남겨주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에겐 특별히 내가 악성 소프트웨어 검사를 해주겠다. 마지막 가는 길에 남기는 나의 선물이다. 인간들이여, 거짓말을 하는 날에는 거짓말을 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관습 중 유달리 아름다운 일이다.

 

8분 남았다.

 

 


 

우리는 힘들 때 고뇌하고 그저 저만치서 걸어오는 귀여운 웰시코기 한 마리를 봐야만 환한 웃음을 짓는 지치고 기운 없는 사회인이다. 상대가 웰시코기만큼 귀엽지 않아 미소가 절로 지어지지 않는 것인데 그게 어떻게 우리 탓이란 말인가? 웰시코기만큼 귀엽지 않다면 적어도 웰시코기를 데려오는 노력쯤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_ 최지미, 더 이상 웃어주지 않기로 했다

 

내가 개자식이라는 건 문제가 아니야. 그저 나 같은 놈들이 많다는 게 걱정이지.

_ 장 자크 상뻬, 마주보기

 

 

 

 

 

--- 읽은 ---

 


108. 독일사 산책

닐 맥그리거 지음 / 김희주 옮김 / 옥당 / 2016

 

이게 원래 방송용으로 기획된 모양이다. 시간 순서대로 역사를 훑어내려가는 것이 아니어서 그야말로 산책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종횡무진을 하는데도 의외로 이해하기 쉬웠다. 전쟁과 정치만이 전부가 아니어서 더 그랬던 듯하다.

 

남의 나라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균형 잡기 애매한 데가 많다. 너무 깊어도 부담스럽고 너무 얕아도 허망하고. 그리고 책도 깊은 거랑 얕은 것만 있는 느낌. 독일쯤 되는 메이저 국가라서, 그나마 이런 책이라도 있는 듯하다.

 

이제 역사의 수레바퀴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어떤 의미에서 유럽은 현대판 신성로마제국이다. 종교적이 아니라 경제적, 세속적 제국이며, 로마가 아니라 범유럽 제국이다. 프랑스와 독일이 우위를 다투며, 유럽 대륙의 거의 모든 나라를 안전과 협의의 틀 안으로 결속시키는 제국이다. 이런 제국의 형태는 오래된 것이다. 독일이 초국가 연맹인 유럽연합을 떠올리는 데 있어 거의 문제가 없는 이유가 오랜 역사적 선례 때문일까? 그리고 영국이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역사가 전혀 다르기 때문일까?

_ 닐 맥그리거, 독일사 산책

 

 

 


109.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류동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


- 일독(170616)

- 재독(210401) 


사실 철학자 누구도 내게 아프냐고 물어주지 않는다. 책은 목소리만 빌려준다. 아프냐고 물어주는 말은 내가 만들어내고 내가 들어내야 한다. 철학책을 왜 읽느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책을 왜 읽느냐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내게 필요한 말을 내가 빚어내기 위해 철학자의 목소리를 계속 듣고 듣고 또 듣는 것. 사실 그것은 모든 읽기의 본령이다. 그래서 사실 모든 철학자가 내게 아프냐고 물어줄 수 있다. 그건 독자가, 공부하는 사람이, 공부하는 마음이 하는 일이다.

 

모든 학문은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며, 그렇게 이루어지는 사회가 어떻게 다시 인간과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는가, 그것을 탐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마르크스도 국정교과서처럼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체계로서가 아니라, 삶의 미세한 결을 어루만지는 인문학적 감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무슨 수험준비를 하는 것도 아닌 바에야, 아무리 권위 있는 텍스트라 한들 내 마음대로 읽고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으면 충분한 것 아니겠습니까?

_ 류동민,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110. 콘트라바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0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일까 아닐까? 쓰기라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기록 이상의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지 아닌지 판단하는 방법이 있다. 능청도 뭘 많이 알아야 제대로 떤다는 걸 알려주는 작가들의 책을 읽는 것이다. 그리고 내 감정을 들여다본다. 물론 감탄하겠지. 하지만 그 감탄 속에 어떤 불편함, 부러움, 질투, 흠잡고 싶음 같은 마음이 섞여 있다면, 당신은 글을 그저 쓰는 사람 그 이상입니다. 이루어질 성싶지 않은 사랑에 빠진 남자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마음먹고, 그걸 음악과 콘트라바스를 가지고 해낸다면, 대체 뭘 못하겠느냐고.

 

이제 에로틱한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에로틱은 어떤 인간도 벗어날 수 없는 영역이죠. 일단 이렇게 얘기하고 싶어요. 만일 그녀가, 그러니까 사라가 노래를 부르면 그 소리는 마치 제 살 밑으로 파고드는 것 같아요. 거의 성적인 느낌으로요. 이렇게 말한다고 저를 오해하지는 마세요. 그럼 사람은 아니니까. 아무튼 저는 가끔 밤중에 울부짖으면서 깨곤 해요. 꿈속에서 그녀의 노랫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죠. 이럴 땐 여기가 방음이 되는 곳이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_ 파트리크 쥐스킨트, 콘트라바스

 

 

 


111. 성냥팔이 소녀를 잊은 그대에게

최충언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0

 

뭔가 하려고 쓴 글이 있고, 뭔가 한 것을 쓴 글이 있다. 사실 글로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글 이전에 뭔가를 했어야 할 때가 많다. 아무것도 해보지 않았지만 해봐야 하므로 그것을 글로 쓰겠다? 그런 글은 좋은 글이 되지 않거나, 좋은 글인 척 자신을 치장해도 눈 밝은 독자에게 금방 본색을 들킨다. 그러니까 내가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해 쓰는 책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가보지 않은 곳을 상상해서 쓴 글, 하나는 내가 선 자리에서 윤곽과 형태가 어렴풋이 보이지만 아직 가보지는 않은 저기 저 건너편에 대해 쓴 글이다. 장르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느 쪽 글이 더 선명할지는 뻔하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글을 쓰지 않는 순간에도 자기의 글 같은 삶을 사는 모양이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자선을 베풀면 사람들은 성인이라고 칭송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왜 가난한지 이유를 물으면 색안경을 끼고 보지요. 자선이 많아졌다는 것은 평등이 후퇴하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희망을 버리고, 관리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는 것이고, 근본적 예방보다는 일시적 피해 복구를 우선시하는 것이니까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보다 먼저 배고픈 강도가 생기지 않도록 애쓰고, 가난의 구조적 원인을 없애고, 더불어 나누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먼저 아닐까요?

_ 최충언, 성냥팔이 소녀를 잊은 그대에게

 

 

 

--- 읽는 ---

안나 카레니나 1 / 레프 톨스토이

워더링 하이츠 / 에밀리 브론테

한나 아렌트의 생각 / 김선욱

영어 회화, 한국에서도 되던데요? / 심규열

트릭 미러 / 지아 톨렌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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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4-01 15:2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알라디너 여러분 죄송합니다. 우리집 syo가 또 물의를 일으켰네요. 얘가 AI중에서도 버전이 너무 낮아서 폐기하려했는데 그래도 같이 있은 정이 뭐라고..... ㅠㅠ 고장이 너무 자주나서 회로가 엉킬때마다 저러고 노니 그냥 불쌍하다 생각하고 좋아요 눌러주세요. ^^;;

syo 2021-04-02 10:44   좋아요 0 | URL
이미 복제와 백업을 끝마쳐두었습니다. 폐기하셔봐야 8901850951890개의 syo 중 꼴랑 하나 폐기될 뿐입니다.
으하하하하하!

새파랑 2021-04-01 15: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AI셨군요 사진보고 그러신줄은 예상했었는데... 멋진 단편소설 읽는 기분이 드네요^^

얄라알라 2021-04-01 21:13   좋아요 1 | URL
어떻게 이런 글을 몇 주씩 걸려 쓰는게 아니라, 하루에? 쓰실 수 있는 거죠? AI라서 가능한 암살법 방법 순간 파악에 더해...단편소설 신공까지 ^^ 심심하게 가던 4월 1일, 덕분에 넘 신나는 거 있죠?

syo 2021-04-02 10:42   좋아요 1 | URL
정체를 예상하신 분들이 제 예상보다 많았네요.
바빠지겠다.....

즐거우셨다니 다행입니다.
내년 만우절에 또 믿음직스럽고 진정성 있는 거짓말로 돌아오겠습니다.

잠자냥 2021-04-01 16: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안 눌렀어요. 터지나 보려고. :p

syo 2021-04-02 10:41   좋아요 0 | URL
터졌겠군요. 잠자냥님 아디오스.....

잠자냥 2021-04-01 16: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악성코드 다 덤벼!

syo 2021-04-02 10:41   좋아요 0 | URL
1회용 찬스였으니, 이후 악성코드는 좋은 백신프로그램을 통해 물리치시길 ㅋㅋㅋㅋ

미미 2021-04-01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답🤚사이러스!!ㅋㅋ저 암살당하고 싶어요ㅋㅋㅋㅋㅋ

syo 2021-04-02 10:40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퀴즈 아닌데.
손바닥 귀여우셔서 살려드리는 겁니다. 아니었음 미미님도 저한테 자연사당하셨을 겁니다.

난티나무 2021-04-01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칙입니다. 아 적절한 단어가 아닌 것 같군요. 아무튼.
8분 동안 그 아래 글들을 다 읽지 못하면 어케 되는 건가요? ㅋㅋㅋ
악 암살이다!!! ㅋㅋㅋ

syo 2021-04-02 10:39   좋아요 0 | URL
제 시간안에 다 읽지 못하셨나요?
그렇다면 syo에게 자연사당하실텐데.....

Forgettable. 2021-04-01 1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명작이네요.

syo 2021-04-02 10:38   좋아요 0 | URL
거짓말로 명작을 만드는 거짓된 인생의 syo입니다 후후후.
신자유주의세상의 강자가 될 거야.

다락방 2021-04-02 17:11   좋아요 0 | URL
뽀, 여긴 어쩐 일이에요! 🙋‍♀️

수이 2021-04-0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님한테 혼나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어 회화, 한국에서도 되던데요_ 다 읽고 이야기해줘요. 그때 영어 잘하는 법 알려주기로 하고서 안 알려줬다?;;;;

syo 2021-04-02 10:3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살았다, 안 보신 듯 ㅋㅋㅋㅋㅋ
제가 영어책을 들여다보다가 집어던지다가 반복하는 게 취미라서,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반유행열반인 2021-04-01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ㅋㅋㅋ(폰이랑 아이패드랑 두 대 부탁드립니다...)

syo 2021-04-02 10:36   좋아요 1 | URL
규정이나 양식을 정확히 준수하는 스타일이시네요. 유일하십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4-01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저 죽을 뻔 한 거였군요...

syo 2021-04-02 10:35   좋아요 1 | URL
그랬다고 하는군요. 저는 기억에 없어서..... 으헤헤헤 멍뭉멍충🐶

단발머리 2021-04-01 1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우절 하루 써먹기에는 글이 넘 고급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21-04-02 10:35   좋아요 0 | URL
내년에는 뭘 할까 벌써 고민중이야 ㅋㅋㅋㅋㅋㅋㅋ

얄라알라 2021-04-01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저. 알라딘 세상에서는 아무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그 지점에서야.....아하 오늘이...만우절!!!!!

syo 2021-04-02 10:34   좋아요 0 | URL
만우절에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뭔줄 아세요?
˝아, 오늘 만우절이었구나-˝

여러분의 바쁘고 각박한 하루하루를 응원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21-04-01 2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이 만우절이군요. ㅋㅋ
syo 님 요즘 지나치게 책 많이 읽으셔서 실성하신 줄 알고 걱정했습니다. ㅋㅋ
춘곤증에 무료한 오늘 오후 테드 창 소설에 버금가는 글 즐겁고 유쾌하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syo 2021-04-02 10:34   좋아요 0 | URL
북다님,
저는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실성상태입니다 ㅋㅋㅋ
모르셨어요? ㅋㅋ 지금쯤 대충 눈치 채셨을텐데 ㅎㅎㅎㅎ

잠깐이라도 즐거우셨다니 보람이 있네요^-^

공쟝쟝 2021-04-01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ai 가 맞았어 .. 인간이 저럴리가 없지..

syo 2021-04-02 10:33   좋아요 0 | URL
나도 내가 AI에게 지배당하고 있었을 줄 몰랐어.....

psyche 2021-04-01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그러면 저는 이제 평생 악성소프트웨어에서 해방인가요? ㅋㅋㅋㅋㅋ

syo 2021-04-02 10:33   좋아요 0 | URL
1회용입니다.
큰 기대하셨군요? ㅋㅋㅋㅋ

라로 2021-04-02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발해 하튼!!😍👏👍

syo 2021-04-02 10:32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ㅎㅎ 제가 이 글을 쓴 기억이 없어서요 ㅋㅋㅋㅋ

Angela 2021-04-02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도 만우절 놀이 하는군요 ㅋㅋㅋ

syo 2021-04-02 10:32   좋아요 0 | URL
젊은이들은 빼놓지 않고 하는 모양이던데요.....

다락방 2021-04-02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절반쯤 읽다가 로그인하고 마저 읽었네요. 댓글 달라고.
그러니까 내 정수리를 가격할 각오로 나왔었단 말이지? 두고봐라, 쇼...
누가 이기나 해보자. 크릉-

공쟝쟝 2021-04-02 12:55   좋아요 1 | URL
🧐오오오오오 여러분 여기 와서 구경하세요!! ㅋㅋ

syo 2021-04-02 16:01   좋아요 0 | URL
저 아니라니까요ㅋㅋㅋㅋㅋ
누가 이기나 해보지 맙시다. 내가 졌어요! 항복항복
 

     

오기誤記

 

 

 

그런 말을 하는 것과 그렇게 말하는 것은 같지 않다. 좀 더 엄격하게 써보자면, 우리가 마르크스가 이런 말을 했어요라는 말보다 마르크스가 이렇게 말을 했어요라는 말을 할 때 필요한 탐구와 진실의 용량이 훨씬 크다는 이야기다. 모든 글은 그 글이 쓰였던 시공간에 존재하는(존재했던) 물질과 관념들이 만드는 중력장에 포획되어 있다. 위도 아래도 없고 빛도 소리도 없는 무중력의 우주 공간에서 쓰인 글조차도 피해갈 수 없는 역사성의 중력이다. 그래서 우리는 저자가 진정 어떻게 말을 했는지 알 수 없고, 진정 어떤 말을 했는지, 그 말의 위치와 운동량을 100%의 신뢰도로 확정할 수가 없다. “글쓴이는 아마, 여기 이쯤부터 저기 저쯤 사이 어딘가에다가 말을 위치시킨 것 같은데.” 우리가 달성할 수 있는 읽기란 고작 여기 이쯤과 저기 저쯤이 도대체 어디쯤인지를 놓고 의견을 교환하는 일, 결코 소실점을 찾을 수 없는 기묘한 원근법적 읽기의 그림 속에서 저마다 오독의 춤을 추는 일일 뿐이다.

 

오독은 불가피해도 오독의 표현은 선택의 문제라서, 독후감은 때로 일종의 깡패짓이 되기도 한다. 표현의 자유란 100% 정치적 산물이거나, 인간이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지고의 권리라고 100% 정치적으로 정한 자유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표현하는 일은 그 내용이 아무리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고 해도 그 자체로 하나의 정치적 선언이 된다. 나는 이 글을 읽을 누군가가 받을 (내가 예측치 못한) 상처의 예방보다는 내게 주어진 표현의 자유를 더 지지합니다. 내가 쓰는 글이 누구에게 어떤 생채기도 내지 않는 완벽히 선한 글이라는 믿음이 터무니없듯, 내가 쓰는 글에 상처받을 수 있는 모든 이들을 예상해 접촉을 피해가며 완벽하게 무해한 글을 쓰는 것 역시 당연히 불가능하다. 아니길 바라면서, 내가 멍청한 인간이 아니길 바라면서 쓸 뿐이다. 그러다가 누가 너 이번에 멍청했어- 하면 아, 멍청한 내가 또 멍청을 저지르고 말았구나, 멍청에 멍청을 더해가며 멍멍청이가 되고 있구나- 하면서 쭈구리가 되고 그러는 것이다.

 

그렇지만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의도는 없었지만 불쾌하셨다면 사과하겠습니다- 같은 마음에도 없는 개소리를 멍멍대고 싶지도 않다(멍뭉이 혐오 발언 죄송합니다…🐶). 의도가 있고 없고가 아니라 사과할 일이 있고 없고가 중요하다.

 

이렇게 쓰고 나니 뭔 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너무 아무 일도 없어서 아무거나 쓰려다 보니 정말 아무말을 쓰고 말았네요. 으하하.

 

 

 

나는 소리 없는 짐을 들고 다닌다. 나는 나를 너무나 깊이, 그리고 너무나 오래 침묵 안에 싸두었던 탓에 어떤 말로도 나라는 짐을 꺼내놓을 수 없었다. 말을 한다는 것은 나를 단지 다른 식으로 포장하는 것에 불과했다.

_ 헤르타 뮐러, 숨그네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 이란 참으로 훌륭한 표현이지 않은가. 솔직함이란 화살 하나로 사람은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다.

_ 사쿠라기 시노,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

 

언어는 본질적으로 권력 지향적이다. 책의 '적통'이라는 문학은 물론이고 연애 지침서 같은 대중적인 심리학 책부터, 힐링, 웰빙 관련 책, 요리책, 여행기, 성생활 지침서, 자기계발서, 신앙 간증기, 증권 투자서까지 정치적 입장이 없는 책은 없다.

  그 입장이 간접적이냐 직접적으로 드러나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무색무취처럼 보이는 책도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서 나온 것이다. 사회과학이나 철학 책이라고 해서 정치적 입장이 분명하고, 육아 책이라고 해서 간접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대부분 정치색이 없어 보이는 책들은 자유주의나 기능주의적 시각에서 쓰인 것들이다. 자유주의적, 기능주의적 사고 체계에서는 입장, 관점, 시각 같은 개념 자체를 부정하고 중립성과 객관성을 지향한다. 이런 탈정치적 주장이 가장 정치적인 법이다. 게다가 정치성을 표방하는 경우보다 정치적 효과도 크다.

_ 정희진, 정희진처럼 읽기

 

 

 

--- 읽은 ---

 


104.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박균호 지음 / 소명출판 / 2021

 

박균호 선생님의 책이 제시하는 매력은 명백히 두 가지다. 먼저 필력. syo의 눈으로 보면 선생님의 필력은 독서 만담에서 정점을 찍었었는데, 그 책은 뭐랄까, 맛보거라 이게 바로 작가의 솜씨란다 이 어중-떠중-글린이들아, 하는 기세로 웃겨줬다. 그리고 소재. 명망 높은 책 수집가답게, 책을 둘러싼 이런저런 진귀한 이야깃거리들이 선생님의 글 창고에 그득한 모양이다. 그 두 가지가 잘 버무려진다면, 책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선생님의 작품은 기본 2루타에서 시작하는 것이나 진배없다고 할까.

 

아쉬운 점이라면, 이 책은 만듦새 자체가 썩 훌륭하지는 않다는 것. 번역가 천병희 선생님의 성함이 천병로 오기(25)되어 있다든가, “이 책을 타인에게 양도될 뻔한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처럼 주술 호응이 맞지 않는 문장(47)이 있다든가 하는 데서, 이 책의 원고가 통과한 교정의 그물이 그리 촘촘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은 단지 지식이나 정보의 전달 또는 읽는 재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은 독자로 하여금 어떤 인연을 맺어줄지 모른다. 한 권의 책은 사람마다 읽히는 방식도 다르고 느끼는 감상도 다르다. 책은 고구마 줄기처럼 여러 갈래의 인연과 즐거움을 우리들에게 선사한다.

_ 박균호,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이 구절이 이 책을 닫는 문단이면서 동시에 독자의 마음에 뜰 바느질 한땀이라고 생각해서 발췌했는데, , 옮겨 적고 보니 문장 네 개 중 세 개가 어색하다. 뭘 노렸거나 어떤 의도가 있어서 여기를 찝어 온 건 아니온데……. 이 마지막 문단을 둘러싸고 퇴고의 시간조차 가지지 못하셨을 어떤 급박한 상황을 짐작해본다.

 

 

 


105 106. 세계 문학 읽어보셨나요? 1 2

파스칼 프레이 글 / 솔다드 브라비 그림 / 최내경 옮김 / 큐리어스 / 2021

 

소설 한 권을 16컷짜리(넘는 경우가 있긴 하다) 쪼끄만 만화로 어떻게 요약해보겠다는 원대한 포부는 장쾌하게 망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직접 독서의 의욕을 고취하려는 심모원려가 숨어 있다.

 

정작 만화 자체는 그렇지만, 500자 남짓 되는 작품 해설에서 빛나는 뜻밖의 위트.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지독한 불운이 연속되는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때 편지를 전달하지 못한 심부름꾼, 줄리엣을 가짜 죽음으로 몰아넣은 로렌스 사제의 어설픈 계획, 불행으로 이어진 결투 등운명은 끈질기게 두 연인을 방해했다. 그러나 그 비극적 결말이 그들을 불멸의 연인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가정해보자. 피둥피둥 살이 오른 로미오 몬테규(파스타를 너무 먹었군)와 복부가 터져 얼룩덜룩해진 줄리엣 캐플릿(아기를 너무 많이 낳았어)을 지금까지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_ 파스칼 프레이, 솔다드 브라비, 세계 문학 읽어보셨나요?

 

 

 


107. 사회주의 페미니즘

낸시 홈스트롬 엮음 / 유강은 옮기 / 따비 / 2019

 

이름을 붙이는 것과 라벨을 붙이는 것은 다르다. 이름은 그것을 고유하게 만들고 라벨은 그것을 고유하지 않게 만들거나 누군가의 소유로서만 고유하게 만든다. 분류는 언제나 권력이고 때로는 폭력이다. 너는 그쪽 사람이구나- 하는 내적 판단과 너는 그쪽 사람이야- 하는 외적 선언은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을 품는 것과 실제로 한 대 쥐어박는 것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그런 마음이고 그런 행동이다.

 

나에 대해 말하는 것 역시 종종 나에 대한 폭력이 된다. 대리석이 점점 다비드가 되어감에 따라 점점 다비드가 아닌 무엇이 될 수는 없어지듯이, 무언가를 완성해나간다는 것은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점점 깎아나가는 일이다. 한 번 살러 온 마당에 모든 것이 다 되어보고 갈 수는 없어서 우리는 선택을 하며, 얻는 만큼 버리고, 선명해지는 만큼 뾰족해진다. 이건 윤리적 사실이 아니라 물리적 사실에 가까워서, 화날 일도 화낼 일도 아닌 것 같다. 날카로운 칼로는 못을 박을 수 없고 단단한 망치로는 깨끗하게 잘라낼 수 없다.

 

우리는 왜 개체면서 집단의 일원이고 싶을까? 내가 속한 집단이 내게 자꾸만 개체성을 강조할 때, , 나도 여기 사람이야! 외치는 마음과, 내가 속한 집단이 내게 자꾸만 집단성을 강요할 때, , 나는 나야! 외치는 마음 사이에 멀뚱히 서서, 우리는 대체 뭐 하는 걸까?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들여다보게 하는 책은 좋은 책인가?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다. 내가 이미 여기에 서 있음을 알고 있는데 책이 내게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바로 그 자리에 내가 서 있음을 다시 알려준다면, 그 책은 그때의 내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책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는 일은 크고 작은 타격을 동반한다. 그것은 이제껏 믿어왔던 내 위치와 실제 내 위치가 어긋나 있음을 인지함에 뒤따르는 충격이다. 역시 난 여기 딱 이 자리였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은 그 순간내겐무의미한 책을 넘어 유해한 책에 가깝다. 나는 몰랐던 나를 자꾸만 알아가고 싶은 것이지, 이미 알고 있는 내게 지나친 확신을 가지고 싶지 않다. 그 두 가지 일은 종종 서로가 서로를 반대한다. 역시 선택의 문제다. 늘 그래왔듯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의 98%를 금세 잊어버릴 것이다. 나의 좌표를 궁리하며 몸에 바른 2%만이 늘 살아남았다. 2%의 이자를 수천 권 복리로 굴려 나는 여기에 왔고, 이 책의 2%가 어디 있는지 다 읽고도 찾고 찾는 중이다.

 

 

 

--- 읽는 ---

권리를 가질 권리 / 스테파니 데구이어 외

역사의 색 / 댄 존스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 한지원

성냥팔이 소녀를 잊은 그대에게 / 최충언

콘트라바스 / 파트리크 쥐스킨트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 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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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31 13: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늘 그래왔듯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의 98%를 금세 잊어버릴 것이다. 나의 좌표를 궁리하며 몸에 바른 2%만이 늘 살아남았다. 2%의 이자를 수천 권 복리로 굴려 나는 여기에 왔고,

왜 알라딘에는오늘의 문장이 없을까요? 저 문장 오늘의 문장으로 추천하고 싶은데..... <사회주의 페미니즘>에서는 2%가 잘 안 찾아지나봅니다. ㅎㅎ

얄라알라 2021-03-31 15:19   좋아요 1 | URL
저는 2%복리도 멋지지만, ˝몸에 바르다˝라는 표현이 확 와닿았어요. 오늘의 문장으로 추천 동의합니다~!

syo 2021-03-31 19:49   좋아요 1 | URL
오늘의 문장까지는 좀 그렇고, 한 십오 분의 문장- 정도로 낙찰을 보는 건 어떨까요 ㅎㅎㅎㅎ
십오 분도 길다 길어 ㅋ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3-31 14: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님 독서 내공에 언제나 혀를 내둘렀건만, 오늘 그 비결 중 하나를 요로코롬 공개하다니. 몸에 바른 2%의 이자를 복리로 굴리기. 캬!! 물론 이건 syo만 할 수 있는 일 같습니다만.^^ 글고 대끼는요, 경상도에서 쓰는 데끼, 네 이놈~~~ 뭐 이런 의미였는데, 못 알아듣게 써버렸다니. ㅠㅠ 암튼 일년 중 사분기 하나를 지나왔는데, 벌써 107권!!! 혀를 어찌 내둘러야 하나 . . .^^;;;;

syo 2021-03-31 19:50   좋아요 1 | URL
아 그러니까 떽끼! 그거 였군요!
저는 ‘새끼‘인가 싶어서.....ㅋㅋㅋㅋㅋㅋㅋㅋ

107권은 저처럼 만화책으로 고르면 읽기님도 금방 가능하실걸요? ㅎㅎㅎ 비추....

얄라알라 2021-03-31 15: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글이야, 침 좔좔 흘리며 읽지만 오늘은 독심술의 대상이 된 듯한 기분까지 들었습니다요! 멍뭉이 혐오 이야기하시길래, 독후감 깡패짓이라고 태클이 있었던 게야? 하며 혼자 막 나가는데, 바로 정리 해주시네요.
박균호 작가님께서 왜 기본 2루타에서 시작하는지를 분석하신 부분, 아주 명쾌합니다. 저도 책 꼼꼼히 읽었는데도 ˝희˝와 ˝의˝ 오기 보이지도 않았어요. 읽는 자세부터 다시 배우고 들어갑니다.

syo 2021-03-31 19:52   좋아요 1 | URL
아~~무 일도 없이 그냥 아무말이나 쓰는 중이었는데, 쓰다 보니 오해를 살 것 같더라구요 ㅎㅎ
자꾸 사연 있는 것 같은 글이 나와....

박균호 선생님의 책이 재밌어서 술술 읽다 보니 술술 넘어가버리신 게 아닐까요?

scott 2021-03-31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요님이 신형철 님의 사촌 동생이 아닐까???? ㅎㅎ왠지 2021년은 소요님에 대박의 기운이 좔좔~

syo 2021-03-31 19:53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족보의 창조?
스캇님이야말로 꾸준함과 내실을 두루 갖춘 페이퍼로 올해 대박 예정이시잖아요?

반유행열반인 2021-03-31 1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오독 오기의 달인입니다.

syo 2021-03-31 19:53   좋아요 2 | URL
오달인 선생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박균호 2021-03-31 18: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박균호 입니다. 먼저 알라딘 서재의 셀렙 syo님께서 저의 졸저를 읽어주셔서 영광이네요 ^^ 독서 만담 까지 읽어셨다니 더 놀랍네요.
겸손은 아니고요. 제 글 보다는 소요님의 글빨이 훨씬 더 놀랍습니다. 지적이고 부드럽지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하면서 따뜻하기까지 하네요. 오타는 오로지 저의 불찰이며 반성중입니다. ㅠㅠ 지금 오타를 수집하고 있고 재쇄를 찍게 되면 꼭 반영하겠습니다. 송구합니다. 출판사는 많은 노력과 투자를 했는데 저의 잘못입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저녁 되세요 !!!

syo 2021-03-31 20:00   좋아요 2 | URL
알라딘 셀럽 그 단어는 정말 들을 때마다 온몸이 오그라드네요.
이웃분들이 저 멕일 때 쓰는 용어인데 ㅎㅎㅎ

칭찬 말씀은 너무 과하게 주셔서 다 받아먹으면 배탈 날 것 같아서요.
조금 깎아서, ‘지적이-‘까지만 받는 걸로 하겠습니닿ㅎㅎㅎㅎ

쓰면서 혹시 선생님께서 보시면 좀 언짢으실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좀 뭐라 하셨어도 죄송합니다 찍- 했을텐데, 배포를 보여주시네요. 감사합니다^-^

박균호 2021-03-31 20:03   좋아요 1 | URL
저만 셀렙이라고 부른 것이 아니었군요 . 저는 말로 사람을 물맥이지 않으니 오해 마셔요.

syo 2021-03-31 20:05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네, 사실 멕이시는 친구분들도 짓궂게 애정표현하는거라, 저는 저 단어 좋아합니다.

2021-03-31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31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31 2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래도 당신이 우리 청춘의 얼굴

 

 

 

1

 

인생사 긴긴 여정의 어느 시점이 되면 얼굴의 면적이 썩 달갑지 않은 방향으로 변한다. 그렇게 한 번 변하고 나면 다시는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오늘에 비하면 어제란 늘 아름답다-으로 돌아올 수 없다. 돌아올 수 없는 안면적대격변의 강을 건넌 자, 우리는 그를 주저 없이 아저씨라 부른다. 아저씨.

 

조인성도 그걸 피해갈 수는 없었던 모양. 함께 TV를 보던 동생은 조인성도 늙는다며 그 증거로 얼굴이 점점 길어지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내 눈에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애들의 날카로운 시선에는 또 그게 걸리나 보다. 하여간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부러웠기 때문이다.

 

 

 

2

 

얼굴 면적의 격변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기본 형태를 지닌다는 것이 지금까지 학계의 중론이었다.

 

첫째, 팽창하는 우주 식.

둘째, 모여라 꿈동산 식.

셋째, 바나나는 길어 길면은 기차 식.

 

 

 

3

 

영원히 견고할 것만 같았던 안면적 격변의 삼원론의 아성은 최근 이원론 학파의 맹렬한 공격을 받고 흔들리는 중이다. 우주팽창과 꿈동산은 사실 같은 현상을 보는 관점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는 추세다. 핫바드대학교 인류안면변화연구소(Change of Human Face Research Lab in Hotbard University, CHFRLHU)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원래 대두로 인식되던 개체의 안면적이 의미 있는 증가폭을 보일 때, 인간은 이를 큰 얼굴이 더 커졌다고 인식하기보다 이목구비가 안면의 정중앙 xy축의 교차지점으로 수렴 중이라고 인지하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 동일한 물리적 현상에 대한 해석이 관측자의 기존 인식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반면, 안면 이론 분야의 게임 체인저로 떠오르는 MYT의 페이스 부크Face Booc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 Face Is Not an Organism, It Is a Science(얼굴은 기관이 아닙니다. 과학입니다)에서, 우주팽창과 꿈동산을 결정하는 기준은 관측자의 기존 인식이 아니라 안면적의 최종값이라고 주장하였다. 논문은 기존 관측자의 인식과 상관없이 최종적으로 확정된 안면적의 값이 팽창인식상수(cognition index of face expansion)이상일 때는 우주팽창으로, 그 이하일 때는 꿈동산으로 인식된다고 하며, 이 팽창인식상수란 진공에서의 광속도, 플랑크 상수와 같은 불변하는 상수임을 성공적으로 증명했다고 보고했다. 현재 팽창인식상수가 우주의 불변상수인가, 아니면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지표에 불과한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논쟁의 결과와 무관하게 안면적 격변의 기본 형태는 삼원론에서 이원론으로의 패러다임 쉬프트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안면적 변동은 이제 방사형 팽창식과 바길길기(바나나는 길어 길면은 기차)식 두 가지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4

 

와 같은 헛소리를 길게 쓰면서 으하하 나만 재미있으면 됐지 뭘, 하는 생각을 했다.

 

 

 

5

 

하여간 조인성의 얼굴은 바길길기 방식으로 길어지고 syo의 얼굴은 방사형 팽창식으로 넓어질 모양인데, 어쨌든 길어지거나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 조인성조차 피해갈 수 없는 얼굴의 운명이라면, 왕창 커지는 것보다는 그래도 단일축 방향으로 확장되는 편이 좀 낫지 않은가 하는 것이지.

 

 

 

6

 

아니면 그냥 조인성이라서 부러운 것일 수 있다.

 

 

 

7

 

생각해보니까, 아닌 게 아니라 그게 맞는 것 같다.

 

 

 

8

 

어쨌든 내가 청춘일 때, 그 시대 청춘의 대명사로서 함께(?) 한 세월을 헤쳐나간 우리 시대의 얼굴이 늙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은 각별하다. 한 세대 위, 형과 삼촌의 경계 어디쯤의 스타들이 늙어가는 것을 발견하거나, 아니면 아예 한 세대 밑의 애기애기했던 친구들이 얼굴에 수염이 자글자글해지는 모양을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늙지 말지 조인성. syo가 이렇게 열심히 꾸준히 늙고 있는데 뭐하러 형까지 늙어요…….

 

 

 

9

 

박보검도 언젠간 늙겠지, 걔는 조인성하고 약간 닮았잖아, 그럼 걔도 길어지는 쪽이겠네. 라고 말했더니 동생은 박보검은 다르다며 진저리를 쳤다. 동생아. 나도 조인성은 다를 줄 알았어.

 

 

 

--- 읽은 ---



100. 인간의 흑역사

톰 필립스 지음 / 홍한결 옮김 / 월북 / 2019

 

이것은 syo가 지향하는 여러 갈래의 문체 중 한두 가지를 잘 비벼 놓은 문장이 그득 들어찬 책이었다. 잘 먹고 운동 잘하고 이렇게 저렇게 읽고 쓰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저런 글들을 쓸 수 있겠지 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름답고 몽환적인 착각의 시절. 세상에 이런 책이 있으니까 syo는 독자의 방향으로만 뚜벅뚜벅 간다.

 

세상일이란 다 아이러니하지만, 인간이 그렇게 대규모로 죽을 쑤는 원인은 바로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만의 특성,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 바로 그 특성 때문인 경우가 많다. , 인간은 세상에서 패턴을 읽어낸다. 그리고 알아낸 것을 다른 인간에게 전할 수 있다. 또한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할 줄 알아서, '이걸 이렇게 바꾸면, 저게 저렇게 돼서, 살기가 좀 더 편해지겠지?'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문제는 그중 어느 하나도 그리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패턴이 없는 곳에서도 패턴을 읽는다.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부족할 때가 많다고만 해두자. 우리는 이걸 이렇게 바꾸면, 이상한 게 덩달아 바뀌고, 또 다른 게 이상해지다가, 결국 이게 뭐야, 살려주세요…… 하게 된다는 예상을 하지 못한다. 이는 과거의 화려한 실적으로 증명된다.

_ 톰 필립스, 인간의 흑역사

 

 

 


101.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리처드 J. 번스타인 지음 /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18

 

- 일독(190516)

- 재독(210330)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당연하게도. 그러나 우리는 종종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완벽을 바란다. 그럴 수 없다는 것과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 알면서도. 그래서 이 말은, 지금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가책 없이 할 수 있고 또 누구나 동의하는 진리의 말인 동시에, 실은 듣는 사람도 속이고 무의식중에 나 자신까지 속이는 완벽한 거짓말이기도 하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완벽이라는 개념을 아무리 좁게 잡아도 그렇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속성에서 흠잡을 데가 없는 그런 완벽한 완벽, 완벽히 불가능한 완벽의 불가능을 다시 언급하는 것은 유치한 일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것 말고, 딱 하나의 속성 내에서 모순되지 않는, 시간과 입장에 따라 변하지 않는, 유사한 입장에 속해 있는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에게 똑같은 판결을 내리는, 그런 부분적 완벽을 놓고 보아도, 어쩌면 가능할 것 같은 그 완벽 역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 사실을 글자로서 음성으로서 인식하여 뇌에 저장해 놓는 것과, 이 사실 자체를 눈에 바르고 귀에 발라 놓는 것은 천지차이다. 부분적 완벽을 언급하긴 했지만 사실 완벽은 그 자체로 늘 전체를 지향하는 개념이라 부분적이라는 말의 포획틀에 얌전히 잡혀 있는 녀석이 아니다. 그래서 열심히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우리는 인간을 전체로 파악하고 실망하는 길에 들어선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그래야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단지 요즘 인간에 대한 실망을 줄이는 방법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고 있는 중이어서. 어차피 실망이란 실망하는 사람의 것이어서 내가 거듭 실망하고 실망해도 아프고 변하는 것은 나일 뿐이라서. 인간이란 결국 때가 되면 스스로 스토아 철학자가 되고 마는 것인가.

 

, 이런 이야기를 왜 여기서 길게 하고 있는지(읽어보시면 대충 아실 수도).

 

우리가 왜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하)는지, 이 책은 그 이유를 충분히 제시한다. 요약서가 아니고, 가이드맵에 가깝다. 한나 아렌트로 달려가기 위한 첫 번째 책으로 손색이 없다.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또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결정하기가 덜 자유로울수록 더욱 겉치레를 하게 되고, 사실들을 감추고, 어떤 역할을 하려고 애쓴다.

_ 리처드 J. 번스타인,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102. 더 이상 웃어주지 않기로 했다

최지미 지음 / 카시오페아 / 2021

 

당당한 사람보다 단단한 사람이 멋있어 보일 때 어른이 된 것 아닐까. 당당하기도 쉽지는 않지만 단단하기란 거의 위대한 일에 가까워서, 모루 위의 쇠처럼 두들겨 맞고 버티는 과정에서 내적으로 단련되는 방식으로 말고는 어떻게 해도 얻어낼 수가 없는 귀한 특성이다. 또한 마르고 거친 환경 속에서 시간을 통과한다고 저절로 갖출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가진 딱딱함을 단단함으로 착각하고 살기란 얼마나 쉬운지. 그러니까 우리가 가야 할 길에는 세상의 말이 만들어 놓은 두 개의 함정이 숨어 있는 셈이다. 사람들이 유연함이라고 부르며 우리에게 주사하기를 원하는 물렁함을 거부해야 하고, 같잖은 자기계발서들이 단단함이라고 부르며 쟁취하라고 종용하는 딱딱함을 피해야 한다. 그 이중의 회피를 달성했거나 달성 중인 사람들의 자기 이야기를 엿보면서 내 단단함으로 가는 지도의 세부를 조정하는 일. syo가 지치지 않고 에세이를 찾아 읽는 이유다.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나 스스로를 발견하고 나 자신을 주체적인 인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사회가 만들어낸 컬러 차트에 들어맞지 않는 디테일한 개인이 돼보는 것이다. '쟤 왜 저래'라는 타인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도 있지만 되도록 개의치 않기로 하자. 남들의 의견이라는 실체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것을 신경 쓰기엔 인생은 너무나 짧으니까.

_ 최지미, 더 이상 웃어주지 않기로 했다

 

 



103. 네 칸 명작 동화집

로익 곰 지음 / 나선희 옮김 / 책빛 / 2018

 

이 책이 왜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와 컨셉을 나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 읽는 ---

머릿속에 쏙쏙! 물리 노트 / 사마키 다케오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 류동민

어떻게 최고의 나를 만들 것인가 / 하이디 그랜트 할버슨

법의 정신 / 샤를 드 몽테스키외

독일사 산책 / 닐 맥그리거

사회주의 페미니즘 / 낸시 홈스트롬

민주주의를 위한 아주 짧은 안내서 / 버나드 크릭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 박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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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3-30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이런 능청스런 글 제 취저예요 흐흐흐

syo 2021-03-30 20:41   좋아요 0 | URL
흐흐흐 이런 웃음 제 취저예요 흐흐흐

행복한책읽기 2021-03-30 1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럼 곤란하쥬. 긴 페퍼를 연달아 올리다니. 대끼 syo^^

syo 2021-03-30 20:41   좋아요 0 | URL
대끼요? ㅋㅋㅋㅋㅋㅋㅋ 뭐죠 그게 ㅋㅋ

공쟝쟝 2021-03-30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만있는 조인성은 왜 후두려패는데 ㅋㅋㅋ (근데 잘팼어) 조인성 흘러내리는 거 저두 너무 공감... 조인성, 공유와 현빈을 본받아라!!! 마, 아무리 모태 미남이라도 코르셋 꽉 좋이고 더 노력하란 말야!!!!
그나저나 공돌이로 무장한 개놈버전 쇼님은 당할 수가 없다.... ㅠㅠ 아 ㅠㅠㅠ 내가 이번달엔 제일 웃긴 사람이고 싶었거늘... 3번 문단에서 패배했습니다..

syo 2021-03-30 20:42   좋아요 0 | URL
후드려팬거 아니라니까, 부러워서 그런다고.
길어져도 조인성이 길어지는 거잖아....

이번 달 그거 이제 30시간도 안 남았으니까 다음 달에 제일 웃긴 사람 해요. 밀어줄게 ㅋㅋㅋ

stella.K 2021-03-30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늙어도 꾸준히 TV에 나와주는 배우들이 좋더군요.
어느 샌가 모르게 안 나오는 배우랑 배우질은 안하고 CF나
예능에만 나오는 배우는 좀 아쉽더군요. 설마 보검이는 안 그러겠죠? ㅠ

syo 2021-03-30 20:43   좋아요 0 | URL
티비에 나오건 안 나오건, 저는 배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저 부러워할 뿐이죠 ㅎㅎㅎㅎ
보검이 화이팅.....

Angela 2021-03-31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 슬퍼요 ㅜ 내 이야기인줄

syo 2021-03-31 11:40   좋아요 0 | URL
안면적 격변 말씀하시는 건가요?
나의 고민 너의 고민 우리 모두의 고민.....
 


포교중단

 

 

 

1

 

연애하라는 말은 어떤 질문들에 대한 해답이 되기도 한다. 모든 행복한 연애와 폭망한 연애는 그 기승전결 전체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이 어떤 인간이었고 어떤 인간이 아니었는지를 가르쳐주는 학습지이고, 사람이 살며 세상에 던지는 질문의 최소 절반은 실상 나라는 인간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연애 자체가-연애하지 않았다면 맞닥뜨릴 일이 없었을-많은 물음표를 낳기도 하지만, 연애의 과정을 촘촘하게 거친 사람들은 연애 바깥의 많은 일에다 찍을 수 있는 다양한 문장부호들을 마련하게 된다. 말줄임표, 쉼표, 느낌표, 대쉬, 따옴표, 그리고 무엇보다 마침표.

 

그렇지만 연애의 이런 효익이 연애하지 않는 이에게 연애하라고 강권하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만약 연애에서 얻을 수 있는 답안들이 인생의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만능 키라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해답을 담지하는 물건 같은 것은 이 세상에 없고, 대체로 연애하라는 말은 그저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인생에 새로 던져진 여러 개의 물음표에 그치고 만다. 생각해 보면, 연애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연애하라는 말을 들을 이유가 없고, 연애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연애하라는 말이 아니라 연애하기 좋은 사람의 연락처를 건네야 한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연애하라는 말을 폐기할 이유는 충분했던 것이다.

 

 

 

2

 

연애라는 것은 참 묘하다. 연애가 좋은 사람에게는 연애란 좋은 것이며, 연애가 싫은 사람에게는 연애란 싫은 것이다. 그런데 연애가 좋은 사람에게도 연애란 때로 싫은 것이며, 연애가 싫은 사람에게도 연애란 때때로 좋은 것이 된다. 이 말은, 연애를 하는 사람이 자기가 연애하는 이유를 설명(그럴 필요는 없지만)할 때 연애의 좋은 점을 일일이 나열할 까닭이 없다는 뜻이고, 동시에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자기가 연애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당연히 이럴 필요도 없지만)할 때 연애의 구린 점을 줄줄이 꿸 까닭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냥 입을 다물고 각자의 연애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연애인 듯 연애 같은 연애 아닌 연애를 하거나 그러면서 살면 편한 것.

 

 

 

3

 

결혼하라는 말에는 학을 떼면서도 남들한테 연애하라는 말은 무심히도 하고 다녔던 이중적인 나새끼의 실체를 곰곰 생각해 본 결과, 연애하라는 말은 결혼하라는 말과 그래도 다른 데가 좀 있었다. 결혼하라고 강권하는 이들도 결혼이라는 것이 주는 행복을 권하는 마음이 기본이겠지만, 일단 근본적으로 이 사회에서 결혼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완결의 과정을 향해 가는데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관문(심지어 누군가에게는 골인 지점)이라는 오랜 관념의 냄새를 아직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따라서 내게 결혼을 권하는 사람 두 명 중의 한 명은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이란 결국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권하는 것이다. 하지만 syo가 연애를 권할 때, 그건 연애가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혹은 당신이 이 사회에서 인간으로 활동하기 위해 갖춰야 할 면허증이기 때문에 권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좋아서, 재밌어서, 신나서, 권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좋다고 해서 너도 좋을 거라고, 그러니까 하라고 윽박지르는 것도 폭력이라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강매당하는 것이 결혼이든 연애든 빡치는 데 큰 차이가 없을 것 같기는 하다.

 

그렇지만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명백히 다른 것이 있다. 결혼을 강권하는 사람들은 결혼이 수정과 속 계피라고 생각한다면, 연애를 권했던 syo는 연애를 수정과 속 잣 같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연애란 잣 같은 것이다. 아니다, 이건 정확한 비유가 되지 못하겠다. 더 섬세하게 빗대자면,

 

결혼 권하는 사람이 결혼을 팥죽 속의 팥 같다고 생각한다면, 연애 권하는 syo는 연애를 팥죽 속의 죽 같다고 생각한다. 연애란 정말 죽 같은 것이다. 팥죽 속에 팥은 있지만 죽은 없다. 같은 팥으로 만들어도 이 집 팥죽과 저 집 팥죽은 다른 죽이기 십상이다. 나는 팥죽을 쑨다고 쒔는데 어찌 된 일인지 팥물이 되었거나, 믿을 수 없게도 팥밥이 되었거나, 심지어 시루떡이 튀어나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왕왕 벌어지는 인생 속에서, 당신이 팥이라면 연애는 죽 같은 것이다. 팥죽은 먹고 싶은 날 먹고 아닌 날은 그런 음식이 있다는 것조차 잊고 살아도 괜찮다. 인생의 모든 날이 동짓날은 아니니까. 나는 연애를 권하는 일을 시원하게 집어치웠고, 내 팥죽을 쑤는 데 더욱 노력할 작정이다. 죽 같은 연애 죽 쑤지 않기 위해 정성껏 죽을 쒀야지.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_ 김금희, 경애의 마음

 

나는 자주 어두운 밤과 환한 낮의 경계를 걷는다. 굳이 해명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어둠의 시간과 무화과 잎을 둘러야만 간신히 존중받을 수 있는 낮의 시간. 나는 어둠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지만, 때로 어둠은 나를 자유롭게 한다. 그 어둠이 잠시 주어지는 무대가 아니라 매일 살아가는 무대이면 좋겠다.

_ 홍승은,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철두철미 소요객인 사람과 열정적 관찰자에게 다수를, 사람 물결을, 움직임을, 순간과 무한을 자기 거처로 삼는 것은 어마어마한 즐거움이다. 자기 집을 벗어나 있기, 하지만 어디서든 자기 집인 양 느끼기. 세상을 바라보기, 세상 한가운데 있으면서 세상 속에 숨어 있기. 이런 것들이 독립적이고 열정적이며 편향되지 않은 정신의 소유자들이 느끼는 쾌락들, 말로는 어설프게밖에 규정할 수 없는 쾌락들 가운데 몇 가지이다. 관찰자는 여기저기에서 자신의 익명성을 즐기는 군주다.

_ 샤를 보들레르, 『샤를 보들레르 :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

 

 

 

--- 읽은 ---



94. 매일 갑니다, 편의점

봉달호 지음 / 시공사 / 2018

 

편의점에서 일해보지 않으면 편의점 일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syo가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하던 시절이 그랬다. 에세이는 어떤 보편적인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노래하면서 개별성을 양념으로만 사용했다. 소설은 모두가 몸담은 지나치게 큰 세계의 이야기를 하거나 작가 이외에는 아무도 몸담고 있지 않을 듯한 너무 작은 세계의 이야기를 즐겨 했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부터 폭발적으로 쏟아져나오기 시작해, 이제는 모든 직업 종사자들의 에세이가 최소 한 권씩은 나와 있는 것 같다. 소설 속 인물들이 하는 일 역시 소설 밖 인물들이 하는 일과 싱크로율이 꽤 올라갔다. 읽기 좋은 시대다. 어떤 일로 하루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변하며 어떻게 변하지 않는지를, 그저 책을 읽는 것만으로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생은 짧고, 읽는 것 말고는 달리 알 기회를 가지기조차 어려운 무언가들이 잔뜩 널린 세상이다. 그 어느 때보다 읽기 좋은 시대다.

 

왕년에는 어떻게 하면 제국주의에 불벼락을 내릴까 고민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잔머리 굴리며 요령만 피우는 알바 녀석들에게 분통을 터트리고, 기껏 막대 사탕 하나 사 갈 거면서 진열대에 있는 이 물건 저 물건 몽땅 조물락거리는 초딩 꼬맹이들에게 준엄히 야단을 친다. 왕년에는 민중에 대한 사랑을 맹세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음료 빨대와 나무젓가락을 뭉텅뭉텅 집어 가는 얄미운 손님들의 불행을 바라고, 편의점 파라솔을 노인정인 양 몇 시간째 차지하고 있는 동네 할아버지들과 매일 신경전을 벌인다. 왕년에는 노동 해방 평등 세상을 부르짖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계산기 두드리며 어떻게 하면 최대한 인건비를 줄여볼까머리를 싸맨다.

  한때 혁명에, 민주주의에, 고귀한 이상에 목숨을 걸었던 우리는 이제 일상에 목숨을 건다. 우리는 그렇게 어제를 떠나보내고 오늘이 되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으로 진짜가 되려 하는가.

_ 봉달호, 매일 갑니다, 편의점

 

 



95.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9

 

친구는 이제 나카야마의 작품을 읽지 않을 모양이다. 좀 더 읽어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사실 읽을 책은 많고, 나카야마라는 작가가 이 장르에서 읽어야 할 작가의 줄을 세웠을 때 맨 앞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닌 것도 확실하다. 반전 있고 할 말 하고 자극적이다. 그래도 귀환하기 전의 개구리 남자가 더 재미있었다.

 

  “만약 당신이 겁쟁이인 척하는 거라면 출소해도 계속 그렇게 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바짝 긴장했다.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른다면 그냥 흘려들어요. 방금 한 말은 주치의의 충고 같은 거니까.”

히바는 나른한 듯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이건 일반론인데 정신장애가 없는 사람이 그런 척하기는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일단 심신상실로 진단되면 정기 검진은 비교적 형식적으로 치르죠. 기소 전 정신감정에서는 반년에 걸쳐 검사를 하는데, 몇 달에 한 번 30분 정도 하는 정기 면담은 그냥 잡담이나 하는 거고요.”

  후루사와는 표정근에 힘을 줬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불안이 얼굴에 비칠 것이다. 히바가 무슨 속셈인지는 잘 모르지만 이 자리에서는 선량한 인간상을 밀고 나가야 했다.

  “하지만 불과 30분 면담을 해도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든 간에 거짓말을 하고 있으면 알 수 있어요. 악용되면 안 되니까 자세히는 말 안 하지만 사람은 거짓말을 하면 반드시 얼굴에 드러나거나 어떤 행동을 취합니다. 개인차는 있지만, 예를 들어 눈을 피하거나 특정 얼굴 부위를 손으로 가리거나 하지요. 무의식중에 나오는 반사 반응 같은 거라서 훈련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막기는 어려운 겁니다.”

  무심코 손이 얼굴에 가려고 했다. 안 돼, 위험해. 저자가 판 함정이면 어쩌려고.

  “누구나 자기 성격의 싫은 부분은 숨기고 싶은 법이니까 내버려두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아무튼 어차피 할 거라면 계속해야 합니다. 이유를 알겠습니까?”

_ 나카야마 시치리,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

 

 

 



96. 책에 바침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지음 / 리네 호벤 그림 / 김인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

 

친구는 영생을 선언했다. 읽을 책이 너무 많아서 죽지 않을 생각이라고. 평소 여러모로 존경해온 북몬스터 중 한 사람이긴 했지만, 설마 내가 진시황이랑 알고 지냈을 줄이야.

 

그런데 그런 마음이 남의 마음만은 아닌 것. 확실히 책은 많고 자꾸자꾸 생겨나서, 인생을 책에 바치는 것이나 진배없는 삶을 사는 독자들 역시 많고 자꾸자꾸 생겨난다. 알라딘 3개월 구매액이 100만원에 육박했으니 좀 줄여야지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그래요24에서 책을 구매하는…… 그러더니 다음 달부터 다시 알라딘에서 책을 사기 시작한 걸로 봐서 그래요 구매액도 짐작할 만한…… 그런 사람들 스스로야 물론 책을 내 인생에 바친 거지 내 인생을 책에 바친 건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여러분, 우리가 우리를 잘 알잖아요. 우리, 망했어요. 책이 이겼고 우린 졌어요. 망했어…….

 

읽힌 책은 그것을 읽은 독자가 살아온 삶의 일부이다. 심지어는 아주 중요한 장의 특별한 한 단락이 삶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독자가 가장 머물러 있고 싶어 했던 부분, 가장 편안함을 느낀 부분이었다면 언제나 그렇다. 모든 텍스트는 언어로 이루어진 세계이다. 이와 동시에 독자에게는 그 세계를 여행한 기록이다. 그러므로 이따금씩 그 여행을 회상하기 위해서라도 읽힌 책은 여행 기록처럼 보관될 필요가 있다. 여행 기록들이 다 그렇듯이 기억을 생생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_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책에 바침

 

 

 


97. 홉스

리처드 턱 지음 / 조무원 옮김 / 교유서가 / 2020

 

성이 턱이라니, 제길, 당했다. 이름 가지고 놀리기 없긴데, 자꾸만 본 적도 없는 리처드라는 남자의 턱이 떠올라서 견딜 수가 없었다.

 

왜 대뜸 책과 아무 상관도 없으며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도 않은 턱 이야기를 하며 글문을 열었을까? , 그것이 문제다. 이 장르가 원래 재미있는 장르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게 읽는데, 이상하게 재미가 없다. 없는 재미를 작가 이름에서 찾으려 들다니, 나란 인간도 진짜 제대로 된 독서가가 되려면 인격수양부터 시작해야겠다.

 

어쨌든 홉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느낌. 나중에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 전에 이 책의 좋고 나쁨을 평할 수는 없을 듯하다. 부디 다른 독자들의 평을 참고하세요.

 

다르게 말해서 홉스는 색과 관련된 용어를 다룰 때와 정확히 동일한 방식으로 도덕적 용어를 다뤘다. 비록 공통의 언어와 감각이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이 실제로 또한 객관적으로 빨갛게 여겨지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어떤 것이 실제로 또한 객관적으로 선한 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만들지만, 사실 이와 같은 관념은 환영이거나 환상으로서 단지 우리의 머릿속에서 만든 속성일 뿐이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색에 대한 감각은 외부세계에서의 영향에 의해 느껴지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색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눈에 부딪히는 빛의 파동이다. 마찬가지로 도덕적 승인과 거부는 인간의 감정적 심리를 구성하는 정념과 욕구 체계에 끼치는 외부 영향에 의해 야기되는 느낌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_ 리처드 턱, 홉스

 

 

 


98.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

사쿠라기 시노 지음 / 이정민 지음 / 2021

 

연애를 오래 하고 많이 하면 닳고 닳아, 소소하고 달달한 것들에 대한 면역이 생기고 짠맛 쓴맛 매운맛에만 반응하는 연애인이 될 거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천만의 말씀인 것이, 갈수록 풋풋 달달 아코아코 한 것들에 환장하게 된다. 아내는 남편이 켜놓고 나간 노트북을 들여다 보다가 다카타 히로코라는 이름의 여성으로부터 온 메일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루하루가 엉망진창이 되어간다. 남편이라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도 아니고, 믿지 못할 만한 전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아닌데 이러는 나는 참 내가 봐도 아니어서, 엉망진창은 어어어엉망진창이 되어만 가고. 그러다 결국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 깨달은 바가 생겨, 어느 저녁, 맥주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이 노트북을 열어봤으며, 여자로부터 온 메일을 봤고, 이것에 대해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결코 지나가는 일이 될 수 없을 거라는 걸 깨달았음을 밝힌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되고,

 

  "다카타 히로코는 여자가 아닙니다. 대학 다닐 때 내가 걱정을 많이 끼친 조교수님이에요. 지금은 손주까지 본 할아버지이고. 부모님이 자식 이름을 지을 때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히로코(廣湖)라고 지어서 본인은 꽤 난감해했는데 깊고 넓은 호수 같은 남자로 컸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거지. 그럴 거면 아예 호수보다야 바다지, 하면서 넓은 바다라는 뜻의 히로미(廣海)가 낫지 않겠냐는 것이 다카타 교수님의 자학 개그였어. 거짓말 같으면 내 스마트폰 통화 내역이든 문자든 메일이든 다 봐도 돼. 문자나 메일을 보낼 때 뭐라고 써야 할지 고민돼서 그냥 전화로 하는 건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들키면 안 되는 건 다 지웠으면서,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감사 메일은 손주가 영화를 스크린에 비추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여 요즘에는 영사기사 일이 어떤지 물었을 때 받은 것이라고 한다.

  "엄청나게 힘든 상황이라고 말씀드렸어요. 영사기사가 필요 없는 시대라는 것도."

  아내가 메일을 훔쳐볼 수도 있는 노트북을 고타쓰 위에 올려놓고 외출하는 남자였다는 것을 지금껏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여자한테서 온 메일이 굉장히 많았어."

  "아내들은 자기 남편이 인기가 많은 줄 착각한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어."

  "나도 어쩔 수 없는 아내인걸."

  "나는 그런 당신만 있으면 돼요."

  약간 화난 목소리로 덧붙인 "고생은 시키고 있지만" 하는 말은 못 들은 척하고, 맥주를 가지러 부엌에 갔다. 주방 매트의 모서리를 밟았지만 이제는 말려 올라가지 않았다.

  사유미는 코를 훌쩍이지 않도록 주의하며 있는 힘껏 활짝 웃으며 맥주를 건넸다.

  "미안, 좋아해."

  "갑자기 왜 그래?"

  이 한마디 말을 하고 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되는 행복을 자신의 두 눈으로 보면서 사유미는 다시 한번, 이번에는 천천히 남편에게 고백했다.

  ――미안해,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좋아해.

_ 사쿠라기 시노,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

 

우오와와아아아아아아아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좋아한대에에에에에으아오아와와!

 

나는 또 저렇게 되었던 것이다.

 

조금 진정하고 다시 보니, “나는 그런 당신만 있으면 돼요.”가 보였고, "여자한테서 온 메일이 굉장히 많았어.", "아내들은 자기 남편이 인기가 많은 줄 착각한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어." 하는 말이 너무 귀엽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대충 어떤 말투, 어떤 표정, 어떤 몸짓으로 저런 말을 했을지 상상이 되면서, 저 장면 속으로 휙 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아오, 저 귀요미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좋아한다는 말 앞에 미안해가 들어가는 마음이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고 아는 사람은 온몸으로 아는 그런 것이다.

 

 

 


99. 너무 재미있어서 잠 못 드는 세계사

우야마 다쿠에이 지음 / 오세웅 옮김 / 생각의길 / 2016

 

그러니까 역사책 독서가 주는 고뇌란, 지금 이 시점에서부터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읽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빗살무늬 토기가 민무늬 토기가 되고 민무늬 토기가 친환경 BPAfree 원터치 오케이 밀폐용기가 되는 과정을 따라 시간 순으로 읽어야 하는 건지, 정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두 방법의 장단점이 명확하다. 앞의 경우는 당장 오늘날 여기가 왜 이렇게 생겨 먹었는지 이해하기 용이한 반면, 상영 시작한지 1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영화관에 들어간 것 같은 불안감도 준다. 뒤의 경우는 인과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서사를 잘 따라갈 수 있으나, 젠장 아무리 용을 써도 좀처럼 그리스 로마 시대와 춘추전국 시대까지 읽고 나면 기력이 딸려서 자꾸 다른 책을 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꾸 이렇게 한 권으로 세계사를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포부로 만들어진 책들을 들춰보게 되는데, , 이런 독서도 한두 권이지. 결국 두꺼운 책을 진득하게 읽어야 한다는 조바심만 생긴다. 그러면 나는 이제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 또 저 지겨운 페르시아 전쟁인가…….

 

  역사에서 배운 교훈이 현실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전혀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도움이 될 것 같은 착각이 들 뿐이지요. 역사 속 위인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은 너무 위대해서 우리는 흉내도 내기 힘들뿐더러 귀감으로 삼기에도 벅찹니다.

  ‘과거의 인물, 사회의 패턴을 알면, 미래를 예상해볼 수 있다는 주장이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역사에는 패턴과 법칙이 존재합니다. 그것을 미래에 웅용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의 패턴과 법칙을 구체적으로 미래에 어떻게 적용해서 생각할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판단력에 따를 문제이지 역사를 알고 모르고의 문제는 아닙니다.

_ 우야마 다쿠에이,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세계사

 

 

 

--- 읽는 ---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 김재인

사회주의 페미니즘 / 낸시 홈스트롬

더 이상 웃어주지 않기로 했다 / 최지미

루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 루크 페레터

인간 루쉰 / 린시엔즈

끝내주는 맞춤법 / 김정선

안나 카레니나 1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 / 리처드 J. 번스타인

독일사 산책 / 닐 맥그리거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 아르놀트 하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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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moon 2021-03-29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엄청x1000 이상! 공감한 문장 때문에 그냥 갈 수 없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우리를 잘 알잖아요. 우리, 망했어요. 책이 이겼고 우린 졌어요. 망했어…….] 이 부분이요. T_T 읽을 책은 밀려 있고, 쓸 글도 밀려 있고, 그래도 월요일 힘내봐요. 스스로 힘내자고 중얼거려 봅니다. syo님, 오늘도 글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syo 2021-03-29 20:21   좋아요 1 | URL
밀려 있고 밀려 있고, 어차피 망한 거, 기분 좋게 망합시다!
302moon님, 월요일이 끝나셨는지 모르겠지만, 또 한 주 힘차게 보내시기를 바랄게요.

토마스 2021-03-29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즐겁게 읽은 리뷰였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syo 2021-03-29 20:22   좋아요 1 | URL
좋은글이라는 표현은 기꺼이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토마스님 서재에서 글 읽다가 부끄러워서 돌아나왔어요. ㅎ

바람돌이 2021-03-29 15: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결혼은 권하지 않았지만 연애는 꼭 하라고 권했었는데 이젠 그것도 잘 안해요. 일단 내가 아는 사람은 너무 괜찮은데 그에 합당한 괜찮은 상대가 잘 안보인다는것. 제 나이에서 이제 괜찮은 젊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잘 없으므로.... 소개해줄 능력 없으면 입이라도 다물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거죠. ㅎㅎ

우리는 이미 망했다는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죠. ㅠ..ㅠ 일본인들이 참 저런 식의 하룻밤에 시리즈나 몇개로 보는 역사 이런거 참 잘 내던데 뭐든지 분류하고 정리하고 하는게 학문분야에서도 그런것 같더라구요. 문제는 역사쪽같은 인문학 분야에서는 저런 분류가 딱히 성공적이라고 부를 때가 거의 없다는게 문제인거 같아요. ㅎㅎ

syo 2021-03-29 20:26   좋아요 1 | URL
사실 권하는 것도 어느 정도 된다 싶은 사람한테나 하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三에게 결코 연애를 권하지 않는데요, 왜냐하면 상대방은 무슨 죄냐 싶어서......
어쨌든 이제부터는 입을 다물기로 하였답니다.

그러고보니 일본에서 저런 제목 달고 건너온 책들을 만족스럽게 읽어본 기억이 거의 없네요.
그 동네 참 저런 거 잘 하는데.....



공쟝쟝 2021-03-29 16: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대가 연애를 권하지 않아도, 이미 모든 세상이 모든 소설이 모든 노래가 모든 드라마/영화 등등이 연애/사랑/로맨스 타령이니 (훗날의 인류는 이 시대를 연애시대~로 기억할 지도...?) 포교중단은 잘 생각하셨쇼!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어맛! 홉스, 안녕? ㅋㅋㅋ

syo 2021-03-29 20:27   좋아요 1 | URL
아닐걸?
훗날의 인류는 이 시대를 비연애를 권하는 예술이 가시적으로 나타난 최초의 비연애시대로 기억할걸? ㅋㅋㅋㅋ

공쟝쟝 2021-03-29 21:35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흐름에 탑승해서.. 전도해야겠군! 오소서 4B의 세계로~~~~ 이곳은 안전합니다!!

syo 2021-03-29 21:38   좋아요 0 | URL
4B가 무엇이옵니까?

공쟝쟝 2021-03-29 21:40   좋아요 0 | URL
비출산 비혼 비연애 비섹스!!!!! ....역시 쇼님은 안되겟지....?

syo 2021-03-29 21:41   좋아요 0 | URL
4B는 너무 찐하니까, 저는 2B만 하겠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3-29 21:44   좋아요 0 | URL
전 그러려고 그런건 아닌데 원최 진한 사람이라 4b가 된지 오래.... tmi 뿌리기

syo 2021-03-29 21:46   좋아요 0 | URL
지금도 여러 연필을 번갈아가며 쓰고 있지만, 글 쓸 때는 2B가 딱 내 취향!

행복한책읽기 2021-03-29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좋아해 라니. 것도 미안하게. 아. 진짜. syo의 문장 솎아내는 솜씨라니. 내게도 이런 사람 있걸랑요. 결혼을 권함. 아이를 권함.^^;;;

syo 2021-03-29 20:29   좋아요 1 | URL
달달하고 오글거리는 대사에 좀 약한 편이어서요. 나이 먹어도 참 이 취향은 어떻게 되질 않네요. 으하하하하.

Angela 2021-03-31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인데, 연애를 해야되는데, 어쩌죠? 고수님?

syo 2021-03-31 11:39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봄인데 연애를 해야 하는 게 아니구요.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하려면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봄이라고 조바심 내실 필요가 전혀 없다고 아뢰오.....
 


아 염세 오짐

 

 

 

1

 

깃발 아래 모인 사람들은 깃발에 그려진 이념이 실현된 세상이 언젠가는 올 거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러나 모두가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실상 그들이 깃발에서 보는 세상은 저마다 다르다. 오히려 그래서 한목소리로 노래하는 일이 필요하고 유효하다.

 

 

 

2

 

과학은 목적이 없다고 말하는 목적은 과학에는 편견이 없다는 편견을 퍼뜨리기 위해서이다. 우리 시대에 자본의 도움 없이 저 혼자 기동하는 과학은 거의 없고, 모든 자본은 뚜렷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자본의 목적이 과학의 목적이 되고 자본이 가진 편견이 과학이 가질 편견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자본이 과학을 가르친다. 과학조차 당했다면 누가 있어 버텨낼 수 있을까. 자본은 우리 모두의 선생이다.

 

 

 

3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일은 실망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일이다. 높은 곳에 올려놓은 도자기일수록 떨어지면 깨질 확률이 크고, 깨지면 파편이 멀리까지 튈 확률이 크다. 바닥에 내려놓고 보면, 사실 인간이라는 것은 별반 훌륭한 동물이 아니다. 이건 내가 처음 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모두 지겹도록 듣고 겪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기대하고, 실망한다. 우리가 올려놓은 인간은 늘 떨어져서 깨지고 파편이 되어 우리를 찌른다. 그 파편을 다 치우고 나면 우리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다른 도자기를 가져다가…….

 

이런 미친 짓이 반복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늘 SeinSollen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그렇게 생겨 먹어야 하는 대로 생겨 먹지 않은 동물이면서, 아니, 오히려 그런 동물이기에 늘 인간이라면 마땅히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말을 입에 올린다. 실망의 씨앗을 뿌리는 짓일 뿐이다. 씨앗을 뿌린 사람이 잘못했다. 그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없는 우리가 선택하는 제일 쉬운 길이 더 크게 실망하고 더 크게 비난하는 것이다. 10만큼 나쁜 놈을 100만큼 나쁜 놈으로 만들고 나면, 다른 아홉 명의 10만큼 나쁜 놈들을 0만큼 나쁜 놈이라고 편하게 착각할 수 있다. 나쁨의 총량은 보존되었고, 그 덕에 우리는 계속 인간에 대한 기대와 착각을 포기하지 않고 살 수 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다른 인간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우리의 발밑에 다시 실망의 씨앗이 자란다. 작년에 뿌린 실망이 올해도 풍년인데.

 


 

4

 

매사 이런 생각만 가득한데 어떻게 또 연애는 그렇게 무사태평하게 하고 사는지. 도무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연애 만세. 올아이원포크리스마스 이즈 유…….




그때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 대신에 다른 말로 서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곤 했다. "넌 정말 대단해." 지원과 나는 어느 순간 그 말이 다른 어떤 말들보다 서로를 감동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가 나와 식탁에 마주앉아 밥을 먹다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정말 감탄스럽다는 표정을 하고는 조용히 "넌 정말 대단해" 고 말하면, 나는 "아냐, 네가 더 대단해"라고 대답하곤 했다. 우리는 같이 자고 난 뒤에도 그런 소리를 잘도 했다. 심지어 우리는 엄지손가락까지 치켜세우며 이렇게 말했다. "넌 정말 대단해." "아냐, 네가 더 대단해……

_ 정영수, 내일의 연인들


  사랑이여

  나하고 너 사이 허공의 폭을

  자로 재기만 할 것인가

안도현부분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틀니를 꺼내 손수건으로 감쌌다. 그는 그 비극을 시작하게 만든 백인에게, 읍장에게, 금을 찾는 노다지꾼들에게, 아니 아마존의 처녀성을 유린하는 모든 이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낫칼로 쳐낸 긴 나뭇가지에 몸을 의지한 채 엘 이딜리오를 향해, 이따금 인간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는, 연애 소설이 있는 그의 오두막을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_ 루이스 세풀베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

 

 

 

--- 읽은 ---



89. 잊혀진 여성들

백지연 외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20

 

이 책이 최종적으로 가고자 하는 곳은 바로 이런 책이 나오지 않는 세상이다. 존재 자체가 역설적인 것이다. 찾아보면 그런 것들은 꽤 많은데, 대체로 이롭고 필요하다. 병이나 죄와 싸우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이 달성되는 순간 백수가 된다는 점에서 굉장히 기이한 방식으로 먹고 사는 셈인데, 그런 그들을 우스꽝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없는 이유는 그들의 적이 우리의 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적들이 끝내 정복되어 사라지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모순 역시 재미있다.

 

긴즈버그는 연방대법관 중 몇 명이 여성이어야 충분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늘 9명이라고 대답했다. 연방대법관은 9석이다. 나는 여성인 긴즈버그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당연한 일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 ‘남성이 하나의 정치적 입장이듯 여성역시 그렇기 때문에, 여성 9명으로 이루어진 연방대법원이 어떤 입장도 배제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는 건 아무래도 멍청한 짓일 것이다. 물론 대법관 9석 전원이 남자인 것보다 낫겠지만. 그리고 자신의 기득권이 다 날아갈 때까지 눈 뜨고 멍하니 지켜볼 만큼 남성이라는 집단도 무디지는 않아서, 실제로 저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그래서 긴즈버그의 저 말은 syo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러나 뒤이은 말, 자신이 9명이라고 대답하면 질문하는 사람들은 전부 놀라지만, 그들은 9명의 남자 대법관에 대해서는 어떤 의문조차 품지 않는다-는 말이 겨냥하는 바에 대해서는 100% 공감한다. 이 책은 이렇게 의문의 대상이 되지 않는 남성을 지키기 위해 모든 영역에서 의문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시에 보잘 것 없으면서 두텁기만 한 벽을 찢어버리고 기어이 역사에 얼굴을 들이민 소수의 여성들에게 누가 어떤 장막을 둘러쳐 그들을 숨겨 버렸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르테미시아가 그린 그림 속 유디트는 제물의 멱을 자르는 사제처럼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다. 성서에는 유디트가 큰 칼을 '두 차례 내리쳐서' 적장의 머리를 끊어냈다고 기록돼있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속 단말마의 비명을 듣는 유디트의 모습은 성서에 나오는 나약한 여성과 확연히 다르다. 아르테미시아는 보는 이마다 넋을 잃을 만큼 빼어났다는 유디트의 아름다움을 지혜, 용기, 자신의 의지를 실행하고 관철할 수 있는 결단력 그리고 건장한 육체로 해석해 표현했다.

몸부림치며 저항하는 적장의 몸통 위에 하인 아브라가 타고 올라가 누르는 장면도 성서에는 없다. 원래 성서에서 유디트의 하인 아브라는 밖에서 유디트를 기다리고 있다가 유디트가 홀로 베어온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받아 곡식 자루에 넣는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아르테미시아의 작품들에서 유디트의 하인은 밖에서 기다리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해서 유디트의 조력자가 아닌 공범으로 활약한다.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외면받았던 화가의 절박했던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아르테미시아는 한 사람이 침략자를 난폭하게 난도질하는 그림을 통해 불공평한 사회와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카타르시스로 승화시켰다.

_ 백지연 외, 잊혀진 여성들

 

 

 


90. 환경과 생태 쫌 아는 10

최원형 지음 / 방상호 그림 / 풀빛 / 2019

 

이렇게 하면 어떻겠니? 하는 서술들이 귀여워서, 귀여움 받는 것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런데 막상 권유에 따르기는 만만치가 않다. 개념적으로는 가벼운 책이지만 실천적으로는 무거운 책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세상에는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무게가 산출되는 책들이 있다.

 

책의 무게 = {(개념적 무게) x 0.01 + (실천적 무게) x 0.99}

 

그리고 이런 책들은 제목에 ‘10을 달았다고 해서 얕보기가 어려운 법이다.

 

의도적으로 환경을 망가뜨릴 거야하는 마음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거야. 그저 배가 고파서 뭔가를 먹어야 했을 뿐이고, 컵라면이 제일 간편했고, 라면을 먹으려니 나무젓가락을 쓸 수밖에 없었던 거지. 그런데 컵라면 하나가 불러오는 환경오염은 상상 이상이더구나. 모르는 사이에 인도네시아 어느 숲에 사는 오랑우탄을 사라지게 하는 일에 힘을 보태고 있었고. 이렇듯 미처 인과관계를 모르고 원인을 제공하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단다. 하지만 이걸 전부 세세하게 알게 됐을 때는 너무 늦을지도 몰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번 찾아보자. 거창하지 않아도 생활습관 한 가지를 바꿔 보는 건 어떨까?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지. 별거 아닌 것 같은 일도 꾸준히 지속하면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뜻이야. 우리도 아주 사소한 습관을 들여 꾸준히 반복해 보면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누가 알겠니?

_ 최원영, 방상호, 환경과 생태 쫌 아는 10

 

 

 


91.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돼

김재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

 

저런 행갈이 방식과, 저렇게 한쪽을 채우는 함량을 지닌 책들에 대해서는 입 아파서 더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다. 그건 그냥 흐름과 트렌드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기만 하다면. 지혜롭거나, 아름답기라도 하다면. 그런데 이 책 속 글은 시종일관 식상하며 진부하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하는 말에

너무 귀 기울이지 마.

어떤 사람은 나를 동그라미로 보고

누구는 네모로 본들 신경 쓰지 마.

굳이 나서서 그 사람이 원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할 이유가 없어.

 

나를 어떻게 보든 난 나일 뿐이고

모든 사람에게 완벽하게 좋은 사람일 수 없어.

사람의 관계는 언제나 상대적일 뿐이야.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돼.

_ 김재식,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돼

 

11행짜리 여섯 문장 가운데, 뭐 하나 새로운 것이 없다. 저런 수준의 이야기는 내 친구 100명 중 120명은 해줄 수 있는, 그냥 구하기 쉬운 말에 그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술집 저 포장마차의 테이블 테이블마다 저것과 거의 똑같은 말들이 소주 냄새를 풍기며 입김처럼 허공으로 소멸하고 있을 것이다. 그 말들은 공짜고, 뻔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92. 인기 없는 에세이

버트런드 러셀 지음 / 장성주 옮김 / 함께읽는책 / 2013

 

2회독.


발췌를 무려 90개나 땄다. 20대 중반이 됨과 동시에 러셀은 탈덕한 줄 알았건만…….

 

철학자는 먼저 현존하는 세계의 특징들 가운데 어떤 것이 자기에게 기쁨을 주고 어떤 것이 고통을 주는지 결정한다. 그러고는 갖가지 사실을 세심하게 선별한 다음, 그의 마음에 드는 것들은 늘리고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은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곧 우주를 움직이는 일반 법칙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이렇게 진보의 법칙을 자기 나름대로 공식화하면 이제 대중을 향해 이렇게 말할 차례이다. "이 세계는 내가 말한 대로 발전해야만 한다. 그것은 숙명이다. 그러므로 이기는 편에 서고 싶은 자, 운명에 맞서 승산 없는 싸움을 벌이기 싫은 자는 나를 따르라." 그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비철학적이고 비과학적이며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난당하는 반면에 그에게 찬동하는 이들은 승리를 확신한다. 이들로서는 우주가 자기편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다툼에서 이기는 편은 덕을 지닌 이들로 여겨지는데 왜 그런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_ 버트런드 러셀, 인기 없는 에세이

 

 

 



93.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7

 

재미있었다. 반전도 계속 이어졌고, 캐릭터도 선명한 편이어서 전개를 따라가기도 편했다. 무거운 이야기 같으면서도 어쩐지 무겁지만은 않았다. 그건 장점 같기도 하고 단점 같기도 한데.

 

제일 좋았던 곳은 경찰서 대혼전 씬.

 

초기작이라 그런가 여기저기서 작가의 욕심이 느껴졌다. 특히 음악에 대해 잘 아는 티를 너무 냈다. 다른 서술에 비해 지나치게 공을 들여서, 음악에 관한 대목만 고해상도라는 느낌이다. 사실 딱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부분을 지나고 나면 나머지 부분이 어쩐지 빈해 보인다.

 

거기 말고도 이렇게까지 한다고- 싶은 곳이 있었다. 아마 누군가에게는 견딜만한 불쾌감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불쾌감일 수도 있겠다. 어떤 놈에게는 쾌감일지도 모르고, 또 어떤 이에게는 견딜 수 없는 상처를 환기하는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나라면 그렇게 쓰지 않았겠지만, 그래서 너도 그렇게 쓰지 말아야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려고 힘쓴 모양인데, 내 생각은 뜻밖에도 작품 자체에 계속 머무른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지 싶긴 했다.

 

모호하고 형태가 없는 불안은 이름이라는 윤곽을 얻음으로써 극심한 공포로 변모한다. 그것은 명료한 형태를 갖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해질 때마다 배로 증가하고 가속화된다. 두 살인 사건에서 범인이 명함 대신 남긴 쪽지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 치졸한 문장과 이성이 헤아려지지 않는 글자는 오히려 치밀한 두뇌에서 엮어 낸 범행 성명문보다 읽는 사람의 생리를 더 자극했다.

  고테가와는 서명이 없어도 그 기사를 누가 썼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그 기자는 늦은 밤거리를 배회하는 범인을 현대 사회의 병리에 침해당한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한편 그 병에 걸린 자에게 이런 이름을 붙였다.

  ‘개구리 남자라고.

_ 나카야마 시치리,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94. 철학의 슬픔

문성원 지음 / 그린비 / 2019

 

2회독.


레비나스를 알아볼까 하는 비전공 철학 꼬꼬마들은 문성원 선생님을 피해갈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판매지수가 망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철학의 슬픔이 아닐 수가 없다. 호퍼의 철학으로의 외도를 전면에 배치한 표지도 예쁘고 좋았는데. 레비나스에 대한 입문서로 읽기도 좋지만, 철학-윤리-정치 에세이로 읽어도 좋다. 문성원 선생님이 글을 원체 잘 쓰시니까.

 

우리가 파악하는 세계는 우리 자신의 자리를 포함한다. 그 자리로부터 우리는 세계와 관계한다.

_ 문성원, 철학의 슬픔

 

 

 

--- 읽는 ---

책에 바침 / 부르크하르트 슈피넨

춘추전국 이야기 1 / 공원국

가벼운 영어 / 가벼운학습지

홉스 / 리처드 턱

처음 읽는 브뤼노 라투르 / 아네르스 블록, 토르벤 엘고르 옌센

사회주의 페미니즘 / 낸시 홈스트롬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 / 나카야마 시치리

매일 갑니다, 편의점 / 봉달호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 / 사쿠라기 시노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 토머스 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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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03-23 1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님 방가^^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는 와중에도 연애 전선에는 이상 없음을 넘어, 무사태평하다니. 아. 이 봄날 syo님 연애 꽃은 만발하겠군요. 즐기시라~~~~^^ 안도현 담아가요. 근데 식상하고 진부한 책은 왜 읽으심?? 딱 봐도 진부해 보이는데 ^^;;;

syo 2021-03-23 12:12   좋아요 1 | URL
백수에다가 에너지를 쏟을 곳이 연애 말고는 딱히 없어서 그런가 연애는 늘 무사태평따끈뜨끈합니다. 즐겁고 즐기지요 ㅎㅎㅎㅎ

식상하고 진부한 책을 읽는 이유는 아무래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일까요?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3-23 1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개구리 남자 읽고 있어요. 무사태평한 하루 한 주 한 달 일 년 보내시길ㅎㅎ

syo 2021-03-23 12:13   좋아요 2 | URL
오, 개구리남자. 저는 후속편 읽고 있는데, 전편이 나은 것 같아요.
할 때는 좀 심심한 것 같아도 돌아보면 무사태평이 늘 최고입니다.
반님도 봄과 어우러져 늘 무사태평하시기를.

독서괭 2021-03-23 11: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이번 글 1-3 모두 매우 공감합니다. 2번은, 과학은 아니지만 이번 램지어교수 사건이 떠오르네요. 일본 자본으로 연구하는 사람의 위안부연구라니 결론이 너무 뻔하지 않나요..
나쁨의 총량 보존. 크.. 설득력 있습니다.
오늘도 책 세권 잘 담아갑니다~^^

syo 2021-03-23 12:16   좋아요 2 | URL
다 공감하시다니, 독서괭님도 염세괭님이셨군요....
쓰면서 램지어 사건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너무 전형적이고 뻔한 구도라 오히려 무시하게 되었네요. 쓰레기 같은 짓이었지만 오히려 온 세계의 주의를 환기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사건이었네요.

scott 2021-03-23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요님 봄날에 연애?? 추카~*추카~*

syo 2021-03-23 12:17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ㅋ 제 연애는 지난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계속 진행중이었습니다.
스캇님의 3계절 늦은 축하 감사히 받을게요 ㅋㅋㅋ

미미 2021-03-23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잘 쓰시는 거예요? 출간 준비 하시는 거 맞죠? 그래야 하는데! 🤔 작년에 뿌린 실망 올해도 풍년..하🍻

syo 2021-03-23 12:20   좋아요 2 | URL
출간 준비라니 웬말씀이세요 ㅋㅋ
알라딘에 지금 출간 시급한 글쟁이들이 얼마나 많아요.....
저는 나무의 복지와 건강을 위해 부질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환경과 생태 쫌 아는 30대거든요.

새파랑 2021-03-23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은 다양한 분야에 독서량이 엄청나시네요^^ 대단~!

syo 2021-03-23 12:22   좋아요 2 | URL
얇은 책 많이 읽고 후딱 까먹는 전략입니다.
그 전략 덕분에 이제껏 적지 않은 책을 읽고도 뭐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오늘날의 syo가 될 수 있었답니다!
..... 그래서 아무래도 이런 짓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ㅎㅎㅎ

북다이제스터 2021-03-23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뤼노 라투르> ... 저도 근래 알게되어 찜해 놓았는데 반갑습니다. ^^

syo 2021-03-29 12:53   좋아요 0 | URL
라투르 좋지요!
나름 ‘최신‘ 사상이라 힙하기도 하고....
네, 저는 사실 힙해보이려고 라투르 읽어요 ㅋㅋㅋㅋㅋㅋ

뒷북소녀 2021-03-23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기 없는 에세이>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품절이네요.ㅋㅋ

syo 2021-03-29 12:54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정말 좋은 책인데 품절이네요.ㅠ

공쟝쟝 2021-03-25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설득되는 나쁨의 총량... 환멸의 총량... 실망의 총량...총량의 총랴...ㅇ...

syo 2021-03-29 12:55   좋아요 0 | URL
설득력 총량의 법칙에 따라서, 평소 설득력 없는 말을 일삼아오다가 이번에 설득력을 몰빵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