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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 젖은 땅 -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유럽 ㅣ 걸작 논픽션 22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신
인편으로 보내주신 차는 잘 받았습니다. 서찰에 말씀하신 것보다는 조금 늦게 도착하여 답신이 이리 늦었습니다. 염려해주시는 덕분에 아내의 건강에도 조금씩 차도가 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보고서 건과 관련해서 위원장님 면담을 수차례 신청했지만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편집 회의를 한번 더 열 수 있을까 해서 찾아뵌 것입니다만, 위원장님이 제 면담 신청을 거절하는 제가 모르는 이유가 혹시 있겠습니까? 제가 듣기로, 최종 편집 회의에서 결정된 편집 방침은 전임 편집장 토마슈 씨가 극렬히 반대하였음에도 관철되었고, 그 이유로 토마슈 씨가 사퇴한 자리에 후임으로 제가 추천된 것이라던데요. 물론 저도 정해진 편집 방침이 있음을 알고서 수락한 것이긴 하지만, 편집장인 제가 단 한 번의 편집 회의에도 참여하지 못한 상태에서 보고서 작성을 지휘하는 것이 과연 온당하겠습니까. 근거 자료 확정 시한은 점점 다가오는데, 이대로라면 그냥 묻혀버리고 말 아까운 자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개별 증언의 비중을 높이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하겠습니까? 대중에게 일부라도 공개하는 방향은요? 토마슈 씨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지금의 편집 방향 아래에서는 보고서 작성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모든 게 불가능하다면, 지금까지 모아놓은 자료들만이라도 공개하여 다른 형식의 책이 출간될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 그거라도 해야지요. 반드시 말해져야만 하는 것들이 형식과 입장에 재갈 물려 침묵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우리가 두고만 봐야 한다면, 결론적으로 우리가 저들과 다를 게 무엇이겠습니까.
편집 회의 개최가 어렵다면 선생님께서 고문 자격으로 저 대신 위원장님께 의견을 전달해주셨으면 합니다. 시일이 촉박합니다. 급한 대로 몇 개의 녹취록을 첨부합니다. 손에 닿는 대로 골라낸 것입니다. 요청하시면 자료는 더 보내드리겠습니다. 많습니다. 그리고 면담 결과가 나오면 최대한 빨리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아내의 요양 겸 같이 떠나기로 한 휴가처는 위원회 본부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정했습니다. 사실 휴가라는 것 자체를 즐길 수가 없는 마음입니다. 선생님의 답신에 따라 가닥이 잡히겠지요. 봉투에 적힌 주소가 저희 부부의 휴가처입니다. 모쪼록 선생님께서도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녹취록 1
내 아버지는 소위 말하는 부농이었어. 부농. 나는 아직도 그게 정확히 뭐였는지를 모르겠단 말이야. 분명 우리 가족에겐 땅이 있었고 가축도 몇 마리쯤 있었지. 곳간에는 우리가 먹을 곡식 말고도 다음 농사를 위한 종곡種穀도 있었고. 그렇지만 그게 다였어. 끼니는 놓치지 않았지만 끼니와 끼니 사이에 늘 배고플 정도로만 먹을 수 있었거든. 난 그게 늘 불만이었어. 그땐 알 수가 없었거든. 배고픔과 배고픔 사이에서 아주 잠깐이라도 배고프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냐고. 끝나지 않은 배고픔 같은 게 있을 수 있고, 그 끔찍한 게 곧 찾아올 거라는 것을 말이야.
부농이라고 낙인찍힌 내 아버지는 강제이주 명령에 저항하다가 재빠르게 처형당했지. 그때 마을엔 우리 집 것보다 곱절은 넓은 외양간에 가축을 가득 채우고서도 부농이 아닌 사람도 있었지만, 부농이라는 죄로 추방을 당했던 찢어지게 가난한 가장도 많았어. 부농인지 아닌지를 정하는 건 땅이나 가축이 아니라 사람이었거든. ‘트로이카’라 불리는 놈들이었는데, 그놈들에게는 사형이나 추방형을 마음대로 내릴 힘이 있었고, 우리에게 항소권 같은 건 없었지(64쪽). 많이 죽었어. 많이들 쫓겨났고. 내겐 형이 하나 있었는데, 아버지를 죽인 놈들이 그 자리에서 형을 강제노동수용소로 추방해버렸지. 무슨 짐짝처럼 기차에 실려 간 형은 벨로모르 쪽으로 운반됐고 거기서 운하를 파는 작업에 동원되었다나 봐(66쪽). 나중에 편지를 하나 받았는데, 거기엔 “무슨 일이 있든, 여기 오지 마. 우린 여기서 죽어가고 있어. 숨거나 차라리 거기서 죽어.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긴 오지 마.”라고 쓰여 있었지(75쪽). 형과는 그게 끝이었어. 아마 죽었을 거야. 선생도 알잖아, 수용소라는 데가 어떤 데인지.
나? 나는 끌려가지 않았어. 보시다시피 나는 다리가 불편하지. 이건 그때도 그랬거든. 그래서 위대한 트로이카 나리들이 보시기에 나는 신성한 노동수용소에 발탁될 만한 인재가 못 됐던 거야. 대신에 가축과 농기구를 싹 다 빼앗기고 집단 농장에 합류해야 했지. 우리 땅도 더는 내 것이 아니었어. 농장에는 당 관계자와 경찰 놈들이 득시글거렸고, 거지 같은 음식이나 주면서 그것조차 농장의 두목한테 받아먹으라더군(68쪽). 그 악마 같은 공산당 놈들은 이 세상에도 저세상에도 신 같은 건 없다는 천벌 받을 소리를 퍼트리고 다녔어. 그러니까 뭐 하나 우리 마음에 드는 게 없었던 거야. 그래서 우리는 싸우거나 도망쳤어. 싸우는 사람들은 총도 없이 용감했고, 폴란드로 도망친 사람들은 제발 폴란드가 우리나라를 침공해서 우리를 구해달라고 탄원할 정도로 용감했지(71쪽). 잠깐이지만 그게 먹히기도 했어. 모스크바의 스탈린이라는 작자가 집단 농장은 자기 실수였다고 말했다더군. 그놈은 무슨 하느님 비슷한 거였나 봐. 그의 말 한마디에 집단 농장은 생겨날 때처럼 빠르게 사라졌지. 우리는 가을밀을 수확했고, 다시 돌아온 우리 땅에 작물도 심었지(74쪽). 다 끝났다고, 짧은 지옥을 지나왔다고 생각했어. 진짜 지옥이 아가리를 벌리고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말이야. 겨울이 오자 죽은 줄만 알았던 집단 농장도 함께 돌아왔지. 놈들은 훨씬 교묘해졌어. 자영농들은 집단 농장에 합류할 때까지 무시로 세금을 두드려맞았고(74쪽), 강제추방으로 사람들이 사라지는 속도가 그전보다 훨씬 빨랐어(75쪽). 마침내 집단 농장 놈들이 종곡을 마음대로 쓸어갈 수 있게 되면서 우리 싸움도 끝났지. 생각해 봐. 땅을 지키고 가축을 지키고 농기구를 지켜서 뭣하겠어. 그 땅에 뿌리고 경작할 것들을 이미 다 뺏겼는데.
이런저런 일은 있었지만 30년 그해는 농사가 꽤 잘 됐거든. 여름 날씨도 유난히 좋았고. 대풍작에 가까웠지. 게다가 추방당한 사람들이 연초에 뿌려놓았던 밀을 남은 사람들이 거둘 수도 있었어. 문제는 공산당 놈들이 30년 생산량을 보고 31년의 징발량을 정했다는 거지(76쪽). 그건 정말 터무니없었어. 처음부터 우리는 모두 그게 안 될 일인 걸 알았어. 공산당 놈들조차 알았지. 하지만 우리가 나쁜 날씨와 해충, 추방의 위협과 싸워가며 일하는 동안 스탈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징발량을 맞추기 위해 종곡까지 거두어들이라는 거였어. 정말 미친놈만이 할 수 있는 소리였지. 그런데 그게 그렇게 되었어. 우리는 31년 말부터 제대로 굶주리기 시작했고, 32년이 되자 심을 곡식도 없었어. 32년 흉작이 31년 흉작보다 더 심해질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했지(77쪽). 카자흐스탄에서 100만이 죽었다는 소문이 들리더구먼. 하지만 스탈린은 굶주림 같은 건 없다고 계속 말하면 진짜 굶주림이 없어진다고 믿는 머저리처럼 굴었어. 지역 공산당원들은 그래도 우리가 굶고 죽어 나가는 걸 눈으로 봤으니, 위에다가 계속 그 상황을 보고했거든. 소용없었어. 스탈린은 그들에게 식량 대신 총살을 선물했지. 그때 그놈은 흑해 쪽에 있는 소치라든가 하는 곳에서 휴양을 즐기는 중이었다는데, 그 휴양지까지 스탈린이 타고 간 기차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그득했다고 하더라고(82쪽). 그런데 그놈의 열정적인 입은 휴가지에서도 쉬지를 않았나 봐. 또 스탈린이 뭔가 말했고, 그건 즉시 법이 되었어. 그 법이 말하기를, 우리가 수확한 모든 곡식은 나라 것이므로 우리는 식량을 소지하기만 해도 범죄자가 될 수 있었지. 그러니까 너무 배가 고파서 얼마 전까지 내 땅이었던 곳의 밭고랑에서 감자 껍질을 주우면 총살을 당할 수도 있었던 거야(84쪽). 밭에는 감시탑이 세워졌고 수색단원들이 식량 숨긴 게 있나 집집마다 샅샅이 뒤지고 다녔지. 그놈들은 데우고 있던 저녁 식사를 포함해서, 음식처럼 보이는 건 모조리 쓸어갔어(85쪽). 혼자 사는 여자들은 곡물 압수를 핑계로 밤마다 강간을 당하는 게 일상이었고, 일이 끝나면 식량까지 빼앗겼지(86쪽). 위대하신 스탈린 나리의 법과 나라가 거둔 승리란 그런 거였어. 하지만 그런 짓을 저지른다고 없는 곡식이 솟아나지는 않거든. 그 미친놈들이 그걸 몰랐을까?
스탈린의 입만이 모든 걸 죽이고 살리는 진짜 입이었지. 아니지, 살리지는 않았군. 우리가 굶어 죽고 있다는 말은 지어낸 이야기라는 소문이 실제로 굶어 죽어가는 우리 귀에까지 들어왔어. 우리 죽음이 사회주의의 적들이 펼치는 공작이라더군(88쪽). 글쎄, 그놈이 우리가 죽는 걸 직접 본 적이 없는 건 사실이지. 그러면 직접 본 놈들은 어땠을까? 공산주의자 놈들은 스탈린의 말과 자기가 눈으로 본 풍경을 어떻게든 일치시켜야 했지.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자신과 가족들을 굶기는 것으로 목숨 바쳐 사회주의를 해치려 든다는 결론을 내렸어(89쪽). 벌거벗은 임금님이 입지도 않은 옷을 입었다고 했고, 아랫것들은 그 옷이 너무나 화려해서 보이지 않을 정도라며 자신들의 아부로 그 옷의 존재를 증명한 거지. 그런 걸, 오, 제기랄, 이념이라고 부른다더구먼. 이념. 그걸로 배를 불릴 수 있었으니 그놈들은 그걸 한 거고, 우린 아니었던 거지.
그리고 미친 11월이 왔지. 1932년 11월. 잊을 수도 없어. 소련은 모든 잉여 농작물을 거둬가고, 곡물 할당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가축을 거둬가고, 그래도 목표량을 달성 못 하는 집단 농장은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한 달 할당량의 열다섯 배를 빼앗아갔어. 당원 놈들, 경찰 놈들이 떼로 몰려와서 가져갔지. 할당량을 달성하는 농장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결국 전부 다 가져간 거야. 한 번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식량 공급도 중단, 보급도 중단, 다른 지역과의 거래도 중단, 모든 게 다 중단이었지(91-92쪽). 그러니까 사는 걸 통째로 중단시킨 거야. 살려면 도망쳐야 했지만 그러기도 쉽지 않았어. 33년이 되자 국경은 봉쇄됐고, 농사꾼들이 도시로 가서 구걸한다고 도시도 폐쇄됐지. 우리에겐 장거리 기차표도 팔지 않았고. 도망치다 체포되면 고향마을로 이송되어 다시 굶어야 했어(94쪽). 자, 그리고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났겠어? 선생도 여기 그 이야기를 들으러 온 거잖아. 아니야?
1933년에, 우리는 다 죽었어. 반란, 도덕, 인간에 대한 관심 같은 건 모조리 사라지고 그 자리를 범죄, 광기, 무기력 같은 것들이 대신 채웠지. 그건 다 결국 죽음으로 가는 길이었어. 어떤 일이 있었냐고. 시체 위에 시체가 쌓이는 일이 있었지. 살아있는 사람들도 시체나 다름없었어. 걸어다니느냐 누워 있느냐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야. 봄에는 하루에 만 명씩 죽어 나갔어. 애어른 가릴 것도 없었지. 어떤 소녀에게 음식을 조금 나눠준 적이 있었는데, 이러더군. “이렇게 좋은 걸 먹었으니, 이제 행복하게 죽을 수 있겠어요.”(98쪽) 연못에서 낚시를 하다가 반 친구의 잘린 머리를 낚아 올린 남자애들도 있었어. 온 가족이 다 죽은 아이였지. 우린 궁금했어. 몸통은 어디로 갔을까? 정확히 말해서, 그걸 누가 먹었을까? 모르지. 하지만 그때는 그런 의문이 흔해 빠진 거였어(101쪽). 자기 자식을 죽이고 먹은 부모가 셀 수 없이 많았거든. 애들이 그 가족의 가장 약한 식구였으니까. 자신과 딸의 식사를 위해서 아들을 잡아서 요리하는 어머니라든가, 며느리를 죽이고 머리통은 돼지밥으로 준 다음 몸뚱이는 구워서 잔치를 벌이는 가족 같은 게 잔뜩 생겨났지(102-103쪽).
글쎄, 선생이 지금 한 말은 결국 나도 살아남으려고 사람을 먹었느냐는 질문을 점잖게 바꾼 거잖아? 이 집 문을 나서면 선생은 다시 나 같은 노인들을 들쑤시고 다니겠지. 그 자료인지 뭔지를 만들겠다고 말이야. 그렇다면 그 질문은 입밖에도 꺼내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군. 선생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수천 권의 책을 뒤져 꺼낸 가장 점잖고 멋진 말로 금칠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질문만큼은 하지 마. 알겠어?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이런 거야. 그런 시절에 살아남는 건, 배고픔을 견디는 게 육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뼈에 새기는 일이지. 선생, 인간이 어떤 동물인지 알아? 나는 지금도 그걸 잘 모르겠어. 아직 식인종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기도를 시작하지만, 기도가 끝날 때쯤에도 그럴 수 있을지 몰라서 기도하는 내내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있었지. 밀가루를 위해 몸을 팔지 않는 사람은 굶어 죽어야 했어. 훔치지 않는 사람도 그랬고. 시체를 뜯어먹지 않는 사람들은 시체를 뜯어먹는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갈 다음 시체가 될 운명이었어. 인육을 사고파는 시장이 생기는가 하면(104쪽), 자기 자식들을 먹기를 거부하고 죽어 자식을 고아로 만드는 부모나, 자기가 죽으면 자기 몸을 먹으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는 부모들도 있었어(105쪽). 혼란스럽지 않아? 뭐가 뭔지 선생은 이해할 수 있겠어?
우리가 괴물인 거야? 나는 1933년과 그 이후에 찾아왔던 크고 작은 지옥을 거치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평생을 묻고 또 물었어. 어제도 물었지. 지금도 묻고 있어. 그리고 내가 선생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래. 우리가 괴물이라면 우린 각자가 다른 괴물이었을 거야. 우리가 희생자에 불과했다면, 역시 마찬가지로 우린 각자 다른 희생자였어. 우리는 모두 지옥 같은 굶주림을 겪어냈지만, 그건 저마다의 지옥이었어. 백만 개의 죽은 지옥과 천만 개의 살아남은 지옥이 있겠지. 거대한 지옥을 처음 만들어낸 건 스탈린이라는 큰 악마일지 몰라. 하지만 그것을 겪어내고 엮어낸 것은 우리 각자란 말이야. 그런 건 스탈린이 죽고 소련이 무너졌다고 끝나는 게 아니야. 한번 열린 지옥문은 수십 년이 지나도 말끔하게 닫히지 않는 거거든. 선생은 그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 거야. 살아남으려면 다른 사람을 먹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수백만이 굶주려 죽어 나가는. 선생이 볼 때 그 시절이야말로 지옥에 가장 가까운 순간일 테니까. 그런데 과연 내게도 최악의 지옥이 그때 그 순간일까? 배고픔이 가장 심했던 때가 가장 괴로운 순간이었을까? 우리 옆집에 사는 노인에게는 어떨까. 그리고 또 그 옆집은? 선생, 선생이 만든다는 보고서인지 뭔지가 뭐 하는 물건인지 나는 잘 모르겠어. 좋은 일을 하겠다는 것 같긴 해. 그냥 이 말을 해주고 싶어. 나는 아무것도 대표하지 않아. 내가 겪었고 또 겪고 있는 지옥이 모든 지옥을 대표하지 않는단 말이야. 선생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다룰 건가. 쪼개고, 비슷한 것끼리, 시간 순서에 따라 묶은 다음 표지에 금박을 두른 두꺼운 책을 만들 건가? 지옥을 소화하기 쉽게 전시할 건가 이 말이야. 아니, 이건 그냥 묻는 거야. 나는 그런 건 그것대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대표하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러니까 내 이야기를 기록하려거든 내 이름도 적어가. 지금 선생이 들은 이 길고 지루한 지옥의 이름을 적어가란 말이야. 받아적게, 내 이름은…….
녹취록 2
술은 줄이는 중입니다. 완전히 끊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쉽지는 않네요. 나이도 있고, 이제 와 사는 모양을 바꾼다는 게…. 아, 오늘은 한 잔만 마셨습니다. 믿어주십쇼. 혀도 잘 돌아가고 이야기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겁니다. 저, 그런데… 이야기를 해 드리면 돈을 조금 받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사실입니까? 네, 네,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럼 시작하면 되나요?
그러니까 저는 1937년에 지역 내부인민위원회에서 활동했습니다. 맞습니다, 비밀경찰이지요. 알고 있습니다. 올바른 일은 아니었지요. 그땐 젊었고, 젊을 때는 쉽게 어리석잖아요. 그랬던 거죠. 생계가 달려 있기도 했고,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최선을 다하지는 않았습니다. 양심에 걸리는 일도 많아서…. 33년 그 대기근 때, 인민위원회 대표였던 발리츠키가 이 대규모 기아는 “폴란드 군사 조직”이라는 간첩 도당의 도발이라고 설명했어요. 그놈들이 우크라이나에 침투해 수확을 훼방 놓고 기근을 일으킨 다음 굶어 죽은 이들의 시체를 선전용으로 사용했다고요(166쪽). 그때부터 소련에서는 폴란드인 솎아내기가 시작되었죠. 35년, 36년만 해도 10만이 넘는 폴란드계 농민들이 추방당했어요. ‘폴란드 군사 조직’이라는 명분은 공산당 내부 권력 다툼에도 이용되었죠. 심지어 그 말을 만든 발리츠키조차 거기에 얽혀 축출되고, 예조프라는 사람이 권력을 잡았지요. 그리고 바로 그 사람의 손에서 37년의 ‘명령 00485호’가 태어난 겁니다(171쪽). “폴란드 군사조직의 간첩 연결망 완전 청산”이 그 명령의 목표였는데, ‘폴란드 군사 조직’의 실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예조프 말고는 누구도 모른다는 점에서 보면, 그건 일종의 박해 면허나 마찬가지였죠. 그래서 우리 같은 말단 장교들은 폴란드 계나 폴란드와 관련된 다른 소련인들, 폴란드 문화나 로마 가톨릭교처럼 폴란드라는 민족적 특성을 지닌 것들을 모조리 박해해야 했어요(173쪽). 심지어 시청의 옛 기록을 뒤져서 폴란드식 이름의 흔적을 찾아내면, 그걸 들고 그 사람을 박해하러 가는 장교도 있었죠(174쪽). 그때의 일은 끔찍해서,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지만….
저, 그런데 저도 인민위원회의 장교였지만 지금부터 말씀드릴 끔찍한 사건들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걸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물론 저라고 좋은 일만 한 것은 아니고 또 제가 한 일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지만, 어쨌든 저는 아니었어요. 저는 사람을 고문하지도 죽이지도 않았고, 그냥 죽은 사람을 묻는 일만 했었어요. 정말입니다. 맹세할 수 있어요…. 그, 혹시 한 잔 마시고 이어나가도 될까요? 이야기에는 지장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이게 아무래도 맨정신으로 하기 쉬운 이야기가 아니어서….
우리에겐 ‘자백 기법’이라 불리는 일종의 집단 고문 방법이 있었어요. 공공건물 지하 같은 데 폴란드계 용의자들을 잔뜩 몰아넣고는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한 명을 고문하죠. 고문받은 사람이 자백하면 다른 용의자들도 자백해서 고통을 피하고 싶어질 테니까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연루되어 있음을 밝혀야 고문을 멈췄으니, 결국은 집단 전체가 연루되었다는 증언을 빠르게 얻어낼 수 있는 겁니다(174쪽). 그렇게 받아낸 자백을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거기에 사형시킬지 수용소로 보낼지 우리 의견을 적어요. 그러면 그 보고서는 인민위원회 대표와 검사에게 올라가고, 그들은 또 그 보고서로 ‘앨범’을 만들어 모스크바로 보내는 거지요. 그러면 모스크바에서는 그 앨범들을 대충 훑어본 다음 예조프와 주 검사 비신스키의 이름으로 서명을 하는 겁니다. 승인은 거의 자동이었으니 결국은 용의자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건 최초 수사관이었던 거죠. 그렇게 하루에 2만 명의 사형이 확정된 적도 있었답니다(175쪽). 폴란드 문화나 가톨릭교에 대해 호의를 보이면 그게 곧 첩보 활동에 동참했다는 증거였지요. 경범죄도 경범죄가 아니었어요. 묵주를 가지고 있으면 수용소 10년형, 설탕을 충분히 생산하지 않으면 총살되기도 했죠. 예조프는 이걸 ‘폴란드 박멸 작전’이라고 불렀는데 스탈린에게 그 성과를 보고하자 그가 그랬다는군요. “아주 잘했어! 더 캐내게. 이 더러운 폴란드 쓰레기들을 싹쓸이해버리는 거야. 우리 소련을 위해서는 그놈들의 씨를 말려버려야 하거든.”(175-176쪽) 참 재미있는 말이죠. 수령이 신이 났으니 말단 장교들은 더 신이 날 밖에요. 네? 아, 제가 재미있는 말이라고 했나요? 죄송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슬픈 일이었어요. 슬픈 일.
네? 저요? 아, 저는 그저 보거나 들었을 뿐입니다. 저는 고문한 적도 총살에 참여한 적도… 보고서요? 아, 그게… 아, 그렇지, 저 같은 경우에는 좀 운이 좋았던 게, 제 주변 장교들이 워낙 열정적으로 당의 명령을 수행했던 터라 우리가 담당했던 지역에서는 늘 많은 수의 폴란드 간첩들이 검거되었거든요. 제가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할당량을 다 채울 만큼이었지요. 네? 아, 맞아요. 간첩이 아니라 희생자들이죠. 네, 네. 맞습니다…. 저기, 한 잔만 더 하겠습니다. 이거 참 목이 타네요…. 저는 언제나 저 무서운 일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었습니다. 정말입니다. 꼭 기록해주십쇼. 선생께서 어쩐지 저를 좀 의심하고 계신 것 같아서요. 저를 보시는 게…. 정말 제가 저지른 일이라면, 뭐가 자랑스럽다고 이 끔찍한 일들을 이리 상세하게 말하고 있겠냐고요.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사례비 더 받자고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니라니까. 다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이렇게…. 죄송합니다. 자꾸 술에 손이 가는군요. 어디까지 했더라? 아, 음.
작은 마을일수록 상황은 더 심했어요. 그런 곳에는 법적 절차 같은 게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인민위원회 전담반은 갑자기 들이쳐 현장을 포위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사람들을 고문했죠. 그리고 처형했고. 체포도 처형이나 마찬가지였고요. 체포된 사람들은 물에 던진 돌멩이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까(184쪽). 남편이 총살당하면 아내는 추방되고 자식들은 고아원으로 보내졌죠. 폴란드 아이들로 키우면 안 됐거든(185쪽). 38년쯤 되면, 이제는 그냥 우리 세상이었어. 모스크바에서는 그냥 서명만 하는 건데도 앨범이 처리되는 속도보다 도착하는 속도가 더 빨랐단 말입니다. 앨범 기법도 번거로운 일이 된 거지. 그래서 결국 해당 지역에서 서류를 검토하는 ‘특별 트로이카’가 생겨난 겁니다(186쪽). 이제 지역에서 앨범을 검토하고, 판결하고, 총살하고. 하루에 수백 건씩 사건을 검토하고, 모스크바에서도 포기한 밀린 일을 6주 만에 처리했거든. 6주 만에 몇만은 잡아냈을 걸? 그때 우리는 그런 마음이었는데, 뭐였냐 하면, 우리가 하는 일은 폴란드 간첩만 찾아내는 일이지만, 나중에 다른 소수민족 간첩을 색출하는 작전의 모델이 될 거라는 생각? 결국 그게 그렇게 됐지.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핀란드… 25만 명쯤 죽었다더군요(188쪽). 간첩이 그렇게나 많았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그 쓰레기들은 죽여도 죽여도…….
…아뇨, 아니라니까! 나는 죽이지 않았다고. 몇 번을 말해. 말실수야. 술 마시면 누구나 흔히 할 수 있는…. 뭐야, 당신이 뭔데 자꾸 그런 눈으로 나를 봐. 뭐? 내가 죽였다고 누가 그래? 푸줏간, 푸줏간 그 새끼로군! 거짓말! 그 새끼는 거짓말쟁이에 폴란드 놈이야! 만약 내가 누굴 죽였다면, 그건 그놈들이 진짜 폴란드 간첩이어서 그랬던 거라고…. 그래, 그래서 그랬어. 다 인민을 위해 한 일이었어. 나 같은 사람이 대신 피를 묻히지 않았다면 소련은 진작 무너졌을 거야. 나치 놈들이 폴란드 것들한테 업혀 들어와 모스크바까지 집어삼켰을 거라고. 폴란드 놈들이 간첩이 아니었다고? 인민의 적이 아니었어? “폴란드 군사 조직”이란 게 없단 말이야? 아니, 그럴 수는 없지. 절대로 그럴 수는 없어.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뭐 하는 거야, 내 이야기 아직 안 끝났어. 가려거든 약속했던 그 푼돈 쪼가리를 내놓고 가라고! 약속을 지켜야지! 약속은 지켜져야 해! 약속을 어기는 놈들은 폴란드 새끼들이랑 마찬가지야. 전부 무릎을 꿇리고 미친개처럼 쏴 죽여야 한다고(165쪽). 돌아와! 돌아오라고!
녹취록 3
아, 그 자리에 자네가 발탁되었다는 소식은 들었네. 수집해 놓은 자료들을 자네한테 바로 보내려다가 마음을 바꿔 위원회로 넘겼지. 지금쯤이면 대강은 다 훑었겠군. 그래 어때, 일은 할 만한가? 나한테까지 증언을 들으러 올 줄은 몰랐지만, 자네라면 충분히 생각할법한 일이지. 내가 이래서 늘 자네를 좋아한다네. 그래서 더 복잡한 기분이야. 내가 아끼는 사람이 내가 박차고 나온 자리에서 내가 겪었던 감정들을 고스란히 겪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타까우면서도, 그래도 자네라면 내가 찾지 못한 해답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고. 그래, 그런 점에서 보면 이 대화가 자네에게는 자료가 되겠지만 내게도 어떤 열쇠가 될지도 모르겠어. 나는 그때 마주친 문제들과 아직도 씨름하고 있거든.
33년, 37년, 40년, 41년, 그리고 42년. 끔찍한 일들이 있었지. 물론 이 해들 사이에서도 사람들은 계속 죽어 나갔지만. 1400만이라네. 독일과 소련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점점 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와중에 죽어 나간 사람의 수가(671쪽). 우리가 블러드랜드라고 부르는 곳, 독일과 소련 사이에서 권력 열망이 역사적으로 중첩되면서 일어난 일이지(673쪽). 그들은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자신들의 선택을 두고 적들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웠고, 수백만의 목숨을 자신들의 정책이 필요하고 바람직하다는 걸 입증하는 데 사용했어(683쪽). 자네도 알겠지만, 이 길고 거대한 학살은 경제적 이해관계와 이념적 전제들이 서로를 보장해줄 때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었지(693쪽). 어떤가, 자네는 나치와 소련이 저지른 일련의 일들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난 말이 된다고 생각하네. 말이 되더란 말일세. 자료를 모으고, 거기서 도출되는 동기를 따라가다 보니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 옳은 선택을 했다는 게 아닐세.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길을 잃은 거니까. 옳지 않은 선택을 이해하게 되었단 말일세. 내가 스탈린이고 히틀러였다면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았겠지. 그건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일이야. 하지만 옳지 않은 선택을, 아니지, 절대 해서는 안 될 악의 극치에 가까운 그 선택을 이해하게 된 나는 과연 뭘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걸세. 차라리 그들이 괴물이었고, 그런 이유로 일정 집단의 사람들에게서 사람으로 여겨질 권리를 빼앗는(681쪽), 인간이라면 절대 하지 못할 일들을 그들은 서슴없이 저질렀으며, 그래서 내가 그들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면, 그랬다면 좋았을 걸세. 그랬다면 나는 스스로를 희생자와 동일시하며 범죄자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편리한 주장을 할 수 있었겠지. 우리가 블러드랜드의 범죄자들과 방관자들이 대면해야 했던 역사적 배경과 같은 배경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있었을 거란 말일세(701-702쪽). 바로 그게, 우리가 원하고 또 위원회가 이 조사를 통해 도출하려는 결론이 아니겠는가?
이런 고민에 사로잡혀 한동안 조사에 진척이 없자, 위원장이 나를 불러들였어. 그리고 말하더군. 숫자. 숫자 위주의 연구를 하고 숫자가 들어 있는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나의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투였어.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네. 머리 아픈 생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거든. 몇 주 후, 내 선에서 찾아낼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들여다본 후 나는 위원회에 1400만을 제시했네. 그러자 바로 다음 날 편집 회의가 소집되었지. 위원장은 그 어느 때보다 딱딱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어. 토마슈 편집장, 수고 많았소. 수고 많았는데, 그렇게까지 수고할 건 없었던 것 같소. 위원회는 전체 희생자 수를 900만으로 결정했거든.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 이건 시장바닥에서처럼 흥정할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말일세. 나는 대답했다네. 위원장님, 지금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위원장이 말했지. 편집장이 알고 모르고는 하나도 중요치 않소. 중요한 것은 숫자요. 아시겠소? 편집장이 알아야 할 것은 정확한 숫자가 아니라 숫자가 중요하다는 사실뿐이오. 하지만 위원장님,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오, 당신은 그렇게 해야 하고 그렇게 하게 될 것이오. 숫자가 중요한 이유는 숫자가 숫자인 동시에 정치고 외교이며 국익이기 때문이오. 이 건에 대해 더 길게 말하는 건 온당치 않은 것 같군. 사실 편집장이 찾아낸 그 숫자 역시 말과 글에 의존해 발굴한 것이 아니오? 그 숫자가 정말 실제 숫자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그 숫자라고, 편집장은 맹세할 수 있소? 그제야 나는 숫자를 말하는 것이 그 자체로 정치적 행위이며, 동시에 더 거대한 정치적 행위에 복무하는 요소 행위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네. 위원장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야. 나는 내가 조사한 자료를 통해 숫자를 말하겠지만, 그 숫자가 진짜 숫자라고 단언할 수는 없어. 나는 신이 아니니까 말일세. 그러나 내가 찾아낸 숫자가 외교적 목적이나 국가 수반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 커지거나 작아지는 일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뭐겠는가. 듣지도 않는 사람들을 향해 그 숫자는 내 숫자가 아니라고 계속 말하는 것 말고 내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숫자의 문제는 단지 그뿐만이 아닐세. 설령 내가 구한 숫자가 진리고, 거기에 하나의 정치적 더함도 뺌도 없는 상태로 세상에 드러난다고 해보세. 그렇다면 중요한 일이 다 이루어진 것인가? 물론 숫자는 중요하지. 하지만 숫자는 너무 중요해서, 우리가 숫자의 중요성을 말하면 말할수록 우리는 숫자에서 멈춰서게 될 걸세. 숫자에서 슬퍼하고 숫자에서 분노하면 그 숫자를 이루는 사람들에게 가야 할 것들은 어디서 다시 가져오겠는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숫자라면, 숫자에게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이냐는 말일세. 알겠는가?
그래서 나는 그 일을 관두었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네. 친구여, 나는, 말도 안 된다고 외치는 일, 외치고 또 외치는 일(681쪽) 말고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