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언젠가는 바닷가에 닿는

 

 

 

한 문장이 필요해서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경우.

 

읽은 책을 자꾸 다시 읽게 만드는 문장은 읽는 사람의 마음속 조용한 바닷가를 적시는 파도처럼 너무 가까이 오지도 너무 멀리 가지도 않고 초연히 늘 거기에 있다. 어떤 시절 어떤 곳에서 궁리하던 나와 만나 나에게 안긴 문장이다. 그저 내게 아름다우므로 점점 내게 더 아름다워지는 바닷가처럼, 모두에게 특별하지 않아서 내가 더 특별하게 여길 수 있는 말이 있다. 그것은 이성의 영역도 감정의 영역도 아니어서, 우연과 기억과 시간, 그 질량 없는 것들이 막막한 질량으로 잡아당기면 밀물과 썰물은 여지없이 인다. 오래 찾아가지 않은 바닷가의 파도 소리는 그렇게 조금조금 커지다, 어느 날, 찾아가 다시 만나지 않으면 안 될 깊은 소리가 되어 안으로 울린다. 그럴 때 돌아가 앉아 고요히 바라보면, 오래 만난 문장은 처음 만난 문장 같기도 하고, 오래 짊어지고 살아온 내가 처음 만난 나 같기도 해서, 파도 소리 잠잠히 잦아들 때쯤 엉덩이에 묻은 모래를 툭툭 털며 일어서는 나는 조금 더 부드럽고 조금 더 힘 있는 내가 되는 것.

 

자꾸 다시 읽는 한 문장은 한 권보다 크고 깊다.

 

 

 

--- 읽은 ---

 


152.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금정연 지음 / 어크로스 / 2017

 

- 일독(170821)

- 재독(210503)

 

아무리 기본값이 잡글이어도 알라딘에서 놀려면 어떻게든 책 이야기를 하긴 해야 하지 않는가. 읽는 건 즐기지만 읽은 걸 이야기하는 데는 아무래도 소질이 없는 syo가 알라딘에 발을 붙이던 시절에 많이 하던 고민이다. 그때 많이 참고했던 게 금정연 선생님. 기회 될 때마다 말하지만 syo의 최초 목표는 보급형 금정연, 금정연 이미테이션 금정역같은 게 되는 거였다.

 

그런 선택을 한 것은 당연히 금정연 선생님의 글에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애매한 독후감의 세계에는 안 읽고서 읽은 것처럼 쓰기도 있고, ‘읽고서 안 읽은 것처럼 쓰기도 있다. 하지만 이 영역의 최고봉은 바로, ‘안 읽고서 읽은 것처럼 쓴 건지 읽고서 안 읽은 것처럼 쓴 건지 헷갈리게 쓰기. syo는 늘 그런 경지를 추구했다. 빗대어 말하자면, 잘생긴 애와 안 잘생긴 애보다 더 신경 쓰이는 애가 바로 잘생겼는지 안 잘생겼는지 희한하게 모르겠는 애인 것이다.

 

물론 거어어어업나 잘생긴 애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이건 우주의 섭리다.

 

이 책 독후감을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뿌듯하다. 쓴 내가 봐도 안 읽고서 읽은 것처럼 쓴 건지 읽고서 안 읽은 것처럼 쓴 건지 헷갈린다. 내가 이걸 읽었던가?

 

요약하면 멋쩍어지는 일들이 있다. 이 문장은 두 가지 뜻으로 읽힌다. 제법 그럴싸해 보이지만 요약하고 보면 멋쩍은 일이라는 의미로. 도는 요약이라는 행위 자체를 멋쩍게 만드는 일이라는 의미로.

  전자가 삶이라면 후자는 소설이어야 한다. 소설이다, 라고 쓰지 않고 소설이어야 한다, 라고 쓰는 건 여전히 많은 소설들이 삶을 요약하기 때문이다. 메인플롯과 몇 개의 서브플롯으로. 극적인 사건들의 연쇄로. 발단과 전개와 위기와 절정과 결말을 갖춘 이야기로. 그 끝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에피파니로. 이때 요약은 불가피하게 보인다. 모든 삶은 한권의 책에 담기에는 너무 길고, 긴 삶을 견디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이야기가 필요하니까.

_ 금정연,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153. 사진가의 기억법

김규형 지음 / 21세기북스 / 2021

 

에세이 장르를 줄기차게 읽는다. 사진이나 그림이 종이의 절반을 먹어들어가는 책, 한 줄로 이어 써도 채 한 줄을 다 못 채울 문장을 서너 줄로 나눠서 지면을 채우는 책도 꽤 읽는다. 그렇게 생긴 책들 가운데에도 좋은 녀석들은 종종 있다. 그렇지만 차마 좋은 책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녀석들이 대부분. 앞으로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한 줄로 끝낼 것이다. "내가 더 잘 쓴다." 그리고 그 한 줄을 쓸 때도 나는 결코

 

  내가

  더

  잘 쓴다.

 

이렇게는 쓰지 않을 것이다.

 

내가 더 잘 쓴다.

 

영원한 것은 없다.

하지만 그것을 오랫동안

간직하는 방법은 있다.

 

손에 사진기가 들려 있다면

당신은 이미 그 방법 하나를

알고 있는 셈이다.

_ 김규형, 사진가의 기억법

 

 

 


154. 200년 동안의 거짓말

바버라 에런라이크, 디어드러 잉글리시 지음 / 강세영 외 옮김 / 푸른길 / 2017

 

이번(그러니까 저번)달 책은 읽기 쉽고, 그래서 금방 읽어낼 거라고 예측했지만, 삶이 언제나 그렇듯 이런 일이 엎치고 저런 일이 덮치는데 심지어 그런 일들 밑바닥에 깔린 나의 게으름이 광대하여 결국 기간 내에 읽기는 실패. 이런 것이 인생이라고 늘 배우지만, 배워도 배워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라는 인간의 한결같음은 뭐랄까, 거짓말 같다. 200년이 지나도 낫지 않을 것 같다.

 

과학은 태도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진리를 향해 다가가는 사람들의 태도. 그 태도가 너무나 고결하여 과학이 밝혀낸 진리와 달성한 업적에 대한 존경은 곧 과학에 대한 존경으로 이어진다. 축적된 존경은 신앙이 되고, 과학이라는 말이 신봉의 대상이 되는 순간, 과학적 태도는 자취를 감추기 쉽다. 그건 과학의 잘못일까, 아니면 과학이라는 말을 이용하려는 일부 비과학적 과학자들이 추구한 사리사욕의 결과일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비과학적이지만 당시에는 과학의 이름을 내세웠고 그것이 과학임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논리체계가 있었다고 할 때, ‘그건 사실 과학이 아니었다는 선언은 오늘의 우리에게 손쉽고 깔끔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지켜지는 것은 과학의 태도가 아니라 과학사의 순수성일 뿐이다. 과학적 태도 역시 과학이라는 거대체제에 속하는 인물들이 지켜야 할 윤리학이지, 과학자들이 당연히 지니고 있는 존재론적 특성이 아니다. 과학은 과학 자체로 비과학적태도를 내포할 수 있고, 그런 사례는 널렸다. 자본이 과학에 가하는 영향력을 인정할 수 있다면, 과학적 전문가들이 인간으로서 지닌 편견이 그들의 과학에 미치는 편향을 인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과학 꺼지라는 게 아니라, 마침내 권위를 획득한 것들은 그 권위를 얻을 수 있도록 해주었던 자신의 가장 훌륭한 특성들과 정반대되는 행위를 하기 쉽다는 것이다. 신앙이 된 모든 것들이 대체로 그러했듯이.

 

한때 과학은 견고했던 권위를 공격했다. 그러나 새로운 과학적 전문가는 권위 그 자체가 되었다. 그의 업무는 무엇이 진실인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적절한가를 선언하는 것이었다.

_ 바버라 에런라이크, 디어드러 잉글리시, 200년 동안의 거짓말

 

그러나 젠더 관점에서 분석된 책을 읽어 놓고서는 젠더의 논점을 삭제하고 원론적이면서 추상적인 리뷰를 쓰는 것, 이 자체가 일종의 권력적 · 정치적 읽기다. 나는 내가 쓴 이 짧은 글이, 다른 맥락에서는 모르겠지만, 이 책의 평으로 여기 붙으면 유해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글이든 자체로 좋고 나쁘지 않다. 정치는 맥락 속에서만 작동하고, 맥락 속에서 정치는 반드시 작동한다. 알면서 왜 이 짓을 하고 있는가. 차라리 아무 말을 하지 말걸.

 

이게 남성으로서 겪는 여성주의 책읽기의 딜레마다. 당사자성이 없는 나는 늘 이딴 글을 써댄다. 이것이 한 책의 목소리를 침묵시키고, 그 책이 노고를 통해 타자의 수렁에서 건져낸 피해자들을 재타자화하는 쓰기가 아니란 말인가. 나는 점점 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지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곤란하다. 계속 길을 찾고는 있지만, 점점 더 멍청해지는 방향으로 가는 것만 같아서 겁이 난다. 멍청하게 똑똑한 인간은 최악이다.

 


 


155.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김재인 지음 / 느티나무 책방 / 2016

 

- 일독(17071x) / 재독(19223x)

- 삼독(210504)

 

실패란 처음에 의도한 목표와 내가 노력해 생겨난 결과가 어긋날 때, 목표에 이르지 못했을 때를 가리킵니다. 그 어긋남 때문에 사람들은 좌절하고 후회합니다. 후회는 결과에 비추어서 노력을 평가하려 할 때 생깁니다. 그때 그랬더라면,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거지요. 하지만 결과란 나의 노력과 우주의 조건이 어우러져서 생겨나는 법입니다. 내 노력이 바라던 결과를 낳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목표를 향한 노력이 원하는 결과를 낳지 않는 것이 존재론적 조건 아래에서는 오히려 정상입니다. 차라리 실패가 정상 상태라고 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노력하는 순간에 집중해야 합니다. 노력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결과가 나쁠지라도 최대한 노력하는 겁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때, 그 결과와 상관없이, 후회가 남지 않습니다. 후회란 노력에 대한 후회인데, 노력의 순간에 더할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노력과 결과를 분리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야 합니다. 노력은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무조건 수용하기. 그러고 나서 최선을 다한 또 다른 실험을 진행하기. 이런 것의 연속이어야, 이것이 삶이어여 하는 게 '운명애'의 진짜 의미입니다.

_ 김재인,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나도 나를 잘 알 수 없는 부분이 그렇다. 어떤 책을 읽을 때는 이건 너무 뻔한 문장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라는 이유로 혹평한다. 하지만 또 어떤 책을 읽으면서는 너무 뻔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특별하지 않은 글자들에 오래 머무른다. 그러면 안 되는 걸까?

 

그러면 안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깨닫는다. 나는 이렇게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나는 독서를 하는 나를 들여다보면서, 인간이, 최소한 나라는 인간이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동물임을 인정하게 된다. (나라는) 인간은 일관적으로 일관성이 없다. 일관성을 추구하고 노력할 뿐이다. 일관성은 존재론이 아니라 윤리학에 가깝다.

 

저 흔하고 뻔한 말이 오늘은 그냥 필요했다.

 

 

 

--- 읽는 ---

소크라테스 씨,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요? / 허유선

경제학의 모험 / 니알 키시타이니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 이유미

나의 칼이 되어 줘 / 다비드 그로스만

읽는 직업 / 이은혜

물리의 정석: 고전 역학 편 / 레너드 서스킨드, 조지 라보프스키

물리가 쉬워지는 미적분 / 나가노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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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05-05 1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쇼님이 그렇게 이야기 하시니 금정연님 책도 다시 한번 봐야게써요 (전 제목에 홀려서 돈 아까워했지만) 사서 읽지 않으니 흡족했더라는.
에런라이크 책은 그렇게 읽어도 되고 또 다르게 읽어도 될 것 같아요. 그러니 쓰신 문장 처럼 어떤 책을 읽으면서는 너무 뻔해서 눈길 안주는 글자들에 오래 머무르는 게 ㅡ 목적없는 책읽기가 주는 가장 목적없는 즐거움이고 그걸 알아버리고 나면 목적있는 읽기가 수월하지 않아지잖아요? 다시 돌아가서 한문장을 읽기위한 한권 읽기가 시간낭비처럼 느껴지는 것이 제 요즘 고민입니다. 서글프다.

syo 2021-05-06 01:08   좋아요 1 | URL
쟝님은 지금 일단 덮어놓고 많이 많이 집어삼킬 땐가 보네요.
그럴 땐 또 탐식하고, 목적이 생기면 그때가서 목적 독서 하면 되지요 ㅎㅎㅎ
시간 지나고 나서 보면 내 인생을 흔들었던 책들은 우연히 만났지만 목적을 가지고 읽은 애들이더라구요.

뒷북소녀 2021-05-06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리뷰라니! 저 읽고 싶어지잖아요.ㅋㅋㅋ
세상에... 철학, 경제학도 부족해서...물리학에 미적분이라뇨.
정말 대단하세요.

syo 2021-05-07 02:48   좋아요 0 | URL
대단할 게 하나도 없는 게,
휘적휘적 보는 거라서 완독 즉시 망각의 수렁에 돌입합니다.
보름쯤 지나면 완벽하게 까먹을 수 있습디다..... 😭


 

 

수비

 

 

 

내 몸이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몸에 맞춰서 생각을 계속 깎아내면서 살게 되기도 한다. 깎아낸 내 생각과 마음의 톱밥이 쌓이다가 바람에 날려 차마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가버리는 것을 알아채지도 못하고, 어제가 오늘과 같으니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같으리라 그저 짐작하면서. 그러나 어제의 나를 더듬는 것도 오늘의 내 손이어서, 오늘 내 손에 분포된 통점, 압점, 온점에 따라 어제의 내가 얼마나 아팠고, 얼마나 참았으며, 그 와중에도 얼마나 따뜻했는지가 측정된다. 아니, 결정된다. 그러니 어제의 내 마음을 정하는 것은 사실 오늘의 내 몸이다. 그래서 나는 어제의 내 마음을 사랑할 수 있는 오늘의 내 몸을 만들고 지켜야 한다.

 

마음이 마음의 마음이라면 쓰기는 마음의 몸이어서, 몸과 마음이 함께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듯 쓰기와 마음이 같이 단단해졌으면 하는 것이다. 넘치게 따뜻한 마음이라도 냉정한 몸짓에 부어 뚜껑을 닫으면 단열되기 쉬우니까. 다정한 생각에는 다정한 행동으로, 다정한 마음에는 다정한 표현으로 짝을 맞출 것. 따뜻하게,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게, 안기고 싶게.

 

말은 늘 쉽구나. 그럼에도,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어떤 힘일까? 나는 삶이 고통스럽거나 누군가의 불행 앞에서 무기력한 마음이 들 때 이 소설 속 빵집 주인이 건넨 한 덩이의 빵을 떠올리곤 하나. 어떤 의미에서 내게 소설 쓰는 일은 누군가에게 건넬 투박하지만 향기로운 빵의 반죽을 빚은 후 그것이 부풀어 오르기를 기다리는 일과 닮은 것도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오늘 아들을 잃은 부부에게 빵을 건네는 마음으로 허공에 작은 빵집을 짓는다. 젊은 부부에게 온기를 전하는 빵집 주인의 마음으로. 어딘가 있을 당신에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책들을 건네기 위해서.

_ 백수린, 다정한 매일매일

 

각자 즐거움을 연주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인간은 이 부조리한 삶의 희생자일 뿐이다. 유한한 삶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고통에 대한 두려움,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두려움이라는 병의 백신은 자신만의 즐거움을 연주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_ 이화열, 지지 않는 하루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울음을 참아온 그는 정작 자신이 그래왔다는 사실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 중 하나는 자기 자신이 슬픔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슬픔이다. 보라. 참는 사람은 늘 참는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대신 메뉴판에서 한 끼의 식사를 고르듯 적당한 미소와 웃음을 골라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그것들을 코르크 삼아, 울음이 치솟는 성대를 틀어막는다.

_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읽은 ---

 


148. 아무튼, 장국영

오유정 지음 / 코난북스 / 2021

 

그가 스스로 생을 마무리했던 때, 그때까지도 나는 그가 우리나라 사람인 줄 알았다. 워낙 영화에 관심 없던 어린 시절이기도 했고, 우리나라가 이렇게 슬픔으로 떠들썩하니 당연히 그 죽음이 외국에서 벌어진 외국인의 죽음이라고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이 장국영이나 주윤발을 흉내 내고 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 친구들은 대체로 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외계생물 성대모사에 몰두했다. 사람을 흉내 내는 애들은 WWE를 보며 레슬링 기술을 연마했다. 대학에 와서야, 그러니까 김경욱 선생님의 단편집 장국영이 죽었다고?를 읽고 나서야 장국영이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알게는 되었지만 장국영보다 김경욱 선생님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그때는 아직 syo가 소설가의 꿈을 꾸던 시절이었다.

 

세상에 나와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면서, 세상에 장국영이 죽던 날까지 그가 우리나라 사람인 줄 알았던 인간은 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우리 엄마도 장국영을 잘 알았다. syo가 여섯 살 적에 우리 집이 비디오 대여점을 했었다. 엄마는 장국영보다 주윤발을 더 좋아한다는데, 나는 그 두 사람이 그렇게 나란히 놓이는 게 온당한 상황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여전히 장국영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궁금한 것도 없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그렇다.

 

그건 오유정 선생님의 필력이 부족한 탓도 아니고, 장국영에 대한 선생님의 애정이 모자란 탓도 아니다. 나는 그냥, 내가 만지고 이야기 나눌 수 없는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깊고 오래도록 사랑하는 마음이 궁금하다. 누군가를 향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선명한 증거일 것만 같아서 그렇다. 모든 계절이 열일곱 번씩 다시 돌아오는 긴긴 시간 내내 잊지 않고 호명하는 이름을 품은 마음, 그 마음의 온도 같은 것.

 

춘하추동. , 여름, 가을, 겨울이 열일곱 번 지났다. 지금도 여전히 생각한다.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세월을 함께 살아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세상의 이런저런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때가 좋았지, 세상 참 많이 바뀌었어라며 SNS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랬다면 지금쯤 나도 SNS 계정 하나 정도는 운영하고 있지 않을까.

  春夏秋冬该很好, 你若尚在场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얼마나 좋을까, 그대가 여전히 함께 한다면

_ 오유정, 아무튼, 장국영

 

 

 


149. 죽기 전까지 걷고 싶다면 스쿼트를 하라

고바야시 히로유키 지음 / 홍성민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8

 

여러분 스쿼트를 하면, 전신의 근육을 단련할 수 있다, 체지방을 연소한다, 힘이 넘치고 활기차다, 허리 통증을 막아준다, 혈액순환이 개선되어 쉽게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 혈액순환을 향상해 냉증을 개선한다, 어깨 결림 목 결림이 사라진다, 치매를 예방한다, 자율신경의 균형을 조절한다, 면역력을 높인다, 상승효과로 더욱 건강해진다, 장을 움직여 변비에 효과적이다, 변실금을 예방한다, 요실금을 예방한다, 운동으로 몸에 작은 스트레스를 주면 건강해진다, 고 합니다! 대단하지요? 저자가 조금만 더 풍이 쎈 사람이었다면 저 리스트 뒤에 영생을 누릴 수 있다, 세계 평화가 찾아온다- 같은 것들도 붙는 게 아닌가 싶었다. 깨달음은 오히려 이상한 대목에서 찾아왔는데, 저렇게 어마어마한 효과들을 다 나열해서 결국 얻고자 하는 최종 지점이 바로 죽기 전까지 걷는 것이라는 뜻이잖아. 생각해보면 걸을 수 있을 만큼 신체 건강한 상태에서 자연사한다는 것은 큰 복인 것 같다. 아무래도 syo가 스쿼트를 하긴 할 모양이다.

 

 

 


150. 읽자마자 수학 과학에 써먹는 단위 기호 사전

이토 유키오, 산가와 하루미 지음 / 김소영 옮김 / 보누스 / 2021

 

그야말로 사전이라, 이걸 다 외울 수는 없겠다. 읽는 책이라기보다는 두는 책이라는 뜻이다. 두고 쓰면 좋겠지만, 사실 검색하면 다 나오는 정보라서 이 책은 두고 쓰라고 냈다기보다 단위 자체를 더 쉽고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책에 가깝다. , 두는 책이라기보다는 읽는 책이라는 뜻이다. 이게 이 책의 딜레마다…….

 

하지만 요런 어딘지 모르게 귀여운 그림들이 잔뜩 있다. 헤헤.



 

  


151. 글쓰기가 만만해지는 하루 10분 메모 글쓰기

이윤영 지음 / 가나출판사 / 2020

 

나도 싫은 글과 좋은 글이 있다. 싫은 마음은 글의 형식이나 문장의 허접함에서 찾아오기도 하지만 대체로 쓰는 이의 편협함에서 온다. 자기가 편협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편협한 글을 쓴다. 자기가 자기를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못지않게 편협한 글을 쓴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방법, 시작한 글쓰기에 추진력을 붙여나가는 방법을 설명하는 책에다 아무 상관없는 평을 붙이는 게 썩 온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써나가다 보면 알게 된다. 글쓰기의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태도라는 것을. 타인을 대하는 태도만큼이나 자기를 대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고들 한다. 종종 그렇다. 빻은 날엔 빻은 줄 모르고, 혐오할 땐 혐오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 책 이야기는 안 하고 지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는구만……. 죄송합니다. 제목이 곧 내용입니다. 상세한 도움이 필요하신 분은 읽어보시기를. 꼼꼼한 30일짜리 커리큘럼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완벽한, 그것이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세상에 100% 완벽한 것은 없다. 단지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는 마음만 있다. 완벽한 것을 찾기보다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는 자세, 그것이 즣은 글을 쓰게 하는 태도다.

_ 이윤영, 글쓰기가 만만해지는 하루 10분 메모 글쓰기

 

 

 

--- 읽는 ---

200년 동안의 거짓말 / 바버라 에런라이크, 디어드러 잉글리시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 금정연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 김재인

법학 입문 : 민사법 1 / 김해마루

논리적 생각의 핵심 개념들 / 나이절 워버턴

베르그손 / 황수영

아무튼, 연필 / 김지승

물리의 정석: 고전 역학 편 / 레너드 서스킨드, 조지 라보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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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03 11: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어제의 내 마음을 정하는 것은 오늘의 내 몸이다. 캬~♡🍶
2.빻은 날엔 빻은 줄 모른다 하..😇

syo 2021-05-03 20:12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 운동해야 합니다, 운동.....

반유행열반인 2021-05-03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선의 수비는 공격! 이라던데…(왜 이게 생각난 것인가…그래서 난 늘 어디서나 선빵?을 날리는 걸까요…ㅋㅋㅋ)

syo 2021-05-03 20:12   좋아요 2 | URL
반님은 역시 공격수 스타일이죠.
하지만 수비도 하실 땐 잘 하실 것 같은데?

모운 2021-05-03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빻음도 혐오도 소중했구나가 되잖아

syo 2021-05-03 20:13   좋아요 1 | URL
아닌데? 하지만 이제 뒤돌아 보니, 우린 빻고 서로 혐오를 했구나~ 가 되는데?
 

 

좋(지 않)은 글과 그렇지 않은 글쓰기

 

 

1

 



피에 젖은 땅의 리뷰 기한을 겨우 맞출 수 있었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참 힘든 시간이었다. 길게 고민했고, 길게 썼고, 길게 힘들었다. 다 쓰고 나니 진이 빠져서, 즉시 그날 하루를 덮어버렸다.

 

 

 

2

 

1등을 노린다고 반 장난으로 떠들어댔고, 다정한 친구들도 너야말로 내 마음속의 1등이라며 아낌없는 오구오구를 주었지만, 솔직히 syo는 한 번도 1등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건 리뷰가 아니기 때문이다.

 

리뷰라는 단어가 어떤 글쓰기를 가리키는지에 대해 독서가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게 사람마다 미세하게 다르겠지만, 그렇다고 널리 받아들여지는 합의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syo가 쓴 글은 syo의 개인적인 분류법 속 리뷰라는 장르의 형식에 맞아들어가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봐도 그럴 것이고. 그래서 저런 글은 늘 형식에 대한 어떤 도전이 된다. 그런 시도 자체를 높이 살 수도 있겠지. 그런 뜻을 품었다면. 하지만 나는 특별히 뭔가에 도전하고 싶지 않았다. 틀을 깨려는 과분하다 못해 과도한 의도는 없었다. 나는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내가 쓰고 싶은 모양으로 썼고, 그건 늘 내가 하던 일이다. 개인적인 일이다.

 

전에도 이런 식의 리뷰를 써서 크게 망한 적이 있다. 그때 쓴 글도 거의 단편소설 한 편 분량이었다. 며칠을 그 글에만 매달렸다(그리고 그 글은 지금 봐도 잘 된 글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 혹은 그 이상이었다). 솔직히 그땐 지금보다 욕심을 좀 더 냈고 막 1, 2등짜리 김칫국을 마시기까지 했지만, 입선도 하지 못했다. 입선하면 책갈피를 줬다. 그건 받을 줄 알았는데. 그 이후로 김초엽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는 눈을 매섭게 뜬다. , 나한테 책갈피조차 안 줬단 말이지? 이러면서.

 

같은 이유다. 리뷰 대회에 리뷰의 형식에 걸맞지 않은 글을 내기로 작정했을 때부터, 내가 출판사라도 이런 글에 1등을 줘서 괜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진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말해놓으면 마치 내가 못 써서가 아니라 형식 때문에 못 타는 거라며 물타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게 그 말이다. 못 쓰는 것이다. 리뷰처럼 못 쓰기 때문에 리뷰 같지 않은 리뷰를 쓰는 것. 그건 비단 리뷰 대회에서만이 아니라 syo의 알라딘 서재 활동 전체를 관통하는 제일 큰 질문이다.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여 만들어진 공간에서, 개인사, 잡소리, 개똥철학으로만 점철된 리뷰와 페이퍼를 써대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며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

 

 

 

3

 

피땅 리뷰를 쓰려고 아등바등하던 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2021년 들어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은 구간이었다. 이런 증언록 형태의 글을 쓰려 한다고 여자친구에게 말했을 때, 그녀의 입에서 제일 처음 나온 말은, “, 가능하면 피해자 목소리는 흉내 내지 않는 게 좋겠다.”였다. 바로 그게 처음 컨셉을 이렇게 잡은 직후부터 계속해서 나를 몰아치고 괴롭히던 문제였다. 두드려맞은 것처럼 놀랐지만 동시에 이런 말을 하는 여자를 만나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아무것도 겪지 않았으며 그들이 그들 자신과 세상에 대해 어떤 마음인지 그들의 말을 듣지도 못했다. 내가 그들에 대해 쓸 자격이 있을까? 있다고 해도, 그들의 목소리를 흉내낼 자격까지 있을까? 그런 자격이라는 게 세상에 있나? 있다고 해도, 그걸 적립금을 주는 리뷰 대회에 참가하는 데 함부로 쓴다고?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기 위해 내가 가장 잘하는 방식을 택하는 사람은 용감하고 현명하다. 그러나 내가 가장 잘하는 걸 하겠다고 할 수 없는 일을 하려 드는 짓은 종종 무심한 폭력이 된다.

 

실제로 한 문장 한 문장에서 제동이 걸렸다. 한 줄을 쓰고 벌떡 일어나 집안을 빙빙 돌아다녔다. 다시 주저앉아 두 줄을 쓰고 또 벌떡 일어났다. 한 단락을 다 쓰면 집 밖으로 나가 산책했다. 빙빙 돌아다닐 때도, 산책 중에도, 계속 생각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를.

 

좋은 글일 수는 있다. 하지만 좋은 글쓰기는 아니었다.

 

 

 

4

 

감히 말할 수 있는 건 이거다. 내가 보통의 리뷰를 썼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고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블러드랜드 피해자들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는 미친 헛소리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장 사이사이에서 생각했고 문단 사이사이에서는 더 오래 생각했으므로, 나는 이제껏 내가 해왔던 그 어떤 독서에서보다 더 오래, 깊이, 아프게, 등장인물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래서 내 눈에는 내가 써서 올려놓은 활자의 무게가 이전과는 달리 보인다. 글을 쓴 내 눈에만 발견되는 문장의 하중.

 

좋은 글이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좋은 글쓰기였다.

 

 

 

5

 

실은 자체적으로 단점이 많은 글이다. 분량 조절에 실패했다. 사실 책의 가운데 부분을 증언하는 증언자가 하나 더 있었지만 분량 문제로 삭제했다. 최종적으로 A4 여덟 장짜리 글이 나왔고, 그게 세 장 뺀 것이다. 어조가 성글다. 구어체다 보니 어미를 계속 순환하면서 써줘야 했는데, 했지, 했어, 했더군, 했더구먼, 뭐 이렇게 몇 개 돌리다 보니 쓸 수 있는 게 없어서 곤란했다. 비밀경찰 역할을 맡은 배우는 연기력이 부족했다. 인터뷰 중에 계속 술을 마시다가 결국 취해 가지고 어떤 울분을 드러내게 하려는 의도였지만 갑자기 급발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필력이 딸려서 그랬다. 멀었다.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어디로 가려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거기가 참 멀다.

 

 

 

6

 

다른 분들이 쓰신 것을 훑어보았는데, 1등 후보로 세 분 정도를 점치고 있다.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내가 찍은 그 세 분이 1등과 2등에 다 포진되어 있다면 뭔가를 인정받은 기분이겠다.

 

 

 

 

--- 읽은 ---



143. 심신 단련

이슬아 지음 / 헤엄 출판사 / 2019

 

이슬아 선생님도 고민이 많은 것이다. 한낱 잡글 쓰는 syo조차도 틈만 나면 글쓰기란 무엇인가, 쓰기란 무엇인지? 쓴다는 건 산다는 것인가 싼다는 것인가, 이러면서 데굴데굴 구르는데, 글쓰기와 그를 둘러싼 활동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선생님의 고민은 오죽할까. 어쩐지 이슬아 수필집보다 더 묵직한 느낌이 드는 건 아무래도 그런 고민의 질량이겠지. syo는 전작이 조금 더 귀엽고 그래서 조금 더 좋지만 그건 내 취향의 문제고, 선생님의 글은 선생님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이겠다. 나는 늘 이슬아 선생님을 응원하는데, 실은 나나 좀 제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알아서 잘만 살고 계신다. 여전히 잘 쓰고 계신다.

 

폐에 관을 꽂은 하마가 높은 침대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프지 않은 쪽의 팔을 뻗어 내 이마를 만졌다. 익숙한 손에 쓰다듬어지자 나는 속수무책으로 잠들었다. 아픈 애보다 먼저 잠다는 것에 대해 해명하고 싶었다. 나는 정말 잘 먹고 잘 자야 된다고. 그래야 내일도 지치지 않고 즐겁게 병원에 머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너무 졸려서 입이 안 열렸다. 집에서처럼 하마가 나를 재워서 병원인 걸 까먹은 채로 잤다. 우리는 적당히 서로의 언덕에 기대어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_ 이슬아, 심신 단련

 




144. 열과 엔트로피는 처음이지?

곽영직 지음 / 북멘토 / 2021

 

이 책에 대해서 이 책의 제목보다 더 잘 설명하긴 어렵겠다.

 

과학 장르에 뛰어들기 위해 시동을 거는 중이다. 일단 물리부터. ~는 처음이지? 시리즈, 그리고 그와 유사한 제목들을 단 여러 귀요미 책들을 읽으면서 몸에 물을 묻혔다. 이제 슬슬 연습장과 연필을 손에 들어야 할 시점이 오는 것 같다. 과학 공부, 수학 공부는 결국 그렇게 귀결이 되는 게 아닐까?

 

 

 


145. Chaeg 2021. 4

()(월간지) 편집부 지음 / ()(잡지) / 2021

 

이 잡지에 대해 평을 남길 때마다 나는 전지윤 선생님 이야기를 한다. 대단하다. 매달 세 편 정도의 아동도서 리뷰를 싣고 계시는데, , 대단하다.

 

평범한 일상이 송두리째 뒤집히는 것을 실감하며 돈을 바라보는 관점도, 또 돈을 버는 방식도 점점 변하고 있음을 직시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많은 돈을 갖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드려보고자 합니다. 왜 그토록 많은 돈을 갖고 싶은 것입니까? 그 돈을 어디에 사용하고 싶은 것입니까? 그것은 당신의 행복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습니까?

_ Chaeg 2021. 4

 

 

 


146. 횡설수설하지 않고 핵심만 말하는 법

야마구치 다쿠로 지음 / 김슬기 옮김 / 유노북스 / 2021

 

원체 다변인 편에, 했던 말에 약간의 변주를 줘서 하고 또 하는 스타일이다. 친구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혓바닥의 진동수를 감쇄시키고 싶은 다른 입장도 있을 것이다. 이해할 수 있다. 나도 우리 과장님이 그랬으니까. 과장님은 늘 똑같은 말하기를 구사했는데도 회사 안에서는 그게 엄청 별로인 반면, 껍데기 집에서는 또 괜찮았다. 그러니까 이런 기술은 필요하다. 똑같은 사람이 모든 자리 모든 입장에서 한 가지 말하기를 고수할 필요는 없다.

 

물론 최악은 회사에서 껍데기집처럼 말하고, 껍데기집에서 회사처럼 말하는 사람이겠지만.

 

현재 당신의 인생은 당신이 지금까지 받아들인 모든 정보를 요약한 결과입니다. 어느 학교에 갈지, 어떤 직업을 가질지, 어디에 살지, 누구와 결혼할지, 무엇에 돈을 쓰고 투자할지, 어떤 가치관을 중요하게 여길지 등 하나하나가 모두 요약이고 그것을 집대성한 것이 바로 당신의 인생입니다. 이 책을 손에 든 일도 빼놓을 수 없겠죠.

지금은 초정보화 사회입니다. 멍하니 있으면 맹렬하게 덤벼드는 정보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한순간에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됩니다. 그래서 요약력은 시대가 갈수록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_ 야마구치 다쿠로, 횡설수설하지 않고 핵심만 말하는 법

 

 

 


147. 피에 젖은 땅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 함규진 옮김 / 글항아리 / 2021

 

리뷰도 썼겠다, 리뷰 후기까지 쓴 마당이다. 더 무슨 말을. 리뷰 대회의 여파(?)로 이 책에 대한 양질의 정보는 이제 널리고 널렸으니 더욱 편한 마음으로 입을 다물겠다. 하지만, 이 한 마디는 기필코 덧붙여야겠다.

 

글항아리 사랑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규 공무원 교육 때 기억이 나는군. 그때 syo가 이렇게 외쳤었다. “구청장님 사랑합니다.” 사랑이 때론 이렇게나 간편하고 간단하다.

 

 

 

--- 읽는 ---

아무튼, 장국영 / 오유정

노멀 피플 / 샐리 루니

200년 동안의 거짓말 / 바버라 에런라이크, 디어드러 잉글리시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 김재인

안나 카레니나 2 / 레프 톨스토이

다른 방식으로 보기 / 존 버거

니체 / 정동호

루이 비뱅, 화가가 된 파리의 우체부 / 박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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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01 13:0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쓴다는 건 산다는 것인가 싼다는 것인가 ㅡsyo 오늘의 명언 담아갑니다. 제가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글쓰기를 하고 계셔서 늘 쳐다보다가 고개가 아퐈요.
의미있는 리뷰였다고 syo님 다웠다고 생각해요 👍

syo 2021-05-01 17:25   좋아요 3 | URL
미미님이 하고 싶은 글쓰기가 어떤 건지 제가 짐작할 수는 없지만, 제가 하는 이런 거라면 말리고 싶습니다ㅎㅎㅎ
돈 안 되고 폼도 안 나요.
그리고 나만 할 거예요 ㅋㅋㅋ 😝

오구오구말씀 감사합니다^-^
미미님처럼 책 바깥에서도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독서를 할 줄 몰라서 저는 저같은 글을 썼습니다.

얄라알라 2021-05-01 14: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능하면 피해자 목소리는 흉내내지 않았으면..˝ 친구분의 예리함, 역시 syo님의 soulmate다우신데요^^

syo 2021-05-01 17:25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단박에 짚어내더라구요. ㅎ

새파랑 2021-05-01 14: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님이 피땅 리뷰 1등에 유력하시겠지만, syo님이 꼽으신 3분이 누구인지 궁금하네요^^

syo 2021-05-01 17:27   좋아요 3 | URL
유력하지 않습니다. 무력합니다 ㅎㅎㅎㅎ
제가 꼽은 세 분은 곧 제가 꼽지 않은 서른 분이 되는 거라서 밝히기가 어렵지만....

레삭매냐 2021-05-01 14: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전하려다가 못 읽을 것 같아서
포기했습니다.

전 이 책을 통해 바실리 그로스만을
알게 된 것으로 만족하는 것으로.

syo 2021-05-01 17:28   좋아요 3 | URL
저도 이 책 읽고 나니까 레삭매냐님이 쓰시던 바실리 그로스만 이야기들이 다시 보이더라구요.
도전하셨더라면 제 자리는 없었을 테니, 저는 매냐님의 그 포기를 탐욕 그득한 마음으로 지지합니다 ㅎ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5-01 15: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두 syo다운 리뷰였고. syo만이 쓸 수 있는 리뷰였다 생각함. syo는 재주 재능 이런거 생각 말고 그냥 써요. 그 어디에 닿을 거니까. 충분히 닿을 만하 니까^^

syo 2021-05-01 17:29   좋아요 2 | URL
읽기님이 오구오구 대장이세요. 오구오구 장인.

페넬로페 2021-05-01 16: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리뷰를 읽을 때, 그 글을 보며 저도 syo님과 똑같은 생각을 했어요~~
근데 syo님다운 글이었고.정말 좋았어요^^
이 책에 대한 리뷰가 쌓이면서 누가 상 받을지 갈피를 못잡겠어요~~
다들 너무 잘 쓰시더라고요^^

syo 2021-05-01 17:30   좋아요 4 | URL
그렇죠?
과연 누가 1위를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뭔가 익명투표 같은 거 붙여놓으면 재밌겠더라구요^-^

반유행열반인 2021-05-01 16: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김초엽이 syo님 리뷰 안 뽑아줘서 손절했는데 글항아리가 일등 안 주면 (작년에 삼십만원어치 책 받아먹었지만) 손절할 거에요 ㅋㅋㅋ 뽑아주면…그 책들 얼른 읽고 리뷰 써드려야지…(아직 한 권도 안 읽은 거 실화임미다 ㅋㅋㅋ)

syo 2021-05-01 17:31   좋아요 4 | URL
안 돼요.... 글항아리는 손절하기에 너무 훌륭한 출판삽니다.
저는 저한테 안 줘도 너무 기쁜 마음으로 글항아리의 건승과 사세 확장을 기원할 거예요.

.....보고계신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1-05-01 16: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결과가 어떻든 당신은 제 마음 속 일등입니다..😘

syo 2021-05-01 17:31   좋아요 3 | URL
그럴 것 같았어. 독서괭님이라면! ㅋㅋㅋㅋㅋㅋㅋ 😁

북다이제스터 2021-05-01 16: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리뷰 대회가 있었군요. ㅎㅎ
요즘 이 책 리뷰가 왜 이렇게 많이 올라오는지 궁금했습니다.
NamGiKim 님의 오늘 리뷰를 읽어보면 이 책 리뷰가 출판사 의견과 달라 킬 당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말씀처럼 출판사 의도에 따라 작성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

syo 2021-05-01 17:35   좋아요 4 | URL
무슨 일이 있었나보군요.

사실 저는 출판사 의도에 따라 작성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런 생각이 있었다 해도 출판사의 의도 같은 건 알 수가 없으니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냥 제가 잘하는 짓을 한 거죠.
적립금 받겠다고 뛰어들어놓고 못받을 것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희한한 자기모순에 몸부림을, 아오 ㅋㅋㅋㅋ

stella.K 2021-05-01 16: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리뷰 대회에서 등위안에 들던 못 들던 상관없이 진실하게 썼다면
못해도 이달의 리뷰는 하지 않을까요? 스요님은 진실 아니면 안 쓰잖아요.ㅋ

<심신 단련>이 먼저 책 보다 더 좋은가요?
김구라가 이슬아 작가가 아무튼 출근에 나왔을 때 사업 수완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역시 요즘 작가는 옛날 작가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잘할 거라고 봐요. 사업이든 작가든.^^

syo 2021-05-01 17:36   좋아요 3 | URL
아니에요 스텔라님 ㅋㅋㅋㅋ 저 구라도 잘 쳐요.
그리고 굉장히 잘 친 + 무해한 구라는 평범한 진실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ㅎㅎ

<심신 단련>하고 <일간 이슬아 수필집>중 어느 게 더 좋은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건 그거대로 이건 이거대로 좋은 것 같아요.
한번 읽어보심도?

stella.K 2021-05-01 19:44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그럴 리가...
저는 진실이 아니면 쓰지 않으니 가끔 좋아요 부탁해요.ㅋㅋㅋㅋ


blanca 2021-05-01 1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음, 왠지 1등 할 것 같은데....예감이..오, 그리고 그 세 사람도 궁금하네요. 뭐든 열심히 열정르 바쳐 한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syo 2021-05-01 17:39   좋아요 3 | URL
1등은 아닐 거예요.
그래서 사실 이 모든 게 다 ˝그래 1등까지는 차마 바라지 않겠어. 하지만 2등 정도 줄 수 없겠니....˝ 하는 개수작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들 열심히 읽고 쓰셨겠고, 저도 그랬어요. 쓰는 동안 힘들고 이런저런 고민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봐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공쟝쟝 2021-05-01 18: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인사, 잡소리, 개똥철학 환영입니다. 어디까지 가긴요. 이만큼 오셨잖아요.
3번의 질문은 두고두고 곱씹어볼 주제네요. 아무리 텍스트가 말처럼 기능하고 있는 세상이지만, 생활에서 말에 지는 책임감처럼 생활처럼 된 가상의 공간에서 글에 들여야하는 책임감도 분명 필요하니까요.
공들여서 쓰신 만큼 저는 재밌게 읽었고 이 페이퍼도 기다렸습니다! 주말 즐거이 보내소서~

syo 2021-05-03 10:42   좋아요 1 | URL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하는 것보다는,
고민하고, 고민하는 나를 고민하고, 고민하는 나를 고민하는 나를 고민하고,
막 그렇게 거듭하다 보면 내 글이 어딘가로 갈 수 있지 않을까요.

너무 바쁘지 마시기를.



바람돌이 2021-05-02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은 제 마음의 일등이십니다. 농담이 아니고요. 그냥하는 말도 아니구요. syo님 리뷰 읽고 제가 남편한테 ‘아 정말 세상에는 차원이 다른 글을 쓰는 사람이 있어.‘라고 했어요.
“음, 가능하면 피해자 목소리는 흉내 내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을 해줬다는 친구분도 너무 멋지네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은 거의 진실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은 끼리 끼리 만나더라구요.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 더 심해짐요.

syo 2021-05-03 10:46   좋아요 0 | URL
1등 시켜주는 속마음들이 많아서 syo는 신이 납니다 ㅎㅎㅎ
좋은 친구들 만나서 닮아가며 사는 것도 삶의 한 낙이잖아요. 좋은 친구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네요. 뭐 저런 놈이랑 친구야- 하는 소리 안 듣게 ㅎ
 
피에 젖은 땅 -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유럽 걸작 논픽션 22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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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신

 

인편으로 보내주신 차는 잘 받았습니다. 서찰에 말씀하신 것보다는 조금 늦게 도착하여 답신이 이리 늦었습니다. 염려해주시는 덕분에 아내의 건강에도 조금씩 차도가 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보고서 건과 관련해서 위원장님 면담을 수차례 신청했지만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편집 회의를 한번 더 열 수 있을까 해서 찾아뵌 것입니다만, 위원장님이 제 면담 신청을 거절하는 제가 모르는 이유가 혹시 있겠습니까? 제가 듣기로, 최종 편집 회의에서 결정된 편집 방침은 전임 편집장 토마슈 씨가 극렬히 반대하였음에도 관철되었고, 그 이유로 토마슈 씨가 사퇴한 자리에 후임으로 제가 추천된 것이라던데요. 물론 저도 정해진 편집 방침이 있음을 알고서 수락한 것이긴 하지만, 편집장인 제가 단 한 번의 편집 회의에도 참여하지 못한 상태에서 보고서 작성을 지휘하는 것이 과연 온당하겠습니까. 근거 자료 확정 시한은 점점 다가오는데, 이대로라면 그냥 묻혀버리고 말 아까운 자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개별 증언의 비중을 높이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하겠습니까? 대중에게 일부라도 공개하는 방향은요? 토마슈 씨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지금의 편집 방향 아래에서는 보고서 작성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모든 게 불가능하다면, 지금까지 모아놓은 자료들만이라도 공개하여 다른 형식의 책이 출간될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 그거라도 해야지요. 반드시 말해져야만 하는 것들이 형식과 입장에 재갈 물려 침묵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우리가 두고만 봐야 한다면, 결론적으로 우리가 저들과 다를 게 무엇이겠습니까.

 

편집 회의 개최가 어렵다면 선생님께서 고문 자격으로 저 대신 위원장님께 의견을 전달해주셨으면 합니다. 시일이 촉박합니다. 급한 대로 몇 개의 녹취록을 첨부합니다. 손에 닿는 대로 골라낸 것입니다. 요청하시면 자료는 더 보내드리겠습니다. 많습니다. 그리고 면담 결과가 나오면 최대한 빨리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아내의 요양 겸 같이 떠나기로 한 휴가처는 위원회 본부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정했습니다. 사실 휴가라는 것 자체를 즐길 수가 없는 마음입니다. 선생님의 답신에 따라 가닥이 잡히겠지요. 봉투에 적힌 주소가 저희 부부의 휴가처입니다. 모쪼록 선생님께서도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녹취록 1

 

내 아버지는 소위 말하는 부농이었어. 부농. 나는 아직도 그게 정확히 뭐였는지를 모르겠단 말이야. 분명 우리 가족에겐 땅이 있었고 가축도 몇 마리쯤 있었지. 곳간에는 우리가 먹을 곡식 말고도 다음 농사를 위한 종곡種穀도 있었고. 그렇지만 그게 다였어. 끼니는 놓치지 않았지만 끼니와 끼니 사이에 늘 배고플 정도로만 먹을 수 있었거든. 난 그게 늘 불만이었어. 그땐 알 수가 없었거든. 배고픔과 배고픔 사이에서 아주 잠깐이라도 배고프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냐고. 끝나지 않은 배고픔 같은 게 있을 수 있고, 그 끔찍한 게 곧 찾아올 거라는 것을 말이야.

 

부농이라고 낙인찍힌 내 아버지는 강제이주 명령에 저항하다가 재빠르게 처형당했지. 그때 마을엔 우리 집 것보다 곱절은 넓은 외양간에 가축을 가득 채우고서도 부농이 아닌 사람도 있었지만, 부농이라는 죄로 추방을 당했던 찢어지게 가난한 가장도 많았어. 부농인지 아닌지를 정하는 건 땅이나 가축이 아니라 사람이었거든. ‘트로이카라 불리는 놈들이었는데, 그놈들에게는 사형이나 추방형을 마음대로 내릴 힘이 있었고, 우리에게 항소권 같은 건 없었지(64). 많이 죽었어. 많이들 쫓겨났고. 내겐 형이 하나 있었는데, 아버지를 죽인 놈들이 그 자리에서 형을 강제노동수용소로 추방해버렸지. 무슨 짐짝처럼 기차에 실려 간 형은 벨로모르 쪽으로 운반됐고 거기서 운하를 파는 작업에 동원되었다나 봐(66). 나중에 편지를 하나 받았는데, 거기엔 무슨 일이 있든, 여기 오지 마. 우린 여기서 죽어가고 있어. 숨거나 차라리 거기서 죽어.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긴 오지 마.”라고 쓰여 있었지(75). 형과는 그게 끝이었어. 아마 죽었을 거야. 선생도 알잖아, 수용소라는 데가 어떤 데인지.

 

? 나는 끌려가지 않았어. 보시다시피 나는 다리가 불편하지. 이건 그때도 그랬거든. 그래서 위대한 트로이카 나리들이 보시기에 나는 신성한 노동수용소에 발탁될 만한 인재가 못 됐던 거야. 대신에 가축과 농기구를 싹 다 빼앗기고 집단 농장에 합류해야 했지. 우리 땅도 더는 내 것이 아니었어. 농장에는 당 관계자와 경찰 놈들이 득시글거렸고, 거지 같은 음식이나 주면서 그것조차 농장의 두목한테 받아먹으라더군(68). 그 악마 같은 공산당 놈들은 이 세상에도 저세상에도 신 같은 건 없다는 천벌 받을 소리를 퍼트리고 다녔어. 그러니까 뭐 하나 우리 마음에 드는 게 없었던 거야. 그래서 우리는 싸우거나 도망쳤어. 싸우는 사람들은 총도 없이 용감했고, 폴란드로 도망친 사람들은 제발 폴란드가 우리나라를 침공해서 우리를 구해달라고 탄원할 정도로 용감했지(71). 잠깐이지만 그게 먹히기도 했어. 모스크바의 스탈린이라는 작자가 집단 농장은 자기 실수였다고 말했다더군. 그놈은 무슨 하느님 비슷한 거였나 봐. 그의 말 한마디에 집단 농장은 생겨날 때처럼 빠르게 사라졌지. 우리는 가을밀을 수확했고, 다시 돌아온 우리 땅에 작물도 심었지(74). 다 끝났다고, 짧은 지옥을 지나왔다고 생각했어. 진짜 지옥이 아가리를 벌리고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말이야. 겨울이 오자 죽은 줄만 알았던 집단 농장도 함께 돌아왔지. 놈들은 훨씬 교묘해졌어. 자영농들은 집단 농장에 합류할 때까지 무시로 세금을 두드려맞았고(74), 강제추방으로 사람들이 사라지는 속도가 그전보다 훨씬 빨랐어(75). 마침내 집단 농장 놈들이 종곡을 마음대로 쓸어갈 수 있게 되면서 우리 싸움도 끝났지. 생각해 봐. 땅을 지키고 가축을 지키고 농기구를 지켜서 뭣하겠어. 그 땅에 뿌리고 경작할 것들을 이미 다 뺏겼는데.

 

이런저런 일은 있었지만 30년 그해는 농사가 꽤 잘 됐거든. 여름 날씨도 유난히 좋았고. 대풍작에 가까웠지. 게다가 추방당한 사람들이 연초에 뿌려놓았던 밀을 남은 사람들이 거둘 수도 있었어. 문제는 공산당 놈들이 30년 생산량을 보고 31년의 징발량을 정했다는 거지(76). 그건 정말 터무니없었어. 처음부터 우리는 모두 그게 안 될 일인 걸 알았어. 공산당 놈들조차 알았지. 하지만 우리가 나쁜 날씨와 해충, 추방의 위협과 싸워가며 일하는 동안 스탈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징발량을 맞추기 위해 종곡까지 거두어들이라는 거였어. 정말 미친놈만이 할 수 있는 소리였지. 그런데 그게 그렇게 되었어. 우리는 31년 말부터 제대로 굶주리기 시작했고, 32년이 되자 심을 곡식도 없었어. 32년 흉작이 31년 흉작보다 더 심해질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했지(77). 카자흐스탄에서 100만이 죽었다는 소문이 들리더구먼. 하지만 스탈린은 굶주림 같은 건 없다고 계속 말하면 진짜 굶주림이 없어진다고 믿는 머저리처럼 굴었어. 지역 공산당원들은 그래도 우리가 굶고 죽어 나가는 걸 눈으로 봤으니, 위에다가 계속 그 상황을 보고했거든. 소용없었어. 스탈린은 그들에게 식량 대신 총살을 선물했지. 그때 그놈은 흑해 쪽에 있는 소치라든가 하는 곳에서 휴양을 즐기는 중이었다는데, 그 휴양지까지 스탈린이 타고 간 기차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그득했다고 하더라고(82). 그런데 그놈의 열정적인 입은 휴가지에서도 쉬지를 않았나 봐. 또 스탈린이 뭔가 말했고, 그건 즉시 법이 되었어. 그 법이 말하기를, 우리가 수확한 모든 곡식은 나라 것이므로 우리는 식량을 소지하기만 해도 범죄자가 될 수 있었지. 그러니까 너무 배가 고파서 얼마 전까지 내 땅이었던 곳의 밭고랑에서 감자 껍질을 주우면 총살을 당할 수도 있었던 거야(84). 밭에는 감시탑이 세워졌고 수색단원들이 식량 숨긴 게 있나 집집마다 샅샅이 뒤지고 다녔지. 그놈들은 데우고 있던 저녁 식사를 포함해서, 음식처럼 보이는 건 모조리 쓸어갔어(85). 혼자 사는 여자들은 곡물 압수를 핑계로 밤마다 강간을 당하는 게 일상이었고, 일이 끝나면 식량까지 빼앗겼지(86). 위대하신 스탈린 나리의 법과 나라가 거둔 승리란 그런 거였어. 하지만 그런 짓을 저지른다고 없는 곡식이 솟아나지는 않거든. 그 미친놈들이 그걸 몰랐을까?

 

스탈린의 입만이 모든 걸 죽이고 살리는 진짜 입이었지. 아니지, 살리지는 않았군. 우리가 굶어 죽고 있다는 말은 지어낸 이야기라는 소문이 실제로 굶어 죽어가는 우리 귀에까지 들어왔어. 우리 죽음이 사회주의의 적들이 펼치는 공작이라더군(88). 글쎄, 그놈이 우리가 죽는 걸 직접 본 적이 없는 건 사실이지. 그러면 직접 본 놈들은 어땠을까? 공산주의자 놈들은 스탈린의 말과 자기가 눈으로 본 풍경을 어떻게든 일치시켜야 했지.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자신과 가족들을 굶기는 것으로 목숨 바쳐 사회주의를 해치려 든다는 결론을 내렸어(89). 벌거벗은 임금님이 입지도 않은 옷을 입었다고 했고, 아랫것들은 그 옷이 너무나 화려해서 보이지 않을 정도라며 자신들의 아부로 그 옷의 존재를 증명한 거지. 그런 걸, , 제기랄, 이념이라고 부른다더구먼. 이념. 그걸로 배를 불릴 수 있었으니 그놈들은 그걸 한 거고, 우린 아니었던 거지.

 

그리고 미친 11월이 왔지. 193211. 잊을 수도 없어. 소련은 모든 잉여 농작물을 거둬가고, 곡물 할당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가축을 거둬가고, 그래도 목표량을 달성 못 하는 집단 농장은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한 달 할당량의 열다섯 배를 빼앗아갔어. 당원 놈들, 경찰 놈들이 떼로 몰려와서 가져갔지. 할당량을 달성하는 농장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결국 전부 다 가져간 거야. 한 번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식량 공급도 중단, 보급도 중단, 다른 지역과의 거래도 중단, 모든 게 다 중단이었지(91-92). 그러니까 사는 걸 통째로 중단시킨 거야. 살려면 도망쳐야 했지만 그러기도 쉽지 않았어. 33년이 되자 국경은 봉쇄됐고, 농사꾼들이 도시로 가서 구걸한다고 도시도 폐쇄됐지. 우리에겐 장거리 기차표도 팔지 않았고. 도망치다 체포되면 고향마을로 이송되어 다시 굶어야 했어(94). , 그리고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났겠어? 선생도 여기 그 이야기를 들으러 온 거잖아. 아니야?

 

1933년에, 우리는 다 죽었어. 반란, 도덕, 인간에 대한 관심 같은 건 모조리 사라지고 그 자리를 범죄, 광기, 무기력 같은 것들이 대신 채웠지. 그건 다 결국 죽음으로 가는 길이었어. 어떤 일이 있었냐고. 시체 위에 시체가 쌓이는 일이 있었지. 살아있는 사람들도 시체나 다름없었어. 걸어다니느냐 누워 있느냐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야. 봄에는 하루에 만 명씩 죽어 나갔어. 애어른 가릴 것도 없었지. 어떤 소녀에게 음식을 조금 나눠준 적이 있었는데, 이러더군. “이렇게 좋은 걸 먹었으니, 이제 행복하게 죽을 수 있겠어요.”(98) 연못에서 낚시를 하다가 반 친구의 잘린 머리를 낚아 올린 남자애들도 있었어. 온 가족이 다 죽은 아이였지. 우린 궁금했어. 몸통은 어디로 갔을까? 정확히 말해서, 그걸 누가 먹었을까? 모르지. 하지만 그때는 그런 의문이 흔해 빠진 거였어(101). 자기 자식을 죽이고 먹은 부모가 셀 수 없이 많았거든. 애들이 그 가족의 가장 약한 식구였으니까. 자신과 딸의 식사를 위해서 아들을 잡아서 요리하는 어머니라든가, 며느리를 죽이고 머리통은 돼지밥으로 준 다음 몸뚱이는 구워서 잔치를 벌이는 가족 같은 게 잔뜩 생겨났지(102-103).

 

글쎄, 선생이 지금 한 말은 결국 나도 살아남으려고 사람을 먹었느냐는 질문을 점잖게 바꾼 거잖아? 이 집 문을 나서면 선생은 다시 나 같은 노인들을 들쑤시고 다니겠지. 그 자료인지 뭔지를 만들겠다고 말이야. 그렇다면 그 질문은 입밖에도 꺼내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군. 선생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수천 권의 책을 뒤져 꺼낸 가장 점잖고 멋진 말로 금칠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질문만큼은 하지 마. 알겠어?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이런 거야. 그런 시절에 살아남는 건, 배고픔을 견디는 게 육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뼈에 새기는 일이지. 선생, 인간이 어떤 동물인지 알아? 나는 지금도 그걸 잘 모르겠어. 아직 식인종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기도를 시작하지만, 기도가 끝날 때쯤에도 그럴 수 있을지 몰라서 기도하는 내내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있었지. 밀가루를 위해 몸을 팔지 않는 사람은 굶어 죽어야 했어. 훔치지 않는 사람도 그랬고. 시체를 뜯어먹지 않는 사람들은 시체를 뜯어먹는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갈 다음 시체가 될 운명이었어. 인육을 사고파는 시장이 생기는가 하면(104), 자기 자식들을 먹기를 거부하고 죽어 자식을 고아로 만드는 부모나, 자기가 죽으면 자기 몸을 먹으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는 부모들도 있었어(105). 혼란스럽지 않아? 뭐가 뭔지 선생은 이해할 수 있겠어?

 

우리가 괴물인 거야? 나는 1933년과 그 이후에 찾아왔던 크고 작은 지옥을 거치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평생을 묻고 또 물었어. 어제도 물었지. 지금도 묻고 있어. 그리고 내가 선생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래. 우리가 괴물이라면 우린 각자가 다른 괴물이었을 거야. 우리가 희생자에 불과했다면, 역시 마찬가지로 우린 각자 다른 희생자였어. 우리는 모두 지옥 같은 굶주림을 겪어냈지만, 그건 저마다의 지옥이었어. 백만 개의 죽은 지옥과 천만 개의 살아남은 지옥이 있겠지. 거대한 지옥을 처음 만들어낸 건 스탈린이라는 큰 악마일지 몰라. 하지만 그것을 겪어내고 엮어낸 것은 우리 각자란 말이야. 그런 건 스탈린이 죽고 소련이 무너졌다고 끝나는 게 아니야. 한번 열린 지옥문은 수십 년이 지나도 말끔하게 닫히지 않는 거거든. 선생은 그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 거야. 살아남으려면 다른 사람을 먹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수백만이 굶주려 죽어 나가는. 선생이 볼 때 그 시절이야말로 지옥에 가장 가까운 순간일 테니까. 그런데 과연 내게도 최악의 지옥이 그때 그 순간일까? 배고픔이 가장 심했던 때가 가장 괴로운 순간이었을까? 우리 옆집에 사는 노인에게는 어떨까. 그리고 또 그 옆집은? 선생, 선생이 만든다는 보고서인지 뭔지가 뭐 하는 물건인지 나는 잘 모르겠어. 좋은 일을 하겠다는 것 같긴 해. 그냥 이 말을 해주고 싶어. 나는 아무것도 대표하지 않아. 내가 겪었고 또 겪고 있는 지옥이 모든 지옥을 대표하지 않는단 말이야. 선생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다룰 건가. 쪼개고, 비슷한 것끼리, 시간 순서에 따라 묶은 다음 표지에 금박을 두른 두꺼운 책을 만들 건가? 지옥을 소화하기 쉽게 전시할 건가 이 말이야. 아니, 이건 그냥 묻는 거야. 나는 그런 건 그것대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대표하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러니까 내 이야기를 기록하려거든 내 이름도 적어가. 지금 선생이 들은 이 길고 지루한 지옥의 이름을 적어가란 말이야. 받아적게, 내 이름은…….

 

 

 

녹취록 2

 

술은 줄이는 중입니다. 완전히 끊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쉽지는 않네요. 나이도 있고, 이제 와 사는 모양을 바꾼다는 게. , 오늘은 한 잔만 마셨습니다. 믿어주십쇼. 혀도 잘 돌아가고 이야기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겁니다. , 그런데이야기를 해 드리면 돈을 조금 받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사실입니까? , ,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럼 시작하면 되나요?

 

그러니까 저는 1937년에 지역 내부인민위원회에서 활동했습니다. 맞습니다, 비밀경찰이지요. 알고 있습니다. 올바른 일은 아니었지요. 그땐 젊었고, 젊을 때는 쉽게 어리석잖아요. 그랬던 거죠. 생계가 달려 있기도 했고,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최선을 다하지는 않았습니다. 양심에 걸리는 일도 많아서. 33년 그 대기근 때, 인민위원회 대표였던 발리츠키가 이 대규모 기아는 폴란드 군사 조직이라는 간첩 도당의 도발이라고 설명했어요. 그놈들이 우크라이나에 침투해 수확을 훼방 놓고 기근을 일으킨 다음 굶어 죽은 이들의 시체를 선전용으로 사용했다고요(166). 그때부터 소련에서는 폴란드인 솎아내기가 시작되었죠. 35, 36년만 해도 10만이 넘는 폴란드계 농민들이 추방당했어요. ‘폴란드 군사 조직이라는 명분은 공산당 내부 권력 다툼에도 이용되었죠. 심지어 그 말을 만든 발리츠키조차 거기에 얽혀 축출되고, 예조프라는 사람이 권력을 잡았지요. 그리고 바로 그 사람의 손에서 37년의 명령 00485가 태어난 겁니다(171). “폴란드 군사조직의 간첩 연결망 완전 청산이 그 명령의 목표였는데, ‘폴란드 군사 조직의 실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예조프 말고는 누구도 모른다는 점에서 보면, 그건 일종의 박해 면허나 마찬가지였죠. 그래서 우리 같은 말단 장교들은 폴란드 계나 폴란드와 관련된 다른 소련인들, 폴란드 문화나 로마 가톨릭교처럼 폴란드라는 민족적 특성을 지닌 것들을 모조리 박해해야 했어요(173). 심지어 시청의 옛 기록을 뒤져서 폴란드식 이름의 흔적을 찾아내면, 그걸 들고 그 사람을 박해하러 가는 장교도 있었죠(174쪽). 그때의 일은 끔찍해서,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지만.

 

, 그런데 저도 인민위원회의 장교였지만 지금부터 말씀드릴 끔찍한 사건들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걸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물론 저라고 좋은 일만 한 것은 아니고 또 제가 한 일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지만, 어쨌든 저는 아니었어요. 저는 사람을 고문하지도 죽이지도 않았고, 그냥 죽은 사람을 묻는 일만 했었어요. 정말입니다. 맹세할 수 있어요. , 혹시 한 잔 마시고 이어나가도 될까요? 이야기에는 지장 없도록 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이게 아무래도 맨정신으로 하기 쉬운 이야기가 아니어서.

 

우리에겐 자백 기법이라 불리는 일종의 집단 고문 방법이 있었어요. 공공건물 지하 같은 데 폴란드계 용의자들을 잔뜩 몰아넣고는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한 명을 고문하죠. 고문받은 사람이 자백하면 다른 용의자들도 자백해서 고통을 피하고 싶어질 테니까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연루되어 있음을 밝혀야 고문을 멈췄으니, 결국은 집단 전체가 연루되었다는 증언을 빠르게 얻어낼 수 있는 겁니다(174). 그렇게 받아낸 자백을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거기에 사형시킬지 수용소로 보낼지 우리 의견을 적어요. 그러면 그 보고서는 인민위원회 대표와 검사에게 올라가고, 그들은 또 그 보고서로 앨범을 만들어 모스크바로 보내는 거지요. 그러면 모스크바에서는 그 앨범들을 대충 훑어본 다음 예조프와 주 검사 비신스키의 이름으로 서명을 하는 겁니다. 승인은 거의 자동이었으니 결국은 용의자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건 최초 수사관이었던 거죠. 그렇게 하루에 2만 명의 사형이 확정된 적도 있었답니다(175). 폴란드 문화나 가톨릭교에 대해 호의를 보이면 그게 곧 첩보 활동에 동참했다는 증거였지요. 경범죄도 경범죄가 아니었어요. 묵주를 가지고 있으면 수용소 10년형, 설탕을 충분히 생산하지 않으면 총살되기도 했죠. 예조프는 이걸 폴란드 박멸 작전이라고 불렀는데 스탈린에게 그 성과를 보고하자 그가 그랬다는군요. “아주 잘했어! 더 캐내게. 이 더러운 폴란드 쓰레기들을 싹쓸이해버리는 거야. 우리 소련을 위해서는 그놈들의 씨를 말려버려야 하거든.”(175-176) 참 재미있는 말이죠. 수령이 신이 났으니 말단 장교들은 더 신이 날 밖에요. ? , 제가 재미있는 말이라고 했나요? 죄송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슬픈 일이었어요. 슬픈 일.

 

? 저요? , 저는 그저 보거나 들었을 뿐입니다. 저는 고문한 적도 총살에 참여한 적도보고서요? , 그게, 그렇지, 저 같은 경우에는 좀 운이 좋았던 게, 제 주변 장교들이 워낙 열정적으로 당의 명령을 수행했던 터라 우리가 담당했던 지역에서는 늘 많은 수의 폴란드 간첩들이 검거되었거든요. 제가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할당량을 다 채울 만큼이었지요. ? , 맞아요. 간첩이 아니라 희생자들이죠. , . 맞습니다. 저기, 한 잔만 더 하겠습니다. 이거 참 목이 타네요. 저는 언제나 저 무서운 일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었습니다. 정말입니다. 꼭 기록해주십쇼. 선생께서 어쩐지 저를 좀 의심하고 계신 것 같아서요. 저를 보시는 게. 정말 제가 저지른 일이라면, 뭐가 자랑스럽다고 이 끔찍한 일들을 이리 상세하게 말하고 있겠냐고요.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사례비 더 받자고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니라니까. 다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이렇게. 죄송합니다. 자꾸 술에 손이 가는군요. 어디까지 했더라? , .

 

작은 마을일수록 상황은 더 심했어요. 그런 곳에는 법적 절차 같은 게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인민위원회 전담반은 갑자기 들이쳐 현장을 포위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사람들을 고문했죠. 그리고 처형했고. 체포도 처형이나 마찬가지였고요. 체포된 사람들은 물에 던진 돌멩이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까(184). 남편이 총살당하면 아내는 추방되고 자식들은 고아원으로 보내졌죠. 폴란드 아이들로 키우면 안 됐거든(185). 38년쯤 되면, 이제는 그냥 우리 세상이었어. 모스크바에서는 그냥 서명만 하는 건데도 앨범이 처리되는 속도보다 도착하는 속도가 더 빨랐단 말입니다. 앨범 기법도 번거로운 일이 된 거지. 그래서 결국 해당 지역에서 서류를 검토하는 특별 트로이카가 생겨난 겁니다(186). 이제 지역에서 앨범을 검토하고, 판결하고, 총살하고. 하루에 수백 건씩 사건을 검토하고, 모스크바에서도 포기한 밀린 일을 6주 만에 처리했거든. 6주 만에 몇만은 잡아냈을 걸? 그때 우리는 그런 마음이었는데, 뭐였냐 하면, 우리가 하는 일은 폴란드 간첩만 찾아내는 일이지만, 나중에 다른 소수민족 간첩을 색출하는 작전의 모델이 될 거라는 생각? 결국 그게 그렇게 됐지.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핀란드25만 명쯤 죽었다더군요(188). 간첩이 그렇게나 많았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그 쓰레기들은 죽여도 죽여도…….

 

아뇨, 아니라니까! 나는 죽이지 않았다고. 몇 번을 말해. 말실수야. 술 마시면 누구나 흔히 할 수 있는. 뭐야, 당신이 뭔데 자꾸 그런 눈으로 나를 봐. ? 내가 죽였다고 누가 그래? 푸줏간, 푸줏간 그 새끼로군! 거짓말! 그 새끼는 거짓말쟁이에 폴란드 놈이야! 만약 내가 누굴 죽였다면, 그건 그놈들이 진짜 폴란드 간첩이어서 그랬던 거라고. 그래, 그래서 그랬어. 다 인민을 위해 한 일이었어. 나 같은 사람이 대신 피를 묻히지 않았다면 소련은 진작 무너졌을 거야. 나치 놈들이 폴란드 것들한테 업혀 들어와 모스크바까지 집어삼켰을 거라고. 폴란드 놈들이 간첩이 아니었다고? 인민의 적이 아니었어? “폴란드 군사 조직이란 게 없단 말이야? 아니, 그럴 수는 없지. 절대로 그럴 수는 없어.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뭐 하는 거야, 내 이야기 아직 안 끝났어. 가려거든 약속했던 그 푼돈 쪼가리를 내놓고 가라고! 약속을 지켜야지! 약속은 지켜져야 해! 약속을 어기는 놈들은 폴란드 새끼들이랑 마찬가지야. 전부 무릎을 꿇리고 미친개처럼 쏴 죽여야 한다고(165). 돌아와! 돌아오라고!

 

 

 

녹취록 3

 

, 그 자리에 자네가 발탁되었다는 소식은 들었네. 수집해 놓은 자료들을 자네한테 바로 보내려다가 마음을 바꿔 위원회로 넘겼지. 지금쯤이면 대강은 다 훑었겠군. 그래 어때, 일은 할 만한가? 나한테까지 증언을 들으러 올 줄은 몰랐지만, 자네라면 충분히 생각할법한 일이지. 내가 이래서 늘 자네를 좋아한다네. 그래서 더 복잡한 기분이야. 내가 아끼는 사람이 내가 박차고 나온 자리에서 내가 겪었던 감정들을 고스란히 겪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타까우면서도, 그래도 자네라면 내가 찾지 못한 해답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고. 그래, 그런 점에서 보면 이 대화가 자네에게는 자료가 되겠지만 내게도 어떤 열쇠가 될지도 모르겠어. 나는 그때 마주친 문제들과 아직도 씨름하고 있거든.

 

33, 37, 40, 41, 그리고 42. 끔찍한 일들이 있었지. 물론 이 해들 사이에서도 사람들은 계속 죽어 나갔지만. 1400만이라네. 독일과 소련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점점 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와중에 죽어 나간 사람의 수가(671). 우리가 블러드랜드라고 부르는 곳, 독일과 소련 사이에서 권력 열망이 역사적으로 중첩되면서 일어난 일이지(673). 그들은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자신들의 선택을 두고 적들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웠고, 수백만의 목숨을 자신들의 정책이 필요하고 바람직하다는 걸 입증하는 데 사용했어(683). 자네도 알겠지만, 이 길고 거대한 학살은 경제적 이해관계와 이념적 전제들이 서로를 보장해줄 때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었지(693). 어떤가, 자네는 나치와 소련이 저지른 일련의 일들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난 말이 된다고 생각하네. 말이 되더란 말일세. 자료를 모으고, 거기서 도출되는 동기를 따라가다 보니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 옳은 선택을 했다는 게 아닐세.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길을 잃은 거니까. 옳지 않은 선택을 이해하게 되었단 말일세. 내가 스탈린이고 히틀러였다면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았겠지. 그건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일이야. 하지만 옳지 않은 선택을, 아니지, 절대 해서는 안 될 악의 극치에 가까운 그 선택을 이해하게 된 나는 과연 뭘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걸세. 차라리 그들이 괴물이었고, 그런 이유로 일정 집단의 사람들에게서 사람으로 여겨질 권리를 빼앗는(681), 인간이라면 절대 하지 못할 일들을 그들은 서슴없이 저질렀으며, 그래서 내가 그들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면, 그랬다면 좋았을 걸세. 그랬다면 나는 스스로를 희생자와 동일시하며 범죄자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편리한 주장을 할 수 있었겠지. 우리가 블러드랜드의 범죄자들과 방관자들이 대면해야 했던 역사적 배경과 같은 배경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있었을 거란 말일세(701-702). 바로 그게, 우리가 원하고 또 위원회가 이 조사를 통해 도출하려는 결론이 아니겠는가?

 

이런 고민에 사로잡혀 한동안 조사에 진척이 없자, 위원장이 나를 불러들였어. 그리고 말하더군. 숫자. 숫자 위주의 연구를 하고 숫자가 들어 있는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나의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투였어.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네. 머리 아픈 생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거든. 몇 주 후, 내 선에서 찾아낼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들여다본 후 나는 위원회에 1400만을 제시했네. 그러자 바로 다음 날 편집 회의가 소집되었지. 위원장은 그 어느 때보다 딱딱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어. 토마슈 편집장, 수고 많았소. 수고 많았는데, 그렇게까지 수고할 건 없었던 것 같소. 위원회는 전체 희생자 수를 900만으로 결정했거든.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 이건 시장바닥에서처럼 흥정할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말일세. 나는 대답했다네. 위원장님, 지금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위원장이 말했지. 편집장이 알고 모르고는 하나도 중요치 않소. 중요한 것은 숫자요. 아시겠소? 편집장이 알아야 할 것은 정확한 숫자가 아니라 숫자가 중요하다는 사실뿐이오. 하지만 위원장님,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오, 당신은 그렇게 해야 하고 그렇게 하게 될 것이오. 숫자가 중요한 이유는 숫자가 숫자인 동시에 정치고 외교이며 국익이기 때문이오. 이 건에 대해 더 길게 말하는 건 온당치 않은 것 같군. 사실 편집장이 찾아낸 그 숫자 역시 말과 글에 의존해 발굴한 것이 아니오? 그 숫자가 정말 실제 숫자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그 숫자라고, 편집장은 맹세할 수 있소? 그제야 나는 숫자를 말하는 것이 그 자체로 정치적 행위이며, 동시에 더 거대한 정치적 행위에 복무하는 요소 행위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네. 위원장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야. 나는 내가 조사한 자료를 통해 숫자를 말하겠지만, 그 숫자가 진짜 숫자라고 단언할 수는 없어. 나는 신이 아니니까 말일세. 그러나 내가 찾아낸 숫자가 외교적 목적이나 국가 수반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 커지거나 작아지는 일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뭐겠는가. 듣지도 않는 사람들을 향해 그 숫자는 내 숫자가 아니라고 계속 말하는 것 말고 내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숫자의 문제는 단지 그뿐만이 아닐세. 설령 내가 구한 숫자가 진리고, 거기에 하나의 정치적 더함도 뺌도 없는 상태로 세상에 드러난다고 해보세. 그렇다면 중요한 일이 다 이루어진 것인가? 물론 숫자는 중요하지. 하지만 숫자는 너무 중요해서, 우리가 숫자의 중요성을 말하면 말할수록 우리는 숫자에서 멈춰서게 될 걸세. 숫자에서 슬퍼하고 숫자에서 분노하면 그 숫자를 이루는 사람들에게 가야 할 것들은 어디서 다시 가져오겠는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숫자라면, 숫자에게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이냐는 말일세. 알겠는가?

 

그래서 나는 그 일을 관두었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네. 친구여, 나는, 말도 안 된다고 외치는 일, 외치고 또 외치는 일(681) 말고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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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1-05-11 18:4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님. 좋네요 ㅎㅎㅎㅎ 허허허

stella.K 2021-05-11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제의 그 리뷰군요! ㅎㅎ
근데 제가 좋아요도 하지도 않았군요. 민망해라...ㅠㅠ
축하해요.^^

syo 2021-05-11 19:00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고맙습니다.
좋아요 하지 않으신 건 그저 발견하지 못하셔서 그런 거고,
발견하고 읽으셨다면 당연히 좋아요 해주실 거라고 저는 늘 생각합니다.
제가 스텔라 님한테 그렇거든요 ㅎㅎㅎ
그러니 민망은 넣어두시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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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최대한 무해한 욕망

 

 

 

1

 

토요일, 더덕단 친구들(5인 이상 집회 금지 규정 준수)과 일자산을 등반했다. 등산 모임은 물론 아니었다. 치킨 모임이었다. 등산이란 치킨의 풍미를 위해 내 몸에 내가 치는 양념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해본 것이다. 우리는 운동을 위해 모이는 그런 불건전한 건전집단(?)이 아닙니다. 더덕단은 맛집 탐방 모임……이 아니라 여성주의 책 읽기 모임이었지, , 맨날 헷갈려.

 

하여간 우리는 장대한 포부를 가지고 일자산을 향했는데, 일자산, 이거 생각보다 작고 귀여운 산이어서 산책길처럼 설렁설렁 떠들떠들 걷다 보니 어느새 정상. 그곳에는 날쌔고 귀여운 청설모도 있었지만 피트니스 센터에나 있어야 할 헬쓰보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괜히 산 정상까지 와 가지고 뭐 턱걸이를 합네, 데드리프트를 합네 설쳐대며 젊음과 파워를 뿜뿜, 배 나온 늙은이 마음에 공연한 열등감을 심어주는 중이었다. 일자산 등반을 통해 syo가 얻은 것은 그러니까 드넓은 호연지기, 그리고 젊고 몸 좋은 것들을 향한 강도 높은 미움이라고 하면 되겠다.

 

이건 오늘의 이야기를 위한 애피타이저에 불과하다. 운동이 치킨을 위한 조미료에 불과하듯이.

 

 

 

2

 

작년 이맘때쯤인가, 한 멤버의 집에서 음악과 댄스가 어우러진 한바탕 폭식 파티가 열렸다. 그때 여42이 모여서 먹어 치운 것이 치킨3, 피자2, 떡볶이2, 아이스크림 케이크……. , 또 먹는 이야기네, 이게 아니라,

 

그때 우리는 그달 읽기로 했던 책을 들고 모였다. 여섯 권의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사진을 찍었는데, 이거다.


syo는 몇층에 사는가

 

우리는 책 주인의 성격이 여실히 드러나는 이 풍경을 놓고 한참을 웃고 떠들 수밖에 없었다. , 그러면 각 층에 거주하는 책 주인들의 증언을 한번 들어보자.

 

- 1층 입주민: 좋은 대목에는 플래그를 붙이지만, 그렇다고 아무 데나 쉽게 붙여주진 않지. 나 그렇게 쉬운 사람 아니거든?

- 2층 입주민 : 우오와, 좋아! 여기도 좋고! 저기도! 붙이자! 붙이고 또 붙이자! 풍년일세 풍년이야. 이 책 쩐다!

- 3층 입주민 : 뭘 붙이냐고 귀찮게, 그냥 귀퉁이 접으면 될걸 가지고.

- 4층 입주민 : 책을 접는다고. ! 그리고 저 자잘한 플래그들은 또 뭐야. 조잡하게스리. 플래그는 두꺼워야 제맛이지. 그래야 손가락으로 집고 그 페이지로 바로 찾아가기 쉽다고.

- 5층 입주민 : 그냥 줄을 그어요. 어휴, 옆구리 너덜너덜하게 왜 저래.

- 6층 입주민 : 플래그와 너덜너덜이 반드시 같이 가야 한다는 부당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군. 플래그의 위치를 조금만 공학적으로 제어한다면 그런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지. 

 

플래그가 옆으로 길게 튀어나온 책을 책장에 꽂았다가 꺼냈다가 반복하면 이내 플래그 귀퉁이가 이리저리 접히고 구겨진다. 그렇게 되면 뭐랄까, 술 취한 말미잘의 촉수 같달까, 무지개색 겨드랑이 털 같달까, 하여간 그런 식의 현란하고 심란한 비주얼이 도출되고야 마는 것이다.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syo는 플래그를 아주 바짝 붙이는 편이다. 양장본은 표지의 가로 길이가 내지보다 당연히 길고, 반양장의 경우에도 책날개가 꺾이는 부분이 내지보다는 1mm 정도 돌출되어 있다. 그래서 플래그를 붙일 때 그 끝이 내지보다 1mm 정도 돌출되게 바짝 붙이면 제아무리 책을 꽂고 꺼내도 플래그가 접히는 일은 거진 없다. 물론 처음에는 몇 번을 붙였다 떼었다 하며 길이를 조절하는 일이 생기긴 하지만, 숙련도가 오르면 절로 해결될 문제기도 하고, 또 양손을 사용하여 신중하게 붙이는 일에는 일종의 변태적인 즐거움조차 뒤따른다. ‘여러모로 완벽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래서 syo는 다들 이렇게 하는 줄만 알았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인간이란, 불을 사용하는, 도구를 만드는, 언어로 소통하는, 생각하는, 그리고 플래그를 바짝 붙이는 동물 아닙니까? 호모 플래그바짝붙이리우스.

 

아니었다.

 

, 이렇게까지 한다고?”?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는 서로의 존재를 처음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문명의 조우가 언제나 그렇듯 결과는 전쟁이었다. syo는 그날 책 귀퉁이를 접는 사람보다 더 크게 규탄당했고, 특출나게 집요한 인간이라는 멍에를 썼다…….

 

 

 

3

 

플래그에 얽힌 비슷한 사건도 있었다. 재독 삼독을 하다 보면 이전에 붙여놓았던 플래그를 떼어낼 일도 생긴다. 이 플래그라는 게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돈 주고 살 때는 희한하게 비싸다는 느낌이라 늘 재사용을 시도하게 된다. 어디 붙여놨다가 떼서 다른 책에 붙이는 것.

 

역시 더덕단 채팅방에서 이 재사용 플래그의 보관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는데, 여기서 또 한 번 인간의 다양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붙이는 위치 하며 방법 같은 게 정말 제각각인 것이다. 다른 친구들의 방식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지만, syo의 눈에 그것은 혼탁한 카오스에 한없이 가까웠다고만 말해두겠다. syo는 책 읽는 테이블에서 손만 뻗으면 닿는 냉장고 옆면에다 붙여놓는데, 그렇다고 손만 뻗어서 틱 붙여놓는 건 아니고, 이렇게 붙여놓는다.


우리집 냉장고 옆면의 사정


사람들은 이 사진을 보고 넌 역시 집요하다며 박수를 치며(안 봐도 UHD) 좋아했지만, syo는 사실 저 플래그들의 오와 열이 완벽하게 맞지 않다든가, 색깔별로 정렬되어 있지 않다든가 해서 늘상 마음이 불편하다…….

 

 

 

4

 

플래그에 얽힌 이런 일련의 사건에서 친구는 흥미를 느낀 모양이다. 그리고 그 흥미는 그의 놀라운 선물 센스와 어우러져 이런 생일선물로 표현되었다.

 

치킨 말고 3시 방향

 

저 한 통의 플래그는 40이 다 되어가는 syo의 평생 받아본 생일선물 가운데 센스와 만족감에서 아주 손꼽히는 선물이었다. 이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게 이 치킨집에서 우리 테이블에 앉은 우리밖에 없으리라는 사실이 웃음 포인트였다. 환장해서 책 읽는 사람이 아니라면, 세상 누가 플래그 한 통을 생일선물로 받고 좋아할 것인가. 환장해서 책 읽는 사람이 아니라면, 세상 누가 플래그를 한 통 선물하면 받는 사람이 좋아할 거라고 예측하고, 그렇게 예측한 자신의 미친 센스에 스스로 감동할 것인가. 또 환장해서 책 읽는 사람이 아니라면, 세상 누가 필통을 굿즈로 받겠다고 책을 한 바구니 주문하고, 그렇게 구한 필통이 마음에 썩 안 들던 찰나에 좋은 필통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친구가 선물로 받은 저 플래그 한 통이 탐스러워 눈을 떼지 못하고 그러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어떻게 그런 서로의 마음을 찰떡같이 이해하겠는가 말이지…….

 

읽는 사람들의 물욕이란 이렇게 귀엽고 안온하다. 이것만 해도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

 

 

 

5

 

참 그리고, 그 눈빛, 점 봐주시는 분이 그 눈빛만 쏴주면 남자들이 다 넘어간다고 했다던, 그래서 어디 한번 보자고, 나한테 해보라고 내가 청했던 그 눈빛, 그래서 마지못해 한번 해보던 그 눈빛, 그 눈빛을 마주 본 내 눈빛이 눈으로 침 뱉는 눈빛이었던 거 사과합니다. 시켜놓고선 그랬네요.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게 먹히지 않은 거라고 우리는 서둘러 합의했지만, 사실 내가 뱉은 침-눈빛도 최선을 다해 뱉은 가래침은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아직 우리가 눈빛으로 할 수 있는 맥시멈이 어디인지 다 확인하지 않은 거잖아요. 정말 다행이죠?

 

 

--- 읽은 ---

 


140. 모든 운동은 책에 기초한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오지원 옮김 / 유유 / 2019


- 일독(190828)

- 재독(210424) 


책에 대한 신뢰가, 정확히 말해서, 책의 번영과 위대성에 대한 신뢰가 아직 살아 있던 시대의 지식인에게 책이란 어떤 것일지 가늠해 보곤 한다. 아무리 내가 책을 사랑한대도 그들의 책과 나의 책은 다를 것 같다. 어쩌면 같은 단어조차 아닐지 모른다. 오늘 우리가 책의 생존을 이야기할 때면 그래도라는 접속사가 자연스럽다. 종이책의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낙관적인 사람조차 사라지진 않을 거야라는 말끝을 선택한다. 그야말로 가장 비관적인 낙관이다. 애초에 여기가 누구도 책의 위엄을 의심하지 않는 세상이었다면, ‘모든 운동은 책에 기초한다라는 말이 태어나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에 웅장하지만 슬픈 파문을 던지는 일은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든 운동은 과연 책에 기초하는가? 정말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운동 역시 책에 기초하는가? ‘모든 운동은 책에 기초한다라는 제목에 매력을 느끼고 이 책을 꺼내 드는 사람이라면 이미 어느 정도 책에 기초해 운동을 만들어나가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책의 존엄 증명이 불필요하고,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증명이 작동하지 않는다. 늘 그게 슬픈 일이다. 사람들이 좀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지만, 읽으면 읽고 읽지 않으면 읽지 않는다. 읽지 않음은 어떻게 읽음이 되는가. 읽지 않음과 읽음 사이의 경계선은 때로는 한달음에 넘을 수 있는 도랑처럼 작고 얕은데, 때로는 대륙과 대륙을 나누는 산맥처럼 높고 험난하기도 하다. 신비롭다.

 

나는 책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의 측량할 수 없는 광활함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그것이 주는 환희에 나를 맡기는 법도 알게 되었다. 우리가 겪는 모든 확장의 중요한 부분, 소위 말하는 '자신을 넘어서고자 하는 갈망', 우리 본질의 가장 훌륭한 점인 이 모든 거룩한 갈증은 늘 새로운 체험을 우리 안으로 받아들이도록 고취하는 책의 기지에 빚지고 있다.

_ 슈테판 츠바이크, 모든 운동은 책에 기초한다

 

 

 


141. 위험한 법철학

스미요시 마사미 지음 / //소 옮김 / 들녘 / 2020

 

철학 비전문가 혹은 비전공자, 그러니까 철학으로 밥을 벌지 않는 아마추어 독서가가 철학을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를 정말 오래 고민했다. 아무래도 폼난다는 게 제일 큰 소득일 듯. 왜냐하면 사람들은 철학을 잘 안 읽으니까. 사는 게 좀 쉬워지는 효과가 있지만 매사가 그렇지는 않다. 쥐뿔만큼 나은 인간이 된 것 같긴 한데, 철학 말고 다른 어떤 장르라도 이만큼을 읽었으면 이 정도는 되는 게 당연하겠다. 어쩌면 그쪽이 더 나았을지도. 철학이 그러할진대, 심지어 철학이라는 장르는 취미 독서가에게 무슨 효용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그런 게 있긴 할까?

 

저자는 법철학이 상식이라는 썩은 연못의 물을 퍼내는 삽 같은 힘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글쎄, 다 읽었지만 그게 과연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만한 설득력이 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가볍고 재미있다. 그렇게 쓰려고 애쓴 흔적이 눈에 띈다. 개그 욕심도 있다. 그 욕심은 언제나 좋은 욕심. 일본 사람들은 빵빵 터졌다지만, 또 그 정도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의존하며, 그 안에 자신들의 욕망, 악의, ()을 던져 넣어왔던 것, 그것이 바로 상식이다. 상식이라는 웅덩이는 긴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투기해온 자기에게 불리한 것의 축적에 의해 탁해지고 더러워지고 악취를 풍기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안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보려 하지 않고, “다 그런 거지 뭐.” 하며 손을 대지 않은 채로 두었다.

  법철학은 그 상식이라는 웅덩이를 전부 퍼내고 그곳에 인간사회의 음지 부분을 찾아낸다. 상식 위에서 전개되는 법철학은 말하자면 인간사회의 양지 부분밖에 비추지 않는다. 그러나 깨끗한 것더러운 것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이성적인 인간이 합리적인 계약에 의해 국가사회를 만들고 합리적인 법을 만들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는 옛날이야기의 뒷무대, 언터처블한 음지의 세계를 직시하고 갇히지 않은 두뇌로 생각하는 것, 그것이 법철학의 진면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_ 스미요시 마사미, 위험한 법철학

 

 

 


142.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

 

syo는 내가 좋아하는 글이면 남들도 다 좋아할 거라고는 착각하지 않을 만큼 철이 들었지만, 동시에, 내가 진짜 엄청, 겁나, 미친 듯이, 아주 그냥, 좋아서 환장하는 글이면 남들도 다 좋아할 거라고 순진하게 믿을 만큼 철 안 든 녀석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신형철 별로던데-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진심으로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 신형철 선생님이 호불호를 탄다고? 이 아름다운 글이? 진짜? 그건 왜냐하면 내가,

 

신형철 선생님의 글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진짜 엄청, 겁나, 미친 듯이, 아주 그냥, 좋아서 환장했기 때문이다. 모든 글이 다 좋아서, 어느 한 대목 짚어 감탄하지 않고 그냥 끝나는 글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너무 사랑하면 그런다. 내 새끼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객관적으로, 내 새끼 너무 예쁘지 않냐? 라는 말을 100% 진심으로 하게 된다. 이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이뻐할 수밖에 없다고, 조금의 의심도 없이 믿게 된다. 이런 건 인간의 한계라기보다 그냥 인간의 생김인 것 같다.

 

작가 같은 게 되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다짐을 하게 되는 계기는 정말 다종다양하다. 너무 잘 쓴 글을 만나서 내 것이 짜쳐 보일 때마다 그런 마음을 굳혀 나가는 게 주된 양상이지만, 신형철 선생님의 경우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쐐기를 박게 한다. 이런 것이다. syo가 쑥과 마늘을 바리바리 챙겨 들고 동굴 속으로 들어간 착한 곰처럼 꾸준히 읽고 쓰고 그러다 운까지 따라준다면, 내 나이 50에 이르러 35세의 선생님이 쓰셨던 정도의 글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도 계속 포기하지 않고 그 일을 반복한다면 내 나이 80쯤 이제 50세의 선생님이 쓰신 것과 나란히 놓을 만한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름다운 글을. 그러나 그런 선생님조차 신형철 별로던데-’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거라면, 나란 인간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듣게 될 것인가! , 세상에 나가지 말자. 쑥 꺼져, 마늘 치워…….

 

저런 내적 북치고-장구치고와는 별개로, 나는 여전히 선생님의 글을 너무 사랑한다. 좋은 글을 지어 올리기 위해 필요한 모든 능력들의 신체적 은유, 그러니까 눈, , , , 엉덩이, , 가슴 같은 모든 쓰기-기관들에 관해서 생각하건대, 나는 선생님의 그 기관들을 몽땅 훔쳐 와서 내 안에 채워 넣고 싶다는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무례한 욕심을 종종 부린다.

 

<킬링 디어>의 첫 장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뛰고 있는 심장이다. 이 장면은 말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심장이다. 심장은 언제나 제 주인만을 위해 뛰고, 계속 뛰기 위해서만 뛴다. 타인의 몸속에서 뛸 수 없고 타인의 슬픔 때문에 멈추지도 않는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다. 그러나 이 한계를 인정하되 긍정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니까. 그럴 때 인간은 심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이다.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_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읽는 ---

피에 젖은 땅 / 티머시 스나이더

심신 단련 / 이슬아

읽는 직업 / 이은혜

열과 엔트로피는 처음이지? / 곽영직

200년 동안의 거짓말 / 바버라 에런라이크, 디어드러 잉글리시

내가 사랑한 공간들 / 윤광준

물리가 쉬워지는 미적분 / 나가노 히로유키

나의 첫 파이썬 / 에릭 마테스

스스로를 아는 일 / 앙드레 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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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4-26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환장해서 책 읽는 사람이 아니라면, 세상 누가 플래그를 한 통 선물하면 받는 사람이 좋아할 거라고 예측하고, 그렇게 예측한 자신의 미친 센스에 스스로 감동할 것인가.˝ 나 이 글 읽고 쥐고 있던 마우스 내던졌어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 넘 웃겨,,,,근데 우리 쬐끔 비슷한 구석이 있어 괜히 허탈하네...

syo 2021-04-26 10:41   좋아요 1 | URL
비슷한데 왜 허탈해요 ㅋㅋㅋㅋㅋㅋ 싸우자, 그리고 이기자, 우리 집요한 사람들이여!

수이 2021-04-26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여워 ☺️ 라고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소리내어 말하고 말았다 이 귀여운 사람들 보소 라고

syo 2021-04-26 10:42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혹시 사돈이세요? 왜 남말하세요?

페넬로페 2021-04-26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층 입주민이면서, 은근히 플래그 비싼데, 그래도 천 원샵에서 파는건 좀 품질이 안좋고~~소중한 내 책에 붙이는 건데 메이커 있는 제품을 사야지^^
이렇게 생각하며 사는 1인입니다.
신형철님에 대한 글,
격하게 공감하며 넘 재밋게 읽었어요😊😊

syo 2021-04-26 10:43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맞습니다. 플래그는 아무래도 삼엠이지요....

그리고, 맞아요, 일자산은 언덕이지요! 격하게 공감합니다.
고치셨지만, 이미 늦었어요! ㅎㅎㅎㅎㅎ

다락방 2021-04-26 11:09   좋아요 2 | URL
아니, 페넬로페 님은 일자산이 언덕이란 걸 아시는 분이란 말입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04-26 11:12   좋아요 1 | URL
그럼요!
딱 치킨 먹기 좋은 곳이죠^^

syo 2021-04-26 11:17   좋아요 2 | URL
그러고 보니, 작년에 올림픽 공원 다녀온 글을 썼을 때,
페넬로페님께서 그때 거기 계셨다는 댓글을 다셨던 게 기억나네요^-^

다락방 2021-04-26 10: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기다린 보람이 있는 글이네요. 이 부장님이 바쁜 와중에도 글 올라왔나 자꾸 들락거렸다규요!! 이제 편한 마음으로 일해야겠다. 그럼 부장은 이만 가요. 안녕!

syo 2021-04-26 10:44   좋아요 1 | URL
아, 부장님이라니, 거듭 생각해도 정말 어마어마한 친구란 말이지? ㅎㅎㅎ

잠자냥 2021-04-26 12:52   좋아요 1 | URL
아니, 다 부장님, 부장님답게 치킨 한 여섯 마리는 쏘셨어야죠. 섭섭합니다.

다락방 2021-04-26 13:58   좋아요 1 | URL
아시다시피, 저희가 입이 짧아서요..

=3=3=3=3=3

라파엘 2021-04-26 1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플래그를 붙일 때 너덜거리는 게 싫어서 표지 사이즈 안쪽으로 붙여요. 그리고 쇼님이 냉장고 옆에 붙여두는 것처럼 저는 책상 한쪽에 나란히 붙여두지요. 그런데 쇼님과 마찬가지로 책상에 붙여둔 플래그가 균일하지 않은 게 신경쓰여서, 언젠가부터는 북다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ㅎㅎ

syo 2021-04-26 11:19   좋아요 2 | URL
라파엘 님의 간증(?) 말씀에 힘이 납니다. 역시 호모 바짝붙이리우스들!!
하지만 북다트는 너무 비싸요... 어흑ㅠㅠ

라파엘 2021-04-26 11:34   좋아요 1 | URL
북다트가 비싸기는 하지만, 사용할수록 점차 접착력이 떨어지는 플래그와 달리, 북다트는 반영구적으로 재활용하며 사용할 수 있기에... 인생을 길게 보고 북다트를 구매합니다 ㅋㅋㅋㅋ

syo 2021-04-26 23:41   좋아요 1 | URL
그렇게 보니까 그러네요. 설득력 있다.....
저도 저 선물받은 플래그까지만 소진하고 다음에는 북다트를 이용해볼까 봐요.
감사합니다 ^-^

새파랑 2021-04-26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플래그를 쓰는 사람이 많군요. 신세계네요. 포스트잇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만 써봤는데~ 치맥이 가장 눈에 들어오네요 ㅎㅎ

syo 2021-04-26 23:41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치킨은 어떻게 찍어도 크게 나오니 이것 참 신비로운 일이지요.

2021-04-26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엄청 꼼꼼하시네요!ㅋㅋ 암튼 영업당해서 집에 있는 사랑의 정확한 실험이었나 그 책 읽어봐야겠어요. 맛점하세요^^

syo 2021-04-26 23:42   좋아요 1 | URL
ㅎㅎㅎ 오랜만의 영업활동이었네요. 즐거운 독서 되시길^-^

단발머리 2021-04-26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는군요 ㅎㅎㅎ
호모 플래그바짝붙이리우스님! 오래오래 건필하세요!

syo 2021-04-26 23:4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그러고보니 2층 주민이셨던가요?

잠자냥 2021-04-26 1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 님이 6층 입주자죠? 아니 저렇게 붙인단 말이에요?! 그리고 여기 입주자분들은 플래그 다 옆면에 붙이시는구나.... 그것도 놀라워요. 전 책 위쪽에 붙이거든요. 그리고 저도 플래그 왠지 아까워서 재활용하는 사람인데요. syo님은 냉장고에 저렇게!!!! ㅋㅋㅋㅋ 놀라워라. 전 그냥 책 맨 앞장에 붙여둡니다. 가끔 그걸 확인 안 하고 알라딘 중고에 책 팔러 가면 점원이 책 확인하다가 그 플래그 뭉텅이 발견해서 친절하게 ˝이건 처리해 드릴게요˝하면서 냉큼 버리는데... 아아앗! 다시 돌려주세요 하기도 뭐하고 그저 참 아깝습디다. ㅋㅋㅋ

syo 2021-04-26 23:47   좋아요 0 | URL
저도 누워서 책 보다가 플래그 떼면 책 앞장에 붙여놓습니다.
그러다 날 잡아서 다 냉장고로 옮기지요 ㅎㅎㅎ
저런 작은 것들이 이상하게 아깝단 말이지요? 사람 심리 알 수 없다니까요 정말.

반유행열반인 2021-04-26 1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6층에 사는 애이름 syo라지요 S.Y.OOO

syo 2021-04-26 23:45   좋아요 1 | URL
아, 어린 시절 동요 테이프에서 듣던 정겨운 노래 🐶

Angela 2021-04-26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플래그는 위에 ㅎㅎ

syo 2021-04-26 23:45   좋아요 1 | URL
깃발이라는 것은 옆으로 펄럭이는 것입니다 ㅎㅎㅎㅎ

공쟝쟝 2021-04-26 14: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3층 주민이올시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저 3m 선물 누구예요!? 정말 센스 쩔어서 내친구였음 좋겠다!! 으흐흐

syo 2021-04-26 23:46   좋아요 0 | URL
그러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슬프게도....
그럴 수 있다해도 그건 그거대로 또 슬프다.

공쟝쟝 2021-04-26 23:48   좋아요 0 | URL
...... 맞네... 그건 그거대로 슬프다.... 쓱쓱(눈물을 훔친다)🤧

바람돌이 2021-04-26 16: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여긴 3층 주민이 대세인듯..... 음 저는 2층 주민입니다. 뭐든지 일단 붙이고 보자. 그러면 무언가 하나는 건지리라라고 할까? ㅎㅎ syo님의 6층 입주보다 냉장고 옆면이 더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오늘 알았네요. 우리 친해지기는 힘들듯해요. ㅠ.ㅠ

syo 2021-04-26 23:47   좋아요 1 | URL
집요한 스타일 싫어하시나 봐요? 왜요? 왜 싫어해요? 왜?(집요)

바람돌이 2021-04-27 00:31   좋아요 1 | URL
저런거 줄세워서 붙여놓으면 막 떼서 겹쳐놓는거 취미예요. ㅋㅋ

syo 2021-04-27 11:37   좋아요 0 | URL
아.... 안녕히 계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4-26 22: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우리 윗집 청년은 어쩜 이렇게 글을 맛깔나게 쓸까? 플래그 다 씹어먹을 뻔했네~ 저는 플래그란 무엇인가?에 한 표인 5층 입주민입니다. 책 한 번 읽으면 중요 문장이랑 페이지 이런건 그냥 외워지잖아요? 독서토론 할 때 누가 얘기하면 아~ 그 125페이지 넷째줄? 그러잖아요. 하하!
-호모플래그바짝붙이리우스에 대항하는 호모허세관종데우스가

syo 2021-04-26 23:49   좋아요 2 | URL
만날 일 생기면 플래그 하나 꼭 드릴게요.
힘내세요, 툐툐님....😥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뒷북소녀 2021-04-27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여드릴 수 있다면 제가 플래그를 재사용하기 위해 떼놓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군요.
저렇게 질서정연하다니. 세상에!!!

플래그를 보면 6층 아니신가요? (플래그를 아주 바짝 붙이는 편이다!)
2층은 다이소 플래그 같은데...
syo님 냉장고에 붙여져 있는 플래그는 3M이 많은 것 같고...

syo 2021-04-27 11:59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저는 최상층 거주자입니다. 으하하하하.
그리고 저 냉장고 사진도 제 눈에는 무질서의 발현으로 보입니다....🙄

레삭매냐 2021-04-29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치킨에 비루만 눈에 들어옵니다.

syo 2021-04-29 22:3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려했던 바입니다.

하나의책장 2021-04-30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한번에 한 박스씩 사 구입하고선 따로 선물하거나 나눔하지 않는 이상 그대로 책에 붙힌 대로 놓고 있거든요. 냉장고 옆 빼곡하게 줄지어 놓고 재사용하는 것도 나름의 아이디어네요^^ 아! 그리고 저도 syo님 말에 동감하는 게 색별로 정리되어 있지 않아서 뭔가 개운한? 느낌이 없어서 syo님처럼 마음이 살짝 불편해요ㅎ 아마 제 성격엔 색별로 흐트러짐없이 정렬시켜 놨을지도ㅎㅎ

syo 2021-04-30 09:21   좋아요 0 | URL
이런 건 이래저래 피곤한 성격입니다.
특히 흐트러지는 인간과 같이 살다보면 고통받는 건 늘 이쪽, 편한 건 늘 저쪽 같고....
그럼 이쪽은 잔소리를 하게 되고, 저쪽은 ‘괜한‘ 잔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하고....

내탓이오, 내탓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