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의 할부

 

  


1


공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2

 

마지막 졸업 이후로 누구도 나를 공부시키지 않았다. 이제 공부를 하려거든 알아서 해야 했고, 잘하고 있는 건지 확인할 수 있는 중간고사도 없었으며,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알려주는 사람을 만나기는 더없이 힘들었다. 공부는 평생 하는 거야- 하는 허망하고 위압적인 말, 이게 다 공부야- 하는 기만적이고 자포자기적인 말들이 가득한 이 세상에, 정작 내가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누구도 도움 되는 말을 해주지 않는 깜깜한 시대가 도래했다.




3

 

뭐하냐고 물어오면 공부한다고 대답하는 때가 많았다. 서른이 넘어서도 그랬다. 전 여친은 선생님 남자친구는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는 학생들에게, “늦게까지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며 웃었고 나를 웃겼는데, 실은 그게 웃을 일이 아니었다는 걸 우리 두 사람이 이미 알았다. 늦게까지 공부하는 일은 훌륭한 일도 아니었고, 웃어넘길 일조차 아니었다.

 

사실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너무 길고 절절해서공부한다는 줄임말을 대신 쓰는 일도 많다. 그럴 때 공부는 자체로 어떤 목적이 아니라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할 터널 같은 것이 된다. 터널은 원래 어둡고, 그 속에서 울면 울음소리가 크게 울린다. 그러면 꼭 공부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무것도 아닌 나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감추기 위해 찍어 바르는 두터운 분 같다.




4

 

공부가 업이고 본분이던 시기에는 그렇게 학을 떼던 사람들도, 단지 그때를 지나왔다는 이유만으로도 공부라는 낱말의 무늬에 어떤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마음 공부, 인생 공부, 돈 공부…… 세상에 있는 이렇게 많은 공부들이, 왜 공부로 불리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마음 연구, 인생 탐구, 돈 학습이 아니라 다 공부라는 꼬리를 달고 있는 이유. ‘공부만큼이나 사람들을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는 개구리로 만드는 마법의 단어가 없다. 공부는, 하지 않아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때 하고 싶고 또 해야 하며 그래야 남은 인생이 어떤 방식으로든 아름답고 향기로워진다며 끊임없이 자기에게 거는 주문의 고갱이다.




5

 

나도 나만의 공부가 가지고 싶지만, 해 아래 더는 새것이 없는 법이어서, 세상 모두를 깜작 놀래킬 독창적이고 신통방통한 공부를 찾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그저 이 시대의 이런 공부, 저 사람의 저런 공부 가운데 닮고 싶은 것들을 조각조각 훔쳐내 서툰 바느질로 기워낼 수 있을 따름.


 

 

소크라테스 이전에 나타났던 그리스 사상의 또 다른 조류에 대해서도 철학 이전의 철학을 논할 수 있다. 이는 그리스적 정신, 교육과 양성에 대한 욕망, 그리스인들이 <파이데이아paideia>라고 불렀던 것에 대한 근본적인 요구와 관련된 이론과 실천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호메로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그리스 이래로 청년 교육은 귀족 계급 밑 <아레테>를 지닌 자들의 크나큰 관심사였다. 아레테는 고귀한 혈통의 후예들에게 요구되었단 탁월성으로, 훗날 철학자들에게서 덕, 다시 말해 영혼의 고매함으로 변하게 된다. 우리는 도덕적 훈계를 모아 놓은 테오그니스의 시를 통해 이러한 귀족적 교육에 대해 알 수 있다. 이 같은 교육은 사회적 집단 체제 내에서 어른들에 의해 주어졌다. 이 안에서 젊은이들은 신체적 힘, 용기, 의무감, 전사에게 걸맞은 명예심 등의 자질을 고양하는 데 힘썼으며, 그들이 귀감으로 삼았던 위대하고 거룩한 조상들은 이 같은 자질들의 화신이었다.

_ 피에르 아도,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

 

존재양식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학생들은 학습과정에서 전혀 다른 특질을 보인다. 우선 그들은 첫 강의부터 백지상태로 참여하지는 않는다. 그 강의가 다루는 주제를 미리 고찰하고 특정한 문제와 의문에 대해서 골몰한다. 그들은 강의주제를 놓고 이미 씨름한 바가 있어서 그것에 흥미를 느낀다.

  그들은 그저 수동적으로 낱말과 사상을 수신하지 않고, 경청하며, 듣는 데에 그치지 않고 능동적이고 생산적으로 수용하고 대응한다. 그들이 들은 것은 그들 고유의 사유과정을 자극한다. 새로운 의문, 새로운 관념, 새로운 전망이 떠오른다. 경청행위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과정이다. 학생은 선생이 말하는 어휘들을 수용하고 그것에 대응하면서 생기를 얻게 된다. 그가 습득한 것은 단순히 집으로 들고 가서 암기할 수 있는 그런 지식에 그치지 않는다. 모든 학생은 자기 나름대로 충격을 받고 변화한다. 강의를 들은 후에는 그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

_ 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

 



6


공부해서 뭐가 되는 것보다, 공부하는 뭔가가 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공부하기 위해서 공부 거리를 찾아다니는 삶을 한심하게 여기는 사람들로부터 숨어 지내는 지하생활자가 나쁜가? 하나의 삶이 그 존재 자체만으로 다른 형태의 삶을 공격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다수가 선택한 삶의 형태는 힘이 세서, 잔 펀치 한 방으로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도덕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모두 그들과 함께다. 공부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은 공부 속으로 더 깊이 더 멀리 도망친다.

 

하지만 어떤 삶을 선택해도, 언젠가 반드시 도망쳐야 하는 때는 온다. 시간은 누구의 편도 아니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도주로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도주로는 돈을 주고 살 수는 없다. 그저 돈을 주고 샀다고 착각할 수는 있다. 착각이 달아나는 순간 허무가 찾아올 것이고, 인간이 감당해야 할 허무의 총량은 어마어마하여, 한순간에 허무가 총량으로 육박해 올 때 삶을 견뎌낼 수 있는 초인은 몇 없을 듯하다. 범인은 매일 조금씩 그 허무를 나누어 감당하는 편이 좋을 수 있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런 길을 걷는 것 같기도 하다.

 

 

 

--- 읽은 ---

 


165. 삶의 무기가 되는 자본론

시라이 사토시 지음 / 오시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

 

‘~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개념체계들은 모두가 다 삶의 무기고다. 베지 않기 위해 태어난 칼이 없듯이, 무기로 쓰이지 않기 위해 태어난 체계는 없다. 철학 역시 마찬가지라서, ‘삶의 무기가 되는이라는 수식어는 사실 중언부언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런 말이 울림을 가지고 소비자에게 다가오는 건, 개념들이 삶과 유리된 추상적이고 허망한 것들이라는 인식이 세상을 정복했다는 뜻이겠다. 그래서 개념과 삶을 다시 연동시키려는 시도는 자체로 가치가 있다. 단지 저자가 이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지가 문제인 것이다. 그간 읽은 무기운운하는 제목의 책들은 대체로 허접했다. 승진, 혁신, 판매량 제고, 신임 얻기, 자기 표현, 인정 받기…… 이른바 성공의 요소이거나 증거가 되는 것들을 취득하여 경쟁 사회에서 남다른 존재가 되는 것, 그런 것을 이라고 상정하고 쓴 책들 속의 무기, 삶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이 쓴 책 속의 무기들과 같은 원료를 가지고 만들어도 모양이 다를 수밖에 없었고, 나는 그 무기를 휘두를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 그러니까 이런 제목의 책을 읽을지 말지 저울질 할 때,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인 것이다. 이 책은 자본론이라는 무기로 신자유주의라는 삶의 모델을 겨냥한다. 신자유주의가 곧 우리네 삶인 이 세상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사실은 사실이므로, 그 삶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어떤 무기를 제공하는지 한번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독서의 방향은, 자본론을 어떻게 휘두를 것인가 보다, 자본론을 무기로 쓰는 저자의 방식을 공부해서 자본론이외의 책도 무기화하는 역량을 획득하는 것이 되겠다. 

 

자본의 종속 공세에 아무 반격도 하지 않으면 인간의 기초 가치는 점점 떨어질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점령한 과거 수십 년간 그 일이 진행되었다. 인간의 기초 가치를 낮추고 자본에 봉사하는 능력으로 인간의 가치를 결정한다. 그리고 능력이 없으니까 자네의 임금은 이게 다야. 이걸로 가치에 준한 등가교환을 한 거니까 불만 없지?’라고 압박한다. 그 공세에 맞서려면 인간의 기초 가치를 믿어야 한다.

  우리는 사치를 더 누릴 권리가 있다고 확신해야 한다. 사치를 누리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풍요로워야 한다. 우리는 모두 그럴 자격이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에 종속되고 그 가치관에 길든 주체는 그 점을 잊어버린다. 이 망각을 강제하는 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성과였을지도 모른다.

_ 시라이 사토시, 삶의 무기가 되는 자본론

 

 

 

 


166. 10대를 위한 나의 첫 고전읽기 수업

박균호 지음 / 다른 / 2021

 

10대 때를 생각해봤다. 이 책 속의 고전들은 당연히 그때도 있었고 역시 당연하게 그때도 고전이었다. 문제는 접근성이어서, 10대의 syo는 이런 고전들을 몰랐거나, 알았어도 걔들은 당최 읽고 싶지 않게 생겼었다. 읽고 싶지 않게 생긴 책들을 일단 읽게 만들려면, 누군가 미리 읽고 흥미로운 지점들을 발견해 꺼내놓은 책들, 그러니까 책의 책이 필요하다. 20대의 syo가 독서의 판을 키우고 영역을 넓힐 때마다 도움이 되었던 책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이 고전을 모르는 아이들, 혹은 고전에 고전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syo는 체감에 가까운 예감이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책에서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무리 박균호 선생님이 독서의 달인이라고 해도, ‘책의 책은 어떤 책을 읽은 이의 가치관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하나의 책에서 무엇을 읽어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의지, 생각거리를 발굴해내는 눈, 내가 읽은 책의 어느 부분을 얼마만큼 골라 내가 쓸 책에 실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손가락, 그 모든 것에 작가의 세계관이 묻어 있고, 그 결과 모든 책의 책은 하나의 예시에 그친다. 그렇지만 두꺼운 책보다 얇은 책을 읽고 싶은 마음, 어차피 다 기억하지도 못할 거, 정리된 중요한 것들만 읽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겠지. 모르긴 몰라도 박균호 선생님 역시 이 책을 쓰시며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었을 듯. 어떻게 아이들을 고전 앞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들 것인가. 그건 참 중요하면서도 무시무시한 질문이다.

 

 

 


167. 비트겐슈타인 철학으로의 초대

박병철 지음 / 필로소픽 / 2014

 

- 일독(xxxxxx) / 재독(xxxxxx) / 삼독(1712xx) / 사독(191101)

- 오독(210516)

 

딱히 이 책이 위대하여 다섯 번이나 읽은 것은 아니다. 그저 멍청한 syo가 있었을 뿐. 확실히 비트겐슈타인 개론서 가운데 가장 쉽다. 그래서 까먹고 다시 보고 까먹고 다시 본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 봐야지. 다섯 번은 진심 과했다.

 

 

 

--- 읽는 ---


팀 하포드의 경제학 팟캐스트 / 팀 하포드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 / 오혜진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 김금희

시녀 이야기 / 마거릿 애트우드

생전 유고 ­ 어리석음에 대하여 / 로베르트 무질

을의 민주주의 / 진태원

문명과 혐오 / 데릭 젠슨

어른의 교양 / 천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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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6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16 16: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난티나무 2021-05-16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 펀치 한 방에 치명상을 입지 않기 위해!!!

syo 2021-05-16 20:01   좋아요 0 | URL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잔 펀치가 진짜 무섭잖아요. 깨달았을 때는 이미 빈사....

북다이제스터 2021-05-16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구는 단어 무게가 만만치 않아 상대적으로 편한 공부란 단어를 사용해 봅니다. ^^
오늘도 세상이 뭔지 열심히 공부해 봅니다. ㅎㅎ

syo 2021-05-16 20:02   좋아요 0 | URL
북다님께 공부와 연구가 그런 개념이라면, 사실 북다님의 읽기 쓰기는 이미 연구에 가깝지 않나 합니다 ㅎㅎㅎ

뒷북소녀 2021-05-17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번에 해당하는 사람 여기 한명이요!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제대로 하고 있는게 하나도 없어서요.

syo 2021-05-20 20:02   좋아요 0 | URL
사람이 다 비슷한가 봐요.
그럴 때는 소소하게나마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ㅎㅎㅎㅎ
힘내자구요^-^

유부만두 2021-05-21 0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철학책을 몇 권 샀잖아요. 샀다고요. 그런데 펼치기 까지 또 몇 년 걸리겠죠, 아마.

syo 2021-05-21 09:15   좋아요 1 | URL
제 책장에도 2011년에 호기롭게 구매하고 10년째 책등만 쓰다듬느라 빛이 바랜 철학책이 한권 있습니다. 그치만 이번 생에 읽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허망하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초딩 2021-06-04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철학으로의 초대 담고 갑니다 ^^
그리고 5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syo 2021-06-04 23:3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ㅎ 신나네요^-^>

새파랑 2021-06-04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늦었지만 완전 축하드려요. 독서 천재 syo님~!!

syo 2021-06-04 23:3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천재 syo‘는 형용 모순입니다.
syo의 s가 stupid의 s라는 믿을만한 소문이 있습니다 ㅎㅎㅎ

감사합니다, 파랑님 ㅎ

이하라 2021-06-05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syo 2021-06-08 12:48   좋아요 0 | URL
ㅎㅎㅎ 늦었지만 감사드립니다^-^

초란공 2021-06-05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공부왕 syo님 축하드립니다~ 생계와 도주로 사이를 고민하는 요즈음입니다.. ^^;;

syo 2021-06-08 12:4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초란공 님.
초란공님의 고민이 글로 화하여 제게 많은 배움이 되겠지요. 기다리겠습니다^-^
 


영광과 광영 사이에서

 

 

 

1

 

빨래가 끝난 수건을 탁탁 털어서 건조대에 너는 중이었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징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오, 저놈의 재난 문자는. 수건 다음에는 바지, 바지 다음에는 속옷, 속옷과 속옷 사이 공간에 양말……. 좋아, 건조대 테트리스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군. syo는 이렇게 생활 속 소소한 만족을 통해 자존감을 저금하는 중이다.

 

그랬는데, 한방에 자존감 로또가 터졌다. 재난 문자겠거니 했던 그 진동이 실은 메일 알림이었고, 꾹 눌러보니 알라딘이 쓴 편지가 나왔다. 축하합니다. 40만 원. 깜짝 놀랬지? 사나흘 뒤에 줌. !

 

서재에는 내 당첨 소식을 나보다 먼저 접한 이웃분들의 축하 댓글이 달려 있었다. 너가 받을 것 같다고 내가 그랬지? 하는 글들이 많아서 좋았다. 그 말들이 다 진심이셨군요. 여러분들은 진짜로 제가 받을 거라고 생각하고 계셨어요. 나조차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요…….

 


 

2

 

사연 없는 인생 어디 있겠느냐마는, 이 최우수작 당첨의 이면에도 역시 어딘지 짠한 사연이 있었더랬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그 짠한 사연의 시작은 도둑놈에서부터다.




거금 4만 원을 투자하여 피에 젖은 땅을 구매, 구매하는 김에 정희진 선생님의 신간과 또 다른 책까지 엮어 약 7만 원짜리 박스를 구성했다. 그리고 그 박스가 도착하기로 예정된 날, syo는 데이트 중이었다. 우리 집 택배 수령 시스템은 벨 누르기도 이름 부르기도 아니라, 그냥 택배형아가 알아서 대문 열고 들어와서 우리 집 현관 앞에 던져놓고 가는 방식이다. 데이트 중에 택배 잘 놓고 간다는 형아의 카톡을 확인했으니 집에 돌아오면 우리집 현관 앞에 알라딘 로고가 찍힌 박스가 있어야겠지? 그런데 없었다. 알라딘 박스 뿐 아니라 1.25kg짜리 하인즈 케찹이 든 박스도 같이 없었다. 택배형아에게 전화를 했는데, 형아는 틀림없이 평소 하던 대로 박스 두 개를, 하나는 책이고 하나는 뭔지 모를 그 박스들을 내려놨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 집에 택배 백만 개를 무사고로 가져다 놓았던 형아가 실수를 할 리가 없지. 아랫집 아저씨 역시 오후쯤 우리 집 현관 앞에 살포시 놓여진 박스 두 개를 목격했다는 진술을 보탰다. 그렇다면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이건 필시 도둑놈이다.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도둑놈이 내 책과 토마토케찹을 가져간 것이다. 책과 토마토케찹을. , 천하에 나쁜 새끼, 그 책은 리뷰대회 나가려고 산 책이었고 케찹은 유기농이었단 말이다…….

 

책과 케찹을 잃은 syo는 실의에 빠져 리뷰대회 참가를 포기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연을 페이퍼에도 간략하게 서술하고 더덕단 친구들에게도 알렸다. 친구들아, 나는 축구 결승전에 나갈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축구화를 도둑맞아 버렸거든…… 조깅화를 신고 뛸 수는 없는 거잖아. 안 될 거야, ……. 이렇게 슬픈 분위기도 연출했지만 동시에, , 아깝다, 내가 등판만 했으면 그냥 40만 원 집어 삼키는 건데, , 요거 도둑맞는 바람에 날라갔네, , 어쩔 수 없지, 하며 불난 집 지하에 금송아지 있었는데 이제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아쉽게 되었구나- 하는 식으로 까불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syo의 이렇듯 복잡다단한 감정 몸부림을 지켜보던 친구들 가운데, 평소에도 손이 빠르고 약간 기분파에다가 뭔가 하나에 꽂히면 무소의 뿔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는 친구가 벌떡 일어나면서(채팅이었다.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는 것) 외쳤다. 내가 사줄게! 그러더니 진짜 피에 젖은 땅을 사줬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어어 아니겠지 어어어 하는 사이에 덜컥 사줬다. 그리고 1등 하라고, 넌 반드시 일등을 해야한다며 느낌표를 삼만 개쯤 날렸다. 일이 점점 커졌다. 11111(이게 뭔지는 pc에서만 제대로 보일 겁니다.)

 

syo는 그 친구의 호쾌함에 얼떨떨한 감동을 받았고, 얼떨떨한 상태로 외쳤다. 그렇다면 여러분, 내가 1등을 한다면 여러분들에게 책 한 권씩을 돌리겠습니다!!!!! 다들 무슨 책 받고 싶은지 생각해 놓으세요!!!! 내가 뭘 쓸지는 나도 당최 모르겠지만, 아 뭐든 되지 않겠어? 나야, , syo라고!! 와아~!!! 맞아맞아!! 너는 syo!! 와와와!!

 

더덕단은 저게 문제다. 다들 무슨 마른 더덕처럼 분위기에 활활 탄단 말이지.

 

 

 

3

 

제정신이 드는 데 며칠 걸리지도 않았다. 책이 도착했고 책상 위에 올려놨더니 책상이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사실은 내가 힘든 것이고 책상은 내 마음을 표현하는 객관적 상관물에 불과했을 것이다. 800페이지였다. 그걸 알고는 있었지만, 아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고 보는 것과 하는 것은 다른 법이다.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할지, 또 어떻게 써야 할지 정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둡도다, 나의 미래여. 그러게 깝치길 왜 깝쳐놔서…….

 

마감일 며칠 전에야 겨우 완독했고, 그 시점에는 증언록 형태로 글을 써야겠구나- 하는 기초적인 윤곽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방법에도 확신이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런 형식의 리뷰를 쓰는 참가자는 나밖에 없을 거고, 그렇다면 그건 굉장히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흉내 낸다는 것이 윤리적으로도 썩 달갑지 않아서, 쓰는 내내 이걸 써도 되는 건지 아니지를 계속 캐묻는 마음한테 괴롭힘을 당했다. 그래도 시간을 많이 들여서 열심히 썼고, 그 결과 미운 자식이면서 동시에 굉장히 아끼는 자식이 태어났다. 이제 낙장불입이다. 밀어붙이자!

 

 

 

4

 

누군가는 고작 리뷰대회 1등 이게 뭐라고 이 호들갑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syo에게 이건 충분히 , 설령 이게 진짜로 뭐가 아니라 치더라도 그렇다면 이렇게 뭣도 아닌 것이 정말 뭐라도 되는 것처럼 기뻐해주고 칭찬해주는 내 친구들이야말로 진짜 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어서, syo는 기쁜 마음으로 이렇게 당당히 호들갑 떤다.

 

이 영광을 도둑놈에게 조금쯤은 바치고 싶다. 도둑놈아, 내 유기농 케찹은 얼마나 남았니.

 

그리고 영광의 대부분은 4만 원을 투자해 40만 원을 일구어낸 투자의 귀재, 무소의 뿔 그 친구에게 돌려야 하겠다. 내가 최우수상에 당첨되었을 때 그 친구도 호텔 숙박권에 당첨되었다고 한다. 호캉스는 시어머님 아들이랑 가는 거 아니라는 다른 이웃님의 센스 넘치는 댓글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시어머님 아들과 함께 다정한 호캉스를 떠나기로 했다고. 부럽다. 친구의 시어머님의 아드님께도 겸사겸사 영광을 돌리자.

 

 

 

5

 

syo가 예측한 3명의 1위 후보에 대해 궁금해하셨던 분들이 계셨다. 모든 분들의 글을 다 꼼꼼히 읽은 것이 아니라 좀 그랬지만 이 마당이라 말씀드리자면, syo는 에일로이 님, 잠자냥 님, 초란공 님을 생각했다. 저 세 분이 최우수 우수를 차지하시고 남는 우수 자리 하나를 syo가 냉큼 집어먹을 수 있으면 베스트겠구나- 했는데, 겸연쩍게도 이렇게 되었네요. 허허허.

 

 

 

 

--- 읽은 ---

 


164. 경제학의 모험

니알 키시타이니 지음 / 김진원 옮김 / 부키 / 2018

 

- 일독(1901xx)

- 재독(210511)

 

경제학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정말 기꺼이 추천할 만큼 쉽고 좋은 책인데, 쉽고 좋은 책이라서 자꾸 대충 읽게 된다. 대충 읽으면 당연히 안 된다. 당연한 건데 그게 잘 안 된다.

 

이를테면 syo에 비해 청소에 비교 우위가 있다는 문장은 말로 들으면 syo보다 청소를 잘 한다는 뜻 같지만 실은 저 문장만 가지고는 어떤지 알 수가 없다. 예를 들어, syo는 설거지하는 데 10, 청소에 30분을 소모하며, 은 설거지에 20분 청소에 40분을 소모한다고 하자. 이 경우 두 사람은 각자 청소 한번 하는 동안에 syo는 설거지 세 번, 은 두 번을 할 수 있다. 이럴 때 syo보다 설거지에 비교 우위가 있다. 반면 청소를 기준으로 따져 보면, 청소 한번 하려면 syo는 설거지 세 번을 포기해야 하지만 은 두 번만 포기하면 된다. 이러면 syo에 비해 청소에 있어서 비교 우위가 있는 것이다. 즉 실제로 은 설거지를 하나 청소를 하나 syo보다 10분씩 더 걸리는 비효율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청소에 비교 우위가 있는 것. 이처럼 비교 우위는 어떤 경제학 책을 읽어도 간단히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지만, 대충 읽고 넘어갔다가 일상 언어에서 비교 우위라는 단어를 만나면 아, 그게 비교적 우위에 있다는 소리였던가- 하며 엉뚱한 결론을 내리기도 하는 것이다. 쉬운 책일수록 꼼꼼히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얼마 동안은 소음이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아직은 연주로 얻는 이익, 즉 이웃의 즐거움이 연주에 드는 비용, 즉 당신의 가벼운 짜증보다 더 크다. 사회 전체로 보면 이웃이 트럼펫을 계속 연주하는 게 최선이다. 그런데 3시간이 흐르자 트럼펫 소리에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트럼펫 연습이 3시간째로 접어들지 당신 안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짜증이, 이웃이 연습으로 누리는 즐거움보다 더 커졌다. 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웃이 2시간 정도 연습을 하고 트럼펫을 잘 갈무리하는 게 더 이익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종종 이웃이 적당한 선에서 그만두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얼마나 오래 트럼펫을 불지 결정을 내릴 때 오로지 자신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이익과 비용(‘사적이익과 비용)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때문이다. 이웃은 연주하며 느끼는 재미와 쉬지 않고 몇 시간이나 트럼펫을 부는 통에 입술이 얼얼해지는 통증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 그리고 더 큰 범위의 비용(‘사회적비용)을 무시한다. 바로 당신에게 일으킨 두통을 등한시한다.

_ 니알 키시타이니, 경제학의 모험

 

 

 

--- 읽는 ---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 에이드리언 리치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 탕누어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 아리스토텔레스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 허새로미

삶의 무기가 되는 자본론 / 시라이 사토시

초속 5센티미터 / 신카이 마코토

메리, 마리아, 마틸다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리 셸리

 

 

 


이 아래를 읽는 것은 시간 낭비가 될 수 있습니다

 


당첨된 기쁨에 겨워 리뷰를 한 번 더 읽다가, 퍼뜩 깨달았다. syo는 전에도 이런 형식의 글을 쓴 적이 었었다. 그건 리뷰도 아니었고 대회도 아니었다. 그냥 인정욕구에 목마른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어린 syo2007, 그러니까 무려 이십 대 초반에 심심풀이로 써서 작은 커뮤니티에 올렸던 글이다. 그간 소실된 줄 알았다가 작년인가 우연한 기회에 재발견했다. 지금 다시 보니 고치고 싶은 데가 놔두고 싶은 데보다 훨씬 많고, 특히 마지막 단락은 통째로 들어내고 싶다. 보고 있노라면 저렇게 쓰다니 진짜 어린 나여, 넌 정말 어지간히도 쎄게 빻았었구나- 하게 된다(그런데 사실 이건 뭐 새삼스럽다). 가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글을 고친다고 과거의 멍청했던 syo가 고쳐지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그대로 첨부해 본다. 이걸 쓴 때는 그래도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좀 있지 않나 하는 착각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이내 독서량이 좀 늘면서 나는 그냥 하던 대로 반도체공학이나 운영체제론을 열심히 공부하는 게 맞겠다 싶어졌다. 그리고 이러구러 살다 보니 오늘의 syo가 되었다. 소설가도 되지 않았고 되려 하지도 않으며, 공학자도 되지 않았고 역시 되려 하지도 않는 오늘의 syo, 둘 다가 될 수 있다고 믿던 과거에 쓴 글이다.

 

 

 

성춘향 탈옥 사건에 대한 증언들 [20070809]

 


1

 

첫째는 결코 춘향에게 수청 들기를 요구한 적이 없음이요, 둘째는 설사 본관이 그리하였더라도 관기인 춘향이 그를 거부하는 것 자체가 분명 법도를 흐리는 일이라는 것이외다. 춘향이 비록 그 아비가 사대부에 속하여 성씨 성을 받았다 하나 어미가 천기이니 그 신분이 천한 것은 국법이 정한 일이오. 또한, 춘향은 엄연히 그 이름이 기적(妓籍)에 오른 관기란 말이오. 그러니 설사 이 사람이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 하였더라도 그것은 이 나라 조선의 국법에 따라 아무런 과실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오.


공께서 이 고을에 내려와 저잣거리를 지나셨다면 분명 춘향이 내 수청 들기를 거부하였기에 하옥되었다는 풍문을 들으셨겠지요. 허나 그것은 말 좋아하는 천것들의 입에서 나온 한낱 낭설에 불과하오이다. 춘향의 죄목은 다른 것이 아니라 관기로서 점고(點考)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이는 엄연히 국법을 어긴 것일진대 내 이 고을의 원()이 되어 어찌 형으로 다스리지 않을 수 있었겠소이까.


분명 춘향은 미색이 범상치 않을뿐더러 재주를 갖춘 기재녀임은 틀림이 없소이다. 이 사람 또한 사내대장부로 났으니 한번 그 꽃을 꺾어보고자 하는 마음을 품은 적이 전연 없다 하지는 않겠소이다. 허나 나라님께서 내리신 남원 부사의 자리에 앉고서야 어찌 사심이 공심을 앞질렀겠소이까. 공께서 부디 저 상것들의 헛소리에 현혹되지 마시고 사대부로서 이 사람의 위신에 손상을 입지 않도록 잘 수습하여 주시기를 바라겠소이다. 공도 이 사람도 공히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이 아니오? 핫핫핫.


, 도읍에 계시는 영상(領相)대감께서는 어떻게, 강령하신지 모르겠소이다. 얼마 전에 사람 편에 남원에서 나는 좋은 약재를 보내드린 일이 있는데......

 

 

2

 

, , 그날 밤 소인이 옥사를 지켰습죠. 분명히 옥사 밖으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요.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습죠. 천지신명님께 맹세코 절대 한눈을 판 일은 없었습니다요. 정말입니다요. 어휴. 사또께서는 이놈이 춘향이와 밤도망이라도 치려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지만 천부당만부당입지요. 하긴, 소인 놈이 생각하기에도 칼 찬 죄인이 무슨 수가 있어서 혼자서 이 옥사를 나왔을는지, 춘향이 그것이 귀신이 아니고서야......


그래도 참말, 참말입니다요. 되려 소인은 춘향이가 영영 이 옥에서 나오지 않았으면 싶었는걸요. , 그랬습지요. 나으리는 이 고을 사람이 아니시라 모르시겠지만요, 이 고을 사내치고 양반 상것 할 것 없이 춘향이 미색에 마음자리 한번 들썩 안 해본 이는 없을 겁니다요. 가끔씩 향단이를 데리고 그네터에 가는 날이면 언덕 너머 바위 뒤에는 그 모습 훔쳐보는 사내들로 매번 장사진입지요. 색동저고리에 다홍치마 곱게 차려 입은 춘향이가 그네 구르는 모습 보고 있자면 어찌나 이놈의 가슴이 쿵쿵 내달리는지, 혹시나 그네 뛰는 춘향이가 듣고 놀라 그네에서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요. , 금박댕기 아래로 출렁거리는 삼단 같은 검은 머리에, 그 새하얀 손은 또 어찌나 섬섬한지......에흠, . 죄송하구만요.


어쨌든 춘향이가 옥에 갇히고 난 며칠 동안 소인은 참말로 좋았습죠. 이곳은 이놈에게는 집 같은 곳 아니겠습니까요. 마치 춘향이가 이놈의 마누라라도 된 양 혼자 들떠서는 하루 종일 옥사에 붙어 지냈습지요. 제발 사또께서 춘향이 옥살이를 하루라도 더 시켰으면 하고 말입니다요. 주제에 못된 맘 품은 죄를 다 받았는지 소인이 춘향이 대신 옥사에 들어앉은 꼴이 되었습니다요.


그러나 저러나 춘향이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목에 찬 칼은 또 어떻게 훌훌 풀어낸 건지. 이거야 원 참말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3


그래도 그것이 효성은 지극하였는데 어찌 이리도 독하게 감감무소식인지 모르것소. 하나 있는 딸년이 어릴 적에는 말썽 하나 없이 얌전하더니 과년하여 이리 에미 속을 썩일지 어떻게 알았겄소.


사실 우리 춘향이는 사대부의 핏줄인데도 쇤네가 천한 기생인지라 어쩔 수 없이 기생으로 살아야 했지요. 기생년 사는 게 어디 사람 사는 거라 하겄소. 이 한몸 이리 살았으면 되었지 어찌 딸년한테까지 이리 모진 삶 살라 하겄어요. 그래서 기적에는 올렸지만 양갓집 규수처럼 곱게 곱게 키웠지 않겄소. 다 부질없는 짓이었지요. 한 번 기적에 이름 석 자 박혀버리면 그것 파내기란 대낮에 별을 따는 일인 것을.


얼마나 속이 탔으면 춘향이 갇혀 있는 옥에 찾아가 그냥 눈 딱 감고 변사또 수청을 들라고 했겄소. 이도령이라는 작자는 좋다고 신랑질을 할 때는 언제고, 과거 보러 한양에를 간다더니 춘향이 이것이 옥에 갇혀 다 죽어가면서 수절해도 코빼기도 아니 비치니 어미 된 입장이 다 그렇지 않겄소? 이도령이든 변사또든 어차피 다 양반님네들이니 천기로 옥에 갇히는 것보다야 그게 낫지 않느냔 말이오. 헌데 춘향이 그 고집만 잔뜩 들어앉은 것이 수청을 들래도 절레절레, 이도령을 기다리냐고 물어도 절레절레, 그저 입은 꾹 다물고 답답허니 옥 천장만 뚫어져라 보고 앉았으니 이 속이 터지겄소, 안 터지겄소.


이제는 다 되었소 다 필요 없으니, 아이고 나으리. 제발 제 못난 딸년 좀 찾아주시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옥사에서 도망을 쳤는지, 또 어디로 사라져서 지 에미한테 얼굴도 안 들이미는지, 딸년 둔 에미는 그대로 죄인이라더니 이렇게 하루하루 춘향이 고것이 올까봐 걱정, 안 올까봐 새까맣게 속 태우며 지내는 것도 인제는 도저히 못하겄소. 아이고, 나으리......

 

 

4

 

아닙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었구만요. 저희 도련님께서 분명 광한루에서 춘향이와 노니는 것을 좋아라 하셨지만, 정실부인이라니요. 언질조차 내리신 적이 없습니다. 나으리도 생각을 해보시지요. 뼈대 있는 가문의 장손에다 이번 과거에 장원급제까지 하신 우리 도련님께서 무엇이 아쉬워 그런 기생년을 정실로 들어 앉힌단 말입니까. 그런 말씀은 하지도 마십시오. 행여나 구설에 오를까 걱정입니다.


연정이오? 나으리께서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듣고 오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도련님께서는 춘향을 그저 한낱 기생으로 끼고 계셨던 것밖에는 그 어떤 마음도 품은 적이 없으십니다. 아무렴 그렇고 말구요.


춘향이 칼을 벗어내고 옥에서 도망 나왔다는 이야기는 향단이 편에 들었습니다만, 이쪽으로는 절대 발걸음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 행여, 춘향이가 우리 도련님만 믿고 예까지 왔다 해도 소인이 잡아다가 관아에 끌고 갔을 겁니다. 그러니 얼른 돌아가시지요. 우리 도련님은 지금 행차 준비로 바쁘니 만나지 않으시겠답니다.

 

 

5

 

쇤네가 아씨를 숨기고 있다구요? 저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는 걸요사람들은 쇤네가 좋아서 아씨를 모신 줄로 알고 있나 본데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어차피 쇤네나 춘향 아씨나 똑같은 천민인데 어이해 누구는 금기서화에 호의호식하고 어이해 누구는 물동이나 지어야 하냔 말이어요. 아씨라는 말부터가 가당찮은 게 아닌가요?


이 고을 남정네들은 춘향 아씨를 그저 아리땁고 얌전한 규수로 여기고 있지요. 우스울 뿐이어요. 이제와 이야기지만 춘향 아씨는 누구보다 영리하고 스스로를 끔찍이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취기가 오를 때마다 사랑한다고, 정실부인 삼겠다고 큰소리를 떵떵 치던 이도령의 그 거품 같은 약조를 아씨는 단 한 번도 믿은 적이 없었어요. 다 자식 잘되기를 바라서 그러는 거라고 말씀은 하지만 실상은 아씨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마님의 속내도 이미 아씨는 다 알고 있었지요. 왜 옥을 나와도 집에는 연통조차 주지 않는지 쇤네는 알 것도 같아요.


아씨가 파옥하던 날 새벽에 그네를 뛰시는 모습을 광년이가 봤다고 했어요.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지만 저는 믿어요. 아씨는 그네를 좋아하셨지요. 아마 아씨는 이 남원고을의 소식조차 들려오지 않는 저 먼 곳으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 그네를 타셨을 거여요.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으실 거여요. 쇤네는 오히려 그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아씨한테도, 쇤네한테도 말이어요.

 


6

 

춘향? 춘향, 춘향 언니! 나 춘향 언니 아니다. 춘향 언니 없다. 날아갔다. 나 봤다. 그네, 그네.


그네, 타도된다 했다. 헤헤, 춘향 언니가 나도 그네 타라 했다. 그래서 해 뜨기 전에 나 그네 타러 온다. 매일 매일 온다. ~. 이렇게 탄다. ~. 발에 힘주고, 발에 힘주고 이렇게 탄다. ~. 헤헤, 춘향 언니가 가르쳐 줬다. 그네 타는 거. 줄 꼭 잡는 거 아니다. 그러면 하늘까지 못 간다고 했다. 춘향 언니가 그랬다.


춘향 언니 하늘까지 그네 탔다. ~기 구름까지 간다고 했다. 헤헤, , 나 너무 멋있어서 좋았다. 근데 햇님! 햇님이 산에서 나왔다. 눈부셔서 손으로 눈 막았는데, 막았는데, 갑자기 춘향 언니 없어졌다. 그네, 그네 위에 있었는데, 갑자기 휙. 근데 나 봤다. 그네가 구름까지 가서, 춘향 언니 날아갔다. 우와, , 새였다. 햇님 쪽으로 새, 춘향 언니 새 날아갔다.


나 다 봤다. 나도 그네, 나도, 나도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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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5-12 0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에일로이 님, 초란공 님이 받지 않을까 했고요(전 사실 잘 받으면 우수작이려니 했습니다) 근데 syo 님은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파격적인 형식이 받아들여지면 최우수인데, 아니면 우수작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전에 김초엽 책 리뷰 대회는 아마 그 형식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 같아서 이번엔 어떨까 싶었는데 그 파격적 형식이 압도적 지지를 받은 것 같습니다. 투자해서 받은 돈으로 즐겁게 책 많이 사보세요~ 근데 요즘 책값이 비싸서 글항아리 책 몇 권 사면 다 없어질 돈이긴 하네요. ㅎㅎㅎㅎ

syo 2021-05-12 00:47   좋아요 3 | URL
그러니까 잠자냥님이 꼽은 최우수-우수 멤버와 제가 꼽은 멤버가 일치했다는 말이네요?

제 리뷰에 대해서는 저도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했었는데, 제 모는 우수, 도는 낙방이었거든요. 그런 부분은 잠자냥님의 예측과 차이가 있었네요. 으하하하.

기왕 들어온 적립금이라, 친구들한테 많이 뿌리려구요. 이참에 생일 선물 준 친구들한테 은혜도 갚고 ㅎㅎㅎ


청아 2021-05-12 0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 든든한 친구의 투자ㅋㅋ👍👍근데 훔쳐간 사람은 과연 그 벽돌을 읽었을까요, 팔았을까요.아님 100만분의 일이라도 리뷰쓰고 혹시 당첨?!!

syo 2021-05-12 13:09   좋아요 2 | URL
제가 낙방했다면 도둑놈을 찾아나섰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마당이라 너른 마음으로 좋은 책 기부한 셈 치는 중입니다.

그렇지만 케찹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아무래도 유기농이니까요.....ㅋㅋㅋㅋㅋ

희선 2021-05-12 01: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 님 최우수상 축하합니다 책과 케첩을 도둑맞다니, 그런 걸 가져가다니... 그래도 멋진 친구분이 책을 사주시고 그 책 보시고 글 잘 쓰셔서 최우수상 받으셨네요 안 좋은 일이 좋은 일로 돌아왔군요


희선

syo 2021-05-12 13:1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새옹지마가 이런 거군요.
부디 도둑놈의 앞날에도 나쁜 일이 찾아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21-05-12 05: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님 리뷰대회 최우수상 축하드려요!^^:)

syo 2021-05-12 13:10   좋아요 3 | URL
고맙습니다.
호랑이 님도 참가하셨으면 이름 떡 올리셨을텐데요. 참가 안하셔서 다행(?)입니다 ㅎㅎㅎ

겨울호랑이 2021-05-12 13:23   좋아요 1 | URL
아니에요, 리뷰 대회애 참가하려면 많은 노력과 열정이 들어가는데, 저로서는 쉽지 않을 것 같네요.이후에도 좋은 결과 있길 바랍니다. ^^:)

psyche 2021-05-12 06: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 님 축하드려요! syo님 리뷰 읽으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쉬!
syo 님을 알아봐주고 지지해 주는 친구들이 옆에 있으니 얼마나 복인가요!

syo 2021-05-12 13:11   좋아요 2 | URL
그러니까요.
친구들이 들불처럼 일어나서 내가 너 1등 한댔지!! 난 다 알았다고!! 막 이러는데, 와.....

반유행열반인 2021-05-12 06: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둑놈: 경쟁자 암살 실패다... (그리고 계란후라이에 하인즈케찹 짜 먹고 배탈남)
축하드립니다. 글항아리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은혜갚은 까치처럼 소장한 글항아리의 벽돌들을 읽고 리뷰를 부지런히 남겨야 겠네요...)

syo 2021-05-12 13:12   좋아요 3 | URL
ㅎㅎㅎㅎㅎ 그러고보니 글항아리를 향한 반님의 거래 제안도 있었군요.
이거 영광을 반님에게도 꽤 많이 돌려야했었던 거였네요....

blanca 2021-05-12 1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 책이랑 유기농 케첩 가져간 사람은 대체 뭡니까? ㅋㅋㅋ 택배 형아에 뿜어요. 사실 저도 작년에 그 비슷한 사건이. 뭔가에 당첨되어 하루키옹의 에세이를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없어졌지 뭡니까. 그냥 포기하려 했는데 택배 아저씨가 너무나 안타까워하며 본인이 직접 CCTV 확인까지 해서 잘못 배송했다는 걸 알아내어 전화연락까지 했는데... 그것 잘못 받은 사람이 그 무거운 걸 다시 들고 직접 집에 방문했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여대생이 너무나 미안해하며...이런 헛소리 댓글은 뭐죠? ㅋㅋㅋ

여하튼 다시 정말 축하합니다. 대단한 것 맞아요. 시어머니 아들에도 한번 뿜고 ㅋㅋ 당첨금으로 뭘 하셨는지도 써 주시기를...

syo 2021-05-12 13:14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ㅎㅎ 그래도 블랑카님은 사연은 이래저래 아름답게 마무리되었군요. 하지만 저는 아무래도 제 케찹을 돌려받을 길이 없어요. 도둑놈에 대한 분노가 식을 줄을 모릅니다....

축하말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21-05-12 12: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너무 기쁜 소식을 어디든 자랑해야 하는데 쇼님 아는 사람이 어디있나 찾다가 밤늦게 퇴근한 같이 사는 이에게 자랑했습니다!!!
최우수상 너무너무너무 축하드려요!! 앞으로도 안목 있는 투자자의 말씀 새겨들으셔서 좋은 일 빵빵 터지시기 바래요!

잠자냥 2021-05-12 12:59   좋아요 2 | URL
아, 그 집 시어머니 아들한테 자랑했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5-12 13:08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네, 그러네요. 제가 엄청 흥분해서 밥도 안 차려주고 자랑하는데 무척 좋아하더라구요. 안목있는 투자자분 시어머니 아드님이랑 저의 시어머니 아들이랑 같이 모임이라도 해야할 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21-05-12 13:14   좋아요 3 | URL
친구들과 친구들의 시어머님들과 시어머님들의 아드님들 모두 어우렁더우렁 행복하세요.....

행복한책읽기 2021-05-12 13: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책과 케챱. 꽁트 읽은 느낌. syo님은 입상 후기도 잼나다네요. 글고. syo는 예나 지금이나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사람이군요. 이 일관성이라면, 리뷰 최우수상을 뛰어넘을거요.^^

syo 2021-05-12 13:16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 그치만 안 뛰어넘고 조용히 조용히 살 거예요.
번거롭게 뭘 뛰어넘는 것보다 배나 벅벅 긁어가며 가만히 누워 있는 걸 더 좋아합니다 🐷

stella.K 2021-05-12 16: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왜요, 알라딘 이달의 리뷰 당선만 돼도 좋아라 하는데
거기에 몇배 입니까?
모르긴 해도 알라딘에서도 이달의 리뷰로 선정하지 않을까 하는데
왕관을 견디시겠습니까?ㅋㅋ
암튼 좋은 친구를 두셨군요.
친구를 위해 뭐 한 2만원쯤이면 어떻게든 해 보겠는데
4만원 긋기는 쉽지 않았을텐데 그 친구도 꽤 좋아했겠어요.
한턱 쏘셔야겠네요.^^

syo 2021-05-13 08:56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2만원을 넘어서 4만원까지 쾌척하는 친구덕에 좋은 경험도 했네요. ㅎㅎㅎㅎ
여러 턱 쏴야되겠어요 탕탕탕 🔫🔫🔫

난티나무 2021-05-13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우와!!
리뷰 읽고 뻥 쪄서 댓글조차 못 달고 물러났었어요.ㅎㅎㅎ
그 친구분 진짜 대박 안목! ㅎㅎㅎ !!! 거기에 부응하시는 syo 님 대박 훌륭하심!!!
🎉🎉🎉🎉🎉🎉

syo 2021-05-13 08:57   좋아요 1 | URL
투자에 소질이 꽤 있는 친구로 밝혀졌습니다ㅎㅎㅎㅎ
감사합니다, 난티나무님 ^-^

독서괭 2021-05-13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예전에 그 도둑놈 얘기 듣고 하이고 7만원어치.. 넘 가슴 아프시겠네.. 했었는데 그책이 이책이었고 이런 아름다운(?) 경위로 최우수상이 탄생하게 된 거군요?? 와 진짜 인생 모르는거네요 ㅋㅋ 너무너무 재밌는 에피소드예요. 나중에 책 쓰시면 꼭 이 에피 넣으세요 ㅎㅎ
춘향전 얘기도 재밌어요. (마지막 문단 왜 없애고 싶으신지는 알겠....) 이런 형식 좋아요. 앞으로도 자주 써주세요~^^

syo 2021-05-16 14:42   좋아요 1 | URL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말은 지극히 도둑놈 입장에서 쓰인 이야기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최우수상을 타게 되서 그나마 분노가 사그라들었지, 아니었으면 진짜 도둑놈......

하지만 케찹에 대한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는군요. 결국 하나 더 샀잖아요ㅠㅠ

AgalmA 2021-05-13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에 젖은 땅>에 이런 사정이ㅎㅎ!
도둑이 하필 비싼 책을 훔쳐간 것도 속상한데, 리뷰 쓰려면 읽기도 바쁜 벽돌책을 훔쳐가 읽을 시간도 뺐기셨을테니ㅜㅋㅜ! 예전엔 책도둑은 봐준다 그런 말도 했지만 케찹까지 훔쳐가다니 더 질이 나쁜! 요즘 택배 박스 앞에 내용물도 적혀 있는데!
이런 일 당하셔서 이젠 택배받기 무척 염려되실 듯.

저는 택배 기사님이 자꾸 딴집에 갖다주는 게 문제인데 아직 분실은 없었어요^^;

syo님도 책욕심 많은데, 상금은 나누기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책뽐뿌에 쓰시라는ㅎㅎ
축하드려요🎉🎉🎉

syo 2021-05-16 14:4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ㅎㅎ

그러나 여기저기 나누면서 과반을 소진하였네요. 결국 저는 다시 빌리는 인생으로ㅋㅋㅋ
어떻게든 읽는 게 중요하지 사는 게 뭐가 중요하겠어요.....라며 거는 자기최면 😵

얄라알라 2021-05-19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저기 나누면서˝ 중에 책 퀵퀵 사보내주신 친구분께 과반의 반을 보내셨을 듯^^

왜 하필 ˝유기농˝ 케찹이라니!! ^^

다시금 축하드립니다. 간만에 알라딘 서재 들어왔다가 기쁜 소식에 덩달아 기쁩니다

syo 2021-05-20 20:0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ㅎㅎ
열심히 뿌렸고, 남은 것은 뭐 살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2021-06-01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01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01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01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메리는 그랬지만

 



 

메리, 마리아, 마틸다 중, 메리를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syo는 이 작품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손에 쓰였다는 것, 비교적 이른 시기에 쓰인 여성의 주체성에 관한 소설이라는 것, 그러니까 계보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어떤 의의를 찾지 못했다. 메리는 큰 매력이 없는 캐릭터고, 울스턴크래프트는 메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독자에게 떠먹이려 한다. 그건 울스턴크래프트가 이 작품을 쓴 의도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syo는 추측한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이 작품을 통해 메리들이 이렇게 억압을 당하고 있다보다는, “메리들도 너희 남자들처럼 이성이 있고, 자기 삶의 방향을 자기가 그려나갈 능력이 있다는 말을 하려고 했다.

 

울스턴크래프트가 만든 여성은 당대에는 선취적이었겠으나 그 선취가 도착한 곳 역시 오늘의 우리 눈으로 보면 지나친 과거다. 메리가 택한 방식은 우리가 고려하기에 지나치게 소설적이다. 또한 울스턴크래프트가 사용한 기술 역시 우리가 오늘 참고할 만하지 않다. 오늘날의 여성 역시 이성이 없다’, ‘태생적으로 열등하다하는 식의 통째 공격을 받긴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인신공격에 불과하여, 닥치게 만들면 그만이다. 그런 것보다는 여성의 특성으로 여겨지는 어떤 특성을 지목하며 특정 분야나 특정 지위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위에 있다는 주장, 그러니까 영역 단위로 분할된 공격과 맞서야 한다. 그럴 때, 그 주장은 오류이며 그 근거가 실은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결과에 불과함을 증명하기 위해 오늘 우리가 택해야 할 수단은 과학이나 통계, 사회적 실험 같은 것들이다. 더는 소설이 아니다. 그러니까 syo의 생각에, 이 작품에 한정해서 보자면 메리에게서도 울스턴크래프트에게서도, 딱히 쓸만한 뭔가를 배울 수 없다. 우리가 이 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명제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쩔었네뿐이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울스턴크래프트와 동시대 조선에는 연암 박지원이 살았는데, 그는 허생전이나 양반전 같은 당시에는 상당히 선취적인 사상이 담긴 작품을 남겼다. 그런데 그 선취는 이제 선취가 아니고, 우리는 과거에 선취적이었던 그 작품들보다 지금 나오고 있는 그다지 선취적이지 않은 책들로부터 더 쓸모 있는 것들을 배운다. 그리고 박지원이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사는 데 진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메리는 읽었고, 이제 마리아를 읽겠다.

 

 

 

--- 읽은 ---

 


158.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이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

 

일기를 에세이로 바꾼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선뜻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굳이 책을 읽어본 게 사실이다. syo에게 그건 뭐랄까, “H2O를 물로 바꾸는 법처럼 들렸다.

 

나는 아직도 뭐가 일기고 뭐가 에세이인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뭐가 일기여야 하고 뭐가 에세이여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그것은 수준의 문제인가? 잘 쓰는 일기스트의 일기는 못 쓰는 에세이스트의 에세이보다 당연히 수준 높다. 글은 그냥 잘 쓰는 사람이 잘 쓴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 글의 사적/공적 성격의 함량에 따라 결정되나? 순전히 내가 오늘 겪은 사건만 나열한 글이 사회문제를 연구하고 분석해 놓은 논문보다 더 큰 사회적 함의를 가지고 기능하는 때도 많다. 그러면 일기란 세상에 내놓지 말고 혼자 쓰고 읽어야 하는 되다만 에세이의 멸칭인가? 인터넷 세상을 돌아다니며 발견한 역겨운 댓글은 참으로 많고 많지만, 가장 역겨운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일기는 일기장에. 이건 니 이야기는 들을 생각이 없으니 그냥 닥치라는 소리다. 게다가 들을 가치가 있는 이야기인지 없는 이야기인지는 내가 결정한다는 오만이 깔려 있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일기가 왜 뭔가로 바뀌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에세이를 쓰고 싶은 사람들이 소비자로 존재하므로 이 책은 이런 제목을 달 수 있었을 것이다.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야 좋은 마음이다. 그런데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을 찾는 독자들은 에세이를 일기로 바꾸는 법이라는 책에도 같은 크기의 관심을 둘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이게 중요하다. 지금 syo가 제목만 가지고 꼬투리 잡는 것처럼 보이지만(사실 아닌 건 아니다), 뭔가를 쓰는 사람에게 자기 글에 대한 정의는 곧 자기 영토를 포위하고 있는 국경선이다. 내가 승인하고 스스로 둘러친 한계다. 스스로 에세이를 쓴다고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이해하고 있는 에세이라는 장르의 규칙, 그 장르가 다루는 영역의 한계선, 트렌드(와 트렌드에 올라탈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판단) 같은 것 안에서 글을 쓴다. 이야기에는 저마다 자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 있어서 우리는 가끔 이야기를 살리기 위해 장르를 횡단할 필요도 있다. 나는 내가 쓰는 글이 뭐라고 정의되는 것을 열심히 회피하는데, 그건 실제로 글이 잡스러워서 겸연쩍어 그러는 거기도 하지만, 잡스러우려고 노력하는 바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잡스럽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글은 가만히 두면, 자꾸 정돈되려 한다. 맹렬한 기세로 열역학 제2법칙을 역행한다.

 

syo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하지만 에세이를 일기로 바꾸는 법에는 지대한 관심이 있다.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이 팔리는 이 세계는 에세이가 일기보다 높은 세계다. 이건 전복할 수 없는 기본적 사실이다. 그런 이 세계에서 에세이를 일기로 바꾸는 법』이 출간된다면, 그 책은 일기가 에세이보다 높다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일기를 써도 그게 그냥 에세이 급이 되어버리는 미친 기본필력을 선사해 주겠다고 말하는 것일 테니까.

 

, 그런데 솔직한 글을 위해 나의 단점을 모조리써야 할까요?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내 흠을 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써야 하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글로 인해 오히려 자신이 상처를 받고 우울해질 것 같다면 절대 그렇게는 쓰지 마세요. 나의 흠을 독자와 공유하는 글쓰기 과정에서 본인이 조금 홀가분해질 수 있기 때문에 솔직하게 쓰라는 것이지 내 단점을 정말 남들한테 말하기 싫은데 사람들이 이거 읽으면 엄청 재미있어 하겠지라는 생각에서 쓰면 안 된다는 소리예요. 그게 과연 누굴 위한 글이 되겠어요? 에세이를 쓰면 가장 먼저나 자신이 첫 번째 독자가 됩니다. 그런데 그 독자가 상처를 받으면 안 되잖아요. 에세이를 쓰면서 , 내가 이런 것까지 써야 돼?’ 하면서도 줄줄이 써지는 주제가 있는 반면 이건 아닌데, 이런 건 말하기 싫은데하는 게 있을 것 아니에요? 후자를 쓰지 말라는 겁니다. 아마 전자의 글은 자신의 흠을 드러내면서도 떳떳한 상태일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바꾸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경우일지 몰라요. 어쨌거나 내 글을 보고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면 안 돼요. 그게 나여서는 더더욱 안 되고요.

_ 이유미,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159. 소크라테스 씨,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요?

허유선 지음 / 믹스커피 / 2020

 

철학을 지식의 덩어리가 아닌 하나의 방법론으로 본다면, 소크라테스는 철학자가 해야 할 것들을 이미 다 해치워버렸다고 여겨져도 되지 않을까. 그는 물었다. 답이 나올 때까지 물었다. 그래도 모르는 것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다른 것을 물으러 갔다. 물었고, 물었고, 물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귀찮게 했다. 그러다 권력 있는 사람들의 눈에 거슬렸다. 그리고 자기가 말한 대로 살기 위해 죽었다. 철학자가, 이것들 말고 뭘 더 해야 하는가?

 

만일 철학이 확실한 답을 주어 그 물음이 종결되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철학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철학은 없어지지 않는 물음에 대해 도망가지 않고 생각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들과 관계를 맺는 법을 생각하고 그에 따라 시도하고 움직이게 한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과 움직임이 과연 적절한 것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철학을 통해 우리는 계속 묻고 생각하며 나아갈 수 있다. 곧 철학은 피할 수도, 제거할 수도 없는 문제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생각하는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_ 허유선, 소크라테스 씨,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요?

 

 

 


160.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지음 / 이재경 옮김 / 반니 / 2019

 

비소설 산문 읽는 양으로 치면 남부럽지 않은 syo, 독서 인생이 20년이 달하는 동안 조지 오웰의 산문을 읽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참 대단하다. 읽지 않아도 좋았을 쓰레기들을 수없이 읽으며 얻은 건 쓰레기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었는데, 사실 그런 건 그다지 필요 없다. 명백히 쓰레기가 아닌 것으로 널리 인정받는 책들만 골라 읽어도 죽을 때까지 다 못 읽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인생사다. 쓰레기를 읽고 쓰레기 감별력이 생겼다면 그 시간에 명작을 읽고 명작 감별력이나 갖출걸. 이번 생은 대충 망했다. 헛되고 헛되고 헛…….

 

기왕 헛된 거 아주 제대로 헛되어 보기로 했다. 거장들과 그들의 명작들을 읽어보기로 한 것이다. 이게 왜 헛된 일인가 하면 역시 인생이 짧아서다. 짧은 인생, 한 우물만 디립다 파도 그 우물로 몇 사람 목 축이기가 쉽지 않다. 기왕 syo가 쓰레기 판별의 길에 들어섰다면 이번 생은 열심히 쓰레기의 우물을 파는 데 소진하는 게 낫다. 여러분 이 책은 쓰레깁니다, 이 책은 쓰레기가 아닙니다, 이 책은 쓰레기인 듯 쓰레기 아닌 쓰레기 같습니다, 여러분. 이런 자세가 바로 이번 생에 몇 사람의 목이라도 축여줄 수 있는 syo의 작은 우물인 것이다. 그런데 그 분수에 맞는 한 우물을 포기하고 뒤늦게 거장들이 묻혀 있는 땅을 파 들어가기 시작했으니, 남은 생은 짧고 아무리 파도 물 한 방울 구경하기 어려울 것만 같다., 아아,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내가 오웰의 책을 읽으며 했던 이것과 비슷한 고민을, 오웰도 어떤 책을 읽다가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느낌 자체는 내 느낌과 정반대였는지, 아래와 같이 썼다.

 

모든 책이 검토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당연시되는 한, 해결책은 없다. 책을 대량으로 검토하면서 그중 대부분을 극찬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책과 직업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책들이 얼마나 허접한지 알지 못한다. 객관적이고 정직하게 비평하자면 열에 아홉은 "이 책은 무가치하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고, 서평가의 솔직한 속내는 아마 이럴 것이다.

  "나는 이 책에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하며, 돈만 아니면 평을 할 마음이 없다."

  하지만 대중은 이런 책은 사지 않는다. 대중은 어떤 책을 읽으라는 권유와 안내를 원하고, 가치 평가를 바란다. 문제는 가치가 거론되는 순간 평가의 기준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리어왕은 훌륭한 희곡이고, 4인의 의인은 훌륭한 스릴러라고 한다면(거의 모든 서평가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이런 말을 한다.) '훌륭하다'는 말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_ 조지 오웰, 어느 서평가의 고백

 

그러니까 오웰, 왜 허접한 걸 읽었어요. 그런 건 syo나 읽는 거죠. 당신 글솜씨가 아깝네요. 쓰레기는 syo에게 맡겨요. 당신 같은 사람은 좋은 글을 읽고 더 좋은 서평을 남겨야죠. 그러니까, , 예를 들면 조지 오웰 같은 걸 읽으시라구요, 미스터 오웰.

 

 

 


161. Chaeg 2021. 5

()(월간지) 편집부 지음 / ()(잡지) / 2021

 

관심 없던 분야의 책을 읽는 데는 하늘의 뜻이 약간은 필요하다. 읽으려면 어떻게든 맞닥뜨려야 하고, 맞닥뜨리려면 누가 도와도 도와야 하는 것이다. 주로 철학이나 문학 위주의 독서를 하다 보니, 도서관을 그렇게 뺑뺑 돌아봤자 특정 서가에서 syo는 눈뜬 대바늘이나 마찬가지다. 눈이 없고 귀만 있는 셈. 그 좁은 귓구멍에다가 세상에는 다양한 책들이 있다는 사실을 길고 튼튼한 실처럼 꿰어주는 책이 책Chaeg이다. 매달 한 번씩 막힌 귀를 뚫어주고, 새로운 서가에 눈뜨게 해주는 사랑스런 나의 Chaeg.

 

진짜 책 같은 거 신물 나서 거들떠보기도 싫을 때, , 이 Chaeg 한번 잡솨 봐.

 

 

 



162. 우리가 함께 걷는 시간

이규영 지음 / 넥서스BOOKS / 2018

 

당 떨어질 때 한 줌 집어서 사르르 녹여 먹으면 연애의 달달함을 이어나가는 데 힘이 되어주는 귀여운 책들이 있다. 달달한 월드는 일단 곁사람에게 달달할 줄 아는 이들이 모여 만드는 것.

 

syo는 남자 평균 키보다 한참 작은데 지난 연인들은 작아야 여자 평균 키 이상이었고 간혹 높은 신을 신으면 syo보다 커지기도 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손잡고 돌아다니는 것도 그거대로 귀여운 맛은 있었지만, 안 되는 그림도 많았다. 정수리에 턱을 올려놓을 수가 없었고,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한 칸 아래에서 안을 때도 내 코는 그 사람의 엄한 곳, 이를테면 간지러워도 잘 긁을 수 없는 날개뼈와 날개뼈 사이의 안닿아메다 삼각지대 같은 곳에 처박히기 일쑤였다. 그건 예쁜 그림이 아니고 그냥 냄새 맡는 그림일 수밖에 없었고, 재미가 없었다. 물론 그것은 내게 이런 유전자를 물려주신 뿌리 깊은 우리 노비집안 조상님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우유를 처먹지 않던 몰상식한 청소년 syo가 합심하여 그린 그림이었으니, 누구 탓을 하겠는가마는.

 

지금 만나는 사람은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작다. 처음 같이 이를 닦았을 때 나는 그녀의 뒤에서 몸을 딱 붙이고 서 있었는데, 그렇게 욕실 거울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각자 서 있을 때보다 몇 배는 보기 좋았던 자신들의 모습에 감탄한 우리는 너무 예뻐, 우와, 너무 예뻐를 반복하느라 양치질을 길게 했고, 칫솔을 꺼낸 입이 허전하다며 다른 것을 찾아서 서로의 입술로 즉시 달려들…… 뭐 그랬다고 합니다. 하고픈 말은 그게 아니고(그거면서), 이제는 나도 요런 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쟤네처럼 완벽하진 않지만. 목이 조금 꺾이긴 하지만. 우리 아빠가 원래 남자는 언제나 높은 곳을 바라봐야 한다고 그랬어.😤



 

 

 


163. 가벼운 영어

가벼운학습지 지음 / 패스트캠퍼트랭귀지 / 2020

 

 

 

--- 읽는 ---


영원한 이방인 / 이창래

경제학의 모험 / 니알 키시타이니

비트겐슈타인 철학으로의 초대 / 박병철

어떤 물질의 사랑 / 천선란

빈 옷장 / 아니 에르노

메리, 마리아, 마틸다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리 셸리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 / 박가분

시민의 물리학 / 유상균

미술사 아는 척하기 / 리처드 오스본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 박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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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21-05-10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기는 일기장에 ㅋㅋㅋ

syo 2021-05-10 15:02   좋아요 0 | URL
우웩 🤮 ㅋㅋㅋ

난티나무 2021-05-10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는 책에 이런 말이 나와요. 권력이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 그 사람을 정의하는 것, 그 사람의 이야기도 정의내리는 것. 중간쯤 읽다 댓글 우선 달고 (까먹을까봐) 나머지 읽으러 갑니다.

다시 왔어요.^^
[오늘날의 여성 역시 ‘이성이 없다’, ‘태생적으로 열등하다’ 하는 식의 통째 공격을 받긴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인신공격에 불과하여, 닥치게 만들면 그만이다.] - 저는 한번도 면전에서 제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지만 눈빛과 행동과 평소의 말투 등등에서 이런 생각을 읽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이라는 게 있다면)에는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시대나 지금의 시대나, 지금이 겉으로 보기에는 나아보일지라도 속은 그닥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드러나지 않으니 더 무서운 것... 그런 거 느낍니다. 열등하다거나 이성이 없다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보이지만 시집에서 제가 저를 투명인간으로 느끼는 것이 또 이것과 그렇게 먼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음 그러니까 저는 아직 [메리]를 다 읽지 않았는데, 다 읽으면 정말 ˝쩔었네˝밖에 안 남는 건가요? ㅠㅠ

syo 2021-05-11 11:59   좋아요 1 | URL
저도 난티나무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다기보다 그런 생각을 쉽게 내뱉을 수 없는 딱 그 정도만큼 환경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현실에서 200년이 지나도록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그 ‘무의식‘을 직접적으로 타격하는 것보다는, ‘여성은 관리직에 젹합하지 않다‘, ‘여성이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진화적 특성 때문에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일이다‘처럼 연구나 통계, 실험을 통해 반증될 수 있는 것들에 역량을 투입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던 거죠.

이런 ‘기계적인‘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아마 제가 남성이라서, 난티나무님께서 겪은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소위 말하는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1도 모르는, 공감 부족의 결과 태어난 주장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저렇게 생각했지만 저 생각을 가지고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거나 권할 자격도 의지도 없습니다. 난티나무 님이 댓글처럼 생각하셨다면, 그게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메리를 읽고 ˝쩔었네˝밖에 남지 않았던 것은 제 독서의 결과입니다. 그건 제 한계지요. 다른 분들의 독서는 다를 거고, 저보다 많은 것들을 느끼고 남긴 다른 분들의 독서를 보고 저는 배우겠습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주욱 읽으소서^-^

반유행열반인 2021-05-10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웰 다른 산문집에서 저 서평가의 고백을 읽었는데 역시 돈 때문이죠 억지로 똥글 읽고 글 쓰는 건…돈도 안 주는데 이제 남은 생은 고전 명작만 골라 읽지 하니 안일하고…동시대의 좋은 글이란 무얼까 좋은 글은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하다보면 결국 똥을 조금씩 주워 먹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오늘의 글이 명문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다 죽고 나야 판정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오늘의 우리에게 좋은 글이 미래에는 먼지만도 못할 수도 있고 예전에 눈여겨보는 이 없던 글들이 뒤늦게 미래인인 우리가 찾아 읽기도 하니까요. 쓰고 보니 하나마나 한 소리나 재잘대는 오후네요. ㅎㅎㅎ 하나마나 한 소리라도 더 예쁘게 하고 싶다…일기는 일기장에 써야지…죄송합니다 ㅋㅋㅋ

syo 2021-05-11 12:05   좋아요 2 | URL
저는 오늘의 글이 명문인지 아닌지 읽는 사람이 읽는 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래에 먼지만도 못한 글이 더 먼 미래에는 찾아 읽는 글이 될 수도 있고 그러다 다시 더 미래에는 또 먼지가 될 수도 있어서, 미래의 어느 한 시점이 글을 판단하는 기준점이 된다기보다, 각각의 미래를 현재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읽는 그 순간 각자의 방식으로 명문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넘어가면 되지 않나, 합니다.

꼭 일기장에 써야만 한다고 본인이 판단하는 일기만 일기장에 쓰시고, 이런 의미있는 소리는 계속 알라딘에 써주세요 ㅎㅎㅎ

수이 2021-05-10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기는 알라딘에~ 신승훈 오빠 노래 들으면서 말할 때마다 속눈썹 나풀나풀거리던 레지던트 오빠를 떠올리는 찰나 신승훈 오빠가 그럽니다 슬프기는 하지만 창 밖을 보면 편지를 써야지....... 여기에서 저 왜 이러나요 조증이다 조증 속눈썹 나풀나풀에 순간 조증이 오는 이 갱년기여 영원하라!

syo 2021-05-11 12:0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어쩐지 따라잡을 수 없는 텐션의 댓글이다....

수이 2021-05-11 12:08   좋아요 0 | URL
나 글 썼어 1등 축하 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1-05-11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되고 헛되도다... 안타까운데 웃긴 이 마음 ㅎㅎ 일기든 뭐든 간에 읽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서랍에서 꺼내어 공개할 가치가 있는 거 아닐까요? 오늘도 즐겁게 읽고 갑니다^^

syo 2021-05-11 12:06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이 계셔서 늘 든든하다니까요 ㅎㅎㅎㅎ

AgalmA 2021-05-13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기는 일기장에나 써라. 저도 이 소리를 들은 적 있는데, 공개되는 글을 쓴다면 누구나 한 번쯤 듣는 소리 아닌가요ㅎㅎ 요즘은 더욱 그렇고^^;; 원글의 내용보다 도를 넘는 악플이 더 문제가 되고...

존 치버 등등 많은 작가들은 공개될 걸 염두에 두고 아예 일기를 썼잖습니까.
누구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구는 저렇게 쓸 수도 있죠. 정치판처럼 말 꼬투리잡기식이 아니라 좋은 대화 나눌 수 있으면 그 글은 어느 정도 의미는 있는 거죠. 님의 이 글과 아래 많은 댓글들처럼.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글의 운명들ㅎㅎ

syo 2021-05-16 14:4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무슨 일기장 감별사처럼 넌 일기, 넌 안 일기, 잘도 정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놓고 그래 이건 일기고 여긴 일기장이다 임마들아- 하고 살지만요.

유부만두 2021-05-14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 정말 재미 드럽게 없어요 ㅜ ㅜ

syo 2021-05-16 14:4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미없어요 맞아요.
마리아랑 마틸다는 어떨까.....

감은빛 2022-05-06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는 내가 어쩔수 없죠.
저는 유당분해효소가 없어서 어려서부터 우유만 먹으면 탈이 났지만,
만약 우유를 많이 마셨어도 키가 더 자랐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가 아는 어느 작가가 소설로 한 번 등단하고 다음에 수필로 등단했다고 하더라구요.

소설로 등단은 실패했는데, 어쩌면 수필은 가능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가끔 했어요. 물론 이젠 포기한 지 오래예요.

일기, 수필, 에세이 그리고 잡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냥 끄적이는 것만으로 재미도 있고 뭔가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열역학 제2법칙을 맹렬한 기세로 역행하는 syo님 멋져요!
 

 

초겨울사거리 4

 

 

 

딱 한 곡을 반복해서 들으며 달렸어. 밤의 거리에는 혼자인 사람은 없더라. 다들 둘이서, 넷이서, 혹은 그보다 더 많이 모여서 떠들며 웃었어. 웃으려면 다른 하나가, 셋이,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해서 모여든 사람들처럼. 혼자서도 웃는 사람은 나 혼자였는데, 바람은 시원하고 아카시아 향은 환하고 음악은 달고 네 생각은 푹신해서 달리기에 좋았어. 같은 노래가 열여덟 번 흐르는 동안 뛰고 걷고 숨은 차고 다리는 무겁다가 가볍다가 했더니 딱 집에 도착하더라. 가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는데, 달리는 동안 신기하게도 조금씩 조금씩 들리더니, 열여덟 번 들으니까 대충 다 들리더라. 대충 알아듣기까지도 열여덟 번을 들어야 하는 거더라. 그렇게 오래 듣고 오래 생각해야 비로소 들리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가면서, 우리가 여기에 왔더라.

 

네가 한 말들을 열여덟 번 생각해봤거든. Oh, oh, oh, don’t, don’t you worry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도 열여덟 번 생각했거든. I’ll be there whenever you want me 내가 왜 네 옆에 있어야 하는지를 열여덟 번 생각했거든. Stick by my side even when the world is caving in 내가 네게, 그리고 네가 내게 어떤 사람인지를 열여덟 번 생각했거든. Know I’m not perfect but I hope you see my worth 답은 늘 뻔하고 정확해서 딱 한 번만 생각해도 됐거든. ‘Cause it’s only you, nobody new, I put you first 그랬더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뭔지 알게 되더라. If you stay forever, let me hold your hand 그러니까 우리는 손을 잡아야 해. 낮에도 밤에도 따뜻한 봄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 보자. 우리에게 모자란 건 서로의 손, 잡을 수 있는 손이야. 입술도 좋고 낱말도 좋고 10cm 간격으로 마주 보는 두 눈도 너무 좋지만, If you stay forever, let me hold your hand 손을 잡자. 손을 잡고 걷자. 세상 길이 다 무너져 사방이 사막처럼 늪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결국 모든 건 마주 잡은 두 손에서부터 시작하니까, 시작하는 마음이 간절히 필요한 사람들처럼, 손을 꽉 잡고, 걸으러 가자. 같이 가자.

 



* syo는 새벽에 써서 올린 글을 아침에 읽을 것을 전혀 두려워 하지 않는, 근자에 아주 보기 드문 두꺼운 얼굴과 염치없는 심장의 소유자입니다. 으하하하하하😆😆😆😆😆

 



Pink Sweat$ - At My Worst


아래 가사는 언제나 그렇듯 syo식 의(발번)



Can I call you baby?  부르는 말로 널 간지럽히고 싶은데,

Can you be my friend?  친구라는 말도 좋겠고

Can you be my lover up until the very end?  끝까지 끝나지 않는 사랑이라 하면 어떨까?

Let me show you love, oh, no pretend  그런 걸 보여줄 거거든, 진짜로

Stick by my side even when the world is caving in, yeah  세상이 무너져내려도 꼭 붙어만 있자

Oh, oh, oh, don’t, don’t you worry  걱정할 틈이 있다면,

I’ll be there whenever you want me  그냥 날 원하기만 해, 언제라도 옆에 있을 거니까

I need somebody who can love me at my worst  내가 가장 엉망일 때도 나를 사랑해 주고

Know I’m not perfect but I hope you see my worth  얼룩 묻은 나를 닦아 네게만 보이는 빛을 찾아내 줄래?

‘Cause it’s only you, nobody new, I put you first  왜냐면 너뿐이니까, 누구보다도, 나보다도 더 너니까

And for you girl, I swear I’d do the worst  널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게 만드는 너니까

 

If you stay forever, let me hold your hand  영원히 곁에 있을 거라면, 영원히 손을 잡아줄게

I can fill those places in your heart no one else can  들여다 봐, 네 맘에 내가 들어가면 꼭 맞을 그 빈자리

Let me show you love, oh, no pretend, yeah  봐봐, 이게 그 자릴 채워줄 내 사랑이거든

I’ll be right here, baby, you know it’s sink or swim  여기 내가 있을 거고, 좋을 때도 망할 때도 세상엔 우리 둘뿐일 거고

Oh, oh, oh, don’t, don’t you worry  외롭고 무서울 때 있겠지만

I’ll be there whenever you want me  그때도 우리는 함께일 거야, 우리가 우리를 원하니까

I need somebody who can love me at my worst  내 밑바닥을 보고서도 끝내 사랑을 놓치지 않을 사람,

Know I’m not perfect, but I hope you see my worth, yeah  멍청한 나를 일으켜 세워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사람,

‘Cause it’s only you, nobody new, I put you first  그게 너라니까, 다른 누구도 아니라, 내게 가장 소중한

And for you girl, I swear I’d do the worst  그게 너라니까, 내가 못할 게 대체 뭐가 있겠어

 

I need somebody who can love me at my worst  내가 이런 꼴이어도 나를 사랑해 줄 거지?

Know I’m not perfect, but I hope you see my worth, yeah  네가 날 봐주면, 완벽하진 못해도 더 좋은 사람이 될게

‘Cause it’s only you, nobody new, I put you first  그건 너만 할 수 있는 일이야, 나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

And for you girl, I swear I’d do the worst  그런 널 위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게

 

 

  

--- 읽은 ---

 


156. 읽는 직업

이은혜 지음 / 마음산책 / 2020

 

이 책에 한 줌의 망설임도 없이 별 다섯 개를 매길 수 있는 건, 이은혜 선생님이 읽는 사람이면서 쓰는 사람이어서겠다. 선생님은 편집자라는 직업의 본령을 읽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시는바, 쓰는 당신을 조금쯤 겸연쩍게 여기시는 모양이지만, syo는 이 책을 읽으며 읽는 syo와 쓰는 syo 두 놈 모두가 겸연쩍어졌다(심지어 읽기에 있어서는 겸연쩍음을 넘어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읽고 쓰는 두 놈 모두가 시원하게 격추당하면서도 양손으로 최후의 엄지척을 남겼으니 엄지손가락 네 개 확보. 그 꼴을 본 제3syo가 또 양손으로 엄지척을 날렸으니 엄지손가락은 총 여섯 개. 그렇게 별 여섯 개를 매겼지만 알라딘이 그런 짓은 안 된다고 그래서 별 한 개는 마음 속에 보관하는 걸로. 결론 별 다섯 개.

 

비밀은 글을 쓰게 한다. 그러므로 진짜 비밀은 없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비밀과 달리 글로 쓰인 비밀은 음울과 비탄을 마침내 정돈해서 담아내는 까닭에 희망을 향해 달린다.

_ 이은혜, 읽는 직업

 

, 이런 멋진 문장을 마주하면 나란 놈이 한없이 하찮아지면서, 울음과 비탄이 도무지 정돈되지 않는 까닭에 절망을 향해 달리게 된다.

 

 

 


157.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고미숙 지음 / 프런티어 / 2018

 

- 일독(1811xx)

- 재독(210504)

 

가끔 아무 이유 없이 재독하는 책들이 있다. 그 가운데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 이걸 왜 다시 읽었을까, 처음 읽을 때의 나는 이 책을 좋아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책들도 있다. 그런 경우 과거에 쓴 평을 다시 보면 그때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은 나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경우가 십중팔구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은 실패다. 처음 읽었을 때는 실패의 지점이 정확히 어디인지 짚어내지는 못했고 그저 두루뭉수리하게 어, 왜 별로지? 고미숙 선생님 좋은데 왜? 이랬던 듯. 그런데 지금은 알겠다. 이 책은 백수가 아닌 사람에게 백수의 매력을 설득하는데 실패할 것이다. , 백수가 이런 것이었다니, 당장 내일 사장님 면전에 사표를 집어던져야겠는걸?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있어도 이 책의 힘은 그저 가득 차 있던 항아리에 우연히 던져진 돌멩이 수준에 그칠 것이다. 그렇다면 백수 독자들에게 그들이 모르고 있던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책인가? 글쎄, 그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백수 경력 장장 10년의 syo는 그렇게 본다. 그러니까 이 책이 독자들의 마음에 가닿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한 줄로 말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모든 백수가 연암처럼 살 수 없기 때문에 연암이 연암이다.

 

그러니 부탁한다. 제발 꿈꾸지 마라! 꿈은 망상이다. 망상은 부서져야 한다. 망상 타파! 청춘은 청춘 그 자체로 충분하다. 아니, 삶이 통째로 그러하다. 사람은 꿈을 이루기 위해 살지 않는다. 어떤 가치, 어떤 목적도 삶보다 더 고귀할 수 없다. 살다 보니 사랑도 하고 돈도 벌고 애국도 하는 것이지, 사랑을 위해, 노동을 위해, 국가를 위해 산다는 건 모두 망상이다. 하물며 화폐를 위해서랴? 성공한 다음엔 공황장애, 성공하지 못하면 우울증. 이 얼빠진 궤도 자체가 망상 중의 망상이다. 그러니 제발, 망상을 타파하자.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청춘의 생동하는 얼굴과 마주하게 될 터이니.

_ 고미숙,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읽는 ---

경제학의 모험 / 니알 키시타이니

코끼리를 쏘다 / 조지 오웰

가벼운 영어 / 가벼운학습지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 탕누어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 / 피에르 아도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여성작가 편 / 이현우

빈 옷장 / 아니 에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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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7 0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1-05-07 1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syo님, 여자친구분께 보낼 연애편지를 잘못 올리신 거 아닌가요?ㅇㅁㅇ 아침부터 이런 달달달달한 글이라니 연애세포 죽어가는 유부녀의 마음은 분노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는 아니고. 좋다구요. syo님 글은 언제나 좋당. 항상 모바일북플로 보다가 컴퓨터 큰화면으로 제대로 서재에 들어와보니 분노의 포도알갱이도 엄청 크고 ㅋㅋ 글도 더 잘 읽히고 좋습니다!

syo 2021-05-10 15:05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ㅎ 연애세포는 사실 죽는 것 같아도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NASA에서 연애세포의 끈질긴 생명력을 일반 세포에 적용하여 인류에게 영생을 가져다 줄 연구를 하고 있는 중이라는데요.

pc로 보면 좀 많이 낫죠? ㅎㅎㅎ 좌우정렬이랄지, 행간격이랄지, 그런 것들 의외로 신경쓰고 있습니다. 북플로 보면 아무 티도 안나지만요.....

공쟝쟝 2021-05-10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안쪽 팔릴거 같은데요? ㅋㅋㅋ 번역 참 좋으다.. ㅋㅋ 저렇게 하는 거구나... ...

syo 2021-05-10 15:06   좋아요 1 | URL
번역을 빙자한 연애편지인가, 연애편지를 빙자한 번역인가.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언젠가는 바닷가에 닿는

 

 

 

한 문장이 필요해서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경우.

 

읽은 책을 자꾸 다시 읽게 만드는 문장은 읽는 사람의 마음속 조용한 바닷가를 적시는 파도처럼 너무 가까이 오지도 너무 멀리 가지도 않고 초연히 늘 거기에 있다. 어떤 시절 어떤 곳에서 궁리하던 나와 만나 나에게 안긴 문장이다. 그저 내게 아름다우므로 점점 내게 더 아름다워지는 바닷가처럼, 모두에게 특별하지 않아서 내가 더 특별하게 여길 수 있는 말이 있다. 그것은 이성의 영역도 감정의 영역도 아니어서, 우연과 기억과 시간, 그 질량 없는 것들이 막막한 질량으로 잡아당기면 밀물과 썰물은 여지없이 인다. 오래 찾아가지 않은 바닷가의 파도 소리는 그렇게 조금조금 커지다, 어느 날, 찾아가 다시 만나지 않으면 안 될 깊은 소리가 되어 안으로 울린다. 그럴 때 돌아가 앉아 고요히 바라보면, 오래 만난 문장은 처음 만난 문장 같기도 하고, 오래 짊어지고 살아온 내가 처음 만난 나 같기도 해서, 파도 소리 잠잠히 잦아들 때쯤 엉덩이에 묻은 모래를 툭툭 털며 일어서는 나는 조금 더 부드럽고 조금 더 힘 있는 내가 되는 것.

 

자꾸 다시 읽는 한 문장은 한 권보다 크고 깊다.

 

 

 

--- 읽은 ---

 


152.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금정연 지음 / 어크로스 / 2017

 

- 일독(170821)

- 재독(210503)

 

아무리 기본값이 잡글이어도 알라딘에서 놀려면 어떻게든 책 이야기를 하긴 해야 하지 않는가. 읽는 건 즐기지만 읽은 걸 이야기하는 데는 아무래도 소질이 없는 syo가 알라딘에 발을 붙이던 시절에 많이 하던 고민이다. 그때 많이 참고했던 게 금정연 선생님. 기회 될 때마다 말하지만 syo의 최초 목표는 보급형 금정연, 금정연 이미테이션 금정역같은 게 되는 거였다.

 

그런 선택을 한 것은 당연히 금정연 선생님의 글에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애매한 독후감의 세계에는 안 읽고서 읽은 것처럼 쓰기도 있고, ‘읽고서 안 읽은 것처럼 쓰기도 있다. 하지만 이 영역의 최고봉은 바로, ‘안 읽고서 읽은 것처럼 쓴 건지 읽고서 안 읽은 것처럼 쓴 건지 헷갈리게 쓰기. syo는 늘 그런 경지를 추구했다. 빗대어 말하자면, 잘생긴 애와 안 잘생긴 애보다 더 신경 쓰이는 애가 바로 잘생겼는지 안 잘생겼는지 희한하게 모르겠는 애인 것이다.

 

물론 거어어어업나 잘생긴 애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이건 우주의 섭리다.

 

이 책 독후감을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뿌듯하다. 쓴 내가 봐도 안 읽고서 읽은 것처럼 쓴 건지 읽고서 안 읽은 것처럼 쓴 건지 헷갈린다. 내가 이걸 읽었던가?

 

요약하면 멋쩍어지는 일들이 있다. 이 문장은 두 가지 뜻으로 읽힌다. 제법 그럴싸해 보이지만 요약하고 보면 멋쩍은 일이라는 의미로. 도는 요약이라는 행위 자체를 멋쩍게 만드는 일이라는 의미로.

  전자가 삶이라면 후자는 소설이어야 한다. 소설이다, 라고 쓰지 않고 소설이어야 한다, 라고 쓰는 건 여전히 많은 소설들이 삶을 요약하기 때문이다. 메인플롯과 몇 개의 서브플롯으로. 극적인 사건들의 연쇄로. 발단과 전개와 위기와 절정과 결말을 갖춘 이야기로. 그 끝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에피파니로. 이때 요약은 불가피하게 보인다. 모든 삶은 한권의 책에 담기에는 너무 길고, 긴 삶을 견디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이야기가 필요하니까.

_ 금정연,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153. 사진가의 기억법

김규형 지음 / 21세기북스 / 2021

 

에세이 장르를 줄기차게 읽는다. 사진이나 그림이 종이의 절반을 먹어들어가는 책, 한 줄로 이어 써도 채 한 줄을 다 못 채울 문장을 서너 줄로 나눠서 지면을 채우는 책도 꽤 읽는다. 그렇게 생긴 책들 가운데에도 좋은 녀석들은 종종 있다. 그렇지만 차마 좋은 책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녀석들이 대부분. 앞으로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한 줄로 끝낼 것이다. "내가 더 잘 쓴다." 그리고 그 한 줄을 쓸 때도 나는 결코

 

  내가

  더

  잘 쓴다.

 

이렇게는 쓰지 않을 것이다.

 

내가 더 잘 쓴다.

 

영원한 것은 없다.

하지만 그것을 오랫동안

간직하는 방법은 있다.

 

손에 사진기가 들려 있다면

당신은 이미 그 방법 하나를

알고 있는 셈이다.

_ 김규형, 사진가의 기억법

 

 

 


154. 200년 동안의 거짓말

바버라 에런라이크, 디어드러 잉글리시 지음 / 강세영 외 옮김 / 푸른길 / 2017

 

이번(그러니까 저번)달 책은 읽기 쉽고, 그래서 금방 읽어낼 거라고 예측했지만, 삶이 언제나 그렇듯 이런 일이 엎치고 저런 일이 덮치는데 심지어 그런 일들 밑바닥에 깔린 나의 게으름이 광대하여 결국 기간 내에 읽기는 실패. 이런 것이 인생이라고 늘 배우지만, 배워도 배워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라는 인간의 한결같음은 뭐랄까, 거짓말 같다. 200년이 지나도 낫지 않을 것 같다.

 

과학은 태도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진리를 향해 다가가는 사람들의 태도. 그 태도가 너무나 고결하여 과학이 밝혀낸 진리와 달성한 업적에 대한 존경은 곧 과학에 대한 존경으로 이어진다. 축적된 존경은 신앙이 되고, 과학이라는 말이 신봉의 대상이 되는 순간, 과학적 태도는 자취를 감추기 쉽다. 그건 과학의 잘못일까, 아니면 과학이라는 말을 이용하려는 일부 비과학적 과학자들이 추구한 사리사욕의 결과일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비과학적이지만 당시에는 과학의 이름을 내세웠고 그것이 과학임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논리체계가 있었다고 할 때, ‘그건 사실 과학이 아니었다는 선언은 오늘의 우리에게 손쉽고 깔끔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지켜지는 것은 과학의 태도가 아니라 과학사의 순수성일 뿐이다. 과학적 태도 역시 과학이라는 거대체제에 속하는 인물들이 지켜야 할 윤리학이지, 과학자들이 당연히 지니고 있는 존재론적 특성이 아니다. 과학은 과학 자체로 비과학적태도를 내포할 수 있고, 그런 사례는 널렸다. 자본이 과학에 가하는 영향력을 인정할 수 있다면, 과학적 전문가들이 인간으로서 지닌 편견이 그들의 과학에 미치는 편향을 인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과학 꺼지라는 게 아니라, 마침내 권위를 획득한 것들은 그 권위를 얻을 수 있도록 해주었던 자신의 가장 훌륭한 특성들과 정반대되는 행위를 하기 쉽다는 것이다. 신앙이 된 모든 것들이 대체로 그러했듯이.

 

한때 과학은 견고했던 권위를 공격했다. 그러나 새로운 과학적 전문가는 권위 그 자체가 되었다. 그의 업무는 무엇이 진실인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적절한가를 선언하는 것이었다.

_ 바버라 에런라이크, 디어드러 잉글리시, 200년 동안의 거짓말

 

그러나 젠더 관점에서 분석된 책을 읽어 놓고서는 젠더의 논점을 삭제하고 원론적이면서 추상적인 리뷰를 쓰는 것, 이 자체가 일종의 권력적 · 정치적 읽기다. 나는 내가 쓴 이 짧은 글이, 다른 맥락에서는 모르겠지만, 이 책의 평으로 여기 붙으면 유해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글이든 자체로 좋고 나쁘지 않다. 정치는 맥락 속에서만 작동하고, 맥락 속에서 정치는 반드시 작동한다. 알면서 왜 이 짓을 하고 있는가. 차라리 아무 말을 하지 말걸.

 

이게 남성으로서 겪는 여성주의 책읽기의 딜레마다. 당사자성이 없는 나는 늘 이딴 글을 써댄다. 이것이 한 책의 목소리를 침묵시키고, 그 책이 노고를 통해 타자의 수렁에서 건져낸 피해자들을 재타자화하는 쓰기가 아니란 말인가. 나는 점점 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지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곤란하다. 계속 길을 찾고는 있지만, 점점 더 멍청해지는 방향으로 가는 것만 같아서 겁이 난다. 멍청하게 똑똑한 인간은 최악이다.

 


 


155.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김재인 지음 / 느티나무 책방 / 2016

 

- 일독(17071x) / 재독(19223x)

- 삼독(210504)

 

실패란 처음에 의도한 목표와 내가 노력해 생겨난 결과가 어긋날 때, 목표에 이르지 못했을 때를 가리킵니다. 그 어긋남 때문에 사람들은 좌절하고 후회합니다. 후회는 결과에 비추어서 노력을 평가하려 할 때 생깁니다. 그때 그랬더라면,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거지요. 하지만 결과란 나의 노력과 우주의 조건이 어우러져서 생겨나는 법입니다. 내 노력이 바라던 결과를 낳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목표를 향한 노력이 원하는 결과를 낳지 않는 것이 존재론적 조건 아래에서는 오히려 정상입니다. 차라리 실패가 정상 상태라고 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노력하는 순간에 집중해야 합니다. 노력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결과가 나쁠지라도 최대한 노력하는 겁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때, 그 결과와 상관없이, 후회가 남지 않습니다. 후회란 노력에 대한 후회인데, 노력의 순간에 더할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노력과 결과를 분리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야 합니다. 노력은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무조건 수용하기. 그러고 나서 최선을 다한 또 다른 실험을 진행하기. 이런 것의 연속이어야, 이것이 삶이어여 하는 게 '운명애'의 진짜 의미입니다.

_ 김재인,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나도 나를 잘 알 수 없는 부분이 그렇다. 어떤 책을 읽을 때는 이건 너무 뻔한 문장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라는 이유로 혹평한다. 하지만 또 어떤 책을 읽으면서는 너무 뻔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특별하지 않은 글자들에 오래 머무른다. 그러면 안 되는 걸까?

 

그러면 안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깨닫는다. 나는 이렇게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나는 독서를 하는 나를 들여다보면서, 인간이, 최소한 나라는 인간이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동물임을 인정하게 된다. (나라는) 인간은 일관적으로 일관성이 없다. 일관성을 추구하고 노력할 뿐이다. 일관성은 존재론이 아니라 윤리학에 가깝다.

 

저 흔하고 뻔한 말이 오늘은 그냥 필요했다.

 

 

 

--- 읽는 ---

소크라테스 씨,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요? / 허유선

경제학의 모험 / 니알 키시타이니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 이유미

나의 칼이 되어 줘 / 다비드 그로스만

읽는 직업 / 이은혜

물리의 정석: 고전 역학 편 / 레너드 서스킨드, 조지 라보프스키

물리가 쉬워지는 미적분 / 나가노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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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05-05 1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쇼님이 그렇게 이야기 하시니 금정연님 책도 다시 한번 봐야게써요 (전 제목에 홀려서 돈 아까워했지만) 사서 읽지 않으니 흡족했더라는.
에런라이크 책은 그렇게 읽어도 되고 또 다르게 읽어도 될 것 같아요. 그러니 쓰신 문장 처럼 어떤 책을 읽으면서는 너무 뻔해서 눈길 안주는 글자들에 오래 머무르는 게 ㅡ 목적없는 책읽기가 주는 가장 목적없는 즐거움이고 그걸 알아버리고 나면 목적있는 읽기가 수월하지 않아지잖아요? 다시 돌아가서 한문장을 읽기위한 한권 읽기가 시간낭비처럼 느껴지는 것이 제 요즘 고민입니다. 서글프다.

syo 2021-05-06 01:08   좋아요 1 | URL
쟝님은 지금 일단 덮어놓고 많이 많이 집어삼킬 땐가 보네요.
그럴 땐 또 탐식하고, 목적이 생기면 그때가서 목적 독서 하면 되지요 ㅎㅎㅎ
시간 지나고 나서 보면 내 인생을 흔들었던 책들은 우연히 만났지만 목적을 가지고 읽은 애들이더라구요.

뒷북소녀 2021-05-06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리뷰라니! 저 읽고 싶어지잖아요.ㅋㅋㅋ
세상에... 철학, 경제학도 부족해서...물리학에 미적분이라뇨.
정말 대단하세요.

syo 2021-05-07 02:48   좋아요 0 | URL
대단할 게 하나도 없는 게,
휘적휘적 보는 거라서 완독 즉시 망각의 수렁에 돌입합니다.
보름쯤 지나면 완벽하게 까먹을 수 있습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