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nel effect
늦게까지 자고 일어났다. 어쩐지 온몸이 땡땡 부어 있어서 눈도 둥글 턱도 둥글 손가락도 둥글거렸다. 머리가 조금 아팠고 그래서일까 커피가 썼다. 친구 남친이랑 꽁냥거려서 친구 열 받게 만드는 유튜브 영상 보면서 3분쯤 낄낄거리다가 아무 맥락 없이 도서관으로 출발했다. 일곱 권을 빌려왔는데 집에 오자마자 제일 먼저 본 건 뜬금없는 플라톤. 심지어 그건 빌려온 책도 아니다.
김치찌개를 만들려고 했는데 돼지고기가 없어서 스팸 반 통을 넣었더니 왠지 부대찌개가 되었다. 부대찌개의 그 맛이 스팸에서 나온 거였구나. 부대에서 나온 건 줄 알았는데. 어디서 나오면 어때, 맛만 있으면 됐지.
배 두드리면서 누워 있었는데 예고에 없던 비가 잠깐 지나갔다. 후두두두둑. 불현듯 빨래를 돌렸다. 바람이 무진장 세게 불어서 창문이 흔들흔들했고, 나는 애꿎은 냉장고를 구석구석 닦고 식재료를 정리했다. 조금씩 물러지는 토마토를 믹서기에 넣고 요거트, 꿀을 첨가해서 갈았다. 위잉위잉. 20초만에 깔끔하게 다 갈렸고, 나는 콜라를 마셨다.
슬픈 발라드가 듣고 싶어 검색하다가 30분 동안 스도쿠를 했다. 잎이 조금씩 말라가는 대파를 썰어서 얼려놓으려고 꺼내놓고는 의자 바퀴를 닦았다. 박스 가지러 옥상 창고에 올라갔는데 하늘을 쳐다보며 20분 빙빙 돌다가 그냥 내려왔다. 박스는 왜 필요했던 걸까. 영양제를 사려고 검색하다 감자 5kg을 샀고, 화분에 물을 주러 가다가 가스레인지를 닦았고, 턱걸이를 하러 작은 방에 들어가서 겨울옷 정리를 하고 나왔다.
하려 했던 것들을 하지 않았고, 한 것들은 하려 한 것들이 아니었다. 작은 집에서 일없이 작게 작게 사는 삶이라는 건 늘 이렇게 어쩐지, 맥락 없이, 뜬금없이, 뜻밖에, 불현듯, 애꿎게 같은 부사가 어울리는 방식으로 이런저런 일들을 하며 살고 있다는 뜻이다. 작아서 그렇게도 돌아가고, 그렇게 돌아가서 작은 삶이다. 아름답지도 간결하지도 않지만, 에두르고 에둘러도 금방 내 방향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생활.
자갈이 깔린 바닷가에 나란히 앉아서 수평선을 구경하는 생각을 해야지-하고 마음먹고서, 눈을 감고 20분쯤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 내가 해야지 하고 한 일은 그거 딱 하나뿐이다.
--- 읽은 ---
175. 이제 꿈에서 깰 시간입니다
김불꽃 지음 / 봄름 / 2021
김불꽃 선생님의 전작 가운데 『예의 없는 새끼들 때문에 열받아서 쓴 생활예절』이 나름 파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의 없는 새끼들을 향한 일종의 미러링이랄까, 예의 없는 새끼들에게 생활예절을 가르치면서 예의를 차릴 이유가 없다는 결기랄까, 하여간 그런 태도가 강력한 호불호의 양극화를 이끌어 낸 작품이었다. syo는 쏘쏘하게 봤었는데, 그냥 SNS 같은 데서 한 꼭지씩 읽었다면 순전히 극찬으로 마무리될 만남이었지만, 한 권을 연속으로 읽다 보니 쎈 표현의 중첩과 반복 때문에 후반부쯤 가니까 미각에 마비가 오긴 했다. 그 이후로 다시 김불꽃 선생님의 책을 읽을 일이 있을까 했었는데,
이후로도 선생님의 책은 꾸준하게 발매된 듯. ~한 새끼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 아닌 바, 어른의 말투와 공무원의 대민 호칭(선생님)을 장착하고 돌아온 김불꽃 선생님이 이번에는 인간의 틈바구니에서 상처받지 않는 법에 대해 매서운 지혜를 알려주신다. 그러나 말투는 말투고 불꽃은 불꽃. 이글거리는 마그마의 마음은 살얼음 아래 그곳에 여전히 있다.
이제 『김불꽃의 불꽃 튀는 성인식 – 성 상식 없는 새끼들 때문에 열 뻗쳐서 쓴』 하나 남았다. syo는 제일 맛있어 보이는 음식은 맨 나중에 먹는 쪽입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되, 그 노력이 오롯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 관계를 발전하기 위해 배려하되, 그 배려가 오롯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시도하되, 그 시도가 오롯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
이것만이 선생님의 관계를 지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 관계의 진짜 본질이며 속성입니다, 선생님.
_ 김불꽃, 『이제 꿈에서 깰 시간입니다』
176. 하루 15분 명상
혜거 지음 / 책으로여는세상 / 2020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이면 ‘명상의 시간’이라는 코너가 찾아왔다. 삐이- 하는 소리와 함께 스피커가 켜지면서 “명사앙의 시간-시간-시가-ㅅㄱ” 하는 아련한 페이드아웃 인트로로 시작해서 조용한 음악을 동반한 좋은 말씀이 흘러나오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그만하면 되었으니 이제 그만 놀고 교실로 들어가서 책상 앞에 단정하게 앉거라-하는 의도였을 것이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하나도 단정해지지 않았고 되려 분노로 차오르기만 했다. 뭔데, 벌써 점심시간이 끝나 간다고? 매점에 ‘명상의 시간에는 먹을 것을 팔지 않습니다. 포켓몬 빵도 안 팜“이라는 안내문이 붙을 정도니, 명상의 시간은 이제 천국의 문을 닫고 지옥의 아가리를 벌릴 시간이라는 뜻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스피커 속 남성은 어쩐지 성욕 같은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목소리로, 마음을 비우고 오늘 있었던 일들을 반성해 보세요, 부모님을 생각하세요, 욕심을 버리고 이웃에게 베푸세요, 뭐 이런 식의 각종 선량한 제안을 거듭했지만 우리들에게 큰 어필은 없었다. 그렇게 ’명상의 시간‘은 폭압과 억제의 상징이 되어 좋지 않은 이미지만 축적했고, syo가 중학교와 같은 이름을 단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금방 없어졌다. 애들 공부하는 데 방해된다는 항의가 있었다고.
syo의 사전 속 명상에게 제자리를 찾아주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서 생각할 것은 점점 많아졌고, 생각할 것이 많아지면서 똑바로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의 방법을 둘러싼 꽤 많은 길들이 명상 쪽으로 향했으니, 언젠가 한 번은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될 것 같다는 예감도 있었다.
명상은 결국 삶의 태도가 되겠지만, 첫걸음에서는 방법론이고 기술이다. 모든 기술은 습관이 될 때까지는 학습이 필요하고, 배우고 익히는 사람에게 학습 과정은 늘 매끄럽지 못하고 불편하다. 예를 들어, 초심자에게 가부좌는 명상을 방해하는 고통 공급처일 뿐인데, 대체 이 자세를 통과하는 길이 어떻게 선정禪定에 이른다는 말인가? 그래서 syo는 늘 이런 책을 읽는다. 철학에서도, 과학에서도, 심지어 이제는 명상에서도. 습관이 되기 전에 읽는 책. 습관이 되는 순간 의미가 없어지는 책. 올라가면 치워버려야 하는 사다리. 치움으로써 다시는 저 밑으로 내려갈 필요가 없는 나 자신의 위치에너지를 증명해주는 사다리.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면 반드시 멈춰야 합니다. 멈추는 것만으로도 부족하고, 아주 고요한 상태에서 가만히 앉아 자신의 내면을 감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가라앉아 깊은 내면의 세계가 보일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는 탁한 연못 속에서 진주 구슬을 찾는 것과 비슷합니다. 연못 속에 빠진 진주 구슬을 찾으려면 마땅히 물결을 고요하게 해야 합니다. 구슬을 찾겠다고 연못을 휘저으면 물은 점점 탁해지고 구슬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집니다. 이럴 때는 연못의 물이 고요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물이 고요해지면 구슬은 절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_ 혜거 스님, 『하루 15분 명상』
177. 한번은 경제 공부
로버트 하일브로너, 러스터 서로우 지음 / 조윤수 옮김 / 부키 / 2018
고만고만했다. 이런 컨셉 이런 레벨의 경제학 책은 잔뜩 있고, 실은 그중 한 권이면 된다. 한 권을 골라 두 번 읽는 것과, 두 권을 골라 한 번씩 읽는 게 거의 차이가 없는 영역이 이런 경제학 이론의 발전사를 쉽게 다룬 교양서 영역이다. 그래서 여러 권을 한 번씩 읽으면서 한 권을 여러 번 읽는 효과를 만끽하는 중.
결국 대규모 변화에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의 혁명성에 대한 적응만이 아니다. 국민적 기질이라든가 지도자의 통찰과 같은 제도 밖의 존재들이 기여하는, 뭐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것들도 필요하다. 그런 만큼 경제학을 이해할 필요는 있지만, 이는 바람직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제학을 이해한 뒤에도 여전히 부딪치게 될 지극히 까다로운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는 충고로 이 책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_ 로버트 하일브로너, 러스터 서로우, 『한번은 경제 공부』
178. 민주주의는 실패했는가?
니이에르 다산디 지음 / 이혜경 옮김 / 자유의길 / 2019
모든 단어가 다 그렇긴 하지만, 모두의 입에 올라오면서도 모두가 다른 뜻으로 쓰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가장 강한 단어 중 하나가 ’민주주의‘다. 그도 그럴 게, 민주주의란 민民이 주主가 되는 주의主義이므로 각각의 민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실감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실패하는가?
민이 모두 주가 될 수는 없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없고, 모든 사람이 하나의 것을 가질 수도 없다. 따라서 민주는 기필코 실패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실패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의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누가 민이고, 무엇을 가져야 주이며, 민과 주를 어떻게 엮고 배치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주의다. 당연히 그것은 정치고 권력이다. 그러므로 개별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실패할 수 있지만 추상적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절대로 실패할 수 없다. 실패한 개별적 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경계 바깥으로 밀어내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 게 주의가 하는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이다. 진정한 공산주의는 실패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나라는 아직 한 번도 온 적이 없기 때문에- 라고 말하는 게 가능한 것은 그것이 주의이기 때문이다. 같은 방식으로 민주주의는 영원히 성공한다. 성공한 자들의 민주주의가 성공한 민주주의가 되는 일이 영원히 반복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성공할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를 연구할 것인가, 실패할 게 뻔하더라도 더 낫게 더 낫게 반복적으로 실패하며 ’민주‘를 밀고 갈 것인가. 실은 이 질문은 말장난이다. 주의가 아닌 민주는 없기 때문이다. 실패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모든 정치개념은 어차피 다 주의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저 질문은 어차피 만들어지고 변형되며 경합할 수많은 민주주의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민주주의가 어떤 것일지를 정하는 ’민주주의-주의‘를 고안할 때, 민주에서 출발해 주의로 갈 것이냐 주의에서 출발해 민주로 갈 것이냐를 생각하자는 질문으로 치환할 수도 있겠다. 영원히 성공하는 것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영원히 실패하는 것에 대한 성공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민주주의가 과연 질서와 안전을 제공할 수 있는가라는 우려 또한 오랫동안 제기되어 온 문제다. 민주주의에는 다원주의가 내재하기 때문에 다양한 신념들이 공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이 개인의 권리 강조와 결합하면서, 사회적 결속을 약화시키고 불만을 증폭시킨다고 지적되기도 한다. 문제는 권리가 본래부터 경쟁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자신의 신념을 주장하는 누군가의 권리는 다른 누군가의 권리와 충돌할 수 있다.
_ 니이에르 다산디, 『민주주의는 실패했는가?』
--- 읽는 ---
유괴의 날 / 정해연
스퀴즈 플레이 / 폴 오스터
이까짓, 털 / 윰토끼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 장 지글러
오늘부터 부러움에 지지 않고 살기로 했다 / 지그리트 엥겔브레히트
법화경 마음공부 / 페이융
철학사 아는 척하기 / 데이브 로빈슨
필요의 탄생 / 헬렌 피빗
플라톤 전집 1 / 플라톤
영어를 틀리지 않고 쓰는 법 / 최승철
일상적이지만 절대적인 과학철학 지식 50 / 개러스 사우스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