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을 위한 나라는 있었는데 없었던 건 그저 三의 용기

 

 

 

1

 

다음은 알라디너들이 목을 빼고 기다리시는 의 고백 관련 소식이다. ‘고백관련 소식이라고 적은 데서 벌써 짐작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맞습니다. 아직 고백상태입니다.

 

 

 

2

 

previously on Three.

 

을 회사에 꽂아줬던 전 이사님이 그를 연애에도 꽂아주겠다는 생각에 소개팅을 주선해주셨으니 이사님이 첫 번째 보살님이시다. 그리고 저 말 없고 재미없고 눈치 없고 배려도 없으며 소개팅하고 들어온 날 잘 들어가셨느냐, 즐거웠다, 잘 주무시라, 내일도 좋은 하루 보내시고 다음에 또 만나자, 이런 정리 카톡을 보내는 게 당연하다는 것조차 syo가 알려주기 전까지 몰랐던 소개팅 오랑캐 과 무려 여섯 번이나 만나주신 K씨가 두 번째 보살님이시다. 그리고 그 무지렁이를 그래도 사람처럼 입히고 말을 가르치고 인의도덕을 주입하여 여섯 번이나 그 자리에 내보낸 syo님이 바로 마지막 보살님이시다…….

 

보살님s의 무한한 노력에도 멍청하게 그냥 주말마다 출근하듯 만나러 가기만 하지 도통 다음 스텝을 밟지 않던 . 이러면 이거 사람 아니라는 주변의 압박에 못 이겨 다섯 번째 만남에 드디어 고백을 준비했는데, 이게 우물쭈물 타이밍 놓치고 준비해 간 멘트 놓치고 정신줄도 놓치고 하여튼 놓칠 수 있는 건 다 놓치는 바람에 고백 멘트는 뭔가 고백이 아닌 것처럼 두루뭉수리하게 되어 버렸고, 결론적으로 K씨가 그걸 고백으로 인지하지 못했다. 고백은 망했고 바로 그날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었던 의 욕망도 함께 망함.

 

그래서 여섯 번째 만남에는 그냥 다이렉트로 좋아한다 만나자를 꽂아넣기로 하고 나갔는데, 이 빙구는 또 언제 말하지 언제 말하지 언제 말하지 하면서 그날의 데이트 7시간을 통째로 날렸고, 결국은 9시 반, 헤어지는 지하철역에서, K씨가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다녀오기 전인가 다녀오고 나서인가 하여튼 이거나 저거나 망했기는 매한가지인 그 두 타이밍 가운데 하나에 좋아한다 만나자를 투척함. 대답 : 생각해 볼게요. 그게 지지난 토요일.

 

여기까지가 지난 시간까지입니다.

 


 

3

 

그리하여 일월화, 그때 우린 대구에 있었고 은 그냥 아주 카톡만 기다렸다. 핸드폰에 진동만 오면 2초 만에 들여다봤고, 엄마면 실망했고 스팸이면 분노했다. 저게 저렇게 감정이 많은 인간이었다니. 화요일, K씨 성격에 대뜸 먼저 생각해봤는데요하면서 말을 거는 건 생각하기 어려우니, 니가 먼저 간단한 말을 붙여서 판을 깔아보라고 조언했더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지금 태풍 때문에 난리니까 거기서 시작해보라고, 어차피 무슨 말을 걸어도 걸기만 하면 니가 왜 그 말을 걸었는지 저쪽에서 얼추 알아챌 거라고 이야기했다. 은 대답이 없었다. 그날 저녁, syo가 물었다. 야 그래서 뭐라고 하디? 까였냐? 이 대답했다. 말 안 걸었는데……. 이런 식이니 여러분은 이제 K씨와 syo가 보살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인정 못하시겠다구요?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요.

 

수요일에는 성남에 있었다. 아직 말도 못 걸어본 상황. 은 초조했다.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도 싫었으면 여섯 번이나 만났겠어? 이러면서 희망회로를 돌린다 싶으면 제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요, 아무래도 우린 아닌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해주었다. , 근데 이렇게 대답이 없는 거 보니까 진짜 아닌가보다 이러면서 머리를 쥐어 뜯을 때는 야 그래도 싫었으면 왜 여섯 번이나 만났겠냐. 그리고 하루나 이틀 지나면 말했겠지. 안녕히 계시라고.” 이렇게 위로해주었다. 그때마다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는 게 쏠쏠했다. 건 뭐 처음에 고백 종용할 때는 내가 얘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쎈척하더니, 이제는 완전 그냥 반쯤 사람꼴이 아니었다. 이것이 진정한 밀땅이로구나.

 

하여튼, 또 그놈의 회사에서 유해한 과장인지 부장인지로부터 전화가 왔고, 방에 들어가서 한 20분 동안 통화하고 나온 은 의자에 앉으면서 뻘소리를 시작했다. 주된 맥락은 이럴 거면 손이라도 잡아 볼걸- 뭐 그런 거였는데, 듣는 순간 나는 빡쳤다. 그거 아니라고 내가 이야기했잖아. 그랬더니 三曰, 아니, 다들 내가 손도 하나 못 잡고 등신 같다고 말하니까 내가 진짜 뭔가를 잘못하고 있나 싶어서 그렇잖아. 그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할 걸 그랬나?

 

- 하고 머릿속에서 인내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는 식의 표현을 읽을 때마다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툭- 하고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지 이건 뭐랄까, 분노와 서운함과 한심함이 어우러져 한탕 걸쭉한 춤을 추는데……. 나는, 정말이지 네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을 했다. 내 경험만으로는 안 될까 봐 주변에 물어보기도 했다. 남자 입장에서 나올 수 있는 답이 비슷할 것 같아서 여자 인맥을 총동원했다. 여친, 여사친, 여동생은 물론이고 하여튼 자만 들어가면 여의봉(?) 여의주(??) 여진구의 여드름(???)한테도 물어보겠다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녔고, 취합해서 너한테 알려줬다. 그런데 너는 9시 반의 지하철 화장실 앞에서 고백하는 븅신이었고, 지금 니가 이 모양 이 꼴인 건 니가 그런 븅신이어서인데, 이제 네가 이렇게 나오겠다면 나는 이 일에서 손을 뗀다. 아디오스 친구여.

 

은 거의 조아리면서 용서를 빌었고, 나는 그 허망한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자 은 핸드폰을 들었다. 40분 후 호랑이치킨이 배달되었다. 우리 집에는 다시 웃음과 평화가 깃들었다.

 

 

 

4

 

그러고 나서 K씨에게 카톡을 보냈다. 별말 안 하고 그냥 평소처럼 주말에 만나자고 했고, 토요일에 식물원 가자고 했는데 OK 사인이 떨어졌다. , 이런 말씀은 얼굴 보고 드리는 게 예의인 것 같아서 만나자고 했어요. 우린 아닌 것 같아요. 사요나라- 이럴 것 같았으면 식물원 앞에서 만나자 할 때 그러자 했겠어? 그냥 카페 같은데서 잠깐 이야기하자 했겠지. 아무래도 이건 오케이 각인데? 이랬더니 신나서 대답하는 . , 가자, 대부도 가자!

 

……?

 

대구에 내려가기 전, 갑자기 바지락칼국수가 너무 먹고 싶어서, 대구 갔다 오면 수요일이나 목요일쯤에 대부도 가서 바지락칼국수나 먹고 오자고 지나가듯 말한 것인데, 화요일 저녁 대구에서 바지락칼국수 맛집에 다녀오는 바람에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말을, 심지어 지가 카톡 기다리며 일희일비할 때는 지도 모른 척하던 그 약속을 갑자기 꺼낸다고?

 

오케이 각 잡히자마자 데이트코스를 물색하는 이었다. 언젠가는 K씨와 갈 거라며 그 전에 미리 답사하자는 것. 하여튼 이놈은 이게 문제다. 고백도 화장실 앞에서 겨우 말 꺼낸 놈이 대부도 생각부터 하는. 손을 잡니 허리를 감니 뭐 이런 소리에 팔랑거리는 게 다 이새끼 천성이다.

 

 

 

5

 

그래서 남자 둘이 대부도를 갔다고 합니다. 시화나래 전망대도 올라가고, 메타세쿼이아 길도 걷고…….

 

 

 

6

 

근데 막상 약속 날 K씨 바빠서 약속 한 주 밀림. 이번 주 토요일이 D-Day네요. 그때는 과연 고백관련 소식이 아닌 연애관련 소식을 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 읽은 ---

하도 오랜만에 쓰는 페이퍼라, 오늘은 읽은 책이 좀 많다.

 



310. 아주 편안한 죽음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_ 시몬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311. 나를 뺀 세상의 전부

김소연 지음 / 마음의숲 / 2019

 

syo는 시인이 쓴 에세이를 참 좋아한다. 에세이 속에서도 그들은 시인이기 때문이다. 시인이라는 자각을 남기려는 에세이는 물론, 시인이 아니라 에세이스트로서 써야지 하는 느낌이 나는 글에서도 시인이 아니라하는 순간 이미 시인의 에세이가 되는, 이 기묘한 마법이 가능한 이유는 뭘까. 대체 시인이 뭐길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시인의 산문은 대부분 아름답고 그 시인이 김소연 시인이라면 아름다움은 당연의 영역이다. 40문단 정도를 훔쳤는데, 대체 하나같이 아름다운 이놈들 중에서 뭘 여기에 옮겨놔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그래도 기왕이면 시에 대한 고민이 담긴 대목을,

 

어째서 다시 시집이 읽히고 시집을 선물하는 시대가 돌아오게 된 걸까. 사람을 만나도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겨를이 없어서일까. 진지한 얘기를 꺼내면 놀림받는 분위기 때문에 진지함은 혼자만의 시간에서나 누려야 할 은밀한 영역이 되어버린 탓일까. 매정한 시대에 건조한 표정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 감성의 영역이 복용해야 마땅할 영양제가 된 탓일까. 인간의 얼굴이 도무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실제로 만나는 얼굴들로부터는 확인받을 길이 없어서 가장 내면의 얼굴을 엿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것일까. 시는 잠깐잠깐 한 편씩 읽을 수 있는 것이어서 늘 시간이 없는 우리에게 용이하게 읽히는 걸까. 말에 대한 피로함과 침묵의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동시에 해갈할 수 있는 영역이어서일까. 어제를 복제한 듯한 오늘을 사는 일이 파리해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목소리 한 자락을 듣고 싶은 간절함 때문일까. 아니면, 출구가 모두 봉쇄된 듯한 시스템 안에서 지리멸렬함을 견디다 견디다 자유에 대한 감각이 마비되어 시를 통해서라도 인공호흡을 해보려는 마지막 도전 같은 것일까.

  독자는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적혀 있는 시집을 찾아 헤맨다. 꼭 듣고 싶은 한마디가 시에 적혀 있기를 바란다. 이 시대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사랑한다는 말도, 희망이 있다는 말도, 인간을 믿어보자는 말도, 세상은 그래도 아름답다는 말도 뻔히 거짓말인 줄 다 아는 시대다. 어쩌면 뻔한 거짓말이 거짓말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다시 한번 고려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시가 다시 읽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 번 사람을 믿어보겠다며 다른 방식으로 고백해보고 싶어서 시집을 선물하게 되는 건 아닐까.

_ 김소연, 나를 뺀 세상의 전부

 

인류애가 생겨나는 기분이다.

 

 

 


312. 에드문트 후설, 엄밀한 학문성에 의한 철학의 개혁

박인철 지음/ 살림 / 2013

 

- 일독(1712xx)

- 재독(210823)

 

이 책은 진짜 기가 막힌다. 후설의 주요 개념을 연결해서 물 흐르듯 좔좔 설명하는데, 읽다가 근데 이게 된다고? 싶어서 고개를 갸웃하면 어찌 알았는지 바로 다음 문단에 "그런데 이게 된다고? 싶을 것이다. 후설은 그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는데" 하고 대답하는 점쟁이식 구성이다. 처음 읽기는 이걸로. 다음은 조광제 선생님의 <의식의 85가지 얼굴>이라든가, 이남인 선생님의 <현상학과 해석학> 정도가 좋겠다. 박이문 선생님 전집 중에도 현상학에 대해 할애된 부분이 있다.

 

물론 지평은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 무수히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무엇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지평의 범위와 내용은 달라질 수 있다. 자연과학자들이 보는 세계도 그 나름의 특수한 지평적 세계다. 그런데 지평은 의미의 연관성만 있다면, 기본적으로 부단히 확장 가능하다. 이때 모든 가능한 개별 지평들을 포괄하는 궁극적 보편적 지평을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이 이른바 보편적 지평으로서의 세계’, 곧 후설적 의미에서의 생활세계. “모든 이 세계의 주어짐은 지평의 방식 하에서의 주어짐이다. 지평들 속에 그 이상의 또 다른 지평들이 함축되어 있으며, 따라서 궁극적으로 모든 세계적으로 주어진 것은 세계지평을 지니게 되고, 단지 이를 통해 세계적인 것으로 의식된다(위기, p.146).”

_ 박인철, 에드문트 후설, 엄밀한 학문성에 의한 철학의 개혁

 

 

 


313. 수전 손택의 말

수전 손택, 조너선 콧 지음 / 김선형 옮김 / 마음산책 / 2015

 

이것저것 뒤지고 찾아내서 엄청 준비를 많이 해온 인터뷰어와 그냥 평소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 모든 질문에 유연하고도 유려하게 대답하는 인터뷰이. 손택 멋있쪙.

 

, 내가 원하는 건 내 삶 속에 온전히 현존하는 것이에요. 지금 있는 곳에, 자기 삶 ''에 자기 자신과 동시에 존재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세계에 온전한 주의를 집중하는 것 말입니다. 사람은 세계가 아니고 세계는 사람과 동일하지 않지만, 사람은 그 안에 존재하고 그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지요. 그게 바로 작가의 일입니다. 작가는 세계에 주의를 기울여요. 저는 머릿속에 모든 게 다 있다는 유아론적인 관념에 반대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람이 그 속에 있든 없든 항상 거기 그 자리에 엄연히 존재하는 세계가 정말로 있어요. 그리고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내게는 글쓰기를 지금 현재 내게 벌어지는 일과 연결하는 쪽이 그 경험에서 물러나 다른 일을 하려는 것보다 훨씬 쉬워요. 안 그러면 그냥 자기 자신을 두쪽으로 나누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_ 수전 손택, 조너선 콧, 수전 손택의 말

 

 

 


314. 내 마음과 거리 두기

설기문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1

 

당신은 감정체가 아니며 감정 또한 당신이 아니다. 감정은 그냥 당신이 경험하는 것일 뿌니다. “나는 우울하다고 할 때 나는 우울이다의 뜻이 아니라 나는 우울한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슬프다나는 슬픔이다라는 뜻이 아니라 나는 슬픔의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다. 감정 자체가 아니라 감정의 에너지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느 그 에너지가 나쁜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것을 좀더 쉽게 털어낼 수 있다.

_ 설기문, 내 마음과 거리 두기

 

그냥 저게 핵심이다. 감정에서 나를, 아니, 나에게서 감정을, 아닌가? 감정에서 나를-인가? 모르겠다, 하여튼 감정 그것과 나를 분리하는 것. 그러라고 이런저런 방법들을 제시하는데, 그게 어떤 것들인지는 목차에 짜르르 나온다. “잠재의식 속 진짜 원인 찾기처럼 딱 듣는 순간 그렇게 해야겠다는 건 알겠지만 뭐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 기술부터 드론이 되는 상상해보기같은 초보적인 것도 있다. “죔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보기이런 것도 있다. 허허.

 

 

 


315.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하재연 지음 / 문학과지성서 / 2012

 

  바람이 지나가고

  벚꽃잎이 떨어진다

  이 기차는 나를 어디엔가는

  데려다줄 것이다

 

  떨어진 벚꽃 위로

  떨어지는 벚꽃의 얼굴이 한순간 반짝인다

  나는 올려다본다

  스카 라스카 알라스카

 

  단단하고 하얀 이름이 입속에서

  조금씩 녹아내릴 때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또렷한 목소리로

  너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한 꽃송이였다가 흩어지는 벚꽃잎들

 

  이 기차는 나를 언제인가는

  데려다줄 것이다

  어떤 약속도 없이 매달려 있는 벚꽃잎의

  무성한 색깔

 

  스카 라스카 알라스카

  바람이 지나가지 않아도

  벚꽃잎이 떨어진다

 

  반짝임이 사라지고

  기차는 종착역에 닿는다

 

  내가 불렀던 너의 이름이

  벚꽃잎의 색깔과 함께 흩어지듯이

  우리가 만났던 도시가 녹아내려

  지구의 물이 되듯이

_ 하재연, 언제인가 어느 곳이나

 

그러니까 얘네는 헤어진 모양이고,

 

 

  이곳은 플라나리아의 나라

  너와 나의 무성생식은 평화롭고 순조롭게

  명료한 얼굴과 침착한 미소로

  우리들은 밤의 튜닝을 시작한다

 

  노이즈는 제멋대로 흘러들게 내버려두고

  우리들은 천을 짜기 시작한다

 

  아홉 가지 색깔의 실을 걸고

  열두 가지 향기의 실을 짜 넣으면

 

  이 밤의 퀼트는 완벽해진다

  이곳은 플라나리아의 나라

 

  우리들은 밤의 숨결에

  땀과 설탕을 흘려 넣는다

 

  불안정한 빛의 색깔들에 의해

  나는 반죽되고 몸뚱아리는 늘어난다

 

  아름다운 인형들의 눈에 눈동자를 붙이는

  밤의 작업과도 같이

 _ 하재연, 고요한 밤의 증식

 

얘네는 한 모양이다.

 

같은 애들일까?

 

쉽고 예뻤다. 아름답고 잘 읽혀서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시집 독서라는 것은 뭔 소린지 잘은 모르겠지만 하여튼 멋있는 말을 만났을 때도 즐겁지만, 지금 내 역량으로 이게 대충 어떤 상황이고 무슨 말이고 마음인지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는 시들을 몇 편 연속으로 읽었을 때도 뿌듯한 즐거움을 준다. 오늘의 나는 2012년의 하재연 선생님이구나.

 

 

 


316. 런던을 걷는 게 좋아,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버지니아 울프 지음 / 이승민 옮김 / 정은문고 / 2017

 

원문을 본 건 아니지만 울프의 문장이 실은 읽기에 만만치는 않다. 다른 책들도 좀 그랬던 걸 보면 원래 좀 길고 빡빡한 문장을 구사했었나 보다. 워낙 늘어지는 만연체를 즐기는 syo인지라, 이런 문장들을 수월치 않게 읽을 때면 두 가지 방향으로 죄책감이 든다. 1. 무려 울프가 써도 읽어내기 만만찮은 게 긴 문장인데, 한낱 syo나부랭이가 그런 걸 써도 되는 걸까? 2. 혹시 남들은 좔좔좔 읽어내는데 나만 저는 거 아냐? , 아직도 독서가 부족하구나…….

 

왜 그래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늘 쓰는 사람의 눈으로 읽는 게 습관이 되버린 syo에게 울프의 에세이가 던져주는 교훈은 크다. 시야에 잡히는 모든 것이 글이 된다. 그건 포착, 섭취, 소화, 배출의 4행정 엔진이 완벽하게 맞물려 동작할 때 겨우 달성할 수 있는 경지다. 그리고 어떤 필사적인 마음 없이는 유지할 수 없는 습관이다. 멋있다.

 

그런즉 런던을 단순히 멋진 구경거리로, 시장과 궁과 산업의 중심지로 알지 않고 사람들의 만남과 대화, 결혼과 죽음, 글과 그림과 공연, 통치와 입법이 이뤄지는 장소로 이해하려면 꼭 크로 부인을 알고 지내야 했다. 부인의 응접실에서라면 이 거대한 메트로폴리스의 무수한 파편들이 하나로 합쳐져 비로소 납득이 되고 호감이 가는 생생한 유기체로 거듭나는 듯했다. 여러 해 동안 떠나 있던 여행자들, 인도나 아프리카 혹은 맹수와 야만이 득실대는 외딴 모험지에서 방금 돌아온 형편없는 몰골의 사내들이 다시 문명의 품으로 성큼 들어서기 위해 이 조용한 거리의 소박한 집으로 직행한 것도 이런 까닭이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런던이라고 해도 크로 부인을 영원히 살게 할 힘은 없었다. 결국 시계가 다섯 시를 울려도 크로 부인이 난로 옆 안락의자에 앉지 않고 마리아가 문을 열지 않으며 미스터 그레이엄이 장식장 옆을 지키지 않게 되는 날이 왔다. 크로 부인은 세상을 떠났고 런던은, 아니 비록 런던이 여전히 존재하더라도 다시는 예전과 같은 도시가 아닐 것이다.

_ 버지니아 울프, 어느 런던 사람의 초상

 

 

 


317. 밤에 읽는 소심한 철학책

민이언 지음 / 쌤앤파커스 / 2016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중요한 것은 지금 시작해야 하는 '미약'이다. 그럭저럭 여건을 다 갖춘 '나중'은 오지 않는다. 언제나 저 자신의 시점을 굳건히 지키면서 늘 '저기'에 자리할 뿐이다. 제대로 할 겨를이 없기에 아예 하지 않는다는 변명은 걷어치우자! 제대로 할 수 없기에 지금이 미약의 적기인지도 모르며, 당신이 버린 '짬짬이''틈틈이'로 이루어낸 자들이 '천지빼까리'. 절대 시간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아직 '나중'이 되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나중에 할 일을 지금 하지 않는 것뿐이다. 지금 뭐라도 해야, 무언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나중'도 도래하는 것 아니겠는가? 농사는 파종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씨앗을 뿌리기 이전부터 미리미리 지력地力을 걱정해야 한다.

  미래는 현재 뒤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아니다. 지금의 시간을 짓이겨 다시 쌓아올려야 하는, 그 또한 현재다.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은 당신이 딛고 있는 순간의 성질을 묻는 것이다. 이 삶이 다시 반복되어도 기꺼이 다시 살아줄 수 있는 가치관으로 '지금'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어느 시제를 살아가던, 당신은 지금을 반복할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라 기대하지 마라! 오늘 지고 있는 태양도 돌아보지 않는 이에게 내일의 태양은, 내일 이 무렵에 세상 끝으로 사그라질 오늘의 하늘일 뿐이다.

_ 민이언, 밤에 읽는 소심한 철학책

 

, 철학을 꼼꼼히 공부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되는구나. 입을 헤 벌리고 무릎을 탁 치면서 보느라 윗도리는 침에 젖고 아랫도리는 무릎이 해어졌다. 그리고 자꾸만 뼈를 때려서 깁스를 했다. 소심하다 그래놓고 장쾌하게 공격한다. 훌륭하다. 얼마 전에 여자친구도 비슷한 말을 해줬다. 철학책 한 권 안보는 그녀가. 훌륭하다. 훌륭하다.

 

 

 


318. 민주주의의 발전과 위기

임혁백 지음 / 김영사 / 2021

 

헤테라키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정보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정보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누구나 정보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고, 서로 정보를 공유할 것을 장려한다. 또한 시민이 생산한 정보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만일 재산권을 통제할 수밖에 없을 때는 적절하게 보상해주어야 하나.

  정보 민주화를 위해서는 소수의 정보 귀족들이 자신의 영지에서 정보를 독점하고 통제함으로써 정보가 일반인들에게 공유되거나 확산하지 못하는 정보 봉건제를 타파해야 한다. 정보를 독점한 특정세력은 시민들의 성적, 종교적, 정치적 성향을 모니터링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민을 감시, 통제하는 데이터 감시국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_ 임혁백, 민주주의의 발전과 위기

 

요 대목만 보면 어쩐지 뜬구름 잡는 말을 하고 그를 뒷받침하기 위해 귀족’, ‘영지’, ‘봉건제같은 단순한 동시에 매콤한 단어를 갖다 붙이는 귀여운 청소년 도서 같아 보이지만, 짧은 분량에도 민주주의의 발전위기라는 제목에 걸맞게 발전상과 위기상을 깨알같이 설명해두었다. 휙휙 읽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면 좋다.

 

 

 


319. 우리는 영원하지 않아서

이낙원 지음 / 들녘 / 2017

 

엄마의 병을 다루던 병원에 친구가 일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나와서, 함께 재수를 했고, 같은 대학에 들어가 같은 하숙방에서 2년을 산 친구다. syo가 진로를 따라 멍청한 syo가 되는 동안 친구는 항로를 수정하여 의사가 되었다. 친구는 신장내과도 혈액종양내과도 아니었지만 병실 문턱(병실에는 문턱이 없다)이 닳도록 드나들며 엄마의 상태를 체크하고, 안심시키고, 나를 위로했다. 엄마가 돌아가시던 국면에서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전화를 했던 것도 그 친구였다. 친구는 급한 수술에 들어가는 길이어서 내려와 보지 못했고, 그 사이 엄마는 돌아가셨다. 다음 날 누구보다 먼저 분향소를 찾아온 친구는 조용히 울다 갔다. 이후 대구에 머무는 동안 몇 번을 더 찾아와줬고, 그때마다 그날 응급실에 혼자 서서 멍하니 엄마의 시신을 내려다보던 내 옆에 있어 주지 못했던 것을 미안해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나 너는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했다. 아들보다 더 나은 아들친구였다. 엄마는 아들이 병실에 들어올 때보다 박선생이 병실에 들어오는 모습을 더 크게 웃으며 반기기도 했다.

 

많은 죽음이 그의 뒤에 있었고 앞에 있을 것이다. 슬프고 안타깝지 않은 것이 하나 없을 것이다. 엄마의 죽음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이 있듯, 그가 배운 것이 있겠구나 싶었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아서, 앞으로도 끝없이 슬프고 안타까울 그에게 감사와 경의 말고도 더 표현할 게 있을지 찾는 중이다. 엄마가 넥타이를 하나 사주라고 했는데 그게 일종의 유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죽음이 전문화, 의료화된 것도 문제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태어나고 병원에서 죽어가지만, 정작 병원에서는 임종을 병원의 업무로 이해하지 않는다. 의학은 아프기 이전의 삶을 회복하고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학문이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않는다. 난 의사가 되는 과정에서 임종하는 환자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교육받지 못했다. ‘더 이상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란 말은 말기 질환으로 죽음에 임박한 환자들에게 의사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나 역시 유 할머니의 아드님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는 말 외에는 어떤 것도 건넬 것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지만 의학은 또는 의사는 여전히 삶에만 집착하고 있지 않은지. 죽음이 일상화된 병원이지만, 아직도 병원은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덜 되어 있다.

_ 이낙원, 우리는 영원하지 않아서

 

 



320. 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

 

이제 더는 박지운을 찾아가지 않으리라. 이제는 내가 정리한 이야기 속의 박지운을 들여다보리라. 그런 방식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리라. 그렇게 이야기를 쌓고 쌓고 또 쌓다보면, 진짜 마음을 알 수 있겠지. 왜 그렇게 알고 싶어하느냐고? 왜 계속 쓰고 싶어하느냐고? 왜냐하면 그 마음이 결국은 나의 마음이니까. 내가 나를 이해하는 방식이니까. 나의 이야기니까. 그리하여 나는 나의 이야기를 또 상상한다.

_ 강화길, 대불호텔의 유령

 

사랑이라고 써도 되겠고 또 그래야 할 필요도 있을 것 같아서 이 책이 사랑에 관한 책이라는 맥락의 리뷰를 쓰긴 했지만, 사실 처음에는 이 책은 쓰기에 관한 책이라고 느꼈다. 천재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쓰는 사람의 삶에는 좌절과 방황, 환멸, 질투, 자기비하 같은 감정들이 사막의 크고 작은 모래언덕처럼 점멸한다. 구조적으로 보면 이 책은 쓰는 일에 실패하였다가 쓰는 일에 달리 성공하는 책이다. 안에서 벌어지는 서사는 그 서사대로 의미가 있겠으나, 읽기에 따라서는 저 문단이 설명하는 내용에 그대로 복무하는 것이기도 하다. 화자가 페이크 저자라는 이중 구조 내부에 액자식의 또다른 중첩 구조가 있는 책답게, 독서하는 입장에서도 여러가지 관점을 통해 책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듯하다.

 

 



321. 딱 이만큼의 경제학

강준형 지음 / 다온북스 / 2018

 

 

322. 사조영웅전 6

323. 사조영웅전 7

324. 사조영웅전 8

김용 지음 / 이지청 그림 /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 김영사 / 2020

 

 


325.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4

326.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5

327.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6

328.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7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 2021

 

 

 

--- 읽는 ---

요리코를 위해 / 노리즈키 린타로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 / 박찬국

SF가 세계를 읽는 방법 / 김창규, 박상준

소소하게, 독서중독 / 김우재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 임건순

마키아벨리 / 퀜틴 스키너

불평꾼들 / 제프리 유제니디스

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

소오강호 1 / 김용

구의 증명 / 최진영

데이트가 피곤해 결혼했더니 / 김수정

천국보다 성스러운 / 김보영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 이라영

모더니즘 / 피터 게이

사랑이 아닌 것은 별 / 사이하테 타히

예술 수업 / 오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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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9-01 13: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흥미진진 쫄깃쫄깃합니다ㅋㅋㅋㅋ K님이 숨은 고수는 아닐까 생각도 살짝 드네요ㅋ제발 좋은 소식 있기를..근데 잘되도 syo님 더 일이 많아지시는 것은 아닐까요?😆 (기다리는 연락 있을때 스펨와서 그 회사 홍보부에 전화해 따진적 있는1인;;)

syo 2021-09-01 14:43   좋아요 4 | URL
저희도 혹시 K님이 조련하는 게 아닐까 의심은 해보았지만, 지금은 그냥 K님 역시 三처럼 지나치게 무덤덤한 캐릭터로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입니다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9-01 14: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떡하지? 그 과장인지 부장인지 하는 사람 말예요. 어떡해? 그 사람을 일주일에 닷새 보는거 아녀.. 그걸 어떡하죠 대체? 떼어놓아야 한다...닷새간 세뇌당하다가 주말동안 쇼님 만나는 거면, 이쪽이 너무 약해.. 저 닷새로부터 빼내야 하는데.. 게다가 그사람 옆에는 그 사람말 옳소 옳소 하는 사람들도 있을거 아녜요. 답답하기 짝이없네. 이 모든 것은 운명인가.....Orz

syo 2021-09-01 14:47   좋아요 4 | URL
참 뭐랄까, 지금은 그래도 지가 아는 거 없다는 인식이 있어서 말을 들어 먹는데, 나중에 좀 해보고 하면 지 쪼대로 할거잖아요. 그 쪼가 좋은 쪼였으면 하는 바람만 가질 뿐이지요 뭐..... 나이 40먹은 애를 기저귀 채워서 데리고 다닐 수도 없고.....

페넬로페 2021-09-01 14: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글을 계속 읽어나가며 제가 마치 연애 분석가라도 된 것 처럼 상황을 이미지로 정리하고 있었어요 ㅎㅎ
어쨌거나 삼님의 연애는 알라딘에서도 폭발적인 관심이 있지만 삼님 회사에서도 그런가봐요~~이래저래 보살 3 syo님께서 중간에서 힘들겠어요
삼님의 연애가 희망적으로 보입니다^^

syo 2021-09-01 14:50   좋아요 4 | URL
그렇지요? ㅎㅎㅎㅎ
시작하면 뭐하겠어요, 그때부터 고난과 역경 시작인데 ㅎㅗㅎ

연애하고 나면 알라딘에 폭로하는 일도 어렵겠지요.... 三만 걸려 있는 게 아니라 K씨도 걸려 있으니까....
마지막 뽕을 뽑아야겠다 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1-09-01 14: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토요일이 기대가 되네요. syo님의 마지막 조언이 성공을 결정하겠군요 😆 엄청난 책 리뷰들~! 하재연님 시집을 읽어보고 싶은데 이번 주문에서 빠뜨렸네요ㅜㅜ 역시 대부도는 남자 둘이 가야 제맛~!!

syo 2021-09-04 16:10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ㅎ 제맛!

그치만 그 제맛 다시 한번 느끼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ㅋㅋㅋㅋ 역시 바다는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책읽는나무 2021-09-01 14: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3님 멍충이!!!!!
화장실 앞에서 급하게 고백을!!!ㅜㅜ
거기다 팔랑귀까지~~팔랑귀 멍충이세요.ㅜㅜ
여섯 번 만남을 모두 오케이 했다면 지금 k님은 고백을 기다리고 있을 듯 한데 말이죠?
제 느낌도 그러한데 말입니다.
근데 어떤 생각이실지 저도 같은 여자라도 좀 헷갈리긴 하네요?

3님이 데이트할때 분명 어떤 숨은 매력을 뿜으셨나 봅니다...k님은 알쏭달쏭해서 더 만나 보고자 결정을 내리신 듯 한데...어설픈 스킨십 떼찌!!하시고 진중하게 다시 고백하셔야 합니다.
엄마 문자에 실망하시고 스팸 문자에 분노하신다면 3님도 여자분이 엄청 마음에 들어 애를 태우시는 듯 하신데....저도 토요일 응원하겠습니다.
멍충이로 돌아오시면 안됩니다!!!!
남의 연애사는 나이 먹어도 심장이 쫄깃하네요^^

syo 2021-09-04 16:11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
그의 만남은 또 한 주 밀렸다고 합니다. 참, 점점 더 종잡을 수가 없네요.
화장실에서 급하게 고백하는 멍충한 친구의 친구라서 송구스러울 지경입니다.....

막시무스 2021-09-01 15: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백이 아닌 연애소식을 기다려 보겠습니다!ㅎ 덕분에 후설 입문책 시도하는 용기도 가져봅니다! 좋은 글 항상 감사드리고 9월도 즐겁고 건강한 독서하시길요!ㅎ

syo 2021-09-04 16:11   좋아요 2 | URL
막시무스님 오랜만에 뵙네요 ㅎㅎㅎㅎ 잘 지내셨죠?
환절기 건강 조심하시고, 즐독하세요!

Falstaff 2021-09-01 16: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흠. 왜 저는 호랑이 치킨 일화가 젤 눈에 확 들어올까요. 三 선생, 우와 천연기념물 아녀요?

syo 2021-09-04 16:11   좋아요 1 | URL
천연이긴 한 모양인데, 저런 걸 기념하는 것은 오염입니다.....

붕붕툐툐 2021-09-01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치킨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쓰고 싶네요. 삼님과 k님도 식물원 구경 후 치킨을 먹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 진짜 연애 얘기가 세상에서 젤 재밌어요! syo님의 중계에 감사드립니다!ㅎㅎ

syo 2021-09-04 16:12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ㅎ 아직 연애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이야기가 연애이야기가 될지, 그냥 산처럼 쌓인 븅신같은 에피소드의 한 조각 구성물로 그치고 말지, 그게 결정되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습니다 ㅎㅎㅎㅎ
 

 

을 위한 나라는 없다

 

 

 

1

 

다음은 알라디너들이 몹시도 애정하는 의 고백 관련 소식이다. 어제였다. 이런저런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고백을 실패하고 이번이 벌써 여섯 번째 만남. 만약 여기서도 실패한다면 귀가 시 펑펑 울면서 현관문을 열기로 약속을 굳게 약속하고 그는 고백을 하러 출정했다. 바깥에는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다. 이것은 복선인가? 폭풍우는 펑펑 눈물의 은유인가? 슬픈 마음의 객관적 상관물인가?

 

 

 

2

 

서울 아가씨와 썸타기 전에는 두세 주 가야 한 번쯤 올라오던 (그때 참 편했는데) 요즘 주말마다 개근 중이시다(이거 밥 해먹이는 것도 일이다). 보통 토요일에 약속이 잡히므로 금요일 늦은 밤에 도어락 해제하는 소리와 함께 은 등장한다. 내일 만나는갑네? , 보기로 했다. 그러면 여기서부터 정신교육이 시작된다. 왜냐하면 한 주 동안 이 회사에서 크게 오염되기 때문이다. 회사는 유독물질이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가 아니라 회사 남자들이 유해하다. 네 회사에는 처음 만나는 날부터 점심 먹고 까페 갔다가 저녁 먹으면서 술 마시고 바로 자빠뜨려라든가, “스킨십 천천히 빼다가 차이는 놈 많다. 손잡기 그런 거 다 필요 없으니까 스킵하고 이번 주에 고백하면 고백하고 까페 나가면서 바로 허리 감아라같은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조언이랍시고 해주는 유부남자들밖에 없다. 그러면 syo는 이제 저 똥멍충이가 내일 아무 생각 없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쩔어 있는 그의 뇌를 꺼내 박박 빨아서 다시 집어넣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3

 

돌아온 은 나는 왜 이런 인간인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고백을 하긴 했으나 그것조차 원래 계획과는 다르게 마지막 순간에까지 가서야 던지듯 급박하게 하고 만 것.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나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하며 고뇌에 찬 모습을 연출하는 에게, syo는 삼만 가지 정도의 문제점을 이야기해주었는데 그중 이만 구천구백구십구 가지는 각각 삼만 번쯤 지적한 역사가 있는 것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녀석은 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지만 그걸 들키지 않기 위해 이런 표정을 지어야지하는 표정으로 syo의 말을 듣는 척만 했고(그런 태도조차 삼만 가지 문제점 중 하나로 이미 지적당했다), syo는 아, 이번에도 또 똑같겠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삼만 한 가지 문제점을 삼만 한 번째 이야기할 기회가 오겠구나, 했다.

 

 

 

4

 

그리고 알라딘 활동을 하라고 부추겼다. 그게 너의 많은 문제점을 해결해 줄 거라고. 그 말을 들은 은 알라딘에 로그인했다가, 아이디와 똑같이 설정해놨던 자기 닉네임이 자기도 모르게 으로 바뀌어 있음을 이제야 발견했다. syo가 그래 놓은 것이 벌써 3년 전 일이다.

 

 

 

5

 

하여튼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구요? 응시했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랍니다. 울지 말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집에 들어오더라구요…….

 

 

 

--- 읽은 ---



302. 그래스호퍼

이사카 고타로 지음 / 오유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 2019

 

어릴 적에는 이사카 고타로를 좋아했던 것도 같다. 오쿠다 히데오의 인기에 올라타 이제서야 슬슬 명랑한 갱 같은 것들이 번역되어 들어오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분명히 좋았다는 기억은 있는데, 왜 좋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걸 모르겠단 말이지.

 

syo의 취향에서 보면 이사카 고타로는 그냥 고만고만하다. 절대 지루하지는 않지만 되게 박진감 넘치지도 않는다. 독특한 캐릭터가 없지는 않지만 그리 오래 남지도 않는다.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눈치인데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싶기도 하다. 이건 매력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 아닌지? 그런데도 가끔씩 눈이 마주치면 오늘은 이거나 볼까- 하고 스윽 뽑아드는, 우리는 그런 사이다.

 

이 작품도 그렇다. 이야기와 메시지가 딱히 착 들러붙지는 않는다. 역자 후기를 보면, 이사카 고타로 역시 메시지를 확립한 후 이 작품을 썼던 건 아니고, 그냥 독창적 살인기술을 지닌 여러 킬러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글을 써볼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던 모양이다.

 

이사카 고타로니까 당연히 이사카 고타로 만큼은 했다. 하지만 그냥, 그랬다고.

 

  “사람도 일정한 공간에서 복닥거리다 보면 이상해지지. 인간도 워낙 밀집해 사는 생물이니까. 출퇴근 시간이나 연휴에 길 막히는 걸 보면 기가 막힐 정도 아니오?”

  스즈키는 바로 고개를 끄뎍였다. 옛날에 교수가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인간은 포유류가 아니라 곤충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 맞소.”

  확실히 누군가의 동의를 얻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때 펭귄도 곤충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김이 샐 것 같다.

  “초록색 메뚜기라 할지라도 무리 속에서 치이다 보면 검어지게 마련이지. 메뚜기는 날개가 자라 멀리 달아날 수 있지만, 인간은 그럴 수 없잖소. 그저 난폭해질 뿐.”

 "그럼 인간도 그 군집상에 속하는 겁니까?“

  ”도시에서는 특히 더.“

  아사가오의 눈매가 매서웠지만 스즈키를 위협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기가 어렵지

_ 이사카 고타로, 그래스호퍼

 

 

 


303. 라이브 경제학

강성진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

 

좋았다. 정치경제적 관점이 syo하고는 완전히 반대라고 해도 무리없을 정도지만, 그래도 설득력이 있었다. 배운 것도 되게 많았고, 생각의 변화도 좀 있었다. 숫자 같은 걸 정확히 제시하신 데서는. 그런데 논증이 늘 그렇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현금 대신 지역화폐나 쿠폰을 지급해 사용 가능 지역을 한정하더라도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받은 지원금 · 쿠폰으로 물건을 구입하고 해당 금액만큼의 현금으로 다른 지역의 물건을 구입하거나 저축한다면, 결국 쿠폰 발행 지역에서의 총수요는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이를 경제학에서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라고 한다. 특히 중산층 소비에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경제전망이 부정적일수록 원래 쓸 돈을 아끼고 대신 정부 지원금을 사용하려는 소비 경향이 성향이 높기 때문이다.

_ 강성진, 라이브 경제학

 

논쟁적인 지점에서는 사고실험이나 논리 전개가 아니라 숫자의 제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역화폐 지급에 관한 다음 이야기는 실증적 관측 결과라기보다 그냥 사고의 흐름이다. 맞는 말 같아 보이지만 총수요는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라는 결론을 내리려면 그 지역민 100%가 추가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비상식적이다. 실제로 받아보니까 나는 두 번 먹을 거 세 번 먹게 되던데? 실제 추가소비가 생기는지 아닌지에 대한 숫자 제공 없이 그냥 그럴 것이다- 하신다고 와그렇구나 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선생님은 비유 같은 것에도 섬세하지 않으시거나 섬세하려 하지 않으시거나 한듯. 이런 대목에서,

 

노동소득 증가가 실질적인 총수요 증가로 나타나 경제성장까지 연결되는지 실증적인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임금상승이 노동자들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지 아니면 오히려 생산성이 하락하는지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간단히 예를 들어, 모든 학생에게 100점을 주면서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과 같다. 반대로 열심히 하면 100점을 주겠다고 하는 것이 더욱 열심히 공부하게 할 수도 있다.

_ 같은 책

 

모두에게 100점이요? 글쎄요. 소득증가가 소득통일도 아니고, 증가가 있다 한들 각 학생들의 점수(소득)이 일제히 10점 정도씩 오를 뿐, 그래봤자 원래 20이었던 사람은 겨우 30되겠죠? 그리고 100점은 만점이지만 소득에 만점이 있나요? 누구 연봉이 100점짜리 연봉인데요. 이런 날비유는 좀 지양하셨으면.

 

 

 


304. 우치다 선생에게 배우는 법

박동섭 지음 / 유유 / 2021

 

우치다 확실히 멋지긴 하다. 웬만한 일본 다작가들은 다 까는 syo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지점. 이 양반은 말하는 게 달라. 쌈마이라면 고급진 쌈마이고, 고급이라면 쌈마이풍 고급이고, 하여튼 내 머리 꼭대기에 앉았지. , 선생님, 사랑해요.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던 것. 개론서가 나오다니. 개론 맛집 우치다 선생님의 개론서라니.

 

배움이란 애당초 배우려고 한 것 이외의 것을 배우고, 배우려고 한 것 이상의 것을 배우는 역동적인 과정이며 아직 알지 못하는 미지에 계속 열리는 과정이라는 것을 우치다 선생께 배운 건 정말로 큰 수확이었다. ”배운다는 것은 배우기 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라는 새로운 어휘꾸러미도 얻었다. 그 새로은 어휘꾸러미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배움의 과정에서 반드시 따라붙는 단절비약은 단지 지식을 늘여 나가는 것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들이다. 배운다는 것은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다. 자신의 지식에 관한 지식을 갖는 것이다. ‘지식을 늘이는 것은 동일 평면상에서 수평 이동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다. 반면 지식에 관한 지식을 갇는 것은 계단을 오르는 수직 이동이다.

_ 박동섭, 우치다 선생에게 배우는 법

 

 

 


305. 완전사회

문윤성 지음 / 아작 / 2018

 

사실 세계 정부가 수립된 이후 가장 거창하고 가장 복잡하고 가장 처리 곤란한 행정 부문이 성행정입니다. 성본능은 인간인 이상 누구나 가졌을 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고 누구도 제지할 수 없는 강렬한 작용을 가진 본능이며, 모든 생활은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성문화가 바로 인류 문화라고도 하잖습니까. 이다지 소중한 이긴 하나 한편 처럼 안이하게 대해지는 것도 드물 겁니다.

_ 문윤성, 완전사회

 

여성들이 남성들을 모조리 죽여 없애고, 남은 남성들은 우주선에 실어 화성으로 귀양 보냈다. 과학이 있어서 인간을 낳는데 더이상 남성은 필요가 없고, 여성들은 이제 여성이라고 불리기도 거부하며 스스로를 진성眞性이라고 칭한다. 뭐 그런 세상이다. 솔직히 그다지 재미없다. 그 시대에 이런 발상을 하다니! 는 있지만, 뭐 그 발상 자체가 굉장히 위대한 것도 아니다.

 

자동섹스 기계 같은 게 있어서 그것으로 성욕을 처리하는 합법적 방식을 홀랜이라고 하고, 육체와 육체를 이용해 섹스하는 구시대적 방식을 께브라고 부르는데, 께브는 금지되어 있다. 묘사에 따르면 께브는 남의 이목을 피해야 하고 오르가즘이 홀랜보다 못하다는 결점이 있다 하더라도 홀랜에 없는 애정이 있었다.“라고 한다. , 역시 이 방면에 있어서도 인간은 여지없이 기계한테 지고 마는구나. 뭐 그런 세상이다. 솔직히 이런 발상은 좀 재밌었다. 섹스 이야기는 재미 없기가 어렵다.

 

작품 자체로서 그다지 훌륭하지 않다. 60년대 작품이라 당연히 고리타분하고,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여성 혐오로 읽힐 수도 있을 만한 진술도 꽤 있다. 사실 그런 건 문제가 안 되는데, 설명하다 보니 서사가 약하고, 약한 서사에 걸맞게 캐릭터도 약하다. 심지어 마무리는 심각하다. 주인공이 쓴 아주 짧은 소설을 읽고 여성 남성 지구 우주 모든 생명체들이 감복하여 자 우리 이제부터 다투지 말고 행복하게 어우렁더우렁 살아보자며 갑자기 화해하며 해피 엔딩. 이건 그냥 급하게 마무리할 사정이 생겼다고 밖에는 생각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인대상 SF 소설이라는 의의, 그게 다예요.

 

 

 


306.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3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

 

귀곡자 밑에서 함께 학문을 배웠던 손빈과 방연. 방연도 뛰어난 인재였지만 하늘이 방연을 내고 또 손빈을 내는 바람에 늘 비교당하며 열등감을 품어왔다. 이런 경우 뛰어난 인물들이 늘 그렇듯, 손빈은 방연이 그런 생각을 하는지 마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세월이 흘러 방연이 먼저 하산하여 자리를 구했고, 한참 지난 후 손빈이 하산하여 방연을 찾아간 것이다. 열등감 덩어리 방연은 이때다 싶어 손빈을 받아주는 척 모함하여 다리를 잘라버리고, 그걸로도 안심이 안 되는지 돼지우리 같은 데 가둬놓고 계속 감시하는 중. 손빈은 방연의 시선을 돌리고 탈출의 기회를 잡기 위해 미친 척을 하는데, 그 미친 행동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돼지의 똥을 핥아먹는 것. 사기에는 훗날을 위해 굴욕을 견디는 인물들이 참 많이도 등장하는데, 정말이지 놀라울 지경이다. 뜻을 위해 처자식 베는 것도 척척 해내는 영웅들답게, 굴욕을 감내할 때도 쎄게 한다. 돼지 똥 정도는 핥아 줘야 원수놈들이 안심을 한다는 정도의 인식이 만연한 듯.



문제는 저 돼지 표정이 대체 왜 저래야 하느냐는 거다ㅋㅋㅋㅋㅋ 그리고 그걸 보는 방연은 또 왜 침을 흘리느냐는 거고 ㅋㅋㅋㅋㅋㅋㅋㅋ

 

 

 


307. 시처럼 쓰는 법

재클린 서스킨 지음 / 지소강 옮김 / 인디고(글담) / 2021

 

나는 작품을 편집할 때 진부하고 평범하다고 느껴지는 단어들에 동그라미를 치고, 지나치게 추상적인 표현도 피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사랑, 공포, 증오, 아름다움과 같은 거대한 단어들은 모든 사람이 각자 다르게 받아들인다. 이런 단어들이 바로 추상적이다.

  만약 독자들에게 사랑과 공포에 대해 말하고 싶다면, 당신만의 고유한 사랑과 공포에 대해 세밀하게 써라. 어떤 종류의 사랑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가? 당신의 몸은 공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당신은 독자들에게 다른 무엇과도 구별되는 독특한 심상을 환기하기 위해 정확하고도 낯선 뭔가를 찾아내야 한다. 이런 추상적인 개념에 언어를 덧붙이고 자기 자신만의 개념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작가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여기에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는 예시를 하나 소개한다.

  그냥 이렇게 말하겠는가?

 

  당신이 다가올 때 / 내 가슴에 사랑이 느껴진다. / 눈물은 멎고 / 슬픔은 떠나가고 / 나는 외로움을 벗어나 / 그저 행복하게 / 꼭 끌어안고 있다.

 

  아니면 이렇게 보여주겠는가?


  이 찌릿한 느낌. / 내 가슴 한가운데서 / 밝은 불꽃이 튀고 / 꿈에서 열이 올라온다. / 당신이 문 앞에 / 도착하자 나는 갑자기 / 잠에서 깨어나 / 당신의 어두운 눈동자를 / 음미하고 두 팔을 벌리는 / 몸짓을 받아들인다.

_ 재클린 서스킨, 시처럼 쓰는 법

 

미안한데, 당신이 보여주겠다는 게 내겐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당신만의 고유한 사랑에 대해 다른 무엇과도 구별되는 독특한 심상을 환기하기 위해당신이 찾아낸 정확하고도 낯선 뭔가가 가슴 한가운데서 튀는 밝은 불꽃, 꿈에서 올라오는 열, 갑자기 깨어나는 잠 같은 거라면, 책을 좀 더 많이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당신이 고른 말은 진부하며 아름답지 않고 동시에 선명하지조차 못하다. 가슴 한가운데서 튀는 불꽃, 그게 뭔데? 그 표현을 보았을 때 내게 떠오른 것은 쇠와 쇠를 이어붙이기 위해 한 손으로는 가면을 쓰고 한 손으로는 용접기를 조작하는 용접공의 불꽃이다. 그것이 가슴에 튄다면 뜨겁고 괴로울 것이다. 행복하기보다 피하고 싶을 것이다. 당신이 보여주고 싶은 게 그런 것이었을까? 아니겠지. 사정이 이렇다면, 당신이 보여주는 표현에서 내가 본 것과 당신이 보여주고 싶은 게 달랐다면, 그냥 당신이 말한 거대하고 추상적이어서 모든 사람이 각자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랑같은 단어를 쓰는 것과 지금 이게 뭐가 다를까?

 

의도는 알겠지만 달성할 수 없는 일이고, 집착해서도 안되는 문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문장을 만들어 내놓는 것뿐이다. 만들어진 문장이 어디로 가서 무엇을 불러일으키는가 하는 것은 우리의 손을 떠난 문제다. 나도 늘 나의 표현을 찾고 있다. 지금 이 마음을 더 뚜렷하고 아름답게 전달할수 있는 문장을 늘 탐한다. 그러나 어떻게 전달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욕심을 낼 수 없다. 그럴 때 무엇이 더 훌륭한 길인지 딱 정해진 것도 아니다. 어떤 순간에는 모든 구체적이고 현란한 표현을 내치고 그저 사랑같은 추상적인 단어 하나를 던져 수만 가지 화려한 독해의 불꽃놀이가 펼쳐지도록 두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읽는 이가 행간을 채우도록 열어두어야 한다. 아니, 그래야 하는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다. 거기까지 손대려고 욕심내는 순간, 이미 거장이 되어 있는 게 아니라면 우린 반드시 망한다.

 

 



308. 니체, 세상을 넘어 나만의 길을 가다

최강순 지음 / 글라이더 / 2016

 

특별히 언급할 만한 지점을 찾지 못했다.

 

 

 



309. 소설의 정치사

낸시 암스트롱 지음 / 오봉희, 이명호 옮김 / 그린비 / 2020

 

새로운 유형의 여성이 출현했다는 것은 내게는 분명해 보였다. 나는 이 유형의 여성이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그녀보다 더 고귀한 상대자[귀족계급 여성]과 덜 고귀한 상대자[노동계급 여성]보다 문화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에서 고귀함이 의미하는 관념 전체를 이 여성이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가정소설들에서, 그리고 이 소설들과 동시대에 집필된 다른 종류의 글에서 이 여성의 역사를 추적했다. 나는 어떻게 특정 텍스트가 이 새로운 여성을, 미래세대로 하여금 근대가정을 강박적으로 마치 타고난 욕망에 이끌리기나 한 것처럼 재생산하게 만들 과정을 작동시킬 수 있도록 독특한 채비를 한 존재로 재현했는지 보여주고자 했다. 이런 방식으로 가정여성은 기능적인 개개인의 심리적 삶의 한 기능이 되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가정여성은 중산계급의 응접실을 감독하러 책장에서 걸어 나오기 이전에 장장 한 새기 동안 재현물로 존재했었는지도 모른다. 가정은 마음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다양한 개인들의 무리가 근대문화 안에서 공존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_ 낸시 암스트롱, 소설의 정치사

 

이 책에는 뭔가 있다.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뭔가가. 서론까지 읽었을 때 나는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겠다고 느꼈고, 흥미로웠으며, 이제 앞으로 읽어나가면서 그것들이 어떻게 논증되는지 따라가보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몇 가지 이유로 인해서 어쩐지 동력이 떨어졌다.

 

챕터 단위로 읽기 시작했는데, 그 사이 간격이 너무 넓어서 밀도 있는 독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앞부분에서 제시한 전제와 가설들이 내 머릿속에서 희미해지면서, 종래에는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지, 전체적인 흐름에서 지금 이 대목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헤매는 일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작품들을 거의 읽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설명을 위해 언급한 부분적 대목만으로도 논지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두루뭉수리했고, 어차피 잘 모르잖아, 그냥 내가 알려줄게, 여기, 여기, 여기 시험에 나오니까 받아들여- 하는 식의 그저 따라가는 독서가 되고 말았다.

 

저자의 문장 욕심도 있다. 부러 애매하게 쓴 것 같은, 그러니까 포함할 필요가 없는 의미까지 포괄하려 드는 입 큰 문장들을 만나면 그 문장에서 이리저리 앞뒤를 뒤적여가며 읽어야만 했다. ? 왜 이렇게 말할까? ?

 

요지는 이렇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도 알겠고, 그 말이 멋지고, 동의도 하는데, 정작 작가 자신이 그 말을 증명하는 과정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이 작가의 견해를(내 견해도 같으므로) 다른 데 말하는 일이 생기면, 그 근거를 대보라는 요청에 우왕좌왕하며 매우 흐지부지하게 답하거나, 선명하게는 "낸시 암스트롱이 그렇게 말했거든"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는 초라한 상태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결국 독서는 실패도 성공도 아닌 애매한 수준에서 마무리되었음을 인정해야만 하겠다. 그렇지만 서론을 읽으며 그 속에 들어있는 독창적인 관점을 발견하고 느꼈던 쾌감을 기억한다. 몇 가지 문장으로 정리되었다가 그냥 시간이 지나가면 잊어버릴 지식이 아니라, 예술과 예술이 재현하(기로 하)는 것들을 정치적 역학관계와 버무려서 보는 (내겐)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일종의 환희에 가까운 기대감도 기억한다. 밀도 있는 재독으로 다시 제대로 판단하기 전까지, 이 책에 대해서 침묵하겠다.

 

 

 

--- 읽는 ---


사조영웅전 6 / 김용

나를 뺀 세상의 전부 / 김소연

괜찮은 사람 / 강화길

에드문트 후설, 엄밀한 학문성에 의한 철학의 개혁 / 박인철

수전 손택의 말 / 수전 손택, 조너선 콧

아주 편안한 죽음 / 시몬 드 보부아르

궤도의 과학 허세 / 궤도

다시 쓰는 착한 미술사 / 허나영

인류를 구한 12가지 약 이야기 / 정승규

오레스테이아 3부작 / 아이스퀼로스

돈과 시간이 쌓이는 11분 정리법 / 고마츠 야스시

멜랑콜리의 묘약 / 레이 브래드버리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 임건순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 하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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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8-22 11:34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아~ 삼에 대한 애정이 잔뜩 묻어나는 글입니다~ 두 분의 우정 부럽습니다~ 곧 삼님을 플친으로 만날 수 있는 건가요?
여자의 생각해보겠다는 NO와 동의어인 바, 조만간 삼이 울게될 거 같습니다~ㅠㅠ

syo 2021-08-22 12:38   좋아요 6 | URL
ㅎㅎㅎㅎㅎㅎㅎ 어찌될는지,
그분 역시 三과 여섯 번을 만나 준 것으로 미루어 보면 범상치 않은 아량의 소유자로 추정되는지라, 조금 더 지켜봐야하지 않는가..... 하는 희망적인 자기기만 중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8-22 11:5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메뚜기 나오는 소설 소개 보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메뚜기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하면서 만원지하철에 찡긴 느낌이 생각나버렸어…앞으로 지하철에 사람 많으면 링딩동마냥 울려퍼지겠습니다…그런데 그래스호퍼 베짱이 아닌가요… ㅋㅋㅋㅋㅋㅋ 둘다 풀에서 폴짝폴짝 대긴 하네요. 시 두 개 예시는 난 왜 위에 것이 더 좋죠. 간결하고 직설적이고 역시나 나는 산문형인간인 것이다…영어 원문 아래 버전은 더 시적(?)이고 운율을 살리지 못한 번역의 문제인 걸까요? 그냥 저자가 문제일까요? 제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

syo 2021-08-22 12:41   좋아요 6 | URL
저도 위의 것이 더 좋았습니다.
저자의 말이 큰 틀에서 틀린 것은 아닌데 작은 틀에서는 틀릴 수도 있을 것 같고,
우리는 사실 작은 틀 속의 작은 인간들이잖아요.

책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레삭매냐 2021-08-22 12:0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같은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한
방연과 손빈의 썰은 오래 전
정비석 선생의 <손자병법>으
로 만났지 싶습니다.

만화 컷으로 보니 미친 척하는
손빈의 연기가 레알~하네요.

syo 2021-08-22 12:42   좋아요 6 | URL
저도 <사기>에서 저 장면을 읽었을 때보다 만화로 보니까 더 선명하게 와닿긴 했습니다.
돼지똥을 먹는다는 것을 상상하려고 하면 상상력이 그 상상을 검열한다고 할까요.....

얄라알라 2021-08-22 18:51   좋아요 4 | URL
syo님께서 돼지의 표정 콕 집어 지적해주시니, 갑자기 ˝Black Mirror˝ 에피소드 중 돼지 등장했던 씬에서 돼지는 철처하게 비인간 포유류, 그것과 접촉하는 인간을 조롱할 정당한 근거거리로만 그려졌나?? 하는 엉뚱한 생각.


그나저나, syo님의 이번 에세이 읽으며 덩달아 설레고 부러운 이 마음은 뭔가요^^삼님 회사에서 넘치게 받으시는 애정 그득한(?) 충고는 그 자리에서만 받으시고, 삼님 스톼일로 하심 만사 OK하리요!!!

새파랑 2021-08-22 12: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3님의 미래가 궁금하군요 ㅋ 과연 툐툐님 말처럼 NO일 것인지? 🙄 이제 3님을 북플에서 만나겠군요 ^^

syo 2021-08-22 12:43   좋아요 5 | URL
할지 안할지는 모릅니다.
저거 늘 지 맘대로 사는 놈이어서요.

.....사실 지 맘대로 사는 게 맞긴 맞죠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8-22 13:1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삼님네 회사 진짜 유해하네요. 삼님을 성추행범으로 만들고 있삼.

Falstaff 2021-08-22 16:06   좋아요 4 | URL
선배새끼들이 지들이 못해봐서 오히려 더 그렇게 주둥이 까는 겁니다. 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8-22 20:35   좋아요 2 | URL
그러고 결혼을 했다는게 진짜 신기한 지점. 유뷰남들이라니..

syo 2021-08-28 15:2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버젓이 월급 주는 회사 때려치라고 할 수도 없고.
회사도 문제긴 문제지만 다른 어디를 가도 어슷비슷할 건데,
결국 저렇게 귀가 얇아서 휘청휘청하는 三놈이 최종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8-22 14: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syo님은 뇌도 꺼내 빨아준다고요?? 저 손 들어도 될까요?? syo의 책 뇌, 글 뇌로 교체 부탁해도 될까요?? 삼님을 보니 세탁만으론 아니될 듯 하여^^;;;

syo 2021-08-28 15:25   좋아요 1 | URL
저는 세탁 전문이지 염색이나 자수 기술은 없어가지고..... 죄송합니다 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8-22 17: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삼님께서 자신이 알라딘 셀럽인 걸 아실까요? 많은 알라디너들이 응원하고 있는 것도요.

참, 저도 이희재 ‘사기’ 따라 읽기 시작했습니다. 요코야마 미츠테루 버전과 분위기가 꽤 다르네요. 그래도 강태공이 전부인 대하는 태도는 참 … 그랬고요.

syo 2021-08-28 15:27   좋아요 1 | URL
종종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너는 알라딘에 등장하는 순간 인싸라구요.
말은 안 하지만 그 사실을 즐기는 분위기입니다ㅋㅋㅋㅋㅋ

그 대목은 진짜 어떤 판본으로 읽어도 어이없습니다. 바다에 물 쏟아놓고 못 줍지? 못 줍지? 이지랄 하는 게 무슨 핵 사이다 참교육이라도 한 것처럼 당당하게 서술되잖아요. 모르긴 몰라도 50년 결혼생활 동안 똑바른 밥벌이 없이 낚시질이나 하던 사람이.....

재미감동다있어야 2021-08-23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언은 여자에게서 받는 게 좋은데

syo 2021-08-28 15:29   좋아요 1 | URL
그것은 사실 긴 역사가 있는 스토리입니다.
여자들에게 조언을 안 받은 것도 아니고,
여자들의 조언을 들었다면 결과적으로 좋았을 것인데,
남자들의 귀에는 남자들의 조언이 더 달콤한 것이지요.....

케이트 2021-08-26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데뷔 안하시는지 조심스레 묻습니다...
벌써 몇달째 님글 보고 있습니다
오래도 쓰셨더군요
더 익기를 기다리시는 건지요
지금 아름다우십니다 좋은 철입니다

syo 2021-08-28 15:32   좋아요 1 | URL
과찬의 말씀입니다.
제 글이 스스로 썩 마땅치 않은 건 사실이지만,
저는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냥 여기 있는 것입니다 ㅎㅎㅎㅎ

공쟝쟝 2021-08-30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돼지표정......... 읽으면서 이런 저런 이런 생각을 했는데... 쓰고 싶은 댓글은 돼지 표정....

syo 2021-08-30 23:4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이해해요. 돼지 표정 저거 무시하기 힘들다.

북다이제스터 2021-08-30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셨나봅니다.
넘 괜찮은 영화죠? ㅎㅎ

syo 2021-08-30 23:46   좋아요 0 | URL
아..... 그게 10년도 더 전에 봤던 영화라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습니다 ㅎㅎ
코맥 매카시는 좋아합니다^-^
 

  

크레이지 미끄럼틀

 

 

 

1

 

질문은 선명해야 한다. 특히 자신에게 물을 때는 잘 물으려 최선을 다해야 한다. 첨예한 질문은 그 자체로 어떤 이해를 만드는 반면, 뭉툭한 질문은 스스로 하나의 오해가 되어 답을 구하는 이의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좋은 글이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받으면서 실은 좋아하는 글이 어떤 것인지를 묻고 있을 때. 좋은 글을 쓴다고 착각하며 좋아하는 글을 쓰고 있을 때.

 

글 쓰는 사람이라면 쉬지 않고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다.

 

 

 

2

 

이런 글을 내가 좋아한다는 인지와 이런 글이 좋은 글이라는 인식이 가져오는 차이는 크다. 내가 좋아하는 글이 세상의 인정을 받으면 기쁘다. 주목을 받지 못하면 안타깝다. 하지만 크게 슬프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좋은 글은 어떨까. 그런 글이 세상의 인정을 받으면 크게 기쁘지 않고 당연하다.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글이 외면당하면 안타까움을 넘어서 슬프고 화가 난다. 이 미친 세상은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저딴 책이 100만 부를 찍는 동안 이 좋은 글이 절판된다고? 어쩌면 이런 반응을 잘 들여다보는 것이 내가 그 글을 좋아하는지아니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는지를 구분하는 거친 기준이 될 수 있겠다.

 

 

 

3

 

필명을 가리고 글뭉치를 내놓아도 내가 썼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챌 수 있는 글을 갖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글을 좋아하는 것이면서 그저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듯해서 바로 그런 글이 좋은 글이라고 믿기로 한 모양이다.

 

부작용이 있다. 문장에 집착하게 되고, 사고의 독창성에 목을 매게 된다. 심심한 이야기를 슴슴하게 쓴 글의 가치는 인정치 않는 나쁜 버릇이 든다. A가 쓴 글에 B의 이름을 붙여 내놓았는데 그 글을 읽는 누구도 A를 떠올리지 못하고 어쩐지 B 같지 않다는 의심을 하지도 않는다면 그 글은 큰 틀에서 망했고,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된다면 AB는 아무리 멋진 말을 그럴싸하게 써본들 좋은 글쟁이는 아니라고 단정하게 된다. 잘 쓰시네요- 하는 칭찬과 좋은 글을 쓰시네요- 하는 칭찬을 미세하게 구분하게 되고, 독단과 오만으로 창조한 나름의 원심분리기에 글 쓰는 사람들을 넣고 빙빙 돌린다. 세상에서 사랑받는 글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슬픔과 분노가 비축된다. 사람이 삐뚤어진다. 좋은 글 알아보는 사람 나 말고 하나도 없구만- 하며 부당하게 사람들을 무시하고 싶어지고, 이게 좋은 글이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싶어지고, 그런 짓을 통해 스스로의 안목을 인정받아 자존감을 드날리고 싶어진다. 자기가 감별사고, 기준이며, 객관성의 화신, 아니 그냥 신임을 보여주고 싶다. 왜냐면 그게 사실이니까!

 

메타적으로 보면 긍정적인 점도 있다. 좋아하는/좋은 이라는 주제는 그저 글 읽는 한 줌의 사람들이나 관심을 가질까 말까 하는 작은 논점에 그친다. 그런데도 자칫 잘못하면 저런 미친 생각까지 부드럽게 미끄러질 수 있다. 이제 그 논점이 이 아니라 사람이나 사상이 된다면?

 

미친놈 되는 공정이 이렇게나 부드럽다.

 

 

 

4

 

과연 이 미친놈의 미끄럼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syo는 여전히 미끌미끌하다. 좋은 글이 당최 뭔지는 언제나처럼 계속 모르는 중이고, 글 읽고 쓰는 공간이 알라딘뿐이어서 요즘은 좋은 리뷰가 좋아하는 리뷰가 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도 고심 중이다. 질척거리지 않고 120살 쯤에 죽을 계획이니까 아직 80년은 알라딘에서 더 굴러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좋은 리뷰와 좋아하는 리뷰 사이의 넓은 간격이 그저 소소한 문제는 아닌 것이다.

 

 

 

5

 

그냥 내가 좋아하는 대로 하면 되지 않나, 이게 뭐 그렇게 고민할 문제인가- 싶으시다면 1번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1번부터 계속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좋은 것의 완벽한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것, ‘좋은 것들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서로를 지속적으로 침투하고 모양을 바꾸어나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답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봐. 그게 행복해.”라는 주제의 말을 생각할 때 우리는 통상적으로 어떤 사람이 갈림길에 서서 하고 싶은 일을 하러 떠날까 말까 고민하는 상태를 상정한다. 결단을 내리고 출발하기만 하면 그쪽 방향에는 더 이상의 고민거리가 기다리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일단 하고 싶은 것을 하러 떠나고 나서도, 늘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이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중에도 당연히 그렇다. 내 안에 침투해 있는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들의 구분부터, 침투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내게 들어오는 저 외부의 어떤 것들 중 일부는 사실상 외부가 아니라 도래가 예정된 내부는 아니었을까 하는 식의 고민도 있고, 하여간 뭐가 잔뜩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잘하기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고민이 끝없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런 노정에서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해- 랄지, 그냥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밀고 나가- 랄지 하는 말은 가끔씩 호의로 가득 찬 사정 모르는 말씀으로 들릴 때가 많다. 그러니까요, 나도 지금 그걸 알려고 낑낑대는 중입니다…….

 

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여긴 어디죠?

 

 

 

6

 

핵심은 필명을 가리고 글뭉치를 내놓아도 내가 썼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챌 수 있는 글을 갖고 싶었다.” 요거인 듯.

 

그러니까 빗대자면, 그냥 숨만 쉬어도 매력적인 사람, 내뿜는 이산화탄소조차, , 이건 여지없이 syoCO2로구나 싶게 만드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은 모양이다. 정확히 말하면, 미치지 않고 그런 인간이 되는 것.

 

 

 

--- 읽는 ---



293. 이름들

박훌륭 지음 / 꿈꾸는인생 / 2021

 

이런저런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특별히 도전적이거나 역경을 잘 이겨내는 사람이어서가 절대 아니다. 나는 한없이 소심하고 낯도 가리고 역경의 ''만 보여도 일단 피하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남들에게 '특이해' 보이는 일들을 할 수 있는 건, 좋아하는 일이라면 한번쯤 시도해 볼 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전'이라는 거창한 말로 포장할 필요 없다. 그냥 조용히 하면 된다. 시끄러울 필요가 없다. 그냥 하면서 즐기는 것, 그게 내가 사는 방식이다.

_ 박훌륭, 이름들

 

요런 글을 읽고 있으면 또, 내 고민이 지나친 것인가 싶기도 하다. 내가 뭐 대단한 거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박훌륭 선생님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일 관해서는 자신 있게 저런 말씀을 해도 괜찮은 훌륭한 선생님이시다. 책 팔고 약 팔고, 아니, 이렇게 쓰니까 굉장히 저렴해 보이는데, 그러니까 책방에서 약을 파는 것과 약국에서 책을 파는 것의 알록달록한 경계에서 이것 말고도 하고 싶은 것들을 잔뜩 찾아서 쓱쓱 해내시는 모범적 꿈찾러 박훌륭 선생님. 와중에 글도 잘 쓰신다. 에잇,

 

 

 


294. 사조영웅전 5

김용 지음 / 이지청 그림 /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 김영사 / 2020

 

두 사람이 함께 지낸 이후, 곽정은 황용에 대해 이런 생각을 품어본 적이 없어 스스로 놀라면서도 죄책감이 들었다. 황용은 곽정의 얼굴이 갑자기 귓볼까지 붉어진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오빠, 왜 그래요?”

  곽정이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해. , 갑자기…….”

  “갑자기 뭐예요?”

  “지금은 안 그래.”

  “아까는 어땠는데요?”

  곽정은 더 이상 피할 수가 없어 조용히 대답했다.

  “너를 안고 입 맞추고 싶었어…….”

  황용은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수줍어하는 듯한 모습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황용이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자, 곽정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용아, 화난 거야? 그런 생각을 하다니…… , 구양극처럼 못됐지?”

  황용은 살포시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화나지 않았어요. 언젠가는 오빠가 나를 안고 입 맞춰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오빠의 아내가 될 거니까요.”

  곽정은 너무 기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황용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입 맞추고 싶어요?”

  곽정이 막 대답하려는데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주막으로 들어오는 듯하더니 후통해의 목소리가 들렸다.

_ 김용, 사조영웅전 5

 

아이고 통해야 통해야 임마! 진짜! 눈치 없어 후통해! 저 새끼 저거 이제부터 곽정한테 항룡십팔장 십팔초식 차례차례 순서대로 맞아 뒤진다. 백퍼다. 천천히 꼭꼭 씹어서 때릴걸?

 

그나저나 문득, ’안고 입맞추는행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배워서 드는 것인가 그냥 생기는 것인가 궁금해졌다. 타인에게 멜로감정이나 에로감정을 느끼기 전부터 우리는 포옹과 뽀뽀가 어떤 마음의 표현임을 가족 등등을 통해서 배우는데, 그걸 배워서 저게 저렇게 되는 걸까. , 나이 스물 먹고 나서야 처음으로 저런 생각을 해봤으니 내가 알 수가 있나. 그때는 이미 인간이 뭐--뭐를 어떻게-어떻게- 어떻게 하는 동물인지 지나치게 많이 아는 상태였다…….

 

 

 


295.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2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

 


오기. 아내가 적국 사람이어서 장군을 안 시켜준다니까 저런다. 사기에 저런 막장 인성 널리고 널렸다. 무패라서 좋으시겠어요.

 

이희재 화백님 그림이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뭔가를 선명하게 전달하는 힘이 있어서 책 읽기에 도움이 된다. 7권 다 읽으면 사기 읽어야지.

 

 

 


296.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을 위한 뇌과학

가토 토시노리 지음 / 정현옥 옮김 / 갤리온 / 2021

 

아이디어가 고갈되거나 믿기 힘든 실수를 저질렀을 때는 요즘 너무 편하게 지냈나?‘ ’아무 생각 없이 일하고 있나?‘ 하고 스스로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개중에는 나는 몇 년 동안이나 변함없이 착실하게 일하고 있거든요.”라고 억울해하는 사람이 있다. 사실 이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다. 같은 일을 꾸준히 반복하기만 하면 뇌는 쇠퇴한다. 단순히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땀 흘리는 것만이 뇌에 좋은 일은 아니다.

  정체되어 있는 뇌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방법을 소개하겠다. 패턴화된 상태에서 무언가를 더하거나 빼서 자신에게 새로운 과제를 부여하거나, 극복해야 할 크고 작은 고난을 맞닥뜨리도록 상황을 설계해보자. 어차피 해야 하는 일에 현재 가진 지식이나 기술만으로는 완벽히 수행할 수 없는 정도면 적당하다. 이것이 업무 내용에 관계없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예비 장치의 역할을 한다.

_ 가토 토시노리,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을 위한 뇌 과학

 

맨날 살던 대로만 살고, 새로운 일을 벌이기 무서워서 피하는 거면서 인정하기는 싫어서 귀찮아서 안 하는 척하고, 실은 그냥 게을러서 안 하는 거면서 안 할 핑곗거리를 5초에 7개씩 창조해내고,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일상과 다른 상황을 맞닥뜨리면 어버버버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예를 들면 이라든가, 아니면 이라든가, 그것도 아니면 에게.

 

 

 


297. 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

스티븐 러벳 지음 / 조은경 옮김 / 나무의철학 / 2013

 

진보주의자나 보수주의자들 중 어느 한쪽에 더 정직하거나 열렬히 진실을 추구한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다만 각자의 사실해석 즉, 진실에 대한 개념 자체가 기존의 충성과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간과했다. 그리고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단지 인식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을 뿐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언제나 둘 이상의 입장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결코 쉽사리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 사건, 원칙, 동기, 필요 그리고 결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서문에서 언급한 불독에서부터 위의 로버트 노박까지 고의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자신이 말하는 진실이라는 것이 사실 자신의 경험과 선호도 그리고 목표에 따라 형성된다는 사실을 모를 뿐이다. 그러면서도 마치 자신이 직접 그 진실을 본 것처럼 말한다.

  변호사와 법정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좋든 싫든 사법 체계는 모두의 입장을 완전하게 이해하려 하고 모든 이야기를 완전하게 알리려 하며 모두가 균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때때로 사법 체계가 진실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것같이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 사회에 내재한 논쟁적이고 모순된 견해를 수용하기 위한 진통의 과정이다.

  법이 곧 진실이자 정의일 거라는 가정에서 벗어나자. 그것은 도착점이지 출발점이 아니다. 법은 진실을 담는 가장 안전한 그릇일 뿐이다. 급하다고 그릇을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_ 스티븐 러벳,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

 

이 책을 마무리하는 대목을 길게 따 와보았다. 이렇게 한 대목 옮겨오면 내 수준에서 더 보탤 말이 없는 책이 참 좋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좋은 책이다. 주장도 주장이지만 문장도 좋다.

 

 

 


298. 마음의 평온을 얻는 법

플루타르코스 지음 / 임희근 옮김 / 유유 / 2020

 

리라나 활의 조화처럼 세상의 조화도 서로 어울리지 않을 듯한 것들로 이뤄져 있네. 세상일에 완전히 순수하게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것은 없다네. 음악에 장중한 음조와 날카로운 음조가 있듯이, 또 문법에 모음과 묵음이 있듯이 말일세. 그러나 음악가와 문법학자는 이러저러한 음조나 이러저러한 문자를 배제하지 않고 그 모두를 쓰임에 맞게 사용하고 구성하려 애쓰지. 마찬가지로 모순으로 가득 차고, 에우리피데스의 말처럼

 

   선과 악이 따로 떨어질 수 없고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져 있을 때 완벽해지는

 

  것이 세상일진대, 그 이면을 보고 낙담하거나 투쟁을 단념해서는 안 되네. 음악가가 그러하듯 우리는 항상 가장 낮은 음표를 가장 높은 음표와 조화롭게 배치하고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잘 포장해 삶이 조화로운 연주회가 되도록, 그리하여 우리를 만족시키도록 해야 하네.

_ 플루타르코스, 마음의 평온을 얻는 법

 

최대한 마음을 덜 긁히면서 이놈의 21세기를 통과하려면. 주기적으로 스토아 철학을 읽어줘야 한다. 한 권 읽는다고 바로 평온을 얻는 것도 아니고, 한 번 얻은 평온이 영원까지 가는 것도 아니어서, 스토아 철학자들의 목록을 만들어놓고 짬을 내서 하나씩 하나씩 읽어나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 스토아 철학, 영혼의 홍삼 엑기스. 당신의 면역을 위해, 챙겨 드세요.

 

 

 


299. 단숨에 이해하는 군주론

김경준 지음 / 생각정거장 / 2015

 

보통 고전이라고 하면, 직접 접해 명확히 이해한 사람들은 물론 대략적으로 제목 또는 내용 일부만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좋은 인상으로 이야기하게 마련이다. 물론 내용 자체에 대한 공감도 있겠지만, 일종의 허위의식이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소위 명망가나 지식인들이 거론하는 인생에 영향을 끼친 책에서 적당한 품격과 과시의 냄새가 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군주론의 경우는 좀 다르다. 대개 읽지도 않고 비난부터 하곤 한다. 섣부른 고정관념으로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피아 철학정도로 간단히 폄하해 버린다. 심지어 직접 읽고 내면적으로 공감한 경우에도 공개적으로 군주론을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군주론에 담겨 있는 불편한 진실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인에게 착하고 정의롭고 공정하게 보이고 싶어 하는 허위의식이 어느 정도 잠재해 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_ 김경준, 단숨에 이해하는 군주론

 

김경준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지만, syo의 부족한 경험 내에서 군주론을 읽고 비난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일단 군주론을 읽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데서 표본이 확 깎여나가지만, 읽은 사람들은 다 좋아한다. 선생님은 군주론까는 사람들의 허위의식을 말하지만, 요즘은 군주론빠는 쪽이 더 힙해 보이는 게 현실이라, 조금 있으면 오히려 이쪽에다 허위의식을 물어야 할 판이다.

 

그런 것과 별개로 군주론은 재밌다. 처세나 경영에 실용적이라고도 하는데 그런 건 잘 모르겠고, 그냥 그 자체로 재미가 있는 책이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역사나 마키아벨리의 인생에 대해 알고 보면 훨씬 더 좋다. 입문서 개론서도 딱히 필요 없다. 판본도 많으니까 이걸로 한 번 저걸로 한 번 반복해서 읽다 보면 정치철학에 관심도 생긴다. 여러모로 좋은 책이다. 자기계발 장르의 대장인전도서의 공격을 너끈히 받아넘긴다!

 

 

 


300. 치유하는 나무 위로하는 숲

마르코 멘칼리, 마르코 니에리 지음 / 박준식 옮김 / 목수책방 / 2020

 

위대한 치유력을 지닌 자연이 제공하는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정말로 매우 많다. 이 책에 기술된 여러 기법들을 통합하는 일은 우리와 자연환경 사이에서 진행되는 상호작용의 질을 높이고 양을 늘리는데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 새로운 연구를 활용하면 건강 문제(특히 우리 사회에서 부상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과 관련된 건강 문제)와 관련해서 기타 접근법들이 제공하는 편협한 구식 방식인 증상 치료 모델을 극복할 수 있다. 자연이 우리를 완전한 존재, 모두가 공유하는 환경의 자식, 진화의 산물로 알고 있고 또 그렇게 인식한다는 점을 우리 모두가 안다. 우리가 몸과 마음에 건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더 많이 표현하기만 하면, 그런 필요에 자연이 응답하는 정도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_ 마르코 멘칼리, 마르코 니에리, 치유하는 나무 위로하는 숲

 

단순히 나무 만세, 자연 만만세 하는 책이 아니다. 그냥 연구 결과의 나열만으로 한 꼭지를 가득 채운 부분이 있는가 하면 나무를 껴안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데도 있다. 숲과 나무의 치유효과에 대한 설명은 이 책의 목적이라기보다 수단이다. 궁극적으로는 자연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 같다. 도를 아십니까- 라고 말할 것같이 다가와서는 뇌하수체에서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이 분비되면 부신피질에서 코르티코이드를 만드는데 그것이 당질코르티코이드와 무기질코르티코이드로 나누어지는 것을 아십니까- 라고 말하는 느낌이랄까?

 

 

 


301. 울은 그렇게

임혜연 외 지음 / 폴앤니나 / 2021

 

임혜연, 최종희, 김민정, 이빛나리, 김준희, 여진아. 죄 처음 들어본 이름(김민정 선생님은 김민정 선생님이 아닙니다). 이러면 큰 기대를 안 하고 읽게 되는데, 그러면 또 큰 즐거움을 만나게 된다. 모든 작품이 다 저마다의 느낌으로 괜찮았다. 여섯 선생님의 문장이 다 달라서 이어서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보통 이런 구성이면 누구 한두 명은 좀 빠지는 작품을 내놓던데, 여긴 그런 게 없네요.

 

가장 취향을 때려 맞춘 작품은 단연 김준희 선생님의 아이유가 유 퀴즈 온더 블록에서 말했다. 본인은 미래의 에너지를 끌어써서 또래들보다 몸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그와 달리 나는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이제서야 뭘 해보려고 하는데 왜?였다. 딱 봐도 syo가 왜 마음에 들어했는지 짐작된다. 제목이 벌써 하나의 자기 주장. 이런 작가라면 문체도 평범치 않겠지 싶었는데 거기서도 대만족. 앞으로의 편의를 위해 그 새끼를 그 새끼라고 부르겠다고 선언해놓고 그 즉시 십새끼라고 불러버리는 호기가 있다. 이러다 또 사랑에 빠지겠다.

 

나는 그림을 그렸다. 뭐라도 해야 했는데 손맛이 나는 일이 좋았다. 종이 쪼가리나 박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도구도 제대로 없어 삼색 볼펜과 검은색 매직만 사용했다. 다 그린 그림은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에 올리거나 작업실 벽에 붙였다. 별거 아니지만 이런 것들을 완수하면 하루를 나쁘지 않게 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시간 속에서 나는 알게 모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꿈에서 그 새끼를 보는 일은 점점 적어졌고 언젠가부터는 아예 나오지 않게 되었다. 긍정적인 신호지만 한편으로 불안했다. 이제 사람답게 살게 되나? 사람? 사람들은 다 븅신인데요.

_ 김준희, 아이유가 유 퀴즈 온더 블록에서 말했다. 본인은 미래의 에너지를 끌어써서 또래들보다 몸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그와 달리 나는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이제서야 뭘 해보려고 하는데 왜?

 

 

 

--- 읽는 ---

라이브 경제학 / 강성진

시처럼 쓰는 법 / 재클린 서스킨

그래스호퍼 / 이사카 고타로

내 마음과 거리 두기 / 설기문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3 / 이희재

완전사회 / 문윤성

밤에 읽는 소심한 철학책 / 민이언

블루의 과학 / 카이 쿠퍼슈미트

런던을 걷는 게 좋아, 버지니아 울프는 말했다 / 버지니아 울프

파이썬으로 시작하는 데이터 분석 / 강지영

소설의 정치사 / 낸시 암스트롱

디아스포라의 눈 / 서경식

민주주의의 발전과 위기 / 임혁백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 하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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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8-19 17:08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syo 님의 글은 이미 syo의 CO2로 가득한 줄 아뢰오.

저는 syo, 폴스타프, 다부장 글 섞어놓고 이름 가리고 골라보라면 셋 다 맞힐 수 있습니다요. 아, 이건 너무 쉬운 건가요? ㅋㅋㅋㅋㅋ 아무튼 세 분은 저마다의 CO2가 가득가득함-

좋은 리뷰와 좋아하는 리뷰 이 문제도 어렵네요. 전 일단 둘 다 진실해야 한다고 봅니다요.

syo 2021-08-19 17:25   좋아요 4 | URL
사실 syo가 CO2의 약자라는 소문이 있습니......까?

말씀하신 닉네임들은 저도 구분이 가능합니다. 아마 다 될 걸요? 귀엽게 웃기는 글 찾으면 다부장님이고 능글맞게 웃기는 글 찾으면 폴스타프님이고 그러고 남은 거 찾으면 syo고ㅋㅋㅋㅋㅋㅋㅋ

알라딘 리뷰왕 잠자냥님께서도 역시 리뷰 문제가 어렵군요. 어려운 와중에도 다 쟁취하는 걸 보면 명불허전 리뷰왕!

다락방 2021-08-19 21:07   좋아요 5 | URL
어? 자존심 상하는데요? 글의 획기적 변신을 시도하겠다!!! 으르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21-08-22 11:2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변신하겠다는 이 댓글조차 완전 다락방이지? 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8-19 17: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글을 빼어나도록 예쁘게 쓰는 사람은 대개 미친 새끼 라는 편견을 심하게 가지고 있는데요. syo님은 제가 아는 글 예쁘게 쓰는 사람 중에 제일 덜 미친 사람입니다…칭찬이 되려나 욕이 되려나…

반유행열반인 2021-08-19 17:21   좋아요 2 | URL
그리고 나 자두 마니아1위였는데 쇼님한테 밀려서 2위 됐다요…힝…

syo 2021-08-19 17:27   좋아요 4 | URL
이야! 칭찬 같은 욕인지 욕 같은 칭찬인지 모르겠어서 신나는 거 보니까 미친 놈이 맞긴 맞네요! 이야!
🤪🤪🤪🤪🤪🤪🤪🤪

자두는 죄송합니다.....

독서괭 2021-08-19 17:1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이번주 넘 바빠서 제가 PC로 정독하는 분들 글을 잘 못 읽고 있어요 ㅜㅜ 곧 읽을거야! 위에 잠자냥님도 포함!

syo 2021-08-19 17:28   좋아요 5 | URL
바쁠 때는 syo를 거르세요..... 저는 늘 여기에 있을 테니까..... 저 같은 건 내다버리시고 일에 집중하세요..... 제가 뭐 그렇죠......

잠자냥 2021-08-19 17:47   좋아요 4 | URL
바쁠 때는 저도 거르세요. 나 주제에 너무 길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1-08-19 22:34   좋아요 1 | URL
syo님의 엄살쇼 땜에 피씨 포기하고 일단 북플로 읽었습니다. Co2얘기가 뭔가 했는데 이거였네요 ㅋㅋㅋ

새파랑 2021-08-19 17: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필명을 가리셔도 그냥 Syo님글인지 대부분 사람들은 알거 같아요. 일단 글이 재미있어요 😆 예전에 피에젖은 땅 리뷰가 생각나네요 🙄

syo 2021-08-19 18:19   좋아요 4 | URL
피땅 그건 그런 희한한 짓을 하는 놈이 syo밖에 없으니까 구분이 가능한 것 아닐까요 ㅎㅎㅎㅎㅎ😂

mini74 2021-08-19 18: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글 속에 유머? 위트라는 게 참 표가 나더라고요. 여기 북플에 글 잘 쓰시는 syo님 포함 다들 좀 독특한 유며감각이 글에 담겨 있는데 그게 참 매력적입니다 ㅎㅎㅎ

syo 2021-08-22 11:1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감사합니다.
사실 저게 은근히 풍겨나오는 유머감각은 아니고, 웃겨 볼려고 아주 그냥 용을 써서 겨우 뽑아내는 게 저렇습니다....

Falstaff 2021-08-19 20:4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아,아쒸, 아쒸, 301 <서울은 그렇게>가 올해들어 301번째 읽은 책이라 이 말씀이지요?
ㅋㅋㅋㅋ 하나도 안 부럽습니다. 딸꾹. 전 올해 목표가 작년에 이어 2백권 미만입니다. 근데 쉽지 않을 거 같아요. 흑흑...

잠자냥님의 오류. 제 독후감엔 CO2 대신에 CH4, 메탄, 방귀 냄새가 폴폴..... ㅋㅋㅋㅋㅋㅋ

syo 2021-08-22 11:1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댓글 역시 닉네임 가리고 알아볼 수 있습니다! 폴스타프님이시죠? 저 닉네임 안봄.

독서괭 2021-08-19 2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입맞추는 거 그거요, 제가 얼마전 <조선의 퀴어>에서 봤는데 1920-30년 무렵에만 해도 “키쓰”는 없었다고 합니다. 서구문물의 하나로 들어와서 유행했다고 하네요. 그냥 생기는 건 아닌가봐요😚
Syo님 페이퍼 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Co2 많이 발산하십셔 팍팍!!

syo 2021-08-22 11:2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키쓰 말고 뽀뽀는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나저나 지구를 위해 탄소배출량을 좀 줄여야 합니다.

초란공 2021-08-19 22: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길에서 걸어가면서 syo님 글을 읽다가 먼가를 잘못 눌렀는데 몇 년 동안 모아둔 장바구니가 사라졌어요... ㅜㅜ syo님처럼 80년은 더 살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가지고 있는 책도 다 읽지 못할꺼 까짓꺼 시원하다 이러고 있습니다 ㅋㅋ 그런데 정말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 같은 묘한 기분이네요... 조만간 사고 싶었던 책이 있었는데 한 권도 생각이 안나고 ㅋㅋㅋ 설마 알라딘에서 서버 부하가 크다고 제 장바구니를 지운건 아니리라 믿어요 ㅜㅜ

syo 2021-08-22 11:22   좋아요 1 | URL
아, 장바구니가...... 참담한 상황을 맞아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까짓거 시원하다 하신다니 드리는 말씀인데, 그것은 제가 그런 것도 알라딘이 그런 것도 아니라, 하늘이 그러신 게 아닐까요? 이제 처음 같은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장바구니가 터지도록 담으시라고....

붕붕툐툐 2021-08-20 0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syo님 글은 완전 찾아낼 거 같은데용? 이미 그런 글을 쓰고 계신 거 같아요~ㅎㅎ
그리고 우리의 삼님은 이 공간에서 이렇게 유명한 걸 아시려나 궁금해집니다~ㅎㅎㅎ

syo 2021-08-22 11:23   좋아요 0 | URL
제가 매번 이야기합니다. 넌 이미 셀럽이라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널 좋아한다고.


그래서 내가 짜증난다고 ㅋㅋㅋㅋㅋㅋㅋ

페크pek0501 2021-08-20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썼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챌 수 있는 글을 갖고 싶었다.”
- 저는 이와 반대입니다.
(페크가 이런 글도 쓸 줄 안다고? 레알? 페크의 향이 전혀 안 나는데...
페크가 썼다는 걸 믿을 수 없어. 페크는 도대체 얼굴이 몇 개야?)라는 반응을 보고 싶어요. ㅋㅋ
연기자로 말하면 다양하게 변신할 줄 아는 사람, 이 되고 싶은 거죠. ^^

syo 님은 이미 님답게 쓰는 문체가 있는 줄 아옵니다.**

syo 2021-08-22 11:2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페크님 말씀처럼 ‘페크가 이런 글도 쓸 줄 안다고? 페크의 향이 전혀 안 나는데‘ 라는 말을 들으려면 일단 사람들이 페크의 글이 어떤 글인지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하잖아요?

그렇다면 페크님은 이미 제가 원하는 단계를 달성했고 그 다음을 보시는 것이로군요!

얄라알라 2021-08-20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좋아하시는 춤으로 빗대면, 손끝만 봐도 ** 스톼일하는 그 느낌 syo님께 있죠.^^ 흉내낼 수 조차 없어 감탄하며 시샘하며

syo 2021-08-22 11:2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북사랑님 언제나 감사합니다.
저는 제 것이 딱히 마뜩치 않아서 계속 찾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ㅎㅎㅎ

공쟝쟝 2021-08-20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긴 어디죠? ….
🤨

syo 2021-08-22 11:26   좋아요 0 | URL
정신 차리세요, 여기 어딘지 아시겠어요? 여기 스튜디오 빠꼼이에요.....

나비종 2021-08-22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5. 범주에 대한 바람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좋아하는‘의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되기를 원하는가.

나만 좋아한다면 ‘좋아하는‘으로 그칠 수 있고, 너와 그 등 사방 몇 m 범주의 인간들이 좋아한다면 비로소 ‘좋은‘글로 여겨질 가능성도 높아지겠죠.
‘좋은‘이라는 게 참으로 애매하단 말이죠. ‘좋은‘에게는 주어가 없잖아요. ‘좋아하는‘은 내.가 혹은 네.가 좋아한다는 명확함이 있는 반면, ‘좋은‘은 나.에.게 혹은 너.에.게 좋다는 것이니 그에게 좋은 걸 내가 무슨 권한으로 판단하냔 거죠. 100%의 객관이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같은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좋음을 %로 수치화할 수 있다 해도 파고 들어가면 또 애매한 게 진짜 이거 좋다고 생각하는 게 니 생각 맞냐 하는 거죠. 다른 인간들이 좋다고 하니 덩달아 생각하는 따라쟁이일 수도 있거든요. 홍세화 님의 <생각의 좌표>가 생각납니다. ‘니 생각이 진짜 니 생각?‘ 이런 주제였거든요. 내 입으로 하는 말도 알고 보면 다른 이들의 생각을 마치 내 안에서 나온 생각인 양 무의식적으로 말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까요.

결론은 ‘내가 좋아하는 나.의. 글을 너도 쟤도 좋아하면 좋겠어. 걔까지 바라지는 않아, 훗!~ㅎㅎ‘ 여기서 ‘훗‘은 마지막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 집약된 표현입니다..

6. 질문은 선명해야 한다는 말씀을 공감하니 굳이 원하신 바 없으신 답변도 선명하게 드리자면,
그냥 숨만 쉬어도 매력적인 인간인지는 일찌기 뵌 적이 없어 모르겠습니다만,
글만으로 syo님의 매력 지수를 생각해본다면, 제가 알라딘에서 읽는 글 들 중 가장 매력적인 글을 쓰시는 분이십니다. 필명 가려도 알 수 있을 정도로요. 날카로운 본질을 버리지 않으면서 부드럽고 맛있는 글입니다. 복숭아처럼 단단한 씨를 중심으로 말랑한 과육과 육즙이 배어나옵니다. 19금도, 다큐도, 건조한 논리도 경쾌한 유머로 승화시켜버리는 syo 님만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syo님의 글은 저에게는 좋은 글입니다.

296.의 인용문, 바지지-->빠지지
297.의 인용문, 모슨된-->모순된

301. <서울은 그렇게>는 e-book으로만 나온 건가 봅니다. 인용하신 부분이 마음에 들어서 검색해보았거든요. 페이퍼로 된 책을 선호하는지라 구입 여부를 고민하는 중입니다.

개인적인 정리를 위한 목적이 크시겠지만 읽는 책에서 인용하시는 문장들도 잘 읽고 있습니다. 다독이 어려운 저로서는 이렇게나마 다양한 책 속의 문장을 접할 기회를 얻으니 매번 감사한 마음으로 정독하고 있습니다.^^

syo 2021-08-28 15:39   좋아요 1 | URL
저는 ‘니 생각이 진짜 니 생각‘에서 그게 진짜 내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내 생각을 구성하고 있는 원료가 남의 생각이고 그 함유율이 0~100%사이를 왔다갔다 할 뿐이지요. 여기서 말하는 ‘내 생각‘이라는 것은 물론 ‘내가 창안한 생각‘이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을 의미하는 거구요. 저는 어차피 우리가 새로운 것을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라서, 내가 처음 해낸 생각만이 ‘내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면 ‘내 생각‘이라는 것은 진작 멸종했다고 보거든요. 그냥 ‘내 생각‘이 ‘남이 해낸 생각들의 비빔밥‘이라는 사실을 늘 인식하고 사는 수준에서 ‘내 생각‘이라는 용어를 인정하고 그칩니다.

제 글에 대한 평가는 늘 몸둘 바를 모르게 하네요. 읽는 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조금이라도 좋은 글로 다가갈 수 있는 거겠지요. 늘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꼼꼼한 오타 체크입니다..... 나중에 커피라도 한잔 사드려야겠네요.☕

 

  

잡았다, 요놈

 

 

 

1

 

이제 와 하는 고백이지만 사실 syo는 책 읽기가 무섭다! 가능하면 읽지 않고 싶다. 그래서 읽기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한다. 괜히 인터넷 창을 열었다 닫았다, 딱히 쓸데없는 유튜브 영상을 굳이 봤다 말았다, 괜히 산책하고, 괜히 팔굽혀펴기도 하고, 목도 안 마른데 제로 콜라 드링킹, 배도 안 고픈데 식빵을 구워 햄스터처럼 뜯어 먹는다. 심지어는 돌돌이로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도 포집하고 에어프라이어에 쌓인 먼지도 닦는다. 그렇게 부릴 수 있는 모든 딴청을 다 부리고 나서도 시간이 남아서, 결국 여기는 벼랑 끝이고 나는 더 이상은 못 가- 하는 표정으로 책상 쪽을 바라본다. 혹시 그사이 책이 어디 급한 볼일이라도 보러 자리를 비우지는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고서. 당연히 그럴 리는 없고, syo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퀄리티 높은 베지테리언 뷔페에 공짜로 초대받은 티라노사우루스의 기분으로 책상 앞에 앉는다. 이제는 이걸 읽어야 해…….

 

도망쳐도 도망칠 수 없는, 끝까지 끝나지 않는 것들이 있다. 탈출은 없다. 그저 연기와 지연, 그리고 칼 같은 추심이 있을 뿐이다…….

 

 

 

2

 

은 어찌 된 영문인지 지난 주말에도 고백에 실패했다. 그냥 다이렉트로 우리 제대로 만나봐요를 꽂기로 했는데 그걸 못 꽂았고, 부질없이 뚝섬 근방을 떠돌다가 syo가 심부름 시킨 밀도 식빵이나 사 들고서 돌아왔다. 울지 않았지만 울고 있었다. syo가 말했다. 나는 너를 26년을 알고 지냈는데 아직도 너를 모르겠다……. 그러자 이 대답했다. 그러면 나를 36년 동안 알고 지낸 나는 어떻겠노…….

 

 

 

3


좌측부터 정체 모를 팔뚝, 애기 syo(1)의 얼굴 반쪽, 엄마(27), 아빠(28)

 

 

엄마(성공한 화교ver.)

 


퇴폐소년 syo(10)

 



그리고 그 퇴폐의 서막

 

 

 

--- 읽은 ---



287. 날마다 고독한 날

정수윤 지음 / 정은문고 / 2020

 

와카和歌는 일본의 시가 양식이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로 치면 시조와 비슷한 존재감이겠지. 비교적 잘 알려진 하이쿠俳句와도 조금 다른 것이 하이쿠가 5·7·517음짜리 단시라면, 와카는 5·7·5·7·731자로 된 정형시로, 일반적으로는 단카短歌와 통용되어 쓰인다고도 한다. 잘 모른다. 검색해서 뒤져보니 그렇다는 듯. 하이쿠가 맞는 사람이 있고 와카가 맞는 사람이 있겠다. syo는 여지없이 와카 쪽이다. 다변에 문장도 만연하는 syo는 아무래도 긴 것이(와카도 사실은 짧은 축이지만) 좋다. 사랑을 둘러싼 감정들에 저항력이 약해서 더욱 그렇다.

 

사랑에 관해 짧은 말은 불가능하다. 축약은 반드시 생략이다. 생략은 곧 추상이고, 추상抽象은 필연적으로 차이를 사상捨象한다. 사랑은 내 사랑이 다른 어떤 사랑과도 (크게든 작게든) 다르다는 사실을 주장함으로써 존재하고 증명함으로써 튼튼해진다. 그래서 사랑의 마음은 다변을 욕망한다. 말과 글이 마음의 주변을 빙빙 돌며 추는 춤,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의 궤적은 그저 변죽이 아니다. 그 사랑의 지문이다. 물론 짧고 묵직한 한 마디로, 혹은 침묵 속에서 더 선명해지는 고요한 눈빛과 따스한 손길만으로 그 모든 길고 무한한 말들을 대신할 수 있는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기적에 가까운 행운은 사실 두 사람이 함께 겪어온 시간 속에 녹아 있는 많은 말과 행동, 마음 들을 전제로 한다. 자주 찾아오지도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랑의 마음이 축약되고 빗대어진 짧은 문장을 만났을 때, 우리는 사실 그 문장에 공감하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우리의 기존 경험에 공감한다. 그 문장이 겨냥하는 마음을 이해한 것 같지만 실은 내가 지나가고 지나온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어떤 문장이 사랑을 말하고 있다면, 그 사랑을 진짜로 들여다보기에 17자는 너무나 짧다. 31자도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하이쿠나 와카를 조금도 폄훼하지 않는다. 애초에 우리는 남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겪은 사랑을 이해할 수 있고, 겪지는 않았으나 좋든 싫든 겪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되는 사랑의 가능성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이해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전제 아래에서 도리어 압축과 생략, 비유와 상징을 동원한 아름다운 사랑의 문장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쓸데없는 말이 길었군!

 

와카 하나에 짧거나 긴 에세이 한 편. 소담하게 잘 차려진 식탁같다. 선생님의 말결에 처음부터 끝까지 슴슴하니 맛이 있어서 주제넘게도 선생님의 맘결도 추측해보게 된다. 따뜻했고, 위로가 되었다.

 

흔들리는 인간은 본인은 괴로울지라도 외부에서 보면 그 결이 대단히 반짝여 보인다. 흔들리는 수면이 아름다운 것과 같은 이치다. 완벽하게 정돈된 사람은 인형 같아서 사람의 결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울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무척 아름답다고 말해주고 싶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물보라처럼 빛나고 있다고. 마구 걷고 울고 감정을 토해내는 건 힘들지만 약간 떨어져 보면 그 자체로 예술이다. 격정적인 사랑의 토로는 우리를 모두 예술가로 만든다.

_ 정수윤, 날마다 고독한 날

 

 

 



288.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1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

 

사기를 읽으면 뭐랄까, 인간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 같은 게 보인다. 바꿔 말해서,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시기도 먼 미래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들이 인간성과 올바름 운운하며 지들끼리 와글와글 싸우고 있는 형편없는 암흑시대로 인식될 수도 있겠다는 그런 가능성이 보이는 것이다. 아니 이 시대 놈들은 무슨, 처자식 굶기고 지 일 하는 것이 위대한 멸사봉공 정신인 양 군다.



이건 치수 사업에 성공한 우 임금의 사례다. 보면 일 일 거리면서 또 섹스는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어차피 자기도 몸은 한 개면서, 잠시라도 자기 없으면 이놈의 사업이 도무지 안 돌아간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음도 알 수 있다.

 



또 이건 뜻밖에 빵 터진 장면. 이건 관중과 포숙의 스토리 일부인데, 그들의 일화를 보면 포숙은 굉장한 호인(호구)이다. 그런 그의 특징을 드러내고 싶었는지 이희재 선생님은 포숙을 시종일관 웃는 눈매를 가진 남자로 묘사했는데 그 덕에 모든 것을 용서할 듯 인자한 표정으로 양아치야.”라는 대사를 치는 무시무시한 캐릭터가 탄생했다.

 

 

 


289. 자두

이주혜 지음 / 창비 / 2020

 

, 이런 시기에 이 책을 만난 게 잘된 일인지 아닌지 판단하려면 시간의 도움이 조금 필요하겠다. 이 이야기에서 간병은 가부장제가 투약하는 환상의 실체를 드러내는 하나의 파열음으로 기능하는, 서사에는 주된 동시에 주제에는 종된 요소지만, 탈상으로부터 아직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syo는 자꾸 그 병원의 풍경, 간병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환자-보호자 사이의 소소한 전쟁과 그에 따라 황폐해지는 마음의 궤적 같은 것들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힐 듯해서, 뭐랄까, 붓질을 들여다보느라 그림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관람객이 된 기분으로 읽고 말았다. 나중에 다시 읽어도 좋겠다. 이런 분량을 경단편이라고 하나 본데, 좋았다. 부족하지도 남지도 않았고, 한 이야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길이에 맞다고 느꼈다.

 

병원 본관에 있으면 장례식장이 전혀 보이지 않아. 본관은 죽음을 피하려고 오는 곳이잖아. 그러니 죽음을 떠올리는 장례식장을 보고 싶지 않겠지. 하지만 장례식장에서는 이쪽 본관이 잘 보여. 가장 낮은 자리니까 고개만 돌리면 높은 곳이 전부 보이는 거지. 죽음의 쪽에서 삶을 바라보는 건 얼마든지 허락된다는 듯이 말이야. 어머니 장례식 때 한밤중에 이곳 본관의 빛을 쳐다보며 참 외롭다고 생각했어.”

_ 이주혜, 자두

 

 

 



290. 아무튼, 바이크

김꽃비 지음 / 코난북스 / 2021

 

바이크를 모르는 사람은 이 책 속의 바이크 자리를 무엇으로 바꿔 넣고 읽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만으로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되긴 한다. 그럼에도 이번에 확실히 느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