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지 않)은 글과 그렇지 않은 글쓰기

 

 

1

 



피에 젖은 땅의 리뷰 기한을 겨우 맞출 수 있었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참 힘든 시간이었다. 길게 고민했고, 길게 썼고, 길게 힘들었다. 다 쓰고 나니 진이 빠져서, 즉시 그날 하루를 덮어버렸다.

 

 

 

2

 

1등을 노린다고 반 장난으로 떠들어댔고, 다정한 친구들도 너야말로 내 마음속의 1등이라며 아낌없는 오구오구를 주었지만, 솔직히 syo는 한 번도 1등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건 리뷰가 아니기 때문이다.

 

리뷰라는 단어가 어떤 글쓰기를 가리키는지에 대해 독서가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게 사람마다 미세하게 다르겠지만, 그렇다고 널리 받아들여지는 합의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syo가 쓴 글은 syo의 개인적인 분류법 속 리뷰라는 장르의 형식에 맞아들어가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봐도 그럴 것이고. 그래서 저런 글은 늘 형식에 대한 어떤 도전이 된다. 그런 시도 자체를 높이 살 수도 있겠지. 그런 뜻을 품었다면. 하지만 나는 특별히 뭔가에 도전하고 싶지 않았다. 틀을 깨려는 과분하다 못해 과도한 의도는 없었다. 나는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내가 쓰고 싶은 모양으로 썼고, 그건 늘 내가 하던 일이다. 개인적인 일이다.

 

전에도 이런 식의 리뷰를 써서 크게 망한 적이 있다. 그때 쓴 글도 거의 단편소설 한 편 분량이었다. 며칠을 그 글에만 매달렸다(그리고 그 글은 지금 봐도 잘 된 글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 혹은 그 이상이었다). 솔직히 그땐 지금보다 욕심을 좀 더 냈고 막 1, 2등짜리 김칫국을 마시기까지 했지만, 입선도 하지 못했다. 입선하면 책갈피를 줬다. 그건 받을 줄 알았는데. 그 이후로 김초엽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는 눈을 매섭게 뜬다. , 나한테 책갈피조차 안 줬단 말이지? 이러면서.

 

같은 이유다. 리뷰 대회에 리뷰의 형식에 걸맞지 않은 글을 내기로 작정했을 때부터, 내가 출판사라도 이런 글에 1등을 줘서 괜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진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말해놓으면 마치 내가 못 써서가 아니라 형식 때문에 못 타는 거라며 물타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게 그 말이다. 못 쓰는 것이다. 리뷰처럼 못 쓰기 때문에 리뷰 같지 않은 리뷰를 쓰는 것. 그건 비단 리뷰 대회에서만이 아니라 syo의 알라딘 서재 활동 전체를 관통하는 제일 큰 질문이다. 책을 읽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여 만들어진 공간에서, 개인사, 잡소리, 개똥철학으로만 점철된 리뷰와 페이퍼를 써대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며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

 

 

 

3

 

피땅 리뷰를 쓰려고 아등바등하던 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2021년 들어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은 구간이었다. 이런 증언록 형태의 글을 쓰려 한다고 여자친구에게 말했을 때, 그녀의 입에서 제일 처음 나온 말은, “, 가능하면 피해자 목소리는 흉내 내지 않는 게 좋겠다.”였다. 바로 그게 처음 컨셉을 이렇게 잡은 직후부터 계속해서 나를 몰아치고 괴롭히던 문제였다. 두드려맞은 것처럼 놀랐지만 동시에 이런 말을 하는 여자를 만나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아무것도 겪지 않았으며 그들이 그들 자신과 세상에 대해 어떤 마음인지 그들의 말을 듣지도 못했다. 내가 그들에 대해 쓸 자격이 있을까? 있다고 해도, 그들의 목소리를 흉내낼 자격까지 있을까? 그런 자격이라는 게 세상에 있나? 있다고 해도, 그걸 적립금을 주는 리뷰 대회에 참가하는 데 함부로 쓴다고?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기 위해 내가 가장 잘하는 방식을 택하는 사람은 용감하고 현명하다. 그러나 내가 가장 잘하는 걸 하겠다고 할 수 없는 일을 하려 드는 짓은 종종 무심한 폭력이 된다.

 

실제로 한 문장 한 문장에서 제동이 걸렸다. 한 줄을 쓰고 벌떡 일어나 집안을 빙빙 돌아다녔다. 다시 주저앉아 두 줄을 쓰고 또 벌떡 일어났다. 한 단락을 다 쓰면 집 밖으로 나가 산책했다. 빙빙 돌아다닐 때도, 산책 중에도, 계속 생각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를.

 

좋은 글일 수는 있다. 하지만 좋은 글쓰기는 아니었다.

 

 

 

4

 

감히 말할 수 있는 건 이거다. 내가 보통의 리뷰를 썼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고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블러드랜드 피해자들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는 미친 헛소리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장 사이사이에서 생각했고 문단 사이사이에서는 더 오래 생각했으므로, 나는 이제껏 내가 해왔던 그 어떤 독서에서보다 더 오래, 깊이, 아프게, 등장인물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래서 내 눈에는 내가 써서 올려놓은 활자의 무게가 이전과는 달리 보인다. 글을 쓴 내 눈에만 발견되는 문장의 하중.

 

좋은 글이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좋은 글쓰기였다.

 

 

 

5

 

실은 자체적으로 단점이 많은 글이다. 분량 조절에 실패했다. 사실 책의 가운데 부분을 증언하는 증언자가 하나 더 있었지만 분량 문제로 삭제했다. 최종적으로 A4 여덟 장짜리 글이 나왔고, 그게 세 장 뺀 것이다. 어조가 성글다. 구어체다 보니 어미를 계속 순환하면서 써줘야 했는데, 했지, 했어, 했더군, 했더구먼, 뭐 이렇게 몇 개 돌리다 보니 쓸 수 있는 게 없어서 곤란했다. 비밀경찰 역할을 맡은 배우는 연기력이 부족했다. 인터뷰 중에 계속 술을 마시다가 결국 취해 가지고 어떤 울분을 드러내게 하려는 의도였지만 갑자기 급발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필력이 딸려서 그랬다. 멀었다.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어디로 가려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거기가 참 멀다.

 

 

 

6

 

다른 분들이 쓰신 것을 훑어보았는데, 1등 후보로 세 분 정도를 점치고 있다.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내가 찍은 그 세 분이 1등과 2등에 다 포진되어 있다면 뭔가를 인정받은 기분이겠다.

 

 

 

 

--- 읽은 ---



143. 심신 단련

이슬아 지음 / 헤엄 출판사 / 2019

 

이슬아 선생님도 고민이 많은 것이다. 한낱 잡글 쓰는 syo조차도 틈만 나면 글쓰기란 무엇인가, 쓰기란 무엇인지? 쓴다는 건 산다는 것인가 싼다는 것인가, 이러면서 데굴데굴 구르는데, 글쓰기와 그를 둘러싼 활동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선생님의 고민은 오죽할까. 어쩐지 이슬아 수필집보다 더 묵직한 느낌이 드는 건 아무래도 그런 고민의 질량이겠지. syo는 전작이 조금 더 귀엽고 그래서 조금 더 좋지만 그건 내 취향의 문제고, 선생님의 글은 선생님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이겠다. 나는 늘 이슬아 선생님을 응원하는데, 실은 나나 좀 제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알아서 잘만 살고 계신다. 여전히 잘 쓰고 계신다.

 

폐에 관을 꽂은 하마가 높은 침대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프지 않은 쪽의 팔을 뻗어 내 이마를 만졌다. 익숙한 손에 쓰다듬어지자 나는 속수무책으로 잠들었다. 아픈 애보다 먼저 잠다는 것에 대해 해명하고 싶었다. 나는 정말 잘 먹고 잘 자야 된다고. 그래야 내일도 지치지 않고 즐겁게 병원에 머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너무 졸려서 입이 안 열렸다. 집에서처럼 하마가 나를 재워서 병원인 걸 까먹은 채로 잤다. 우리는 적당히 서로의 언덕에 기대어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_ 이슬아, 심신 단련

 




144. 열과 엔트로피는 처음이지?

곽영직 지음 / 북멘토 / 2021

 

이 책에 대해서 이 책의 제목보다 더 잘 설명하긴 어렵겠다.

 

과학 장르에 뛰어들기 위해 시동을 거는 중이다. 일단 물리부터. ~는 처음이지? 시리즈, 그리고 그와 유사한 제목들을 단 여러 귀요미 책들을 읽으면서 몸에 물을 묻혔다. 이제 슬슬 연습장과 연필을 손에 들어야 할 시점이 오는 것 같다. 과학 공부, 수학 공부는 결국 그렇게 귀결이 되는 게 아닐까?

 

 

 


145. Chaeg 2021. 4

()(월간지) 편집부 지음 / ()(잡지) / 2021

 

이 잡지에 대해 평을 남길 때마다 나는 전지윤 선생님 이야기를 한다. 대단하다. 매달 세 편 정도의 아동도서 리뷰를 싣고 계시는데, , 대단하다.

 

평범한 일상이 송두리째 뒤집히는 것을 실감하며 돈을 바라보는 관점도, 또 돈을 버는 방식도 점점 변하고 있음을 직시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많은 돈을 갖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드려보고자 합니다. 왜 그토록 많은 돈을 갖고 싶은 것입니까? 그 돈을 어디에 사용하고 싶은 것입니까? 그것은 당신의 행복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습니까?

_ Chaeg 2021. 4

 

 

 


146. 횡설수설하지 않고 핵심만 말하는 법

야마구치 다쿠로 지음 / 김슬기 옮김 / 유노북스 / 2021

 

원체 다변인 편에, 했던 말에 약간의 변주를 줘서 하고 또 하는 스타일이다. 친구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혓바닥의 진동수를 감쇄시키고 싶은 다른 입장도 있을 것이다. 이해할 수 있다. 나도 우리 과장님이 그랬으니까. 과장님은 늘 똑같은 말하기를 구사했는데도 회사 안에서는 그게 엄청 별로인 반면, 껍데기 집에서는 또 괜찮았다. 그러니까 이런 기술은 필요하다. 똑같은 사람이 모든 자리 모든 입장에서 한 가지 말하기를 고수할 필요는 없다.

 

물론 최악은 회사에서 껍데기집처럼 말하고, 껍데기집에서 회사처럼 말하는 사람이겠지만.

 

현재 당신의 인생은 당신이 지금까지 받아들인 모든 정보를 요약한 결과입니다. 어느 학교에 갈지, 어떤 직업을 가질지, 어디에 살지, 누구와 결혼할지, 무엇에 돈을 쓰고 투자할지, 어떤 가치관을 중요하게 여길지 등 하나하나가 모두 요약이고 그것을 집대성한 것이 바로 당신의 인생입니다. 이 책을 손에 든 일도 빼놓을 수 없겠죠.

지금은 초정보화 사회입니다. 멍하니 있으면 맹렬하게 덤벼드는 정보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한순간에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됩니다. 그래서 요약력은 시대가 갈수록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_ 야마구치 다쿠로, 횡설수설하지 않고 핵심만 말하는 법

 

 

 


147. 피에 젖은 땅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 함규진 옮김 / 글항아리 / 2021

 

리뷰도 썼겠다, 리뷰 후기까지 쓴 마당이다. 더 무슨 말을. 리뷰 대회의 여파(?)로 이 책에 대한 양질의 정보는 이제 널리고 널렸으니 더욱 편한 마음으로 입을 다물겠다. 하지만, 이 한 마디는 기필코 덧붙여야겠다.

 

글항아리 사랑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규 공무원 교육 때 기억이 나는군. 그때 syo가 이렇게 외쳤었다. “구청장님 사랑합니다.” 사랑이 때론 이렇게나 간편하고 간단하다.

 

 

 

--- 읽는 ---

아무튼, 장국영 / 오유정

노멀 피플 / 샐리 루니

200년 동안의 거짓말 / 바버라 에런라이크, 디어드러 잉글리시

혁명의 거리에서 들뢰즈를 읽자 / 김재인

안나 카레니나 2 / 레프 톨스토이

다른 방식으로 보기 / 존 버거

니체 / 정동호

루이 비뱅, 화가가 된 파리의 우체부 / 박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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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01 13:0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쓴다는 건 산다는 것인가 싼다는 것인가 ㅡsyo 오늘의 명언 담아갑니다. 제가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글쓰기를 하고 계셔서 늘 쳐다보다가 고개가 아퐈요.
의미있는 리뷰였다고 syo님 다웠다고 생각해요 👍

syo 2021-05-01 17:25   좋아요 3 | URL
미미님이 하고 싶은 글쓰기가 어떤 건지 제가 짐작할 수는 없지만, 제가 하는 이런 거라면 말리고 싶습니다ㅎㅎㅎ
돈 안 되고 폼도 안 나요.
그리고 나만 할 거예요 ㅋㅋㅋ 😝

오구오구말씀 감사합니다^-^
미미님처럼 책 바깥에서도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독서를 할 줄 몰라서 저는 저같은 글을 썼습니다.

얄라알라 2021-05-01 14: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능하면 피해자 목소리는 흉내내지 않았으면..˝ 친구분의 예리함, 역시 syo님의 soulmate다우신데요^^

syo 2021-05-01 17:25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단박에 짚어내더라구요. ㅎ

새파랑 2021-05-01 14: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님이 피땅 리뷰 1등에 유력하시겠지만, syo님이 꼽으신 3분이 누구인지 궁금하네요^^

syo 2021-05-01 17:27   좋아요 3 | URL
유력하지 않습니다. 무력합니다 ㅎㅎㅎㅎ
제가 꼽은 세 분은 곧 제가 꼽지 않은 서른 분이 되는 거라서 밝히기가 어렵지만....

레삭매냐 2021-05-01 14: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전하려다가 못 읽을 것 같아서
포기했습니다.

전 이 책을 통해 바실리 그로스만을
알게 된 것으로 만족하는 것으로.

syo 2021-05-01 17:28   좋아요 3 | URL
저도 이 책 읽고 나니까 레삭매냐님이 쓰시던 바실리 그로스만 이야기들이 다시 보이더라구요.
도전하셨더라면 제 자리는 없었을 테니, 저는 매냐님의 그 포기를 탐욕 그득한 마음으로 지지합니다 ㅎ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5-01 15: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두 syo다운 리뷰였고. syo만이 쓸 수 있는 리뷰였다 생각함. syo는 재주 재능 이런거 생각 말고 그냥 써요. 그 어디에 닿을 거니까. 충분히 닿을 만하 니까^^

syo 2021-05-01 17:29   좋아요 2 | URL
읽기님이 오구오구 대장이세요. 오구오구 장인.

페넬로페 2021-05-01 16: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리뷰를 읽을 때, 그 글을 보며 저도 syo님과 똑같은 생각을 했어요~~
근데 syo님다운 글이었고.정말 좋았어요^^
이 책에 대한 리뷰가 쌓이면서 누가 상 받을지 갈피를 못잡겠어요~~
다들 너무 잘 쓰시더라고요^^

syo 2021-05-01 17:30   좋아요 4 | URL
그렇죠?
과연 누가 1위를 차지할 것인가를 놓고 뭔가 익명투표 같은 거 붙여놓으면 재밌겠더라구요^-^

반유행열반인 2021-05-01 16: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김초엽이 syo님 리뷰 안 뽑아줘서 손절했는데 글항아리가 일등 안 주면 (작년에 삼십만원어치 책 받아먹었지만) 손절할 거에요 ㅋㅋㅋ 뽑아주면…그 책들 얼른 읽고 리뷰 써드려야지…(아직 한 권도 안 읽은 거 실화임미다 ㅋㅋㅋ)

syo 2021-05-01 17:31   좋아요 4 | URL
안 돼요.... 글항아리는 손절하기에 너무 훌륭한 출판삽니다.
저는 저한테 안 줘도 너무 기쁜 마음으로 글항아리의 건승과 사세 확장을 기원할 거예요.

.....보고계신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1-05-01 16: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결과가 어떻든 당신은 제 마음 속 일등입니다..😘

syo 2021-05-01 17:31   좋아요 3 | URL
그럴 것 같았어. 독서괭님이라면! ㅋㅋㅋㅋㅋㅋㅋ 😁

북다이제스터 2021-05-01 16: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리뷰 대회가 있었군요. ㅎㅎ
요즘 이 책 리뷰가 왜 이렇게 많이 올라오는지 궁금했습니다.
NamGiKim 님의 오늘 리뷰를 읽어보면 이 책 리뷰가 출판사 의견과 달라 킬 당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말씀처럼 출판사 의도에 따라 작성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

syo 2021-05-01 17:35   좋아요 4 | URL
무슨 일이 있었나보군요.

사실 저는 출판사 의도에 따라 작성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런 생각이 있었다 해도 출판사의 의도 같은 건 알 수가 없으니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냥 제가 잘하는 짓을 한 거죠.
적립금 받겠다고 뛰어들어놓고 못받을 것 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희한한 자기모순에 몸부림을, 아오 ㅋㅋㅋㅋ

stella.K 2021-05-01 16: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리뷰 대회에서 등위안에 들던 못 들던 상관없이 진실하게 썼다면
못해도 이달의 리뷰는 하지 않을까요? 스요님은 진실 아니면 안 쓰잖아요.ㅋ

<심신 단련>이 먼저 책 보다 더 좋은가요?
김구라가 이슬아 작가가 아무튼 출근에 나왔을 때 사업 수완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역시 요즘 작가는 옛날 작가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잘할 거라고 봐요. 사업이든 작가든.^^

syo 2021-05-01 17:36   좋아요 3 | URL
아니에요 스텔라님 ㅋㅋㅋㅋ 저 구라도 잘 쳐요.
그리고 굉장히 잘 친 + 무해한 구라는 평범한 진실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ㅎㅎ

<심신 단련>하고 <일간 이슬아 수필집>중 어느 게 더 좋은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건 그거대로 이건 이거대로 좋은 것 같아요.
한번 읽어보심도?

stella.K 2021-05-01 19:44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그럴 리가...
저는 진실이 아니면 쓰지 않으니 가끔 좋아요 부탁해요.ㅋㅋㅋㅋ


blanca 2021-05-01 1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음, 왠지 1등 할 것 같은데....예감이..오, 그리고 그 세 사람도 궁금하네요. 뭐든 열심히 열정르 바쳐 한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syo 2021-05-01 17:39   좋아요 3 | URL
1등은 아닐 거예요.
그래서 사실 이 모든 게 다 ˝그래 1등까지는 차마 바라지 않겠어. 하지만 2등 정도 줄 수 없겠니....˝ 하는 개수작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들 열심히 읽고 쓰셨겠고, 저도 그랬어요. 쓰는 동안 힘들고 이런저런 고민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봐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공쟝쟝 2021-05-01 18: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인사, 잡소리, 개똥철학 환영입니다. 어디까지 가긴요. 이만큼 오셨잖아요.
3번의 질문은 두고두고 곱씹어볼 주제네요. 아무리 텍스트가 말처럼 기능하고 있는 세상이지만, 생활에서 말에 지는 책임감처럼 생활처럼 된 가상의 공간에서 글에 들여야하는 책임감도 분명 필요하니까요.
공들여서 쓰신 만큼 저는 재밌게 읽었고 이 페이퍼도 기다렸습니다! 주말 즐거이 보내소서~

syo 2021-05-03 10:42   좋아요 1 | URL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민하는 것보다는,
고민하고, 고민하는 나를 고민하고, 고민하는 나를 고민하는 나를 고민하고,
막 그렇게 거듭하다 보면 내 글이 어딘가로 갈 수 있지 않을까요.

너무 바쁘지 마시기를.



바람돌이 2021-05-02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은 제 마음의 일등이십니다. 농담이 아니고요. 그냥하는 말도 아니구요. syo님 리뷰 읽고 제가 남편한테 ‘아 정말 세상에는 차원이 다른 글을 쓰는 사람이 있어.‘라고 했어요.
“음, 가능하면 피해자 목소리는 흉내 내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을 해줬다는 친구분도 너무 멋지네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은 거의 진실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은 끼리 끼리 만나더라구요.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 더 심해짐요.

syo 2021-05-03 10:46   좋아요 0 | URL
1등 시켜주는 속마음들이 많아서 syo는 신이 납니다 ㅎㅎㅎ
좋은 친구들 만나서 닮아가며 사는 것도 삶의 한 낙이잖아요. 좋은 친구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네요. 뭐 저런 놈이랑 친구야- 하는 소리 안 듣게 ㅎ
 

  

세상에 최대한 무해한 욕망

 

 

 

1

 

토요일, 더덕단 친구들(5인 이상 집회 금지 규정 준수)과 일자산을 등반했다. 등산 모임은 물론 아니었다. 치킨 모임이었다. 등산이란 치킨의 풍미를 위해 내 몸에 내가 치는 양념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해본 것이다. 우리는 운동을 위해 모이는 그런 불건전한 건전집단(?)이 아닙니다. 더덕단은 맛집 탐방 모임……이 아니라 여성주의 책 읽기 모임이었지, , 맨날 헷갈려.

 

하여간 우리는 장대한 포부를 가지고 일자산을 향했는데, 일자산, 이거 생각보다 작고 귀여운 산이어서 산책길처럼 설렁설렁 떠들떠들 걷다 보니 어느새 정상. 그곳에는 날쌔고 귀여운 청설모도 있었지만 피트니스 센터에나 있어야 할 헬쓰보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괜히 산 정상까지 와 가지고 뭐 턱걸이를 합네, 데드리프트를 합네 설쳐대며 젊음과 파워를 뿜뿜, 배 나온 늙은이 마음에 공연한 열등감을 심어주는 중이었다. 일자산 등반을 통해 syo가 얻은 것은 그러니까 드넓은 호연지기, 그리고 젊고 몸 좋은 것들을 향한 강도 높은 미움이라고 하면 되겠다.

 

이건 오늘의 이야기를 위한 애피타이저에 불과하다. 운동이 치킨을 위한 조미료에 불과하듯이.

 

 

 

2

 

작년 이맘때쯤인가, 한 멤버의 집에서 음악과 댄스가 어우러진 한바탕 폭식 파티가 열렸다. 그때 여42이 모여서 먹어 치운 것이 치킨3, 피자2, 떡볶이2, 아이스크림 케이크……. , 또 먹는 이야기네, 이게 아니라,

 

그때 우리는 그달 읽기로 했던 책을 들고 모였다. 여섯 권의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사진을 찍었는데, 이거다.


syo는 몇층에 사는가

 

우리는 책 주인의 성격이 여실히 드러나는 이 풍경을 놓고 한참을 웃고 떠들 수밖에 없었다. , 그러면 각 층에 거주하는 책 주인들의 증언을 한번 들어보자.

 

- 1층 입주민: 좋은 대목에는 플래그를 붙이지만, 그렇다고 아무 데나 쉽게 붙여주진 않지. 나 그렇게 쉬운 사람 아니거든?

- 2층 입주민 : 우오와, 좋아! 여기도 좋고! 저기도! 붙이자! 붙이고 또 붙이자! 풍년일세 풍년이야. 이 책 쩐다!

- 3층 입주민 : 뭘 붙이냐고 귀찮게, 그냥 귀퉁이 접으면 될걸 가지고.

- 4층 입주민 : 책을 접는다고. ! 그리고 저 자잘한 플래그들은 또 뭐야. 조잡하게스리. 플래그는 두꺼워야 제맛이지. 그래야 손가락으로 집고 그 페이지로 바로 찾아가기 쉽다고.

- 5층 입주민 : 그냥 줄을 그어요. 어휴, 옆구리 너덜너덜하게 왜 저래.

- 6층 입주민 : 플래그와 너덜너덜이 반드시 같이 가야 한다는 부당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군. 플래그의 위치를 조금만 공학적으로 제어한다면 그런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지. 

 

플래그가 옆으로 길게 튀어나온 책을 책장에 꽂았다가 꺼냈다가 반복하면 이내 플래그 귀퉁이가 이리저리 접히고 구겨진다. 그렇게 되면 뭐랄까, 술 취한 말미잘의 촉수 같달까, 무지개색 겨드랑이 털 같달까, 하여간 그런 식의 현란하고 심란한 비주얼이 도출되고야 마는 것이다.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syo는 플래그를 아주 바짝 붙이는 편이다. 양장본은 표지의 가로 길이가 내지보다 당연히 길고, 반양장의 경우에도 책날개가 꺾이는 부분이 내지보다는 1mm 정도 돌출되어 있다. 그래서 플래그를 붙일 때 그 끝이 내지보다 1mm 정도 돌출되게 바짝 붙이면 제아무리 책을 꽂고 꺼내도 플래그가 접히는 일은 거진 없다. 물론 처음에는 몇 번을 붙였다 떼었다 하며 길이를 조절하는 일이 생기긴 하지만, 숙련도가 오르면 절로 해결될 문제기도 하고, 또 양손을 사용하여 신중하게 붙이는 일에는 일종의 변태적인 즐거움조차 뒤따른다. ‘여러모로 완벽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래서 syo는 다들 이렇게 하는 줄만 알았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인간이란, 불을 사용하는, 도구를 만드는, 언어로 소통하는, 생각하는, 그리고 플래그를 바짝 붙이는 동물 아닙니까? 호모 플래그바짝붙이리우스.

 

아니었다.

 

, 이렇게까지 한다고?”?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는 서로의 존재를 처음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문명의 조우가 언제나 그렇듯 결과는 전쟁이었다. syo는 그날 책 귀퉁이를 접는 사람보다 더 크게 규탄당했고, 특출나게 집요한 인간이라는 멍에를 썼다…….

 

 

 

3

 

플래그에 얽힌 비슷한 사건도 있었다. 재독 삼독을 하다 보면 이전에 붙여놓았던 플래그를 떼어낼 일도 생긴다. 이 플래그라는 게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돈 주고 살 때는 희한하게 비싸다는 느낌이라 늘 재사용을 시도하게 된다. 어디 붙여놨다가 떼서 다른 책에 붙이는 것.

 

역시 더덕단 채팅방에서 이 재사용 플래그의 보관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는데, 여기서 또 한 번 인간의 다양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붙이는 위치 하며 방법 같은 게 정말 제각각인 것이다. 다른 친구들의 방식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지만, syo의 눈에 그것은 혼탁한 카오스에 한없이 가까웠다고만 말해두겠다. syo는 책 읽는 테이블에서 손만 뻗으면 닿는 냉장고 옆면에다 붙여놓는데, 그렇다고 손만 뻗어서 틱 붙여놓는 건 아니고, 이렇게 붙여놓는다.


우리집 냉장고 옆면의 사정


사람들은 이 사진을 보고 넌 역시 집요하다며 박수를 치며(안 봐도 UHD) 좋아했지만, syo는 사실 저 플래그들의 오와 열이 완벽하게 맞지 않다든가, 색깔별로 정렬되어 있지 않다든가 해서 늘상 마음이 불편하다…….

 

 

 

4

 

플래그에 얽힌 이런 일련의 사건에서 친구는 흥미를 느낀 모양이다. 그리고 그 흥미는 그의 놀라운 선물 센스와 어우러져 이런 생일선물로 표현되었다.

 

치킨 말고 3시 방향

 

저 한 통의 플래그는 40이 다 되어가는 syo의 평생 받아본 생일선물 가운데 센스와 만족감에서 아주 손꼽히는 선물이었다. 이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게 이 치킨집에서 우리 테이블에 앉은 우리밖에 없으리라는 사실이 웃음 포인트였다. 환장해서 책 읽는 사람이 아니라면, 세상 누가 플래그 한 통을 생일선물로 받고 좋아할 것인가. 환장해서 책 읽는 사람이 아니라면, 세상 누가 플래그를 한 통 선물하면 받는 사람이 좋아할 거라고 예측하고, 그렇게 예측한 자신의 미친 센스에 스스로 감동할 것인가. 또 환장해서 책 읽는 사람이 아니라면, 세상 누가 필통을 굿즈로 받겠다고 책을 한 바구니 주문하고, 그렇게 구한 필통이 마음에 썩 안 들던 찰나에 좋은 필통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친구가 선물로 받은 저 플래그 한 통이 탐스러워 눈을 떼지 못하고 그러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어떻게 그런 서로의 마음을 찰떡같이 이해하겠는가 말이지…….

 

읽는 사람들의 물욕이란 이렇게 귀엽고 안온하다. 이것만 해도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

 

 

 

5

 

참 그리고, 그 눈빛, 점 봐주시는 분이 그 눈빛만 쏴주면 남자들이 다 넘어간다고 했다던, 그래서 어디 한번 보자고, 나한테 해보라고 내가 청했던 그 눈빛, 그래서 마지못해 한번 해보던 그 눈빛, 그 눈빛을 마주 본 내 눈빛이 눈으로 침 뱉는 눈빛이었던 거 사과합니다. 시켜놓고선 그랬네요.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게 먹히지 않은 거라고 우리는 서둘러 합의했지만, 사실 내가 뱉은 침-눈빛도 최선을 다해 뱉은 가래침은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아직 우리가 눈빛으로 할 수 있는 맥시멈이 어디인지 다 확인하지 않은 거잖아요. 정말 다행이죠?

 

 

--- 읽은 ---

 


140. 모든 운동은 책에 기초한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오지원 옮김 / 유유 / 2019


- 일독(190828)

- 재독(210424) 


책에 대한 신뢰가, 정확히 말해서, 책의 번영과 위대성에 대한 신뢰가 아직 살아 있던 시대의 지식인에게 책이란 어떤 것일지 가늠해 보곤 한다. 아무리 내가 책을 사랑한대도 그들의 책과 나의 책은 다를 것 같다. 어쩌면 같은 단어조차 아닐지 모른다. 오늘 우리가 책의 생존을 이야기할 때면 그래도라는 접속사가 자연스럽다. 종이책의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낙관적인 사람조차 사라지진 않을 거야라는 말끝을 선택한다. 그야말로 가장 비관적인 낙관이다. 애초에 여기가 누구도 책의 위엄을 의심하지 않는 세상이었다면, ‘모든 운동은 책에 기초한다라는 말이 태어나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에 웅장하지만 슬픈 파문을 던지는 일은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든 운동은 과연 책에 기초하는가? 정말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운동 역시 책에 기초하는가? ‘모든 운동은 책에 기초한다라는 제목에 매력을 느끼고 이 책을 꺼내 드는 사람이라면 이미 어느 정도 책에 기초해 운동을 만들어나가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책의 존엄 증명이 불필요하고,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증명이 작동하지 않는다. 늘 그게 슬픈 일이다. 사람들이 좀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지만, 읽으면 읽고 읽지 않으면 읽지 않는다. 읽지 않음은 어떻게 읽음이 되는가. 읽지 않음과 읽음 사이의 경계선은 때로는 한달음에 넘을 수 있는 도랑처럼 작고 얕은데, 때로는 대륙과 대륙을 나누는 산맥처럼 높고 험난하기도 하다. 신비롭다.

 

나는 책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의 측량할 수 없는 광활함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그것이 주는 환희에 나를 맡기는 법도 알게 되었다. 우리가 겪는 모든 확장의 중요한 부분, 소위 말하는 '자신을 넘어서고자 하는 갈망', 우리 본질의 가장 훌륭한 점인 이 모든 거룩한 갈증은 늘 새로운 체험을 우리 안으로 받아들이도록 고취하는 책의 기지에 빚지고 있다.

_ 슈테판 츠바이크, 모든 운동은 책에 기초한다

 

 

 


141. 위험한 법철학

스미요시 마사미 지음 / //소 옮김 / 들녘 / 2020

 

철학 비전문가 혹은 비전공자, 그러니까 철학으로 밥을 벌지 않는 아마추어 독서가가 철학을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를 정말 오래 고민했다. 아무래도 폼난다는 게 제일 큰 소득일 듯. 왜냐하면 사람들은 철학을 잘 안 읽으니까. 사는 게 좀 쉬워지는 효과가 있지만 매사가 그렇지는 않다. 쥐뿔만큼 나은 인간이 된 것 같긴 한데, 철학 말고 다른 어떤 장르라도 이만큼을 읽었으면 이 정도는 되는 게 당연하겠다. 어쩌면 그쪽이 더 나았을지도. 철학이 그러할진대, 심지어 철학이라는 장르는 취미 독서가에게 무슨 효용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그런 게 있긴 할까?

 

저자는 법철학이 상식이라는 썩은 연못의 물을 퍼내는 삽 같은 힘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글쎄, 다 읽었지만 그게 과연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만한 설득력이 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가볍고 재미있다. 그렇게 쓰려고 애쓴 흔적이 눈에 띈다. 개그 욕심도 있다. 그 욕심은 언제나 좋은 욕심. 일본 사람들은 빵빵 터졌다지만, 또 그 정도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의존하며, 그 안에 자신들의 욕망, 악의, ()을 던져 넣어왔던 것, 그것이 바로 상식이다. 상식이라는 웅덩이는 긴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투기해온 자기에게 불리한 것의 축적에 의해 탁해지고 더러워지고 악취를 풍기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안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보려 하지 않고, “다 그런 거지 뭐.” 하며 손을 대지 않은 채로 두었다.

  법철학은 그 상식이라는 웅덩이를 전부 퍼내고 그곳에 인간사회의 음지 부분을 찾아낸다. 상식 위에서 전개되는 법철학은 말하자면 인간사회의 양지 부분밖에 비추지 않는다. 그러나 깨끗한 것더러운 것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이성적인 인간이 합리적인 계약에 의해 국가사회를 만들고 합리적인 법을 만들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는 옛날이야기의 뒷무대, 언터처블한 음지의 세계를 직시하고 갇히지 않은 두뇌로 생각하는 것, 그것이 법철학의 진면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_ 스미요시 마사미, 위험한 법철학

 

 

 


142.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

 

syo는 내가 좋아하는 글이면 남들도 다 좋아할 거라고는 착각하지 않을 만큼 철이 들었지만, 동시에, 내가 진짜 엄청, 겁나, 미친 듯이, 아주 그냥, 좋아서 환장하는 글이면 남들도 다 좋아할 거라고 순진하게 믿을 만큼 철 안 든 녀석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신형철 별로던데-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진심으로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 신형철 선생님이 호불호를 탄다고? 이 아름다운 글이? 진짜? 그건 왜냐하면 내가,

 

신형철 선생님의 글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진짜 엄청, 겁나, 미친 듯이, 아주 그냥, 좋아서 환장했기 때문이다. 모든 글이 다 좋아서, 어느 한 대목 짚어 감탄하지 않고 그냥 끝나는 글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너무 사랑하면 그런다. 내 새끼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객관적으로, 내 새끼 너무 예쁘지 않냐? 라는 말을 100% 진심으로 하게 된다. 이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이뻐할 수밖에 없다고, 조금의 의심도 없이 믿게 된다. 이런 건 인간의 한계라기보다 그냥 인간의 생김인 것 같다.

 

작가 같은 게 되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다짐을 하게 되는 계기는 정말 다종다양하다. 너무 잘 쓴 글을 만나서 내 것이 짜쳐 보일 때마다 그런 마음을 굳혀 나가는 게 주된 양상이지만, 신형철 선생님의 경우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쐐기를 박게 한다. 이런 것이다. syo가 쑥과 마늘을 바리바리 챙겨 들고 동굴 속으로 들어간 착한 곰처럼 꾸준히 읽고 쓰고 그러다 운까지 따라준다면, 내 나이 50에 이르러 35세의 선생님이 쓰셨던 정도의 글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도 계속 포기하지 않고 그 일을 반복한다면 내 나이 80쯤 이제 50세의 선생님이 쓰신 것과 나란히 놓을 만한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름다운 글을. 그러나 그런 선생님조차 신형철 별로던데-’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거라면, 나란 인간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듣게 될 것인가! , 세상에 나가지 말자. 쑥 꺼져, 마늘 치워…….

 

저런 내적 북치고-장구치고와는 별개로, 나는 여전히 선생님의 글을 너무 사랑한다. 좋은 글을 지어 올리기 위해 필요한 모든 능력들의 신체적 은유, 그러니까 눈, , , , 엉덩이, , 가슴 같은 모든 쓰기-기관들에 관해서 생각하건대, 나는 선생님의 그 기관들을 몽땅 훔쳐 와서 내 안에 채워 넣고 싶다는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무례한 욕심을 종종 부린다.

 

<킬링 디어>의 첫 장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뛰고 있는 심장이다. 이 장면은 말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심장이다. 심장은 언제나 제 주인만을 위해 뛰고, 계속 뛰기 위해서만 뛴다. 타인의 몸속에서 뛸 수 없고 타인의 슬픔 때문에 멈추지도 않는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다. 그러나 이 한계를 인정하되 긍정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니까. 그럴 때 인간은 심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이다.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_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읽는 ---

피에 젖은 땅 / 티머시 스나이더

심신 단련 / 이슬아

읽는 직업 / 이은혜

열과 엔트로피는 처음이지? / 곽영직

200년 동안의 거짓말 / 바버라 에런라이크, 디어드러 잉글리시

내가 사랑한 공간들 / 윤광준

물리가 쉬워지는 미적분 / 나가노 히로유키

나의 첫 파이썬 / 에릭 마테스

스스로를 아는 일 / 앙드레 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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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4-26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환장해서 책 읽는 사람이 아니라면, 세상 누가 플래그를 한 통 선물하면 받는 사람이 좋아할 거라고 예측하고, 그렇게 예측한 자신의 미친 센스에 스스로 감동할 것인가.˝ 나 이 글 읽고 쥐고 있던 마우스 내던졌어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 넘 웃겨,,,,근데 우리 쬐끔 비슷한 구석이 있어 괜히 허탈하네...

syo 2021-04-26 10:41   좋아요 1 | URL
비슷한데 왜 허탈해요 ㅋㅋㅋㅋㅋㅋ 싸우자, 그리고 이기자, 우리 집요한 사람들이여!

수이 2021-04-26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여워 ☺️ 라고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소리내어 말하고 말았다 이 귀여운 사람들 보소 라고

syo 2021-04-26 10:42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혹시 사돈이세요? 왜 남말하세요?

페넬로페 2021-04-26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층 입주민이면서, 은근히 플래그 비싼데, 그래도 천 원샵에서 파는건 좀 품질이 안좋고~~소중한 내 책에 붙이는 건데 메이커 있는 제품을 사야지^^
이렇게 생각하며 사는 1인입니다.
신형철님에 대한 글,
격하게 공감하며 넘 재밋게 읽었어요😊😊

syo 2021-04-26 10:43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맞습니다. 플래그는 아무래도 삼엠이지요....

그리고, 맞아요, 일자산은 언덕이지요! 격하게 공감합니다.
고치셨지만, 이미 늦었어요! ㅎㅎㅎㅎㅎ

다락방 2021-04-26 11:09   좋아요 2 | URL
아니, 페넬로페 님은 일자산이 언덕이란 걸 아시는 분이란 말입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04-26 11:12   좋아요 1 | URL
그럼요!
딱 치킨 먹기 좋은 곳이죠^^

syo 2021-04-26 11:17   좋아요 2 | URL
그러고 보니, 작년에 올림픽 공원 다녀온 글을 썼을 때,
페넬로페님께서 그때 거기 계셨다는 댓글을 다셨던 게 기억나네요^-^

다락방 2021-04-26 10: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기다린 보람이 있는 글이네요. 이 부장님이 바쁜 와중에도 글 올라왔나 자꾸 들락거렸다규요!! 이제 편한 마음으로 일해야겠다. 그럼 부장은 이만 가요. 안녕!

syo 2021-04-26 10:44   좋아요 1 | URL
아, 부장님이라니, 거듭 생각해도 정말 어마어마한 친구란 말이지? ㅎㅎㅎ

잠자냥 2021-04-26 12:52   좋아요 1 | URL
아니, 다 부장님, 부장님답게 치킨 한 여섯 마리는 쏘셨어야죠. 섭섭합니다.

다락방 2021-04-26 13:58   좋아요 1 | URL
아시다시피, 저희가 입이 짧아서요..

=3=3=3=3=3

라파엘 2021-04-26 1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플래그를 붙일 때 너덜거리는 게 싫어서 표지 사이즈 안쪽으로 붙여요. 그리고 쇼님이 냉장고 옆에 붙여두는 것처럼 저는 책상 한쪽에 나란히 붙여두지요. 그런데 쇼님과 마찬가지로 책상에 붙여둔 플래그가 균일하지 않은 게 신경쓰여서, 언젠가부터는 북다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ㅎㅎ

syo 2021-04-26 11:19   좋아요 2 | URL
라파엘 님의 간증(?) 말씀에 힘이 납니다. 역시 호모 바짝붙이리우스들!!
하지만 북다트는 너무 비싸요... 어흑ㅠㅠ

라파엘 2021-04-26 11:34   좋아요 1 | URL
북다트가 비싸기는 하지만, 사용할수록 점차 접착력이 떨어지는 플래그와 달리, 북다트는 반영구적으로 재활용하며 사용할 수 있기에... 인생을 길게 보고 북다트를 구매합니다 ㅋㅋㅋㅋ

syo 2021-04-26 23:41   좋아요 1 | URL
그렇게 보니까 그러네요. 설득력 있다.....
저도 저 선물받은 플래그까지만 소진하고 다음에는 북다트를 이용해볼까 봐요.
감사합니다 ^-^

새파랑 2021-04-26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플래그를 쓰는 사람이 많군요. 신세계네요. 포스트잇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만 써봤는데~ 치맥이 가장 눈에 들어오네요 ㅎㅎ

syo 2021-04-26 23:41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치킨은 어떻게 찍어도 크게 나오니 이것 참 신비로운 일이지요.

2021-04-26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엄청 꼼꼼하시네요!ㅋㅋ 암튼 영업당해서 집에 있는 사랑의 정확한 실험이었나 그 책 읽어봐야겠어요. 맛점하세요^^

syo 2021-04-26 23:42   좋아요 1 | URL
ㅎㅎㅎ 오랜만의 영업활동이었네요. 즐거운 독서 되시길^-^

단발머리 2021-04-26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는군요 ㅎㅎㅎ
호모 플래그바짝붙이리우스님! 오래오래 건필하세요!

syo 2021-04-26 23:4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그러고보니 2층 주민이셨던가요?

잠자냥 2021-04-26 1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 님이 6층 입주자죠? 아니 저렇게 붙인단 말이에요?! 그리고 여기 입주자분들은 플래그 다 옆면에 붙이시는구나.... 그것도 놀라워요. 전 책 위쪽에 붙이거든요. 그리고 저도 플래그 왠지 아까워서 재활용하는 사람인데요. syo님은 냉장고에 저렇게!!!! ㅋㅋㅋㅋ 놀라워라. 전 그냥 책 맨 앞장에 붙여둡니다. 가끔 그걸 확인 안 하고 알라딘 중고에 책 팔러 가면 점원이 책 확인하다가 그 플래그 뭉텅이 발견해서 친절하게 ˝이건 처리해 드릴게요˝하면서 냉큼 버리는데... 아아앗! 다시 돌려주세요 하기도 뭐하고 그저 참 아깝습디다. ㅋㅋㅋ

syo 2021-04-26 23:47   좋아요 0 | URL
저도 누워서 책 보다가 플래그 떼면 책 앞장에 붙여놓습니다.
그러다 날 잡아서 다 냉장고로 옮기지요 ㅎㅎㅎ
저런 작은 것들이 이상하게 아깝단 말이지요? 사람 심리 알 수 없다니까요 정말.

반유행열반인 2021-04-26 1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6층에 사는 애이름 syo라지요 S.Y.OOO

syo 2021-04-26 23:45   좋아요 1 | URL
아, 어린 시절 동요 테이프에서 듣던 정겨운 노래 🐶

Angela 2021-04-26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플래그는 위에 ㅎㅎ

syo 2021-04-26 23:45   좋아요 1 | URL
깃발이라는 것은 옆으로 펄럭이는 것입니다 ㅎㅎㅎㅎ

공쟝쟝 2021-04-26 14: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3층 주민이올시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저 3m 선물 누구예요!? 정말 센스 쩔어서 내친구였음 좋겠다!! 으흐흐

syo 2021-04-26 23:46   좋아요 0 | URL
그러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슬프게도....
그럴 수 있다해도 그건 그거대로 또 슬프다.

공쟝쟝 2021-04-26 23:48   좋아요 0 | URL
...... 맞네... 그건 그거대로 슬프다.... 쓱쓱(눈물을 훔친다)🤧

바람돌이 2021-04-26 16: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여긴 3층 주민이 대세인듯..... 음 저는 2층 주민입니다. 뭐든지 일단 붙이고 보자. 그러면 무언가 하나는 건지리라라고 할까? ㅎㅎ syo님의 6층 입주보다 냉장고 옆면이 더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오늘 알았네요. 우리 친해지기는 힘들듯해요. ㅠ.ㅠ

syo 2021-04-26 23:47   좋아요 1 | URL
집요한 스타일 싫어하시나 봐요? 왜요? 왜 싫어해요? 왜?(집요)

바람돌이 2021-04-27 00:31   좋아요 1 | URL
저런거 줄세워서 붙여놓으면 막 떼서 겹쳐놓는거 취미예요. ㅋㅋ

syo 2021-04-27 11:37   좋아요 0 | URL
아.... 안녕히 계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4-26 22: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우리 윗집 청년은 어쩜 이렇게 글을 맛깔나게 쓸까? 플래그 다 씹어먹을 뻔했네~ 저는 플래그란 무엇인가?에 한 표인 5층 입주민입니다. 책 한 번 읽으면 중요 문장이랑 페이지 이런건 그냥 외워지잖아요? 독서토론 할 때 누가 얘기하면 아~ 그 125페이지 넷째줄? 그러잖아요. 하하!
-호모플래그바짝붙이리우스에 대항하는 호모허세관종데우스가

syo 2021-04-26 23:49   좋아요 2 | URL
만날 일 생기면 플래그 하나 꼭 드릴게요.
힘내세요, 툐툐님....😥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뒷북소녀 2021-04-27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여드릴 수 있다면 제가 플래그를 재사용하기 위해 떼놓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군요.
저렇게 질서정연하다니. 세상에!!!

플래그를 보면 6층 아니신가요? (플래그를 아주 바짝 붙이는 편이다!)
2층은 다이소 플래그 같은데...
syo님 냉장고에 붙여져 있는 플래그는 3M이 많은 것 같고...

syo 2021-04-27 11:59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저는 최상층 거주자입니다. 으하하하하.
그리고 저 냉장고 사진도 제 눈에는 무질서의 발현으로 보입니다....🙄

레삭매냐 2021-04-29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치킨에 비루만 눈에 들어옵니다.

syo 2021-04-29 22:3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려했던 바입니다.

하나의책장 2021-04-30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한번에 한 박스씩 사 구입하고선 따로 선물하거나 나눔하지 않는 이상 그대로 책에 붙힌 대로 놓고 있거든요. 냉장고 옆 빼곡하게 줄지어 놓고 재사용하는 것도 나름의 아이디어네요^^ 아! 그리고 저도 syo님 말에 동감하는 게 색별로 정리되어 있지 않아서 뭔가 개운한? 느낌이 없어서 syo님처럼 마음이 살짝 불편해요ㅎ 아마 제 성격엔 색별로 흐트러짐없이 정렬시켜 놨을지도ㅎㅎ

syo 2021-04-30 09:21   좋아요 0 | URL
이런 건 이래저래 피곤한 성격입니다.
특히 흐트러지는 인간과 같이 살다보면 고통받는 건 늘 이쪽, 편한 건 늘 저쪽 같고....
그럼 이쪽은 잔소리를 하게 되고, 저쪽은 ‘괜한‘ 잔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하고....

내탓이오, 내탓이오....
 

 

 

 

 

1

 

. , .

 

봄이라는 건 비나 바다처럼 글감으로 팔아먹기 좋아서 누린내 날 때까지 우려먹을 작정이었다. 꽃 이야기하고 사랑 타령하고, 봄비 이야기하고 사랑 타령하고, 강남 갔다 돌아온 제비 이야기하고 사랑 타령하고, 완전 노다지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랬는데, 우와, 잠깐 방심하는 사이 여름이 와 버렸다! 꽃은 다 졌고 비는 깔짝거림으로 증발했고 아, 제비가 웬 말, 날벌레만 집안에 득시글거리는 탓에 syo는 하루종일 박수 치면서 나날이 건강해지고 있다. 망했다. 이러면 결국 사랑 타령하고 사랑 타령하고 사랑 타령하는 수밖에 없다는 건데, 그랬다간 파멸이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서재 이웃 취소하는 마우스 클릭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다. , 야속한 봄. 너는 왜 이렇게 해가 갈수록 날씬해지니.

 

굿바이 스페셜로 한 번 더 팔아봤다. 마지막 단물까지 쪽쪽 빨아먹고 너를 보내니, 봄아, 내년에는 모쪼록 천천히 와서 처언천히 놀다 가.

 

 

 

2


 

새로운 자료가 쌓이면서 의사들은 신속히 방향을 바꿨다. 그러나 중년 여성은 매력이 없고 자연스럽지 못하고 병적이기조차 하다는 명백히 비과학적인 관점이 역사적으로 공표되지 않았다면, 과연 의료 전문가가 매우 제한된 연구에 기초해 HRT를 채택하고자 애당초 그렇게 열성적이었을까 의심스럽다. 의사들이 HRT를 처방하도록 제약회사가 부추기기는 했지만 여성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이런 거대하고 무모한 실험에 제약회사를 끌어들이는 데는 분명 의사들의 검증되지 않은 편견이 일조했다.

_ 바바라 에런라이크, 디어드러 잉글리시. 200년 동안의 거짓말

 

여성은 열등한 존재라는 멸시의 관념을 의식 혹은 무의식에 고착시킨 사람들이 그 관념을 추종하기 위해 과학과 연구를 빙자해 다양한 편견을 양산하였을 수도 있다. 이 경우 그 편견들을 격파하는 데 과학과 연구의 힘을 다시 이용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그들의 관념을 타격해야 끝날 일이다. 어차피 실제로 연구 결과를 만드는 것이 과학이 아니라 편견이라면, 관념이 존재하는 이상 편견은 무한히 생산되고 끝없이 변주될 것이라서 그렇다. 반면, 이미 형성된 편견들을 아무 이유 없이 받아들인 다음, 그 편견을 믿은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다른 편견들을 덧대어가며 관념을 형성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경우에는 편견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관념을 건드릴 수 없다. 실제로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여성의 속성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틀릴 수 없는 인간이라는 확신이다. 이들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뭔가를 하지 않는다. 관념도 편견도 모두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고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3

 


구석기시대인이 바위에다 짐승을 한마리 그렸을 경우 그는 진짜 짐승을 한마리 만들어낸 것이라 믿었다. 허구와 가상의 세계, 예술이나 단순한 모방의 세계는 현실의 경험과 분리된 독자적인 영역을 뜻하지 않았다. 그는 이 두 세계를 상호 대립시켜 생각하지 않고 그 하나가 다른 하나의 직접적인 연속이라 보았다. 예술에 대한 그의 태도는 인류학자 레비브륄의 책에 나오는 어떤 쑤(Sioux)족 인디언의 사고방식과 같은 것이었을 게다. 이 인디언은 어떤 탐험가가 들소를 스케치하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이 우리네 들소를 여러마리 자기 책에 넣어간 것을 나는 안다. 내가 그 현장을 보았으니까. 그후로 우리는 들소 구경을 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_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원시인은 아니지만 원시인이 보면 너 참 남부럽지 않게 사는구나 하고 칭찬할 만한 모양으로 사는 중이다. 하루에 두 끼를 챙기고 두 번의 잠(하나는 길고 하나는 짧은)을 잔다. 매달 못 해도 서너 차례의 섹스를 하고 마음과 때가 맞으면 더 하기도 한다. 몸은 늘 잘 맞아서 하고 말고를 결정하는 요인은 아니다. 잘 먹는 것, 푹 자는 것, 잔다고 하면 무난할 것을 굳이 먹는다는 몹쓸 말로 부르는 이들도 있지만 그러나저러나 아름다운 그 일에 부지런 떠는 것. 사실 원시인이 아니라 미래인이 와서 봐도 그닥 나빠 보이지 않는 생활. 그렇다면 이 원시적인 필요들이 몽땅 충족되는 호화로운 일상 속 syo에게, 읽고 쓰기란 대체 무엇일까? 구석기인이 그린 그림은 그의 생필품인 것 같은데.

 

 

 

4

 

누가 움켜쥐는 것처럼 뒷골이 아프면서, 마치 뒤통수에 쥐가 나는 것 같은 통증 속에 아침잠을 깼다. 최신형 혈관 공격식 알람인가. 종일 머리가 무거워 활자가 눈에 잘 안 발린다. 힘주면 10초 만에 통증 올라와서 케틀벨 못함, 푸시업 못함, 딥스 못함. 마스터베이션 못 함. 커피도 안 먹고.

 

생활은 자꾸만 밍밍해지는데,

 

 

 

5

 

산책길 녹색은 자꾸만 쨍해진다.

 

 

 

--- 읽은 ---



137. 화재 감시원

코니 월리스 지음 / 최용준 외 옮김 / 아작 / 2015

 

솔직히 리알토에서읽고 여기까진가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표제작까지는 가봐야 하지 않겠냐는 양심의 소리에 올라타 묵묵히 전진 또 전진하여 화재 감시원에 도착했는데, 물론 좋았지만 또 와방 좋지는 않아서 애매해진 것이다. , 어쩌지, 내부 소행딱 한 개 남았는데 하필 걔가 제일 긴 애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어쨌든 읽기 시작했는데,

 

3시에는 잤어야 했는데 4시까지 읽고 말았다. 화재 감시원에서 오오, 했지만 뭐랄까 내부 소행의 경우는 우와와오오우오어아?! 했다고 할까. 다음 작품들은 어떨까. 리알토에서같은 식이라면 우리 인연은 거기까지겠고, 내부 소행같기만 하다면야 눈꺼풀이 없는 인간처럼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내처 읽겠지. , 그럼 이제 여왕마저도로 가자.

 

그녀가 그 푸른 눈을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진짜라기에는 너무 훌륭한 게 있다면, 황녹색 대본을 들고 금빛 머릿결 위로 사무실의 형광등 불빛을 받고 서 있는, 킬디였다. 강령회 탁자 주변의 연보라색 방석에 웅크리고 앉은 얼간이들이 그런 뻔한 헛소리를 어떻게 믿게 되는지 항상 궁금했다. , 이제는 알겠다.

  왜냐하면 그 순간 거기 서서, 이 모든 게 사기라는 걸 알고 있는 순간에도, <헐크 4> 대본과 신용카드 명세서와 통화기록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고 얼마든지 조작되었을 수 있으며, 나 자신은 그저 두 사기꾼의 피날레를 장식할 전리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믿고 싶었다. 그저 영화 촬영차 조사 중이었다는 알리바이뿐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을. H. L. 멩겐이 무덤에서 살아 돌아와 나를 도와서 사기꾼 박멸 운동에 나서고, 내가 대본을 쥐고 있는 저 손목을 붙잡고 킬디를 내 쪽으로 끌어당겨 키스한다면 우리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는 것까지.

_ 코니 월리스, 내부 소행

 

 

 


138. 인공지능 생존 수업

조중혁 지음 / 슬로디미디어 / 2021

 

그래서 살아남으려면 대체 뭘 해야 하냐는 물음에 창의적인 일을 하라고 대답한다. 허어. 배고프면 밥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은 나도 안다. 그러니까 뭘 먹어야 하냐구요. 당연한 말을 또 하나 들었지만 모른 척 꾹 참고 그렇다면 창의적 능력을 어떻게 키우면 좋으냐고 물었더니 제일 처음 나오는 대답이 잠을 잘 자세요. 허어…….

 

이해한다. 뭐 뾰족한 수 있겠냐고. 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건 편집과 교열 과정을 거쳐 출간되었을 책 속에 이런 문장들이 버젓이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 하지만 인공지능이 마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만능 기술이 아닐 뿐더러 일반인에게도 도움이 안 됩니다.

 

-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사람의 존속성에 대한 우려를 꺼내는 사람이 드물다. 하지만 사회적 존속에 대해서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빅데이터를 통해 소프트웨어로 체계화하기 쉬운 영역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 창의적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창의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창의적 생각을 하기 위해 깊은 고민을 오랫동안 안 하기 때문이지 태어날 때부터 창의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이야기한다.

 

- 인공지능의 중요한 특성 중에 하나가 데이터로 스스로를 학습하기 때문에 왜 그렇게 판단하고 행동했는지를 개발자도 모르기 때문에 원인 파악도 어렵다.

 

더 할 수도 있다.

 

조중혁 선생님은 무려 1996년부터 IT칼럼니스트로 활동을 한 전문가. 저자소개를 보면 이런저런 수상 경력도 떠르르하다. 그런 자리에 올랐다면 당연히 일반 독자들보다는 훨씬 많이 읽고 썼을 것이다 그러니까 선생님의 필력과 독해력은 위의 저 비문, 혹은 어색한 문장, 혹은 비문이면서 어색하기까지 한 문장들을 못 알아챌 정도에 그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저건 정성의 문제가 아닐까? 그래서 저런 대목들을 만날 때면 독자로서의 syo는 지나치게 못마땅해하는 경향이 있다.

 

 

 


139. 중국집

조영권 지음 / 이윤희 그림 / CABOOKS / 2018

 

도대체 내 글은 왜 이따위인가 하여 찬찬히 읽어보았더니 나는 시각적 표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글을 쓰고 있었다. 애써 다른 감각 표현을 동원하려 해봤더니 청각까지는 어떻게 글자로 흉내라도 내겠는데, 후각이나 미각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ㅇㅇ맛, ㅇㅇ냄새 같은 게으른 표현은 dog나 줘버리라지! 하여 맛 표현을 잘해 놓은 글 같은 게 있을까 싶어서 뒤적거리다가 찾아낸 제목, 중국집. 피아노 조율사 조영권 선생님이 방방곡곡의 중국집을 종횡무진하여 쓴 에세이라는 정도의 정보는 진즉에 알고 있었고, 출간 당시 알라딘에서도 가끔 눈에 띄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표현을 배우진 못했다. 문체가 미문은 아니어서 문장으로만 놓고 보면 욕심나는 데가 없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전문 직업인으로서 하루의 일과를 담담하게 기록해나가는 태도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공무원이던 시절, syo 역시 이런저런 일과들로 이루어진 (지나치게 긴)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어떤 날은 돌아와 그날 있었던 일을 써보려고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글이 되지 않았을 거고, 결국 백지 위에 신세 한탄이나 연애 타령 같은 걸 갈겨 놓고는 드러누웠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그때의 syo가 글이 되지 못하는 일상을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일상을 글감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겠다.

 

건반의 움직임이 둔하고, 연타가 되지 않는 상태. 이럴 때 건반은 무척 무겁게 느껴진다. 여름이 오면 습도가 높아 더 심해질 듯하니 서둘러 잡아주어야 하는 상황이다. 케이스를 열고 건반을 하나씩 뽑았다. 키 플라이어로 프런트 홀(건반 뒷면의 천으로 싼 구멍)과 밸런스 홀의 구멍을 넓혀주었다. 건반의 움직임이 정상 속도로 돌아왔고, 88개 건반 모두 같은 방법으로 작업을 마쳤다. 번거로운 작업이지만, 다 하고 나면 개운하다. 가벼워진 건반처럼.

_ 조영권, 이윤희, 중국집

 

이런 문단은 작업일지의 한 대목을 건조하게 옮겨 온 것 같으면서도, 또 꼭 그렇지만은 않은 슴슴한 매력 같은 게 문장 사이사이에 깃들어 있다. 그리고 이 작업 과정의 선명함을 그대로 유지한 채 더 아름다워질 여력도 있다. 언젠가 다시 어떤 일을 하게 된다면, 그때는 나도 일에 대해서 쓸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결국 뭔가 배우긴 배운 것이다.

 

 

 

--- 읽는 ---

위험한 법철학 / 스미요시 마사미

흥미로운 베이지안 통계 / 윌 커트

모든 운동은 책에 기초한다 / 슈테판 츠바이크

읽자마자 수학 과학에 써먹는 단위 기호 사전 / 이토 유키오, 산가와 하루미

Chaeg 2021. 04 / ()(월간지)편집부

200년 동안의 거짓말 / 바바라 에런라이크, 디어드러 잉글리시

우연에 가려진 세상 / 최강신

공학자의 세상 보는 눈 / 유만선

코로나 인문학 / 안치용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신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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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4-22 19: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좋다는 평이 많아 겁도없이 들여놨다가 머리가 굉장히 아파 잘 꽂아뒀어요. syo님의 리뷰읽고 재도전 하렵니다.ㅎㅎ 글고 책 안 써주심 걍 프린트해서 제가 책 만들래요😳ㅋ

붕붕툐툐 2021-04-22 20:41   좋아요 3 | URL
그 책 저도 한 권 신청이요~ㅎㅎ 그니까 쇼님은 그냥 여기 올린 글만 묶어서 바로 출판하심 딱인데~~

반유행열반인 2021-04-22 21:30   좋아요 3 | URL
저도 제가 뽑아서 제본해 보고 싶은 글이 너무 많아서 그냥 인쇄를 포기하고 출판을 기다린지 어언 이 년...밖에 안 됐구나...ㅋㅋㅋ

syo 2021-04-23 10:57   좋아요 3 | URL
여기서 무슨 작당모의들을 하시는 겁니까 ㅋㅋㅋㅋㅋㅋ 다들 흩어져요, 해산 해산! 😎

북다이제스터 2021-04-22 19: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00년 동안의 거짓말> 내용 중 6장과 7장 ‘아동의 세기’와 ‘병리적 모성’이 가장 공감됩니다. 아동(자식) 관련 200년 거짓말을 현대 부모가 거짓인지 알더라도 절대 극복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ㅠㅠ
그만큼 이데올로기가 무서운 것 같습니다.

syo 2021-04-23 10:58   좋아요 2 | URL
북다님 재빠르다.
전 아직 거기까지 못 읽었답니다... 어흑.

han22598 2021-04-22 22: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베이지안 통계를 읽으시네요 ????ㅎㅎㅎㅎ 진심 존경입니다. 통계학 전공자 수준이시네요 ㅎ 책 제목처럼 나도 흥미로웠나 기억해보려 했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ㅠ

syo 2021-04-23 11:01   좋아요 2 | URL
아니예요, 전공자 수준이라니 무슨 말씀을 ㅎㅎㅎ
저 책 읽어보셨나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수학 수준에서 조금 더 나간 정도입니다.
공대생이었어서 확률 랜덤프로세스 이런 거 배웠었거든요.
기억이라는 게 남아 있다면 저 정도 귀여운 책은 읽을 필요가 없었을 텐데, 똥멍충이라서 그만....

감은빛 2021-04-25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나요? 기후위기 때문에 앞으로 점점 봄과 가을은 짧아지고 없어질텐데요. 그냥 사랑타령만 주구장창 하시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긴 여름과 겨울에도 syo님의 사랑타령을 기대하겠습니다. ㅎㅎ

syo 2021-04-26 10:13   좋아요 0 | URL
네, 여름과 겨울이 맞붙는 한이 있어도 저는 사랑타령 하면서 잘 살아보겠습니다 ㅎㅎㅎㅎ
 

 

모양의 모양 7

 

 

 

목련도 남았는데 라일락이 다 피었네요. 오르막길에 향이 온통 어지러운 계절입니다. 바람도 따라 걷는 산책길이 빗방울에 젖으면 또 무언가 향기 나는 것들이 자라나겠지요. 비가 자주 들릅니다. 좋은 소식 전해 들었습니다. 축하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마음은 잘 있습니다. 나는 늘 잘 있는 마음입니다. 약속하지 않는 마음에는 실망도 없는 법이어서 나는 여전히 기대하기보다 기대면서 삽니다. 내일은 잘 모르겠어요. 알 수 없는 것들을 당신은 미워했는데 그 미움이 용케도 나를 향한 미움이 되지 않도록 이 악물고 뭔가를 지켜냈던 그때의 당신을 가끔 생각합니다. 당신이 아니라 당신의 그 이 악문 마음을 생각합니다. 지키려는 마음을 지켜주지 못했던 마음을 생각하고 기대려는 마음에 기대지 못하게 했던 마음도 생각합니다. 왜 그런 생각은 오르막을 오를 때만 하게 되는지, 내리막에서 우리는 왜 내려가는 것 말고는 무엇도 하지 못하는지, 나는 늘 궁금합니다. 하지만 답 없는 질문은 모든 것이 답인 질문이나 마찬가지라서, 질문하는 마음이 더욱 어지러운 계절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은 잘 있습니다. 끼니를 잘 챙기고 커피를 줄였습니다. 미운 것들은 아무래도 알 수 없어서, 그런 마음에 기대지 않고 사는 삶을 생각하지요. 쌀을 안칠 때는 잡곡을 많이 섞으려고 합니다. 크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일수록 작게 실망하니까, 실망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파와 달걀을 아낌없이 써서 상을 차리고, 다 먹으면 바로 일어나 삼십 분쯤 걷습니다. 마을을 에우는 길은 오르막도 내리막도 다 있어서 잠깐을 걸어도 나는 오르락내리락해야 합니다. 오늘부터는 내려가는 길 위에서도 내려가는 것 말고 무엇이든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내리막에도 이 봄은 묻었겠지요. 비가 또 그쳤습니다. 라일락이 다 피었는데 목련도 남았네요.


아득합니다.





  "그곳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한 말이 뭔지 알아? 사랑한다는 말이었어."

  "아마 다시는그 말을 할 수 없으리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겠지."

  "그렇다면 그 말은 뭘까?"

  "다시는 할 수 없는 말."

  "다시는 말할 수 없는 사랑이란 말은 뭘까?“

_ 정영수, 우리들


과거를 잊는다는 것은 물론 무언가를 상실했다는 감각마저 잃는 것이다. 그런데 상실의 감각이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풍요로움에 대한 기억이자 우리가 현재에 길을 찾도록 도와줄 단서들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므로,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익혀야 할 기술은 과거를 잊는 기술이 아니라 손에서 놓아주는 기술이다. 그리고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그 상실 속에서 풍요로울 수 있다.

_ 리베카 솔닛, 길 잃기 안내서


답은 없었다. 대단히 어렵고 풀기 힘든 질문에 인생이 던지는 일반적인 답을 제외하고는. 그 답은 이것이다. 하루하루 그날 할 일을 한다, 즉 잊는 것이다. 잠을 통해 잊기는 이미 불가능했다, 적어도 밤이 될 때까지는 귀여운 유리병 여인들이 불러주던 음악으로 되돌아가기란 불가능했다. 그러니 삶의 꿈으로 잊을 수밖에.

_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 읽은 ---



134. 나만의 사적인 미술관

김내리 지음 / 카시오페아 / 2020

 

공공장소로서의 미술관을 공유하는 우리는 모두 우리 안의 고독한 미술관을 들여놓고 산다. 미술이 하는 일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 마음의 어떤 공백이나 흉터, 얼룩을 작품으로 채우고 보듬고 닦아냈다면, 미술관을 들러 작품을 보고 오는 일은 내 안의 사적인 미술관에 새로운 작품을 거는 일이 된다. 미술이 미술관보다 완벽할 수는 있어도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 책은 김내리 선생님의 사적인 미술관의 도면이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읽어야 할 것은 그가 그 안에 지은 미술관이 얼마나 아름다운 작품을 많이 전시하고 있는지, 그래서 얼마나 아름다운지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안의 미술관을 짓는, 혹은 이미 지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곳에 그림을 채워나가는 방법,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까 아래 예문은 단지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의 사적인 미술관 역시 내게는 공공장소로서의 미술관과 다를 게 없는 것. 나만의 사적인 미술관에 걸릴 작품들은 나의 덧칠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건 언제나 혼자서 할 일이다.

 

막막한 어둠 속에서 절망에 잠길 때가 있습니다. 회색빛 밤하늘에 별이 총총 빛나고 밤이 지나간 후에는 따스한 햇살이 반겨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속 어둠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럴 때 저는 이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마음을 추스릅니다. 그리고 그래,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다짐을 해요.

  몸을 일으켜 주변을 정리하고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합니다. 몸을 움직이면 생각이 정리됩니다.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내 마음을 바꿔봅니다. 내 마음만 달리 먹어야 한다니 조금은 억울한 기분입니다. 그럼에도 순응하고 실낱같은 희망을 품어봅니다. 회색빛 밤 속에 반짝이는 별들이 이토록 크고 밝게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할 수 있게 되길 바라봅니다.

_ 김내리, 나의 사적인 미술관

 

 

 


135. 69_sixty nine

무라카미 류 지음 /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18

 

- 일독(기억도 안 나는 멀고 먼 옛날)

- 재독(기억날 듯 말 듯 한 먼 옛날)

- 삼독(210417)

 

지금 여기에다가 느낀 점을 뭐라뭐라 쓰고 있었는데, 한 서너 줄쯤 쓸 때마다, 음 이건 리뷰에 써먹는 게 좋겠군, 하면서 ctrl+x, ctrl+v로 옮기고 다시 썼다가 또 옮기고, 또 쓰고 옮기고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서 여기에 쓸 말이 없어졌다. 남은 말은 재미있고 허망하다는 것. 뭐니뭐니해도 류는 역시 허망맛이지.

 

  "미안해."

  "?"

  "모처럼 데이트에서 그런 영화를 보게 해서."

  "그렇지만 명작이잖아?"

  ", 어떤 잡지에 소개되어 있더라."

  "과연 필요한 것일까?"

  ", 뭐라구?"

  "그런 명작이 필요 있을까 말이야."

  "무슨 의미?"

  "그 사건 정말로 있었던 일이라며?"

  ",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

  "왜 그런 이야기를 일부러 영화로 만들지? 난 알고 있는데."

  "알고 있다고?"

  "이 세상에는 잔혹한 일이 있다는 걸 난 알아. 베트남이나 유대인 수용소라든지, 그렇지만 난 일부러 그런 영화 만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왜 그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만 할까?"

  나는 할말이 없었다. 천사의 말뜻은 잘 알 수 있었다. '무엇 때문에 보기 싫은 것, 더러운 것을 일부러 보여주는 것일까?' 아기사슴 같은 눈동자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대답할 말을 잃고 만다.

  마쓰이 가즈코는 상냥하고, 예쁘고, 머리 좋고, 사랑받으며 자란 사람이다. <냉혈>에서 묘사된 셰게가 평화로운 생활과 무척 가까운 곳에 잠복해 있다고 해도, 또 그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해도, 역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에 천사가 한 말, "난 브라이언 존스의 쳄발로 소리 같은 느낌으로 살아가고 싶어"라는 것이다.

  샌드위치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채, 우리는 겨울 바다를 뒤로했다.

  키스가 문제가 아니었다.

_ 무라카미 류, 69_sixty nine

 

 

 


136. 그때 너에게 같이 가자고 말할걸

이정환 지음 / 김영사 / 2021

 

그 나이에 그렇게 많은 곳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것. 그리고도 훌륭히 본업을 해나갈 수 있는 것. 그러다가도 언제나 다시 나를 부르는 곳으로 훌쩍 떠날 수 있는 것. 그럴 수 있는 데에 용기와 의지 말고 다른 것이 필요치 않다면, 그걸 입증한 것이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그렇지가 않아서 그럴 수 없었을 것이고, 또 사실 작가 선생님도 그걸 입증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었고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것. 아름다움까지는.

 

 

 

--- 읽는 ---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찾아서 / 존 그리빈

피에 젖은 땅 / 티머시 스나이더

화재 감시원 / 코니 월리스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 이라영

걸어 다니는 어원사전 / 마크 포사이스

처음 읽는 브뤼노 라투르 / 아네르스 블록, 토르벤 엘고르 옌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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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4-18 0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밤의 연애편지? 남의 연애편지를 읽는건 적당히 멜랑꼴리해질 수 있어서 좋네요. ^^

syo 2021-04-18 02:06   좋아요 1 | URL
연애를 꾸준히 팔아서 적당한 멜랑꼴리를 사드리겠습니다ㅋㅋ 😂

2021-04-18 0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8 0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8 0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8 0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21-04-18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니? 가 또 문득 떠오르는 페이퍼네........... ㅋㅋㅋㅋㅋㅋㅋ

syo 2021-04-19 10:19   좋아요 0 | URL
자니 페이퍼 쓰기로 된 거 아니었어? ㅋㅋㅋㅋㅋ

수이 2021-04-19 10:21   좋아요 0 | URL
자니..... 페이퍼 안 쓴 이들 누구누구인지 체크중입니다. 제일 아련한 자니-로 당첨! 쇼님 완료 ✅ 락방님 완료 ✅ 누가 안 쓴 거 같은데....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4-18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고등학생 때 69읽고 따라한다고 학교 급식 거지 같다고 교장선생님한테 항의하는 자보 붙이고 수배됐잖아요 ㅋㅋㅋ저런 달달한 부분이 있었나 싶게 내가 뭘 읽은 건지 ㅋㅋ다시 읽어 볼까...

syo 2021-04-19 10:19   좋아요 1 | URL
그 이야기는 정말 언제 들어도 찰떡이라니까요, 반님 이미지랑.
곧고 굳건하게 잘 자라나셨네요^-^ㅋ

비연 2021-04-18 15: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월의 결과는 어떤가요?

syo 2021-04-19 10:20   좋아요 1 | URL
좋지요~ㅎ

비연 2021-04-19 22:01   좋아요 1 | URL
굿. 8월 홧팅!

Angela 2021-04-21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뷰~~

syo 2021-04-22 18:04   좋아요 0 | URL
해발고도가 지나치게 높은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뭐이래 껀덕지가 없노

 

 

 

1

 

어제가 생일이었다. 생일이 되면 치킨과 커피 같은 각종 먹거리들이 바코드 옷을 입고 쏟아져 들어온다. 카톡으로. 21세기의 힘이다. 멋진 신세계.

 

그러나 이것은 부담이기도 하다. 일단 경조사를 잘 챙길 줄 모르는 살갑잖은 성격을 베이스로 하고, 그 위에 그래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먹튀만은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얹은 후, 마지막으로 백수라는 특수/경제적 양념을 솔솔 뿌리면, - syo의 곤란함 완성.

 

그런 까닭으로 언급하지 않고 지나갔는데, 어떻게든 알게 된 친구들이 늦었지만 축하한다고 난리다. 여러분, 마음은 고맙지만 넣어두세요. 아놔, 또 늙었? 어쩐지 나이를 먹을수록 생일날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욕설의 매콤함과 데시벨이 동시에 커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여러분 그 다정한 성격에 지금 syo에게 이런저런 선물을 보내고 싶어서 그냥 아주 안달복달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침이 바짝 마르는 건 알겠는데, 정중히 사양합니다. 어어, 거기 클릭하시는 분, 멈추는 게 좋을 거예요. 제 말만 듣는다면 우리는 아무 일 없이 이 순간을 지나갈 수 있어요. , 이제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조용히 뒤둘아 서는 겁니다. 그리고 그대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내 눈을 봐요. 그렇죠. 나를 믿어요. 아무 일 없을 겁니다. 다 잘 될 거예요.

 

인간은 인내의 동물입니다. 어떻게든 참아 보시라구요.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 수는 없는 법이잖아요.

 

 

 

2

 

나이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겠지만 syo30대고 앞자리와 뒷자리 수를 더하면 10입니다. 이런 십…….

 

 

 

3

 

매일 글 올리는 분들 멋있다. syo는 읽는 건 쉬운데 쓰는 건 진짜 어려워서, 이렇게 헛소리로 한 바닥 채우는 데만도 거의 두 시간이다. 한 편의 글을 만드는데 투입된 syo의 노동량이 사회적으로 투입된 노동량보다 크기 때문에, 결국 syo는 경쟁에서 도태되고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할 거라는 것이 마르크스 선생님의 분석이다. 저 선생님은 언제 한 번 나한테 다정하게 군 적이 없다. 근데 나는 왜 좋지? , 어쩔 거야, 수염 돼지 페티시…….

 

둥글고 빨간 얼굴은 단순하지만 눈에 띄기 때문에, 대충만 알짱거려도 사람들 뇌리에 선명하게 박히는 듯하다. 그래서 syo라는 놈이 분주하게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것 같지만, 실은 조용한 편이다. 20174월 하순부터 알라딘에서 설치기 시작했으니 이제 만 4년인데 그간 써 놓은 페이퍼가 500개가 안 되고, 심지어 리뷰는 꼴랑 50개에 그친다.

 

그런 이유로 어제도 썼지만 오늘도 써 보려고 이러는 중인 건데, , 도무지 쓸 게 없다. 아침에 일어나 우유를 마시는데 조준을 잘못해서 나랑 티셔츠랑 반반씩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샤워하면서 봄인데 얼굴 털만 밀지 말고 다리털도 한 번 밀어볼까 고민하다가 그냥 밖에 안 나가면 된다는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흡족했다. 떡볶이에 콩나물을 넣어봤다가 한 끼 시원하게 말아먹었고, 푸시업을 잘못했는지 힘만 주면 뒷골이 땡기는 거라 오늘은 그 핑계로 운동을 안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여전히 똥은 잘 나오고 있어서 이거 참 똥 만드는 기계로 태어난 이번 생, 건실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높아졌다. 이게 다다. 이런 인생은 대체 뭘까. 어제는 어제의 쓸 거리가, 오늘은 오늘의 쓸 거리가 생겨야 되는 게 아닐까? 아닐까요? ?

 

 

 

--- 읽은 ---



131. 에세이 만드는 법

이연실 지음 / 유유 / 2021

 

에세이 만드는 법의 장르는? 에세이다. 이 지점이 재미있는 지점이라고, 이연실 선생님은 말한다. 모든 것을 에세이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선생님은 에세이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에세이를 만드는 법으로 하나의 에세이를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에세이 만드는 법을 읽고 남기는 이 글의 장르는?

 

물론 똥.

 

똥이지만, 에세이랑 가장 많이 닮은 똥(……)이라고 해보겠다.

 

모든 것이 에세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에세이를 쓰기가 쉽다는 이야기인 동시에, 좋은 에세이를 쓰기란 굉장히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소재로 누구와도 다른 글을 써내어 누구나 기꺼이 읽게 만드는 일, 그것은 물론 일차로 쓰는 사람의 일이겠지만, 일차 뒤에 이차, 삼차, 사차…… 아오. 그 여러 차차차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겉표지에 이름이 찍히지 않는 사람들의 알려지지 않은 차차차를 통해 독자가 가장 편안하게 읽는 장르, 에세이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주성치 세계의 거리에선 쟁반을 손도 대지 않고 머리에 인 채 배달하는 밥집 아주머니와 앞을 쳐다보지도 않고 물건을 던져 정확하게 정리하는 아저씨들이 곳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밥벌이를 한다. 맨날 화내면서 세금과 임대료를 걷으러 다니는 파마머리 아줌마는 '사자후'를 토할 줄 아는 전사고, 메리야스 입은 복부 비만 아저씨는 자신보다 약한 아이와 서민을 구하려고 목숨을 거는 히어로다. 전혀 우아하지도, 잘생기지도 않았고, 화면 너머로만 봐도 땀냄새 · 발 냄새 · 머릿내 풍길 것 같은 이 평범한 생활인들이 주성치 영화에서는 최고의 무림고수이자 영웅이다.

  에세이 편집자의 작가는 도심의 카페와 집필실, 교수 연구실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거리에, 출근길 만원 버스와 전철에, 시장에, 가게에, 정신 없이 돌아가는 회사에, 이름도 몰랐던 시골 마을에, 세상 방방곡곡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하며 생활하고 있다. 메일함에 꽂히는 완전 원고 너머의 세계에도, 우리가 그토록 차장 헤매는 단 하나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이걸 어떻게 책으로 만들어야 하나, 조금은 막막하기도 하고 내 힘과 노력과 용기를 조금 더 쏟아야 하는 곳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는 툭툭 튀어나온다.

_ 이연실, 에세이 만드는 법

 

 

 


132.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엘즈비에타 에팅거 지음 / 황은덕 옮김 / 산지니/ 2013

 

요 책은 아무래도 조만간 리뷰를 쓸 모양이다. 그래도 그 전에 간단히 말해두자면,

 

하이데거는 쓰레기처럼 연애하고 아렌트는 망한 연애를 붙들고 망하지 않았다고 자신을 속이느라 일생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물론 이 말은 제3자의 입이니까 쉽게 튀어나오는 말이고, 당사자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일생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해서는 안 될 연애의 중요한 특징 중 몇 가지의 표본을 만들었다고 보는 데는 무리가 없다. 타인의 사랑을 비웃고 비난하지는 않겠지만, 비웃고 비난하지 않기 위해 꾹 참아야만 하는 저 사랑이 내 사랑이 되지 않도록 하려고 이런 평을 남기는 것이다. 어차피 그들은 이미 죽었고 이제 사랑은 살아있는 내가 할 일이니까.

 

사실 하이데거 그 양반이야 원래 생각하고 있던 이미지 딱 고대로 연애를 했기 때문에 달리 더 실망하고 말고 할 것이 없었지만, 아렌트의 연애는 오히려 충격. 똑똑해도, 아니 너무 똑똑하기 때문에 오히려 멍청한 사람들이 하는 실수와 같은 실수를 하면서도 자기 같은 똑똑이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게, 그런 게 있나 보다. 모르지, syo는 안 똑똑이니까. 하여간 나처럼 실망하는 사람을 위해 역자 선생님이 후기에 남긴 말.

 

아렌트의 경우, 하이데거와의 관계에서 시종일관 보여주는 극적이고 고통스러운 자기모순은 그녀의 사상에 경외심을 품어온 독자에게 일종의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반유대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전체주의의 기원, 그리고 나치즘과 파시즘을 포함한 전체주의 체계를 그토록 논리적으로 비판한 이 유대인 사상가가 어떻게 나치즘 이념에 찬동하고, 12년 동안이나 나치당적을 유지한 하이데거를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두둔하며, 사랑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런 질문은 아렌트에게는 애초에 무의미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있어서 하이데거는 사랑하는 연인의 의미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고, 철학이나 정신(Geist) 그 자체, 혹은 첫사랑이나 순수 그 자체와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_ 엘즈비에타 에팅거, 한나 아렌트와 마틴 하이데거

 

솔직히 그냥 하는 말 같다. 한나도 연애할 땐 우리랑 똑같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바보짓을 했다- 라고 했었으면 더 쿨하고 좋았을 것 같다. 사실 사랑할 땐 종종 바보가 되는 우리들도 저런 핑계를 댄다. 걘 달랐어. 걔는 나한테 그냥 여자가 아니었다고. 그리고 끝내 자니?’를 하곤 한다.

 

 

 


133. 메이지 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박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0

 

예전에는 참 젊은이들도 대단했던 것 같다. 이런 말하면 웃긴 게, 사실 절대적 기준으로 보면 요즘 젊은이들의 역량이 그때 그 젊은이들의 몇 곱절은 된다. 요시다 슈인이 아무리 잘나 봐야 토익 치면 300도 받기 힘들 거고, 사카모토 료마가 아무리 뛰어나도 코딩 한 줄 할 줄 모를 것. 그런데도 20세 근처에서 이미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젊은이들의 시대인 100년 전, 150년 전에 비하면 요즘은 학문, 정치 분야에서 젊어 이름 날리기란 굉장히 어렵다. 그렇게 젊은이들이 아는 것도 알아야 하는 것도 많은 시대가 더 발전된 시대겠지만, 그래서 이게 지금 더 좋아지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서술이 경쾌하고 분량 조절도 나쁘지 않아서 읽기 좋았다. 이 최후의 사무라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한 권으로 다룬 두꺼운 책들도 많겠지만, 사실 뭐, 바다 건너 여기서 그런 두꺼운 책들까지 읽는 건 취미가 거기에 닿는 사람들의 몫이겠지. 나는 이 책으로 만족.

 

메이지유신은 그 자체로도 혁명사의 흥미로운 사례다. 거대한 변혁을 수행하면서도 기존사회의 어떤 부분은 잔존시켰고 연속성을 중시했다. 천황제의 온존은 대표적이다. 그 과정은 격렬하지만은 않았고 매우 타협적이었다. ‘연속하면서 혁신한 것이다. 본격적인 계급투쟁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고, 외세와의 전쟁도 광범한 내전도 회피했다. 민중 대다수는 변혁 과정을 관망하는 데 그쳤고, 막부는 서양 열강과 전쟁하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

  한편으로 메이지유신은 일본의 한계와 약점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그 강렬한 일본우월주의는 끊임없이 주변 국가인 조선, 중국과 마찰을 일으켰고, 끝내는 전 세계를 적으로 돌려 자멸했다. 우월주의는 콤플렉스의 다른 면이다. 천황에 대한 맹신은 사회 전체를 체계적으로 권위주의화했다.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는 근대 일본의 눈부신 성취에 비해 아직도 일본 사회에서 초라한 존재다.

_ 박훈, 메이지 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 읽는 ---

나만의 사적인 미술관 / 김내리

그때 너에게 같이 가자고 말할걸 / 이정환

피에 젖은 땅 / 티머시 스나이더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찾아서 / 존 그리빈

69 / 무라카미 류

비유물론 / 그레이엄 하먼

한국 산문선 7 / 박지원 외

흥미로운 베이지안 통계 / 윌 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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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4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4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4-14 15:2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syo님 나이를 공개한거임??? ㅋ 축축축~~~~하해용~~~~ 같이 늙어가니 넘 좋아용. 젊은 그대에게 늙어간다 해 미안해용. 근데 이리 쓰니 기분이 좋아져서리^^;;;;
웃긴 글. 잼난 글. 시적인 글. 잘 쓰는 syo도 멋있다요. 글이란 칼을 어쩜 이리 자유자재로 휘두를까나. 늦었지만 케익 투척🎂🍰🧁아스크림도🍧🍨🍦

syo 2021-04-14 16:04   좋아요 4 | URL
살 엄청 찌겠는데요? ㅋ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젊은이는 안 늙나요 어디. 3살짜리도 같이 늙어가는 게 물리 법칙입니다.
어차피 늙는 거 초롱초롱하게 늙어가자구요.

청아 2021-04-14 15: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났지만 생일 축하드림요!!🎂
주성치 말이 나왔으니 영화에 나온 사탕 어렵게 구했어요!🍭 요기요^^* 이거 드시고 앞으로도 많이많이 써주시길 바람요!🙋‍♀️

syo 2021-04-14 16:05   좋아요 3 | URL
ㅎㅎㅎㅎㅎ 왜 이렇게들 단 거를 투척하시지? 요즘 살이 자꾸 쪄서 큰일인데.
미미님도 지금처럼 열심히 꾸준히 써주셔요. 저는 어떻게든 살아보겠습니다....

수이 2021-04-14 15:4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쇼 오빠 열네살 수연이라고 합니다 쇼오빠도 나이 까서 저도 나이 깠습니다. 친구가 쇼오빠 생일인데 선물 줘야하지 않을까 하고 어제 연락이 왔는데 제가 그걸 깜박 못 보고 오늘 아침 느즈막히 확인을 하고 어떻게 해 했답니다. 근데 하루 지났으니까 그냥 쌩까 했어요 너무 몰인정했나요;; 그랬더니 아니야 줘야 할 거 같아 하더니 주었나봐요 넌 쇼오빠 생일인데 뭐 안 주니 그래서 아 난 그냥 쌩깔래 오빠도 내 생일에 그냥 생일 축하해 하고 말았던 거 같아 했죠 하지만 오빠 실은 제 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거 잘 아시죠. 내년 오빠 생일에는 제대로 챙겨줘야겠다 싶어서 달력에 커다랗게 쇼 생일 해놨어요. 이러고 또 내년에 깜박할지 모릅니다만 내년에는 근사한 선물을 드릴게요. 오빠는 할 일이 참 많을텐데 대체 언제 이렇게 책 읽고 글 쓰고 공부하시고 그러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사실을 말해봐, 넌 쇼가 아니지?) 그럼 오빠 한살 더 나이 잡수셨으니 몸 건강에 더 신경쓰시고 슬럼프도 얼른 내다버리시고 (슬럼프 왔다고 그랬던 거 같은데 그래도 읽고 쓰고 다 하시네요 거짓말은 참) 유쾌하고 상쾌하고 밝은 쇼 할아버지 아니 오빠가 되시기 바랍니다. 해피뻘스데이투유!!!!

syo 2021-04-14 16:24   좋아요 8 | URL
안녕, 열네 살 수연아? 우리 수연이 오빠가 생각했던 것보다 한참 어려서 오빠 당황했네? 원 녀석.....

오빠가 100일만에 걷어차인 첫사랑 말고 그 다음 사랑이랑 한 2년쯤 만나고 결혼했으면 지금쯤 수연이 만한 딸이 있을 건데, 오빠가 말 놔도 되지? 어른이 말하면 안 되도 그냥 되는 걸로 하렴. 그게 조선 살아가는 방법이란다.

우선 오빠 생일은 딱히 챙겨주지 않아도 괜찮단다. 오빠는 앞으로 한 80년 정도 더 살 작정인데, 매번 생일 챙겨 먹을 생각을 하니까 벌써부터 진저리가 나는 것 같아. 그러니까 내년에도 대충 그냥 뭉개면 된단다. 뭐 사는 게 다 그런건데, 우리 수연이도 좀 자라면 알게 될 거야.

오빠가 수연이 생일에도 그냥 축하해 하고 넘어간 게 미안해서 몇 가지 좋은 이야기를 해 주려고 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니까 새겨 들으렴.

우선 우리 수연이가 내년이면 열다섯이 될 거고, 아마 그때쯤 되면 세상 모든 게 다 틀려먹은 것 같고,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만 삐뚤어지고 싶고 겁나 이상한 시가 쓰고 싶어지기도 할 거야. 어른들은 그걸 중2병이라고 부른단다. 그런데 수연아, 너도 10년쯤 지나보면 알게 되겠지만, 틀려먹은 건 열다섯의 너고 열다섯의 너를 스물다섯의 너조차 이해하지 못할 거란다. 써놓은 시는 겁나 쪽팔릴 거니까 절대 인터넷 같은데 올리지 말고 일기장에 고이 적어놨다가 불싸지르렴.

그리고 그 고비를 잘 넘기면 이제 고등학생이 될 텐데, 학생의 본분은 공부란다. 연애 같은 건 대학가서 하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오로지 공부, 공부 뿐이다.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비법을 알려줄게. 이거 남들 잘 모르는 건데. 바로 국영수를 중심으로, 교과서 위주로 하는 거란다! 놀랍지? 우리 수연이 오빠 말 듣고 공부 열심히 하려무나. 안 그럼 한 20년 뒤쯤에 오빠처럼 백수 된다?

마지막으로, 엄마 말씀 잘 들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단다. 오빠 때는 말이야, 엄마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 있었어.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단다. 항상 엄마 아빠 말씀을 잘 따르는 청소년이 되려무나. 너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지 말렴.

오빠가 말이 너무 많았지? 생일 축하해줘서 고마운 마음에 말이 길었네. 앞으로는 우리 수연이 말대로 유쾌하고 상쾌하고 밝은 와중에 닥칠 때 닥칠 줄 아는 쇼 할아버지가 되도록 할게. 그럼 안녕.

라로 2021-04-14 17:42   좋아요 3 | URL
아이 이거 뭐야! 페이퍼보다 더 재밌어.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암튼, 생일 축하해 (왕누나라도 반말로 하면 안 되지요?) 직접 만나서 축하해 주고 싶은데 우리 달덩이처럼 하얀 이쁜 토비님!! 살다보면 그럴 수 있는 날이 올까요???

syo 2021-04-14 17:22   좋아요 2 | URL
이런, 라로님 사람 잘못보셨네요.
저는 하얗고 이쁘지 않구요. 굳이 따지자면 거무튀튀한 편입니다.
그치만 약간 둥글긴 한 것 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로 2021-04-14 17:43   좋아요 2 | URL
댓글 달았다가 삭제하고, 달았던 것도 좀 수정했어요.. 무례한 것 같아서,, 물론 토비님 그렇게 생각 안 하겠지만,,,^^;;

syo 2021-04-14 17:46   좋아요 2 | URL
응? 반말이 존댓말이 됐네 ㅎㅎㅎㅎ 뭐하러!
원래 삭제한 댓글은 보지도 못했어요.

‘야이새끼야‘ 안 했죠? 그럼 딱히 무례한 거 아니었을 거야 ㅋㅋㅋㅋ

겨울호랑이 2021-04-14 15: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syo님 어제 생일 잘 보내셨나요? 늦었지만 생일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