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1

 

읽기도 시원찮고 쓰기는 귀찮다고 징징댔더니, 북플이 네 과거의 기록을 보라며, 작년 오늘의 syo 역시 슬럼프 운운하며 징징거리고 있었음을 알려왔다. 심지어 그때는 무려 무기력+비참+우울+절망 씩이나 들먹여가며! 아우슈비츠냐고……. 읽었더니 쪽팔려서 슬럼프가 절반쯤 달아난 것 같다. 정말 답도 없고 손도 많이 가는 놈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놈 건사하며 이런 계절을 9번씩 넘겨낸 여친이시여, 아 당신은 도대체…….

 

 

 

2

 

그냥 10월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너무 열심히 사느라 숨 돌릴 틈도 없는데 나랑 못 놀아준다고 미안해하기까지 하는 사람한테 미안한 말이지만, 그냥 뒹굴고, 생각하고, 반성하고, 계획하면서 남은 열흘 남짓을 태우기로 했다. 그러다 다시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세상에 깔리는 날이 오면 일어나서, 생각한 것들, 반성한 것들, 계획한 것들과 함께 또 걸어야겠다.

 

 

 

3

 


나는 어려서부터 힘내라는 말을 싫어했다힘내라는 말은 대게 도저히 힘을 낼 수도낼 힘도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서야 다정하지만 너무 느지막하거나 무심해서 잔인하게 건네지곤 했고나를 힘없게 만드는 주범인 바로 그 사람이 건넬 때도 많았다나는 너에게 병도 줬지만 약도 줬으니힘내힘들겠지만 어쨌든 알아서힘내세상에 "힘내"라는 말처럼 힘없는 말이 또 있을까하지만 이때만큼은 "힘내"라는 말이 내 혀끝에서 만들어지는 순간매일매일 술이나 마시고 다니던 그 시간들 속에서 사실 나는 이 말이 듣고 싶었다는 걸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다누가 무슨 의도로 말했든 상관없이그냥 그 말 그대로힘내.

김혼비아무튼 술

 

하루에 몇 번씩 힘내라는 말을 하면서, 나는 내 생각을 한다. 힘을 내어 자기 앞에 던져진 바윗덩어리 같은 것들을 휙휙 치우는 그 사람이 아니라, 사실 나는 내 생각을 한다. 그 사람이 웃어야 내가 웃기 때문에, 그 사람이 웃기를 바라는 것은 사실 내가 웃고 싶은 것이다. 그 사람이 울면 내가 울기 때문에, 그 사람이 울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사실 울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다. 그 사람은 강하고 나는 약해서, 밀물의 해변에 선 작은 게처럼, 그 사람이 밀고 들어오면 나는 온통 젖기 때문이다. 힘내라는 말은, 밀물의 큰 파도에다 던져 넣는 한줌 설탕과 같이 값싸고 약하다. 썰물로 물러나는 것은 바다의 일이고, 사실은 지구와 달과 우주와 중력이 하는 일이다. 그 크고 강한 힘들이 잠깐 틈을 내줄 때, 나는 갯벌로 들어가 이것저것 주워 나온다. 그리고 다시 비바람과 함께 큰물이 밀려들어올 때면, 성큼 물러나 외친다. 힘내. 물살에 녹아 바다가 듣기를 바라며. 발이 젖는다.

 

 

 

 

--- 읽은 ---

+ 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 박찬국 : ~ 267

+ 사회과학은 처음입니다만 / 이시카와 야스히로 : 126 ~ 231

+ 그렇게 물어보면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 / 김호 : 143 ~ 271

 

 

--- 읽는 ---

- 사서 / 옌롄커 : 202 ~ 383

- 작은 마음 동호회 / 윤이형 : ~ 130

- 마르크스 철학 연습 / 한형식 : ~ 82

- Do it! 점프 투 파이썬 / 박응용 : ~ 21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19-10-22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뒹굴고, 생각하고, 반성하고, 계획하고...syo님의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태운다, 는 그런 것이군요. 남은 열흘 남짓 잘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syo 2019-10-22 13:45   좋아요 1 | URL
10월의 마지막 날이 성큼성큼입니다. 반님도 짧은 가을 사르르 미련없이 불태우시길 바랄게요.
 


놀라게 하지 마라 식물놈아



1


하루 종일 쉬는데도 쉬고 싶다. 슬럼프 올 때가 되긴 했지.

 

비트라는 붉은 식물체가 있다. 이를 갈아 마시면, 소변도 좀 붉어진다. 인터넷에는 혈뇨인줄 알고 깜짝 놀라서 병원에 갔다가 범인이 비트라는 사실을 의사 면전에서야 깨닫고 얼굴빛이 비트가 되서 돌아온 사연이 좀 있다


검색부터 해 봐서 다행이다.

  



2


산과 바다 그리고 이야기 3

 

에서 해 뜨는 방향으로 일만 사천삼백 리를 가면 산 없이 이어지는 끝의 초입에 닿는다. 끝의 끝까지 줄기를 따라 열일곱 산이 차례로 섰다. 산과 산 사이에 작은 평야가 여럿 놓였으니, 그 가운데 누룩 없이 술을 빚고 음식에 당을 넣지 않는 마을이 있다. 어떤 이는 네 번째 산과 다섯 번째 산 사이 평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열 번째 산과 열한 번째 산 사이 평야라 한다. 열셋과 열넷 사이라 하는 이도 있다. 다녀온 이들마다 말이 다르다. 마을의 이름을 푸는 말들 또한 분분하다. 겨울이면 나그네의 발이 멎는다 하여 冬止라 하는 이가 있고, 함께 이른다 하여 同至라 하는 이가 있다. 마음을 얼려 전한다 하여 凍志라 하는 이도 있다. 분분한 말들 가운데 바른 의미를 택할 길 없다. 하여 우선 음을 취하여 동지라 표한 후 다음과 같이 기록을 남기니 후대가 논의한 후 고쳐 상신하길 원한다.

 

동지는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길다. 마을을 둘러친 산에 큰 동굴이 있는데, 여름에도 발을 담그면 온몸이 떨리는 차고 얕은 물이 동굴 바닥을 흐른다. 동굴 안에 방 같이 생긴 작은 동굴들이 무수하여, 마을에 새로이 정착하는 이나 마을에서 태어나 아홉 해를 넘겨 자란 아이들에게 작은 동굴이 하나씩 점지되는데, 그럼에도 인간의 호흡으로 큰 동굴을 다 채우지 못한다. 누구도 다른 이의 동굴을 알지 못한다. 동굴을 얻으면 계절마다 열흘을 들어 쓴 나물과 굳은 고기를 씹으며 거한다. 겨울에는 닷새를 거한다.

 

짧은 여름밤이 뜻하지 않게 길고 가슴에 열기가 들어 차 잠 못 이루는 이들은 자기 몫의 작은 동굴로 몰래 길을 잡아 간다. 차고 얕은 물에 발을 담그고 온몸을 떨며 동굴의 빈 벽에 대고 마음에 묵힌 이름을 크게 부르고 나면 메아리를 휘감고 새벽길을 되밟아 돌아온다. 그러면 그날은 잠을 이룬다.

 

여름 내 메아리에 메아리를 입힌 동굴에 겨울이면 고드름이 열린다. 따서 물 항아리에 담가 녹이면 물에 감미가 돌고 마시면 대개 취한다. 이 물로 음식을 만들고 술을 빚어 마을에 낸다. 거하는 이들과 열일곱 산을 넘는 객들이 마을 복판에 큰 불을 피우고 모여 먹고 마시는데 대개 취한다. 그 가운데 오직 한 사람 조금도 취하지 않는 이가 있는데, 취하지 않은 이는 술 빚고 음식 만든 이가 여름밤 내내 동굴에서 목 놓아 부른 이름이 자기 것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하여 凍志라 하는 이가 있는 것이다.

 

이름 불린 이는 그 밤 사람들과 함께 취한 척 즐기다 조용히 자신의 동굴에 들어 고드름을 따서 물에 녹인 후 이름 부른 이의 침대에 가져다 놓는다. 이름 부른 이가 돌아와 그 물을 마시는데 취하면 모든 일을 잊는다. 취하지 않으면 그 그릇을 그대로 들고 이름 불린 이의 방으로 길을 잡는다. 이름 불린 이는 이름 부른 이가 만든 물을 갖고 자신의 방에서 기다린다. 그 방에서 두 사람은 두 그릇의 물을 섞어 한 그릇으로 만든 후 나누어 마시는데, 그제야 서로 취한다. 하여 同至라 하는 이가 있는 것이다.

 

아침이면 두 사람은 마을에 나와 전날의 연회를 정리하며 고한다. 한 그릇에 담은 물을 사람들에게 나누는데 그 물을 마시고 축하하면 숙취가 달아난다. 나그네들이 보건대 아름다워, 열일곱 산 넘을 뜻을 버리고 이 마을에 발을 멎는다 하여 冬止라 하는 이가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이 기록을 남기니, 이름에 관하여 후대가 숙고한 후 고쳐 상신하길 다시 원한다.

 

 

 

--- 읽은 ---

+ 우리가 사랑한 모든 책들 / 제인 마운트 : 113 ~ 238

+ 한 권으로 끝내는 파이썬 / 김명호 : 202 ~ 400

+ 옥상에서 만나요 / 정세랑 : 90 ~ 277

+ 데카르트와의 1시간 / 이명곤 : ~ 126

+ 호랑이 발자국 / 손택수 : 49 ~ 115

 

 

--- 읽는 ---

- 현대철학의 광장 / 조광제 : ~ 130

- 서서비행 / 금정연 : 61 ~ 258

- 소로의 일기 / 헨리 데이비드 소로 : 151 ~ 258

- 하룻밤에 읽는 근현대 세계사 / 미야자키 마사카츠 : ~ 123

- 사서 / 옌롄커 : ~ 202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5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19-10-21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으로 꼭꼭 눌러 오래 읽었습니다. 꾹꾹 눌러 썼을 것 같은 글이라서요. x싸게 만드는 비트가 나빴네. 식겁 하셨겠네요. ㅋㅋㅋ

syo 2019-10-21 12:00   좋아요 1 | URL
전 그게 2진법식 데이터 단위이거나 기껏해야 세제 이름인 줄 알았는데, 먹는 게 있을줄은 몰랐네요. 제가 아무리 빨간 걸 좋아한다지만 저것까지 빨갛다니.....

반유행열반인 2019-10-21 12:40   좋아요 0 | URL
저 되게 한참 있다가 비트 갈아 먹은 게 syo님이 아닐 수도 있잖아 그럼 막 웃을 일은 아니잖아 했네요. 때가 쏙 비트 말고도 8비트 16비트 정우성 나오는 비트도 있습니다. 되게 옛날 사람이네 나...

syo 2019-10-21 14:44   좋아요 1 | URL
제가 갈아먹었습니다. 다행이지요. 콜레스테롤이 높다고 그래서 비트를 먹고 있사온데, 뜻밖의 붉은 친구를 만나 당황을 하였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10-21 14:47   좋아요 1 | URL
건강 유의하세요. 피돈햄치 녀석들 맛있으면서 혈관 청소까지 해주면 좀 좋을까...그러나 모든 게 주는 것(맛or건강)이 있으면 또 주는 것(혈관의 기름기or붉은 놀람)이 있군요...

다락방 2019-10-21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금정연 책은 재독하는 거에요?

2. 저 산과 바다 그리고 이야기3 같은 글은 도대체 어떻게 쓰는거에요? 신기...

syo 2019-10-21 12:02   좋아요 0 | URL
1. 네, 초심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ㅎㅎ

2. 저것 때문에 문체가 흔들리고 있어요.....
˝서쪽 변방에 자라는 검붉은 식물이 있다. 이름을 비트라 한다. 복용하면 붉은 소변을 본다.....˝

cyrus 2019-10-21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에 이상이 없어서 다행이에요... ^^;;

syo 2019-10-21 20:2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그러게나 말입니다. 남일같지 않다는 그 표정....

북다이제스터 2019-10-21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트 들어간 음식 좋아하는데요, 특히 보르쉬요. 요즘 동대문에 보르쉬 파는 음식점이 많이 생겼습니다.
만약 안 드셔 보셨다면 정말 강추합니다. 특히 쌀쌀한 날씨에 딱 좋습니다. ^^

syo 2019-10-21 20:29   좋아요 0 | URL
보르쉬라는 음식에 대해 처음 들었습니다.
검색해 봤는데, 빠아아아아알갛네요.
맘에 들었습니다 ㅎㅎㅎ 감사합니다.

stella.K 2019-10-21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번의 이야기는 참 고적하고 옛스럽군요. 멋있습니다.ㅎ
비트가 그런데가 있었군요.
서울은 언제 올라오나요?
저는 처음 항산화 비타민제 좀 놀랐는데.
몸에서 나온 액체가 너무 노래서. ㅋㅋ

syo 2019-10-21 20:3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비트놈들, 한 번 알았으니 다시는 놀라지 않을겁니다.
서울은, 빨라야 올 연말, 내년 초에 올라갈 것 같습니다.
아직 발령이 안 나서요.

유부만두 2019-10-21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트 껍질 벗기고 칼로 썰면 핏물이 흥건합니다.
찜기에 찌면 붉은 물이 뚝뚝....

드시면서 (흰옷에 물들면 어머님이 마워하심) 스티븐 킹을 읽으세요. 맛은 없습니다만;;;

syo 2019-10-21 20:31   좋아요 0 | URL
으..... 비트 너 고기였어??

비트에 걸맞는 작품추천 감사합니다. 어떤 의도로 그러셨는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Falling Slowly

 

 

1

 



데리다 관련해서 요런 4권의 책을 동시에 돌리고 있지만, 1을 모르겠다. 23도 아니고 1. 다시 생각해보니 1은 알겠다. 1. 아무래도 데리다의 해체라는 것은, 독자가 품고 있는, 나는 글을 읽을 줄 알아 헤헤- 하는 멍청한 믿음과 자신감을 싸그리/와장창/갈가리 해체시켜버리겠는 뜻인 듯하다. 발음할 수 있다고 다 읽을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인간극장이 들어 있어서 그나마 읽을 수 있는, 평전 속의 데리다는 아직도 후설에 푹 빠져 있다. 후설. 현상학의 창시자, 후후후후후후설 쌤. syo는 후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1. 후설 하면 의식의 지향성이다.

2. 의식의 지향성이란, 의식은 늘 뭔가를 지향한다는 뜻으로서…….

3. 뜻으로서…….

3. 그러니까, 에, 그런 뜻으로서…….

3. ……(울먹울먹).

 

실은 저 정도는 아니다. 이 책을 읽을 단계 정도는 된다


후설의 현상학 / 단 자하비 지음 / 박지영 옮김 / 한길사 / 2017


50페이지 가량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은 시종일관 이런 식이다.

 

여기서 결정적 문제는 다음과 같다지속하는 하나의 자기 동일적 대상에 대한 지각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그것은 그저 감각 다양의 존재일리는 없다실제로 후설은감각들은 특정한 의미를 통해 해석되고 파악되며나에게 대상에 대한 의식을 가져다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객관화하는 파악 작용임을 암시하고 있다물론 이러한 의미는 작용-질료이고지각적 대상은 바로 감각들을 포착하여 해석함에 의해 현출되게 된다그리고 우리가 체험한 감각들(지각의 경우)을 초월하여 대상에 향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객관화하는 해석 작용 때문에 가능하다다른 말로 하면대상의 현출이 구성되는 것은 감각들과 해석양자 간의 상호작용에 놓여있다하나의 펜을 본다는 것은 객관화하고 종합하는 해석 작용을 가지고서 감각 다양을 붙잡아 파악하는 것이다. (51-52)

 

이쯤 되면 책 산 사람에게 찐하고 감미로운 빅엿의 맛을 꼭 선사하고 말리라는 옹골찬 의지가 느껴진다 하겠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와중에 또 뭔가 알듯 말듯 하다! 정말 한 페이지에 5분을 쏟아 붓고서라도 알아먹고 지나간다는 느낌으로 읽으니, 소득이 조금 있다. 한 달 전쯤 같은 50페이지를 읽었을 때, 정말 이게 무슨 DogJobSound인가 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조금은 눈이 트이는가?

 

그러나 그게 정말 안 것일까? 그리고 여기다가 내가 알게 된 것을 쓰는 게 옳은 일일까?

 

그러니까 만일 syo가 이것에 대해 쓴다면, 결론적으로 후설이 쓴(1) 것을 읽은(1) 단 자하비가 쓴(2) 것을 읽은(2) 번역자 박지영 선생님이 쓴(3) 것을 읽은(3) syo가 쓴(4) 것을 서재친구님들이 읽게(4) 되는 것인데, 이 길고 긴 씀-읽음의 진주목걸이 속 어느 한 구슬만 금이 가도, 이제 완전 가족 오락관 되는 것이다. (똑똑) ~~~! ? 지향성! (끄덕끄덕) (똑똑) ~~~! ? 쥐났어! (끄덕끄덕오케이) 정답! 쟤 머리에 쥐났대요!(불운하게도 이건 사실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저 연쇄 가운데 읽은쓰리와 쓴포가 가장 불안하다…….

 

결국 철학책을 읽고 알아낸 것에 대해 쓰는 것은 알라딘에서 syo가 맡은 작업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 서재에서 그런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건 뭐 로쟈님이나 겨울호랑이님이 하시겠지. 여기 들르는 분들은 아마도 딱 syo가 낑낑대는 것까지만 보는 것을 원할 것이다. 그러니까 동물원 우리에 갇힌 원숭이가 유리병 속에 든 바나나를 먹고는 싶은데 병뚜껑 여는 법을 몰라 애꿎은 유리만 끊임없이 핥아먹는 장면을 보며 즐거워하는 관객들처럼. 그러나 인간 동지들, 당신들도 대체로 이 자본주의 사회라는 거대한 우리 속에 갇혀서 통장에 스쳐지나가는 월급을 꺼내지 못해 울고 싶은 또 하나의 원숭이에 지나지 않는다오. 그러니 이리 들어와서, 이 유리병 좀 열어주시오……. 으헤헤, 바나나 맛있겠다. 우끼끼…….

 

 

 

2


누구든 책에 밑줄을 긋는 자는 하나의 질문과 대면하게 된다. "왜 하필 그 문장에 밑줄을 그었는가?" 참으로 심플하고도 당연한 질문이지만 막상 답을 하기는 쉽지 않다그것은 '왜 살아가느냐/사랑하느냐'에 맞먹을 정도로 한없이 존재론적인 질문이니까마음에 들어서멋진 문장이라서그건 마치 밥을 먹으니까 살고예쁘니까 사랑한다는 대답과 비슷하다물론 딱 떨어지는 대답이 있을 리 없다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책을 읽고 또 밑줄을 긋는다자신의 욕망을 마주하며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타인의 세계를 끌어안으려는 마음이기도 하다읽어 넘기면 그만인 문장들에 줄을 그어 되새기고언젠가 다시 펼쳐 읽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낯모르는 이의 밑줄을 만났을 때그의 마음을 헤아려보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그건 차라리 사랑이 아닐까?

금정연서서비행

 

다른 자리에서 밝힌 바 있지만(이렇게 말하니까 뭔가 대단한 사람 된 것 같아서 신난다), syo의 초심은 금정연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서평가 금정연 이미테이션 금정역이 되는 것이 바로 syo의 꿈이었다. 그야말로 청운의 꿈이다.

 

그런 선언을 한 뒤로 요런저런 글을 쓰며 알라딘에 찰싹 붙어 지낸 것이 벌써 2년도 더 지났다. 그 동안 1,000권에 달하는 책을 더 읽었다. 그런데 어쩐지, 예전에 쓴 글이 더 재밌다. 더 유익하다. 망했어요.

 

이렇게 되면 책의 효용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첫째, 책은 읽을수록 멍청해진다. 둘째, 그나마 저 1,000권이라도 안 읽었으면 지금쯤 버버대며 코나 훌쩍거리고 있었을 것을 책이 살렸다. 어느 가설을 채택하건, 실험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책을 안 읽고 2년을 보내보는 것. 그래서 앞으로 2년 동안 책을 전혀 읽지 않기로 굳세게 결심했다.

 

그 결심이 얼마나 굳세었는지 번복하기까지 무려 15초가 걸렸다. 15초 동안 심사숙고해보았는데, 2년 동안 할 게 도무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지금처럼 천천히 멍청해지기로 했다. 우리글 필력이 퇴보하여 개불 수준이 되기 전에, 영어나 일본어 같은 것을 조금씩 공부해 놓으면 되지 않을까. 이가 없으면 잇몸이고, 꿩 대신 닭이고, 한국어가 나가리나면 영어로 하면 되지. 근데 한국어랑 영어랑 뭐가 잇몸이고 뭐가 꿩이지?

 

뭐 이런 생각들을 진지하게 하고 있는 걸 보니, 멍청해지고 있는 것만큼은 빼박 사실인가 보다. 우끼끼, 이 뚜껑 어떻게 열지?

 

멍청이시여 천천히, 제발 천천히…….

 

 

 

3

 

산과 바다 그리고 이야기 2

 

에서 서쪽으로 사천팔백 리를 가면 숲으로 둘러친 마을에 닿는다. 이름을 수수垂睡라 한다. 그 고장 사람들은 스스로 잠숲골이라 부른다. 씨와 백씨가 서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다. 노래를 잘한다. 삼백 여 호가 개울을 따라 집을 짓고 사는데, 민물고기는 먹으나 새는 노래한다 하여 잡지도 먹지도 않는다. 낚싯대를 쓰고 그물은 치지 않는다. 낚시 바늘은 길하지 않다 여겨 택하지 않지만 물것들이 어리석어 바늘 없는 줄을 문다. 하여 굶는 사람이 없고 음식을 남기는 사람도 없다.

 

숲에는 자장가를 불러주는 나무가 자란다. 이 고장 밖에서는 찾을 수 없으므로 이름을 수수목이라 한다. 바람이 줄기를 감아 돌면 큰북을 때리는 소리가 난다. 가지를 흩으면 거문고 현을 뜯는 소리가 난다. 잎사귀의 몸을 훔치면 잎과 잎 사이에서 류씨와 백씨 옛 명창들의 소리가 난다. 소리는 화창하면 높이 울고 궂은 날엔 낮게 떤다. 나무를 베어 침대로 쓰면 불면이 낫는다. 침목으로 쓰면 악몽을 꾸지 않는다.

 

마을에 거하는 사람들은 밤마다 생을 마칠 날이 언제인지 하늘에 묻는 점을 치고, 때가 되면 스스로 숲으로 걸어 들어간다. 숲에 들어간 사람은 다시 걸어 나오지 않는다. 가족 중 하나가 숲으로 들어가면 남은 이들은 곡기를 끊어 사흘을 쉬지 않고 노래한다. 노래가 끝나면 민물고기를 고아 먹고 뼈를 개울에 버린다. 개울이 숲에 닿으면 뼈에서 싹이 튼다. 싹이 자라 나무가 되면 바람이 불 때마다 떠난 이의 소리를 낸다. 그런 이유로 나무를 골죽骨竹 혹은 골현骨絃이라고도 부른다.

 

산 사이 골짜기로 쉬지 않고 떨어지는 바람이 있어 노래가 멎는 일이 없다. 숲이 앞서 부르면 류씨와 백씨가 따라 부른다. 하여 잠숲골에는 먼저 간 이가 그리워 잠 못 이루는 사람이 없다.


 

 

--- 읽은 ---

+ 황혼의 기슭 새벽의 하늘 / 오노 후유미 : 243 ~ 485

+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 / 크리스 하먼 : 89 ~ 167

+ 20세기 중국사 / 알랭 루 : 275 ~ 431

 

 

--- 읽는 ---

= 서서비행 / 금정연 : ~ 61

= 한 권으로 끝내는 파이썬 / 김명호 : ~ 201

= 호랑이 발자국 / 손택수 : ~ 49

= 후설의 현상학 / 단 자하비 : ~ 51

= 그렇게 물어보면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 / 김호 : ~ 143


댓글(8) 먼댓글(0) 좋아요(6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19-10-18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과 바다, 그리고 이야기!!
아름답네요^^

로쟈님
겨울 호랑이님!!
정말 무섭죠?

저는 syo님도 무서워요**

syo 2019-10-18 09:49   좋아요 1 | URL
로쟈님과 호랑이님은 정말 무서운 분들이구요.
저는 무서운 척하는 원숭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겁내지 마세요 페넬로페님, 물지 않아요. 물 줄 몰라요.....

2019-10-18 0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8 0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8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8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뒷북소녀 2019-10-18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이 글 읽었는데도 1도 이해 안돼요. 데리다 후설 덜덜덜

syo 2019-10-18 23:31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데리달달달 후덜덜덜.....
 

 

가지 맛을 준비해 보았사온데

 

 

짠맛

 

정의definition는 속인다 (이하에 쓰이는 모든 정의는 언급이 없으면 definition을 뜻합니다)

 

그건 성추행이 아니지라는 말은 성추행의 범주를 결정하는 말이 아니다. 발언자의 윤리를 드러내는 말이다. 반대의 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어야 한다/~이 아니어야 한다라는 윤리의 말을 ‘~이다/~이 아니다라는 정의의 말로 치환해 쓰곤 한다. 그것은 이다/아니다라는 어법이 감당하는 영역이 넓은, 우리말의 관용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언어사용자의 윤리 문제이기도 하다. 편한 말은 부정확하다. 부정확한 말은 오해를 낳는다. 그 오해가 타인의 것일 때도 문제지만, 놀랍게도 자신이 자신의 말을 오해하는 경우도 생긴다. 윤리의 뜻, 당위의 뜻, , 토론과 조율의 여지가 있는 뜻들을 정의의 꼴을 한 단정적인 말 위에 태우는 일이 잦아지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그 기준을 타인에게 투척할 수 있는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스스로 속는 일이 발생한다. 언어는 양쪽으로 날아오는 화살이다. 말은 늘 발화자를 겨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은 어떤 질적인 결여’ 때문에 여성이다우리는 여자들의 본성에 타고난 결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된다.“ 그리고 성 토마스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이어받아여자는 불완전한 남자이며 우발적인’ 존재라고 단정했다보쉬에의 말에 따르면이브가 아담의 여분의 뼈’ 하나로 만들어졌다고 전하는 창세기의 이야기는 여자의 불완전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미슐레도 여자상대적인 존재……라고 썼다방다도 유리엘의 보고에서 남자의 육체는 여자의 육체와의 의미를 제외하더라도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진다그러나 여성의 육체는 남성의 육체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의미를 갖지 못한다남자는 여자 없이도 생각할 수 있지만여자는 남자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라고 확언했다. (18)

 

누가 정의할 수 있는가. ”정의할 수 있는 역량과 자격을 갖춘 이가 정의해야 한다이것은 윤리의 문제다(따라서 논의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정의의 윤리를 정의하는 메타적인 순간조차, 윤리는 정의의 역습을 받는다. , 위의 윤리적 명제가 정의할 수 있는 역량과 자격을 갖춘 이가 정의한다라는 정의적 명제로 쉽게 전용되면서, 정의에 대한 윤리가 윤리에 대한 정의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의할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에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하기 때문에 정의할 자격을 갖추는 셈이 된다. 여자가 무엇인지 정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의뿐이다. 정의할 수 있는 위대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계속해서 정의해야 한다. 정의의 영구기관이 탄생했다. 정의 위에 정의가 쌓인다. 이미 잔뜩 쌓여 있는 정의 위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위해서, 새로 쌓이는 정의는 점점 더 추악해진다. 정의justice롭지 못한 일이다.

 

권력은 나누어지지 않듯이, 새로 탄생하거나 총량이 증가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전될 뿐이다. 권력 보존의 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필적한다. 따라서 누군가 권력을 쥐었다면 누군가는 권력에 짓눌리는 대상이 된다. 누군가 정의의 영구기관을 가동시켜 손쉽게 권력을 획득하는 동안, 누군가는 영문도 모른 채 권력을 박탈당한다. 경제적·정치적 권력을 빼앗기고 나면 다음은 문화적 권력이다. 영구기관은 영구히 쉬지 않는다. 결국 누군가는 인간적 권력, 본질적 권력까지 송두리째 빼앗긴다. 그것을 우리는 인권이라고 부른다. 정의가 하는 일이 영 정의justice롭지가 못하다.

 

여성의 기능으로써 여자를 정의하는 것이 불충분하고 우리가 '영원한 여성'으로 여자를 설명하려는 것을 거부한다면그러나 한편 잠정적으로 지상에 여자들이 있음을 인정한다면우리는 '여자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17)

 

그리하여 정의를 돌려주는/돌려받는 일이 정의롭다. 그것은 이 두꺼운 책이 하려는 일차적인 일이다.

 

이미 반백년도 더 전에 나온 책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보부아르가 주장하는 여성정의를 그대로 받아 안을 필요가 없다. 이 책을 읽고 우리가 챙겨야 할 것은 여성이 여성을 정의하는 정의justice’일 것이다. 정의는 권력의 문제지 젠더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권력은 젠더 안에서는 충분히 젠더의 문제다. 따라서 나는 이 책에서 권력의 탈환을 시도하는 비권력의 작전을 눈여겨 볼 것이다. 젠더에 대해서는 언제나 그랬듯 충분히 받아들일 뿐이다.

 

 

 

짠한 맛

 

산과 바다 그리고 이야기 1

 

남쪽 바다로부터 뱃길을 따라 일곱 낮 일곱 밤을 가면 사방 삼십 리 크기의 섬에 닿는다. 그 이름을 적혹은 물방울이라 한다. 섬사람들은 성이 없고 대이인大耳人 혹은 큰귀사니라 부르는데, 귀가 커서 다른 사람이 말하지 않는 것도 듣는다. 반대로 입은 작고 뾰족하여 말하는 데 주로 쓰이지 않고 술을 마시기에 적합하다. 심성이 곱고 다툴 줄을 몰라, 물산이 척박한 섬에서 맑은 술을 빚으며 삼백 년을 살아도 사람이 사람을 해하는 흉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새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짓는 기이한 풍습이 있다. 아이가 나면 부모와 산파는 입과 마음을 닫고 말을 흘리지 않는다. 아비가 아이를 강보에 싸거나 요람에 넣어 대문 앞에 나가 앉으면 지나는 이들이 저마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아이를 부른다. 아비는 고개를 젓는데, 그러면 부른 이는 소리 없이 웃으며 지나가고 다시 다음 사람이 와서 아이를 부른다. 이런 식으로 아비는 속으로 수를 세며 열여덟 번 고개를 저어 열여덟의 이웃을 물린다. 마침내 열아홉 번째 이가 와서 부르는 말이 그대로 아이의 이름이 된다. 그제야 아비는 아이의 무른 귀에 대고 이게 너의 이름이란다라는 말을 속삭인다. 열아홉 번째 들은 말이 채 이름으로 굳기 전에 귀 밖으로 쏟아지지 않도록 스무 번째 말을 마개로 쓰는 것이다.

 

아이는 이름 지은 이를 열아홉아비, 낳은 이를 스무아비라 부르며 섬긴다. 아이가 어른이 되면 열아홉아비가 죽을 때까지 계절마다 공양한다. 열아홉아들은 땔나무와 바다고기를 올리고 열아홉딸은 맑은 술을 빚어 올린다.

 

어미 태중에 있을 때 아비가 바다에 나가 죽은 아이가 태어나는 날이면, 마을 사는 모든 이가 산청 앞에 모여 아이를 기다린다. 열아홉아비가 이름을 지으면, 남은 이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이게 너의 이름이란다라고 외쳐서 갓 지은 아이의 이름이 죽은 제 아비를 찾아 먼 바다로 흘러가지 않도록 한다. 크게 외칠수록 큰 악운을 막는다 여긴다


그리하여 파도 거센 작은 섬에서 삼백 년을 살아도 스무아비 없는 자식이 태어나지 않는다.


 

 눈물이 우리들 첫 숟갈의 밥이었던 것은 알지만

 그것이 바다가 되어

 지상을 칠 할하고도 반이나 덮어버린 것은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사람의 가슴마다 물결인 것은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저 많은 눈물을 누가 다 흘렸을까

 한껏 차오르다 기어이 무너지는 낮과 밤

 밀려가고 밀려오는

 미친 술병들의 바다

 거대하게 떠밀리는 언어의 물거품들

 

 어느새 다 마시고 어디로 떠났을까

 아무래도 잘 모르겠다

문정희해벽〉 전문 

 

 

 

짜자잔! 한 맛

 


미셸나는 온 마음으로 자네와 함께 있네나는 자네와 함께 얘길 나누고 싶고나에게 아픔을 안겨 주고 있는 알제리 앞에서 지금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을 자네에게 말하고 싶네하지만 이렇게 멀리서그리고 거기서 목격한 것을 나에게 전해주는 자네 앞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네. []

  친애하는 미셸나는 자네를 놓아주겠네나는 자네를 많이 생각하네이 세계에 나눠 가져야 할 절망밖에 없다면나는 그것을 자네와 항상 나눠 가질 준비가 되어 있네이것은 거짓도 맹목도 없이 지금 내가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확신이네.

브누아 페터스데리다해체의 철학자


두꺼운 평전을 읽으면 좋은 이유 가운데 하나로 평전의 주인공이 보내고 받은 편지글을 풍부하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을 꼽고 싶다. 편지글만 모아 놓은 책도 있지만, 이 편지라는 것이 저간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채 덜렁 내용만 읽어서는 감동이 적다. 평전, 평전, 만세. 평전 이 매력적인 내 지갑 도둑놈들아…….

 

아무튼 오늘의 데리다는,

 

나름 열심히 공부했으나 썩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으로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다. 근데 선생님들(이미 유명하거나 장차 유명하게 될 선생님들)한테는 엄청 잘 보여놨지. 심지어 부총장한테는 고물차로 운전까지 가르쳐줘서 완전 최애 됨. 최애라고 부총장이 미국도 보내줌.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하는 마르그리트와 함께 도미, 빡센 생활을 이어나가던 중 귀국하여 입대, 알제리에서 애들 가르치는 일로 군생활을 하고 있었음. 앞날은 깜깜하고, 알제리에서 알제리인 막 쏴 죽이는 프랑스 놈들은 나를 도리어 뭔 공산주의 괴물에 유대인 쓰레기로 취급하는데, 심지어 진보 잡지 읽는다고 까고, 아내가 러시아 소설 번역한다고 깐다. , 이러다가 총 맞아 죽겠다, 아님 내가 다 쏴 죽이거나…… 싶을 때, 어느 한적한 시골 도시의 고등사범학교 준비반에서 선생자리가 난 거라. 좋다구나 하고 받았는데, 출발하려고 보니 얼씨구, 고등사범학교에서 교사 자리를 준다네? , 내 삼재 끝났나! 했는데, 아놔, 고등사범학교 준비반에서 날 안 놔 주네…… 짤없이 거기 가야 되네…… 왔는데 와, 여기 애들 내가 고등사범 준비할 때랑 다르네…… 멍청하네…… 심지어 이 동네(르 망)는 자동차 경주 성지네…… 그래서 그 차가 르망이었나…… , 나 철학해야 되는데 이 동네 열라 시끄럽네…… 확 절라 해체하고 싶네…… 그래, 이번 생 이 갑갑한 와중에 시끄럽기까지 한 시골에서 띨빵한 애들 구구단이나 가르쳐가며 살다 가는 거지…… 망한 거지…… 정신과 쌤 예약이나 하자, 쌤 폰 번호가…… 했는데, 소르본에 자리가 났다고?! 이번에는 쌤들이 알아서 절차까지 착착 다 해놨네? 몸만 가면 되네? 우와! 사랑해요 강디약! 우윳빛깔 이폴리트!

 

이렇게 조울조울 삽니다.

 

 

 

--- 읽은 ---

+ 카르마의 바다 / 문정희 : 98 ~ 164

 

 

--- 읽는 ---

우리가 사랑한 모든 책들 제인 마운트 : ~ 113

= 20세기 중국사 / 알랭 루 : ~ 275

= 데리다, 해체의 철학자 / 브누아 페터스 : 114 ~ 212

=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 / 크리스 하먼 : ~ 89

= 사회과학은 처음입니다만 / 이시카와 야스히로 : ~ 126

= 황혼의 기슭 새벽의 하늘 / 오노 후유미 : ~ 243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5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9-10-16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너무 고급져서 침대에 누워서 보다가 벌떡 일어나 찬찬히 읽는 사람, 손!
여기, 일단 한 명!

syo 2019-10-16 23:14   좋아요 0 | URL
한 명 번호 끝!

총원 1명.

단발머리 2019-10-16 23:15   좋아요 0 | URL
시간이 늦어서 새나라 어른들은 주무세요. 좀 기다리는 진득한 마음 요.

psyche 2019-10-16 23:24   좋아요 0 | URL
여기도 손! ㅎㅎ

단발머리 2019-10-16 23:26   좋아요 0 | URL
오호호~~ 미국에서 실시간 협조!
매우 감사드립니다^^

syo 2019-10-16 23:57   좋아요 0 | URL
좋다, 두 분 땡!
재빠르게 마감되었어요 ㅎㅎ

다락방 2019-10-17 08:22   좋아요 0 | URL
지금 이 글을 읽은 저는 뭐가 되는겁니까, 네?

syo 2019-10-17 09:07   좋아요 0 | URL
마감당하셨어요 으하하하😎

단발머리 2019-10-17 09:18   좋아요 0 | URL
새나라의 어른은 이렇게 강제 마감을 당하고.. 몰려드는 회한에...
쩜쩜쩜...

syo 2019-10-17 09:20   좋아요 0 | URL
늦잠자는 백수는 새나라의 어른들이 얄밉다!!😝 칼마감 쩜쩜쩜

수이 2019-10-17 11:15   좋아요 0 | URL
여기 나두 뒤늦게!!!!

2019-10-17 0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7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7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19-10-17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막 우울하다가도 쇼님 글만 읽으면 막 엄마미소가 저절로 나와져서 글 다 읽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 그렇게나 아름답더라~~

syo 2019-10-17 12:27   좋아요 0 | URL
저는 우울할 때 써 놓은 제 글을 우울하지 않을 때 다시 보면 세상이 코믹해 보이던데 ㅎㅎㅎ
저처럼 안간힘 쓰지 않고 잔잔한 수연 님의 글이야말로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할 때 맞춤한 글이죠!
 

 

애교론

 

 

1

 

애교는 사랑 애에 아리따울(사랑스러울) 를 쓴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아리따운 단어가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애교를 남에게 귀엽게 보이는 태도를 일컫는 말이라 알려준다. 귀여움이 세상을 구원한다. 애교는 구원의 작업이다.

 

친구들 사이에선 세상 무뚝뚝하며 말로 세상을 도륙내기라도 할 듯 입에 욕을 매달고 사는 경쌍도 썅남자 syo는 뜻밖에도 단 한 사람, 여친 앞에서는 젖도 못 뗀 애기 강아지가 된다. 말인지 멍뭉인지 알 수 없는 말투, 쌍시옷 대신 쌍디귿이 출몰하는 하이-톤의 뭉개진 발음에, 자기를 3인칭으로 부르는 건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하고 심지어 그게 자기 이름도 아니라 무슨 주황색 아기공룡 이름이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종류의 총량의 법칙이나 보존의 법칙같은 것이 존재하는데, 그 중 애교총량의 법칙혹은 애교량 보존의 법칙의 살아 숨 쉬는 증거라도 되어볼 요량인지, 밖에서 망아지 짓을 할수록 안에 와서 강아지가 되는 모양새다.

 

알고 보면 애교의 본거지는 DNA. 좋은 짝을 만나 만개하는가 아니면 내 안에 그런 기가 막힌 물건이 있는지도 모르는 채 삭막하고 척박한 인생을 살다가 가는가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유전자에 애교가 없는 인간의 애교는 마치 서울말이 되지 않는 사람의 끝만 올리는 서울말처럼 발각되기 십상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해 봤다, 그런데 잘 됐다, 상대가 좋아한다, 그렇다면 깨달아야 한다. 나라는 인간은 그저 애교가 자신의 형질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 위해 고른 미미한 탈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거부하지 마세요. 부인도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여, 부립시다, 애교를. 그게 세상을 사랑스럽고 아리땁게 만드는 길입니다.

 

말끝에 스미는 쌍디귿을 참지 말아요.




2

 

물론 애교량 보존은 자연법칙이므로, 애교를 바칠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인간들에게 조금 더 쓰레기가 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3

 

여친이라는 존재가 없었던 시절에는 어땠을까.

 

, 그때는 망나니와 강아지 사이의 어떤 개차반 정도의 성품으로 온 세상 사람을 고루 평등하게 대하던 황금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유전자에 박힌 애교의 발현 욕구는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라, 단 한 사람, 애교인 듯 애교 아닌 애교 같은 뭔가를 떨 대상이 있긴 있었는데, J라 부르겠다. 그때의 그것은 조악하기 짝이 없어서, 실은 무슨 이상한 짐승 소리에 가까웠고, 그러면 곰J도 비슷한 소리를 내며 다가와 괜히 syo의 볼을 꼬집어대는 식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그러니까 그것은 두 마리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린 짐승들이 자기들만의 사운드로 교신하는 일종의 폐쇄형 정보통신시스템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J : 으아아아아(밥 먹었냐?)

syo : 으아아()

J : 으아아아아?(맛없었지?)

syo : 으아(내말이)

J : (syo의 볼을 쪼물딱거린다)

syo : 으아우아오아(조리사 쌤들 요즘 좀 나태해진 거 같지 않냐?)

J : (syo의 볼을 쪼물딱거린다)

syo : 으우아오아오아(동지여, 혁명의 때가 다가온 것 같소. 모두들 식판을 들고 일어나자……)

 

대체 저게 뭐가 귀엽냐, 저게 무슨 애교냐는 의문이 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저게 애교파티의 한 장면이라는 굳센 증거가 된다. 원래 애교란, 둘 사이만 귀엽다. 남이 볼 땐 난해하거나 가끔씩 역겹다.

 

 

 

4

 

확실히 그들은 서로가 귀엽긴 했다. 그리고 둘 다 귀여운 것들을 몸서리치게 좋아했다.

 

때는 2006, 어떻게저떻게 서울에 안착한 두 사람은 대학로의 한 조개구이 무한리필 집에서 조개를 열심히 뒤집고 있었다. 당시 syo는 눈물 나게 짧은 첫 연애를 조지고 다음 연애에 안착, 평생 처음으로 커플링이라는 것을 하고 다니던 중이었다. J는 뜻밖에 누굴 좋아하는 족족 까이고 선 그이고, 소개팅한 여자와는 두 번 만나는 일이 없고, 따라서 외로워 사무쳐 술이 달아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 그런 상태였다. 만나면 어디로 가서 무얼 먹을 것인가 무얼 할 것인가 같은 그림이 항상 그려져 있던 곰J는 선택장애 syo의 눈에 더할 나위 없이 남자답고 멋진 남자였는데, 대체 왜 빙충맞은 syo는 되는 연애가 곰J는 안 되는 걸까. 연애판이란, 남자가 볼 때 참 괜찮은 남자는 여친이 없고, 여자가 볼 때 참 괜찮은 여자는 남친이 없는 이상하고 야릇한 도깨비 나라였다.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하지 않고 자꾸자꾸 술을 들이켜는 곰J에게 syo가 말했다.

 

syo : , 정말 여자들 이해가 안 된다.

J : (한 잔 들이켜고) 그치?

syo : (잔을 채워주며) 내가 여자였으면 너랑 바로 사귄다.

J : (한 잔 들이켜고) 나도.

syo : (잔을 채워주며) ㅋㅋ 그래도 니가 니 입으로 그런 말하는 건 좀 웃기지 않냐?

J : (한 잔 들이켜고) 아니, 나도 네가 여자였으면 너랑 바로 사귄다고.

BGM : 뚜 뚜루 뚜뚜뚜루 뚜뚜♬……

 


……, 이걸 확 자빠뜨려, 오늘?

 

 

 

5

 

자빠뜨리지 않았다.

 

 

 

6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연애를 꾸준히 이어나갔다. 그러다 가끔 만나 술이나 마시고, 노래방 가서 3시간 내리 발라드나 부르고, 또 술을 마시고, 잘 안 되는 syo의 인생사와 역시 잘 안 되는 곰J의 연애사를 안주로 또 마시고, 마시고, 그러다 가끔 걔네 집에서 자고 가긴 했지만 역시 잠만 잤다. 손도 안 잡고 잘 잤다. 다음 날이면 해장국을 먹었다.

 

 

 

7

 

둘 다 아직 미혼이다.

둘 다 결혼은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8

 

서울 가면 봐야지.

 


나는 그에게 다른 것도 물어보았다남자 고등학교에서는 남학생끼리 사랑을 고백하거나 사귀는 일이 없었는지 궁금했다그는 껄껄 웃으며 딱 잘라 말했다.

  "자기야남자들은 안 그래."

  어쩌면 그가 잘못 알았을 수도 있다그를 둘러싼 무리에서만 그랬던 것일 수도 있으니까그는 10대 남학생들이란 치고 박고상대를 제압하려 들고욕하고 침을 뱉으며 허세를 부린다고 했다친구끼리도친구끼리도 그 안에서 서열 같은 게 있어가엾다그런가?

김세희항구의 사랑

 

지금 생각하면 20년 전의 일들은 무슨 전생의 일들처럼 까마득해요혼자 앉아서 가만히 생각해야 그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떠오를 정도예요옛날 종로서적이 있던 곳을 지나가다가혹은 김광석의 노래를 듣다가 비로소 생각나는 기억들도 있고요그런데 그때 괴롭고 힘들고 고민스러웠던 일들은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물론 뭐가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는 기억나지만고통이라는 건 실제적인 아픔이지 머릿속 기억이 아니잖아요그래서인지 되살아나는 감각들은 모두 좋았던 것들뿐이에요감각적으로 우리는 고통에 훨씬 더 쉽게 몰입하는 경향이 있지만당시에는 세상 전부인 것처럼 나를 괴롭히던 그 고통은 하루만 지나도 사라지는 경우가 많죠온몸과 마음을 다 바쳐 즐긴 것들은 평생을 가니까가능하면 그런 일들을 더 많이 해야죠.

김연수청춘의 문장들+

 

 

 

9

 

아참, 오늘 도서관에서 요런 아이들을 데려왔다.


 

크기도 쪼꼬민데 다들 200쪽이 채 안 되니, 보통 판형의 책이라면 100쪽 남짓할 꼬마들이다. 사실은 이제 이런 건 안 읽어도 되고 심지어 읽어도 안 되는 수준인데, 그럼에도 표지가 너무 귀여워서 그냥 지나치려니 손이 덜덜 떨렸다. 마르크스 캐릭터에 페티시 있는 거 인정. 가운데 저 똥글이도 대책없이 귀엽잖아.

 

 

 

--- 읽은 ---

+ 묵묵 / 고병권 : 132 ~ 235

+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옌롄커 : 210 ~ 319

+ 화서의 꿈 / 오노 후유미 : 191 ~ 362

 

 

--- 읽는 ---

= 데리다 입문 / 김보현 : ~ 158

= 카르마의 바다 / 문정희 : ~ 98

= 인물로 읽는 중국 근대사 / 신동준 : ~ 90

= 옥상에서 만나요 / 정세랑 : ~ 90

= 2의 성 I / 시몬 드 보부아르 : ~ 33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5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19-10-15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르크스 얼굴에 페티시 있는 일인, 여기도 있습니다. ^^
근데 넘 멋있지 않나요? ㅎㅎ

syo 2019-10-15 19:59   좋아요 1 | URL
전 그 얼굴이 멋있다기보다는 어쩐지 귀여워 보이는 쪽입니다. 이게 제발 정신병이 아니어야 할 텐데요 ㅎ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19-10-15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책없이 귀여워서 심지어 빌린 책 표지까지 가세해서 읽다가 (귀여워서 숨막혀서) 다 죽어랏! 하는 글 같습니다. 작정하고 쓰면 엄청나군요...

syo 2019-10-15 23:26   좋아요 1 | URL
그런 의도도 없었을뿐더러 효과 역시 케바케입니다. 반님의 취향이 드러났군요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19-10-16 07:35   좋아요 0 | URL
며칠 잠을 못자더니 이게 제발 정신병이 아니어야 할 텐데요 ㅎㅎ

2019-10-15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5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6 0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19-10-15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일하게 내가 애교부릴 수 있는 사람을 선택했는데 음~~음~~
이건 기쁨일까요?
아님 한숨일까욤?

syo 2019-10-15 23:27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ㅎ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시너지가 나는 것이 애교의 경제학인데 말이지요.

감은빛 2019-10-15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귀여워 데려왔다니!
정말 syo님 귀여우시군요!
근데 남성 친구들끼리 애교라니~
신선한 충격인데요.

제가 경상도에 살았던 시절 친구들과의 대화는 쌍시옷으로 시작하는 욕이 앞뒤로 붙지 않으면
아예 입이 열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10년도 더 전에 제가 일했던 운동단체에서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그림으로 담은 티셔츠를 제작했는데,
여러가지 그림과 함께 귀엽게 단순화시킨 마르크스 얼굴을 넣었던 게 기억에 납니다.
이젠 아마도 레어템이 되어 있을 티셔츠일텐데,
그 낡은 목 늘어나고 구멍난 티셔츠를 아직도 가끔 집에서 입습니다.
그리고 입을 때마다 그 마르크스 그림을 보며,
이 시대에도 과연 인간에게 마르크스가 꼭 필요한 존재일까 생각해보곤 합니다.

syo 2019-10-16 10:10   좋아요 0 | URL
유전자에 새겨진 애교를 회피할 수가 없었던 두 마리 짐승이 만나 생존을 위한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서로를 이용한 것이지요...... 저 역시 대구 말투를 쓸 때는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는 수미썅관의 경상도 어법을 즐겨 사용합니다.

마르크스를 이 시대 인간에게도 필요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이 시대 사람들의 몫일 것 같아요. 저 수염달린 귀요미를 꼭 세상을 바꾸고 뒤집어 엎는 데만 쓸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전유하고 응용해서 나 하나, 내 주변의 작은 영역을 더 낫게 바꿀 수 있다고 하면, 그것도 좋은 일이지요. 어쨌든 좋은 말씀, 날카로운 말씀 많이 하고 가신 양반이니까요.

stella.K 2019-10-16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처럼 애교가 철철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제가 볼 때 스요님은 애교와 유머를 자유자제로 넘나드는 것 같은데
내가 나를 모를 때도 있는 거죠.ㅎㅎ
오늘은 친구와의 대화가 압권입니다.^^

syo 2019-10-16 22:52   좋아요 0 | URL
느껴지셨다구요?
뭐 아무것도 안했는데? ㅎㅎㅎㅎㅎ
제 애교는 오직 한 사람한테만 나오는건데......
눈치가 빠르신 편이군요, 스텔라님이.

다락방 2019-10-17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자기를 3인칭으로 말해요? 정말?! @.@

syo 2019-10-17 12:2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그간 얼마나 좁은 세상에 사셨던 거예요.....
이런 사람 잔뜩 있어요......

저는 심지어 글에서도 자기를 3인칭으로 부르잖아요!

뒷북소녀 2019-10-18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남자들은 안그랬나요?

syo 2019-10-18 23:32   좋아요 0 | URL
제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만, 있지 않았을까요?
제가 살던 거기도 거진 밀림이었지만, 쟤가 말하는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son89412 2021-06-26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우아오아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