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혐, 여자가 뭘 어쨌다고

서민 지음 / 다시봄 / 2017


"syo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라는 말로 시작할까 하는데, 이것은 많은 여성들이 겪는 불편함, 그러니까 과거에는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었고 요즘은 "나는 메갈은 아니지만,"으로 운을 떼야 하는 그녀들의 고충과 상관 없는 일임을 미리 밝혀 본다. 언젠가 당당하게 "나도 페미니스트다 이 양반들아" 외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생각하지만, 아직은 그만한 깜냥이 되지 않아 사리는 것 뿐이다. 이를테면, 유치원이나 학교나 기능이 대동소이해도 유치원 다니는 애들을 학생이라 부르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럼 약속대로, syo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어디가서 행세하는 건 또 좋아하는 값싼 성격이라, 깨친 남자가 되려고 애를 꽤 쓰는 편이다. 그러나 인생행로가 박복하고 하늘의 뜻이 모질어, 주변에 여자라고는 가족이랑 여친 말고는 정말 1도 없는 퍽퍽한 삶을 오래도 견뎌왔다. 그 결과, 막상 깨친 남자 행세를 할라쳐도 주변 인물군상이 죄 남자 뿐이라 영 애로사항이 많은 것이다. 편견이라 하시면 반론하지는 않겠지만, 최소 syo의 주변을 표본으로 놓고 보면 과연 대구 놈들이 제일 문제라, 그야말로 맨 오브 맨, 가부장의 가부장들을 상대하자니 나의 얄팍한 깨침으로는 도통 이빨이 박히지를 않는다. 얼마나 막막하냐면, 야 그거 차별인데, 야 그거 혐오발언인데, 이렇게 지적하면 아니 syo야, 도대체 그런 재미있는 농담을 더 하고, 어디 농담 학원에라도 다니는 거니, 하는 식으로 파하하하 웃고 땡이다. 뭐 발끈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냐? 도대체가...... 그러니 syo는 눈알 하나 달린 도깨비들 마을에서 저 혼자 눈알 둘 달고 사는 도깨비가 된 기분이 든다.  


그러나 막상 눈알 하나 달린 도깨비들이 떼로 들고 일어나, 눈알 둘 달린 놈들 찾아서 하나를 뽑아 놓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그때도 syo가 당당하게 내 눈알이 두 개요 하며 행세할 수 있을까? 그 지점에서 저자는 존경스럽다. "남자 페미니스트"라는 무시무시한 칭호가 표지에 떡하니 박혀 있는 저 책을 열어보면, 실제로 저자가 겪어야 했던 고난들이 눈물을 자아낼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지경에까지 와 있다. 이미 명망이 떠르르한 저자의 유머도 여전히 살아 있는데, 그게 또 아슬아슬하다. 함량은 확실히 여자 페미니스트들 성에 찰 만큼은 아닌 것 같고, 솔직히 머릿말의 기생충 이야기에 좀 뜨악한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응원한다. syo는 아직 "syo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같은 말을 써붙어야 하는 꼬꼬마고, 저자는 스스로 페미니즘을 응원하는 모든 남성들의 총알받이가 되었으므로, syo가 저자에게 줄 것은 결국 사랑 말고는 없겠다. 그리고 사랑은 마침내 구매로 이어지리라. 






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 / 이사야 벌린 지음, 안규남 옮김 / 미다스북스 / 2012

마르크스 평전 / 프랜시스 윈 지음, 정영목 옮김 / 푸른숲 / 2001

마르크스 평전 / 자카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예담 / 2006


우리말로 번역된 마르크스 평전은 좀 더 있긴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이 세 권을 꼽는다. 그러니까 마르크스 평전계의 태희, 혜교, 지현이는 이사야 벌린, 프랜시스 윈, 자크 아탈리 되시겠다. 보시다시피 표지가 다들 어떻게든 빨갛다. 그래야 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편견이라면 편견이겠지만, 솔직히 나는 좋다. 마르크스를 좋아하기 전부터 빨간색을 가장 좋아했는데, 운명이란 그런 거지.


왕년에 세 권을 다 읽었었는데, 너무 왕년이라 가물가물 하지만, 이사야 벌린은 차가우면서 고급졌고, 프랜시스 윈은 깊으면서도 유머러스했으며, 자크 아탈리는 정열적이고 선동적이었다. 태혜지와의 매칭은 각자의 손에 맡기겠지만, 그녀들 중 누구 하나 빠지는 사람 없듯, 저 책들도 세 권이 제각기 다 괜찮다. 


하나씩 다시 읽는 중이고, 어제 이사야 벌린을 마쳤는데, 저 양반, 정말 엄청난 사람이다. 저 책은 그의 나이 28세에 쓴 것으로 그의 첫 작품이라는데, 세상에, syo한테는 28년이 아니라 56년, 94년을 줘도 저런 책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확실한 절망감이 엄습한다. 가끔 문장이 너무 좋아서 원문은 어떤가 읽어보면, 영언데 더 좋다. 희한하다. syo는 영어도 잘 못하는데, 암만 영어를 못해도 그 글 좋은 줄은 알 수 있게, 그렇게 쓴다, 저 사람이.


이사야 벌린은 서문에서 어떤 범죄를 아주 능청맞게 고발하고 있다. "애초에 써 놓은 원고는 이 책의 두 배가 넘는 분량이었다. 그러나 <홈 유니버시티 라이브러리> 편집자들의 엄격한 요구로, 철학적, 경제학적, 사회학적 쟁점들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빼버리고 대신에 주로 지적 전기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이런 천인공노할 <홈 유니버시티 라이브러리> 편집자 놈들아! 여봐라, 개작두를 대령하라..... 그대들은 "가장 훌륭한 마르크스 평전"이 될 뻔한 글을 "가장 훌륭한 마르크스 평전들 중 하나"로 만드는 역사의 대죄를 저질렀으므로, 불지옥에서 그 죄를 태워 없애야 할 것이다. 그대들은 아무리 뜨거워도 십 년에 한 번만 몸을 뒤집을 수 있고, 영원토록 삼겹살만 지급될 것이며......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 박준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모든 것은 눈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말처럼, 오래 보아야 어여쁘다. 어여쁜 것들을 꾸짖고 넘어뜨리는 것들이 밉다. 미운 것 역시 오래 보아야 미운 셈이다. 어여쁘고 미운 것들이 시를 짓는다. 그 시는 눈 닿는 세상의 모든 구석에 꿀처럼 술처럼 묻어 있다. 여기저기 고여 있다. 시인의 손가락이 시를 푸욱 찍어 입으로 가져간다. 달고 쓰고 맵고 시고 온갖 맛이 난다. "아, 달고 쓰고 맵고 시구나." 그러구나, 시구나. 맞다. 그러면 시다. 시인의 그 말이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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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9-29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 것은 사랑밖에 없다니! ❤️

syo 2017-09-29 07:23   좋아요 0 | URL
ㅎㅎㅎ syo는 그런 남자인 것임니다.

단발머리 2017-09-29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 마르크스, 빨간 책 세권 완전 멋지네요~~~
저는 하나만 고르라면, syo님이 극찬하신 이사야 벌린의 책을 읽어야겠어요.
syo님도 자세히 보니, 분노의 빨간 포도알갱이인데요^^

syo 2017-09-29 09:30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바로 보셨어요. syo가 바로 분노의 ˝빨간˝ 포도알갱이가 맞지요.

근데, 혹시 처음 마르크스 평전을 보시는 거라면 가운데 있는 놈을 권합니다.

단발머리 2017-09-29 09:32   좋아요 0 | URL
혹시 처음 마르크스 평전을 보려고 하는 1인이거든요.
근데, syo님이 영어문장도 좋다~~ 하시어서 전, 이샤야 쪽으로 마음이 가고 있었는데...
초심자에겐 무리일까요? 너무 두꺼운가요? ㅎㅎㅎㅎ

syo 2017-09-29 09:58   좋아요 0 | URL
아뇨, 얇은데, 단순히 페이지 수로 보면 세 권 중 제일 얇긴 한데, 되게 옛날 책이기도 하구요. 진짜 ˝철학적, 경제학적, 사회학적 쟁점˝들은 툭툭 던지고 지나가는 느낌이거든요. 물론 그 툭툭 던진 게 집채만하가는 하지만....

뭐랄까, 마르크스를 잘 알게 된다기 보다는 마르크스를 평하는 모습을 통해 이사야 벌린을 알게 된다는 느낌도 좀 있어서요. 평전은 처음이시지만 마르크스에 대해 좀 아신다면 거리낌 없이 권하겠으나, 그런 게 아니시라면 처음 읽기에는 프랜시스 윈이 제일 낫지 않나 해요. 윈도 문장 괜찮아요. 그리고 믿고 읽는 정영목 선생님 번역.

2017-09-29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7-09-29 10:04   좋아요 0 | URL
아하... 그렇군요. 고구마 사이즈 정도만 던지셔도 전 날아갑니다.
두번째 책은 자세히 안 봐서 몰랐어요. 믿고 읽는 정영목 선생님 번역이면 아무렴요, 시작은 <마르크스 평전>으로 해야겠네요.
심장이 두근두근 하네요. ㅎㅎㅎㅎㅎ

2017-09-29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17-09-29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나는 메갈은 아니지만,˝으로 운을 떼야 하는 그녀들의 고충 - 이 말에 십분 공감합니다. 메갈이 이슈화 되면서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자들의 기세가 더 등등해진 건 아닌지... / 그동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남성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도 참 많은 고난이 따르겠군요.
마르크스-예쁜 빨강빨강이네요! 가을엔 마르크스!인가요ㅎ

syo 2017-09-29 10:21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무릇 가을에는 빨강빨강이 제맛이지요. 단풍과 잘 어울리잖아요. 비록 ˝내장산 마르크스 축제˝ 이런 건 없지만....

독서괭 2017-09-29 10:53   좋아요 1 | URL
내장산 마르크스 축제라니 ㅋㅋㅋㅋㅋㅋㅋ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해도 망삘인걸요ㅋㅋㅋㅋㅋ
 
내 인생 최고의 책
앤 후드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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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우리 자매님 바쁘신 중인가 보다, 으음, 다른 게 아니라, 오늘 이렇게 우리 자매님께 좋은 말씀, 귀한 말씀 하나 전하려 하는데, 어떻게 우리 자매님, 주일마다 나가시는 서점이...... 아, 없으시구나, 그렇죠, 요즘 사는 거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일주일에 딱 하루, 주일날 서점 가서 책느님 좋은 말씀 듣고 올 만한 여유도 다들 없으시더라구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저희가, 귀한 말씀 전하려 자매님 댁으로 직접 이렇게 발걸음을 한 거랍니다. 네, 네, 자매님, 그럼요, 저희 뭐 팔려고 이러는 거 절대 아니구요, 아유, 그럼 벌 받죠, 책느님이 다 지켜보고 계신데, 저희가 어떻게, 네, 네, 그럼 말씀 좀 전해 볼까요?


우리 자매님, 한 달에 책느님 몇 권 영접하시는지 혹시 여쭤봐도? 두 권! 오, 우리 자매님 신앙이 아주 깊으시네요! 한 달에 두 권이면 일 년에 스물 네 권! 와, 우리 자매님, 할렐루야, 천국의 문이 이미 자매님 눈 앞에 열려 있어요, 이제 자매님, 그 문 안으로 들어가시기만 하면 되는데, 그쵸, 어떻게 그 안에 들어가실지 잘 모르시겠죠, 그러니까요, 그래서 저희가 오늘 이렇게 그 방법 알려 드리려 자매님께 온 겁니다, 우리 자매님, 좋은 말씀, 귀한 축복의 말씀 들으시기 전에, 같이 잠시 기도하실까요, 눈 감으시구요......


자매님, 우리 인간이 이 땅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간에게 모든 것을 내 주신 책느님의 한없는 사랑을 아시나요? 우리 인간들이 책느님의 은총 모르고 살았던 어두껌껌한 시대를 한 번 떠올려 보세요. 지식은 이어나가기도 겨우겨우 할 뿐, 농사꾼의 아들은 농사를 짓고, 어부의 아들은 고기를 잡는 것 말고는 다른 무엇도 배울 수도, 익힐 수도 없었던 그 경직된 시대를요.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들을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 신비한 이야기들이 채 스무 개가 되지 못하는 그 무미건조한 시대를요. 늦게나마 인간이 책느님을 영접하지 못했더라면, 지금 자매님,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상상이 가시나요? 기도하실게요, 책느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 마음에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혹시 우리 자매님, 요즘 힘든 일, 잊고 싶은 일, 위로 받고 싶은 일이 있으시죠, 네, 저흰 다 알죠, 책느님이 다 보고 계시고, 저희한테 알려주시니까요, 그래서 자매님, 저희가 오늘 거룩하신 책느님의 기적을 빌려, 자매님의 슬픔을 덜어드리려고 하는데, 어떻게, 마음의 준비는 되셨나요? 네? 아휴, 자매님, 그거 다 이단이에요, 자매님, 따라가시면 큰일 나요, 훠이, 책느님과는 그렇게 교통하는 법이 아니죠, 자매님 상황이나 기분에 맞게 책 권해주는 그 사람들, 신앙인 아니예요, 기술자지, 물러가라 세리야, 바리새인아, 자매님, 그런 대증요법은 근본적인 구원이 될 수 없어요, 다만 아주 잠깐 상처에 약한 마취 주사를 놓는 것 뿐이지요, 여기, 톨스토이복음 안나카레니나편 1장 1절 말씀 좀 보시라구요,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게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그 이유가 다르니라, 하시었다." 보세요, 자매님이 어떻게 슬프신지, 그 슬픔이 어떤 책과 얼마나 비슷해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결코 똑같은 슬픔이 될 수 없다고, 책느님이 말씀하십니다, 슬픔은, 자매님, 그렇게 이겨내는 것이 아니랍니다, 아니오, 슬플 땐 책느님 영접하지 마시라는 말씀이 아니라요, 그러니까, 자, 자, 그러니까 자매님, 그 주먹 펴시고, 인상도 펴시고, 아유, 이러다 잘하면 욕 나오시겠다, 제 말씀 좀 들어보시라니까요, 그러니까 책느님께서 자매님의 슬픔에 관심이 없으신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너어어무 관심이 많으셔서, 더 좋은 방법을 가르쳐 주시려는 거예요, 네,  


그러니까 자매님, 답은, 같이 읽는 거예요, 같이 읽어요. 네, 저희랑 같이 읽으세요. 저희 아니어도 매사에 책느님께 영광 돌리고 하루 하루 책느님의 사랑 아래 충만한 신도분들이라면 누구라도 괜찮으니 몇몇 모이셔서, 같이 읽으세요. 그게 진짜 구원입니다. 그게 유일한 구원이에요. 같이 읽는 책은요, 혼자 읽는 책과는 완전히 다른 책이에요. 인간은 불완전하고, 슬픔에 젖은 인간은 더욱 그렇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자 하는 목적으로 책을 펼치면, 그 안에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책 읽는 눈과, 책 읽는 마음이 무한히 필요합니다. 네 개의 눈이 두 개의 마음을, 여덟 개의 눈이라면 네 개의 마음을 삽처럼 들고 와 책을 헤집고 당신의 마음을 치료하기 위한 우물을 함께 파 줄겁니다. 그러니까 당신도, 만약 오늘의 당신이 슬프다면, 책을 들고 밖으로 나오세요. 당신의 좁은 방 침대 위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간, 교차하는 시선들과 따뜻한 손길 사이사이에 씨앗처럼 책을 뿌리세요. 이야기의 물을 주세요. 책은 뭐라도 좋습니다. 당신의 슬픔과 닮았건, 닮지 않았건. 당신이 나눈 책이 자라 커다란 나무가 되었을 때, 당신은 알게 될 겁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불행을 지니고 있지만, 손을 뻗어 위로하고 공감할 마음만 있다면 충분히 만질 수 있는 가까운 거리 안에서 저마다 슬퍼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나의 슬픔과 닮은 슬픔이 들어 있는 책보다, 나의 슬픔과 닮은 슬픔을 안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그게 더 큰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어머, 자매님, 죄송해요, 제가 그만 성령이 충만하여 저도 모르게 또 방언이 터졌나 봐요, 놀라셨어요? 이런 일 종종 있어요, 네, 네, 그러니까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네, 맞아요, 나오셔서 같이 책느님 영접하는 시간을 가져 보면 좋겠어요, 실제로 그렇게 어마어마한 슬픔을 극복하게 된 분들 많아요, 네, 아, 그러고보니 여기, 그 중 한 분이 간증하신 게 있네요, 제목도 참 좋지, 『내 인생 최고의 책』, 한 번 보시겠어요? 그 분 이야기는 글쎄, 어린 시절 동생이 나무에서 실족사한 이후에 어머니도 뒤이어 자살하셨다는데요, 게다가 남편은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며 바람 나서 집을 나가 버리고, 심지어 딸 아이는 마약에 중독되어 유럽 여기저기를 헤매다가 행방불명 되고...... 지금 그 분, 책느님의 자애로운 인도 아래, 기적같은 일들을 겪으며 굉장히 행복하게 잘 살고 계세요. 아마, 간증록을 다 읽고 나시면 우리 자매님도 그 충격적인 전개에 깜짝 놀라실 걸요? 꼭 읽어 보시고, 다음에 한 번 나오셔서 저희랑 같이 책느님 영접하세요, 네, 여기요, 14800원입니다. 아뇨, 14800원. 네고 없음, 도서정가제. 나 지금 진지함. 이건 방언 아님. 14800원. 알라딘에서 사면 10% 깎아서 13320원.


마일리지 74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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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09-15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성령이 충만하셨네요.. 훌륭한 단편소설? 장편소설이네요. 손바닥 장. 믿습니다,아멘!

syo 2017-09-15 20:51   좋아요 0 | URL
아멘! 할렐루얍니다.

닷슈 2017-09-15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ㅋ 너무 재밌군요

syo 2017-09-15 21:1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 쓴다고 썼지만..

짜라투스트라 2017-09-15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겨울호랑이 2017-09-15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재밌는 글을 읽으니 금요일 밤이 더 즐거워지네요^^:

syo 2017-09-15 21:45   좋아요 1 | URL
허허^^ 별 거 안해놓고도 뿌듯하네요.

에그머니 2017-09-15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일리지 740점 ㅋㅋㅋㅋㅋㅋㅋㅋ
종교적 내공이 장난이 아니신듯.

cyrus 2017-09-15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기준으로) 알라딘 서재에 글을 재미있게 쓰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태우스님, 곰발님, 붉은돼지님, 그리고 syo님입니다. ^^

syo 2017-09-15 23:04   좋아요 1 | URL
우와, 저분들이랑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는 날이 오다니, 크- 보람있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9-16 00:11   좋아요 2 | URL
느닷없이 쇼 님이 출몰하는 바람에 이제 제 글은 인기가 없어졌습니다..

syo 2017-09-16 06:4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곰발님, 이렇게 재미있는 농담을 하시는데 제가 어떻게 곰발님한테 비비겠어요.

yamoo 2017-09-16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완전 재밌네요..ㅎㅎ 쇼님, 제가 봤을 때....아무래도 문학전공 아니면 문창 전공이신듯...ㅎㅎ

syo 2017-09-16 14:3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야무님, 근데 땡!
syo는 전자통신컴퓨터공학부 졸업자입니다ㅎㅎㅎ

다락방 2017-09-28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쇼님 글 진짜 재미있게 잘 쓴다. 이 글 최고!!

syo 2017-09-28 09:36   좋아요 0 | URL
뭘 또 이렇게까지나 ㅎㅎㅎ
 
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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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가왕에서 하현우나 소향이 연승을 달리고 있던 시절, 관련 기사에는 항상 이런 취지의 댓글이 달려 있곤 했다. "한국 사람들, 음악 들을 줄 몰라서 저렇게 고음이나 빽빽 지를 줄 알면 그냥 노래 잘하는 줄 알고, 진짜 음악을 몰라. 저게 무슨 노래야. 기인열전이지. 노래는 감정이야 감정. 曰曰." 


누가 정했나, 노래는 감정이라고. 누가 정했을까, 이건 진짜 음악이 아니고 저게 진짜 음악이라고.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가서 힘들고 외로운 순간 순간 소향의 홀리홀리한 노래를 들으며 치유받곤 했다. 간부에 까이고 선임은 깝치고 후임은 깝깝해 하루 종일 빡쳐 있다가도, 소향이 부른 'O Holy Night'를 듣고 나면, 그래 이 먼지 같은 일들에 일일이 분노하는 작은 사람 되지 말자, 세상은 이렇게나 넓고 높고 성스러운 것을- 하고 마음이 활짝 열려, 까이건 깝치건 깝깝하건 간에 우린 모두 하나, we are the world, 하게 되는 것이다. 그 환희의 순간들이, 희열로 가득 찬 하나됨의 기쁨이, 마치 신탁처럼 나를 그 기쁨으로 인도한 노래가, 다 진짜가 아니라고? 솔직히 조금 울기도 했는데?


"나는 이런 건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해." 혹은 "나한텐 저런 건 음악이 아니야." 라고는 할 수 있는 문제지만, "이건 음악이 아니야." 라고 할 수는 없는 문제다. 당신의 마음 속 진짜 음악은 오롯이 당신의 것이지만, 그냥 '음악의 정의'는 공공재다. 당신의 일기장에, 당신의 블로그에 당신이 생각하는 음악에 대해 A4 700장 분량의 논문을 쓰는 것은 당신의 자유지만, 위키피디아를 고친다면 쓰고 싶은대로 막 쓰면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이런 하찮은 이야기를 서두에다 두서 없이 깔아놓는 이유는, 아마 지금부터 syo는 책 한 권을 깔 것 같은데, 까는 일은 항상 까부는 일이고, 일단 까불다 보면 항상 한없이 까불게 마련이라서다. 설사 이 뒤에 이어지는 글들에서 syo가 공공재인 '시의 정의(定義)'를, 더 나아가 역시 공공재인 '시의 정의(正義)'를 건드리는 듯한 표현을 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다만 syo의 취향과 개인적 정의(定義 & 正義)일 뿐임을 미리 밝히기 위해서이다.


 


2


내가 '은유시인'이라고 부르는 작자들은, 시를 쓰기 위해 은유하는 게 아니라, 은유하기 위해 시를 쓰는 것 같은 무례한 시인들이다. 이름도 대려면 몇 댈 수 있다. 최근에도 한 권 발견했다. 이들의 은유는 '원관념', 그러니까 은유를 통해 빗대어 나타내는 실제의 대상을 독자에게 환기시키지 않는 듯하다. 후려쳐서 말하면, 아무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고,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은유가 무슨 말로도 독자에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물론 잘 된 은유인데도 독자가 무지하여 원관념을 캐치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은유라면 그런 순간에도, 잘은 모르겠지만 이 시가 뭔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자체는 가질 수 있게 한다. 독자 똥으로 보지 말자. 시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시가 문자 이전부터 존재해 온 인류 최고(最古)의 서사 양식이라면, 평생 시집 다섯 권 채 못 읽고 무지개 다리 건널 대부분의 평범한 독자들도 호모 사피엔스적 감각만으로 직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던져야 한다. 최소한 내가 무지해서 그렇다는 자책감 정도는 달라는 것이다. 그게 안 되면, 그냥 자신의 언어조작능력을 과시하고 싶어 똥폼을 부리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syo는 '은유시인'을 멸칭으로 쓰는 것이다.




3


이 책은 네 가지 요소의 복합체다.


하나, '은유'를 은유하는 무수한 말들.


둘, 시집 뒷꽁무니에서 출몰하곤 하는 시 해설들.


셋, 다독가인 지은이가 여기저기서 읽어 온 지식의 파편들(인간 게놈, 감정은 편도체/단어는 측두엽/시각자극은 후두엽, 은하의 속도는 시속 100만 마일, 세계를 지배하는 여섯가지 수, 기타 등등 굳이 왜 은유를 설명하는 책에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참 많기도 많다. 이것도 하나의 은유일까?)


넷, 오, 이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은유인가! 아, 저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것은 또 어떻고! 쪼오오기 저어어쪽 것도.....




4


본문의 한 부분을 따라가 보자. 괄호는 이 부분을 읽던 syo의 마음의 소리다.


시는 언어 놀음이고, 항상 그 놀음 이상이다(좋지 좋아. 그렇고 말고.) 시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말함이고, 이름 붙일 수 없는 불행에 이름을 부여하고 그걸 호명한다(아, 암만, 그래야지. 시가 안 그럼 누가 그러겠어.) 시는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울려나오는 메아리고(음..... 그.....렇지? 없음과 있음 사이..... 음음.) 뇌의 전두엽에 내리꽂히는 우레며(전.....전두엽.....) 모든 물질에 작용하는 메타과학이고(메타....뭐?) 형이하학의 형이상학이다(네? 예?) 시의 본질은 우연성이고, 이것은 무상성에서 확고한 지지를 자아낸다(.......) 그런 맥락에서 시는 만듦이고 낳음이며, 위함이고 이룸이다(....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관자재보살....) 인간 내부의 구멍이고 그 구멍 속에 사는 신이다(제발....이제 그만.....) 시인은 항상 외부 세계, 멀리 있는 다른 우주의 신과 소통한다(살려줘요! 아님 차라리 죽이시든가....) 그래서 시는 때때로 낯선 신의 알아듣기 힘든 방언이기도 하다(아! 맞아! 정말이야! 지금 딱 그래.....)




5


은유를 설명하는 책은 위험할 수 있다. 지은이가 이육사의 <절정>에 들어있는 은유를 풀어내는 대목을 보자.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절정>의 원문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칼날"이 "강철"에 연접하며 날카로움과 강밀도가 높아지는데, 이는 속화된 현실과 단절하려면 단호한 결기와 강단이 필요함을 암시한다.


특히 "겨울"이라는 시련을 딛고 홀연히 피어난 "강철로 된 무지개"는 무릇 정신을 초극하며 높이 솟구친 범상치 않은 경지를 가리킨다.


이육사가 그토록 되고자 하는, 닿고자 했던, 무른 마음과 발 디딘 현실의 속됨을 떨치고 솟구쳐 일어나는 영웅적 품성의 고결함을 가리키는 고원, 매화향기, 백마, 초인 따위와 연접하며 .... (35- 36)


눈 밝은 분들은 지금 이 대목을 보고, 이건 아마 지은이가 십수 년째 지적받고 있는 학교 시 교육의 문제점을 환기하기 위해 교사용 참고서의 일부분을 인용하는 게 아닐까, 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런 거 아닙니다. 이 글은 이 책의 전반에서 펼쳐지고 있는 지은이의 시 해석 양상이다. <절정>이 아무리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적은 시라고 해도, 이렇게 시 해석을 확정해 버리면 어쩌자는 말일까. 심지어 제도권 교육에서 해석하는 방식과 아무런 차이도 보여주지 않고. 평론집은 평론가가 '자신의 해석'을 드러내는 책이니 또 모를 일이지만, 이 책은 평론집이 아니라 인문서인데? 이러면 이 책은 '은유의 힘'이 아니라 '내 (장석주) 은유의 힘'이 되는데.....


요컨대, 책의 기획 자체가 아슬아슬하다는 말이다. 물론 지은이가 해석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은유를 사고하지 말라는 말은 책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지은이가 은유의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뭇 감탄이 섞인 어조로 좋은 시들의 좋은 은유들을 차근차근 풀어헤쳤을 때, 나는 거기서 고등학교 교과서를 보았다. 아름다운 시들을 더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보다, 암호를 해독하듯이 시의 목을 따고 배를 가르고 뼈와 살을 발라 먹어야 했던 암담한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6


더 큰 문제를 하나 지적하고 싶다. 다소 비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꼭 말하고 싶다. 25쪽이다.


월트 휘트먼은 한 아이가 풀잎을 따와서, 이것이 뭐예요? 라고 물었을 때, "내 기분의 깃발, 희망찬 초록 뭉치들로 직조된 깃발"이라고 말한다. 이 멋진 은유들이라니! (25)


난 이 부분을 보고 월트 휘트먼이 미쳤나 했다. 이 위대한 시인 양반아, 지금 당신 앞에 서 있는 그 불쌍한 아이, 표정 봤어? 아이의 손에 힘이 풀려 팔랑팔랑 떨어지고 있는 그 풀잎이 안 보이냐고. 그리고, 이 마당에 멋진 은유라굽쇼?


나는 나름 마르크스주의자지만, 시인들이 부르주아와 자본주의의 악당 군상들을 문학으로써 처단하고, 프롤레타리아들의 혁명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예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0만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도, 300이 넘는 죄 없는 목숨들이 이유 없이 가라앉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이 서정에 움직인다면 서정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물론 시인들은 대부분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이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울 것이다.) 사회가, 세상이 당신을 호명한다고 느끼지 않았다면, 당신은 당신만의 은유를 마음껏 뽐낼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세상이 당신을 호명했다면, 세상이 아니라 작은 아이 하나라도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당신에게 질문을 던졌다면, 그리고 그 부름과 질문을 당신이 인식했다면, 당신은 거기에 대답해야 시인이다. 


아이는 휘트먼에게 풀잎을 물었다. 그런데 휘트먼은 아이의 질문을 이용해 자신의 기분과 희망을 대답했다. 이것이 아이에게 대답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위험한 시인이 될 수 있다. 물음을 가볍게 뛰어넘는 자신만의 대답을 준비하는 자들, 누가 무얼 묻든 자신이 대답하고 싶은대로 대답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을 보유한 자들, 능력이 권한을 준다고 착각하는 자들, 그리고 그 언어 능력을 지닌 스스로에 감탄하고 자부심을, 나아가 우월감을 느끼는 자들, 그런 자들의 마음 속에 더러운 욕망과 권위의식이 함께 깃들 때, 그들이 은유와 은유를 팔아 쟁취한 문화권력을 동원하여 애꿎은 여성들과 순수한 문청들에게 어떤 일들을 저질렀는지 우리 일반 독자들도 이제 알만큼 안다.


시인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에 대하여 시인이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부분이 물론 있긴 하겠지만, 때로는 시인의 입에서 나왔으므로 시인이 아닌 이들에게는 그저 허튼소리로만 들리는 것들도 있다. "국회의원은 국민 여러분의 뜻을 잘 받들고 국민 여러분을 대신하여......" 라고 말하는 자들은 국회의원과 국회의원 워너비들 뿐이다.


시인은 시인에 대해서 말하는데, 시인이 아닌 사람들은 시인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이 별 것 아닌듯 보이는 틈이 우리 사회에서 시의 시간이 저물어 가는 현실과 과연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

  



7


엄청 까 놓고 이런 말로 급 마무리 하기가 웃기긴 해도, 사실 이 책은 좋은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은유로 밥벌이 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가 한 평생 살면서 은유에 관하여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을 훌쩍 뛰어넘는 막대한 양의 정보가 함유되어 있다는 것이겠다. 그러나 이 책이 진짜 의미를 발휘하는 곳은 시인의 책장도, 시를 읽지도 쓰지도 않는 이의 책장도 아니라, '시인'은 아니지만 시를 쓰는 사람들, 항상 은유를 궁굴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은 은유를 찾아 시집을 뒤적이는 syo같은 만년 문청의 책상 위가 아닐까 한다.


퀄리티로 별 네 개, 이것저것 지적하면서 한 개 뺐다가, 장석주 작가를 향한 사랑에서 별 한 개가 태어나 결국 네 개로 마무리. 알라딘 세상 제일 공신력 떨어지는 Rotten Syomato 신선도 85%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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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7-09-08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살아 팅팅거리는 글빨~ 즐겁게(?) 읽었습니다. ^^

syo 2017-09-08 22:57   좋아요 0 | URL
^^ 저도 즐겁게 썼는데, 즐겁게 읽어주셨다니 더할 나위가 없네요.

독서괭 2017-09-0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점이 네 개인 걸 보고 나서 읽어내려가는데, 오호! 역시~ 그렇구나! 이책은 읽지 말아야겠구나... 하다가 잠깐, 내가 별점을 잘못 봤나? 하고 다시 확인했습니다ㅋㅋ
교과서가 생각난다는 지적 때문에 역시 안 읽을 것 같네요. 알쓸신잡에서 김영하씨가 우리나라 문학교육의 문제를 지적하며 한 농담이 생각납니다. 상사의 숨은 의중을 파악해야 하는 사회생활에 대비하기 위한 교육이라면 제대로 하고 있는 거라고..

syo 2017-09-09 12:04   좋아요 0 | URL
네 ㅎㅎㅎ 저는 별을 4개 주었으나, 다른 어디 추천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드는 책이네요.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이나 몇 개 읽는 게 더 남는 장사겠습니다.

다락방 2017-09-11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격렬하게 깠지만 별 네 개 주는 마음, 저도 뭔지 알아요. 마찬가지로 격하게 사랑하지만 별을 네 개밖에 못주는 마음 같은 것도요. 그리고 정말이지 이 글은 씐나게! 읽었습니다. 고백하자면,

4번 읽으면서 ‘그만 읽을까..‘를 고민했고요,
6번 읽으면서 빡침이 몰려왔습니다.

아이가 풀잎을 물었는데 저렇게 대답하면, 아이로서는 읭???????????????? 하게 되는거지요. 자기 기분 표현할 줄만 알지 아이의 기분에 대한 공감은 떨어지는 시인이란 사람... 싫다.......

그런데 쇼님, 리뷰 재미있게 잘쓴다. 진짜 날이갈수록 글 실력이 늘어가네요!! >.<

syo 2017-09-11 11:30   좋아요 0 | URL
글실력이 는 것도 있겠으나, 원래 입진보가 제일 잘하는 게 까는 겁니다. 할줄 아는게 그거 밖에 없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지요. ㅎㅎㅎㅎ
 
국가란 무엇인가 - 2017 개정신판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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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이 고등학교 선배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스물 한 살이었다. 심지어 이 세상 모든 스물 한 살 중에 가장 문제가 많다는 정치에 관심 없는 스물 한 살이었다. 아빠, 유시민 아세요? 고등학교 선배래요. 철없는 아들이 물었다. 철없는 아버지가 이렇게 대답했다. 유시미이 그거, 국회에 빽바지 입고 오는 빨개이거든, 그거? 아주 웃긴 놈이지. 원문에는 쌍시옷이 더 많고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네발 짐승도 두어 마리 등장했으나 고인의 명예를 위해 옮기지 않는다. 어쨌든 향후 몇 년을 유지될 내 이미지 사전 속에 유시민이라는 사람이 웃긴 빨갱이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무슨 일만 터지면 이게 다 노무현 탓인지 아닌지 저울질하던 시절이었다. 밝은 가운데 엄혹한 시간이었다.


웃긴 빨갱이를 다시 발견한 것은(사실 그는 항상 있었다. 내 눈이 그에게 닿지 않았을 뿐) 한참 뒤의 일이었다. 통치해서는 안 될 사람이 통치하고, 그 결과 떠나서는 안 될 사람이 말도 안 되게 떠난 뒤였다. 강동구청에 마련되었던 분향소를 그냥 지나치고 나서야 뒤늦게 떠난 사람의 소중함을 알게 된 나는, 여기저기 그 사람의 흔적을 찾아 인터넷을 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그가 있었다. 떠난 사람의 옆자리에 그가 있었다. 더는 빽바지는 입지 않았지만 여전히 빨간 사람이라는 소문을 흙먼지처럼 끌고 다녔다. 그는 발견하지 않을래야 발견하지 않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었다. 송곳은 그의 혀였다. 그 송곳을 휘둘러 그는 수없이 많은 사람을 발랐다. 털었다. 종횡무진이었다. 그와 마주 선 토론자들의 얼굴이 한 여름 좋았던 날을 추억하며 초라하게 바닥을 뒹구는 늦가을 나무 이파리 빛깔로 변할 때까지, 그는 가차없이 발랐다. 털었다. 뭔가를 갚아주기라도 하려는 듯, 거침이 없었다. 이미지 사전이 한차례 갱신된다. 웃긴 빨갱이는 지워지고 프로발골러와 천사소녀 네티가 기록되었다. 아주 싹 발라먹고 탈탈 털지만, 아쉽게도 그는 모든 선거가 끝나면 언제 있었냐는 듯 마법처럼 사라진다. 그러다 심지어 정계에서 사라졌다. 정말 마법처럼,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그는 짱가처럼,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앞에 나타났다. 이 다음에 그를 만난 것은 역시 그렇게 떠나서는 안 될 목숨들이 무수히 떠나고 난 다음 달이었다. 슬픔이 내게 정치를 가르쳐주었다. 그 슬픔은 나 말고도 많은 이들에게 정치를 가르쳐주었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마다 내 컴퓨터 속으로 내게 정치를 가르치러 오는 선생이 다시 그였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다시 듣고, 또 다시 들었다. 월요일을 그렇게 보내면 화수목금토를 침대에 누워 그의 책을 뒤적이며 보냈다. 일요일은 쉬었다. 내일이 월요일이고, 내일이면 다시 그가 말한다는 생각에 설레 차마 책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 두자. 이미지 사전이 마지막으로 갱신된다. 그는 선생이다. 한 번도 나를 제자로 삼은 적이 없지만, 아몰라 그냥 나한텐 선생이다. 그의 말은 내게 권위를 넘어섰다. 유시민과 여친과 치킨은 삼위가 일체였다. 셋 다 조금은 낮은 데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내 인생의 성스러운 트라이앵글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내겐 바이블이다. 바이블은 신비한 책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보기에는 별 의미없는 옛날 이야기나 담겨 있는 책으로 보이지만, 믿는 이들은 그 안에서 세상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낸다. 근 1년간 내가 궁구했던 큼직한 질문들(주로 어떤 독재자의 딸과 그녀의 추종 세력을 둘러싼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의 답이 때로는 대놓고, 또 때로는 은근하게 이 책에 다 들어있고 녹아있다. 그러니까 이 책이 어떤 책인가 하면, 


아, 큰일 날 뻔했다. 읽는 분들은 모르시겠으나, 지금 이 순간 나는 거의 서른 줄에 달하는 찬양고무문건을 작성했다가 기겁해서 백스페이스를 연타하여 없애 버렸는데, 그것은 이런 여덟 글자로 요약 되는 등골이 서늘한 글이었다. "시민천국, 불신지옥." 쓸 게 없어서 이런 말로 때우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21개월의 군생활동안 구약을 2번, 신약을 4번 통독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어떤 신자들의 마음을 한 방에 공감시키고, 심지어 똑같은 행동까지 하게 만들다니, 그것만 해도 이 책 진짜 위대한 책 아닌가? 전 대통령이 그렇게 달고 살던 국론분열의 골을 메울 수 있는 막강한 접착제가 여기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누구보다도 전 대통령이 읽었어야 할 책이라 하겠다. 지금이라도 좀 읽었으면 좋겠다. 난 거지지만, 사비로 한 부 보내드릴 마음 있다. 없는 것은 지갑 속의 돈이 아니라 더 나은 것을 향한 당신의 의지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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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9-05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 님에게 유시민이 그런 의미로 다가오셨군요.
저도 유시민 무척 좋아하지만
글쎄요, 현실에선 2프로 아닌 20프로 부족한 거 같습니다.
그나마 유시민 만한 정치인과 사람 없단 현실이 많이 슬픕니다.
마지막으로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는 썩 맘에 들지 않습니다. 그의 국가관 땜에요...

syo 2017-09-05 22:58   좋아요 2 | URL
하하하, 전 사실 유시민 작가님보다는 훨씬 좌측이라 결과적으로는 저도 그 국가관에 100%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지금 정치 중2라 치면 분명 저를 코닦아 가며 유치원 보내고 초등학교 보내고 중학교까지 입학시킨 건 또 100% 저 사람이라서요 ㅎㅎㅎㅎ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른이 되려면 아직 한참 남았지요. 저한테 유시민은 그런 의미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9-05 23:24   좋아요 0 | URL
<국가란 무엇인가>도 언급하지만, 유시민은 베른슈타인 사상에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로쟈 사상도 좀 더 소개했으면 좋았을 거 같습니다.
책에서 진중권이 비판했듯이 유시민의 국가관인 ˝사회자유주의˝는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회˝와 ˝자유˝가 엄밀히 공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 물론 그렇게만 된다면 최상이죠. ^^

syo 2017-09-05 23:34   좋아요 1 | URL
제 생각에도 유시민은 베른슈타인 방식이 현 상태의 최적해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전 아직 베른슈타인도 룩셈부르크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아서 뭐라 입장을 내세울 단계는 아니지만, 솔직히 개혁이나 혁명이나 둘 다 너무 어려워 제 살아생전에 완수되는 꼴을 볼 수 없는 길 같다는 느낌입니다. 젠더 문제, 인종과 종교문제를 보면 사회혁명이 모든 걸 일거에 해결해줄 것 같지도 않구요.....

북다이제스터 2017-09-05 23:44   좋아요 0 | URL
저도 말씀에 공감합니다.
제 생애에 개혁이나 혁명은 없을 거 같습니다.
그게 그렇게 쉽고 단순하게 일어나지 않을 거 같습니다.
그치만 그걸 우리 세대에 방향성으로 놓느냐 마느냐는 중대한 문제인거 같습니다.
갑자기 괜시리 오늘같이 좋은 밤, 얘기가 무거워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요즘 살기 넘 팍팍해서요. ㅠㅠ

syo 2017-09-05 23:54   좋아요 1 | URL
죄송은요. 좋은 말씀 감사했습니다. 북다님의 깊이있는 리뷰들과 이런 유익한 댓글들이 항상 큰 도움이 됩니다^^
저는 살기가 팍팍 할땐 일단 팍팍 먹습니다. 말장난 아니라 진짜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09-05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유시민님을 좋아해요

학교 다닐때 ‘항소이유서‘ 를 출력해서 가방에 가지고 다녔던 기억이..

syo 2017-09-05 23:34   좋아요 1 | URL
저도 그 글 정말 좋아합니다. 요즘도 가끔 읽습니다.

독서괭 2017-09-05 2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잘 쳐 줘도 정치 초1 정도라(얼마 전까지는 신생아였으니 급성장?! 응애응애) 유시민씨의 빽바지나 프로발골러 시절은 잘 모르지만, 썰전과 알쓸신잡을 보며 존경할만한 멋진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그의 가치관에 동의하느냐 여부와 관계없이요. 논리 없이 떠들어대는 많은 사람들이 뱉어내는 먼지 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지성을 목격한 느낌이랄까요... 앞으로도 종횡무진 활약해 주셨으면!
유시민과 여친과 치킨을 삼위일체로 모셨다는 syo님의 너스레에 또 웃고 갑니다. syo님의 글도 북플에서 별처럼 빛나고 있네요^^

syo 2017-09-05 23:53   좋아요 1 | URL
ㅎㅎㅎ 항상 읽어주시고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라딘에 글 올리고, 달아주시는 댓글들 보고 있으면 너무 과한 칭찬 많이 받아서 이거 원 까딱 잘못하면 저 자신도 실제보다 더 잘난 놈인 줄 착각하게 생겼습니다...
 

 

 

장서의 괴로움 / 오카자키 다케시 /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처음 이 책이 발매되고 도서관에 입고되었을 때, 한동안 서가에 꽂힐 새가 없을 정도로 불티나게 대출되더라. 처음에 나는 좀 놀랐다. 세상에, 장서의 괴로움을 공감할만큼의 고수들이 이렇게나 많단 말인가? 아니 잠깐, 그런 사람들은 책을 빌리는 게 아니라 사서 볼 텐데, 아니 잠깐잠깐, 그럼, 책을 사서 보는 사람들이 빌려 보기로 마음먹을만큼 이 책이 별로라는 말인가? 뭐 대충 이런 식의 되먹지 못한 논리의 흐름에 휩쓸려 그만 이 책에 대한 관심을 정리했던 것 같다. 3년 전이다.

 

엄청 재미있을 것 같은 소재(최소한 의욕적인 알라디너라면 그렇게 생각할 공산이 크다)로 쓴 책을 막상 읽어보니 그저 소소했을 때, 리뷰어는 난감하다. 칭찬하기도 부끄럽고 욕하기도 뻘쭘하고, 칭찬거리가 오히려 단점을 부각시키고 마는 희한한 상황. 게다가 남의 나라 남의 책 이야기라서 한층 더 재미없다. 문장은 더 문제다. 그렇게 책을 많이 읽고, 쓰기도 한다는 사람의 글 치고 어쩐지 문장에 매력이 없고 재미도 없다. 몇 군데 오자를 발견하는 바람에 혹시 이게 번역가와 편집자의 문제는 아닐까 싶은 의심도 든다. 무엇도 확실하지는 않다.

 

내용의 절반이 책이 너무 무거워 집 무너지거나 무너질 뻔한 이야기인데, 나는 저런 막장까지는 가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과 그러나 저런 막장 인생이라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복잡하게 뒤엉킨다.

 

다른 책들도 떠오른다. 윤성근의 책은 재미 면에서 이 책이 지닌 단점들을 모두 극복하고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은 스케일 면에서 이 책은 물론 독자까지 압도하는 데가 있다.

 

 

 

 

 

길 위의 인생 / 글로리아 스타이넘 / 고정아 옮김 / 학고재

 

특수성과 보편성이라는 양 극단의 두 우물이 있다고 치자. 한 번은 이쪽 우물에서 빨간 물을, 또 한 번은 저쪽 우물에서 파란 물을 길어야 한다면 얼마나 난망할까. 그런데 이 책은 또 그걸 한다. 그 양쪽 우물에서 빨간 물과 파란 물을 동시에 길어내는, 우리가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책들 중 하나다. 평생을 길 위에서 보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길 위에서 만난 무수한 사람들의 주옥같은 이야기들은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 책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결코 얻을 수 없었을 특수성의 보석이다. 또한, 한 사람의 인생은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 그들과의 교감과 충돌로 빚어진다는 보편적인 지혜도 들려준다.    

 

나는 길에 오를 수 있다. 집에 올 수 있으므로. 나는 집에 올 수 있다. 자유롭게 떠날 수 있으므로. 존재의 모든 방식은 다른 사람의 현존으로 가치가 더 빛난다. 캠프 치기와 계절 따르기 사이의 이 균형은 아주 오래된 동시에 아주 새롭다. 우리 모두 두 가지 다 필요하다.

 

아버지는 오로지 길의 기쁨을 위해 혼자 죽는 편을 택할 필요가 없었다. 어머니는 집을 갖기 위해 자신만의 여정을 포기할 필요가 없었다.

 

나도 그렇다. 당신도 그렇다. (414-415)

 

앞으로 50년이 더 지나, 내가 걸어온 길, 만나온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을 때, 내가 이 책의 절반, 혹은 그 절반의 가치라도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선, 지금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꼼꼼히 듣고, 자세히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위대하고 찌질한 경제학의 슈퍼스타들 / 브누아 시마, 뱅상 코 / 권지현 옮김, 류동민 감수 / 휴머니스트 

 

 나는 비꼬는 책을 싫어한다. 그러나 제대로 비꼬는 책은 사랑한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

 

지식의 교수대가 있다면, 가장 먼저 마셜의 머리를 건 다음 파레토, 발라, 제번스 등 신고전학파 일당 전체에게 벌을 줄 것이다. 당시에도 이미 낡았던 가설(오늘날에는 오죽하랴.)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실 세계를 정의하는 것은 경제의 균형, 이를테면 공급이 수요에 다가가거나 수요가 공급에 다가가면서 추는 배꼽춤이라고 믿었다.

 

이 책을 통해 지식을 얼마나 얻을 수 있을는지가 채점기준이 된다면 득점에는 독자의 수준과 입장에 따라 논쟁이 붙겠지만, 일단 재밌다! 나보다 6살이나 어린 친구가 그렸다는 만화는 정말 뭐라고 칭찬해야 할지 말을 못 고를 지경이다.『자본』의 귀퉁이에 조그맣게 스마일을 그려넣고 있는 맑스의 저 표정을 좀 보라지! 그림은자본』이 그야말로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제대로 비꼬고 있다. 만화 속 맑스는 예언자다! 그의 염려대로자본』은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지만 실은 출간된 후 150년 동안 진짜로 읽은 사람은 전 세계를 탈탈 털어도 열두 명, 좋게 봐줘도 열 세명 뿐이며 향후 10년 안에 읽기만 하면 그 사람이 곧바로 열 네번째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추측되는 비운의 책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저러나, 그간의 정황으로 미루어보건대, 어쩐지 나는 맑스를 그린 그림에 페티시가 좀 있는 것 같다. 저 지맘대로 수염 하며, 저 결코 가려지지 않는 배 하며. 하악하악.....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 권김현영 외 / 교양인 

   

이 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마르크스는 상품의 가치를 그 상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에서 찾아냈다. 노동자의 임금 또한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노동력이 하나의 상품이라고 하면, 그 노동력을 만드는데 필요한 것들의 노동시간의 총량을 임금으로 보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노동력의 재생산'이라 불렀고, 노동자가 노동력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물적, 정신적, 교육적 여건들의 가치를 노동력의 가치로 본 것이다. 근데 이때, 아내가 제공하는 가사노동을 노동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즉 노동력을 재생산하는데 필요한 가사노동의 가치를 매기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임금 전체가 낮게 책정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이놈의 여편네가 집에서 빈둥빈둥 하는 것도 없으면서 서방이 왔는데 밥도 안 내놔, 라는 개소리를 할 권리가 있다는 지독한 오해를 획득한 대신 임금의 일부에 손실을 보게 된 제 발 찍기식 실책이 아니었나 하는 것이다. 오독일 수 있다. 거친 결론일 수도 있다. 깊이 공부해 본 적이 없으니 자신이 없다.

 

어쨌든 이런 생각을 친구놈에게 말했다. 친구놈은 주류경제학의 입장에서, 가사노동은 딱히 그 가치를 측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나는 측정하기 힘든 것이 아니라 측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친구놈은 그렇다면 책정된 가사노동의 대가는 누가 지급해야 하냐고 말했다. 나는 임금 자체가 가사노동을 배제하여 부족하게 책정되어 있으므로 임금 상승이 수반되어야겠지만 최종적으로는 가사노동이라는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구놈은 그렇다면 그것이 돈이 오가는 계약관계랑 다를 것이 무엇이냐며, 가족이란, 결혼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알았다. 부셔야 할 것이 곳곳에 있다. 낭만적 결혼에 대한 가부장적 환상. 사랑은 대가가 없는 것이므로 돈이 오가면 오염된 것이라고 보는 맹목적인 헌신의 사랑관. 정신차려야 한다. 그럴 이유가 없다. 인간이 만든 모든 관습은 절대 공평하지 않다.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관습으로 고정될 이유가 없다. 관습이 전통이 되었다는 것은 보편성을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기득권 세력의 통제력이 그만큼 강하다는 이야기이다. 전통이 문화가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인정해주어야 할 절대적인 가치가 발현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 세력의 통제력이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그들을 감추는 투명망토가 되었다는 뜻이다. 많이 읽어야 한다. 날카롭게 보아야 한다.  

 

    

근육을 사용해야 걷거나 달릴 수 있듯이, 이론이 있어야 우리는 모든 것을 집어삼켜버리는 현실의 중력에 대항해서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다른 것이야 말로 '새로운 것'이다. 중력을 거스르기 위한 힘, 이것이 바로 근육의 쓸모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론은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을 찾아내는 관점을 뜻하기도 한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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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9-03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정말 좋은데 좋다고 표현하는 일이 어려워요. 책을 읽다보면 좋다고 느끼게 되는 특별한 이유가 없을 때도 있어요. 좋으면 그냥 좋은거죠.. ㅎㅎㅎ

syo 2017-09-03 09:18   좋아요 0 | URL
전 이유 여하에 상관없이 책이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대놓고 표현하는 편인데, 문제되는 지점은 아무래도 한 책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할 때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