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멈추지 못하는 책과 끝없이 멈춰야 하는 책


썩 많은 책을 읽었다는 정도의 자랑이라면 부끄러움 없이 할 수 있겠다. 이런 3자 대화를 종종 겪곤 한다. "얘는 책 진짜 많이 읽어!" "아, 진짜 많다 할 정도는 아니예요." "와, 어느 정돈데요? 일 년에 백 권 넘게 읽으세요?" "아, 네, 뭐." "이봐, 장난 아니지?" "우와, 진짜 대단하시네요. 좋은 책 하나만 추천해주세요. 안 그래도 요즘 책 좀 읽으려고 그러는 중이거든요." 꾸준히 읽고 쓰시는 알라딘의 이웃분들 역시 무시로 겪는 일일테지만, 쟁쟁한 독서가들 사이에서도 책 추천은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물며 서로를 뜨문뜨문 아는 와중에 대뜸 책 한권 골라 달라는 요청은 때로는 폭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당신을 모르면 당신이 읽을 책도 모릅니다. 당신을 읽지 못하면, 당신이 읽을 책이 무엇인지도 읽지 못합니다. 정말로 '책 읽으려는 마음'을 품었는데 갈 길을 모르시는 거라면, 먼저 당신을 조금 더 알려주세요.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해 주세요. 당신은 지금 이렇게 말하신 거예요. 자, 이 글자는 '에이'라고 읽구요, 요건 '비'라고 읽으면 되구요. 그 다음 건 '씨'라고 읽으시면 돼요. 아시겠죠? 자 그럼, 이 단어 한 번 읽어보실까요? 'pneumonoultramircroscropicsilicovolcanoconiosis'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뜸' 책을 추천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syo는 두 부류의 책들을 떠올린다. 끝까지 멈추지 못하는 책과 끝없이 멈춰야 하는 책. 마지막 장을 읽고 나서야,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산소호흡 하는 동물이었지, 하고 깨닫는 책과, 단 한 줄을 읽어 넘기는데 들숨과 날숨을, 심지어 때로는 한숨을 몇 번씩이나 빚어놓아야 겨우 발이 떨어지는 책. 어느 쪽이 더 좋으세요, 하고 물으면 열 명 가운데 열두 명이 망설임도 없이 전자를 고른다. 그래서인가 어쩐지 후자를 고르는 사람을 만나면 감동받을 것 같다. 밥 한끼 사먹이고 싶을 것도 같다. 그래서 돈 좀 있었으면 좋겠다. 마음만 있다. 마음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마음이 없어서 세상에 굶주림이 없어지지 않는 것인데...... 하여튼, 그래놓고서는 막상 syo 자신은 '못 서는 책'과 '못 가는 책'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좋냐는 질문을 만나면 묵비권 말고는 답이 없다. 그런 책들과 함께 했던 순간들은 돌이켜보면 지금도 은근히 행복해지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못 서는 책



syo가 최초로 경험한 '못 서는 책'은 『죄와 벌』이었다. 열린책들판이었고,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눈이 쉬이 피로해지는 편집이지만 그런 걸 느낄 새도 없었다. 앉기만 해도 천장에 머리가 닿는 복층 좁은 공간에 매트리스 하나 깔고 얹혀 살던 시절, 겨울이었다. 날이 밝아 올 때 읽기 시작했는데 두 권을 다 덮었을 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두 끼를 걸렀고, 정신을 차리고 나자 미친 듯이 배가 고팠으나 어쩐지 지금 당장 입으로 뭔가를 집어넣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의 여운을 길게 가져가지 않으면, 최소한 이 고양된 감정이 스스로 물러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내가 먼저 그 손을 놓친다면 평생 오늘을 후회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매트리스 위에 누워 팔을 뻗어 손끝으로 천장을 어루만졌다. 그 질감,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던, 그래서 차갑기도 하고 뜨겁기도 한 것 같던 감각을 아직 기억한다. 내가 지금 사실은 무엇을 만지고 있는지 계속, 계속 생각했다.




무라카미는 '못 서는 책을 쓰는 사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다. 처음 무라카미를 손에 들었던 18살부터,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던 이십대 중반까지 무라카미는 syo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였다. syo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4人'이라는 내부문건을 작성하고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기 위해 항상 유력 소설가들의 동향을 사찰하고 있다. 무라카미는 그 리스트에서 내려온지가 좀 되었는데도, 그런 것과 무관하게 여전히 가장 강력한 페이지터너다. 심지어 『1Q84』의 위력은 syo 혼자 검증한 것도 아니다. 보급이었는지, 아니면 개인이 가지고 들어온 건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하여튼 이 책이 유입되자 부대가 아주 난리가 났다. 몇몇 중요한(......새끼들.) 페이지는 소실되었다가 화장실 귀퉁이에서 꾸득꾸득 접힌 채 발견되질 않나, 책이 하도 서가에 돌아오지 않자 기다리다 빡친 말년 병장 하나가 누구 관물대에 짱박혀 있는지 찾아내겠다며 생활관을 지 맘대로 헤집어 놓다가 걸려서 말년 휴가 이틀이 짤리질 않나......  




못 가는 책



'道可道非常道' 라는 여섯 자가 인생의 화두였던 때가 있었다. 스물 갓 넘은 놈이 화두로 삼기에는 거대한 면도 없지 않았으나, 다양한 책들이 보여주는 그만큼 다양한 해석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보니 아무리 미미한 syo라도 나 하나 기대고 살 조악한 해설 하나 덧붙이는 게 뭐 그리 큰 죄겠느냐며 마음 위에 놓고 며칠을 궁굴린 여섯 글자였다. 종이에 열심히 적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한 페이지를 읽는 데 일주일이 더 걸렸다. 깨달은 것도 많고, 실질적으로 얻은 것도 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제일 안 아픈 부위를 골라 한 번 새겨 볼까 하여, 저 여섯 자 가운데 두 번째 道 하나를 제외한 다섯 글자로 타투 디자인도 만들어 보았다. 그때 그때의 여친들이 모두 반대했고, 여친을 제외한 나머지 인류도 반대표를 던졋기 때문에, 그 도안은 syo의 몸이 아닌 마음 속에서 때를 기다리며 조용히 잠들어 있다.   



『섬』은 순수하게 그 문장에 반하여 얼굴을 붉히며 오래 머물렀던 책이다. 지금은 어쩐지 본문보다 카뮈의 서문이 더 유명해져 있지만, syo는 특이하게도 카뮈보다 그르니에를 먼저 알게 되었기에 오히려 더 좋았던 걸 수도. 학교 도서관 서가를 기웃거리다 정말 우연히 뽑아든 책이 청하출판사에서 나온 『섬』이었는데, 이런 건 운명이라는 말 말고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민음사판과 청하판은 역자가 다른데, 민음사판의 김화영 선생님의 불어 번역이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느냐만은, 청하판 함유선 선생님의 번역도 미려하기로 따지면 한 치의 양보가 없다. 개인적으로 청하판 장 그르니에 전집은 정말 미친듯이 갖고 싶은 책들인데, 표지 디자인은 물론 수동 타자기로 때려넣은 것 같은 옛스러운 글자체 하며, 뭔가 그야말로 섬 같은 『섬』이 아닌가 싶다. 절판이고, 꼴랑 『섬』하나 가지고 있다. 복간되면 좋겠다. 민음사판은 선집이다. 





syo의 인생책이라 항상 추천하지만 단 한 번도 좋은 리액션을 받아본 적이 없는 비운의 책. 경험적으로 보면 사실『월든』을 좋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로의 긴 문장을 천천히 읽기를 좋아해야 하고, 천천히 사는 소로의 삶 자체를 좋아해야 한다. 천천히, 천천히. syo는 속독하는 편이지만, 월든만큼은 음독 이상의 빠르기로 읽지 않는다. 매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때면 볕 잘 들고 바람 잘 통하는 곳에 앉아 조용히 마음 속으로 소리 내 이 책을 읽고 있다. 볕 들면 멈추고 바람 통하면 쉬어가는 법을 몸에 새기고 있다. syo는 위의 3종을 가지고 있는데, 다 좋다. 막 좋다. 조금씩, 그러나 명확히 세 권은 다르다. 그래서 더욱 좋다. 




syo가 톨스토이고 뭐고 모르겠고 난 그냥 무조건 도선생, 을 외치고 다닌 것은『죄와 벌』을 두 번째로 완독했을 때부터였다. 이 책은 syo에게 '못 서는 책'인 동시에 '못 가는 책'이다. 아직 다른 어떤 책도 syo에게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요즘 천천히 읽느라 가다 서다 되돌아가다를 반복하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  




멈추는 법을 알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끝까지 멈추지 못하는 책과 끝없이 멈춰야 하는 책 중 무엇이 더 좋은 책인지, 혹은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하는 물음은, 어쩌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아니라, 질문할 수 없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면, "헤어 드라이어랑 미디움 웰던으로 구운 스테이크 중에 뭐가 더 패셔너블해요?" 하는 질문처럼. 그것은 '책의 기능'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가지치기하는 하위분류가 아니라, 전혀 다른 평면의 문제일 수 있다. 


그렇지만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어쨌든 책은 멈추는 법을 가르치는 가장 좋은 선생이 아닌가 하는, 멈추지 않으면 읽을 수 없고, 읽지 않으면 멈출 수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제발 좀 그만하고 멈췄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들의 말과 행태를 접할 때마다 권하고 싶은, 아니, 아예 어디다 가둬 놓고 쑥과 마늘만 먹이면서 읽히고 싶기까지 한 책이 쉽게 떠오르는 것을 보면, 저런 생각은 과정이 섞이긴 했어도 완전히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지 않나 싶다.


그나저나 '못 서는 책'과 '못 가는 책'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니, 이건 무슨 계급 높은 꼰대들이 사람들 앉혀놓고 농담이랍시고 꺼내는 음담패설 같기도 하고, 타이틀 걸지게 뽑아서 독자 낚으려는 전형적인 기레기 수법 같기도 하다. 중의적 효과를 노린 건 전혀 아니었지만, 그게 오히려 syo가 태생적으로 더러운 작자라는 증거인가 싶어 더 무섭다......으으.



댓글(26) 먼댓글(0) 좋아요(6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깐도리 2018-02-17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까지 멈추지 못하는 책, 에는 도스토옙스키와 나쓰메 소세키가 있지요..죄와 벌.. ㅠㅠㅠ

syo 2018-02-17 15:25   좋아요 1 | URL
도 선생님과 나 선생님은 syo가 사랑하는 소설가 4人 리스트에 현재 등재되어 상시특별감시대상이 되고 있는 분들이지요.

깐도리님도 syo와 취향이 비슷하시네요- 라고 말하려고 하고 보니, 도스토옙스키나 나쓰메 소세키쯤 되는 거장들을 입에 올리면서 사적인 취향 이야기하는 건 좀 웃기긴 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2-17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 님의 독서일기는 항상 읽어도 새롭게 읽히는 맛이 있어 좋네요.. ㅎㅎ

syo 2018-02-17 17:24   좋아요 0 | URL
반사 ㅎㅎㅎㅎ
무지개 반사 ㅎㅎㅎㅎㅎ

단발머리 2018-02-22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죄와 벌,에 대한 syo님의 사랑이 아름답네요. 도선생님의 <죄와 벌>이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라는 걸 왜 사람들은 진작에 알려 주지 않았는지....전, 저보다 먼저 죄와 벌을 읽은 사람들을 원망했습니다, 진심으로요.

월든,을 볼 때마다 syo님 생각이 날 것 같아요. 여러번 언급하셔서 저도 읽어봐야지 하고 있구요^^

syo 2018-02-18 00:05   좋아요 0 | URL
왜 보통, 고전이라고 해서 추천받거나 잘 나가는 대학교 선정 필독도서랍시고 뽑아놓은 목록 속의 책들은 희한하게 다 재미가 없잖아요. 그런 진실에 한없이 수렴하는 편견 때문에 피해보는 거장들을 모아 놓으면 아마 제일 선봉에 도선생님이 서실 거예요. 저 편견 어택에 크게 당해서 사실 저도 꽤 늦게 도선생님 책을 손에 들어본 편이지요. 단발머리님의 진심을 십분 백분 오만분 이해합니다.

<월든>의 경우는, 혹시 내가 추천해서 부정 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반응이 떨떠름했지요...... 뭐......이젠 포기야......으흐규ㅠ

고양이라디오 2018-02-20 21:53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저도 그랬습니다! 저도 진심으로 저에게 <죄와 벌>을 추천해주지 않은 사람들을 원망했습니다.

psyche 2018-02-18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르니에 <섬>! 남편이 책 좋아하는 저를 꼬시려고 자기가 좋아하는 책이라며 건냈던 책.(본인은 흑심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그거 읽고 그르니에 빠져서 그 이후 청하에서 사온 그르니에 전집 꽤 모았어요. 미국올 때 거의 모든 책은 다 친정에 두고 오고 큰 박스 한개에 책을 넣어 배로 보냈는데 그 때 챙겨온 책들 중 하나였죠.
지금 찾아보니 청하에서 나온 그르니에 전집 10개 가지고 있네요. <섬>은 청하것도 있고 민음사것도 있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민음사 <섬>은 저 사진에 있는 게 아니구요. 민음사에서 이데아 총서로 나왔던 <섬> 이에요. 틀춰보니 막 한문이 섞여있는.... 나 그 때 이거 어떻게 읽었지? 지금은 한자 까막눈 수준인데....
<월든>은 몇번 시도했다가 끝까지 못 읽었는데 다시 시도해봐야할까요?

syo 2018-02-18 08:44   좋아요 0 | URL
우와, 섬으로 썸타셨네요.
두 분 다 핵멋있어요. 섬으로 유혹하는 남편님도 멋있지만, 10권 모으신 프님이 더 멋있네요. 부럽습니다......

월든의 경우 추천을 포기했습니다..... 몇 번 시도했다가 못 읽으셨다면 굳이 읽으셔야 할까 싶기도 하구요. 지루한 면이 다분한 책인 것은 확실하니까요. 그래도 읽어보시겠다면, 이걸 완독해야겠어, 하는 욕심 없이 저처럼 며칠이 되건 몇 달이 되건 한 줄 한 줄에 머무르고 싶은 만큼 머물러가면서 천천히 읽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스토리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니, 마치 잠언처럼 읽어나가는 것도 방법이겠어요ㅎㅎㅎ

책읽는나무 2018-02-18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님의 책 이야기가 늘 흥미진진한데......
오늘은 읽고 있는데 왜 가슴이 뛸까요?
읽었던, 읽지 못한 책들....
조목조목 야무진 설명에
syo님 넘 사랑스럽습니다^^
집에 찜박아 놓은 월든과 죄와 벌 얼른 읽어야 겠구나!! 눈도장 찍으면서 그 책들을 읽으면 저도 syo님의 서재글이 많이 떠오르겠어요.월든은 정말 따라해 보고 싶은 광경입니다^^


syo 2018-02-18 08:50   좋아요 0 | URL
주신 사랑은 아주 넙죽 받아먹겠습니다 ^-^

도선생님 책은 전혀 걱정없습니다. 전적으로 시작하느냐 마느냐에 달린 문제거든요. 일단 시작만 하시면 그저 도선생님이 이끄시는 대로 물 흐르듯 흘러갑니다. 반면 월든은 걱정입니다.

저는 다른 책들은 빨리 읽는 편인데, 희한하게 월든은 처음부터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천천히 읽었고, 매년 그렇게 읽고 있거든요. 월든을 읽다 중도에 그쳤다는 제보가 쏟아질때마다, 어쩌면 나처럼 읽는 것이 월든 읽는 유일한 방법인건가 하는 생각도 막 들고 그렇습니다. 책나무님도 올해 봄-여름 환절기를 한번 노려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ㅎㅎㅎ

cyrus 2018-02-18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판본을 복간하는 출판 트랜드를 생각한다면 청하 그르니에 전집 복간 소식이 없어서 아쉬워요. 최측의농간 출판사라면 해볼만한데 1인 출판사라서 전집 복간 출간은 어려울 듯합니다.

syo 2018-02-18 08:54   좋아요 0 | URL
언감생심이네요. 죽기 전에는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요......

라로 2018-02-18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 저는 이 글을 읽고 너무 놀랐어요!! 제 고등학교 시절 서점에서 얇은 섬을 발견하고 구매했을 때 생각은 긴 글을 싫어하기 때문에 글이 대체로 짧고 얇아서 샀는데 결과는 제가 아주 사랑하는 책이에요!! 명상록과 함께 제 고등학교 동반자가 되어 준 책이랍니다.
도선생님의 책은 정말 대단하죠.
월든은 저도 시도라기보다 읽다가 흐지부지된 것 같아요. 아~~~이 책도 마무리를 져야 하는데. ㅠㅠ
저는 토비 님이 좋지만 섬 때문에 이제 빼도박도 못하게 좋아졌다는. ㅎㅎㅎㅎ

syo 2018-02-18 14:50   좋아요 0 | URL
맘 먹고 읽자고 들면 하루에 일곱 권도 더 읽을 수 있는 얇은 분량의 책 한 권을 일곱 날에 나눠서 읽으면서도 내내 감탄하고 감동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요. 물론 책 자체도 뛰어나야겠지만, 독자와 주파수가 맞아들어가야 가능한 일이니까요. <섬>은 그렇게 syo하고 주파수가 잘 맞는 책이었고, 라로님께도 그랬다면, 결과적으로 syo와 라로님이 주파수가 맞물리는 독자라는 이야기네요 ㅎㅎㅎ 빼박캔트 환영합니다. ^-^

<월든>에 부채감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꽤 많은 것 같아요. 비슷한 댓글을 계속 달다 보니 반복학습에 의한 최면 효과가 생긴건지, <월든>을 읽는 방법은 그야말로 느긋하게, 천천히, 볕과 바람 안에서, 라는 출처불명의 확신이 생깁니다.....

2018-02-18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18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짜라투스트라 2018-02-18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덕경 장자 논어 주역 같은 책들은 평생 계속해서 읽을 생각입니다^^ 섬은 진짜 청하출판사판본을 생각하면 문장 하나하나가 섬 같아서 문장 사이를 항해하며 섬들을 둘러본 느낌입니다^^ 어쨌든 쇼님의 책구분에 200% 동감합니다 ㅎㅎㅎ

syo 2018-02-18 23:30   좋아요 0 | URL
역시 청하판 그르니에 전집의 아름다움은 아는 이들은 다 아는군요. 크-

독서괭 2018-02-18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당신의 못 서는 책과 못 가는 책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져서 여러 사람들에게 답을 들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전 중학생 때 죄와벌을 시도했다가 질식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었더랬습니다 ㅠㅠ 몇년 전 다시 읽으니 숨쉬며 읽겠더군요 ㅎㅎ
몇년째 책장에 잠자고 있는 월든 토비님이 자꾸 얘기하셔서 자꾸 쳐다보게 됩니다. 죄책감은 점점 커져만 가고...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ㅠㅠ
암튼 토비님은 넘 멋져요.

syo 2018-02-18 23:3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월든 이 자식은 여기저기서 괜히 죄책감 조성하고 다니네요.

멋지다는 말씀은 못 들은 걸로 하지 않겠습니다. ㅎㅎㅎㅎ

고양이라디오 2018-02-20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선생과 무선생, <죄와 벌>과 <1Q84> 반갑네요^^ 저도 같은 느낌, 심정으로 읽었습니다. <1Q84> 3권을 읽으면서 남은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어찌나 아쉬웠던지요ㅎ

저도 따라해보고 싶은 ‘못 서는 책‘과 ‘못 가는 책‘ 이네요ㅎ

syo 2018-02-20 22:46   좋아요 0 | URL
제 특허도 아닌데요 뭘. 고라님도 한 판 하시죠 ㅎㅎㅎ

프리즘메이커 2018-02-21 0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흡입력 파기 때문에... 죄와벌과 하루키를 조용히 장바구니에 담겠습니다..

syo 2018-02-21 11:12   좋아요 0 | URL
프메님이라면 당연히 읽어보셨을 줄 알았어요 ㅎㅎㅎㅎ <죄와 벌>은 추천 안했다가는 욕먹는 분위기입니다.

프리즘메이커 2018-02-21 14:09   좋아요 0 | URL
ㅠ 대학원은 책을 못읽게하는 나쁜곳입니다....
 
존 치버의 일기
존 치버 지음, 박영원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검사유서


어두운 시간이 찾아오면 당신을 구원하는 데 재산은 쓸모가 없다오랫동안 다녔던 스키장이나 시냇물에 이르는 오솔길도 마찬가지다그보다 더 위대한 무엇을 당신은 반드시 찾아내야만 한다. (27) 


일기를 믿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소설가의 인생을 구성하지 않아도 된다. 듣고 믿으면 충분하다. 일기를 믿을 수 없다면 우리는 이 소설가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된다. 소설을 읽으면 충분하다. 하지만 일기가 믿을 수 있지만 믿을 수 없는 기록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소설가의 증언을 듣고, 신문하고, 상상하고, 메꾼다. 소설가는 이미 죽었다. 우리는 죽은 소설가의 일기에서 살아있는 소설가를 건져낼 필요가 없다. 소설가의 삶을 부검하고 그 흔적들 안에서 우리가 쓸 백신이나 치료제의 실마리를 길어내면 된다. 소설가는 이미 죽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살아있다. 이게 희소식이다. 나쁜 소식도 있다. 죽은 소설가를 찾아갔던, 그의 다잉메시지가 지목하고 있는 그 느긋하고 끈덕진 살인마, ‘어두운 시간역시 아직도 살아있다. 이제는 호시탐탐 우리의 옆자리를 노리면서.

 

 

 

첫번째 비상구 : 쓰기


잘 쓸 것정열적으로 쓸 것좀더 자유롭게 쓸 것좀더 너그러워질 것자신에게 좀더 엄격해질 것욕망의 물리적 힘뿐 아니라 그 지배력에 대해서도 인지할 것글을 쓸 것사랑할 것. (43)


어두운 시간에 갇힌 소설가는 종종 펜과 잉크 대신 나침반과 지도를 집어 들었다. 각도기와 삼각자를 문장에 가져다 대고 미세조정을 거듭했다. 글길이 멀었으므로 그 길은 아름다워야 했다. 문장의 여행자는 정열적이면서도 자유로웠고, 너그러운 동시에 엄격했으며, 욕망, 욕망에 신경을 온통 쏟았다. 소설가는 쓰고, 쓰고, 쓰고, 사랑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펜이 지나온 궤적 위에 나침반을 올려놓고 어디로 향할지를 가늠했다. 그의 인생은 그런 과정의 지난한 반복이었다. 우리는 그 반복의 매듭을 가리키며 소설이라 불렀다. 우리가 그저 소설가의 잉크가 달려간 궤도만을 포착되는 동안, 소설가는 자신의 비밀스런 측량기구들을 일기장 속에 조용히 묻었다. 그가 죽고 나서야 세상에 나온 일기장이었다. 


 

작가란비극적이게도방관자의 입장에 서기 위해 기웃대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작가는 그의 창을 통해 공원에 핀 천수국을 훔치는 여자를나무 뒤에서 오줌 누는 노인을또 사람들이 공터에서 공을 주고받는 놀이를 지켜보지만 작가와 이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광경 사이에는 그 어떤 냉혹한 심연이 가로놓여 있는 듯하다어쨌든 작가는 손에 든 펜으로 카뷰레터를 수리할 수 없고 풋볼도 할 수 없다거기에 너무 날카롭고 비판적인 눈을 갖고 있기도 하다. (486)

 

인간의 비참함이 지니고 있는 그 광대함과 강렬함을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게끔 묘사하기초조함과 병적 상태라는 고뇌를 잘 다듬기고통에 약간의 고귀함을 부여하기하지만 우리가 이를이러한 비극을 어느 정도의 도덕적 권위도 없이선과 악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각도 없이 다룰 수 있을까? (316)

 

소설에 소설이 쌓였다. 쌓인 소설들이 세상 사람들의 책상 위로 퍼져나갔다. 세상이 소설가를 칭찬했다. 당신이 세상에 무엇인가 해줬노라고. 그러나 그 즈음 소설가는 소설이,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보았다. 그리고 썼다. 그러나 의심했다. 가능한 일이 의심받았고, 이내 허락된 일들도 의심받았다. ‘할 수 있을까에서 해도 될까. 그러는 중에도 소설은 계속 태어났다. 세상은 기뻐하며 소설의 겉옷에 무겁고 빛나는 훈장을 달았다. 소설은 저 홀로 육중해졌고, 소설가는 점점 부풀어가는 자식을 불길한 눈동자로 응시했다.

 

 

작가는 그의 상상력을 개발하고확장하고끌어올리고부풀리며 이것이 선과 악의 이해에 대한 자신의 운명이요 유용성그리고 공헌이라고 확신한다작가가 그의 상상력을 부풀리면 그는 악에 대한 그의 능력을 부풀리는 것이 된다작가가 그의 상상력을 부풀리면 그는 불안에 대한 그의 능력을 부풀리는 것이 되고 그러면 필연적으로 오직 치사량의 헤로인이나 알코올로만 완화시킬 수 있는 참담한 공포의 희생양이 되고 마는 것이다. (493)

  

그렇게 소설가는 서서히 무너졌다. 제 몸보다 더 거대한 자식을 낳기 위해 끝없이 상상력을 부풀려가며. 낡은 나침반과 지도는 이제 와 어떠한 위대함도 가리키지 않았다. 소설가의 손에는 펜만 남았다. 그것은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휘둘리고 마는 참담하고 무서운 물건이었다. 여기가 그의 첫 번째 환멸의 자리였다.

 



두 번째 비상구 : 부부

 

결혼에 대한 네일리스의 기억은 낭만적이지 않았고 심지어 조잡하기까지 했다그는 전통적인 아름다움엔 관심이 없는 듯했다가을 장미를 다듬는 메리앨런야회복 차림의 메리앨런친구가 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흐느끼던 메리앨런하지만 이보다도 네일리스는 테시라는 개가 병에 걸려 그랜드피아노 밑의 마룻바닥에 토했던 밤을 기억했다때는 새벽 3시였고 그는 늙은 개를 밖으로 내보낸 후 대걸레와 양동이를 들고 와 토사물을 치우는 중이었다청소하는 소리에 잠이 깬 메리앨런이 나이트 가운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피아노 밑에서 위를 쳐다보던 네일리스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메리앨런은 종이타월을 가져오더니 이어 손과 무릎을 굽혀 네일리스를 돕기 시작했다청소를 다 마치고 일어서던 메리앨런은 그만 피아노 뚜껑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상처가 생겼고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벌거벗고 있던 네일리스는 키스로 눈물을 닦아준 후 메리앨런을 소파로 데리고 갔다그는 메리앨런의 나이트가운을 가슴 위로 끌어올리고 그녀와 사랑을 나눴다또다른 밤메리앨런은 자신이 목욕을 하기 전에 섹스를 하자고 그에게 부탁했다섹스가 끝난 후 그녀는 욕조에 물을 받았고 그가 욕실로 가서 알몸으로 변기에 앉아 있는 동안 다리의 털을 밀었다. "점심 때 더운 음식을 먹지 않으면." 그가 말했다. "설사가 나와치즈를 먹어도 설사가 나오더군." "난 치즈를 먹으면 변비에 걸려." 메리앨런이 말했다그녀는 계속 다리의 털을 밀었다그 모습은 정말정말정말 아름다웠다그것이 그가 기억하는 장면이었다. (527 528)

 

인간의 창백함을 오래 지켜보았던 소설가는 사람을 사랑하였으나 사람의 사랑에 커다란 기대를 거는 것은 아니었다간혹 사랑에 기대었으나 사실 그 사랑의 가면 뒤에는 의무나 성욕의 맨얼굴이 숨어있을 뿐이었다의무성욕성욕의 의무의무적 성욕. 어쩌면 그가 바란 것특히 아내에게 그가 바랐던 것은 고작 이런 것들일 뿐인지도 모른다그러나 그 속에 숨어있는 조잡함이야말로 오히려 그의 숨통이었다무시로 사랑을 나누고소소하고 더러운 것들을 함께 나누는 것소설가는 고작 그런 것을 바랐다무려 그런 것을 바랐다.

 


거리에서그러니까 동창이나 그와 비슷한 누군가를 만났다고 가정해보자당신은 그 동창의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들인다친구의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당신은 뭔가 일이 잘못됐음을 깨닫는다친구의 아내는 울고 있고 동창은 술에 취한 것 같다비틀거릴 정도는 아니지만 술을 상당히 많이 마신 것처럼 눈에 띄게 이상한 짓만 한다당신이 땅콩을 사양하면 냉소적인 표정을 짓는다저녁식사를 하려고 식탁에 앉기 전친구가 자기 아내를 욕하고멸시하고조롱한다한창 식사하는 도중 친구는 자기 아내가 더러운 계집이라며 흉을 본다친구의 아내는 평범하고 착한 심성을 가진 여자 같다당신이 식사 중에 모자와 코트를 집어 밖으로 나오는 동안에도 그녀는 계속 울어대고 친구는 입에 담지 못할 온갖 더러운 말로 그녀를 욕해댄다. 10년에서 15년이 지난 어느 날 저녁극장에서 빠져나오던 당신은 동창이 당신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를 또 듣는다옆에 있는 아내는 여전히 같은 여자여서 당신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는데 동창의 아내는 행복한 표정이다동창의 집은 당신이 사는 곳 근처로 밝혀지고 이에 같이 택시를 타고 가다가 술을 한잔 마시기 위해 내린다십 분 동안은 모든 게 유쾌하다동창 친구는 아내에게 왜 샌드위치를 만들어주지 않느냐고 묻는다왜 그 엉덩이를 움직여 뭔가 쓸모 있는 일을 하지 않느냐고 따진다친구의 아내는 울기 시작하며 부엌으로 들어가고 당신이 모자와 코트를 챙겨 밖으로 나올 즈음 동창은 또 자신의 아내를 향해 계집년더러운 년창녀라면서 욕을 해댄다. (122 123)

 

그러나 소설가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았을 때쯤이미 그들 부부는 파국의 시야 안에 들어와 있었다그들은 끝과 아직 사이의 두꺼운 경계선 위에 서로의 그림자를 밟고 서 있었다어느 날은 끝인 것 같았고또 어느 날은 아직인 것 같았다다른 모든 싸움은 그 시작점이 명확하지만오직 부부의 싸움만큼은 그렇지가 않다. “내가 이런 것은 그 전에 당신이 그랬기 때문이다.” 모든 부부는 이 말에 동의한다단지 누가 고 누가 당신인지에 대한 합의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뿐이다그는 아내에게 수없이 요구했고수없이 거절당했으며그 거절을 수없이 기록했다우리는 그 기록을 상처로 읽을 수도 하고 과도한 성욕이나 착취시도로 읽을 수도 있다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읽든소설가로서는 여기가 바로 그가 맞닥뜨린 두 번째 환멸의 자리임이 분명하다.


 


세 번째 비상구 : 도망

 

창가에 서서 거리의 사람들을 지켜보았다나는 갇혀 있다사람들은 자유롭게 거리를 오갔지만 그 자유 속에서 너무 무신경하게 행동하고 있어 자유가 낭비되고 있는 듯이 보였다. (694)

 

우리 역시 누구나 한 번은 다 겪듯결국은 소설가도 내려놓고 싶었을 것이다그는 갇혔다그러나 갇혀 있는 것보다 더 무섭고 괴로운 일은갇혀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느끼는 것이다그때 우리는 탈주를 꿈꾼다무엇도 나를 속박하지 않는 곳을동파된 수도관에서 자유가 터져 나와 하수구로 낭비되는 무심하고 방탕한 세상을 열망한다우리가 그렇다그도 그랬다.

 

 

하지만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려 하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211)

 

그러나 도피의 험한 길 위에서 그는 생각한다무엇이 나를 밀었나무엇이 나를 도망치게 하였나대부분의 도피를 무로 되돌리는 묵직한 질문이다그래서 종종 도피에 실패한다멀리 못 가고 되돌아온다우리가 그렇다그도 그랬다가는 길은 혼자였으나 돌아오는 길은 동행이다환멸이 따라 붙었다.

 

 

 

네 번째 비상구 : 자기파괴

 

인생에서 가장 놀라운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스스로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자기파괴 본능을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이다혹시 자기파괴적인 모습을 갈망하거나 꿈꿀 수도 있겠지만 이런 우리의 생각은 한줄기 빛에또 불어오는 바람의 변화에 그래서는 안 된다고 설득당하는 것이다. (217)

 

그렇다면 나를 부숴버리는 것은 어떨까.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어디에도 기댈 대가 없다면 어디에도 기대지 않는 것이다. 아무데도 갈 곳이 없다면 아무데도 가지 않는 것이다. 소설가는 침잠했다. 그리고 자신의 안에 도사리고 있는 자기 파괴의 씨앗을 발견했다. 그것은 놀라울 만큼 얕은 곳에 있었다. 떡하니 있었다. 도리어 그는 이렇게 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이제껏 이 파괴적 본능에 눈길을 주지 않고 버틸 수가 있었을까. 이렇게 선명한 것을. 이렇게 외설적인 것을.



마음속에서 자기파괴가 시작될 때그것은 그 크기가 단지 모래알 정도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그것은 두통이요가벼운 소화불량이요오염된 손가락에 지나지 않는다하지만 당신은 8시 20분 기차를 놓치고 신용기한 연장정책에 관한 회의에 늦게 도착한다점심을 함께하기로 한 옛 친구는 갑자기 당신의 인내심을 바닥내고 이에 당신은 유쾌해지기 위한 노력으로 석 잔의 칵테일을 들이켠다하지만 그때쯤이면 이미 하루는 그 형태를그 의미와 감각을 잃어버린다어떤 목적과 아름다움을 되살리고자 당신은 너무 많은 칵테일을 마시고 너무 많은 얘기를 하고 다른 누군가의 아내를 유혹하면서 결국은 바보스럽고 외설스러운 어떤 일로 치닫게 되며 아침이 되면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이와 같은 심연에 빠지게 된 경로를 되돌아보려 할 때 당신이 발견하게 되는 것은 모래알뿐이다. (65)

 

그저 딱 한번, 그 선명하고 외설적인 것과 단 한번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이제는 그놈이 그를 물고 놓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이후로 그는 종종 단 한 알의 모래알로도 온몸이 서걱거렸다. 그것은 잡히지 않는 들불처럼 일어나 번졌고 그는 그저 불탈 뿐이었다. 그는 재가 되고 재가 다시 재가 되어 이리저리 날렸다. 차라리 그것을 찾지 않았다면, 호기심에 그것을 눌러보지 않았더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설득에 생각 없이 넘어갔더라면. 그는 새로운 환멸을 만났다. 남은 평생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작은 절망을 훔치고 큰 절망을 내밀 버거운 적수였다.

 

 

  

마지막 비상구 : 금지된 사랑

 

남자들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는데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가장 엄격한 잣대로 검토해보아도 그런 애정 관계에서는 그 어떤 성욕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다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기뻐하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주목할 만한 것이 전혀 없다우리는 함께 있으면 서로 행복해하고 만족하지만 떨어져 있을 때는 결코 서로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이러한 유대관계들은 우리가 인생애서 형성하는 그 무엇보다 강력하지만 우리는 완벽한 무책임성으로 그것들을 집어 들었다가 내쳐버리기도 한다우리는 병원에 있어도 서로를 방문하지 않으며 떨어져 있을 경우 편지를 거의 쓰지 않는다하지만 같이 있을 때는 사람들이 소위 사랑이라 부르는 것의 최소한 몇 가지 증상들을 경험하기는 한다. (442 443) 

 

종종 있는 경우와는 달리, 소설가에게는 금지와 억압이 가져오는 매력이 동력으로 기능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소설가가 처음 남자에게 성욕을 느꼈던 시점의 일기에서 뜨악함과 일종의 자기 경멸까지 읽을 수 있다. 대신 그는 꾸준히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거절은 그런 힘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깊이, 그리고 오래 들여다보아도 그는 자기 욕망의 가지 끝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것이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불알을 흔들면서 숲으로 달려라달려라달려라그리하여 그것을 님프의 은밀한 곳에사티로스의 털로 덥수룩한 엉덩이에 집어넣어라그러면 마침내 네 자신에 대해 알게 되고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리라하지만 그렇다면 사티로스는 왜 그 바보천치 같은 음흉한 미소를 짓는 걸까보기에 그럴듯한 것과 이 세상이 사랑하라고 권고하는 것을 사랑하고그리하여 이에 대한 보답으로 사랑받게 되는 행운을 차지한다는 것은당신의 주머니를 털고 목을 비튼 후 당신을 죽은 채로 하수구에 내팽개쳐버릴 포르토프랭스의 한 선원에게 구애하는 것보다 더 가벼운 운명이기 때문이다. (480 481) 

 

그래서 결국은 싸워야했다. 누구도 자기 자신과 평생을 싸울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은 최초의 적이 동맹이 되고, 마지막 적은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 선택을 우리는 자기합리화라 부를 수도 있지만, 정신적 건강함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내 안에 숨어 있는 한 명의 적은, 내 밖에 도사리고 있는 수십억의 적만큼이나 두려운 상대이기 때문이다.

 

 

나의 불안정성은그 변화무쌍함은 새로운 수준에 다다랐다나는 종이에 이렇게 쓰고 싶다. "널 사랑해널 사랑해널 사랑해." 수백 번아니 수천 번이라도이 모두는 부적당한 고객에게로 향하고 있다전화를 해야겠다진실을 발견하는 중이라는 억측 뒤에 숨어 열정을 승화시키지도그렇다고 억누르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녀의 눈에서 콩깍지가 벗겨졌다."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었던 사랑의 열병이 종말에 이르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이 말에는당연하지만사회는 무너뜨릴 수 없는 운명적인 신의 말씀과 같으며 만약 우리의 에로틱한 욕구를 통제할 수 있다면 이는 이 사회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682 683)

 

그리고 마침내 소설가는 사랑한다. 사랑을 부인했던 시절을 넘어, 싸움과 싸움이 이어지는 전장을 거쳐, 마침내 사랑의 자리에 도달한다. 수백 번, 수천 번을 써도 부족함이 있는 사랑, 그것은 진짜로 보인다. 세상은 사랑을 한 덩이의 소고기처럼 등급 짓고 그 위에 도장을 찍는다. 월권이고 오만이다. 그의 사랑이 진짜였는지는 그와 그가 사랑한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소설가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과정에 옆자리를 지켰던 그 사랑이 있었으므로, 일기의 마지막 몇 장에 그 사랑의 이름과, 그 이름을 사랑하고 고마워하는 소설가의 마음이 잔뜩 들어있었으므로, 어쩌면 우리는 마침내 소설가가 어두운 시간의 방문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할 위대한 무엇인가를 찾아냈다고 선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이 어둠은 세상이 용인한 사랑을 하는 다른 이들에게는 찾아오지 않는, 소설가가 덤으로 감당해야 했던 또 다른 어둠이겠으나. 우리는 이번에야말로 환멸이 그를 빗겨나갔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syo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8-02-13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캬~~ 좋다~~
좋아요, 정말...

syo 2018-02-13 11:05   좋아요 1 | URL
(으쓱으쓱)
(으쓱으쓱으쓱)
ㅎㅎㅎㅎㅎㅎ

[그장소] 2018-03-09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좋네요! 멋져요..글이~^^

syo 2018-03-10 00:04   좋아요 1 | URL
어설픈 글이예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그장소] 2018-03-10 00:12   좋아요 0 | URL
이 겸손 난 반댈세~!! ㅎㅎㅎ
으쓱으쓱 하셔도 되어요!^^

syo 2018-03-10 00:14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ㅎ
쓸 땐, 그리고 쓰고 나서 한 며칠은 진짜 혼자서 신나게 으쓱으쓱 했는데 시간 지나고 찬찬히 보니까 좀 부끄럽네요...

[그장소] 2018-03-10 00:16   좋아요 0 | URL
맞아요 . 저도 그래요 . 금방 쓰고는 빠져 있다가 정신차리면 어긋난 부분들이 보이곤 해서요 . 그래도 그냥 두지만요. ㅎㅎㅎ
syo님처럼 긴 글 잘 쓰는 분들 부러워요. 저!! 🤔🤗😁

syo 2018-03-10 00:21   좋아요 1 | URL
가끔 자려고 누웠다가 괜히 북플 켜서 예전에 써 놓은 글 한번 더 읽어보면 사정없이 이불킥....

그장소님이 syo를 부러워 하신다구요? 에이 아냐.....그건 아니죠🤔
이 겸손은 내가 반댈세~ 😆

[그장소] 2018-03-10 00:27   좋아요 0 | URL
ㅎㅎㅎ그럼 이불킥 대신 우리 자아비판을 킥해버립니다~!! 순간의 몰입에 빠졌던 그 느낌은 신났으니까요!^^
그리고 부러운건 부러운 거예요 . 다락방님도 그렇고 AgalmA님도 그렇고 syo 님도 .. 저는 5000천자 넘기는게 일이거든요 . 어려운 일.. 😥😆

syo 2018-03-10 00:33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AgalmA님 말씀하시니까 확 와닿네요.
부러운 건 부러운 일이죠. syo도 그장소님처럼 5000자를 쓰는 일이 어렵고 드문 일이지만, 제가 2500자 같은 5000자를 쓰는 반면 그 분들은 25000자 같은 5000자를 쓰시니까 참 부럽지요.

그렇지만 그장소님처럼 잘 쓰시는 분께 길이가 무슨 상관이겠어요. 짧아도 좋음 그저 장땡입니다.
그장소님 장땡.

[그장소] 2018-03-10 00:36   좋아요 1 | URL
하핫~ 25000자 같은 5000자! 쿵~ 와닿네요. 그분들은 아실까 몰라요. 어디선가 늘 부러움에 지는 상황을요~😆🤣

암튼 잘 쓴‘ 다고 해주셔서 응원챙겨갑니다.
굿굿한.밤되세요!^^
 
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해 우리의 마음들을 기억한다.

 

눈발이 옅어 겨울도 옅은 고장에 뜻밖의 큰 눈이 내려 쌓이고 길이 얼었다. 아이들은 매일 걷는 길을 조심조심 걸었고, 학교에 모여 매일 듣는 수업을 듣거나 매일 보는 교재를 보며 겨울방학을 녹였다. 몇몇은 화가 났다. 마음이 얼었다. 그래도 숨거나 도망칠 수 없었다. 길이 얼었고, 얼어붙은 길 위에서는 언 마음이나 녹은 마음이나 모두들 조심조심 걸어야 했기 때문에, 어린 마음들은 탈주를 포기하고 교실에 앉아 그저 조금씩 딱딱해지는 중이었다. 마음의 모서리가 줄곧 날카로움을 더해가는 중이었다. 모서리가 다른 모서리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건드리기만 해.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기만 해 봐. 이곳은 웅크린 모서리들의 각축장. 겨울이 옅은 고장에 사는 아이들의 안으로, 안으로 겨울이 열렸다.

 

또 그해 그 여자아이가 맥없이, 잘못 없이 받은 상처와 우리의 잘못을 어림한다.

 

옆 반 아이가 창문을 열고 내지른 소리가 우리 반 창문을 타고 넘어왔다. 아가씨, 고개 좀 들어 봐. 우리 반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창가로 몰려들었다. 거칠게 열어젖힌 창문 바로 아래 우리 학교의 담이 있었고, 그 담 너머 자동차 한 대 겨우 지나다닐 좁은 길 위로 교복 입은 여자아이가 작고 조심스러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친구의 입이 뿜어낸 나쁜 말들의 손끝이 그 아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가씨! 여기 한 번 보라니까? 커피 한 잔 합시다! 여자아이가 웅크린다. ! 나는 어때? 저 새끼는 고자야! 나쁜 말이 커지고 여자아이는 더 작아진다. 아가씨! 놀다 가라니까? 오빠가 잘해 줄게! 그때 갑자기 여자아이가 미끄러져 휘청한다. 길가에 면한 여섯 개 학급의 창가에서 큰 웃음이 터진다. 어이, 아가씨, 괜찮아? 그러다 넘어져! 여자아이는 얼른 자세를 다잡고 다시 걷는다. 아이는 이미 너무 작아져 있다. , XX, 사람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 지금 너 걱정하는 거 아냐! 여자아이는 여섯 개 학급을 겨우겨우 지나쳐 큰 도로 쪽으로 나가는 골목길을 돌아 사라진다. 아니 어쩌면, 작아지고 작아지다 이내 사라져버린 건 아닐까?

 

끈적거리는 가운데 날카로운 그 무섭고 더러운 말들을, 우리는 어디서 배웠을까? 그 검은 말들이 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었던 걸까? 창가에 우르르 몰려들었던 우리는 쉬는 시간이면 어깨를 겯고 매점에 들러 스스럼없이 자기 지갑을 열어 서로의 손에 먹거리를 쥐어주는 정다운 친구들이었다. 더운 여름 한 번 건네주면 땀에 찌들어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새로 빨아 가져온 체육복을 망설이지 않고 빌려주는 친구였다. 저 친구가 한 문제를 더 풀면 내 등수가 떨어지더라도 그 한 문제를 기어이 알려주고 차라리 제 잠을 줄여 공부를 더 하는 든든한 전우였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가 사라지고 모두들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려놓았던 샤프를 쥐고 다시 수학 문제를 풀 때, 이미 우리는 다시 예전의 그 모든 우리였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부끄러워 마땅한 것은 우리의 입이 만든 말들이었지만 정작 부끄러워하는 것은 여자아이였다. 우리가 뱉은 부끄러움들이 그 아이가 걷는 길 위에 미끄러움으로 쌓이고, 얼음이 아니라 말이 만든 그 미끄러움이 아이의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넘어지면 더 큰 부끄러움을 맞닥뜨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서, 아이는 그 지옥 같던 여섯 개 학급의 옆길을 더 조심스레 더 천천히 걸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 슬픈 발걸음 말고 다른 보폭을 선택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걸 우리는 몰랐고, 우리 가운데 일부는 지금도 모를 것이다. 큰 도로를 향해 여자아이는 사라졌지만, 여자아이에서 여자가 되고, 여자에서 다시 연령이나 외모, 직업, 결혼여부 따위로 매겨지는 수많은 하위호칭들의 터널 속을 강제로 걸어 나가면서, 그녀는 아마 계속해서 조심스레, 천천히, 포착되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고, 넘어지지 않으려 웅크리며 걸었을 것이고 또 그렇게 걸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이 그녀의 보폭을 그녀에게 돌려줬으면 좋겠다.

 

성큼성큼 걷고 싶다면 성큼성큼 걷고, 잠시 멈춰 서서 여섯 개 학급의 창문 속에 숨은 머저리들에게 쌍욕을 하고 싶다면 손가락도 하나 펴서 시원하게 욕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날 우리가 빚은 말들과 그 말들로 더러워진 어느 겨울의 풍경을, 어린 날의 치기나 한때의 추억이라며 한 젓가락 술안주로 소비하는 친구들이 아직 남았다면, 말해주고 싶다. 우리가 만든 부끄러움은 끝내 우리의 것이며, 언젠가는 인정해야 할 날이 온다. 부끄러움을 부인하는 일이 더 큰 부끄러움을 낳는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8-01-24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렸지요.
하지만 너무 읽을 책들이 많아서 잠시 미루어
두었었는데 예약이 되었다는 말에 오늘 아침에
집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타이틀 단편을 읽었는데 그것 참...

점강이 아닌 점층적 자각으로 이끈 점이 문학
적 클리셰이가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들었습
니다.

syo 2018-01-24 16:22   좋아요 2 | URL
솔직히 제 눈에 조남주 작가는 재능있는 소설가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김지영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문학적˝으로 기똥찬 데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작가는 아니기도 하구요.

그런데도 이만큼 읽히고 이만큼 호명되는 건, 제 취향이랄지 작가나 작품의 ˝문학적˝ 역량 바깥에서 작용하는 뭔가가 있고, 그게 소위 문학적이라는 것이 뭐 얼마나 대단한 기준인 건지 메타적으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데도 있는 게 아닌가 하구 뭐 그렇지요.

레삭매냐 2018-01-24 16:34   좋아요 1 | URL
격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저도 신랄하게 더 까고 싶더라구요...

시류에 영합한, 시류를 만들어낸 소설이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는 법이니깐요.

아무래도 방송작가 출신이다 보니 말랑한 감성을 공략
하는 법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현남 오빠에게>도 소설이라기 보다 왠지 한 편의 단편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syo 2018-01-24 17:07   좋아요 2 | URL
허허.
전 신랄하게 까려했던 것은 아닌데;;;

레삭매냐님께서 말씀하신 ‘시류에 영합‘과 ‘시류를 만들어 낸‘ 이라는 두 가지 표현은 syo의 기준에서 보면 천지차이입니다. 저는 <82년생 김지영>의 경우는 시류에 영합했거나 시류를 만들어 냈다기보다 ‘시류를 드러낸‘ 소설이라고 보고 싶고, 그런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몸으로 느끼고 또 그 중 일부는 힘들여 증언하는 어떤 현상에 서사와 언어의 옷을 입혀 많은 사람들이 ˝맞아, 이거 내 얘기야. 딱 내가 이랬다고 말을 하고 싶었어.˝ 하게 만드는 것도 문학의 역할 중에 하나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작품 자체가 문학적으로 얼마나 잘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어떤 큰 집단의 언어를 대신 구현해 주었다는 데서 충분히 가치있게 자리매김하는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던 건데, 제 표현이 서툴렀던 것 같아요.

레삭매냐님이 느끼신 것들, 더 신랄하게 까고 싶으신 마음을 그대로 이해합니다. 평소 레삭매냐님의 글을 열심히 읽고 판단하건대, 소설에 대한 안목으로 보면, 레삭매냐님은 syo가 토를 달기에 너무 높은 데 있는 분이시기도 하구요. 작품 자체나 작가의 역량에 대해서는 뭐 별로 다르게 생각하지도 않구요. 실제로 제 주변의 여성분들도 이 작품이 하는 말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이 작품이 말하는 방식 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훌륭한 것은 아니라고들 하시더라구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서니데이 2018-01-25 0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날씨도 많이 추워요.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독서괭 2018-01-25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비님!! 이 슬픈 글에 귀여운 별명을 불러 죄송하지만 입에 짝짝 붙네요..ㅎㅎ
그 작은 여자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ㅜㅜ “이미 우리는 다시 예전의 그 모든 우리였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 저도 인간의 이런 모습을 보면 의아하기도 하고, 저에게도 그런 이중성이 있을 수 있겠다 싶어 오싹해집니다.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syo 2018-01-25 14:14   좋아요 0 | URL
토비가 인기가 좋아지면 우선 닉네임을 바꾸고, 나중에는 영어 이름으로 쓸까 싶습니다.
아임빠인땡큐앤유밖에 못하는 영어긴 하지만요.ㅎㅎ

아트 2018-01-2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솜씨가 좋으시네요. 잘 읽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syo 2018-01-28 23:09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ㅎㅎ 제가 감사합니다.
 



꽈배기의 멋 / 꽈배기의 맛

최민석 지금 / 북스톤 / 2017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만나, 지금은 누가 물어봐도 가장 친하다고 대답할 수 있는 20년도 더 먹은 친구 녀석은 아무말에 매우 능하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한 달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려웠는데, 아니 이놈이 만날 때마다 키가 쑥쑥 자라 사람을 빡치게 만들었다. 나보다 작은 게 너의 유일무이한 매력이었는데. 키 크는 비결을 내놓지 않으면 우리의 우정은 여기 어디쯤에서 먼지가 되어 흩어질 것이라 협박했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한다. 글쎄, 엄마 아빠가 같이 안 살기 시작해서 그런 것 같은데? 야! 나돈데 나는 왜 안 커. 아니 아니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같이 안 살아서 밥 대신 라면을 자주 먹어서 그런 것 같은데? 야! 나 땜에 우리 동네 무파마 멸종 직전이거든? 아니 아니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같이 안 살아서 밥 대신 라면을 자주 먹는데 그러다보니 김치를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은데? 야! 나도 김치한테 미안해서 김장이라도 배울까 고민하는 상태거든? 아니 아니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같이 안 살아서 밥 대신 라면을 자주 먹는데 그러다보니 김치를 많이 먹게 되는데 그 김치에 생굴이 잔뜩 들어서......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바스라져 바람에 흩날리던 가을의 어느 날, 분명히 그럴 리가 없는데도 자꾸 날이 덥다며 윗도리를 펄럭대는 그 녀석의 복근에 새겨진 선명한 王자를 발견한 syo는 그걸 못 본 척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으나, 점점 더 격렬히 배를 까고 옷을 펄럭이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이쯤에서 언급하지 않으면 배꼽을 내 눈알에 갖다 대기라도 할 기세라 못 버티고 입을 열었다. 야, 장난 아니네 복근. 아아, 이거? 뭐 그렇지. 그게 복싱 다닌 결실이냐? 그러자 녀석인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아니 아니 그러니까, 요즘 너무 웃긴 시트콤을 보고 있는데, 계속 웃다보니까 배가 이렇게 된 것 같은데? 친구야. 니가 그놈의 복싱 배우는 중만 아니었으면, 그때부터 넌 삼겹살을 앞니로 씹어야 했거나, 네이버에 '임플란트 잘하는 곳' 따위를 검색하고 있거나 그랬을 거야.


여러분의 펀치가 syo의 모니터를 뚫고 날아오지 않는다는 확신, 어금니의 안보는 탄탄하다는 믿음에 힘입어 과장을 보탠 아무말을 하자면, 최민석의 에세이『베를린 일기』를 읽고 났더니만 선명한 복근까지는 아니더라도 윗몸 일으키기가 열다섯 개 늘었어요! 과연 복근 전문 트레이너 최민석 작가. 최신작(이라 쓰지만 묵은 에세이 모음집)『꽈배기의 맛』과『꽈배기의 멋』은 그보다는 좀 약해 일곱 개 반 정도, 레그레이즈 세 개 정도 늘려준다! 한국의 빌 브라이슨이라 불린다는데, 그만큼 웃긴다는 이야기지만 막상 글 자체의 꼴은 빌 브라이슨보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가까워 보인다. 세 스푼 더 웃긴 무라카미.




그리고 덜 웃긴 최민석


  





나의 첫 젠더 수업

김고연주 지음 / 창비 / 2017


여친이 교사라, 교육 정책이나 교육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많다. 코딩이 교육 체제 안으로 편입되어 자리를 잡으면서 우리는 학교에서 꼭 배웠으면 싶은 것들에 대해 말했다. 여친은 영화나 드라마, 라디오 프로그램과 같은 통합적인 예술 콘텐츠 제작에 관한 프로젝트식 수업을 원하고, syo는 두 과목을 원한다. 노동법과 젠더.


학교 교육의 실용성에 대한 우스개는 역사도 깊고 판본도 다양하다. 선생님, 전 문과 가고 법대 갈 건데 미적분은 어따 써요? 더 크게는, 계산기가 이렇게 좋은데 수학은 뭐하러 배워요? 같은 질문들에 다양한 대답들이 짝을 맞추어 해피엔딩부터 막장엔딩까지를 골고루 연출한다. 실용성 면에서 보면 노동법만큼 실용적인 과목이 있을까? 이 교실의 서른 명 아이 가운데 스물아홉 명은 장차 한 번은 노동자가 될 운명이다. 노동법은 창인 동시에 방패이며, 비록 그 창은 군데군데 날이 빠지고 방패는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나 있지만, 그래도 맨주먹 맨발로 싸우는 것보다는 낫다.


그렇다면 젠더는 배워서 어디다 써요? 하고 물어온다면 젠더를 배워서 어디다 쓰려는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젠더 교육의 필요성을 드러내는 지점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젠더. 누군가에게 그것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느껴지지만 너무 흐릿하게 보여 명확히 가리켜 짚어내기 어려운 것들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안경이고, 어떤 누군가에게는 평생 모르고 살아도 지장이 없는 보기 불편한 것들을 드러내 보여주는 또 다른 안경이기도 하다. 안경이 필요한 사람은 특정한 일을 하기 위해 안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일단 안경을 쓰고 무엇인가를 한다. 어떤 눈은 배우지 않으면 뜨이지 않고, 어떤 배움은 이르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 나 아닌 사람과 어우렁더우렁 살기 위해 언어와 사회규범을 배우듯, 그리고 그것들은 사용하는 게 아니라 착용하는 쪽에 가깝듯, 우리에겐 학습하기보다 장착해야 하는 과목들이 있다. 



초중고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1-23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3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23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교육’을 ‘젠더 교육’이라는 말로 대체해서 보편화되었으면 좋겠어요. ‘성교육’의 ‘성’이 뜻하는 정의가 고리타분해요.

syo 2018-01-23 15:25   좋아요 0 | URL
성교육과 젠더교육은 지향점 자체부터가 완전히 다른 별개의 교육인 것 같아요. 말을 대체할 게 아니라 교육 유형 자체를 교체해야 할 판이지요.

붉은돼지 2018-01-23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뭐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꿀꽈배기를 즐겨먹는데요
달달하니 소생같은 초딩 입맛에 딱인데, 다만 한가지 혼자 한 봉지 쯤 다먹으면 입천장이 좀 아프다는 ....

syo 2018-01-23 17:48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유서 깊은 맛동산성애자 집안 출신이라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희 쪽은 주로 과자 본체보다는 땅콩 부스러기에 입천장을 쓸리는 경우지요.

프리즘메이커 2018-01-24 0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트콤 같은 맛깔나는 글...syo님의 일화만 따로 묶어서 읽고 싶어요

syo 2018-01-24 07:12   좋아요 0 | URL
별 것 없는 소소한 인생입니다.
프메님 오랜만이네요 ㅎ

레삭매냐 2018-01-24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급 작가를 표방하는 최민석 작가가 계속해서
책을 발표하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수요가 있는 모양이네요 :>

초기작들을 읽었는데 신간들은 다른 책들에
치어서리.

syo 2018-01-24 16:13   좋아요 0 | URL
원래 B급이라는 것이 크진 않지만 단단한 수요를 기반으로 하니까요.

막상 전 이 작가의 소설은 한 권도 안 읽어봤습니다 ㅎㅎㅎ
 
패러데이와 맥스웰 - 전자기 시대를 연, 물리학의 두 거장
낸시 포브스.배질 마혼 지음, 박찬.박술 옮김 / 반니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1학년 때는 그래도 할 만했다. syo의 경우, 2학년이 되자 여기가 고등학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통렬하게 깨달을 수 있었는데, 주로 <전자기학>이라는 놈으로부터 따가운 깨달음 공격이 들어왔다. 정말 짜증나는 다른 과목도 많았지만, 걔네들이 좀 빠르며 가끔은 묵직한 펀치였다면 <전자기학>은 하이킥이었다. 그게 왜 충격이었냐 하면, 순진하게도 syo는 1학년이 끝나도록 지가 권투를 배우러 온 줄 알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여긴 뭐지? 뚜닥뚜닥 컴퓨터나 두드리면 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이 미친 수식들은 도대체......야, 이거 어떻게 읽냐..... 어어, 뭐야. 왜 인테그랄 쟤네 뭔데 막 세 개씩 붙어 다니는 건데, 이거 반칙 아냐? 


학생들은 자신의 성적표를 초토화시켜 가정 내 분위기를 흉흉하게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전자기학>의 최대주주를 고소고발하기로 결정, 과연 어떤 놈이 그랬는지 수색하기 시작했다. 수사망이 좁혀짐에 따라 용의자는 둘로 압축이 되긴 했는데, 아뿔싸, 우리는 피고를 도저히 특정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패러데이를 지목했다. 패러데이가 발로 뛰어서 만든 걸 맥스웰은 수학적으로 정리 정돈 했을 뿐이야. 애초 일을 친 놈은 패러데이라고. 우린 패러데이를 조져야 돼. 그러자 맥스웰 파가 반론을 펼쳤다. 잠깐, 우리가 그들을 법정에 세우려는 것은 다 학점 때문이잖아. 맥스웰 아니었으면 전자기학이 학점을 매길 만한 학문 체계를 갖출 수 있었을까? 우리가 조져야 할 놈은 맥스웰이야. 방정식 이름을 봐 봐, 맥스웰 이큐에이션이잖아. 


패러데이가 개놈이다, 맥스웰이 잡놈이다, 난만한 토론이 오갔지만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공대생들은 울분을 삼킨 채, 결국 다음 의제인 모 여대와의 5:5 미팅에 관한 안건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 이 지점에서, 아마 미팅 안건이 블랙홀처럼 갈등과 대립을 빨아들여 대동단결을 이루어 냈을 거라고 예측하신 비공대인 이웃들이 계신다면, 미드 <빅뱅이론>을 권해 본다. 우리는 여자 때문에 정말 아무 짝에도 쓸데 없는 학문적 고집을 포기하지 않는, 진성 크레이지 공대남이었으므로, 마무리되지 않은 결론이 모든 걸 망치고 말았다. 미팅의 주선자가 맥스웰 파였으므로, 5:5 미팅은 맥스웰 지지자 3인과 아무 생각 없던 1인, 그리고 패러데이를 지지했던 1인이 참여하는 것으로 결착이 난 것이다. 진짜 미팅이 필요했던 지질이들은 패러데이 지지자 쪽에 잔뜩 있었음에도...... 그 가운데, 외견상 미팅을 위해 지지를 철회한 배반자로 보였던 그 마지막 1인이, 토론장을 나오며 조용히 "그래도 나는 패러데이 때문에 미치고 돈다" 라고 혼잣말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혼잣말이 어떻게 기록에 남았느냐고 의혹을 제기하신다면, 해답은 간단하다. 그 1인이 바로 s...... 다른 이유 때문에 결국 그 미팅에는 안 나갔다고 전한다. 재밌었다고 그런다.


syo가 패러데이 지지자였던 것은, 그의 입지전적 행보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겠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노동자로 살아가며 한 땀 한 땀 자신의 꿈을 향해 불굴의 노력을 쌓아나갔던 패러데이. 반면, 대영지를 물려받은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교육과 문화 자본을 듬뿍 들이마시며 자라난 맥스웰. 수학을 모르는 실험의 천재 패러데이와, 앉은 자리에서 수식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 낸 책상앞의 천재 맥스웰이라는 편향된 이미지의 대립은 그들의 출생과 성장 환경에서 그 싹이 보인다. 결국 syo는 20대 초반부터 벌써 빨갱이였던 것이다. 패러데이 만세!


사실 아는 사람들은 다 맥스웰 쪽의 우세를 말하긴 했지만, 학부생 입장에서는 쉽게 결론이 나는 싸움이 아니었다. 교수님, 패러데이하고 맥스웰하고 싸우면 누가 이겨요? 컨디션 좋은 놈이 이긴다네. 교수님, 패러데이하고 맥스웰 중에 누가 더 컨디션이 좋을까요? 전날 저녁 많이 먹고 일찍 잔 놈 컨디션이 더 좋다네. 교수님, 패러데이하고 맥스웰 중에 누가 전날 저녁을 많이...... 그러지 말고, 두 사람 평전을 읽어보는 게 어떤가? 물론 원서라네. 번역본은 없지. 교수님, 쉼없이 진도 나가시죠.


그때는 없었지만 지금은 있다.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syo의 가슴은 이제야 묵은 싸움의 진정한 결말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결론은 맥스웰의 판정승인 듯. 그래도 저자들은 이런 구절을 팡팡 삽입하여 패러데이의 기를 살려주는 것에 조금도 인색함을 보이지 않는다.


이 이론은 10년 이상 지속되었던 엄청난 창의적 노력의 결과물이었으며, 그 영감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이클 패러데이의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패러데이가 <전기에 대한 실험적 연구>에 세심하게 기록해 놓은 발견과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맥스웰은 패러데이가 보았던 방식대로 세계를 볼 수 있었고, 패러데이의 비전과 강력한 뉴턴의 수학을 결합함으로써 물리적 실재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할 수 있었다. 수학의 강력한 힘을 통해 성취했다고 해도, 기적에 가까운 맥스웰의 직관 없이 수학만으로는 결코 불가능했을 결과였다. 이는 이론에 완벽함을 부여한 변위 전류라는 개념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니 이 이론은 맥스웰과 패러데이 모두의 것이다. (288)


사실, 평전이라는 것은 읽기가 쉬운 장르는 아니다. 철학자의 평전에는 그 철학자가 주창한 철학 지식이, 과학자의 평전에는 그가 만들고 증명한 이론이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겠다. 이 책 역시 전자기학, 하다 못해 일반 물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펼쳐 들면 두 거장의 위대함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고, 그것은 곧 감동과 기쁨의 축소나 절제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전기라는 장르가 갖춘 무시할 수 없는 또다른 매력, 동기 부여와 의욕 고취 관점에서 보면 이 책 역시 쓸모를 충분히 다한다. 과학도 수학도 결국은 인간의 일이므로, 거장은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그들의 노력, 삶의 행로, 그리고 한계. 이런 것들은 분야의 울타리를 벗어나 모든 독자의 가슴을 때리는 파동이다. 우리가 가진 관심의 망에 포착되지 않는, 전혀 다른 인간들의 삶. 나와 하나도 닮은 게 없는 사람들의 삶과 내 삶이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는 소소한 사실이 묵직한 위로와 동력이 된다는 것. 미지의 이웃들과 함께 하는 따뜻한 삶을 위한 비슷함. 그런 것들이 평전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메타적 지혜가 아닐까.


댓글(24)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2-25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5 1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12-25 1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관련 책을 읽으면 상당한 수식을 인정하고 읽고 있는데, syo님은 어느정도 비판적으로 읽으실 것 같아 부럽습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syo 2017-12-25 15:18   좋아요 1 | URL
저도 인정파입니다 ㅎㅎㅎㅎ 수식을 비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요. 숭배하는 법을 배웠지요.
겨울호랑이님도 따뜻한 연말 되시기를^^

토큰 2017-12-26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물리에 한참 푹 빠져있을 때가 생각나네요~^^;

syo 2017-12-26 06:19   좋아요 1 | URL
그런 것에 푹 빠질 수 있으시다니 고수시다....^^

2017-12-26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토큰 2017-12-28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은 공학도이시지 않으십니까~? 대단하십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나요...)

syo 2017-12-28 23:26   좋아요 0 | URL
공학도는 아니고, 공학도˝였던˝ 백수입니다 ㅎㅎㅎ

깐도리 2017-12-30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리학을 물리도록 좋아했던 고딩 친구가 생각 나네요...
고딩 때 대학 물리학 책을 독학했던 아이였는데, 수능을 망처서...

syo 2017-12-30 15:50   좋아요 0 | URL
너무 슬픈 이야기네요......ㅠ

겨울호랑이 2017-12-31 09: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syo님께서는 진정한 2017년 다독가이십니다. 새해에도 유쾌한 책소개와 일상 페이퍼 기대해 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yo 2017-12-31 09:23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한테 많이 배운 2017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18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12-30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적어도 대학 내내 사기 당하신 것 아니잖아요. 전 큰 사기 당해 무척 억울하단 느낌입니다. ㅠㅠ

syo 2018-12-30 20:3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제가 뜻밖의 전공승리를 거두었군요. 그렇네요. 사기라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