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책 / 폴 서루 / 이용현 옮김 / 책읽는수요일

 

여행기를 읽지 않는다. 남이 다녀 온 남의 땅 이야기를 읽어 어디다 쓸 것이냐는 이유였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제일 즐기는 이야기는 남의 책 남이 읽은 이야기였다! 순간 정체성에 구멍나는 소리가 들렸다. 비밀이지만 syo의 s는 사실 "si종일관"의 s이므로, 나는 급히 일관성을 보수하러 나섰다. 평소 의지하는 멘토께 여행책 하나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 왔네>라는 책을 권해왔다. 웃음기 싹 빼고 진지하게 권했다. 심지어 검색해보니 책 표지에 적힌 제목도 진지한 명조체였다. 심지어 빨강색이라서 궁서체와 거의 다를 바가 없는 진지함. 나는 침을 삼켰다. 신중히 리액션을 고르는 내게, 그분은 자신이 그 책을 읽고(손에 들고) 혼자서 훌훌 베트남에 국수를 먹으러 갔다온 여행기를 링크해 주셨다. 메인플롯을 "책-국수-원 비어-국수-침대-원나잇좌절-스테이크-설사-버스아저씨"라고 요약할 수 있는 그 이야기는 정말 너무 재미있는 나머지 그만 여행기를 읽고 싶은 내 욕망을 증발시켜버렸다! 결국 어느 나라를 다녀온 책을 읽어야 하나 결정하지 못하고, 굉장히 포괄적인 제목의 책을 뽑아 들었다. 그랬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bad friends중 한 명인 이 여행기의 대가는 20페이지부터 대뜸 나를 아연하게 만든 것이다.

 

어떤 곳이 낙원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면 이내 지옥으로 바뀐다는 사실은 공리에 가깝다.(20)     

 

 

 

어린이책 읽는 법 / 김소영 / 유유

 

이럴 줄 알았으면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거였다. 인간 복제 기술을 완성하는 거였다. 그랬다면 나는 아마 차별, 범죄, 국론분열을 비롯해 우리 나라에 산적한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저자인 김소영 선생님을 복제해서 각급 유치원 및 초등학교에 배치함으로써. 나는 이 책을 읽고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메시아고, 알고보니 나는 독서만능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땅의 평화와 밝은 미래는 말과 말이 통하는 사회가 도래하느냐 마느냐에 달렸으므로, 지금이라도 책쌤10만양병설을 주장해 본다. syo의 s는 알고보면 'sip만양병'의 s이므로.

 

아차, 그리고 꼭 인용하고 싶은 부분.

 

이런 책들(저자는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내가 볼 떄 이건 분명 이지성과 그 워너비들이 싸놓은 종이뭉치들을 의미한다!)을 읽으면서 나는 어른이 아이의 독서를 통제할 수 있다는 기조를 본 듯해 마음이 불편했다. 어린이도 역시 '독자'라는 사실을 모른 척하고 가르칠 대상으로만 보는 것, 어린이의 생활과 개성을 무시하고 책 읽기를 최우선 가치로만 여기는 것이 과연 어린이와 책 사이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든다(나는 안 든다.) (24)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 스콧 피츠제럴드 / 김욱동 외 옮김 / 민음사

 

'짜장면vs.짬뽕', '엄마vs.아빠', '부먹vs.찍먹'이 같은 수준의 질문이라고 사람들은 종종 착각한다. 명망있는 연구진의 오랜 연구 끝에 드러나길, 저 세가지 질문은 작동하는 방식이 천지차이다. '짜장면vs.짬뽕'은 기호와 기분과 기억의 문제다. 결정은 내가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는가, 오늘은 어쩐지 어느 쪽이 더 끌리는가, 최근에 먹은 것은 어느 쪽인가를 두루 고려해서 내려지므로 유동적이면서 내부적에서 이루어진다. 반면 '엄마vs.아빠'의 경우, 이 질문에 대답을 할 때 아이들은 자신의 내면을 깊이 탐색함은 물론, 엄마 아빠의 현 위치, 그들과의 거리, 그들의 기분 상태 등등을 두루 고려하여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유동적이지만 내부와 외부를 모두 고려하는 결정이 되겠다. 마지막 '부먹vs.찍먹'의 경우는 극단적이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배제와 추방, 독점, 그리고 학살의 문제다! 탕수육은 한 그릇이기 때문이다. 내가 부먹인데 당신이 찍먹이라면 우리는 기어이 피를 봐야 한다. 양보란 없다! 타협도, 변화도 허용하지 않는다! 내가 많고 많은 책을 읽으면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은 봤어도 부먹에서 찍먹으로 개종하는 사례는 정말 한 차례도 목격한 바가 없다.

 

나는 피츠제럴드를 사랑한다. 물론 syo의 s는 'Scott Fitzgerald'의 s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그저 그와, 그의 문장과, 그의 문장이 겨냥하는 그것들을, 한꺼풀 벗기고 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 허망한 그것들과, 그래도 기어이 그것들을 겨냥하는 그의 문장과, 그런 문장을 쓸 수 밖에 없었고 스스로 그런 자신을 비참하게 생각했던 잘고 약한 남자 피츠제럴드를 사랑한다. 그래서 내게 '도스토옙스키vs.톨스토이'는 '짜장면vs.짬뽕'에 가까운 질문이더라도, '피츠제럴드vs.헤밍웨이'는 '부먹vs.찍먹'에 가깝다. 나도 평소에는 대체 내가 왜 이렇게까지 이 작가를 좋아하는지 의아해하다가도,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또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문장들 때문일까.

 

세상에는 시간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의 시간과 그녀의 시간 말이다. 그러나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는 순간, 그는 아무리 영원히 찾아해메더라도 잃어버린 4월의 시간만큼은 절대로 되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팔의 근육이 저려올 때까지 그녀를 꼭 껴안을 수도 있었다. 그녀야말로 갖고 싶은 고귀한 그 무엇이었고, 분투한 끝에 마침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옛날 어스름 속에서나 산들바람 살랑거리던 밤에 주고받은 그 속삭임은 이제 다시는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 갈 테면 가라, 그는 생각했다. 4월은 흘러갔다. 이제 4월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있건만 똑같은 사랑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_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분별 있는 일'」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 김태정 / 창비

 

보부아르가 그런 말을 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편에 서 있는 한 지식인은 결코 프롤레타리아가 되지 못한다. 어디까지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곁에 서 있는 지식인일 뿐이다." 나는 프롤레타리아도 아니고 지식인도 아닌 한낱 룸펜 나부랭이지만, 부끄러움의 크기는 작지 않다. 읽기 때문이고, 읽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는 또 이렇게 말한다. "책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한다. 울게 하고 웃게 한다.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더 나은 환경과 더 나은 사회를 꿈꾸게 한다. 그러나 책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그 다음, 그 모든 것들을 실천해서 한 걸음 내딛게 하는 건 책이 아니라 '책을 읽은 내가'해야 하는 일이다."

 

자기네들이 물대포라고 주장하는 그 미친 대포를 얻어맞으며 백남기 농민이 바닥에 나뒹굴던 순간, 나는 그곳으로부터 걸어서 한 시간 거리도 떨어져 있지 않은 내 작은 방 안에서 인터넷을 통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곳으로 갈 수 있었다. 처음에도 그럴 수 있었고, 나중에도 그럴 수 있었다. 모든 국면에서 가능했던 나의 걸음을 잡은 감정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두려움? 귀찮음? 부질없음? 백남기 농민은 대학로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했고, 병원 길에 세워져 있는 농성텐트 앞을 나는 바닥을 뚫을 듯 깊이 고개를 숙인 채로 지나가야 했다. 그 감정은 또 무엇이었을까? 미안함? 죄책감? 부끄러움? syo의 s는 그저 'so시민'의 s였을 뿐이었다. 

 

김태정도 부끄러웠다. 그녀는 자신이 노래했던 시 속의 모든 인물의 옆에 앉아 보았다. 그녀는 들었고, 이야기는 그녀의 약한 몸을 몇 바퀴 깊이 돌다 시가 되어 나왔다. 겪은 것들을 시로 썼고, 시로 쓴 것을 겪었다. 그렇지만 김태정은 끝없이 부끄러워했다. 겪고도 쓰지 못한 것과, 쓰고도 겪지 못한 것들이 남아 있다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렇게 부끄러워하다가, 쓰다가, 다시 부끄러워하다가, 쓰다가, 김태정은 떠났다. 한 권의 시집을 남기고. 내가 그녀의 존재를 알았을 때 그녀는 이미 존재를 비웠다. 그래서 나는 한 권의 시집을 두고두고 다시 읽어야 한다. 슬픈 일이지만, 이 한 권의 시집은 너무 무거워 나는 읽어도 읽어도 다 읽지를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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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8-24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 와 o 도 궁금해집니다. ㅎㅎ^^

syo 2017-08-24 23:51   좋아요 1 | URL
ㅎㅎㅎ 기회 닿으면 한 번 잘 갖다붙여 보겠습니다. 뭔들 못 만들까요, 어차피 멋대로 지어내는건데요 ㅎㅎㅎㅎ

다락방 2017-08-24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앙 쇼님 부지런히 읽고 쓰네요. 전 오늘도 술 마시느라 읽고 쓰기 패쓰...(시무룩) 쇼님은 성큼성큼 자꾸 앞으로 나아갑니다.

syo 2017-08-24 23:52   좋아요 0 | URL
저는 내일부터 일요일까지 휴무입니다 ㅎㅎ

다락방 2017-08-25 07:12   좋아요 0 | URL
왜요왜? 어디 놀러가나요?

syo 2017-08-25 07:23   좋아요 0 | URL
서울나들이갑니다 ㅎㅎㅎㅎ

다락방 2017-08-25 07:26   좋아요 0 | URL
우앙 서울에서 뭐할건데요? @.@

syo 2017-08-25 07:27   좋아요 0 | URL
친구 결혼식가서 축가부릅니당 ㅎ

다락방 2017-08-25 07:28   좋아요 0 | URL
우앗 축가라구요????!!!!!!!!

syo 2017-08-25 07:30   좋아요 0 | URL
네 ㅎㅎ 그래서 오늘 저녁은 축하 연습, 내일은 결혼식, 모레는 원기회복 차원에서 휴뮤입니다

다락방 2017-08-25 0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제가 빠뜨렸는데요, 저도 피츠제럴드를 정말 사랑해요. 정말로요. 혹시 그의 단편 <컷 글라스 보울>을 읽어봤나요? 진짜 어매이징한 작품이에요. 짱임요!

syo 2017-08-25 08:16   좋아요 0 | URL
읽어봤을 것이나 언제나 그랬듯이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단발머리 2017-08-25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어린이책 읽는 법>의 어린이 독서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마음에 와닿네요.
읽어야할 책의 범위가 방대한 경우 필독도서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아이들 필독도서를 읽히지 않는 엄마의 의견),
모든 필독도서를 읽어야할 필요는 없는 것 같구요. 어린이들의 ‘감‘을 믿어봐야 한다고, 전 그렇게 생각해요.
스스로의 감으로 책을 고른 아이들이 오래 오래 책읽을 수 있고, 책 자체를 좋아하는 진정한 독자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하구요.

아름다운 축가 부르시고요(알라딘에 음성 파일 올려주는 센스^^)
즐거운 서울 나들이 되시길요~~

북깨비 2020-06-12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남의 책 남이 읽은 이야기 저도 좋아해요.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 금정연 / 어크로스

 

일기만 쓰다 질려 슬금슬금 서평의 영토를 넘보던 꼬꼬마 시절, 내 서평이 가야할 길을 탐색하기 위해 명망 높은 서평가들의 책을 뒤지곤 했다. 많이들 권하던 정희진 스타일은 멋있고 욕심도 났지만 어쩐지 냉엄해서 포기. 아무도 권하지 않던 장정일 스타일은 식음을 전폐하고 독서에만 매달리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음을 깨닫고 아, 이래서 아무도 안 권했구나 하며 포기. 비슷한 이유로 이현우 스타일 포기. 포기. 포기. 포기. 그렇게 포기로 배추 말고 책을 세는 것도 지쳐서 그만 포기하려는 찰나 운명처럼 금정연이 걸렸다.『서서비행』이 연이은 대출로 서가에 꽂힐 틈이 없었던 탓이니, 우리의 만남이 늦은 이유는 전적으로 금정연의 책임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사실 매우 좋았다. 내가 금정연의 글에서 발견한 매력 포인트는 빈정거림과 투덜댐의 통속적인 앙상블이었는데, 나 또한 또래집단 내에서 빈정거림으로는 아주 명망이 드높은 재야의 빈정거리니스트였으므로 아, 바로 이거다 싶었던 것이다. 물론 금정연의 글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기조는 "자조"지만, 그거야 뭐 나 자신을 빈정거리면 되는 거 아니겠어? 그리하여 나는 금정연 이미테이션, 금정연의 하위호환 기종, 양산형 금정연을 목표로 달리기 시작했다. 배'칠'수와 '너'훈아가 그 이름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내며 당당히 활동하듯, 언젠간 나도 당당한 금정'역'이 되어 사해에 명성을 떨치리라 이를 악물었다. 악물었으나 이는 한 달도 안 되서 느슨해졌다. 아무리 서평이랍시고 각 잡고 써도 끝내 일기나 자소서가 튀어나온다는 사실을 절감한 것이다.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심지어 지금 이 글도『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의 서평이라고 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구러 오늘날 여기까지 왔는데, 사실 어디까지 온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는 나른하달지, 나태하달지, 어쩐지 슬그머니 늘어지는 매너리즘의 냄새가 나는데, 그건 나도 그래. 항상 매너리즘에 푹 빠져 있지(겨우 이 정도가 현재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빈정거림x자조 컬래버레이션의 최대치인 걸 보니 아, 아직 갈 길이 구만리임을 알겠다.....). 어쨌든, 여전히 금정연은 나한테 참 탐나는 글을 쓰는 서평가고, 솔직히 말하면 아직까지 금정역의 꿈을 완전히 버리진 못한 것도 같다.  

   

 

 

 

 

어서오세요, 오늘의 동네서점 / 땡스북스 + 퍼니플랜 / 알마

 

내 기억 속 최초의 동네서점에서, 아버지가 3권짜리 만화 한국사 책을 사 주셨던 것 같다.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사줬겠지만 그걸 읽고 훌륭한 사람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히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혁명과 경제 업적을 칭송하는 내용이 막대한 분량으로 실려 있었을 테니까. 그런 시절이었다. 그 책을 다 읽었을 무렵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아버지는 그저 동향 사람일 뿐인 당신에게 뭐 하나 챙겨준 것 없다는 이유로, 아주 냉정하고 잔혹한 놈, 차갑고 인정이 메마른 시대라고 노태우와 그 집권기를 평가했다. 그리고는 당시 우리 나라에서 돈이 제일 많다고 여겨지는 노인에게 투표했는데,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었다던 그 노인 자신의 말에 따르면 노인은 아마 생애 최초로 실패한 것 같고, 그래봐야 시련의 경험을 1회 추가하는 데 그쳤겠지만, 우리 아버지는 또 대통령에게 콩고물을 받아먹는 데 실패한 셈이었다. 시련이었다. 실패로 점철된 인생이었다. 하여튼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이나 마나, 나는 좋았다. 동네에 서점이 있는 것은 큰 축복이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동네에 서점이 있는 것이 축복이라고 느낄 줄 아는 깨친 꼬맹이었다는 게 더 큰 축복이 아닌가 싶다. 그것도 역시 서점이 만들어 준 축복이었다. 책은 너무도 구하기 어렵고, 어린 아이 용돈으로는 침도 함부로 흘리면 안 될 물건이었으므로, 그저 책을 만져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막 행복하고 그랬다. 당시는 그런 시절이기도 했다.

 

그런 시절은 끝났다. 우리는 이제 어떤 책이건, 어디의 책이건 너무도 쉽고 간편하게 구할 수 있다. 얻기 쉬운 것은 얻지 않기도 쉬워진다. 언제나 얻을 수 있으므로. 얻기 쉬운 것은 버리기도 쉬워진다. 언제나 다시 얻을 수 있으므로. 얻지 않거나 버리는 데 부담이 없으면 이내 소중하지 않게 된다. 지금 당신의 등 뒤에 있는 책꽂이를 보세요. 사놓기만 하고 읽지도 않은 책이 무수히 많진 않습니까. 그러고도 당신의 장바구니는 여전히 새 책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습니까! 인정하자. 우리에게 이제 책은 소중하지 않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주변은 다 낡고 허물어져가는 공중 목욕탕이고, 다리엔 차꼬가 채워져 있고, 눈 앞에 있는 낡은 모니터 안에서 광대뼈에 회오리 모양을 한 인형이 음산한 목소리로 "너는 책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지." 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게 되어도 양심에 찔려서 차마, 이거 왜 이러십니까, 따져 볼 도리가 없을만큼, 우리에게 이제 책은 소중하지 않다. 그러므로 책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공간인 서점 또한 더 이상 소중하지 않다.

 

책이 흔해져 그 소중함을 잃었고, 그건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라면, 다른 방법으로 다시 책에게 소중함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 현실에 마침내 그들이 떨치고 일어나 우리에게 왔다.『어서 오세요, 오늘의 동네서점』은 책의 소중함을, 서점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되돌려주기 위하여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분투하고, 그 분투 속에서 소소한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판매용 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책 읽는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이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서점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43)

 

저희는 소심한 책방이 '숨어있기 좋은 방, 전망 좋은 방, 자기만의 방'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58)

 

서점은 단순히 책을 사고 파는 공간이 아니라, 세상의 온도를 높이는 곳이라 생각해요. (81)

 

이미 너무 구하기 쉬운 책의 소중함을 되찾기 위해서, 책과 함께하는 삶의 소중함을 탈환하기 위해서, 우리에겐 그들과 그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우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있다.

 

그나저나 세상에, 명색이 서평인데 정작 책 이야기는 인용 빼면 꼴랑 6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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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8-21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희진, 장정일, 이현우... 저도 포기 포기... ㅋ
금정연, 첨 듣는 작가에 저도 귀가 솔깃... ㅎ

syo 2017-08-21 20:55   좋아요 1 | URL
참 재미있는 서평을 쓰는 서평가인 동시에, 웃기면서도 난해한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한 번 읽어보세요^^

북다이제스터 2017-08-21 20:56   좋아요 0 | URL
좋은 책과 작가 소개 감사합니다. ^^

다락방 2017-08-21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깨친 꼬맹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7-08-22 06:47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기조입니다 ㅎㅎ

독서괭 2017-08-22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는 책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지˝... 오오 찔립니다ㅋㅋ 일기같은 syo님의 글을 읽으며 금정연씨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으니 성공적인 서평이네요^^

syo 2017-08-22 06:4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
저도 책꽂이에서 노려보고 있는 책들 때문에 양심에 불나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날 또 책을 대출해 오곤 하지요...

책읽는나무 2017-08-22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절로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서평이었습니다.
전 이런 글 좋아서....‘좋아요‘ 열 번 누르고 싶네요^^

syo 2017-08-22 08:5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ㅎㅎㅎㅎ. 나머지 아홉 개의 좋아요는 비축해놓으셨다가 나중에 제 별로 안 좋은 글을 만났을 때 옛다 하나씩 툭툭 던져주세요.

쇼코 2017-08-22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은 예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계속 미루기만 했어요. syo님 글 읽고 바로 질렀어요. ㅎㅎㅎ 독서괭님 말씀대로 역시 책을 읽게 만드셨으니 성공적인 서평이라 생각해요.^^

그나저나 하나 둘씩 사라지던 동네 서점을 떠올려보면 참 안타까워요. 저도 고등학생 때 자주 가던 책방이 있었는데 그때 좋은 추억이 많거든요. 책을 사러 가는 것보다 구경하러 많이 갔어요. 친절한 주인아주머니랑 친해서 눈치 안보고 구경할 수 있었는데... 얼마전에 다시 가 보니 사라졌더라고요. 따흐흡ㅠㅠ 두번째 책도 읽어보고 싶어요^^

syo 2017-08-22 11:35   좋아요 0 | URL
항상 좋게 봐주시니까요 쇼코님은^^

요즘 작은 동네 책방에 관한 책들을 조금씩 읽게 되는데 어쩐지 뭉클하기도 하고 좋더라구요. 어차피 책 한 권 살거면 인터넷으로 사는 것보다 직접 작은 서점에 가서 사면, 똑같은 책이라도 어쩐지 더 소중하게 여겨질 것 같습니다.

단발머리 2017-08-2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칠수, 너훈아...에서 흠흠.. 하다가 금정역에서 빵!터졌어요. 금정역 ㅋㅋㅋㅋㅋㅋ
저는 어떤 글보다도 서평이 글쓴이에 대한 궁금증, 다른 말로 하면 글쓴이의 매력으로 승부하는 장르라 생각합니다. 그냥 쭈욱 책얘기만 할 거면 줄거리요약을 읽고 말겠죠.
syo님의 매력은 금정역을 넘어 syo역에 다다를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syo 2017-08-22 11:38   좋아요 0 | URL
와 ㅎㅎㅎ 단발머리님이 제 회심의 ˝1-4호선 환승개그˝를 알아주셨군요.
아, 보람차다.
칭찬 감사하고 개그 코드 맞아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블랙겟타 2017-08-22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서오세요, 오늘의 동네서점> 이 마침 책꽂이에 꽃혀있었는데 ‘지금 당신의 등 뒤에 있는 책꽂이를 보세요.‘ 응? 뒤에 책꽂이가 진짜 있는데 ‘사놓기만 하고 읽지도 않은 책이 무수히 많진 않습니까.‘ 여기서 뜨끔! ‘그러고도 당신의 장바구니는 여전히 새 책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습니까!‘ 여기서 한번 더 뜨끔!! 했었네요 ㅜㅜ

syo 2017-08-22 15:13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반드시 누군가는 걸려들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러니까요!!! ㅎㅎㅎ

공쟝쟝 2019-12-30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댓글 갚으러 왓어요. ㅋㅋㅋㅋㅋㅋ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다락방의 책장에서 만난 우리들의 이야기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3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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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사람을 아는 데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한 사람을 아는 데 그 사람이 쓴 책은 몇 권이나 필요할까?

그 사람이 쓴 책은 그 사람을 아는 데 필요한 시간을 얼마나 줄여줄까?

 

 

 

2

 

그녀는 크다고 한다. 아무리 잠든 여자 둘을 양 옆구리에 끼워 들고도 가뿐히 걸을 수 있는 괴력의 잭 리처라도, 만약 자기가 그 여자중 하나라면 그래도 잭 리처가 여유를 부릴 수 있을지 그녀는 확신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녀는 옹졸하다고 한다. 출근길 버스 기사와 왠 청년이 시비가 붙자 제일 먼저 지각 걱정을 하는 스스로를 보며 이반 일리치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녀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적도 있는데, 후자를 더 후회한다고 전한다.

 

그녀와 결혼하려면 일이 많다. 채식을 그만둬야 한다. 설거지를 도맡아야 한다. 둘 사이에 유지해야 할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거리는 얼마만큼인지 꾸준히 체크해야 한다. 단지 특별한 먹거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훌쩍 다른 나라로 떠나거나 이국의 도시에 깊은 환상을 품는 그녀를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그곳으로 데려갈 줄도 알아야 한다.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서재에서 "대체 왜! 그건 아냐! 제발 그러지 마!" 하는 식의 비명이 들리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신속하게 서재로 들어가 그녀의 손을 확인할 줄 알아야 한다. 손에 책이 들려있다면 그녀는 미친 것이 아니니 따뜻하게 한 번 안아주고 다시 TV를 보러 가도 될 듯하다. 

 

설사 그 모든 관문을 통과해 그녀를 얻었더라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없이 많은 매력적인 남자들과 격전을 벌이고 끝내 쓰러뜨릴 수 있어야 틈만 나면 그들과 사랑에 빠지는 그녀를 되찾아 올 수 있다. 그녀는 끝없이 읽고, 소설은 끝없이 쏟아지므로 전쟁도 끝이 없다. 그럼에도 소설을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소설을 사랑해야 한다.

 

비결이 궁금하다면 그것마저도 친절한 그녀가 알려준다.

 

큰따옴표 안의 글은 정말 대화한다는 생각으로, 느낌표가 있는 문장은 정말 감탄하거나 놀라듯이, 쉼표에서는 꼭 쉬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소설은, 정말 재미있다! (44)

 

 

 

전부 단 한 권의 책을 통해 알아낸 것들이다. 심지어 일부다.

 

내가 저자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그녀의 글을 좋아하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이유다. 웃기거나, 슬프거나, 다정하거나, 혹은 냉정하거나한 그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읽는 사람을 글쓴이의 진심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믿음직한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이유경 작가의 글은 그렇다. 내가 이 글을 읽고 웃었다면 반드시 그녀도 웃었을 것이라는, 내가 이 글을 읽고 화가 났다면 반드시 그녀도 화가 났을 것이라는(아직도 화가 나 있을 수도 있다. 그녀는 분노에 능하다), 그러므로 내가 진심이기만 하면 반드시 우리 둘 다 진심일 것이라는 믿음, 그런 믿음을 주는 글이 그녀의 손에서 나온다. 이 엄혹한 인터넷 시대에, 일기조차 남들이 볼 걸 예상해 한껏 꾸미고 포장하여 올리는 무시무시한 시대에, 아직도 저렇게 제 내장을 훌훌 다 끄집어내 보여주는 글을 쓰다니.

 

어쩌면 우리에겐 책에 대한 더 이상의 해석은 필요없을 수도 있다. 서평도 그럴 수 있다. 로쟈님과 cyrus님이 있으면 대단히 많은 부분이 해결되지 않나.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느낌일 수 있다. 같은 책을 읽은 타인의 마음일 수 있다. 책의 역할이 한 사람의 내부를 채우는 것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채우는 데에도 있다면, 우리에게는 누군가의 "책 읽은 책"이 한없이 필요하다. 책 읽은 마음이 예쁘든 모났든,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보여주는 책이 소중하다.     

 

 

 

4

 

나는 예쁘지 않아요. 내 친구들은 어느 정도는 예뻐요. 내가 전화했을 때 반갑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나는 나한테 연락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좋아요. 나는 함께 있을 떄 당신이 아주 많이 웃었으면 좋겠어요. 당신을 웃게 해주고 싶다는 아주 강한 욕망이 내 안에 있죠. 그것은 거의 나의 식욕과 맞먹어요. (170)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문제의 그 식욕이 어느정도인지는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밑줄 긋는 남자』의 여주인공이 쓴 편지를 흉내낸 글의 일부다. 여주인공은 벌써 답장을 받았고, 그녀도 답장을 기다린다고. 지금쯤 답장을 받았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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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08-17 23: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너무 근사한 글이예요~~~

˝설사 그 모든 관문을 통과해 그녀를 얻었더라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없이 많은 매력적인 남자들과 격전을 벌이고 끝내 쓰러뜨릴 수 있어야 틈만 나면 그들과 사랑에 빠지는 그녀를 되찾아 올 수 있다.˝

특히 이 부분 좋아요.
그녀를 얻게 될 남자가 소설 속 매력적인 남자들과 벌이게 될 경쟁과 경합의 시간들. 격투와 격전들.

syo 2017-08-18 05:50   좋아요 1 | URL
가끔씩 보면 와, 저 자식은 이길 수 없겠는걸? 싶은 남자들도 있는 바, 누가 될지(혹은 된지) 모르지만 그들과 싸워야 할 그 분께 격려의 말을 전합니다....

cyrus 2017-08-18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글은 다정다감해요. syo님은 책에 친근하게 다가가서 책에서 표현하지 못한 저자의 진심까지 읽어내요. 그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syo님 글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따뜻한 글이라면 문장력, 수사, 이런 거 없어도 됩니다.

syo 2017-08-18 23:16   좋아요 0 | URL
읽어주시는 분들이 따뜻해서 따뜻하게 읽히는 걸 겁니다. 제가 하는 게 뭐가 있겠어요 ㅎㅎ

AgalmA 2017-08-21 11:04   좋아요 0 | URL
동감ㅎ

2017-08-18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9 0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사단장 죽이기 1, 2 / 무라카미 하루키 /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하루키를 향한 맹목적인 믿음은 이제 잃은 듯하다. 다른 책에서 나왔다면 반드시 밑줄을 그었다싶을 멋진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해대는데, 그러다보니 마치 그 말을 하기 위해 그 상황을 만들어낸 것처럼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 현실성과 비현실성을 섞어 직조하는 대화의 그 특이한 결이나, 사건을 전개하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이 나는 오랫동안 좋았는데, 십 오년을 좋았더니 슬슬 울림이 덜하다. 제일 큰 문제는 그가 거장이라는 것, 따라서 하루키의 라이벌은 어제의 하루키라는 데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하루키의 역량이 내 눈에 가장 빛나 보였던 때는, 해변의 카프카를 시작점으로 하고 1Q84를 마침점으로 하는 선분 위의 어느 지점인 것 같다(해변의 카프카 쪽으로 좀 더 가까이 당길 것이다). 물론 그때 이후로도 하루키의 필력은 절대적 기준에서 보면 향상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보아도 여전히 하루키는 문학 마라톤의 선두주자임을 의심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뒤에서 따라오는 작가들과 다른 독자들의 보폭이 하루키의 것보다 더 넓다. 거리는 자꾸 좁혀질 것이다.

 

욕(?)을 하자는 마음이라 해놨지만, 솔직히 좋은 책이다. 600페이지 종이 뭉텅이를 앉은 자리에서 다 읽게 하는 능력은 아무한테나 있는 게 아니다. 하루키에게는 여전히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하루키만의 하루키가 있다. 신작이 언제 발매 되어도 장바구니 맨 앞칸에 들어갈 작가임에 틀림이 없다.

 

 

 

 

고양이의 서재 / 장샤오위안 / 이경민 옮김 / 유유

 

보시다시피 표지가 어마어마하게 사랑스럽다. 한 손에 머그컵을 든 고양이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책이 무려 생선책이다...... 그러나 고양이는 표지에만 나온다. 손헌수 닮은 영감님(장샤오위안 선생으로 추정된다) 무릎에 앉은 고양이 사진 하나 덜렁 있긴 한데,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걸까? 제목이 고양이의 서재인데?

 

장샤오위안 선생은 현지에서 유명한 책벌레인 듯한데, 역시 이름 드높은 책벌레들이 공유하는 유년기의 경험, 그러니까 어린 시절 거의 무한한 양의 책을 공급해주는 도서관이랄지, 아버지의 서재랄지, 하다 못해 친구 아버지의 서재랄지, 그런 뭔가가 꼭 있고, 이상하게도 반드시 그 책을(번호가 붙어있는 책들은 꼭 번호 순으로) 몽땅 읽어본 경험이 있다.  

 

그렇지만 삐꾸 같은 부분도 더러 있는데 이를테면, 진정한 책벌레이지만 외모가 극히 볼품없는 L의 불모지같은 청춘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L은 지금도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다. 그는 내게 자기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여성은 무척 적다고 말한다. 지금은 많은 여성이 스스로 '독서를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녀들의 진정한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그녀들의 진정한 사랑은 돈이다. 물론 직접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듣기 좋은 말로 표현할 뿐이다. 예를 들면 남자친구에게 '일에서 어느 정도 성공해야 한다.'라고 요구하는 것 말이다. (236)

 

L은 책벌레라는 것 말고는 외모도, 돈도, 명예도 가진 것이 없다(성격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에피소드를 보면 괴짜 기질이 다분히 있다). 근데 왜 독서를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여자는 그런 L을 사랑하지 않으면 거짓말쟁이가 되야 하는가. 남자를 돈으로 판단하는 여성에 대해 분개해놓고, 막상 자기는 여자의 외모로 가치를 매긴다. 다음 문장에서.

 

자기 책을 사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일은 자기 책이든 아니든 세상의 모든 책을 사랑하는 일이다. 그렇게 책을 사랑하는 사람 가운데는 친구나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서 흠을 발견하면 나서서 손보는 이가 있다. 서점에서 책을 보다가 책 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걸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책 정리를 한다. 누군가 책을 더럽히거나 망가뜨리는 걸 본다든가 책이 잘못될 가능성만 느껴도 그러지 못하도록 저지하거나 좋은 말로 말린다. 그들에게 좋은 책이 더럽혀지거나 부적절한 대우를 받는 것은 미인이 모욕을 당하는 것과 같아서 아름다운 것을 아끼는 마음에 보호하려 드는 것이다. (188)

 

이런 사람들을 놓고 내가 좋아하는 한 작가는 이런 말을 한다. 나는 더 더러운 말을 할 수 있지만, 정갈한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갈음하자.

 

그러나 나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장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잘하는 사람이 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닌 것처럼, 다른 사람보다 책을 더 많이 읽는다고 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 책을 많이 읽었지만 모순으로 가득 찬 사람, 세상의 모든 일들에 대해 남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책에서 얻었지만 타인에 대한 이해나 배려는 부족한 사람들을 나는 곧잘 마주치곤 한다.

_이유경,『독서공감, 사람을 읽다』34-35

 

채링크로스 84번지 / 헬렌 한프 / 이민아 옮김 / 궁리

 

어쩐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옛 서점들에 관한 책을 읽고 싶어진다. 2차대전 직후전승국인 영국 국민들이 식량이나 나일롱 양말을 배급받아야 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고, 전후를 겪은 사람들의 경험을 담은 책을 읽고 싶어진다. 다른 책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놓아 주는 책에 별점을 매기면 다섯 개 미만이 나올 수가 없다.

 

따뜻하게 편지와 소포를 주고 받는 모습을 읽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슬쩍 눈물이 나는 것은 왜일까. 나는 편지도 잘 못 쓰고 선물을 주는 일도 드물지만 편지와 선물이 아름다운 삶을 위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 말에 기꺼이 동의한다. 그들이 주고 받은 편지는 그야말로 실용적 용도로 쓰였으므로 오히려 아름답다. 작위적인 아름다움이나 불필요한 가식이 전혀 섞일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서점 점원과 고객이라는 그야말로 비즈니스적 관계를 따뜻한 끈으로 바꾸어 이어나가는 그 마음들. 한없이 따뜻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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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8-16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 책 단 한 권도 여태 읽지 못 했지만, 예전 책까지 찾아 꺼집어 읽고 싶어지는 리뷰입니다. ^^

syo 2017-08-16 23:16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그보다 북다님께서 하루키를 한 권도 안 읽으셨다는 사실이 조금 의외입니다. 워낙에 많이들 읽으시는 작가잖아요. 그래서 부러 피하신걸까요?

다락방 2017-08-17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의 서재... 뭐죠? -_-
그녀들의 진정한 사랑은 돈이다.... 뭐여.......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 돈 필요없는 사람이 어디있다고, 자기들도 돈 벌자고 일하면서, 돈으로 살아가면서, 그러면서 왜 돈이 필요하고 돈이 좋다고 말하는 여자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가혹할까요? 어처구니.
저는 돈을 사랑합니다. 돈이 필요합니다. 제가 돈을 버는 이유는 쓰기 위해서입니다.
흥!!

syo 2017-08-17 09:47   좋아요 0 | URL
정갈한 책과 일갈의 댓글ㅎㅎㅎ

cyrus 2017-08-17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책의 구절에 공감합니다. 제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합니다. 늘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잊을 때마다 경솔한 발언을 합니다.

syo 2017-08-17 13:53   좋아요 0 | URL
그런 일들이 있었군요. 몰랐어요. 제게 cyrus님은 실수를 모르는 서평머신같은 이미지인데 말이죠.

레삭매냐 2017-08-1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 책은 두번 째 권 읽다가 말았어요...
다른 책들이 너무 재밌어서 말이죠.

하루키가 아닌 다른 작가가 같은 내용으로
썼어도 그렇게 히트를 쳤을 지 모르겠네요.

syo 2017-08-18 11:10   좋아요 0 | URL
일본 현지 반응은 어떤지 궁금하긴 하네요. 일본보다 한국에서 하루키를 더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봄밤 2017-08-23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종종 들러 읽고 있습니다. 로긴할 힘이 없어서 이렇게 씁니다만은
이 리뷰에서 <기사단장 죽이기>표지 배치하신 것을 꼭 말하고 싶었습니다.
알라딘 쓰기 툴은 매우 조악한데도 이렇게 멋진 레이아웃이라니...
다음엔 좋은 서평에 ‘좋다‘라는 말을 잘 해보겠습니다.
 
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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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깨나 읽고 다니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이언 매큐언을 모른다고 할 리가 없다. 아, 이언 매큐언, 알지. 잘 알지.《속죄》. 좋지. 조오은 작가지. 그게 나의 대답이었다. 그리고는 입을 다물고 기도했다. 어느 부분이 마음이 들었는지, 어떤 등장인물에 가장 쉽게 감정이입이 되었는지 그런 거 제발 묻지 않게 하소서. 신은 있다. 내가 이언 매큐언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것을 온 세상이 모른다는 것이 그 증거겠다. 무려,《속죄》의 이언 매큐언인데. 


그리하여 내게는《넛셸》이야말로 이언 매큐언의 첫 책이자 유일한(아직까지는) 책인 셈인데, 딱 그 정도 아는 서먹서먹한 사이에 이런 말 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이 양반, 웃긴데?


이 책은《햄릿》이다. 햄릿이긴 햄릿인데 나이가 음수(陰數)인, 식사 시간에 포크와 나이프 대신 탯줄을 사용하는 '배냇햄릿'인 셈이다(쓰고 보니 영어 이름 같기도 하다. Bennett Hamlet. 구글링해 보니, 이런 사람 있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태아인데, 어떤 태아인가 하면 엄마 뱃속에서 시대별 건축 양식과 희귀종 우표의 이름들을 좔좔 꿰고 있는 태아다. 북한 인민들의 참혹할 실상도 알고, 드뷔시와 부동산 업자간의 차이도 숙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나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장막스 로제 상세르'라는 와인의 심오한 맛도 멋드러지게 표현할 줄 아는 아주 되바라진 놈이다. 게다가, 자꾸 인용하는 걸로 미루어 보면 이 자식은 무슨 수를 쓴 건지《율리시즈》도 벌써 다 읽은 것 같다. 이쯤 되면 독자는, 혹시 나는 바퀴벌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른다. 쐐기를 박듯, 그 많은 지식을 팟캐스트를 통해 익혔다고 고백함으로써 내 알량한 대학 졸업장을 처참히 불싸지르고 동시에 수천 수만 개 대학교 커리큘럼을 장쾌하게 폭파한다. 도대체 팟캐스트로 르네상스적 인간이 되는 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백만 년만에 팟빵에 접속해 즐겨찾기 되어 있는 방송을 확인했더니, 영어 단어. 영어 회화. 영어 문법...... 도저히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쟤는 벌써 영어로 된 팟캐스트를 듣고 있잖아.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고 그건 절대적이다. 나를 버리려는 어머니의 계획에는 동의할 수 없다. 추방되는 것은 내가 아닌 그녀일 것이다. 나는 이 미끄러운 탯줄로 그녀를 묶어둘 것이다. 내 생일에 기진맥진한 신생아의 시선으로, 외로운 갈매기의 울부짖음으로 그녀의 심장에 작살을 꽂을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강압적인 사랑에 굴복해 나의 충실한 유모가 되고 그녀에게 자유는 멀어져 가는 고국의 해안을 의미할 것이다. 트루디는 클로드가 아닌 내 소유가 될 것이며, 나를 버리는 건 그녀의 흉곽에서 젖가슴을 뜯어내 배 밖으로 던지는 일일 것이다. 나도 무정할 수 있다. (65)

아주 이렇게 되바라진 놈이다. 문장을 따라 가노라면 이 이름도 없는 녀석이 되바라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보이는데, 그것은 이언 매큐언이 어마무시하게 글을 잘 쓰기 때문이다. 그 유려한 글솜씨로는 도저히 되바라지지 않은 주인공을 탄생시킬 재간이 없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작가도 얼마나 고충이었을까. 팟캐스트로 현자가 되었다는 택도 없는 변명을 띡 던져놓고서는.


이야기하는 놈이 간단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야기 자체는 간단하다. 햄릿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데, 엄마가 택한 태교 방법이라는 게 삼촌과의 잦은 섹스, 아빠를 죽이려는 음모부터 실행까지의 전 과정이라는 점이 햄릿의 고민거리인 동시에 이 소설의 이야깃거리다. 이 엄마는 작가의 창작노트에서부터 이미 아빠를 죽이려는 의도를 지닌 채로 탄생되었기 때문에 독자들은 왜 엄마가 아빠를 죽이고 싶을만큼 미워하게 되었는지 직접적으로 알 길이 없는데, 아빠라는 작자의 말본새를 보면 어느 정도 추측은 가능하다. 


......실패와 슬픔의 연회장을 떠도는 옛 행복의 유령이지.그래서, 난 망각의 바람에 맞서 진실의 작은 촛불을 켜고 그 빛이 얼마나 멀리까지 닿는지 보고 싶어. ....... 우린 영웅과도 같았어. 그 누구도 현실에서든 시에서든 오른 적 없는 정상에 우리 둘만 서 있다고 믿었으니까. 우리의 사랑은 너무도 멋지고 장려해서 우리에겐 하나의 보편적 원리였지......

미루어 보건대, 아빠의 죄목이자 사인은 다름 아닌 중2병이다. 이 만성 중2병 말기 환자는 싫다는 아내를 붙잡고 시를 읊어주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고 있는데, 평상시 말을(건배사라서 좀 더 힘주긴 했을 것이다) 저 따위로 하는 걸 보면, 그 시라는 것은 또 얼마나 지독했을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시라는 것은 원래 공인된 자격을 가진 사람이, 반드시 사회에서 지정하는 특정한 장소에서만 읊어야만 하는 특수한 물건이다. 자격과 장소 요건을 갖추지 않은 시 낭송은 사람들에게 간접 흡연에 준하는 불쾌감을 안겨 주는 부도덕한 행동인 것이다. 내 여자친구는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내 고등학교 동창에게 한 손으로는 꼽을 수 없는 횟수의 소개팅을 주선해 주었는데, 동창놈은 그 모든 여성들과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었던 모양이다. 소개팅의 여운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다음 소개팅을 요구하는 동창놈을 보며 혀를 차던 여친은, 마침내 자기가 소개해 준 여성들 중 한 명에게 재고의 여지도 없이 동창놈을 깐 이유를 심문했다.


여친 : 얼굴이 마음에 안들었니? 

소개팅녀 : 아니 그건 아닌데..... 

여친 : 그럼 성격이 빻았니? 

소개팅녀 : 아뇨, 딱히..... 

여친 : 그럼 혹시 돈을 안 썼어? 

소개팅녀 : 펑펑 쓰시더라구요...... 

여친 : 그럼 도대체 이유가..... 

소개팅녀 : 저..... 

여친 : 부담없이 말해도 돼, 걔한테 말 안 할게.

소개팅녀 : 저..... 그 분이요.

여친 : 그래, 그 분이.

소개팅녀 : 시를..... 읊더라구요.

여친 : ..... 실을 어째?

소개팅녀 : 아니오, 실이 아니라, 시요.....


즉시 우리는 소집 되었고, 가열찬 추궁 끝에 동창놈은 모든 소개팅녀를 대상으로 낭독회를 가졌음을 자백했다. 여친은 동창놈에게 차라리 실을 뜨지 도대체 왜 시를 읊고 말았냐며 따지고 들었지만 동창놈은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가 한 행동은 일종의 테스트였다는 것을. 자격과 장소요건을 갖추지 못한 시 낭송을 참아낼 수 있는 천사가, 살인이나 가정폭력이 아니라면, 무엇인들 용서치 못하겠는가. 나의 짐작은 몇년 후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달 그 동창놈은 근 3년의 연애 기간을 거쳐 결혼에 골인했는데, 결혼 전 청첩장을 주러 나온 자리에서 여친이 신부될 사람에게 물었다. 혹시 저놈이 시를 지어 읊지 않더냐고. 예비신부는 수줍은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동창놈은 득의양양했다. 그러니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엄마는 아빠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고, 그것은 아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만약 이언 매큐언이 그 시를 작품에 실었다면, 독자들도 고통을 참지 못하고 이 위대한 작가를 살해할 음모를 꾸몄을 수 있다. 결국 독자에게 그 시를 들려주지 않았다는 데서 우리는 이언 매큐언의 고고한 인류애를 엿볼 수 있다. 그랬다면 물론 이사를 가고,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트윗을 탈퇴해야 했겠지만, 우리의 친절한 이안은 할려면 충분히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띨띨하고 욕정에 똘똘 뭉친 삼촌 또한 이야기에 즐거움을 더하는 캐릭터다. 시종일관 평범함과 멍청함의 경계선 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그의 청순한 뇌는 중요한 순간마다 빛을 발하고, 독자는 도대체 엄마가 어떻게 저런 모질이를 믿고 아빠를 죽일 계획을 세우는지 의아해진다. 이언 매큐언은 엄마가 삼촌과 동업을 선택한 근거로 언뜻 섹스를 제시하는 듯 보이지만, 현명한 독자인 내 눈을 속일 수는 없다. 원인은 시다. 시. 아빠는 시를 읊고 삼촌은 시를 읊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놈의 개똥같은 시만 아니면 누군들 좋겠는데, 섹스까지 맞으니 잘 된 것이다. 섹스는 거들 뿐.


이쯤되면 마치 내가 시 혐오자처럼 보일 수 있으니, 나야말로 한 달에 다섯 권이 넘는 시집을 읽고 착실하게 페이퍼를 작성하는 국내 몇 안 되는 독자 중 하나임을 밝혀 두겠다. 


어쨌든 이 모든 과정에서 되바라진 햄릿은 과연 햄릿다운 고민을 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러니까 태어나느냐 마느냐 하는 실존의 고민을. 결국 되바라진 햄릿은 트래디셔널 햄릿처럼 복수를 선택하는데, 태아가 엄마에게 할 수 있는 복수라는 게 뭐가 있을까. 태어나는 것이지. 엄마가 죄값을 치르게 될지 말지는 아직 모르지만, 남편 없이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스물 여덟 살 청상의 운명 앞에 놓인 장애물이라는 것이 뻔하지 않은가. 영국이니까 당연히 보낼 수 밖에 없는 영어유치원에, 수학 과학 과외는 이름 있는 선생 불러다 시켜야 되고......  


내 말은 요컨대, 은근히 웃을 곳 많은 책이니 우리, 웃으면서 읽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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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2017-08-11 2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속죄>도 궁금했는데 이 책도 궁금하고
그런데 읽는 건 몇 년 뒤에나 가능하겠으니
리뷰.. 쌩유. ;

(근데 영어 공부는 열심히 하십셔. ;
하십시오. 하셔야 합니다. 하십디다?;)

syo 2017-08-11 22:07   좋아요 1 | URL
안 돼요. 이거 읽구 책은 몇 년 후에 읽으신다면 몇 년 동안이나 이 책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갖고 살아가시는 일이 될지도 몰라요 ㅋㅋㅋㅋㅋㅋ

하십디다 재밌었어요. 그걸로 고를게요.

2017-08-12 0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7-08-12 06:44   좋아요 2 | URL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공인 자격과 공인 장소가 필요합니다 ㅎㅎㅎㅎㅎ

다락방 2017-08-16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리뷰 너무 재미있어요. 리뷰 좋아요. 박수!!

그런데 쇼님, 저는 이 책 사놨으니 읽을 준비가 되어있고 말입니다, 이언 매큐언 소설 중에 [칠드런 액트]를 추천합니다. 이거 읽어보세요. 저는 이거 읽고 진짜 이언 매큐언 너무나 우아하다!! 감탄에 감탄을 했습니다요. 쇼님은 이거 읽고, 저는 넛셀 읽고, 그리고 우리 다시 만납시다. 여기, 이곳에서 말입니다.
(어쩐지 시적인 표현이다..)


syo 2017-08-16 16:03   좋아요 0 | URL
《칠드런 액트》를 획득했음을 일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