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열림원 이삭줍기 2
뱅자맹 콩스탕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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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고전이 아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첫째는 슬프게도 현재 우리에게 고전은 '축약된 내용과 작품해설은 알고 있되, 읽어본 적은 없고, 읽어볼 생각도 없는 예전에 출간된 유명한 책'이라고 봐야할 텐데, 이 책은 내용을 아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유식한 표현으로 '인구에 회자'된 적이 없는 책이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이 책은 고전이 아니다. 덕분에 나는 무척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어렸을 때 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이 책 저 책 읽은 덕분에 줄거리만 대충 알고 읽어보려다가 책의 두께에 지레 겁먹고 안본 책들이 많다. 그런 책들이 진정한 고전이지...)

그리고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이 책에서 예견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단순한 연애이야기라고 보기는 아쉽다. 이 책이 혁명 이후의 혼란상을 은유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주인공 아돌프가 엘레노르를 만나게 된 D시는 '완벽한' 언론의 자유가 존재하지만, 사교계의 의중에 여론이 지배되는 곳이다. 마치 현대의 여론 형성과정을-매스미디어와 엘리트의 결합-보는 것 같지 않은가? 주인공 자신의 자유를 극도로 추구하면서도, 그와 상충하는 사회적인 시선들을 거부하지 못하는 모순된 모습을 느낀다. 자신의 정체성을 내부에서 찾지 못하고,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가름하려 하다. 이 비극적인 연애의 시작도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것이니 말 다했지. 아돌프는 이 분열된 마음 속에서 끈임없이 방황한다. 이 작품은 보통의 연애담과 달리 파탄에 이르는 과정을 상세하게,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묘사와 더불어 보여준다. 이는 이 작품이 말하고 싶은 것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게 한다. 자유를 추구하지만 막상 자유가 주어지면 누릴 수 없는 현대인의 불행한 자화상 말이다. 도시를 떠나고 싶다고 여행을 떠나면서도, 여행지의 가장 좋은 시설을 묵어야 편안함을 느끼는 상황이랄까? 이 작품이 쓰여졌을 때보다 외적인 자유도 신장되었고, 사회제도도 보다 정교해졌지만, 근원적으로 충돌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문제고,현대인의 마음 속에도 주인공 아돌프와 유사한 찢겨진 마음이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역사적인 배경으로 유추해보면,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계몽주의, 특히 몽테스키외나 로크 등의 사상과 흡사하다. 즉 완벽한 자유는 삼권 분립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민주주의 체제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불완전한 체제 내에서의 완벽한 자유보다는 완벽한 체제 내에서의 불완전한 자유가 더 낫다는 의견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환경보다는 성격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걸 자기함리화라고 해야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이 작품의 주된 모습 중에 하나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이다.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서투르고, 본심과는 다른 말을 내뱉으며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한 존재로 매개인이나 매개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 흥미롭다. 사회적인 시선과 주인공 아돌프의 무기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랑합니다.' 혹은 '헤어지죠'라고 하면 될 것을 돌리고 돌리다가 결국 파탄에 이르게 된다.  이것 역시 요즘 현대인의 중요한 특성 중에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타협주의자가 가지는 필연적인 한계도 암시한다. 중도, 혹은 제 3의 길이 가지는 문제는, 필연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으로 기울어질수 밖에 없고  더 나아가서 친X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김문수, 이재오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NL에 비해 타협적었던 PD들이 열우당도 아닌 한나라당에서 국가주의자로 변신하는 모습은 새는 역시 좌우의 날개로 날 수 밖에 없다는 리영희 선생의 명언을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 아돌프는 아버지의 사상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뒤로 갈수록 아버지로 대표되는 체제의 힘을 거부하지 못하고 점점 포섭되어 간다. 다만 무기력과 특유의 고집 때문에 사회에서 고립되는 길을 택했을 뿐이다. 확신범이었고 행동력이 있었던, 일제치하의 이광수 등의 점진적 개혁론자들의 변화된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솔직히 나도 요즘 이런 사상적인 방황을 하는 터라 예사롭지 않았다. -_-;

나는 연애는 밝은 모드라 이들의 연애는 연애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연애-소유의 욕망-에 대한 고찰도 음미해볼만 하다. 내용이 두서가 없는데 혁명 전후에 쓰여진 책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현대적인 인물상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팜플렛 수준이라 별 부담없이 읽었는데, 읽고 나서는 계속 곱씹게 되는 묘한 책이다. 내용도 알려지지 않고, 신뢰감을 주는 김석희 선생의 번역과 후기는 이 작품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추신) 이 책을 읽는 데 가장 큰 난점은, 주인공의 이름이 아닐까. 아돌프 하면 떠오르는 그분 때문에. 하긴 이 책도 엘레노르에 대한 '나의 투쟁'이라고 생각하면 비슷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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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반역인가 - 우리 번역 문화에 대한 체험적 보고서
박상익 지음 / 푸른역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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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에 겪었던 여러 풍경들이 떠올랐다.

1. 대학교에서 전공한 분야는 워낙 소수분과에 속하는 학문이라서 번역서가 많지 않았고, 그나마 시중에 도는 대부분의 번역서도 전공자라고 말하기에는 약간 애매한 분들이 번역가셨다. 하지만, 영어 읽기는 더 싫었던 나는 알음알음 소문을 듣고 번역서를 구해서 봤는데, 볼 때마다 씁쓸했다. 아마 대부분 경험했겠지만,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우리말로 된 번역서가 떠듬떠듬거리면서 사전을 찾으면서 읽어야 했던 원서보다 문장이 부자연스러웠다는 것이다. 원서를 읽으면 속도는 느렸지만, 이해는 갔는데, 번역서는 속도도 드린데다가 이해도 안되었다. 물론 억지로 읽으면 빨리야 읽었지만, 덮고나는 순간 개념 정리는 고사하고 기존 개념마저 헝클어지고야 말았다.(물론 내가 내 전공에 들인 시간이 부족한 탓이 제일 클 것이다만...) 원래는 번역서를 중심으로 원서를 보려했으나,  그냥 원서를 읽고 이해되지 않는 특정 개념들만 참고하려고 했다. 특정 단어에 대한 번역이 내가 수업시간에 들은 용어와, 책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다르게 표기되었기 때문이었다. 비유하자면, milk를 수업시간에는 '우유' 번역서에는 '소젗'이라고 번역했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짠밥이 있어서 후자를 썼다간 선생님께 제가 쉬운 길로 갔어요라고 고해성사 하는 행위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다 포기하고 원서만 읽고, 시험을 봤다. 그런데 모든 답의 중요 개념어를 영어로 적어냈다. 흔히 말하는 -은,-는,-이,-가와 서술어만 우리나라 말로 표기한 괴상망측한 답이 된 것이다. 어차피 기본 이해가 부족했으니 어찌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일부문제는 철자가 틀려서 문제의 답은 알고 있었으나 맞추지는 못한 상황이 되었다.

2. 내가 주로 읽는 추리소설은 교열, 디자인 등에서 장족의 발전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번역에 큰 불만은 없다. 라고 말하고 싶긴 한데, 사실 그렇지 못하다. 기준을 어디다 두느냐의 문제다. 8~90년대 주로 나왔던 그야말로 펄프 그 자체라 불리는 작품들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지만, 이건 비교 자체가 부끄러운 수준이고. 전설 속에 오르내리는 문고판들. 특히 동서, 자유나 고려원 등과 비교해 본다면, 그닥 나아졌는지 의문이 든다,. 대표적인 경우가 의욕적으로 매달 두세권씩 출간하는 H출판사이다. 의욕을 생각하면 욕하면 안되지만,-사실 이 온정주의가 문제다. 미스테리 독자들은 잘 안팔리는 책 내주는 것 자체로 고마워 해야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강하다.- 독자가 교열을 봐준다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들리고 있다. 나도 꽤 가지고 있는데, 한 번도 만족스러웠던 적이 없다. 로마자 표기법을 준수하는 것은 고사하고, 같은 작품에 동일인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 정도는 놀랄 일도 아니다. 난 일본어를 모르기 때문에 오역여부는 확인할 수는 없다. 다만, 원서를 보신 분들에 따르면, 고유명사의 표기부터 틀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하긴 '목차철도 999', '오탈자 X개의 헌신', '난독범'-이 책들의 오타는 최근쇄에서 다 수정되었다고 한다.-등 이쪽 장르에서 명성을 자랑하는 책이 어디 한두권일까. 친절하게 주석을 달아준 것 까지는 좋았는데, 해당 작품의-해당 장르의 시조격인 사람의 작품인데도!-한국어 제목을 아는지 모르는지 원제를 그대로 번역해놓는 뻑도 종종 보았다.(그 출판사는 XX전문출판사라고 자의반 타의반 불린다.) 보면서 그냥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3. 정지영 아나운서의 마시멜로 파문이 터졌을 때, 어떤 번역가분이 이를 비판하는 기고를 했다. 어떻게 보면 동업자 정신을 깬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뒤에 기고자에 대해 들은 소문은 아름답지 못했다. 또 어떤 분께 ㄱ씨에 대한 별로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책에서도 나온 걸 보고 역시 하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이런 저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나도 나름의 블랙리스트를 가지고 있는데, 이분들이 번역하셨다고 하면 사는 걸 망설이게 된다. 차라리 번역에 대한 관점의 차이라면 이해하겠다. 예를 들어 김용옥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버터를 된장으로 번역할 것이냐, 버터를 그대로 버터로 번역하고 주석을 달 것이냐 등의 문제는 관점의 차이라고 봐야지 싶다. 또 의역/윤문을 활용할 것이냐, 가급적 직역을 할 것이냐의 문제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하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또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 같지도 않다. 번역자들에 대한 불신감 때문인지, 차라리 일어 중역이 완역보다 낫다라는 극단적인 이야기까지 종종 들린다.

4. 도올 김용옥 하면, 기행 등이 먼저 알려지는 바람에 나도 싸구려 엔터테인먼트 철학자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데 어느날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선배님 댁의 하숙집에 놀러갔다가 그 선배님께서 김용옥을 한 때 상당히 좋아하셨다는 것을 알고 호기심에 몇 권 빌려다 읽었다. 그리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분명 엄청난 장광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담겨 있는 학문적인 연구과정은 보수적인 접근을 선호하는 철학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개인적으로 김용옥 선생의 책은 주된 내용의 앞뒤로 들어가는 본인의 신변에 대한 장광설이 30%정도 들어가는데, 이 것이 특유의 매력이고 주위 사람을 가감없이 실명비판한다는 점이 장점이긴 하지만,  이 장광설을 빼고 홀쭉하게 냈다면 훨씬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으리라고 본다,) 특히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등에서 이야기하는 학문 연구의 자세나 태도는 지극히 당연한 문제제기라서, 나의 생각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물론 음모론자처럼 변죽만 울리고 핵심은 늘 다음 편을 기대하세요하는 태도와-그러나 그 변죽의 양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아야 한다.-타고난 대중과의 소통능력으로 인한 학문적 집중도가 떨어지는 듯 하여 아쉬울 따름이다. 그러나 외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이러한 문제제기조차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학계의 불성실이 더 아쉽다.   

5.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다른 형태의 접근법을 알고 싶어서 책을 찾았다가 놀란 적이 있다. 시오노 나나미가 자주 언급하는 몸젠의 책은 우리나라에 없었다는 것이 놀라웠고, <로마제국 쇠망사>는 나름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책을 읽어서 꽤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이해하기 어려웠다. 최근에 새로 나온 축약본을 봤는데, 이 책에서 지적한 대로였다. 그래서 다 읽지도 못하고 끝내야만 했다. 시오노 나나미의 제국주의가 필터링이 안된채로 일반인들에게 급속도로 퍼진다고 생각한다면, 몸젠이나 기번의 책을 잘 번역해서 대중들에게 선 보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늘 가지고 있다.

몇 가지 이야기를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썼지만, 아마도 책을 많이 읽는 분들이라면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고 본다. 이 책이 주는 공감대는 상당히 컸다. 비록 일부 부분에서는 지나친 격정도 느껴지고, 약간 논의가 두서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문제의식과 문제제기 모두 훌륭했다. 밀턴만 아니면 이분이 번역하신 책을 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른 서적도 내가 그닥 읽을 자신이 없다는게 문제긴 하지만...

번역의 문제를 독자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오역은 문제다. 그러나 원서능력자가 아닌 이상,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독자는 없다.(이 믿음이 깨어지면 원서를 읽어야 한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는 일본어를 배울 생각이다.) 그래서 실재로 대부분의 독자들이 문제삼는 부분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교열의 문제인데, 이는 반드시 번역자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건 교열을 충실히 보지 못한 출판사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본다. 그 다음은 번역의 관점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오는 문제다. 예를 들어 내가 위에서 언급한 출판사에서 주로 번역하시는 분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번역자이다. 지나치게 직역투인데다가, 직역이 많다보니 대부분의 단어들이 해당어의 원어를 그대로 옮겨 쓰고 있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고민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걸 이유로 이 번역자가 번역을 못한다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 번역가의 일관된 성향이기 때문이다.(이 번역가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엄청 많이 봤다.) 물론 다른 출판사의 B시리즈 처럼 윤문이 많이 가해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번역계의 3대천황이라고 할 수 있는 안정효, 이윤기, 김석희 선생들만 해도 번역에 대한 관점은 상당히 다른 것 같다. 안정효 선생은 직역과 소극적 의미의 번역가를 선호하시는 반면에, 이윤기 선생은 의역과 적극적인 개입을 선호하시는 것 같은 느낌인데, 이는 번역의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김석희 선생은 중간인 것 같고...문체가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과연 그 논의과 일관된 결론에 이를 수 있을 지는 회의적이다. 마지막으로는 학술서적인 경우 정확한 용어 사용이라던게, 그쪽에서만 쓰이는 의미를 잘 알고 살리느냐의 문제인데, 글쎄, 해당분야의 전문번역가와 감수집단이 있다면야 얼마나 좋겠느냐만, 아직 만능 번역가가 전 분야를 커버해야하는 실정을 생각하면 어렵지 싶다. 그리고 소설 같은 경우에, 다양한 분야들이 등장하는데 상업적인 이유때문이라도 어디 다 감수를 받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설사 그 쪽 분야의 전문가를 쓴다 하더라도, 번역 실력이 문제가 될 테니까. 물론 후자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내용은 더 정확해지겠지만, 일반인이 읽기는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전자를 선택하면, 일부 실수는 있겠지만, 읽을 수는 있다. 이 차이 때문에 전자를 선호하는 것 같다.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번역가는 참 위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당 언어도 잘 알아야 하고, 우리나라 말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야 하고-내가 불만을 갖는 지점이다. 한국어 문장능력이 떨어지는 번역가가 많은 것 같다.-등장하는 모든 부분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하고.

꼭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저자는  번역서도 업적으로 인정하자라는 주장을 펼치는데, 주장의 선의는 이해하지만, 솔직히 악화가 앙화를 구축하는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든다. 대부분의 번역, 특히 학술서적에 있어서 원청의 주체는 대학교수인데, 이들은 또한 논문을 심사하는 위치이기도 하다. 번역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번역을 업적으로 인정할 권리까지 준다면 과연? 아마 대부분의 논문이 번역으로 이루어짐과 동시에-번역 전문회사에 일거리가 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교 리포트도 번역숙제가 나오면 맡지는 것이 일반화되어있는데, 논문이야 말할 것도 없지. 현 상황이 이런 부작용을 감수해야만 하는 나쁜 상황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혜택을 볼 사람이 극소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냉소적인 불안함이 들기도 한다. 물론 하청실명제는 이루어지겠지만 말이다. 논문을 번역한 사람과 직거래를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효과는 있겠다 싶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이런 저런 이야기를 길게 썼는데, 읽히는 재미에 비해 문제제기의 흔적은 치열하고 또한 진지하다. 책을 읽다가 호되게 당하신 분들이라면 쉽게 공감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히 일독을 권한다. 

추신) 절대 번역가는 되지 말아야겠다. 난 저렇게 노력할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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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7-03-28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이네요..^^ 잘 읽었어요~
저도 추리소설 좋아하는데, 읽을 때마다 확인하고 싶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님이 말씀하시는 H 출판사는 저도 대략 짐작이 가죠. 거의 읽지 않게 되더라구요.
추리소설 매니아처럼 특정 쟝르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사람들의 집단이 있다면 그나마 지적이라도 하지만, 그것도 아닌 책에 대해서는 그런 소리마저 별로 없이 그냥 수용하는 자세여야 한다는 게 아쉽죠. 저도 추리소설 읽으려고(별난 이유이긴 합니다만..;;;)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이 언어도 뉘앙스라는 게 참 어렵네요..암튼 번역이라는 문제는 계속해서 생각해야 할 문제인 듯 싶어요.

jedai2000 2007-03-28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봤습니다. 이니셜 찾는 재미도 쏠쏠하네요 ㅋㅋ
번역을 다듬으며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공감가는 리뷰네요 ^^

상복의랑데뷰 2007-03-28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 / H사는 요즘은 그래도 나아졌다는 말이 있긴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죠. ^^;; 저도 모 일본에 관심없는데 단지 추리소설 때문에 배우려고 하는건데요. 모 전혀 별날게 없습니다. 사실 더 많이 배우면 뉘양스까지 알겠지만, 그정도까지는 바라지 않고, 전혀 출간될 가능성이 없는 책들이라도 가끔 맛보고 싶네요.

jedai2000 / 제다이님같은 실력과 열정을 겸비한 분들이 더 많이 나오셔야 할텐데...아마 이니셜이야 다 아시겠지요 ^^

Kel / 부끄럽습니다. ^^
 
로마인 이야기 15 - 로마 세계의 종언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5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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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대학교 신입생 때 리포트를 쓰기 위하셔 1~3권을 사서 읽은 것이 인연이 된 시오노 나나미, 어린시절 역사학도가 꿈이었던 내게 시오노 나나미 여사님이 보여주는 세계는 그야말로 신천지를 넘어 별천지였다. <로마인 이야기>를 시작으로 수많은 저작들을 읽었고, 지금도 읽고 있다.이 분의 영향력은 '좌준만 우나나미'라고 할정도로 강렬한 충격이었다. 적어도 내 좌우명 중에 하나인 '대부분의 잘못된 결과는 선의에서 비롯된다.'와 '공과 사의 일치'라는 개념도 이 책에서 배웠으니까.

탁월한 글솜씨와 몇십년에 걸친 진지한 탐구자세,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당대 로마인의 입장과 시각에서-이것이 일본 제국주의자의 시선과 동일한 스펙트럼에서 겹치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현대 한국인은 제국주의적인 시각이 없는가?라는 궁금증이 있다. 충분히 차고 넘친다고 느껴지기에, 일본에게만 분개하는 것도 어찌보면 아이러니라는 생각도 든다.-로마인의 이야기를 들려준 여사님의 신공에 빠진지도 10년이 지났다. 이제 로마인 이야기는 끝이 났다. 로마 세계의 종언과 더불어 로마'인' 이야기도 종언되어 버렸다.

아쉽지만, 책을 놓기가 쉽지 않다. 다시 1권으로 돌아가서 읽게 된다. 극단적으로 폄하하시는 분들 중에는 '로마 빠순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용비어천가' 같이 보시는 분들도 있는데,  나도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지나친 미화의 자세, 그리고 후반부에 부쩍 등장하는 기독교에 대한 지나친 거부감은 이 책과 저자의 열렬한 팬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수긍하게 된다. (솔직히 비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속이 시원하긴 했다만.)  아무래도 이 시리즈는 나이가 들어서도 반복적으로 읽게 되서 그런지 처음 읽었을 때만큼의 광채는 사라졌다. 여기저기 어두운 부분도 보이고, 추한 모습도 상당히 많다.  

다만,  '소설'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적어도 여사님은 자신의 관점에서 자료를 분석하는 역사적 행위를 했고, 다만 그것을 쉽고 재미있게 풀었을 뿐이다. 뒤의 상당량을 차지하는 참고문헌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웬만한 학술서는 다 소설일 것이다.  어차피 이 논의는 전문적인 영역이니 여기까지만...

여사님을 싫어하시는 분들에게는 재앙이겠지만, 나는 이 책을 출간순서대로 출간할 때 마다 읽을 수 있었던 것이 대단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어떤 책이 이런 기쁨을 줄 수 있을지, 기대도 되고 아쉬움도 남는다.

 비가 오고 서운한 마음에 몇 자 적었다.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천년의 도시 베네치아>, <로마인 이야기>, <나의 친구 마키아 벨리>, 그리고 나의 스승 시오노 나나미. 이에 버금가는 작품을 쓸 수는 없으시겠지만, 앞으로도 꾸준하게 작품으로 만나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추신) 이 작품만 보자면 별 다섯개를 줄 수가 없다. 아무리 뛰어난 신공으로 글을 쓴다고 해도, 내용 자체가 재미없는 것을 어쩌겠는가. 게다가 제정 후반기에 들어서면 사료부족으로 인한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멸망을 향해가는 잘못된 위정자들의 모습을 몇 권에 걸쳐 보는 것도 흥미롭지는 않았다. 카이사르의 일대기를 담은 4권부터 오현제까지의 시기를 다룬 9권까지가 아무래도 제일 흥미진진하다. 그 중에서도 카이사르의 일대기를 다룬 4,5권과 복권된 천재 티베리우스와 히드리아누스가 나오는 7,9권 일부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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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의 손바닥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윤덕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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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본격 1세대. <살육에 이르는 병>으로 충격을 주었다는 아비코 다케마루의 최근작. 일본의 신본격 작가군은 정상에서 미끄러진 작가들이라는 편견이 강하다. 내가 일본어 원서를 다 찾아 읽은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사실 최근에야 소개된 몇 작품을 읽은 게 전부지만,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간접적으로 최근작이 나쁘다는 이야기만 줄창 들었기 때문이다.

편견을 머리에 얹고 봐서 그런지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이 작품의 트릭은 워낙 전설적인 작품의 트릭과 비슷한 구조라서 얼추 눈치를 챘다. 그리고 글솜씨도 무난무난했기 때문에 별 아쉬움 없이 읽었다. 수준작이라고 까지 말하긴 그래도 범작은 된다. 정확한 것은 <살육에 이르는 병>을 읽어야야겠지만, 관 시리즈나 <점성술 살인사건>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멀어보인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이 작품에서 보이는 작가의 태도였다. <살육에 이르는 병> 관련 리뷰를 보면, 작가의 도전적인 자세를 칭찬하는 분들이 많다. 엘러리 퀸의 '독자와의 도전'과 같은 자신만만한 태도 말이다. 물론 근 10년이 지난 세월이 지나서 처음처럼 열혈청년도 아니겠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작가가 피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비슷한 부류라 할 수 있는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는 양이나 작가의 서술, 구조 등등에서 아직까지 '자신만만함'이 엿보이지만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맞짱을 뜬다기 보다는, 숨어다니면서 속이려는 태도로 일관한다는 느낌이다. 반드시 그때문은 아니겠지만, 길이가 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앙상하게 보인다. 이 정도의 이야기라면 단편으로 쓰는 것이 좋았다고 본다.

읽으면서 흥미진진했던 부분은 결말이 풀리는 부분이 아니라, 그 앞에서 기시 유스케의 <유리 망치>처럼 현대기술을 이용해서 업그레이드한 트릭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는데, <유리 망치> 를 읽고 느꼈던 짜릿함을 느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사람이 활용하면, 충분히 멋진 트릭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부분. 그러나 아쉽게도 그 부분은 메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짧았다.

좋다, 나쁘다라고 말하기 애매한 지대에 위치한 작품인 것 같다.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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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러브 레터 - 제인 오스틴 미스터리 1
로라 레빈 지음, 박영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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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지 않은 리뷰라고 생각되네요. 혹시 편견없이 이 책을 읽으실 분은 안 읽으시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문출판사는 여성독자를 타겟으로 한 추리소설을 내기로 방향을 굳힌 것 같다. 모스 시리즈의 출간이 계속 늦어지고, 대신 한나 시리즈, 그리고 새로 출간된 제인 오스틴 미스터리까지...모스 시리즈의 출간이 늦어지고 나름 엉뚱했던 한나 시리즈가 나오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한나 시리즈의 작품성은 일정 수준이었기 때문에 별 불만없이 읽었다. 여성주인공이 등장하는 코지 미스테리에 대한 기대치가 낮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았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나름의 재미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번에 새로나온 <죽음의 러브레터>는 어떨까. 음..그렇게 나쁜 평은 듣지 않은 작품으로 알고 있었는데, 읽어보니,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제인 오스틴, 36세의 이혼경력이 있는 대필작가. 헐리우드로 간 삼순이라고 해야할까. 설정까지는 그럭저럭 넘어가줄만 했는데, 내용이 재미가 없었다. 주인공과 나 사이의 정서적인 벽이 워낙 커서 몰입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것 같다. 마초 캐릭터를 혐오하는 여자가 하드보일드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 이런건가 싶기도 했다. (반성의 계기를 마련해주었으니 고마운 책일지도.) 책을 읽으면서 내내 한나의 순진한 호들갑이 그리워질 정도였다. 유머라고 보기에는 버겁고, 냉소라고 보기에는 호들갑이 지나치다고 해야할까? 작가가 의도한 어조에 일관성이 있지만, 그 어조를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미스테리가 가지는 여러가지 요소들은 고루 갖추고 있다. 그러나 임펙트가 부족하다. 예를 들어, 대필작가라는 컨셉을 잡은 것이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긴 하지만, 왜 사건에 관여하게 되는지 잘 모르겠다. <누군가>의 스기무라 사부로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적어도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세밀한 심리묘사와 영리한 설정 덕분에 '누군가'가 봐도 자연스럽게 사건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또, 여성이 주인공이다 보니 로맨스도 등장하는데, 그것도 역시 심심한 축에 속한다. 갖출 건 다 갖추었는데,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해야하나. 첫 작품만으로 쉽게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이 작품만 놓고 보면, 평균이상이라고 말하긴 힘들 것 같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해문도 찔끔 내고 마는 경향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번역자가 같다는 것이 심증을 더해준다.) 출간작인 모스나 한나 시리즈가 더 나올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비공식적으로 모스는 출간되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들었고, 뒤로 갈수록 괜찮아지는 한나 시리즈도 이번 작품이 마지막 출간작으로 보인다. 내가 코지를 좋아하지 않아도 이 작품만은 자석에 이끌리듯 읽게 되는데, 못내 아쉽다. 모스야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이 시리즈는 두고 봐야겠지만, 한나만큼의 재미나  실용성은 없어보인다. 추리독자층이 협소하고, 특히 그 중에서도 판매량이 적었음에 분명한 책들을 내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겠지만, '해문'이라는 이름 두 자 때문에 기대치가 높은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의 <사라진 시간>도 9월에 출간될 예정이라는 말을 들은게 2년 전인가, 3년 전인가...<니콜라스 퀸의 침묵의 세계>를 보고 싶다. 그게 어렵다면 한나의 차기작이라도... 

추신) 사실 별 두 개를 주고 싶었지만, 내 편견도 한 몫 했으리라 생각해서 세 개로 마무리. 리뷰도 하나도 없고, 첫작품에 너무 박하게 군게 아닌가 싶은 '눈치보기'도 있었다. 호평은 좋게 읽은 다른 분들이 써주실 테니까라고 생각해서인지 나쁜 말만 남겨버렸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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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3-08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나 시리즈를 더 밀었으면 좋았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복의랑데뷰 2007-03-09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간이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이 시리즈는 첫 작품만 봐서는 기대하기 쉽지 않겠는데요.

상복의랑데뷰 2007-03-09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Kel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oldhand형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 그닥 권하고 싶은 작품은 아닌 것 같습니다.

비로그인 2007-06-02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물만두님이 Kel님이세요???

2007-06-02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상복의랑데뷰 2007-06-02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초롬 너구리 / 아뇨. Kel님은 다른 분이십니다.
비공개 /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