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묻지 않아도 알아주고 누군가는 설명하고 표현하려고 해도 갸우뚱해하는 그런 일들은 항상 일어난다. 내가 겪는 일과 저 사람이 겪어본 일들은 범주가 다르고 수용의 깊이가 다르니까, 엄격히 말해서 세상에 내가 느끼는 감정의 파고를 백 퍼센트 온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압도적인 감정에 휩싸이게 될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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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얄팍함쯤 되려나 

10주년 개정증보판이란다. 10년이면 듬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앉았던 강산도 변하는 세월이라는데 디지털 환경은 10년이면 천지개벽쯤 되나. 모르겠네. 진단은 너도나도 하고 계셔서 처방전을 좀 보고 싶은데, 설령 그게 되도않는 헛소리에 가깝더라도 '대안'을 논하는 책들이 더 많이 나와주길 기대한다. 



사람들을 만나고 나와 그 사이에 시간과 대화를 쌓아갈수록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때보다, 빗대어 전할 때 효과를 보는 경우를 많이 겪었다. 호소력있는 비유는 어떤 것일까, 귀에서 흩어지지 않고 마음으로 파고드는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표지와 소개글만 봐도 호감이 가는 책들이 있는데, 이 책도 바로 그렇다. 



위즈너의 그림책은 항상 재기발랄하다. 그의 책을 읽는 아이들의 시선은 항상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오른쪽으로 향한다. 멀리 공상의 여행을 보냈다가 늘 집으로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라고나 할까. 



책 소개글을 읽다가, 문득 김중혁 작가의 「내일은 초인간」이 떠올랐다. 지구를 구하고 악당을 쳐부수는 능력이 아니라, 남들이 들으면 그래서 그게 뭐? 그걸로 뭐 해? 라고 물을 법한 시시한 초능력의 소유자들. 여기에도 정말 이걸 갖고 뭘 하게 되는 걸까, 싶은 소소한 능력을 가진 50대 아줌마가 나온다고. 그러고보니 우린 모두 대단하게 써먹을 정도는 아니어도 남들이 보면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하는 쬐그맣고 시시한 능력 하나쯤은 있지 않나?



동네에서 나름 유별난 엄마로 소문이 난 것 같다.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없어도 이렇게 없는 엄마가 있나 하고. 오죽하면 중2님이 자긴 그냥 공부만 하면 나머지는 엄마가 다 알아봐주고 세팅해주는 애들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고, 한 번은 대성통곡을 했더랬다. 자기는 진짜 잘 하고 싶은데 뭔 엄마가 이러냐고. 아닌데... 엄마도 교육에 관심이 많아요. 그저 모든 조건을 갖춰주지 않을 뿐이지. 내가 원하는 조건이 다 주어지는 경우는 0에 가깝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시스테믹한 환경을 조성하는 건 네가 스스로 배양할 능력이지 부모가 만들어다 바치는 게 아니라고 일장연설을 늘어놨더니 아무도 안 할 것 같은 걸 왜 내가 먼저 해야되는데! 라고 절규한다. 따샤... 원래 선구자는 외롭고 괴로운 법이야. 다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건 책을 물어다 주는 것뿐. 잘 배우려면 질문을 잘해야 한다. 

믿는 출판사이고, 괜찮은 목차가 보인다. 



처음에 이 아이디어를 키웠던 사람이 누군지는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있었다. 책을 처방한다는 아이디어를 소중히 키워 싹을 틔웠던 사람. 이게 꽃이 피니 향이 꽤 좋았고 사람들이 좋아하니 너도나도 가져다 키우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획물도 나왔다. 나는 이런 책을 좋아한다. 좋아하지만, 누구나 쓰고 있다고 해서 나도 써야지- 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도 몰랐을 때에 이 가냘픈 아이디어를 처음 보살펴 키워 퍼뜨린 누군가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



전에도 쓴 적이 있다. 도감을 좋아한다고. 이 집에서 도감을 좋아하는 건 나 하나뿐이 아니어서 온 집안 구석구석에 온갖 종류의 도감이 있는데, 이 책을 보자마자 혼자 중얼거렸다. 당신이 승자입니다. ㅎㅎㅎ 폐허도감이라니 상상도 못 했다! 



책 제목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반려도서 레시피라.... 담당 편집자님의 센스일 것 같은데 박수 보내드립니다. 진짜 눈길이 확 갔어요. 되게 친숙한데 살짝 낯설어... 내용도 궁금하고. 



창문은 여러가지로 의미심장한 뜻을 담고 있다. 창문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상상하고 무엇을 그리워하고 무엇을 이야기할까. 



어제 츠지무라 미즈키의 「거울 속 외딴 성」을 다 읽었는데, 꿰어맞춘 솔기가 보이지 않는 장인의 솜씨라고는 말 못 하겠지만 아무튼 좀 감동받았는데 마침 신간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집에 읽겠다고 사다 쌓아놓은 책이 다시 산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못 본 척 하기로 한다. 



김민식 PD님만큼은 아니지만 장강명 작가를 좋아하기 때문에, 장작가님이 요조님과 더불어 동명의 팟캐스트를 진행하실 때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 어쩐지 예전에 애청하던 팟캐스트의 전철을 밟는 느낌으로... 유튜브에 양다리를 걸면서 프로그램은 그만 내 흥미를 잃게 해버렸다. 팟캐스트는 그냥 끝까지 팟캐스트로, 유튜브는 끝까지 유튜브로 남아줬으면 좋겠는 바람이 있다. 왜 자꾸 내 것이 아닌 영역을 넘보면서 원래 갖고 있던 매력까지 갖다 버리시는 거예요 도대체들... 



내게도 두어 개의 책모임이 있었다. 과거형인 이유. 하나는 내가 그 장소를 떠나오면서 온라인 모임으로 바뀌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코로나때문에 떠나있는 동안 흐지부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 모임들이 되게 많이 그립다. 혼자 읽을 때보다, 누군가와 같이 읽을 때가 더 좋았고, 함께 이야기할 때는 더 좋았다. 



학교 다니면서 내가 제일 싫어했던 과목은, 수학일 것 같지만 의외로 역사가 더 싫었다. 수학은 그 안에 나름의 미학이라도 있지 역사는 뭐냐 이게... 왜 인간사의 가장 추잡스럽고 혐오스럽고 기타등등한 실패들을 배워야 할까, 그 어린 나이에 그렇게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렇게는 생각 안 하지만, 그래도 역사가 좋지는 아니하다. 그러나... 그러나 이 집에서 가장 말이 많고 맨날 매시간 대화를 요구하는 2인이 역사광인데다 번번이 뭘 모른다고 무시당하는 것도 분해서 -_-;;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 나이가 뭔 상관이야, 공부해야지. 

갑자기 6학년 둘째가 어젠가, 당당하게 외쳤던 한 마디가 생각난다. 

엄마, 난 정말 공부에 취미 없어. 공부하라고 좀 하지 마. 


옆에서 듣던 중딩이 언니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야, 세상에 우리 엄마처럼 대책없이 공부타령 안 하는 엄마도 없어. 그런 엄마가 공부 좀 하라고 할 정도면, 니가 진짜 심각하게 아무것도 안 하는 거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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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
루스 호건 지음, 김지원 옮김 / 레드박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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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책을 읽은 건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둘째가 완전히 제대로 꽂힌 시리즈가 있는데, 이 책은 알라딘에서 취급을 안 해서 (시리즈 중에 몇 권은 있기도 하더라만 너무 비싸...) 다른 곳에서 주문하곤 합니다.. 타이틀 The Keeper of Lost (Cities)를 입력하려고 하는데 lost까지 입력하고 나니 자동검색으로 뜨는 목록 중에 이 책 The Keeper of Lost Things 이 있더란 말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리뷰가 좋았... 표지도 예뻤어요(표지에 잘 낚이는 1인). 물론 원서와 번역서 표지는 좀 다르긴 하지만 번역서 표지도 예쁘긴 하고요. 잃어버린 뭔가를 지키는 사람들은 왜 이다지도 많은가... 새로 등장한 출판계의 클랜인가 (이쯤 해둬야겠). 같은 쓸데없는 생각은 접어두고요. 


제목을 입력하고 잠시 기다려보니 역시나 번역서가 있습니다. 가끔 읽고 싶지만 원서를 읽기가 귀찮아서 (읽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걸 어쩌겠어요) 있을까 궁금한 손가락을 두드려보면 놀랍게도 상당히 많은 책들이 번역돼 있는 걸 발견하게 돼요. 안타깝게도 얼마 못 가 절판이 되고요. 그 많은 책들은 어디에 묻히게 될까... 잊혀진 책들의 지킴이는 없을까... 아, 상상이 망상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단계가 코 앞이라 그만둬야겠습니다. 


아무튼- 


주인공일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초반에 황망(하지는 않고 뭐 정황상 예상은 됩니다만)하게 책 속 세상을 떠나버리고 조연인 줄 알았던 실제 주인공이 쭈뼛거리면서 중앙으로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소설가인 앤서니 퍼듀는 약혼자가 일찌감치 세상을 뜬 뒤 혼자만의 삶을 이어갑니다. 그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취미랄지 기행이랄지... 를 갖고 있어요. 누군가가 잃어버린 물건들을 주워 보관하죠. 물건을 발견한 장소와 날짜, 시간을 메모한 노트를 덧붙여서 거대한 분실물들의 박물관과 같은 곳을 만든 셈입니다. 앤서니에게는 이 곳이 성소와도 같습니다. 그에게는 이 기행이 각별할 수 밖에 없는 가슴 아픈 이유가 있습니다. 

죽음을 예감한 앤서니는 그의 작업과 생활 전반을 보조하던 비서 로라에게 그의 전재산을 상속합니다. 그의 손에 들어온 분실물들을 주인에게 찾아달라는 무거운 부탁과 함께. 누군가에게는 그 물건을 되찾는 것이 오랫동안 망가져 있던 심장을 되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녀는 생명력으로 가득했는데 그걸 빼앗겼지. 나에겐 삶이 아직 남아 있었는데 죽은 삶을 택했고. 그녀는 아마 격분했을 거야. 그리고 마음 아파했을 거라고 로버트는 말했지. 나는 걷기 시작하고, 다시 세상을 건드리기 시작했어. 그러던 어느 날 장갑을 한 짝 발견했지. 여성용이고, 파란색 가죽에 오른손용이었어. 난 그걸 집에 가져와서 꼬리표를 달았지. 그게 뭐고, 어디서 발견했는지 써서 말이야. 그렇게 내 분실물 수집이 시작되었어. 어쩌면 내가 발견한 모든 분실물들을 구출하면, 누군가가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아끼는 것을 구출해 줄 거라고, 그래서 언젠가는 그걸 돌려받고 깨진 약속을 바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지도 몰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네. 다른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들을 모으는 걸 멈추지 않았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그 조그만 삶의 조각들이 나에게 이야기의 영감을 줘서 다시 글을 쓰게 만들었지.


대부분의 물건들은 별 가치가 없고 돌려받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을 거라는 걸 알아. 하지만 자네가 단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들이 잃어버린 걸 되찾아줘서 단 하나의 부서진 심장이라도 고쳐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거야. -108쪽


로라와 함께 이야기의 다른 축을 지탱하는 다른 주인공의 인생사에서도 사람을 사람과 엮는 많은 관계의 모습들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인지하는 범위 바깥에도 다른 형태의 삶의 동반자의 모습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논픽션과 달리 소설은 살아가는 모습의 다양성과 내가 미처 몰랐지만 분명히 누군가는 갖고 있는 감정의 수많은 결들을 더듬어보게 합니다. 감정은 손길이 닿았던 물건과 환경에 녹아 스며들어 소유주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좋은 사물, 느낌이 좋은 공간이라는 말이 그냥 지어낸 말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겠고.


어떤 이야기건, 이야기의 종류에 상관없이. 그것이 꼭 뭐라고 이름붙여 분석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예요. 세상에 이런 것을 느끼고 이렇고 저런 마음들에 기쁨이나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모르고는 분명히 다를 테니까요. 세상이, 시스템이 너무나 똑똑해지고 있으니 인간은 굳이 똑같이 기계처럼 똑똑해지려고 하지 말고 그냥 인간다움을 더 연마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차별화가 별 건가요, 뭐... 


여기까지 쓰고 지금까지 살면서 잃어버린 수많은 물건들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봤는데 십수년 전에 남편 처음 만났던 날 두르고 나갔던 블랙워치 패턴의 캐시미어 머플러가 되게 기억나네요. 무려 에딘버러에서 사 온 건데, 아저씨, 남의 편, 아니면 그대 원하는대로 so called 오라버니, 내 머플러 도로 사 줘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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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451 환상문학전집 12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박상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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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두 부류로 나눠보자. 책이 필요한 사람과 책이 무용지물인 사람. 책을 사랑하는 사람과 혐오하는 사람. 생각을 조각도 삼아 자기를 다듬어 나가는 사람과 생각하는 회로마저 마취하고 싶어하는 사람. 책을 벗 삼는 사람과 책에 의존하는 사람. 기억하고 싶어하는 사람과 잊고 싶어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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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아틀라스 1
데이비드 미첼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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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사고방식과 생각을 뒤집어 엎게 만드는 소설들- 이라는 타이틀 아래 추천되어 있던 책. 한숨이 나오는 장대한 흐름. 아둥바둥 사는 게 다 뭘까 싶어지는... 내가 감각하는 길이의 삶 안에서라도,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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