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 제르맹 소설 읽어보고 싶다 생각한 게 이 책이 처음이 아닌데 어째 여태껏 한 권도 못 읽었음을 새삼 깨우침... 이 작가의 무엇이 그렇게 끌어당겼을까 천천히 살펴보다 보니 제목의 두 단어들이 맺는 관계 사이의 간격에서 내가 만들었던 공상들이 그런 기대를 부풀렸던 게 아닐까 싶다. 기대된다!



학교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던 사람들이 학교가 계속 이래도 괜찮을까... 라는 문제의식을 조금이라도 가졌다면, 난 그건 유현준 교수의 덕분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가 열심히 학교 공간에 대해 발언했던 덕분에 그나마 그 공간의 중요성과 현재의 문제성이 조금은 알려졌고 개선 가능한 부분부터 손대보고자 하는 노력들이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처럼 앞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한 사람들과 또 같은 뜻을 품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으므로 변화의 시작이 움텄을 것이다.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곳에서 나타났다는 이유로 악마의 화신이라는 오해를 받는 한 소년이 화형당할 위기에 놓인다. 다만 한 아이만이 소년을 위기에서 구하고자 고군분투한다... 는 스토리 라인. 궁금해서 아마존 찾아봤더니 평점이 상당히 좋고 리뷰도 호의적이다. 한 리뷰의 제목이 재미있었는데, '당신이 무얼 알고 있다고 믿건 간에 어쨌든 계속 놀랄 수밖에 없을 걸!' 이라고. 약간 어두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재미있는 스토리일 것 같아요.



0호를 읽었었는데 좀 놀랐다. 이런 잡지가 나오고 팔리는구나...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다. ㅎㅎㅎ 나쁜 뜻이 아니라 정말로 놀랍고 좋았어서... 흥하시기를!



이 책의 띠지에서 눈을 뗄 수 없다. 간병... 언젠가 우리에게 가까운 이에게 닥칠 일이고 우리에게도 닥칠 일 아니겠는가. 더욱이 출생인구수가 수직낙하하고 있는 요즘에는 노인 문제라든가 연금이라든가 뭐 기타 등등 이런 이슈가 나올 때마다 몸이 움츠러든다. 간병도 남의 일이 아니다. 병은 공평하게 찾아올 텐데, 참,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연필들의 수다 삼매경이랄까. 아이가 잠든 밤 필통 속의 연필들은 하루종일 있었던 서로의 노고와 안부를 주고받으며 아이의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이 이야기는 어쩐지 읽으라고 주기보다 옆에 앉혀놓고 소리내어 읽어주면 더 좋겠다. 눈으로 읽는 수고를 덜면서 머릿속에선 내 필통 속 연필들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상상에 빠지는 아이도 있겠지.



열 살 전후의 아이들을 전사로 키워내는 곳이라. 어째선지 저 대목을 보는 순간 나는 소년병으로 키워지는 아이들이 떠올라버렸다. 판타지는 판타지인데 많이 어둡겠다. 설정은 아주 흥미로운데 마지막권이 연내 출간 예정... 이라고 안내돼 있는 것을 본 순간 그냥 완간되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죽음을 주제로 다룬 책이라 무겁고 슬플 수 있다. 그럼에도 10대 초중반 아이들이 이 무거운 주제를 사건사고면보다 잘 쓰인 소설을 통해 접하고 잘 갈무리해 내면에 간직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이들은 자기를 중심에 놓고 사고를 확장해나가며 자라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사고의 중심을 역전시키기도 한다. 그럴 때 우주와 진화가 곧잘 대화의 주제로 올라온다. 바로 그 시기에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아... 무슨 병이라면 이젠 좀 싫지만, 이 책은 예외로 할까. 

이형성 변이 증후군, 일명 뮤턴트 신드롬은 일종의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버린 청년층에서 주로 발병하는 병이다. 그리고 (아마도 화자인 듯한) 어머니는 고등학교 중퇴자인 아들이 한 마리의 징그러운 벌레로 변해버린 것을 알게 된다. 어디서 많이 본 설정이지만, 넘어가고. 그리고 이제 이 대목을 넘어가면 이 소설의 진면목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읽고싶다!는 마음을 별점으로 매긴다면 이건 다섯 개 너끈히 줄 수 있다. 



솔직히 에세이 범람의 시대라고 해도 될 정도다. 이럴 때 이렇게 자기 기준을 확실히 말하는 편집자가 있다면, 그리고 그 책이 꽤 괜찮다면, 그 편집자가 출간한 책은 믿어도 되지 않을까. 더불어 그/그녀가 일하는 출판사도. 



제목이 먼저 오, 이건 뭐지- 하게 하긴 했는데, 저자 파일을 읽다가 내 눈을 반짝하게 만든 건 이거다. 그러니까 김혼비 작가 말고 저 분이 바로 그 '진짜 다른 의도 없이 술만 더 마시고자 했던 바로 그 분' 이로구나.. 하는 정보. 무슨 말인지 아시는 분은 <아무튼, 술>을 읽으셨겠군요. 



가끔 시적인 에너지를 재공급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시집을 읽으면 참 좋겠는데, 나는 그림책이 좀 더 맞더라. 아마 내가 한때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그림에 들어있는 색감과 질감과 양감... 동세... 그런 모든 요소들의 음악성과 문학성, 서정성, 그런 의미를 읽어내는 게 더 체질화돼 있기 때문이겠지.





고요한 밤입니다, 들러가시는 분들 편안한 밤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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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읽는책 #currentreads #thisweeksbooks

#커먼웰스
벨칸토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앤 패칫을 계속 읽습니다
#읽는직업
편집자라는 직업 들여다보기

#여행하는말들
백수린 작가의 산문집에서 건너왔어요
#themysterioushowling
작가가 직접 시연하는 늑대아이의 하울링에 낚였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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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이 거세어진다. 하늘을 어둡게 만드는 흰 막이, 불길이 밤을 더 어둡게 하듯 황혼을 재촉한다. 나는 얼어붙은 채 서 있다. 맨손으로 있기엔 너무 춥지만 나는 맨손이다. 눈이 내 눈썹에 내려앉는다. 내 소매에 떨어진다. 커다랗다. 꽃과 별들. 그들의 서로  포개지고, 형태를 유지하면서, 완벽한 별표와 꽃들의 작은 더미가 되어 마치 아이들 블록 장난감처럼 그들만의 기하학으로 함께 굴러떨어진다. -181쪽


모두가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모든 사진이 뛰어나게 감각적이지는 않다. 누구든 글(이라고 부르자, 일단은)을 쓸 수 있지만 모든 글들이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지는 못한다. 미감은 어디에서 발생하고 어떻게 감각하게 되는 것인가. 내가 느낀 것을 최대한 비슷하게 타인이 느끼도록 정련하는 기술은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걸까? 


사실 우리는 답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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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떠오른 몽롱한 아이디어가 부분적으로 오싹한 상상이 되어 짜낸 이야기가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아이들은 무엇이든 크게 받아들인다. 어른의 시선으로 보면 별 것도 아닐 일을 정말 크고 무겁게 받아들인다. 그런 아이들의 심리와 작가의 상상력이 만난 여섯 편의 이야기가 실린 단편집이다. 표제작인 <나무가 된 아이>는 교실에서 아이들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말 그대로 나무가 되어버린 아이의 이야기인듯. 



김동식 작가의 소설집 9, 10권이 동시 출간되었다.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고 되어 있던데 그럼 김동식 소설집 시리즈는 이것으로 막을 내리고 다른 기획에 들어가는걸까. 사실 나는 3권까지 읽고 이후엔 미처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김동식 작가의 매니아가 된 중딩이들 덕분에 뒷 권들 내용을 다 알아버렸다. -_- ... 이번엔 내가 먼저 읽고 얘네들한테 다 스포일해버릴까. 훗. 



사실 나는 귄터 그라스를 읽어본 적이 없다. 일단은 작가가 그래픽 아트를 전공했다는 이야기가 금시초문이었고, 표지의 고양이 그림이 작가가 직접 그린 것이라는 게 그림의 인상을 넘어선 강렬한 충격이었다. 전달하고 싶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글 말고도 또 있는 작가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늘 생각하는데, 귄터 그라스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구나. 

그리고 마지막. 나치 이데올로기를 고발한다, 라는 소개글에 낚임. 지난주에 읽었던 엘리 위젤의 <나이트>가 너무 힘들었어서 당분간 나치 이야기는 외면하고 싶다... 생각했는데, 방관자도 동조자다, 결국 그 준엄한 말의 위력에 굴복한다. 맞다. 아무리 힘들어서 외면하고 싶어도 그래선 안 된다. 결국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 위해를 가하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되니까. 



편견은 정말 무섭다. 대부분의 경우 이 놈이 이성을 압도해 먼저 컨트롤 패널을 잡기 때문이다. 내가 옹졸하고 편협한 소리(행동)를 했구나 깨달았을 때는 이미 물이 엎질러진 뒤였다. 우리는 왜 자꾸 편견을 가질까. 편견이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간 것 같은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편견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낸다. 왜 그런지를 공부해야, 조금이라도 그런 경향을 덜어낼 수 있겠지. 추천사가 너무 재미있는 게 있어서 가져와봤다.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정말로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처음 듣는 이름의 작가인데 간단명료하면서 감추는 게 몹시 많은 것 같은 저 제목이 아주 눈길을 끈다. 요즘의 책 제목들은... 사실 제목 읽는 것만으로도 피로도를 가중시키는 그런 게 좀 많아서... 뭣보다도 저 표지의 일러스트가 이 책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 절반은 다 말해주고 있지 않나 싶다. 정교하고 사실적이면서 좀 몽상적이고 목덜미가 간질간질하다 쭈뼛 소름이 돋을 것만 같은. 



섭스크립션 서비스가 워낙 종류가 많아지면서 이젠 트렌디한 느낌은 좀 사라졌지만 여전히 유효한 비즈니스 모델이 아닐까 싶다. 아직 구독경제에 관한 책은, 마음만 앞섰지 제대로 읽은 건 하나도 없긴 한데 경제 모델의 흐름도를 파악하고 있으려면 한 권쯤은 꼭 읽어야 하지 않나 싶다. 



김정선 선생님이 내신 맞춤법 책. 이건 뭐... 그냥 사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자본과 연합한 기술의 침공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러시코프는 인류가 개인주의 대신 연대하여 team human이 되어 저항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은 어디까지 밀고 들어올 것인가. 기술을 통제하는 것은 이미 물 건너간 것 같고 더 이상 잠식당하지 않도록 최대한 방어하는 일만이 남은 것 같은데 그 문제에 대해서 저자가 어떤 의견을 갖고 있을지...



어린 시절에 공간에 대한 아주 미약한 지식이나마 얻어들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공간 감수성을 얼마나 다르게 키우는지를 적나라하게 봤던 관계로 아이들에게도 다양한 공간을 체험하게 해 주고 관련 지식을 (책으로 밀어넣어줘야한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필요한 순간에 건네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공간 감수성이 예민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에 따라 결국 도시의 질이 달라질 테고 궁극적으로는, 아주 거창한 곳까지 영향을 미칠 테니까...



어린이들을 위한 판타지 소설인 듯한데 주인공이 아주 맘에 든다. 또래보다 작은 체구의 청각장애 소년이란다. 당연하지, 사지 멀쩡한 아이들만 모험의 주인공이 되라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게 그런 감각에서 '잘' 쓰인 소설인지는 아직 읽어보진 않아서 확신할 수는 없다. 



인간처럼 진화한 개들의 이야기. 인간과 개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뀐 이 설정에서, ... 적어도 아이들은 뭔가 '...' 하고 느끼는 게 있을 것 같은 느낌. 



문화는 애초에 문명과 같은 의미였다고 한다. 지금은? 지금은 문화는 거의 자본의 노예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문화에 대해서 테리 이글턴이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문화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문화는 지금까지 무엇을 해 왔으며, 무엇을 해야 할까. 



루이 비뱅 말고도 늦은 나이에 그림에의 열정을 불사른 나이 든 화가가 한 분 있다. 모지스 할머니는 이제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듯하다. 모지스 할머니 말고도 이렇게 그림을 열심히 그려서 화가로 이름을 떨친 분이 계실 줄은 정말 몰랐다. 모두가 비슷한 환경에서 자기의 삶을 살고 있음에도 누군가는 거기에서 뭔가를 항상 더 이루어내곤 한다. 이런 분들을 보면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잠깐이라도) 사뭇 강렬해진다. 



이거 우리 중딩1호가 맨날 걱정하는 건데 딱 그 스토리로 소설이 나왔네... ㅎㅎㅎ 

과거의 바이러스가 현대의 우리를 습격하는 바로 그 스토리. 음... 영화화한다는 띠지를 보니 아주 드라마틱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듯한데 어떠려나.


지난 주도 책 많이 사시고(... ㆀ) 책도 많이 읽으셨기를... 이번주도 열심히 읽는 한 주 되세요 :)

이번주의 목표. 다음주 신간 정리 하기 전에 최소 3개의 포스팅이 사이에 끼어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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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작정하고 리뷰를 써봐야겠다, 생각했었는데. 현실은 기대만 배반하는 게 아니라 종종 결심도 배반합니다... 그럴리가 있나요. 그냥 내가 게을러터진거지.


어쨌든! 이것도 기억에서 새하얗게 바래기 전에 어제 막장을 덮었으므로 비교적 생생하게 남아있을 때 씁니다.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놓고 짜여진 이야기입니다. 1860년대 중반, 어느 가족이 섬으로 이주하는 장면으로 시작돼요. 

주인공 소녀 페이스의 아버지는 목사이자 자연과학자로, 어떤 중대한 과학적 발견을 했지만 사기로 판명되어 과학계에서 퇴출될 추문의 주인공이 되었고 페이스는 아버지가 누명을 썼다고 굳게 믿고 있지요. 이 가족 구성원들 중에 유일하게 아버지를 지지하는 단 한 사람이죠. 어쨌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스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 불안과 의혹은 결국 아버지의 기밀 서류와 연구 자료에 손을 뻗게 만듭니다. 

단순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닌 것이, 페이스는 아버지처럼 과학자의 심장과 영혼을 가졌기 때문이죠. 그게 페이스의 불행입니다. 이 시대는 여성의 지적 호기심과 열망을 허락하는 시절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나 결국 아버지의 비밀에 손을 댄 사실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게 되죠.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로 인해 페이스는 오히려 아버지의 비밀 연구에 한걸음 크게 들어섭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페이스는 뭔가 아버지를 돕는다는 보조적인 포지션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만 느닷없이 아버지가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페이스는 과학자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섬사람들은 아버지가 자살했다고 믿지만, 페이스만이 아버지는 살해당했다고 굳게 믿고 살인자를 찾고자 노력해요. 그 과정에서 아버지가 노심초사하며 감춰 온 비밀의 정체를 알게 됩니다. 

아버지가 비밀리에 연구하고 있던 것은 거짓말 나무라는 정체모를 식물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이 나무의 생물학적 정체성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장 메커니즘을 이용해 자신의 궁극적인 과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었지만요. 


이 나무는 거짓말을 먹고 자랍니다. 그냥 거짓말을 속삭여 주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말을 반 현실로 만들어야 돼요. 나무에게 들려준 거짓말을 현실처럼 사람들 마음속에 뿌리내리게 해야만, 사람들 속에 그 거짓말이 현실로 녹아들면 그제야 자양분으로서의 거짓말이 완성되는 거죠. 진짜 대단히 환상적이고 음습한 상상 아닌가요. 


거짓말 나무를 이용해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주인공의 이름이 페이스 Faith인 것도 아이러니합니다. 페이스는 진실을 알기 위해 거침없이 거짓을 파종해요. 


거짓말은 불과 같다는 걸 페이스는 알게 됐다. 처음에는 보살피고 연료도 줘야 하지만 아주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해야 한다. 살짝 바람을 부쳐주면 이제 막 피어오른 불길이 커지겠지만 너무 세게 부치면 꺼져버릴 것이다. 어떤 거짓말들은 처음부터 기세 좋게 퍼지면서 신나게 타탁거리며 타올라 더 이상 연료를 줄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 거짓말은 나름의 생명력과 형태를 가지고 홀로 커져가면서 아무도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 -366쪽


페이스는 자신의 치맛단을 내려다보면서 부인하지 않았다. 그녀는 몇 개의 암시와 침묵만을 자양분으로 하여 자신의 거짓말이 쑥쑥 자라 그녀 앞에서 새로운 형태를 갖춰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침묵 그 자체는 칼처럼 교묘하고 잔인하게 이용될 수 있다. -396쪽


그래서 페이스는 결국 진실을 쟁취하는가, 그게 그녀가 원하던 바로 그 진실이 맞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면 답은 yes입니다. 그런데 인간사가 늘 그렇듯, 우리는 항상 구하던 답만 얻어갈 수는 없는가봐요. 페이스도 마찬가지로 알고 싶지 않았던, 가능한 한 몰랐으면 더 좋았을 추악한 진실까지 알게 됩니다. 원했던 진실과 더불어 아픈 진실도 함께 가져가야 하는 거고 평생 지고 살 수밖에 없게 되는 거죠. 

어쨌거나 고통스러운 진실 추적의 과정에서 페이스는 자신의 소명도 함께 발견합니다. 시대와 싸워야 하는 지난한 일이지만 누군가는 먼저 걸어야 할 길이고 빛을 밝혀줘야 할 길이라는 사실도요.


이 소설을 다 읽으면 판타지적 요소가 몹시 강한 이 책이 엄청난 여성 서사처럼 느껴져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구구절절 밝혀 쓸 수는 없는데 아무튼 그렇습니다. 다만 줄거리와 큰 관계가 없는 것 같아서 하나만 쓰자면 페이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남자들의 구애를 은근히 즐기는 듯한 어머니를 힐난하자 어머니가 평소엔 들을 수 없던 교태없는 날 것 그대로의 목소리로 이렇게 말해요.


"넌 내가 허영심에서 그랬다고 생각해? 난 우리 가족의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는데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내 외모밖에 없어! 네 아버지의 죽음이 사고였다고 말해 줄 재클러 박사가 필요했단 말이야. 그리고 클레이 씨가 사진을 수정해서 영국 본토에 떠도는 소문들을 잠재우려고 했고.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의지하는 예쁘고 부유한 과부 역할을 했던 거야. 언젠가는 고마운 마음에 그들과 결혼할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하려고.

여긴 전쟁터야, 페이스! 남자들만 전쟁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여자도 마찬가지야. 세상은 우리에게 무기도 주지 않고 싸우는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된다고 하지. 하지만 우리는 싸우지 않으면 이대로 죽게 될 거야." -434쪽


이게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던 어머니의 마음이 참 아파요. 자립할 수 없게 만들어놓고도 알아서 살아나라고 여자들을 밀어부쳤을 그 시절을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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