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한국어를 배우는 미국인이 가장 먼저 익히는 단어는 '복잡'이다. 이 말을 빨리 익히는 까닭은 그 발음이 영어 'pork chop폭찹'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쉽게 익히다보니 갑자기 모든 정신없는 상황이 생기면 교통 체증이나 어려운 시험 문제 등을 설명하는 것처럼 부적절한 상황에서도 무조건 '복잡하다'는 말을 쓴다. 학습자가 이런 상황을 다른 어떤 한국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른다면 그가 쓸 수 있는 말은 '복잡하다' 뿐이다. -77쪽


나는 이 말이 왤케 웃긴 거지. ㅎㅎㅎ

머릿속에 돼지고기 요리를 떠올리며 폭찹해요 폭찹해... 를 뇌까리는 외국인의 모습을 떠올리면 더욱 리얼하다.

외국어를 배우는 게 고난의 연속이고 자존감 자폭 시퀀스의 무한 재생인 건 그네들이나 우리나 똑같은가보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세랑의 아이디어를 좋아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불편한 말을 들으면 보호본능과 더불어 나를 공격하는 듯한 위협감을 느낀다. 아니 이제 그런 거 그만 졸업할 나이도 되었지 않나, 생각하지만 문득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일전에 나는 정세랑 작가가 좋아,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고보면 그 '좋다'는 표현이 참 모호하다. 호의를 대충 당의처럼 둘러입힌 말인데 기준이고 설정점이고 나발이고 모조리 감아 덮은 것 같은 말. 가끔 '좋음'을 명쾌하게 파헤칠 필요가 있지 않나. 아무튼 그 때 나의 발언이 그런 점에서 애매하고 불투명하기 짝이 없었기는 하지만 '그런 류를 좋아하는구나...' 라는 반응에 그만 아연한 얼굴을 만들고 말았다. 그런 류라니? 그런 類라는 건 대체 뭐지? 

물론 한 작가의 작품들이 어떤 일정한 톤을 띠는 경우는 왕왕 있긴 해. 그러나 이 類라는 말은 말야... 말끔하게 밝혀 말하긴 어렵지만, 그런데 좀 싸잡아 말하는 느낌이잖아? 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이것은 뒷북이로다.


나름 이 바닥에선 유명한 어떤 이가 말하길, 내가 좋아하는 이 책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하고 그 책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싫어하는 사람과 하는 대화가 어쩌면 더 유익하고 풍성해질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상대방에게 예의를 지킨다는 가정하에. 그래서 내가 참 좋다고 생각한 이 책을 박하게 평가한 분들이 쓴 리뷰를 열심히 읽어봤고 그게 동의할 수밖에 없는 평가라는 것, 내가 반한 부분에 눈멀어 미처 보지 못한 지점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독서 경험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방식인 것을, 제대로 체험해 보니 알겠다. 


그러니 호의적으로 두둔하는 경우건 따갑게 비판하는 말이건 그건 제대로 분별해서 밝혀 말해야 하는 거다. 왜 좋은지 왜 싫은지 제대로 말하지도 못하면서 좋으네 싫으네 하는 것도 우스운거지... 그런데 맘잡고 말해볼라치면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진지하게 집중해서 읽어야만 한다. 대충 스토리라인따라 한 번 읽고 말고서 절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근데 그게 너무 힘드니까 아 난 이 소설 좋았어, 난 좀 별로야, 이 정도 평가(라고 할 수 있으려나)가 난무하는 거겠지. 거기에 일조한 일인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정세랑의 아이디어를 좋아한다. 이것은 어떤 부분에서 무엇이 모자란다, 고 솔직하게 쓰신 분들의 리뷰를 읽다가 깨달았고 수긍했는데 비평의 언어는 배운 적 없는 사람이라 그냥 내 전공분야의 언어를 활용해서 말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지만, 아무튼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유기성이 아직 조금 모자란 느낌이라고. 적절한 곳에 여백이 있고 여백이 아닌 곳은 긴밀하게 단단히 짜여져 서로를 붙드는 치밀함이 있어야 한다. 그 사이에 긴장과 완화가 있어야 하고 강세가 눈길을 끌어야 하지만 바탕에서 일탈해서는 안 된다. 말만 쉬운 것이라는 걸 너무 잘 안다. 색감도 훌륭하고 패턴도 창의적인데 다만 좀 성기게 짜인 텍스타일같은, 그런 부분들이 좀 느껴진다.


여하간 이제 무엇이 나를 잡아끌었는지를 잊지 않게 써두어야겠다. 


제사, 그놈의 제사. 


여기에 나오는 제사의 형식이 정말 비현실적으로 이상적이었다. 고리타분한 제사 따위 지내지 말라고 한 엄마의 제사를, 10주기가 된 시점에서 한 번은 지내야겠다고 큰딸이 제안하면서 가족들이 술렁인다. 아무렴 내가 전 부치고 지지고 볶는 제사를 지내자고 할까보냐하는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기일 저녁 여덟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 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굳이 하와이로 가는 이유는, 그곳이 엄마의 인생길에서 좋은 쪽이건 나쁜 쪽이건 인덱스가 되어버린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제사, 파격이다. 파격인데 근사한 파격이다. 이렇게까지는 아니어도, 제삿상에 며칠에 걸쳐도 다 먹지도 못하는 기름기 가득한 음식들만 그득그득 올려 지낼 게 아니라 모인 가족들끼리 먹고 끝낼 수 있는 정도의 음식만 마련해서, 고인께 한 사람씩 안부 인사를 올리고, 돌아가며 근황도 좀 나누고 돌아가신 분 이야기도 좀 하고, 그렇게 보내면 안 될까 생각한 적이 많았다. 나는 그닥 제사에 부정적인 입장이 아니었는데 (무엇보다 사람 모이는 걸 좋아하고 음식 가짓수 많은 걸 좋아하는 특이한 성격에 힘입은 바가 크다), 맏며느리로써 이걸 몇 년을 하다보니 여기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싶은 거다. 적어도 제사 준비가 힘들어서, 는 내 핑계가 못 된다. 그러나 이 무의미성은 몸서리가 나게 싫다! 그런 차에 이 소설을 읽으니 눈이 반짝 뜨이지 않을리가 잇나. 쓸데없(다고 굳게 믿는 바다)는 말 좀 읖조리지 말고, 그 의미없는 차례지켜 음복하는 것 좀 생략하고, 그 시간에 둘러앉아 안 그래도 돌아가신 조상님들이 궁금한 어린 것들에게 그 분들이 어떤 분들이시고, 어떤 시대를 사셨고, 몇 분의 자손을 낳고 그 중 몇 번째가 너희의 할아버지(내지는 할머니)시고, 무엇을 직업으로 삼아 사셨는지... 그런 살아있는 이야기를 해 주시고, 그러면 좀 좋지 아니하겠느냐 이 말이지. 


너무 이상적인 얘기만 썼나.

물론 어떤 이들에게는 제사라는 형식 자체가 허울로 느껴지고 극심한 노동이라는데 이견을 제시할 생각은 없다. 집안 여자들의 노동력을 쪽쪽 빨아 기어코 각혈하게 하는 그 제삿상이 그리도 필요하면 필요한 자가 직접 할 일이지 안 그런가. 내가 제사를 큰 거부감없이 수용하게 된 건 모두가 사이좋게 노동하는 분위기를 만든 시어머님의 노련함이 한몫했지만, 세상 시어머니가 다 그럴리도 없고 말이지. 아무튼 너무 이상적인 소리라도 누구든 계속하면 거기에 말을 덧붙일 사람은 또 늘어날거고 계속 그렇게 이게 더 좋다, 저게 더 좋다, 그러다보면 점점 진짜 좋은 쪽으로 가게 될 거야. 나는 그렇게 믿는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라는 작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나는 너무 알 것 같아서, 나는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는 아니고 그곳에서 이곳으로 뛰어내린 1인에 불과하지만 그 마음이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정세랑의 다음 책을 기대한다. 뒤끝 작렬하는 나라서, 내게 그 말을 했던 이에게 이 책을 내밀며 정세랑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여기에 방점을 찍으며)의 소설만 쓰는 작가가 아니야, 그렇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잘근잘근 씹어 삼킬까, 그냥 뱉을까를 고민하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인적인 사정으로 지난 주는 모든 걸 다 걸러버리고 나자빠졌는데(=all real time classes... 집에서 쥐죽은 듯이 조용히 있어야 합니다. 어떤 선생님들 초예민하셔서 집에서 생활소음나는 것도 화를 내시면서 면학 분위기 조성 안된다고 난리를 하셔서 엄마도 아무 일도 못하고 쭈그리고 박혀 있어야 했... ㅋㅋㅋ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여) 뭐 그런 거죠. 사는 게 다 그런 거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ttps://www.youtube.com/watch?v=CpvkM8-Q1Z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도나 타트는, 내 머릿속에만 있는 어떤 집의 특정한 층에 머물러 있는 그런 작가였다. 참고로 같은 층에 리처드 도킨스도 함께 산다. 한마디로 아직 내가 만나보지 못한, 만나야한다고 생각만 하고 가끔 창가를 올려다보기만 하는 그런 작가들의 집. 여하간 처음으로 거길 올라가봐야겠다 마음을 제대로 먹고 빌려온 게 이 책인데... 이었는데... 이 소설에 대해 뭐라 할 수 있는 말이 아직은 생각이 안 난다. 아 딱 하나 있다. 전혀 선생다운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적어도 내 기준에선) 선생을 보느라 힘들었다는 거... 정도...? 


밤에 침대에 누울 때마다 나는 이 지겨운 소형 다큐멘터리 영화의 관객이 되어야 한다. 나는 이 영화가 개인의 견해를 무시한 충실한 다큐멘터리인 데, 섬세한 장면까지 남김없이 담고 있는 데, 감정이 깡그리 배제되어 있는 데 자주 놀라고는 한다. 바로 이런 식으로, 내 머릿속의 이 영화는, 내가 체험한 것을 독자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자세하게 거울에 되비쳐내고는한다. 시간의 흐름과, 되풀이되는 상영은기억에다 원래의 경험에는 없었던 위험한 요소를 덧붙여서 경험을 살찌운다. -(2권) 1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