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글을 쓰고 나서 이렇게 길게 엔터를 누르고 있을 생각은 아니었다. 아이가 독감에 걸려버렸는데, 만 8세씩이나 된 아이가 이렇게까지 열이 나고 하루종일 기운없이 누워만 있을수도 있나 싶게 심하게 앓았다. 사흘을 꼬박, 해열제를 먹고도 고열에 시달리던 아이는 나흘째를 지나면서 열이 조금씩 가라앉을 기미가 보였다. 아이가 아프던 며칠간 아이만큼 자주 들여다봤던 건 부엌 창가 밑에 자리한 작은 나무상자다.

 

 

 

단단한 나무로 짠 뒤에, 차분한 색감의 무늬종이로 덮은 상자속에는 4*6인치 크기의 카드 한 뭉치가 들어있다. 당연히 상자는 내가 직접 만든 게 아니고, 제작비 제외하고 배송료만 무려 50달러 가까이 지불하고 구입했던 미제 핸드메이드다(엣시따위 끊어버려야 한 달 가계가 평안해진다). 경제적 불행 중 다행으로 카드는 한 장씩 손수 만들고 있다... 좋아해야 하는건지, 조금 헷갈리네.

카드 한 장 한 장마다 내가 가장 즐겨 만드는 요리들의 재료와 조리법이 적혀 있기도 하고, 세 아이들이 각각 아플 때 그나마 잘 먹는 음식들이나 먹여도 큰 탈이 없는 음식들의 목록이 나열돼 있기도 하다.

 

 

 

이런 것을 레시피 카드라고 부른단다. 정말이지 어딘가 가정적이고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한몸에 다 퐉- 끌어안고 있는 듯한 단어다.
처음 이 카드에 대해 알게 된 건 순전히 이 책 덕분이다. 그리고 레시피 카드를 만들고 모은다고 안해도 될 버라이어티한 쇼핑을 하게 된 것도 다 이 책 덕분이지... orz

 

나에게 처음으로 손수 적은 레시피를 건네준 사람은 나의 친구 케이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레시피를 전해주는 문화에 익숙지 않던 나에게 그녀가 자신의 레시피 박스를 열어 체리 크런치 레시피를 적어주었을 때, 나는 큰 보물을 손에 쥔 것처럼 흥미진진한 기분이 들었다.(...)케이는 우연히 잡지에서 이 레시피를 발견하고 만들어 본 후 너무 맛있어서 자신의 레시피 박스에 소중히 간직해왔고, 그것을 내게 전해준 것이었다.
케이가 나에게 자신의 소중한 레시피를 나누어주었던 것처럼 그 후 나 역시 레시피를 나누는 즐거움에 푹 빠져 지냈다. 

 

내가 레시피 박스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또한 아줌마를 통해서였다. 처음으로 저녁 식사에 초대받아 갔을 때 잔뜩 긴장해 있던 나에게 직접 준비한 요리와 디저트에 대해 이야기하며 레시피를 적어주셨다. 레시피를 적어주고 전해주는 것이 생소했던 나에게 그날의 경험은 굉장히 신선했다. 60대 초반인 델라 아줌마의 레시피 박스는 가족 대대로 물려받은 가족 레시피부터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줌마가 하나하나 직접 모아온 레시피까지 엄청난 컬렉션을 자랑한다.

 

처음에 이 책을 열어봤을 땐 사전 저리가라 싶은 글자 크기에, 빽빽한 행자간에, 이게 무슨 요리책이냐 해도 너무한다! 싶은 생각이었는데, 읽다보면 그 첫인상이 좀 누그러지기는 한다.

그냥, 알려주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거다.자기가 취미로 베이킹을 시작하면서 얼마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지, 얼마나 맛있는 레시피를 많이 찾았는지, 이 좋은 걸 나 혼자 알면 아까우니까, 많이많이 가르쳐줘야지, 기타 등등등. 다만 그걸 한꺼번에 다 풀어내려다보니 과했을 뿐... ㅎㅎ 솔직히 이 책을 펼쳐놓고 뭔가를 만들어 보기가 편안하지는 않지만, 들어있는 레시피로만 봤을 때는 다른 어떤 베이킹 서적보다도 다양하고 생경한 것이 많아서 보고 실습해보는 재미가 있다.

 

레시피 카드는 단순히 요리법을 적어두고 찾아보는 데만 그 가치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요리법이야 뭐 자꾸 하다보면, 자주 만드는 건 저절로 외워지고 손이 기억하니까 굳이 별도의 카드를 마련해 적어 보관할 필요가 있나 했는데, 있더라. 음식이 대개의 경우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내가 만들던 음식을 그대로 만들어보고 싶어서 몸살이 날 수도 있으니까. 아주아주 먼 훗날에, 아마도. 

 

 

아쓰타는 '생활 레시피'라고 쓰여진 그 책자를 집어들었다. 작은 도화지 카드의 오른쪽 위에 구멍을 뚫어서 고리가 끼워져 있다. 학생들의 단어 카드를 확대한 형식이었다.
살며시 카드를 넘겨보았다. 카드는 요리, 청소, 세탁, 미용, 기타의 항목으로 나뉘어서 '히나마쓰리 레시피', '생일 레시피'같은 제목 밑에 요리법 등이 일러스트로 설명되어 있었다.
"오토미 선생님, 세탁과 청소 요령, 요리 레시피 같은 걸 우리에게 가르쳐 줄 때마다 이 카드를 줬어요. 제대로 깨끗하게 컬러 복사한 걸로요."

 

카레우동, 하고 미카가 중얼거렸다.
"선생님 카레우동 맛있었는데, 튀김이 들어가서."
튀김..., 하고 조카딸이 말했다.
"그 튀김을 씹으면 카레 맛 나는 즙이 나왔잖아. 그 즙은 어떻게 만드셨을까?"
레시피가 있어, 라고 조카와 유리코가 동시에 말했다. 잔잔한 웃음꽃이 퍼졌다.

 

 

 

 

 우리 작은 올케는 결혼하자마자 집들이 때 새우젓 두부찌개를 올렸대요. 동생이 좋아하니까 시어머니께 배워서 한 건데 이 찌개를 한 술 뜨던 동생의 직장 상사, 감격해서 말을 잇지 못하더래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새우젓찌개가 너무 먹고 싶어서 아내에게 해 달라고 했는데 아무리 설명을 해도 흉내조차 내지 못했대요. 그래서 다시는 먹어볼 수 없나 보다 했는데 이렇게 먹게 됐다며, 재료와 먹는 법을 메모해 갔다는 것 아닙니까?

 

요리책 보다가 눈물나는 일은 참 드물 것 같은데, 이 대목은 코끝이 찡해진다. 돌아가신 엄마가 해 주시던 음식이 너무 먹고 싶은데 두 번 다시 먹 수 없게 됐을 때의 기분 완전 잘 알 것 같다... 엄마가 살아계시든 돌아가셨든 엄마의 맛이 그리운 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 그렇게 여러 해 동안 포기하고 살던 맛을 누군가가 다시 살려내준다면, 그게 누구든 등 뒤에서 후광까지 보일지도 모를 일.

 

49일의 레시피에서는 돌아가신 새엄마를 추억하는 주인공과 가족, 그리고 그녀의 가르침을 받았던 많은 제자들이 나온다. 따지고 보면 별 관계도 없는 이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리움을 나눈다. 그녀가 만들어주거나 요리법을 가르쳐주었던 음식들의 온기가 남아있는 추억의 동아리 안에서 사람들은 치유받고 또 새로운 삶을 살아나갈 힘을 얻는다. 칭찬받은 쉬운요리, 는 제목에서 읽히듯 그야말로 (비교적)쉬운 요리들을 만드는 법이 실린 실용서다. 그런데 이런 몇 개 안 되는 잔잔한 에피소드들이 간혹 마음을 툭 건드리고 간다.

 

실용적인 목적과 그리고 그 밖의 플러스 알파적인 목표 때문에 나도 레시피 카드를 쓴다. 한두 번 만들어 본 것으로는 카드를 쓰지 않는다. 못 해도 열 번은 넘게 만들어 본 것들, 그중에서도 가족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것들, 일반적으로 알려진 레시피에서 조금씩 변형해서 우리 집에서가 아니면 먹어볼 수 없는 것들을 우선적으로 적어본다. 이미 기본적으로 부엌일에 대해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쓰고 있는 카드여서 다소 불친절하고 글씨체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하고 예쁜 것도 아니지만, 나중에는 이것도 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남겨주는 선물이 되겠지. 새벽에 써서 그런가 엄청 센티멘털해지네. 낮에 다시 읽어보면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아...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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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드라마화한 동명의 드라마를 이틀을 쪼개어 보았다. 고바야시 사토미와 모타이 마사코가 출연했던 일련의 영화들의 목록을 떠올려 보면 금세 추측할 수 있듯, 역시나 잔잔하기 짝이 없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다룬 4회짜리 드라마다. 언제부터인가, 교과서적인 기승전-(가끔은 막장)-결로 이어지는 플롯이 견디기가 참 힘들었다. 재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문자 그대로 견디기가 힘든 거다. 문제는 모조리 나의 지나친 공감능력 때문이다. 믿거나 말거나.

 

주인공들의 감정선에 따라 희노애락이 왔다갔다 하는 것 정도는 양반이지, 심지어는 지나가는 행인 1 정도 비중의 등장인물의 짤막한 사연에도 감정적 동요가 막... 막막 일어나... 아, 이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른다. 너무 괴로워.

그래서 나는 30대 중반의 어느 시점부터 거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 정말 마음이 조여들고 불안하고 어떤 때는 행복해서 미칠 것 같았다가 ㅋㅋ 어쩌라는 거냐구... 어떻게 된 게 난 나이를 거꾸로 먹었는지(껍데기는 충실하게 나이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마음을 둘러싼 외피가 얇아지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특히 주인공이 불행의 구렁텅이로 추락하는 소설이라도 한 권 읽고 나면 후폭풍은 어마무시해서 거의 일 주일 가까이 인생은 허무하도다- 라는 기분에 휩싸이고 마는, 줏대없는 사람인 거다, 나는.

여하간...

 

그래서 일견 도대체 무슨 사건이 있기나 한 건가 싶을 정도로 평온하고, 심지어는 지루해 보이기까지하는 이야기가 좋다. 특히 사람들이 느끼는, 누구나 느낄 수 있을법한 행복한 순간들의(엄... 주로 맛있는 것 먹고 깊이 만족하는 거? ㅎㅎ) 스틸을 보는 게 좋다. 한없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치유받는 그 느낌이 좋다. 내가 삶에서 느꼈던 그 긍정적이고 따뜻한 감정들이, 천천히 슬라이드쇼처럼 펼쳐지고 있는 그 안정감이 빳빳하게 경직돼 있는 경추부터 요추까지 쭈욱 타고 흐르며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만족스러운 것이다.

 

샌드위치 가게의 그 주방은 또 얼마나 단정하고 예쁜지!

 

 

 

 

 

 

 

 

 

가게 외관도 정~ 말 심플하면서도 딱 있을 것만 있다. 정신 사납지 않고 딱 좋아.

 

 

 

 

늘 나를 홀리는 이런 장면들 ㅎㅎㅎ

먹을 사람을 생각하면서 음식을 만드는 정성스런 손놀림을 보는 건, 그게 영화에서든 실제상황이든 굉장히 감동스러운 일이다. 고바야시 사토미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영화 속에서 음식을 만드는 그녀는 참 깔끔하고 섬세한- 음식하는 손의 움직임을 보여줘서, 무슨 초일류 셰프의 시연을 보는 듯이 몹시 황송한 기분으로 봤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생각난 소설이 하나 있다.

 

역시나 아주 드라마틱한 사건은 없지만 그래도 역시나 소시민들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작고도 힘든 일들이 고루 섞여있고, 왜 이렇게 괜찮은 소설을 몰라줄까 생각도 한 적이 있는데, 이런 제목의 작품이다.

 

 

위에서 언급한 무레 요코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아키코와 성격도 가치관도 너무나 닮은 여주인이 운영하는 커피하우스에서, 주인공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리고 여주인으로부터 이런 것들을 배운다.

 

잡다하고 부질없는 질문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슬픔은 건드리지 않아야 터지지 않는다. 슬픔을 치유해 준답시고 무의식을 건드리고 뿌리내린 아픔을 깨우는, 프로이트 식 치료법은 서구의 구식 원론이다. 현대의 학자들은 이론을 먼저 정의하고 사례를 찾아낸다. 이렇게 두드려 맞추고, 저렇게 끼워 넣으면, 하나의 학술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작은 아픔들이 다치고 부서진다. 나는 타인이 내 고통을 어루만져 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아무 변명도 필요없는 침묵의 위안에 더 목마르다. 주인은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이었다.

 

˝이런 건 간단하게 사먹어도 되지 않아요?˝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뭘. 난 작은 것도 일일이 만들어 팔고 싶어. 번거로운 일을 하면 할수록 음식이 맛있어지니까. 그 맛을 알면 좀처럼 포기하지 못하게 돼. 한 번 먹어 볼래?˝

˝저 말이지, 인간은 슬프고 불행한 순간에도 선택적으로 좋은 것만을 취하는 능력이 있어. 그러니까 내 말은, 정성껏 만든 맛있는 음식을 그리워하는 건, 인간의 행복과 자유에 대한 갈망과 같은, 뭐랄까, 귀소본능 같은 것이야.˝

 

일정한 간격을 두지 않으면, 인간 관계란 어느 순간 변질되고 만다. 사람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속에 있는 말을 한답시고 여러 말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생각에 맞추게 되고, 관계 자체가 하나의 족쇄가 된다. 주인은 그 오묘한 거리를 기막힐 정도로 잘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학교에 간 적이 없어. 아버지가 학교는 갈 필요가 없는 곳이라고 했거든. 나는 다른 애들이 학교에 다니는 시간에 아버지를 따라 돌아다니고, 책을 읽고, 글을 썼어. 아버지는 책을 한 권씩 골라 주시고 반드시 독후감을 쓰라고 하셨어. 그런 식으로 지식을 넓혀 갔지. 아버지는 사람이 배워야 할 것은 엄청나게 많은데, 학교에는 그 많은 것들 중 단 한 가지도 없다고 말씀하셨어.˝

 

˝그 애들은 나를 부러워하면서도 막상 나처럼 살기를 원하지는 않았어. 겁이 났기 때문이야. 남과 다른 삶을 사는 건 불안한 일이거든.˝

 

˝나 역시 네가 겪는 경험의 일부야. 어쩌면 지금이 네게 모르던 세계를 알려주는 중요한 시간이 될 수도 있지. 하지만 아무 의미도 없을지도 몰라. 모든 건 너한테 달려있는 거야.˝

 

˝결국 그 사람은 나무가 안겨준 실망 때문에 나무를 증오하게 될 거야. 사랑한 적도 없는데 말이지. 한 순간이라도 사랑을 해 본 사람은 어떤 일이 생겨도 증오를 키우지 않아. 인생도 나무와 똑같아. 인생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증오도 없지.˝

 

먹을 것만 줄창 나오는 드라마에 소설 얘기만 해서 그런가 열한 시도 안 되었는데 배가 고픈 듯한 이 느낌적인 느낌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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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날이 소중하다 - 한 뉴요커의 일기
대니 그레고리 지음, 서동수 옮김 / 세미콜론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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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와 관찰하다... 의 개념적 차이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실제 삶에 적용하기란 그리 녹록치 않다. 어째서, 하고 잠깐 운을 떼었다가 나는 이렇게 생뚱맞게 대답해 본다.
회색 도당 때문에.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뭔가를 찬찬히 공들여 바라보는 일에 시간을 쏟는 일을 두려워한다. 그 시간이 진실하게 나의 내면으로 스며들어 나의 일부분을 이룰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그 시간에 뭔가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착각 속에 늘 빠져 살기 때문이다.

물론, 늘 그 착각 속에 빠진 채 시간은 정작 무엇을 뜯어보고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쓰는 대신 주로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흘러다니는데 소모해 버리기 일쑤...

어떤 대상을 차분하게 깊은 시선으로 오랫동안 바라본다는 건, 눈 안의 대상으로부터 소리마저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집중해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기에, 그렇게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을 정도의 관심이 있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 나는 내가 그리는 대상을 눈으로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듯 했다. 내 시선은 모든 굽이와 도드라진 곳들에 정성스럽게 머물렀고 표면을 따라 그늘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이렇게 바라볼 때,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고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신기하게도 이러한 경험은 언제고 되풀이 되었다...

사실 그림이야 먹고 난 바나나 껍질처럼 어디로 던져버려도 상관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 느리고, 애정이 담긴 바라봄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시도를 해 본 적이 있는지... 있다면, 내가 느꼈던 막막함을 당신도 느꼈을지. 그냥 스케치를 하는 것은 이것과는 다른 경지다. 절대로.


나는 이렇게 대상물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진 사람들, 정확히는 일의 경중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 사랑을 주어야 할 때 주저없이 자신을 지워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존경스럽고 더불어 부럽다. 말은 쉽고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니까.


이 책은 불행한 사고로 가정에 큰 위기를 맞은 저자가 어느날 문득 아내를 그려보면서 바로 이 '특별한 시선'이 주는 경이로운 체험을 하게 되고, 그로부터 '나는 나를 그렇게도 두렵게 했던 고정관념의 함정을 쉽게 넘어설 수 있'게 된 이야기와 그의 생활들을 그림과 더불어 묶은 것이다.

우리가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는 그리 큰 걱정거리가 아니라거나, 혹은 아직 닥치지도 않은 것이라는 통계결과보다도, 절절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 글과 그림은 얼마나 호소력이 있는지.

그는 매일의 소중함과 일상의 축복을 느끼기 위해 그림 그리는 일을 일종의 의식화하고 있다. 그 중요성을 깨닫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이는만큼 좋은 방법이 없기 때문이며, 그에게는 그것이 그림 그리기라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삶을 채워주는 것들에 대한 감사인 동시에 그 자신에게는 기억 보관함이 되는 셈이다.
가까이 있으나 그 소중함을 모르는 공기와 같은 것들과의 일체감을 갖는 방법, 친밀한 관계를 맺는 방법으로써 깊은 시선을 통해 얻는(여기서 그림 테크닉 그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림은 얼마나 효과적인가.

모든 것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심오하고 독특하며, 아름답다.

그리고, 이 책을 다 덮게 되면 못 견디게 그림이 그리고 싶어질 것이다.
그림을 배워본 적도 없고 그릴 줄도 모른다 하더라도.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펜촉이 종이 위를 구르는 동안, 그 대상물과 나 사이에 얽혀 있는 이야기들이 마치 뭉쳐 있던 실타래처럼 펜촉 옆에서 함께 굴러나오곤 한다.
그래서 엉성하나마 완성한 그림 옆에는 짤막짤막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내 생활 속 이야기들이 찐득찐득하게 달라붙어 있다. 책 속 그림 옆에 왜 또 그리 다른 '작은' 이야기들이 붙어있을수밖에 없는지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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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홍차에 빠지다
이유진 지음 / 넥서스BOOKS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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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에는 홍차를 무척 즐겼더랬다.   

늘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도 차를 좋아했기 때문에 하루라도 차를 마시지 않는 날이 없다고 해야 할 정도였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차는 커녕 물 한 모금도 마음대로 마시지 못할 정도로 바빠지고 쉽게 지치는 삶이 찾아오면서 조금쯤의 여유를 어떻게든 마련해야 마실 수 있는 차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내 인생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차의 빈자리엔 간단하기 그지없는 인스턴트 커피믹스가 떠억하니 들어섰다.

달고 자극적이고, 그리고 텁텁한 뒷맛을 남기는 커피믹스에 넌더리를 내면서도 한 번 멀어진 홍차와의 거리를 다시 좁히긴 쉽지 않았다. 티백이란 게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티백으로 차를 마시느니 차라리 안 마시고 말겠어, 하고 중얼거리며 인이 박힌 듯 다시 커피를 마셔댔다. 차와는 멀어졌어도 뭔가를 마셔야 하는 버릇은 못처럼 몸에 깊이 박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병원에서 밤을 새워 읽었다. 아이의 입원 첫날, 이런저런 이유로 잠을 잘 수 없었고, 웃기게도 병실 옆 휴게실에서 뽑아온 자판기 커피를 홀짝거리며 보호자 침대에 쪼그리고 앉아 홍차에 대한 책을 읽었다. 한 두어모금 쯤 마셨을까, 어느 순간 나는 종이컵을 슬그머니 밀어놓고 책에 집중했다.
온갖 불안한 잡념을 떨치기 위해 더욱 활자와 사진에 집중했다.

메모도 간간히 했다. 퇴원하면, 이것과 이것을 주문해야지. 하루에 한 번은 꼭 차를 다시 마셔야지, 몇년 간 찬장 속에 넣어두고 거의 쳐다도 보지 않았던 차들, 정리도 좀 해줘야지. 이런 단순한 결심들을 같이 적어놓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예쁜 사진이 실린 페이지가 있으면 귀퉁이를 살짝 접어도 놓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마셔봤던 차들은 뭐가 있었더라, 내가 무슨 차로 홍차에 입문(?)을 했더라, 어떤 사람들과 같이 차를 마셨고 어떤 이야기들을 나눴었더라...? 아이들과 같이 차를 마셔본 적은 있었던가... 하고 옛생각을 더듬기도 했다.

꽤 두꺼운 책이었는데 간호사가 몇 번 왔다갔다 하는 동안 오른손에 남은 페이지 두께는 점점 얇아져 갔다.
아, 며칠은 읽을 줄 알았는데, 하룻밤 사이에 다 읽어 버리다니. 아깝다.

입원 이틀째 날, 잠깐 집에 들렀다가 필요한 물건을 챙기면서, 나는 뜻밖에도 보온병과 무슨 생각에선지 구입해 놨었어도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티백 몇 개를 함께 챙겨와서, 병실에 가져다 놓고 몹시 들뜬 기분에 젖었다.
그리고 정말 몇 해 만에 처음으로, 느긋한 기분으로 차를 마셨다. 티백은, 내 예상과- 제대로 루즈 티로 끓인 차가 아니면 맛없어, 라는 뭣도 없는 자만을 깨고 기대 이상의 향과 맛을 전해주었다. 더불어 따뜻한 위로도.
예전에 늘 맛있는 차를 같이 마시러 다녔고, 아직도 생각나면 차 선물을 해주는 친구에게 '나 방금 집에서 가져온 트와이닝의 레몬진저티를 마셨어. 맛있었다'고 문자를 보내니, '얼마만에 들어보는 트와이닝이란 이름인지'하고 웃음기 섞인 답신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좋아했었으면서도 어떻게 몇 년 동안이나 차를 안 마시고 살아왔을까? 티백 하나로도 이렇게 큰 위안이 되는 것을.


책에 대해 개인적인 느낌을 적을 수도 있겠고, 마음에 들었던 챕터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이 나를 어떻게 움직였는지, 어떤 생각을 하게 하고 어떤 결심을 실천으로 옮기게 했는지, 어떤 때에 어떻게 위로가 됐는지를 적고 싶었고, 그것이 책의 내용과 인상을 짐작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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