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돌보기 - 초보자를 위한 안내서 튼튼한 나무 29
미셸 쿠에바스 지음, 강나은 옮김 / 씨드북(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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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새롭게 찾은 내 초능력이 생각났어. 여태 깜빡하고 아빠한테 얘길 안 했는데, 이 능력은 아빠가 아플 때 생겨난 거야. 그리고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난 후에 가장 강력해졌어. 그 능력은 깜깜할 때 적외선 안경을 써서 앞이 보이는 것과 비슷해. 우리가 사는 우주 말고 또 하나의 평행 우주가 보이는 거야. 전에는 안 보였는데 이제 보여.


님버스 아주머니가 정신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떠난 남편이 보고 싶으니까 그 석상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 얘길 나도 한 백만 번은 들었고 전엔 지루해 죽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젠 말이야, 설명하기 좀 어려운데... 그러니까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으면 나랑 비슷하단 생각이 들어. 아빠와의 추억이 떠오를 때 내 기분을 아주머니도 느끼는 것 같아. 전에는 아주머니를 봐도 그런 게 안 보였어. 그런데 이제 보여. -48~49쪽



시간이 가서, 세상을 더 배워서, 경험치가 늘어나서 '능력치 목록'에 새롭게 등재되는 항목들이 늘어날수록 한 존재의 성장을 실감한다. 긍정적인 경험치에서 얻는 능력만 있으면 세상이 얼마나 장밋빛이겠냐마는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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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나는 대화와 어느 과거에 관하여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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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아니게 츠지무라 미즈키의 작품을 꽤 많이 읽었는데, 지금까지 읽은 작가의 책들 중 가장 좋았다. 

별 것 아니라고들 생각해서, 뱉아놓고도 (그런 말들은 뱉았다고밖에 표현할 도리가 없다) 잊어버리거나 마음을 두지 않았던 말들에 숨어있던 은근한 적의와 악의, 멸시의 감정들이 누군가들의 마음과 삶의 한 시절을 상처입혔다는 엄연한 사실을, 적당히 잊어버릴 생각 따윈 하지도 말라고 조목조목 짚어 지적하고 있는 단편집이다. 

뭐, 현실이 그렇게 꼭 해피하지만은 않지만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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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보다 더
테일러 젠킨스 레이드 지음, 차윤진 옮김 / 나무의철학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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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이 책을 사 놓고 잊어버리고 있다가 일 년만에 읽었는데, 안 읽고 묻었으면 아까웠겠네, 싶었다. 


시작이 너무 웹소설 풍이어서, 이거 뭘까... 계속 읽을까 말까 고민이 슬슬 되는데 여주인공의 남편이 4페이지만에 교통사고로 급사해 버린다. 그럼 이 소설 전개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심지어 여주와 남주는 띨렁 6개월을 교제하고, 결혼한 지는 9일인가 10일밖에 안 되었다. 그냥 가볍게 드라마처럼 흘러간다면 이것은 죽은 남편과 몹시 닮은 남자가 어느 순간 나타나서 여주인공은 내가 이러지 말아야지 내지는 설마 그럴리가 없는데, 하며 새로운 남주 후보에게 빠져드는... 그런 싸구려 전개가 될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 그렇게 김이 새지는 아니하고, 다만 양가 부모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결혼을 번갯불에 콩볶아먹는 프로세스로 해치운 덕분에 만날 일이 없었던 시어머니를 남편의 시신을 가운데 두고 마주하는 공포와 경악의 크로스같은 상황에 놓이고 만다. 

당연히 시어머니가 되는 수잔은 여주인공 엘시와 마찬가지로, 갈래는 조금 다르지만 만만찮은 경악스럽고 황당무계한 슬픔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 남편은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으며, 죽은 아들 말고는 다른 자식이 없었으니까.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던 아들 벤이 교통사고로 즉사했다는 소식도 기가 막힌데 그 아들이 자기 몰래 결혼을 했단다. 생판 처음 보는 여자가 당신이 믿거나 말거나 우리는 부부이며, 내가 그의 직계 가족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판국에 수잔은 어떻게 이성을 챙겨야 하는 걸까. 

발만 조금 잘못 디뎌도 막장드라마가 될 소지가 다분한 이 이야기감은, 놀랍게도 비탄과 상실을 극복하는 유대의 서사가 된다. 더불어 가족의 죽음을 겪은 이들이 (아마도) 공통적으로 겪는 전형적인 고통과 치유의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는 것도 이 소설의 좋은 점 중 하나겠다. 자신을 비난하고 종종 학대하기까지 하는 이유까지도. 남이나 다름없었던 사람과 가족으로서 고통을 나누며 상처를 보듬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상실에서 애도로 넘어가는 기간에 당사자의 마음에서 불어닥치는 후폭풍이 있겠거니 짐작하는 것과 실제 일어나는 감정사의 규모의 간극에 숨을 삼킬 수밖에. 
다만 개인적으로 짧은 시간에 인생을 통째로 갖다바치고 싶어지는 절절한 사랑을 하느냐마느냐 이런 이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편이어서 그게 좀 마이너스. 

덧. 제일 좋았던 캐릭터는 미스터 조지 캘러핸. 부지런하고, 솔직하고, 위트있고, 친절하고, 그리고 필요할 때는 자기 감정에 충실히 빠져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매일매일 도서관에 출근하듯 방문하는 것으로 매일 삶의 닻을 삼고 있다는 점이...

"부모님 말은 신경 쓰지 말아요. 부모님은 당신들 바람대로 행동하실 거고 그건 엘시에게 필요한 것과는 아주 다르니까. 그래서 말인데, 거기에 맞추려고 노력하지 말아요. 내가 무슨 전문가라도 돼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스티븐이 죽었을 때 사람들이 내게 해주려는 것과 내가 그들에게 원하는 바가 아주 다르다고 깨달았어요. 사람들은 우리 입장이 되는 게 너무 두려워서 언어능력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냥 흘려들어요." -242쪽 

"그런데 나를 들여보내줄까?"
그가 말한다. 그렇게 우스운 이야기도 아닌데 우리는 둘 다 웃는다. 사소하게라도 미소지을 만한 일을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강해도, 아무리 독특하고 터프해도, 세상은 반드시 우리를 무너뜨릴 방법을 찾는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 버티기다. -3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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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 삶의 한가운데 있을 때는 전혀 흥미진진하지 않은 법이야. 그저 버겁기만 하지. 그 오묘한 의미는 한참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거란다. -378쪽

친구가 어른이 되는 일에 갈수록 고민이 많아진다고 말을 꺼내놓은 직후 이 소설이 떠올랐다. 어린 나이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일궈야만 하는 환경에 내던져졌던 도리스의 인생이 그녀의 삶을 교차해 지나간 타인들을 회상하며 되감기된다. 평탄하지 못했지만 평범하게 살기 위해 갖은 애를 썼던 도리스가 죽음을 직감하고 조카손녀에게 남긴 일종의 회고록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 작가의 메시지가 더 많은 독자에게 가 닿기를. 


덧. 도리스의 일생의 사랑이었다고 등장하는 앨런보다, 예스타 닐슨이라는 인물이 훨씬 매력적이고, 인간적이고, 가까이하고 싶은 종류의 사람이다. 이별을 말하기가 무서워서 잠수나 타는 남자가 뭐가 좋단 말인가. 영문을 모르는 여자는 속 터지게. 연애 감정으로 옆에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도리스의 소녀시절부터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고 가족이나 다름없이 도리스를 기다렸던 예스타가 더더더더더 인간적으로 훌륭한 거 아니냐고요. 자기가 먼저 잠수 타놓고 당신이 내 일생의 사랑이었네 잊지를 못했네 어쩌네 저쩌네 구질구질... 이러는 거 감동적이지 않단 말이죠. 짜증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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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으면 다 언니 - 좋아하는 마음의 힘을 믿는 9명의 이야기 : 황선우 인터뷰집
황선우 지음 / 이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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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미있어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소설이 알아서 공부해야 하는 참고서라면 이런 인터뷰집은 애걸복걸해서 잠깐 빌려 본 전교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애 단권화 노트같달까. 

진짜 어디가서 이런 얘기 못 들어요. 누가 밥상까지 다 차려다줬는데, 그걸 잘 챙겨먹고 못먹고는 자기 몫이겠고. 

10대, 20대의 독자들에게 더 추천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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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12-31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