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씨는 어디에나
실레스트 잉 지음, 이미영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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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내가 아는 모든 '지인'의 범주에 드는 읽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꼭 읽으세요! 라고 느닷없이 권유를 했다. 고맙게도 내가 권하는 책을 꼬박 읽고 감상을 전해주는 이가 하나 있는데, 이렇게 물었다. 


"물론 괜찮긴 했는데, 어떤 점에서 이걸 그렇게 마음에 들어했는지 진짜 궁금했거든. 왜 좋았어?" 


이 질문에 어떤 명쾌한 대답을 주진 못했다. 애시당초 무 자르듯 한두 마디로 재단할 수 있는 소설이 좋은 소설일 수 있을까? 다만 내게, 최근에 읽은 그 어떤 소설도 이만큼의 결과 깊이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어떤 방향으로든 훌륭한 이야깃거리를 끌어낼 수 있는 소설이다. 어떤 인물도 절대적으로 옳거나 선하지 않다. 세상을 나눠살고 있는 우리들처럼. 


미혼모이면서 예술가인(포토콜라주를 주로 작업하는 듯한) 미아가 10대 딸을 데리고 리처드슨 부인의 세입자로 등장한다. 리처드슨 부인은, 지루할 정도로 흔하게 볼 수 있는 극도로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소유자로 미아 모녀를 규정짓는다. 엘리너 리처드슨은 자신을 '베푸는 자', 미아를 '수혜자'로 정의한다. 미아는 엘리너의 속을 훤히 꿰뚫어보지만, 모르는 척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그것은 미아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자신의 정의, 믿음의 영역 밖에 있기 때문이다. 미아의 정신적 척추를 위협하는 제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까짓 자선가 놀음, 맞춰주면 그만이지. 아마도 그게 미아의 본심일 것이다. 엘리너는 자신이 있는 자로서 너그럽게 처신했다는 허영심에 충분히 절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면 위선적인 평온이 흐르는 이 거리의 풍경은 그럭저럭 유지됐을 거다.


미아의 딸은 자신의 모녀가정에는 존재하지 않는 물질적 풍요로 채워진 리처드슨 가에 매혹되고 리처드슨 가의 아이들은 비자본주의적 풍요를 누리는 미아와 펄의 집에 흐르는 분위기에 매료된다. 그러나 초반의 이 화기애애한 풍경이 흐르는 동안에도 읽는 이들은 마음이 답답해지고 초조해진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씨가 군데군데 흩뿌려지고 있는 것이 행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중반부쯤 가면 조마조마한 마음을 부여잡고 있기가 쉽지 않다.


이제 티딕거리며 타오르기 시작한 아주 미미한 불씨지만, 모두가 여기에 기름을 끼얹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속도를 내어 갈등의 봉우리로 달린다.

엘리너의 친구 부부가 버려진 중국인 아기를 입양하려는 절차를 시작하면서, 미아는 우연한 기회에 그 아기가 자신의 중국인 동료가 되찾고 싶어하는, 그녀의 아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아의 개인적 신념이 무엇인지 밝혀진다. 미아에게도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못할 자신이 믿는 정의가 있다. 그 믿음을 위협하는 이는 누구라도 미아의 적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아기를 입양하려 하는 친구의 편에 선 엘리너와 아기를 엄마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믿는 미아는 적이 되어 마주보지 않을 수 없다. 


미아와 엘리너가 빚는 갈등의 원인은 밝혀보면 극히 단순하다. 내가 옳다는 믿음. 그런데 그 믿음의 근거는 뭐지? 


내가 생각하는 것을 절대적 정의라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는 행위가 불러 일으키는 문제들이 점점 커지는데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감정이 생각의 구역을 침범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은 정신 승리의 영역에 들어가 버린다.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비구름처럼 감정이 증폭되면 대개 감정은 부정적으로 발산된다. 이성적 시스템은 통제구역을 통솔할 능력을 상실하기 일보직전에 놓인다. 이쯤 오면 스파이더맨의 그 유명한 대사를 패러디하고 싶어진다. Great power always comes with great responsibility. 이렇게 말하고 싶다. 강력한 믿음에는 강력한 회의가 필요하다. 


정리.

생각하기를 요구하는 질문들을 던지면서, 속도를 늦추지 않고 이야기 속으로 독자를 끌어당기면서 어디에도 취하지 않고 명료한 사고를 유지하기를 요구하는 소설이었다. 아마도 그게 내가 많은 책친구들에게 이 책을 권했던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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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읽다가, 어떤 문장을 만나면 아마도 측두엽이 있으리라 짐작되는 부위를 지긋하게 누르는 순간이 온다. 마치 거기를 누르면, 파워램프가 깜빡이면서 기억해내라_빨리좀기억해내라고.pdf 파일이라도 불러올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책들은 책 자체로 기억되고, 어떤 책들은 다른 책들과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책들로 기억된다. 



나한테 이 책은 그런 책... 다시 말해 다른 어떤 책들에게 손을 뻗게 하는 책이었던가보다. 

『살면서 가끔 괴로울 때 그 책을 다시 읽는데 그냥 나한테는 그런 책』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게 하는 문장이다. 괴로울 때 다시 읽고 싶어지는 그런 책이, 나한테는 뭘까. 



아... 마지막 책이 잘 안 보이네. 오지은 씨의 「익숙한 새벽 세 시」인데.



어디서나 참 많이도 이야기하고 다녔지만 이 책이 열 여섯살의 나를 지금까지 독서가로 살게 한 책이면서, 힘들고 가라앉을 때마다 다시 읽게끔 하는 그냥 그런, 일 번 책이다. 페넬로프 킬링 부인에게는 세 남매가 있다. 대놓고 속물적이고, 조금 뻔뻔하고, 툭하면 자기연민에 빠지고 감정에만 충실하게 사느라 자식들로부터도 남편에게서도 그닥 존중받지 못하고 사는 중년의 맏딸 낸시, 항상 엄마의 편에서 엄마를 이해하려고 하는 둘째 올리비아, 아버지를 꼭 닮아 삶의 겉쪽에 치중하고 사는 듯 보이는 막내 노엘. 어느 날 페넬로프는 자신의 삶 전체라고 해도 좋을 아버지의 유작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고, 그로 인해 빚어진 가족간의 갈등과 페넬로프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번갈아 전개된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에지간한 자기계발서나 행복전도서보다 낫다, 고 나는 생각한다. 치에코 씨와 사쿠 짱은 아이 없이 둘만 사는 부부다. 그들도 딱히 유별난 삶을 사는 건 아니어서 별 것도 아닌 걸 갖고 다투기도 하고 밥 먹으러 나가 처음 가 본 식당에서 메뉴를 성공적으로 고른 것으로 굉장히 기뻐하면서, 그렇게 우리와 비슷하게 소소하고 시시하게 (!) 산다. 

그러나 치에코 씨에게는 대단한 재능이 있다. 소소시시한 일상에서 항상 뭔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거리를 찾아낸다. 내지는 뭉클해할만한 것을 찾아내고 아주 잠깐, 감동한다. 그러라고 가르쳐 주는 책을 보면 웬지 반감이 들지만, 치에코 씨가 행복해하고 감격하는 모습을 보면 같이 즐거워진다. 



오지은 씨를 TV에서 봤을 때, 굉장히 명랑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활기찬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후에 이 에세이를 읽었을 때 그만큼 역으로 놀랐다. 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있지만, 이 사람의 그림자는 유난히 불투명하게 짙은 회색이고, 아주 두꺼웠겠구나... 그렇지 않았을까 싶었다. 덮어놓는 방법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덮어 가리는 쪽을 선택하겠지만 오지은 씨는 밝은 곳에서 직시하는 쪽을 골랐다. 이제는 바삭바삭하게 말라서 어쩌면 얇아졌을 수도, 투명해졌을수도 있겠다. 책을 덮고 나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냥 다시 펼쳐보기에 제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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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묻지 않아도 알아주고 누군가는 설명하고 표현하려고 해도 갸우뚱해하는 그런 일들은 항상 일어난다. 내가 겪는 일과 저 사람이 겪어본 일들은 범주가 다르고 수용의 깊이가 다르니까, 엄격히 말해서 세상에 내가 느끼는 감정의 파고를 백 퍼센트 온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압도적인 감정에 휩싸이게 될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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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
루스 호건 지음, 김지원 옮김 / 레드박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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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책을 읽은 건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둘째가 완전히 제대로 꽂힌 시리즈가 있는데, 이 책은 알라딘에서 취급을 안 해서 (시리즈 중에 몇 권은 있기도 하더라만 너무 비싸...) 다른 곳에서 주문하곤 합니다.. 타이틀 The Keeper of Lost (Cities)를 입력하려고 하는데 lost까지 입력하고 나니 자동검색으로 뜨는 목록 중에 이 책 The Keeper of Lost Things 이 있더란 말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리뷰가 좋았... 표지도 예뻤어요(표지에 잘 낚이는 1인). 물론 원서와 번역서 표지는 좀 다르긴 하지만 번역서 표지도 예쁘긴 하고요. 잃어버린 뭔가를 지키는 사람들은 왜 이다지도 많은가... 새로 등장한 출판계의 클랜인가 (이쯤 해둬야겠). 같은 쓸데없는 생각은 접어두고요. 


제목을 입력하고 잠시 기다려보니 역시나 번역서가 있습니다. 가끔 읽고 싶지만 원서를 읽기가 귀찮아서 (읽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걸 어쩌겠어요) 있을까 궁금한 손가락을 두드려보면 놀랍게도 상당히 많은 책들이 번역돼 있는 걸 발견하게 돼요. 안타깝게도 얼마 못 가 절판이 되고요. 그 많은 책들은 어디에 묻히게 될까... 잊혀진 책들의 지킴이는 없을까... 아, 상상이 망상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단계가 코 앞이라 그만둬야겠습니다. 


아무튼- 


주인공일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초반에 황망(하지는 않고 뭐 정황상 예상은 됩니다만)하게 책 속 세상을 떠나버리고 조연인 줄 알았던 실제 주인공이 쭈뼛거리면서 중앙으로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소설가인 앤서니 퍼듀는 약혼자가 일찌감치 세상을 뜬 뒤 혼자만의 삶을 이어갑니다. 그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취미랄지 기행이랄지... 를 갖고 있어요. 누군가가 잃어버린 물건들을 주워 보관하죠. 물건을 발견한 장소와 날짜, 시간을 메모한 노트를 덧붙여서 거대한 분실물들의 박물관과 같은 곳을 만든 셈입니다. 앤서니에게는 이 곳이 성소와도 같습니다. 그에게는 이 기행이 각별할 수 밖에 없는 가슴 아픈 이유가 있습니다. 

죽음을 예감한 앤서니는 그의 작업과 생활 전반을 보조하던 비서 로라에게 그의 전재산을 상속합니다. 그의 손에 들어온 분실물들을 주인에게 찾아달라는 무거운 부탁과 함께. 누군가에게는 그 물건을 되찾는 것이 오랫동안 망가져 있던 심장을 되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녀는 생명력으로 가득했는데 그걸 빼앗겼지. 나에겐 삶이 아직 남아 있었는데 죽은 삶을 택했고. 그녀는 아마 격분했을 거야. 그리고 마음 아파했을 거라고 로버트는 말했지. 나는 걷기 시작하고, 다시 세상을 건드리기 시작했어. 그러던 어느 날 장갑을 한 짝 발견했지. 여성용이고, 파란색 가죽에 오른손용이었어. 난 그걸 집에 가져와서 꼬리표를 달았지. 그게 뭐고, 어디서 발견했는지 써서 말이야. 그렇게 내 분실물 수집이 시작되었어. 어쩌면 내가 발견한 모든 분실물들을 구출하면, 누군가가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아끼는 것을 구출해 줄 거라고, 그래서 언젠가는 그걸 돌려받고 깨진 약속을 바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지도 몰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네. 다른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들을 모으는 걸 멈추지 않았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그 조그만 삶의 조각들이 나에게 이야기의 영감을 줘서 다시 글을 쓰게 만들었지.


대부분의 물건들은 별 가치가 없고 돌려받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을 거라는 걸 알아. 하지만 자네가 단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들이 잃어버린 걸 되찾아줘서 단 하나의 부서진 심장이라도 고쳐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거야. -108쪽


로라와 함께 이야기의 다른 축을 지탱하는 다른 주인공의 인생사에서도 사람을 사람과 엮는 많은 관계의 모습들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인지하는 범위 바깥에도 다른 형태의 삶의 동반자의 모습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논픽션과 달리 소설은 살아가는 모습의 다양성과 내가 미처 몰랐지만 분명히 누군가는 갖고 있는 감정의 수많은 결들을 더듬어보게 합니다. 감정은 손길이 닿았던 물건과 환경에 녹아 스며들어 소유주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좋은 사물, 느낌이 좋은 공간이라는 말이 그냥 지어낸 말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겠고.


어떤 이야기건, 이야기의 종류에 상관없이. 그것이 꼭 뭐라고 이름붙여 분석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예요. 세상에 이런 것을 느끼고 이렇고 저런 마음들에 기쁨이나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모르고는 분명히 다를 테니까요. 세상이, 시스템이 너무나 똑똑해지고 있으니 인간은 굳이 똑같이 기계처럼 똑똑해지려고 하지 말고 그냥 인간다움을 더 연마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차별화가 별 건가요, 뭐... 


여기까지 쓰고 지금까지 살면서 잃어버린 수많은 물건들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봤는데 십수년 전에 남편 처음 만났던 날 두르고 나갔던 블랙워치 패턴의 캐시미어 머플러가 되게 기억나네요. 무려 에딘버러에서 사 온 건데, 아저씨, 남의 편, 아니면 그대 원하는대로 so called 오라버니, 내 머플러 도로 사 줘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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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451 환상문학전집 12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박상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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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두 부류로 나눠보자. 책이 필요한 사람과 책이 무용지물인 사람. 책을 사랑하는 사람과 혐오하는 사람. 생각을 조각도 삼아 자기를 다듬어 나가는 사람과 생각하는 회로마저 마취하고 싶어하는 사람. 책을 벗 삼는 사람과 책에 의존하는 사람. 기억하고 싶어하는 사람과 잊고 싶어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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