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비로소 눈 위에 뿌려진 작은 핏자국들을 볼 수 있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새하얀 눈길로만 보였는데. 시력의 문제는 아니었다. 시선의 차이였다. 그것은 한 인간이 속한 세계의 차이와도 같았다. 그의 세상에는 털 없는 원숭이 따위는 들어설 틈이 없는 듯했다. 그냐의 세계에서는 털 달린 동물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236쪽


전염병의 시대에 읽는 전염병 소설이라. 몰입감 쩌는구나(진짜 없어뵈네 이 말... 근데 자꾸 입에 붙는 건 왜때문이냐). 내가 이걸 이 때 읽으려고 입때껏 안 읽고 외면했었던가 이런 헛소리를 지껄이면서 눈이 벌개지도록 (ㅎㅎㅎ) 잠을 깎아먹으며 읽었다.

<28>이 무슨 내용인지 이미 다 알고 있었으며 심지어 결말까지도 본의아니게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모르는 이야기처럼 읽혔던 건 아마 지금 현재의 특수성 때문일거다. 그러니, 한껏 더 괴로워지고 싶은 분들께 바로 이 시점에서 <28>을 권한다. 도대체 이 책 제목은 왜 이래, 오래전에 구시렁거리다가 정유정 작가가 출연한 한 팟캐스트에서 본인이 설명하신 바로 그 의미 그대로... 책을 읽어나가는 도중에 여러번 책 제목을 외칠수도 있다. 소심하게 혹은 대범하게, 찰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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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홀릭 2021-02-09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28이 제가 상상하는 그 말이 맞는건가요?
찰지게...라는 말에서 어쩐지 그런 느낌이...

라영 2021-02-09 16:38   좋아요 0 | URL
그 말 맞아요. 그 방송에서 진행자가 딸기홀릭님이 물어보신 바로 이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했더랬죠. 정작가님이 ‘네, 그거죠‘ 그러면서 웃으셨었어요.

딸기홀릭 2021-02-09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아직 이건 못읽고 담아만 놨는데... 읽으면서 찰지게 할 자신있어요 ㅋ

라영 2021-02-10 14:50   좋아요 1 | URL
정말 읽다보면 진심 욕나와요. ㅎㅎ 책 속 이야긴데 이게 너무 현실같아서... ;;;
 


내가 친한 친구에게 '김원영 작가님과 녹음을 하다가 이런 일이 있었는데 말이야......'하고 아무리 열심히 설명했다 한들 그 순간의 감동을 내 것처럼 느끼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 반응들을 보고 '공유'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새겼다. 무언가를 전한 것이 아니었다. 함께 느낀 것이었다. 우리는 그 순간을 '공유'하게 되었다. -196쪽


나는 이 대목을 읽다가, 공감과 공유의 의미차가 시차에서도 약간 발생하는 건 아닐까 조금의 의심을 품게 되었다. 어떤 낱말들은 이러구러 쌍둥이 형제 같아서 여기에 저놈이 저기에 이놈이 가도 누가 뭐라하지 않는데 그런 나태한 용인 아래서 단어들은 조금씩 메워져 얕아지고 납작해진 나머지 둘 중 하나는 자멸하게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떠돌아다녔다. 

부대끼다 사라지는 낱말들을 상상하다보니 조금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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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푸드점들은 일인분으로 지나치게 많은 양을 제공한 것과 값싼 고지방 재료를 사용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아빠는 콧방귀를 뀌면서 신문을 내 앞으로 밀었다. 그러고는 경멸조로 말했다.

"모든 것이 늘 다른 사람 잘못이라는 거야."


내가 기사를 훑어보는 동안 아빠는 인간은 결단력 없는 동물이라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마침내 아빠는 오트밀 그릇을 옆으로 밀어버렸다. 그러고 엄마와 나에게 자기가 비만인 것은 돼지처럼 먹기만 하고 운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아빠는 고백했다.


"다른 사람 잘못이 아니라 바로 내 잘못이라고!!"


-137-138쪽


아저씨 진짜 완전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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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묻지 않아도 알아주고 누군가는 설명하고 표현하려고 해도 갸우뚱해하는 그런 일들은 항상 일어난다. 내가 겪는 일과 저 사람이 겪어본 일들은 범주가 다르고 수용의 깊이가 다르니까, 엄격히 말해서 세상에 내가 느끼는 감정의 파고를 백 퍼센트 온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압도적인 감정에 휩싸이게 될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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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 알아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엔 이른 진실들이 있다. 그래도 겪어 본 분들의 말씀은 새겨듣는 게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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