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안네의 일기』는 가방에서 꺼냈다. 잠들기 전에『안네의 일기』를 읽는 것이 오랜습관이었다. 어느 부분을 얼마만큼 읽을지 정해놓은 것ㅇ느 아니다. 그날 우연히 펼친 부분 한두 페이지, 혹은 하루 분량의 일기를 소리내어 읽었다.

어쩌다가 이런 습관이 생겼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안네의 일기』는 어머니의 유품이다. 어머니는 내가 열여덟 살 때 돌아가셨다.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세상에는 잠들기 전에 성서를 읽는 사람이 꽤 많다. 그런 사람들의 심리와 비슷할 거라고, 호텔의 침대 옆 서랍에서 성서를 발견할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물론 어머니는 신이 아니다. 다만 의식이 육체를 떠나기 직전 먼 곳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와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그 회로가 닮았다는 것이다. -18쪽


조금씩 형태는 달라져도 본질적으로 같은 효과를 위해 만들어진 일상의 리추얼이란 것이, 의외로 머리를 기울이고 기억을 쏟아보면 한두개쯤 바닥에 데구르르 굴러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문단이었다. 


노파를 상징하는 물건이 달력인 것처럼 주인공을 상징하는 물건은『안네의 일기』일 것이다. 그의 삶에서 반복적으로 닻을 내렸다 감아올렸다하며 구둣점을 찍어주는 상징물이니까.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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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한국어를 배우는 미국인이 가장 먼저 익히는 단어는 '복잡'이다. 이 말을 빨리 익히는 까닭은 그 발음이 영어 'pork chop폭찹'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쉽게 익히다보니 갑자기 모든 정신없는 상황이 생기면 교통 체증이나 어려운 시험 문제 등을 설명하는 것처럼 부적절한 상황에서도 무조건 '복잡하다'는 말을 쓴다. 학습자가 이런 상황을 다른 어떤 한국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른다면 그가 쓸 수 있는 말은 '복잡하다' 뿐이다. -77쪽


나는 이 말이 왤케 웃긴 거지. ㅎㅎㅎ

머릿속에 돼지고기 요리를 떠올리며 폭찹해요 폭찹해... 를 뇌까리는 외국인의 모습을 떠올리면 더욱 리얼하다.

외국어를 배우는 게 고난의 연속이고 자존감 자폭 시퀀스의 무한 재생인 건 그네들이나 우리나 똑같은가보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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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 타트는, 내 머릿속에만 있는 어떤 집의 특정한 층에 머물러 있는 그런 작가였다. 참고로 같은 층에 리처드 도킨스도 함께 산다. 한마디로 아직 내가 만나보지 못한, 만나야한다고 생각만 하고 가끔 창가를 올려다보기만 하는 그런 작가들의 집. 여하간 처음으로 거길 올라가봐야겠다 마음을 제대로 먹고 빌려온 게 이 책인데... 이었는데... 이 소설에 대해 뭐라 할 수 있는 말이 아직은 생각이 안 난다. 아 딱 하나 있다. 전혀 선생다운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적어도 내 기준에선) 선생을 보느라 힘들었다는 거... 정도...? 


밤에 침대에 누울 때마다 나는 이 지겨운 소형 다큐멘터리 영화의 관객이 되어야 한다. 나는 이 영화가 개인의 견해를 무시한 충실한 다큐멘터리인 데, 섬세한 장면까지 남김없이 담고 있는 데, 감정이 깡그리 배제되어 있는 데 자주 놀라고는 한다. 바로 이런 식으로, 내 머릿속의 이 영화는, 내가 체험한 것을 독자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자세하게 거울에 되비쳐내고는한다. 시간의 흐름과, 되풀이되는 상영은기억에다 원래의 경험에는 없었던 위험한 요소를 덧붙여서 경험을 살찌운다. -(2권)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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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만날 때 적당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또 하나의 나를 만드는 것처럼 남을 만나야 돼. 최선을 다해야 해." --75쪽


최선이라는 말을 요모조모 뜯어보는 요즘이다. 최선이 패턴을 갖고 있는 행위라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것에 가까울까.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 아닌 남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나의 최선의 마음은, 무엇으로 전달되고 또 쌓이게 되는 걸까.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는 나여야 할까 타인이어야 할까. 하나의 단어에서 쉽게 구해지지 않는 수많은 물음이 흘러나오고 또 한동안 내 주위를 맴돌다 어느 순간 답없이 사라져 버릴 것임을 나는 안다. 그러나 내가 잠시라도 가졌던 의문들이 해소되지 않고 가라앉아 있는 한 생의 어느 순간 다시 떠올라 답을 찾도록 요구하겠지. 


덧. 이슬아 작가의 글은 무엇 하나 빼놓을 것 없이 다 너무 좋다. 그는 기라성 같은 다른 작가들의 글을 보며 역시 감탄하고 감동하고 종종 좌절 비슷한 것도 하는 듯 하지만, 멀리서 그의 글을 읽는 독자로서 나는 선배 작가들이 갔던 길을 따라 종종종 뛰어가며 멀어지는 그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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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이 거세어진다. 하늘을 어둡게 만드는 흰 막이, 불길이 밤을 더 어둡게 하듯 황혼을 재촉한다. 나는 얼어붙은 채 서 있다. 맨손으로 있기엔 너무 춥지만 나는 맨손이다. 눈이 내 눈썹에 내려앉는다. 내 소매에 떨어진다. 커다랗다. 꽃과 별들. 그들의 서로  포개지고, 형태를 유지하면서, 완벽한 별표와 꽃들의 작은 더미가 되어 마치 아이들 블록 장난감처럼 그들만의 기하학으로 함께 굴러떨어진다. -181쪽


모두가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모든 사진이 뛰어나게 감각적이지는 않다. 누구든 글(이라고 부르자, 일단은)을 쓸 수 있지만 모든 글들이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지는 못한다. 미감은 어디에서 발생하고 어떻게 감각하게 되는 것인가. 내가 느낀 것을 최대한 비슷하게 타인이 느끼도록 정련하는 기술은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걸까? 


사실 우리는 답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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