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에 따라 5년에서 17년까지도 산다는데, 그 정도면 곤충 세계에선 '장수 만세'다. 그러니 땅 위에서 사는 시간이 짧아서 불쌍하다고 하는 소릴 매미가 알아듣는다면 코웃음을 칠지도 모를 일이다. 누가 뭐래도 매미의 일생은 땅 위에서 사는 단기간만이 아니라 굼벵이 시절까지 포함된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언젠가 그럴듯한 날개를 달아본다면 좋겠지만, 끝내 그러지 못한다 해도 그것 또한 어엿한 나의 삶이라고. 누가 뭐래도 나의 삶은, 굼벵이처럼 바닥을 기는 지금 이 순간까지 포함된 것이다. 진짜 삶이란 다른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사는 삶이다. -144~145쪽

 

그러니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서 지내보겠습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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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가 열두 살에 이해할 수 있었던 책은, 아직 준비가 덜 된 여덟 살 제이미한테는 흥미 없는 것이었다.

뉴저지의 한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개별적으로 읽어 주라는 내 말에 발끈하며 물었다. "아니, 그러면 더 오래 걸리지 않습니까?" 나는 "그렇습니다, 선생님. 부모 노릇은 시간을 절약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되는 것은 시간을 더 들이고 투자하는 것이지,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103쪽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제일 큰 화두는 어떻게하면 양육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어느 정도 키우지 않았나 싶은 지금도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역시 같은 문제를 놓고 머리를 굴리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성인으로 다 길러놓은 분들은 하나같이 우직하리만치 느긋하게 시간을 들여 키우는 것이 가장 품이 덜 들더라는 말씀들을 하시는데, 그런 어른들의 시선으로 읽으면 지금으로선 납득이 안 되어도 들어서 손해날 말씀은 아니겠구나 그런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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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반대로 서투른 사람이 튀긴 건 흐리멍덩하고 튀김옷이 무겁다. 말하자면 누더기를 걸쳐 입고 공연히 질질 끌고 다니는 것 같다. "저기요"하고 말을 걸면, 몸 전체가 너무나 묵직해 보이는 튀김이 스르르 뒤돌아 둔중한 말투로 느릿느릿 말한다.

"하아, 왜 그러세요?" 흡수해 버린 기름으로 범벅이 되어 촌스럽게 살쪄 있다. -59쪽

 

명확히 초점을 맺은 문장이 캐릭터를 눈 앞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데 그게 또 책상을 두드리며 웃게 만든다. 이런 튀김... 살면서 우린 모두 한번쯤 만나본 적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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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사실이란 없다, 다만 해석들이 있을 뿐"이라는 말이 현대의 사유 방식에서 중요한 이유이다. 소위 명백한 '사실'이라는 것은 사실상 독자들의 가치관이 이미 개입된 선별적 '해석'이기 때문이다. -231쪽

 

무엇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살면서 요즘처럼 깊었던 때가 있었을까? 어른의 개인적인 가치관이 아이에게 전달될 수밖에 없는 거라면, 가능하면 바른 쪽으로 전하고 싶다는 게 일반적인 부모의 바람일 것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뭘까. 너는 뭐라고 생각하니, 이렇게 한 번 대놓고 물어보고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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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외국을 오가며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만났다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타인과의 관계에 고민이 많았다. 누군가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늘 '바람이 지나갈 자리' 정도의 거리를 둬야 한다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듣자마자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제대로 꼬집은 말이라며 무릎을 탁 쳤다. -54쪽

 

나이를 먹으면 인간관계가 쉬워질 줄 알았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나이를 먹을수록 이건 이래야지, 저건 저래야지라는 나름의 기준을 갖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나도 그렇고 남도 그렇더라. 이건 세상 무너져도 이래야 돼, 그런 사람과 말을 섞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하루의 피로도가 증가하는지... 모두가 겪어본 일 아닐까. 20대때 그런 사람과 잠깐 가까이 지냈던 적이 있다. 뭘 몰라서였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줄기차게 전화해서 너 왜 전화 안 해, 우리 친구잖아. 연락도 안 하고 그러면 돼? ... 이걸 사 년을 꼬박 겪다가 아 내가 호구 등신이었구나를 그제서야 깨닫고 욕을 한바가지 얻어먹은 값으로 정리했던 그 옛날의 기억도 더불어 떠오른다.

아쉬울 때만 연락하는 얌체쟁이도 싫지만 허구헌날 전화통 붙잡고 늘어지는 분들도 사양하고 싶어지는 요즈음.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내가 뭘 굳이 이런저런 걸 다 견뎌가며 받아줘야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애들 받아주는 것만도 힘들어 나가떨어지겠는데.

 

뱀발.

이 카테고리를 죽 쓰다보니 이런 방식으로 나라는 사람이 드러나는구나를 깨닫게 된다. 우스운 건 그게 나도 몰랐던 부분이기도 하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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