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7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기는 재미있게 읽었으나 굳이 리뷰를 쓸 생각이 안 드는 책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무슨 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굳이 여기에 보태야 할 말이 생각나지 않기도 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딱히 밝혀 쓰고 싶지 않기도 하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읽기만 해서 그렇기도 하고, 뭐 그런 이유들이죠.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중에서 선뜻 리뷰를쓸 마음이 안 생겼던 것도 그래서이기도 하고요. 이 책도 그렇게 묻어두고 싶었는데 마침 이야기할 적절한 계기가 생겨서 몇 줄 써두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요새 뉴스마다 난리였죠. 코로나 바이러스와 선거 얘기를 젖혀두고 가장 뜨거웠던 뉴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성착취 동영상을 상품화해서 이윤을 챙긴 범죄자에 관한 소식이 매일같이 포털 메인을 열었습니다. 음... 이런 류의 인간들이 어떻게 어린 여학생들을 끌어들이는지를 본의 아니게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비슷한 인간들일 거예요. 첫째 딸이 굉장히 대담한 반면에 둘째 딸이 필요 이상으로 심약하고 겁이 많은 성향입니다. 첫째 아이는 의심도 많아서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나 도착한 메시지는 상대도 하지 않는데, 둘째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일년 전쯤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아이가 받았습니다. 전화를 건 이는 건들거리는 목소리로 아이에게 "왜 남의 전화에 멋대로 전화를 걸어놓고 받을라치면 끊고, 또 끊고, 누구시냐고 묻는 문자는 다 씹어버리느냐? 목소리 보니 어린 여학생 같은데, 이러는 거 나쁜 짓인거 몰라요?" 라고 대뜸 호령을 했어요. 당연히 아이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다만, 너무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아이를 야단치고 을러대기 시작하니까 겁이 많은 아이는 내가 실수로라도 그랬나? 하고 겁에 질리더군요. 옆에서 듣고 있던 아이 아빠가 화가 나서 전화를 뺏어 끊어 버렸습니다. 보호자가 옆에 있는 줄 몰랐겠지만, 이 작자는 다시 전화를 걸더니, 남편이 받은 줄도 모르고 계속 헛소리를 지껄이는 겁니다. "너, 함부로 남의 전화에 막 장난 전화 걸고, 끊고, 내가 경찰에 신고한다" 라고요. 아이는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이 아빠가 응대하니까 횡설수설하더니 전화를 끊어버리고 욕으로 범벅을 한 문자를 몇 통을 보내더니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더라고요. 그 사건이 있고 바로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아이 핸드폰도 해지하고 뭐 그랬습니다만, 요즘의 뉴스를 보다 보니 그 사건이 기억이 났어요. 패닉하기 쉬운 성향의 아이들이 이런 인간들의 같잖은 수법에 걸려 들어가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거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가리겠습니다 ▼

여하간, 이런 짓거리를 벌이는 인간들도 쓰레기지만요. 이런 걸 컨텐츠라고 소비하는 인간들도 못잖게 쓰레기인데 왜 그들은 물 밖으로 끄집어내지 않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분명 한둘이 아닐 겁니다. 청원인수가 그 사실을 증명하죠. 그리고 또 어떤 어르신이 그러셨다면서요. 누가 무슨 청원을 한다고 그걸 어떻게 다 법으로 만드냐고 했다던가? (사실 확인은 안 했습니다) 그 말을 누군가에게 듣는 순간 자동으로 이 책이 떠오르더란 말이죠.

아, 왜요. 켕기는 게 있으신가. 


물론 법이라는 게 전체 국민의 몇 퍼센트가 원한다고 그렇게 뚝딱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압니다. 그런데 그 청원이라는 게 어떤 정서에서 자라 올라온 건지 조금이라도 감안할 수 있는 공감력이 있다면 할 수 있는 말이 아닌 거죠. 그러니까 찔리는 거 있으세요? 라는 비아냥이 메아리치는 것도 인지상정인 겁니다. 힘 있는 사람, 그들이 켕기는 짓을 할 때, 그리고 그것을 감추고 싶어할 때, 우리는 어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할 수 있는가. 


이 책에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정말 스케일이 큽니다. 그리고 누구나 갖고 있는 의문이죠. 저들은 왜? 그런데,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기 때문에 소설의 끄트머리는... 이해는 하지만 정말 속상하게 해요.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은연중에 내리누르는 압박감으로 인한 비자발적인 동의로 DNA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이상적인(?) 잠재적인 범죄 감시 및 통제 시스템이 구축된 사회가 배경입니다. 주인공은 그 시스템의 설계자 중 한 사람이며 시스템을 맹신하죠. 이 시스템이야말로 범죄율이 0%에 가깝게 내려가도록 사회를 안전하게 유지해 줄 핵심적인 인프라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요. 맹목적인 믿음이 삶을 배신합니다. 주인공은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어떤 설계가 이제 자신을 죄어오는 덫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의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시스템의 가장 내밀한 설계자이며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될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던 피해자들. 그들이 공표하려고 했던 데이터의 비밀은 무엇이며 왜 시스템의 강력한 옹호자였던 주인공은 누명을 뒤집어써야 했을까요.


이것이 이 책의 제일 주요한 미스터리이고 이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혈압이 급상승하면서 스리슬쩍 묻혀버린 어떤무슨어떤 사건들과 또 어떤어떤 분들이 막 생각나는 건... 보너스로 따라오는 빡침입니다. ㅎㅎㅎ 아무튼, 재미있고 시의적절하며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인 것은 분명해요.  

도로 접을까요 ▲


한마디로 통제가능한 사회란 건 있을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거고, 데이터는 평등하게 열람되어야 하며, 그렇다고 또 살아 움직이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유기체를 데이터화하려는 시도도... 그게 빅데이터건 뭐건, 좀 적당히들 해 두어야 한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하는 책입니다. 제목이 되게 애매하게 단호한 느낌이네,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나면 제목이 스포일러네... 싶기도 하고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해동안 읽은 책들을 모아놓고 대강의 결산 비슷한 것은 하지만 올해 최고의 책, 과 같은 부담스러운(그리고 책임을 져야 할 것만 같은 무게있는) 타이틀을 붙여놓고 한두 권을 고르는 일은 안 했습니다. 말 그대로 부담스럽고 무서우니까요. 물론 가까운 친구들이 주로 둘러보고 가지만서도 누군가가 우연히 '이 책이 올해 읽은 최고의 책이었다'라고 쓴 글을 보고, 아니 뭐 그런 책을 좋다고 추천해요? 라고 묻는다면 극소심(그리고 속으로는 가시를 세우는)한 저는 아 그런가요... 하고 말꼬리를 흐릴 것만 같거든요. 그런데 이제 겨우 3월 중순을 보낸 이 시점에서, 남은 몇 달 동안 책을 더 이상 안 읽을 것도 아닌데 이 책은 정말 최고였어라고 몇 번이고 되뇌게 하는 소설을 만났고 이 책에 대해서 몇 줄이라도 떠들지 않으면 입이 간지러워서 어떻게 될 것 같은 기분에 꽉 짓눌렸단 말이지요. 


읽고 싶은 책을 내가 직접 고르는 경우가 더 많지만 책이 나를 찾아오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그닥 없는 순간에도 '자율성'을 발휘하고 싶어하는 게 인간 본성이어서일까요, 예고된 도서관 휴관을 앞두고 좀 허전해진 한국책 서가를 맴돌다 눈에 익은 작가 이름을 발견했어요. 이 작가의 전작 중에서는 두 권을 읽어 보았고요. <오베라는 남자>,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입니다. 이야기로서의 매력은 <오베...>가, 캐릭터의 생동감은<할머니가...>가 훨씬 좋았습니다. 즉 두 가지를 모두 겸비한 느낌은 아니었다는 뜻이예요. 개인적인 판단으로서는. 


공통적으로 모아지는 특징이라면 이런 거였습니다. 굉장히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을 오밀조밀 뜯어보는, 그래서 뭐든 꿰뚫어보고 있는 노인 같은 작가다...라는 것. 어느 한 면만을 보고 속단하기에 사람은 너무 많은 얼굴을 갖고 산다는 거, 당신들이 잊고 있을수도 있지만 어떤 일들은 둘 이상의 각도에서 바라보고 생각해봐야 한다고, 손을 뻗어 미처 보지 못한 어떤 부분을 가리켜 보여주는 예리한 감성의 소유자일 것 같다... 라는 것. 

어떤 환경에서 성장하고 어떤 교육과 독서와 여타의 경험을 통해 이렇게 너그러운 시선으로 사람들을 감싸안는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됐을까. 어떻게 해서 이렇게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결점투성이고 치명적인 과오를 저지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인물들을 창조해냈을까. 인간으로서는 바닥인 것 같은데도 그 사람 마음 바닥 어딘가에는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보듬고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아주 쉽게 선택하는 비윤리가 어째서 옳지 않은지, 그것이 어떻게 의도된 무심함 속에서 타인을 목조르는 올가미가 될 수 있는지를 이토록 선명하고 인간미 넘치게 호소할 수 있을까. 

세상의 많고 많은 험악하고 질 나쁜 사건들의 피해자가 어떻게 삶을 힘겹게 이어나가고 있는지, 그들에게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잘못들이 무엇인지 이렇게나 남의 일 같지 않게 마음 불편하게 하면서, 모든 진실을 뾰족하게 다듬어 찔러넣어 아프게 하는 이야기가 또 있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절대 즐겁지 않습니다. 굉장히 괴롭고 아파요. 그렇지만 그 아픔은 우리가 알아야만 하는...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고통이기 때문에, 저는 진심으로 이 책이 더 많은 독자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이 소설은 폭력의 피해자가 실제 당했던 그 폭력보다, 생각없는 2차 폭력들이 양산되는 시간 속에 피해 당사자를 포함해 그 가족까지 피해자가 되어버리는 과정을 훈계조도 설득조도 아닌 건조한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정말 무덤덤해요. 그러니까 그 감정은 고스란히 독자가 느껴야만 합니다. 쉽게 손가락질하고 쉽게 말을 옮겨 상처를 곪게 하는 무심함이 바이러스와 다를 게 뭔가 생각하게 하죠.

단순히 어떤 폭력사건에 대해서만 서술하는 이야기는 아니예요. 독자를 이야기의 배경인 베어타운 안으로 깊숙이 끌고가는 주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요. 그밖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인물들이 곁을 지키며 이 두꺼운 소설을 든든하게 떠받칩니다. 

자신의 일로서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번번히 남편의 직업적 소망에 짓눌려 자신을 희생하는 아내의 이야기는 속을 답답하게 합니다. 한때 가까웠지만 마음의 거리는 갈수록 벌어지는 부부사이를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철렁해져요. 너무 현실적이어서요. 

끌리는 이성에게 거절당하고 그의 가장 숨기고 싶은 비밀을 폭로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해요. 잘못인걸 알지만 우리도 그렇게 순간의 분노와 좌절에 휩싸여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던 순간이 있었으니까요. 주부 노릇이 아무리 잘해봐야 본전이라는 말까지, 작가는 속시원하게 해줍니다. 어떻게 이런 작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나요. 


이야기가 흘러가는 순간순간마다 작가와 소설 속 인물들과 이야기의 방향과 다루고자 하는 주제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의문이 쉴새없이 싹틉니다. 계속 궁금해서 책장을 넘기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최근에 내가 읽었던 그 어떤 책들 중에서도 이렇게 넘치는 질문을 끌어올린 책이 있었던가하고요. 계속 질문하게 하는 책은 좋은 책입니다. 많은 독서가들이 말하고 있듯이요. 물론 모든 독자가 같은 질문을 하란 법은 없겠지만요. 묻게 만들고 답하기 위해 생각하게 하고. 역시 책은 그래서 읽는 것인가 봅니다.


이곳에서 아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저지르는 끔찍한 잘못은 대부분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뒤로 물러날수록 실수는 더 커지고 결과는 더 끔찍해지며 자존심에 더 엄청난 금이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31쪽


"애들 꼬맹이 시절이 기억나요, 파티마? 유치원으로 찾아가면 애들이 달려와서 말 그대로 내 품속으로 뛰어들잖아요. 내가 받아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온몸을 맡기잖아요. 나는 그 순간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파티마는 웃으며 말했다. "아맛이 하키를 하고 있으면, 행복해하면 나도 똑같이 느껴져요. 어떤 건지 알죠?" 안-카트린은 알고도 남는다. 그래서 두 사람은 친구가 됐다. -117쪽


부모 간의 애정이 식으면 아이들은 아주 미묘한 것을 통해, 심지어 '너희'라는 아주 사소한 단어를 통해 알아차린다. 마야는 요즘 매일 아침마다 그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그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인 척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예전에 그녀의 부모님은 서로를 그냥 '엄마'와 '아빠'라고 불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딸, 엄마가 진심으로 너를 천 일 동안 외출 금지시키겠다는 건 아니야." "딸, 네가 만든 눈사람을 아빠가 일부러 무너뜨린 거 아니야. 발에 걸려서 넘어진 거지."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한쪽이 거의 아무렇지 않게 "네가 집에 없으면 너희 엄마가 엄청 걱정하는데, 전화를 해주면 안 되겠니?"라고 문자를 보낸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너희 아빠랑 나는 너를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한다는 걸 잊지 마"라고 보낸다. 결혼 생활이 파탄 났음을 알리는 한 단어. 그게 바로 '너희'다. 둘은 이제 서로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건가.  -137쪽


엄마 노릇은 집의 토대를 굳히거나 지붕을 고치는 것과 같다.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야 하고 완벽하게 끝내도 전혀 티가 나지 않는다. 아무도 칭찬을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한 시간 동안 야근을 하는 것은 예쁜 그림을 걸거나 전등을 바꾸는 것과 같다. 모두가 알아봐준다.  -299쪽


우리는 항상 공격한 쪽의 감정을 변호한다.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쪽이 그들이라도 되는 듯이.  -398쪽


다들 이건 한 사람에게 벌어진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건 거짓말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일은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럴 리 없다. 속으로는 우리도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잘못이라는 것을. 우리의 잘못이라는 것을. -414쪽


그 별채 안에서 마야의 상처가 치유되지는 않는다. 그녀는 타임머신을 만들지도 않고 과거를 바꾸지도 않고 기억상실이라는 축복을 누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날마다 여길 찾아와 무술을 배울 테고 조만간 슈퍼마켓에서 줄을 서 있을 때 공교롭게도 모르는 사람이 그녀의 몸을 스치고 지나갈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움찔하지 않을 것이다. 소소한 사건들 중에 가장 큰 사건이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날 그녀는 슈퍼마켓이 아닌 다른 곳에 다녀오는 듯이 집까지 걸어갈 것이다. 그러고는 그날 저녁에 연습하러 여길 다시 찾을 것이다.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431쪽


"개자식들 앞에서 울지 마요, 벤이 선배."

벤이는 걸음을 멈추고 눈을 휘둥그레 뜬다.

"참지를 못하겠는데...... 너는 무슨 수로 감당하니?"

마야의 목소리는 하는 얘기에 비해 힘이 없다.

"그냥 들어가요.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고 나쁜 놈이 쳐다보면 그쪽에서 고개를 돌릴 때까지 눈을 똑바로 쳐다봐요.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요."

벤이는 그의 안에서 금이 가는 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묻는다.

"무슨 수로 견뎠니? 지난 봄에...... 그런 일이 있었을 때......무슨 수로 버텼니?"

그녀의 눈빛은 냉정하고 목소리는 딱 부러진다.

"나는 피해자가 아니에요. 나는 생존자예요." 


그녀는 학교를 향해 걸어간다. 벤이는 영원의 시간 동안 망설이다 그녀를 따라간다. 그녀가 그를 기다린다. 그의 옆에서 걷는다. 그들의 걸음은 느리고 어쩌면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살금살금 그 복도로 들어서지 않는다. 폭풍처럼 진격한다. -522~52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후도 서점 이야기 오후도 서점 이야기
무라야마 사키 지음, 류순미 옮김 / 클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기서 나름이라는건 호오의 기준이건 질적인 판단의 기준이건 뭐든 갈래로 나누는 기준으로 써 본 말입니다.


요즘 영어공부 겸 (갈수록 언어감이 떨어지는 건 공부밖에 답이 없는...) 북클럽에서 최근 읽기보고때 이야기할 거리를 늘려갈 겸 책 관련 팟캐스트를 발굴해서 듣고 있는데 이 방송 진행방식이 좀 재미있습니다. 진행자가 한 명의 게스트를 초청해요. 그리고 초대손님에게 최애책 3권, 싫어죽겠는 책 1권, 그리고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을 소개하게 하죠. 그리고 드디어 진행자가 짠! 하고 저는 당신의 다음 읽을거리로 이런 책들을 추천할게요, 하고 3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간략한 소개와 왜 그 책을 추천하고 싶은지 이유를 덧붙여서요. 방송 포맷은 일전에 싫은 소리를 잔뜩 썼던 일본의 어떤 서점원이 쓴 책에서 본인이 했던 책 추천하는 과정과 상당히 닮아있지만, 느낌이 아주 다릅니다. 일단 초대손님들이 '저자'의 신분을 갖고 있던가 꽤나 책벌레라던가 이런 입장의 차이가 좀 있고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열정적으로 소개하는 것을 듣는 재미도 있어요. 그러니까 어쨌건 진행자가 추천을 하면 추천받은 게스트 입장에서 분명히 타이틀 하나 정도는 기억하지 않을 리 없다는 믿음이랄지 확신이랄지 그런 걸 갖고 있는 듯해요. 리스닝 연습은... 힘들지만 해야하는 거고요...


현재까지 한 200여 회차가 올라와 있고 끽해야 다섯 개 정도의 분량밖에 못 들었지만 놀라웠던 건 본인이 좋아하는 책을 이야기할 때의 톤이, 초대손님이 누구건 간에 몹시 비슷해진다는 거였습니다. 사실 당연한 건데도요. 좋아하는 감정을 숨길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표정도 제스추어도 아무것도 없이 목소리만 갖고도 이 사람이 어떤 표정과 액션을 곁들여 말하고 있는지가 너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지더라고요. 일면식도 없는 건 물론이고 이름도 처음 듣는 외국인인데도!!!


여하간, 전에도 한 번 쓴 적이 있지만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쓸 때 참 어렵습니다. 내가 이걸 왜 좋다고 생각하는지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설득력있게 전하고 싶은데 그때마다 머리를 쥐어뜯게 된다고. 그런데 이 마음을 똑같이 본인 책에서 표현한 글 쓰는 이를 발견했어요. 아주 우연하게. 그렇게 그 방송 진행자를 알게 됐습니다. 이만치 독서경험이 풍부하고 책도 몇 권을 쓴 사람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구나. 

누군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지구상 어딘가에 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도 책 읽는 큰 기쁨 중 하나 아니겠어요. 


아무튼, 말이 길어졌는데,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 왜 좋은지 풀어 말하는 것'은 그토록 어렵지만, 별로 안 좋은 것이 왜 안 좋은지를 말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조금 편합니다. 그리고 죄송하게도 그 예를 들어 언급할 책을, 좋아하셨던 분들께는 왠지 죄송한 마음이지만 사람이라는 게 원래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다 다르니까요. 이유도 같을 수도 없고요. 그러니까 그냥 가볍게 보고 넘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당연하죠. 제 경우에도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삶에서 닥쳐오는 어떤 순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어떤 태도로 견뎌내야 하는가... 하는 것을 간접적으로라도 배우고 싶은 이유에서입니다. 많은 문학이 인간 삶의 여러 측면들을 다루고 있으니까요. 

살아간다는 건, 누구나 알듯이 그다지 녹록하지가 못합니다. 꼬일대로 꼬여버린 일들이 쉽게 풀리는 일 따윈 현실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아요. 뜨개실 엉킨 것을 혹시 풀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깊이 공감하시겠지만 그 별것도 아닌 실타래 하나가 꼬여도 이건 사람 속을 뒤집어 놓습니다. 가끔은 그냥 가위로 다 잘라버리고 싶어져요. 실의 요정이 나타나서 엉망진창이 된 실타래가 절로 스르륵 풀어져 돌돌 감기도록 지팡이를 휘둘러주는 일 따윈 절대 일어나지 않고요. 


정말 놀랍게도 갈등을 다루는데 미숙한 작가들을 생각외로 자주 만나게 됩니다. 

아무리 세상 마음 편하게 곱게 자랐어도 속을 할퀴어놓는 감정의 격랑이든 타인과의 갈등이든, 그런 풍랑 한번쯤 겪지 않고 성인이 된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왠지 소설 속에서는 그렇게 온실 속 화초 같은 분들을 종종 봅니다. 힘들 때마다 이렇게 누군가가 대기하고 있다가 기적의 문을 열어주다니, 작위적인 설정도 정도가 있다고요. 웹툰도 가끔 보는데 거기서도 갈등을 몰고 올 것 같은 인물이 등장했다가 몹시 어이없게도 어떤 영웅적인 주변인물의 활약으로 그냥 무대 뒤로 사라지는 설정도 꽤 봤어요. 

아... 좀... 허탈해요. 싸움 구경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흔히 자신의 삶에서 그러듯 평범미를 자랑하는 주인공이 평범하지 않은 갈등 구조 속에서 내적 평안이든 외적 평화든, 뭐가 됐든 그 모든 것이 다 차분히 정리된 정적인 상태에 어떻게 이르는지를 보고 싶고 책장을 넘기며 응원하고 싶어하는 게 일반적인 독자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첫장부터 막장에 이르기까지 그냥 편편한 스토리가 이어지면, 좀 안타까운 건 사실이죠. 내 인생은 이렇게 뭐가 맞춘 듯 딱 맞아 떨어지지도 않고 어디서 귀인이 갑툭튀할 팔자도 아닌 게 분명한데. 심지어 아니꼬운 기분마저 올라와요. 물론 그냥 마음이 따뜻해지는 게 좋아서, 남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게 좋은 착한 사람들도 세상엔 분명히 많아요. 단지 제가 그 착한 사람이 아닐 뿐이고 내 인생의 귀중한 몇 시간을 털어넣은 만큼 여기서 뭔가 하나 건져가고 싶은 기브앤테이크 정신이 투철한 게 문제일 뿐이지... 쓰다보니 내가 이렇게 전투적으로 책에서 뭔가를 털어가려고 하는 사람이었던건가 갑자기 회의가 들기도 하고. 

그래도 이왕이면 남의 인생 행복한 것 보는 게 좋기는 합니다. 다만, 그저 그 길을 가는 사람이 뭔가 나와 좀 다른 부류의 사람 같으면 사알짝 힘이 빠지는 것도 부정하긴 힘들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책 읽어주는 엄마, 철학하는 아이
제나 모어 론 지음, 강도은 옮김 / 한권의책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어떤 계기, 생활에의 연관성, 그런 것을 기억해내지는 못하지만 철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철학이 뭔지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지만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내가 무엇을 '안다'고 말하는 행위 자체에 실린 책임의 무게가 상식 외로 무겁기 때문에 뭘 안다고 말하는 사실 자체도 굉장히 조심스러워지긴 합니다. 아무튼, 철학이라는 그 말이 품고 있는 온도가 그저 가까이 다가앉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이었다고 해야겠어요. 옮긴이의 말 첫머리에 '철학한다는 것은 자기 삶을 이해하기 위한 '수많은 질문과 탐구 과정들'에 다름 아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걸 읽고 아하, 했어요. 그렇구나. 내가 왜 내 인생, 시간, 하루하루의 의미를 어딘가에 실으려 애썼는지, 왜 이런 방식으로 살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 늘 철학 언저리를 기웃댔구나. 나름의 이유를 찾았어도, 그게 정말 맞는지 - 맞고 틀리는 문제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구나. 어떤 책이건, 책을 읽다보면 일순간 눈 앞이 탁 트이는 기분을 느낄때가 종종 있죠. 이런 방식으로.


이 책은 왜 아이에게 도구로서의 철학이 필요한지,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 철학적인 사고를 훈련시킬 수 있는지,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이득은 무엇인지를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친절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설득력 있습니다. 다만 이런 것을 '독후활동'의 일부로 간주해서 강요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채 아이의 입을 열려고 하면 역효과만 날 거예요. 평소 아이들의 일없는 이야기도 경청해 주고, 어른과 아이가 상호존중하는 태도로 대화하는 분위기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가정이라면 꼭 적용해 보시라 권하고 싶어집니다. 


저자는 아이가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할 때가 바로 철학적인 탐구를 견인할 수 있는 때라고 설명합니다.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는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어른들은 곧잘 아이들의 호기심어린 질문과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볍게 여기곤 합니다. 그래서 '아직 몰라도 돼', '별 게 다 궁금하다'등의 무시하는 반응을 보이죠.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이해를 하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29쪽)에서 읽히듯 그건 그냥 인간으로서의 자연적 본능 중 하나입니다. 즉 철학하는 자아는 인간 본능 중 하나라고도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철학적인 자아는 미지의 낯선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아를 말한다. 추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스스로 무엇을 말하고 생각하고 행하는지를 의식하는 능력은 철학하는 자아의 근본을 이룬다. 이 능력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의미를 탐색하고 또 다른 물음을 찾아가도록 이끌어간다. -30쪽


자신감을 갖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성장해간다는 것은,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의문들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것을 뜻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철학을 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뜻이다. -31~32쪽


사고력의 자립은, 경제적 독립만큼이나 중요하지만 그닥 교육적인 면에서 강조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인생은 사고력 수학에서 요구하는 범위의 사고능력보다는, 훨씬 더 깊고 폭넓은 의미에서의 사고 능력 - 즉 정답을 찾아가는 능력보다 가능성의 범주를 타진하고 스스로 이성을 움직여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쌓아나갈 때 발달되는 그런 류의 사고력을 동반자로 삼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아이들과의 철학적인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에 중요한 의문들을 생각해보도록 이끌어주는 일이다. 아이들은 세상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깨달을 때 성장한다. 아이들은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자기 힘으로 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때 철학하는 경험을 통해 능동적으로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42쪽

말처럼,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확인하지 않고서야 어디로 발을 옮길지를 무슨 수로 알겠나요. 솟아오르는 질문들이 나를 가득 채울 때, 그 질문에 적절한 답을 찾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나를 추동하는 법입니다. 그러니 어른으로서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 중 하나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아이들의 질문을 성실하게 받아주고, 적절한 피드백으로 생각의 항해를 떠나게끔 격려하는 일이 되겠지요. 

어려서부터 세상을 둘러싼 여러 궁금증을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하고 부모나 믿을 만한 어른과 함께 토론한다면, 아이들은 차근차근 스스로 탐구하는 힘을 갖게 된다. 아이들은 해답보다는 질문에서, 고정되고 정해진 것보다 불확실함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능력이 발달하면, 자라면서 만나게 될 복잡한 세상에서도 안정적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일은, 세상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기의 위치를 아는 일이다. 철학하는 자아를 길러주면, 아이 스스로 세상을 이해할 때 필요한 논증하는 능력과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발달한다. -233~234쪽


어차피 풍랑이 몰아치는 한가운데로 들어온 마당입니다. 더 이상 기능도 못 할 조타기를 붙들기보다 수영능력을 점검할 때이니까요, 좀 더 본질적인 것을 삶에 끌어오는 노력이 필요한 때인 듯해요. 인간을 인간이게도 하는 비범한 능력, 사고하고 성찰하는 법을 가르치고 전달하는 좋은 책들을 쓰시는 분들께 응원과 더불어 감사의 마음을 함께 적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래학교
EBS 미래학교 제작진 지음 / 그린하우스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대가 변한다>

변했다, 변할 것이다도 아닌 변한다는 말 속에는 진행형의 풍랑을 온 몸으로 다 받아내야 하는 우리의 불안과 혼란이 모두 실려 있습니다. 물론 모두가 다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변하는 것들이 대다수이고, 심지어 그 변화의 바람이 우리를 어디까지 불어젖힐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불안한 예측만 할 뿐이죠. 변해야만 하는 것들도 있을 거고요. 변해야만 하는 것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 학교를 꼽을 수 있을 겁니다. 자라나는 세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고, 가정 다음으로 많은 영향을 받는 곳이니까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학부모들이 학교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가보다 평가의 기준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온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게 사실이죠. 평가의 기준을 따지기에 앞서 학교의 존립 자체가 부분적으로나마 흔들리고 있는 사실부터 직시해야 하는 때인데... 


학교란 과연 무엇일까요. 학교는 어떤 곳으로 존재해 왔으며, 현재에는 어떻고, 앞으로는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까요.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목고가 언제 없어지고, 학종이 어떻고 저떻고, 중요하지만, 그 전에 생각해야 할 것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아요. 주름살 늘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요. 학교는 뭐 하는 곳이고, 학교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또 뭐고, 이것들이 현재 정의되는 방식과 앞으로의 방식이 과연 같을 수 있을까요. 


이 책은 바로 그 고민과 탐구의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학교란 과연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고민의 여정이죠.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이것도 그저 하나의 '길'로 봐야 한다는 점 정도 아닐까요. 고민을 함께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좋은 답은 많아질 겁니다. 


서문에서 이런 물음이 등장하면서 읽는 사람의 머릿속을 어지럽힙니다. 토다이라는 일본의 AI는 2013년부터 대입시험에 응시해 왔다고 해요. 첫해 연구진의 고민은 이런 거였다네요. '인간이 쉽게 푸는 것을 왜 AI는 풀지 못할까?' 

그러다 2016년에 이르면 이들의 고민은 좀 더 어두워집니다. '인간이 AI와 경쟁할 수 있을까?'

토다이가 틀린 추론류의 문제를, 일본 중학생의 1/3 가량이 마찬가지로 맞추지 못했다고 해요. 그래서 이 질문은 이런 고뇌에 가 닿습니다. 

인간을 AI처럼 교육시키는 현상이 교실에서 일어나는 건 아닐까? 이해와 해석, 추론 능력까지 상실한 인간이 AI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방법은 있을까?

사실이건 아니건 이런 고민이 대두됐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문제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제 손으로 제가 들어갈 구덩이를 파고 있는 것이나 진배없는 거잖아요. 인공지능보다 월등한 인간의 어떤 지적인 능력을 개발하기보다 묻어버리고, 절대 쫓아갈 수 없는 기계적 능력을 배양하는 데 어린 세대들의 소중한 시간을 쏟아붓고 있는 현실에 저는 전율을 느낍니다. 

최근에 러시아에서 온 어떤 분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무슨 이야기 끝에 나온 화제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역사에 관한 이야기였죠. 본인이 학생 시절 역사라면 아주 치를 떠는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시험 때문에 외워야 했던 역사적 사건들의 핵심 내용과 발생 시기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회상하더군요. 그런데 최근 역사에 아주 깊은 흥미를 느껴서 관련 서적들을 탐독하고 있다는 거예요. 왜냐고 물으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들을 만들어 낸, 어찌보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 일들의 바닥에 깔려있는 인간의 마음과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들이 굉장한 관심을 끌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관점을 갖고 역사를 다시 접하니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 있었나 하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런 호기심의 싹이 좀 더 어릴 때 자랄 수 있도록,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었나 하는 마음을 스스로 키우도록 배려해 주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왜 모두가 다 수학을 잘 해야 하고 영어 도사가 되어야 하나요. 아니 막말로 그렇게 영어를 열심히 가르쳐 놔도 입 한 번 열기를 어려워하는 것도 참 문제고. 


아무튼,

원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던 내용을 책으로 추린 것이라 조금 아쉬운 면이 없진 않습니다. 그래도 꼭 알려야 하겠다 싶은 내용을 핵심적으로 추려서 꾸린 책이라는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이건 좀 중요하구나 생각했던 부분만 조금 간추려 볼게요.



영국 UCL 로즈 러킨 교수는 미래의 AI는 지능지수가 500-100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미래 환경에서 적응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부모로서 아이를 판단할 때의 기준을 학교 성적 잘 받아오는 아이 vs. 못 받아오는 아이로 삼고 있었다면 반성과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죠. 그러니까 이제 정말 중요한 능력은 시험 잘 보는 게 아니라 학습능력 그 자체인 겁니다. 무엇엔가 관심을 갖고 알려고 덤벼들고, 실패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스스로 지적 실험을 거듭하며 그 과정에서 논리력을 훈련할 수 있는 능력. 어떤가요, 학교에서건 가정에서건, 아이에게 이런 환경이 주어져 있을까요? 


책에 따르면 싱가폴에서는 SLS- Student Learning Space, KF- Knowledge Forum 이라는 두 종류의 디지털 포럼이 활성화돼 있다고 합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든 과목의 학습자료가 제공되며, 뿐만 아니라 교사의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라고 하고요. 

인도는 Tinkering Lab이라는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언제든 학생들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합니다. 노르웨이는 태블릿을 이용한 읽기와 쓰기 교육이 현재로서 이루어지고 있고요. AI교사가 바른 읽기를 지도합니다. 짜증과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반복 학습을 시킬 수 있으니 이런 부분에서 AI를 도입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 같습니다. 


시대의 부름도 그러하거니와 학생 중심의 교육이 실행되려면 디지털 기기를 거부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학생 개개인의 학습 진도와 속도, 또 흥미와 이해도, 원하는 학문적 폭과 넓이를 모두 충족시키는 효과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교육의 개인화가 불가피하니까요. 이러한 학습 개인화를 실제 교육 현장에 투입하려면 어마어마한 자원이 투입돼야 함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불신과 투쟁과 기타등등의 불편한 감정적 소모가 몹시 크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인 우려로는 학습이 이렇게 디지털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시력손실도 어마무시하지 않을까... 짐작만 해 보고요. 디지털 네이티브로 자라는 아이들이 적어도 40대는 되어야 건강 측면에서의 유의미한 데이터가 축적될 것 같아 이 부분은 정말 불안하기만 하네요. 


미래학교를 설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커리큘럼을 짜는 일이었다고 해요. 많은 논의 끝에 지식 전달 - 실생활과의 연계성 - 자발적 설계/탐구 과정을 아우르는 커리큘럼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는군요. PBL project based learning이 필요한 이유겠지요. 실제로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미래역량에 해당하는 창의성 - 협업능력 - 의사소통능력을 놀라울 정도로 발달시킵니다. 더하여 디지털 기반 교육과정에서는 현 교육환경에서 사실상 쉽지 않은 교사와 학생간 소통채널이 아주 활성화되었으며, 학생간 소통도 원활했다고도 하고요. 또한 개인 맞춤화라는 말이 무색치 않게 각 개인의 진도와 관심사에 따라 교과서 내용을 자유롭게 추가 및 편집하게끔 유연하게 구성했다고 합니다. 클라우드를 적절히 할당해 스스로 자신만의 교과서를 만들게 했다고 하니, 자료를 모으고 적절하게 편집하는 능력 또한 발달했겠지요. 


후반으로 가면 학교의 존재와 교사의 역량에 대한 고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학생들은 단순히 지식 전달자로서의 교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러니 이 지점에서 교사들도 스스로의 역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교사의 존재의미를 리포지셔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래 역량에 대한 중요성은 강조되는데, '그걸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해서 헌직 교사들도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선생님들 역시 과목별로 전문성을 키운 사람들이잖아요. 교과목 내에서는 학생들에게 효과적인 학습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통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창의성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라는 건 교사로서도 새로운 교육이 필요한 부분이에요. 과목별로 '이 과목은 소통이 중요하다' '또 다른 과목은 창의성이 중요하다'라는 식의 구분법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게 사실이죠. 


디지털 네이티브는 대부분 선생님이 교단에 서서 교과 내용을 전달하는 수업에 대해서 '얼마든지 온라인 강의로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 학교에 대해 '다닐 필요를 모르겠다' '수업 시간에 모르는 게 없어서 질문이 없다'라고 평가했던 디지털 네이티브가 '미래학교는 다르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미래학교의 교사들은 지식 전달이 아닌 미래 역량을 키우는 수업 디자인과 평가가 더 중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170-171쪽


선생님들이 항상 배우는 즐거움, 아는 즐거움이라는 말씀을 하시잖아요. 그런데 저는 솔직히 배우는 즐거움보다 '해보는 즐거움'이 더 큰 것 같아요. 학교에서는 왜 해보는 즐거움을 경험하면 안 되죠?

-181쪽


수업을 듣는 건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랑 같이 하는 건 학교에서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런 활동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코딩을 정말 잘하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건 신청 안 했어요. 이걸 어떻게 내 실생활과 연결하고, 변화시키느냐 그걸 생각해보고 싶어서요. 미래학교에서도 실생활과의 연계를 모색할 수업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182쪽


학교의 변화 속도는 더디고, 한동안 계속 더딜 겁니다. 가정에서 - 아웃소싱할 수 없는 교육이라는 게 있는 법이예요 - 아이들에게 조금씩 알려줘야 합니다. 새 시대를 향해 열릴 문 손잡이를 돌릴 수 있는 방법을요. 책에서 소개하는 방법들을 보면 다 아는 거네, 별 것도 아닌 걸 참 대단한 것처럼 포장했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뻔하고 쉬운 방법일수록 막상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마치 우리 모두가 건강한 다이어트의 정석을 알고 있어도 그 방식으로 성공하는 다이어터는 극히 소수인 것처럼요. 그러니 시시하고 별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의 실천이라도 해 볼 일입니다. 원래 큰 변화는 일상의 작은 습관으로부터 비롯하기도 하고요. 


조금이지만 저는 다른 아이들보다 미리 미래를 경험한 거잖아요. 제가 성인이 될 무렵에는 '세상이 이렇게 바뀔 거고, 이런 게 가능해질 거다'라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돼요. 예전에는 '중학교는 대학 진학을 위해서 버텨낸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말이죠. 미래가 그렇게 머지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지금 공부하는 걸 조금씩 융합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겠다는 게 항상 머릿속에 있죠. 

-20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