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두산 편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수리스크 지나
국경도시 크라스키노에 닿았습니다
바닷가에서 해삼을 말려 한국으로 수출한다는
조선족 청년과 소다수를 마셨습니다
붉은 벽돌 건물에 레닌의 초상이 남아 있는 마가진에는
한국제 식용유와 라면 팬티스타킹이 진열되고
여기서 국경을 넘으면 중국 땅 훈춘입니다
시장 거리에서 개장국 한그릇 먹고 나오니
네명의 북한 아이들 배고프다며 손 내밉니다
수수팥떡 가게에서 함께 떡 먹었지요
해가 다 지는 시각까지 두만강 가
북한 마을들 보며 달렸습니다
마을의 저녁 불빛들 먼저 눈물 보이는군요
송강진에서 백두산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내두산 마을까지 꼬박 하루 달렸습니다
그곳 노인들이 두붓국을 끓여주며
우린 한 형제라고 말했습니다
길림 우체국에서 편지 썼습니다
이곳에 굶주린 북한 아이들 너무 많다고 적었습니다
아이들 눈망울에 갈수기의 두만강 물 보였습니다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었지요
수신인 없는 편지는 누가 받는지요
심양 가는 열차 안
손에 든 백 위안 지폐 보고 또 보고
오늘 밤 두만강 건너 북녘 집에 갈 거라는
네 아이의 눈망울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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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슈토베*의 민들레
팔작지붕에 회벽을 두른
기와집 마당에
순한 얼굴의
민들레 두송이가 피어 있다
꽃 곁에 쭈그리고 앉아
꽃의 이마와 볼 눈썹에 눈 맞추는데
꽃이 나를 와락 끌어안는 느낌이 있었다
찰나 속을 흐르는
영원의 강
한 노인이 다가와
가만히 내 등을 끌어안았다
거친 주름살이 내 뺨을 스치는 동안
민들레꽃 냄새가 났다
내 이름은 세르게이 김
김해 김씨인데 조선 이름은 잊었다
남원에서 태어났지만 남원이 어디인지는 모른다
당신은 남원을 아는가?
아버지는 제사를 지낼 때 무릎츨 꿇고 절하셨다
죽은 사람에게 절할 때 두번 한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그가 내 손을 붙들고
끝없이 이야기하는 동안
더듬거리는 전라도 사투리 속으로
배추흰나비 한마리 팔랑팔랑 날아올랐다
그의 손녀 나타샤는 스물두살
비슈케크대학 한국어과 4학년이라 한다
눈빛 소처럼 맑고
웃음소리 월등 복숭아꽃 냄새만큼 달았다.
소비에트가 붕괴된 후
유대인들 고국 이스라엘로 돌아간다고
고국에 돌아가면 집도 직장도 다 준다고 했다
한국은 언제 우릴 부르는가? 묻는데 할 말이 없었다
부엌 앞에 나무절구가 놓여 있다
1937년 강제 이주열차를 탈 때
조선에서 할머니가 가져온 것이라고 나타샤가 말했다
두부된장국 끓이던 할머니가 이야기했다
조선 사람은 어디에 살든 이팝을 먹지
그래 불술기**에 절구를 싣고 왔지
잘하셨어요 어르신,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하얀 옷을 입로
두부된장국을 먹고
팔작지붕 기와집에 박 넝쿨이 자라는 동안
우리가 고려 사람이라는 것 잊은 적 없어요
한국 사람들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오천년 역사가 이곳에 숨 쉬고 있어요
1937년 그날
왜 우리가 중앙아시아의 허허벌판에 버려졌는지
단 한번 묻지 않은 조국이여,
당신은 부끄럽겠지만
우리는 부끄럽지 않다
나타샤의 하얀 볼우물이 내게 얘기하는 것이었다
*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열차를 타고 온 조선인들이 중앙아
시아의 사막지대에 세운 최초의 조선인 마을.
** 증기기관차
해남
산벚꽃 바람에 날린다. 산수 공부 하는 1학년 아이들 목소리가 크다 딸기 두개 자두 세개를 접시 위에 놓아요 모두 몇개지요? 산더덕꽃 눈빛 초롱한 젊은 여선생님이 환하게 묻고 저요! 저요! 고물 경운기가 학교 담장 아래 지나간다 황톳빛 보리밭에서 보라색 햇살 냄새가 난다 처음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던 봄날 사랑이 내게로 왔다 그것은 한줄의 시 피 냄새 없는 혁명이 꽃바람 속 불어왔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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