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앞에 시적인 순간 - 소래섭 교수와 함께 읽는 일상 속 시 이야기
소래섭 지음 / 해냄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피지배 계층이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는 데 한글이 기여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한글이 없었다면 우리가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에서 살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로 인해 평범한 사람들도 읽고 쓰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당당한 국민으로 살 수 있게 되었고, 지식을 쌓아 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한글날은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고 한글의 우수성을 되새기는 날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한글날의 의미는 이날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을 얻게 된 날이라는 점입니다. 한글로 인해 우리는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쓴느 것, 그리하여 정치가들이 국민의 욕망을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것,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한글날을 기념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입니다.(p.134)

* 저자가 소개하는 시를 바탕으로 읽고 감상하는 방법을 풀어낸 책이다. 그러나 꼭지별로 대표시를 빼고 함께 소개하는 시는 전문 수록이 안 되어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가며 읽어야 하나. 전문가를 위한 비평서는 아니지만 시 감상을 위해 끌어다 놓은 ‘일상‘들이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것이 나의 도끼다 - 소설가들이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악스트 편집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선생님들의 시선이 등 뒤에 있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문학이라는 것이 수업의 형태, 즉 가르치고 배우는 구조가 되었으니까. 문창과에 진학하기 위해 입시과외를 받고 문창과에서는 또 작법에 대한 수업을 들으니까. 상당수의 작가들이 선생님들의 시선과 말, 그리고 문학적 판단 같은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같다.

당연하다. 결국 선생님들의 평가와 심사가 작가의 문학적 성취와 문단에서의 위치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럴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선생님들의 심사는 언제나 저울처럼 공정하고 유리알처럼 투명하겠지만(웃음) 문제는 심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심사를 받아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작가들이 눈치를 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술자리에서의 눈치뿐만이 아니라 글을 쓸 때 이미 심사위원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신인들의 글을 보면 다들 너무 똑똑하다. 이미 문단에 나올 때부터 준비가 되어 있는 느낌이다. 어떻게 서야 등단을 하고 어떻게 써야 문학상을 받는지 영악하게 알고 있다. 나는 작가들의 상상력과 취향이 공장에서 생산된 것처럼 다 비슷하다는 걸 믿을 수 없다. 그리고 한 주머니에 다 담아도 빠져나오는 송곳 하나 없다는 게 기이할 정도이다. 결국 선생님들의 시선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뜻이다. 그 시스템이 반백 년 넘게 문단을 지배하고 있다. 바깥에서 보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권위적이고 전근대적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봐도 나쁜 짓이다.(p26~27)
(인터뷰이:천명관)

농담 하나 곁들여볼까요. 인문대 사람들에게서 자료를 받거나 자문을 구하려면 일단 만나서 술을 먹어야 합니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자료를 주지, 이런 입장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는 다릅니다. 메일을 정성껏 잘 써서 보내면 됩니다. 내가 수행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란 걸 밝힌 다음, 당신이 어떤 부분에 기여할 수 있고 그 기여를 이렇게 보상하려고 한다고 적는 겁니다. 그럼 된다 안 된다 답 메일이 옵니다. 일단 술부터 먹어보고 결정하겠다는 과학자는 없습니다. 접근하는 방식이 다른 겁니다. 제가 몇몇 과학자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도 카이스트 교수를 하면서 이런 차이를 느끼고 적절한 방식을 제 나름대로 찾은 겁니다.(p.352~353) (김탁환)

* 어떤 소설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풀고, 어떤 소설가에 대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다음 읽을 책을 고를 수 있게 한 책.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08-29 09: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끼라고 하니 전 바로 ˝도스토예프스키˝ 선생님을 생각했어요 🙄
인문대와 과학자 의 자료 주는 차이는 재미있네요. 저라면 일단 술을 먹어야 할거 같은데, 저는 전형적인 문과인과 봅니다 ㅡㅡ

2021-08-29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전 손택 - 영혼과 매혹
다니엘 슈라이버 지음, 한재호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흔을 앞두고도 손택은 나이 든 여성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앤드루 와일리는 말한다. ˝만년에도 손택은 여전히 스물한 살 같았습니다. 언제나 모르는 것에 관심이 있었죠. 많은 사람이 만년에 이르면 자기가 아는 것에 의존하죠. 하지만 수전은 어제 태어나서 여전히 온 세상이 신세계인 것처럼 살았습니다. 손택은 나이를 ‘기괴한 것‘이라고 불렀다. 그는 평생 해온 일을 여전히 하고 있었다. 손택은 60대 후반에도 일상을 치열하게 살아가며,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예술과 정치의 새로운 발전을 접하고 흥분할 줄 알았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살았다.(p.399~400)

신좌파와 과감히 결별한 뒤 정치적 방향성을 새로이 정하려는 욕구도 분명한 동기 부여가 되었다. 대규모 정치운동을 지지하는 대신, 이제 그는 좀더 현실적인 프로젝트에 가담했다. 다른 작가들과 함께 전 세계의 수감된 작가들의 글을 읽는 공개 낭독회를 조직했으며,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수감된 헝가리 소수당 지도자 미클로시 두러이와 터키에서 수감된 평화운동 당원 알리 타이군, 폴란드에서 투옥된 문학 교수 즈비그니에프 레비츠키, 대한민국의 김현장가 김남주를 석방할 것을 요구하는 감동적인 서한의 초안을 작성하고 서명해 편집자에게 보냈다. 또 헝가리의 시인 겸 정치가 샨도르 레자크를 박해하는 데 항의했다. 벵골 시인 다우드 하이더를 방글라데시로 추방하겠다고 위협하는 데 항의하는 운동도 벌였는데, 방글라데시에서는 이슬람교도 민병대가 그를 죽이려고 벼르고 있었다. 네이딘 고디머는 이런 현실 참여가 손택에게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도덕적 의무였다고 말한다. ˝수전은 자기가 가진 지성의 힘을 수많은 대의명분을 위해 싸우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는 단지 개인으로만 살아가기를 거부하기로 했죠. 이것은 수전에게 실존적인 딜레마였고, 그는 다른 작가들과는 달랐어요. (...)단순히 작가로만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편견과 억압에 저항하는 일에 공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책임감을 느꼈어요.˝(p323~324)

* 수전 손택(1933~20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안의 역사 - 현대 한국인의 몸과 마음을 만든 근대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3부작 2
전우용 지음 / 푸른역사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런데 '현모양처賢母良妻(wise mother and good wife)'는 유교 가부장제가 만들어 낸 이상적 여성의 전형이 아니었으며, 설령 그렇다 해도 신사임당은 그 기준에 맞지 않았다. 유교가 여성에게 가르친 기본 덕목은 '삼종지도三從之道'였다. 어려서는 아버지에게, 시집가서는 남편에게, 늙어서는 자식에게 순종하는 것이 여성이 평생 지켜야 할 도리라는 뜻이다. 순종은 자아를 용납하지 않으며 독립적 사유를 배척한다.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자질은 '말 잘 듣는 것'뿐이다. 그에 반해 현모양처는 여성이 도달해야 할 지향점과 길러야 할 자질을 제시하며 남편과 자식을 보조하는 형식으로나마 여성에게 자율과 능동의 영역을 허용한다.

현모양처론은 중세 유교의 덕목이 아니라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창안되어 20세기 초 한국에 유입된 천황제 국민국가의 여성관이다. 일본 천황제 국민국가가 여성에게 부여한 역할은 남성이 나라에만 충성할 수 있도록 뒤에서 가정을 맡아 꾸리며 자식을 충성스러운 미래의 신민臣民으로 기르는 일이었다. 현모양처라는 용어는 성인 남성을 가정에서 완전히 이탈시켜 천황에 직속된 신민의 일원이라는 자격만을 부여하고, 그에 따라 가정에 생긴 '권위의 공백'을 제국 신민의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자각한 여성의 자발적 헌신으로 메우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p.76~77)

쌀은 밀, 옥수수와 더불어 세계 3대 곡물로 꼽힌다. 오늘날 전 세계 경지 면적의 약 20퍼센트가 논이며, 세계 총 농업 생산고의 약 26퍼센트가 쌀이다. 쌀은 다른 곡물에 비해 인구 부양력이 특히 커서 쌀을 주식으로 삼는 지역은 어디나 인구밀도가 높다. 당장 세계 최고의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중국,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일본 한국 등이 주된 쌀 소비국이다. 밀은 경작 면적에서 32퍼센트로 1위지만 전 세계 인구의 10퍼센트 정도만이 주식으로 삼는 데 비해, 쌀을 주식으로 삼는 인구는 전 인류의 35퍼센트에 달한다.

쌀 경작은 적도 부근의 아시아에서 기원했고, 지금도 전 세계 쌀의 90퍼센트가 이 지역에서 생산된다. 한국은 쌀 생산 지대의 맨 북쪽에 해당한다. 한반도 사람들이 쌀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000년경이었고, 쌀을 주식으로 삼은 것은 그로부터 1,000여 년 뒤였다. 그런데 한반도는 벼농사에 적합한 지역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여름이 짧고 강수량이 적은데다가 벼가 한창 생장할 5~6월에는 가물기 일쑤고, 수확을 앞둔 8~9월에는 수시로 태풍이 밀어닥쳤다. 그래서 한반도에 정착한 고대인들의 최대 실수는 쌀을 주곡으로 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동남아시아 아열대 기후 지역에서는 1년에 2~3차례나 수확하는 쌀을 한 번밖에 수확하지 못했으니, 나라가 가난하고 백성들이 굶주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p110~111)

* 왕조나 영웅으로 대변되는 역사는 넘친다. 이 책은 근대를 살았던 이름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로하
윤고은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때 난 이십대였어. 힘 쓰는 거 하나는 자신 있었다구."
그 힘도 이미 잘못 고정한 것을 고치는 데는 소용이 없었다. 에이미는 결국 그 문짝 때문에 당신을 떠났다. 에이미가 떠난 과정보다는 에이미가 떠나고 남은 빈자리에 대해 당신은 오래, 공들여 묘사했다. 에이미는 잠깐 당신의 삶에 나타났던 신기루였다. 당신이 그 집을 나와야 에이미가 다시 그 집으로 돌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한 당신은 그렇게 집을 떠나, 몇년 만에 거리로 나섰다. 그때 머물렀던 곳이 여기 썬셋 비치 부근이었는데, 매일 바다에 나와 앉아있는 게 일이었다.

"그때 나를 구원한 건 파도였어. 나도 파도 타는 법을 배울 수 있었지. 그걸 알려준 사람이 바로 빌리였어. 빌리는 하와이에 온 다음 써핑을 많이 배웠던 모양이야. 우리가 처음 만난 게 바로 여기, 써핑 포인트였지. 그때 빌리는 파도 위를 날고 있었고,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어."(p.57~58)

당신 역시 『넥스트 호놀룰루』를 활용하는 노숙자 중 한명이었다. 당신은 어제의 기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건 파라세일링을 하다가 죽은 남자에 관한 것이었다. 신혼여행이었기 때문에 유족들은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한쌍의 남녀가 구명조끼를 입고 하늘로 솟아올랐는데, 마치 거미처럼 보이던 그들이 바다 위를 달린 지 이분 만에 사고가 났다. 파라세일의 줄이 근방을 달리던 제트스키와 얽히면서 생긴 사고였다. 남자는 죽고 여자는 가까스로 살았는데, 남겨진 여자의 모습은 절반의 확률로 살아난 것을 안도해야 하는지, 절망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사고경위서라든지 사망확인서, 방부처리확인서 같은 서류들을 여자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이런 줄거리를 한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사소한 일들로 죽는다. 사십년째 반복해 걷던 산책로에서 죽기도 하고 파도를 즐기다가 죽기도 하고 다이빙을 하려던 찰나에 죽기도 한다. 말싸움이나 교통사고, 식중독, 개에 물리는 사고로도 죽는다. 그 이유를 우리가 다 예츠할 수는 없다. 예측하지 못하게 태어나는 것처럼, 사람들은 예측하지 못한 일들로 죽는다. 이곳이 낙원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도 예외는 없다.(p.48~49)

* 표제작 「알로하」의 일부를 옮겨다 적는다. 표제작 알로하가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라 생각하며 읽었다. 한국소설의 무대가 된 배경을 찾아가며 기행을 했던 시간들이 있었는데, 코로나가 끝나면 하와이를 찾아가고 싶다는 즉흥적인 욕구가 생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