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외롭다 문학동네 시인선 34
김승희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의 삶은 선택의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연속된 결정의 순간들 속에 우리는 잠시도 긴장감과 불안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마치 잔잔한 파도 위에 떠 있는 상태인 채로 살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잔잔한 파도 뒤에 숨겨진 커다란 시련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커다란 파도를 바라보며, 그것에 부딪혔을 때의 결과를 예상하면서 공포에 떨고, 절망 속에 시련을 맞이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나고자 한다. 그렇게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힘, 그것을 우리는 ‘희망’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희망은 사막 속의 오아시스처럼 절대적인 힘, 없어서는 안 될 그 무엇으로 인식되어 왔다. 모두들 희망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하지 않았지만 ‘희망이 있어 다행’이라며 고마운 눈초리로 안도를 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희망에 대한 인식은 우리에게 진리로 자리매김하였고, 그 누구도 이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다.

문학에서 역시 희망은 일관되게 밝고 긍정적인 존재였다. 적어도 김승희가 이 시집을 발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김승희는 시집 <희망이 외롭다>에서 이 시대에서 희망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작가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남발되고 있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과연 희망이란 무엇이고,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가 되묻는다. 희망이라는 단어만이 속 빈 껍데기처럼 떠돌아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희망이라는 껍데기 속에 진실된 희망은 존재하고 있는지, 만약 희망이 보이지 않아 되찾아야 한다면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 희망을 가지기 어려운 이 시대에 희망을 버리지 못해 되려 희망이 고문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작가는 이 시대에 희망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쏟아내며 희망을 염려하고 있다.

 

1. ‘희망’ 그 본연의 모습

 

작가는 ‘하물며’, ‘아직’, ‘이미’, ‘어쨌든’, ‘비로소’, ‘아랑곳없이’라는 말에서 희망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아쉽게도 홀로 설 수 없는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은 절망 끝에 달려 있거나, 절망을 외면하는 경우에 대부분 위치한다. 이토록 희망의 위치는 위태위태하다. 그러나 위태위태한 것이 희망의 본연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가는 믿는다. ‘덜어내고도 다시 고이는 힘’인 희망은 ‘매화’처럼 ‘힘이 세’다고 말이다.

 

 

2. ‘희망’이 변색될 수밖에 없는 우울한 공간

 

그러나 이 말들은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우울해진다.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인 ‘서울’이라는 곳을 연작으로 엮어 자세히 지켜보고 있다. 서울의 현실을 냉정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희망이 결여될 수밖에 없는 이 차디찬 공간을 ‘얼어붙은 입이 자꾸 구겨지며 피가 터지도록’ 안타까워하며 아파한다. 작가는 ‘서울’이라는 공간이 ‘내가 내 이름으로 사는 것이 힘든’ 공간이자, ‘자살도 깊이 들여다보면 타살이라고 할 증거가 너무 많’은 곳이라며 비판한다. 그러한 도시에서 희망은 결여되어 있다. 작가는 희망이 결여된 순간을 포착하여 시 속에 담아낸다. ‘골목마다 어린 소녀를 따라가는 성추행범이 많’고, ‘성폭행 하고 손목까지 잘라 유리컵에 꽂아놓는 미친놈이 많’다. ‘손바닥 뒤집는 거짓말’이 많으며, 그 ‘손바닥 뒤집는 그 손바닥들로 하늘이 자욱하’다. 거짓이 난무하고 범죄가 폭발하는 이 공간에서는 ‘법’도 ‘허전’한 상태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살벌한 도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차디찬 얼음같은 도시에서 끝없이 피를 쏟아내면서도 도망갈 수 없는 이유는 작가가 바로 시인이기 때문이다. 시인이기 때문에, 이 우울할 수밖에 없는, 희망이 결여될 수밖에 없는 공간을 바로 응시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공간 속에서 과연 희망은 존재할 수 있는가, 또한 희망이 존재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인지, 만약 희망이 존재하고 있지 않다면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와야 할 것인가 작가는 고민하며 도시를 서성인다.

 

3. 마지막 ‘희망’을 찾아서

 

작가는 이내 ‘낙원역’을 찾고자 한다. 끝내 그는 마지막 희망을 저버릴 수가 없다.

결국 그가 택한 희망을 찾기 위한 마지막 방법은 ‘영화를 찍는다고 생각하면 오늘이 오늘이 아니고 자기는 자기가 아니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요’ 하며 오늘의 이 세상을 부정하는 것. 작가는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부인하기에 이른다. 심지어는 ‘밀가루가 바람에 날아가듯 세상의 오만가지 자아가 원심력의 궤도를 타고 날아간다 아니 궤도 따위는 없다 얼굴 없는 시간이 된다’ 며 절망적인 ‘현재’를 완벽하게 지움으로써 희망을 품고자 한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삶은 여전히 ‘달걀’처럼 ‘냉장고 위 칸에 희고 얌전히 꽂혀 있’을 뿐이다. 시인에게 삶은 이미 냉장고 안처럼 너무나 춥다. 현실을 춥디 추운 곳으로 인식하고 벗어나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냉장고 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또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희망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이내 포기하지 못하고 끝까지 품을 수밖에 없어서, 희망은 절망보다 더 외롭다.

 

4. 희망은 외롭다

 

작가는 이 시대에 존재하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때로는 끝내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힘겨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절망적인 공간에 사는 우리가 모든 것을 놓아버리면 단순히 가라앉음으로써 끝낼 수 있는데, 마지막 ‘희망’이라는 말이 끝까지 남아서 놓아버리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더욱 힘겹다고 한탄한다. 작가는 희망까지도 놓아버릴 정도로 힘겨운 이 시대를 아프게 바라본다. 그러면서 끝내는 세상과 시대가 희망을 놓아버려야 할 정도로 어렵게 돌아가고 있지만, 희망은 끝까지 남아 ‘더 벅차게 사랑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다며 위안한다. 어쩌면 희망이라는 것은, 아니, ‘이 시대의 희망’이라는 것은 그래서 더 외롭고도 힘겨울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희망을 지킨다는 것은 ‘도망치고 싶고 그만두고 싶어도’ 마음대로 중지할 수 없는, ‘희망과 나’는 끊을 수 없는 끈으로 이어진, ‘희망은 종신형’이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작가에게 ‘희망은 외로운’ 것이다.

 

등단 40년을 맞이하여 <희망이 외롭다>를 발표한 김승희 시인은 작품집에서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희망이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희망이란 원래 그 존재방식이 위태한 것은 사실이나, 늘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의 곁에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위험하고 잔혹한 이 공간은 희망을 숨쉬기 힘들게 만들었고, 이 공간 속에서 우리는 점점 희망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희망이라는 것이 끝내 놓아지지 않아, 아니 더욱 더 벅차게 사랑하라는 명령을 내려 희망을 가지고 있기가 너무나 힘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버릴 수 없는 희망은 종신형이 되고야 말았고, 이 시대의 희망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작가의 말처럼, 이 시대는 냉혹하고 잔인하다. 그래서 희망이 숨쉴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하고, 희망이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하면서도 아프게 희망을 지켜내고자 하는 시인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희망이 종신형이라 하더라도, 희망이 외로운 상태라 하더라도 그래도 희망을 염려하고 외치고 있는 작가가 있어서 희망적이지 않은가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배신당한 유언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배신당한 유언들 밀란 쿤데라 전집 12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쿤데라의 <배신당한 유언들>은 그의 작가적 철학을 담아놓은 사유의 모음집이라 볼 수 있을 만큼, 소설이라기보다 에세이에 가까웠다. 쿤데라는 문학 뿐 아니라 음악과 번역 등 다방면의 문화 예술에 깊고 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었고, 그의 깊은 넓은 지식의 숲 속에서 열매맺은 사유 또한 깊고 오묘한 맛을 내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그의 사유는 내 마음에 와 닿을 수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 이 책을 읽어내는 것부터가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는 그가 논하고 있는 것의 기본적인 자료에 해당하는 것들 - 작가, 예술가, 작품, 역사 등- 에서부터 이해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의 작품을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접했다면, 어쩌면 이 책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1부 파뉘르주가 더는 웃기지 않는 날’은 옆에 컴퓨터를 두고 모르는 인물이나 작품이 나올 때면 일일이 다 찾아야 할 정도로 읽어내기가 힘이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하나 알아가며 읽고 난 뒤에는 정말 많은 것을 겉핥기로나마 알게 되어 참으로 유익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1부에서 느꼈던 어려움과 곤혹스러움은 점차 페이지가 넘어갈 수록 사그라들었고, 2부, 3부를 읽으며 조금씩 흥미를 느끼게 되면서 모르는 음악가들과 음악이 나오면 메모해 두었다가 꼭 들어보아야겠다며 체크를 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4부부터는 그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지에 대한 감이 어느정도 잡히기 시작했고, 5부부터는 어느 정도 재미가 있어 책을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쿤데라의 사유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평을 내릴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이 아니다. 그저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수동적인 독서를 하였던 것 같다. 번역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에는 그의 작가적 자존심과 뚜렷한 작가관을 알 수 있었고, 전반적으로는 문학과 타 예술과의 비교를 통해 사유를 확장시켜가는 그의 방식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쿤데라의 사유를 읽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의 작품을 먼저 접하고 이 책을 다시 읽어본다면 그 때는 이 책을 통해 또 다른 맛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슬그머니 기대도 된다. 다른 이들에게는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재독이 필수인 책, 그렇지만 한 권, 아니 그의 한 문장 한 문장을 통해 많은 것을 알고 배울 수 있었던 유익한 책이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리뷰라 하기에도 부끄러운 이 리뷰를 올리고는 다시 한 번 쿤데라에 빠져볼까 한다.

이제는 먼저 그의 작품으로 그를 만나보련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셋파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사람들은 희망을 논할 때, 우리네 삶이 현재로 끝나지 않고 다가올 미래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에 예기치 못한 시련이 다가와 때때로 무릎을 꺾어놓고, 시야를 흐리게 할지라도 ‘희망, 앞으로 다가올 그 찬란한 미래’를 상상하며 이를 악물고 버텨낸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핑크빛 풍선 같은 희망에 아주 가늘고 긴  바늘같은 물음표를 슬쩍 대어보자.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면? 희망은 존재할 수 없는가? 이에 폴 오스터는 ‘마일스 헬러’라는 인물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미래가 없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이 가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부터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328쪽)

 

버려진 것들의 사진을 찍으며 그것들이 반짝였던 한 때를 회상하며 마지막을 위로해 주는 삶을 살아가는 마일스 헬러. 자신의 인생도 그것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듯 어떠한 일을 계획하거나 희망하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내는 그. 그가 처음부터 이러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한 때 촉망받는 인재였다. 그러나 형의 죽음 이후, 죄책감과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자신의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벌을 가하고 있었던 인물이다. 그러던 그의 시야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있는 필라가 들어오고, 아직 미성년이지만 떠오르는 해처럼 총명한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루하루 의미없이 살아가던 마일스는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되는 사랑하는 그녀 필라에게 물질적,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그녀와 동거를 시작한다. 이렇게 마일스 헬러의 인생은 필라를 만나고 나서부터 다시 한 번 전환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필라의 큰 언니의 심술로 인해 마일스는 위기에 봉착하게 되고, 그녀와 떨어져 살게 된다. 그리고 갈 곳 없고 가진 것 없는 그에게 친구 빙 네이선이 손을 내민 곳은 다름 아닌 선셋파크.

 

선셋파크는 무허가 건물로, 법적으로 거주가 금지된 곳이다. 이 금지된 장소에 살고 있는 마일스, 빙, 앨리스, 엘런. 그들은 그들의 삶의 방향을 좌지우지할 만한 크기의 결핍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런 서로의 삶에 자그마한 힘이 되어주며 그들은 긴 통로를 거쳐 나가고, 스스로의 방식으로 결핍을 해소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 한 줄기 빛이 보이겠다 싶을 때쯤, 선셋파크에서 강제로 쫓겨난다.

설상가상, 마일스는 앨리스를 돕다 경찰을 부상입히게 되고, 돌고 돌았던 삶이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와 사랑하는 그녀 필라와 함께 환한 행복을 맛보겠다 싶을 때쯤 다시 칠흑같은 어둠의 미래를 맞이할 수 밖에 없는 현재에 위치하게 된다.

 

현재 미국의 상황을 자연스레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 이는 폴 오스터가 가진 작가적 힘이다. 소설 속에 시대를 녹여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현 시대를 살아나가야 할 자세라는 우리의 과제를 둥글게 말아 재미라는 반짝거리는 알사탕 안에 쏙 집어넣어 즐겁게 맛볼 수 있게끔 만든 유익한 책, 선셋파크. 왜 많은 이들이 폴 오스터에 열광하는지 이 작품을 통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더불어 현재를 살아나가는 법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계기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밀수꾼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밀수꾼들
발따사르 뽀르셀 지음, 조구호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내일은...... 좋은 날이 될 거야”

 

가슴이 녹아내렸다. 지진이 난 것처럼 가슴 속이 울렸고, 괜시리 목이 메어왔다. 왜냐고 묻는다면, 글쎄... 정확하게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음......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희망이 눈물겹도록 간절했기 때문일까? 요즘 들어 희망이라는 것을 잊고, 현실과 자꾸만 타협하고자 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서?

 

발따사르 뽀르셀의 작품 <밀수꾼들>을 접하기 전, 슬럼프가 찾아왔다. 모든 것이 심드렁했던 시기에 <밀수꾼들>이 도착했다. 신간 추천 페이퍼를 작성할 때 가장 관심있게 봤던 책이기에, 모든 것을 놓아버린 듯한 그 시기에도 집중하여 읽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어려운 발음과 낯선 지명 탓에 완벽하게 집중하여 읽지는 못하였다. 누가 누구인지 계속 기억하면서 읽어야 한다는 점 때문에 긴장하며 읽었던 듯하다. 그러나 작품이 주었던 감동만큼은 완벽했다.

 

<밀수꾼들>에서 ‘배’라는 공간은 절대적이다. 모든 것이 이 공간 안에서 행해지고, 공간의 행보에 의해 공간 안에 속한 이들의 운명도 결정지어진다. 밀수품을 전하기 위해 마요르까 섬으로 향하는 이 배를 선택한 이들에게 밀수품 전달의 성공은 반드시 행해져야 하는 희망이다. 레오나르 주베라가 다시 행복을 꿈꿀 수 있게 해 주고, 비센 바랄의 아이들이 공부를 지속할 수 있게 해 주며, 빼나와 마르꼬가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것이다. 이런 그들의 사정이야기는 지중해 연안을 항해하는 현재 ‘배’ 안의 이야기와 교차되며 진행되고, 그들의 불투명한 현실과 간절한 희망이 상반된 모습이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책의 힘은 역시 대단하다. 현재의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하고, 더불어 깊은 반성도 이끌어내기도 한다.

 

책에 대한 평이란 늘 주관적인 것인 것이지만, 이 책은 유독 개인적 상황이 평가에 큰 요인이 되었던 듯 하다. 사실 이 책이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익숙해 지지 않는 이름들과 읽어도 읽어도 아리송한 스페인 역사까지 미로를 헤매는 것 같은 부분도 있었다. 더군다나 번역자의 실수인지 오타도 심심찮게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자질구레한 난점들을 모두 뛰어넘고 감동을 받은 것만은 사실이다. 오직 하나만을 바라보며 희망을 품던 밀수꾼들의 모습들로 인해 삶의 자세를 교정할 수 있는 계기를 얻는 행운 또한 누릴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의 아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눈의 아이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야베 미유키.

이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나는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다. 언론에서 그만큼 떠들고, 주변에서 이 작가의 작품을 한 권씩 들고 있는 것을 종종 봐왔지만, 나는 청개구리 심보인지 너무 대중적으로 흐르는 작품이라 생각해서인지 호기심이 생기면서도 일부러 외면해 왔다. 그러던 중에 화차라는 작품이 영화화되어 상영되었고, 우연히 이 영화를 보게 되면서 이 작가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3월 신간추천페이퍼를 작성하게 되었고, <눈의 아이>를 보게 되어 반가운 마음에 추천을 하게 되었는데, 많은 분들이 역시 이 작품을 추천하여서 3월 신간으로 받아 보게 되었다.

 

기다리던 작품이 도착하였지만, <눈의 아이>의 빨간 표지가 으스스해서인지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책을 펼쳐 들기가 왠지 모르게 두렵다. 공포영화를 보기 전 느낌으로 슬쩍슬쩍 책을 펼쳐보다가,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나서부터는 공포가 아닌 슬픔이 밀려오는 것에 당황하면서도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눈의 아이>는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작품집이다. 다섯 편 모두 일상을 배경으로 하고, 어린아이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특별한 배경이 아닌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 즉 주인공이 혹은 가해자가 비정상적인 인물이 아닌 주변인 혹은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섬뜩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들이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느껴보았을 사소한 적대감, 열등감 같은 일상적인 감정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이 더욱 작품의 집중도를 높였고, 이런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깨달음에 공포와 슬픔을 느꼈다.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모호하다. 작품성으로 보자면, 눈에 띌 만한 점이 보이지 않는다. 참신함이라던지 구성이라던지 하는 점에서만 보더라도, 뛰어나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작품 자체가 치밀한 느낌은 아니고, 왠지 모르게 이야기를 하다 만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재미가 없지는 않다. 아니, 적어도 재미만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다. 이 작품을 읽고 난 후, 지속적으로 작품이 머릿속에 맴도는 느낌이 들었다. 독자로 하여금 무언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언가 꽉 짜여져 있지 않는 느낌에 설렁설렁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하면서도, 마음 속에 작은 돌을 던진 듯 잔잔한 파장을 일게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읽은 <눈의 아이>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