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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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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이후의 시간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아주 어렸을 때와 최근. 옛날동화에서 단골소재로 쓰이는 저승 이야기는 어린 나로 하여금 어떤 모습이 저승의 진짜 모습일까를 상상하게 했고, 여기 저기 읽은 것을 한데 모아 나름의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였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의 감정으로 저승을 생각했었는데,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사람은 나중에 저승에 가서도 천국으로 배정받아 선녀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며 강조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천국에 가기 위해 그 때부터 엄마 말에 무조건 충성하는 착하디 착한 딸이 되었다. 지금은 다른 의미에서 착한 딸이 된 나는 이제 ‘저승’하면 시끄러운 이승과 달리 조용하고 홀가분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최근 2-3년 사이에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살아있다는 것과 죽었다는 것이 종이 한 장 차이임을 그때 깨달았다. 또한 죽음 이후에는 서러움도 미움도 슬픔도 그 어떤 감정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죽음 이후에는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을 포함한 모든 것을 내려놓기에 어쩌면 편안할 수도 있겠구나, 혹은 공허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었다. ‘죽음 그 이후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제 7일>을 목전에 두고 떠올려 보았던 생각들이다.

 

그렇다. 이 작품은 죽음 그 이후,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의 7일을 시간적,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해 두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배경이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즉, 이 소설은 죽음 그 이후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하나의 효과적인 장치를 한 셈이라 생각한다. 이런 배경 설정으로 인해 이 작품은 마치 ‘꿈 길을 걷는 듯한’ 효과를 내고 있다. 또한 이승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한 발자국 떨어져 지난 이야기로 듣기에 ‘너그러움’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그려내고자 한 바는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라 보는데, 그 첫 번째는 사랑이 아닐까 한다. 작가는 여러 형태의 사랑에 대해 그려내고 있는데,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사랑은 연인에 대한 사랑, 부모자식간의 사랑이었다.

양페이는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선택한 리칭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사랑해 왔다. 리칭 또한 양페이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야망 때문에 다른 남자를 선택해야만 했다.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면서도 떠날 수 밖에 없어서, 또는 보낼 수 밖에 없어서 눈물로 헤어졌던 그들은 죽음 이후에 재회하고, 또 한 번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또 다시 헤어짐을 맞이한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던 삶의 방식의 차이로 인해.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사랑은 양페이와 양페이 아버지 양진바오의 이야기, 즉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가 <제 7일>의 가장 큰 줄거리가 아닐까 생각하는데,그만큼 작가가 공을 들여 쓴 것이 느껴졌다. 평범하지 않은 탄생으로 부모를 잃고 힘든 삶을 살 뻔 했던 양페이는 양진바오를 만나면서 행복하고 따뜻한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양페이를 위해 자신의 결혼까지 포기하며 양페이의 아버지로서의 삶을 선택했던 양진바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아들 양페이를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산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그 깊은 이야기로 작가는 끝없는 감동을 끌어내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동적인 큰 줄기로 작품을 이어가는 가운데, 작가는 곳곳에서 중국 내부의 문제점에 대해 고발하고 있었다. 우습지만 결코 웃을 수 없는 상황으로.

사고로 죽음을 맞은 양페이는 빈의관(화장터)으로 오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빈의관에 도착한 그는 죽음도 권력따라 대우 받는 ‘쓴 웃음’이 나오는 상황과 직면한다. 쓴 웃음이 나오는 부분은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의 강제 철거 피해자들이 ‘불알’을 내 놓으라며 시위하는가 하면, 아이폰 4s 짝퉁을 선물받고 자살하는 이의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모두 현실의 한 단면들이다. 그래서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도 웃을 수 없다.

이런 현실의 썩어빠진 모습을 정면으로 그려낸 것은 ‘영아 시체를 의료 쓰레기’로 치부하며 처리하는 의료 종사자들의 모습이 그려진 장면이었다. 너무도 당연하다는 태도로 나름의 논리를 세워가며 말하는 이들의 모습에 구토가 일만큼, 리얼하고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역시 위화 라는 말이 나올 만큼 이 작품은 수작이었다. 책을 덮은 후에도 긴 여운이 남는 이 작품은 감동과 생각거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작가의 솜씨가 돋보이는 다시 보고 싶은 책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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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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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이었던가,

처음 본 물건을 살피기 위해 무심코 손에 쥐었을 때, 경험이라는 두 글자가 머리를 번뜩 스친다. 이거 예전에 만져보았던 거야, 손에 쥐인 그 감촉 끝에 기억이 매달려 있다. 저 멀리 대롱대롱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기억을 간신히 건지고 건져서 살펴보았더니, 아아 예전에 그런 경험도 있었구나, 다시 그 기억이 꽃을 피웠다

 

그렇다, 무엇이든 흘러간다. 흘러가는 것은 언제나 새로움과 직면한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새로움이기에 그 새로움을 경험하는 어려움을 과거의 것을 바탕으로 한 힘으로 이겨내기도 하고, 또한 매일 새로움을 대하는 그 벅참 속에 과거를 잊기도 한다.

 

파과, 냉장고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뭉클어져 있는 무엇을 떠올리며 가슴이 아려온다. 그래서일까, 파과를 쉽게 열지 못했던 것은.

한편 작가를 믿었다. 언제나 그랬듯 작가의 신뢰도를 책 선정의 가장 첫 번째 이유로 삼는다. 구병모가 늙은 여자 킬러를 내세워서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이러저러한 감정의 얽힘 속에 ‘조각’을 만났다.

 

조각은 반전투성이의 인물이었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의 노부인, 지나치게 검소하지도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않은 선을 지키는 그 노인은 프로의 냄새를 풍기는 킬러이다. 그의 사고방식은 언제나 냉정하다. 조금의 감정이입도 허용되지 않는 직업의 특성상, 그 직업에 몇 십년 몸 담아온 그녀였기에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냉정하기만 한 프로페셔널한 킬러로써의 조각만을 그려냈다면 파과는 이렇게 매력적이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여러번 하였다.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직업, 태도, 말과 행동에도 불구하고 ‘조각’이라는 인물에 진심으로 마음을 열게 된 것은 그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녀가 냉정하지 않다는 데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개의 저녁을 걱정하는가 하면, 자신의 목표가 눈앞에 있는데 생면부지 파지 수거 노인 때문에 목표를 놓친다. 호감이라는 것인가 하며 물음표를 떠올렸을 때, 그의 딸이 납치되었다는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내놓고 딸을 구하는 것만 생각한다. 그것이 조각이다.

 

구병모는 어떻게 하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아는 작가이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때,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상은 펼쳐진다. 구병모는 그것을 잘 알고, 활용하고 있는 작가라 생각된다. 또 하나, 구병모에 대해 신뢰를 가지게 된 것은 끊임없이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머물러있지 않다는 것이다. 작가는 <파과>를 통해 새로운 문체를 보여주었다.

조각이라는 인물을 보여주기 위해, 이 문체는 반드시 필요한 장치였다고 생각된다. 섬세함이 끝없이 늘어지는 이 만연체는 왠지 모르게 ‘조각’과 참으로 닮았다. 알 수 있을 듯, 알 수 없음도,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이 문장들은 조각의 삶을 말해 주는 하나의 장치였다고 이해되었다. 그래서 불편함에도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파과,

흘러간다는 것에 대한 경험, 남겨진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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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심장 열린책들 세계문학 213
미하일 불가꼬프 지음, 정연호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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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에 걸쳐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아왔다는 것은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이다. 나는 이번에 이것에 대해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었다. 고전이 된다는 것, 그것은 사회에 대한 작가 그만의 흔들림없는 시선과 독자에 대한 배려(곧 재미), 책을 덮은 뒤에도 계속 머릿 속을 헤집고 다니며 생각거리를 무한생산해내는 힘을 그 요소로 해야 한다. 미하일 불가꼬프의 <개의 심장>은 이 세 가지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 대작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접하기 전, 나는 간단한 사전 조사를 행했다. 러시아 문학에 대해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무지하기에, 미하일 불가꼬프가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고, 당연히 그의 작품 또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전 조사 결과 작가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되었고, 개의 심장이라는 제목 또한 흥미로웠기 때문에 쉽게 책장을 열 수 있었다.

 

개. 개는 어떤 동물인가. 국가에 따라서 세밀하게는 개가 상징하는 바는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보아서는 긍정적으로는 충성심을 가진 동물, 인간과 가장 소통이 가까운 동물, 부정적으로는 무식한 돌진의 이미지, 하수의 이미지라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작가는 왜 하필 개를 선택했을까. 나는 그것이 책을 읽기 전 몹시 궁금했다. 전자인가, 후자인가. 개라는 동물의 이미지를 어떤 식으로 사용하고 있을까. 그것에 초점을 맞추어 읽다보니, 자연스레 작품에서 좀 멀리 떨어진 시선으로 읽을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개의 입장에서 읽히기도 하였다.

 

개가 인간의 심장을 가지게 된다는 이 그로테스크한 발상은, 1920년대의 산물이라 함에 있어서 또 한 번 놀랍다. 개인간이라니, 이런 상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작가의 아이디어는 그 시대적 환경과 연관지을 수 있다. 1920년대의 러시아는 어떠했는가. 굳이 상상력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아도 몇 줄만 읽어보아도 그 문장 속에 내포하고 있는 바를 다각적으로 볼 수 있겠다는 감이 올 것이다. 시대적, 단지 작품으로만, 작가 개인적 생각으로, 여러 가지 방향으로 볼 수 있겠지만 우선 그 작가가 살았던 시대를 살펴보니 그 놀라운 상상력도 ‘우생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인민을 위한 혁명을 부르짖던 러시아의 국가적 상황이 이 소설의 배경이 되었다는 것 역시 어느 누구라도 쉽게 눈치챌 수 있을 만큼 공산주의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확고하게 드러나 있다. 개 샤릭의 목숨이 확실치 않은 실험적인 수술의 확신을 가질 수 없었던 수술이 성공함에 따라 개 인간을 만들어낸 의사는 개 인간이라는 그로테스크하고 완전하지 않은 생명체가 결국 과학이 만들어낸 성공작이 아니라 무모한 선택과 과학이 빚어낸 재앙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개인간은 아무리 해도 정상적인 인간 생활에 적응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의사는 자신의 판단에 물음표를 가지게 되고, 더욱이 무지한 샤리꼬프가 쉬본제르라는 혁명가를 만나게 되면서 의사의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뀌게 되는 과정이 급물살을 타게 되는데, 특히 샤리꼬프의 무례함과 무식함이 모든 이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는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개의 심장은 1920년대 러시아에서 일어난 혁명의 급진성에 대한 작가의 시선과 생각을 풍자로 작품 곳곳에 심어놓은 수작이다. 무엇보다 상상력이 참으로 놀랍고, 의사 출신의 작가라 디테일함이 살아있다는 점과 풍자가 적재적소라는 부분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것은 그 과정에서 유머를 끌어내어 재미를 주었다는 점. 정말 대단한 작가이다.

 

그런데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악마의 서사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이 작가는 천재라서 이런 상황을 설정하였나, 아무런 연관관계 없이 파편적으로 사건들만을 나열하여 혼란스러움을 극대화하려 하였나, 그런 것이 아니라면 어떤 의도로 이런 구성을 택했을까 커다란 물음표만이 둥둥 떠오르게 한 작품이었다. 이 작가에 대해 아무런 정보없이, 작가의 첫 번째 작품으로 <악마의 서사시>를 읽었다면, 하긴 바로 덮어버렸을 것 같긴 하지만 <개의 심장>이 워낙 임펙트가 컸기에 다시 한 번 읽어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미하일 불가꼬프. 알 수 없는 이 작가에 매력을 느낀다. 그의 다른 작품도 접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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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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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거짓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존재한다. 진실이 아니라며 판명이 난 것으로 낙인찍힌 진실이 존재하기도 하고, 진실이라는 깨끗한 옷을 입고 진실의 자리에 서 있는 거짓이 존재하기도 한다. 어느 것이 거짓이고, 어느 것이 진실인가에 대해 진심으로 헛갈릴 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진실과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주하고 있는 진실이 꼭 탐탁치만은 않아서 때때로 슬그머니 눈길을 피해버리기도 하고, 마치 애초부터 없었다는 듯 무시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경우도 분명 있다. 버젓이 진실의 손을 들기엔, 당장 나 자신부터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이기심들이 모이고 모여 진실에게 거짓의 옷을 입히고, 거짓이 진실인양 만들어 내세우기도 한다.

 

<김 박사는 누구인가>에서 이기호는 하나의 화두를 던지기 위해 여덟 개의 이야기를 배치하고 있다. 하나의 이야기를 덮고 또 하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불편함을 느낀다. 동시에 메시지는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마침내 이 책을 덮을 즈음에 하나의 커다란 물음표가 완성되어 있다. 물음표가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나를 바라본다. 큰 눈을 끔뻑거리며 입술을 달짝인다.

 

진실과 마주하고 있는가, 진실을 향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탄원의 문장>에서처럼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그러나 한 줄 한 줄 읽어내리면서 나는 조금씩 불안해져왔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진 않았을까.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안겨주진 않았나 다시 되돌아보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가 그렇듯, 늘 자신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한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그래서 누군가 나를 믿고 이야기를 터 놓아도 된다고. 타인이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려할 때, 어떤 상황이고, 원래는 내가 어떤 사람이었건 진지한 사람이 되고만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나를 믿고 고민을 털어놓은 이에게 보상을 해 주고 싶다. 상대가 고마워하면 할수록 그 마음은 배가 된다. <김 박사는 누구인가>에서 나는 마치 내가 김 박사가 된양, 진지하게 그녀의 고민을 듣고 있었다. 그녀가 김 박사를 추켜 세울 때면 내심 뭔가 어깨가 단단해져오는 느낌이 들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토록 김 박사에게 감사를 표하며 조심스레 질문을 던지던 그녀가 마지막에 던진 말에 나는 돌덩이를 맞은 듯 했다.

 

하지만 김 박사님 .......이 개새끼야, 정말 네 이야기를 하라고! 남의 이야기를 하지 말고, 네 이야기, 어디에 배치해도 변하지 않는 네 이야기 말이야! 나에겐 지금 그게 필요하단 말이야, 김 박사, 이 개새끼야.(130쪽)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 어디에 배치해도 변하지 않는 나의 이야기.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어디에도 흠잡히지 않을 남의 이야기를 마치 나의 이야기인양 고상한 표정으로 떠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불편하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여도 불편함이 가시지 않는다. 미세하게 남은 불편함이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 씁쓸하면서 묵직한 돌덩이에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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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공선옥 지음 / 창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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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에 가득 차 있던 화를 뱉어내고 싶을 때, 마음이 시린 날에 가만히 내 손을 꼭 잡아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할 때,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쌓이고 쌓여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도 모르는 새 굳게 닫힌 입술이 열리고 조금씩 흥얼거린다. 뜨거운 것이 흘러내린다. 마음이 녹아내린다. 그렇게 또 노래연고의 힘을 빌린다.

 

나는 노래 불렀다. 노래는 세상 밑으로 가라앉지 않고 물처럼 멀리멀리 퍼져나간다. 노래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고, 묘자 할머니가 말했었다. 노래를 부르자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31쪽)

 

정애는 노래를 불렀다. 정애의 노래는 그녀의 마음에 조그만 웅덩이를 만들기 시작해 마음 속 두려움과 미움을 차례차례 씻기기 시작했다. 웅덩이는 조금씩 조금씩 제 몸을 부풀려 이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이윽고 마음으로부터 새어나가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그녀는 말할 수 없었다. 말을 하려고 입을 떼는 순간 모든 것이 사라지고 무너질 줄만 알았다. 그래서 기어코 버텨내고자 했다. 친구라 믿었던 자가 뒷통수를 치고, 도움을 줄 줄 알았던 어른이 제 욕심만을 채우고 떠났을 때에도, 그녀는 주저앉지 않았다. 그저 조금씩 흥얼거릴 뿐이었다.

 

물은 떨어져서 보면 순하게 흘렀다. 그러다가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간지럽게 일렁였다. 어떤 물줄기는 혼자 사납게 뒤쳤다. (37쪽)

 

그녀는 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노래는 조금씩 물의 리듬을 닮아 일렁임이 간지럽기도, 사납기도 하였다. 세상이란 거친 바다에 대응하며 점차 거세어지고 사납게 몰아치던 노래의 일렁임은 위태롭게도 간신히 간신히 제 목소리를 남기고자 했지만,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어느날 세상이 불러온 커다란 파도에 휩쓸려 가 버리고 만다. 그렇게 정애는 자신을 놓아버리고, 그녀의 노래는 슬프게도 평온해져버렸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세상은 들어주지 않았다. 가녀린 꽃을 밟듯 짓밟고 짓이겼다. 그래서 다시는 일어날 수 없도록 만들었지만, 그녀가 남긴 노래는 울림을 가져 멀리 퍼져나갔다.

 

그녀의 노래가 귓가에 맴돈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마음은 노래를 기억하라 명한다. 눈에서 불꽃이 튀어 흘러내린다. 다시는 잊지 않겠다고 그렇게 고개를 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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