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드라마가 수상하다

어제부터 2기가 시작된 MBC 월화 드라마 '영웅시대'. 우리 시대의 실존 기업가들을 주인공으로 만든다고 하여 화제를 모았으나 기대와 달리 1기는 시청율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다 어제부터 차인표가 최불암으로 교체되어 2기가 시작되었는데.. 어째 심상치가 않다.

드라마 첫 머리에 등장한 박정희(독고영재 분)과 천태산(정주영이 모델, 최불암 분)의 대화를 보라.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자급자족, 자주국방하는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우리 군인이 나섰다!고 결연한 의지를 밝히는 박정희의 대사엔 장엄한 백그라운드 뮤직이 깔린다.

소학교 밖에 졸업을 못하고 '신문대학'과 '노동대학'에서 공부했다는 우리의 천태산씨, 역시 형편이 어려워 학비가 전액 면제인 사범학교에 갔다는 박정희는 서로 진한 교감을 나눈다. 동시에 이 나라 이 민족의 운명을 함께 헤쳐 나가보자는 영웅들의 의지는 후끈 달아오르는데..

드라마 제목이 '영웅시대'니 어느 선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그 몇몇 영웅들이 이 나라의 경제를 세우는 동안, 그 아래서 최저 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피땀 흘렸던 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면 '민초시대'라고 했겠지.

하지만 그 군인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았고, 그 기업가의 가족과 자손들이 아직도 이 나라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지금이라면 좀 이르지 않나? 온 국민이 시청하는 공중파 TV로 몇몇 일가의 이야기를 이처럼 미화시키는 게 말이다.

--나이 파괴 드라마, 영웅시대

게다가 이 드라마는 주인공의 나이와 실제 나이가 엉망진창이다. 근데 그게 재밌다. (^^;) 몇년 전만 해도 팽팽한 차인표였던 천태산씨는 몇 년 만에 폭삭 늙어 최불암 아저씨가 되었는데 극 중 나이는 마흔 여섯. (30대부터 전원일기에서 할아버지 역할을 했다는 최불암씨는 할아버지인 지금 40대 역할을 한다. 정말 대단한 배우!)

40대 중반인 천태산의 큰아들은 강석우 - 강석우의 지금 나이가 마흔 여덟이다, 대학생인 둘째 아들 정한용 - 강석우보다 세 살 위, 이들의 고모로 나오는 이혜숙씨보다도 한참 나이가 많다. 그런가하면 동생들은 아직도 어린 아역배우들로 나오고... 이들 나이를 헤아리다보면 드라마에 빠져들기가 쉽지 않다. 에고..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거의 한세기 인물열전을 풀어가기엔 한국의 배우풀이 너무 좁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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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1-16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보고 정신이 오락가락 한답니다. 음.그냥 이건 드라마이니 줄거리나 봐야겠다 하는 생각만 갖고 봅니다.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시청률 프로테지 문제때문에 기존의 유명 배우들을 주로 섭외하다보니 이런 이상한 가족구성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 위대한 이등병

어제는 엄마와 함께 포천에서 군복무 중인 동생 면회에 다녀왔다. 11시에 동생을 만나 읍내로 나왔는데 할 일이 없었다. 저녁 7시까지만 복귀하면 되었기에 서울이라도 데려와서 좋은 구경, 맛난 음식을 사주고 싶었지만, 면회 외출의 경우 포천 밖으로 나가는게 허락되지 않는다고 한다. 

일동면 읍내는 길이로 약 200 m. 2차선 도로를 가운데에 두고 양 옆으로 늘어선 것들이 전부였다. 별 수 있나.. 만나자 마자 밥 먹고, 어슬렁 거리고 비디오 한편 때리다가 또 밥 먹는 수밖에.

이등병의 식욕이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전에도 집에 전화를 해서 "밥 먹고 돌아서면 또 배가 고프다." 심지어 "밥을 먹고 있는 중에도 배가 고프다" 란 불가해한 말을 했다는데... 한번은 집에 보내는 편지에 "바나나 우유, 콜라, 환타, 사이다, 식혜 ... (기타 음료수 이름 줄줄이) ... 꿀꺽~" 이렇게 한 줄을 써서 보냈다고 한다. 후에 왜 그랬는지 물어보니 더워죽겠는데 내무반에 뜨거운 물밖에 없어서였다고. 겨울에도 냉동실에 찬물을 얼려먹는 놈이니 오죽 했을까.

우쨌든 11시 반 점심에, 소갈비 2인분, 냉면 한 그릇, 밥 반공기를 먹는 동생을 흐뭇하게 바라본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불과 몇 시간 지나지도 않은 4시에 "배가 고프다"더니(난 내가 잘못 들은줄 알았다), 삼겹살 3인분에 밥 한공기를 먹어치운다.

끝도 없이 움직이는 젓가락을 놀라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엄마와 나에게, 젓가락질을 잠시 멈춘 동생이 머슥한듯 묻는다. 왜 안 먹느냐고. 우리 엄마 하는 말씀이 "OO야, 민간인들은 점심에 고기먹고 저녁에 또 고기 먹는 게 쉽지 않어..."
정말 위대한 이등병이다.

- 엄마 마음, 누나 마음

토요일에 서울 올라오신 우리 엄마. 밤이 되기가 무섭게 자리를 펴고 주무실 준비를 한다. 그러고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나보고도 빨리 자라 이른다. 나, 컴퓨터 앞에서 죽치고 앉아 있다가 2시가 넘어 잠든다.

일요일 아침 7시도 되기 전에 일어나 부산 떠는 우리 엄마. 아직 한밤중인 날 깨운다. 빨리 일어나서 갈 준비 하라고. 나,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다 내고 뭉개다 겨우 일어난다.

챙겨서 동서울 터미널로 나가보니 9시 20분 차는 매진이고, 다음 차는 9시 50분. 기다렸다 9시 50분 차 타고 가자는 나의 권유를 무시하는 우리 엄마, 9시 20분 차에 입석으로 가자신다. 흑, 거기가 어디라고 서서 가냐구요. 얼굴까지 노래지며 멀미하는 우리 엄마, 그래도 아들래미 기다리다 목빠질까봐 한시라도 빨리 가고 싶어하는 맘이란.

나, 우리 집에서 지하철 타고 동서울 터미널 가는 법을 엄마한테 열심히 가르쳐준다. "모르면 적어~ 아니야. 내가 나중에 적어서 보내줄께" 혹여 담번에 또 같이 가자고 하실까봐.. -.- 미안하지만 동생 면회는 이게 첨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빠져든다. 엄마 마음과 누나 마음의 간극이란 이렇게 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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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4-11-16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이등병 진입을 축하합니다. 胃大한 이등병이 건강하게 잘 있어서 다행이군요.

먹어도 먹어도 배거플때죠. 정말 남의 밥그릇의 밥이 많아보이기만 하죠. 잘 있다가 돌아오길 빕니다.

sunnyside 2004-11-16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다음 달이면 벌써 일등병이 된다고 하더라구요. 꼽아보니 벌써 군생활의 1/4 이 지났네요. 시간 참 빨라요.. 동생은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요. ^^

mannerist 2004-11-16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뭐 서니님 동생에 비하면 오방 편한 생활이었다지만 그래도 이등병때 생각이 나네요. 면회 못 가시더라도 휴가 나오면 따뜻하게 맞아주세요. 가능한 한 "또 나왔냐?"란말로 국방색 군바리 가슴에 대못을 박지 마시구요. =)

sunnyside 2004-11-16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네 알겠습니다. 제 친구들한테도 그런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시간 잘 간다, 휴가 또 나왔냐, 란 말이 정말 상처 된다고 그러더군요. ^^
 

어젯밤 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관한 글이 사라졌다.

사라진게 아니라 내가 삭제했다. 그림이 잘못 들어갔는지 페이퍼가 이상하게 보이길래, 삭제하고 다시 올리려고 했는데... 삭제만 하고 다시 못 올렸다. 글을 복사해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T.T (바보, 이 바보~)

희한하게도 조선남자님의 코멘트만 저장을 해두었다. "강변까지 살랑살랑 걸어나가 새벽밤 짙었던 심야에 보았어요. 다 보고선 우멍하게 앉아 눈물 그렁그렁 했었어요. 너무 좋은 영화였어요." 

그렇다 정말 좋은 영화였다. 조제... 난 널 지운게 아니야. 그건 단지 실수였단다. 그렇지 않아도 조제 생각만 하면 가슴이 먹먹한데... 이젠 죄책감까지 드는군. 조제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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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4-11-08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그 페이퍼 다 보았거든요..기억을 되살려서 올려 드릴까요?

일단 목욕 제개하고..앉아서 참선을 하다보면 생각이 날것 같은데..기달려 보셔요..^^

sooninara 2004-11-08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써니님..번개 오실거죠?

진/우맘 2004-11-09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난 다 못 봤는데.TT 요 밑의 저것이 전부가 아니란 말임???

sunnyside 2004-11-09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녀. 삭제됐었는데요. 전지전능하신 개발팀장님께서 시험삼아 살려 놓으셨답니다. 어뜨케 이렇게 페이퍼가 되나 싶으셨나 봐요. -.-

이럴서가 2004-11-09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아래 페이퍼는 참으로 광활하고 적막해요. 조제의 물고기들이 사는 곳 같아요. 첨엔 그 효과를 노리고 높이와 너비를 쭈욱 늘이신 줄 알았어요.. -.-

sunnyside 2004-11-10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정말? 그렇다고 할걸...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로서 평가가 되는 영화가 있고 그렇지 않은 영화가 있다.

최근에 본 두 편의 영화가 각각 위의 경우를 대표했는데, 하나는 <주홍글씨>이며 또 하나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다.

우선 두 영화 모두 재미있게 봤다.

<주홍글씨>를 보고는 영화에 대해 말을 많이 했다. 한석규의 연기가 어떻고 이은주의 연기가 어떻고... 연출은 세련되나 장치가 다소 진부하다는 둥... 주인공의 캐릭터나 마지막에 등장하는 레즈비언 코드가 <원초적 본능>과 비슷하다는 둥 어쩌고 저쩌고.

그런데 엊그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고 난 '그 영화'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 말하기가 싫었다. 그 영화의 공식 사이트를 방문했던 것도 후회할만큼. 난 다만 '조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후로도 한참을 '조제'에 대해 생각했다.

다시 해저와 같은 심연 속으로 들어간 조제. 그녀는 츠요네를 붙잡지 않는 최소한의 쿨함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이 힘들었을까? 한밤중에 잠이 깬 조제는 얼마나 무섭고 외로울까? 한줄기 빛도 미동도 없는 해저에서 아무리 팔을 휘저어 보아도 저곳, 물살이 있고 태양이 부서지고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노니는 바다의 표면에는 닿지 않겠지.

생선 반토막을 구울 때 조제는 생각하겠지. 책을 읽다 호랑이만 나와도 조제는 또 생각할 것이다.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릴때 조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뛸지도 모른다. 그렇게 몇년을, 어쩌면 평생 조제는 그가 남긴 추억과 아픔을 되새김질하게 될 것이다.

떠난 사람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의존하는 관계라면 대개 그렇게 끝이 나기 마련이니까. 그냥 자꾸만 조제가 걸린다. 남겨진 그녀가 감당해야 할 외로움의 무게를 아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영화를 영화로 볼 수 없게 만들었던 특별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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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서가 2004-11-08 0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변까지 살랑살랑 걸어나가 새벽밤 짙었던 심야에 보았어요. 다 보고선 우멍하게 앉아 눈물 그렁그렁 했었어요. 너무 좋은 영화였어요.

진/우맘 2004-11-09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어...여기저기서 심한 조제 바람이....^^
 

공각기동대 TV 판도, 전작도 보지 않은 내가 이해하기 쉬운 작품은 아니었다. 워낙 심오하고, 거기에 심오한 후까시의 외피를 두르고, 가뜩이나 머리 회전이 둔해진 요즘이라 영화는 코드처럼 난해하기만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비쥬얼 하나는 끝내준다'는 것. 그 섬세한 스케치와 풍부한 색채감, 2D와 3D의 환상적인 조화는 보는 내내 입을 벌어지게 했다.


 

 

 

 

 

 

 

 

 

 

 

 

 

 

 

 


 

 

 

 

 

 

 

 


 

 

 

 

 

 

 

 

 

 

 

 

(스포일러) 영화는 인간과 사이보그가 혼재되어 살아가는 미래의 어느 날. 성(性)기능이 추가된 신형 섹서로이드 몇 대가 주인들을 살해하고 자살(자기파괴)을 시도한다. 정치 테러일 가능성을 포함하여 이를 수사하던 공안 9과의 형사 버트와 파트너 토그사는 그 로봇을 제작한 로커스사(社)의 중심부까지 깊숙이 침투하는데... 놀랍게도 그 로봇은 어린 아이의 혼을 주입하여 제작된 것이고, 아이는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러 오기를 바라며 로봇에 치명적인 에러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아마도 감독이 의도한 영화의 중심 메시지는 이것이리라.

버트는 구해낸 아이에게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 분노한다. "희생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니?" 그 로봇들에 의해 살해된 잘난 정치인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의 혼이 주입된 섹서로이드 로봇의 대량파괴를 이르는 말이다. 작가는 버트의 입을 통해 혼을 빼앗긴 아이와 아이의 혼을 주입받은 로봇의 경계가 사라졌음을 이야기한다.

인간이 인형놀이를 하는 것은 육아를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닮은 인형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 그 자체이다. 출생과 육아는 인간의 이러한 욕망을 가장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었을 따름이다... 극중 법의학자인 해러웨이의 말이다.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는 이미 몇 백년 전부터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쥐의 등에서 배양된 귀를 인간의 머리에 붙이게 될 날을 생각해보라. 인간을 분해/조립가능한 개체로 인식하기 시작한 때부터, 인간의 행동과 사고가 고유한 '자유의지'가 아니라 진화의 산물임을 설명하기 시작한 때부터 우린 어쩌면 우리의 모습을 한 로봇을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전작보다 나아진게 없다는 비판도 많지만, 전작을 보다 졸아버린 나로서는 비판할 자격이 없겠다. ^^;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곱씹어봤으면 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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