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토이치 : 座頭市 - [할인행사]
기타노 다케시 감독 / 인트로미디어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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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는 얼마나 좋을까?

그는 자기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맡고 싶은 역할을 만들어 연기를 한다. 연기도 했다하면 조연이 아니라 주인공만 하는데, 그가 주인공을 맡은 영화들은 보통 더큰 호평을 받곤 한다. 하나비, 소나티네, 키쿠지로의 여름이 그랬고, 이 영화 자토이치도 그러하다. 게다가 자토이치의 주인공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는 주사위 굴러가는 소리만 듣고도 이것이 홀인지 짝인지 귀신같이 알아맞히는가 하면, 냄새로 상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하고, 칼 뽑는 솜씨 또한 전광석화처럼 빠르다. 악의 두목의 두목까지 찾아가 철저하게 밟아주고는 또 다시 방랑자의 삶을 살아가는 자토이치는 강하다. 쿨하다. 멋진 남자다! 이 정도면 기타노 다케시가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본인이 연기를 하는 것인지, 멋진 연기를 하고 싶어서 멋진 영화를 만드는 것인지 헷갈리려 한다.

아무튼 '자토이치'는 색다르고 매력적인 영화였다. 전형적인 무협검객영화 같다가도 슬랩스틱적인 요소가 튀어나와 사람을 어이 없게 만들고, 마지막엔 갑자기 뮤지컬로 변모하며 온 출연자의 탭댄스로 경쾌한 대단원을 맞는다. 또한 영화의 중간 중간에 나오는 노동과 리듬의 만남도 매우 즐거웠는데, 밭에서의 곡괭이질, 목수의 망치 소리가 배경음악의 리듬과 절묘하게 맞어 떨어지는 것이다.

기타노 다케시. 프로필을 찾아보니 우리 나이로 쉰 하고도 예닐곱이 되더라. 말 그대로 낼 모레면 환갑인 나이에 그렇게 장난꾸러기 같을 수 있다는 것이 부럽다. 그의 재치와 감각이 환갑이 아니라 칠순 팔순까지 이어져 관객과 오랫동안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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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항한 양심 - 칼뱅에 맞선 카스텔리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자작나무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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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책장 한 켠에 숙제처럼 꽂혀 있던 책을 드디어 읽었다. <폭력에 대항한 양심>.
이 책은 16세기 칼뱅이 신의 이름으로 독재를 펼치던 스위스 제네바에서 칼뱅의 독선과 권모술수에 맞서 외롭게 싸우다 죽어간 카스텔리오라는 인물에 대해 들려주고 있다.

우상과 형식의 파괴, 카톨릭의 부패에 맞서 등장한 종교 개혁은 칼뱅에 의해 지독한 금욕주의와 교조주의로 변질된다. 칼뱅은 자신의 교리만을 진리로 선언하며 이에 맞서는 모든 자들을 이단으로 몰았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태어남 자체를 죄악시하는 극도의 금욕주의는 모든 형태의 쾌락과 상상을 억압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돈키호테 기질이 다분한 괴짜 신학자 세르베토는 칼뱅과 다른 몇 가지 교리를 설파하였다는 이유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이 하나의 문장에 얼마나 큰 고통이 담겨 있었는지.. 세르베토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을 변호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다가 '산 채로 화형'이라는 가장 끔찍한 형벌로 살해를 당한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던 엄혹한 독재 치하였고, 세르베토의 죽음의 부당성을 말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들 칼뱅의 치적을 찬양하기에 바빴고, 그에 대한 반대는 죽음 적어도 추방임을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때에 한낱 신학자에 불과했던, 칼뱅의 권능에 비하면 그야말로 폭풍 앞의 촛불과도 같았던 카스텔리오는 세르베토 죽음의 부당성을 용기있게 주장하였다. 그 누구도 신의 진리를 독점할 수 없고, 더더군다나 신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동등한 자녀인, 같은 인간을 살해할 수는 없다. 나는 세르베토가 이단이냐 아니냐를 떠나, 세르베토를 지지하는 것과 무관하게,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당신, 칼뱅을 반대한다. 탕, 탕, 탕!

카스텔리오의 논변은 더할 수 없이 명쾌하였다. 이보다 더 열정적으로 정신적 자유와 관용을 설파할 수 있을까 싶다. 칼뱅은 제거해야 할 또 다른 대상의 등장에 분노하였다. 그는 세르베토를 죽였을 때와 똑 같은 방식인 온갖 음해와 공작으로 카스텔리오의 사회적 생명을 앗아가려 하였지만, 눈에 뻔히 보이는 진실과 오류의 대립은 칼뱅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결국… 억지로 찾아낸 꼬투리로 카스텔리오를 형장에 보내기 직전, 카스텔리오는 위경련을 일으켜 세상을 뜨고 만다. 사정을 아는 이들은 이를 두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카스텔리오가) 적들의 발톱에서 빠져나갔다’라고 말했다.

양심과 용기, 이 두 가지를 모두 지닌 자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봐도 감동적이다. (양심만 있는 자라면, 그들의 이야기는 세상에 전해지기 힘들 것이다. 그의 마음 속의 양심을 세상에 드러낼 기회가 없기 때문에. 용기만 있는 자들은 종종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오늘도 신문 사회면/해외 토픽면을 보면 별별 희한한 행동으로 뉴스를 만들어 내는 ‘용기백배’형 인간 군상들이 꽤 많다. ^^;) 하지만 양심과 용기를 모두 지닌 누군가가 있다면, 아주 좋은 세상을 만나지 않는 한 불운해지기 십상이다. 칼뱅의 16세기가 그랬고, 한국의 현대사가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양심에 따라 총을 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용기로 실천한 자들은 지금도 감옥에 갇혀 있다.

…얼마 전 누군가와 술을 마셨던 일이 생각난다. 그는 정형근(우리가 아는 그 국회우원 정형근)이 뭣을 잘못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똘똘하고 능력 있는 몇 놈 데려와라’는 명령에 따라 자신이 그런 일을 하게 되었고, 또 하라는 대로 열심히 일 했을 뿐이라는 정씨의 말이 수긍이 갈 것 같다고도 했다. 모든 가치관이 혼란스럽다고도 했다.

나는 고달픈 직장인이고, 한 집안의 가장인 그의 말을 그 자리에서 반박하지는 않았다. 아둥바둥 살아도 제 몸 편히 뉘일 터 하나 마련하기 힘든 각박한 세상이다. 그이(=> 정형근)도 죽어라 열심히 살았고, 우리도 그렇다. 그렇다면 둘 사이에 다른 점이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과연 그런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열심히 살았다는 것이 변명이 될까? 그것은 차라리 쉽다. 그것은 ‘주어진 상황’을 극복하고, 반대하며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자들이 언제나 있어왔기에 그렇다. 칼뱅 시대의 카스텔리오처럼 말이다. 칼뱅의 수많은 추종자들의 이름이 남아 있지 않고, 카스텔리오의 이름이 몇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는 것을 보라. 정씨가 공안검사도 악명을 날릴 때(본인의 말대로 하자면 열심히 일할 때)에도 알량한 대학 졸업장을 포기하고, 빨간 줄을 각오하고, 뼈 빠지게 농사짓는 부모님의 얼굴을 지워내며 투쟁했던 이들이 있음을 기억한다면… 변명도 쉬운 게 아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은, 최소한 한 나라의 국회우원 정도가 되려면 혹독한 양심의 시험을 통과해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남들이 다 공공의 선을 쟁취하기 위해 싸울 때 제 한 몸의 영달을 위했던 이라면, 지금도 그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을까? 너무 엘리트 코스만 밟아와서 양심과 용기가 시험 받을 기회가 없었다면, 정치인으로서 내려야 할 수많은 판단의 순간에 그가 어떤 기준을 갖다 댈지 다소 의심스럽지 않을까?
카스텔리오와 같은 인물이 한국 정치에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위의 리뷰를 쓰는 본인은 시험이 닥칠 때마다 늘 양심과 용기가 시키는 반대 짓을 해왔다. 그래서 내가 국회우원 안하고, 평범한 소시민으로서의 삶을 택한 것이 아니겠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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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2007-02-05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뱅의 그 사건에 대해서는 저도 유감이지만, 칼뱅이 세르베투스를 죽였다는 표현은 뭔가 불공정해 보이는군요. 칼뱅이 생각처럼 그렇게 절대권력을 휘둘렀다고 볼 수는 없으니까요.
 
설득의 심리학 -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6가지 불변의 법칙 설득의 심리학 시리즈
로버트 치알디니 지음, 이현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출간된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구, 여전히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이 책 <설득의 법칙>은 보통의 자기계발서라 불리는 책들과는 조금 다르다.

우선은 세일즈맨 출신이나, 경영 컨설턴트가 쓴 게 아니라 전문적인 심리학자가 강의 시간에 교재로 쓰기 위해 집필했다는 점이 그렇다. 그래서 이 책은 설득을 잘 해서 잘 먹고 잘 살아보자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또 그래서 이 책은 이 책을 많이 팔아 잘 먹고 잘 살아보자는 목적을 드러내지 않는다. 책의 이러한 점 때문에 오히려 많은 이들에게 꾸준히 읽히고 있는게 아닐까 잠시 생각을 해본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설득의 법칙을 단 여섯가지라고 규정한다. 상호성의 법칙, 일관성의 법칙, 사회적 증거의 법칙, 호감의 법칙, 권위의 법칙, 희귀성의 법칙. 알고 썼든 모르고 썼든 이러한 법칙들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영위해나가면서 많이 접해보았고 실제로 사용해본 법칙들이다. 상호성의 법칙은 빚지고 살기 싫은 인간 심리를, 일관성의 법칙은 말그대로 '일관성을 지키는게 중요하다'고 믿는 인간 심리를, 사회적 증거의 법칙은 남이 하는대로 따라하게 되는 경향을, 호감의 법칙은 호감 주는 사람에게 끌리는 현상을, 권위의 법칙은 지위, 지식, 전문성을 갖춘 이들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게 되는 심리를, 희귀성의 법칙은 희귀하다고 하면 일단 끌리고 보는 현상을, 각각 이용한 설득술이다.

부정할 것 없이 모두 수긍이 가는 내용이다. 새로운 것은 없었지만 무심코 알고 또 당해왔던 사실들을 정교한 가설과 실험 결과로 확인하고 나니 재미도 있고,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다.

그 중 특히 나를 심란하게 했던 몇 가지 실험 결과는 '권위'에 나약하기 짝이 없는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비싼 고급 승용차가 파란 불이 켜졌는데도 나가지 않고 서 있을 때, 보통의 사람들은 값싸고 후진 차가 앞에 있을 때보다도 훨씬 늦게 크랙션을 울린다고 한다. 멋진 정장 차림의 남성이 횡단 보도에서 신호 위반을 하면,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 무단 횡단을 할 때보다 3.5 배! 나 많은 사람들이 따라서 신호 위반을 한다고 한다. 원숭이들조차도 대장 원숭이가 먹는 음식을 다 따라먹는다고 하니, 권위 / 서열체계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은 인간성이 아니라, 동물적인 본성인 것인지... 오늘 시사매거진 2580을 보니 국회의원들의 특권과 권위에 대한 방송을 하던데, 이들의 특권의식을 지켜준 것이 우리 스스로가 아닌지 곰곰히 생각해볼 일이다.

책은 그밖에도 많은 실험과 사회적 사건들을 통해 위 여섯 가지 법칙이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사례가 약간 오래되었다는 것(97년이 가장 최근의 사례)과, 이 나라가 아닌 미국에서 벌어졌던 일을 주로 소개하였다는 점만 제외하면 나무랄 데 없이 유익한 책이다.

아, 그리고 또 궁금했던 것 - 위 여섯가지에 모든 설득의 법칙이 다 포괄되어 있다고 하는데, (내가 주로 사용하는) 될때까지 조르기나 안되면 눈물로 호소하기 등의 법칙은 없더라. 약점 잡아 위협하기, 먹는 것 등으로 미끼 던지기 법칙도 없다. 그런건 보편적인 설득의 법칙이 아닌 것일까? 아님 유치한 인간들을 위한 설득의 법칙에는 할애할 공간이 없었던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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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리릿 2004-05-10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는 것 등으로 미끼 던지기"... 괜히... 웃음이 나면서도 뜨끔한 이유는 뭘까?
(내가 왜 뜨끔? 내가... 왜에....!)
^ ^ ;

sunnyside 2004-05-10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 방법을 제가 주로 누구에게 쓰는지 간파하셨군요.

진/우맘 2004-05-10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로 호소하기...제가 많이 쓰는 방법인데.^^; 그건 아마도 <설득의 심리학> 2탄, <굴복의 심리학>에 나오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눈물은 상대를 설득한다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굴복' 시키잖아요.^^
(그리고...찌리릿님의 약점을 하나 건졌군요. 유용하게 써먹어야겠어요.ㅎㅎㅎ)

sunnyside 2004-05-10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진/우맘님도 간파하셨군요.
아주 유용합니다. 거의 '열려라, 참깨'이며, '파블로프의 멍멍이' 수준입지요.
(찌리릿님, 먄~ 넝담인거 알죠? ^^;)

진/우맘 2004-05-10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빨간우산 2004-05-10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대박이 났다는 이 책.. 읽어보아야 하는 책의 목록에 올라있는.. 흠..

sunnyside 2004-05-11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한번 읽어보세요. 기정 오라버니도 50권인가를 다량 주문 하셨더랬죠..

nan032da 2004-05-11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엄마한테 용돈을 요구할 때 한 10만원 정도 필요하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러면 엄마가 깜짝 놀라며 무슨 돈을 한번에 10만원이나 가져다 쓰려고하느냐고 반문하시죠. 그럼 전 이렇게 말합니다. 알았어 그러면 최소한의 비용으로 5만원만 줘...그러면 엄마는 고민하다가 결국 지갑을 여시죠...전 몰랐지만 이 책을 보면서 엄마한테 용돈 타갈때 상호성의 법칙과 대조의 효과를 적절히 이용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ㅋㅋㅋ 암튼 너무 흥미롭게 읽은 책이죠....

sunnyside 2004-05-11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건 '상호성의 속임수'라 불리우는 고급 설득술? 그걸 배우지 않고 몸으로 체득하여 이미 실천하고 계셨다니.. 대단하십니다. ^^ (근데 혹시 성함이.. '영삼'씨?)
 
크라잉 게임
닐 조단 감독, 스티븐 레이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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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크라잉 게임>을 다시 보았다. 역시나 멋~ 쥔 영화! 이처럼 슬프고 아름다운 영화는 정말이지 흔치 않다.

영화에는 개구리와 전갈에 대한 우화가 나온다. 함께 죽을지라도 개구리를 찌를 수 밖에 없는 것은 전갈의 천성(nature)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도 하나의 발단에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것은 주인공의 천성이 선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선한 사람이었기에 인질로 잡은 흑인병사와 마음을 틀 수밖에 없었고, 병사가 죽은 후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옛 애인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매력적인 여인이 남자였다는 것을 알고난 후 그는 구토하지만,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여인(?)의 사랑을 받는다.

천성이 선한 사람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사건이 일어나는 것 같다. 대개의 사람 모두는 적당히 선하고 적당히 악하기 때문에 세상엔 별 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천성적으로 선한 사람은 세상에 있어 보석과 같은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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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빌 SE
라스 폰 트리에 감독, 니콜 키드먼 외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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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는 본능대로 사는 것을 용서할 수 있다.' (물론 그런 개도 용서만 해주다보면 유용한 재주를 익힐 기회를 놓친다.) 하지만 인간은?

오... 진정 그러한가? 도그빌 사람들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죽었다. 일곱 남매들은 엄마가 바라보는 앞에서 총에 맞아 차례차례 죽었다. 마을은 불살라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로지 하나의 생명, 마당에 분필로 그려져 있던 개만 살아남았다. 왜? 개는 본능대로 사는 것을 용서받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인간은? 도그빌 주민 어느 한 사람도 세상에 전혀 보탬이 안되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이 결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선악설이라는 끔찍한 결론인가? 아니면 그레이스 또한 인간의 잔인함 앞에서 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누군가의 말처럼 '그레이스' 자체가 아메리카 - 자비로운 얼굴을 하고 가장 거대한 폭력을 휘두르는 - 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그도저도 아니라면, 내내 답답한 상황만을 지켜보아야 하는 관중들에게 마지막으로 선사하는 스펙터클인가?


자, 그에 대한 고민은 이쯤에서 멈추기로 한다. 정답이 어디에 있겠는가? 감독 또한 여러가지 중층적인 의미에서 이 결말을 구상했을 수도 있으니까.

* 결국 그레이스는 갱이 될 것이다.

인간 본성의 나약함을 혐오하며 살아갈 것이다. '받은 것은 되갚고', 때로는 '직접 처리'하면서 가지게 된 권력을 '자기식'대로 사용할 것이다. 천사같던 그레이스는 이제 세상에 없고, 마을 주민들도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 본성은 그렇게 이어져온 방식대로 선함과 악함을 되풀이하고, 상황에 따라 시험에 들고, 또 심판을 받으며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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